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조직

경영 2021. 6. 13. 09:10

- 실패했다고, 모든 힘을 헛된 일에 낭비했다고 한탄해서는 아무 소용 없다. 오직 역경을 이겨낸 사람만이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한 번도 실수를 해보지 않은 사무라이는 실수에서 비롯된 지혜를 절대 배우지 못할 것이다. 《하가쿠레(葉德)》, 야마모토 쓰네토모(山本常朝)
- 문화는 사명 선언문과는 전혀 다르다. 문화는 한번 만들고 끝나버리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군대에 이런 말이 있다. “표준 이하의 뭔가 를 발견하고도 아무 대응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또 다른 표준을 만든 다.” 문화도 똑같다. 문화와 어긋나는 뭔가를 보고도 무시한다면, 새 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비즈니스 환경이 변하고 전략이 진화함에 따라 그것에 맞춰 문화도 지속적으로 변하게 만들어야 한다. 사랑은 움직인다는 말처럼 목표도 언제나 움직이는 법이다.
- 울프는 에스콰이어>에 기고한 기사에서 “인텔에서는 모두가 '인텔 문화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했다. 노이스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특히 신입 직원들에게는 앤디 그로브가 직접 나서서 인텔의 문화를 교육시켰다. 훗날 인텔의 CEO에 오르고 뛰어난 문화 혁신자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그로브가 직원들에게 이렇 게 물었다. “여러분은 인텔의 접근법을 어떻게 요약하겠습니까?” 그 러면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인텔에서는 다른 사람이 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직접 공을 잡고 띕니다.” 그로브 가 대답했다. “틀렸습니다. 인텔에서는 공을 잡아 바람을 뺀 후 접어 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런 다음 다른 공을 잡아 들고 달려가 골라인 을 넘었을 때 주머니에 있던 바람 빠진 공을 꺼내 다시 부풀립니다. 그 렇게 해서 6점이 아니라 12점을 따냅니다 
- 계층적 위계 구조가 가진 장점 하나는 명백히 나쁜 아이디어를 제거하는 데 매우 탁월하다는 점이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계층 구조의 맨 꼭대기에 다다랐다는 것은 그동안 각 단계를 거치면서 다른 모든 아이디어와 비교되고 검증되는 과정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누가 봐도 좋은 확실한 아이디어만이 살아남는다.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니 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는 문제가 있다. 명백히 좋은 아이디어가 진정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동의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가끔은 진정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 가 처음에는 아주 허접한 아이디어처럼 보인다. 업계의 어떤 전설적 인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정확히 알 수 있다. 전기통신 회사 웨스턴 유니언(Western Union)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의 전화기 관련 특허와 기술들을 품에 안을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제발로 뻥 차버렸다. 웨스턴 유니언은 그동안 전보 사업을 운영하면서 통 신 사업의 수익성은 정확성과 광범위한 도달 범위에 달려 있다는 사 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전화는 정확성과 도달 범위에서 완전히 낙제점이었다. 전화 통화는 소음이 너무 심하고 끊기기 일쑤였으며 장거리 전화는 꿈도 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손가락질 받았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또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도 미운 오리 새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농담 취급을 받았을 정도였다. 전문성이라곤 없는 대중이 작성한 글 따위가 세계 최고 석학들의 작업을 대체하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런데 어떻게 됐는가? 오늘날 위키피디아는 역사상 어떤 사전보다 훨씬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유일한 백과사전으로 생각하는 수준이 됐다.
- 기업은 갱단, 군대, 국가와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의 일상적인 아주 작은 행동들로 이뤄지는 커다란 조직이며, 따라서 구성원들의 사소한 행동에 기업의 존망이 결정된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 성공하는 근원 적인 이유가 자사의 문화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지 알아 내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영 서적들은 광범위하고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문화를 고찰하지 않을뿐더러 성공한 기업들에만 현미경을 들이대고 성공적인 기업 문화를 분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음 에도 견고하지 못하거나 일관성이 없고, 심지어 해로운 문화를 가진 기업들이 아주 많다. 실제로도 '잘 키운 효자 제품 하나로 비참한 문 화적 환경을 거뜬히 극복하는 회사들이 있다. 하지만 결코 오래가지 는 못한다. 
- 마지막으로 실망스러운 말을 해야겠다. 위대한 문화가 꼭 당신의 회사를 위대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당신의 제품이 월등히 뛰어나 지 않다면 또는 시장이 당신의 제품을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회사 는 아무리 사내 문화가 훌륭해도 실패할 것이다. 기업과 문화의 관계 는 운동선수에 비유하면 영양과 훈련의 관계와 같다. 기량이 출중한 선수는 영양 공급이 다소 부족하고 훈련 기법이 약간 미진해도 성공 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재능이 부족한 선수는 완벽히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고 죽을힘을 다해 훈련해도 올림픽 경기에는 출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영양을 섭취하고 양질의 훈련을 받으면 어떤 선수든 기량이 향상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이제 이런 생각이 들지 싶다. 훌륭한 문화가 성공을 보장하지 못할진대 굳이 문화에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더 멀리 보자. 당신의 직원들은 언젠가 당신의 회사를 칭찬하는 언론 보도나 회사가 받은 상들을 잊게 된다. 또한 분기별 실 적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당신 회사의 제품들에 대한 기억도 갈수록 흐릿해진다. 그렇지만 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 있다. 당신 회사에서 일하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고 그 회사에서의 경험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됐는지는 영원히 그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이렇듯 회사의 성격과 정신은 영원히 그들과 함께한다. 그런 것들은 일이 잘못될 때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접착제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매일 소소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길잡이가 되어주며, 그런 결정들이 모여서 진정한 목적의식이 된다.
- 잡스는 애플이 직면한 문제가 PC 산업의 경제학 구조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애플이 할 일은 더 나은 제품을 만들면 그만이었다. 물론 더 나은 제품을 만들려면 애플의 문화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딱 하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아니라 애플의 강점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은 언제나 애플이 가장 잘하던 일이었다. 최고의 전성기 시절 애플은 프로세서 속도와 스토리지 용량 같은 업계의 벤치마크들이 아니라, 매킨토시처럼 사람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제품들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 통합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애플을 따를 기업이 없었다. 그리고 애플이 통합의 1인자일 수 있었던 이유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UI,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며 컴퓨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 및 장치 - 옮긴이)부터 하드웨어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색상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 는 능력을 소유한 덕분이었다. 잡스는 이런 자사의 강점을 정확히 이 해하는 직원들을, 다른 말로 자신처럼 사용자 경험을 총체적으로 통제하고자 했던 완벽주의자들을 채용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천재 디자이너로 나중에 아이폰, 맥북 등 애플의 간판 제품들을 디자 인하는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도 그런 직원 중에 하나였는데, 잡스는 '영혼의 단짝’ 아이브에 대한 믿음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그는 우리 일의 핵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 절대 잊을 수 없는 규칙을 세운다
수년간 조직 문화를 이끌 강력한 규칙을 세울 때에는 따라야 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 단순 명료해서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 사람들은 규칙을 잊을 때 문화도 함께 잊는다.
* 사람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 규칙은 엽기적이고 충격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진심이에요?" 라고 반문하게 만들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 '왜?'에 대한 답은 그 규칙의 문화적 의미를 오해의 여지없이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 구성원들은 거의 매일 그 규칙을 맞닥뜨려야 한다 아무리 기억하기 쉬워도 구성원들이 1년에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하는 상황에만 적용된다면 빛 좋은 개살구다.
- 루베르튀르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백인 장교들을 받아들였을 때 노예 출신 병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하나하나 세세히 기록한 문서는 없지만,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한껏 당긴 활시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으리라. 외부에서 리더들을 영입하면 내부에 있던 모두가 매우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문화가 바뀔 때의 느낌이다.
- 루베르튀르는 생도맹그 주민들에게 농업이 최우선이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별다른 소득도 없이 입만 아플 거라는 사실을 정확히 간파했다. 오히려 농업이 최고의 우선순위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그는 극적인 뭔가를, 그것도 모든 사람이 똑똑히 기억할 어떤 행동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노예 주인들을 용서했고 그들이 자신의 땅을 계속 소유하도록 허락했다. 그의 농업 우선주의 정책을 이보다 더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은 없었을 것이다. 헤이스팅스의 입장 도 루베르튀르와 비슷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우선순위라고 백날 천 날 말로만 해서는 헛수고였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그것을 행동으로 명확히 보여줘야 했다. 결과적으로 말해, 헤이스팅스의 과감한 결정 덕분에 넷플릭스는 경이로운 성과를 달성했다. 2010년 말 넷플릭스는 거대 언론들의 조롱 감이었다. 일례로 다국적 언론 기업 타임워너(Time Warner)의 CEO 제프리 뷰커스(Jeffrey Bewkes)는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하는 것에 대해 “굳이 비유하자면 알바니아 군대가 세계를 정복하려는 것과 같다”고 대놓고 비웃었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 는다”라고 그는 단언했다. 그런데 오늘날 넷플릭스는 어떤가? 시가총액이 무려 1,500억 달러가 넘는다. 
- 사무라이의 정신과 지혜를 담은 가장 유명한 고서로 야마모토 쓰네토모가 지은 《하가쿠레》를 보면 “그 사람이 용기 있는지, 비겁한지를 평상시에는 알 수 없다. 일이 생겼을 때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구절이 있다.
- 리더로서 당신은 도덕적으로 모호한 사고방식 속에 편안히 숨어 지낼 수 있지만 영원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는 달라져야 한다. 당신은 진화하든가 아니면 도덕적 타락의 벽 속에 자신을 가두든가, 둘 중 하나밖에 취할 수 없다.
상고르는 영리하게도 그 사건을 진화의 촉매제로 사용했다.
- 때로는 리더로서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원칙을 채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인텔은 능력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평상복 근무를 복장 규정으로 채택했다. 인텔의 리더들은 최고급 정장을 차려 입은 최고 경영진의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누가 제안하는 최고의 아이디어가 승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오늘날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그런 역사는 모른 채 또한 그 규정을 뒷받침했던 능력주의는 채택하지 않은 채, 평상복 근무 규정만을 받아들인다.
-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이자 세계적인 칭기즈칸 전문가인 잭 웨더퍼드(Jack Weatherford)는 저서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서 그 경험이 테무친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적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씨족이 아니더라도 마치 가족처럼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그 에게 생겼다. 훗날 테무친은 혈연으로 맺어진 유대가 아니라 대개는 자신에게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이것은 초원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차차 살펴보겠지만, 행동을 주된 근거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오늘날의 많은 기업 문화에서도 혁명적인 발상이다.
- 부족이나 씨족이 아니라 칸에 대한 충성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충분한 보상을 해줘야만 그런 충성이 보장될 수 있었다. 칭기즈칸은 자신이 건설한 초(超)대국을 지탱하기 위해 부(富)가 지속적으로 유입될 필요가 있었고, 그것은 끊임없는 정복과 전쟁을 의 미했다. 평화 시기가 너무 길어지면 가뜩이나 좌절감에 빠져 있던 강력한 제국의 통치자들이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집중하다가 결국에는 서로를 반목하게 될 터였다.
- 행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칭기즈칸은 올바른 결정을 했다. 그의 제국 은 너무 광활한 데다가 일사불란한 통제가 힘들어서 고도로 중앙 집중화된 체제에 입각해 한 명의 통치자가 다스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아주 커다란 실수였다. 종국에는 그의 제국이 정확히 각 울루스의 경계선을 따라서 분리의 길을 가게 되리라는 점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그 문제는 몽골이 다른 문화들과 통합됨으로써 더욱 심화됐다.
- 톰슨은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후 우연찮게 새로 맡은 업무들이야 말로 자신이 CEO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유익한 밑거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소수자로서 조직에서 성공하는 법에 관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마라. 그리고 당신의 자기 연민 파티에 다른 사람들을 절대 끌어들이지 마라. 
* 옷깃 말고는 아무것도 접어버리지 마라. 어디서든 기회가 나타 날 수 있다. 전기 공학자라고 평생 감자 튀김기에 사용할 온도 조절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략 기획 회의 를 위해 플립 차트를 들고 다닐 수도 있다. 나는 내게 찾아온 기회마다 퇴짜 놓을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기회들이야말로 나를 CEO로 만들어준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이었다.
- 대규모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수없이 많은 업무들을 정확 히 수행할 필요가 있을 때는 모든 대화에서 모든 사안의 모든 측면을 샅샅이 파헤칠 시간이 없다.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대화 중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내 성격의 단면은 극도로 불리할 수 도 있었다. 비록 나 스스로는 지금도 그 성향을 호기심이라고 주장하 고 싶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의 그런 성향이 회사 발전에 걸림돌이 되 지 않도록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문화를 구축해야 했다. 어떻게 했을까?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 나와 정반대의 성격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웠다. 그들은 가능한 일찍 대화를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 나를 통제하기 위해 유익한 자기 관리 규칙들을 만들었다. 단계별로 엄격하게 서면으로 작성된 안건과 희망하는 결과가 없는 회의가 소집되면, 우리는 그것을 취소했다.
* 나는 전 직원에게 우리 회사는 회의를 능률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전념한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내가 행동으로 실천하고 싶지 않은 것을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그런 다음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방법이었다.
-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유명한 말이 있 다. “문화는 아침식사로 전략을 먹어치운다.” 정말이지 멋진 발언이고 나 또한 매우 좋아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드러커의 주장에 동의 한다는 뜻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드러커의 논리를 좋아하는 까닭은 엘리트 의식에 놀랄 만큼 정면으로 역행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숨은 뜻은 이렇다. 경영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마라.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동이다. 완 벽히 옳은 말이다. 또한 드러커가 그 발언에서 문화를 우선적인 고려 사항으로 올려놓는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 면, 문화와 전략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먹어치우 는 사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문화와 전략 둘 중 하나가 성공 하려면 둘은 반드시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 칭기즈칸의 군사 전략은 거의 모든 병사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했다. 바로 자급자족하는 기병이었다. 따라서 그의 평등주의적 문화는 그의 전략적 니즈에 완벽히 부합했다. 샤카 상고르의 전략은 교도소 내의 다른 갱단들보다 규모는 작아도 좀 더 엘리트다운 정예 갱단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지애를 중심으로 문화를 구축했고, 이는 대형 갱단들이 꿈도 꿀 수 없는 문화였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의 장기적인 문화를 구축했을 때 핵심적인 요소 하나는 저비용 구조였다. 고로 아마존의 문화가 근검절약에 우선적인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근검절약의 가치가 모든 기업에게 효과적일 거라고 속단하지마라. 쉬운 예를 보자. 애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게 디자인된 제품들을 만드는 것에 집착한다. 따라서 그런 기업에게는 근검 절약 문화가 되레 역효과를 불러왔을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를 CEO에서 끌어내리고 애플의 총 사령관에 오른 존 스컬리(John Scully)가 애플을 거의 공중분해 직전까지 몰고 갔던 부분적인 이유는 비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였다. 아무리 좋은 덕목이라도 모든 조직에 정답인 것은 아니다.
- 미국의 장수 드라마 시리즈 (24)의 주인공인 대(對) 테러요원 잭 바우어가 테러범을 심문할 때처럼 당신 은 진실을 끄집어내야 한다. 영업 부문에서 만약 고객의 말을 액면 그 대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오래지 않아 짐을 싸야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기술자에게 무언가를 물으면 그는 아주 정확하게 대답 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충동을 느낀다. 반면 영업 직원에게 질문하면 그는 당신의 그 질문 이면에 있는 질문 즉, 질문의 숨은 의도를 알아내 려고 할 것이다. 예컨대 고객이 “X라는 기능이 있습니까?”라고 물으 면 유능한 기술자는 “예” 또는 “아뇨”로 정확히 대답할 것이다. 한편 유능한 영업 직원은 절대 그런 식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에 스스로에게 자문할 것이다. 그 기능에 대해 왜 묻는 거지? 그 기능을 보유 한 경쟁 업체는 어디일까? 음, 나와 거래할 생각이 있는 게 틀림없어. 정보를 좀 더 알아내야겠어.' 그래서 이런 식으로 되묻는다. “x 기능 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처럼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방식은 기술자들을 시쳇말로 '돌아버리게 만든다. 기술자들은 즉각적인 답을 원하고 그래야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성공하 기 바란다면, 다른 말로 회사가 번창하고 그래서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유능한 영업 직원이 자신의 제품을 잘 팔아주길 바란 다면, 기술자는 자신과 영업 직원들과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인내심 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순조롭게 굴러가는 조직이라면 기술자들은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얼마나 잘 팔리는가가 아니라 제품 자체가 얼마나 훌륭한가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 시장에서는 때때로 기술자가 통제할 수 없는 커다란 위기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기술자들은 무언가를 만드는 일 자체를 즐기고 가끔은 업무 외적으로 부수적인 프로젝트를 위한 프로 그램을 작성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취미 활동인 셈이다. 따라서 기술 자들에게는 낮이든 밤이든 원할 때면 언제라도 프로그래밍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이런 연유로 기술자 문화는 종종 편안한 복장, 늦은 출근, 야근, 철야 근무 등으 로 특징지어진다.
- 훌륭한 영업 직원은 권투 선수를 좀 더 닮았다. 그들이 자신의 일을 즐길지는 몰라도, 취미 삼아서 주말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하 는 영업 사원은 없다. 프로 권투 시합과 마찬가지로 영업 활동의 목적 은 돈과 경쟁이다. 상금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영업 조직들은 수수료, 판매 경진 대회, 판매왕 클럽 등을 비롯해 상 금 지향적인 보상 형태에 초점을 맞춘다. 영업 직원들은 외부 세상에 보여주는 회사의 대표 얼굴이므로 비록 고객들은 정시에 도착해도 그 들은 적절한 복장을 갖춰 입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이 바 람직하다. 훌륭한 영업 문화는 경쟁적이고 저돌적이며 보상에 커다란 초점을 맞춘다. 그렇지만 과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결과로만 말한다.
- 누군가가 선을 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어느 정도는 당신의 문화가 그런 행동이 용납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당신의 의사결정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이, '동의하지 않아도 결정을 따른다' (disagree and commit)는 엄격한 규칙을 고수하는 것 은 건강한 문화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지위고하를 떠나 관리자는 마땅히 이미 내려진 결정을 지지해야 하는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물론 회의에서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진 후 에는 최종적인 결정을 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결정이 내려진 근 거들을 설득력 있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 의사결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마지막 요소는 속도와 정확성 중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더 중시하는가?'다. 이에 대한 대답은, 조직의 본질과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아마존이나 GM 같이 직원이 수만 또는 수십만에 이르고 매일 수천 건의 결정이 이뤄져야 하는 대기업에서는 속도가 정확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거대 조직에서는 가끔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가 그것이 잘못된 결정임을 깨닫고 올바른 결정으로 전환하는 편이, 처음부터 올바른 결정을 하느라 시간을 들이는 것보다 속도 면에서는 더 유익할 것이다.
- 권한 위임이냐 통제냐에 관한 문제에서 마지막으로 고려할 사항은 지금이 평시(peacetime)인가 아니면 전시(wartime)인가이다. 회사가 순 항 중이고 그래서 조직을 확대할 창의적인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가? 아니면 회사의 존망이 달린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는가? 내가 하 드씽》에서도 설명했듯 '평시의 CEO'와 '전시의 CEO'는 경영 방식이 전혀 달라야 한다.
평시 CEO는 규약을 적절히 지킴으로써 승리에 이를 수 있음을 안다. 전시 CEO는 승리하기 위해 규약을 위반한다.
평시 CEO는 큰 그림에 역점을 두고 세부적인 결정은 직원들이 할 수 있게 권한을 위임한다. 전시 CEO는 가고자 하는 주된 방향에 방해가 된다면 깨알만 한 사항까지도 신경 쓴다.
평시 CEO는 대규모 직원 모집을 단행한다. 전시 CEO도 대규모로 직원을 모집할 때도 있지만, 정리해고를 단행할 인사관리 부서도 구성한다.
평시 CEO는 기업문화 조성에 시간을 할애한다. 전시 CEO는 위기상황이 문화를 규정하게 한다.
평시 CEO는 항상 비상 대책이 있다. 전시 CEO는 때로 무리수를 둬야만 한다.
평시 CEO는 남보다 크게 우세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전시 CEO는 편집증 환자와 비슷한 면이 있다.
평시 CEO는 비속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전시 CEO는 경우 에 따라 의도적으로 비속어를 쓴다. 
평시 CEO는 경쟁을 대양에 떠 있는, 서로 교전을 벌일 가능성이 없 는 배들과의 경주로 여긴다. 전시 CEO는 경쟁을 남의 집에 몰래 들 어가 아이를 유괴하려는 것과 같은 행위로 여긴다. 
평시 CEO는 시장 확대를 목표로 한다. 전시 CEO는 시장 쟁취를 목표로 한다.
평시 CEO는 노력과 창의성이 수반된 경우라면 회사의 계획에서 벗어나더라도 용인하려 한다. 전시 CEO는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평시 CEO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전시 CEO는 보통 수준의 목소리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평시 CEO는 갈등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전시 CEO는 논쟁을 부 추긴다.
평시 CEO는 폭넓은 동의를 얻으려 노력한다. 전시 CEO는 합의 형 성도 좋아하지 않고 의견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다. 
평시 CEO는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를 세운다. 전시 CEO는 적 과 싸우느라 너무 바빠서, 일상이 전투인 노점 상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컨설턴트가 쓴 경영서 따위는 읽을 시간이 없다. 
평시 CEO는 구성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높이고 경력 개발을 돕기 위해 직원 교육을 실시한다. 전시 CEO는 직원들이 전쟁에서 전사하지 않게 하기 위해 교육을 실시한다. 
평시 CEO는 '우리 회사는 업계 1위나 2위가 아닌 사업 부문은 모두 철수한다' 같은 규칙이 있다. 전시 CEO에게는 대개 업계 1위나 2위를 점하는 사업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치스러운 규칙을 지킬 여유가 없다.
- 조직을 평시에서 전시 태세로 전환시키기가 더 쉽다. 가령 평시형 CEO가 생산 지연에 관해 매일 회의를 소집하는 것처럼 특정한 세부사항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회사는 곧바로 그것에 신속하게 반응하고 모두가 전시 태세로 정신을 무장할 것이다.
거꾸로 전시형 조직을 평시 태세로 전환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전시형 CEO는 의사결정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CEO가 최종적인 결정권자가 아니더라도, 결정 권을 가진 사람들은 CEO의 눈치를 살피게끔 돼 있다. 그래서 CEO의 의견이나 CEO의 의중을 짐작해 그것을 지침으로 결정 내린다. 이렇듯 전시 상황에서는 개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문화가 위축된다.
- 나쁜 소식이 있는데 직원들이 알게 되어 동요할까봐 두려울 때는 게티즈버그 연설을 기억하라. 큰 거래가 불발됐든, 분기 실적이 저조 하든 아니면 정리 해고든, 이는 비단 그 사건만이 아니라 당신 회사의 성격을 정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게다가 당신이 얼마나 일을 엉 망으로 망쳤든 적어도 수천 명의 병사들을 사지로 내몬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개중에는 신뢰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업들이 있다. 또한 조직 내부의 경쟁을 일부러 부추기는 리더들도 있다. 그들은 직원들을 서로 경쟁시키고 최고의 직원이 경쟁에서 이기도록 한다. 이런 역학 관계는 주로 직원 대부분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들에서 만연 해 있다. 벤처캐피털, 금융, 텔레마케팅 영업 등의 분야가 대표적이다. 이런 업무 환경은 절대로 협업적이지 않고 가끔은 '등급을 매긴 후 퇴 출되는 경쟁에 의존하기 때문에 내부적인 신뢰는 아예 꿈도 꿀 수 없 다. 모두는 자신이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슨 말이 든 서슴지 않는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이런 유형의 역학 관계가 회사에는 높은 수익성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면 절대로 그런 조직에서 일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라  (0) 2021.06.20
모든 것이 달라지는 순간  (0) 2021.06.20
어필리에이트  (0) 2021.06.06
올웨이즈 데이원  (0) 2021.05.30
규칙없음  (0) 2021.05.07
Posted by dalai
,

성장의 종말

경제 2021. 6. 13. 09:09

- 이런 이론들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규제나 과세가 성장 둔화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거의 또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21세기 초에는 연방 차원에서 배당세율과 개인소득세율이 모두 인하됐다. 그렇다면 노동자 수와 기업 투자가 늘어나야 하는데 정확하게 반대 현상이 발생했다. 모든 주를 통틀어 더욱 엄격한 규제 와 더욱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기업의 성장률이 더 유리한 환경에서 사업하는 기업보다 낮다는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캘리포니아 와 매사추세츠는 기업 친화성' 척도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데도 여전 히 가장 생산성이 높은 주에 속하며, 미국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규제의 영향을 다룬 연구 결과를 살펴보 면, 연방 법령으로 규제를 더 많이 받는다고 해서 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낮아지진 않았고 오히려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 하지만 성장 둔화의 이면에는 궁극적으로 생활 수준의 향상이라는 요인이 존재하며, 우리는 성장 둔화를 되돌릴 수 없을뿐더러 되돌리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자동차 산업에서 고용을 늘리고 1인당 GDP 증가율을 잠시나마 끌어올리기 위해 사람들이 소유한 자동차를 모조리 파괴할 가치가 있을까?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성장을 증가시키려는 의도에서 인구 고령화 현상을 뒤집으려고 생활 수준과 여 성의 권리를 과거로 되돌리고 싶을까?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 요'라면, 성장 둔화에 분명하게 원인을 제공한 악당은 없다. 성장 둔 화는 수십 년에 걸쳐 발생한 시장 변화, 소비 패턴의 변화, 가족 형성 을 둘러싼 결정의 변화가 누적되어 나타났을 뿐이다. 우리는 단지 성장률을 약간 더 높일 목적으로 그동안 발생한 모든 변화를 되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성장 둔화를 '성공' 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원했던 성장률을 달성한 것이다.
- 이런 예측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거의 2세기 동안 모든 선진국에서는 1인당 GDP와 임금이 증가하면서 출산율이 하락했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시기와 상관없이 언제나 고소득 자의 출산율이 더 낮다. 래리 존스 Lary Jones와 미셸 터틸트 Michele Tertit 는 미국 역사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가족의 소득과 출산율의 관계에 주목했다. 두 사람은 과거 인구조사국 데이터를 사용해 1828년에 출생 한 여성 집단을 시작으로 연도별 조사를 이어갔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가족의 소득과 여성이 출산하는 자녀 수는 분명히 반비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득 수준을 불문하고 모든 여성의 출산율이 다소 하 락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소득 증가가 출산율을 낮춘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 잔차 성장은 더 많은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의 축적에 기인하지 않은 경제 성장을 뜻한다. 잔차 성장은 공식적인 정의가 없으며, 1인당 실질GDP 성장률에 영향 을 미쳤거나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모든 힘을 포괄한다. 4장의 회계에서 살펴봤듯이, 세기가 바뀔 무렵 벌어진 상황 때문에 결과적으로 잔차 성장률이 하락했다. 하지만 잔차가 측정하는 단 일 경제활동이나 개념이 없으므로 잔차 성장률이 하락한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잔차 성장은 '생산성 증가'라는 친숙한 명칭으 로도 불린다. 자료에 따라서는 총요소 생산성 증 가.total factor productivity growth'나 '다요소 생산성 증가 multifactor productivity growth'라고 불린다. 생산성 증가(지금부터는 일반적인 의미의 용어로 사용할 것이다)는 잔차 성장의 일부도 아니고, 잔차 성장의 추정치도 아니다. 잔차 성장과 생산성 증가는 동의어다. 
- 상품 생산 기업은 서비스 생산 기업보다 더 높은 생산성 증가율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상품 생산 비용 은 서비스 생산 비용보다 더 빨리 내린다. 이것은 서비스와 비교할 때 상품의 상대적인 비용이 점점 더 작아진다는 뜻이다. 역으로, 상품과 비교할 때 서비스의 상대적인 비용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져야 한다는 뜻이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과 비용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보멀이 얘기한 서비스의 비용 질병은 서비스 대비 상품의 상대적 가격이 더욱 낮아지는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하는 이유는 서비스산업이 지닌 시간과 관심 집약적인 특성 때문이지, 기술 노하우나 적성이 반드시 실패했기 때문은 아니다. 다시 말해, 상품에서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에 문제가 있거나 경제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상품 생산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 성장 둔화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서비스로의 전환은 21세기에 국한 된 특징이 아니고 1950년 이후, 심지어 그 전부터 진행되어왔다. 이는 서비스(소득 탄력적)와 상품(소득 비탄력적)에 대해 소비자가 장기적인 선호도 차이를 보인다는 보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0년에 들 어서면서 경제활동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고, 이런 변화 때문에 발생한 생산성 증가율 둔화가 마침내 가시화됐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동안 상 품 생산의 생산성을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내구재에 대한 지출 비중이 감소한 것은 더는 소득에서 큰 몫을 지출할 필요가 없도록 매우 싼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 덕에 우리는 상품과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됐다. 
- 아기옹과 호윗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들이 보유한 시장 지배력이 혁신에 대해 보상하기에 충분하기는 하지만, 경쟁자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는 최적의 지점이 양극단 사이에 있다. 아기옹과 호윗은 니컬러스 블룸, 리처드 블런델 Richard Blundell, 레이철 그리피스 Rachel Grifith와 공저한 논문에서 이런 영향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했다. 저자들은 시간 경과에 따라 산업 내에서 혁신의 대명사가 되는 특허 활동을 계산했다. 각 산업에서 마 크업을 측정하는 또 하나의 방법인 산업별 러너 지수Lerner Index도 계산 했다. 저자들은 특허 활동을 마크업과 대조했을 때 분명한 언덕 모양 그래프를 발견했다. 마크업이 매우 낮은(즉,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는 특허 활동이 매우 적었고, 마크업이 매우 높은(즉, 경쟁이 거의 없는) 산 업에서도 특허 활동은 매우 적었다. 특허 활동이 최고를 기록한 것은 마크업이 중간 수준인 기업들이었다.
- 시장 지배력의 결과: 지금까지 제시한 증거를 살펴보면 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1980년 무렵부터 현재까지 상당량 증가했다. 하지만 시장 지배력의 증가에서 성장 둔화까지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순수하게 성장 회계 관점에서 생각할 때, 마크업이 큰 기업으로 노동과 자본이 이동하 는 것은 생산성 성장에 좋다. 비용에 대비해서 상품이 높은 가치를 지 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업의 순투자율은 하락했고, 이런 현상은 기업의 집중도가 높은 산업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투자 감소가 성장 둔화에 미친 영향은 처음엔 그다지 크지 않았으므로 집중도 증가는 성장 둔화를 약간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업과 개인에게 인센티브를 최대로 제공하는 최적의 지점에서 시장 지배력과 혁신의 관계는 모호하다. 하지만 시장 지배력 이 지나치게 크거나 작아도 혁신과 성장에 해를 끼칠 수 있다.
- 시장 지배력의 증가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시장 지배력이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의 이익을 획득하는 대상이 바뀌었다는 점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GDP에서 노동력 제공자나 물적자본 제공자에게 흘러가는 몫이 줄어들고, 시장 지배력이 창출하 는 경제적 이익의 청구인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졌다. 일반적으로 그 청구인들은 기업 소유주를 뜻했다. 인구통계상 변화와 서비스로의 장 기적 이동이 1인당 실질GDP 성장률이 하락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기업이 지닌 분명한 동기는 순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이익은 세 가지 구성 요소, 즉 마크업, 세율, 규모의 상호작용에서 나 온다. 이 책에서 마크업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깊이 있게 다뤘 다. 마크업은 각 생산 단위의 한계비용에 대한 가격을 가리키고, 규모 는 판매할 수 있는 단위 수를 가리킨다. 규모에 마크업을 곱하면 기업 이 창출하는 총이익을 산출할 수 있다. 심지어 월마트처럼 마크업이 작은 기업이라도 규모가 매우 크면 막대한 총이익을 거둘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크업과 규모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세금이 부과되고, 기업 은 세금을 내고 나서 순이익을 손에 쥔다. 준수 비용이 발생하므로 규 제는 이익에 대한 효과적인 세금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세율은 순이익에 중요하지만 마크업과 규모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 세금과 규제가 기업의 순이익에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중요하다. 어떤 기업이라도 세금과 규제가 많은 것보다 적 은 것을 선호할 것이다. 기업들이 세금과 규제를 줄이려고 열심히 로 비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소 정책을 뒷받침하는 주장에 따르면 세금과 규제를 줄일 경우 경제 성장률을 자동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시점에서 GDP가 무엇을 측정하는지 생각해보면 유익하다. GDP는 기업의 재무 성과를 합한 것이 아니라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 의 실제 가치를 합한 것이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아메리칸항공이 2011년 말 파산을 신청했다. 그해 순손실이 19억 달러였고, 다음 해에 18억 달러, 그다음 해에도 18억 달 러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아메리칸항공이 실질GDP에 미치는 영향 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전혀 없다.
실질GDP의 관점에서는 아메리칸항공이 해당 연도에 실어 나른 승객수만 중요하다. 아메리칸항공은 파산 절차가 진행되던 2011부터 2013년까지 연간 약 8,600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날랐다. 그 기간에 엄 청난 적자가 발생하고 있었는데도 수백만 명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 소로 운송하는 서비스는 실질 상품과 서비스의 흐름을 구성하는 일부 가 됐다. 
이런 사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든 세금을 100퍼센트에 맞 춰야 한다는 것도, 규제가 경제에 대가를 물리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간 이익을 거둘 수 없으면 어떤 기업도 굳이 사업을 운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규제 때문에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면, 어떤 기업도 굳이 규제를 준수하면서 사업을 끌고 나가려 하지 않을 테 고 결국 회사 문을 닫고 말 것이다. 하지만 증거들을 검토해보면 세금 과 규제는 실질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의 능력에 지대한 영 향을 미치지 않았고, 정부 정책 중에서 2000년경 성장 둔화를 설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는 전혀 없었다.
- 스포츠와 영화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의 등장은 소득 분배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더욱 적절한 원인은 피케티가 대기업 고위 중역을 가리켜 말한 '슈퍼매니저'의 확대였다. 존 바키자Jon Bakija, 애 덤 콜Adam Cole, 브래들리 하임 Bradley T. Heim이 제시한 데이터에서는 슈퍼매니저들의 상대적 중요성이 드러난다. 세 사람은 2005년 개인 세금 신고서를 사용해 상위 소득자 0.1퍼센트의 약 41퍼센트가 비금융 계 기업 중역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18.4퍼센트는 금융 전문가들이다. 상위 0.1퍼센트 중에서 3.1퍼센트만 스포츠 · 미디어. 예술 분야에 속했다. 트레버 아리자, 채닝 프라이, 콜 알드리치 등 소 득 상위 0.1퍼센트에 들어가는 중간급 NBA 선수에게도 20여 명의 CEO, CFO, COO, 헤지펀드 매니저가 붙는다. 이처럼 고위 중역과 금융 전문가에게 돌아가는 소득 증가분은 1993년 이후 상위 0.1퍼센트에게 돌아간 NI 증가분의 3분의 2를 설명한다. 최고 경영진과 금융 전문가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기타 보상(예: 스톡옵 션)은 최고 소득 범위 안에서 임금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불평등이 전 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부추긴다.
- 중국과 성장 둔화를 연결하는 방식이 있는데, 개중에는 타당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 다. 중국이든 멕시코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경험한 단순한 수입 증가는 GDP 수준이나 성장률과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우선 입증하려 한다.
수입이 미국 GDP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하는 흔한 주장은 회계 정체성의 잘못된 해석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역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 수입품의 도입과 제조업 등의 현저한 일자리 감소를 연결한 믿 을 만한 연구가 있다. 노동자가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인적자본 스 톡이 축소되거나, 노동자가 저생산성 성장 산업 쪽으로 이동하는 현 상이 가속화하면서 이론상으로 성장 둔화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이 런 현상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이 미친 영향의 규모와 전반 적인 무역은 성장 둔화를 두드러지게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족한 듯하다.
- 미국 제조 산업에 속한 기업과 고용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대중국무역의 영향이 실재하고 노동자와 지역 사회에 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지만, 성장 둔화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장기적으로 상품 생산에서 서비스 생산으로 이동하는 중 이었으므로 중국이 주요 수출국으로 부상하지 않았더라도 성장은 둔화했을 것이다. 중국이 이런 이동 속도를 약간 부추기기는 했지만,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폐의 비밀  (0) 2021.07.17
이토록 쉬운 경제학  (0) 2021.06.20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0) 2021.06.13
빅데이터 주식사전  (0) 2021.06.06
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0) 2021.05.25
Posted by dalai
,

대전환이 온다

사회 2021. 6. 13. 09:07

- 적자생존이란 경쟁이 치열한 시장, 정치, 문화의 무자비함을 손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다윈이나 그 후계자들의 이론을 곡해한다. 진화를 순전히 경쟁 논리로만 본다면, 인간의 사회성 발달이라는 큰 그림을 놓치게 되고 상호 연 결된 하나의 큰 팀으로서의 인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생물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생태계에서 공존한다. 우리로서는 그렇게 광범위한 협력 관계를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생물들을 각자 고립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무 한 그루는 나무 한 그루, 소 한 마리는 소 한 마 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무는 결코 단일한 나무 한 그루가 아니다. 나무는 숲의 작은 일부분이다. 충분히 뒤로 물러나 전체를 보면, 살아남기 위한 나무 한 그루의 투쟁은 숲의 더 큰 시스템을 지 탱하기 위한 그 나무의 역할이라는, 더 중요한 이야기와 합쳐진다. 
우리는 또 자연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관계는 수면 아래에서 조용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무들이 서로 소통하는 소리나 그 모습을 쉽사리 듣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건강한 숲에서는 버섯을 비롯한 균류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여러 나무들의 근계根系를 서로 이어준다. 이렇게 지하에서 이뤄지는 네트워크 덕분에 나무들은 상호작용할 수 있고 심지어 자원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여름날 키 작은 상록수들은 키 큰 나무들의 그림자에 가려진다. 빛이 닿 지 않아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키 작은 상록수들은 균류를 통해 필요 영양분을 얻는다. 키 큰 나무들은 나눠 줄 만큼 충분한 영양 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진 동료들에게 영양 분을 보내 준다. 겨울이 되면 키 큰 나무들은 잎이 떨어져 광합성 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때가 되면 반대로 햇빛에 노출된 상록수들 이 남는 영양분을 잎이 떨어진 공동체 일원들에게 보내 준다. 또 지하에서 활동하는 균류는 나름대로 약간의 서비스 비용을 받는데, 큰 나무들의 영양분 교환을 도와준 대가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식이다.
그러니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숲속의 나무들이 햇빛을 받 으려고 서로 경쟁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나무들은 햇빛을 받기 위해 서로 협업한다. 전략을 다양화하고 노동의 대가를 공유한다.
또한 나무들은 서로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아카시아 나무 의 잎에 기린의 침이 닿으면 나무는 경고성 화학물질을 공기 중에 내뿜는다. 이 화학물질에 반응한 주변의 아카시아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린에게 혐오감을 주는 특별한 물질을 내뿜는다. 진화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마치 단일한 존재의 한 부분처럼 행동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키웠다.
- 인간은 마치 뇌를 공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세 서로 이어진다. 바로 대뇌 변연계 조화 limbic consonance'라는 것 덕분인데, 이 는 상대의 정서 상태에 나를 맞출 수 있는 능력이다. MRI 스캔을 해 보면 엄마와 아기의 뇌는 서로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함을 알 수 있다. 대뇌 변연계 조화는 아직 그 과정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 지만, 행복한 사람 혹은 초조한 사람이 방에 들어왔을 때 방 안 전 체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거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의 뇌 상태가 화자話者의 뇌 상태와 같아지는 것 등에서 목격할 수 있다. 이때는 여러 개의 신경계가 마치 하나인 것처럼 서로 동기화同期化 되고 조응照應한다. 우리는 이런 조화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행 복 호르몬과 신경 조절 과정을 갈망한다. 아이들이 부모 곁에서 잠들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이들의 신경계는 부모의 신경 계를 흉내 냄으로써 잠들고 깨는 법을 배운다.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녹음된 웃음소리를 삽입하는 이유도 이와 동일하다. 함께 시청하는 다른 사람들이 웃으면 우리도 그 웃음을 흉내 내기 쉽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그 자리에 모인 사람 들의 뇌 상태와 공명共鳴하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진화한 현실적인 신체, 화학적 처리 과정 덕 분에 우리는 사회 교류와 화합이 가능하다. 바로 이런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말을 한다는 것은 기도와 식도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적응이었다. 성대를 사용할 때 잘못하면 음식물이 목에 걸려 숨이 막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진화한 덕분에 우리는 성대 주름에서 나오는 소리를 조절하고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다양화해 언어를 만들 수 있었다.
언어는 더 크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위해 필요했기 때문에 생겨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를 개발하기 위해 언어 사용자들 사이에 얼마나 대단한 협업이 필요했을지 한번 생각해 보라. 여러 세대에 걸쳐 그런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짜임새가 달라지고 협업에 대한 믿음이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수많은 초기 인류의 조상들 중에서 오직 우리만이 언어를 가 졌고 우리만이 살아남았다. 우리가 네안데르탈인을 누르고 전설 과 같은 승리를 쟁취한 것은 우리가 힘이 더 세고 무기를 가졌고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라,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발견한 덕분인지도 모른다.
- 어느 쪽이 되었든 사회 분위기는 훼손된다.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 주었던 것이 이제는 우리를 갈라놓는다.
실제로 우리가 사회 교류와 철저한 소외 사이를 오가는 방식 과, 그 과정에 다양한 미디어가 이바지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는 문명의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새로운 소통과 교류 메커니즘을 개발한다. 책, 라디 오, 돈, 소셜 미디어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바로 그 매개체가 우리를 갈라놓는 수단이 된다. 책 은 오직 글을 아는 부자들만 접할 수 있고, 라디오는 폭동을 부추 기며, 돈은 은행가들이 독점해서 쌓아 두고, 소셜 미디어는 알고 리즘으로 벽을 쌓아 이용자들을 분리시킨다.
우리가 서로 소통하려고 개발한 미디어나 기술은 인간과는 달리, 사회성을 내재하고 있지 않다.
- 언어는 인간을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유리한 위치로 데려갔고, 더 크고 훌륭하게 조직된 집단을 형성할 수 있게 했다. 언어는 부족을 하나로 묶고, 분쟁을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제공했으 며,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연장자들이 후대에 자신의 지식을 전수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문명이 중시하는 사회 요소들은 생물학이 스스로를 개선하는 속 도보다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어에는 역효과도 있 었다. 언어가 생기기 전 '거짓말 따위는 없었다. 거짓말에 가장 가까운 행동이라고 해 봤자 과일 한 조각을 숨기는 정도였다. 하지만 말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현실을 호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문자는 우리에게 역사를 기록하고, 시를 남기고, 계약서를 쓰고, 동맹을 맺고, 먼 곳까지 뜻을 전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문자는 시공간을 넘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한 매체로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어주었다.
그러나 최초의 문자 언어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주로 힘과 지배력을 휘두르는 데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는 메소포타 미아에서 발명된 후 최초 500년간 오직 왕과 사제들이 통제하는 곡물과 노동력을 기록할 때만 쓰였다. 글이 출현한 곳에는 언제나 전쟁과 노예 제도가 따라왔다. 문자는 수많은 혜택을 주었으나,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문화를 추상적이고 관리적인 문화로 바꾼 것도 문자였다. 
구텐베르크 인쇄기는 유럽 전역에 문자 언어의 접근성과 도 달 범위를 확장시켰고, 사람들이 글을 깨치고 사상이나 감정을 표 현하는 것과 관련해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군주들 은 인쇄기를 엄격히 통제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군주들은 허가되지 않은 인쇄기를 부숴 버리고 소유자를 처형했다. 인쇄기는 아이디어가 넘쳐 나는 새로운 문화를 장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위층의 통제력을 강화했다.
- 라디오 역시 그 시작은 개인들을 서로 이어주는 매체였다. 지금 우리가 아마추어 무선통신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휴대용 무 선기가 라디오의 원래 형태였다. 그런데 기업들이 일정 주파수 대 역을 독점하려고 로비를 벌이고 각국 정부가 무선통신을 통제할 방법을 찾으면서, 당초 공동의 공간이었던 라디오는 광고와 선전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 아돌프 히틀러는 새로 등장한 마법의 매체처럼 보이는 라디오. 를 이용해 본인이 전국 어디에나 동시에 등장하게 만들었다. 독일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이토록 널리 침투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라디오는 마치 청취자와 진행자가 직접 소통하고 있 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고, 그 덕분에 히틀러는 수백만 명과 새로운 형태의 라포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전국에 7,000만 대 의 확성기를 설치해 그들이 소위 '주문형 정치 politics on dermand'라고 부르는 것을 방송했다. 르완다인들은 1993년까지도 라디오를 이 용해 적대 종족의 위치를 폭로했고, 그 라디오 방송을 들은 친정부 성향의 폭도들은 마체테를 들고 반대 종족을 학살했다.
그 어떤 새로운 매체는 일단 엘리트의 통제하에 들어가면 사 람들의 관심은 더 이상 서로를 향하지 못하고 고위 권력층을 향 하게 된다. 그 결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그보다 더 못한 존 재로 인식하면서 이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형태의 폭력 행위 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게 된다.
- 텔레비전 역시 처음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이상은 훌륭한 연결 매체이자 교육 매체였다. 그러나 마케팅 심리학자들은 텔레비전 속에 소비자의 심리를 반영하고 몇 가지 판타지와 함께 특정 제품까지 주입할 방법을 찾아냈다. 텔레비전 프로그래밍' 이란 말 은 채널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시청자를 프로그 래밍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됐다. 이 기발한 장치는 사람들을 사로 잡았고 인간의 숨은 본능까지 활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불가에 옹 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소파에 앉아 스크 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됐다. 집단 내에서 형성되던 라포르는 '대량 수용'으로 대체됐다.
텔레비전은 한편으로는 가족과 소비자 천국을 묘사해 획일 적인 미국 문화를 조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못지않게 사 람들을 소외시키는 개인주의 정신을 강요했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에게 마치 드라마 속 캐릭터를 고르듯이, 우리 자신의 정체성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시청자'라는 대중은 이러 한 전제를 기꺼이 받아들인 만큼 그에 따른 대가도 치러야 했다.
- 당초 월드와이드웹www은 연구문서를 찾아내고 하이퍼링크 를 걸기 쉽게 하려는 의도로 고안됐다. 하지만 월드와이드웹의 시 각적인 클릭 중심 인터페이스는 다른 인터넷보다 훨씬 더 텔레비 전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이 점이 기업들의 관심을 끌었다. 월 드와이드웹에 들어갈 때 이용자는 자판을 두드리거나 적극적으 로 사고할 필요가 없다. 그냥 클릭하고 읽으면 되고, 그냥 보고 구 매하면 되는 것이다.
유토피아적 가상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던 히피나 프로그 래머들로서는 경악할 일이었지만, 웹은 금세 '대화 공간'에서 '카 탈로그'가 됐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 창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개인과 브랜드 사이의 '일대일 마케팅'이 들어섰다. 닷컴붐을 타 고 수천 개의 기업이 물건을 팔러 나섰으나, 모두가 이윤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닷컴 붕괴 사태가 이어졌다.
인터넷 유토피아를 꿈꾸던 사람들은 승리를 선언했다. 인터 넷은 상업화 세력의 공격에도 살아남았으니, 이제 우리 모두를 서 로 이어준다는 본연의 미션을 재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터넷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언제나 소셜 미디어'일 거라고 공언 했다.
- 소셜 미디어가 공동체라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고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보는 종류의 고립 현상이 나타났다. 광고주는 (나 중에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개인 맞춤식 뉴스피드를 통해 이용자와 개별적으로 소통했다. 이것도 처음에는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광고주들이 이런 커뮤니티 플랫폼을 금전적으로 보조해 준다면, 그들도 약간은 우리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고 어쩌면 약간의 개인정보까지도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우리의 관심에 꼭 맞는 광고를 보여 주려고 열심히 노력까지 한다면 말이다.
사람들이 돈으로는 지불할 수 없거나 지불하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이제는 돈 대신 개인정보로 지불하게 됐다. 그런데 그 사이 뭔가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플랫폼들은 더 이상 사람들을 서 로에게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물건 파는 기업들에 연결해 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인간은 더 이상 소셜 미디어의 '고객'이 아니었다. 우리가 '제품'이었다.
- 소셜 미디어 운동의 마지막 변신은 플랫폼들이 이용자를 광고주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기업이 보낸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퍼붓는 대신, 구전口傳 마케팅의 최신 온라인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었고 그것을 '소셜 추천social recommendation'이라고 불렀다. 어떤 기업들은 원하는 콘텐츠나 광고 링크를 사람들이 공유하게 했고, 또 어떤 기업들은 특별히 영향력 있는 이용자들을 찾아내 공짜 제품을 주며 자기네 브랜드를 선전해 달라고 했다.
- 쌍방향성이 매우 높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미디어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해결되지 않은 이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방법처럼 보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밈은 '반드시’ 수면 위로 올라왔어야 할 무언가였다.
문제는 목적이 언제나 해당 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게릴라 미디어 운동가들이 사용하는 상향식 bottom-up” 기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기업과 정치가, 선동가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그들에게 바이럴 미디어란 더 이상 불평등이나 환경 문제를 폭로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반응을 만들어 내는 효과적인 수단일 뿐이다. 그 반응이 무의식적이고, 생각 없고, 잔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논리나 진실은 바이럴 미디어와 무관하다. 밈이 작동하려면 '투쟁도주 반응fight or flight reactions'을 자극해야 하는데, 그런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고,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런 기법은 한 번도 적절했던 적이 없고, 좋은 뜻으로 사용된 적도 없다. 바이러스가 위험한 이유는 뇌에서 사고나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인 대뇌 신피질을 우회하고, 그보다 아래에 있는 보 다 원시적인 파충류 뇌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학적으 로 이미 증명된 기후 변화에 대한 밈은 '엘리트들의 음모!' 라는 밈만큼 강렬한 반응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바이럴 공격을 한다고 해서 수해를 입은 지역의 주민들이 상호 부조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는 없다. 반면에 생존자들을 더 피해망상에 빠트려 자기 보호 본능 속으로 몰아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밈을 이용한 캠페인은 포용, 사회적 관계, 차이에 대한 인정이 왜 좋은지를 이해하는 뇌 부분에 호소하지 않는다. 밈을 이용한 캠페인은 포식자인지 먹잇감인지, 싸울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죽일 것인지 죽임을 당할 것인지만 생각하는 파충류 뇌에 호소한다.
-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미명 아래 대부분의 기술 혁신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사람들을 치워버렸다. 산업혁명기가 남긴 진짜 유산은 바로 이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의 유명한 발명품인 요리 운반용 승강기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이 승강기를 편리한 기술이라 생각한다. 음식과 음료를 주방에서 식당까지 나를 필요 없이 작은 승강기에 올리고 줄을 당겨 위층으로 보내면 그것들이 마법처럼 나타난다. 하지만 요리 운반용 승강기의 목적은 노력을 절약하는 것과는 무관했다. 그것의 진짜 목적은 노예제라는 흉측한 범죄를 눈에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기술 자체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해당 기술을 사용했던 방법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산업혁명기는 많은 기계적 혁신을 낳았지만, 그런 혁신이 실제로 생산 과정을 더 효과적으로 만든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산업혁명은 그저 인간의 기술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다. 
- 오늘날 사람들은 마침내 코딩하는 법을 배우라는 권유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 프로그래밍은 더 이상 미디어 지형을 좌지 우지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개발자들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은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으나, 그 가동과 배포는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 즉 클라우드 서버에 대한 접근성에 전적으로 의존 한다. 이 클라우드 서버와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각종 장치는 불과 서너 개의 기업이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자체는 이들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실제 활동에 대한 위장술에 불과하다.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들이 우리 모두에 관한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 가는 그 활동 말이다.
문자나 인쇄술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끝없는 자유가 펼쳐졌다고 믿었다. 우리에게 새로 생긴 능력은 여 전히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똑같은 세력에 의해 철저히 제한된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기껏해야 우리는 나중에 우리의 신세계를 독점할 자들을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있을 뿐이다.
- 디지털이 데려온 관심 경제에 산다는 것은 자동화된 각종 조작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받는다는 뜻이다. 요즘에 많이 이야기하는 '설득형 기술persuasive technology' 이라는 것은 미국의 몇몇 일류 대학에서 개발하고 가르친 설계 원칙으로, 전자상거래 사이트나 소셜 네트워크에서부터 스마트폰과 운동용 손목 밴드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설득형 기술의 목표는 '태도 변화와 습관 형성'을 이루는 것이며, 흔히 이용자가 모르는 채로 혹은 동의하지 않은 채로 이루어진다.
행동설계이론 behavioral design theory은 사람들이 태도나 의견이 바뀌어 행동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초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본인의 행동에 맞게 태도를 바꾼다. 이 모형에 따르면 우리는 자유의사를 가지고 생각하는 존재라기보다는 기계에 가깝 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조작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형 기술은 우리에게 영향을 줄 때 '논리' 라든가 최소한의 정서적 호소'조차 동원하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 의미의 광고나 세일즈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오히려 전시戰時의 심리전이나 교도소 혹은 카지노, 쇼핑몰 등에서 사용하는 시기 조종과 비슷하다. 
- 산업혁명기에 기계장치 시계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 고 공장의 기계가 인간 노동자보다 더 빠르게 일을 해치우면서, 우리는 아주 기계적인 측면에서 스스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 리는 스스로를 시계태엽 우주 안에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인간의 신체도 하나의 기계장치라고 말이다. 우리의 언어에도 서 서히 기계화된 메타포가 나타났다. 기름칠을 해야 한다', 크랭크 업을 한다’, 깊이 판다', '회사를 잘 돌아가게 한다'와 같은 표현 이 그것이다. 일상용어에서조차 점심을 먹는 것을 '연료 공급이 라 부르고, 논리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나사가 빠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인간을 기계 장치로 인정했다는 뜻이다.
사회 전체로서 우리는 효율성과 생산성, 힘과 같은 기계의 가치를 우리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더 튼튼한 노동자가 되어 더 효과적으로 작업하려고 했고, 작업 속도나 결과물의 양, 효율 이 효과적인 작업의 기준이 됐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세상이 컴퓨터로 계산되는 것이 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데이터고, 인간은 프로세서(처 리 장치)다. 우리는 그 논리는 계산이 안 되는데?', 그 친구는 멀티 태스킹을 너무 잘해서 동시에 두 명 이상 인터페이스가 가능하다니까'라고 말한다.
- 지금의 메카노모피즘 문화는 인간의 독특함이 반영된 것은 무엇이든 지워 버리는 디지털 미학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목소리나 억양에 조금이라도 특이한 점(꺼칠꺼칠함, 흔들림, 공기, 음조 변화)이 있으면 '결함' 이라고 재해석한다. 디지털 미학은 완벽한 정확성을 추구한다. 인체가 실제로 음악을 연주하는 정도의 정확성이 아니라 점수를 표시할 때 사용하는 수학적인 정확성 말이다. 우리는 그런 표기가 음악의 근사치에 불과하다는 사실, 인간의 감정 표현을 기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한 방법이자 다른 사 람이 재현할 수 있게 사용한 기교, 즉 상징체계에 불과하다는 사 실을 망각한다.
인간의 연주가 지각 차원에서 그리고 무의식의 차원에서 사람들을 서로 이어주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데이터의 순수성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전경과 배경이 역전된 것 이다. 인간이나 인간의 기구가 만들어 낸 노이즈를 자율성의 표현 으로 보지 않고 조작이 필요한 샘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프로세싱이나 디지털 노동을 통해 추출과 재포장을 거쳐야 할 원재료 말이다.
인간의 해석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참여했다는 흔적은 모두 삭제된다. 그럴 바엔 우리가 차라리 기계라면 좋을 것이다.
- 시장 화폐는 일반인들이 서로 물건을 사고팔게 해 주었다. 시장 화폐는 마치 포커 게임을 시작할 때 칩을 나눠 주는 것처럼 아침에 발행해서 교역이 끝날 때 현금으로 바꾸기도 했다. 화폐는 단위별로 빵 한 덩어리나 양배추 하나를 뜻하기도 했는데, 그런 물건을 파는 사람이 쿠폰처럼 사용하면 그날의 거래에 마중물 역할을 했다. 말하자면 빵 가게 주인은 일찍 나가서 빵 한 덩어리에 해당하는 쿠폰들을 가지고 필요한 것들을 산다. 그 쿠폰이 돌고 돌아 다시 빵 가게 주인에게 돌아오면 그는 쿠폰을 빵으로 바꿔 주었다.
무어인들은 곡물 영수증이라는 것도 발명했다. 농부는 곡물 100파운드를 곡물상에 가져와 영수증을 받아간다. 이 영수증에는 10파운드 단위로 구멍이 뚫려 있어서 농부는 일부를 찢어 그것으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형태의 돈이 시간이 지나면 가치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곡물상은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일부 곡물은 상해서 버려야 했다. 그래서 이 돈은 다들 빨리 사용하려고 했다. 다음 달이면 가치가 떨어질 돈을 들 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 경제는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돈이 빠르 게 회전되게끔 설계된 경제였다. 부의 분배가 아주 원활했기 때문 에 많은 소작농들이 새로운 중산층 상인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구 밑에서 일하지 않았고, 일하는 날수도 줄었 으며, 이윤은 더 많아졌고, 이전보다 그리고 먼 후대 사람들보다 더 건강해졌다.
- 귀족들은 이렇게 평등한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작농들이 자급자족하게 되면서 영주들은 소작농으로부터 경제적 가 치를 뽑아낼 수 없었다. 부유한 영주들 집안은 수백 년간 한 번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본인들의 몰락과 부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을 막으려면 사업의 규칙을 바꾸는 수밖 에 없었다.
그들이 생각해 낸 획기적 아이디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독점 허가였다. 누구든지 왕으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않고 사업을 하면 불법이 됐다. 이 말은 곧 왕이 선별한 구두공이나 포도주상이 아니라면 사업을 그만두고 인가를 받은 누군가의 고용 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미국의 독립혁명은 주로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장악하고 있 던 그런 독점권에 대한 대응이었다. 식민지 주민들이 면화를 재배 하는 것은 자유였으나 그것으로 직물을 짜거나 동인도회사(착취 수준의 가격을 매겼다)가 아닌 곳에 내다 파는 것은 금지되었다. 동 인도회사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싼값으로 사들인 이 면화를 영국 으로 가져가 직물로 만든 다음, 다시 미국으로 신고 와서 그들에 게 팔았다. 이런 독점 허가는 현대적 기업의 조상으로, 일부 기업 이 시장을 장악해 수익을 독점하고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은지금도 그대로다. 또 하나의 획기적 아이디어는 중앙 화폐였다. 시장 화폐는 불법이 됐고, 그것을 썼다가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거래를 하고 싶은 사람은 이자를 주고 중앙 금고에서 돈을 빌려야 했다. 이렇게 하면 돈을 갖고 있던 귀족들은 돈을 빌려주는 것만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 재화의 교역을 촉진하는 도구였던 돈이 상업으로부터 경제적 가치를 착취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지역 시장은 붕괴됐다.
계속해서 돈을 빌린 사람은 인가를 받은 대형 독점 회사들뿐 이었다. 물론 자신들이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으려면 어디선가 추가 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이 말은 곧 경제가 성장해야 한 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인가를 받은 회사들은 신대륙을 정벌하러 나섰고, 신대륙의 자원을 착취하고 그곳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노동력을 착취했다. 회사들의 이런 성장 의무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기업이 투자자에게 빌린 돈을 갚으려면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 회사는 중 앙 화폐의 운영 체계가 계속해서 경제적 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통로에 불과하다. 기업이 성장할 때마다 사람과 자원이 있는 진짜 세상으로부터 자본을 독점한 자들에게로 더 많은 돈과 가치가 전달된다. 그래서 이름이 '자본주의'인 것이다.
- 디지털 기업은 착취의 성격을 가진, 그 선조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대형 상점은 동네에 들어가 동네 가게들을 약화하고 결국에는 그 지역 단독 상점이자 고용주가 된다. 그렇게 해서 그 지역을 독점하고 나면, 이제 가격은 올리면서도 임금은 낮 출 수 있고, 노동자는 파트타임으로 지위를 낮추고, 건강보험 비 용과 저소득자 지원금은 정부에게 떠넘길 수 있다. 이 업체가 지역 사회에 끼친 효과를 따져 보면 착취적이다. 동네는 더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진다. 해당 업체는 지역 경제(그 지역의 땅과 노동)에서 돈을 털어 주주에게 전달한다.
디지털 기업도 마찬가지다. 다만 속도는 더 빠르다. 디지털 기업은 택시업계나 출판업계처럼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업계를 골라서 이전 참여자의 대부분을 잘라내고 시스템을 최적 화한다. 그렇게 택시업계의 시스템을 최적화한 택시 서비스 플랫폼은 한 번 이용할 때마다 운전자와 승객 양쪽 모두에게 수수료 를 부과하고, 자동차나 도로, 교통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다 른 주체에게 떠넘긴다. 도서 판매 웹사이트는 저자나 출판사가 지 속 가능한 수입을 올리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단독 구매 자 혹은 수요 독점자로서의 힘을 이용해 양측 모두가 더 적은 노동 대가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그러고 나면 이 최초의 독점사업은 소매업, 영화,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다른 업종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 이런 업체들은 결국 처음에 그들이 의존했던 시장 자체를 파괴해 버린다. 대형 상점은 이렇게 하고 나면 지역 하나를 마감하고 다른 지역에서 똑같은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디지털 업체가 이렇게 할 때는 처음 시장에서 다음 시장으로 분야를 확장한다. 예를 들면 책 시장에서 장난감 시장으로, 다시 모든 소매업으로 확장하거나, 승차 공유 서비스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로, 자율 자 동차로 확장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해당 업체의 실제 상품의 가치는 상승하고, 주가도 함께 올라간다.
주주의 관점에서 이 모형이 가진 문제점은, 결국에는 더 이 상 효과가 없는 때가 온다는 점이다. 디지털 플랫폼의 부양 효과 에도 불구하고 지난 75년간 기업들의 총자산 대비 이익률은 꾸준 히 감소해 왔다. 지금도 기업들은 시스템에서 돈을 몽땅 다 빨아 들이는 데는 아주 능하지만, 그렇게 빨아들인 자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형편없는 솜씨를 발휘한다. 기업의 덩치는 커지지 만 이익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기업들은 쓰지 않는 돈을 그냥 깔 고 앉아 있다. 그리고 시스템으로부터 현금을 너무나 많이 빼내가서 중앙은행은 돈을 더 많이 찍어 내라는 압력을 받는다. 그렇게 새로 찍어 낸 돈은 은행에 투자되고, 은행은 그 돈을 기업에 빌려주고, 이러한 전체 순환이 다시 반복된다.
디지털 사업은 실물 자산을 주주 가치라는 추상화된 형태로 바꿔 놓는 소프트웨어에 불과하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하키 스틱 모양의 성장 궤도를 그릴 다음번 유니콘 에 투자했다가 망하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 고 있다. 이런 사업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결국에 가면 성장 곡선이 납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디지털 경제는 번영을 널리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자본 주의의 가장 착취적인 측면을 증폭시켰다. 연결성은 참여의 열쇠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아직 갖고 있는, 얼마 되지도 않는 가치 까지 기업들이 모조리 뽑아낼 수 있게 도와주는 측면도 있다. 디지털 경제는 P2P 시장을 복원하는 대신 부의 분배를 악화할 뿐만아니라 그런 효과를 완화해 줄 '상호 부조'라는 사회적 본능까지 마비시킨다.
디지털 플랫폼은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 지수함수적 역학 구조를 증폭시킨다. 디지털 음악 플랫폼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플랫폼의 구성 방식과 추천 엔진 때문에 지금 그들이 홍보하는 음악가의 수를 따져 보면, 이전에 음반 가게와 FM 라디오 등 다양성을 갖춘 생태계에서 홍보하던 시절보다 오히려 판매되는 음악의 수는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재생하는 음악은 한 두 명의 슈퍼스타뿐이고 나머지 모든 음악가들은 거의 아무것도 팔지 못하고 있다.
- 비트코인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컴퓨터 전력은 평균적인 미국 가정이 2년간 사용하는 전력에 맞먹는다. 이게 과연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근본적 해결책일까? 더 훌륭한 거래 내역 원장을 만드는 게?
블록체인이 해결해 주는 문제는 더 빠르고 훌륭한 회계'라고 하는 실무와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어쩌면 온라인으로 누군가 의 신분을 검증하는 절차가 좀 더 쉬워질 수도 있다. 은행업계가 궁극적으로 블록체인을 받아들인 이유도 그것이다. 우리를 더 빨리 찾아내서 우리의 자산을 더 빨리 빼내 가기 위한 것 말이다. 한편 진보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 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기록하고 보상하는 역할을 블록체인이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마치 인간의 활동이 온통 거래뿐이어서 죄다 컴퓨터로 계산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기술이 만들어 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더 많은 기술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공유 자산은 승자가 독식하는 경제가 아니라 '모두가 승자' 인 경제다. 공동 소유권은 공동의 책임을 일깨우고, 사업 활동에 도 장기적 관점을 갖게 해 준다. 그 무엇도 '다른' 참가자에게 떠 넘길 수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한 우물을 쓰는 관계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업 활동이 다른 시장 참가자에게 피해를 준다면 시장의 완전성을 훼손하는 일이 된다. 자본주의의 신화에 도취된 사람들에게는 이게 이해하기 힘든 개념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경제가 대변貨邊’과 ‘차변借邊의 양쪽 칸으로 이루어진 대 차대조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이 들어온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돈이 빠져나간 사람도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제로섬 관계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화폐의 중앙 독점이 낳은 산물이다. 돈을 반드시 어느 사설 금고에서만 빌릴 수 있고 빌린 후 에는 이자를 붙여 갚아야 한다면, 그렇게 경쟁적이고 안타까운 희 소성 모형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빌린 것보다 많은 돈을 갚아야 하므로 차액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취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제로섬의 전제다. 하지만 경제가 꼭 그런 식으로 운영될 필요는 없다.
부채 기반의 금융이 가진 이런 파괴력은 중앙 화폐보다 더 오래되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냐면 성경에서 경계하라고 말했을 정도다. 파라오에게 풍년에 곡식을 저장해 두면 흉년에 조금씩 꺼내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사람은 요셉이었다. 파라오의 고용인이 된 사람들은 결국 파라오의 노예가 됐고, 400년이 흐른 후에야 그들은 포로 상태에서 풀려날 방안과 빚쟁이식 사고방식에 서 벗어날 방법을 알아냈다. 탈출 후에도 히브리인들은 사막에서 한 세대를 보낸 후에야 그들에게 쏟아진 양식 '만나'를 쌓아 두지않고 서로 공유하면서 향후에도 '만나'가 계속 생길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무언가가 부족한 사람들처럼 행동한다면 실제로 그것이 부족해질 것이다.
- 그들이 입맛대로 짜 맞춘 인류 역사에 따르면, 모든 게 구제 불능으로 끔직해 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을 생각해 냈다. 그들은 1894년의 말똥 위기 사태를 자주 언급한다. 당시 영국과 미국 사람들은 교통수단으로 쓰던 말 들이 싼 똥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다 자동차가 등장 해 도로에 허리 높이까지 말똥이 쌓이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우리를 마차가 야기한 문제에서 구해 주었듯이, 새로운 기술 혁신이 나타나 우리를 자동차로부터 구해 줄 것이다.
이런 설명의 문제점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은 상업용 교통수단으로 채택됐고, 전차에 탄 사람들은 새로 나타난 거슬리는 자동차와 도로를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했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몰게 만드는 데는 50년간의 홍보 활동과 로비, 도시 재계획이 필요했다. 게다가 만약 자동차가 정말로 어느 면에서 도로를 더 깨끗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환경 훼손으로 인한 비용과 석유 매장량 확보를 위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남들 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우리도 알고 있다. 순전히 양적인 측면에서 측정한 사회 진보를 찬양하는 과학 자가 너무나 많고, 그중에는 성장에 집착하는 기업들이 자금을 제 공한 경우도 많다. 그들은 기대 수명이 늘었다거나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수가 줄었다는 것을 이유로 우리가 발전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것도 그 자체로 훌륭한 발전이지만, 문제는 그런 것들이 현대 자본주의가 저지른 범죄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마치 서구의 일부 주민이 평화롭게 살고 있고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게 서구 모델의 우월함을 증명하거나 성장 추구의 이점을 반박 불가능하게 증명하는 일인 것처럼 거론되듯이 말이다.
- 자율성을 가진 인간이 결코 부채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현 실이 결코 정보가 아닌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컴퓨터가 아니다. 지능은 뇌가 가진 놀라운 능력이고 현실은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 터를 축적하고 있지만, 이것들을 부릴 인간의 의식이 없다면 두 가지 모두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을 단순한 처리 능 력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몇 킬로그램을 들 수 있느냐로 인간의 몸을 판단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계산 속도는 슈퍼컴퓨터와 겨룰 수 없고, 우리는 결코 크레인만큼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는 인간의 유용성을 훨씬 능가한다. 일과 관련된 지표 하나를 개선하자고 인간에게 기술을 개입시키거나 기술로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더 중요한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은 의식 자체다.
- 우리가 알아낸 바로는, 의식은 미세소관微細小官, microtubule 이라고 하는 뇌의 아주 작은 구조물 내에서 계산되지 않는 양자 상 태에 기초를 두고 있다. 미세소관은 수십억 개가 있고, 그 하나 하나마다 진동하는 수많은 활동 부위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컴퓨터 칩을 이용하는 기계가 있다고 해도 인간의 뇌 하나의 복잡성 앞에서는 빛을 잃을 것이다. 뇌는 가능한 조합이 많아도 너무 많다.
- 예술은 우리를 참신한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새로운 접근법과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종종 낯설고 불편한 심경을 유도한다. 예술은 우리를 잠들게 하는 게 아니라 흔들어 깨운다. 자칫 잊힐 수 있는 인간다움에 관해 무언가를 경험하게 만든다. 그 빠진 부분을 뭐라고 꼬집어 말하거나 즉각 관찰하거나 알고리즘으로 처리할 수는 없지만, 이름을 붙이거나 묘사하거나 해결하기 전에도 그것은 분명히 거기에 있다.
그것은 살아 있고, 역설적인, 팀 휴먼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 우리는 일찍부터 남들과 돈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 말리고 교육받았다. 개인의 연봉이나 통장 잔고는 길병 이력만큼이나 민감한 사생활로 간주된다. 왜일까? 이 습관의 뿌리를 찾르면 근원에는 소작농들의 신분 상승이 있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부상 중인 중산층보다 앞서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신분을 나타내야 했다. 이를테면 고귀한 출생 신분 같은 것 말이다. 부르주아의 옷이나 인테리어 스타일을 따라 갈 수 없었던 귀족들은 덜 화려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수백 년 간 이어져 온 허례허식의 삶이 역전되는 과정에서 이제는 부를 과시하는 것보다 숨기는 게 더 세련된 행동이 된 것이다.
지금도 누구에게 얼마나 버냐고 묻는 것은 무례한 행동으로 간주된다. 상황에 따라 너무 적게 버는 게 창피할 때도 있고, 너무 많이 버는 게 수치일 때도 있다. 그러나 부자인 것 혹은 가난한 것 을 숨기는 사회 관습은 서로의 감정을 보호하는 것보다는, 상사의 지배력을 보호하는 것과 더 관련이 있다.
- 상사가 내 연봉을 올려 주려면 나는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말했다가는 다른 사람들 도 모두 똑같이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비밀을 유지한다면 나는 경영진과 공모 관계가 된다. 학대를 당했지만 사탕을 받고 입을 다물기로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한 셈이다. 이때의 뇌물은 수치심에 기초한 계약이 된다. 이 계약이 깨지는 것은 오직 피해자가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 똑같은 학대를 겪은 사람을 찾아냈을 때다. 그리고 진짜 힘이 생기는 것은 그들이 폭로할 준비가 되어, 학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운동으로 발전했을 때다.
- 마찬가지로 조합에 힘이 생기는 것은 단순히 단체 교섭력 때문이 아니라 조합의 결성이 만들어 내는 집단 감수성 덕분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놓고 노동자들끼리 경쟁하게 만들려고 했던 경 영진의 노력은 노동자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순간 수포로 돌 아간다. 택시 애플리케이션이나 온라인 심부름 서비스 플랫폼에 노동자들끼리 서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대화창 기능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화는 결속을 낳고, 결속은 불만을 낳는다.'

종교, 사이비집단, 정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모두 똑같은 술책으로 구성원들을 장악한다. 개인의 비밀이나 성적 취향, 정체 성 문제 등을 알아낸 다음, 그것을 빌미로 구성원을 협박하는 것 이다. 스타 배우들이 사이비집단을 빠져나오고 싶어도 그러지 못 하는 이유는 폭로가 두렵기 때문이다. 사이비집단 중에는 타깃으 로 삼은 사람의 가장 사적이고 수치스러운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도 한때 교회가 부유한 교구민을 협박하거나 가난한 교구민에게 수치심 을 일으켜 착취에 순종하게 만들 때 사용했던 고해성사실의 업그 레이된 버전에 불과하다.
- 업보나 환생을 믿었다면 자신이 한 행동의 파급효과를 겁내 지 않고 그런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 든 것은 나에게 되돌아오므로 아무것도 남에게 떠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에서 환생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내가 오늘 피해를 준 사람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신의 개입을 믿으면서 우리는 오히려 더 자유롭게 자연 을 파괴하고 하늘의 구조를 기다리게 됐다.
시간이 순환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세상의 종말과 같은 정 도를 벗어난,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순간은 떠올릴 수 없다. 모든 것은 그냥 존재하고, 늘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진보 따위는 없다. 계절과 순환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유대교 이전의 많은 종교가 인간이 하는 일 중에 완전히 처음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쳤다. 그 종교들은, 인간의 행위는 원형이 따로 있는 어떤 행동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 어떤 물건을 만들든, 그게 중요성을 띠려면 현실 속에 울림을 만들어 내야 했다. 행동이 의미를 갖는 것은 신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사 랑을 나눌 때마다 사람들은 신들의 결합이라는 원형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거나 세운 것은 모두 신이 가진 창의성의 메아리에 불과했다.
현대성이라는 그물에 걸려든 사람들에게는 진보를 강조하지 않는 이런 얘기가 아무 목적 없는 따분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 다. 애당초 독창성도, 저자라는 개념도, 저작권도, 특허권도 없다. 아무 방향성이 없다.
그러나 방향성이 없더라도 이게 훨씬 더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천연 자원을 모두 쓰레기로 바꿔 버리는 일방향 흐름보다는 말이다. 그런 일방향 흐름은 자연과 존재의 재생 원칙에 어긋난다. 사람들은 원래 순환을 믿었다. 일방향을 믿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 농경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의 전조였다. 농부들은 땅 이 내놓는 것을 채집하는 게 아니라 땅을 갈고 원하는 작물을 키웠다. 농경은 수확을 자연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업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 아이러니를 수천 년간 알고 있었다. 성경을 보면 카인이 스스로 키우고 수확한 곡식을 제물'로 바치려 하자,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양치기 아벨은 제물로 바치는 동물을 자신이 만들지 않았다고 겸손히 인정했다. 카인은 작물을 재배했으나 오만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런 신화 속 교훈을 알면서도 우리는 농경의 독점 지향성을 떨쳐내지 못했다. 중세가 되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유 럽의 공유지까지도 왕의 인가를 받은 독점권자들이 울타리를 쳤 다. 농경이 지닌 최악의 폐단은 증폭되었다. 사유화된 농장을 기 초로 세워진 사회는 통제와 착취, 소유를 중시하게 됐고, 진정한 효율성과 인간의 건강, 환경의 지속가능성까지 희생시켰다.
- 농경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권력 을 축적하는 수단이 됐다. 미국 식민지의 공장식 면화 농장은 당 시 큰 돈벌이가 됐던 노예무역을 정당화했다. 오늘날 공장식 농업 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주로 화학회사, 농약회사, 생명공학회 사의 주주들이다. 공장식 농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유기농 농사 는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규모를 키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 한두 해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수십 년간의 화학제품 남용으로 파괴된 토양이 건강을 회복할 동안 말이다. 생물다양성 을 가진 유기농 농장을 늘리는 것은 부자들만을 위한 사치가 아 니다. 그것은 지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길이다. 이제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히 밝혀진 사실이 있다. 바로 공장식 농업은 소규모 유기농 농업에 비해 땅에서 나는 식품의 양도 적고, 영양가도 적으며, 효율성도 떨어 지고, 비용은 더 많이 들고, 환경 파괴는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공장식 농업이 잘나가는 이유는 진짜 비용을 타인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공장식 농업은 사회적으로 큰 비용을 치르는 질병을 낳는다. 직접적으로는 오염된 식품과 가축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영양 부족과 비만, 당뇨병을 통해서 말이다. 한편 패스트푸드 및 식료품 업계는 운송비를 공공도로 체계에 떠넘기고, 공급자 역할을 해 줄 나라들의 정복을 군대에 맡긴다. 경쟁에 반하는 보조금까지 정부로부터 받아가면서 말이다. 국제연합UN과 세계은행에서 실시한 연구 조사는 유전 공학이 전 세계 식량 공급에 조금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예언자는 “히네니Hineni"라고 대답한다. “여기 있어요”라는 뜻이다. 사람이 왜 하나님에게 여기 있다고 답해야 했는지에 관해 학자들은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 다. 분명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심을 알았을 텐데 말이다.
“히네니”를 외치는 진짜 목적은 준비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일어나 기꺼이 위대한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찾아주기를 바란다면 우리도 이렇게 외쳐야 한다. 여기 있어요.
이제는 우리가 인류를 위해 일어설 때다. 어떻게 보더라도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팀 휴먼이다.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공정한 숫자들  (0) 2021.07.17
중산층은 없다  (0) 2021.07.17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0) 2021.06.06
프로보커터  (0) 2021.05.30
앞으로 10년 세상을 바꿀 거대한 변화 7가지  (0) 2021.05.07
Posted by dalai
,

-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 자신을 살리는 글쓰기를 하려면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바둑으로 치면 복기와 같은 과제인 셈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를 하면서 자기치유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거창한 목적보다는 우선 자신을 깨우치고 치유하는데부터 출발해야 한다.
- 여름이 더워도 손을 떼지 않고 긴 겨울밤에도 새벽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 제자로서 경(經)ㆍ사(史)를 고열(考閱)하는 자가 수인(數人)이며, 입으로 부르면 나는 듯이 받아쓰는 자가 3인이요, 항상 번갈아가며 초고(草稿)를 다듬고 정서하는 자가 수삼인이며, 옆에서 도와 책지(冊紙)를 가다듬고 책을 꾸미며 바로잡아 장황(粧蹟)하는 자가 3~4인이었다. 무릇 한 책을 저술함에는 먼저 그 자료들을 수집하여 서로 대비하고 서로 참고하여 완색하며 빗질하듯 정밀하게 골라 배열하였다.
'사암선생연보'에는 다산이 어떤 저술과정을 거쳤는지 그 실 상이 기록되어 있다. 집필의 시작인 자료 수집에서부터 마지막 제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자료수집에 있어서 대비하며 참고하며 완색하며 빗질하듯 정밀하게 골라 배열하였다는 대목에서 그의 기록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다산이 두 아들에게 경서를 먼저 읽으라고 한 것은 폐족이 된 집안으로 인해 희망 없이 살아갈 것이 염려된 것도 있지만, 경학을 통해 스스로 살아갈 방안, 즉 삶의 철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서였다.
우리가 배불리 먹고 따듯한 옷을 입고 죽을 때까지 근심 없이 지내다가 죽는 날 사람과 뼈가 함께 썩어버린다. 한 상자의 책도 전할 것이 없다면, 삶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것을 삶이라고 한다면, 그 삶이란 금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 가장 경박한 남자란, 마음을 다스리고 성품을 기르는 일을 한가한 일로 여기고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고담(古談)이라고 한다. 맹자는 대체(大體)를 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고 하였다. 저들이 소인됨을 즐거이 여기는데, 나 또한 어찌할 것인가?
'또 정수칠(丁修七)에게 주는 말'의 일부이다. 정수칠(丁修七,1768~?)은 장흥 반산(盤山)에 살던 이로 다산의 먼 집안사람이기도 하고 제자이다. 이 글은 두 아들에게 경학을 공부하라는 당부와 같은 맥락이다. 사람이 책을 읽지 않으면 금수와 다를 바가 없고, 대체마음을 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몸을 기르는 이는 소인이 된다고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음을 기르는 일이며 그 시작은 경학이라는 것이다.
- 사신으로 연경에 가는 교리(校理) 한치응(韓致應)을 전송하는 서(送韓校理致應使)]에서 “나의 소견으로 살펴보면, 그 이른바 '중국'이란 것이 나는 그것이 중앙(中]'이 되는 까닭을 모르겠으며, 이른바 '동국'이란 것도 나는 그것이 '동쪽'이 되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른바 '중국'이란 무엇을 두고 일컫는 것인가. 요순우탕(堯舜禹湯)의 정치가 있는 곳을 중국이라 하고, 공자·안자(顔子)、자사(子思)ㆍ맹자의 학문이 있는 곳을 중국이라 하는데 오늘날 중국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성인의 정치 와 성인의 학문 같은 것은 동국이 이미 얻어서 옮겨왔는데, 다 시 멀리에서 구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같은 글에서 다산은 성인(聖人)들의 다스림이나 성인들의 학 문이 우리나라에서 이미 다 얻어내어 옮겨 놓아버렸으니 굳이 중국을 치켜세울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산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한 양반사대부들이 우리나라의 문헌과 역사는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박학다식을 자랑하기 위해 맹목적 으로 중국의 고사와 시구를 인용하는 것은 큰 병통이고 비루한 문풍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역사서만 한정해서 읽으라고 하지는 않았 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다만 우리를 중심으로 놓지 않고 중국에만 의존하려는 사고방식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 모름지기 실용적인 학문에 마음을 써서 옛사람들의 경제(經濟)에 관한 서적을 즐겨 읽고서 마음속에 항상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모든 사물을 기르려는 마음을 둔 뒤에야 비로소 독서하는 군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된 '두 아들에게 부침(壽二兒]'이라는 글에서 다산은 경서를 읽고, 역사서를 읽었다면 다음은 경제에 관한 서적 을 읽으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학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산의 입장에서는 조선 사회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이 실제 먹고사는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 다산시문집 오학론2(伍學論二)'의 내용 중 일부이다. 정독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책을 정독한다는 것은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명백하게 분변하고, 독실하게 실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 책을 읽을 때 주관과 판단력이 생기면 취사선택의 안목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책에서 무엇을 뽑아 기록할지 알게 된다. 다산은 “초서(書)의 요지는, 무릇 한 종류의 책을 볼 때마다 아름다운 말씀과 착한 행실로서 〈소학(小學)〉에 실려 있지는 않으나 〈소학>을 이을 만한 것이 있으면 뽑고, 모든 경설(經說)에 새로운 것으로서 전거(無據)가 있는 것을 뽑고, 자학(字學) · 운학(韻學) 같은 종류는 10에서 1만을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산이 수많은 저작을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서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들은 구절이 있으면 반드시 기록하고, 그런 초서의 기록들은 모아 두었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수백 권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지 않겠는가.
- 그 중에서 가려 뽑는 방법을 너의 형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었으니, 이번 여름에 부디 너의 형제들이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힘을 쏟아서 이 일을 끝내도록 하여라. 무릇 초서(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서 만들 책의 규모와 절목을 세운 뒤에 뽑아야만 일관(一貫)된 묘미가 있는 법이다. 만약 세워 놓은 규모와 절목 이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책 하나를 따로 갖추어 놓고 얻는 대로 기록하여야 득력(得力)할 곳이 있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느냐.
-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의 길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생각의 길이 열리고 글이 되는 것이다.
사의재(四宜齋)라는 것은 내가 강진(康津)에 귀양 가서 살 때 거처하던 집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 을 빨리 맑게 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니 장엄하지 않은 바가 있으면 그것을 빨리 단정히 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적지 않은 바가 있으면 빨리 그쳐야 하고, 움직 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四宜齋)'라고 한 다. 마땅하다]라는 것은 의롭다]라는 것이니, 의로 제어함을 이른다. 연령이 많아짐을 생각할 때 뜻한바 학업이 무너져버린 것이 슬퍼진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기 논쟁은 세상이 마치도록 서로 다투어도 끝이 없을 것이니 인생에 일이 많은데 그대와 나는 이를 할 겨를이 없다.”고 하면서 당대의 성리학이 탁상공론에 불과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비판했다. 이기논쟁이 요구되는 때가 있었다면 현재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학문의 의미가 그 학문을 키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효용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 다산은 시를 뜻이라고 했는데, 뜻이 저속하거나 편협하면 아무리 청고하고 달통한 말로 표현하더라도 그 뜻이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는 시를 하나의 수행으로 여기는 것 같다. “썩은 땅에서 맑은 샘물을 걸러내려는 것 같고 냄새나는 가죽나무에서 특이한 향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서 평생 노력해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맑고 투명한 두보의 경지는 타고난 것이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을까.'
- '연아에게 부침(壽淵兒]'이라는 글에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은 것이라면 시가 아니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미운 것을 밉다하며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면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즉 현실을 외면하는 시는 시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0) 2021.06.20
생각의 쓰임  (0) 2021.06.20
한국인의 맛  (0) 2021.06.13
일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씁니다  (0) 2021.05.30
지능의 역사  (0) 2021.05.30
Posted by dalai
,

다시 일어서는 용기

심리 2021. 6. 13. 09:04

- 의미는 상황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상황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가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범죄를 억압 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가정, 다시 말해 재판관, 경관, 간수 등의 가정에서 상당한 숫자의 범죄자가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교사의 아이들 또한 몹시 반항적인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 추어 보아도 이 통계는 어느 정도 맞는 듯하다. 나는 놀랄 만큼 많은 숫 자의 신경증적인 아이들이 의사의 자녀들 가운데 있으며 또 많은 수의 비행 청소년들이 목사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찬가지로 배뇨 조절을 강조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들 이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지극히 명료한 방법으로 즉 야뇨증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야뇨증은 우리가 의도하는 행동에 적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꿈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보여 준다.
- 야뇨증인 아이들은 흔히 자기들의 방을 나와 화장실에 가는 꿈을 꾼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자기변명을 한다. 이 말은 그들이 이불에서 소변을 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야뇨증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낮과 똑같이 밤에도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종속시켜 주의를 받으려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타인을 적대시하 는 일이며 그 습관은 적개심을 선언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각도에서 보면 우리는 야뇨증이 하나의 창조적인 표현이라는 사 실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는 입 대신에 방광을 사용하여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 기관의 불완전함은 그 아이에게 있어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을 제공할 뿐이다.
- 만일 우리가 아이를 침으로 자극하여 그 아이가 얼마나 높게 뛰어오르는지를 본다거나 간지럼을 태워서 그 아이가 얼마나 크게 웃는지를 보려 한다면 그런 일은 엄밀히 말해서 심리학이라고 부를 수 없다.
현대의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매우 일반적인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는 이런 방법은 실제로 한 개인의 심리에 대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은 특정한 인생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해당된다. 자극과 반응을 조사하는 사람들에게, 외상이나 충격적인 경험의 영향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에게, 또 유전되는 능력을 조사하여 그것들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보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될 뿐이다.
- 개인심리학에서는 정신 자체, 다시 말해 통일된 심리를 고찰한다. 우리는 개개인이 세상이나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의미, 그들의 목표, 그들이 기울이는 노력의 방향과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관찰한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심리적 차이점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열쇠는 협동하는 능력의 정도를 세밀하게 조사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듯이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숨겨야만 하는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다. 그 노력은 마치 키가 너무 작아서 고민하는 사람이 자기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 발끝을 세우고 걷는 일과 같다.
우리는 가끔 2명의 어린아이가 키 재기를 할 때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가 작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아이는 몸이 꼿꼿하게 경직되어 있다. 자기 키를 실제보다 커 보이게 하려고 신경 쓰기 때문이다.
- 열등감이란 개인이 어떤 일에 대해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준비 되어 있지 않아서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의 확신을 언행으로 표 현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이 정의로부터 우리는 눈물이나 변명과 마찬 가지로 노여움 또한 열등감의 표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열등감은 늘 긴장을 자아내는 감정이기 때문에 우월감을 향해서 나아 가는 보조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월감을 얻는 것으 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우월만을 추구하 게 되면 인생의 무익한 측면으로 향하여 정말 중요한 문제는 배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자기의 활동 범위를 한정하려고 함으로써 성공을 향해 전진 하기보다는 패배를 피하는 일에 몰두한다.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망설이면서 꼼짝도 하지 않거나 뒷걸음질 치는 모습마저도 보이게 된다.
- 광장공포증인 경우에 매우 간단하게 나타난다. 이 증후는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건 아니야. 나는 눈에 익은 상황에만 관 련되어 있어야 해. 인생은 위험으로 꽉 차 있으니까. 그런 위험을 만날 기회를 피해야만 해'라는 확신의 표현이다. 이 태도가 끊임없이 유지된다면 그 사람은 방 안에 틀어박혀 있거나 침대에 웅크리고 앉은 채로 시간을 보내고 만다.
- 열등감은 그들이 자신들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진하는 일을 금지해 버린다. 자위, 조루, 성적 불능, 성도착 등의 증세들은 모두 망설 임'이라는 인생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성에게 다가가려 할 때 자기 는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왜 그렇게 불완전한 것을 두려워하는가?” 하고 묻는다. 면 우월감이라는 목표가 곧 떠오른다. 가능한 유일한 대답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높은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열등 감이란 그 자체로서는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설명했다.
열등감은 인류가 자기 자신을 개선하려 하는 모든 노력의 결과다. 예 컨대 과학도 사람들이 자기의 무지를 깨닫고 미래를 예견할 필요성을 느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열등감은 인류가 자기의 생활을 개선 하여 우주에 대해 보다 많이 알고 우주를 보다 잘 통제하기 위한 여러 노력의 결과다. 사실 나의 견해로는 우리 인간의 모든 문화는 열등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까지 생각된다.
-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자주 그들의 우월 목표를 확실하게 나타낸다. 그들은 “나는 나폴레옹이다.” 라든가 “나는 중국의 황제다.” 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전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싶어 하고, 만인에게 우러러 보이고 싶어 하며, 전 세계와 무선으로 연락하여 모든 대화를 도청하고 싶어 한다. 또 그들은 미래를 예고하기도 하며, 초자연적인 힘의 소유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처럼 되고 싶다는 목표는 아마도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써 모든 일을 알고 우주적인 지혜를 소유하고 싶은 소망 혹은 생명을 영원히 갖고 싶다는 소원 속에 나타난다.
- 지상의 생명을 영원한 것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 삶이 윤회한다는 상상, 내세에서의 불사를 예견하는 등의 기대들은 모두 신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종교적인 가르침에 있어서 불멸의 존재 즉 모든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남는 존재는 신이다.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견은 인생의 몇 가지 해석과 의미 목표를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까지는 신과 같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 관련되 어 있다. 무신론자들조차도 신을 정복하려 하며 신보다 높은 존재이기 를 원한다. 우리는 이 욕망이 독특하게 강한 우월 목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월 목표가 한번 구체적이 되면, 인생 방식에 있어서 잘못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없어진다. 개인의 습관이나 모든 징후는 그의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극히 올바를 뿐이며, 그것들은 모든 비판을 초월한다.
모든 문제아와 신경증 환자, 알코올중독자, 범죄자, 성도착자는 자기 가 우월한 입장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거기에 적합한 행 동을 한다. 그의 모든 징후 자체를 공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징후는 마치 목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듯이 보인다.
- 어린 시절부터 기억되고 있는 사건은 그 개인의 주된 관심사와 매우 가깝다. 우리가 그의 주된 관심사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의 목표나 인 생 방식도 알 수 있다. 초기의 기억을 매우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기억 속에서 그의 부모와 가족에 대한 관심도 발견 가능하다. 기억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런 기억이 그 개인의 판단을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 이 때부터 나는 이러한 인간이었다'라든가 '아이 때부터 나는 인생을 이 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을 알아낼 수 있다. | 모든 기억 중에서 가장 계시적은 것은 그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최초의 사건이다. 최초의 기억은 그 개인의 근본적인 인생 방식과 그의 삶 가운 데 최초로 만족스러웠던 결정을 보여 준다. 그 기억은 그가 무엇을 자기 발달의 출발점으로 삼았는가를 한눈에 보도록 해 준다.
때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처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겠다면서 대 답을 회피하기도 하고 혹은 고백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 자체도 하 나의 계시가 된다. 우리는 그들이 자기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협력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 꿈은 인간 심리의 창조적 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꿈을 통 해 무엇을 기대해 왔는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 목적을 이해하는 데 매우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꿈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곧 놀랄만한 사실과 만나게 된다. 그동안 꿈 은 미래에 관계된다는 논리가 당연한 사실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자 주 꿈속에서 어떤 지배적인 영이나 신, 조상과 같은 존재들이 그들의 심리 속에 붙어서 영향을 준다고 느껴 왔다. 그들은 곤란한 일에 직면했을 때 뭔가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 꿈을 이용했다.
꿈에 관한 고대의 서적들은 어떤 꿈이 미래에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그들의 꿈속에서 어떤 전조나 예언을 점쳤다. 그리스인과 이집트인들은 장래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신성한 꿈을 꾸게 해 달라고 기원하면서 신전에 제사를 지냈다. 그런 꿈은 치유력이 있으며 육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 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꿈을 불러내기 위해 단식이나 목욕을 하는 등 대단한 노력을 했으며, 자신들의 꿈에 대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 구약성서에도 꿈은 항상 뭔가 미래의 사건을 계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있다.
- 하지만 꿈의 해석은 항상 개인적이다. 상징이나 은유를 어떤 공식에 의해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꿈은 각 개인의 독특한 인생 방식에 의해서 그 자신의 해석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전형적인 꿈의 형태를 몇 가지 간단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나는 여기서 개인적인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꿈의 해석과 의미 탐구에 도움이 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많은 사람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꾼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꿈을 이해하는 열쇠는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꿈이 불러일으킨 감정이다. 이러한 꿈은 잠을 깬 뒤에까지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과 용기를 남긴다. 꿈 속에서의 그 경험은 우리 마음을 고양시켜 준다. 역경을 극복하고 우월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일이 매우 쉽다고 묘사해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꿈은 용기 있는 사람, 진취적이고 야심 찬 사람, 잠자고 있을 때 조차 자기의 야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을 추측하게 한다. 이런 꿈은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동반하고 있 다. 꿈으로부터 암시되는 대답은 '전진해도 어떠한 장애도 없다'다.
또 많은 사람들이 흔히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이는 실로 주목해야 할 꿈이다. 이는 인간의 심리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 하기보다는 자기 보존이나 패배의 공포에 더 많이 몰두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교육적 전통이 주로 아이들에게 경고를 주고 경계를 시켜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아이들은 언제나 “의자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 “말참견을 해서는 안 된다.”, “불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하는 식의 주의를 들으며 성장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위험하다고 말하여지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물론 정말 위험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한 개인을 겁쟁이로 만드는 일은 살아가면서 위험에 대처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움직일 수 없다거나 전차에 늦게 올라타는 꿈을 자 주 꾼다면, 보통 그 의미는 '이 문제가 나에게 아무런 번거로움도 주지않고 그냥 지나가 준다면 기쁘겠다. 나는 그 문제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길을 돌아서 가든지 늦든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전차를 떠나가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시험에 대한 꿈도 꾼다. 때로 사람들은 자기들이 꽤 나이를 먹고 나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훨씬 옛날에 통과했던 시험을 다시 치러야만 하는 상황을 꿈에서 맞이하고 놀란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그 의미는 '당신은 눈앞의 문제에 직면할 준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당신은 전에 이 시험에 통과했다. 그 러니 현재 눈앞에 있는 시험도 통과할 것이다'와 같을 수도 있다. 어떤 개인의 상징이 다른 사람의 상징과 일치하는 일은 결코 없다. 우리가 꿈 에 있어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은 꿈이 남긴 잔상과 인생 방식 전체와의 일관된 관계다.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어머니의 모든 의식을 독점하고 다른 모든 사람을 배제하고자 하는 아이에게만 나타난다. 그와 같은 생각이 성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마음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복종시켜 완전히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마치 어머니를 하녀와 같은 존재로 느끼는 것이다. 또한 그 관념은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동료 의식을 갖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에 생긴다. 드문 예이긴 하지만 항상 어머니하고만 연결되어 온 소년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문제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와 같은 태도는 그가 자신의 어머니 이외에 어느 누구와도 협력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다른 어떤 여성도 어머니와 같이 종속적일 수는 없다고 생 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항상 잘못된 훈련의 인위적인 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적인 근친상간 본능 혹은 그와 같은 비정상의 근원이 어떤 성적인 것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 만일 집에서 아버지가 가족을 지배하고 화를 잘 낸다면 남자아이들은 남성에 대해 매우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경우 여자아이들은 더욱 소심해진다. 소녀들은 장차 남자를 폭군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 한 여자아이에게 결혼은 일종의 복종이며 노예제와 같은 것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때때로 그들은 남성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자신을 지키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집안에서 어머니가 지배적이고 가족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여자아이들은 어머니를 닮아 잔소리가 많고 비판적으로 되는 반면 남자아이들은 언제나 방어적이고 비판을 두려워 하며 자신들을 복종시키려 드는 계획을 경계하게 된다.
- 때로는 어머니만 폭군과 같은 것이 아니라 숙모까지도 남자아이들의 입장을 억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가정의 소년들은 집에 틀어박혀 사 람들 앞에 나서길 망설이며 사회생활에서도 낙오되는 인간으로 자라기 십상이다. 그는 여자들은 모두 잔소리가 많고 비판적이라고 생각하여 여성들을 무서워하게 되고, 이성이라면 모두 기피하고 싶어진다. 사람 은 누구나 비판당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비판을 피하는 것 자체를 인생의 주된 관심사로 삼는 다면 그는 사회와 맺는 모든 관계 속에서 방해를 받게 된다. 그는 모든 사건을 단지 나는 정복자인가 아니면 피정복자인가'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에 따라 판단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승리나 패배를 가늠하는 기회로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동료 관계가 불가능해진다. 
아버지의 임무는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 그리고 사회에 대하여 훌륭한 동료임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아버지는 인생에 있어서 중대한 세 가지 문제, 즉 직업, 우 정, 사랑이라는 문제에 현명한 방법으로 대처해야 하며 가족을 돌보고 지키는 일을 아내와 동등한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남자는 바람직한 가정생활을 창조해 가는 데 있어서 여성의 역할이 더할 수 없이 중대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그녀와 힘을 합쳐 협력해 나가는 일이다.
- 만일 아버지가 성공한 사람으로서 매우 재능 있는 사람일 경우 그 자 식들은 아버지의 업적에 결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들 은 기세가 꺾여 자라고 인생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저해되어 버린다. 유명인의 자녀가 때로 부모나 사회에 대해 낙담하는 사람이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추월할 수 있을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 매우 성공했다면, 그는 자신의 성공을 가정에서 결코 자랑삼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성장을 방해하게된다.
- 만일 한 아이가 특별 하게 잘 자랐다고 하면 대개 그 아이가 주목되어 소중하게 대접받는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 있어서는 쾌적한 상황일 테지만, 다른 아이들은 적대감을 갖고 반발하게 된다.
자신이 남보다 낮은 지위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지도 않고 초조한 느낌도 없이 견딜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눈에 띄는 아이는 다른 모든 아이를 업신여기기 쉽다. 그렇게 되면 다른 아이들이 정신적 굶주림에 괴로워하면서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가령 그 아이가 관심을 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을 경우, 아이는 절망적이 되어 애정을 받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버린 다. 그렇게 되면 신경질적으로 되어 말이 없고 남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 는 성격을 갖게 된다. 그 아이는 고립된 것처럼 행동한다. 그와 같은 아 이의 모든 행동이나 표현은 그가 주목의 대상이었던 과거로 향한다.
이러한 까닭에 맏이는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과거의 일에 관심을 타나 낸다. 그들은 옛날 일을 되돌아보며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과거를 찬미하고 장래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자신의 권력과 자기가 지배하던 '작은 왕국을 잃은 아이는 보통 다른 아이들보다도 힘과 권위의 중 요성에 관해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권위적인 행사에 참가하기를 좋아하고 규칙 이나 법의 중요성을 과장한다. 만사는 규칙에 맞추어 이루어져야 하고 어떠한 규칙도 변할 것은 없다. 권력은 항상 그것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 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되어진다.
이로써 유년기의 이러한 영향이 강한 보수주의 경향을 초래하게 된다. 는 점이 이해되어진다. 이러한 사람이 좋은 위치를 확보한 뒤에는 항상 남이 자신의 지위를 빼앗고 끌어내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배후에서 쫓아 오지는 않을까 하고 끊임없이 걱정하게 된다.
맏이의 입장은 이와 같은 특별한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문제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꿀 수도 있다. 맏이는 동생이 태 어나면 그를 사랑하라고 강요받지만 사실 자신이 해를 입을 것은 없다. 맏이 중에는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도우려 하는 자세를 몸에 익히게 되 는 아이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를 닮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들은 종 종 연하의 아이들에 대해서 부모의 역할을 연출하고 그들의 시중을 들 며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복리에 책임을 느낀다. 때때로 그들은 조직에 도움이 되는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상황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보살피려고 하는 정 도가 지나쳐 상대를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또는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지배하고 싶은 욕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 성서에는 수많은 훌륭한 사례들이 나타나 있는데 야곱의 이야기에는 전형적인 둘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야곱은 맏이인 에서의 지위를 빼앗기 위해 싸우면서 형보다 우수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둘째는 자신이 둘째라는 느낌에 초조해 하고 다른 사람을 따라잡아 추월하려고 애를 쓴다. 그 노력은 성공하기도 한다. 둘째는 흔히 맏이보다 재능이 있고 더 큰 성공을 한다. 이러한 발달에 유전적인 요소가 관계한다고 볼 수는 없다. 만약 둘째가 맏이보다 더 빨 리 발달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다. 맏이들은 성장해서 독립 할 때까지 가끔 자신이 선도자라는 사실을 이용한다. 결국 둘째는 자신 보다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비교하여 그 상대를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 속 에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한 모습은 인격의 모든 표현에서 발견 할 수 있고 또한 둘째의 꿈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예컨대 맏이는 떨어지는 꿈을 많이 꾼다. 분명 정상에 위치하고는 있 으나 이 우월성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 다. 그에 반하여 둘째는 흔히 경주에 참가하는 꿈을 꾼다. 그는 전차 뒤 를 쫓아가거나 자동차 경기를 하는 꿈을 꾼다.
- 한편 자신의 뜻대로 입장이 확고해지지 않으면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유형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장난을 치거나 학급 전체를 방해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구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이 원하는 입장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비난이나 벌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고 오히려 반항을 가속화할 뿐이다. 그들은 무시당하는 것보다 오히려 표적이 되어 야단맞는 쪽을 좋아한다. 잘못된 행동의 결과로서 부과되는 고통은 쾌락을 위하여 지 불해야 하는 대가에 지나지 않는다. 체벌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그들의 인생 방식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체벌을 누가 가장 오랫동안 견디어 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시합이나 게임 정도로 여긴다. 이 게임에서는 아이들이 항상 승리자다. 부모나 교사들과 투쟁하고 있는 아이들은 벌을 받으면서 우는 대신, 비웃도록 자신을 훈련시킨다.
- 게으른 아이는 거의 대부분 야심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게으른 아이는 진정한 패배감 따위는 결코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결코 테스트에 직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이는 자신의 눈앞에 닥친 문제를 쫓아 버림으로써 타인과의 경쟁을 지연시킨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그 아이가 게으르지만 않다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 아이는 '나는 하려고만 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 속으로 도피한다.
자신이 실패했을 때는 언제나 실패의 이유를 게으름으로 돌려 중대한 결함을 감소시키고 자존심을 유지한다. 그 아이는 스스로에게 '게으름 때문이지 결코 능력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교사는 게으른 학생들에게 종종 “너는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면 학 급에서 일등을 할 수도 있어.” 라고 말한다. 사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하 지 않음으로써 그와 같은 관심을 얻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왜 공부를 열 심히 함으로써 그 관심을 잃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겠는가. 만일 그 아이가 게으름을 벗어 던진다면 숨겨진 재능이라는 평판도 이제는 끝장나 버리는 것이다.
게으른 아이에게 있어서 또 한 가지 개인적인 이점은 그 아이가 최소 한의 공부를 하고 있으면 그로 인해 대단한 칭찬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다. 주위 사람 모두가 그 아이의 활동 속에서 개선의 여지를 파악하고 그 에게 좀 더 자극을 주고자 노력한다.
부지런한 아이들은 비슷하게 노력해도 칭찬받지 못하는데 게으른 아 이들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기대를 이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러한 아이도 역시 어린 시절부터 줄곧 모든 일이 타인의 노력에 의해 자 신의 차지가 될 것을 기대하도록 스스로를 훈련시켜 온 응석받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유형으로 친구들의 선두에 서는 아이들이 있다. 늘 지도자를 원하고 있는 인류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복리를 위해 선두에 서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지도자는 그리 흔치 않다. 선두에 서는 아이들은 대개 자신이 다른 아이들을 지배하고 복 종시킬 수 있는 상황에 흥미가 있을 뿐이며,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만 어떤 그룹에 가담하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의 장래가 유망하다고는 할 수 없다.
- 흔히 사춘기는 대단히 특별하고도 기묘한 시기이자 보편적인 성징(性 徵)이 나타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발달 과정상의 각 시기에는 특별히 강조된 개별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고, 모든 사람 은 그 발달을 마치 당연한 변화인 양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갱년기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이들 인생의 각 국면은 결국 변화가 아닌 똑같은 생명의 연속에 지나지 않으며, 그 시기의 현상은 아무런 결정적인 중요성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각 개인이 그러한 국면을 맞이하면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그 상황에 직면하기 위해 어떠 한 방법으로 스스로를 훈련했는가 하는 점이다.
- 만약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장래 어떤 일에 종사하고 싶은지를 알고 있다면 아이의 성장은 좀 더 수월해진다. 물론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개의 아이들은 쉽게 답변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신중한 게 아니다. 비행사나 기관사가 되고 싶다고 할 때에도 그들은 자기가 왜 그런 직업을 선택하는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들이 주는 대답은 자 신들 입장에서 우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대표하는 단지 한 종류의 직업일 뿐이다. 
단, 우리는 이 대답에서 그들이 자기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려 하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때문에 그들 마음의 밑바닥에 있는 동기를 인식하고 그들이 노력하는 방법을 보며 무엇이 그들을 이끌고 있는지, 그들의 우월 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그 희망들을 구체화시킬 수 있을 지 찾아내는 일이 바로 개인심리학의 과제다.
- 현재 야심이 부족한 듯이 보이는 아이라 해도 실제로 전혀 흥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너무나 야심만만하여 자신의 야심을 말할 만큼 용기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그 아이의 주된 관심사나 흥미를 찾아내기 위해 힘써야 한다. 어떤 아이들은 16세가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장래의 직업에 대해서 결정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매우 우수한데도 자신들의 생활이 어떤 식으로 지속되어 가는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매우 야심적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협동적이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사회의 분업 안에 자리가 없다고 느껴 자신들의 야심을 성취시킬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되도록 빠른 시기에 아이들에게 장래의 직업관에 대해 묻고 인식시키는 편이 좋다. 나는 학교에서 이 질문을 하도록 권유한다. 그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장래 직업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어 그 문제를 잊거나 대답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 만약 우울증 환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면 과연 누구를 증오할 필요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그가 자신에게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겠는가.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극장에 가고 싶거나 휴가를 얻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중간에 싫어지면 그만두시고요.”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이다. 그 일은 우월성을 추구하는 그의 노력에 만족을 준다. 그는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신과 같은 존재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런 원망(願望)은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사람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들을 지배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내가 환자들에게 말하는 법칙은 대단한 해방이다. 지금까지 내 환자 가운데 자살자가 나온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실히 증명해 준다.
물론 누군가가 환자를 지켜 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한은 아무런 위험도 없다. 그렇지만 환자 중의 어떤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만큼 주의 깊게 지켜봐 주는 보호자가 없었다. 앞서와 같이 말하면 종종 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런 말을 너무나 자주 들어왔으므로 언제나 준비된 대답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싫어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하세요.”
때로 어떤 환자는 하루 종일 자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허락하는 순간 이미 환자가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를 방해한다면 그가 투쟁하기 시작할 것임도 잘 알 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들의 말에 동의한다.
또 하나의 다른 법칙은 그들의 인생 방식을 더욱더 직접적으로 공격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이 만일 이 규칙에 따른다면 2주 안에 완치될 것입니다. 매일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생 각해 보십시오.”라고 말한다. 이 말이 그들에게 있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들의 머리는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 19세기가 끝나 갈 무렵 그의 삶에는 두 가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이트를 만난 일이었다. 1902년 아들 러는 프로이트의 권유로 수요일 토론 모임인 〈빈 정신분석학회>에 참가 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학설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프로이트 심리학파의 잡지 편집진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들러는 처음부터 프로이트와는 많은 점에서 견해를 달리하 고 있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정신적 생활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 일련의 강의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뒤에 1911년 8명의 다른 멤버와 함께 이의서를 제출하고 그 모임에서 탈퇴했다.
- 아들러가 특히 반박한 대목은 성충동의 학설을 정신적 생활의 기본 요소로서 노이로제 환자나 정상적인 사람의 경우에도 적용시킨 부분이 었다. 아들러의 견해로는 그러한 증상들은 절대적인 요인이 아니라 개 인적인 갈등 속에서 빚어진 소재이며 수단에 불과했다. 이후 아들러는 8명의 회원과 함께 <자유정신분석학회>를 결성했다가 1912년 그 명칭을 개인심리학회로 변경했다. 두 사람의 학설에 관심을 가졌던 융은 그들의 결별이 두 심리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이 트와 아들러의 인생관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지적 했다. 예를 들면 종교에 대한 프로이트의 적대적 태도와 아들러의 호의 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1934년 뉴욕의 한 강연회에서 특별 연사로 참석한 아들러의 사랑에 관한 강연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마침내 사회자는 청중에게 기립 박수를 치도록 부탁했을 정도였다. 아들러는 성욕보다는 사랑을 더 중 시했다. 그는 사랑과 행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욕과 쾌감원칙을 인 정하지 않았다.
아들러가 프로이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만 프로이트 심리학파의 정신분석학 역시 아들러의 개념을 받아들여 그 이론 체계를 확충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감 스위치를 켜라  (0) 2021.06.23
행복 시크릿  (0) 2021.06.20
뇌는 왜 당신이 우울한지 알고있다  (0) 2021.06.13
왕 전사 마법사 연인  (0) 2021.05.30
돈 보다 더 중요한 것들  (0) 2021.05.07
Posted by dalai
,

한국인의 맛

인문 2021. 6. 13. 08:56

- 이케다 가쿠나에 박사와 스즈키 사부로스케 사장이 손을 잡고 만들어 낸 아지노모도는 단순히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니라 서구화를 이루고자 하는 꿈의 상징이었다. 서구의 과학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것이기 도 했으며, 위생적이고 영양이 풍부했다는 점에서도 서구화로 가는 길 이라고 믿겼다. 메이지유신 이후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일본에서 서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영양과 체력 문제, 그리고 병사들에게 줄 영양가 있는 식품문제를 해결해야 했다는 점도 아지노모도의 탄생에 한 몫했다. 
- 결국 아지노모도의 명맥을 미원이 그대로 이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우리의 입맛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맛의 제국을 미원이 계승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사이, 한국인들의 조미료 사용량은 크게 늘었다.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음식 소비량 또한 자연스럽 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외식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음식점들이 생겨났는 데 짧은 시간에 맛을 내기 위해서는 조미료의 사용은 필수적이었다. 편 리함도 편리함이었지만 사람들의 입맛이 이미 아지노모도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미원과 미풍의 전쟁은 1975년 다시다의 등장으로 막을 내린다. 다시다는 쇠고기와 해물로 나눠서 제품을 출시했으며, 천연 재료를 사용한다.
- 다시다가 나오면서 아지노모도와 미원으 로 이어지는 맛의 제국에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해물 다시다의 로고는 제일제당과 합작관계에 있던 아지노모도(옛 스즈키 상점)의 제품인 혼다시의 가다랑이 로고와 많이 닮았다. 쇠고기 다시다의 로고 역시 유사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화학조미료에 대한 거 부감이 생겨난다. 미국에서는 아지노모도를 대량으로 사용한 중국음식 을 먹고 구토와 어지러움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면서 1960년대부터 MSG 유해성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건강을 강조하는 시절이 되면서 '화학조미료'라는 타이틀은 '효율과 첨단' 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널리 퍼진 상황에서도 화학조미료의 사용량이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지는 않았다. 특히 음식점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 로 화학조미료를 포기하기 어려웠다. 미원 한 숟갈의 맛을 내기 위해서 는 비싼 재료들을 대량으로 사용해서 오랜 시간을 소모시켜가며 감칠맛 을 우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인건비와 재료비를 한 푼이라도 줄여야 경 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음식점들로서는 화학조미료가 주는 효율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또한 백 년 간에 걸쳐 대를 이어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화학조미료 의 맛을 대체하는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모험일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렇게 아지노모도는 오늘날에도 우리 곁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수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사람이 가지는 까다로운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를 뒤집어 얘 기하자면 일단 한 번 입맛으로 자리 잡게 되면 깊숙하게 뿌리를 내려 새 로운 전통이 된다는 의미도 된다. 덕분에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 하고 철수한 이후에도 일제가 손을 뻗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아지노모도 가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다. 정치가 음식의 전파와 이용에 얼마나 큰 영 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아보라면 바로 아지 노모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스즈키 상점이 다른 지역보다 많이 팔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굴렀던 조 선은 광복과 함께 일본이라는 지배 권력을 몰아냈다. 하지만 아지노모도 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밀수품으로, 미원과 미풍 그리고 다시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대한민국에 계속 남았고, 이윽고 우리의 입맛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일본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맛의 제국은 이제 우리의 것이 되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 조선으로 건너온 중국인들 중에는 상인뿐만 아니라 '쿨리'라고 불리 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음식이 필요했 다. 낯선 조선 음식들에 당장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택한 음식 이 바로 짜지앙미엔이었다. 조선으로 건너온 중국인 대부분이 산둥 출신 이었는데 짜지앙미엔은 바로 그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밀가루로 만든 면에다가 춘장을 비벼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고, 대파의 아랫 부분 을 춘장에 찍어서 반찬 삼아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값도 싼 편이었다. 
그래서 초창기 짜지앙미엔은 공화춘과 같은 식당이 아니라 손수레를 끌거나 지게를 짊어진 장사꾼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음식이 었다. 조선으로 건너온 화교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도 이런 음식들을 판매하게 만들었다. 가족이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시켜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조선 사람들이 짜장면만을 접했던 것은 아니었다. 산둥 지 역의 요리인 노채魯菜가 모두 바다를 건너와서 이 땅에 선보였다. 오늘날 우리에게 짜장면만큼이나 익숙한 라조기와 깐풍기, 팔보채 같은 것들이 바로 산둥의 요리들이다. 1880년대 한양에 중국 요리를 판매하는 이태주 점과 호떡을 파는 곳으로 보이는 복성면포방이 생긴 것도 이런 이유 때 문이었다. 이태주점 같은 경우는 숙박업도 겸해서 혼자 조선에 온 화교 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 1948년 산둥 출신의 화교 왕송산은 서울 용산구 문배동에 영화장유라 는 회사를 차리고 춘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사자표 춘장에는 기존의 춘장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캐러멜을 섞은 것이다. 그 러면서 춘장은 검은 색을 띄고 달콤한 맛을 내게 된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춘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짜장면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이후 짜장면의 운명은 화교들의 운명만큼이나 소용돌이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짜장면은 '청요리' 가운데 하나인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이미지는 광복 후에 극적으로 변한다. 이승만 정권과 이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지속적으로 화교를 탄압했다. 박정희가 의장으로 있던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얻고자 1962년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화교들을 겨냥한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아울러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시켰다. 당시 대한민국에 외국 국적자의 대부분이 화교라는 점을 감안하면 명백하게 그들을 노린 조치였다. 덕분에 화교들에게는 큰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연 회와 혼례 등을 치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작은 규모로 쪼그라들면서 한 때 외식의 꽃이었던 청요릿집들은 이제 동 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집'이 되었다.
대신 그로 인해 짜장면은 뜻하지 않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앞서 소개한 사자표 춘장의 등장과 함께 미국의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대량으 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쏟아져 들어온 밀가루는 수십만 톤에 달했지만 쌀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은 좀처럼 밀가루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이에 정부에서는 혼분식 장려 정책을 강력하게 펼쳐나간다. 쌀에 잡곡을 넣은 혼식과 밀가루 음식을 뜻하는 분식에는 쌀의 소비 량을 줄이고, 밀가루를 소비하게 만들려는 정부의 뜻이 담겨 있었다. 정 부에서는 학생들이 학교로 가져오는 도시락부터 음식점까지 강력하게 단속하며 혼분식을 준수하는지 감시했다. 설렁탕이나 추어탕에 국수를 넣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라고 추정된다. 
다른 음식점들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중국집들은 호황을 맞게 된다. 구호물자로 들어온 값싼 밀가루를 원료로 쓸 수 있는 짜장면이 있었 기 때문이다. 그에 발맞춰서 중국집들의 숫자 또한 급속도로 늘어나서 1960년대 후반에는 전국에서 4,000여 곳을 넘어섰다.


- 약이라는 핑계로 소고기 육포를 띄엄띄엄 먹던 일본인들이 천 년 넘게 가까이 하지 않았던 고기를 다시 먹게 된 배경에도 역시 권력의 작용이 있었다. 1872년, 일왕이 육식 금지령을 해제한 것이다. 강력한 서구 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고기와 우유를 배불리 먹어야 한다고 봤기 때 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 전인 1868년 일어난 메이지유신은 일본의 권력 구조를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 이처럼 고기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고기를 먹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덴뿌라와 커틀릿의 결합인 돈까스였다. 포르투갈을 통해 들어온 덴뿌라는 일본인들이 굉장히 좋아 하는 요리였다. 커틀릿은 프랑스 요리인 코틀레트 Cotelettes에서 유래되었 다. 코틀레트는 소나 양고기를 뼈채로 얇게 저며서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 빵가루를 입혀 튀기는 방식의 요리다. 영어로 커틀릿이라고 했는데, 물고기나 채소를 튀기는 덴뿌라와 재료만 다를 뿐 가공 방식은 상당히 비슷했다. 따라서 육식에 익숙지 않아서 약으로 먹을 정도의 일본인들도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커틀릿을 일본어로 발음하면 '가쓰레스'가 된다. 하지만 커틀릿이 돈까스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을 더 거쳐야만 했다. 우선 소나 돼지, 닭 같은 다양한 육재료들은 돼지고기로 통일되었다. 일본인들에게 처음 선보인 가쓰레스는 소로 만든 비프 가쓰레스, 돼지로 만든 포크 가쓰레 스, 닭으로 만든 치킨 가쓰레스로 나뉜다. 이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것은 포크 가쓰레스였다. 당시 돼지가 가장 구하기 쉽고 값이 쌌기 때문이다. 거기다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로 서는 가급적 뼈가 없는 고기를 써야만 했는데 포크 가쓰레스에 들어가는 돼지고기에는 뼈가 없었다.
- 포크 가쓰레스는 1895년 도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일본인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사가 안 돼서 파리를 날렸지만 인근에 사 는 외국인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포크 가쓰레쓰가 대세가 된 것은 20세기 초부터였다. 그러면서 몇 가지 변화 들이 추가되었다.
일단 가공 과정에서 포크 가쓰레스에 들어가는 고기가 커틀릿보다 두 툼해졌다. 고기가 두꺼워지면서 빵가루 또한 커틀릿보다 굵은 것으로 묻 혔다. 두꺼운 고기를 좀 더 오랫동안 익히고 식감을 좋게 만들려는 의도 였을 것이다. 버터를 녹인 프라이팬에 굽는 커틀릿과는 다르게 포크 가 쓰레스는 기름을 충분히 두른 다음 덴뿌라처럼 튀겼다. 이때 굵은 빵가루가 기름에 부풀어 오르면서 식감이 바삭해졌다.
포크 가쓰레쓰에 들어가는 소스 역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영국에 서 만든 우스타 소스에 간장을 가미했다. 함께 제공되는 음식들 역시 예 사롭지 않다. 처음에는 삶았다가 나중에는 생으로 제공된 양배추의 경우 아삭하고 시원한 느낌을 줌으로써 포크 가쓰레스의 기름기를 날려버렸 다. 거기에 밥과 미소시루를 제공해서 포만감을 극대화시켰다.
일본식으로 제공되는 포크 가쓰레쓰는 엄청난 고열량을 가진 음식이다. 일본의 통치자들이 바랐던 것처럼 하루 빨리 일본인들이 서양인들과 비슷하게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 돈까스는 서구문명을 받아들여서 그들과 같아지겠다는 근대 일본의 야망이 밑바탕에 깔린 음식이다. 천 년 넘게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국가를 서양처럼 발전시키겠다는 대의명분 아래 육식을 시작했다. 그렇게 돈까스는 우리의 짱장면처럼 일본에서 일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시험을 칠 때 미끄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미역국을 피하고 졸업식 때 짜장면을 먹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중요한 시험을 치기 전이나 운동 시합을 나가기 전에 돈까스를 먹는 풍습이 있다. '까스'가 승리를 뜻하는 '가츠勝)'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 경양식은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린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주머니 사정이 좋아진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외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양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뜬금 없는 곤경을 겪기도 한다. 
1970년대 초반 서울시가 돈까스의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려고 시도했 다. 소바가 메밀국수, 우동이 밀국수로 바뀌는 와중에 돈까스 역시 '포크 스틱'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하지만 결국 돈까스라는 이름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서울시의 행정명령 정도로는 반세기 넘게 사용되었던 이름 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돈까스를 팔던 경양식의 전성시대는 1990년대 접어들면서 한풀 꺾이 게 된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맥도날드와 KFC를 비 롯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왔고, 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 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기름에 튀긴 고기라는 돈까스의 아성 을 결정적으로 흔들어버린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 우후죽순처럼 들어 선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이들은 고급 레스토랑보다 싼 가격에 스테이 크를 비롯한 요리들을 제공해줬고, 통신사 할인 혜택이라는 공격적인 정 책을 펼치면서 시장을 장악해나갔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낡은 느낌을 주는 경양식은 더욱 쇠퇴하게 된다.
하지만 경양식의 쇠퇴와 더불어서 돈까스는 오히려 전성기를 맞이하 게 된다. 경양식당에서 빠져나와 돈까스 전문점과 기사식당, 분식집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소스를 비롯해서 부재료들을 공급해주는 곳들도 늘어 났고, 워낙 잘 알려진 음식인데다가 외국에서 들어온 요리라고는 생각되 지 않을 만큼 익숙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까스는 정통 한식집만 아니 면 어디에서 팔아도 어색하지 않았고, 찾는 사람들도 더욱 늘어났다.
나아가 한국 음식과의 조합을 통한 변형도 이뤄졌는데 뚝배기 돈까스 나 돈까스 찌개가 대표적이다. 기사식당에서는 돈까스와 함께 풋고추와 쌈장을 준다. 또 다른 일본 음식인 카레와 합친 카레 돈까스를 파는 곳들도 늘어났다. 매운 소스를 이용해서 새빨갛고 매운 돈까스를 만들었다는 것 또한 한국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중국인들이 모든 요리를 기름에 볶는 것처럼 인도인들은 모든 요리에 향신료를 뿌렸다. 마살라는 향신료를 넣어서 만든 일종의 소스로 인도 지방에서 재배되는 인디카 종의 쌀에 잘 어울렸고, 밀가루를 반죽해서 화덕에 구운 빵의 일종인 난에 찍어먹기도 편했다. 영국과 일본으로 건 너오면서 요리라는 개념이 더해졌지만 본래 인도의 커리는 음식에 곁들 이거나 찍어먹는 케찹 같은 소스나 고추장 같은 장에 가깝다. 다만 다양 한 향신료를 써서 강한 맛이 났기 때문에 유럽인들에게는 신기하게 느껴 졌던 것이다.
그리고 커리는 괴혈병에 시달리는 선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강한 향신료 덕분에 다소 상한 채소도 문제없이 먹을 수 있게 해줬고, 다른 재료들보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를 오가는 선원들이 자신들이 먹던 스튜에 넣는 것을 시작으로 커리는 영국에 발을 디뎠다.
공식적으로 커리를 영국에 가장 먼저 소개한 인물은 동인도 회사 직 원이자 훗날 인도 총독을 역임하게 되는 워런 헤이스팅스 Warren Hasing 였 다. 바다 건너에서 온 커리는 영국인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한 가지 문제 가 있었다. 커리에 들어가는 다양한 향신료들을 영국에서 구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그 재료들을 구했다고 해도 커리로 만드는 과정 자체가 꽤 복잡하고 낯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역시 자본이었다. 커리가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식품회사가 커리를 가루로 만든 파우더를 개발한 것이다.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커리는 영국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마치 우리의 짜장면처럼 말이다.
- 인도에서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변신한 커리는 다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카레로 또 다시 변신을 한다. 영국인들이 커리 를 먹은 것이 괴혈병 때문이었던 것처럼, 일본 역시 병사들이 앓고 있던 각기병 때문에 카레를 먹기 시작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쳤다. 후진적이고 낙후된 아시아에서 벗어나 문명화된 서구를 본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서구화에 대한 노력 중에서도 일본이 가장 급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군대였다.
- 1969년 오뚜기의 전신인 풍림상사가 국내 식품회사로서는 처음으로 분말카레를 개발해 본격적으로 판매하면서 한국인들의 카레 사랑은 더 욱 깊어졌다. 이제 카레는 가난한 고학생이 침을 흘리면서 바라봐야 하는 환상의 요리에서 혼분식의 상징이자 누구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요리가 되었다.
카레는 1981년 식품회사인 오뚜기가 전자레인지에 간단하게 돌려서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인 3분 카레를 내놓으면서 한국인들에게 더욱 가까워졌다. 재료를 넣고 볶은 다음에 카레 가루를 넣어야 하는 과정까지 생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맞벌이와 1인 가정이 늘어나면서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의 수요가 늘어났고, 한 끼를 간단하게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과 함께 먹던 카레 같은 요리를 선택했다. 그렇게 3분 카레와 같은 레토르트 식품 또한 카레가 가정식으로 정착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
카레의 대중화는 카레데이로 이어진다. 빼빼로를 먹는 빼빼로데이나 짜장면을 먹는 블랙데이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매년 5월 14일은 노란 옷을 입고 카레를 먹는 카레데이다.


- 나가사키에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통해 서양 빵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밀가루를 발효시켜서 굽는 빵은 쌀밥을 좋아하는 일본인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스프나 스튜와 같이 먹거나 버터를 발라서 먹었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그런 것들 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 사람에게 빵이란 반찬 없는 맨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기무라 야스베는 서양 사람들이 먹는 빵에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뭔가를 넣는다면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 믿었다. 그가 생각해낸 해 답은 단팥이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이미 수백 년 동안 단팥을 넣은 만두인 만쥬를 오랫 동안 먹어왔다. 1341년, 원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류잔 선사의 곁에 임정인林剩이라는 중국인이 있었다. 일본에 온 그는 사찰에 머물면 서 중국에서 먹던 만두를 빚어서 팔았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육식 금지령이 시행 중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처럼 고기를 만두 속에 넣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고기 대신 일본인들이 좋아하던 단팥 을 넣어서 만두를 빚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만두는 다들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단팥만두가 맛있다는 소문은 일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호기심을 느낀 일왕은 임정인의 단팥만두를 먹어보고는 크게 감탄해 궁 녀를 보내서 혼인을 시키기까지 했다. 이후 일본 왕실의 인정까지 받은 단팥만두인 만쥬는 일본의 전통과자인 화과자로 이어지게 되면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 이즈모야에서 만들었던 것과 이성당이 만드는 단팥빵은 재료부터 만드는 방식까지 여러 모로 다르다. 그럼에도 단팥빵이 근대를 지나 현대 까지 이어진 것은 일본을 통해 시작된 서구화와 근대화가 우리에게 정 착되어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성당 외에도 1946년 태극당을 시작으로 1956년 대전의 성심당과 같이 전국 곳곳에 제과점들이 생겨났다.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쌀을 아끼기 위해서 정부에서 취한 혼분식 장려 정책의 영향으로 제과점들은 호황을 맞는다. 거기다 젊은 청춘 남 녀들의 데이트 장소로 각광을 받으면서 제과점과 그곳에서 파는 단팥빵 은 우리 곁에 완전하게 자리 잡는다.


- 문헌 기록들을 보면 김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였고, 조선시 대에 들어서부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종이처럼 펴진 형태의 김을 먹었다.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을 보면 김을 가리켜 '해의海衣'라고 하면서 바다에서 나는 이끼 같은 것을 종이처럼 펴서 먹는다고 소개한다.
이끼 형태의 김을 굳이 번거로운 가공 과정을 거쳐서 종이처럼 만든 이유는 단 하나, 밥에 싸서 먹기 위해서다. 그 이전에는 채취한 그대로 간 을 맞춰서 반찬으로 먹는 형태였지만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밥 에 싸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조선 사람들이 유독 좋아했던 상추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은 해의 말고도 바다의 이끼라는 뜻의 '해태海者’ 라고도 불렸으며 여러 이름으로 불린 만큼 밥에 곁들이는 반찬으로 흔하게 사용되었다.
- 순조 때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김을 어떻게 먹었는 지가 상세하게 나온다. '세시기’란 계절의 변화에 따른 풍습들을 기록했 다는 뜻으로, 《동국세시기》는 조선 후기 풍습사를 연구하는 데 아주 중 요한 자료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귀밝이술이나 부럼 같은 먹는 것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복쌈이다. 정월 대보 름이 되면 약밥을 만들어 먹고, 붉은 팥죽을 쑤어먹거나 부럼을 깨물면 서 일 년 동안 병치레가 없기를 기원한다. 이때 채소 잎이나 김에 밥을 싸 서 먹기도 하는데 이것을 복쌈이라고 부른다. 이 방식 말고도 김을 잘게 부숴서 밥과 함께 먹거나 주먹밥 형태로 뭉쳐서 먹기도 했다. 오늘날의 김밥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김에 밥을 싸서 먹는다는 바탕 자체는 같다.
- 대량 생산된 김은 초밥과의 만남을 통해 '노리마키海苔卷' 라는 새로운 요리로 나아간다. 노리마키는 초밥에서 비롯된 일종의 김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초밥의 시작은 보관용이었다. 물에서 잡은 생선을 오랫 동안 보관하기 위해 뱃속에 밥을 넣어 상하지 않도록 처리한 것이 초밥 의 기원이다. 나레 스시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원래 생선만 먹고 밥은 버 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밥도 먹기 시작했다.
이후 도쿠가와 막부 시절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스시司의 전성시대 가 열린다. 이때 다양한 스시들이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생선이나 해산물 대신 김을 이용한 노리마키다. 따라서 노리마키 또한 스시처럼 밥에 식초를 섞는다. 노리마키를 마는 대나무 발 역시 스시를 말 때 쓰는 것이 다. 대나무 발로 감아서 만든 이 독특한 스시는 굉장한 인기를 끌게 된다. 고급 요릿집부터 길거리 좌판까지 순식간에 퍼진 노리마키는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분화되었다.
- 노리마키의 영향을 받은 김밥은 격동기 한국 현대사와 함께한다. 이재민들의 구호물품으로 김밥이 등장했고, 1970년 일본 JAL 항공의 보잉727기가 적군파에게 공중 납치되어서 김포공항에 착륙했을 때에도 승객 과 인질범들에게 김밥이 제공되었다. 1970년대 들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도박단들 또한 밥 먹을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김밥을 먹었다.
그리고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김밥 요리법에 변화가 생긴다. 박고지 대신 우엉이 들어가고, 고기와 어묵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 대부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더욱 다양 해진다. 이처럼 점점 더 풍성해지는 김밥의 속재료는 한국인들의 형편이 시간이 지날수록 풍요로워졌음을 상징한다. 그리고 재료는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풍부해졌지만 프랜차이즈 김밥 전문점 및 편의점 삼각김밥의 등장과 더불어서 소풍 때 주로 먹던 추억의 음식은 흔하고 대중적인 음 식으로 그 의미가 다시 바뀐다. 그렇게 김밥은 오늘날 분식집의 단골 메 뉴가 되었고, 노리마키의 그림자를 벗어버리면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음식이 되었다.
- 국풍81 이후 충무김밥은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행사 이후 신문에서 여름 휴가지로 통영과 인근의 한려수도를 소개할 때 항상 별미로 소개되면서 충무김밥은 더욱 유명세를 탄다. 충무김밥의 인 기가 높아지자 처음 만들어서 판매했던 세 할머니는 각각 음식점을 따 로 차렸고, 뒤따라 다른 사람들도 충무김밥을 판매한다. 그리고 1980년 대 중반에는 서울에도 충무김밥 전문점이 생겼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도 판매되기 시작한다. 노리마키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을 타면 서 김복쌈에 익숙했던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면 충무김밥은 어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지역 특산품이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알려진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 서양에서는 빙수와 비슷한 음식으로 셔벗Sharhet이 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로 원정을 떠났을 때 더위에 지친 병사들을 위 해 눈과 얼음을 음료수와 함께 동굴에 넣어두고 차갑게 식힌 다음 나눠 먹 었던 것이 그 시작으로 전해진다. 이후 우리에게는 로마 시를 불태운 폭군 으로 익숙한 로마의 네로 황제가 알프스의 만년설을 포도주에 적신 과일 과 함께 먹었다고 한다.
이처럼 얼음을 먹으며 더위를 이겨내던 전통은 중세에 접어들어 변화를 맞는다. 11세기경, 십자군이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중동을 침략하면서였다. 당시 유럽보다 선진적이었던 중동에는 신기한 문물 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먹던 샬바드였다. 십자군에 참전한 유럽인들은 이 신기한 샬바드에 매혹되어서 제조법을 고향으로 가져왔다. 이후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포도주와 주스를 얼려 서 먹었는데 곧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소르베borhet 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정찬 코스의 마지막 디저트로 자리 잡았다.
중국에서는 약 삼천 년 전부터 눈과 얼음에 과일즙을 섞어서 먹었다. 고 전해진다. 당시대 때에는 시장에서 얼음이 든 음료를 팔았고, 송宋시 대 때에는 얼음에 꿀과 다양한 과일들을 넣어서 마셨다. 특히 밀사빙 이라는 음식은 얼음을 간 다음 꿀과 팥을 넣어서 만든 것으로 오늘날의 팥빙수와 유사한 음식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일본 역시 오래전부터 얼음을 이용해 더위를 이겨냈다. 일본도 우리 나라의 석빙고 같은 얼음 저장시설을 예전부터 갖추고 있었다. 11세기 일본 궁궐의 모습을 담은 《마쿠라노소시子》를 보면 한여름에 얼음을 칼로 갈아서 쉽게 녹지 않도록 금속 그릇에 담고 칡즙을 뿌려서 먹었다 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얼음을 먹기 쉽게 칼로 갈았다는 점과 다른 맛을 내기 위해 칡즙을 뿌렸다는 점은 빙수 혹은 팥빙수의 원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조선이나 일본, 중국에서 한여름의 얼음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값비싼 상품이었다. 따라서 얼음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었다. 
-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은 오랜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개항과 개방 정책을 취한다. 그러면서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이고 시장경제를 발전시켰으며, 이는 다시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해인 1869년, 오늘날 요코하마에 카키코오리를 파는 상점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대패로 얼음을 갈아서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오늘날 오키 나와인 류큐流球에서 가져온 설탕 시럽을 뿌려서 내놨다.
1870년 독일에서 얼음을 만드는 냉동 기술이 개발되었고, 1887년에 는 손으로 돌려서 얼음을 가는 수동식 빙삭기가 개발되었다. 1895년 청 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타이완을 손에 넣게 되면서 열대 과일들을 비 교적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설탕 시럽 정도만 올라가던 카 키코오리에는 망고, 바나나와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들로 만든 시럽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 얼음과 설탕을 구하기 쉬워진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빙수집 외의 가게들 에서도 빙수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신문을 보면 여전히 팥 빙수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팥빙수'라는 표현은 그보다 더 시간이 흐른 197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후 어느 순간부터 빙수라는 말이 사라지고 팥빙수로 대체된다. 대략 이때부터 빙수에 단팥 을 올려서 먹은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얼음과 과일 시럽으로 만드는 일본의 카키코오리와는 달리 한국의 빙수는 단팥이 잔뜩 올라간 팥빙수로 변신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화사나 생활사 전문가들은 씹는 맛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민족 특유의 입맛을 그 원 인으로 꼽는다. 단팥은 달콤하기도 하고 씹는 감촉을 충족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차츰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과일 시럽을 대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커피를 처음 본 조선 사람들은 검고 진한 색깔과 진한 냄새를 접하고 탕약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서양에서 온 탕약이라는 뜻의 '양탕국'으로 불 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커피는 조선인들과 쉽게 가까워지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이미 가마솥에서 얻을 수 있는 숭늉이라는 훌륭한 음료가 있 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커피가 우리 곁을 비집고 들 어올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음료의 고향이 바로 서구였기 때문이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것을 시작으로 서구 열 강과 잇달아 조약을 맺었다. 그러면서 서구 열강들의 강력한 힘과 마주 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과 스스로의 차이를 직시한 다음 한반도에서 전 통과 역사는 삽시간에 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되었고, 서구의 것은 뭐든 지 좋은 것이니 서둘러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커피는 그런 서구화와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넘어왔다.
- 1970년부터 한국에서 도 자체적으로 인스턴트 커피가 생산되기 시작했고, 1976년에는 세계 최 초로 설탕과 프리마까지 한꺼번에 들어간 인스턴트 믹스커피까지 나오 면서 커피는 마침내 '외제 수입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다.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이 시기에 가정에서 가마솥이 사라지 는 현상과 맞물리면서 커피의 소비량이 늘었다고 얘기한다. 우리나라 전 통 가옥의 아궁이에 걸어놓은 가마솥은 크고 무거워서 따로 빼서 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물을 붓고 끓이는 방법으로 세척했고, 그 과정에서 생 긴 숭늉을 식사 후에 차처럼 마셨다. 한국의 전통 밥상은 코스별로 요리 가 나오지 않고 반찬부터 입가심까지 한꺼번에 한 밥상에 모두 놓고 먹기 때문에 디저트라는 개념이 따로 없었다. 구수한 숭늉은 식후에 마시 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경제가 발전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마솥 대신 압력밥솥이나 전기밥솥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가정에서는 더 이상 숭늉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대체해야 할 만한 식사 후 마실 것을 찾아 야 했다. 여러 가지 음료들 중에서 낙점된 것이 가장 대중적인 음료인 커 피다. 때마침 국내에서 생산이 되면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물에 타서 바 로 먹을 수 있었고, 다방이나 회사에서 자주 마셔왔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 식사 후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은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 88올림픽이 열릴 즈음 한국에서는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던 원두커피가 다시 찾아온다. 물론 외국에서 생활했던 유학파나 부유층들은 이전부터 원두커피를 마셔왔지만 다시 대중에게 널리 소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었다. 그리고 19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한국 1호점을 내면서 본 격적인 원두커피 시대가 열린다.
이후 한국 커피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데, 여전히 사랑받 고 있는 인스턴트 믹스커피에 더해 커피 전문 체인점들이 내놓은 원두커 피가 새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고종이 배우자를 잃 고 아라사 공사관으로 피난 온 슬픔을 달래고자 마셨던 쓰고 진한 양탕국이 한 세기가 지나면서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일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세계 평균의 세 배를 넘을 정도가 되었다. 바야흐로 '커피 공화국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야만 한다. 식민지가 되면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고, 식재료 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당위가 존재해야 한다. 커피는 대한제국 시절부터 일제 강점기 당시까지 서구 열강을 상징하는 음료였다. 이에 따라 커피를 마셔야만 문명인이고 서구화의 길을 걷 는다는 환상이 언론을 통해 심어지면서 너도나도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지만 국산화가 되면서부터는 가 정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커피가 가지 고 있는 그 불가사의한 씁쓸한 맛에 한국인들은 서서히 중독되었다.
진한 원두커피는 물론 인스턴트 믹스커피에서조차 느낄 수 있는 그 정체불명의 쓴 맛에는 서구 열강을 좇고자 했던 '모던 뽀이'들의 욕망과, 잦은 야근에도 정신을 붙들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고단함과, 다방에서 얼 굴을 붉히며 토론했던 장발 대학생들의 열기와, 여전히 남아 있는 서구에 대한 희미한 동경을 담은 낭만이 모두 녹아 있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의 쓰임  (0) 2021.06.20
다산처럼 읽고 다산처럼 써라  (0) 2021.06.13
일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씁니다  (0) 2021.05.30
지능의 역사  (0) 2021.05.30
위험한 나비효과  (0) 2021.05.30
Posted by dalai
,

- 스피드팩토리로 불리는 아디다스 독일 신발공장은 생산직 노동자가 없는 무인 로봇 공장이다. 전통적 공장에서 400명의 생산직이 하던 일을 로봇 공장에서는 열 명의 로봇 오퍼레이터가 처리한다. 노동 절약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신발 생산의 혁명이다. 그런 데 흥미로운 점은 이 독일 공장의 생산비가 중국, 인도네시아의 전통적 공장들보다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절약된 인건비 이상으로 로봇이 비싸기 때문이다.
사실 스피드팩토리의 목적은 생산비 절약이 아니다. 이 공장의 역 할은 3D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신제품을 소량 생산해 시장에 빨리 내 놓는 것이다. 아시아 공장들에서는 신발 한 켤레 생산에 두 달이 걸리 고, 또 소비지로 이동하는 데 두 달이 걸린다. 하지만, 독일 스피드팩토리 공장에서는 이 모든 과정이 한 달도 걸리지 않는다. 이 공장에서 는 디자인만 넣으면 신발이 완성된다. 하지만 가격은 일반 신발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그래서 이 공장이 타깃으로 삼는 소비자는 일반 대 중이 아니라 최신 제품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른바 얼리어댑터들이다.
호사가들은 아디다스의 스피드팩토리가 아시아의 노동집약적 공장들을 머지않은 미래에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장담과 달리 찬찬히 따져보면 스피드팩토리 같은 공장이 기존 공장들을 대체할 가능성이 당장은 크지 않아 보인다. 현재 기술로는 로봇 투자가 수익률 높은 투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8년 말 독일과 미국의 로봇 신발공장 생산량은 아디다스 전체 생산량의 0.2퍼센트에 불과했 다. 로봇이 비싸다 보니 고가의 사치성 신발만 생산 중이다. 그런데 사 치성 신발은 대량으로 판매되기 어렵다. 연 4억 켤레의 대중용 신발을 생산하는 아디다스 공장을 사치재 공장으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로봇 공장으로 대중용 신발을 생산하려면 당연히 로봇 가격이 충 분히 싸야 한다. 더구나 나이키 같은 경쟁사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생산 을 시작했을 때도 이전보다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로봇 공장이 기존 공장을 대체할 수 있다.
- 이윤율 저하가 이어지는 것은 기술진보에서 기계의 가격 자체를 낮 추는 기술진보, 즉 노동을 절약하면서 동시에 기계도 절약하는 기술진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노동과 기계를 동시에 절약할 정도로 기술이 크게 진보하는 시기를 산업혁명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말이 붙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런 기술진보는 어렵기 때문에 예외 적으로만 발생한다.
- 생산수단 소유자가 생산물을 차지하는 소유법칙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계급 지배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농업 경제의 봉건 질서에서는 왕이나 귀족이 토지를 소유하면서 무력으로 소작농에게 소작료를 걷었다. 그리고 이런 소유자 계급이 지배하는 질서는 봉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탄생할 때도 사라지지 않았다. 계급 지배는 형태만 바꿔 지속됐다. 토지를 이용한 농업경제가 기계를 이용 한 산업경제로 바뀌었고, 위계적 신분제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로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생산수단 소유자가 노동을 지배하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생산물 소유자는 생산을 이어가기 위해 생산과정에서 소모된 자원 들을 복구시켜야 한다. 기계의 물리적·기술적 마모를 복구하고, 또한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유지 ·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자는 회계에서 말하는 감가상각비이다. 후자에 필요한 비용은 일반적으로 임금에 포함된다.
그런데 생산물 소유자는 이런 복구비용을 지불하고도 생산에 지출된 노동 중 일부를 얻는다. 이를 잉여노동이라고 부른다. 기업 회계로
말하면, 기업들은 매출에서 감가상각비를 공제한 순매출을 얻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인건비를 공제해 이윤profit을 얻는다. 이 이윤의 본질이 바로 잉여노동이다.
그렇다면 잉여노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간단히 말해 무급노동unpaid labor(부불不拂노동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이 바로 잉여노동이다. 
- 기술진보는 생산성을 상품소비로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제도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 20세기 초 포드자동차는 노동생산성을 일곱 배 높였는데, 만약 그 자동차를 구매할 소비자가 없었다면 공장의 상당 부분 이 가동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즉, 높아진 생산성만큼 판매가 늘지 않 으면 유휴 자본이 증가해(가동률이 저하돼) 자본 절약 효과가 상쇄된다. 생산성을 실현하기 위해 유효수요에 초점을 맞췄다. 케인스주의는 정 부가 소비와 투자에 직접 나서도록 권고했고, 금융규제를 통해 이윤 이 금융자산이 아닌 실물 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했다. 미국에서는 보수 정당의 대통령마저 “우리 모두는 이제 케인스주의자다” 라고 선언했다. 20세기 초중반 케인스주의 정책은 효과를 발휘했다. 기업은 더 많은 기계를 구매했고, 낮은 실업률로 노동자의 소득과 소비 역시 증가했다. 2차 산업혁명과 케인스주의 정책 덕에 인류 역사상 가장 높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혁명의 효과가 점차 사라지면서 편향적 기술진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 수 백 명의 노동자가 용접봉을 들고 일하던 자동차 차체 공정은 1980년 대 후반 로봇으로 자동화되었다. 엄청난 노동 절약이었다. 그럼에도 자동차 기업들의 투자 자본 수익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자동차 기업들의 평균자산수익률(순이익을 기업이 보유한 총자산으로 나눠준 비율)은 1960년대까지 두 자릿수였지만 대규모 자동화가 이뤄진 1990년대 이후에 는 한 자릿수로 하락했다. 노동을 절약했지만 자본을 너무 많이 소모 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런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다. 미국 경제 전체의 이윤율도 이때부터 지금 까지 하락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정보통신혁명으로 불리는 과학기 술과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제도의 변화가 이윤율을 잠깐 반등시키는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이윤율이 다시 하락하고 있다.
- 기술들이 자본을 절약했다면 자동차 기업들의 자산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상승했어야 하는데, 그런 상승은 관측되지 않는다. 2000년대에 수 익성을 개선한 기업들이 일부 있었으나, 이는 기술변화가 아니라 수익 성 낮은 공장들을 폐쇄하는 구조조정 덕분이었다.
국민경제 전체 지표로 봐도 최근의 자동화 기술이 노동과 자본을 동 시에 절약하고 있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 의 경제학자 제라르 뒤메닐Gerard Dumenil과 도미니크 레비Dominique Levy의 추계에 따르면, 자동화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경제는 2004년 이후 자본생산성이 하락하고 노동생산성 상승 속도도 둔화했다. 자본생산성은 노동자 1인당 생산액(노동생산성)을 노동자 1인당 자본의 양(자본집약도)으로 나눈 것으로, 투자된 자본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노동생산성을 높이는지 보여준다. 편향적 기술진보에서는 자본생산성 증가율이 마이너스이다. 중립적 기술진보에서는 자본생산성 증가율이 플러스이다. 뒤메닐은 편향적 기술진보로 자본생산성이 장기간 하락하는 시기를 마르크스의 궤도 the trajectories a la Marx라고 부른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Robert J. Gordon도 1870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의 총요소생산성 추이를 분석해 비슷한 결론을 내놨다. 경제학에서 총요소생산성은 기술혁신을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을 의미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2004~2014년 총요소생산성은 연평균 0.4퍼센트 증가에 그쳤다. 2차 산업혁명 이후인 1920~1970년 1.9퍼센트는 물론이거니와 정보통신혁명 시기로 불리는 1994~2004년 1.0퍼센트보다도 낮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이야기되는 기술혁신이 생각만큼 대단 치 않다는 것이다. 고든은 2000년대 기술혁신이 예전만큼 대단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누구도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지만, 미래의 모습이 1994~2004년 의 닷컴 10년을 닮을지 최근의 2004~2012년을 닮을지 정도는 물을 수 있다. ... 업무 관행이 1994~2004년 빠르게 전환한 이후 변화의 속 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 증권거래소 일일거래량, 창업률, 제조업 생산능력의 증가, 순투자 비율, 컴퓨터의 가격 대비 성능의 향상 속도, 컴퓨터 칩의 밀도 증가율 등 모든 점에서 1990년대 말에 최고로 활성 화되었다가 최근 10년 동안 성장속도가 급격히 둔화되거나 정체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한 것이 200년 이상 계속되었고, 컴퓨터가 인간의 일을 대신한 것이 50년 넘도록 계속되어 왔다는 점이다. ... 최근 의 10년을 근거로 지금이나 앞으로나 '오십보백보일 것이며 큰 변화 가 없을 것이다.”
-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 때 서민들은 엄청 난 피해를 입었다. 반면 천문학적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들은 금융위기 와중에도 보너스 잔치를 벌였고, 서민의 생활고와 무관하게 경영위기 를 탈출했다.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해 2011년 9월, 월스트리트를 점 거하자는 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미국 전역에서 발발했다. 유럽 에서도 그리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기업의 탐욕과 불평등 을 비판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났다. 경제학계에서도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2010년 고든은 미국의 성장이 불평등의 역풍으 로 인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2012년에는 노 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Joseph Stiglitz가 기업들의 지대추구가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3년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을 출간해 소득 불평등을 세계적 이슈로 부상시켰다. 그는 세계가 이대로 가면 자본 상속이 가장 중요한 부가 되는 세습자본주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논란 와중에 발표된 《제2의 기계시대》, 옥스퍼드대학교의 일자 리 보고서, 세계경제포럼의 4차 산업혁명론 등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기술 책임론이었다. 불평등이 부자에게 유리한 제도 탓이 아니라 기술변화 때문에 발생한 필연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기업 측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들은 이런 보고서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연일 대서특필했다. 4차 산업혁명론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배경에는 불평등의 책임을 둘러싼 기업 측의 선전이 분명 있었다.
- 이윤으로 자사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이윤이 지대rent인지 아닌지를 파악해보기 위해서다. 좁은 의미의 지대는 토지 소유권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뜻하지만, 요즘은 이전소득을 광의의 지대로 부른다. 지대는 누군가의 이득이 누군가의 손해가 되는 제로섬게임에서 발생하는 소득이다. 그런데 제로섬게임에서는 자기 자신과 거래할 수 없다. 자신의 플러스가 자신의 마이너스가 되니 말이다. 이윤으로 자사 상품을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그 이윤이 지대라는 의미다. 요컨대 디지털 기업의 이윤은 그 본질이 지대다.
- 경제성과 측정을 둘러싼 혼란은 경제학이 스스로의 계급성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학은 경제성과를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효용의 증감으로 정의하고, 그 효용의 증감을 상품가격으로 측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상품경제의 목표는 효용의 증가 이전에 자본가의 이윤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상품경제는 소비자 효용이라는 중립적 목표를 위해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이라는 계급적 목표를 위해 조직된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던컨 폴리Duncan Foley는 신경제로 불리는 디지털 경제의 핵심이 기술에 대한 혁신이라기보다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을 이전받는 지대추구 방법의 혁신이라고 꼬집었다. 회계감사 기업인 피더블유씨PwC가 평가한 2015년도의 세계 100대 기업을 보면, 40퍼센트 가량이 지적재산권, 독점, 금융, 천연자원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었다.14 이런 기업들의 성장은 기술적 찬사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 성장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술혁명과 경제성장 정체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현재 상태도 이런 지대추구가 영향을 미친 결과다.
- 짐바브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산업 기반이 무너지며 2000년대 내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였다. 토지개혁에 실패해 식량 생산이 절반으로 줄었고, 제조업 가동률도 20퍼센트 미만으로 하락했다. 실업률은 80퍼센트가 넘었다. 광물 수출로 얻은 외환을 식량 수입에 사용해 가까스로 경제를 유지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광물 수출이 인프라 파괴로 감소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광물 가격마저 폭락하자 결국 경제가 붕괴하고 말았다. 외화 부족으로 식량 을 수입하지 못해 식량 가격이 폭등했고, 이에 연관된 다른 상품들의 가격도 함께 상승했다. 정부는 식량을 비롯한 공공 물품을 사기 위해 중앙은행에 국채를 넘기고 화폐를 받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통되는 화폐량이 폭증했다. 17 화폐 발행을 남발해 통화가치가 폭락한 것이 아니라, 상품가치의 폭등에 대응해 화폐량이 같이 폭증했다는 것이다. 
즉, 화폐량은 짐바브웨 사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통화수량설의 역사적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혼란도 마찬가지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물가 지수와 통화량 지수가 비슷한 추이로 1조 배 증가하는 그래프를 그려놓고, 이 를 화폐수량설의 직접적 증거라고 설명한다. 교환수단인 통화가 마구 발행되어 통화가치가 폭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인과관계가 뒤집어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전쟁배 상금을 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승전국들은 배상금으로 자기 나라의 전쟁 적자를 해결하려고 했다. 독일 정부는 금을 얻기 위해 수출을 늘려 야 했지만, 생산시설 상당 부분이 전쟁으로 파괴돼 생산량은 국내 수요조차 충족하지 못했다. 휴전 직후 독일은 금 준비금을 비롯해 철도, 차량, 선박 같은 장비들을 모두 승전국에 빼앗겼고, 심지어 석탄도 무 상으로 송출해야 했다. 승전국 국민의 정서는 “독일놈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La Boche payera!” 였다. 1921년 3월 독일이 승전국들의 예비 요구사항 일부를 준수하지 못하자, 연합국 군대는 뒤셀도르프, 뒤스부 르크 등의 라인강 동쪽 도시들을 즉각 점령했다. 1923년에는 루르 탄 광지역도 점령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상품 부족으로 물가가 치솟았 고, 정부는 공공물품 구매와 배상금으로 쓸 금을 확보하기 위해 화폐 발행을 늘렸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역시 화폐량의 증가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는 것이다.
화폐수량설은 상품가격이 오르는 원인을 항상 화폐수량이 증가한 데서만 찾는다. 이렇다 보니 화폐수량설을 강령으로 삼은 통화주의 경 제학자들은 화폐긴축을 인플레이션에 대한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 기도 한다. 하지만 짐바브웨나 바이마르 독일 시기의 혼란에서 본 것 처럼, 상품가격 상승의 원인을 화폐수량 변화에서만 찾는 것은 절반의 진실 그리고 절반의 거짓이다. 짐바브웨에서 화폐를 발행하지 않았더 라도, 어차피 생필품 부족과 중앙은행 자산의 부실로 화폐 시스템이 붕괴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경제는 1925년 즈음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는데, 이는 긴축이 아니라 1924년 미국의 도즈 계획Dawes Plan에 따라 배상금 징수 정책이 완화 됐고, 미국이 독일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한 덕분이었다.
- 그러면 왜 우리나라는 국내 시민이 아니라 굳이 미국 시민의 노동에 의존해 화폐를 발행하고 있을까? 1990년대 중반까지는 우리나라 중 앙은행도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채권으로 주요 자산을 구성했다. 1995 년까지도 한국은행 자산의 60퍼센트 이상이 국내자산이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외환위기 직후부터 외국증권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IMF 관리가 끝난 2002년에는 한국은행 자산의 90퍼센트가 국외자산으로 채워졌다. 외환위기가 한국 화폐 제도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화폐의 불안정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외환위기는 대외 결제수단인 달러 부족으로 시작됐고, 이후 정부 지불능력과 국민경제 미래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국민경제의 화폐 가치는 정부의 지불능력, 즉 미래의 국민경제에 대한 신뢰에 의존한다. 외환위기는 원화의 가치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와 화폐위기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 한국의 화폐는 자국 시민의 노동이 아니라 달러에 의해 그 가치가 유지되며, 국내에서 달러를 가져오는 핵심 주체는 수출기업이다. 국가주권의 한 요소가 화폐주권이라면 한국은 제대로 된 주 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셈이며, 보편적 등가물로서 화폐를 만드는 것 이 주권자의 역할이라면 한국사회에서 주권자 역할은 시민보다도 수 출기업이 하는 셈이다. | 이런 화폐의 식민성은 외환위기 이후에도 한국 원화가 지속해서 불 안정해지는 원인이다. 한국은 환율 변동성이 선진국 사이에서도 가장 큰 나라다. 2009년이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한국은행은 GDP의 20 퍼센트에 달하는 20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수출이 급감하고 달러 자산이 줄자 국내외 언론에서 “제2의 외환 위기”가 언급될 정도로 외환시장이 요동쳤다. 미국과 한국이 상대국에 화폐를 대여해주는 한미통화스와프를 체결하지 않았다면 정말 제2의 외환위기가 발발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정부가 재정적자나 국가채무에 민감한 이유도 화폐의 이 런 불안정성 탓이다. 우리나라는 자국 화폐 가치를 자국 국채로 지지 하지 못할 정도로 정부의 지불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지불할 빚이 늘면 시장이 과민반응을 한다.  2019년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퍼센트로, OECD 평균 110퍼센트나 주요 7개국 G7 평균 120퍼센트보다 한참 낮다. 이런 수치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늘려 사회복지를 확충 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미국, 일본, 유로국가들처럼 오랜 기간 정부 신뢰를 바탕으로 자국 화폐를 세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나라들이다. 한국과 비슷하게 무역비중이 높고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들, 예를 들어 스웨덴, 호주, 대만 등은 국가채무가 50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 한국의 치명적 약점은 일본과 달리 가계부채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많다는 건 국내 은행들의 자산이 가계부채로 채워진다는 뜻이다. 가계부채 비율이 높을수록 은행이 정부에 빌려 줄 자산이 부족해진다. 2019년 일본은 가계부채 비율이 GDP 대비 60 퍼센트대인 데 반해, 한국은 100퍼센트에 달한다. 은행들이 가계에 물 려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선진국 중 최고이다. 참고로 국채 구 매의 또 다른 핵심인 국민연금의 경우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본격적 으로 연금지출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기금이 바닥난다. 정부가 돈을 빌 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연금 적자를 채워야 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 성과급은 직장 내 '갑질'을 종사자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임금 체계다. 성과급은 임금총액을 두고 종사자들이 서로 경쟁하게 만들고, 기업이 정해놓은 성과에 도달하기 위해 종사자 스스로 고강도 장시간노동을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기업 내 갑질은 이런 임금체계에서는 '성과 평가'라는 숫자로 포장된다. 물론 성과의 보상은 실제 지출한 노동보다는 항상 적다. 이윤이 존재하는 한, 제대로 된 성과 보상이라는 것은 허상일 뿐이다.
-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서유럽 노동운동에서 정착된 맥락은 한국과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자. 유럽 노동조합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전국적, 산업적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전략적 경로로 주 장했다. 예로 스웨덴 노총은 1940년대 이후 “대기업 볼보의 선반공이 나 영세기업의 선반공이나 기업이 달라도 하는 일이 같으면 임금이 같 다.”라는 원칙을 천명하며 기업을 넘어선 전국적 임금협약을 체결했 다. 동일임금의 범위를 기업이 아니라 비슷한 일을 하는 노동자 전체 범위로 설정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노동이 동일한지 아닌지도 기업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에 의해 규정된다.
이때 노동조합이 정하는 동일노동 집단들 사이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고와 최하 차이가 두 배를 넘지 않는다. 격차 가 크지 않다 보니 정교하게 동일노동들을 구별할 이유도 없다. 임금협약에서 강조한 것은 어떤 일을 하던 간에 사회가 누리는 풍요는 사 회적 분업을 통해 노동자가 함께 생산한 것이라는 연대의 원칙이었다.
즉, 노동조합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조한 것은 임금 차이의 공정성 이나 고임금 추격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풍요의 사회적 성격과 임금의 연대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조합이 임금 결정의 주도권 을 쥐기 위해서였다. 노동조합이 임금 결정의 주도권을 가지면 당연히 노동자 간 격차는 줄고, 그만큼 경쟁도 약해진다. 그런데 서유럽 전통과 달리 한국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기업 내의 고임금 추격 전략에 주로 이용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 임금의 사회성과 연대성을 설득하지 못하 는 것이 핵심 이유다. 같은 노동조합에서도 최저임금인 연봉 2,000만 원과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연봉 1억 원의 격차를 버젓이 내버려 두 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현실이다. 심지어 공공부문 정규직 조합원 일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근거로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하 는데, 이들은 자격증이나 공채시험이 우월적 가치의 노동을 증명한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역차별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자본 간 격차가 지속해서 커졌을까? 역사적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저임금 문제는 수출주도 추격성장 과정에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해 중화학공업 수 출을 시도한 한국 제조업은 생산성을 좀처럼 상승시키지 못했다. 막대한 자본투자가 필요한 중화학공업에서 생산성이 정체 · 하락하면, 자본은 이윤율 하락을 막기 위해 임금을 낮출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중 반까지 정부는 제조업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노동시장을 억압적 으로 통제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까지도 제조업 임금이 서비스업 보다 낮게 유지됐다.
노동시장이 변한 계기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노동조합 결 성과 치열한 임금 인상 투쟁이 수년간 계속되어 수출제조업에서는 노동생산성 상승만큼 임금 인상을 달성할 수 있었다. 3저 호황으로 수출제조업의 가동률이 80퍼센트 이상으로 높아져 이윤율도 하락을 멈 췄다.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이 매우 낮았던 내수서비스업에서는 이런 임금 인상 투쟁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인력난이 이야기될 정도로 실업률이 낮아진 덕분에 임금이 약간 오르긴 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다.
제조업과 내수서비스업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자본집 약도 격차가 노동조합 격차와 결합한 이후였다. 노동조합의 임금 인 상 압박이 덜했던 서비스업 기업과 자영업자는 생산성이 하락하자 자본투자를 하기보다 저임금을 이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1990~1997년 자본집약도 격차는 1986~1990년보다 더욱 커졌다. 그리고 이런 자본집약도 격차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빠르게 증가했는 데,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자영업자가 되어 도소매·음 식·숙박업에 대규모로 진입했기 때문이었다.
- 동일생산성, 동일노동, 동일제도는 개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임금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임금에는 공정성이 없다. 임금형태 는 착취를 은폐하며 노동자 스스로 착취하도록 독려하는 보상 체제일 뿐이다. 노동시장을 독립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임금의 공정성을 분석 하는 노동시장 전문가들의 접근법에도 문제가 있다. 앞서 봤듯 노동시장은 이윤율, 투자, 기술, 산업예비군 규모, 노동조합의 역량 같은 노 동시장 외부 변수에 종속되어 있다. 임금만 보아서는 임금조차 분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임금 격차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답 은 하나뿐이다. 임금을 시장의 법칙이 아니라 노동자의 윤리에 따라 조정하는 것이다. 노동의 사회적 성격, 임금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자들 모두가 인정하고 임금의 평등성과 연대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이런 평등성과 연대성은 노동조합이 조직률을 높이고 사회적 힘을 키워, 시장 밖에서 임금을 결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평등과 연대에는 원리나 법칙이 있을 필요가 없다. 사회적 합의 또는 조합원의 합의가 필요할 뿐이다. 최대 두 배 정도만 임금 차이를 허용 하기로 한다든지, 아니면 아예 직무 경력에 따라서만 임금 차이를 최소 범위 내에서 인정한다든지. 평등과 연대의 원칙 속에서 직무에 필 요한 노동강도나 숙련을 감안해 약간의 격차를 두면 그만이다. 이런 결정은 시민 또는 조합원의 윤리에 속한다. 이런 평등과 연대의 임금 정책은 물론 제한적이다. 임금노동제는 이윤율이 하락할 때 언제든지 노동자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도록 애초부터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하더라도 평등과 연대의 임금정책은 노동조합이 계급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힘을 키우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된다.
- 신자유주의로도 불리는 2000년대 노동시장 신축화(유연화)는 실업과 취업 사이 경계를 허물어 반(半)실업 반(半)취업 상태의 불완전취업자 를 다수 만들어냈다. 비정규직이 바로 그런 불완전취업의 대표적 형태 다.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 더해 자영업을 노동시장의 배후지로 활용 해 신축화를 극대화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영업을 노동시장의 배 수통이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예비군 숫자를 살펴보자.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 르면 2019년 경제활동인구는 3,000만 명, 취업자는 2,700만 명, 실업자는 300만 명이다. (고용보조지표를 이용했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잠재적 취업가능자를 더한 숫자다.) 그런데 이 취업자 중에는 제대로 된 취업자가 아 닌 경우가 많다. 예로 임금노동자 2,000만 명 중 700만 명은 불완전 취업의 대표 격인 비정규직이다. 자영업 700만 명 중 100만 명은 실업 과 비슷한 상태로 볼 수 있는 무급가족종사자이고, 400만 명은 임금노 동자 평균보다 못한 월 200만 원 이하 수입을 벌고 있다. 자영업이지 만 반실업 상태로 볼 수 있다.
정리하면, 2019년 우리나라에는 300만 실업자와 1,200만 불완전 취업자가 있다. 3,000만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인구가 제대 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 참고로 노동시장의 가장 대표적 문제인 비정규직은 80퍼센트가 중소기업, 개인기업(자영업) 등 자본규모와 자본집약도가 낮은 부분에 존재한다는 점도 확인해두자.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은 개인기업에서 48퍼센트에 이르며, 중소기업에서도 38퍼센트나 된다. 대기업의 경우 26퍼센트, 일반정부는 15퍼센트이다. 전체 비정규직의 80퍼센트가 중소기업과 개인기업에 밀집해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중소기업, 개인기업에서의 고용과 관련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쌀이나 채소 같은 농산물 생산이 아니라 순전히 매매 차익을 목적으로 거래되는 토지, 즉 부동산 상품이 된 토지는 기본적으로 가공자본 fictitious capital의 원리를 따른다. 자본이라는 점에서 증식은 하는데, 가공 이라 함은 현재의 노동이 증식의 토대가 아니라는 의미다. 가공자본의 크기는 미래 소득에 대한 청구권 가격으로 결정된다. 임대료, 이자, 배 당 같은 형태의 소득을 미래에 얼마나 청구할 수 있는지로 자산의 가격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가공자본이란 착취할 미래에 대한 기대로부터 등장한다. 예로 10억 원의 명동 한복판 점포 부지는 먼 미래까지 지대로 10억 원을 걷을 수 있다는 기대를 표현한다. 기대이기 때문에 가공자본은 주관적으로 커질 수 있고, 심지어 미래는 끝이 없으니 상한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 토지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농업용이 아니라면 토지 자체는 어떤 생산물도 만들지 않는다. 토지 소유로 얻는 미래의 지대(토 지 임대료)가 있을 뿐이다. 즉 미래의 지대에 대한 청구권 가치가 현재 의 토지 가격을 결정한다. 물론 여기서 미래의 지대는 주관적 기대치 이다. 10년 후, 20년 후 지대는 그때의 수요-공급 사정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단, 토지는 생산이 불가능해 공급보다 수요 측 변화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토지 수요 기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래의 금리와 지대에 대한 주 관적 예상이다. 내가 10억 원이 있는데 이것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 한다고 생각해보자. 먼저 적금 이자가 연 5퍼센트라면, 3년 후 금리 수 입은 약 1억 5,000만 원이다. 그런데 10억 원으로 연 5,000만 원 이상 임대료를 얻을 수 있거나, 3년 후 매각 가격이 11억 5,000만 원 이상이 될 것이라 예상되는 토지가 있다면 당연히 이것을 사는 것이 이득 이다. 여기서는 짧게 3년을 가정했지만, 현실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짧 게는 10년, 길게는 30~50년의 경기변동에 따른 금리와 토지 수요 변 화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 누구도 이렇게 긴 미래를 정확히 예 상할 수는 없다. 정확한 예상이 불가능한 만큼 주관적 심리가 가격 결 정에 크게 개입한다.
금리와 토지 수요 예상에는 경제성장과 인구증가가 핵심 변수다. 경 제가 성장하고 인구가 증가하면 공급이 제한된 토지의 상대가격은 당연히 오를 것이다. 고도성장기에는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기 때문에 대 도시의 토지가격이 더 빠르게 상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도시 중 대도시라 할 서울, 그중에서도 대기업 본사와 명문 고등학교가 밀집한 강남이 그런 사례다. 금리 역시 경제가 성장하면 자금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상승한다. 다만 금리는 정부의 통화정책도 영향을 미치는데,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통화긴축을 할 경우 금리가 더 상승한 다. 물론 정부 정책은 경기 변화에 따라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이뤄지 기 때문에 경제성장 예측과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는다. |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경제와 인구가 감소할 때도 토지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과 인구의 집중 때문이다. 불황이 닥치면 집적 concentration이 집중centralization으로 발전한다. 100억 원의 신규자금 을 열 개 기업이 아니라 두 개 기업에 몰아서 투자하는 것이 집적이라 면, 신규자금이 100억 원에서 80억 원으로 줄어들 때, 두 개 기업이 나머지 여덟 개 기업을 합병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자본을 쌓는 것이 집중이다. 경제와 인구가 감소할 때 지방 군소도시의 경제와 인구를 서 울이 흡수하는 방식으로 토지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서울이 커지는 만큼 지방 군소도시는 몰락한다. 1960년대 자본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서울로 자본을 집적해 성장 을 극대화했다. 물론 대도시로 자본이 집적되는 현상은 다른 선진국 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지만,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는 추격성장 국가에서는 이런 집적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은 대도시 집 중도가 선진국 사이에서도 높은 편이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과장 만은 아니다.
- 서울로의 집적은 경제와 인구의 성장이 둔화할 때 집중으로 발전한 다. 2010년대 이후 서울의 토지 가격 상승은 집적이 집중으로 발전하 면서 이뤄진 것이었다. 시민들은 국민경제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을 지역은 서울이라고 생각한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지 역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서울로 올라가고, 지역 유지들도 자 산 가치를 유지하려고 서울에 투자를 늘린다. 경제성장률이 1퍼센트 하락하면, 지역경제는 2퍼센트 하락하고, 서울경제는 그래도 1퍼센트 상승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작동방식이다.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이 이 전보다 많이 하락했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은 서울에서는 폭등, 지방에 서는 폭락으로 양극화됐다.
- 이윤에는 착취라는 그것의 기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만, 이자에 이르면 그 기원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스스로 증식하는 자본만 남아 있다. 예로 경제학은 은행이 예금과 대출을 통해 얻은 이윤을 금융중개서비스라고 부르며 새롭게 창조된 가치로 평가한다. 2014년 국민계정에서 보면 금융중개서비스로 창조됐다고 평가되는 부가가치가 40조 원에 이른다. 물론 이 40조 원에는 그 어떤 착취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 임금주도성장론의 내적 결함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경험했던 바이기도 하다. 임금주도성장론이 불가능하다는 증거는 다름 아닌 1997년 국가부도 사태였다. 우리나라 경제는 1989년 3저 호황 종료 이후에도 자본투자가 증가했고 임금 상승도 이어졌다. 특히 1987년 노동자대투쟁 효과로 이전까지 정체되어 있던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던 시기라 마치 임금 인상이 투자와 고용을 견인하는 것처럼 거시 지표가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실제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림 12는 우리나라의 민간 경제성장률(요소소득 기준)을 고정자본스톡 증가율과 자본생산성 증가율로 분해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 경제는 자본투자 주도로 성장해 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특히 주목해서 볼 시기는 1989~1996년이다. 큰 폭의 자본생산성 하락 속에서도 자본투자가 이전 수준으로 유지되어 경제성장률이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었다. 더욱이 이런 투자 덕에 임금도 상승할 수 있었고, 임금분배율도 약간이나마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지속 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1997년 국가부도 사태를 기점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임금주도성장론은 과잉투자로 인한 임금상승을 임금 인상으로 인한 투자 촉진으로 오해한다. 그 결과 임금주 도성장론이 적용되는 1990년대의 성장이 왜 1997년 국가부도로 이어 졌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 임금주도성장론은 자본투자만큼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낙관주의를 전제한다. 임금 인상이 자본가에게 이윤율 보존을 위한 투자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그 투자 의욕이 임금 인상으로 낮아진 이윤율을 다시 높 인다. 케인스처럼 말하자면, 임금 인상은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을 일 깨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본투자와 생산성에 관한 낙관주의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실과 상당히 다르다.
저성장 속에 이뤄진 한국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사례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나 임금 격차 완화에 생각만큼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 그렇다. 면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은 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까?? 간단하게 말해 최저임금이 시장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금주도성장론을 근거로 한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에게 오히려 불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 경제학에서 널리 알려진 불평등 이론은 쿠즈네츠 곡선Kuznets Curve이다. 쿠즈네츠 곡선은 역U자 모양(1)으로, 불평등이 처음에는 경제성장 탓에 증가하다가 나중에는 경제성장 덕에 감소하는 것을 표현한다. “성장은 모든 배를 뜨게 하는 밀물이다.” 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겠다.
경제성장과 함께 불평등이 증가했다 감소하는 이유는 노동시장의 공급·수요 변화와 관련이 있다. 성장 초기에는 농촌 지역(또는 해외)에 서 산업화된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어 노동자 임금이 정체하고, 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자본의 이윤이 증가한다.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저숙련 노동자와 기존 고숙련 노동자의 임금 격차도 증가한다. 하지만 경제가 계속 성장해 농촌 노동력이 고갈되면, 노동력 부족으로 임금 상 승 속도가 빨라지고 이윤은 감소한다. 대중교육으로 노동자의 교육 격차도 완화되면서 임금 격차 역시 감소한다. 실증적으로 보면, 선진국에서는 20세기 초중반 쿠즈네츠의 역U자 곡선이 실제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1980년대 중반까지 고도성장과 함께 불평등이 증가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불평등이 감소하는 역U자 곡선이 나타났다.
- 불평등 연구로 세계적 경제학 스타가 된 토마 피케티(Tomas Piketty는 U 자형 불평등 곡선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은 원래 큰 것이 정상이다. 20세기 초중반의 불평등 감소가 오히려 예외적이었다. 이는 세계대전으로 인한 자산 파괴, 산업혁명 이후 고도성장 덕분에 일 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가 불평등 지표로 사용하는 상위 1퍼센트나 상위 10퍼센트의 소득비중을 보면, 선진국 대부분에서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의 불평등 곡선은 큰 U자형으로 나타난다. 피케티는 불평등 확대가 자본주의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은 자본과 비슷 한데, 다만 그 근거나 대안은 다르다. 
먼저, 그는 자본을 재정의한다. 경제학에서 통상 이야기하는 기계설비, 건물 같은 생산물(자본재)이 아니라 부동산과 천연자원, 심지어 19세기의 노예 같은 매매 가능한 모든 것을 자본에 포함한다. 생산 측면 이 아니라 분배와 거래 측면에서 자본을 규정하다 보니 그렇다. 그에 게 자본은 생산에 대한 기여가 아니라 소득을 분배받을 수 있는 소유 권의 힘이다. 다음으로, 그는 이런 재정의를 전제로 자본수익률을 매 매 가능한 소유권의 가격과 소유권 덕분에 얻는 소득의 비율로 규정 한다. 그의 추정에 따르면 18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자본수익률은 3~6퍼센트 사이에 있었다. 자본수익률은 역사적으로 일정했다.
불평등 쟁점에서 변수는 국민소득증가율이다. 자본수익률은 일정 하지만 국민소득증가율은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에서 숙련편향적 기술변화가 빨라진 시기는 90년대 초반부터.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제조업 생산직에서 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해 기업의 기술발전방향에 큰 영향을 미침. 이때부터 한국기업들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생산직을 줄이는 자동화 기술에 투자를 집중함. 정보통신 산업도 빠르게 발전해 적당한 숙련의 직무들도 빠르게 감소. IMF 구조조정으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확대대 비정규직과 아웃소싱도 급증함. 다만 우리나라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로 인한 임금 양극화가 개별노동자의 숙련특성보다 기업별 격차로 나타난 점이 미국과 다른 특징이다. 강한 노동조합과 해고 제한이 있는 대기업에서는 숙련편향적 기술변화의 영향이 작았고, 무노조에 해고도 자유로운 중소기업에서는 기술변화의 영향이 빠르게 나타났다. 대기업은 이런 제약을 회피하기 위해 숙련편향적 기술에 영향을 받는 직무들을 중소기업으로 대거 아웃소싱했다. 기술변화와 한국적 노동시장 제도가 결합해 대기업 · 중소기업 간의 엄청난 임금 격차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 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경제적 불평 등의 원인을 지대추구 행동의 증가에서 찾았다. 
지대추구란 사회적 이익 이상으로 개인적 보수를 챙기는 행위다. 완전 경쟁 시장에서는 개인이 받는 보수가 딱 사회적 생산에 기여한 만큼이라, 개별적 보수와 사회적 이익이 일치한다. 그래서 불평등도 과 도하게 커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 경쟁이 제한되고 지대추구 행동이 증가하면 불평등은 확대된다. 그런데 현실 시장에서는 완전경쟁이 쉽 지 않고, 정보의 불균형으로 시장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때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부다. 정부가 시장 의 규칙을 정하기 때문이다. 스티글리츠는 20세기 후반의 경제적 불평등은 정부가 상위계층의 영향력 아래에서 지대추구를 규제하지 않은 탓이라고 주장한다. 
금융시장은 지대추구의 대표적 사례다. 금융부문은 정부의 규제완 화 덕분에 20세기 후반부터 다양한 지대추구 기술들을 개발해왔다. 예 로 규제가 없는 장외시장의 파생금융상품들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정 보를 얻을 수 없어 금융기관이 소비자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은행 들의 대출상품도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소 비자는 은행에 정당한 이자 이상을 뜯길 수밖에 없다.
거대 디지털 기업들 역시 지대추구의 최전선에 있다. 구글, 마이크 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은 이들이 엄 청난 기술을 개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막고 시장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 21세기의 정부들은 새로운 독점기업들을 오히려 지적재산권 제도로 보호한다. 천문학적 연봉의 최고경영자들, 또는 상위 1퍼센트의 부 자들 대부분이 이런 지대추구 게임의 승리자들이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오늘날의 정부들은 지대추구 행위자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돕고 있다. 역진적 조세제도와 인플레이션 관리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경우 부자나 지대추구로 얻은 수 입에 대해서는 오히려 중산층 노동자보다도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이 렇다 보니 기업은 이들에게 더 쉽게 수익을 배분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완전고용을 포기하는 통화정책은 실업률을 높여 노동자 임금을 정체시킨다.
불공정한 시장 탓에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개혁진영에서도 많이 이야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대로 부를 축적 하는 대표적 경제 행위자가 재벌이다. 이들에 따르면 재벌은 원·하청 불공정거래, 부당내부거래, 골목상권 침해 등으로 지대를 추구한다.
- 21세기의 정부들은 새로운 독점기업들을 오히려 지적재산권 제도로 보호한다. 천문학적 연봉의 최고경영자들, 또는 상위 1퍼센트의 부 자들 대부분이 이런 지대추구 게임의 승리자들이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오늘날의 정부들은 지대추구 행위자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을 돕고 있다. 역진적 조세제도와 인플레이션 관리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의 경우 부자나 지대추구로 얻은 수 입에 대해서는 오히려 중산층 노동자보다도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이렇다 보니 기업은 이들에게 더 쉽게 수익을 배분할 수 있다.
- 쿠즈네츠 곡선을 재해석해보자. 기본적으로 기술진보로 이윤율이 상승할 때는 자본축적이 활발해지고 고용도 증가한다. 인구가 급 격하게 증가하지 않으면 산업예비군이 감소하고 노동시장 경쟁이 완화되면서 임금도 상승한다. 여기에 노동조합의 계급투쟁이 더해지면 임금 상승이 가속된다.
그런데 임금 상승은 이윤율 상승에 뒤처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업 예비군이 감소하고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가 커지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윤율 상승 초기에는 임금이 노동생산성보다 덜 오르면서 이윤분배율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기술선도 기업의 초과이윤으로 기업 간 이윤 격차가 커지고, 특별 이윤을 얻는 기업의 임금이 먼저 오르면서 노동 간 임금 격차가 커질 수 있다. 다만, 이런 격차들은 곧 줄어든다. 노동자가 투쟁으로 노동생산성 상승을 따라잡는 임금 인상 을 쟁취하고, 기술선도 기업의 특별 이윤도 시장경쟁과 기술추격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예비군의 감소, 노동조합의 평등주의적 임금정책, 정부의 분배 · 재분배 정책이 더해지면서 소득 격차는 더 빠 르게 줄어든다. 요컨대, 쿠즈네츠 곡선은 20세기 초중반의 이윤율 상 승기 특징을 간단한 곡선으로 묘사한 것이다. 쿠즈네츠 곡선이 묘사하지 못하는 것은 이윤율 하락 국면에서의 불평등이다.
- 이윤율이 하락하면 임금 상승에 제동이 걸린다. 노동생산성 상승만큼만 임금을 인상해도 자본생산성 하락으로 이윤율은 계속 하락한다. 이윤율 하락으로 자본축적이 감소하면 고용 증가가 둔화하 고, 일자리 경쟁으로 임금에 하방 압력이 가해져 결국 임금이 하락한다. 특히 산업예비군과 직접 경쟁하는 일자리에서는 임금 하락이 상 대적으로 더 크다. 그 결과 임금 격차가 커진다. 실업으로 노동조합이 약화되고 노동시장 제도가 노동자에 불리하게 개혁되면, 임금 상승은 노동생산성 상승에도 뒤처지면서 임금분배율이 하락할 수도 있다. 1970~1980년대 미국과 유럽 그리고 1990년대 중반 한국 상황이 바로 이러했다.
- 케인스는 <자본>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자본순환의 어려움을 유효수요 부족으로 제기했다. 생산설비처럼 오랫동안 사용 하는 내구재는 미래의 수입이 수익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위 험을 감수하면서 동물적 충동animal spirit으로 투자를 감행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 자본가는 이 충동을 억제하고 안전자산인 화폐를 보유(유동성 선호)하려 한다. 그런데 자본가가 투자 를 주저하면 자본재 수요가 감소하면서 경제가 침체한다. 케인스는 경기침체 해법으로 자본가의 동물적 충동을 부추기는 방법을 제안했다. 정부 스스로가 투자에 나서고 금융을 억압해, 자본가가 화폐를 소유하는 대신 투자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 《자본》은 자본순환의 어려움을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투자 자본은 재료비나 인건비같이 상품 판매와 함께 곧바로 회수되는 유동자본과, 기계설비같이 자본순환에 묶여 오랜 기간에 걸쳐 회수되는 고정자본으로 나뉜다. 투자 자본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것은 두 부분인데, 하나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추출하는 고정자본의 생산성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화폐'로 순환하는 유동자본의 회전시간이다. 전자를 생산과정, 후자를 유통과정이라고 부른다. 
케인스는 여기서 유통과정에 주목했다. 하지만 케인스의 결함은 고정자본의 생산성과 유통시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고정자본의 생산성 자체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케인스의 해법이 오히려 이윤율 하락을 더 빠르게 만들 수도 있다. 예로 케인스주의는 1970년대 자본생산성 하락 국면에서 영향력을 잃었는데, 이는 단지 이데올로기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케인스주의가 당대 경기침체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제학계의 좌파는 케인스주의의 복권을 주장하지만, 자본생산성 하락 국면에서 적자재정은 오히려 위기를 가속할 수 있다.
-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 선언》(공산당선언)에서 “억압자와 피억압자 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 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은 그때마다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 또 는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멸로 끝났다.”라고 썼다. 마르크스가 묘사한 것은 자본축적의 S자 곡선 끝자락 모습이었다.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자본의 혁명이고, 둘째 노동의 혁명이다. | 먼저, 자본의 혁명은 산업혁명이다. 우리는 1장에서 이를 살펴봤다. 한국의 경우 산업혁명과는 거리가 멀다. 혁명은커녕 추격성장의 한계 만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40여 년간 일본을 모방 해 성장했지만, 모방 이후 기술 선도자로 나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고등교육기관이 몰락해 기술선도 경제로 나가기 위한 지식 기반을 만드는 데도 실패 중이다. 미국 유학 알선기관이 되어버린 한국의 대학에서는 지식 축적이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노동의 혁명을 검토해보자. 노동의 혁명은 자본주의를 지 양하는 사회혁명이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이 대표적 사례였다. 하 지만 자본의 혁명과 달리 노동의 혁명은 지금까지 성공 사례가 없다. 소련은 붕괴했고, 중국은 당이 조절하는 시장경제로 나아갔을 뿐이다. 20세기 내내 진행된 서유럽 노동운동의 도전 역시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수준에서 중단되었다. 21세기의 노동운동에서는 자본 주의를 위협할 만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한국의 노동운동 역 시 대안은커녕 '귀족노조' 같은 말로 조롱받기 일쑤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두 계급 모두 위기에 대응하지 못 할 때 “공멸”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계급적 공멸의 한 형태가 바로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은 사회 변화에 관한 과학적 분석을 포기하고, 대신 기득 권에 대한 비난, 영웅적 정치인에 대한 기대, 대중의 정념을 발산하 는 정치를 확대한다. 대표적 사례가 1930년대 독일이었다. 당시 독일에서는 자본가가 공황에 대처하지 못했고, 노동자계급을 대표한 정당들 역시 경제와 사회를 재건하는 것에 실패했다. 이런 두 계급의 실 패 틈새에서 반유대주의와 게르만 민족주의를 앞세워 히틀러가 권력 을 잡았다.
지난 2016년 인종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걸고 당선된 미국 트럼 프 대통령 역시 그런 사례였다. 세계금융위기 전후로 공화당과 민주 당이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성을 해결하지 못하자, 위대한 아메리카' 를 내걸고 이민자 추방을 외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겪은 딜레마 역시 포퓰리즘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21세기, 자본의 작동중지 상태에서 자본의 무능과 진보진영의 실패 로 말미암아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적 공멸이라는, 체제의 극한적 위기 가 심화하고 있다.
- 보통 주류경제학은 계획경제가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 에 경제성장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학이 간과하는 다른 측면이 있다. 바로 완전고용 문제다. 시장경제의 민간 기업은 수익성을 기준으로 투자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런 투자 결정은 인구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돈이 안 되면 일할 수 있는 노동자도 실업자로 놀리는 것이 시장경제의 법칙이다. 심지어 수익률 이 하락하면 자본도 놀린다. 
계획경제에서는 투자가 이윤율이 아니라 생산량 최대화를 목표로 결정된다. 생산은 자본 부족, 인구 부족 상태까지 증가한다. 이런 생산 방식은 시장경제에 비해 자본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자본과 인구를 놀 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적 경제성장에는 유리한 점이 있다. 1940년 대 이후 소련은 중앙당국의 계획에 따라 적자에 연연해하지 않고(연성 예산제약이라고 부른다.) 자본투자와 고용을 늘리면서 고도성장을 달성했 다. 물론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이 성공한 정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로버트 앨런Robert Allen의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레닌의 신경제정책이 계속됐더라도 성장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신경제정책이 같은 결 과를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 5개년 계획은 당의 관료적 경직성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소련 경제 에 치명적 후유증을 남겼다. 스탈린은 5개년 계획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자 당 정책에 대한 이견 표명을 금지했다. 이런 공포정치 탓에 생 산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은 보고되지도 않았다. 현장 피드백 이 없었던 탓에 한번 잘못 결정된 계획이 수정되지 않고 파국적 결론 을 낼 때까지 이어졌다. 1970년대가 되자 소련의 경제성장률이 급락했다. 이전까지 5퍼센트 이상을 기록하던 경제성장률이 1970년대 초반 3퍼센트대로 하락하더니, 1970년대 후반에는 2퍼센트대로 주저앉았고, 1980년대는 이보다 더 하락했다. 일본과 비교해보면, 1970년 소련의 1인당 GDP는 일본의 60퍼센트였는데, 1989년에는 40퍼센트로 낮아졌다. 성장 속도가 둔화하자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 국유기업 부채는 말하자면 공산당의 권력 유지 비용이다. 중국은 세계에 개방되어 있음에도 정치, 사법, 언론 등에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부 통제가 이뤄지는 나라다. 국민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자유를 만끽하지만, 정작 자기 나라에서는 거대 권력의 감시하에 있다. 불만이 크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도 공산당이 독재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경제성장으로 국민의 불만을 관리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은 어떤 경우에도 고용과 소득증가를 포기할 수 없다. 국유기업의 부채는 당의 독재를 위한 비용인 셈이다.
- 국유기업 부채는 중국의 금융시장 부실로 이어진다. 대형 국유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대형 국유상업은행들이다. 이 은행들은 중국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자산으로 삼아 국유기업에 지속해서 대출 을 제공하고 있다. 국유기업의 부실 채권을 튼실한 달러 자산으로 희 석하는 식이다. 그리고 지방 국유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금융당국 규제조차 받지 않는 그림자금융이다. 그림자금융은 지방정부가 경제성과를 내기 위해 당국의 관리를 피해 만든 일종의 관제 사채시장이다. 그런데 이런 그림자금융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어 한순간에 파산할 수 있다. 현재 부실 규모가 너무 커 중앙정부조차 쉬쉬하면서 상황을 덮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세계 경제기관들은 중국의 기업부채와 금융 부실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지뢰라고 경고한다.
- 인공지능 기계의 확대로 일자리가 사라질 테니, 국민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임금을 대체하는 새로운 소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기본소득 정책은 근거도, 방향도 잘못된 대안이다. 
우선 기본소득 정책은 기술변화가 초래할 미래를 과장한다는 점에 서 문제다. 인공지능 발전으로 자동화가 확대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고실 업을 지속해서 유지하는 산업혁명은 존재할 수 없다. 자본주의적 기술발전은 노동을 절약(노동생산성 향상)하면서 동시에 노동을 증대(생산 량 증가)해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1장에서 살펴본 바 있다.
- 기본소득은 생산과 소득의 관계를 무시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신고전파는 소득을 생산에 대한 기여로 규정한다. 소득을 높이려면 생산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 이것이 생산을 자극하는 인센티브가 된다. 케인스주의는 생산적 투자를 자극하기 위한 소득을 이야기한다. 생산의 주체인 기업이 위험한 설비투자에 나서야 경제가 성장하는데, 정부는 기업이 설비투자에 집중하도록 금융소득을 규제한다. 마르크 스주의는 이윤율 동역학을 통해 생산과 소득의 모순을 분석했다. 자본 주의적 생산에서 이윤은 착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고용을 유발하는 기업 투자는 이 착취가 원천이다. 착취가 줄면 투자가 줄고, 고용이 줄면, 노동자 소득이 감소한다. 소득을 얻기 위해 착취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이런 이론을 전제로 신고전파는 생산성에 비례하는 소득을, 케인스주의는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소득을, 마르크스주의는 임금소득의 모순을 혁파할 자본주의 변혁을 주장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에는 어떤 생산이론도 없다. 오직 분배 정책만 있다. 이러한 정책은 사실 복지이론에도 미달하는 것이다. 복지이론은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사회임금(사회보장지출에서 사회보장세입을 공제한 것)제도를 설계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을 나눠주는 것이다. 분배의 대상과 방법만 있지, 시쳇말로 “소는 누가 키우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한 분배 이론이라는 것이다. 만약 어떤 정부가 그럼에도 기본소득을 실시한다. 면, 결국 재정적자라는 딜레마에 부딪혀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상상 속 4차 산업혁명의 구빈법이다. 거대한 실업의 공포를 만든 후 그들을 구제할 방법으로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제시하니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하는 월스트리트의 엘리트들은 진보진영 이상으로 기본소득에 우호적이다. 이유는 그들이 지대추구 로 독차지하는 사회적 부를 기본소득이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기본 소득은 현 엘리트들의 기득권을 전혀 침해하지 않으면서, 시장 경쟁에서 패배한 시민들이 급진적 저항에 나서는 것도 방지한다.
- 한국에서도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시중에 화폐를 공급했다. 그런데 한국의 중앙은행은 미국보다 제약이 많다. 4장에서 본 한국은행 대차 대조표를 떠올려보자. 한국은행은 위험 자산을 희석하기 위해 더 많은 달러를 보유할 필요가 있는데, 세계 경제의 침체에 뒤이은 수출 감소 로 달러 확보는 이전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정부 부채의 급증도 화폐스톡의 또 다른 변화이다. 방역으로 인한 경제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선진국들은 유례없는 재정지출을 계획하 고 있는데, 지출의 대부분이 빚으로 조달된다. 정부의 빚이 증가해 지 불능력에 문제가 발생하면 화폐스톡의 가치가 영향을 받는다. 정부는 화폐 →생산>에서 기업에 직접 대출을 해주고 있고, 생산 → 상품〉에 서도 지원금으로 해고와 사업 철수를 억제하고 있으며, 상품 →화폐) 에서 공공사업을 늘리는 방식으로 소비와 투자를 보조하고 있다. 거의 모든 경제 주체들이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 재정중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부가 빚을 늘리는 방법은 국내의 저축과 해외 자금을 이자를 주고 빌려오는 것이다. 경제를 금리 생활자와 노동 소득자로 단순화하면, 정부 빚은 금리 생활자에게 이자를 주고 자금을 빌린 뒤 노동자에게 세 금을 거둬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금리 생활자의 자산을 수탈 하지 않는 한, 정부 빚은 이렇게 국채를 매개로 한 착취의 연장선에 놓 이게 된다. 그래서 정부 부채가 증가할수록 당연히 착취도 증가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파산해버린다. 정부 빚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 이윤율이 하락하며 생산에 이용되지 못하는 자본과 인구가 증가한다. 《자본》의 결론은 자본축적의 필연적 결과로 과잉자본과 과잉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과잉자본은 금융화를 통해 경제를 혼란으로 이끈다. 과잉인구는 “빈곤, 노동의 고통, 노예 상태, 무지, 포악,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져 시민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코로나19 사 태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바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마자 기업단체들은 규제완화를 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들이 요구한 규제완화 대상은 유통, 금융 등 생산보다는 가치 이전과 관련 있는 영역이 대부분 이었다. 10장에서 본 것처럼 시장 안에 있는 개별 기업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가 사회적 부의 생산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경제학은 개별 기업의 합계로 국민경제의 성장을 파악해 기업 들의 이런 오해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생산적 노동을 증가시키지 못하 는 개별 기업의 이익 추구는 국민경제의 성장을 오히려 낮출 뿐이다.
개혁진영의 학자들과 정당들은 무차별적 가계소득 지원을 코로나19 대책으로 주장한다. 생존 위기에 빠진 시민을 돕는 것은 정부의 당연 한 역할이다. 하지만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100만 원씩 50조 원을 일 시에 주고, 필요하면 계속해서 더 주자는 식의 주장은 긴급한 구제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이야기다. 이들의 논리는 임금주도성장론과 비슷하게 소득을 주면 경제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11장에서 본 것처럼 소득이 성장으로 바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자 본생산성 상승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를 전제한다. 2018~2019년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저임금계층 임금총액의 감소로 귀결된 것에서 도 볼 수 있듯, 적자재정을 통한 무차별적 소득 지원은 재정위기를 야 기해 결과적으로 국민 모두의 소득을 줄일 수 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 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불어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이 달러 자산을 찾아 국외로 탈출할 경우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2020 년에 신흥시장에서는 엑소더스란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세계금융위기 당시보다 몇 배나 큰 자본 유출이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 이런 자본 도피가 한국 같은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 농업 기반의 봉건제가 산업 기반의 자본주의로 변화한 이행기를 짧게 살펴보며, 시대가 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해보자.
서유럽은 14세기부터 흑사병과 잦은 전쟁으로 농민이 감소했다. 토 지의 생산성도 하락했다. 농민과 토지 생산성이 동시에 감소하면 당연 히 지주가 토지에서 취득하는 잉여농산물도 크게 감소한다. 지주가 지 대로 취득하는 토지당 잉여생산물, 즉 지대율이 폭락하자 지주인 귀족 들은 농민을 쥐어짜 자신의 몫을 늘리려 했다. 농민은 가혹한 수탈을 견디지 못해 영지를 탈출하거나 반란을 일으켰다. 귀족들은 농민을 붙 잡으려 군대를 이끌고 농촌 마을을 습격했고, 지대율 하락을 토지 확 대로 상쇄하기 위해 주변 지역을 자주 침략했다. 이렇게 전쟁과 살육이 수백 년간 서유럽을 휩쓸었다.
- 서유럽 봉건제는 300년 가까운 긴 시간에 걸쳐 붕괴했다. 그리고 16 세기부터 두 세기에 걸쳐 여러 혁명이 발발했다. 그리고 이 혁명들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다. 네덜란드 귀족과 상인들은 에스파냐의 과도 한 세금징수에 맞서 싸우며 국가주권이라는 현대 사상을 만들었다. 새 로운 사상으로 무장한 네덜란드는 독립 이후 무역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고, 주식시장과 동인도회사 같은 현대적 경제 제도도 만들었다. 왕의 막무가내 세금 징수에 저항한 영국 귀족들은 수차례의 내전을 거 치며 의회를 강화해 왕의 권력을 통제했다. 의회주권이라는 관념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국가재정을 정비하며 현대적 화폐제도와 중앙은행도 설립했다. 화폐 유통의 경계로서 국가경제라는 범주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왕이 없는 세계에서 자신들의 이성으로 국가 를 설계했다. 인류 최초의 작업이었다. 주권의 주체로서 국민이 탄생 했고, 성문헌법, 삼권 분립 같은 현대적 정치 제도도 만들어졌다. 프랑 스에서는 평등과 자유가 같다는 인권선언에 따라 평등하지 않았던 민 중이 자유를 위해 봉건제 타파의 전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재산 소 유 중심의 자유를 주장하는 부르주아 혁명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모든 개인의 평등한 자유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운 동이 출현했다. 
18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는 새로운 발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증기기관, 방적기, 방직기, 철강제련 같은 유명한 발명들이 이어졌고, 모자, 핀, 못 등 소소한 생산물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생산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술들이 서유럽 대륙으로 전파되어 서유럽 전체의 고도성 장을 이끌었다.82 영국이 18세기까지 만들어 놓은 경제·정치 제도들 은 새로운 산업경제에 적합할 뿐 아니라 이를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됐다. 입헌군주제는 왕가의 지대추구를 제한했고, 자본가들의 이해관 계를 조세, 전쟁, 법률 제정 등에 반영했다. 토지에 묶여 있던 농민들 을 노동능력의 판매자로 만든 것과 중앙은행권을 만들어 신용을 확대 한 것 역시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봉건제 붕괴 이후 200년에 걸친 부단한 혁명이 새로운 세계를 이렇 게 만들었다. 물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계급 사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15장에서 본 사회주의의 도전은 이런 계급 사회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도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소련과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20세기 자본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오늘날 세계는 저 중세 말기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지대율 하락 은 이윤율 하락으로, 농민의 몰락은 대규모 실업과 빈부격차로, 전쟁과 약탈은 반세계화와 인종주의 확대로, 흑사병은 코로나19로, 체제 붕괴의 형태는 달라도 잉여노동 추출과 그것을 재생산하는 제도의 위기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 코로나19 사태 이후 자본주의는 이전 같은 활력을 보여주기 어려울 것이다. 자본주의를 혁신하자는 대안들이 나오겠지만, 자본주의 내적 결함은 정책 개혁 수준이 아니라 근본적 변화로 해결해야 한다. 14장 에서 본 S자 곡선의 최종 단계에 있는 세계자본주의는 봉건제 말기와 비슷하다. 여기서 잠깐 1840년 중국의 딜레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 다. 중국 명나라, 청나라는 서유럽 봉건제가 몰락할 때 오히려 봉건제 를 혁신해 봉건 국가를 400년 더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체제의 변혁 대신 혁신을 선택한 결과는 19세기 말의 반식민지로의 몰락이었 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신이 아니라 자본주의 내적 결함을 해결하는 변혁이다.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토록 쉬운 경제학  (0) 2021.06.20
성장의 종말  (0) 2021.06.13
빅데이터 주식사전  (0) 2021.06.06
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0) 2021.05.25
경제학자의 생각법  (0) 2021.05.19
Posted by dalai
,

- 모든 사람의 뇌는 어느 정도 불완전’ 하거나 '비정상'이다. 이런 비정상은 때로 감정에 관한 것일 수 있으며, 때로는 인지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점 없 는 완벽한 정상'이라는 말 자체가 거짓 명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대자연에서는 비정상이 정상적인 상태이며 완벽하지 않은 것이 바로 재능 그 자체다.
- 부유한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우울증의 발병률은 큰 차이가 없다. 이 말은 우울증이 가난이나 현대인의 생활패턴 때문에 걸리 는 질병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사회와 문화의 요소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울증 발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바로 유전자다.
우울증에 처음으로 걸리는 시기는 보통 청소년기 중반부터 40여 세 사이다. 그중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20세 이전에 첫 번째 우울증을 경험한다. 우울증은 성별에 따라 발병률이 다른 데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높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증상이 겹쳐서 나타나는데 그중 우울증
만의 고유한 증상은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어떤 증상만으로 그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우울증의 여러 증상은 조현병schizophrenia(정신분열증), 양극성정동장애bipolar affective disorder(조울증),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같은 다른 정신질환에도 나타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련의 증상들로 이루 어져 있는데, 그래서 우울증은 질병이라기보다는 증후군이라고 해야 옳다. 학술적으로 이를 '스펙트럼장애 spectrum disorder'라고 부른다.
- “자신의 상태를 말로 할 수 있다면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때로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으면 기분이 나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는 남들은 모르는 고통을 떠안 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말하고 싶은 만큼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울증에 걸리면 행동도 달라지는데 한숨을 내뱉듯 숨을 쉰다거나 표정이 적어지고 어깨가 축 처지며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등의 모습이 나타난다.
- 그렇다면 우울증과 관련 있는 뇌 신경망 이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울증 환자들은 뇌에서 감정조절과 반추사고, 흥분과 관련 된 보상회로, 자아의식과 관련된 뇌 신경망에 이상이 생긴다. 우울 증 환자들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고 느낀다든지, 자신에 관해 나쁜 쪽으로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뇌 영 상 연구에 따르면 이는 많은 수의 우울증 환자가 겪는 평균적 특징일 뿐 환자 개개인을 구체적으로 살피면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개인마다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개개인의 뇌 상황은 평균 적인 특징과 관련이 없을 수 있다.
- 우울증 환자는 대뇌 기능도 일반인과 다르다. 중국 푸단대학교에서는 1천여 명을 대상으로 fMRI 검사를 실시해 우울증이 뇌앞부분의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발견했다. 그런데 안와전두피질은 보상의 손실을 인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안와전두피질의 활동에 문제가 생긴 우울증 환자는 자신들의 기대에 걸맞은 보상을 얻지 못했을 때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크게 실망한다. 안와전두피질은 뇌에서 기분을 담 당하는 영역과도 연결돼 있어 우울증 환자는 외부로부터 보상의 피드백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가치가 없다는 기분을 강하게 느낀 다. 이를테면 자신을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거나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없거나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지 못할 때 '이 세상에 살 가치가 없다'라거나 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같은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 우울증 환자의 느린 반응 또한 뇌 구조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영국 에딘버러대학교에서 3천 명이 넘는 사람의 백질white matter 을 촬영한 결과 우울증 환자의 백질은 보통 사람보다 연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백질은 뇌의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신경섬유의 집합으로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를 전달하는 '고속도로'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의 백질은 연결성이 매우 떨어져 뇌의 다른 영역들 사이의 정보 전달 효율이 떨어지며, 그 때문 에 반응 속도도 느려진다.
- 우울한 뇌를 만드는 네 가지 원인
(1) 모노아민 가설
우울증의 원인과 관련된 가설 중에 모노아민monoamine 가설이 있다. 우리 뇌에 있는 여러 신경호르몬은 너무 적거나 너무 많아도 좋지 않으며 서로 균형을 이뤄 안정적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정 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항우울제가 뇌의 모노아민 신경전달물질 을 강화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이 가설이 세워졌다. 모노아민에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 이 포함된다. 이 가설은 20세기 중반에 제기됐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만약 사람들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오랫동안 한다든지, 업무에 서 계속 인정받지 못한다든지, 학교에서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든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는 등의 만성적인 환 경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어떨까? 이런 스트레스는 뇌에서 트랜스글루타미나제2transglutaminase 2(만성 두드러기의 발병 과정 중 비만세포에서 발현되는 단백질 성분의 하나 - 옮긴이)를 더 많이 분비시켜 사람들의 감정조절 능력을 떨어뜨린다. 과다한 트랜스글루타미나 제2의 분비는 뇌 속 세로토닌의 농도를 낮춰 신경세포들 사이의 교류에 영향을 주며, 그로 인해 '정신력과 체력이 모두 떨어지는 우울증을 일으킨다. 미국 오거스타대학교의 치라유 판디아 Chirayu D. Pandya 연구팀이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뇌 속 트 랜스글루타미나제2가 증가하면 신경세포가 위축돼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 기능이 손상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신경세포들의 원활 한 연결은 신경신호 전달의 유지와 정상적 인지, 정서활동의 생리적 기초가 된다.
(2) 염증가설
염증은 우울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더 심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실제로 어릴 때 몸에 인터루킨interleukin (몸 안에 들어온 세균이나 해로운 물질에 면역계가 맞서 싸우도록 자극하는 단백질 - 옮긴이)의 수치가 높으면 성인이 된 다음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우울증 환자는 죽은 뒤에도 뇌 속 소신경교세포 microgia (뇌를 보호하는 화학물질을 생산해서 외부 침투균을 죽이는 일종의 면역기능 세포 - 옮긴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고 신경염증을 동반한다는 게 염증 가설의 또 다른 중요한 증거다.
(3) HPA축 변화 가설
우울증 발병에 관한 가설 중에 HPA축 Hypothalamic-Pituitary-Adrenal Axs, HPA axis(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 변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은 수십 년 동안 우울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심각한 우울증 환자의 혈장에는 스트레 스와 관련된 코르티솔cortisol(부신피질호르몬)의 함량이 매우 높 다. 이는 우울증 환자들이 코르티솔을 과도하게 분비할 뿐만 아니 라 코르티솔의 조절과 재생, 억제 기제인 당질코르티코이드 수용체glucocorticoid receptor가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HPA축의 변화는 인지능력의 손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또 한 우울증 치료 과정에서 HPA축의 불균형이 회복되지 않으면 치 료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치료됐다고 해도 우울증이 재발 하기 쉽다.
(4) 신경가소성 가설
우울증을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측면에서 설명할 수도 있 다. 21세기에 이뤄낸 가장 중요한 발견 가운데 하나는 성인의 뇌에 서 전능성줄기세포 totipotent sterm cell 를 찾아낸 것이다. 이는 사람의 뇌가 성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정을 신경재생이라고 하며, 이런 특징을 신경가 소성이라 부른다. 뇌의 신경가소성은 염증 반응과 HPA축 기능 불 균형의 영향으로 저하되는데, 이는 보통 지나친 환경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신경재생 과정에는 몇몇 조절단백질이 관여하는데 뇌유래신 경영양인자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BDNF도 그중 하나다. 우울 증 환자의 뇌에는 이런 단백질이 유독 적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가 항우울 치료를 받으면 뇌 속 뇌유래신경영양인자의 수치가 올라갈 수 있다. 
동물 연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동물의 뇌 속 신경재생 을 제한했더니 동물에게 우울증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특히 동물 은 스트레스가 큰 환경에서 쉽게 우울감을 느꼈다. 뇌과학자들은 신경가소성이 환경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줘 동물이 스트 레스를 받을 때도 더 나은 뇌의 회복력을 갖게 된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신경가소성이 있으면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서도 지속적으로 뇌 손상을 입지 않으며,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나면 뇌가 고무공처럼 회복되고 이후의 스트레스를 낮추는 능력이 강해지기도 한다.
우울증 환자의 시체 검안을 통한 연구에 따르면 치료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우울증 환자가 건강한 사람이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우울증 환자에 비해 해마에서 치아이랑dentate gyrus(인지와 기억 능력을 책임지고 있으며, 성인이 된 뒤에도 신경세포 가운데 유일하게 계 속 증식되는 영역 - 옮긴이)을 구성하는 과립세포가 훨씬 많이 손상 되어 있었다. 그에 비해 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는 우울증 환자의 뇌에는 분열 중인 신경 조세포synergid(배낭에서 난세포와 더불어 알 을 형성하는 세포 - 옮긴이)가 더 많이 존재한다. 이 연구 결과를 보 면 효과적인 우울증 치료가 신경재생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줘 신경 가소성을 강화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리가 우울증에 걸릴지 아닐지는 유전요인(유전이 우울증에 기여하는 정도)이 40퍼센트를 차지한다. 나머지 60퍼센트는 다양한 환경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초기 우울증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이 발병하기 전 1년 안에 삶에서 큰 스트레스 사건을 겪은 이들이 많다. 생명의 위협이나 만성질환, 경제적 어려움, 실업, 배우자와의 이별, 가족 가운데 누군가의 죽음, 폭력적인 학대 등 중대한 스트레스 사건은 성인의 우울증 발병 위험률을 높인다.
- 우울증의 이기적 기원
과학계의 한 이론에 따르면 우울증 유전자가 전염병에 걸리지 않 도록 지켜준다고 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적은 바이러스와 세균이다. 그런데 우울증 유전자가 음식을 멀리하고 정신과 몸을 피 곤하게 만들어 인간관계를 맺지 않도록 해서 그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보호해 유전자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다.
정신질환 유전자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있는데, 이를 난초와 민들레orchid and Dandelion 이론'이라고 한다. 토머스 보이스Thosmas Boyce가 발표한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뇌를 스트레스 환경에 민감하 게 만드는 유전자는 순조로운 환경에서 뇌를 튼튼하게 해 보통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거나 깜짝 놀랄 만한 성취를 이루게 해준다. 환경과 유전자가 서로 영향을 끼쳐 같은 유전자임에도 나쁜 환경에 서는 정신질환에 걸리게 하고, 좋은 환경에서는 왕성한 생명력으로 환경에 강하게 적응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난초형 아이orchid child' 라고 한 다. 반면 환경이 달라져도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민들레형 아이dandelion child'라고 부른다.
-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캠퍼스의 연구에 따르면 격렬한 운동을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하면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민산과 GABA)- aminobutyne acid (감마 아미노부티르산)의 함량이 크게 늘어 난다. 글루타민산과 GABA는 뇌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신경전달 물질로 뇌 신경세포들 사이의 신호전달에 매우 중요하다. 운동을 하면 뇌에서 이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증가해 뇌 신경세포들 사이의 신호전달을 촉진한다. 이것이 바로 우울증 치료에 운동이 효과적이라고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 그중에서도 암벽등반은 우울증 개선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8주 동안 매주 세 시간씩 암벽등반 치료에 참여시키자 증상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특히 우울증 환자의 반추사고 개선에 매 우 효과적이었다. 반추사고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머릿속으 로 부정적인 생각을 거듭해 스스로 부정적인 기분에 깊이 빠져드는 걸 말한다. 암벽등반을 할 때는 암벽을 타는 순서와 행동에 집중하지 않으면 아래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잡다한 생각을 할 틈이 없으며 자연히 반추사고도 할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암벽등반은 자기효능감(성취감)을 향상시키며, 함께 암벽을 타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데도 도움을 준다. 자기효능감과 인간관계를 맺는 일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특히 부족한 부분이다.
- 첨단기술이 일으키고 있는 변화 일상생활의 몇몇 습관을 바꾸는 것 외에도 최근 들어서는 첨단과 학기술로 우울증을 치료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뉴로피드백치료 neurofeedback therap)는 우울증 환자의 뇌파를 EEGelectroencephalogram(뇌파검사)로 찍어 실시간으로 자신의 뇌 활동 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 치료법으로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뇌를 실시 간으로 보며 의식적으로 뇌 활동을 조절할 수 있다.
미주신경yagus nerve을 자극하는 것도 난치성우울증 치료에 쓰이 는 방법이다. 혼합신경에 속하는 미주신경은 사람의 뇌신경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길고 폭넓게 분포되어 있는데 뇌에서 골수를 따라 식도 양쪽 아래로 이어져 경부部(목 부분 - 옮긴이)와 흉강(가슴 안 공간 - 옮긴이)을 지나 복부까지 퍼져 있다. 이런 특별한 분포 방식 덕분에 체외에서 미주신경을 자극해도 뇌 안쪽을 자극해 뇌의 기능을 나아지게 하는 할 수 있다.
- 스트레스 상태에서 뇌는 외부 신호를 다르게 해석한다. 불안의 생리기제는 위험을 될 수 있는 한 피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설계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투쟁-도피' 사고 아래 부정적 정 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바로 이 기 제 때문에 오랫동안 불안상태에 빠져 있는 사람은 중립적인 신호 를 부정적인 신호로 보기 쉽다.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 뇌가 외부를 더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불안장애 환자는 종종 대인관계 정보를 근거 없이 적대적으로 해석한다. 남들은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그 말을 도발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 만약 당신이 위궤양에 걸렸다면 의사는 보통 헬리코박터파일로리Helicobacter pytori균 감염이라 진단할 것이다. 하지만 컬럼비아대학교 공중보건대학의 르네 굿인Renee D. Goodwin 교수에 따르면, 어 떤 사람은 위에 헬리코박터파일로리균이 없어도 위궤양이 생긴 다. 바로 심리적인 불안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안과 위궤양은 어떻게 관련이 있는 걸까? 이는 장기적인 불안이 부신피질호르몬을 오랜 기간 과도하게 분비시켜 혈액을 근육으로 보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위점막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점차 좁아져 영양이 제 때 공급되지 않아 위점막이 충분한 점액을 분비하지 못하므로 위액으로 인한 부식을 막지 못한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쉽게 위궤양에 걸리는 것이다.
불안 때문에 부신피질호르몬이 오랫동안 분비되면 단백질 분 해를 일으키는데, 이는 살이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불안장애 환자는 단백질로 구성된 큰 조직인 근육이 오랫동안 만성 손상을 입어 몸이 마르게 된다. 반대로 불안감이 별로 없는 사람은 마음이 편해 쉽게 살이 찐다. 물론 이는 몸매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한 가지 요인일 뿐이다.
- 불안장애는 사람을 오랫동안 투쟁-도피 반응 상태에 머물게 한다. 하지만 오늘날 마주하는 스트레스는 사실 싸우거나 도망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오늘부터 평소보다 운동량을 늘려 매주 3~10시간 정 도 유산소 운동을 해보라. 경보나 수영, 배드민턴 같은 강도의 유산소 운동은 우리 몸에서 싸우거나 도망갈 때만큼의 근육 반응을 일으켜 온몸에 축적돼 있는 나쁜 에너지를 배출한다. 이렇게 하면 몸이 "이미 싸우거나 도망갔으니까 위협은 사라졌어”라고 말해 뇌가 이완될 수 있다.
- 호흡 훈련은 불안감을 낮출 뿐만 아니라 집중력을 높이며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는 등 장점이 많다. 2017년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실험용 쥐의 뇌간 속 신경세포와 호흡명상으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일상의 호흡은 한숨을 쉬거나 하품을 하거나 숨을 헐떡거리는 등 여러 종류의 리듬 이 있는데, 이 리듬과 사람들의 대인관계 및 감정의 신호가 관련이 있 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동물 뇌간의 '전뵈트징어복합체pre- Botzinger complex'는 신경세포 무리에서 나뉜 일부로 한숨과 관련이 있다. 이 영 역의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실험용 쥐가 끊임없이 한숨을 쉰다. 반면 이 부분의 신경세포를 제거하면 쥐는 호흡은 계속하지만 한숨을 쉬지는 않는다. 이 호흡의 리듬을 통제하는 신경세포들은 뇌의 평온과 각 성 사이의 균형을 조절하는 일에도 참여한다. 전뵈트징어복합체 신경세포의 유전자 조각 하나를 없애면 쥐의 호흡 리듬에는 영향을 주 지 않지만 평온한 행동이 늘어나며 각성 상태가 줄어든다. 청반.ocus coeruleus의 노르에피네프린 조절도 담당하는데 청반은 뇌에서 집중력 과 각성, 두려움을 담당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인간의 호흡 과 감정, 집중력은 이 작은 전뵈트징어복합체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 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호흡의 빈도를 조절하면 불안한 감정과 집중 력 있는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 도호대학교에서는 건강한 참가자들에게 복식호흡으로 1에서 4까지 세는 동안 공기를 복강으로 깊이 들이마신 뒤 다시 천천히 내뱉게 했다. 참가자들이 호흡에 집중하고 20분이 지나자 그들의 부 정적인 기분은 줄어들었고, 기분을 좋게 하는 세로토닌이 늘어났다.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자신의 호흡에 주목하자. 만약 호흡의 상태가 얕고 빠르다면 복식호흡을 통해 불안한 기분도 금세 나아질 것이다.
- 양극성정동장애의 주요 증상은 엄청난 감정의 기복과 에너지 변화다. 양극성정동장애 환자는 감정이 극도로 흥분된 상태인 조 증기와 감정이 극도로 가라앉은 상태인 울증기가 며칠에서 몇 주 까지 이어지며, 감정 변화의 폭도 매우 크다.
조증 상태에서는 에너지가 넘쳐나 이런저런 활동에 계속 참 여하며, 잠을 자거나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지만 피로 감을 느끼지 않는다. 조증기에 있는 환자는 잠을 자는 건 시간 낭 비라고 생각한다. 또한 매우 흥분된 상태에 빠져 있으며, 자존감도 높고, 스스로 못하는 게 없다고 믿기도 한다. 그들은 말하는 속도 가 매우 빠르며, 한 가지 일에 관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런 극도의 흥분상태에서는 자제력과 판단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며, 감정이 쉽게 격해진다. 차를 위험하게 몰거나 미친 듯이 쇼핑을 하기도 하며, 사소한 일에도 크게 화를 내거나 공격적 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 중에는 시 쓰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간혹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조증기에 있는 환자의 전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가 사고의 비약이기 때문이다. 조증 상태에서는 문학 적 아이디어가 샘솟고, 머릿속에 아무 상관없는 생각들이 짧은 시 간 안에 마구 떠오른다. 이런 생각들은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풍부한 창의력이 담겨 있어 시의 형식으로 표현하기 좋다.
- 최근 들어 '장뇌축Gut-Brain-Axi 이 뇌에 끼치는 영향이 뜨거운 화제다. '제2의 뇌'로 불리는 장은 온몸에 있는 세포 수의 10배가 넘는 미생물을 가지고 있다. 장뇌축 이론에 따르면 이런 미생물의 활동이 대뇌의 활동에 영향을 끼친다. 장 미생물의 대사물질이 면 역 및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이런 반응들이 장뇌축을 통과해, 다시 말해 순환계와 미주신경을 거쳐 뇌로 올라가 영향을 끼친다. 이런 뇌의 변화 과정에서 신경세포의 세포막 투과성과 산소분압이 신 경세포의 항상성homeostasis (생명체가 생존에 필요한 안정적인 상태를 능동적으로 유지하는 과정 - 옮긴이)에 영향을 끼쳐 뇌의 정상적 기 능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양극성정동장애 환자의 감정 폭이 유난히 큰 것은 아마도 뇌의 특정한 신경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소크생물학연구소의 프레드 게이지Fred Gage 교수 연 구팀은 2015년 다능성줄기세포 plutipotent stem cell 기술로 양극성정 동장애 환자의 피부세포를 해마에 있는 치아이랑 부위의 신경세포와 비슷한 세포로 전환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이런 신경세포 들의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진핵세포 속에 들어 있는 소시지 모양 의 알갱이로 세포의 발전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작은 기관 - 옮긴이) 대사에 이상이 생겼으며 외부의 자극에 더 민감해졌다.
- 텍사스대학교 휴스턴 보건과학센터의 가브리엘 프라이스 Gabriel R. Fries 연구팀은 양극성정동장애 환자와 그 형제자매 그리 고 건강한 사람들의 혈액 샘플을 비교해 각 사람의 세포 DNA에서 생물학적 나이와 관련된 텔로미어 telomere(유전자 끝에 붙어 세포를 보호하는 말단 영역 - 옮긴이)의 길이, 세포 속 DNA의 메틸화 정 도와 미토콘드리아 DNA의 복제수copy number(DNA 가닥에 실제 존 재하는 특정 부분의 유전자 또는 염색체가 복제된 숫자 - 옮긴이)를 포함한 생체표지자 biomarker(질병이나 노화 따위가 진행되는 과정마다 특 징적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 지표가 되는 변화 - 옮긴이)를 분석했다. 
이 세 가지 생체표지자는 각각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DNA 말단의 텔로미어 길이는 사람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짧아진다. 그 때문에 텔로미어의 길이는 흔히 세포의 노화 정도를 판단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텔로미어의 길이가 지나치게 짧아지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을 할 수 없어 몸이 조직을 보충하거나 대체하기 어려워지며, 만성 질병에 걸리기 쉬워진다. 중년에 텔로미어가 짧 아지면 심혈관질환, 당뇨병, 치매, 암은 물론이고 다른 노화와 관 련된 질병에 더 빨리 걸릴 수 있다. 
세포 속 DNA의 메틸화 정도도 생물학적 노화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또 다른 표지로, 후성유전학 생체시계 epigenetics circadian pacemaker 라고도 부른다. 물론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세포는 똑같은 유전물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기관의 세포는 표현형식과 기능이 분화되어 있다. 이를테면 심장세포와 피부세포는 똑같은 유전물질을 갖고 있지만 각각의 외형과 기능이 확연히 다르다. 똑같은 유전물질이라도 유전자의 메틸화 정도에 따라 발현되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세포 속 DNA의 메틸화 정도 가 생물학적 나이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및 사망률과도 뚜렷한 상 관관계가 있다고 밝혀졌다. 
마지막으로 미토콘드리아 DNA의 복제수도 생물학적 나이 와 관련이 있는 생체표지자다. 미토콘드리아는 주로 진핵세포Arrariotic cell (핵막으로 둘러싸인 핵을 갖는 세포로 소포체, 골지체,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등과 같은 다양한 세포내 소기관이 있다 - 옮긴이)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공급을, 진핵세포는 숙주가 돼 미토콘드리아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준다. 따라서 미토콘드리아에게 문제가 생기면 세포가 에너지를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해 심하면 진핵세포가 사멸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미토콘 드리아의 DNA 복제수는 세포의 생체시계와 관련이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체세포의 미토콘드리아 DNA 복제수도 많다. 과학자들은 이런 사실로 추측하건대 미토콘드리아 DNA의 복제수 또한 생물학적인 노화 정도의 표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 전기경련요법은 심각한 정신질환 치료에 효과적인 수단이다. 특히 난치성우울증이나 양극성정동장 애, 조현병, 강박장애 등을 치료할 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선 호하는 치료수단이다.
20세기 초반 전기경련요법이 공포의 치료수단으로 묘사된 이유는 당시에는 전기충격의 강도가 커서 환자가 강한 통증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자의 통증을 완화해줄 수단이 부족해 인도적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자극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 는 환자를 마취한 상태에서 전기충격을 주기 때문에 환자가 통증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정신이 돌아오면 오히려 기분이 평화롭고 머리가 맑아진 느낌을 받는다.
전기경련요법이 치료에 효과적인 이유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뇌가 갑작스러운 전류의 작용으로 빠르게 조정에 들어가 내부의 생물학적 균형 상태를 회복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뇌에 들어오는 전기자극을 통해 신경활동과 분비의 균형이 새롭게 이뤄지는 것이다.
- 신경펩타이드Y neuropeptide 는 뇌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하는 호르몬 가운데 하나로, 제어 시스템과 같은 작용을 한다. 스트레스 를 받을 때 뇌의 편도체와 전전두엽, 해마, 뇌간이 강한 반응을 보 이는데 이때 신경펩타이드Y가 마치 스위치를 내리는 것처럼 뇌에 서 '끊임없이 울리는 경보음을 끊어버린다. 이 제어 시스템의 기 능이 회복탄력성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신경펩타이드Y에 관한 연구는 2000년에 비로소 처음 시작됐 다. 당시 미국 특수부대 병사들은 감옥에 갇히고, 식량을 빼앗기 고, 잠을 못 자고, 격리된 채 강도 높은 심문을 받는 등 실제 전쟁과 유사한 실전 훈련에 참여했다. 훈련이 끝나고 몇 시간 뒤에 과학자 들이 병사들의 혈액 샘플을 검사한 결과, 신경펩타이드Y의 수치가 심문 과정에서 빠르게 올라갔음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점은 특수부대 병사들의 신경펩타이드Y 수치가 일반 병사들보다 더 높았다는 사실이다. 강한 제어 시스템이 뇌의 응급경보를 꺼 감정 반응을 낮춤으로써 고강도 시험을 받을 때 물러서지 않고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도파민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행복 호르몬 으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몇몇 글에서는 도파민을 삶을 살아야 할 유일한 이유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은 운동, 음 식, 성, 명예를 통해 얻어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처럼 말하기도 했 다. 하지만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 럼 그렇게 대단한 행복 호르몬이 아니다.
도파민의 효과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도파민은 우리의 보상 회로에 작용해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뇌가 보상을 예상하 고 거기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쉽게 말해 도파민의 효과 는 '당신이 뭔가를 원하게 하는 것'이며, 당신이 나서서 더 많은 보 상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도파민은 사실 행복과 큰 관련이 없다. 중국의 영화감독 가오샤오쑹高松은 “많은 사람이 이상과 욕망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상은 떠올리 면 행복한 것이며, 욕망은 떠올릴 때 고통스러운 것이다”라고 말 했다. 이 욕망이 바로 도파민의 분비로 생긴다.
1978년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Drug Abuse, NIDA의 로이 와이즈Roy Wise 박사는 항정신성약물로 실험용 쥐의 뇌에 있던 도파민을 제거했다. 그러자 이 실험용 쥐는 맛있는 음식 과 중독을 일으키는 약물에 욕심을 내지 않았으며, 보상을 얻기 위 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다. 이후 이어진 수십 년 동안의 연구에 서 과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현상을 종종 관찰했다. 그 때문에 사 람들은 줄곧 도파민이 기쁨과 행복 같은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 하지만 미시간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켄트 베리지kent C. Berridge 는 연구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결과를 발견했다. 베리지는 동물이 즐거움을 느낄 때 혀로 입술을 핥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행동은 실험용 쥐뿐만 아니라 원숭이나 사람의 아기에게서도 관찰되는, 배가 고파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 하는 행동과 비슷했다. 이어서 켄트 베리지는 신경독소를 이용 해 도파민이 분비되는 쥐의 중추를 손상시켰다. 이렇게 해도 쥐들 이 맛있는 음식을 보면 혀로 입술을 핥는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 었기 때문이다.
실험 결과 쥐들은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자 더 이상 먼저 나서서 음식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여전히 혀로 입술을 핥았다. 반대로 전기자극으로 쥐의 도파민 분비를 늘리니 쥐는 필사적으로 먹을 것을 찾았으며 평소보다 더 많이 먹 었다. 다만 혀로 입술을 핥는 행동은 더 늘지 않았다. 이 결과가 뜻하는 바는 도파민이 동물을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욕망을 만들 어내는 데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도파민의 분비는 사람들이 뭔가 하려는 동기를 강화해준다. 실제로 도파민의 분비량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기 직전에 가장 많이 늘어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실험용 쥐의 복측선조체에 도파민을 직접 주사하자 쥐는 어떤 일을 하려고 평소 보다 두세 배 더 열심히 노력했다. 이렇게 동기를 조절하는 도파민 의 작용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다. 이를테면 먹을 것을 찾거나 배우자를 찾거나 새로운 기능을 배우는 것 등이 그런 일이다. 그런데 도박을 하는 과정에서도 뇌 속 보상회로는 활 성화되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불러온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어떤 일에 성공했을 때 뇌의 신경회로 는 도파민을 빠르게 분비해 성취감을 느끼게 하며, 그 덕에 사람들은 다음번에도 그 일을 할 동력을 얻는다. 성공에 가까운 실패의 상황에서도 도파민은 많이 분비된다. 진화적 관점에 따르면 성공할 가능성이 보일 때 더 노력해 성공을 거머쥘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도박의 성패는 때마다 다르며, 더 노력한다고 해 서 항상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승리를 놓치 면 도파민이 다량으로 분비되면서 도박을 더 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만든다. 승리에 가까운(사실은 패배지만) 상황이 이렇게 반복적으로 도파민의 분비를 자극하면 도박중독에 이르며, 결국 회복할 수 없는 경제적 손실을 입고야 만다. 쉽게 도박중독에 걸리 는 사람은 뇌의 보상회로가 보상에 유난히 더 민감한 반면 손실에 는 매우 무딘 편이다. 그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즐기며 경제적인 손실이 커져도 손을 떼지 못한 채 판을 더 키운다.
- 중독의 규칙을 정확히만 사용하면 유익한 지식을 배우고 적응 기능을 익히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것은 공부할 때 도파민의 분비량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을 배우는 것은 밥을 먹거나 섹스를 하고, 무언가를 수집하는 등의 원시적인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는 생존 행동들과 달리 일단 만족된다고 바로 보상회로 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한 게임과 달리 조금만 노력해도 성과를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그에 걸맞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공부의 결과에 비현실적인 기대 (지식을 배우는 것 자체에 만족하기보다 높은 성적을 받겠다는 식 의)를 품고 있다면 공부가 당신에게 가져다줄 보상은 당신의 예측보다 낮을 수 있으며, 도파민 분비량도 많지 않아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힘을 얻지 못하기 쉽다. 하지만 당신이 배움의 결과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것 자체를 보상으로 여긴다면 좀 더 쉽게 공부에 '중독'될 수 있다. 새로운 지식과 기능을 배우는 것은 생존 진화에서 개체에 유익하며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지식과 기능을 배우는 것에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고통스럽다면 이는 당신이 시도한 배움의 난이도가 당신의 실제 능력 또는 지식에 대한 당신의 기대와 너무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영어를 처음 배 운다면 모든 단어와 문법 하나하나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 정이기 때문에 뇌에서는 이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구축해 야 하므로 도파민 분비량이 적다. 하지만 당신의 뇌가 비교적 탄탄 한 학습회로를 구축했다면 이후에 거기에 뭔가를 쌓아올리는 것 은 상대적으로 간단해진다. 이럴 때 당신의 학습 속도가 기대한 바 에 부합하면서 보상의 예측 오류가 줄어들고 도파민 분비량이 늘어난다. 그럼 당신은 더 힘을 내서 공부하게 되고, 공부를 할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 중독에 걸릴 수 있다.
- 원하는 무언가를 얻는 것이 언제나 당신에게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원하는 것과 만족하는 것은 사실 서로 다른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도파민은 사람에게 '원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끊임없이 바라게 한다. 그에 비해 행복은 만족하는 것으로 도파민과는 큰 관계가 없다.
- 정리하자면 전전두엽과 복측선조체, 뇌섬엽, 전측대상회anterior cingulate 등으로 이뤄진 도파민 보상회로는 강박장애와 매우 큰 관련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충동적이고 잘못된 행동의 감시 를 담당하는 전방대상피질이 있는 전측대상회가 강박행동과 관련이 크다. 이 영역이 활성화돼야 일이 잘못되면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박장애 환자는 이 신호를 받고도 스스로 '완벽' 하다고 느낄 때까지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 그들은 전측대상회의 기능 이상으로 자신의 행동과 실제 피드백 사이의 오차를 지나치게 어림짐작해 하나의 일을 이미 여러 번 정확히 반복했음에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든지 '오류가 있다고 느 껴 얼른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은 강박장애 환자 를 불안하게 만들며, 이런 감정상태가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안감을 담당하는 편도체도 뇌 회로의 압박에 동참한다. 결국 강 박장애 환자는 오랫동안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 정신질환의 증상은 주로 감정과 인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 다.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에 문제가 생기면 우울증이나 불 안장애, 강박장애, 양극성정동장애 등에 걸린다. 또한 인지를 담당 하는 영역에 문제가 생기면 두 가지 증상이 나타나는데, 인지능력 이 떨어지거나 정상적인 인지 방식에 왜곡이 생겨 나타나는 환각 과 망상이 바로 그것이다. 환각이란 존재하지 않는 걸 보거나 실재 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걸 말하며, 망상이란 머릿속에 현실과 맞지 않는 왜곡된 생각이 나타나는 걸 말한다. 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는 종종 누군가 뒤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걸 봤다'거나 누군가 자신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걸 들었다'고 한다. 때로는 자기 머릿 속의 소리가 “넌 정말 쓸모없어”라고 말하는 걸 듣거나 자신이 하 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한다고 한다. 이럴 때 조현병 환자는 그 상 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한다.
- 만약 당신이 환각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방법을 한번 시도해 보라. 몸 뒤쪽에 촛불을 희미하게 켜놓고 커다란 거울 앞에 서서 조명을 끈다. 이 상태로 1분 정도 거울 속 자신을 계속 바라보면 희 한하게도 자기 얼굴이 비뚤어져 보이거나 아예 다른 얼굴로 바뀌 어 보일 수도 있다. 빛이 부족하면 뇌가 온전한 얼굴의 특징을 인 식하지 못해 착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각적 착각이 벌어질 수 있는 확률은 70퍼센트에 이른다. 이는 시각장애인이 쉽 게 환각을 겪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충분한 객관적 단서가 없이 무언가를 볼 때 뇌는 내부의 단서만 이용하여 주관적으로 예 측하기 쉽다. 그러므로 당신이 무섭게 생각할수록 무서운 걸 볼 가능성도 높아진다.
- 사람 몸에 있는 DNA 중 8퍼센트는 바이러스로부터 왔으며, 그중에는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라는 것이 있다. 모든 생물은 DNA에서 RNA를 만들고 RNA에서 단백질을 생성한다. 그러나 RNA에서 DNA를 생성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레트로바이 러스다. 이 바이러스는 역사가 매우 오래돼 수백만 년 전부터 우리조상들의 DNA에 녹아들어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DNA 속 레 트로바이러스 대부분의 후대는 이미 변이로 인해 더 이상 발현되 지 않고 침묵에 빠졌다. 다만 이런 레트로바이러스의 남은 성분을 "내인성레트로바이러스endogenous retrovirus'라고 부르는데 이 중에 아주 작은 일부가 인간 면역계의 일부로 진화했으며, 외부 바이러 스의 침입에 저항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침묵하는 내인성레트로바이러스는 휴화산과 같아서 특정한 환경요인에 따라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 이들을 활성화하는 요인으로는 변이와 약물, 바이러스 감염 등이 있으며, 실제로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뇌에 정신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체외에서 조현병 환자의 세포를 배양한 결과 세포 속 내인성레트로바이러스의 발현 정도가 일반인보다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 연구와 같은 결과가 나온 다른 연구가 없 어 아직 내인성레트로바이러스가 조현병 발병의 원인이라고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다.
- 의사의 의술이 뛰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조현 병과 양극성정동장애에 관한 현재의 진단 기준 때문인데, 이 두 질 환은 너무 많은 공존질환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조현병과 양극성정동장애는 모두 공통적인 여러 증상으로 이뤄진 증후군'이다. 조현병은 사실 환각과 망상, 기분장애, 사고장애 등의 증상이 함께 뒤섞여 있는 질환으로 치료가 힘든 각종 증상의 집합'이라 불러 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게 된 원인은 아마도 뇌의 여러 발달 단계 에서 유전자의 발현과 환경 스트레스 요인이 함께 만들어낸 영향때문일 것이다.
- ADHD의 특징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쉽게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능력과 시간 관리 능력이 부족한 것 은 공부와 일을 차근차근 진행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인 다. 하지만 이런 심리와 행동의 특징에도 좋은 점이 있다. 예를 들 어 모험을 좋아하는 특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일에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게 하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 성공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공상을 좋아하는 특징은 더 풍부한 창의력을 안겨줘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 시간을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 는 것 역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가족과 친구들이 이해해줘야 할 문제지, 꼭 바꿔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원흉일까, 영웅일까?
오늘날까지 알츠하이머병의 발병에 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 은 다음과 같다. 뇌 신경세포에는 본래 정상적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있는데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이 단백질에 잘못 된 접힘 현상이 나타나면 뇌 신경세포 바깥에 단백질 구조물인 아밀로이드반이 쌓인다. 이로 인해 신경세포에 있는 단 복길들이 서로 뒤엉키게 되고, 연이어 면역 및 염증 반응이 일어나 로서 결국 신경섬유가 손상되고 신경세포가 사멸한다. 이렇게 신경세포의 감소와 신경망의 위축으로 사람의 인지능력이 크게 쇠퇴하는 것이다. 이 가설 때문에 오랫동안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지난 수 십 년 동안 제약회사들이 베타아밀로이드를 겨냥해 많은 약을 개 발했지만 임상실험에서는 어느 것도 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알츠하이 머병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알츠하이머병에 대항하는 데 도움을 주는 숨은 영웅이라는 반전의 연구 결과가 제기됐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은 뇌 신경세포의 베타아밀로이드 단 백질과 선천성 면역계의 핵심인 항감염성 단백질, 항균펩타이드 antimicrobial peptide LL-37이 구조와 기능 면에서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 신기한 점은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항균 효 과가 때로는 항생제의 일종인 페니실린보다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이뤄진 많은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베타아밀로이드 단 백질이 일종의 항균펩타이드이며, 진균과 세균이 신경세포 조직 을 감염시키지 못하도록 한다고 확신했다. 실험용 쥐의 뇌에 살모 넬라균을 감염시켰더니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세균 바깥으로 층층이 쌓여 병원체의 침입을 막고 뚜렷한 아밀로이드반을 형성 했기 때문이다. 마치 아주 작은 물방울이 먼지 입자에 달라붙어 빗 방울을 만들거나 민물조개의 탄산칼슘이 모래알에 붙어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병을 미생물 감염과 유전적 감수성(일종의 유전력 - 옮긴이)이 함께 빚어낸 결과라고 예측했다. 뇌가 알 수 없는 미생물에 감염됐을 때 베타아밀 로이드 단백질이 미생물 주위에 모여들어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 다(그러나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덩어리 속에 침입한 미생물이 반드시 있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병균이나 세균, 진균에 대항하거나 유전자 변이로 쌓이는 과정에서 아밀로이드반을 형성해 연쇄적으로 뇌의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사실 질병에 저항하는 과 정에서 생기는 부산품일 뿐이며, 그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이 아닐 수 있다.
- 그렇다면 절식이 어떻게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걸까? 몇몇 실 험에 따르면 동물은 70퍼센트 정도 배가 부를 때 mTORmammalian target of rapamycin (포유류 라파마이신 표적단백질)이 억제되면서 체 내세포의 자기포식autophagy 이 강화된다. 이 과정에서 오래되고 망가진 세포의 부속품을 청소하고 몸 안의 활성산소를 줄여 DNA와 다른 기관들이 활성산소의 공격을 받아 손상될 가능성을 낮춘다. 이를 통해 기관과 유기체는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2년 넘게 음식의 열량을 평소의 15퍼센트를 줄이니 노화와 관련된 생체표 지자 수치가 뚜렷하게 개선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해당 실험 참가자들의 정신상태와 생활의 질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
하지만 수명을 연장하고 뇌의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는 먹는 음식의 열량을 줄일 뿐만 아니라 식단의 구성도 조절해야 한다. 
- 우리의 뇌는 노화에 한 가지 보상을 주는데, 노인들은 선택적 으로 나쁜 기억을 잃어도 보통 더 행복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캠퍼스 연구진은 기억력이 떨어지는 노인의 기억 가운데 긍정적 정보의 양이 중성적 정보의 양보다 훨씬 많다는 걸 발견했다. 그에 비해 기억력이 좋은 노인은 중성적 정보를 훨씬 잘 기억했다. 이런 긍정적 경향'은 노년의 기억이 쇠퇴하는 것에 대 한 일종의 보상일 것이다. 연구진은 나이가 먹을수록 보상과 관련 된 신경망의 변화로 뇌가 긍정적 정보를 선택하고, 긍정적 사물과 행복한 감정에 집중하게 한다고 예측했다.
실제로 fMRI 촬영을 통한 연구에 따르면 노인은 즐거운 체험 에 집중할 때 뇌에서 감정을 책임지는 편도체와 의사결정을 담당 하는 전두피질을 연결하는 회로의 활동이 젊은 사람보다 더 강해진다. 노인이 즐거운 체험에 더 집중한다는 뜻이다. 비슷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노인은 긍정적인 사진에 더 쉽게 집중했으며, 부정적인 사진에는 시선을 잘 두지 않았다. 10년 전 일을 떠올릴 때도 노인들은 그 시절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바로 '노년의 긍정효과'라고 한다. 이런 효과는 노인뿐 아니라 불 치병에 걸린 젊은 환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생명이 연약해질 때 삶의 긍정적인 일과 추억에 집중하며, 부정적 인 정보를 선택적으로 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보통은 물리적 나이를 기준으로 일이나 가정, 은퇴 과정을 계획한다고 했을 때 자신의 예상과 다른 노화 속도는 슬픈 일인 게 분명하다. 건강한 생활방식을 선택해 뇌가 노화에 맞서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알츠하이머병의 침입을 잘 막아낼 수 있으며, 아예 알츠하이머병의 발병을 죽음 뒤로 미뤄 본인의 인생을 계획대로 살 수 있다.
- 자신의 마음속 사회적 위치를 새롭게 정하는 것도 항노화에 효 과가 있다. 벌들은 젊을 때 유충을 돌보는 일을 하다 어느 정도 나이 가 들면 밖으로 나가 꿀을 따는 일을 하는데, 더 나이가 들어 꿀을 딸 수 없게 되면 금세 늙어버린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나이 많은 벌 들에게 유충들을 돌보는 일을 다시 하게 했다. 그러자 그들의 뇌에 항노화 단백질이 많이 분비되기 시작했으며, 학습능력도 크게 향상되고 뇌 자체가 많이 젊어졌다. 이런 벌들의 사례를 본받아 노인들도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나 자신이 젊을 때 하던 일을 다시 해보라고 추천 하고 싶다. 일부러라도 자신의 역할을 새로이 바꾸면 노인의 뇌와 몸 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여행을 많이 다니거나 아 이를 돌보는 일을 하면 노인의 뇌 기능이 긍정적으로 조절돼 훨씬 젊어진다.
- 그들의 뇌가 충동적인 이유 
과학자들이 사이코패스 살인범들의 뇌를 fMRI로 촬영한 결과,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가 있는 측두엽의 앞쪽 등의 뇌 영역이 보통 사람과 비교해 뚜렷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안와전두피질은 도덕 적 가치 판단과 충동 억제, 복잡한 의사결정, 위험에 따른 영향, 보 상과 처벌에 대한 민감성 등을 맡고 있다. 또한 측두엽의 앞쪽은 기억의 선택을 맡고 있다. | 이 두 영역의 보편적인 기능이 손상되면 이 영역들과 연결된 뇌 신경망들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신경망들은 감정의 인지, 의사 결정, 인간관계 등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사회적 기능과 관련돼 있다. 이런 신경망이 손상된 사이코패스는 보통 사람보다 충동적이 며 도덕적인 판단력도 부족하다. 그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충돌이 일어나면 쉽게 과격한 반응을 보이며 폭력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의 행동에 불합리한 점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충동이나 남에게 입힌 상처에 대해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 전사유전자란 모노아민산화효소A monoamine oxidase A, MAO-A생산에 관여하는 MAOA 유전자의 한 형태로, 이 MAO-A효소를 덜 생산되게 한다.  전사유전자는 X 염색체에 위치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에 영향을 주는 효소의 부호화에 영 향을 끼치는데, 이 효소는 태아의 대뇌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그 런데 전사유전자는 거의 남성에게만 영향을 끼친다. 전사유전자 를 가진 남성은 일반인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지며, 쉽게 화를 내고 충동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또한 전사유전자는 뇌 속 MAO-A 효소를 줄여 세로토닌과 다른 신경전달물질이 태아의 뇌에 지나치게 많이 쌓이게 한다. 대뇌를 평온하게 만드는 세로토닌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면 언뜻 좋을 것 같지만, 과도한 분비는 발달 과정에서 뇌가 세로토닌 등에 점점 둔감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분노의 스위치를 꺼야 하는 적정한 때에 반응하지 않아 지속적으로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 사이코패스와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사람의 공통점은 사회의 관습과 규칙에 속박당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 을 억제하지 못하는 성향은 뇌의 도파민 시스템과 관련이 있는데 이 시스템은 새로운 사물을 찾고 보상을 바라는 경향과도 연관이 있다. 다시 말해 사이코패스와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사람은 도파 민 분비량이 많아 보통 사람보다 새로운 자극을 좋아하고 신기한 것과 보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더불어 그들은 보통 사람과 달리 모험이나 처벌을 그다지 꺼리지 않는다.
필리핀 리샬대학교의 애드리안 갈랑 Adrianne Galang 박사 연구 팀은 두 가지 연구를 통해 사이코패스와 창의력 사이의 관계를 분 석했다. 갈랑 박사는 먼저 온라인에서 500명의 필리핀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들의 창의력과 사이코패스 정도를 살펴봤다. 다크 트라이어드 테스트Dark Triad Test를 실시했는데, 이 테스트로 마키아벨리즘 Machiavellism (다른 사람을 조종하기 좋아하 는 권력주의의 경향),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 결과 나르시시즘과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창의력과 확 실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애드리안 갈랑 연구팀은 또한 심리적 특징과 생리적 기초를 연계해 생물학적 측면에서 창의력과 사이코패스의 관계를 해석 하고자 했다. 연구진은 우선 93명의 대학생에게 창의력을 테스트 한 다음 인터넷 도박을 이용해 그들의 모험 성향을 확인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두 가지 카드게임 중 하나를 선택해 베팅해야 했다. 한 게임은 이기면 많은 돈을 따지만 지면 큰 손해를 봤다. 또 다른 게 임은 이겨서 벌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지만 져도 손해가 적었다. 실 험 참가자들 중 모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첫 번째 카드게임에 베팅 하기를 선택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전기피부반응'을 기록하 며 그들이 승리를 앞두고 있을 때 뇌의 각성 정도를 확인했다.
연구 결과 창의력을 측정하는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사람들은 게임에서 돈을 딸 수 있게 됐을 때 뇌의 각성 정도가 낮 았다. 다시 말해 창의력이 높은 사람은 단순히 돈을 딴다고 흥분하 지 않는다. 승률과 상관없이 모험심을 자극하는 일이어야 흥분한 다. 이런 특징은 창의력이 높은 사람과 사이코패스의 공통점이다.
- 두렵게만 보이는 사이코패스적인 특징은 길고 긴 진화의 역사에 서 어떻게 특정한 비율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앞서 말했듯이 다른 정신질환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어 떤 심리적 특징도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으며, 모두 뇌 에 정상과 질환 사이의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우리 뇌에서 나타 나는 수십 수백 가지 특징은 다양한 방향과 정도로 함께 결합돼 있 으며, 이런 결합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심리적 특징 또한 인류의 정신적 다양성과 종의 생태적 다양성을 위해 나 름의 힘을 보탰으며, 다양한 생존환경에서 서로 다른 적응력을 발 휘한다.
사이코패스적인 특징도 이런 특징 중 하나다. 실제로 어떤 심리적 특징도 환경을 벗어나 혼자 존재하는 법이 없다. 같은 심리적 특징이라 해도 환경에 따라 완전히 상반되는 효과를 보이기도 한 다. 이를테면 극단적인 사이코패스는 주변의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지만, 전쟁터에서는 충돌과 위협에 두려움 없이 맞서는 용감 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은 권력과 자원을 더 손쉽게 얻는다. 인류 역사에서 종종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특수 한 시기 덕분에 진화 과정에서 사이코패스적인 특징이 살아남았 을 뿐만 아니라 더욱 기세를 떨칠 수 있었던 이유다. 전사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중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은 평화로운 시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악마가 될 수 있지만 전쟁 시기에 살았다면 영웅이 됐을지도 모른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정신질환들과 달리 극단적인 편이어도 사 회 적응성을 가질 수 있다. 극단의 사이코패스적인 특징을 가진 사 람이라 해도 인지능력이 좋고 어려서부터 안정적이고 따뜻한 환 경에서 자랐다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될 수 있으며,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특징도 그가 사회에 녹아드는 데 아무 영향을 주 지 않는다. 그에 비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강박장애 같은 정신질 환은 환자의 사회 적응 능력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며, 이런 환자 주변의 사람들까지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할 수 있다.
- 동물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모든 동물이 잠을 자는 건 아니다. 오직 신경계가 복잡한 동물만이 잠을 자는 행위를 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단세포동물(짚신벌레 등)이나 신경세포가 없는 동물 (해면 등), 중추신경계가 없는 동물(해파리 등)이 수면 행위를 하 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잠의 가장 원시적인 기능은 발육을 촉진하는 것이다. 예를 들 어 하등동물인 선충은 탈피를 하기 전에 잠을 자는데, 만약 어린 초파리에게 잠을 못 자게 하면 장기적으로 인지와 행동에 문제가 생긴다. 사람의 경우 자궁 속 태아의 수면은 뇌 발육의 중요한 단 계이며 아기의 수면의 질이 성인보다 훨씬 좋다. 사람들이 잠을 잘 자는 걸 보고 '아기처럼 잔다'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동물의 진화 초기에 잠은 외부환경의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몸 을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선충은 잠을 자고 난 뒤 열이나 냉기, 삼투압 등 환경 스트레스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으며, 조직 손상의 회복도 촉진할 수 있다. 파리도 잠을 많이 자야 세균 감염에서 회복될 수 있다. 또한 사람도 병원체에 감염됐거나 면역계에 응급 반응이 있을 때 잠을 자는 게 좋다. 실제로 감기에 걸리면 유난히 더 자고 싶은데 이때 2~3일 잘 자고 나면 몸 상태가 한결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다. 
 동물들은 뇌가 복잡해지고 진화하면서 학습과 기억, 선택적 주의 등 고급 인지능력을 갖추게 됐다. 새로운 수면의 기능도 내놓 았는데 바로 잠을 잘 때 뇌의 신경가소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잠을 자면 뇌가 회로를 수정하는 능력을 강화해 정보를 빠르게 배우고 조합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 20세기부터 의학계는 줄곧 혈액뇌장벽 때문에 뇌와 몸은 상대적으로 독립된 두 개의 기관으로 존재하며, 뇌에는 림프계가 없다고 믿었다. 이런 관점은 의학 교과서에 100년이 넘게 등장했다. 만약 당신이 2015년 이전에 출판된 의학서를 살펴본다면 뇌에는 림프계가 없다'라는 서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5년 미 국 버지니아대학교의 조너선 키프니스Jonathan Kipnis 연구팀이 이 문장을 완벽히 새롭게 써냈다. 키프니스와 그의 동료들은 실험용 쥐 뇌막에 대한 신경 영상 연구를 통해 뇌와 척수의 뇌막에 림프관 망이 폭넓게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림프관망은 뇌척수 액과 림프세포를 목 부위의 림프절까지 수송하는 역할을 맡고 있 었다. 뇌에도 림프계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로체스터대학교 의료센터 연구팀은 실험용 쥐가 자는 동안 뇌세포 사이의 공간이 60퍼센트 정도 늘어나며, 뇌의 림프계 가 활동을 시작해 쌓여 있던 독소를 뇌척수액을 통해 빠르게 배출 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잠의 이 독소 배출 기제는 알츠하이머 병의 예방과도 관련이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신경세포에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쌓이는 것은 신경세포의 자연사와 관 련이 있는데, 잠을 잘 자는 쥐의 뇌는 이런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병적 단백질을 훨씬 빨리 배출한다. 반면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병 적 단백질이 뇌에 정체되고 쌓여 신경세포의 기능과 건강에 영향 을 준다. 밤에 잠을 잘 자면 상쾌한 아침을 맞는 이유다.
- 자는 동안 일어나는 기억의 공고화는 단순히 하루 종일 겪은 일의 모든 구체적인 사항을 기억하는 게 아니다. 기억의 많은 구체적인 사항을 전체적인 개념으로 정리하 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한 다음, 이미 있는 신경 기억망으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이 창의적 재구성 과정에서 무의식중에 규칙을 찾아 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잠은 그날 겪은 새로운 경험과 뇌에 이미 저장돼 있던 경험이 고도로 요약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조합돼 우리의 인지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잠은 전날 뇌에 저장된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없애는 데도 도 움이 된다. 뇌의 신경세포 표면에는 나뭇가지의 가닥처럼 생긴 가늘고 작은 수상돌기들이 자라 있다. 사람이 많이 배울수록 이 수상돌기가 무성하게 자라나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된다. 그런데 우리 가 잠을 자는 과정이 이런 '나뭇가지들을 자르는 데 도움이 돼 중 요하지 않은 사소한 기억들을 없앨 수 있다.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과학자들은 잠을 잔 쥐의 뇌 속 수상돌기 숫자가 잠을 자지 않은 쥐들에 비해 18퍼센트나 줄어 있는 걸 발견했다. 다시 말해 잠을 자는 과정이 뇌 속 신경세포의 연결을 줄어들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상돌기 자르기는 무 작위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이뤄진다. 비교적 작은 수상돌기를 잘 라내고 눈에 띄게 길게 자란 수상돌기는 남겨둬 뇌 자원과 에너지 가 집중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잠을 잘 때는 감정 회복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 이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꾸는 시간은 20퍼센트에 이른다. 꿈을 꿀 때 불안과 관련된 노르에피네프린과 부정적 감정을 맡고 있는 편 도체의 활동이 억제되고 감정적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에서 전두 엽이 기억을 조합하면서 기억 속 감정의 강도를 낮춘다. 덕분에 우 리는 다음 날 일어났을 때 전날 강렬했던 감정이 하룻밤 사이에 뇌 에서 처리되면서 평온한 기분을 되찾는 것이다.
- 최근 멜라토닌이 수면보조제로 등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실 제로 많은 불면증 환자가 멜라토닌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보통 시차가 나는 곳으로 여행을 가면 뇌의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생 체시계가 혼란을 일으킨다. 이런 상황에서 새 시간대에 잠들기 전 에 멜라토닌을 먹으면 뇌의 수면리듬 조절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멜라토닌은 3교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수면리듬 조절에도 도움을 줘 낮에도 쉽게 잠들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멜라토닌의 효과 역시 한계가 있다. 멜라토닌의 주요 효과는 수면의 리듬을 조절하는 것으로, 심각한 불안감을 느끼거나 수면에 영향을 주는 신체적 질병이 있거나 장년의 불면증 환자에게는 효과가 없다. 게다가 멜라토닌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어지러움증과 두통, 구역질, 감정 변화, 대낮의 기면증 narcolepsy 등 여 러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불면증에 걸렸는데 멜라 토닌을 몇 주 동안 먹어도 효과가 없다면 주치의와 상의하기를 당 부한다.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는 멜라토닌 외에 최근에는 지속 형 멜라토닌도 출시되고 있어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서라면 수면 문제를 분명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람의 뇌간에는 청반이라는 작은 세포 무리가 있다. 이 작은 영역은 우리가 잠을 잘 때 근육운동의 억제를 맡고 있다. 이 영역 의 세포들이 손상을 입으면 운동 억제 효과가 사라져 꿈속에서 하 는 동작이 실제로 몸에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꿈에서 달리기를 하면 잠자리에 누워 발을 뻗을 수도 있으며, 꿈에서 싸움을 하면 팔을 휘두를 수도 있다. 뇌의 몇몇 퇴행성 질환 초기 증상도 이와 같다. 이를테면 파킨스병 환자는 운동장애와 관련된 주요 증상을 나타내기 몇 년 전부터 이미 뇌의 청반이 손상을 입은 상태라 꿈을 꾸며 손발을 휘두르기도 한다.
- 2014년 《셀cell)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해마의 신경세포 수와 재생능력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심각한 우울 증 환자는 해마의 신경세포 중 무려 20퍼센트가 죽음에 이르러 자 연스레 인지능력이 떨어진다. 여기서 인지능력이란 기억력과 집 중력, 판단력 등을 모두 포함한다. 또한 많은 우울증 환자는 증상 이 나아진 뒤에도 인지능력이 원래 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또한 편안한 상태에서 공부를 할 때 사람들은 주로 해마를 사용해 정보 를 처리한다. 이런 기억방식은 간단하면서도 기억이 오래간다. 하 지만 불안한 상태에서 공부할 때는 선조체를 활용하는데, 잠재의식 상태에서 짧은 시간 안에 직감적으로 지식을 모아 분석하므로 기억이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 모든 기억이 꼭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한 번만 겪어도 평생의 기억으 로 남는다. 그렇다면 강렬한 감정과 관련된 기억은 왜 쉽게 기억되는 걸까? 이는 그 기억이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오래된 변연피 질(예를 들어 두려움의 감정을 활성화하는 편도체)을 활성화시키 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도체는 해마 근처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마 와 매우 가깝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 중대한 감정과 관련된 기억은 쉽게 부호화돼 뇌의 기억 중심으로 들어가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 외부정보가 뇌에 들어가 기억으로 바뀌는 과정도 매우 흥미롭다. 뇌에서 기억의 부호는 뇌파의 형식으로 구현된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양한 주파수와 진폭, 위상位相으로 부호화한 다음 각각 다른 신경세포에 저장돼 서로 복잡한 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기억 뇌파의 개별적 저장은 특정한 단백질의 다양한 3차원 접힘 구조로 이뤄지는데, 고기의 질을 좋게 하는 마블링처럼 많이 접힐수록 기억의 강도도 커진다. | 과학자들은 초파리의 뇌를 연구하던 중에 Orb2 단백질이 기 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단백질은 프라이 온 단백질과 비슷해 상황에 따라 형태를 바꿔 함께 모인다. Orb2 단백질을 억제하면 초파리는 잠시 '기억을 잃는다. 또한 Orb2 단 백질이 더 빨리 모일수록 기억이 만들어지는 속도도 빨라진다. 이 단백질이 모여 장기기억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람의 뇌에도 비슷한 단백질이 있는데 이를 CPEBcytoplasmic polyadenylation element binding단백질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CPEB 단백질과 Orb2 단백질의 작용이 비슷하기 때문에 CPEB 단백질도 기억과 관련이 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 뇌에 저장한 기억을 다시 찾아야 할 때마다 뇌는 어떻게 일할까?
뇌과학자들은 해마 속 중요한 신경세포들이 검색 키워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해마의 검색 키워드가 활성화돼 대 뇌피질에 저장된 장기기억을 샅샅이 뒤져 필요한 기억을 찾아내 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가지 일이 일어난 시간의 간격이 적으면(6시간 정도) 기억은 기억을 저장하는 신경세포군 하나에 겹쳐져 있다. 반면 두 가지 일이 24시간 이상의 시간 차를 두고 일어났다. 면 이 일들은 완전히 다른 두 신경세포군에 저장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일을 떠올릴 때 기억은 새로 수정되기 일 쑤다. 그래서 사람이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컴퓨터에 저장돼 있 던 정보를 찾는 것과 다르다. 당신이 어떤 일을 떠올릴 때 뇌 신경 세포에서 기억의 저장을 담당하는 단백질은 다시 분해하고 재합 성된다. 다시 말해 기억 단백질이 다시 안정적 구조를 회복했을 때 원래의 기억은 이미 새로 고쳐진 다음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떠 올리는 횟수가 많을수록 뇌에서 이 일의 모양은 처음의 상태외는 거리가 멀어진다. 형사사건에서 증인이 하는 증언이 바로 그런 예다. 경찰이 증인에게 현장에 있던 사람이나 일을 떠올려보라며 여러 차례 묻다 보면 어떤 암시로 증인의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그렇게 반복적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최초의 기억이 왜곡돼 증언이 실제 상황과 차이가 생긴다.
- 경두개전기자극이 뇌의 신경가소성을 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 라 학습능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2016년 에 발표된 이탈리아 사쿠로쿠오레가톨릭대학교 마리아 비토리아 포다 Maria Vitoria Podda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경두개전기자극으로 실험용 쥐의 뇌를 20분 동안 자극하자 쥐 해마의 신경세포 가소성과 기억력이 뚜렷이 향상됐으며, 그 효과가 일주일이나 유지됐다. 전기자극이 뇌세포를 활성화시키자 뇌유래신경영양인자도 분비되었다.
과학자들은 사람의 몸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발견했다.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자신만의 안정된 리듬에 따 라 다른 주파수에 진동한다. 그런데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한 연구팀은 경두개전기자극을 통해 뇌의 여러 영역에 동시에 전 기자극을 줌으로써 작업기억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 다. 이 실험에서 세타파가 나오는 주파수 구간의 전류를 서로 다른 뇌 영역 두 곳으로 동시에 흘려보내자 실험 참가자들의 기억력 테 스트에 대한 반응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이는 그들의 단기기 억 능력이 강화됐다는 뜻이다. 이 방법을 현실에서 응용하면 모임 에서 새로운 사람의 이름을 외우거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 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뇌가 주변 환경에서 새로운 자극을 편애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진화 과정에서는 늘상 해왔던 익숙한 일보다 돌발적 인 사건에 주목하는 것이 생존에 훨씬 중요했다. 주변 환경에서 어 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재빨리 알아차려야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선조들이 들판에서 사슴을 사냥할 때 느닷없이 으르렁거 리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즉각적으로 그 소리가 어디에서 났는지 주위를 살피는 건 아주 당연한 반응이다. 만약 멀리에 있는 사자를 발견했다면 계속 사슴을 사냥할 게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도망가 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 변화에 재빨리 반응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이런 뇌의 기제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맹수의 공격을 받지 않는 현대인들은 원시적인 본능을 사용할 필요가 없 어졌다. 그리고 원시시대의 외부 자극은 공부와 일을 방해하는 스 마트폰 진동과 동료의 접근으로 대체되었다.
- 미국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머리 좋아지는 약'이 유 행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리탈린) 가 가장 인기가 좋다. ADHD 치료제로도 사용되는 이 약은 전두 피질의 활성화를 강화해 집중력을 높인다. 그런데 이런 중추신경 흥분제를 오래 복용하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청소 년기는 뇌의 신경망이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이자 뇌의 신경가소 성과 학습능력이 가장 강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추신경흥 분제를 오래 먹을 경우 뇌의 신경가소성이 떨어질 수 있으며, 이를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모다피닐modafinil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약으로 임상에서는 흔히 기면증과 수면무호흡증을 비롯한 수면장애 치료용으로 쓴다. 모다피닐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를 높임으로써 신경 연결을 빠르게 해 기억력과 다른 인지능력을 강 화시킨다. 하지만 모다피닐 역시 오랫동안 복용하면 부작용이 생 길 수 있다. 임상 참여자 가운데 3분의 1이 두통 증상을 보였으며, 10분의 1은 메스꺼움 증상을 느꼈다. 이외에도 신경질, 설사, 불면, 불안, 어지러움, 위장 문제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
- 그렇다면 왜 심리적 바운더리가 멀수록 창의력이 커지는 걸까? 사람들은 심리적 바운더리가 가까운 일일수록 구체적인 세부사항에 초점을 맞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어떤 일이 나와 어느 정도 심리적 바운더리가 있으면 전체적인 측면에서 그 일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추상적인 사고는 더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보게 하며,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일들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연결해 상상력이 넘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 당사자보다 제삼자가 더 잘 안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 보통 당신이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보다 남이 당신의 문제를 더 잘 아는 것도 제삼자가 더 먼 심리적 바운더리를 두고 문제를 생각 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어려운 문제에 손을 댈 때는 그 일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 봐야 창의적인 해결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된 적이 있다. 
- 창의력에 불을 지피려면 뇌에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소재가 충분히 있어야 하며, 또한 이 소재들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어 야 한다. 창의력이란 이미 갖고 있는 정보를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평소 예술 과 종교, 철학을 매우 좋아했는데 애플의 스마트폰 디자인에도 이런 그의 미니멀리즘 예술과 철학 이념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전 문 영역과 전혀 상관이 없는 지식이라 해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도 록 노력해야 한다. 소재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려도 자신의 창의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 소화불량과 과민대장증후군은 대부분 뇌의 심리적 증상과 소화기관의 생리적 증상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심각한 불안과 우울 증상이 있는 사람은 1년 안에 과민대장증후군이나 소화불량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한다. 반대로 불안과 우울 증상이 없지 만 과민대장증후군을 앓는 환자는 1년 뒤에 심각한 불안과 우울 증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다시 말해 몸의 소화기관 질 환과 정신질환은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 중 3분의 1은 심리 문제가 소화기관 문제보다 먼저 나타나며, 3분의 2는 소화기관 문제가 심리 문제보다 먼저 나타난다.
- 미국의 신경학자 조너선 키프니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다세포의 전쟁터에는 오직 두 가지 매우 오래된 힘만 존재하는데, 그 것은 바로 병원체와 면역계다. 우리 성격의 일부도 확실히 면역계 에 의해 통제될 수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많은 연구를 통해 정신 질환과 신경질환 모두 적든 많든 면역계 활동과 관련이 있음이 밝 혀지고 있다. 우울증이나 조현병, 강박장애, 자폐장애 같은 정신질 환은 물론이고, 근위축성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흔 히 루게릭병이라고도 함 - 옮긴이) 같은 신경질환까지도 말이다. 그 렇다면 면역반응이 어떻게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을까? 2018년 키 프니스는 우리 몸의 면역반응이 림프계를 통해 뇌에 작용하며, 그 렇게 생겨난 염증성 면역세포들이 뇌의 기능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기존 인식을 뒤엎을 놀라운 발견이었다.
- 2003년 독일 괴테대학교 해부학자인 하이코 브락 Heiko Braak 은 파킨슨병에 걸리는 원인에 관한 논문을 《노화 신경생물학 Neurobiology of Aging》에 발표했다. 그는 그 논문에서 아주 대담한 가 설 하나를 제시했다. 바로 파킨슨병의 시작이 뇌가 아닌 소화기관 이라는 가설이었다. 이 허무맹랑해 보이는 가설은 최근 들어 증거 들이 하나둘 나타나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의사들은 임상에서 파킨슨병이 발병하기 10~20년 전부터 소화기에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파킨슨병 환자는 변비에 시달린다. 파킨슨병과 소화 기관의 관계를 밝히려고 과학자들이 파킨슨병 환자의 위장을 연 결하는 신경을 관찰한 결과, 대뇌에서 보이던 알파시누클레인이 파킨슨병 말기에는 위장을 연결하는 신경에도 축적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동물을 대상으로 한 파킨슨병 모델 실험에 서 동물의 위 속 알파시누클레인이 미주신경을 타고 올라가 대뇌 로 퍼져나갔다. 이것들 모두 파킨슨병과 소화기관의 관계에 관한 간접적인 추측일 뿐이지 않느냐고 한다면 2019년 과학잡지 《뉴런 Neuron》에 발표된 한 연구가 확실한 증거가 돼줄 것이다. 이 연구에서 존스홉킨스대학교의 테드 도슨Ted M. Dawson 교 수 연구팀은 파킨슨병과 관련이 있는 접힘 현상이 나타난 병적 단 백질이 미주신경을 따라 위로 올라간 뒤 뇌로 들어가 흑질 신경세포를 사멸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파킨슨병이 위장 에서 시작되는 온전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앞서 하이코 브락 교 수가 세웠던 가설이 얼마나 합리적이었는지 거의 완벽하게 증명 했다. 이 연구에서 도슨 교수 연구팀은 병적 단백질인 알파시누클레 인을 실험용 쥐의 십이지장과 위의 근육층에 주사했다. 그런 다음 유해한 알파시누클레인이 미주신경을 따라 쥐의 대뇌로 퍼지고, 그로 인해 도파민을 만드는 신경세포가 대량으로 사멸하는 과정 을 관찰했다. 이를 통해 도슨 교수 연구팀은 실험용 쥐가 결국 인지와 운동 장애 등 파킨슨병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는 걸 확인했 다. 이 결과를 통해 우리는 미주신경을 잘라내면 유해한 알파시누 클레인이 대뇌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 파킨슨병을 예방할 수 있으 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파킨슨병이 소화기관에서 시작된다는 가설은 '뇌와 몸이 하 나로 연결돼 있다'는 주장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뇌질환이 단순히 뇌에 병이 난 것이 아니라 몸과도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됐다.
- 쥐는 보통 자연의 포식자인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이 런 쥐도 딱 한 가지 상황에서만큼은 고양이의 냄새를 사랑하는데 바로 쥐의 뇌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됐을 때다.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 이란 5마이크로미터 남짓한 기생 충으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경험 이 있다. 프랑스와 브라질에서는 무려 80퍼센트의 사람들이 톡소 포자충에 감염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생고기 또는 잘 씻지 않은 채소를 먹거나 고양이의 분변을 접촉하는 방식으로 톡 소포자충에 감염된다.
쥐의 뇌에 톡소포자충이 있을 때 쥐들은 후각이 달라진다. 그 때문에 쥐는 고양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오히려 고양이의 소 변 냄새에 이끌려 먼저 고양이에게 다가가 더 쉽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톡소포자충은 어떻게 쥐를 조종할 수 있는 걸까??
많은 기생충은 유충에서 성충이 될 때까지와 다시 숙주의 체 내에 들어가 번식을 할 때까지 전체적으로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린 다. 또한 그사이에 몇 개의 중간숙주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기 생충은 최종 숙주의 체내에서 번식을 해야만 생명의 순환을 끝마 치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숙주 체내에서 다음 숙주 체내로 성공적 으로 옮겨가기 위해 몇몇 기생충은 숙주의 행동을 바꿈으로써 자 신의 목적을 이뤄낸다. 다시 말해 이런 기생충들은 수단 방법을 가 리지 않고 숙주를 조종하며, 하등한 숙주를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 한다.
대부분의 기생충 숙주는 하등동물인데 톡소포자충은 특이하게도 고등 포유동물의 체내에 기생한다. 특히 톡소포자충은 고양잇과 동물의 체내에서만 번식할 수 있다. 따라서 기생충의 최종적 인 목표는 현재의 숙주를 고양잇과 동물에게 잡아먹히게 만들어 서라도 성공적으로 그 고양잇과 동물의 체내에 들어가는 것이다.
톡소포자충은 쥐의 체내에서 기생할 때 어떤 수를 써서라도 기어코 쥐의 뇌로 들어가 그들의 후각과 행동을 바꿔놓는다. 쥐들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도록 말이다. 이런 쥐 를 잡아먹은 고양이는 톡소포자충에 감염될 수밖에 없으며, 톡소 포자충은 덕분에 고양이의 소화기관에서 번식할 수 있다. 이렇게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고양이는 또다시 음식물을 감염시키고, 다른 쥐들이 이 음식물을 먹으면 그들 또한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는 연쇄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 시크릿  (0) 2021.06.20
다시 일어서는 용기  (0) 2021.06.13
왕 전사 마법사 연인  (0) 2021.05.30
돈 보다 더 중요한 것들  (0) 2021.05.07
표정의 심리학  (0) 2021.05.02
Posted by dalai
,

과학자의 미술관

예술 2021. 6. 13. 08:50

- 렘브란트가 많이 사용한 색 중에 선홍색의 버밀리온은 황화 수은(HgS)으로 황을 포함하는 대표적인 색이다. 그림이 검게 변하는 '흑변 현상'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57년경에 그려졌던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 의 〈만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종〉은 황혼을 표현한 그림이 라 좀 어둡기는 하겠지만 그림이 막 그려졌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탁하고 칙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경)이건 〈만종>이건, 산업혁명으로 도시 공해가 심해지면서 대기 중의 황산화물(SOx)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그림의 색채가 검어지고 그림의 주제가 퇴색하면서 야경이라 는 이상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오래된 그림이라 중후한 매력을 풍긴다며 그냥 넘겨야 할지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 1965년경 사회학자 길필란5.C. Gilfillan은 “로마제국은 납 중독으로 멸망했다”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로마인들은 납의 지나친 애용가들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담는 그릇은 물론, 물을 연결하는 배수관과 화장품, 염료 등에 이르기까지 납 성분을 활용했다. 무엇보다 끔 찍한 일은 로마인들이 납설탕'이라는 감미료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로마인들이 즐겨 마셨던 와인은 천연효소를 사용하여 주조하였기 때문에 신맛이 강했다. 그들은 신맛을 없애기 위해 납으로 만든 주전자에 포도즙을 넣고 끓여 사파(sapa)라고 하는 단맛이 나는 초산납(납설탕)을 만들 어 와인에 섞어 마셨다. 당시 사파는 와인뿐 아니라 다른 식품에도 감미료 로 사용되었다. 심각한 납중독을 일이키는 사파는 뇌 손상, 불임, 뼈 훼손, 신장 장애 등을 야기하면서 로마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납이 미백 화장품의 주요 성분으로 사용되면서 동서고금을 막론 하고 수많은 여성들을 괴롭혔다.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VI, BC69-BC30는 황화안 티몬을 주원료로 하는 '콜(khol)'이라고 하는 검은 가루로 그 특유의 눈 화장을 했다. 그녀는 콜로 인해 안질에 시달렸다. 수많은 초상화의 모델이 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Elizabeth1, 1533~1603 은 '베니스분'이라는, 납 성 분을 함유한 백분으로 천연두 자국과 거친 피부를 가렸다. 다소 창백하게 표현된 그녀의 얼굴에서 베니스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납이 든 화장품은 동양의 여성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최근 일본 산업의 과대학이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막부시대 무사 계급의 후손들의 골 격에서 다량의 납 성분이 발견되었다는 흥미로운 자료가 눈에 띈다. 실제 로 무로마치부터 에도시대의 풍속화 우키요에 속 여성들은 납 성분 화장 품을 바른, 유난히 하얀 얼굴로 묘사된다. 당시 일본 무사들의 아내들이 사용했던 화장품은 후대에 치명적인 납 중독을 일으키면서, 불임과 함께 기형아, 장애아, 저능아 출산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 화장품으로 인한 납 부작용은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쌀가루로 만든 백분에 접착력이 뛰어난 납가루를 혼합하여 '박가분(家)' 이라 불리는 화장품이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물론 박가분을 사용한 여성들의 얼굴이 온전할 리 없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심각한 피부질환에 시달렸으며 일부 여성은 납중독 증상이 심해지면서 정신장애까지 앓기도 했다.
- 연금술이 실패한 과학이 아니라면 원래 무엇이었다는 말인가? 연금술 사들은 온 우주와 만물을 변화시키고 운행하는 어떤 원동력이 있는데 그 것이 보편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어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물질의 근원이 되며 생명의 토대가 된다고 믿었다. 말하자 면 연금술은 기술이나 과학을 넘어서 철학이고 신학이었다. 그 보편 정신 이 바로 '신의 정신' 이며 이것을 구체화, 형상화한 것이 '현자의 돌'이라고 보았다. 그러니까 연금술사들의 진정한 목표는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 라 신의 정신을 파악하여 만물 창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현자의 돌'은 모든 불순하고 불완전한 금속을 정화하고 정신을 온전케하여 종국에는 육체의 만병도 치료할 수 있는 불사의 영약이었다. 그들은 ‘신의 정신'을 병에 담길 원했다. 연금술의 상징이 된 펠리컨은 바로 이 병을 나타내며 실제 이들이 만들어 쓴 유리병의 모양은 펠리컨을 닮았다. 펠리컨이란 새는 자기 심장을 쪼아서 나오는 피를 죽은 새끼에게 먹여서 살리는 영험 있는 새로 믿어졌는데 연금술사는 펠리컨처럼 생긴 유리병으로 비밀스러운 반응을 시도하는 펠리컨과 같은 생명의 수호자였다.
- 선과 색이 만나 회화가 탄생하지만 미술관에 걸린 명화들처럼 둘의 관계는 그리 조화롭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선과 색의 싸움은 회화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가장 오래된 싸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선과 색의 논쟁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니 수학과 화학이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요소는 선이고 색은 단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선우위론자들의 얘기부터 들어 보자. 회화는 소묘(드로잉) 없이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반면, 색채는 빛에 의해 변해 버리는 우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시대 미술가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완벽한 균형과 조화는 선을 통해서 이뤄졌다. 선이 없다면 당연히 원근법과 대칭법, 이상적 인체 비례 등도 고안할 수 없으며, 이는 수학적 사고와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에 맞선 색우위론자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술의 궁극적 목적이 자연의 모방이라면, 회화의 목적은 색 없이 달성될 수 없다. 소묘는 채색 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선이 이성이라면 색은 감성인데, 감성이 결여된 이성만으로는 예술이 성립할 수 없다. 색의 본질과 변화는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회화의 주재료인 물감이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과 색의 논쟁을 통해 회화에 수학과 화학 원리가 담겨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 유기물질을 태우면 탄소만 남고 그것이 검은색을 띤다. 이런 변화를 탄 화(炭化)라고 한다. 색 이름에서도 무엇을 태워서 만든 검정인지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오래전부터 써 온 검정으로 아이보리 블랙(ivory black)이 유명하다. 이것은 아이보리, 즉 상아를 태워서 만든 검정이다. 물론 요즘은 상아로 만들지는 않는다. 색 이름이 아이보리 블랙이라 해도 지금 제품은 일반 소뼈나 기타 동물의 뼈 를 사용하여 만든다. 그래서 본 블랙(bone black)이라 부르기도 한다.
- 나무를 태워서 만들 수도 있는데 어떤 종류의 나무를 태워서 만드는가 에 따라 다른 검정이 만들어지고 이름도 달라진다. 원료 나무의 종류에 따라서 색상이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화가들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택한다. 푸른 끼가 도는 검정도 있고, 붉은 끼가 도는 검정도 있으며, 노란 끼가 보이는 검정도 있다. 바인 블랙(wine black)은 포도나무 가지를 태워 만들고, 피치 블랙(peach black)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태워 만든다.
동양화에서 많이 쓰는 송연묵(松煙墨)은 소나무를 태워 만든 것이다. 동 양화의 유연묵(油煙墨)은 기름을 태운 것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식물성 기 름을 태워 만든 것을 베지터블 블랙(vegetable black)이라고 한다.
- 한편, 우리가 연필로 사용하는 흑연(黑鉛)은 잘못된 이름이다. 검은 납이 란 의미로 서양의 'lead black'을 그대로 차용한 것인데, 납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 흑연은 그래파이트(graphite)가 맞으며, 탄소만으로 이루어진 판 상 결정이다. 글을 쓰다'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그라페인(Graphein)에서 유래했다.
이밖에 유일한 무기물 검정인 마르스 블랙(mars black)은 산화철이 주성분이어서 아이언 블랙(iron black)이라고도 부른다. 약간 갈색이 돌아 따뜻 한 느낌이 난다. 최근에는 유기화학의 발달로 실험실에서 합성한 유기물 검정도 있다. 아닐린 블랙(aniline black)이 그것인데, 색이 매우 진하고 검정 외에 어떤 색도 띠지 않는 정말 '깜깜한 블랙'이다. 색이 아름다워서 다이아몬드 블랙(diamond black)이라 부르기도 한다.
- 풍경화가들은 대개 야외에서 본 풍경을 화실로 들어와서 그렸다. 그런데 컨스터블은 야외에서 채색까지 병행하는 '오일(유화) 스케치'로 자연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자 했고, 이를 바탕으로 화실에서 채색을 마무리했 다. 컨스터블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훗날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야외에서 작품을 완성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컨스터블은 자연에서 관찰한 초록색 나뭇잎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같 은 나무에 달린 잎들이지만 색이 모두 다르고 어느 하루도 서로 같은 날 이 없이 시시각각 변한다.” 나뭇잎을 눈으로 보고 그 형색을 머리에 담아 화실로 들어와 캔버스 앞에 앉으면 같은 초록색 나뭇잎이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로 빛에 따라 변하는 나뭇잎은 매번 다양한 초록색을 연출함을 컨스터블은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표현하는 초록색은 훨씬 생동감 넘치며 자연과 닮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실재(實在)하는 풍경을 강조했던 컨스터블은 가까운 대상은 갈 색 톤으로, 먼 배경은 푸른색 톤으로 채색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다 양한 초록색으로 숲을 재현했다.
- 작은 금속 입자로 인해 유리 색깔이 바뀌는 기술은 무려 4세기경 고대 로마 시대 작품 '리쿠르고스의 컵(Lycurgus Cup)'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컵에 는 리쿠르고스라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왕을 조각해 덧붙여 놨다. 디오니소스(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와 풍요의 신)가 자신을 박해하는 리쿠르고스를 포도 주를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리쿠르고스 컵은 평소에는 녹색에 가까운 색으로 보이지만(왼쪽), 컵 안 에 빛을 쪼이면 붉은색 혹은 마젠타 빛깔로 변한다(오른쪽). 컵의 비밀은 오 랜 시간 봉인되어 있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미세한 나노입자를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이 개발되면서 풀렸다.
컵 안에 특별한 조명이 따로 없을 때, 컵은 외부의 산란된 빛을 통해 우 리 눈에 보인다. 대게 푸른색-녹색 계열의 빛이 산란효율이 높으므로 컵 은 녹색 계통으로 보인다. 그러나 컵 안에 조명이 있으면, 조명 빛은 컵을 투과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즉 빛은 컵 속의 금속 나노입자와 상호작용 하면서 투과한다. 이때 금속입자의 크기가 점점 작아짐에 따라 전체 부피 대비 표면적 비율이 증가하게 된다. 금속 나노입자의 경우 부피 대비 표 면적 비율이 매우 높다.
이때 나노입자 표면에는 금속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유전자(진공 또는 물 질 내부를 자유로이 운동하는 전자)가 높은 밀도로 분포하게 된다. 표면에 구름처 럼 존재하는 자유전자들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진동한다. 이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혹은 파장)의 빛을 만나면 자유전자들은 그 빛을 강하게 흡수 하고 약간 긴 파장의 빛을 다시 방출하게 된다. 이를 표면 플라즈몬 공명이라 한다. 수십 나노미터 크기를 가진 금 나노입자는 고유 파장대가 560나노미터 (노란빛)이다. 금 나노입자가 빛을 만나면 먼저 표면 플라즈몬 공명이 일어나고, 공명 파장보다 약간 긴 파장의 붉은색 빛을 방출한다. 그래서 컵 안에 빛을 비추면 컵이 붉은색으로 보이 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인지하 지는 못했지만, 금과 은을 모래 알갱이보다 수백 배 작게 즉 나노입자 크기로 연마하는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리쿠르고스 컵 제조 기법은 12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 발전한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의 근간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스테인드글라 스는 다채로운 색을 내기 위해 구리, 철, 망간과 같은 여러 가지 금속화합 물을 이용했으며, 제작 과정 중간에 금이나 니켈 같은 금속을 첨가했다.
표면 플라즈몬 공명 효과에 의한 빛의 산란은 금속 나노입자 크기나 모 양에 따라 다르게 일어난다. 입자 크기나 모양이 다르면, 공명하는 빛의 고유 진동수(주파수) 혹은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빛이 산란되어 보이는 색도 달라진다.
- 산타페 하늘이 유독 물감을 풀어놓은 듯 맑고 파란 이유는 '빛의 산란 때문이다. 공기는 산소, 질소, 수증기, 먼지 등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 다. 태양빛이 대기를 통과하면 공기 중의 알갱이들과 부딪혀 사방으로 흩 어진다. 이런 현상을 빛의 산란이라고 한다. 산소와 질소같이 크기가 작 은 기체 분자들은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을 더 잘 산란한다.
노을도 빛이 산란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낮에는 해가 머리 위에 있어 태양빛의 이동 거리가 비교적 짧다. 해 질 무렵에는 태양빛이 지구에 도 달하는 거리가 낮보다 훨씬 길어진다. 파장이 짧은 파란빛은 쉽게 산란 되지만 멀리 못 가는 특징이 있다. 반면 파장이 긴 붉은빛은 산란은 덜 되지만 잘 회절(回折, 파동이 장애물 뒤쪽으로 돌아들어 가는 현상)’ 되어 먼 거리까지 도달한다. 해 질 무렵 파장이 짧은 보라색, 파란색 빛은 우리 눈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산란해 사라지고, 파장이 긴 빨간색 빛이 대기층에 많이 남아 우리 눈 속에 들어온다. 그래서 해 질 녘 하늘은 붉게 보인다.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19세기 영국 물리학자 레일리 John William Struit Rayleigh, 1842-1919가 처음으로 설명했다. 빛의 파장보다 훨씬 더 작은 입자에 의한 산란은 그의 이름을 따서 '레일리 산란(Raylegn scattering)' 이라고 부른다.
레일리 산란과 반대로 빛의 파장과 크기가 비슷한 입자에 의한 빛의 산 란 현상은 '미 산란(Mie scattering)'이라고 한다. 미 산란은 독일 물리학자 구스 타브 미Gustay Mie, 1868~1957가 제시했다. 기체 분자보다 상대적으로 크고 균일하지 않은 물방울(구름)이나 먼지, 연기, 얼음의 경우 미 산란을 일으킨다.
구름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는 미 산란으로 설명할 수 있다. 구름은 다양한 크기의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가 다른 물방울들은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산란한다. 큰 물방울은 파장이 긴 빨간색 빛을, 작은 물방울 은 파장이 짧은 보라색이나 파란색 빛을 산란한다.
그 결과 모든 빛을 산란해 구름이 하얗게 보인다(모든 색의 빛을 합하면 흰색이 된다). 안개가 꼈을 때,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 하늘이 뿌옇게 보이는 것 도 미 산란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특히 뉴멕시코 지역은 사막 기후여서, 평균 습도가 10~40%로 매우 건조하다. 건조한 날씨에는 수증기나 공기 중에 물방울이 상대적으로 적어 물방울이나 수증기에 의한 미 산란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맑고 건조한 날은 낮 동안 하늘이 더욱 깊고 파랗게, 저녁에는 노을이 훨씬 붉고 선명하게 보인다.
뉴멕시코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샌디 아산(Sandia Mountain)'이다. 샌디아는 스페인어로 '수박' 이라는 뜻이다. 저녁노을에 반사되어 붉게 보이는 산이 어찌나 선명하게 빨갛던지, 수박을 반으로 갈라놓은 것 같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1909년 <수련> 연작을 계획하면서 모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연꽃이 흐드러진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며 평온하게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안식의 공간을 선사하고 싶다.”
모네는 진정 태양을 그리고 싶어 했던 화가였다. 그는 수면이라는 캔버스 위로 빛이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의 작품이 있어 우리는 화폭에 담긴 불멸의 순간 속에서 안식을 찾는다.
- 옵아트는 '빛을 이용한 망막의 미술(Retinal art)', '지각적 추상(Perceptual abstraction)'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상 미술은 관람자의 눈에서 출발해 회 로와도 같이 복잡한 연산과 재구성 과정을 거친 후에 뇌에서 인지되는 것 이다. 그래서 미술은 일종의 '시각'과 '지각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회화 또는 미술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이 사진처럼 사실적이거나 때로 과장되어 있더라도 최소한 어떤 형상이 있지만, 옵아트는 형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옵아트는 형상을 표현하기보다는 시각적인 효과'에 집중한다.
- 1935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슈뢰딩거 Erwin Schrodingers, 1887~1961는 코펜하겐 해석을 부정하고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여주기 위해 슈뢰딩거의 고 양이(schrodinger's Cat)'라는 사고 실험을 고안했다. 상자 속에 반감기가 한 시간인 방사성 물질과 청산가리가 든 병, 고양이가 들어 있다. 방사성 물 질이 붕괴하면 연결된 방사능 검출 계수기가 작동하면서 망치가 청산가 리가 들어 있는 병을 깨고, 고양이는 청산가리를 흡입해 죽게 될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50% 확률로 붕괴되도록 세팅되어 있다.
한 시간 뒤 고양이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어 떤 물질의 상태는 그 상태를 관측하면 변한다. 즉 고양이는 상자를 열어 관찰하기 전까지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으며, 상자를 열어 우리가 관찰하는 순간 살았거나 죽은 상태 가운데 한 상태로 확정된다.
슈뢰딩거는 이것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고양이는 우리가 상자를 여는 행위(관찰)와 상관없이 살아 있거나 죽어 있으며, 단지 상자 밖에 있는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를 뿐이라고 했다. 원자나 전자처럼 작은 미시세계가 아닌 거시세계, 즉 우리의 현실에 불확정성 원리와 코펜하겐 해석을 적용한다면 얼마나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슈뢰딩거는 이 사고 실험을 통해 역설하고자 했다.
- 르네상스시대까지 회화의 방식이나 주제 의식은 큰 틀에서 상당히 비 슷했다. 그러다 빛을 직접 묘사하고, 회화 기법에 빛을 반영한 인상주의 를 시작으로 새로운 미술 사조가 하나둘 등장했다. 하나의 사조가 일정 시간 부흥하다가 다시 반대 사조가 나타나고, 다시 이 사조를 부정하는 정반합(正反合) 과정을 반복하며 진화해 미술계는 오늘날과 같은 다양함에 이르게 되었다.
놀랍게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미술계 상황은 빛의 정체와 특성 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하고 이를 뒷받침할 새로운 이론이 끊임없이 등장해 증명과 반박을 거듭하며 이루어낸 현대물리학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분야, 미술과 물리학이 '빛'이라는 공통의 화두를 놓고 고민하고 논쟁하며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의 풍 파를 겪으며 발전해 왔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에 관한 과학 이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탄생한 신인상주의도 있었으니, 예술과 과학이 오래전부터 서로 공생 관계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회화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공통된 대명제를 놓고 철학적인 고민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다. 그 고민의 궤가 물리학과 상당히 닮아 있다.
- 빛은 화가의 가난 때문에 또는 실전처럼 반복된 연습 때문에 세상에 영 원히 나오지 못했을 뻔했던 그림을 보여 줬다. 고흐는 평생 동생 테오에 게 경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않고 그림만 그렸 다. 제대로 된 물감을 살 수 없어 싼 안료를 사용했다. 덕분에 고흐 그림은 색이 날아가거나 점차 변색되고 있다. 태양처럼 영원히 이글거릴 것 같던 해바라기도 차츰 시들고 있다 (19쪽 참조). 〈카페에서, 르 탱부랭의 아고스 티나 세가토리>를 엑스선으로 촬영한 그림은 화가가 가난과 힘겹게 싸웠 던 시간을 오롯이 보여 준다.
- 몬드리안은 수직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부분을 적절하게 배치하면 감상자가 편안함과 역동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빨강, 검정, 파 랑, 노랑, 회색의 구성>은 무질서한 요소를 배제한, 수학적이고 건축적인 균형을 미술로 이뤄 내고자 한 몬드리안의 이론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언뜻 보면 대부분 비슷해 보이는 몬드리안의 작품들은 색과 선, 면 등 이 하나하나 치밀하게 계산되어 완성되었다.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자. 흰 바탕에 검정색 선을 경계로 3원색을 칠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흰 바탕과 검정색 선은 정확하게 나누어진 부분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로 색을 채워 넣은 것이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창작 기본 원리에서 밝혔듯이, 화면 안에 있는 모 든 직사각형들이 대칭이 되는 것을 피했다. 그리고, 그림 속 검정 수직선 과 수평선은 서로 교차하며 사각형의 격자 구조를 이룬다. 이 격자 구조에 사용된 황금비율 1.618은 몬드리안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 몬드리안은 가장 단순한 요소인 직선과 원색으로 그림을 완성하고자 했다. 그는 우주의 객관적인 법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료하고 절도 있는 회화를 그리길 열망했다. 몬드리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형태들 속에 감춰진 불변하는 실재(實在)를 예술로 밝혀내려고 노력했다.
몬드리안은 몇 개 되지 않는 형태와 색채를 결합하여 그것들이 잘 어울 려 보일 때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나갔다. 몬드리안의 작품세계를 알게 되면, 단순한 선과 면 분할 및 채색만으로 완성되는 작품일수록 깊은 사고와 성찰이 요구됨을 깨닫게 된다.
몬드리안은 직선과 반듯한 면 그리고 몇 가지 컬러로만 이루어진 대단히 금욕적인(!) 작품들처럼 수도자에 비유되는 검소한 삶을 살았다. 세계 적인 예술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일부러 재산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삶 의 본질을 궁구(窮究)하는 데 몰두했다. 이러한 몬드리안의 삶의 철학은 그 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평소 그가 되뇌었던 금언(金言)은 이를 방증한다. “미술이란 자연과 인간을 점차적으로 소거(去) 해 나가는 것이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물상을 조각할 때나 그림을 그릴 때, 작품 속의 사람이 몸무게를 한쪽 다리에 신고 다른 쪽 다리는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자세를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세를 하면 몸무게가 이동함 에 따라 둔부 · 어깨 · 머리는 신체 내부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듯 이 기울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몸의 무게 중심을 한쪽 다리에 두면 몸은 S자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이 곡선을 가리켜 인간의 신체를 가장 아름답 게 표현한다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라고 부른다.
미술사에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화가들이 콘트라포스토를 그렸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는다면 독일의 화가 뒤러Albrecht Drer, 1471~1528가 1504년에 제작한 아담과 이브>가 아닐까 싶다.
- 뒤러는 이 작품에서 키의 반은 다리 길이가 되고, 상반신의 반에는 젖꼭지, 하반신의 반에는 무릎이 오도록 하였다. 또 키는 머리 길이의 8배가 되고, 키 전체를 3:5로 나누는 위치에 사람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배꼽 을 그렸다. 이것은 뒤러가 그림 속의 두 주인공을 황금비인 1:1.6을 만족 하는 8등신이 되도록 그린 것이다. 또 아담과 이브의 몸무게 중심이 한쪽 다리에 있게 함으로써 전체 몸이 S자 곡선을 이루도록 그렸다.
아담 옆의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명판이 달려 있는데, 알브레히트 뒤러 가 1504년에 완성했다' 라고 서명되어 있다. 뒤러는 이전 시대 화가들과 달리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겼는데, 그만큼 그는 화가로서 자의식이 강 했다. 뒤러의 서명이 전범이 되어 후대 화가들도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남겼다.
- '그런데 사과를 비롯한 거의 모든 과일은 왜 둥근 모양일까?' 자연은 항상 뛰어난 수학자이다. 자연이라는 수학자는 과일이 과육에 품고 있는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어야 할지를 알 고 있었다. 어떤 물체의 수분 손실은 그 물체의 겉넓이에 비례한다. 즉, 물 체를 덮고 있는 표피가 넓으면 넓을수록 증발로 인해 더 많은 수분을 빼 앗긴다. 따라서 모든 과일은 번식을 위하여 과육의 부피를 최대로 하며 겉넓이를 가장 작게 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 답이 바로 지금과 같은 둥 근 공 모양의 과일이다. 이 문제를 우리는 '디도의 문제(Dido's Problem)'라고 한다. 
- 디도 이야기는 지금부터 약 2800년 전 고대 그리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니키아의 폭군 피그말리온의 여동생 디도는 오빠의 폭정을 피해 자신의 추종 자와 몇몇 원로원 의원을 데리고 북아프리카의 해안에 도착한다. 디도는 그곳 원주민의 통치자였던 얍(Yarb)에게 자신이 가져온 황금을 줄 테니 땅을 팔라고 요청한다. 얍은 땅을 팔 생각이 없었지만 디도의 설득에 넘어가 황소 한 마리의 가죽으로 최대한 둘러쌀 수 있는 만큼만 팔겠다고 한다. 디도는 언덕을 둘러쌀 수 있도록 가늘게 쇠가죽을 잘라 영역을 정하였고, 이 언덕은 가죽이라는 뜻의 '비르사(Byrsa)'라고 불리게 되었다. 디도는 비르사에 요새를 만들고 백성들을 잘 다스려 조그마한 지역을 도시로 번성시켰다. 나중에 이 도시는 '카르타고'라고 불리게 되었다.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을 보는 기술  (0) 2022.04.16
디자인 레시피  (0) 2021.08.12
다빈치 인생수업  (0) 2021.05.06
리더를 위한 유쾌한 그림수업  (0) 2019.11.22
잘 사는 것은 결국 남을 돕는 경쟁이다  (0) 2019.01.10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