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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의 즐거움

사회 2024. 4. 17. 08:11

- 베트남전쟁이라는 엄청난 기회를 맞은 맥린은 드디어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제는 아예 일본, 대만에 한국까지 가세해서 더 싸고 더 빠른 배를 찍 어냈다. 국가가 나서서 대형 항구와 컨테이너선을 만든 동아시아는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2014년 기준으로 세계 10대 무역항 중 7곳이 동아시아에 있다. 첫 컨테이너 선을 띄운 뉴욕항은 순위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혁신이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1) 그 혁신이 사업성이 있어야 하고(제록스),
2) 정치적 문제를 돌파해야 하고(타다),
3) 언제가 될지 모를 '그때'를 기다려야 하고(테슬라),
4) 누가 승자가 될지 모르는 무한경쟁을 이겨내야 하며(삼성전자),
5) 대중화를 이룰 이벤트도 있어야 한다(애플).
이런저런 굴곡이 있는데, 여하튼 맥린은 나중에 파산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결국 1990년대 들어 컨테이너는 세상을 바꿨지만, 혁명을 완성하 기까지 첫 출항 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할 줄은 몰랐던 거다. 물론 그는 컨테이너화의 선구자로 역사에 남았고, 그가 죽었을 때 전 세계의 컨테이너 선은 뱃고동을 울려 예의를 표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미 혁명이 일어났다거나 '사실상 완성됐다거나 '이건 실 패할 수 없는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테슬라에 대한 시선이 떠올랐다. 1960년 대에 컨테이너화는 전기차보다 덜 매력적인 아이템이었을까?
컨테이너는 세계 경제를 넘어 '동아시아의 부상(上)'이라는 지정학적 격 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컨테이너 선사에 투자해서 돈을 번 사람은 없었다. 혁 신은 참 먼 길이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따르면, 가스는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 공급까 지 넘쳐서 석유 같은 영향력을 갖긴 어렵지 않을까? 언제나 심각하고 무거웠 던 예긴의 저서를 처음으로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너 무 많은 전략가가 이미 '셰일혁명'을 다루기도 했다.
물론 화석연료가 짧은 기간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15세기에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 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에 간 후에도 지중해 무역은 융성했다. 베네치아는 16세기에도 오히려 무역량이 늘었다. 하지만 천천히 쇠락했고, 결국은 멸망했다.
- 이 책에서 가스의 지정학을 얘기한 예긴은 여러 차례 '무례한 환경운동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가 책에서 이렇게 불쾌함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석 유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압박,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방식의 여론전, 석유 의 죄악화 등에 대해 얘기할 때는 이 나이 든 신사도 혈압이 오르는 모양이다. 이 책이 유독 명쾌한 느낌이 없는 건 예긴이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않아서 다. 모호한 표현은 쓰지만 그는 205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 1.5도 제한'이란 목표를 비판하진 않는다. 매우 어려울 것이고, 화석연료는 없앨 수 없다고 변 호하는 선에 그친다. 아마도 평생을 화석연료에 바쳤고, 지금도 화석연료 컨 설팅을 하는 그의 한계일 것이다.
확실히 한 시대는 저물고 있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의 '과도기'를 책임질 운명인가스는 질풍노도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한다. 이른바 '가스의 시간'이 다. 검은 황금이 그저 탄소덩어리 취급으로 추락하는 게 겨우 한 세대에 일어 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탄소의 시대가 저무는 시점에 많은 기회 가 열리고 있다.
- 빌 게이츠는 화력발전소의 탄소 포집을 정색을 하며 비판한다. 최근 나온 IEA(국제에너지기구)의 자료를 봐도 (가스)화력발전은 잠깐 역할을 하고 사라 질 존재일 뿐 타당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는 결국 대안이 원자력뿐이라고 말 한다. 국토가 축복 받은 땅덩이가 아닌 한 원자력 확대는 피할 수 없어 보인 다. 물론 빌 게이츠가 원자력 기업 '테라 파워' 창업자라는 점은 고려하고 그 의 주장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에는 암담한 얘기다. 국토는 좁고, 산업 구조는 탄소를 뿜어내는 중후 장대 제조업 중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2050 년 탄소중립 선언을 했다. 포항시장은 포스코가 뿜어내는 탄소의 양을 알고 그런 선언을 한 걸까. 수소환원제철은 당장 상용화가 어렵다 해도, 철을 생산하는 고로를 용광로 대신 전기로로 모두 대체하면 제조원가가 크게 상승한다는 사실을 진정 모르는 걸까.
수조 달러의 비용이 필요하고, 우리의 거의 모든 삶을 바꿔야 한다는 걸 알 고 나면 '탄소중립, 이게 과연 가능할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되고 말 고를 떠나 앞으로 모든 산업을 송두리째 흔들 '메가 트렌드'인 것만은 틀림 없다. 이른바 '혁명'이라고 야단법석을 떤 전기차 보급은 이 큰 그림 안에서 는 애피타이저 수준의 작은 문제로 쪼그라든다.
가스보일러를 만드는 회사는 기울어갈 것이고, 전기식 열펌프를 만드는 회사는 성장할 것이다. 이런 변화가 모든 국가, 모든 산업에서 일어날 것 같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국전력은 인도네시아에 가서 석탄 사업을 하겠다고 하 고, 심지어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철강회사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삶의 방식과 산업 구조를 바꾸려면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세금 을 물려야 한다는 얘기다. 탈탄소기술보다 저렴한 기존 제품이나 탄소 배출 기업에 높은 '탄소세를 부과해야 구조를 바꾸는데 속도를 낼 수 있다. 유럽 이나 미국에선 예상되는 탄소세의 파급력이 너무 커서 심지어 탄소세 인플 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다. 그런데 탈탄소 드라이브가 본격화해도 여론은 동 의할까. 중요한 포인트다.
탈탄소는 또 다른 패권 경쟁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은 태양광에서 압도적인 선두 국가다. 이미 풍력은 화력발전보다 저렴해졌고 태양광도 시간문제다. 전 세계가 태양광 패널을 깔려면 중국으로 가야할 처지다. 미국은 환경에서 다시 한 번 패권을 잡을 수 있을까. 이 판은 커도 너무 큰 판이다. 이제는 피 할 수가 없다.
- '셰일가스의 아버지' 조지 미첼George P. Mitchell " 이 석유도 아닌 셰일가스에 인생 을 건 계기는, 그가 1972년에 읽은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였다. '로마클럽(Club of Rome)'이라는 환경단체가 쓴 보고서인데, 요 지는 인류의 수가 감당 못할 만큼 늘 것이고 천연자원 고갈될 거란 경고였 다. 석유가 고갈되기 시작했다는 '오일 피크' 공포는 전 세계를 떨게 했다. 이 런 전망에 따르면 고유가는 필연이었다. 조지 미첼은 1970년대에는 경제성 이 낮았던 셰일가스도 향후에는 개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 다만 현재로서는, 이 보고서는 틀렸다. 석유 매장량은 파도 파도 늘고 있고 지금은 수요 피크 가능성이 훨씬 높다. 아메드 자키 야마니Ahmed Zaki Yamani 전사 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2000년에 예언한 대로 석유가 떨어져서 우리가 다 른 자원을 쏠리는 없다. 결국 대체할 더 좋은 에너지원을 찾아낼 것이다. 로 마클럽 보고서는 문명의 원천은 땅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이란 걸 놓쳤다. 뒤늦게 로마클럽의 빗나간 예언을 꼬집으려는 건 아니다. 이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건 세계 석유 산업의 패권 구도를 뒤집은 셰일혁명이 틀린 전망에 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석유는 끝났다'는 착각에 빠진 텍사스 아저씨, 조지 미첼은 기어코 미국을 세계 최대 에너지 부국으로 만들었다.
요즘도 기후위기를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다. 비록 과학자의 거의 모두가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한 결과라는 점에 동의하더라도, 부정론자들은 며칠 뒤 날씨도 알기 힘든 인간이 한 세대 후의 기후를 '예측' 하는 건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부정론자들이 만에 하나 먼 미래에 옳았다는 게 드러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전 세계는 이미 '지구는 뜨거워질 것이다'라는 예측에 따라 흐르고 있 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는 파리기후협정이라는 게임의 룰에 합의했다. 도장 찍고 나선 다른 소리해 봐야 소용없다. 탈탄소를 향한 레이스의 총성은 이미 울렸다. 이젠 '틀려도 맞는 예측이다.

- 뛰어난 관료 선발과 고위직 관료들의 큰 재량권, 효율적인 전략 수립에 따른 고성장은 중국식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반면, 부패는 그 대가다. 재량권이 있는 곳엔 부패가 있다. '권력필부 '다. 부패를 없앤다는 건 중국식 자본주의의 핵심인 재량권을 없앤다는 의미다.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부패에도 중국식 자본주의 가 지지받는 이유는 뭘까? 눈부신 경제 성장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이 계약이 신기해 보일지 몰라도 동아시아 끝에 있는 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퍽 익숙한 얘기다. '독재할 테니 잘 먹고 살게는 해 주겠다'는 약속, 우리는 개발독재 때 이미 경험했다.

- 큰 시장 규모와 유통 채널의 변화는 왜 유독 케이팝만 그 수혜를 입었는지 는 설명하지 못한다. 케이팝의 핵심은 미국식 팝의 보편성과 한국 특유의 색 깔이 묘하게 섞인 '혼종성'이다. 케이팝은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도 '보편성' 의 문을 열 많은 열쇠도 품고 있다. 한 때는 콤플렉스였던 '정체불명'이 이젠 아이덴티티가 된 것이다. 케이팝 한 곡 안에 힙합부터 록, EDM에서 라틴음악 까지 모두 섞여있다.
케이팝은 미국의 흑인음악과 제이팝의 영향을 받았고 그 특성을 모두 품 었다. 케이팝의 시초로 보는 서태지는 당시로선 낯선 흑인음악의 코드를 들여왔다. 우리가 익숙한 아이돌 시스템은 일본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아이 돌 시스템을 수출한 일본은 '일본스러움'에 갇혀 내수에 머물렀지만, 케이 팝은 아이돌 시스템에 보편성을 갖춘 음악을 실어 혼종 그 자체인 문화를 만 들었다.
아시아의 특수성과 미국이 대표하는 주류 시장의 특징이 만나 결합할 경 우 나오는 폭발력은 홍콩 문화가 보여줬다. 90년대 아시아에서 강한 영향력 을 보인 홍콩 문화는 중국 문화와 자유로운 홍콩의 세련된 특성이 묘하게 결 합돼 탄생했다. 중국과 영국이 닿는 경계에서 변이가 일어난 사례다.
- '변이'를 기획하는 기획사
기획사는 이런 전파자를 더 활용하기 위한 요소를 알고 있다. 바로 '떡밥'이 다. 보통 케이팝 덕질을 시작하면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은 모두 보고, 소셜 미디어에서 한 말 한마디까지 꼼꼼하게 살핀 후 팬덤 커뮤니티에 모여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타는 여러 채널을 통해 많은 떡밥을 뿌린 다. 아예 데뷔 전부터 콘텐츠를 찍어 소셜 미디어에 뿌리며 떡밥을 만든다. 라이브나 비하인드 콘텐츠도 이런 역할에 충실하다.
이런 과정은 바이러스가 활발하게 '변이'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케이팝 기 회사는 이런 변이 가능성을 높일 여러 장치를 만든다. 한 그룹을 여러 조합으 로 쪼개 다양한 콘셉트를 소화하게 만드는 유닛(unit) 활동이 대표적이다. 멤 버가 거의 20명에 가까운 그룹을 만드는 건 애초에 그 안에서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다. 그 안에서 알파, 베타, 델타・・・・・・ 끝없이 새로운 조합을 만들고 실험해 전파 가능성을 높인다.
여러 성공을 거듭하며 다양한 덕질 콘텐츠를 만드는 시스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신곡 하나가 나오면 우선 티저(teaser)부터 여러 개를 제작해 발표한다. 그러다 공식 뮤직비디오가 나오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퍼포먼스 버전, 세로버전, 직캠버전, 무대 뒤 영상, 각 멤버별 영상, 무대 전체 영상이 쏟아진 다. 여기에 '광야' 같은 독특한 코드를 넣어서 세계관을 구축하며, 또 한 번 콘텐츠를 만든다.
케이팝의 부상에서 기획에만 초점을 맞추면 반쪽짜리 정답이 나온다. 기획 사는 성공을 기획하지 않는다. 애초에 한국의 작은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신 대중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포인트를 찾고 배치한다. 얻 어 걸리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지 않는가. 케이팝 그룹이 갑자기 '빵'하고 뜨 면 대체 무슨 일인가 싶지만, 그 또한 기획이 행운을 만나 터진 결과다.
변이를 거치며 케이팝은 강해지고 있다. 2010년대 벌어진 불공정 계약 논 란은 진통 끝에 표준계약서 문화를 낳았다. 변이 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해 적 극적으로 도입한 외국인 멤버 구성은 국가주의(애국심 논란) 리스크를 키웠 다. 이런 문제에 여러 번 부딪히면서 기획사들은 다국적 그룹의 경우 철저하 게 정치적 이슈를 피해가게 만들었다. 아예 가상의 세계관을 만드는 기획도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작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벼농사의 특징은 '공동생산개별소유'다. 함께 농사를 짓지만 산출물은 각 자 나눠 갖는다. 내 집, 내 밭에 씨 뿌리고 유유자적 사는 삶을 버리고 이런 집단노동에 투신한 까닭은 쌀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면적당 생산 열량을 비교하면 밀의 2배가 넘는다. 열량이 높을 뿐 아니라 육류와 함께 먹어야 하 는 밀이나, 콩이 필요한 옥수수와 달리 쌀은 완전식품이다. 이런 쌀의 매력에 빠진 선조들은 압록강을 넘어 건조한 기후의 만주에 가서도 불가능해보였던 쌀농사를 기어이 해냈다.

- 유교의 통치는 모두가 자신의 마음속에 달아놓은 CCTV의 통제를 스스로 받는 저비용 통치 구조다. 불행은 개인 탓이요, 모두가 성공은 할 수 있다. 다 만 처지가 딱한 건 수양이 부족해서다. 이 얼마나 성군의 치세인가. 작은 법 위반에도 팔다리를 자르고 사사건건 개입하는 '나쁜 나라님'이 다스리는 법 가의 통치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결국 이기지 않았을까. 이런 피통치자의 마음속에 CCTV를 다는 일을 아주 넓게 우리는 '문화'라 고 부른다. 적어도 수천 년의 동아시아 역사에서 위력을 검증한 통치 수단이 다. '충(忠)'과 '효(孝)'를 실천한 미담을 발굴하고 이런 원리를 담은 철학을 바탕으로 관리를 선발해 많은 이들이 자나깨나 읊고 외우게 만들었다. 피통 치자가 자발적으로 유순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신민(臣民)이 되는 시스템의 기반을 소프트웨어에서 찾은 것이다.

- '조선은 왜 망했는가?'는 일제 강점의 역사가 있는 한국에서 중요한 질문 이다. 하지만 그렇게 문제가 많은 나라가 500여 년이나 유지된 이유도 고민 해봐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전 근대 역사에서 한 왕조가 100년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다. 비록 500여 년의 끄트머리는 처참하고 굴욕적인 결말로 귀결됐지만, 그 앞의 긴 역사를 이끈 원동력은 생각해볼 점 이 있다.
굴욕의 역사를 겪은 한국 사람들은 철두철미한 하드웨어의 힘에 천착해 전진해왔다. 그 결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G8'을 논하는 데까지 왔다. 동 시에 하나의 성적표를 더 받았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세계 꼴찌 (42.3%)이고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건 1등이며 자녀가 기쁨보다는 부담이라는 생각도 세계 1등을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행하고 자녀까지 부담스러운 자칭 'G8'이 한국의 성적표다.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를 되살리자거나 논어의 가르침을 받들자는 의미가 아니다. 필자는 유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가 단순히 경제와 같은 '하드웨어'만으로 해결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오천만 명이 모인 이 공동체가 하나의 국가와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엔진이 꺼졌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수천 년의 역사를 지배해온 '마음속의 CCTV'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활용 해야 할까.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는 이 불행한 나라에 어떤 답을 찾아줄 수 있을까.

- <신뢰이동>에는 공유경제의 3단계 과정을 '아이디어 -플랫폼-신뢰 형성'으로 나눈다. '겨우 앱으로 차와 사람을 이어주는 게 무슨 혁신?'이라는 비 판은 플랫폼만 갖춘 기업에 적용된다. 타다는 그 위에서 신뢰까지 성공적으 로 만들어냈다.
'부르면 제때 올까?', '불친절하진 않을까?', '불쾌한 일을 당할 때 책임져 줄까?' 이 3가지는 신뢰의 문제다. 원래는 국가의 보증(= 면허)이 해야 하지 만 잘 해결하지 못했다. 타다는 알고리즘과 적극적인 차량 투자로 이 3가지 신뢰 문제를 해결했다. 별점은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소했다. 이 별점을 믿는 것도 타다를 믿기 때문이다. 타다는 신뢰를 면허에서 플랫폼으로 빨아들였 다. 모빌리티 시장의 신뢰가 국가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한 것이다.
- 글로벌 PR기업인 에델만의 신뢰지표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부 관계자보다 페이스북 친구를 두 배 이상 믿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믿음이 점차 자기 랑 비슷한 사람에게 옮겨가 플랫폼으로 모이는 것이다.
국가나 대기업 브랜드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해온 매스 미디어의 고민도 여기서 나온다. 과거에는 매스 미디어가 전문성과 사실에 대한 '도장'을 찍어 줬다. 신문에 나와야 전문가이고 팩트였다. 지금은? 소셜 미디어에서 인정받 고, 유튜브 채널에서 구독자를 모으며 영향력이 쌓인다. 여전히 레거시 미디 어의 영향력은 크지만 고민도 커지는 지점이다.
앞으로 유니콘은 훨씬 더 많아질 전망이다. 반면, 그들이 평가받는 가치만 큼 국가와 대기업의 기득권은 줄어들 것이다. 17세기에 스코틀랜드 금세공업자들은 금 보관증을 화폐로 만들어 왕실의 시뇨리지(seigniorage, 주조차익)를 잠식해갔다. 왕이 도장을 찍어야 인정받던 화폐를 금 보관증이 대신한 것 이다. 훗날 정부가 이걸 깨닫고 규제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꼭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흐름을 알아채고 신뢰를 쌓은 '신뢰 부자' 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개업한 별점 5점짜리 맛집이 100년 노포를 이기는 게 현실이다. 1인 유튜버가 기자가 수백 명인 전문 매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평판이나 계정의 신뢰성은 그 사람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뢰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보다 훨씬 냉정하다. 유명 인플루언서도 '광고' 한 번에 무너지곤 한다. 광고비를 받고 신뢰를 팔았기 때문이다.

- 지금은 희귀금속 생산량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하지만, 1980년대까지는 미국이 이 시장을 지배했다. 이게 중국으로 넘어간 건 한마디로 '너무 더러워 서'다. 개발도상국의 오지로 넘길 만큼 심각한 오염을 초래하는 산업이란 얘 기다. 여기에 환경주의 진영에서 기겁하는 방사능까지 배출한다. 바오터우의 취수장 방사능 수치는 체르노빌의 2배나 된다. 희귀금속에서 방사능이 나오 는건 아니지만, 정제 과정에서 배출량이 상당하다.
유럽과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드라이브의 이면에는 중국이나 아프리 카의 희귀금속 채굴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에 전기차가 늘어나면 서울의 대 기오염은 줄지만, 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청남도의 대기는 더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테슬라 차주가 늘어나면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의 코발트 광산에는 더 많은 아이 노동자가 투입된다.
경제적 문제도 남아있다. 전 세계 희토류 시장 규모는 7조원 정도다. 이 시 장의 95%를 중국이 지배한다. 여기에 반도체와 앞으로 수십 배 성장할 신재 생에너지, 전기차가 올라타 있다. 반도체만 해도 시장 규모가 600조 원이 넘 는다. 희귀한 한 줌의 흙에 세계 경제가 올라탄 셈이다.
1970년대까지 석유 공급에 출렁이던 세계 경제는, 산유국이 늘고 결정적 으로 미국발 셰일혁명을 겪으며 안정을 찾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미사일이 떨어지면 세계 경제가 하루 이틀은 충격을 받겠지만, 그 이상 휘청거리진 않 는다. 반면,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20~30가지씩 들어가는 희귀금속 중 몇 가지만 병목이 걸려도 애플과 삼성, 테슬라 같은 거대 공룡들의 생산 체계가 삐걱대면서 글로벌 경제를 위태롭게 만든다.
1980년대 들어 서구사회는 희귀금속 시장을 중국에 완전히 넘겨줬다. 하지만 중국은 그저 돈이나 많이 벌려고 이 시장을 선택한 게 아니다. 1992년에 덩 샤오핑은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30여 년 전부터 중국은 희귀금속에 대해 전략자원으로 접근한 것이다.

- 우리가 알던 룰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공짜' 세계화가 끝나간다는 것이다. 상황이 변했고 세계의 규칙도 바뀌고 있다. '주식회사 미국 그룹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미국의 계열사로 남으려면 더 이상 공짜는 없다. 호주처럼 자원 기지가 되든지, 폴란드처럼 최전선 보루가 되든지, 일본처럼 바다를 나눠 지키든지. 이제는 본사 미국에 보낼 수표에 얼마를 써서 낼지 정할 시간이다.

- 중국의 현재가 '서구식 자본주의 발전 경로'라는 틀로 설명이 안 되면 새로 운 틀이 필요하다. 이 책이 말하는 '중국화'가 바로 그 틀이다. '중국화'라고 하면 대게는 기분 나쁜 인상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화는 정확히 말하 면 '송나라화'다. 1000년 전 중국 왕조, 그 송나라다.
저자는, 중국은 '서구화하는 게 아니라 1000년 전 시작한 '송나라화'를 다 시 가열차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근대의 기틀을 닦은 근세(近世)가 15세기 유럽이 아니라 9세기 송나라에서 시작됐다는 '송 근세'이다. 이 관 점으로 보면 중국이 외치는 '굴기(起)'가 미스터리하지 않다. 경로이탈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1000년 전 송나라에서 근세가 시작됐다고? 이는 젊은 재야사학자가 한 얘 기가 아니라 1920년대 일본의 석학 나이토 고난湖南이 한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 <중국화 하는 일본>은 100년 전 나온 송 근세설을 가져와서 최근 동북 아의 정세를 살짝 풀어냈을 뿐이다.
송나라화의 핵심은 '귀족제도를 폐지하고 황제 전제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송나라 때 귀족제가 폐지됐다고 말한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본격 도입한 과거제로 선발한 관료에 의한 통치로 대체됐다고 말한다.
한국은 조선사 500년 경험이 있어 과거제도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당시 송나라 입장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다. 1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통일 된 지식 체계를 공부하고, 시험을 거쳐서 권력을 얻어낸 거니까. 그것도 무려 1000년 전에 말이다.
지방으로 발령 받은 중앙 관료가 귀족(=호족)의 권력을 제압하면서 국가 시스템이 확립된다. 즉, 황제 빼곤 모두가 (상대적으로) 대등하게 경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작두로 호족의 망나니 아들의 목을 뎅강뎅강 하던 판관 포청천이 바로 송나라 관료다. 저자는, 중국이 송나라 때부터 계급제가 폐지 됐다고 주장한다. 파격적이다.
- 화폐경제도 이때 시작됐다. 세계 최초의 지폐가 사용됐고, 화폐 공급이 경제를 따라가지 못하자 신용 화폐인 어음까지 등장했다. 화폐경제는 국가가 나서서 권장했는데 세금을 물납(物)이 아닌 돈으로 받기 시작한 게 결정적 이다. 1000년 전에 말이다. 지금이야 세금을 화폐로 내는 게 당연하지만, 세 계사를 보면 쌀 같은 현물로 내는 게 대부분 아니었던가
송나라는 중앙 권력이 강했지만,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은 풀어놨다. 봉건 제에서 농민은 귀족의 재산'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었다. 송나라 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지니 농민 입장에선 "어라, 쌀을 팔면 돈이 생기네. 그럼 다른 도시로 가서 사고팔아 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화폐경제와 이동의 자유가 만나면서 상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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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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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본책

사회 2024. 4. 6. 20:15

- 한국인들은 20세기 내내 '민족주의'에 기대 살아온 사람들이다. 유교적 보편문명의 사고에 너무 익숙한 나머 지, '민족nation'이라는 근대의 발명품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고, '민족'을 막 알아가려던 참에 망국의 비운을 당했다. 어쩌면 나라가 망한 후 타국의 압제하에서 '민족'을 온전히 알게 되었 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민족'이란 한국인들에 게 마치 가질 수 없는 연인처럼 더 절절한, 어떤 것이 되어버 렸다.
'민족주의자nationalist'가 우리말의 국수주의자와 비슷한 어감 으로 통용되는 다른 선진국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 그 말은 여전히 칭찬이다. 그러니 이제 민족주의는 그만'이라는 말에 많은 한국인들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민족주의의 만연이 더 이상 우리 민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시점에 와 있다고, 나는 본다. 예전의 민족주의가 한국인들을 단결시키고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면, 지금은 우 리를 배타적. 폐쇄적으로 만들고, 과학과 학문이 제시하는 곳 과는 다른 길로 오도하는 데 쓰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북한을 보라. 주체사상의 나라, 북한만큼 민족주의적인 나라 는 지구상에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나라만큼 민 족주의의 폐해를 선명히 보여주는 경우도 없다.
이 세상에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나 좋은 것은 없다. 절대 적 가치인 것처럼 보이던 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의 미를 갖게 된다. 만인의 우러름을 받던 민족주의자가 정작 독 립이 되어 집권하고는 자기 민족에 학정을 펴는 경우는 비일 비재하다. 민족주의는 영원한 진리도, 절대적 선도 아닌, 많은 얼굴을 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 일본에서 음식 차리는 것을 보면 밥은 두어 홉을 넘지 않고 반찬도 두어 가지에 지나지 않아 몹시 간소하다. 다 먹으면 다시 덜어 서 먹기 때문에 남기는 일이 없다. (중략) 여름에 파리와 모기가 매우 드문데, 이는 실내가 정결하고 지저분한 물건이 없기 때문 이다. (중략) 길가에서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질서정연 하고 엄숙한 분위기라 떠드는 사람이 없다. 인파가 수천 리 길에 이르렀는데 단 한 명도 제멋대로 행동하여 행렬을 방해하는 사람 이 없다.
내가 20여 년 전 일본 유학을 갔을 때 일본의 인상이 딱 이 랬다. 일본을 가보신 독자들도 비슷한 인상을 갖고 계실 것이 다. 그런데 이건 내 얘기가 아니고 1719년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신유한이 한 말이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해유록》)
'질서를 잘 지키고 줄을 잘 선다', '깨끗하고 위생적이다', '친 절하다. 우리가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들이다. 일본이 근대화를 빨리 해서 앞서 있으니, 우리도 부지런히 따 라가야 한다고. 하지만 신유한이 전했듯 그들이 줄 잘 서고 말 잘 듣는 건, 근대화 때문이 아니라 도쿠가와 시대부터 원래(?) 그랬다.
신유한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일본인들은 상하관계가 한 번 정해지면 위아래의 구별이 엄격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두렵게 여기며 (중략) 엎드려 기면서 시키는 일을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받들어 행한다." 지하철이 운행을 멈춰도, 세습 의원들이 국회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도 그저 조용하기만 한 지금의 일본 국민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럼 조선인은 어땠나. "조선에서는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경쟁하는 데 몰두한다. (중략) 이 나라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자 리로 올라가는 일이 곧잘 벌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는 일이 많고 뇌물도 행해져 아침에는 출세하고 저녁에는 망하니 조용할 날이 없다.” 누가 한 말인지 참 신랄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며 웃음이 피식 나온다. 도쿠가와 시 대 일본 최고의 조선통이었던 아메노모리 호雨의 조선 평이다. 

- 도시와 상업이 이렇게 발달했다면 사회적, 지역적 유동성도 일본 쪽이 높을 것 같지만 실제는 달랐다. 일본은 조선보다 더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사무라이-상인(조닌町人)-농민-부락민 (천민)으로 엄격히 구분됐을 뿐만 아니라 각 신분 내에서도 계 층 차는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신분만이 아니라 직업도 잘 바꾸지 못했다(않았다). 초밥집 을 하는 이에의 자손은 으레 그 일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 았다. 대가 끊기거나, 자손이 있더라도 초밥집을 감당할 능력 이 없다고 생각될 때는 재능 있는 양자를 들여 초밥집을 유지했다. 때로는 성이 다른 사람이 양자로 들어오기도 했다. 혈연보다 가업을 앞세우는 것이다. 이러니 그 초밥이 맛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 초밥집이 오래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성은 혈연의 이름이자, 이에의 상호였다. 일본 회사나 가게 이름 에 스즈키, 다나카 등 곧잘 성이 붙어 있는 이유다.
거기에 비하면 조선의 가문은 무엇보다 혈연이 최우선이다. 대가 끊기면 재능보다는 같은 혈연의 양자를 들였다. 타성양 자란 생각하기 어려웠다. 직업은 자주 바뀌었다. 구한 말 서울 종로를 방문한 한 일본인이 "어떻게 1년을 가는 가게 가 없냐”며 놀라더라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 사무라이의 나라, 무의 나라 일본이 어쩌다가 세계가 주목 하는 문의 국가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 연원을 찾으려면 조 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퇴계 이황이 고봉 기대승과 수준 높 은 철학적 논쟁을 벌이고 있던 시대에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 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臣秀吉 같은 무장들이 군웅할 거하고 있었다(전국시대), 서원이나 향교, 과거나 상서 같 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있는 것은 오로지 근육과 칼, 힘과 전투뿐이었다. 과연 양국은 문의 나라, 무의 나라라고 불릴 만 했다.
그런데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 모두 무기 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전투가 벌어질지 알 수 없으 니, 사무라이는 전투 대기 상태였다. 칼도 허리춤에 차고 군대도 유지한 채 이게 그대로 행정조직이 되었다. 군주인 쇼군은 이름 그대로 최고사령관이었고, 이하 사무라이들은 계급별 로 신분이 고정된 채 자신의 직무를 세습하며 수행했다(가업).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쟁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다.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조차 할 수 없을 정도 로 세상은 태평성대로 접어들었다.
1600년경 1200만 명 정도였던 인구는 1720년경 3000만 명 을 가볍게 넘었고(조선은 1300만 명 정도), 얼마 안 있어 에도 인구는 100만 명(한양 30만 명)에 이르렀다. 경제는 농업 혁신과 상업 발달에 힘입어 약진했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세상은 점점 군인인 사무라이들에게 무예 대신 지식을 요구했 다. 전투 능력은 아무 쓸모가 없는 시대였으므로. 아닌 게 아 니라 차고 다니던 칼도 다 녹슬었기 때문에 궁한 김에 상인에 게 팔아치우고 목도를 대신 차고 다니는 자들도 있었다. 때마침 막부나 봉건국가) 정부도 번교를 세우고 향 교를 지원하며 학문을 장려했다. 이전부터 있던 사숙私들은 더욱 번성했다. 요즘으로 치면 지방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번 교들이 우후죽순 세워졌다(막부 말기에 이미 200개가 넘었다). 그 속도는 어느 학자가 '교육 폭발의 시대'라고 칭할 정도로 놀라웠다. 19세기 초 다산 정약용은 벌써 일본의 학문 수준이 범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일본 유학자들의 고전 주석을 인용했다. 이미 유학 교육이 한풀 꺾이고 심지어는 사회적 병폐로까지 변질되었던 조선, 중국과 달리 19세기 일본은 유학중심은 주자 학朱子學)을 비롯하여 학문과 교육 열풍에 휩싸였다. 번 정부는 사무라이들의 번교 출석을 엄격하게 확인했다.
한편 무예로 전투에서 공을 세워 출세하는 것이 더 이상 불 가능해진 현실에서 젊은 사무라이들은 학문과 학교에서 돌파 구를 찾으려 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사무라이 간의 학적 네 트워크가 결국 정치화되어 메이지유신의 촉매제가 되었다.
<1987>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1980년대 이념 서클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19세기부터 시작된 맹렬한 공부 붐이 근대 일본을 만들었 다. 그 추세는 20세기 100년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독서 대국 도, 노벨상도, 세계적 동아시아학도 그 기반 위에서 만들어졌 다. '문의 나라 한국은 언제쯤 이뤄질 것인가?

- 사회나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위에 두고, 사회에 대한 개인의 비판, 저항, 이탈을 용인하는 것을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일본은 개인주의가 매우 희박한 사회다. 소속 집단보다 개인 이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 며, 집단을 상대로 대의 혹은 자기 이익을 내걸고 투쟁하는 개 인도 드물다. 우선 일본 사람들은 말수가 적으며, 입을 열어도 자기주장을 하려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주변 공기를 읽고서 그에 맞춰 말한다(분위기 파악이라는 일본말은 '空氣讀', 즉 '공 기를 읽는다'다). 한국에서 분위기 파악을 못 하면 핀잔 좀 받는 데 그치지만, 일본에서 공기를 읽지 못하면 진지하게(!) 주목 의 대상이 된다. 거듭되면 아웃된다.
이런 사회에서 한 개인이 사회를 상대로 도도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사회 전체의 원리를 비판하며 그것을 초월하려는 행동이나 발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런 사회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모두가 모두를 배려 혹은 의 식하며 질서와 규율을 지키고 공동의 이익(예를 들면 국익)을 추구하기에 용이하다. 그 속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긴장과 반 발의 에너지를 무마하는 장치가 '고립의 허용'이다. 개인이 집 단에 저항하여 집단 전체의 원리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용서 하지 않지만, 그 원리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나는 따로 살겠다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단 전체의 원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다. 교토대학교 학생들이 면벽식사를 하도록 배려해주고, 어떤 친구가 도깨비 같은 패션으로 지하철을 타도 간섭하거나 나무라지 않는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고립 허용주의'다(오타쿠御는 사회에 당당 하게 발언하는 '개인'들이 아니라 허용된 고립의 공간에서 뛰노는 존재 들이다).

- 한국이 민심의 나라라면, 일본은 엘리트, 그중에서도 '야쿠닌'(관리 혹은 공무원)의 나라다. 일본인들의 감각에 관리나 정치인은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일반 시민은 일반 시민의 세 계와 일이 있고, 그들은 그들의 세계와 일이 있다. 각자의 '야 쿠役'(역할)가 있는 것이다. 이러니 우리가 볼 때 의아할 정도 로 일본인들은 정치에 대해 관심도 비판도 없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위정자, 엘리트들 은 그에 부응해 자신들의 '야쿠'를 잘 수행해왔다. 일본 사회에서 대대로 관리를 비롯한 엘리트의 신뢰도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대략 1990년대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야쿠 닌'들이 부패하고 무능해진 것이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 그룹 인 오쿠라성省(우리의 재정경제부) 부패 사건이 잇달아 발생 한 것을 계기로, 일본의 리더십은 관료사회에서 정치가로 넘 어갔다. 그런데 정치가들은 더 무능했다.
일본 사회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정치의 '야쿠'를 담당 하는 엘리트들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데도 일본 시민들은 자기 '야쿠'만 수행할 뿐 이에 간섭하거나 항의하지 않는 다. 그 사이에 거대한 공백이 생긴다. 이 틈새에서 일본 사회 는 기능부전에 빠졌다. 3.11 동일본대지진 때도 그랬고, 코로 나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의 '야쿠'가 제대로 회복되든 지, 아니면 오래된 전통을 깨고 '야쿠'의 사회를 바꿔 '야쿠' 밖 으로 소리치고 감시하고 저항하지 않는 한 21세기 일본은 매 우 힘든 난관에 거듭 봉착할 것이다.
그 대척점에 한국이 있다. 한국에는 애초에 '야쿠'라는 게 없다. 직업은 언제든 바꿀 준비가 돼 있고, 내 직업을 굳이 자식이 하길 원하지 않는다. 내 일보다는 '남 일'에 관심 많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가장 만만한 '남 일'은 정치다. 내 일을 팽개 치고 '남일'인 정치에 비말을 날리며 울부짖는 건 한국 시민 의 일상사다. 놀랄 만큼 많은 수의 시민들이 자기 분야보다 정 치에 더 해박한 지식과 정밀한 분석을 선보이는 신공을 갖고 있다. 그만큼 한국 민심의 수준도 높다. 이러니 민심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 늘 각자도생이 먼저이면서도 공동체 붕괴의 위 기 때는 온갖 아이디어와 충심을 발휘하며 다이나믹하게 대응 한다. 금 모으기 운동과 코로나 대응은 그 백미였다.

- 한반도 세력에게 일본제국은 약 40년간 패자였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의해 미국이 그 자리를 대신한 지 60년이 되었다. 그 샌프란시스코 체제도 동요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 래다. 명청 교체기, 구한말 같은 지역 질서의 격변기가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 북한은 중국에 점점 목을 매고 있고, 남한의 전략가들은 미래에 대한 합의를 좀처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은 당 고종의 신라 정복 실패 이후 포기했던 '한반도 직할 카드를 혹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한에서는 조만간 구한말 때처럼 친미파와 친중파가 요란스레 대립하게 되지는 않을지...
일본은 쓰나미에 당했다지만 나는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는 '지정학 쓰나미'가 더 두렵다.

- 1987년 이후 한국 현대사는 혁명보다는 유신에 가깝다. 변 혁을 밀어붙인 핵심 세력은 반체제가 아니라 체제 내 비주류 세력이었다. 예비 엘리트인 대학생들, 야권 정치 세력과 사회 세력, 합리적 사회를 바라는 광범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그들 이다.
커다란 변혁을 달성했으면서도 사회질서가 붕괴되거나 대 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질서 있는 변혁', 그것도 메이지유신보다는 훨씬 시민의 힘에 기댄 바가 크다. '위로부 터의 질서 있는 변혁'이 아니라 '아래에 기댄 질서 있는 변혁'.
- 이 미증유의 실험 한가운데에 586이 있다. 그들은 당연히 기성 체제의 핵심이다. 그것도 장기간 그러했다. 영화 <1987> 에 대한 586들의 나르시시즘적 반응은 자기도취다.
586세대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오랫동안 누리고 있다는 것 을 칼바람 맞듯,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혁신, 자기연마 해야 한다. 역사는 아직 586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586에게 는 유신의 길밖에 없다. 만약 우리 사회에 정말 혁명이 일어난 다면, 그들이 대상이 될 것이므로.

- 정말 통일신라·고려·조선 왕국은 후진국이고 별 볼 일 없는 나라였나? 예를 들어 18세기 조선은 인구 1300만 명 정도가 먹고살 수 있는 나라였다. 다른 나라에 비해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도 아니었다. 주자학을 비롯한 지적 수준은 잘 알 려진 대로 대단했다. 당시를 지금처럼 국가 랭킹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 조선이 'G20'과 한참 거리가 멀었으리라 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흔히 듣는 말 중에 "우리나라가 중국에 앞선 것은 20세 기 몇십 년뿐인데, 그나마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있다. 그게 어디 한국뿐인가. 일본도 베트남도 다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현상을 두고 나만 못났다고 하니 반성이 아니 라 자학에 가깝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은 매우 특수한, 아마도 세계사에서 유일한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흔히 우리 역 사에 대해 평할 때 "중국 옆에서 살아남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 다”고 하는데 결코 과분한 평가가 아니다. 베트남이 비슷한 경 우라고 볼 수 있겠으나, 베이징과 하노이는 베이징과 서울에 비하면 저 너머 세상이다. 우리 역사를 바라볼 때는 이런 배경 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역사는 중국처럼 수천 년간 지역의 패자로, 문명의 센터로 지내온 역사도 아니고, 일본처럼 저 멀리 바다 한가운 데서 지정학적 행운을 즐기며 자폐적으로 살아온 경우도 아니 다. 그만큼 더 복잡하고 깊은 사연이 있다. '고투의 역사'에 대 해 적절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적으로 이만큼 흥미를 자 극하는 역사도 드물 것이다. 독특한 조건 속에서 분투해온 한 국사의 경험은 역사에서 지혜를 구하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에 게 커다란 교훈과 영감을 줄 것이다.

- 나는 불안하다. 우리가 일본을 너무 일찍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인 50~60대는 일본과 가장 격절된 세대다.
이들은 일제를 경험한 윗세대나, 일본 문화를 통해 일본 사 회를 줄곧 접해온 젊은 세대와 비교할 때 일본을 잘 모르는 세 대에 속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 세대 오피니언 리더들과 얘기해보면, 미 국이 보는 시각으로 일본을 내려다본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이런 것이 영향을 끼쳐서일까? 일본은 한물간 나라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일본사 수업에서도 일본어 텍스트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일본어는 '변방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아직 도전자의 자세로 일본을 더 알아야 한다. 알아 도 샅샅이 알아야 한다. 일본이 무서워하는 나라는 큰소리치 는 나라가 아니다.

- 서울 지하철 젊은 여성의 손에 도쿠가와 시대 역사서가 들려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뿐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도 베스트셀러가 되며, 중년 남성들의 술집 대화에서 메 이지유신 지도자 이름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오고, 학교 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서의 이토 히로부미만이 아니라, 그런 자가 어떻게 근대 일본의 헌법과 정당정치의 아버지로 평가되는지, 그 불편함과 복잡성에 대해 파헤치는 그런 한국 을, 일본은 정말 두려워할 것이다.
화풀이만으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 물론 화가 나니 화도 풀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극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일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부와 식견이 좀 더 높아져야 한다. 여기에는 왕도가 없다. 돋보기 들고 차근차근, 엉덩이 붙이고 끈덕지게 공부 또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세계인 모두가 일본 을 존경해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동시에 세계인 모두가 일본 을 무시해도 우리만은 무시해선 안 된다.

- 1910년 조선이 망한 것은 반일 감정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일본을 증오하고 규탄하는 사람들은 전국에 넘쳐흘렀고, 일본 을 깔보고 멸시하는 사람들도 사방에 빽빽했다. 모자랐던 것 은 메이지유신 이후 40여 년간 일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게 우리의 운명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었 다. 해방 후 지금만큼 한일 간의 국력 차가 좁혀진 적은 없었 다. 그러나 섣불리 우쭐거리는 것은 독약이다. 장차 우리가 일 본을 정말 앞서는 날이 와도 우리는 일본을 경시하는 맨 마지 막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일본은 정말 경계해야 할 상대이기 때 문이다.

- 일제 치하 조선 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논리와 팩 트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해 작가 상허 이태 준은 일갈했다고 한다. "주기율표(화학에서 중시하는 원소 배열표) 대로 하라. 연금술은 반대한다." 역사를 논할 때 입으로는 논 리와 팩트를 말하지만, 사실은 연금술을 부리려는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 조선 민족의 위대성을 이태준인들 소리쳐 외 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차근차근 주기율표대로 하지 않고 연금술을 부려 '민족의 위대성'을 만들어낸다면 그건 환 상에 불과하며, 결국 독립은커녕 우리를 더더욱 열등 민족으 로 내몰 것이라는 차가운 사실을 상허는 내뱉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연금술은 뚝딱하고 주장하기 쉽지만 논리와 팩트에 기초한 주장을 하는 데에는 품이 많이 든다. 왜냐하면 논리와 팩트에 하자가 있을 경우 그 사람의 신뢰성이 떨어지므로 거 듭거듭, 단단히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뉴스 프로그램 에 '팩트체크' 코너가 생겨난 것은 반가운 일이나 아직도 우 리 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언론 플레이 잘하는 사람)이 행세 하곤 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단단한 논리와 팩트로 무장한 사람일 지라도 큰 목소리 한 방에 묻혀버린다. 큰 목소리가 가짜란 게 드러나도 더 큰 소리를 내면 상관없다. 이런 판국에 누가 논리 와 팩트에 공을 들이겠는가. '아니면 말고'는 퇴장해야 한다.

-한국인들(남북한)은 너나없이 제국주의 비판에 열을 올린다.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제 욕을 해대는 북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남한 사람들도 그에 못 지않다. 대신 미제가 아니라 일제다.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이견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이 문제만큼은 총화단결 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국 근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 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음모의 산물이고, 메이지 정권 수립 (1868년) 당시에는 일개 약소 농업국에 불과하여 제국주의를 하고 싶어도 할 능력이 없었던 일본은 이미 이때부터 '일제' 다. '일제'는 강화도조약(1876년)부터 한국병합(1910년)에 이르 기까지 한반도 침략을 치밀하게 기획하여 결국 실현해냈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런 시각은 일본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격변의 40년 동안 일관되게 대외 방침을 유지하고 부동의 실천력으로 다른 나라를 집어삼켰으니, 이런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강화도조약 당시 일본은 정한론을 주장하던 국내의 반정부파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 어떻게든 조 약을 성사시키려고 허둥댔고, 조선의 외교 관료들은 무능했다 고만은 매도할 수 없는 교섭력을 보여줬다. 강화도조약의 내 용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불평등하지만은 않았다(서울대 김종학 교수 등의 설). 이때부터 적어도 청일전쟁까지 일본은 능 수능란하게 한국병합을 착착 추진한 것이 아니라 갈팡질팡, 우왕좌왕했다. '일제'를 규탄하려다 본의 아니게 일본을 '무소불위의 능력자'로 만드는 이런 시각은 자연스레 당시 한국인 들의 대응을 '예정된 실패'로 왜소화시켜버린다. 침략에 대한 일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다가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민족적 자긍심이 아 니라 패배주의와 콤플렉스다.
패배주의와 콤플렉스는 희한한 현상을 유발한다. 제국주의 라면 핏대부터 올리는 사람이 '대쥬신제국' 운운하며 한국사에 제국을 만들지 못해 안달한다. 이들이 날조한 '조선 제국'은 산둥반도 백제 진출설, 일본열도 삼한 진출설을 넘어 이따금 중앙아시아로도, 심지어는 동유럽으로도 확장한다. 이런 사이비 역사학은 조소와 함께 비교적 쉽게 치지도외置之度外 할 수 있다. 문제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사이에 폭넓게 잠재되어 있는 '제국에 대한 은밀한 욕망'이다. 오래전 페이스북에 쓴 적이 있지만 과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고려 관련 전시 는 고려가 가끔 자칭한 '황제국', '천자국'에 대해 과도하게 집 착했다. 내가 볼 때 하나의 '소극笑이었던 대한제국' 수립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심성도, 또 '만주 고토 회복' 운운 에 대해 대중적 인기가 여전한 것도 한국인들이 제국·제국주 의를 비판하면서 내심 그리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 2017년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어 전임 대통령이 연이어 구속되었다. 그와 함께 대통령직, 혹은 국가원수의 권 위도 또 한 번 큰 상처를 입었다. 권력과 분리된 권위가 제대 로 존재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권위는 늘 권력의 성패에 의 지하게 된다. 국민 대다수가 심복하는 사회적 권위가 쉽사리 형성되지 않는 이유다. 모든 것이 중앙으로 휘몰아쳐 올라가 는 사회에서 최고 권력은 제왕적인 힘을 갖지만, 그만큼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
중앙 권력을 향한 풍압風壓은 가히 초대형 태풍급이다. 그 풍압은 무한한 권력을 주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제왕적 대통 령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권위도 산산조각 낸다. 이런 사회에 선 안정된 권력도 고색창연한 권위도 존재하기 어렵다. 일본 의 권력자가 구름 위에 있다면, 한국의 권력자는 칼날 위에 바 람을 맞으며 서 있는 존재다. 이 풍압을 능란하게 다뤄 거대한 발전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인물을, 우리는 찾고 있다.

- 일본에서는 혐한 분위기가 한창이다. 그 계기는 2012년 한 국 대통령이 천황의 사죄를 요구한 것이었다. 우익에게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것이다. 그 대통령은 독도에도 상륙했지만, 일본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천황 문제에 비교가 안 되었다. 독 도 문제에는 한국에 이해를 표하던 많은 일본 지인들도 천황 사죄 발언 앞에서는 등을 돌렸다. 몇 년 전 비슷한 발언을 했 던 우리 국회의장은 여러 차례 사과하며 곤경에 처했다.
일본인에게 신성불가침의 존재이니, 우리도 존경해야 한다 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천황에 대한 그들의 자세를 감안하고 계산하면서 일본을 대하자는 것이다. 독도·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 아무 생각 없이 천황을 끌어들여 일본 우익을 신나게 하고 일본 내 우리 편을 내쫓을 이유가 뭐가 있는가. 우리 국 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철두철미 전략적이어야 한다. 특히 천황을 상대로는 섣부른 애국심보다는 전략적으로 그 존재의 무게를 이용할 필요가 있 다. 얕은 애국심으로 국익에 깊은 손해를 끼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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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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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 변화가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이나 지역 자영업자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기후 위기가 인권, 불평등의 문제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8월 전국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폭염 민감계층 실태 조사'에서 지금 생활 공간의 온도가 적정한지, 에어컨 사용이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물었는데요. 더위 때문에 저소득층이 일반집단에 비해 큰 고통을 받고 있었어요. 더위를 견디기 힘들지만 전기 료 탓에 에어컨 사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고, 더워도 그냥 참고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제가 기후 변화와 인권 문제를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저소득층 주민들의 태도였어요. 취재 전에는 쪽방촌처럼 열악 한 주거 환경에 사시는 분들은 폭염과 한파 같은 이상 기후에 화가 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체념하신 상태였 어요. 자신들의 삶은 늘 그랬다면서 그저 에너지 바우처 같은 지원이나 늘려 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기자로서 당사자 목소리를 존중 해야 했지만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으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저희가 다른 식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기후 변화 문제를 심각 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일반 가정은 90%가 넘는데, 저소득층은 60%예요. 피해는 저소득층이 더 보는데 문제의식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높은 거죠. 이는 기후 위기에 관해 당사자가 직접 발 언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 도시 중산층 그리고 교육 수준이 높은 40~50대가 가장 많은 발언을 하 고, 친환경 인식도 높다는 연구가 있어요. 복지 전문가들도 기후 위기가 저소득층에게 더 치명적일 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 1998년 이후부터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히로시마 원자 폭탄 31억 개가 터진 만큼의 에너지가 우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지구에 잡혀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후 위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80만 년 동안 빙기와 간빙기가 10만 년 주기로 반복했습니 다. 이는 인간이 일으킨 100년 동안의 변화와는 달리 10만 년에 걸 쳐 일어난 변화이기에 자연스럽죠. 이때 자연에서는 1000년에 약 1도 상승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기온 상승 속도입니다. 인간은 화석 연료를 태워 지난 100년 동안 약 1도를 상승시켰습니다. 인간에 의 한 기온 상승 속도는 자연 상태일 때보다 10배나 빠릅니다. 이처럼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는 크기보다 속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기온 변화 속도가 커진다는 것은 기온 변동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즉, 극단적인 날씨가 크게 증가하여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 다. 1980년도에 전 세계적으로 약 250개 정도의 극단적인 날씨가 발생했어요. 2019년에는 그 수가 800개를 돌파합니다. 지난 40여 년 사이에 발생 빈도가 세 배 이상 증가한 거예요.
- 현재 온실가스 배출 수준이라면 기후 위험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1.5도는 2030년대에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 다. 위험을 헤쳐 나가는 것도 한계에 부딪혀 결국 파국에 도달할 수 도 있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2도는 2050년대에 일어날 수 있습니 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우리와 직접 상관없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기후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기후 위기는 지금껏 인류가 경험한 모든 위험과 질적으로 다릅 니다. 바로 '회복 불가능성' 때문이에요. 지금까지는 아무리 큰 위 기가 있었다고 해도 지나고 나면 회복할 수가 있었어요. 안 그랬다 면 우리가 지금 여기 함께 있을 수가 없겠죠. 기후 위기는 점진적으 로 조금씩 다가오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느닷없이 급격한 변화로 다 가올 수 있습니다. 젖은 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는데 도로 표면 온도 가영상 1도에서 영하 1도로 변하면, 약간 미끄럽던 도로가 순식간 에 치명적인 도로로 바뀌죠. 이처럼 어느 순간에 전체 균형이 깨져 버리는 상태가 되는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 합니다. 티핑 포인트는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되어 버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지구 가열이 커질수록 결과가 원인이 되어 더 큰 결과 를 낳는 순환이 일어나 극단적인 기후 위기가 가속됩니다. 이러한 조짐이 지금 전 세계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 기득권 집단들은 우리나라 자연환경으로는 재생 에너지로 전력 수요를 감당 못 할 것이고, 재생 에너지 폐기물 문제가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결국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므로 그 대안으로 핵 발전 확대를 주장합니다. 태양광은 위도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우리나라는 '재생 에너지의 나라' 독일보다도 위도가 무려 15도나 낮습니다. 우리나라는 풍력이 북유럽보다 작기 는 하지만 풍력 발전을 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보존해야 하는 농지와 산지가 아니어도 건물, 도로와 철도 주변, 주차장, 댐, 저수 지와 대륙붕 등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할 곳이 우리 국토에 널려 있 습니다. 서울시 크기만 한 면적을 골프장으로 사용하는 게 우리나라입니다.

- 우리는 내일의 위험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 당장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죠. 현재의 전력 공급 체계에서 핵 발전은 필 요합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할 근거는 없습니다. 핵 발 전은 미봉책일 뿐이며 대체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핵 발전은 '위험과 혜택' 수준뿐만이 아니라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도 더 가능하지 않습니다.
선진국들은 화석 연료 기반의 산업을 무너뜨리고 재생 에너지 기반의 산업을 일으켜 새로운 세상에서도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합 니다. 우리나라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변화하 는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할 처 지예요. 세계 시장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합니다. 일본의 미쓰비시가 튀르키예에서, 히타치와 도시바가 영국에서 수주한 핵 발전소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이미 투자한 수조 원은 매몰 비용으로 처리 했습니다. 계속 진행할수록 더 큰 손실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생 에너지 전환에는 수많은 난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계를 뛰어넘는 재생 에너지 기술 혁신 역시 활발합니다. 우 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정책 결정자와 지도층이 전환 시대에 흐 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재생 에너지의 현재 한 계를 넘으려는 노력과 전망에 대해서는 눈감고, 현재 한계에만 잡 혀 있기 때문입니다.

- 기후 위기는 국경을 가로질러 진행되는 전 지구적 문제이자 전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인 해결책 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기후 위기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수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모두의 장기적 이익이 침해 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사 결정자의 무책임이 미래 기후 위험을 발생시키지만, 미래 세대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책임 져야 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공정하죠. 기후 위기는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일어나기에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기후 위기에서 벗 어날 수 있습니다.

-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해치는 문명이 결국 인간을 해칩니다. 기후 위기보다 인간에게 더 제한을 가하는 지배적인 조 건은 없어요. 우리가 10미터 높이에서 낙하한다고 가정해 보죠. 너 무 위험하니 중력 가속도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타협할 수 없습니 다. 자연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죠.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지금껏 달려왔던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가 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기후 위기는 문명 자체의 위기이므로 해오던 방식대로 하면 미래로 갈 수 없어요. 지금 세대가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그만큼 우리 세대의 책임 이 큽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해방적 파국'을 말했습 니다. 우리 앞의 파국은 지금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 리에게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어쩌면 기후 위기라는 계기가 지구적 공론과 연대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 소득 수준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살펴보면, 전 세 계 상위 10% 소득 계층의 소비 기반 배출량이 대략 50% 차지합니 다. 이 사람들이 사서 쓰는 물건 만드느라 그만큼의 탄소를 배출한 다는 뜻이에요. 하위 50% 소득 계층은 대략 10%를 차지하지요. 쉽 게 말해 최상위 10%의 사람들 8억 명 정도가 온실가스 전체의 절 반을 배출한다는 뜻이에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많이 버는 사람들은 많이 쓰잖아요. 오늘날 소비 행위는 그 자체로 온실 가스 배출 행위입니다.
지난 1990년에서 2019년까지 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 누구의 책임일까요? 전 세계 50%의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은 16%에 불과하지만, 상위 1%의 책임은 무려 21%나 됩니다. 하위 50%의 가난한 사람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는 전등을 켜서 밤 에 불을 밝히는 일과 관련이 되어 있을 거지만, 상위 1%의 부유한 이들의 배출량 증가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더 커다란 자동차를 몰고 거대한 저택에서 호화로운 삶을 탐닉했기 때문일 겁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부유한 나라의 중·저소득 계층의 사람들만 배출량이 줄어든 겁니다. 전 세계가 증가했는데 이 계층만 배출이 줄 었어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 다. 하나는 환경적 실천들, 친환경적 생활 방식이 증가했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잖아요. 일회용품 안 쓰고, 유기농 제 품 사용하고, 걸어 다니고 합니다. 부유한 국가들의 중산층들이 그 렇게 탄소 배출을 줄여온 거예요. 그러나 아마도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을지 모릅니다. 부유한 국가에서도 나타난 사회적 양극화 와 불평등 심화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의 임금이 하락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 탓에 소비를 하고 싶어도 못 한 결과 그 계층의 배출이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에요

- 여러분, 혹시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우주 관광'에 대해 들어 보셨어요? 옛날에는 특별한 임무를 가진 이들이 우주선에 올랐습니다. 조종사, 과학자, 엔지니어처럼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 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우주로 나갈 수 있어 요. 수백억 원 되는 비용을 내고 부자들이 우주 비행선에 타기 시작 합니다. 그중에는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있었어요. 우 주선 발사장에서 우주로 올라가는 데까지 11분 걸립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량이 75톤이나 됩니다. 참고로 한국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이 1인당 14.7톤입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뤼카 샹셀은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극단적인 부는 극단적인 오염을 가져온다."
이제 한국 이야기를 해볼까요. 2021년 작성된 '한국의 소득 및 탄 소 불평등 현황'이라는 자료를 보면 상위 10%가 가져가는 소득 비 중이 계속 늡니다. 1980년에 32%였다가 2000년대 이후로 46~47% 까지 늘어났습니다. 앞서 전 세계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2% 를 차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아직 괜찮은 건가 요? 한편 소득 하위 50%는 1980년에 23%였다가 지금 한 16% 정 도까지 내려갔습니다.
- 양극화의 심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현상이에요.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불평등이 완화되고 있었습니 다. 국가가 세금으로 부를 재분배하고 복지 정책도 적극적으로 펼 쳤어요. 그러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소위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작은 정부, 기업의 자유, 무역의 자유가 강조되죠. 쉽 게 말해 돈 버는 데 방해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후로 복지는 줄고 양극화는 심해집니다.
한국도 이런 흐름과 비슷하게 가죠. 그 결과 빈부 격차는 물론 탄 소배출 불평등도 강화됩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인당 평균 배출량이 14.7톤인데 상위 1%가 배출하는 양이 180톤입니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각성해서 지구를 살리자는 건 신 화에 불과합니다. '너, 배달 음식 시켰어? 지구를 생각해.' 흔한 캠 페인 내용이잖아요. 물론 이런 홍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해요.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혹은 신분 상승을 위해 끊임 없이 경쟁합니다. 이런 심리적·사회적 압박은 더 많은 소비로 치 닫게 해요. 내가 저걸 못 사면 왠지 뒤처지고 불행한 기분이 들어 요. 쫓기듯이 소비합니다. 그래서 소비주의의 압박 자체를 전반적 으로 낮춰야 한다고 거예요. 그래서 히켈은 다소 급진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최고 부유층들의 소득을 줄이는 모든 정책은 생태적으 로 효과가 있다고 얘기해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말한 부유세 같은 것도 여기에 해당하겠죠. 결론적으로 최상층의 구매력 감소는 그 자체로 탄소 배출 감소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기후 위기의 해법은 평등이라는 겁니다. 평등한 사회가 탄 소 배출을 줄인다는 거예요.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소비와 지출이 많이 줄 었어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동차, 가전제품 지출이 상승했어요. 주로 부자들이 많이 샀습니다. 다들 집 밖에 안 나올 시기였잖아요.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고 돈을 쓸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차도 사고 가전제품도 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런 품목은 탄소 배출이 많습니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전 체 탄소 배출량은 줄었지만, 상위층은 오히려 더 많이 배출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국에 전 세계 최고 부자들은 돈을 더 많이 벌었어요. 재난이 절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또 한번 확인 할 수 있었죠.
- 그런데 누군가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면서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녹색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시스템을 유 지하면서 기후 위기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유럽을 그 증거 로 생각하죠. 실제로 유럽은 1990년을 기점으로 했을 때, 지속적으 로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 동안 온실가 스 배출량은 떨어뜨렸죠. 딱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세상에 이보다 좋 은 결과가 없어요. 과거 화석 연료를 펑펑 쓰면서 경제 성장을 추진 해온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전망을 보여 준 결과이니까요. 그야 말로 '녹색 성장'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는 비밀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유럽이 자 신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떠넘긴 결과라는 거예요. 유럽 국가들은 지금 제조업이 별로 없어요. 그럼 제품들은 어디에서 만들까요?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만들어요. 당연히 온실가스도 만든 쪽에서 발생시킵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에서 배출하여 만들어진 수입품을 쓰기 때문에 자신들의 배출량이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겁 니다.
유럽의 깨끗함은 많은 개발 도상국한테 오염을 떠넘긴 결과입니 다. 탄소 제국주의니 탄소 식민주의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입니다. 만약 이런 '오염 떠넘기기'가 없었다면, 유럽이 경제 성장 을 하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래서 녹색 성장 전략 자체가 전 지구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씀 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유럽을 대신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 계의 공장' 중국도 '녹색 성장'을 한다면, 지구상의 다른 나라에게 전가하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 끊임없이 화석 연료를 채굴해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사이클이 지구상에서 반복되는 한 기후 위기 극복은 불가능합니다. 일부 지역에서 온실가스를 줄인 것처럼 보여도 지구 전체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학자들의 딜레마도 여기에서 비롯해요. 전 세계 경제 성장률을 2~3% 정도 유지하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여서 지구 상승 온도를 1.5도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나 애를 먹 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형적인 대책이 나오는 거예요. 전 세계 농토를 밀어서 숲을 만든다든지 우주에 인공 그늘막을 만든다든지,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답은 이미 있습니다. 물질적 생산 자체가 줄어드는 방식, 소위 탈 성장이라고 불릴 만한 방식의 시나리오를 개발해야 해요. 경제 성 장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던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야 기후 위기 극복이 가능합니다. 또 그래야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불평등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동의하 고 있어요.
- 그러면 인간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을까요? 지난 80만년 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분석해 보니까, 그래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해요. 대략 10만 년을 주기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변 화를 했고, 그에 따라서 지구 온도도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했습니 다. 인간이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도 자연 상태에서 농도가 올라갔 다 낮아졌다 했다는 뜻입니다.
인류가 없던 시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구는 거대한 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섯 개의 판이 계속 떠다녀요. 과거에는 하나의 거대 대륙을 형성했다가 떨어져 나왔다가 뭉치기를 반복했습니다. 대륙 운동이 활발할 때는 화산 활동이 빈번해집니다. 바로 이것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게 돼요. 지구 온도도 함께 상승하면서 온난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시 줄어듭니다. 이유는 풍화와 침식 작용이 에요. 여러분 교과서에서 배웠죠? 암석이 풍화, 침식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가져가요.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지구 온도 는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합니다.

-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과거 200만 년 동안의 기후환경을 복원해 그에 따른 지역별 인구 분포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기후 위기를 못 막으면 인류 대이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점점 줄어들잖아 요. 그런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외부인이 자기 땅 에 들어와서 사는 걸 쉽게 허락할 리가 없잖아요. 분쟁이 생길 수밖 에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기후 위기에 취약한 지역을 1등부터 25등까지 순위를 매겨보니까, 그중 13개 지역이 내란 상태입니다. 난민이 많이 생겼죠. 이 사람들 지금 다른 나라에는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독일처럼 잘 받아 주는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 소극적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8년에 제주도로 예멘 사람 500명이 난민 신청을 해왔을 때 반대 여론이 상당했어요. 그러니까, 생각만큼 이동이 쉽지 않아요.
- 우리나라 전기차 이용 실태를 조사해 보니까 평균적으로 내연기관차 이용자보다 전기 차 이용자가 주행 거리가 많습니다. 아이 오닉 전기 차를 기준으로 1년에 2만 5000킬로미터 정도 탑니다. 전 기를 한 달에 약 388킬로와트를 사용해요. 그런데 전기 1킬로와트 만드는 데 약 840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나옵니다. 천연가스로 만들 면 420그램이 나오고요. 그래서 제가 계산을 쭉 해보니까 결과적 으로는 아이오닉 전기 차를 쓰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1년 동안 배출 하는 이산화탄소량이 2.5톤이 나옵니다. 반면에 내연 기관차인 아 반떼를 1년 동안 1만 킬로미터를 탄다면 약 1.3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요.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전기 차를 타는 사람이 내연 차 타는 사람보다 배출량이 더 많아요. 그래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재생 에너지를 쓰는 전기 차여야 하는 거예요. 수소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료인 수소에도 종류가 있어요. 재생 에너지인 태양광, 풍력을 이용해서 물 분해를 해서 나온 수소는 '그린 수소' 라고 합니다. 이걸 사용하면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 어요. 그런데 부생수소라고 해서 석유 화학물이나 철강 등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많이 써요. 이건 따로 설비를 만들 필요 가 없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낮습니다. 1킬로그램을 얻는 도중에 이산화탄소가 10킬로그램을 배출해요.
지금 상태라면 수소를 쓰면 쓸수록 탄소 배출이 늘어요. 그럼에 도 전기 차와 수소 차를 키우는 건 일단 시장을 만들자는 차원이에 요. 그다음에 재생 에너지 비율을 높이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정 책의 면면을 보면 기후 변화 대응이라기보다는 관련 산업 키우기 의 측면이 커요.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면서 영국 시민들 처럼 의회에 가서 입법권을 요구해야 할 지경입니다.

- 다시 '핏포55' 이야기로 돌아오면, 수송에서는 내연 기관 금지가 있었고요. 그다음에 항공 산업 같은 경우에는 기본 배출권을 안 주 기로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운행하려면 무조건 전부 다 배출권을 사와야겠죠. 그런 데다가 유럽으로 향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 가 능한 항공 연료 혼합을 의무화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 연료 같은 게 여기에 속하는데요, 이런 연료는 값이 세 배나 비싸요. 기업 입장에서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그다음에, 항구에 배 들어오는 배가 있잖아요. 이건 총량을 딱 정합니다. 이제 세계 여러 나라 물 건을 대량으로 실어 나르던 '자유무역'의 시대가 끝나가는 거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는 쓰레기 소각장도 짓는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이 격렬 하게 반대하죠? 그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면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같은 곳에서는 7000억을 들여서 소각장 을 짓는데 소각장 위에 스키장을 설치하고 기술로 연기도 다 잡아 버리기 때문에 냄새도 안 납니다. 덴마크의 아마게르 바케 열병합 발전소의 이야기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소각장이 주는 피해를 모 르고 지내요. 주변에는 카페 시설도 많고 해서 오히려 관광 명소가 돼 있거든요. 오스트리아에는 지하철 바로 옆에 소각장이 있습니 다. 일본도 그렇고, 외국의 쓰레기 소각장은 음악관, 미술관 등 문 화 시설이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 지금 태양광 발전은 대기업 중심입니다. 주민들이 출자자로 참 여하는 시민햇빛발전소와 같은 소규모 사업자들이 역할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RPS)를 도입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 사업자에게 일정량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의무화 한 거예요. 따라서 한전은 일정량의 재생 에너지를 구입해야 해요. 그런데 입찰로 재생 에너지를 구매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로 가 격을 낮출 수 있는 대기업이 유리합니다. 이렇게 하는 나라는 전 세 계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두 군데밖에 없어요. 다른 데는 전부 다 고정 가격제입니다. 그래야 안심하고 재생 에너지 사 업을 시작하죠. 결국 여기서도 시장 논리로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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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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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술 혁명

사회 2024. 3. 25. 07:30

- “선을 계획하면 악이 방해한다. 선은 비효과적이지만, 악은 효과적이고 완강하다.” (디에고 우르타도 데 멘도사 Diego Hurtado de Mendoza, 1503~1575)
-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역사가 인간의 계획을 얼마나 손쉽게 따돌리는지 감탄하게 된다." (타키투스 Tacitus)

- 기원전 2세기 초반, 로마는 사회적 타락을 막으려고 과도한 소비를 금지하는 사치 금지법을 통과시켰으나 의도했던 효과를 얻지 못했으 며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타락해갔다. 기원전 1세기 초반, 로마가 정치적 으로 불안정해지자 루시우스 코넬리우스 술라Lucius Cornelius Sulla는 자신 의 군대를 이용해 수도를 점령하고, 반대파들을 처형하고, 안정적인 정부 를 복구하고자 개혁 정책들을 펼쳤다. 하지만 술라가 “합법적인 정부를 수호하던 사람들을 죽이고, "귀족정을 꽃피우게 했던 공공 봉사 정신과 는 정반대 성향의 무책임한 사람들로 원로원을 채워 넣었기 때문에 상 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로마의 정치 체제는 계속해서 망가져 갔으며, 기원전 1세기 중반에 이르러 로마의 공화정 전통은 사실상 무너졌다.
-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국제기구를 통해 전 세계에 원자력에 관련 지식과 물자를 나누어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 Atoms for Peace" 정책을 추진했다. 1957년, 평화적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증진하기 위해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가 설립되었고, 1968년 UN총회는 “핵확산 방지" 조약에 서명해 핵무기 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국가들에 원자력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을 승인했다.22 이 정책 관계자들이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봤다면, 국가 들은 대개 조약이 자신에게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때만 조약을 지키며 그 마저도 금방 어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을 추 진한 사람들은 국가들이 원자력 기술을 전수받으면 너무나도 고마운 나 머지 원자력 기술을 평화적 용도로만 사용할 것이며, 역사적으로 파괴적 인 무기 개발의 원동력이었던 권력에의 욕망과 치열한 경쟁을 영원히 중 단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 따라서 인류가 역사를 통해 얻은 경험과 인간 사회의 복잡성, 혼돈이론, 논리적 역설들을 고려하면 인간 사회는 절대 자기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므로 어떤 형태의 사회도 자신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계획 할 수 없다.
이 결론은 특이하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다. 지식인 들은 옛날부터 인간 사회가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스턴Robert W. Thurston은 이렇게 적었다. "어떤 정부도 국가를 물 리적으로 완벽하게 관리할 수 없었으며 중앙 정부가 내린 결정에 따르 는 부작용들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실패한 노력과, 실현되지 않은 열망과, 실현되었으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던 소망들의 이야기이다."
노버트 엘리어스 Norbert Elias는 이렇게 적었다. "전체로서의 실제 역사의 경로는... 누구의 의도도, 계획도 아니다. ... 문명은... 맹목적인 움직임이며, 관계망의 역학의 자율성에 따라 움직인다. 
- "우리가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이 무엇인지 누가 정하는가?"라 는 질문에 인류가 보편적 합의를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890년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역사의 최종 결과는 언제나 수많은 의지들의 투쟁 결과로서 결정된다. 각 각의 의지는 삶을 결정하는 수많은 조건을 통해 형성된다. 세상에는 무수 히 많은 힘이 교차하고 평행하며 여기서 역사적 사건이 태어난다. 다른 측 면에서 보면, 전체로서는 무의식적이고 누구의 의지도 따르지 않는 하나 의 힘으로 볼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은 다른 모든 이들의 의지에 반해 움직 이며, 그 결과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 등장한다.
- 노버트 엘리어스는 맑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엥겔스와 대단히 유 사한 주장을 했다.
서로 협력하거나 반목하는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이익과 의도가 엮어진 결과, 누구도 계획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무언가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두의 의도와 행동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모두가 특정 정책에 동의해도 "공유지의 문제" 때문에 정책 을 효과적으로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유지의 문제”는 모두가 따르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각각의 개인에게 있어서는 따르지 않는 게 이익일 때 벌어진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가 세금을 내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으나 개인에게는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이 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금을 자진해서 내거나 초과해서 내는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예상되는 반론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 체제가 존재 한다는 것이다.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결정들은 수많은 의지들 의 투쟁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거 등의 방법을 통해 공적으로 권 력을 부여받은 소수의 정치지도자들이 개인들에게 전체의 복지를 위한 행동을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내려진다. 소수의 정치지도 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공유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정치지도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지도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으므로 사회 발전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
-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는 이렇게 불평했다.
재무부는 너무나 방만하고 관습에 젖어있어서, 재무부를 움직여 내가 원 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재 무부는 국무부에 비하면 양반이다. 무엇 하나라도 바꾸기 위해서는 외교 전문가들을 하나하나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재무부와 국무부를 다 합쳐 도 해군에 비하면 양반이다. 제독들을 상대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다는 것 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해군을 바꾸는 것은 마치 깃털 침대에 주먹을 휘 두르는 것과 같다. 왼쪽 주먹과 오른쪽 주먹을 번갈아 가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휘둘러도, 그 빌어먹을 침대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된다.
- 루즈벨트의 후임자,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력이 얼마나 강한지, 최고통수권자가 얼마나 강하 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든다. 경험자로서 말해주겠다. 미국 헌 법과 미국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은 강한 권력을 가질 수도 있 다. 하지만 대통령의 핵심 권력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원래 설득하지 않았 어도 해야 했을 일을 하게끔 설득하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그게 바로 대통령의 권력이다.

- 그래도 태양 에너지는 괜찮겠죠? 그렇죠? 글쎄, 아닌 것 같다. 태양광 패널은 생명체들에게서 햇빛을 차단한다. 앞서 지적했던 바, 기술 체제는 언제나 가용 에너지가 다 떨어질때까지 확장하고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달라고 요구한다. 만약 화석 연료와 원자력 에너지가75 기술 체제의 무한한 에너지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으면, 햇빛이 닿는 모든 장소에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될 것이다. 태양광 패널들이 점차 자연 서식지들을 파괴할 것이고, 햇빛을 차단하고, 대부분의 생명체들을 죽일 것이다. 지 금도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멸종 위기 동식물들 의 주요 서식지였던"76 미국 서부 사막에 “대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77 2011년 Western Lands Project의 상임이사쟈닌 밸로 치Janine Blaeloch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 발전소는 공유지, 서식지를 심하 게 훼손할 것입니다." 밸로치의 예측은 사실로 밝혀졌다.그리고 기술 체제의 에너지 욕구는 무한대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기술 체제는 농경지 를 제외한 모든 지표면에 태양광 패널들을 설치할 것이며 결국 지표면의 자연 서식지들을 모조리 파괴할 것이다.
- 현재 파트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술적 세계체제가 그 논리 적 귀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두면, 지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 등 생명체들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필자의 개인 적 의견에 불과하며 이를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기서 제 시한 사실과 주장들은 충분히 설득력 있으며, 충분한 근거 없이 우리가 마주한 종말이 지구 역사에 수차례 있었던 과거의 대멸종들보다 더 심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태도야말로 경솔한 것이다.
기술 체제의 발전이 그 논리적 귀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생물권은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며, 지금 진행 중인 여섯번째 대멸종이 공룡을 절멸시킨 백악기 멸종보다 심각하지 않다면 그것만큼 좋은 소식이 또 없을 것이다. 여섯번째 대멸종과 함께 기술 체제는 당연히 무너질 것 이며 인류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숫자는 대단히 작을 것이다.
하지만 앞선 진술의 유보조항, “기술 체제의 발전이 그 논리적 귀 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에 주목하라. 필자는 가끔 이런 질문 을 받는다. “기술 체제가 어차피 스스로 무너진다면, 뭐하러 무너뜨리나 요?" 당연히 기술 체제를 지금 제거하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 문이다. 기술 체제가 발전할수록, 생물권과 인류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 이고, 지구가 죽음의 행성이 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 "두 개 이상의 모순이 존재하는 복잡 과정을 연구할 때는, 가장 주된 모순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야 한다. 일단 주된 모순이 해결되면, 모든 문제들이 동시에 해결된다.” (마오쩌둥)
“목표가 단순해야 인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언제나 명쾌한 거짓말이 불분명진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것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 1949년 3월, 중국 공산당이 승리를 앞두고 있을 때 마오쩌둥은 경고했다.
승리와 함께, 오만함, 영웅심리, 타성, 무사태평함이 당 내부에 자라고 있다. 동지들은 반드시 겸손하고 신중하게 남아있어야 하며, 오만함과 경 솔함을 경계해야 한다. 동지들은 반드시 검소하고 투쟁적 삶을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마오쩌둥의 경고는 무의미했다. 이미 1957년 그는 불평했다.
최근 우리 동지들 사이에 인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려는 위험한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 정권은 그 부패로 악명높다. 당원들과 관료들은 공산주의 이상보다는 그들의 경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중국 정부 내 부는 노골적인 부정행위로 가득차 있다.
-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나기 직전, 토마스 제퍼슨은 이렇게 적었다.
모든 법률적 기본권들을 수정할 최적의 시간은 우리 지도자들이 정직하 고 우리가 단결하고 있는 지금이라는 사실을 몇번이고 지적해도 지나치 지 않다. 일단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자 마자 13개 주 사이에서 신생국가가 분열될 정 도의 불화와 다툼이 터져나왔다. 1787년 헌법 제정을 통해 미국 혁명가 들은 연방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으나 1798년 반자유주의적 법률 이민- 소요죄법 Alien and Sedition Acts  제정은 기존 혁명가들도 혁명적 이상을 잃 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존 혁명가 대부분이 죽고난 후 미국 정치에 는 일말의 이상도, 진실성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수십 년 후 기술 진보로 인해 인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어 선진국들이 심각하고 만성적인 실업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고 가정해보 자. 46만성적 실업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반드시 기술 체제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위기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분노한 사람들이 2011년~2012년 스페인과 그 리스에서 발생한 것과 유사한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으나, 이것은 비조직 적인 절망감 분출에 불과했으며 거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비효과적이었던 스페인, 그리스 폭동을 2011년 이집트의 “아랍의 봄”과 비교해보자. 아랍의 봄은 지적인 지도자들이 대중의 분노를 활용 해 권력구조로부터 중대한 양보를 얻어냈다. 결과적으로 이집트 혁명은 실패했으나 지금의 논점과는 무관하며, 요점은 유능한 혁명가들이 대중의 분노와 절망을 이용해 유익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기술 혁명가들은 권력구조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것에서 만족해서는 안되며, 권력구조를 무너뜨려야 한다. 위에서 가정한 것처럼, 기술적으로 진보한 국가들이 만성적인 실업문제에 시달리게 된다면 여 전히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자리를 잃을까봐 겁에 질려있 을 것이며 기술 체제에 대한 존중을 상실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직업 을 최대한 오래 붙잡을 궁리만 할 것이며, 실업자들은 냉소에 빠지거나, 분노하거나, 절망할 것이다. 광범위한 폭동이 발생한다면 권력구조는 압박을 받겠지만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잘 준비된 혁명가들은 분노하고 절망한 사람들을 조직하고 지도해서 단순 폭력 사태를 넘어 유의미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유의미한 행동은 추측의 영역일 수밖에 없지만,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반기술 혁명가들이 이집트인들처럼 권력구조에게서 양보를 받아낼 수도 있을텐데, 이집트와의 차이점은 그 양보가 너무나 중대해서 권력구조가 큰 수치심을 느끼리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권력구조 구성 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권력구조 내부에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유발 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일단 이 단계에 도달하면, 권력구조를 붕괴 시킬 전망은 밝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시나리오는 설명을 위해 제시한 가상의 사례임을 명심하자. 현실의 혁명은 전혀 다른 노선을 걷게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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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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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테러범

사회 2024. 3. 25. 07:29

- 플라스틱 오염과 벌이는 전쟁, 그리고 생산량을 두 배로 늘 리려는 막대한 투자. 이런 불편한 모순에서 관심을 돌리려면 교 란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40년 동안 재활용이라는 최후의 교 활한 계략을 내놓았다. 일부 미국 산업체 경영진은 재활용을 촉 진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죄의식을 덜어 주고 소비에만 집중하도 록 장려하기 위해 그들이 고안해 낸 전략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 했다. 실제로, 발표된 기적은 신기루에 가까웠다. 1950년 이후 생 성된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단지 9퍼센트만이 재활용되었으 며, 12퍼센트는 소각되었고,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자연 속에 버 려졌다. 제조업체는 재활용을 열렬히 옹호하고, 다수의 비정부기 구NGO는 완전히 혼란에 빠진 소비자에게 재활용은 성공할 수 없 다는 걸 설명하려고 애쓰는 전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 석유 산업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산업도 의혹을 바꾸고 조작하는 데 능숙하다. 의혹을 방어하려고 이 분야에서 펼치는 로비는 꽤나 강력하다. 플라스틱은 새로운 담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석면이 될 것인가? 담배가 20세 기에만 1억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동안 반세기에 걸쳐 담배 회사 는 담배의 유해성을 부정하고, 이 산업이 계속 번창할 수 있도록 담배와 폐암의 연관성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전략을 펼쳤다. 19세 기 후반에 널리 사용되었던 석면을 생산한 업계도 길을 열었다. 1930년에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석면 먼지와 폐 질환 사이의 <반박할 수 없는 연관성>이 드러났다. 업계는 알고 있었지 만 직원들에게 계속 이 사실을 숨겼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그 속임수를 폭로하기 위해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었다. 플라스틱 테러범들은 그 피고석에 앉게 될까?

- 수천 가지의 폴리머가 발명되었지만, 단지 여섯 가지가 시장의 90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 그것들은 모두 열가소성 플라스틱으로, 새로운 용도를 위해 다시 녹일 수 있다.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 렌, 폴리스티렌, PVC,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직물에 사 용되는 합성 섬유(나일론, 폴리에스테르 등등)가 그것이다. 그러 나 각각의 물질은 추가하는 첨가제에 따라 수천 가지의 제형을 생성한다. 폴리에틸렌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폴리에틸렌이 있다. 일곱 번째 폴리머는 폴리우레탄인데 이것도 비교적 널리 보급되어 있다. 제조업계에서 많이 사용하며 신발 밑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6종의 플라스 틱과는 달리 폴리우레탄은 열경화성 수지라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 

- 플라스틱 제조업계가 그렇게 투자를 한다는 건 시장이 있다는 이야기다. 기후 보호가 비상사태가 되고 열을 동력으로 하는 자동차가 사라지려는 세상에서 그들은 화석 연료가 반드시 새로 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맹신 하는 재료가 계속 세상을 뒤덮고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계산은 단순하고 정확하다. 더 많은 사람 과 더 많은 수입은 곧 더 많은 플라스틱을 의미하는데, 특히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그렇다. 10년 전부터 연간 4퍼센트씩 성 장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향후 30년 동안 2~4퍼센트 성 장이 가능하다.
미국 화학협회가 의뢰한 연구는 포장재를 많이 소비하는 온라인 상거래와 음식 배달의 지속적인 증가, 플라스틱이 편재하는 (변기, 파이프 등) 분야에 해당하는 개발도상국의 <화장실 혁명>, 주택 단열재, 전자 장비나 태양 전지판처럼 에너지 전환에 필수 불가결한 플라스틱 재료 등을 통해 그런 예측이 타당하다는 걸 증명했다. 영국의 시장 조사 회사 IHS마킷IHS Markit의 연구 사무 소는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스포츠와 여 가활동에 비용 부담이 줄어들어 기능성, 충격 내성, 중량감소가 가능해진 플라스틱 소재의 다양한 제품에 대한 소비로 이어질 것 이다. 말하자면 카약, 헬멧, 운동장, 경기장 좌석 같은 스포츠 장 비, 보호 장비, 지원 플랫폼과 설비 등 몇 가지 실례를 들 수 있 다.>" 플라스틱 제조업자들은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동남아 시아, 그리고 특히 인도와 아프리카에 주력하여 가장 많이 투자 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신흥 중산층이 <생활 수준의 향상>을 추 구하며 점점 더 도시화가 진전되고 있는 곳이다.

- 배럴당 10~80퍼센트를 플라스틱 생산에
결론을 말하자면, 정유 업체들은 대개 원유 배럴당 10퍼센트 미 만에 해당하는 양을 우선 플라스틱 생산을 위한 화학 유도체로 전환했지만, 현재는 40~80퍼센트 수준으로 추출할 수 있는 새로 운 공정을 실험하고 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시장 조사 업체 IHS마킷은 이것을 배럴당 수익성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혁신 적인 기술>로 보고 있다. 엑손모빌이 운영하는 이런 종류의 정유 소중 하나는 이미 싱가포르에서 가동되고 있다. 인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대 다섯 배 크기의 정유소가 건설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 대기업 사우디아람코는 이런 새로운 기회를 개발하려고 향후 10년에 걸쳐 1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 획을 세웠다. <화학 제품의 놀라운 성장은 우리에게 근사한 기회 의 창을 제공한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창구는 신속하게 행동하 는 사람들에게만 최고의 혜택을 줄 것"이라고 사우디 아람코는 내다보았고, 행동으로 옮겨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의 미래를 보 장받기 몇 달 전, 2018년에 플라스틱 챔피언인 동료 기업 사빅을 장악했다.
- 모래와 화학 물질이 담긴 물을 땅속에 주입하여 천연가스를 추출 하는 수압 파쇄법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이 기술을 사용하면 극 도로 심각한 오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심각한 메탄 누출이 일어 난다. 메탄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메탄이 대기에 유출된 후 첫 20년 동안 온난화를 발생시키는 능 력은 이산화탄소의 그것에 비해 80배에 달한다. 그리고 2008년 이후 대기의 메탄 농도가 급증했는데, 북아메리카의 셰일가스 추 출과 함께 등장한 현상이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생태학자 로버 트 하워스Robert Howarth에게 이 현상은 우연이 아니었다. 2019년 그는 메탄가스의 급격한 증가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소의 사 육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에서의 셰일가스 생산이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하워스에 따르면 메탄 의 대기 유출이 셰일가스 생산량의 3.2~6.4퍼센트를 차지하며, 지난 10년 동안 기록된 새로운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의 35퍼센트 에 기여했을 수 있다. 유독성을 띠는 데다 지진 발생의 원인이기 도 한 파쇄법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중지되었다. 

- 상징적인 물건이 되어 버린 비닐봉지는 화석 에너지로부터 비롯된 기적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간혹 폴리프로필렌으로 만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폴리에틸렌으로 만든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되는 폴리머인 폴리에틸렌은 뜻하지 않은 실수로 발명 되었다. 1933년, 영국의 화학자들이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흰 색의 밀랍 같은 잔여물을 얻게 되었는데, 이 물질의 성질이 아주 주목할 만한 것으로 드러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은 통신 케이블을 강화하려고 비밀리에 폴리에틸렌을 사용했고, 그 결과 독일보다 한발 앞선 위치를 점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첫 번째 성공은 훌라후프다. 1958년, 폴리에틸렌은 소녀들의 허리주변을 열광적으로 도는 유색의 원형 틀을 만드는 데 쓰였다. 훌 라후프의 열광적인 인기는 이후에 재미는 덜하지만 돈벌이는 훨 씬 더 잘되는 비닐봉지로 이어진다. 1950년대부터 몇몇 기업이 이런 유형의 포장재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1965년에 스웨덴 회사 셀로플라스트Celloplast가 멜빵 형태의 손잡이 두 개가 달린 일체형 주머니의 특허권을 소유하게 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 해진 그 비닐봉지다. 이 신제품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 다. 비닐봉지는 불과 몇 년 만에, 한 세기가 넘게 훌륭하고 충실한 임무를 수행한 자신의 조상 종이봉투의 자리를 빼앗고, 재사용이 가능한 가방도 퇴장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유럽이 이 유행을 창출했으며, 1970년대 후반에는 이를 미국으로 전파 했다. 어디서나 플라스틱은 계산대에 등장한다. 무료로 끊임없이 말이다. 20년 동안 소비자와 비닐봉지 사이의 러브 스토리에는 거의 불화가 없었다.

- <생분해성> 봉지의 유혹에 대해 경고한다. <생분해성>이라는 용 어는 예를 들어 가정에서 퇴비를 만드는 것처럼, 자연 환경 속에 서 저절로 빠르게 분해되는 봉지를 지칭해야 할 것이다. 유엔은 <실제로 대부분의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매우 높은 온도에서만 분 해가 된다>고 경고한다. 달리 말하면 여러분의 정원이나 발코니 가 아니라 소각로에서나 분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옥수수 전분, 카사바 뿌리, 사탕수수, 지질이나 당분의 미생물 발 효물질(PHA)처럼 재생 가능한 소재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도 환경 속에서 저절로 분해되지 않으며, 특히 바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석유에서 추출한 기존 비닐봉지를 바이오 성분 의 비닐봉지로 대체한다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닐 수 있다. 유 엔에 따르면, 이는 <식량작물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기근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플라스틱 업계가 대 안을 늘리면서 소비자에게는 혼란만 일으킨다. 소비자는 결국 재 활용이 가능하지도 않고 실제로 생분해되지도 않는 봉지를 빈번 하게 분리배출장으로 보내게 된다.
- 플라스틱이 가볍다는 장점으로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다면, 물질의 독성과 플라스틱의 환경 유출에 관한 질문은 생략하고 몇 가지 질문만 하면 되는 것이다. 플라스틱 업계가 그렇게 한다. 그러면 평가는 매우 과학적 관점에 따른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다. 「수명 주기 평가, 이건 깜깜이 블랙박스입니다. 즉 자신에게 맞는 대로 자신 이 원하는 모든 것을 넣을 수 있습니다. 연구의 진정성으로 평판 이 높은 영국 환경 단체, 켐 트러스트CHEM Trust의 이사이자 생화 학자 마이클 워허스트 Michael Warhurst는 이렇게 확신한다.
- 이런 평가 분석을 우리가 사용하는 비닐봉지에 적용해 보면, 비닐봉지가 면으로 만든 재사용 가방보다 탄소의 영향이 적다고 나온다." 제작과 운송에 에너지가 적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 만 환경 공학자이자 환경 디자인 전문 조직인 쉐이핑 인바이런먼 털 액션Shaping Environmental Action의 설립자 율리엔 부셔 Julien Boucher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짓는 것은 그 재료보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입니다. 면으로 만든 가방은 10년 동안 1,000번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당연히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영향을 덜 미치게 되겠죠.」 업계에서 떠벌리는 비닐봉지의 축소된 영향은 오로지 <쓰레기들 이 완전히 수거되고 재활용되거나 소각되어 에너지를 생산하 라는 이상적인 시스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생산 규모를 축소 하면 기후 정책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는 플라스틱 업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유엔조차도 이 분석에 대해 경계할 것을 요구하며, 결국에는 <환 경에 가장 영향을 덜 주는 쇼핑백은 소비자들이 이미 집에 가지 고 있는 장바구니다>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 뉴저 지주는 2020년 가을, 플라스틱이든 종이든 모든 일회용 봉지를 금지하는 조치를 표결에 붙여, 이 방면으로는 가장 야심찬 법안 가운데 하나를 채택했다. 3회 위반하면 벌금이 약 4,800달러 정 도 부과된다.

- PVC 같은 폴리머에는, 종종 첨가제가 플라스틱보다 더 많이 들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 눈에 띄지 않지만, 첨가물의 세계 시장 매출 규모는 600억 달러 이상이다.
플라스틱의 경우 다양한 구성에서 독성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모노머: 그 자체로 폴리머를 구성한다. 폴리카보네이 트 조성에 들어가는 비스페놀A 즉 BPA가 이에 해당한다. 
*첨가물: 플라스틱에 주입하여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하고, 착색과 착향을 가능하게 하며, 열, 물, 기름 등에 내구성을 갖도록 그 성질을 변화시킨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들로는 프탈레이트, 과불화 화합물, 브롬화 난연제가 있다.
*NIAS: Non-intentionally added substances에서 나온, 전혀 끌리지 않는 이 약자는, 의도적으로 첨가된 물 질들이 아닌, 불순물 또는 제조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을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그 표면인데, 플라스틱 표면은 화학 물질과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세균들을 옮길 수 있다. 해양학자들은 플라스틱을 바이러스와 세균을 수천 킬로미터까지 운송하는 뗏목이라고 말하곤 한다.

- 환경 단체 티어펀드TearFund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 도상국에서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30초마다 한 명이 숨진다고 한다. 또한 유엔에 의하면, 사업장에 서 유독성 제품에 노출되어 15초마다 근로자 한 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보건 기구WHO는 연간 인류 사망자 수의 4분의 1, 즉 1300만 명의 죽음이 환경과 관련 있다고 추정한다. 플라스틱에서 방출되는 내분비 교란물질을 포함한 독성 화학물 질이 이 사망률에 일조한다. 그럼 플라스틱으로 인한 전체 사망 자수는 얼마나 되는 걸까? 정확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 법정에 선 과불화 화합물
사실, 이미 터졌다............. 그것은 바로 미국 파커스버그에서 판결이 난 과불화 화합물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6년에 「뉴욕타임스」 에서 냉담한 어조의 기사로 다루었고, 2019년에는 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에 등장했다. 폴리 및 퍼플루오로알킬Poly-and perfluoroalky|이란 물질은 1940년대부터 제조되었고, 영어 약자인 PFAS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물질은 과불화 화합물이라는 용 어로 분류되는데, 방수성을 가진 데다가 오염과 기름기에 강하고 눌어붙지 않는 등 기적적인 특성을 지닌 4,700개 이상의 분 자들이 그룹을 이루고 있다. 이동성이 매우 뛰어나며 거의 파괴 되지 않는 과불화 화합물은 80년 동안 환경과 먹이 사슬 도처로 퍼져 나갔다. 브레스트에 살든 보고타에 살든 그 어디에 살든 간에, 우리는 이를 수돗물로 마시고, 먹고, 들이마신다. 그리고 이 물질들은 우리 신체 기관에 축적되어 몇 년 동안 머무르게 된다. 지금은 <불멸의 화학 물질Forever chemicals>이라는 별명을 달고 과 학 문헌에 등장하기까지 할 정도다. 가장 잘 알려진 것들은 PFOA 와 PFOS로, 좀 더 난해한 말로는 퍼플루오로옥탄산 및 퍼플루오 로옥탄술폰산이다. 2015년에 200명의 과학자들은 대안으로 제 시되었던 <짧은 사슬> PFAS의 위험성을 세심히 경고하면서, <이 물질들의 생산과 사용을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과불화 화합물 제조업자들을 대변하는 미국 화학 협회 산하 지부인 불소 협회FluoroCouncil는 곧바로 반박했다. 대안 물질에 관해 표명된 우 려가 충분히 <강력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비행기, 자동차, 스마트폰>은 이런 물질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물질들이 <현대 생활에 필수가 된 것뿐이라고 한다. 현대 생활에는 그럴 수도 있겠으나, 삶에서는 아닐 수 있다. PFAS는 고환암, 신 장암, 간 기능 장애, 면역 체계 약화, 생식력 감퇴 등과 연결되어 뒤죽박죽 엉켜 있다.
요약하자면, 파커스버그 사건은 미국 기업 듀폰이 코팅제인 테플론, PFOA가 함유된 대표 프라이팬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 서 나온 잔류 물질을 자연환경에 방출하자, 이로 인해 40년간 7만 명의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이 어떻게 독성에 노출되었는지 밝 혀 가는 내용이다. 또한 200년 된 기업이 <그런 방법이 위험하다 는 것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출해 버렸다>는 사실을 입증해 내는 데 성공한 로버트 빌롯Robert Bilott이라는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듀폰 그룹은 희생자들과 암, 간질환, 심장에 문제가 생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지자, 듀폰은 2015년에 <케무어스>라고 이름 을 붙인 새로운 독립 법인에 논란의 대상인 제품의 생산을 위탁 하는 것으로 이 문제에서 적당히 빠져나왔다. 케무어스는 PFAS 오염과 관련된 30여 개의 소송을 수습했다. 인간과 동물 건강 보 호를 목표로 하는 영국 환경 단체, 켐 트러스트의 이사 마이클 워 허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런던에서 로버트 빌롯과 마주쳤을 때,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듀폰에 파커스버그 오 염 문제에 대해 문의하면 이를 케무어스의 책임으로 돌리고, 케 무어스는 또다시 듀폰에 떠넘겨 버립니다. 참 편리하죠. 믿기 힘 들지만 이런 방식으로 기업들은 언제나 모든 책임에서 성공적으 로 빠져나가곤 합니다.」

- 토양은 해양보다 4배에서 23배까지 더 오염됐을 수 있 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앤더슨 아벨 지소자 마샤두Anderson Abel de Souza Machado는 <이 분야에 관해서는 거의 연구가 행해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얻은 결과만으로도 걱정스럽다. 플라스틱 조 각들은 실제로 세계 도처에 존재하며, 수많은 해로운 결과를 유 발할 수 있다>라고 정리한다. 주요 원인은...... 하수구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폐수에 존재하는 미세 플라스틱, 특 히 세탁기에서 나온 직물 섬유의 80~90퍼센트는 하수 처리장의 필터를 통과해 폐수 찌꺼기에 남는다. 폐수 찌꺼기들은 종종 비 료로 들판에 흘려보내지는데, 그 속에 든 수천 톤의 미세 플라스 틱도 함께 끌려가는 것이다. 여기에다 농업에 사용되는 플라스틱도 더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중 하나는 비료인데, 매 우 작은 플라스틱 껍질 속에 비료를 캡슐화하는 것은 높이 평가 받는 기술이다. 이는 비료를 토양에 서서히 퍼트리는 장점을 가 진 반면, 미세 플라스틱을 토양 속에 잔류시키고 농축시키는 단 점이 있다. 또 다른 것은 습도 유지와 잡초 방지를 위해 경작지에 덮는 비닐 덮개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폴 리에틸렌으로 된 이 비닐을 재활용하지만, 유럽 전체에서 그러지 는 않으며,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더욱 그러지 않는다. 종종 방수 포는 거둬지지 않고 방치되어, 결국 토양과 섞여 버리게 된다. 일 부 파급 효과들이 이미 관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렁이들은 토양에 미세 플라스틱이 있을 때 땅굴을 다르게 판다. 지렁이의 생태 특성과 토양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라고 독일의 연구는 지적한다. 다른 연구들에서는 이 입자들이 식물 자체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다. 그 예로 중미 합작 연구팀은 나노 플라 스틱이 식물 내에 축적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결과는 식 물들의 발육 상태가 나빠지고 뿌리가 짧아진 것이다. 이는 식물 의 영양가치 하락과 전 세계적인 식량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이 후, 이탈리아 카타니아 대학교 연구원들은 플라스틱 미세먼지들 이 현재도 과일과 채소 속으로 침투해 사과, 당근, 상추 등을 오염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
- 우리는 자주 로비 황금률인 <3D> 원칙을 언급한다. 영어로 <Deny, Delay, Deflect>, 즉 <부인하라, 지연시키라, 주의를 돌리 라〉다. 담배, 석면, 화석 연료 회사이건 오늘날 플라스틱 회사이 건 간에, 이 원칙을 쓰면 이미 이긴 게임이며, 더욱이 몇 년간의 수익을 절대적으로 보장한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산업계가 이 원칙을 적용했기에, 이제 3D 원칙은 꽤 많이 노출되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여전히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왜냐 하면 원칙이 절대로 저지받을 위험 없이, 무한히 반복될 수 있도 록 규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비스트들은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글자 그대로 로드맵을 따르는 일상을 수행하는 정비사들인 것이다. 3D 원칙 첫째, 부인하라. 보건 위협을 부인하 고, 과학자들을 분열시키고, 진실한 연구원들에 대한 신뢰를 훼 손하고, 안심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 돈으로 산 진짜 내 편인 -사이비 전문가들을 동원해 연구를 완성한다. 둘째, 지 연시키라. 모든 수단을 써서 규제와 금지 조치를 지연시킨다. 끝 없이 긴 법적 절차를 진행하며, 해당 물질이 현대적 생활에 필수 적이라는 걸 주장하며, 보건 의료 기관에 잠입하고, 요청받은 자료를 제출하는 데 늑장을 부리며, 이런 자료들은 기밀이며, 경제 가 무너지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영업 기밀 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지연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 주의를 돌리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아직 존재하 지는 않지만 장차 우리 모두를 구하게 될 해결책에 대해 떠벌리 며, 언론에 거짓을 말하고, 대중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게 변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자발적 약속을 하며, 의혹, 또 의혹, 계속해서 의혹을 만들어 가며 주의를 분산시킨다. 이런 애매모호한 불확실성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동 안 기업은 대체 물질, 아마도 전과 마찬가지로 위험성을 띨 물질 을 개발하고, 그럼 다시 순환의 원점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과 화학적으로 묶여 있지 않아서 쉽게 스며 나와, 환경과 인체에 침투할 수 있다. 이 분자들은 빠져나 오면서, 일부 플라스틱에서 나는 새 제품 냄새에 일조한다. 소변, 혈액, 모유,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이 합성물은 엄청난 단점을 지 니고 있는데, 그 일부가 내분비 교란 물질이라는 점이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성장에도 필수적 호르몬인 테 스토스테론 생산을 방해한다. 남성 생식력이 이례적으로 감소한 현상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 전염병학자 샤나 스완Shanna Swan 이 2017년 발표한 연구는 많은 독자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서양 남성들의 정액 속 정자 수가 불과 40년 만에 60퍼센트가 줄 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 연구자는 2021년 2월에 이 민감한 주제와 인류를 짓누르는 위협을 다룬, 『정자 0 카운트다운 Count Down』이라는 매우 기대되는 책으로 돌 아올 예정이었다. 이 흥을 깨지 않으려는 건지, 프탈레이트는 암 (특히 간암과 고환암), 비만, 당뇨, 천식의 발병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의심된다. 유럽연합은 1999년부터 DEHP와 그 동종 일부 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고, 미국과 캐나다는 2008년 이후로, 특히 장난감과 유아들이 입으로 가져가기 쉬운 물건들에 사용을 제한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발암 가능 물질>로 간주되는 DEHP는 2008년 유럽에서는 <생식에 유해한 물질>로도 분류되었다.
- 그런데 어떻게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일회용 마스크가 팬데 믹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까? 제네바 대학교의 과학사 학자 두 명이 던지는 질문이다. 마스크 품귀 현상 속에서, 브루 노슈트라서 Bruno Strasser와 토마스 슐리히Thomas Schlich는 세계 교 역의 실패보다는, 사회 다른 분야처럼 1950년대부터 소비 문화 에 사로잡힌 <현대 의학의 취약점>을 읽는다. 의료진들이 세균에 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마스크를 착용한 것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당시 미국 샌 프란시스코에서 대중이 마스크를 사용했다. 1930년대까지 모든 마스크는 천으로 만들어져서 재사용이 가능했다. 이후 일회용 종 이 마스크로 대체됐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 합성 섬유로 된 마 스크가 등장했는데, 살균 과정에서 천이 손상되기 때문에 일회용 으로 제작됐다. 슈트라서와 슐리히는 이렇게 분석한다. 일회용 마스크로 옮겨 간 것은 위생을 고려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건비를 절약하고, 공급 관리가 쉬우며, 너무나 편리한 일회용 마스크에 매료된 의료 종사자들을 향한 공격적 마케팅이 빚어낸 일회용품 의 수요 증가와 그에 부응하기 위한 업계의 열망> 때문이라고 설 명된다.
두 역사학자는 합성 섬유로 된 마스크가 전통적인 면 마스크 보다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는 당시의 연구들은 <업계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재사용 가능 마스 크는 <비교 연구에서 가장 많이 누락>되었다. 1975년, 산업적으 로 생산된 면 마스크가 포함된 마지막 테스트 중 하나에서, 실험 자는 구조만 잘 설계된다면, <4겹의 면 모슬린으로 된 재사용 가능 마스크가 일회용 종이 마스크나 합성 섬유로 만든 새로운 마 스크보다 우수하다>고 결론지었다. 일부 연구는 재활용 가능 마 스크를 세척하면 섬유를 수축시켜서 세균을 거르는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안타깝게도, <한때 의료 장비의 핵심 부분이었던>, 신중하게 제작되고 테스트를 거친 재사용 가 능 마스크는 1970년대 이후 사라졌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마스크에 대하여 1918년에 의료 연구원들이 써놓은 것, 《마스크는 여러 번 세탁해도 되고 영구히 사용할 수 있다》를 언젠 가 다시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두 학자는 말을 맺는다.
- Tatiana Santos도 이에 동의한다. 「플라스틱 대부분은 재활용되어 서는 안 되고, 독성 폐기물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브뤼셀에 기반 을 둔 유럽 환경국의 관점에서는, <진정한 순환 경제를 원한다면, 플라스틱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 유리나 강철 같은 금속은 더할 나위 없는 대상이지만 플라스틱은 아니다. 왜냐하면 설계 부터가 유해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석유로부터 추출되고, 불안정 하며, 수천 가지의 첨가제를 함유하고 있다.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특히 이것과 접촉한 식품을 섭취하거나 아이들이 흔히 장난감을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씹을 때 위험 하다. 이는 국제오염물질제거네트워크IPEN가 연구에서 내렸던 결론이다. 연구원들은 전자 장비를 재활용해 만든 장난감에 높 은 수치의 다이옥신과 브롬화 난연제가 함유된 걸 확인했다. 전 화기와 컴퓨터의 인화성을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난연제는 <잔류 성 유기 오염 물질> 혹은 <POP>라고 부르는 물질에 속한다.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인 POP는 2004년 스톡 홀름협약Stockholm Convention on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에 등재되었 다. 협약 채택 당시, 목록에 기재된 초기 12가지 물질에 <12개 악 당들Dirty Doze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이후로, 5개 물질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이 목록에 올라가기 위해 물질이 갖춰야 할 조 건으로는, 인간이나 환경에 유해하고, 오랜 시간 잔류해야 하며, 쉽게 옮겨 가고 먹이 사슬을 따라 살아 있는 유기체 안에 축적되 어야 한다. 이 혼합물들은 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신경계와 호르 몬에 연관한 문제도 일으키는 것으로 의심된다.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던 프랑스 정부도 <POP의 잔류성과 독성은 그 배출원에 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확산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 않는 지 역까지 포함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보건과 환경에 위협이 된다> 라고 인정한다.
대다수 플라스틱은 재활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지만, 무슨 상 관이겠는가. 이는 플라스틱 산업계가 계속해서 플라스틱을 팔려 고 한다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다. 게다가, 제재 를 피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기업들은 잘 알고 있다.
-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은 아직 실제하지도 않는데도, 이미 전쟁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좌측에는 산업계가, 우측에는 비 정부기구가 진을 치고 있으며, 이 전쟁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 인다. 양 진영에서는 저마다 주장에 날을 세운다. 무기를 들기 전 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명확히 확인하고 시작해보자. 재 활용을 떠올릴 때, 우리는 직관적으로 기계적 재활용, 예를 들면 하 나의 병을 다른 하나의 병으로 재활용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렇 지만 현재, 업계는 완전히 다른 방식인 화학적 재활용에 대해 떠 벌린다. 플라스틱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포장재들을 분류, 세척, 분쇄, 용해한 뒤 재사용하는 기계적 재활용과 달리, 화학적 재활 용은 폴리머를 분해하는데, 좀 더 짧은 분자 상태로 변형시켜 모 노머로 되돌리는 것이다. 열과 화학 용매를 이용하는 이 방식은 더 많은 종류의 플라스틱, 심지어 오염되거나 혼합된 것까지도 재활용할 수 있고 새 플라스틱만큼이나 질이 좋은 폴리머를 생산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술은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즉 PET(오래전부터 기계적 재활용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에 적용 이 가능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PET 내부의 모노머들을 연결하는 화학적 결합이 대체로 깔끔하게 분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 만 이건 예외적 경우이고, 〈PVC, 폴리스티렌, 폴리프로필렌과 같이 그 구조가 훨씬 《가단성>이 적은 다른 폴리머들의 경우는 훨 씬 위험할 수 있다>. 환경단체 네트워크 유럽 환경국의 화학자 장뤼크 비토르 Jean-Luc Wietor는 이렇게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2017년 이후로 이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세 계 곳곳에서, 특히 유럽에서는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과 시범 공 장시설의 건설이 발표되고 있다.
- 미국에 이어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두 번째로 많은 일본 의 예를 들어 보자. 이 섬나라는 연간 약 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 레기를 배출하는데, 그중에서 40퍼센트 이상이 일회용 식품용기 와 포장재다. 80퍼센트에 근접하는 높은 재활용률로, 좋은 사례 로 자주 인용되는 일본은 훌륭한 재활용 수거 시스템과 국민의 철저한 준수 정신으로 평판이 높다. 그러나 소각되는 플라스틱을 제외하면, 재활용률은 실제로 2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네덜 란드의 체인징 마켓 재단은 조사 보고서에 이렇게 서술한다. 〈그 런데 이 수치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중국, 말레이 시아, 태국과 같은 국가로 수출되는 플라스틱 폐기물 14퍼센트가 -매립하거나 소각하거나 자연에 버려지는 게 아닌 - 재활용 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예는 <플라 스틱의 진정한 운명을 밝히기 위해서는 공개된 통계 수치 너머의 현실을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효과적으로 재활용이나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전혀 없이 포장재를 대량수거해, 결국은 소각, 가스화, 쓰레기 수출과 같은 해결책을 쓰면서 문제를 소비자들에게 숨기면, 이후 소비자는 기업과 공권력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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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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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서

사회 2024. 3. 21. 07:22

- 평화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현실주의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홉스는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의 본질은 이기적이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홉스의 '세계는 경쟁의 축으로 돌아간다'라는 생각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할 뿐이죠. 하지만 실증도 반증도 할 수 없기에 18세기경부터 많은 사람이 홉스의 견해를 받아들였 고, 이후 이 생각은 30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우리를 얽매 어 왔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강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현실 세계는 이미 홉스가 말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원래 인간은 자신만을 생 각하는 동물이다'라는 관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현실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죠. 우리 마음속에 깃든 '생존 전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강 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원래 이기적인 인간은 내버려 두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렇게 직감한 홉스 자신은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공포와 함께 나를 낳았다'고 말했다.
그의 주문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 중 하나가 학교다. 그리고 그 학교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 "스스로 규율을 지키는 인간, 교도관이 없이도 명령을 따 르는 인간, 즉 '기계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구조라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제러미 밴덤이 발명했지. 정말 완벽한 구조야."
그는 감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죄수를 감시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면서 가장 저렴하고 우 수한 교도소. 그게 바로 파놉티콘이지. 잘 들어, 학교도 마 찬가지야. 학교는 감시 · 상벌. 시험이라는 세 가지 메커니즘의 복합체야. 규율과 훈련으로 아이들을 질서에 끼워 맞추고 교묘하게 학생 스스로 복종하도록 만들지."
저는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자주성을 끌어낸다는 교육적 배려가 사실은 규율 과 훈련을 통해 스스로 복종하는 인간이 되게 하는 권력 메 커니즘의 일부일 뿐이야. 그렇게 형성한 권력으로 사람들의 손에서 교묘하게 자유를 빼앗아 가는 거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현 재 질서에 복종하는 존재이기도 해."

- 저는 일리치의 절제의 사회를 집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학교는 다음의 세 가지 목적이 결합한 장소입니다.
1. 제대로 먹고살 수 있는 노동자로 만들기 위한 기능 훈련
2. 사회의 일원으로서 규율을 지키는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훈육
3. 좋은 인격을 지닌 훌륭한 인간 만들기
- 우연히 시험 성적이 좋았다, 나빴다는 말이 어느 새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나쁜 사람보다 훌륭하다'라는 상 하 관계를 만든 것입니다. 나쁜 성적을 받은 학생은 '학력이 낮다=머리가 나쁘다=낙오자' 취급을 당하고, 교칙을 어긴 학생에게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태도가 나쁘다=반항적이 라는 불량학생 딱지를 붙이는 탓에 학생들은 학교를 어려워 하거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학교가 세 가지 목적을 결합한 장소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생긴 이러한 생각이 사회 전체로 퍼진 결 과 '전문가가 아마추어보다 훌륭하다'는 상식이 굳어졌습니 다.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전문 가가 만든 제도에 완벽히 의존하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 조교 제도는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공장의 분업 시스템을 교육에 응용한 것으로 뛰어난 효율 덕분에 단번에 유럽 전역 으로 퍼졌습니다.
이후 영국의 교육자 사무엘 와일더스핀Samuel Wilderspin이 '갤 러리 방식'이라 불리는 새로운 교육법을 개발했습니다. 계단식 강의실에 수십 명의 학생이 앉아, 정면에 있는 교사에게 수업을 받는 방식입니다. 이로 인해 교사는 모든 학생을 볼 수 있고 학생도 다른 친구들의 행동을 보며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62년 영국 정부는 이 두 개의 시스템을 결합했 습니다. 학생의 출석 일수와 학력에 따라 국가가 학교에 보 조금을 주는 제도가 생기자, 학생을 고르게 구성하는 편이 교육에 효율적이고 보조금을 받기도 쉬워 같은 나이의 아이 들로 학급을 꾸리는 '학년 제도grade system'가 탄생했습니다. 그 렇게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같은 교육과정을 함께 배우는 형 식이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21세기가 된 지금도 같은 형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 어떤 분야든 유일한 방법과 순서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보다 '인류의 지혜는 수많은 질문과 결론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그물코 같다'는 표 현이 정확합니다.
어딘가로 도달하는 길은 무한히 존재합니다. 즉, 무엇이 기초이고 무엇이 응용인가의 경계는 없습니다. 요약하면 기초에서 응용 순서로 학습시키는 교육은 애초에 인류의 지혜 와 맞지 않습니다.
- '기초'라고 부르는 것은 기초라는 이유에서 불필요한 것들 은 빼고 핵심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루하 고 따분한 훈련이 되기 쉽습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그 내용을 배우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초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재미없는 내용을 여러 번 반복시 키다 보니 겨우 관심이 생긴 사람까지 싫어하게 하는 문제를 일으킵니다.
다만 '기초연습'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이 기 초라고 여기는 부분을 습득하기 위한 연습'을 모두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초 연습은 동기부여가 높은 중상급자가 기능을 철저하게 익히기 위해 자신이 기초라고 여기는 부분을 철저하게 공부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기초'라는 사고방식은 배움을 '형태'에 끼워 넣으면서 재미를 없앴고 결국에는 배움이 싫어지게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초가 중요하다는 그럴싸한 말에 생각을 멈춘다. 기초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배움은 더욱 자유로워야 하고 더욱 재밌어야 한다.

- 절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 그것이 가장 편하다고 지어낸 말을 믿어서입 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일조차 귀찮아 단순히 지금까지 그렇 게 해왔으니까라는 습관과 규칙에 몸을 맡겨서 그렇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따르는 것은 사고를 정지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또한 '해야 하는' 일과 동시에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사회에 많습니다. 실패가 빤히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하면 선생 과 부모, 선배, 친구들이 "안 돼, 하지 마, 실패할 게 뻔해!", "아니야, 이렇게 하는 게 좋아!"처럼 충고하거나 나무라며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입니다.
그들은 실패하면 안 되니까, 그 사람을 위해 조언할 뿐 나 쁜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실패를 사전에 막았으니, 고마워해 주길 바라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쓸 데없는 참견입니다. 더 나아가 방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이 실패에서 배울 권리를 빼앗았으니까요.
- 세상에서 말하는 '규칙'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자,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권리를 빼앗는 구조입니다.
원래 규칙이란 선인들이 맛본 다양한 실패를 바탕으로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유비무환의 마음 으로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말은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인간의 성 장에서 중요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며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 이와 관련해서 실패할 권리를 완벽하게 존중하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선교의 수행입니다. 선의 수행은 기간 중 전원 이 실패하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밥을 지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장작을 사용해 내일부터 밥을 지으 라며 쌀 다섯 되(약 8킬로그램)를 줍니다. 하지만 그렇게 밥을 지어본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드시 실패하고 꾸중을 듣게 됩니다.
밥 짓기뿐만 아니라 지도와 가르침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수행을 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원이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렇게 설계된 수행에 대해 선종의 승려 마쓰야마 다이고松山는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이것은 (정답을 알려주면 맹목적으로 그것만 하게 되 기 때문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되죠. 무조건 실패하게 만들면, 거꾸로 말해 시행착오를 겪게 하면 제아무리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성공할 수 있습니 다. 모두 실패하게 해, 모두 성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선은 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거죠.
규칙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에서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실제로 천 년 전부터 증명되었습니다.

- 사에키는 《인지과학 혁명 「」探究》 (2004)에서 "배움이 재미없어진 배경에는 놀지 못하게 삼중으로 둘 러싼 구조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에서 '놀이'와 '일'을 구별해서입니다. 사회 의 공업화가 진행되자 사람들이 노동자로 고용되고, 손님과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것만이 일이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들 먹고살기에 급급해 놀 여력조차 없어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놀이'와 '배움'을 구별해서입니다. 약 100년 전부터 학교는 전문교육 시설로 발달했으며, 그 목적 은 아이들의 공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루한 공부만 하다 보면 금세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넣고, 쉬는 시간만큼은 놀아도 된다는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 었지요.
- 일본의 근세사학자 시바타준의 <일본유아사 日本幼兒史》(2013)에 따르면 고대부터 에도시대 중기에 이르기 까지 사람들은 아이를 보호하거나 교육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길가에 아이가 버려져 울고 있어도 특별히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많은 아이 가 죽었다고요.
하지만 근대에 들어 아이의 교육과 복지에 관심이 높아지 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7세 미만의 아이는 '신'이며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는 '일곱 전까지는 신의 영역 55'이라는 말이 정착되었습니다. 일본인의 아이에 대한 특 별한 애정도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죠.
어쨌든 아이와 어른을 구별하고, 놀이와 배움과 일을 구별 해 법률 등의 제도로 고정하면서 우리 사회가 메말라 갔습니 다. 이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 현대로 이어지는 고유의 교육 사상은 로크가 만들었습니 다. 로크는 인간을 새로운 타불라 라사라고 생각하며 "아이 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배우는 습관을 만들어줄 것, 그것이 교육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 다. 이 생각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면서 아이를 특별한 존 재'로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루소는 “자연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문명사회 속 에서 삐뚤어지지 않게 키우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말했습니 다. 그 결과 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이론화했고, 아이와 어른을 완전히 구별했습니다.
이후 로크와 루소의 영향을 받은 오언은 '어릴 때부터 좋 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좋은 인격이 형성된다'는 생각을 바 탕으로 세계 최초로 유아학교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어지 고 있는 학교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보호한 다는 명분 아래 아이들을 학교에 가두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 했습니다.
확실히 그들은 엄청난 혁신가였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혁신적인 생각이 안타깝게도 아이를 '어린 애 취급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순수하고 사랑 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 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아이는 미숙하고 여리기 때문에 어른이 교육하고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고 얕 보는 것과 같습니다. 즉, 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시각이 매우 거만했던 것이죠.
- 어린애 취급을 한 결과 '아동의 노동은 없어야 한다'라는 대의명분 아래, 아이는 어른이 될 때까지 사회와 관련된 일 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학교 운영 에 참여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나요?", "아이에게 도시를 조성하는 행정에 관여할 권리가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네”라고 딱 잘라 대답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산업사회는 사람들에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요구하며 무엇이든 세분 화했습니다. 그러한 성질이 선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일이 분업화되면서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전문적인 지식 과 기능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 생산성과 효율을 따지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재미없는 일만 하며 미 래에 불안을 느낍니다. 이 냉엄한 실력주의가 학교에 번지면 서 서서히 '배움'에서 '놀이'를 지워버린 것입니다.
로크와 루소, 오언이 그 시대에 떠올린 생각은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이고 의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늘어 나고 있습니다. 결코 그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 원인은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깊이 이해하지 않고 비판하려는 자 세도 갖지 않으면서 그저 사상만 따라가려는 우리의 사고정지 에 있습니다.

- 저는 능력신앙이 어떻게 태어나,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찾 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직접적인 기원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1905년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 박사와 테오도르 시몬Théodore Simon 박사가 개발한 '지능지수 IQ=Intelligence Quotient' 테스트입니다. 이 테스트에서 '지능'이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이 테스트는 지적장애 아동을 분별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심리학자 로 버트 여키스Robert Mearns Yerkes 박사가 개발한 '아미 알파/베타 Army Alpha/Beta'를 175만 명의 미군 병사 배속에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의 우생학자 칼 브리검Carl C. Brigham 박사가 만든 대학입학시험용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 등에 응용되면서 기업 과 학교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통계적 숫자일 뿐인 능력을 사람마다 타고난 특수 한 것', '노력할수록 더욱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능력이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를 섬기는 능력신앙이 탄생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이 자라 났습니다.
능력이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신앙’으로 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산업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업'입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업무를 세분화하고 철저한 전문성을 추구합니다. 실제 로 공업 생산은 분업과 기계화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습 니다. 그로 인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전문적인 지식과 지능을 높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 람은 높은 급여를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낮은 급여를 받 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능력이 만능 통화utility가 되면서 사람들은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떵떵거리며 살듯 '능력자'가 되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죠.

-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고자카이 도시아키小坂晶를 만났습니 다. 그의 저서 <책임이라는 허구任5虛構》(2008)를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며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그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행 학교 교육은 격차의 원인이 우연히 결정됐음에도 평 등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데다 순위로 노력의 결과(책임)를 떠넘깁니다. 능력 격차는 대개 우연으로 결정되지만, 이와 달리 학교는 자기책임론적 격차 정당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즉, 학교는 '모든 건 자기 책임'이라는 격차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했습니다. 로크와 루소에서 시작한 '모든 아이에게 자유 롭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드높은 이념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혹한 책임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격차와 불평등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사람들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몰리면서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탐 구할 기회를 전부 빼앗기게 되는 결과에 이른 것입니다.
- 이처럼 재능은 능력과 마찬가지로 편견에 의해 내려진 외부인의 얄팍한 평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재능이 능력보다 질이 나쁜 이유는 여기에 결정론적 생각이 숨어 있기 때문입 니다.
결정론determinism이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 이 전부 자연법칙과 운명 등 무언가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 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능력신앙은 '노력을 거듭하면 반드시 능력이 높아진다'라 는 신념을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정론보다 낫습니다. 하지만, 재능은 '노력해도 재능이 없으면 능력은 높아지지 않는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라며 포기하게 하므로 매우 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평가'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낮춥니다. 평가가 인간의 배움을 어렵 게 만들고 그것이 재능이라는 미신을 낳아 사람들로부터 자 신감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능력이 낮은 사람을 '게으 름뱅이', '낙오자' 취급하며 불행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보 통 평가는 '본인에게 의욕과 격려를 북돋아 줄 정도가 적당 하며 그 이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 '테스트'의 어원은 연금술사가 광석의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했던 흙 항아리를 나타내는 라틴어 'testum'에 있습니 다. 이 말이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테스트를 의미하게 되 었습니다. 단어의 유래만 보더라도 말 그대로 '인간은 공업제품과 같다'라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테스트는 지금까지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이 순간에도 다 양한 곳에서 까다로운 테스트가 생겨나고 있지만 저는 이것 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 참아가며 한들, 테스트 성적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며 노력한다 한들,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능력이 뛰어 난 시대에 억지로 외운 내용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재미있어서 질릴 틈이 없는' 인생이 훨씬 더 즐겁 습니다. 남보다 뒤처진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꾸준히 즐기는 인생이 더욱 풍요로우니까요. 무언가를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결코 '우열'이 아닌 '개성' 이므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 니다.
- 하나의 기준으로 결과를 평가하는 대신 발상 자체나 창조 과정 전체를 응원하는 칭찬이 있으면 좋다. 이러한 자세는 성과에 대한 존경은 물론이고 행동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낳는다. 칭찬이 격려가 되고, 새로운 도전이 더욱 큰 칭찬을 낳는다. 그 끝에 다양한 장점을 인정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배움의 장소는 평가로 자신감을 빼앗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다양한 칭찬으로 용기를 채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 스스로 '우수한 기계'가 되려는 인간은 머지않아 '능력주의의 최종병기'인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만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하기보다 인공지능을 인간이 기계로 일하는 것에서 해방시켜 준 '능력주의의 해방자'라고 생각하자. 이것이 내가 인공지능을 보는 견해다. 그리고 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에도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 제가 능력신앙과 능력주의를 비판하고 능력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배움'에서 '놀이'가 분리되면서 모두 재미없어지게 된 것
2. '능력'과 '재능'이라는 개념이 의욕과 자신감을 빼앗은 것
3. 능력신앙과 능력주의가 쉽게 낙오자를 만드는 원인이 된 것
4. 불필요한 비관주의에 빠진 불행한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는 것
5. 마지막으로 대다수 사람의 일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는 것

- '혁신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를 되돌아 보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기술 발명도 좋은 사례입니다. 그가 발명한 인쇄기 덕분에 독서라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와 동시에 많 은 사람이 자신이 원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안경이 발명되었습니다. 안경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렌즈 를 생산하거나 렌즈를 사용해 실험하는 사람이 늘었고, 그것 이 현미경의 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 의 몸이 아주 작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었습니다.
즉,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현미경과 세포생물학을 만들 었습니다. 활판인쇄기술과 우리의 시야가 세포 수준까지 넓 어진 것이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왜일까?'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흥미롭게 시작한 것이 뜻 밖에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탄생시킬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는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이해하기 어려워도, 재미있고 편리 하면 조금씩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이것이 전체에 보급되면 사회가 변합니다. 사회가 변하면 그동안 문제로 여겨왔던 일 들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즉, 문제가 해결됩니다.
- 따라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려운 문제만 가득한 앞으 로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 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라며 실 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이른바 논리적 사고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 는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던지고 자유롭게 행동 하기를 권하기는커녕 '하면 안 된다'고 제한하는 경우가 많 습니다. 거기에 불만을 제기한 사람이 학교를 자퇴하거나 퇴학을 당한 후, 자신이 원하는 탐구 여행을 떠나 획기적인 발견과 발명을 한 사례가 많습니다.
요컨대 '어떠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하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세상을 변화시켜 후대에 조금이라도 나아진 형태로 바통 을 건네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저만의 탐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주체가 된 학문은 매우 즐겁고, 설레고, 무척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 대답하지 마. 오히려 질문해. 본질적으로 계속 질문하고, 그 질문에 깊이를 더하는 행동을 하는 사이에 문제가 해결될 때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혁신이라고 부른다. 혁신을 일으키고 세상을 좋아지게 해 미래 세대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배움을 이어간다.

- 작은 '질문'으로 시작해 '만들어' 보고 '알게' 된다, 동시에 '모르는 것'이 수없이 생기고 거기에서 또 '물음'이 생긴다. 이를 반복하는 사이에 무언가 '형태'가 탄생한다. 무언가를 해결하면 '혁신'이라 부르고, 전에 없던 인류에 새로운 지식 을 연다면 '발명'이라 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예술'이 라 부른다.
이는 창조의 풍부한 버라이어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창조는 '칭찬'이 뒷받침되어 더욱 훌륭한 것으로 성장 합니다.

- 세간에서는 '평가'와 '사정'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사용합니다.
능력주의가 사회에 침투하면서 사람들은 돈과 시간 등 예 산에는 한계가 있으니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눠줄지 실적 검 정과 실력 평가로 결정하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사회를 힘들게 합니다.
사정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준으로 활동을 수치화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면 모두 같 은 일을 해야만 합니다. 돌발행동을 하면 곤란해집니다. 즉, 평가와 사정은 '남과 다른 일을 하지 마라'라는 '또래압력 peer pressure'을 강화시킵니다.
또래압력이 강한 사회는 살아가기가 무척 힘듭니다. 남들 과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비난을 받으면 자 책을 하므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며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합니다. 
-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해 왔 듯이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합니다. 칭찬을 받든, 욕을 먹든 무시하면 됩니다.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욕을 먹어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 습니다. 또래압력은 신경을 쓰면 쓸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주변에 압력을 가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평가는 신경 쓰지 말고 오히려 무시해야 합니다.

- 어떤 분야든 광대한 지식의 세계가 펼쳐지며, 배움에는 끝 이 없습니다. 전문가는 내용을 깊이 있게 알고, 무언가를 주 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 에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사이비 전 문가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는데 이 이상은 필요 없다'며 지 식의 체계를 과소평가하고, '나는 뭐 거의 다 알고 있어'라며 자신을 과대평가합니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만 단정 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뛰어나다'며 스스로 를 과대평가하고, 잘 아는 사람일수록 '저는 잘 몰라요'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이를 발견한 두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합니다.
- 진짜 전문가는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일 반인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라며 답답해하기 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결론 이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알 고 있지 않은가)'입니다. 그걸 알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인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 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미개척 분 야에서 전문가와 아마추어는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가치판단은 전문 분야를 뛰어넘어 모든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하기에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매 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수한 전문가의 훌륭한 점은 바로 그것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즉, 우리는 전문가에게 "지식의 미개척 분야가 어디에 있 는가?", "상식과 다른 견해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전문가에게 묻고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생각의 범위가 좁혀 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고, 자신들만으로는 생 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전문가와 우리의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 사물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관점이 생기는 것은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똑똑한 사람이 한 말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는 맞았던 말이 다른 곳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서 온몸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 기브 앤 테이크와 같은 등가교환의 사고방식은 언뜻 보기에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세계를 굉장히 차갑게 한다.
그 세계관이 '자립'이라는 사고방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무연사회를 초래할 뿐이었다. 자립해서 자유를 손에 넣는다. 이런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되었다.

- 세상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이 메시지 자체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학교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인간을 키운다' 를 사명으로 여긴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만 한다.
거기에 학교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힌트가 숨겨져 있다.

- 바꾼 마하트마 간디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향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자신을 바꿀 수 있으면 세상도 바뀐다. 자신의 근성을 바꾼 인간에게는 세상도 태도를 바꾼다. 이것이야말 로 가르침의 비법이다. 이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 행복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 프레이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과 대립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세상에서 일어 나는 일에 귀 기울이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세상에서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의 껍질을 벗겨내기를 두려 워하지 말기. 사람과 만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대화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대화를 통해 서로가 더욱 성 장하기. 자신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거나 인간 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혹은 반대의 의미로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해방자가 될 수 있 다고 생각하지 말기. 역사 속에 있음을 느끼고 서로 연결되어 함께 싸우기. 그런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프레이리는 읽고 쓰지 못하는 빈곤층에게 그들이 직접 느낄 수 있는 토론을 시작으로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한편, 그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 세상을 바꿨다.
그것은 사막에 물을 채워 숲을 만들 만큼의 엄청난 일이었다. 결국 그는 이론과 실천, 두 가지 측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프레이리는 마지막까지 대화의 힘을 믿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을 바꾸면 상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마법이라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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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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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요약금지

사회 2024. 3. 21. 07:21

- 물리적인 변화에만 치중한 현대화 작업은 많은 문제를 야기 했다. 독재자 박정희와 김현옥 서울시장(낡은 동네를 허물고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어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다)과 같은 20세기 국 가 건설자들의 감독 아래에서 서울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은 비교적 조용했던 도시에서 산업 도시로 빠르게 변모했다. "이 체 제에 대한 비판은 인건비 상승에 따른 서울의 제조업 쇠퇴와 맞 물려 있다”고 윤지희라는 말한다. "제조업 공장들은 인건비가 훨씬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서울은 산업 도시로서 성공의 정점에 도달할 때 이미 쇠퇴의 길을 걷는 중이었다." 산업화 이후 시대에 걸맞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정부는 많은 연구를 의뢰했다. 초창기인 2002년에 나온 연구 중 하나는 교차 하는 도로와 회색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도시 공간 전 반"이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윤지희 라는 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그 장소만의 매력적이고 독특한 이 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서울, 아니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사라 질 뻔한 기존의 전통을 보존하는 동시에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 발견 · 재도입 · 재창조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전통 한옥과 같은 옛 서울의 일부 흔적은 현재 주로 관광 명소나 부동산 투자 대 상으로만 남아 있다).
이는 2011년 취임 이후 DDP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과시적이고 낭비적이라고 비판했던 박원순 전 서울 시장의 인식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무상 급식과 학교 텃밭 가꾸기, 보행 자전용거리, 기존 건축물의 철거가 아닌 재사용 등을 지지했다. 당시 서울은 멕시코시티에서 몬트리올, 브루클린에서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규모 도시 개발 방식 을 활용했다. 빵집, 부티크, 독립 서점, 레코드 가게, 스페셜티 커 피로스터, 도시 정원 등 21세기 도시 거주자들이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공간이 전통적이고 소박한 국수 가게와 거대한 시장 옆에 나란히 등장했다.
사실 서울은 이미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서울 시민들조차 글로벌 브랜드로서 서울의 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 넷플릭스, 무인양품과 같은 브랜드를 면밀히 분석하는 한국 간 행물인 <매거진 B>는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특집호를 발 행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들이 수없이 변화해온 브랜딩의 역 사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소프트 시티', '디자인 수도', '글 로벌 도시' 등 기존 모델에 기반한 정체성을 위에서 아래로 강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도시 속 마을이, 심지어 시 민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직접 찾을 수 있도록 필요한 여건과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21세기 서울은 정체성을 어디선가 찾아내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함께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만약 서울 이 계속해서 영문브랜드를 사용해야 한다면 “함께 만드는 서울, 함께 누리는 서울"이라는 오래된 한글 슬로건을 번역해 사용하는건 어떨까?

- "법과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132쪽)
흥미로운 이 질문은 《82년생 김지영》의 핵심 주제 중 하나지 만 아주 깊이 있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좌절에 빠진 많은 한국 인은 문화, 법, 생물학 사이의 역학 관계를 파악하기보다 손쉽고 간단한 해결책으로 한국을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어린 시절부 터 '익숙한 미국, 일본, 중국 등'이 아닌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에 가고 싶다고 말해온 지영의 솔직한 언니 은영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왜 그런 곳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은영은 "한국 사람이 적을 것 같아서"(73쪽)라고 답한다. 외형적으로나마 평등해 보이는 사회 에서 한국인들과 떨어져 억압과 기대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리 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한국인이 은영이 처음도 아니며, 아마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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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혁명

사회 2024. 3. 14. 07:03

- 우리 한가운데서 망령이 떠돌고 있다. 그리고 그 망령을 똑똑히 바라 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공산주의나 파시즘 같은 오래된 유령이 아니다. 컴퓨터의 지휘 아래 최대의 물질적 생산과 소비에 온 힘을 쏟아 붓는 완전 기계화 사회라는 새로운 망령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과정 속에서 인간 자신은 기계의 한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잘 먹고, 즐겁 게 대접받지만, 수동적이고, 활기 없고, 감정조차 거의 없는 존재로 말이 다. 새로운 사회가 승리를 거두면서 개인주의와 사생활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타인을 향한 감정은 심리적 조건화나 다른 장치, 혹은 약물을 통 해 조작될 것이고, 이것이 또한 새로운 종류의 자기성찰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는 이렇게 말했다. "기술정보 화사회 technetronic society에서는 매력과 흡인력을 갖춘 개인이 최신의 통신수단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면 쉽게 수많은 사람의 감정을 조작하고, 이 성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화하지 않은 수백만 시민의 개별적 지 지가 한데 모이는 방향으로 추세가 흐를 듯하다."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의 《1984 Nineteen Eighty-Four》와 올더스 헉슬리 Aldous Leonard Huxley의 《멋진 신 세계 Brave New World》 같은 소설에서 이런 새로운 형태의 사회상을 예측한 바 있다.
어쩌면 지금 가장 불길한 것은 우리가 시스템의 통제권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컴퓨터가 계산을 통해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면 우리는 그저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길 뿐이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목적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무엇도 하려 하지 않고, 하지 않으려고도 않는다. 우리는 핵무기로 멸종의 위협 을 받는 동시에, 책임지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위치에서 배제되어 수동적 인 존재가 되는 바람에 내면에서부터 서서히 죽어갈 위협도 받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자연을 두고 승리의 정점에 서 있던 인간이 어 쩌다 자기 창조물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스스로 파괴할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을까?
과학적 진리를 찾으려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우연히 발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기술과 물질 소비만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 및 생명과의 교감을 상실했다. 종교적 신념 그리고 그와 얽힌 인본주의적 가치 를 잃어버린 인간은 기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에만 집중해서 깊은 정서 적 경험을 하고, 거기에 따라오는 기쁨과 슬픔을 느낄 능력을 상실해버 렸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워낙 막강해지다 보니 기계가 자체적으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고, 이제는 기계가 인간의 생각마저 결정하 게 됐다.
현재 우리의 시스템에서 가장 심각한 증상 중 하나는 우리의 경제가 무기 생산(거기에 더해서 전체 방위 시설의 유지)과 최대 소비의 원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자신을 물리적으로 파괴 하겠다고 위협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개개인을 완전히 수동적인 소비자 로 전락시켜 소리 없이 죽게 만들고, 개개인이 무력하다고 느끼게 하는 관료주의를 창조한 조건 아래서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해결 불가능한 비극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일까? 경제가 건강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병자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일 까? 아니면 물질 자원, 발명품, 컴퓨터가 인간의 목적에 복무하게 만들 수 있 을까? 제대로 기능하는 강력한 조직을 갖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반드시 수동 적이고, 의존적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 희망이란 존재의 상태다. 준비가 되어 있는 내면의 상태, 열정적이지 만 아직 쓰이지 않은 능동성 activeness*이다. '활동activity' 이라는 개념은 현 대 산업사회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인간의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우 리 문화 전반은 활동에 맞춰져 있다. 활동은 바쁘다는 busy 의미이며, 바 쁘다는 것은 비지니스의 바쁨busyness(비즈니스business에 필요한 비지니 스busyness)을 의미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너무 '활동적이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멈춰 있을 수가 없다. 심지어 사람들은 소위 여가도 또 다른 형태의 활동으로 바꾸어놓는다. 돈 버는 활동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드라이브를 즐기고, 골프를 치고, 무의미한 잡담을 나눈다. 사람들 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순간이다. 이런 종류 의 행위를 활동이라 부를지 여부는 용어 선택의 문제다. 진짜 문제는 자 기가 대단히 활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그런 '비 지니스' 상태에 있는데도 대단히 수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다는 점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잡담이든, 영화 관람이든, 여행이든, 소 비에서 오는 다른 형태의 짜릿한 쾌감이든 끊임없이 외부에서 자신을 자극해줄 것이 필요하다. 심지어 섹스 파트너로 삼을 새로운 남자나 여 자를 찾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을 '자극하고', 흥분시키고, 유혹해줄 대 상이 필요하다. 이들은 언제나 달리기만 할 뿐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이들은 항상 무언가에 빠져들 뿐, 거기서 결코 깨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직면했을 때 생겨날 불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 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을 뿐인데도 자신을 대단히 활동적인 사람이 라 상상한다.
- 양적 증가가 과연 좋은 것인지, 혹은 이 양적 증가가 대체 무엇에 좋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더는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 는 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 모습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양 이라는 한 측면이 나머지 모든 측면의 목을 조르기 때문이다. '많을수록 좋다'라는 이 원칙이 지배하면 시스템 전체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는 것 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노력이 그저 무언가를 더 많이 하 는 쪽에 집중된다면 삶의 질은 그 중요성을 모두 상실하고, 한때는 수단 에 불과했던 활동이 목적이 되어버린다.
- 마르크스는 소비가 증가했을 때 생기는 영향을 가장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경제학 및 철학 원고 Economic and Philosophical Manuscripts》 (1844)에 나오는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쓸모 있는 것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면 쓸모없는 인간이 너무 많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기계는 나약한 인간을 기계로 바꾸기 위해 인간의 나약함에 맞춰 조정되어 있다."
“(사유재산의 시스템 안에서)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필요를 불러일으켜 그를 새로운 제물로 삼고, 그에게 새로운 의존 성을 갖게 하고, 그를 새로운 종류의 쾌락으로 유혹해서 경제적으 로 망쳐놓을 궁리를 하게 된다. 따라서 사물이 많아짐에 따라 인간이 종속되는 낯선 존재의 영역도 함께 늘어난다. 새로 나오는 모든 생산품은 사기와 약탈의 잠재력을 새로이 갖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점점 가난해진다."
- 논리적 사고가 생명에 관한 관심을 지침으로 삼지 않고, 생명의 전체 적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부분과 모순되는 부분까지 모두 탐구하지 않 고 그저 논리만을 추구해서는 합리적일 수 없다. 반면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 더해지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 했다. "마음은 이성 reason이 알지 못하는 이유 reasons가 있다." 감정이 있는 삶에서 합리성이란 사람의 정신 구조를 지지하고 도와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게 하면서 동시에 그 성장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합리 적인 사랑이란 사람의 의존성을 강화하여 불안과 적대감을 키우는 사랑 이고, 합리적인 사랑은 사람과 사람을 긴밀하게 이어주면서 동시에 그 사람의 독립성과 진실성을 보존해주는 사랑을 말한다.
이성은 합리적인 사고와 감정의 조합에서 흘러나온다. 이 두 가지 기 능이 서로 분리되면 사고는 조현병 같은 지적 활동으로 악화하고 감정 은 신경증적으로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열정으로 악화한다.
- 사고와 감정의 분리는 가벼운 수준의 만성 조현병으로 이어진다. 기술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인간들이 앓기 시작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인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이런 문제와 연관된 느낌에 대해서는 언 급하지 않는 것이 유행이 됐다. 마치 과학적 객관성을 위해서는 인간에 관한 사고나 이론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감정적 고려를 배제해야 하는 것처럼 가정한다
- 여러 세기 동안 확실성을 보장해준 것은 신이라는 개념이었다. 전지 전능한 신은 세상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의심할 여지가 없 는 행동의 원칙도 알려주었다. 교회는 이런 원칙을 구체적으로 '해석'했 고, 교회의 규칙을 따름으로써 교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안전하게 확보한 개인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신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길을 따라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과학적 접근이 시작되고 종교적 확실성이 침식되면서 인간은 새로 운 확실성을 찾아 나서야 했다. 처음에는 과학이 확실성의 새로운 근거 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세기의 합리적 인간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삶이 인간적인 부분을 모두 상실하고 점점 복잡해지고, 개인은 점점 무기력과 고립감을 느끼게 되면서 과학 지향적인 인간은 이제 합 리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기를 멈추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용기, 삶 에 대한 온전한 지적, 감정적 책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릴 용기도 잃어 버렸다. 그는 합리적인 생각으로 얻을 수 있는 '불확실한 확실성 Certainty'을 '절대적 확실성 absolute certainty',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 학적 확실성이라 주장하는 것과 바꾸고 싶어 했다.
이런 확실성을 보장하는 존재는 인간의 믿지 못할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예측을 가능하게 하여 확실성을 보증해주는 컴퓨터다. 대기업의 사업 계획을 예로 들어보자. 컴퓨터의 도움으로 기업은 여러 해 앞서서 사업 계획을 세울 수 있다(인간의 정신과 취향을 조작하는 것도 포함). 경 영인은 더는 개인적 판단에 의존할 필요 없이 컴퓨터가 말해주는 진실 을 따르면 된다. 경영인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그 의사결정 과정은 불신할 필요가 없다. 그 경영인은 컴퓨터의 예언을 자 유롭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독실 한 기독교도가 신의 의지에 반해서 행동할 자유가 없듯이 그 역시 사실 상 컴퓨터의 예언을 거부할 자유가 거의 없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위험을 감수할 리가 없다. 신, 혹은 컴퓨터가 제시한 해법보다 확실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확실성에 대한 이런 필요성 때문에 컴퓨터화된 계획 방식의 효율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라 할 만한 것이 필요해진다. 그럼 경영인은 의심으 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조직에 고용된 사람들도 자유로워진다. 컴퓨터 에 기반한 계획 수립이 신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된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 인간의 판단이나 감정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 우리 시대는 신의 대체품을 찾아냈다. 인격이 배제된 계산이다. 이 새로운 신은 모든 인간이 희생해야 할 우상이 되었다. 신성함과 확실성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계산 가능성 calculability, 개연성 probability, 사실성 Factuality이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우리가 컴 퓨터에 모든 사실을 제공해주면 컴퓨터가 미래의 행동에 대해 가능한 최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원칙이 뭐가 잘못일까?
사실이란 무엇일까? 사실 그 자체는 정확하고 개인적, 정치적 편견으 로 왜곡되지 않았더라도 그 안에 아무런 의미도 담기지 않을 수가 없다.
- 사실이라도 선택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주의를 정말 중요한 사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거나 사람의 생각을 흩어놓고 파 편화시켜서 더 많은 '정보'를 받고도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만 드는 것이다. 사실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평가와 선택을 암시한다. 사실 들을 합리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런 점을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사실에 대해 중요한 말을 했다.
그는 이성의 기능 The Function of Reason》에서 이렇게 적었다.
"모든 권위의 밑바탕은 생각보다 사실이 우선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사실과 생각의 이런 대비가 잘못 인식될 수 있다. 사실을 경험할 때 생각 이 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전의 사실은 부분적으로는 그 인식에 수반되는 생각의 사고력을 통해 사실이 된다."
- 모든 위대한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기와 공존하는 사회와 충돌한다. 예술은 진실이 해당 사회의 생존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든, 방해하는 것 이든 따지지 않고 실존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혁명적이다. 인간의 현실을 건드리고, 인간 사회의 다양한 과도 기적 형태의 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반동분자인 예술가는 위대한 예술가이기만 하다면 자기네 사회의 특정한 형태만을 반영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socialist realism' 예술가보다 더 혁명적이다. 전체 역사에서 과거와 현재의 권력자들이 예술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예술이 없다면 인간은 영적으로 굶주려 어쩌면 사회의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술 가가 자신의 독특한 형식과 완벽함 때문에 '외부인'에 대항했고, 자극을 주고 생명을 부여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예술을 정치적 용어로 번역하지 않으니 위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로도 예술은 보통 교육을 받거 나 정치적으로 덜 위험한 사회계층만 누리는 것이었다. 과거 역사에서 예술가는 궁정 어릿광대였다. 이들이 진실을 말하도록 허락받은 이유는 특별하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제약이 있는 예술 형태로 진실을 표현했 기 때문이다.
- 에고 대 자아, 소유 대 존재에 대한 강조가 커지면서 우리 언어의 발달에서도 화려한 표현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관습이 되어가고 있다. "나 잠을 잘 못자 I cannot sleep" 대신 "나 불면증이 있어 I have insomnia", "나는 슬프고 혼란스러워 I feel sad, confused" 대신 "나 문 제를 갖고 있어 I have a problem", "내 아내와 나는 서로를 사랑해My wife and I love each other" 대신 "나는 행복한(때로는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갖고 있 어 I have a happy(successful) marriage"라고 말한다." 존재 과정에 해당했던 모 든 범주가 소유의 범주로 바뀌었다. 정적이며 움직이지 않는 에고는 대 상을 소유한다는 측면에서 세상과 관계를 맺지만, 자아는 참여하는 과 정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현대인은 자동차, 집, 일자리, '아이', 결 혼, 문제, 골칫거리, 만족 등 모든 것을 갖고 있다 have.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심리분석가도 갖고 있다I have my psychoanalyst'. 현대인은 '소유'할
뿐 '존재하지 않는다.
- 이제 2차 산업혁명에서 발달해 나온 산업사회를 인간화할 가능성을 살피려 한다면 경제적, 심리적 이유로 우리 사회를 완전히 붕괴시키지 않고는 제거할 수 없는 제도나 방법을 고려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1)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 기업, 대학, 병원 등에서 발달한 중앙집중 식 대규모 사업. 이런 중앙집중화 과정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머지않 아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주요 활동이 대규모로 진행될 것이다.
(2) 중앙집중화로 각각의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계획.
(3) 중요한 이론적, 실용적 제어 원리이며, 컴퓨터를 자동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두고 있는 사이버네이션, 즉 사이버네틱스와 자동화.
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시스템에서 등 장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인간 시스템이다. 앞에서도 지적했지 만 인간의 본성이 유연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제한된 숫자의 잠 재적 구조만 허용하기 때문에 일부 확인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게 된 다는 뜻이다. 기술사회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대안은 인간이 수동적이 고, 지루하고, 감정이 없고, 일반적으로 지성에만 의지한다면 불안, 우울, 인격상실, 생명에 대한 무관심, 폭력 같은 병적인 증상들을 키울 것이다. 실제로 로버트 데이비스 Robert H. Davis는 한 날카로운 논문에서 이렇게 적 었다. "컴퓨터로 자동 제어되는 사이버네이션 세계가 정신 건강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생각하면 심란해진다."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 관료들은 자신도 관료주의 기계의 일부라 느끼고, 대부분 책임을 지 려 하지 않는다. 즉 비판받을 수도 있는 결정을 자신이 내리려 하지 않는 다. 그는 규칙에서 명확하게 규정한 것이 아니면 자기가 결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다른 관료들에게 넘겨버린다. 그럼 그 관료도 똑같이 한다. 관료주의에 찌든 기관과 상대해본 사람은 이렇게 이 관료에서 저 관료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다가 아무도 자기 말 을 들어주지 않고 출발점으로 다시 왔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기 말을 들어줄 때도 보면 상냥한 경우도 있고,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 만 이들의 태도를 보면 거의 항상 무기력, 무책임,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 을 향한 우월감 같은 것이 뒤섞여 있다. 우리의 관료주의적 방식은 개인 에게 관료주의적 기계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혁신하지도, 조직하지도 못할 거라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 결과 혁신은 마비되고, 깊은 무력감이 생겨난다.
- 인간이 생산과 조직화의 과정에서 수동적이 면 여가 시간에도 수동적으로 변한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책임을 다하여 참여하지 않고 물러난다면 인생의 다른 모든 측면에서도 수동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자기를 돌봐주는 사람에게 의존하게 될 것 이다. 이미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인간은 예전보다 여가 시간이 늘어났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여가 시간에 도 소외된 관료주의 방법으로 강제된 이런 수동성을 보인다. 여가 시간 은 대부분 관람이나 소비의 형태로 이루어질 뿐, 능동성의 발현인 경우 가 드물다.
- 19세기에 글을 썼던 초기 정치경제학자들도 점점 생산을 늘려가는 경 제적 과정은 목표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님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일단 물질적인 삶이 적당한 수준까지 올라오면 생산에 투입하던 에너지를 사회의 진정 인간적인 발전으로 전 용할 것을 그들도 예상하고, 또 바랐다. 더 많은 물질 재화의 생산을 최 종적인 목표로 삼는 것은 그들에게는 낯선 개념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 은 이렇게 적었다.
혼자 있다는 의미로서 고독은 어느 명상에서나 사람에게나 필수적 인 부분이다.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 속에서 맞이하는 고 독은 생각과 열망의 요람이며, 이것은 개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사회도 이것이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활동을 자연에서 더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만족감도 찾아 들지 않는다. 땅은 한 뼘도 남김없이 모두 인간의 식량을 재배할 경작 지로 변하고, 꽃을 피우는 불모지나 자연적인 목초지도 모두 밭으로 일구어버리고, 가축으로 길들일 수 없는 네발짐승과 새들은 모두 식 량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로 취급해서 몰살하고, 모든 생울타 리와 불필요한 나무는 뿌리째 뽑아내고, 야생의 관목이나 들꽃은 농 업 생산력 개선이라는 명목 아래 잡초 취급을 하며 모두 근절하여 그 들이 자랄 땅마저 남아나지 않는다면 무슨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더 많은 인구를 감당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부와 인구의 무제한적 증가로 사라질 것이 생기고, 또 거기에 빚을 지고 있던 지구의 쾌적함도 상당 부분 함께 잃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될 거라면 나는 후대를 생각해서라도 필 요 때문에 강요당하기 전에 정체하는 것에서 스스로 만족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본과 인구의 정체가 인간의 발전도 정체한다는 의미가 아님은 굳 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온갖 종류의 정신적 문화와 도덕적, 사 회적 진보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삶의 기술 Art of Living을 정진할 여지도 커지고, 인간의 정신이 성공의 기술 에 더는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삶의 기술이 발전할 가능성도 더 높아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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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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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배신

사회 2024. 3. 4. 07:24

- 세상에는 열심히 하는 사람과 잘하는 사람이 있다. 안타깝지만 열심히 하는 사 람이 꼭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 잘할 수 있다는 노력 신드 롬은 잘못된 환상이다. 이 환상은 전염병이 되어 우리 사회를 통째로 병들게 하 고 있다. 노력을 많이 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적게 한다고 실패하 는 것도 아니다. 노력은 수많은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 슬프지만 이 세상에는 '열심히 하는 자'와 '잘하는 자'가 있다. 열심히 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학교나 회사에 수없 이 많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저 친구 참 열심히 한다'라는 말이 종종 쓸쓸하고 허전하게 들리 는 이유는 이 말 뒤에 '잘한다'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 을 알고 있다.
- 서양인들은 왜 '상당히 못했다!'라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열심히 하지 않고, '상당히 잘했다!'라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더 열심히 했을까? 그 이유는 타고난 재능을 믿고 인정하기 때 문이며, 노력의 능력을 그리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고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 라면, 잘하지 못한 과제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전혀 합리적인 일도 아니다. 해도 안 되는 일에 왜 귀한 시간과 자원을 쓰겠는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잘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못하는 일은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반대의 경향성을 보였다. 잘하는 일은 열 심히 하지 않고, 못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왜 일까? 이들은 못하는 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잘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잘하는 일에 대해서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중 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일은 못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바꾸는 것이다. 노력으로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다. 부족한 부분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 동양인에게는 실패한 사건이 더 중요하다. 실패한 것은 노력을 통해 반드시 성공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 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패는 실패로 놔둘 수도 없고, 놔둬서도 안 된다. 열심히 노력하면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 이다.
반면 미국인들은 실패한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냥 포기하면 되는 일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고 무 의미한 일이다.
- 서양 사람들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 어 렵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기질과 품성,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믿는 다. 그래서일까? 서양 사람들은 사람이 변할 수도 없지만, 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너처럼 살 필요도 없지만, 네가 나처럼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과 비 슷하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와 내가 다 를 때 나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미 마음 상하는 일이다.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 다. 변할 수도 없지만 변화를 꾀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버리고 좀 더 멋지고 이상적인 사람을 본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을 있는 모습 그 대로 인정해주는 것뿐이라고 믿는다. '인정해준다'라는 말조차 서양 사람들에게는 불편하다. 인정한다는 말에는 이미 평가와 어설픈 아량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라. 너 자신을 바꿀 때 세상이 바뀔 것이다', '너 자신을 바꿀 때 너의 인생과 세상이 달라질 것이 다'라는 말들이 명언처럼 유행한다. 이런 문구들이 멋지게 보인 다면 당신은 아마도 뼛속까지 노력 신봉 공화국의 후예임이 분 명하다. 노력을 통해 사람은 바뀔 수 있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 는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세상과 사회에 대해서는 대항하지 말고 순응하라고 교육한다. 대신 변할 수 있는 자신을 바꾸라고 주문한다. 그래서 모든 실패와 낙오는 노력하지 않은 개인이 책임져야 한 다. 바꿀 수 있는 것은 개인이지.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용기 없는 실패자들이나 세상을 욕하고 핑계 삼는 것이지,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자신을 되돌아보고 노력함으로써 성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이보다 더 멋진 말이 없다. 그러면 서양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까? 사람처럼 세상도 변할 수 없다고 믿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세상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사람처럼 무작위로 태어나는 것이 아 니고, 사람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도 세상은 사람들에 의해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더 힘을 합쳐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는 타인이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에 참으 로 인색하다. 부족한 점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많고, 노력을 통 해 극복해야 할 단점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너무 사 랑스럽지만 부족한 점이 계속 보이는 것은 부모로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좀 더 멋지고 더 이상적인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모습 그대로는 힘들다고 판단한다. 노력함 으로써 좀 더 멋지고 좋은 모습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 다. 노력으로 사람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평가 하고 저울질한다. 적어도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그렇다.

- 생존과 관계도 없고 잘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면 어떨까? 절대 열심히 하 지 않을 것이다. 누가 재능 없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는가. 노래를 못하는 사람은 노래를 안 하게 되고, 요리에 재능이 없는 사람은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요리하 기를 꺼리며, 운동에 재능이 없는 사람은 운동을 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 타고난 재능과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라는 뜻은 아닐 것 이다. 잭 햄브릭 교수도 그렇게 단정 짓지는 않았다. 여하튼 최 선을 다해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많이 양 보해서 노력의 영향력이 25퍼센트라 할지라도 이 부분을 극대 화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재능이 타고나는 것 이어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더더욱 최선의 노 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어차피 재능이 쉽게 변하 지 않는 것이라면 변할 수 있는 노력이 더욱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능이 부족하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잭 햄브릭 교수는 이런 반문도 단칼에 반 박한다. 재능이 부족하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사람들의 인지적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5년에 《심 리작용학회보 Psychonomic Bulletin and Review》라는 최상위 국제 저 널에 하나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왜 노력이 성 공의 열쇠처럼 보이는지, 유전과 환경의 관계성 측면에서 두 가 지 개념을 들어 설명했다. 물론 과거에도 다른 학자들이 유전과 환경의 영향력에 대해 논쟁할 때 사용한 개념이긴 하지만, 잭 햄브릭 교수는 이 두 개념을 통해 성공의 열쇠는 노력이 아니 라 타고난 재능임을 밝혀냈다. 첫 번째 개념은 '재능노력 연관 성 gene-environment correlation'이고, 두 번째 개념은 '재능-노력 상 호작용 gene-environment interaction'이다.
- 피상적인 현상만 관찰하면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 훌륭한 성적과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노력이 성과를 만든다'라고 추론하면 안 된다. 이 런 추론은 완벽한 인지적 착각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있어 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방향성이 완전히 거꾸로다. 
- 대부분의 날씬한 사람들은 운동을 해서 날씬해진 것이 아니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날씬한 것이다. 사람들은 날씬한 사람들을 보면서 건강 관리와 식단 관리를 잘하고 엄청난 노력 을 할 것이라고 오해한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보면 날씬한 사 람들은 많이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날씬한 사람이 많이 먹지 않 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노력해서 적게 먹는 것이 아 니고, 별로 많이 먹고 싶지 않아서 적게 먹는 것뿐이다. 식욕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노력 을 많이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절대 아니다.
날씬한 사람은 날씬하게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체질적으로 식탐이 적어 많이 먹지도 않는다. 뚱뚱한 사람은 뚱뚱하게 태어 났고, 체질적으로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날씬한 사람은 적게 먹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지만, 뚱뚱한 사람은 먹고 싶지만 먹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 노력만 놓고 따지자면 뚱뚱한 사람이 날씬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먹고 싶은 욕구를 노력으로 억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처음부터 공평한 게임이 아닌 셈 이다.
-  항간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중에 운동을 열심히 하 면 '건강한 돼지'가 된다는 말도 있다. 체계적인 운동을 강조하 는 전문가가 많지만, 체계적으로 운동하기도 어렵고 운동의 효 과도 한계가 있다. 처음에는 체중이 줄다가도 비슷한 수준으로 운동을 하면 몸이 금방 적응해버려 더는 효과가 없게 되고, 운 동량을 줄이면 바로 원래의 몸무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신비 로울 정도다. 중요한 것은 음식 섭취도 덜 해야 하는데 단기간 도 아니고 장기간 체질과 본능을 이겨가며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체질을 바꿔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 노력하면 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이미 타고난 능력이고 재능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이야 기하면, 노력은 타고난 자기조절 능력이다. 그래서 최선의 노력 을 다하라고 주문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이것이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다. 좀 더 냉정하게 이 야기하면 이미 노력도 재능과 같은 편이고 같은 부류다.
- 노력만 신봉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성공과 실패의 시장에서 항상 경쟁이라는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경쟁이 없고, 특정한 점수를 받았을 때 모두 합격하는 구조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노력이 큰 의미를 지닌다. 수능에서 전 과목 평균 90점 이상이면 서울에 있는 15개 대학 에 모두 합격하고, 전 과목 평균 97점 이상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모두 합격한다면 노력이 의미가 있다. 남들의 성적과 상관없이 본인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경쟁이라는 제도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 노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능이 노력을 압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력한다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라는 현실을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노력 신봉공화국 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하지만 이런 태도와 행동은 역설적으로 노력의 힘을 무력화 한다. 다 같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에 노력이 설 자리가 없다. 그 자리를 재능이라는 놈이 장악해버린다. 노력이라는 놈 은 죽을 고생만 하는 꼴이다. 그래서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역설적으로 노력이 아닌 재능이 압승한다.
- 경쟁과 시간의 벽
재능이 노력을 압도하는 마지막 이유는 경쟁과 시간이 라는 현실의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노력만 해서 성공할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노력이 빛을 보기 위해 서는 경쟁률이 낮거나 대부분의 사람이 노력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노력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최선의 노 력을 다하고, 또한 그로 인해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서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재능이 빛을 보게 된다. 노력 신봉 공 화국에 사는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재능 신봉 공화국'에 사는 셈이다. 다 같이 노력하면 노력의 차이는 없게 되고, 재능의 차이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시간적 제약도 있다면 재능은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 '1만 시간 법칙'을 운운하며 『아웃라이어의 내용을 잘못 이 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력 신봉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많다.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이 1만 시간 노력하 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가 주장하려던 것은 '노력'이 아니었다. 위의 인용문에도 명 백하게 드러나지만, 말콤이 강조한 것은 '환경과 기회'였다. 상 위 1퍼센트의 성공과 부는 뛰어난 재능으로 창출되는 것이 아 니고, 그런 재능을 꽃피게 할 환경과 기회라고 주장했다.
- "타고난 지능, 탁월한 재능, 뜨거운 열정, 끝없은 노력이 성 공을 보장하는가? 진정한 아웃라이어는 개인이 아니라 문화 다!"라고 말콤 글래드웰은 분명하게 주장한다. 기회와 환경이 성공의 원인인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콤 글래드웰의 주장 을 표현하면 성공과 부의 원인은 '운'인 것이다. 한 개인의 의지 와 상관없이 처하게 되는 가정환경과 사회환경이 성공과 부의 원인인 것이다.
- 말콤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1만 시간이라는 것이 엄청난 시간이라는 점이다. 성인이 아닌 경우, 스스로의 힘만으로 그 정도의 연습을 해낼 수는 없 다. 격려해주고 지원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곤궁 해 아르바이트하느라 충분한 연습 시간을 낼 수 없으면 안 되 므로 가난해서도 곤란하다. 대개, 특수 프로그램이나 특별한 종 류의 기회를 붙잡아야 그 수치에 도달할 정도로 연습을 할 수 있다”(『아웃라이어』, 58~59쪽)라고 이야기한다.
1만 시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점도 확실하지 않다. 앞 장에서 논의했듯이 재능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노력할 환경이 쉽 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만 주어 지는 특별한 혜택이고 기회다. 세계적인 부와 성공을 거둔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그들을 더욱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기회와 환경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말콤 글래드웰은 '노력 신봉자'가 아니고 '기 회·환경 신봉자'다. 기회와 환경이 없으면 재능도 의미를 상실 하기 때문이다.
- 그래도 노력은 정당한 것 아닌가
이제 마지막 희망은 세 번째 이유인 '노력'에 있다. 재능과 가정적·사회적 환경으로 성공한 것이 명분이 없다고 치자. 그 래도 노력만큼은 정당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남들 놀 때 열심히 해서 공부를 잘했으면 충분히 명분이 있지 않겠 는가. 그것은 직접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다. 그래서 좋은 직장과 높은 연봉은 타당한 보상이라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앞 장에서 구구절절 설명했던 것처럼 노력의 결과 역 시 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고, 노력의 효과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크게 나타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은 성실성처럼 타고난 성격적 특질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노력은 재능의 부산물이고 재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이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그래서 노력의 결과도 명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나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고, 아무리 시켜도 못하는 사람은 절대 못하며,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사람은 알아서 잘한다. 우리가 자기조절 능력을 갖추고 싶다고 해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 스로 결정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태어나면서 주 어지는 성격적 특질이다.
- "쟤는 정말 성실한 친구야!"라고 표현할 때 우리는 암묵적으 로 타고난 성격적 특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쟤는 참게 을러!"라고 표현할 때도 우리는 그 사람의 성격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으로 성공했다 할지라도 성공에 대한 명분은 약하다. '성실'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타고나 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패한 사람들을 향해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비난도 하 고 비판도 하지만, 그 사람에게 노력이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공부를 잘하는 세 가지 이유 중 어느 것 하나도 개인이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은 없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보상과 처벌이 정당하지 않 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책임을 강조하며 성공한 사람에게는 돈과 명예를 주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그에 걸맞은 처벌을 준 다. 하지만 그 보상과 처벌이 정당한지는 의문이다. 어느 것 하 나 100퍼센트 본인 책임이라고 보기에는 선택권과 결정권이 너 무 없기 때문이다.
-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운' 이라고 말한다. 비단 공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성공과 실패는 타고난 재능과 능 력, 주어진 가정적·사회적 환경과 기회, 그리고 개인적 노력으 로 결정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개인은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그냥 무작위로 주어진다. 운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 나의 주장은 절대 공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 하는 대부분의 성공은 명분이 약하다. 음악이든, 예술이든, 예 체능이든, 사업이든, 학계든 상관없다. 대부분의 성공은 그 분 야에 필요한 재능, 적절한 환경과 기회, 노력으로 달성되고, 이 세 가지 요건은 의지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 문이다.
- 인류의 긴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수학적 재능을 인정해준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특히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대접받고 성공하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최근의 사회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어쩌다 보니 지금 시대는 수학적 재능으로 대학 입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개인이 의도적으로 선택하거나 결정한 것이 아니라 태어났더니 그런 사회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운 좋게 혹은 운이 없게 수학적 재능을 알아주는 시대에 태어났을 뿐이다.
- 운동 능력으로 줄을 세운다면 어땠을까? 아마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며 공평하지 않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타고난 능력 으로 줄을 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음악이나 체육 분야보다 영어나 수학 등의 분 야가 재능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 살 다 보니 열심히 하면 공부쯤은 누구나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뿐이다.
신분제도를 이야기하니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도 있겠 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세대와 문화는 신분제 도로 운영되었다. 유럽이든 동양이든 다 마찬가지다. 이렇게 개 인의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한 시대는 긴 역사를 생각하면 아주 찰나만큼 짧은 시간이다. 신분제도는 100퍼센트 운에 의해 결 정되기 때문에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능력으로 줄을 세우는 것은 왠지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노력 신 봉 공화국에 사는 사람은 더욱더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은 그것 도 똑같은 운일 뿐인데 말이다.
신체적 힘으로 줄을 세우면 어땠을까? 당신은 성공했을 것 같은가? 힘으로 줄을 세우는 부족이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하고, 부족시대에는 아주 흔한 제도였다.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 제도가 불공평하거나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이다. 나름 공평하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줄을 세웠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능으로(수학으로) 좋은 대학과 좋 은 직장을 결정하는 것이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력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당연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적어도 수능으 로 학생을 뽑는 정시는 아주 공정한 입학제도라고 생각한다.
- 시대마다 인정해주고 보상해주는 능력과 재능이 따로 있다. 그 시대가 가치 있게 인정해주는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평범하게 살거 나 몹시 어렵게 사는 것이다. 즉 우리의 성공은 어떤 시대에 태 어나고 살아가는지에 달렸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냥 운이다. 요 즘 한국 사회는 대학 입시라는 제도를 통해 수학적 재능을 인 정해주고 가치 있게 보상해주는 것뿐이다. 한 개인의 성공과 실 패가 완전히 운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어쩌다 금수저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과 르브론 제임스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운이라는 측면에서 이론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이유로 르브론 제임스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아무 런 명분이 없으며 정당하지 않다고 마이클 샌델 교수는 주장한 다. 하지만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재능과 사회적·가정적 환 경의 힘을 애써 무시하고, 노력으로만 그의 성공을 포장한다. 그냥 노력을 신봉하고 싶을 뿐이다. 사실은 명분 없는 성공인데 도 말이다.
- 핵심은 무엇일까? 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는 명분이 없을 수 있고,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는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참으로 운이 좋았던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은 '참으로 운이 나빴던 사람'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타고 난 재능과 가정적·사회적 환경의 힘을 애써 무시하고, 노력이 라는 프레임으로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정당화하고 명분을 찾 았을 뿐이다.
이런 태도와 생각을 비관적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이 세상은 희망 없는 우울한 풍경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고 이것을 인정해야만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사실을 사 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좀 더 정의롭고 공평한 세 상을 만들 수 있고, 그곳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다. 만약 이런 운에 따른 요소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 까? 이 세상은 더욱더 정의롭지 않고 불공평한 사회가 될 것이 다. 노력을 죽도록 강조하는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 사람들이 시 름시름 아파하며 쓰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명분을 찾기 힘들고 사람 들은 사회적 책임에 무감각해져버린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부와 가난의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되고, 게을러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 실패한 사람에게는 살길이 주어지지 않는다. 처절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냥 조용히 고개 숙이고 실패와 실패에 대한 대가를 치르면 된다. 그렇게 대가를 치르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혹시라도 환경 을 핑계 삼거나, 뛰어나지 않은 재능을 탓하거나, 나빴던 운을 핑계 삼으면 난리가 난다. 어디 감히 핑계냐고 비난할 것이다. 겸손하게 반성하고 좀 더 열심히 노력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밀어붙일 것이다. 핑계를 대는 것은 지질한 인간이나 하는 일이 며, 그런 태도로 인생을 사니 그렇게 실패했다는 비난을 추가로 퍼부을 것이다.
사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닐 수 있는데 말이다. 
- 핵심 질문은 '돈을 많이 버는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 가장 쉬운 답은 '돕건, 돕지 않건 그건 모두 개인의 자유이고, 안도 와줘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이다.
쉽게 할 수 있는 답이지만, 이 답에는 어떻게 부와 가난이 결정되는지에 대한 철학과 믿음이 숨어 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부자가 부자로 살게 되고, 가난한 자가 가난하게 살게 된 데에는 명분이 있고, 또한 그러기에 부자가 된 것과 가난하게 된 것은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숨어 있다. 그래서 노 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가 명분을 찾 기 힘들고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에 무감각해져버린다. 노력 신 봉 공화국에서는 부와 가난의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있기 때 문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되고, 게을러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번 돈을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쓸 수 있다.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합리적인 명분이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었으니 말이 다. 열심히 노력해서 부를 이룬 사람은 주어진 보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게을러서 가난하게 된 사람은 그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고, 스스로를 가난으로 내몰았던 자기 자 신을 비난해야 한다. 가난은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에 대한 정 의로운 처벌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개인의 가난을 사회적 책임 으로 돌릴 수도 없고 돌려서도 안 된다.

- 현실이 우리가 원하는 것만큼 열려 있지 않더라도 자기의 재능을 찾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탐색해야 한다. 모두가 경쟁에서 이겨 승리자가 될 수는 없 다.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내가 이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져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최선의 노력으로도 실 패했다면, 과감히 포기를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노력의 힘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으면 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성공했을 것이다. 노력보다 훨씬 더 강한 타고난 능력과 자질, 그리고 환경과 기회라는 주요인이 있으며, 그것들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력조차도 타고난 능력임을 주시해야 한다. 비관적인 태도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훨씬 더 진보적이고 희망찬 태도다.
-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몰아붙이면 대부분은 불행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노력해야 할 종목을 몇 개만 정해놓 고 모든 사람을 줄 세우면 그 피해는 감당하기 어렵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무한경쟁의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승리의 축배는 소수의 강자에게 돌아가고, 그 축배의 명분은 무한경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인 노력이라는 장군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안을 들여다 보면 승자는 그 종목에 훌륭한 재능을 가졌고, 훌륭한 재능이 실현될 수 있는 가정적·사회적·환경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으 며, 재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노력이라는 무기조차 가지고 있 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더는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타인을 거칠게 다루 지 않으면 좋겠다. 타고나는 것들과 주어지는 환경을 서로 인정 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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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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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세계대전망

사회 2024. 2. 21. 07:13

- 트럼프의 출마 자체가 미국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는 증거다. 공화당이 지난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인물을 후보로 지명한다는 사실은 미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는 심각 한 지정학적 위험이 닥친 시기에 미국을 어디로 튈지 모를 고립주의 국가로 변모시킬 것이다. 특히 푸틴을 좋아하는 트럼프가 러시아-우 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안에 끝내겠다고 자랑한다면, 한마디로 사 실상 우크라이나가 희생양이 되리라는 얘기다.
트럼프는 후보에 못 오를지도 모르고, 후보가 된다 해도 패해야 마 땅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를 맞이할 확률은 놀라울 정도 로 높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와 전 세계에 재앙이 될 것이다.

- 유가와 곡물가 상승, 서구의 전쟁 사상자 발생 같은 지정학적 위험 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운 위험은 불안정성이다. 1990년 대에 많은 국가들은 자유, 시장 경제, 규칙 기반 세계화의 자기 강화 적 순환을 갈망했다. 그러나 이제는 포퓰리즘, 경제 개입, 거래적 세 계화가 예측할 수 없이 순환하고 있다. 그 결과 2024년에는 세 가지 위협이 예상된다.
첫째, 강대국이나 국제 기관이 처벌받지 않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 고 있다. 그 거리는 홍해에서 출발해 지난 3년간 쿠데타가 벌어진 아프리카 6개국을 거쳐 대서양까지 6,000킬로미터에 달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인종 청소를 포함해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을 개시했다. 이란의 무장 단체들은 중동 전역의 취약한 국가에서 활개 치고 있다. 2024년에는 이 불처벌 영역이 아프리카와 러시아로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둘째, 중국, 이란, 러시아가 3대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 3개 국은 서구 동맹국들보다 공통점이 훨씬 적은 데다가, 중국은 다른 두 국가보다 훨씬 크고 세계 경제에 깊이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맞물린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 고 실질적 잠재적 제재를 피하려 한다. 중국은 러시아와 이란산 석유를 구매한다. 이들 중 하마스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는 나라 는 없다. 그들의 협력은 기술 분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은 서방 금융을 우회하는 방법을 개척하는 중이다. 이제 중국 무역의 절반이 위안화로 이뤄지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을 수출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핵 공격 경고 시스템과 태평양 지역의 정찰에 협력 하고 있다. 이 신생 동맹이 얼마나 확대될지는 2024년 답이 나올 것 이다.
마지막 위협은 서구 국가의 단결력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우크라 이나 침공에 서구가 대응한 방식은 희망적이었다. 미국과 유럽이 힘 을 합쳤고, 여론도 긍정적이었으며, 비서구 국가가 다수 동참하지 않 았음에도 1945년의 질서가 수호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사적으로 손발이 맞지 않아 균열 조짐이 보인다. 미국은 공화당 내에서도 우크 라이나에 대한 자금 지원 문제로 편이 갈렸다. 

- 미국 경제가 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여기엔 단서가 붙는다. 바로 엄 청난 양의 국채 발행으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이 작성되는 현재 기준으로, 미 연방 정부의 적자 규모는 연간 GDP의 7%를 넘 어섰다. 미국이 '고금리 장기화' 체제에 진입했는지에 대해서도 논 쟁이 뜨겁다. 답은 고삐 풀린 국채 발행이 앞으로도 계속될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마도 계속될 것 같다. 의회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분명 국채 발행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의 첫 번째 임무는 2018년 트럼프 정부가 시행한 감세 정책의 부활이 될 듯하다. 트럼프의 감세책은 대부분 2025년 만료될 예정이지만, 전면 폐지는 민주당 대통령조차도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 전기화의 영향도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탈탄소화 목표를 서둘러 달성하려다 보면 청정에너지 발전소, 전력망, 전기차의 핵심 원자재 인구리, 코발트, 리튬, 니켈 등에 막대한 수요가 쏠릴 것이다. 2024년 에는 이러한 기대 심리가 시장의 단기적 불안 심리를 능가하면서, 금 속 시세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청정 기술의 수급은 계 속 가변적이어서, 가격이 오르면 이에 반응해 수요량은 줄고 공급량 은 대폭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금속은 시장의 급격한 호황과 불황을 오갈 것이며, 결국 수출국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수출국 중 상당수는 채굴 산업에 비교적 새로이 진입해서 변동 성 관리에 필수인 탄탄한 국가 재원, 위험 헤지 메커니즘, 재정 건전 성이 부족한 편이다. 광산 가동 및 중단의 어려움과 비용, 그리고 광산이 분산된 지리상의 제약으로 인해 금속 분야에서 제2의 OPEC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가장 영리한 소수의 국가만이 청정 자원을 팔아 부유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호황은 영원하지 않다. 일단 풍력 발전과 전기차가 충분히 대중화되고 나면 친환경 금속 수요는 더 낮은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 다. 강한 태양광, 풍력, 수력을 활용해 자국 수요량 이상의 풍부한 청 정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더욱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할 것이다. 자연적 조건의 불균형 때문에 국가 간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 도 있다. 바람이 강한 북해와 햇볕이 잘 드는 지중해 연안은 유리하 지만, 흐린 날씨가 잦은 유럽 대륙은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다양한 유형의 자원을 결합해 재생 가능 에너지를 꾸준하고 확실히 공급할 수 있는 국가가 가장 유리할 것이다. 인구가 적어 생산된 에너지가 남아도는 국가들은 철강이나 데이터 저장과 같이 에너지 소 비가 많은 산업 분야를 자국으로 유치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연료의 잉여분을 전자나 액체 형태로 수출하려는 국가들도 있을 것이다.
결국 전환기에는 비판을 무릅쓰고 화석 연료도 수출하고, 금속도 채굴하고, 재생 에너지까지 최대한 활용하는 등 모든 영역에 손을 뻗 치는 국가가 에너지 초강대국이 될 것이다. 아직 이 정도로 만능의 경지에 오른 나라는 없다. 걸프 지역 국가들은 태양광과 수소 에너지 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고 있으나 아직 본격적으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칠레는 막대한 양의 구리와 리튬을 생산하지만 6,500킬로미 터에 달하는 해안선, 남부의 강한 바람, 햇볕이 잘 드는 사막을 활용 한 전력 생산은 아직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셰일 오일과 천연가스, 그리고 그보다 더 넉넉한 재생 가능 에너지가 있지만, 자기네 지역에서 친환경 금속 채굴에 관해서는 주민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전환에 따른 가장 큰 보상을 얻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 2024년에는 스텔스플레이션(stealthflation)의 열병이 마침내 사 라질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진정세에 이르 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윤을 남기려는 관행이 한풀 꺾일지도 모 른다. 정부가 규제 의지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잡다한 수수료(junk fee)'를 단속하고자 한다. 소비자들의 반발도 만 만치 않다. 미국인들은 '팁에 의한 피로감을 호소한다. BMW는 최 근 소비자들의 분노에 못 이겨 열선시트 사용료를 폐지했다. 에어비 앤비는 플랫폼을 개편해 추가 수수료를 더 눈에 띄게 표시했다. 분명 기업들은 마음만 먹으면 '숨은 추가 요금' 없이 단순하고 투명하게 가격을 책정할 방법이 있다.
그러나 가격을 올리는 수많은 편법을 발견한 기업은 앞으로도 계 속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항공사들은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에게 제 공하는 서비스들을 쪼개어 일일이 가격을 매기는 실험을 하고 있다.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는 다른 곳에 '추가 수수료'를 붙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팁 요구는 이제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다. 실제로 미국 의 한 항공사는 이제 승객들이 객실 승무원에게 팁을 주도록 허용하 고 있다. 분명 스텔스플레이션 수법을 교차 수분할 영역은 아직 여기 저기서 발굴할 수 있다. 2024년에 소비자들은 분통 터질 일이 더 많 아지지 않을까 싶다.

- 2023년 8월 29일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이 출시 되자마자 기업들은 잽싸게 이 제품을 분해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중국의 통신 장비 제조 업체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5G 스마트폰을 만드 는 데 결국 성공했다. 2020년 미국의 제재로 인해 화웨이는 첨단 반 도체나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구매할 수 없게 되어 스마트 폰을 만들 수 없었다. 한때 전 세계적으로 애플의 아이폰을 앞질렀던 화웨이 스마트폰의 판매는 무너졌다. 그러나 엔지니어들이 메이트 60 프로의 내부를 조사해보니 미국의 제재가 자체 혁신으로 극복되 었음을 보여주는 중국산 칩이 나왔다.
기린 9000S라는 이 칩은 중국의 SMIC에서 제조했으며 그 등장은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중국의 미국과의 기술 전쟁은 2019년 트 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에 고사양 반도체칩의 판매를 금지하면서 본격 적으로 시작되었고, 2022년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제재의 틀을 기반으로 중국의 모든 기업에 대해 첨단 반도체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얼마 후에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 내에서 미국 회사인 마이크론이 만든 칩의 판매를 금지하는 보복 조치를 감행했 다. 또한 중국은 최첨단 칩을 만드는 데 필요한 두 가지 희귀 금속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중국은 화웨이의 새로운 스마트폰과 이에 들어가는 칩을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리는 계기로 간주한다. 9월 12일 정부 기관지 인 <인민일보>의 사설은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기술 발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현지 소셜 미디어의 사 진은 선전시의 화웨이 광고 앞에서 절을 하는 아이들을 보여줬다. 미 국에서 메이트 60 프로는 중국에 대한 제재가 실패했으며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모두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웨이와 다른 중국 기업들이 2024년 이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보여준다.
메이트 60 프로의 성능은 세계 최대의 대만 TSMC에서 제조한 칩 을 내장하고 2020년에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S20과 동등하다. 3년 뒤처지는 게 별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SMIC DUV 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한 세대 이전의 기계를 사용해 칩을 식 각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린 9000S가 DUV 기술의 한계를 나 타낸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TSMC의 첨단 칩은 보다 진보된 EUV 기 술을 사용해 제조된다. 이 EUV 기계는 네덜란드 회사인 ASML에서 만 제조하고 미국의 수출 제재 대상이기 때문에 SMIC 및 기타 중국 회사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 중국의 약진이 눈부시기는 하지만 기린 9000S는 중국이 EUV 기 술 없이 달성할 수 있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를 개발하려면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데 TSMC는 그동안 계속해서 앞서 나갈 것이다. 메이트 60 프로는 기술 전쟁에서 결정적인 게임 체인저는 아니었지 만 내부의 구성 요소는 2024년에 기술 전쟁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휴대폰에는 한국의 SK하이닉스에서 만든 메모리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SK하이닉스는 화웨이와 최근 몇 년 동안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은 암시장을 통 해 칩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영리한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이러한 이 유로 미국은 글로벌 제재의 수준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행 정부는 이미 일본, 네덜란드,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을 그 나라 기업 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에 끌어들였다. 2024년에는 중국 기업이 칩을 구매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 중동 같은 지역에서 이 동맹을 확장할 수 있다.

- 가장 일반적인 용어는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이지만, 미국정부는 디리스킹(derisking, 탈위험)을 더 선호하며 몇 가지 첨단 제조 업 분야에만 한정시켜 적용한다. 그러나 무엇이라 부르든 무리 없는 디커플링이 어렵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떤 면에서 디커플링은 이미 진행 중이다. 컨설팅 업체인 로디움 그룹(Rhodium Group)은 2019년부터 2022년 사이에 미국에 대한 중국 기업의 신규 투자 규모가 10억 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노르웨이와 스페인의 투자 금액보다 규모가 적다. 2023년에는 멕시코가 중국을 제치고 과거의 위치를 되찾아 미국의 최대 무역 파 트너가 되었다.
미국은 일부 반도체 생산을 국내로 가져오려고 기업의 투자를 지 원하고 있다. 또한 보다 우호적인 아시아 국가로 공급망을 옮기려 하 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태양 전지판 생산을 보자. 미국이 중국의 태양 전지판 제조 업체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구매자들은 동남아시아 제품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미국으로 수출되는 태양 전지판의 부품은 여전히 중국산인 경우가 많다. 8월 미국 상무부는 5개의 대형 중국 회사가 동남아시아로 생산지를 돌려 관세를 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 대규모 저마진 위탁 생산 업체의 재편도 디커플링의 어려움을 보 여준다. 애플, 델 및 HP와 같은 고객을 보유하고 중국에 공장을 둔 대만의 거대 업체인 폭스콘(Foxconn)은 원래 인도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7월 인도 구자라트에 약속했던 200억 달러 규모 의 반도체 제조 합작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폭스콘은 베트남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만 중국에서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2023년에는 허난성에서 추가 생산을 위한 토지를 취 득하고 다른 2개 부지에서 생산을 시작했다. 중국에 공장이 있는 또 다른 대만 제조 업체인 위스트론(Wistron)은 15년 만에 인도에서 자 체 사업을 종료하고 인도 대기업인 타타 (Tata)에 사업을 매각했다. 위스트론은 공 장 설비 이전 사유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인도 언론은 인건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은 데 원인이 있다고 보도했다.
여러 서방 기업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디커플링 정책을 펴는 이런 위탁 생산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이 공급망을 재정비 하는 능력에 따라 성공적인 디리스킹이냐, 아니면 지저분한 반쪽 분 리가 될 것이냐가 결정될 것이다.
베트남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익을 얻을 것이다. 이들은 중국과의 무역 및 투자 흐름을 제한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중국과 미 국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무역 전쟁에서 당사자는 모두 패배 하고 제삼자가 큰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2024년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고편이 될 수 있다. 세 가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첫 번째는 스토리텔 링이 보다 개인화되고 양방향으로 이뤄짐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스 토리텔링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영화는 변화 할 것이며, 이용자가 영화 관객보다 더 쉽게 자신의 모험을 선택할 수 있는 게임 산업도 변화할 것이다.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양 또한 확 늘어날 것이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에 게시된 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듯이, 생성 AI로 인해 온라인에서 수많은 동영상과 다양한 자료가 빠르게 퍼질 것이다. 2025년 무렵에는 온라인 콘텐츠의 무려 90%가 AI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 다. 큐레이션과 쓸 만한 검색 도구가 꼭 필요할 것이며, AI가 만든 콘 텐츠에 라벨을 붙일지, 또 붙인다면 어떤 라벨을 붙일지를 두고 논쟁 이 벌어질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본질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지만 바뀌는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사학자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son) 은 생성 AI를 음향의 출현에 비유한다. 영화에 음향이 입혀지자 플 롯이 그려지는 방식과 관객들이 캐릭터에 느끼는 친밀도가 바뀌 었다. 창작 분야에 AI 기반 소프트웨어 도구를 제공하는 회사 런 웨이엠엘(RunwayML)을 운영하는 크리스토발 발렌수엘라(Cristóbal Valenzuela)는 AI가 '새로운 유형의 카메라'와 같으며 '스토리란 무엇 인지 재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둘 다 맞 는 말이다.
-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으로 'AI가 대본을 쓸 수 있을까'라는 물 음에 관심이 모아졌다. 일단 제작사들은 양보하기로 합의했으며 첫 GPT를 이용하기 위해 작가실을 빙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오롯이 AI만으로 장편 블록버스터를 제작하기까지는 몇 년 더 걸릴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큰 발전은 시간을 줄이는 도구로 AI를 활 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생성 AI는 더빙, 영상 편집, 특수효과, 배경 디 자인 같은 복잡한 작업을 자동화하고 단순화할 것이다. 2023년 아카 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 면 그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런웨이엠엘이 제공한 '로토 스코핑 (rotoscoping)' 도구를 이용해 배경의 녹색 스크린을 지우고, 말하는 바위를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한 장면이 등장한다. 이 도구를 이용하면 며칠이 걸리는 영상 편집 작업을 몇 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세 번째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창작자(저작권자)와 AI 플랫폼 운영자의 극적인 충돌이다. 2024년에는 작가, 음악 가, 배우, 예술가들이 자신의 말, 음악, 이미지가 동의나 대가 없이 AI 시스템을 학습시키는 데 사용됐다는 이유로 줄소송을 제기할 가능 성이 있다. 아마도 AI 관련 기업들이 자사의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 저작권자에게 콘텐츠 비용을 지불하는 일종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 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격렬한 법적 다툼을 치러야 할 것이다. AI는 스토리의 미래와 집단적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더 큰 질 문을 던진다. 예컨대 생성 AI는 단순히 이전 히트작을 모방하기만 할 까? 그래서 독창적인 스토리와 예술 형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방 블 록버스터 영화와 팝송에 대한 깊이 없는 해석만 쏟아낼까? 또 엔터 테인먼트가 갈수록 개인화하는 시대에 인류의 집단의식에 스며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스토리가 여전 히 존재할까?
창작자들이 AI의 진보와 씨름할 때 기술에 대한 불안감이 작품에 투영될 것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더 많은 '터미네이터'식 충돌을 경 계해야 할 수도 있다. 삶은 예술을 모방하고 예술은 삶을 모방한다.

- '정책통'과는 거리가 먼 트럼프는 공화당원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전략을 쓸 것이다. 그의 선거 유세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남부 국경을 지키는 데 실패했고, 범죄나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지 못했으며, 미국을 임신중절 지지자, 범죄자, 다양성 평등포용의 요식 체계, 트랜스젠더 등의 불경한 피난처로 만들려는 민주당 좌파 진영에 굴복함으로써 나라를 파괴할 위기에 처해 있다 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첫 취임 연설에서 언급했던 '미국인 대학살' 을 거듭 강조할 것이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기보다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대다수의 지지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대 통령 집무실에 복귀하지 못하면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2024년 그가 내뱉는 말들은 한층 더 극단적이고 민주주의를 갉아먹 을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정책에는 실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대체 로 많은 미국 유권자들이 도외시하는 분야에 존재한다. 두 사람은 미 국의 외교 정책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확고한 보호주의자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와 같은 고립주의 자는 아니다. 미국 우선주의 운동에 빠져 있는 공화당은 러시아에 맞 선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대한 자금 지원을 포기할 심산인 것 같다.
- 양당 모두 중국에 대한 강경책에서는 서로 앞지르려고 하지만, 트럼프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미군을 투입할지는 불분명하다. 유럽의 동맹국들은 나토에서 미국의 중추적 역할이 영구적으로 약화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의 맹공격에 맞서 싸우려면 기력이 좋아야 하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기력이 부쳐 보인다. 선거가 끝날 무렵에는 아마도 더 힘이 부칠 것이다. 바이든 지지자들의 희망은 트럼프가 형사재판이 걸린 1월 6일 사건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낙태 등의 이슈에 대한 공화당 의 비호감 입장을 고수하며 자멸하는 것이다. 미국은 선거의 표차가 크지 않은 편이므로 양당 구성원들이 느끼는 실존적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1년 뒤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피로감과 분노 를 느끼는 국민의 비율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 전략가들은 중국의 군사력이 점점 강해지고, 새로운 군사 장비에 대한 미국의 투자가 2030년대까지 온전히 결실을 맺지 못함에 따라 202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취약성의 창'이 열 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시간차에 대한 우려는 2027년이 다가 올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중국 지도자 시진핑이 자신의 명령에 따 라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길 바라는 해이 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발발 여부는 단순히 군사적 균형에만 달 려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부분이 정치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게다가 2024년에 미국과 대만 모두 선거를 치르므로 곧 위험한 시기가 시작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쇠퇴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도 시장 환율 기준으로 여전히 전 세계 국방비 지출의 39% 를 차지하는 군사 대국이다. 하 지만 2023년 4월 발표된 호주 의 국방 전략 검토서는 '미국이 더 이상 인도-태평양 지역의 단일 리더가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균형의 변화는 미국의 유례없는 동맹 네트워크에 프 리미엄을 부여한다. 바이든 대 통령은 전임자 트럼프가 훼손 한 이 네트워크를 복구하는 공을 들였다.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연합하고 확장하고 결집했다.
- 아시아 동맹국들도 보탬이 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나토 가 없지만 일본이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리고 있으며 미국은 호주에 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특별 파트너십도 맺고 있다. 여기에는 호 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공급하고 영국과 기타 무기를 공동 개발하기 위해 맺은 오커스(AUKUS) 협정, 제트 엔진 생산을 위해 인도와 맺은 방위 산업 협정, 여러 기지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허용하기로 한 필 리핀 협정이 포함된다. 2024년에 미국은 이런 협약을 더 추가하리라 예상된다.
미국의 신뢰성과 군사적 역량에 대한 인식에 많은 것이 달려 있다. 신뢰성 측면에서 살펴보면,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미 국이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허둥지둥 철수한 것이 적들에게 미국의 약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 나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군사적 역량 측면에서 살펴 보면, 미 국방부는 자국 군대가 두 개의 대규모 지역 전쟁에서 동시 에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 대신 주요 적 국에 대해 '충돌을 억제하고 필요한 경우 분쟁에서 승리하는 동시에 '그 외 지역에서의 기회주의적 공격을 억제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유럽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파견 없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했 고 나토에 대한 공격을 막기 위해 유럽에 더 많은 부대를 배치했다. 중동에서는 이란과 그 대리 단체들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항공모 함 타격단을 파견했고 다른 병력도 강화했다.
- 표면적으로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전쟁에 직접 개입 하는 것보다 우방국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힘을 보존하는 더 경제 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미국 방위 산업체들은 고갈된 미국 재고를 보 충하면서 동맹국에 공급하기 위한 무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전쟁 시뮬레이션으로는 미국이 대만을 두고 중국과 전쟁을 벌이면 수일 내에 장거리 대함 미사일이 바닥날 것으로 보 인다.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코 리셰이크(Kori Schake)는 '미국은 하나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군대와 2주간 버틸 수 있는 산업 기반이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아마도 국 내 정치의 기능 장애일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공화당은 정상적인 예산 편성을 방해했고,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금 지원 에 강력히 반대했다. 2024년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데 성공한다면 전 세계 동맹국들이 몸서리를 칠 것이다. 만일 그들의 대변자인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 두려움은 두 배로 커질 것이다.

- 오랫동안 중국은 미국의 힘을 조금씩 깎아내고 있 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충격 요법으로 미국이 앞으로 마주할 도전을 예고하기 위해 중국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을 능가했다고 말하고 대만 해 협을 중국 영해라고 부르면서 보다 직접적인 접근 법을 취했다.
중국은 통신 인프라, 항만 시설, 군사 기지(또는 기지 건설권)로 이뤄진 놀라운 글로벌 네트워크를 의존국 에 구축해왔다. 중국의 영향력은 순수 중상주의에 서 시작해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욕구에 이르기까 지 꾸준히 성장해왔다. 미국은 느긋하게 대응했다. 중국의 투자를 방해하려고 다른 나라들을 꼬드기 는 방편에 의존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대안도 거의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의 외국 투자 전략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관 제공을 통한 소유권 인수(loan-to-own)' 방식, 현지 노동자가 아닌 중국인에 의존하는 사업 방식, 인프라 구축 실패 등이 공분을 사고 있다.
냉전 시대와 그 이후의 마셜 플랜, 평화 봉사단, 미국이 지원한 인도 농업의 '녹색 혁명', 에이즈 퇴치를 위한 대통령 비상 계획(PEPEAR) 이니셔티브 등은 미국이 나 라 밖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오늘날의 문제는 이전 과 똑같은 전략으로 중국의 실책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몸담고 있는 후버연구소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냉전 연 구에 기여했다. 후버연구소의 기록물들은 그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자료다. 우리는 그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이 남긴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다섯 가지 가르침이 눈에 띈다.
첫째, 동맹이 중요하다. 중국은 어떤 식으로든 자국에 신세 진 의존국들이 있다. 가 장 중요한 러시아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골칫거리가 됐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에 단호히 대응하면서 굳건해진 유럽 동맹, 강력해진 나토, 아시아 와의 긴밀한 동맹이라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둘째, 억지력에는 수사에 걸맞은 군사력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에 서의 전쟁 시뮬레이션을 통해 서방 군사력의 약점이 드러난 시점에 중국은 모든 측면에서 군사력을 향상시켰다. 서방은 보다 선진화한 무기를 조달하고 핵심 소재 및 부품의 안전한 공급망을 개척하고 방위 산업 기반을 재건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힘에 의한 평화는 실제로 효과가 있다.
셋째, 우발적인 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미군과 소련군 사이 의 우발적인 전쟁을 막기 위한 (냉전 시대에 수립된) 친교의 혜택을 오늘날까지 누리 고 있다.
넷째, 1946년 소련 내부의 모순이 결국 소련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한 '긴 전 문(long telegram)'을 작성한 모스크바 주재 미국 외교관 조지 케넌(George Kennan) 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소련보다 강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높은 청년 실업률, 재앙적인 인구 구조 등 많은 모순을 안고 있다.
제1차 냉전이 주는 마지막 가르침은 불가피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스스로의 결함과 모순, 특히 온라인 에코 챔버(echo chamber)에서 증폭된 사회 분열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를 수호하는 제도의 정당성을 지키 지 못했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이전에 독재자들은 자유에서 흘러나오는 불협화음을 결점으로 착각하고 자국 사 회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이 힘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배 척했다. 최고의 냉전 지도자들은 독재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이해했다. 현 세대 지 도자들이 이와 유사한 다짐을 보여줄 수 있다면 (제2의 냉전이든 새로운 경쟁이든) 새 로운 초강대국 경쟁의 결과는 자유세계의 또 다른 승리가 될 것이다.

- 전쟁은 중국에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2024년 중국 관리 들은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의 지도자들과의 회의에서 높은 식량 및 에너지 가격을 서방의 제재 탓으로 돌릴 것이다. 그들은 미국의 무기 그리고 에너지 수출업자들이 유럽인들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고 있다 고 비난할 것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중립을 계속 주장할 것이다(중동에서도 그렇게 하듯). 그리고 골치 아프지만 중요한 파트너로 여겨지는 푸틴 러시아 정권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중국은 고립된 러시아가 유럽 시장을 외면하고 동쪽으로 눈을 돌 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 중국은 석유, 가스, 광물, 무 기 구매를 늘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대금을 자국의 불태환 통화인 위안화로 내고자 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푸틴 대통령을 모욕하거 나 구소련에 해당하는 영역에 대한 안보 제공자로서의 러시아의 위 치에 도전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러시아의 거부권을 두려워하지 않 고 중앙아시아나 북극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202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회담이 열리면 중국은 평화 중재자 역할을 할 기회를 잡을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가능한 모든 합의의 보증인으로서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장에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회담에서 중국의 입장은 냉정하고 감정적이지 않은 현실주의가 될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영토 보전의 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에 러 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한 적이 없다. 대신 중국은 러 시아의 '정당한 안보 우려'를 고려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우크라이나 재건을 돕겠다고 제안할 것이다.
한편 11월에 있을 미국 대선은 딜레마다. 미국의 고장 난 정치는 서방이 쇠퇴하고 있으며 자유 민주주의 가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 랐다는 중국의 주장을 강화한다.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대선 후보들의 고립주의적 수사에 짜릿함을 느끼게 될 터인데, 그것이 강 대국들이 각자의 세력권 내에서 면책 특권을 누리는, 중국이 선호하 는 일종의 19세기 세계 질서로 돌아간다는 신호가 될 때 그렇다. 하 지만 미국의 거친 선거 운동은 후보들이 중국을 두고 경쟁하듯 더 강 경한 태도를 내보이는 가운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은 2024년 대선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끔 찍하게 보이지만 중국이 머리기사를 장악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의 선전 책임자들과 '늑대 전사 외교관들의 자제가 필 요할 것이다.
- 2024년에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친기업적인 양보를 몇 가지 더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경영진이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해도 놀라지 말길. 중국의 코로나 시기는 중국 통치자들이 외부 세 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그들은 외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쓰며 성장보다 안보를 중시하는 태도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뉴 노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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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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