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과학

과학 2020. 11. 30. 22:21

- 비폭력 저항운동의 효율성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만난 치는 웨스는 폭력성이 저항운동의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폭력적인 저항이 정치권력의 전복에 더 효과적이라는 자신의 처음 가설이 과거의 기록으로부터 확증될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1900년부터 2006년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시민 저항운동 중, 독재정권을 전복시키거나 지역적인 민주화로 이어진 최소한 수천 명이 참여한 수 백 건의 사례를 모았다. 저항의 폭력성과 저항운동의 성공 간 관계를 치밀하게 살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비폭력 저항운동이 폭력적인 저항운동에 비해 무려 2배 이상의 성공률을 보였다(참고로, 테러 집단에 의한 저항운동의 성공률은 극히 낮다는 것이 다른 연구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구정권이 폭압적인 방식으로 억압하는 사례들로 좁히면, 비폭력 저항운동의 성공률은 무려 6배 이상이었다. 연구에서 얻어진 다른 결과도 못지않게 흥미롭다. 저항운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인구의 3.5%가 넘은 '모든 저항운동은 성공했다는 것이다. 3.5%가 적은 숫자는 아니다. 5,000만 명이 넘는 우리나라라면 거의 200만 명, 미국이라면 무려 1,000 만 명이 넘는 숫자다. 흥미로운 점은 더 있다. 3.5%를 넘긴 모든 저항운동은 하나같이 다 비폭력적이었다는 점이다. 즉, 비폭력저항운동의 성공률이 더 높을 뿐 아니라, 참여자의 숫자도 더 많았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평균 참여자 수는 폭력적인 저항운동의 무려 4배였다.
- 연구에 사용된 모형에서 p가 충분히 커서 많은 사람들이 계층을 넘나들고 가로지르며 서로 활발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게 되면 최상위 계층의 회장이 짜장면을 먹고 싶어 해도 결국 사람 들 다수는 된장찌개를 선택하게 된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설득 의 과정을 거쳐 어떨 때는 짜장면, 어떨 때는 된장찌개로 수시로 마음을 바꾸다가 결국은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알고 보면 답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면 결국은 올바른 의견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 이러한 민주적인 의견 합일의 과정은 사실 어두운 면도 있다. 바로, 의견의 일치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거다. '빨리빨리'의 효율성은 민주적인 토론을
통한 올바른 선택과는 함께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도자가 아무리 짜장면을 좋아하더라도, 그리고 된장찌개 보다 짜장면이 더 좋다고 정말로 확신하더라도 일단은 많은 사 람의 의견을 구할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90%가 된 장찌개가 더 좋다고 하는 경우, 내가 믿는 짜장면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사회 전체가 올바른 의견 합일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효율적으로 줄일 수도 있다. 자신의 말만 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계층구조를 따르는 조직의 최상층에 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올바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필자는 지도자가 귀가 얇았으면 좋겠다.
- 연구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은 농작물과 가축으로 대표되는 농업혁명과 함께 유라시아 구대륙에서 탄생했다. 경제적 불평등의 역사는 1만 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이런 연구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 불평 등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어지지 않았으니, 줄이는 노력이 불필 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다. 이건 마치, 모든 물체가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지니, 모든 사람은 중력을 거스르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닮았다. 중력을 알아야 중력을 극복해 달에 갈 수 있듯이, 경제적 불평등의 이해는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의 출발점이다.
- 꿀벌들이 서로 조율하며 조금씩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을 보고한 논문을 보면 우리가 꿀벌로부터 배울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의견 조율의 중간 단계에서 잠정적으로 꿀벌 다수가 선택한 후보지가 최종 합의한 이주지와 다를 수도 있다. 중간 단계에서 다수의견이라 해서 모든 꿀벌이 그 의견을 즉각 따르는 것은 아님 을 의미한다. 이 경우 최종 선택된 후보지가 중간 과정에서는 소 수의견이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꿀벌들은 다수의견이라고 무조 건 따르지도, 소수의견이라고 무조건 무시하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꿀벌들이 열린 마음을 가진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자기가 가본 곳이 마음에 들어도 친구가 추천한 곳에 직접 가보고, 그 가본 곳이 마음에 들어도 친구가 추천한 곳에 직접 가보고, 그 곳이 더 마음에 든다면, 고집을 버리고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꿀벌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곤충인 개미도 놀랍다. 개미는 새로운 길을 탐색하며 서로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그러한 방식으 로 결국 집에서 먹이까지 시간이 덜 걸리는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다고 한다.
- 친구 수 가지고 실망할 필요 전혀 없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왜 친구들은 나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보다 여행을 많이 한다고 느끼는지도 살펴보자. 이 부분은 '선택 치우침selection bias' 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전혀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삼각김밥 먹는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없지만 1년에 딱 한 번 가본 멋진 레스토랑 사진은 사람들이 올리기 때문이다. 친구 365명 각각이 1년 365일 중 딱 하루 가는 멋진 레스토랑 사진을 1년에 한 번씩만 올려도, 독자는 매일매일 멋진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 는 친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레스토랑 사진 속 그 친구도 독자 와 마찬가지다. 364일은 독자가 오늘 먹는 평범한 점심을 먹는 다. '선택 치우침'에 관련된 재밌는 일화가 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에서 전투에 투입되는 비행기의 어느 부분에 두터운 장갑을 둘러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생환한 비행기의 총탄 자국을 살펴보니, 엔진 부분에는 거의 총탄 자국이 없고, 비행기 날개와 꼬리 부분에 총탄 자국이 많았다. 자, 그럼 엔진 부분은 장갑으로 보호할 필요가 없을까? 이 일화는 명확한 '선택 치우침' 효과를 보여준다. 엔진에 총격을 입은 비행기는 대부분 격추되어 살아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총격을 받은 비행기만 생환할 뿐이라는 얘기 다. 합리적인 결론을 얻으려면 선택 치우침이 없는 자료를 모으 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화다. 페이스북에서 내 친구가 나보다 더 많은 친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정말로 친구가 적기 때문이 아니다. 페이스북에 마당발 친구가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친구관계의 역설'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내 친구는 나보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멋진 장소를 여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정말로 그 친구가 그런 멋진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 예외적인 모습만 페이스북에 올리는 선택 치우침' 효과 때문이다. 어쩌면, 스스로가 행복한지 아닌지를 다른 이와 비교해 판단하지 말자는 것이 더 중요한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 개미는 시계가 없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집에서 먹이를 왕복하는 시간을 재지 않는다. 아마도 개미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도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무언지 모르는 개미가 여럿 모이면 시간이 덜 걸리는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낸 다. 단순하고 제한된 능력을 가진 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여럿이 모이면 전체 집단은 놀라운 효율성을 창발한다. 이 실험에서 개미 집단이 최소시간 경로를 찾아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개미 한 마리의 놀라운 능력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내는 비밀은 바로, 개미가 남긴 화학 물질인 페로몬에 있다. 개미는 자신보다 앞서 지나간 동료 개미가 남긴 페로몬을 따라 이동하면서 자신도 페로몬을 바닥에 남긴다. 페로몬은 휘발성 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로와 시간이 짧 게 걸리는 경로를 비교해보자. 시간이 짧게 걸리는 경로를 개미 들이 왔다갔다하며 남긴 페로몬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로에 남긴 페로몬보다 더 많게 된다. 즉, 시간이 지나면 개미들은 시간 이 짧게 걸리는 경로를 통해 주로 이동하게 된다. 페로몬의 적절 한 휘발성과 개미가 페로몬을 따라가며 자신도 페로몬을 남긴다는 사실을 통해 개미 집단이 최소시간 경로를 찾아내는 현상을 정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성원 각각은 단순한 행동 규칙만을 따라도 집단 전체는 이처럼 놀라운 효율성을 보여줄 수 있다.
- 개미는 어떻게 뗏목을 만들 수 있을까? 이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한 논문에서 개미가 뗏목을 만드는 현상을 자세히 연구했다. 먼저, 한 덩어리의 공 모양으로 뭉쳐 있는 개미집단을 물 위에 놓아보자.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개미 두세 마리 정도의 두께로 물 위에 넓게 퍼져 빈대떡 모양의 뗏목이 된다. 개미 뗏목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개미 한 마리 한 마리는 어떤 행동 규칙을 따라야 할까? 사실, 개미가 뗏목을 만들 때 이용하는 행동 규칙은 앞서 소개한 다리를 만들 때의 행동 규칙과 정확히 같다. 개미 한 마리는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뗏목의 가장자리에 도달하면, 물 위를 걸어갈 수는 없으니 그 자리 근처에서 서성거린다. 그러다 보면, 뒤를 이어 따라온 동료 개미가 뗏목 가장자리의 서성거리는 개미의 등 위에 올라탄다. 다리를 만들 때의 개미의 행동을 기억하는지. 등 위에 있는 개미가 일정 수를 넘으 면 개미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꼼짝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규칙 을 앞에서 소개했다. 자, 이제 뗏목 가장자리에서 동료 개미를 등 위에 태우고 있는 개미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V자 모양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생기는 과 정과 정확히 같은 방식을 따라서, 물 위의 개미 집단은 사방팔방으로 퍼져 얇은 빈대떡 모양이 된다. 개미가 만든 뗏목의 두께가 개미 두세 마리 정도라는 관찰 결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개 미 한 마리의 두께라면 뗏목 가장자리의 개미는 자기 등 위에 올라타 있는 개미가 없으니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고 뗏목을 탈출해 물 밖으로 나가지는 않으니 뗏목의 중심을 향해 돌아오게 된다. 즉, 개미 한 마리 두께의 뗏목은 안정적으로 유지 될 수 없다. 뗏목 전체의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만약 뗏목이 너무 두껍다면 맨 위의 개미는 뗏목의 가장자리 쪽을 향해 이동하게 되므로 뗏목의 두께는 시간이 지나면서 얇아지고 뗏목의 면 적은 커질 것이 당연하다. 뗏목의 두께가 개미 두세 마리라는 것 은 앞의 논의를 따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내 등 위에 동료 개 미가 일정 수 이상이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말고, 일정수 이하면 움직인다”라는 동일한 규칙을 따라 개미는 다리를 만들고 뗏목을 만든다. 집단 전체가 효율적으로 이주하기 위해 뗏목을 만드는 놀라운 집단행동도 결국은 단순한 행동 규칙을 따 르는 다수의 개미가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같은 개별적인 행동규칙을 따르더라도 외부의 환경이 이동 중 맞닥뜨린 골짜기 지, 물 위인지에 따라 전체는 전혀 다른 집단행동을 만들어낸다 는 것이 흥미롭다.
-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개미가 복잡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연구는 보여줬다. 개미 한 마리가 하는 단순한 행동은 다음과 같다. 1)개미는 일정한 확률로 바닥 에 있는 모래알을 물어 집는다. 2)모래알을 물고 이리저리 이동하다가 바닥에 모래알이 있으면 물고 있는 모래알을 그 근처에 내려놓는 경향이 있다. 3) 그런데 다른 개미가 이미 물었다 놓은 모래알 근처에 자기 모래알을 내려놓을 확률이 더 크다. 동료 개 미가 물었던 모래알에 묻어 있는 페로몬을 인식하는 거다. 이 세 종류의 단순한 행동 규칙만을 적용한 컴퓨터 모형을 통해 만들어지는 구조는 실제의 개미집과 흡사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페로몬은 휘발성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진다. 연구에서는 페로몬의 휘발성 정도를 바꾸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구조도 함께 달라진다고 말한다. 현실에서도, 외부조건이 달라지면 같은 종의 개미라도 다른 구조의 개미집을 만든다고 한 다. 온도와 습도에 따른 페로몬의 휘발성 변화로, 이를 설명할 수 도 있음을 논문에서는 말하고 있다.
- 도로 위의 차량 정체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가로축에 차의 밀도, 세로축에 통행한 차가 몇 대인지를 그려보고는 한다. 차의 밀도가 아주 낮아 차가 몇 대 다니지 않으면, 당연히 통행한 차 량 수도 적다. 또 차의 밀도가 아주 높으면 차량 정체로 인해 통 형한 차량 수는 또 줄어든다. 즉, 중간 정도의 적절한 차의 밀도일 때 통행량이 최대가 된다. 개미 굴 파기에 대한 연구에서도 컴퓨터 모형을 통해 개미의 밀도와 개미의 통행량 간 관계를 살펴봤다. 아니나 다를까, 적절한 개미 밀도에서 개미의 통행량이 최대가 된다. 흥미롭게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얻은 이 최적 의 개미 밀도가 실제 같은 수의 개미 실험에서 얻은 값과 비슷했다. 개미는 적절한 일의 배분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굴 파기 방식을 집단 전체가 택했다는 결론이다. 이 논문에서는 또 간단한 작업만을 수행하는 단순한 로봇 네 대를 이용한 군집로봇 실험도 했다. 결론은 같다. 넷 중 하나가 쉴 때 작업효율이 올라간다. 는 결과다. 모든 구성원이 동시에 노력하는 것보다 일부가 노력할 때 더 효율적인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다른 연구도 있다.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에 화재가 발생해 모두가 빠른 시간 안에 탈출해야하는 상황에 대한 연구다. 모든 이가 우왕좌왕 출구를 찾으려 동시에 헤매는 것보다, 일부가 출구를 찾고 나머지는 이들을 따라가는 것이 전체 집단의 탈출 시간을 줄이는 데에 효율적이라고, 논문에서는 말한다. 필자도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결과를 얻은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긴 복도의 양쪽에서 사람들이 마주 걸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예외 없이 우측통행이라는 보행 규칙을 따를 때보다, 보행 규칙을 따르지 않는 소수가 있을 때 오히려 통행이 더 원활해진다는 결과를 간단한 모델을 통해 얻었다. 모두가 우측통행 규칙을 따르면 복도의 중앙 부근에서 보행자의 밀도가 높아져 정체가 생기기 때문이다. 게으른 개미의 존재가 굴을 파는 개미의 밀도를 낮춰 굴 파기의 효율을 높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 개미 집단을 기업 전체로 비유해보자. 기업이 달성하고자 하 는 목표와 성과에 도달하는 길은 무척 복잡하다. 목표에 도달하는 복잡한 과정을 단순한 업무의 연결사슬로 치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은 우리가 개미에게서 배울 점이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에 대처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어쩌면 단순성일 수도 있다. 물론 1차원 직선을 따른 업무의 연결사슬은 앞에서 이야기한 '회복성'을 해친다. 개미가 하듯이, 구성원 하나의 실패가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결의 사슬을 설계하는 것이 좋다. 즉, 구성원 혹은 업무의 연결사슬은 '실패'를 가정하고, 일부가 실패해도 전체는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좋다. 게으른 개미가 일종 의 예비 노동력으로 확보되어 있는 개미 집단에게서 배울 점도 있다. 업무가 실패했거나 새로운 업무가 발생할 때, 당장에라도 새로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려면, 평상시 각자의 업무 부담이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 또, 사슬을 구성하는 구성원의 자율성도 중요하다. 개미는 그때그때 딱 정해진 일을 하지 않는다. 주변 의 정보를 취합해 그에 가장 적절한 행동을 할 뿐이다. 주변 정 보가 변했는데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구성원은 전체의 효율성을 낮춘다는 것을 개미 집단은 보여준다. 자율성을 가진 구성원은 주변의 구성원으로부터의 정보에 기반을 두어 자기조직적인 일처리를 할 수도 있다. 과도한 중앙의 개입은 관리비용을 높이고, 자율성을 해쳐, 전체 조직에 해를 끼칠 수 있다.
- 다음에는 개미 집단 전체가 수행하는 작업을 한 개인이 하는 업무로 비유해보자. 이루고자 하는 커다란 목표가 있을 때, 이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단순한 목표의 연결사슬로 치환하는 것 을 개미 집단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외부환경의 변화에 맞춰 개미 집단이 보여주는 놀라운 적응성의 근거 중 하나는 바로 게으 른 개미의 역할이다. 즉, 사슬을 구성하는 단순한 목표는 내가 가 진 능력의 일부분만을 투입해도 성취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이 좋다. 외부 환경의 변화로 간단해 보였던 목표가 성취하기 어 려운 목표로 변하는 경우라도, 적응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개미는 늘 주변의 동료 개미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주변 동료와의 소통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 내가 아 는 정보의 양은 내 주변 10명의 동료가 아는 정보의 양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단순성, 자율성, 적응성이다. 그리고 적당한 여유의 중요성도 함께 가르쳐줬다.
- 사람은 태생적인 정보처리 능력의 한계를 '집중'으로 좁혀 해결하듯이,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깊이 따져보는 데서 발생하는 시간 자원의 과도한 소모를 '직관'이라 는 무디지만 빠른 도구로 대치해 해결한다. 즉, 좁고 깊게 사고하는 것이 집중이라면, 넓고 얕게 사고해 빠른 결정을 이끌어내는 힘이 직관이다. 외부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엄청난 시각 정보의 양에 맞서, 사람은 시간적으로도 정보의 양을 줄인다. 사람의 뇌는 순간순간의 정보를 모두 처리할 수 없어, 시간의 축을 따라 띄엄띄엄 정보를 끊어 처리한다. 1초에 24장의 정지화면을 보여줘도 우리 뇌는 영화 스크린 위에서 무언가가 연속적으로 움직인다고 장면 을 이어서 인식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다른 얘기도 있다. 사람은 빠르게 움직이는 테니스공의 매 순간 위치를 연속적으로 정확히 인식할 수 없다. 테니스 심판은, 공이 바닥에 닿은 그 찰나의 순간에 공의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바로 이 이유 로 설명할 수 있는, 테니스 심판의 오심에 관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공이 사실은 경기장 안에 떨어졌는데도 밖으로 나가 아웃되었다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반대로 사실 공이 경기장 밖에 떨어졌는데도 안에 떨어졌다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땅에 닿은 정확한 시간의 정보를 포착하지 못한 사람의 뇌가 두 시점의 공의 위치를 이어서 대충 어림짐작하다 보니 생기는 오류다. 시각정보를 사람의 뇌가 처리하는 과정에서, 쳐 다보는 시야를 공간적으로 좁혀 좁고 깊게 보는 것이 '집중' 이 라면, 시간적인 측면에서 정보의 양을 줄여 띄엄띄엄 정보를 처 리하는 사람의 뇌의 전략은 어찌 보면 '얕고 넓게 보는 '직관'을 닮았다. 소모할 수 있는 자원의 양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면 직관’은 필요 없다. 바둑 한 수를 두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알파고 아닌 인간 바둑 기사도, 말 그대로 모든 수를 하나도 빠짐없이 두어보고 그중 가장 좋은 다음 수를 결정하면 되니까 말이다. 무한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혹은 정보처리의 시간이 0으로 수렴해 얼마든지 빨리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면, 대충대충 빠르기는 하지만 틀릴 수 있는 직관을 이용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아주 느린 사람의 정보처리 속도를 생각하면, 넓고도 깊은 엄청난 크기의 정보 덩어리를 사람의 뇌가 처리하려면, 폭을 줄여 깊게 보거나(집중), 얕지만 넓게(직관)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 '잠잠하다가 갑자기 확 어떤 일이 벌어지고, 또 한동안 잠잠 하다가는 다시 어떤 일이 후다닥 여러 번 연달아 일어나는 현상 을 '버스트burst'라고 한다. 중간의 잠잠한 휴지기가 이어지다가 활발한 활동기가 불현듯이 시작되고, 활동기가 갑자기 멈추면 또 휴지기가 이어진다. 별 활동이 없이 잠잠하던 천체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엑스선이나 감마선을 발산하는 현상도 '버스트'라 불린다.
뇌 안의 신경세포는 주변의 다른 신경세포로부터 전달되는 시냅스 연결을 통해 전달되는 전류의 양이 충분히 크면 신경세포 안팎의 전위차가 음(-)의 값에서 양(+)의 값으로 치솟고 잠시 뒤에는 다시 음의 값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짧은 시간 펄스의 형태로 신경세포 안팎의 전위차가 변하면 신경세포가 발화fre했다고 말한다. 가만히 잠잠히 휴지기에 있던 신경세포가 갑자기 짧은 시간에 몰아서 여러 번 발화할 때가 있다. 뇌 안 신경세포들이 보여주는 버스트 현상이다. 가만히 잠잠히 있다가 갑자기 짧은 시간에 몰아서 발화fring 를 한다는 뜻이다. 천체물리학이나 신경과학에서만이 아니다. 사 실 이런 '가만히 있다 몰아서 하기'는 나나 독자나 세상을 살다보면 자주 겪는 일이다. 친구랑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것도, 거래처를 방문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버스트 현상에는 정량적인 공통점이 있다. 두 인접한 활동 사이의 시간 간격을 구해보면, 잠잠한 평화기에는 시간 간격이 길고, 후다닥 활동기에는 일을 몰아서 하니 시간 간격이 짧을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평화기에는 긴 시간 간격이 듬성듬성 등장하고, 활동기에는 짧은 시간 간격이 여러 번 몰아서 등장한다. 두 활동 사이의 시간 간격을 구해 일렬로 죽 적어놓고, 그 빈도를 세어서 막대그래프를 그려보면, 간격이 짧은 경우가 많고 간격이 긴 경우는 별로 없으니 꼬리 쪽(시간 간격이 긴 쪽)으로 갈수록 막대그래프의 높이가 점점 줄어드는 모양이 된다. 이런 당연한 얘기도 또 복잡하게 수식을 써서 설명하는 과학자들이 묻는 질문은 “활동 사이의 시간 간격의 분포가 어떤 함수 꼴을 가질까”다.
- 비선형시스템은 수식의 형태로 깔끔하게 답을 적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위상공간을 이용해 시간 변화를 시각화하는 것이 직관적인 이해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시간이 흐르면 궤적이 위상공간 안에서 유한한 부피 안으로 수렴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최종적으로 궤적이 끌려 들어가는 어떤 구조를 끌개attractor'라 부른다. 궤적이 결국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경우에는 끌개의 차원은 0차원이다. 궤적이 점이 아니라 원처럼 폐곡선의 모양이 될 때도 있다. 1차원 끌개다. 비선형시스템이 보여 주는 끌개 중에는 아주 이상한 모양도 있다. 하도 이상해 그 이름도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다. 이때, 처음 위상점의 위치가 어디든 관계없이 궤적은 결국 위상공간 안의 유한한 부피 안에 들어 있는 이상한 끌개를 향해 말 그대로 끌려 들어온다. 그런데 이상한 끌개는 0차원의 점도 아니고 1차원 원 모양 닫힌곡선도 아니어서 새로운 궤적을 계속 그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된다. 유
한한 위상공간의 부피 안에 무한히 긴 궤적이 영원히 계속되고 있는 그런 모습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무한히 긴 궤적은 자신과도 결코 만나지 않는다. 어떤 모습이 될지 여러분이 상상해보실 수 있겠는가. 정말 이상한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비선형시스템의 운동을 위상공간 안에서 시각화하 면 프랙탈이 될 때가 많다. 비선형성이 지배하는 세상사에 예측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도 세상이 비선형이라 가능한 얘기다. 그렇다면 금수저가 금수저를, 흙수저가 흙수저를 물려주는 우리사회는 선형의 세상이다. 흙수저로 태어나도 본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해서 인생 의 성공이 자동적으로 보장되지는 않는 비선형의 사회가 더 건 강한 것은 아닐까. 비선형성이 자연의 풍부한 아름다움을 만들 어내듯이, 하루하루의 작은 노력이 쌓이면 얼마든지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더 아름답다.
- 영화 〈컨택트>는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미분 꼴과 적분 꼴의 두 방법에 얽힌 세계관의 차이를 묻는다. 바로, 인과율과 목적론의 차이다. 우리는 현재 순간에서 바로 다음 순간으로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미분의 형태를 택해 사고하는 것에 익숙하다. 저 멀리 놓여 있는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지금 여기서 시작해 인과율의 단계의 사슬을 이어가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익숙한 미분 꼴의 사고방식이다. 〈컨택트>의 외계인은 우리 지구인의 미분 꼴의 접근 방식을 오히려 훨씬 더 어려워한다. 외계인의 눈앞에서 미래는 과거와 동일하게, 수많은 가능성의 집합에서 적분 꼴로 주어진 어떤 양이 극값을 갖는 경로 전체의 형태로 이미 펼쳐져 있다. 우리가 경로 위의 현재 위치에서 바로 다음이 어디일지를 고민할 때, 외계인은 경로 전체를 한 번에 본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아직 가보지 못한 가능성이라면, 외계인에게 미래는 한 번에 전체가 보이는 경로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처럼 적분의 꼴로 물리현상을 기술하는 방식은 하나같이 일종의 목적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뉴턴의 고전역학의 테두리 안에서도 목적론적으로 물체의 운동을 설명 하기도 한다. 손에서 놓은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매 순 간 돌에 작용하는 중력에 의해 조금씩 돌멩이가 아래로 힘을 받 아 움직인다고 설명하는 것이 인과율의 형태를 취한 미분의 방 법이라면, 돌멩이가 가진 중력에 의한 퍼텐셜 에너지(혹은 위치 에너지' 라고도 함)가 작은 값을 갖기 위해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 진다고 설명하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적분 꼴의 목적론을 닮았다. 힘으로 설명하나 에너지로 설명하나 돌멩이가 아래로 움직인다는 사실, 그리고 운동의 경로는 정확히 동일하다. 물리학 교과서는 보통 여기서 멈춘다. 대개의 물리학자가 멈춘 곳에서도 테드 창의 소설이 묻는 질문은 이어진다. 과거에서 미래를 한 번에 관통하는 딱 하나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어떤 목적 함수 를 갖느냐고, 미래를 과거처럼 기억해 미래에 닥칠 끔찍한 고통을 이미 알고 있어도 당신은 그 피할 수 없는 외길을 따라 걷겠냐고, 소설의 주인공이 어떤 답을 하는지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당신이 외계인이라면 이미 답을 알겠지만
- 20세기 후반, 고전역학이 이야기하는 필연은, 같은 고전역학체계 안에서 내부의 도전을 받는다. 바로 카오스(혼돈)의 발견이다. 광화문 앞에 나란히 놓인 두 탁구공이 있다. 바람이 불어 날아가, 일주일 뒤, 하나는 부산, 하나는 여수에서 발견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카오스다. 물론 광화문 앞에서 두 탁구공을 '정확히 같은 위치에 놓으면 일주일 뒤 같은 장소로 날아간다. 당연하다. 그런데 정확히'가 얼마나 정확히 일까? 광화문 앞 탁구공의 위치를 소수점 아래 10자리로 아주 정밀하게 측정해도, 소수점 아래 11번째 자리가 1이냐 2냐에 따라, 탁구공은 일주일 뒤 전혀 다른 곳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처음 상태의 아주 작은 차이가 증폭되어 미래에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 카오스이론의 한 줄 요약이다. 그렇다면 결정되어 있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은 다른 얘기다.
- “입자의 위치와 속도가 주어지면 미래가 하나로 결정되어 있다” 라는 19세기 물리학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양자역학은 위치와 속도를 함께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카오스는 위치와 속도를 아무리 정확히 측정해 알아내도 결국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줬다. 많은 이가 물리학에서는 모든 것이 필연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다르다. 물리 학에도 우연은 도처에 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내일 점심 메뉴를 난 아직 정하지 않았다. 내 맘이다. 물리학에서나 삶에서나, 우연은 어디에나 있다.
- 물리학자 파인먼이 제안한, 따라 하기만 하면 어떤 문제라도 풀지 못할 것이 없는, 기발한 문제 해결법이 있다. 바로, 딱 세 단계로 이루어진 파인먼 알고리듬이다. 1)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종이에 쓴다. 2)골똘히 생각한다. 3)답을 쓴다. 이 방법이 실없는 우스갯소리로만 들린다면 한번 직접 적용해보라. 늘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놀랍도록 성공적인 방법이다. 흥미롭게 도, 파인먼 알고리듬은 '씀'에서 시작해 '씀'으로 끝난다. 세 번째 단계의 '씀'이 읽는 이를 향한다면, 첫 단계의 '씀'은 쓴 이를 향 한다. 쓴 이가 깨친 '앎'을 읽는 이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세 번째 단계의 '씀'이라면, 첫 단계의 '씀'의 역할은 쓴 이 스스로의 깨우침이다. 막상 문제를 구체적인 질문의 형태로 종이 위에 적다 보면, 사실은 문제 자체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자기 성찰을 할 때가 많다. 도대체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조차도, 문제를 적다 보면 명확해진다. 문제를 쓴다고 자동으로 답을 알게 되는 것은 물론 아 니지만, 쓰다 보면 적어도 내 앎의 부족은 알게 된다. 내가 과연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고 싶다면 직접 써보면 될 일이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참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이라는 『논어』의 구절도 마찬가지 이야기다. 공자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려면 질문을 써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면 우리는 아무것도 더 배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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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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