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켑틱

과학 2021. 5. 15. 20:03

-  존경할 만한 훌륭한 태도는 2001년 5월 11일 자 《사이언스》에 게재된 동아시아 현대인의 아프리카 기원) 보고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의 유전학자들로 구성된 조사팀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163개 집단 1만 2127명 남성을 표본으로 Y염색체에 있는 세 개의 유전자 표지를 추적했다. 그들은 모든 피실험자들이 3 만 5000년 전에서 8만 9000년 전 사이에 존재했을 아프리카의 한 부 족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세 유전자 표지 중 하나 에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 결과는 동아시아 현대인의 해부학적 기원에 그 지역 원주민이 최소한의 기여도 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내렸으나 이는 사실상 아프리카 원주민이 현대 인류의 유일한 조상이라는 “아프리카 기원설”의 확실한 승리를 뜻한 것이다. 또한 이는 현대 인류의 조상이 수십만 년 전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했다는 “다지역 기원설” 이론을 거 의 파기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발견이다. 이 발견은 초기 미토콘드리 아 DNA 연구, 화석 기록, 그리고 네안데르탈인들이 동시대 인간과 교배하지 않았음을 보인 DNA 연구와 일치한다.
다지역 기원설의 주된 옹호자 중 한 사람인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인류학자 빈센트 사리치 Vincent Sarich (1934-2012)는 자신의 신념과 이론을 열정적으로 옹호하기로 유명하다. (나는 그를 알고 있으며 그가 자신의 생각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다지역 기원설의 추종자”라 일컫는 그는 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본 뒤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일종의 깨 달음을 통해 전향했다. 오늘날 살아 있는 인간은 다지역 기원설이 이 야기하는 고대의 Y염색체 혈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래된 미토콘 드리아 DNA 혈통도 없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완전히 생각을 바꾸었다.” 이 고백은 매우 커다란 지적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곧 “내가 틀렸군요”라고 말한 것이다.
사리치의 전향이 잘못된 것인지는 이번 발견을 지지하거나 혹은 부정하는 새로운 발견이 나올 때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그리고 궁지에 몰린 다지역 기원설의 한 열렬한 옹호자는 내게 빈센트는 진정한 다. 지역 기원설 지지자가 아니며 이번 연구는 어떠한 반증도 되지 못한다고 말 했다). 요점은 과학이 권위에 대한 교조적 순종이며 옹졸한 고집쟁이 들의 인맥으로 이루어졌다고 비난하는 창조론자들과 사회비평가들 이 틀렸다는 것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기존의 이론 은 새롭게 발견되는 증거들에 의해 공격을 받는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자신의 의견을 바꾼다.
- 파인먼 다이어그램은 에드워드 터프티가 그의 세미나(www.ed
wardtufte.com)와 책《양적 정보의 시각적 표현 The Visual Display of Quantitative Information》, 《시각적 설명 Visual Explanations》, 《정보의 시각화 Envisioning Information)에서 강조한 분석적 디자인의 전형이다. “적절한 데이터 그림은 구조, 과정, 동역학,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식을 전달한다.” 인간은 매우 시각적인 동물이며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볼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 눈과 뇌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근거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는 정량적 근거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명확하고 정확한 그림은 명확하고 정확한 사고를 이끈다.”
나는 명확하고 정확한 사고의 대가와 명확하고 정확한 그림의 대가가 만난 것을 기념해 파인먼-터프티 원리를 만들었다. “데이터의 시각화는 밴의 한쪽 면에 그려질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야 한다."
- 20세기의 소송 변호사였던 루이스 나이저 Louis Nizer(1902-1994)가 “우 아한 조롱은 천 마디 욕설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순수문학에서 짧고 재치있는 문장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고급문화에 는 새뮤얼 존슨 samuel Johnson(1709-1784)의 “그는 자신만 멍청한 것 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멍청하게 만들었다”, 마크 트웨인 Mark Twain(1935-1910)의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장례식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친절한 편지를 보냈지”, 윈스턴 처칠 Winston Churchill(1874-1965)의 “그는 내가 싫어하는 모든 미덕을 가졌지만, 내가 경애하는 어떤 악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등이 있다. 대중문화에는 그루초 막스Groucho Marx(1890-1977)의 “완벽하게 멋진 저녁이었습니 다. 아, 오늘 말고요.”가 있다.
과학자들 또한 동료를 영리하게 엿 먹이기를 꺼리지 않는다. 아마 과학계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평가는 이론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 wolfgang Pauli (1900-1958)가 어느 논문을 두고 한 말일 것 이다. “이 논문은 맞지 않다.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 나는 이 표현을 파울리의 금언이라 부르겠다.
- 컬럼비아대학교의 수학자인 피터 보이트Peter Woit는 초끈이론을 비판한 최근 자신의 책의 제목으로 파울리의 금언을 따왔다.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Not Even Wrong》 (2006)(우리나라에는 《초끈이론의 진실》로 번역되었다 - 옮긴이), 보이트는 초끈이론이 그저 검증 불가능 한 가설에 기반하는 것을 넘어, 이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의 명성과 이론이 가진 수학적 심미성에 과도하게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에서 만약 어떤 아이디어가 틀렸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불가능한 경 우 그 아이디어는 틀릴 수 없다. 곧,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가 틀렸는지를 알 수 없다면, 그때 우리는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 이보다 더 나쁜 평가가 있을까? 있다. 바로 그냥 틀린 것보다 더 크게 틀렸다는 평가다. 또는 내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1920-1992)의 원칙이라 부르는 그것은 그가 쓴 《틀림의 상대성 Relativity of Wrong》 (1988)에 이렇게 잘 설명되어 있다.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틀렸다. 지구가 구 체라고 생각했을 때, 그들도 틀렸다(지구는 완벽한 구형이 아니라는 뜻이다. 옮긴이). 하지만 당신이 지구가 구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과 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두 집단을 합친 것보다 더 틀린 생각을 가진 것이다.
- 절대적으로 우수하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론 창조론 논쟁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두 반대되는 주장이 같은 열의를 가지고 주장된다고 해서 진실이 반드시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두 주장 중 하 나가 그저 틀린 것일 수 있다.” 
그저 틀린 것이다. 과학은 편견과 무관하고 문화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저 틀린 것이다. 과학이 전적으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저 틀린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과학에는 편견이 없다는 사람들과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 된다는 사람들이 같은 정도로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생각은 심지어 그냥 틀린 것보다 더 크게 틀린 것만 못한 것이다.
- 모든 과학자는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 들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과학계의 동료 평가 제도를 거치면서 그러한 편견과 신념의 영향은 제거되며, 만약 저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논문과 책으로 출간될 수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누구도 지적 진공 상태에서 홀로 연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학계는 자신의 연구에 반영된 편견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가 발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  "진실을 추구하는 자, 아직 확신에 도달하지 못한 탐구자.” 회의주의는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가 아니라 구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을 가져라" 이다. 전자는 인지심리학에서 “확증편향”이라 부르는 오류의 전형적인 사 례가 되기 쉽다. 열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기 존의 정설과 새로운 학설 사이에, 기존 체재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맹목적 추구 사이에, 그리고 극단적으로 새 로운 아이디어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 지는 것과 너무 쉽게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자신을 잃을 정도로 열린 마음이 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찾는 것이다. 
-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87년 “회의주의자가 짊어져야 할 부담 The Burden of Skepticism”이라는 강연에서 과학에서의 정설과 새로운 학설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긴장감을 이렇게 간결하게 정리했다.
나는 두 상반된 요구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가설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회의 적인 태도로 꼬치꼬치 따져보는 것과 이와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무한히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회의적인 태도만을 취한다면,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될 것입니 다. 반대로, 눈곱만큼의 회의적 태도도 없이 헛소리에도 쉽게 넘어갈 정도로 마음을 열어둔다면, 우리는 유용한 아이디어와 쓸모없는 아이디어를 구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의 마음은, 사물의 모습이 있 는 그대로 비추는 투명하고 평평한 렌즈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모습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온갖 미신과 사기로 가득 찬 마법의 렌즈와 비슷하다.” (베이컨)
- 어떤 이론을 만들거나 지지할 때 인간은 얼마나 자신의 목적에 맞춰 사실들을 왜곡하는가! - 찰스 매케이, 《대중의 미망과 광기》 (1852)
- “똑똑한 사람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그들이 별로 똑똑 하지 않은 이유로 가지게 된 믿음을 자신의 똑똑함으로 쉽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1895년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 Anatole France(1844-1924)는 이렇게 말했다. “우연은 신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사 용하는 익명인지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인간 행동의 관찰자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담배는 그저 담배일 뿐이다.”(모든 상징에서 성적 암시를 찾았던 프로이트의 말이다)
- 의학은 기적과 같고 과학은 눈부시지만,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는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람들의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의학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프리뭄 논 노체레 primum non nocere. 무엇보다 해를 입히지 말 것.
- 멘켄은 어리석은 행동과 돌팔이들을 놀리는 것을 특히 좋아했 다.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바보를 혐오한다.” 또 이런 유명 한 말도 남겼다. “대중의 지능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함으로써 손해를 본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사람도 없다.” 너무 터무니없는 주장에는 이렇게 반응하라고 말했다. “한 번의 커다란 너털웃음이 만 가지 논리만큼 가치가 있다.” 나는 이 말을 “멘켄의 처세술”이라 부르겠다. 
- 2001년 출간된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에서 앤드루 뉴버그 Andrew Newberg와 유진 다킬리 Eugene D'Aquilt 는 불교 수도승들이 명상할 때와 프란체스코회 수녀들이 기도할 때 그들의 뇌를 스캔한 결과 그들이 정향연합영역 Orientation Association Area(OAA)이라 명명한,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는(이 부위에 부상을 입은 이들은 집 주변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곤란을 겪는다) 상 후두정엽posterior superior parietal lobe의 활동이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것 을 발견했다. OAA 영역을 활성화시키고 부드럽게 작동시키면 자아 와 비자아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발생한다. OAA 영역이 깊은 단계 의 명상이나 기도 때처럼 수면 모드로 진입할 경우 그와 같은 구분은 사라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리고 신체 내부와 외부의 경계 또한 모호해진다. 수도승들이 경험하는 우주와의 일체감, 수녀들이 경험하는 신의 존재, 그리고 외계인이 자신을 침대 위로 끌어올려 그들의 모선으로 유괴하는 경험이 모두 이와 관련된 것일지 모른다.
때로는 트라우마가 이런 체험의 원인일 수 있다. 《랜Lancet)2001년 12월호에 발표된, 심장마비로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다시 살아난 네덜란드인 344명에 대한 연구는 이들 중 12 퍼센트가 자신의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 터널 끝 밝은 빛을 보는 임사체험을 했음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죽은 친척과 대화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험이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의해 뇌가 만들어내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뇌의 특정 부위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해 이러한 환상을 만들고, 또 다른 부위가 이를 외부의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비정상적 활동이 초자연적 현상으로 여겨 지는 것이다.
- 우리는 패턴을 찾는 동물로, 자연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인과 관계에 특별히 민감한 원시 인류의 후손이다. 이런 능력은 종종 유용 했기에 우리의 본성에 깊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능력 은 가짜 패턴을 진짜로 인식하는 오류 또한 종종 드러낸다. 이는 패 턴을 착각하는 습관이 유전되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 하여금 미신적 사고에 쉽게 빠지도록 만들었다. 특히, 세상의 복잡성에 따른 큰 수 의 법칙, 곧 일어날 가능성이 100만 분의 1인 사건이 뉴욕에서만 하루에 여덟 번씩이나 일어나는 상황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 오늘날과 같이 데이터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패턴을 쉽게 발견하는 능력을 고려해볼 때, 수많은 사람이 바이블 코드와 비슷한 사기에 넘어가는 것이 놀랍지는 않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가진, 그리고 앞으로도 가지고 있을 인지 능력에 있다. 해결책은 우 리가 가진 가장 우수한 패턴 분별 방법인 과학이며, 이 과학적 방법으로 자연의 합창 속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진짜 신호를 발견해내는 것이다.
- 결국 이는 신호와 잡음의 문제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잡음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생존을 위협하거나 생존에 도움이 되 는 패턴을 인식하는 뇌를 가지게 되었다. 두 가지 사건을 인과적으로 연관짓는 이것을 연상 학습association learning 이라 하는데, 우리는 이 작 업을 매우 능숙하게 해낸다. 또는, 적어도 이 능력을 가진 이들이 살 아남아 관련된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할 만큼은 뛰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능력에는 약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두 현상이 연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관한 것을 의미하는 미신은 대표적인 잘못된 연상 학습의 예이다. (홈런을 치기 위해 면도를 하지 않는 야구선수를 생각해보라.) 라스베이거스는 이런 잘못된 연상 학습을 바탕으로 지어진 도시이다.
- 우리는 이런 자신의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언어라는 특징을 가진 사회적 영장류로 진화했다. 문제는 진짜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생존에 도움을 주었지만, 가짜 패턴을 인식한다고 해서 우리가 죽지 는 않았으며, 때문에 자연선택 과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가짜 패턴을 계속 발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윈상(인류의 유전자 풀에서 “진정 어리석은 방법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제거한 이들에게 주는)은 더 이상의 수상자를 원하지 않는다. 경험에 의지하는 사고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과학적 사고는 훈련을 필요로 한다.
- 영적인 태도를 가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과학 또한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해준다. 는 점에서 그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우주는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별의 구성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우주가 스스로를 알아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에살렌 바로 남쪽에서 촬 영된 〈코스모스> 시리즈의 첫 장면으로 생명을 구성하는 화학 원소 들이 별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는 마침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이는 별 로 이루어진 존재가 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며, 10억의 10억의 10억 의 10배에 해당하는 숫자의 원자들이 유기적으로 뭉친 존재가 물질 의 진화를, 지구에서 아니 어쩌면 우주에서 시작된 길고 긴 의식의 탄생을 추적하게 된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고 번성해야 할 의무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탄생시킨 그 오랜, 그 광활한 우주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궁극의 영성이다.
- 뛰어난 과학자이자 (특히 그는 위성통신 아이디어를 최초로 내놓았다) 과학소설 분야를 개척하기도 한(그의 대표작으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있다) 아서 C. 클라크 Arthur . Clarke(1917-2008)는 우리 시대 의 가장 뛰어난 선지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가 남긴 날카로운 인용 구들은 인간성과 이 우주 속 우리 인간의 위치에 대한 통찰력 덕에 인류의 정신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그의 세 가지 법칙은 특히 그러하다.
- 클라크의 제 1법칙 “유명하지만 이제 원로가 된 과학자가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말은 거의 확실히 맞다. 하지만 무언가가 불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말은 틀릴 가능성이 높다." 
클라크의 제 2법칙 - “가능성의 한계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가 능할 때까지 시도하는 것이다.” 
클라크의 제3법칙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 우리는 사람들의 행동보다는 그들의 말에 크게 의지하며, 그 때 문에 대부분 거짓말을 잘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실어 증에 걸려 상대의 말에 덜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은 상대의 표정에 집 중함으로써 거짓말을 73퍼센트나 구분하였다. (다른 이들은 우연 이상 의 점수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의 뇌는 어쩌면 직관적 사고를 하도록 만들어져 있는지 모른다. 전두엽과 편도체의 일부(뇌에서 공포를 관리 하는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관계 속 속임수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그가 다른 면에서는 인지적으로 정상이었음에도 그러했다. 비록 과학에서는 직관이 가진 수많은 위험성 때문에 (마이어스는 이 내용 또한 잘 정리해놓았다) 이를 피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만, 우리는 지성과 직관이 경쟁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커크 선장의 법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성 없는 직관은 우리를 억제되지 않은 감정적 혼란으로 이끌 뿐이다. 또한 직관 없이는 복잡한 사회적 동역학과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바로 매코이 박사가 우유부단한 이성적 커크 선장에게 이렇게 말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모두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이를 필요로 하지요! 그것도 우리의 절반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끔찍한 것이 아니에요. 바로 그게 인간이지요. 부정적인 면 없이는 선장님이 될 수 없고, 선장님도 그것을 알아요! 선장님 권위의 상당 부분은 그에게 있어요.”
- 인간은 한 번 의견을 정하면 그 의견을 지지하고 고수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끌어다 붙인다. 설사 상대편 주장에 옳고 중요한 근거들이 훨씬 많을지라도 자신이 내린 결론이 너무나 중요한 나머지 그 결론의 권위가 위협받지 않도록 이 부정적인 근거들을 그저 무시하거나 얕보게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 《노붐 오르가눔》(1620)
- 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 Carol Tavris와 앨리엇 애런슨 Ellist Aron 이 쓴 《거짓말의 진화 Mistakes Were Made(but Not by Me)》는 이런 인지적 오 류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가능한 최 선의 행동이었다고 스스로 확신하게 만드는” 자기정당화에 주목한 다. 과거시제 수동태로 잘못을 말하는 이 문장 “실수가 행해졌다. mistakes were made" 은 정당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헨리 키신저는 베트남, 캄보디아, 남아메리카에서 이루어진 미국의 작전 들을 고백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내가 봉직하던 정부에 의해 실 수들이 행해졌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뉴욕의 추기경이었던 에드워 드 이건은 가톨릭 교회가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에 제대로 대처하 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나중에라도, 실수들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 또한 발견하게 된다면... 이는 너무 나 안타까운 일이다.”
태브리스와 애런슨은 자기정당화가 인지부조화, 곧 “심리적으 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인식(생각, 태도, 믿음, 의견)을 가지게 될 때 발생하는 상태”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한다. “부조화는 작은 양심의 가책에서 깊은 고뇌에 이르는 정신적인 불안을 유발한다. 인간은 이러한 상태를 해소하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편안히 쉴 수 없다.” 부조화 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기 정당화가 일어난다.
레온 페스팅거 Leon Festinger(1919-1989)는 클라리온 행성에서 온 우주선이 1954년 12월 20일 도착할 것이며 다음날 지구가 멸망하고 자신들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굳게 믿은 어느 UFO 사이비 종교 집단을 연구하면서 인지부조화 이론을 처음 발견했다. 멸망의 날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자(혹은 우주선이 도착하지 않자), 그들은 페스팅거가 예측한 대로 행동했다. 곧 직장을 그만두거나, 배우자와 헤어지거나,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치는 등 이 종교를 위해 크게 희 생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세계를 구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부조화는 해소 되었다. | 엉뚱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해 사형을 선고한 경우들에서 인지 부조화는 널리 발견된다. 1992년 이래, 이노센스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는 사형수 중 188명이 무죄임을 밝혀냈다. “만약 우리가 사형수 에 기울인 정도의 관심을 일반 범죄자에게 기울였다면, 우리는 지난 15년간 2만 8500명의 무고한 사람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 나 실제로 무죄로 밝혀진 이들은 255명에 불과하다.” 미시간대학교 의 법학 교수인 새뮤얼 R. 그로스Samuel R. Gross의 말이다. 이런 부조화에는 어떤 자기 정당화가 가능할까? “사법 시스템에 들어온 이들은 매우 냉소적인 사람으로 바뀐다. 모든 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당신은 범죄자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며, 터널 시야tunnel vision 라 불리는 편협한 시야를 가지게 된다. 
-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솔직히 털어놓으려 합니다. 한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수는 당신이 이를 고치기를 거부하지 않는 한 잘못이 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실수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려 합니다. 우리는 희생양을 찾지 않겠습니다. ... 어떤 실수든 그 최종적인 책임 은 내게 있으며, 오직 나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다면 부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을 것이며, 새로운 증거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신중한 리더로서의 그의 능력에 많은 이들이 존경을 표했을 것이다. 위의 발언은 쿠바 피그만 침공 이후 존 F. 케네디가 했던 말이며, 정확히 위와 같은 반응이 따랐다.
- 선택 교배를 통한 가축화의 가장 유명한 예는 1959년 러시아의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Dmitri K. Belyaey(1917-1985)가 시베리아의 세포학및유전학연구소에서 행한 것으로(지금은 루드밀라 N. 트루트가 이어받아 진행하고 있다) 은여우가 인간을 친밀하게 대하도록 교배시킨 것이다. 그는 인간과의 친밀성을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는지, 손으 로 주는 먹이를 먹는지, 쓰다듬을 수 있는지, 그리고 적극적으로 인간과의 접촉을 원하는지의 4단계로 나누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진화의 관점에서는 놀랄 만큼 짧은 시간인 35세대 만에 꼬리를 흔들고 사람의 손을 핥는 유순한 여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여우들은 또한 두개골과 턱, 치아가 야생의 조상보다 작아졌다. (가축화된 개와 그들의 조상인 늑대 사이에도 유사한 차이가 존재한다.)
-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유순한 성 격을 위한 교배 과정이 말린 꼬리나 펄럭이는 귀(야생에서는 새끼에게 는 관찰되나 성체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미지의 자극에 대해 공포 반응 을 쉽게 보이지 않는 것, 낮은 수준의 공격성 등 사실상 유형보유paedomorphism ?새끼 시절의 특성을 성체가 되어도 유지하는 것 - 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을 통해 태어난 새끼들은 도피 혹은 투쟁 반응에서 부신피질에서 생성되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와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양이 크게 줄었으며, 공격성을 낮추는 주된 요인인 세로토닌의 분비량 또한 크게 늘었다. 
- 랭엄은 지난 2만 년 동안 인간 또한 인구 증가와 정주 생활에 적 응하면서 집단 내 공격성을 낮추는 선택압을 겪었으며, 때문에 두개 골과 턱, 치아가 (우리의 바로 직계 호미니드 조상에 비해) 작아졌고, 발 정기가 사라졌으며, 강력한 성욕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에머리대학교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B. 드발Frans B. de Waal은 영장류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보노보는 갈등 해결과 사회적 친밀감을 위해 섹스를 활용한다는 것을 보인 바 있다.) 랭엄은 또한 인간의 뇌에서 공격성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변연계 전두피질의 13구역”이 침팬지보다는 보노보와 더 비슷한 크기임을 보인다. 
이 그럴듯한 진화적 가설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제한 된 자원이라는 조건은 인류가 집단 내에서는 협동을 하지만 집단 간 에는 경쟁하도록 만드는 선택압을 주었다. 이 시나리오는 또한 만약 당신이 보는 아름다움을 나 또한 본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은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더 깊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나는 꽃의 복잡 한 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 꽃의 색깔은 붉은색이다. 식물이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식물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것일 까? 질문들은 더 생겨난다. 곤충은 색깔을 볼 수 있을까? 곤충은 아름 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질문은 끝이 없다. 나는 꽃을 연구하는 것이 어떻게 꽃의 아름다움을 없앤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꽃을 연구하는 것은 더 깊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 뿐이다.
- 에머리대학교의 정신의학자 그레고리 번스Gregory Berns는 《만족 Satisfaction》(2005)에서, 쾌락의 추구는 우리를 끝없는 쾌락의 쳇바퀴 hedonic treadmill 위에 올려놓아 역설적으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며, 따라서 행복이란 쾌락이 아니라 만족감에 더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번스는 이렇게 결론내린다. “만족감은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감정이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쾌락은 자의와 상관없이 얻게 된다. 복권에 당첨되거나 쾌활한 성격의 유전자를 타 고나거나, 아니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등 운에 의한 것이다. 반면, 만족은 당신이 어떤 일을 의식적으로 행함으로써만 가질 수 있 는 감정이다. 바로 이 점이 가장 중요한데, 당신은 오직 당신의 행동으로 책임을 지거나 명예를 얻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는 《행복에걸려 비틀거리다 stumbling on Happiness》 (2006)에서 “인간은 미래를 고려 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우리는 실제로 지금 우리 를 행복하게 하는 것보다 미래에 우리를 행복하게 하리라 기대되는 것들을 바탕으로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길버트는 우리 인간이 이러한 예측에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는 사실을 다시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 중 대부분은 다양한 경험이 인생을 흥미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간식을 선호하는지를 예상하도록 한 뒤, 실제로 몇 주 동안 간식을 주었을 때 간식을 다양하게 먹지 않은 사람들이 더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길버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놀라운 일은 처음 일어날 때 특히 더 놀라운 일이 됩니다. 하지만 그 일이 반복해서 일어날 경우 감동은 점점 줄어드는 법이죠.”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과거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예상할 때,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 한 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결혼한 친구들이 상상하는 싱글의 주말을 나는 지난 주 말에야 드디어 보낼 수 있었다네.” 기억은 녹음기보다는 편집 장치에 가까우며, 과거에 대한 잘못된 기억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불행으로 가는 길은 잘못된 기억으로 포장되어 있다.
길버트는 또한 놀라운 일이 반복될 때 그 효과가 줄어드는 것을 두고 경제학자는 “한계 효용 체감declining marginal utility"이라 말하지만 결혼한 부부는 이를 인생이라 부른다고 약간의 냉소와 함께 말한다. 하지만 혹시 당신이 다양한 상대와의 관계가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카고대학교 출판부가 1994년 펴낸 《성의 사회적 구조The Social Organization of Sexuality》에 실린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결혼한 이들은 미혼 남녀보다 성관계 횟수와 오르가슴 횟수에서 모두 앞섰다. 구체적으로, 일부일처제의 기혼자 들 중 40퍼센트는 일주일에 두 번의 성관계를 가졌지만, 미혼 남녀 중 그 비율은 25퍼센트에 불과했고, 성관계 중 오르가슴을 느낄 확률 도 기혼자들이 더 높았다. 그리고 기혼과 미혼 여부에 무관하게, 한 명의 성적 파트너를 가진 남성이 다수의 파트너를 가진 남성보다 더 많은 횟수의 성관계를 가졌다.
역사학자 제니퍼 마이클 헥트Jennifer Michael Hecht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The Happiness Myth, Harper》(2007)는 이 점을 강조한다. 그녀는 심층적이고 치밀한 역사적 관점을 통해 행복이 얼마나 시대와 문화에 의존하는지를 보여준다. “행복에 대한 현대적 가정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허튼소리에 불과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성관계의 경우를 보 자. “만약 당신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스스로 성적으로 비정상이라고 느낀다면, 100년 전의 보편적이고 세속적 가치를 따르는 기혼 커플이 일주일에 세 번의 성관계를 가질 경우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 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오히려 “100년 전만 하더라 도, 3년 동안 성관계를 가지지 않은 보통의 남자는 자신의 건강과 인내력을 자랑스러워 했고, 10년 동안 금욕한 여성은 자신이 이를 통해 얼마나 건강해졌고 행복해졌는지를 자랑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 한 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결혼한 친구들이 상상하는 싱글의 주말을 나는 지난 주말에야 드디어 보낼 수 있었다네.” 기억은 녹음기보다는 편집 장치에 가까우며, 과거에 대한 잘못된 기억은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불행으로 가는 길은 잘못된 기억으로 포장되어 있다.
길버트는 또한 놀라운 일이 반복될 때 그 효과가 줄어드는 것을 두고 경제학자는 “한계 효용 체감declining marginal utility"이라 말하지만 결혼한 부부는 이를 인생이라 부른다고 약간의 냉소와 함께 말한다. 하지만 혹시 당신이 다양한 상대와의 관계가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 찰스 다윈은 5년간의 세계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직후 진화론의 개요를 기록한 M 노트북에 이런 말을 남겼다. 개코원숭이를 이해하 는 이는 철학자 존 로크보다 형이상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이 다.” 과학은 이제 사랑은 중독적이며, 신뢰는 유쾌한 것이고, 협력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진화가 이런 보상시스템 을 만든 이유는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 영장류 조상의 생존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다윈을 이해하는 이는 제퍼슨보다 정치철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 프로이트는 인류가 경험한 세 가지 지적 충격을 이야기한 것으로 (그리고 자신의 업적을 거기에 포함시킨 자신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첫째는 코페르니쿠스가 인류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세계의 작은 점 위에 존재하게 만든 것이고, 
둘째는 다윈이 인류로부터 “인간은 특별하게 창조되었다는 특권적 위치를 빼앗고 동물 세계의 일 원으로 격하 시킨 것이며, 
셋째는 자신의 이론이 “우리 각자의 자아는 자신의 주인이 아닐 뿐 아니라 마음속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의 일부에만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 다윈은 1835년 10월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나지만 진화론자가 된 것은 1837년 3월이었고, 이 이론을 1859년 《종의 기원》으로 발표 할 때까지 계속 가다듬었다. 설로웨이는 다윈의 행적뿐 아니라 다윈의 생각 또한 계속 추적했고, 이를 통해 다윈이 진화론을 떠올린 것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갑작스러운 발견 때문이 아니라 영국에서 자신이 수집한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한 이후라는 결론을 내렸다. 설로웨이는 다윈의 노트와 일기장을 분석해 다윈이 진화론을 받아들인 것은 1837년 3월 둘째 주로, 당시 갈라파고스 제도의 조류를 연구하던 저명한 조류학자인 존 굴드와 만난 뒤로 추정한다. 
- 워싱턴 DC에 위치한 미국인구통계국 인구조회센터의 인구통 계학자인 칼 호브 Carl Haub에 따르면, 기원전 5만 년에서 2002년 사이 에 태어난 사람은 1064억 5636만 7669명에 달한다. 2015년, 지구의 인구는 72억 9028만 9811명이다. 우리보다 먼저 태어난 1000억 명은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죽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며, 따라서 앞으로 120년(인간의 최대 수명) 안에 적어도 60억 명 이상이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 과학적 일원론은 종교적 이원론과 충돌할까? 물론이다. 육체의 죽음 이후 영혼은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과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일원주의는 인생의 모든 의미를 사라지게 만들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후 세계 가 없을 때, 우리 인류는 유한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장대한 우 주의 드라마에 찰나와 같은 무대를 함께 장식하는 동반자로서 더 높은 수준의 겸손과 인류애를 느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 모든 순간, 모든 관계, 모든 인간에게 더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신의 존재는 과 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기반에서 출발 하는 신학은 신을 믿는 이들에게만 호소력을 가질 뿐이다. 신앙은 확률, 증거, 논리와 거의 무관한 사회적, 심리적, 감정적 요소들에 의지 하는 것이다. 이 점이 신앙의 필연적인 약점이다. 또한, 신앙의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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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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