고민의 시작점에는 반드시 마음의 반응이 있습니다. 마음이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고민을 만들어내는 '단 하나 의 근원'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 는 방법을 생각해봅시다. 바로 '헛되이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헛되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인생이 얼마나 편해질지 상상해 보세요. 쓸데없는 감정에 동요하지 않고, 침울해하지 않고, 화가 나지 않습니다. 압박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남들 앞에서도 긴장 하지 않게 됩니다. 과거를 돌이키며 후회하지 않고, 앞날에 불안 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그만큼 행복은 가까워지겠지요.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구원이 아닐까요?
- 반응하지 않는 것이, 무리하게 참거나 무시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응하지 않는 연습'이란 고민을 늘어나게 만드는 헛된 반응을 애초에 하지 않는 연습입니다. 분노나 불안, 자신을 자책하는 어두운 기분이 생긴다면 재빨리 해소해야 합니다.
- 고민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 먼저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것이 일곱 가지 욕구를 낳고 그 욕구에 자극되어 인간은 반응하게 된다. 때로는 욕구를 채우는 기쁨이, 때로는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만이 생긴다. 그런 순환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인생이다.
-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면서 우리는 기쁨, 슬픔, 실망, 불만에 가득 찬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붓다는 이같은 삶의 모습을 범람 하는 인도의 강에 빗대어 거센 물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얼마 나 우리의 삶을 잘 비유한 말인지요.
“바라는 마음이 결핍감의 반복이라는 윤회의 홍수를 만든다. 온갖 욕구가 거센 물살이 되어 온몸을 뒤흔들게 된다. 인간은 건널 수 없는 욕망의 진흙탕에 파묻혀 있다.”
- 말로써 확인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라벨링' 이라고 부릅니다. 마음 상태에 이름을 붙여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일상생활에서도 라벨링을 똑같이 실천해봅시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는 '나는 지금 청소를 하고 있다',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 지를 하고 있다', 걷고 있을 때는 '지금 걷고 있다', 컴퓨터로 작 업하고 있을 때는 작업하고 있다.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로 확인하면 됩니다. 이렇게 마음 상태와 행동을 객관적인 말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합시다. 실천해보면 말로 확인할 때 헛된 반응에서 쉽 게 빠져나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반응에서 빠져나오면 마음은 침착함을 되찾게 됩니다. 자신의 상태를 말로 확인하는 작업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 '말로써 확인하기', 감각을 의식하기’라는 두 가지 방법을 붓다가 살던 시대에는 사티sati라고 불렀습니다. 마음 상태를 잘 살 펴보고 의식하면, 헛된 반응은 멈추고 마음은 가라앉으며 깊은 안정과 집중이 가능해집니다.
- 먼저 탐욕은 욕구 과잉에 사로잡힌 상태를 말합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너무 많이 바라고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입니다. 초조함이나 인간관계를 둘러싼 불만은 대부분 이렇게 너무 많 이 바라는 마음에서 옵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신경 쓰는 습관을 가졌으면 합니다. 탐욕에 지배당하면 스스로도 괴롭고 자신과 관계된 상대방도 반드시 불행해 진다는 사실을 알아두십시오.
- 탐욕에 사로잡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인간은, 본래는 힘이 없던 번뇌에 무릎을 꿇고 온갖 고뇌를 떠안게 된다. 이는 마치 스스로 깨부순 배의 밑바닥에 물이 스며들어 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붓다'란 올바른 이해의 궁극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 다. 깨달음을 얻은 자' 또는 각성자'라고도 불리지요. 이 대목은 불교에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꼭 전해드 리고 싶습니다. 올바른 이해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견해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아닙 니다. 오히려 반대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판단이나 해석, 사안에 대한 견해를 일체 배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객관적으로, 즉 주관을 배제한 '중립적인' 시선에서 매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 올바른 이해에 반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볼 뿐입 니다. 동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볼 뿐 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나와 상대방,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올바른 이해라고 표현합니다. 올바른 이 해야말로 괴로움을 뛰어넘는 길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요? 올바른 이해를 깨친 사람인 붓다가 도달한 경지를 가리켜 '해탈' 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해탈은 자유, 해방이라는 의미입니다. 불교, 즉 붓다의 가르침이란 올바른 이해에 따라 인간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정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이 책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합리적인 사고법'이라고 부르는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올바른 이해를 통해 사람은 자유로운 마음을 되찾을 수 있습 니다. 꼭 실천해서 내 안에 존재하는 원인 모를 결핍감을 해소하 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충만한 삶을 되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사람이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마음속에는 반드시 집착이 있 습니다. 마음은 계속해서 졸졸 흐르는 실개천과 같아서, 괴로움을 남기지 않을 작정이었더라도 어느새 집착이 고여 괴로움을 낳게 됩니다.
- 이루지 못했던 과거의 바람이 괴로움을 낳는다. 틀림없이 성공했어야 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는 판단이 괴로움을 낳는다. 상대방을 향한 기대와 요구가 괴로움을 낳는다. 이런 집착들을 떼어놓지 않으면 자신도 상대방도 계속 괴로울 수 밖에 없다.
- 붓다는 보통 사람이라면 화를 낼 법한 말을 들어도 무반응으로 응수했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마음을 향하는 것을 인생의 목 적으로 삼은 이상, 쓸데없이 반응해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라 도 결코 반응하지 않고 그저 상대방을 주시하고 이해한다. 철저 히 그 입장에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붓다의 합리적 태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반응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승리'라는 이해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승리란, 상대방에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반응해 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일수록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고, 각오를 다지면서 상대방을 그저 이해하기 위 해 노력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반쪽을 내 안의 반응을 들 여다보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연습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상대방과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 에라도 필요한 일입니다. 마음의 반쪽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나머지 반쪽은 내 마음 안쪽의 반응을 알아차리는 데 사용해보세요. 그리고 이를 상대 방을 마주하는 방식의 원칙으로 삼는다면 좋겠습니다.
-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과거에 속박되지 말고, 지난 일은 잊어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과거의 사건을 언제까지고 기억합니다. 게다가 상대방을 그 기억을 통해 대하려고 하는 경 향이 있지요. 하지만 그 기억은 또야?'라는 반응과 함께 새로운 분노를 유발하게 됩니다.
그가 나를 매도했고 나를 부정했고 나를 굴복시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계속 생각하는 사람은기억에 얽매여 반응하고 분노하기 때문에 원망이 그칠 일이 없다.
- 예를 들어 상대방과 언쟁을 했다면, 맨 처음 분노 대상은 상대 방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끝나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답답하며, 개운치 않고 짜증이 난다면 그 원인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의 기억입니다. 과거를 떠올리고 기억에 반응하면 새로운 분노를 낳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도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실 그 분노에 상대방은 관계가 없습니다.
- 언제나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은 기억일 뿐이다. 지난 일을 떠올리더라도 반응하지 않는다. 이는 불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상대방을 마주하는 또 하나의 지혜가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을 새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 또 한 가지 알아뒀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망상은 확인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꿈을 꾸면 여기에 중대한 의미 가 있는 것이 아닐까?', '뭔가 이유가 있기에 보인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거기에 의미가 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확인할 도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떻게든 확인해보고 그것을 믿겠다고 생각한다면 망상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 됩니다. 그만큼 올바른 이해는 멀어지고 마는 것 이지요. 사실 이것은 망상을 좇을지 올바른 이해에 머무를지 어 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확인할 길이 없는 것을 어디까지 좋을지는 여러분이 마음먹 기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무엇보다 스스로 인생의 목적을 확실히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상을 좇는 것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려 노력하고, 합리적인 사고법과 이해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괴로움이 이번 생에서 생겨난 이상, 이번 생에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도록 해봅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사람은 망상을 그만두는 것 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망상하는 버릇 자체가 다른 사람의 시선 이 신경 쓰이는 고민의 원흉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망상을 올바르게 마주하는 방법을 이번 기회에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 불교에서는 마음의 반응이 연쇄한다는 발상이 있는데, 예로부터 이를 연기론緣起論'이라 불렀습니다.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그 본질을 더 잘 떠올릴 수 있게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명(몰이해)의 상태에서 마음이 반응한다.
자극을 접했을 때마음이 반응해서 감정과 욕구, 망상이 결생結生한다.
결생한 생각에 집착함으로써 하나의 마음 상태가 생겨난다.
그 마음 상태가 새로운 반응을 만들어낸다. 그 반응의 결과로 온갖 고뇌가 생겨나는 것이다.
- 외부 사회나 사람이 신경 쓰여 견딜 수 없다면 눈을 감으십시오. 승패나 우열, 열등이라는 판단이 괴롭다면 눈을 뜨십시오. 눈을 감는 것은 반응하지 않기 위해서, 눈을 뜨는 것은 망상에서 깨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간단하지만 이것이 경쟁이라는 이름의 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마음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이를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 안쪽을 보지 않고, 바깥 세계에만 반응하는 사람은 욕망에 휩쓸린다. 마음 안쪽과 바깥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여 번뇌에 뒤덮이지 않은 깨끗한 마음으로 보는 사람은 욕망에 휩쓸 리는 일이 없다.
- 말년의 붓다는 여행 도중 오랫동안 자신의 곁에 있었던 제자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제 아무것에도 의지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처로 삼고 다른 무엇에도 의지 하지 말라. 올바른 삶의 태도를 의지처로 삼고 변하는 것, 인간의 생각이나 말에 매달리지 말라.
- 뭔가에 매달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불안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없고 인생 에는 괴로움밖에 없다고 여기면서 바깥 세계에서 구원을 바라 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붓다는 바깥 세계에 해답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세계 에 넘치는 모든 기호, 가치관, 사상, 종교 모두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정작 내 마음과 꼭 맞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자신을 구원하리라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자신이 지닌 마음의 어둠과 고뇌는 결국 스스로 뛰어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 안쪽에 올바른 삶의 태도 와 의지처를 확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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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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