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배신

과학 2019. 6. 21. 12:28

- 인류 생존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네가지 형질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 식욕과 열량 축적의 본능
- 초기 인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배불리 먹는 것으로 굶주림에 대비. 오늘날 니국인의 35%가 비만이며 그와 동시에 당뇨병, 심장질환, 심지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몸에 필요한 것보다 더 먹는 이 타고난 성향 때문.
(2) 물과 소금에 대한 욕구
- 우리 조상들은 치명적 탈수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특히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 탈수 위험이 커지므로 몸은 물과 소금을 보존하고, 이 두가지를 항상 더 원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음. 이제 대다수 미국인이 필요한 양보다 많은 소금을 소비하고 있으며, 이처럼 과도하게 섭취한 소금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물과 소금 보존 호르몬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심장질환, 뇌졸중, 신장질환의 위험을 눈에 띄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
(3) 싸울 때, 도망칠 때, 복종할 때를 판단하는 본능
- 선사시대에는 많게는 사망자의 25%가 폭력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따라서 늘 살해당할 가능성을 염려하며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안전해지면서 폭력사태는 줄어듬. 현대 미국에서는 살인이나 동물의 공격보다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훨씬 흔함. 왜일까? 지나치게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우리의 오래된 성향이 불안증, 우울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자살까지 불러일으키기 때문
(4) 출혈로 죽지 않도록 피를 응고시키는 능력
- 외상과 출산으로 인한 출혈의 위험도가 높았던 초기 인류는 피를 재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응고시킬 필요가 있었음. 현대에는 반창고에서 수혈에 이르기까지 각종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을 확률보다 오히려 혈액응고로 사망할 확률이 더 커짐. 대부분의 심장마비와 뇌졸중은 심장과 뇌의 동맥을 따라 흐르는 피를 혈전이 막아서 생기는 증상임. 거기에 더해 옛 조상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긴 자동차 여행과 비행기 여행 또한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혈전을 만들어냄.
-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왜 피부색이 옅어졌을까? 두가지 조건이 변했다.
첫째, 아프리카에서 나와 더 추운 지역으로 이주한 우리 조상들은 옷을 더 입어야 했고, 따라서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면적이 극적으로 줄어 간에서 만들어진 비타민 D 전구체를 활성화하는 데 문제가 생김.
둘째, 1만년 전쯤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조상들의 식사에서 탄수화물 비율이 높아지고 비타민 D 섭취가 줄어들어, 이미 노출수준이 훨씬 줄어든 햇빛에 비타민 D 제조를 더 많이 의존하게 됨. 그들은 이 사태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무작위로 일어난 돌연변이 중 피부에서 만들어지는 멜라닌의 양을 줄여 피부색이 더 옅어지게 하는 유전자가 급격히 확산. 이 돌연변이 유전자 덕에 같은 양의 햇빛에 노출되어도 더 많은 자외선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로써 간에서 만들어진 비타민 D 전구체를 더 활성화할 수 있게 되었음.
- 햇빛에 많이 노출되는 환경에서 짙은 색의 피부가 왜 유리한지는 인체에 엽산이 필요하다는 사실로 가장 잘 설명됨. 엽산은 신체발달과 건강에 핵심적인 비타민 B군 영양소다. 태아기에 엽산이 결핍되면 심각한 신경이상이 생길 수 있음. 그래서 미국에서는 임산부에게 엽산 보충제를 처방하고,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빵에 엽산을 첨가함.
- 피부를 통해 흡수된 자외선은 엽산을 활성상태에서 비활성 상태로 만들어 기능성 엽산 결핍증을 일으킴. 햇빛에 많이 노출되는 환경에서는 짙은 피부색이 활성엽산을 보호하고, 자손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 더 유리함. 비타민 D를 활성화해야 할 필요와 엽산을 비활성화하지 말아야 하는 필요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햇빛 노출 시간이 많고 노출 정도가 강한 지역 사람들은 짙은 피부색, 자외선 노출 시간이 전반적으로 낮은 지역 사람들은 옅은 피부색을 가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놀랍게도 (자연선태 과정을 고려한다면 놀랍지 않게도) 이것이 바로 현실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간혹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의 평균적 피부 색소량과 피부가 햇빛에 그을리는 정도는 자외선에 자연스레 노출되는 양과 비례관계에 있고, 그 집단이 사는 지역이 적도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와 대체로 비례 관계에 있다. 같은 위도라면 북반구보다 남반구 쪽이 더 짙다. 남반구에서 감지되는 자외선 양이 같은 위도의 북반구에서보다 더 많기 때문
-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에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로 이주하면서 피부색이 옅어졌지만, 이 과정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았다. 피부색은 다시 짙어지기도 했다. 피부색이 옅은 인도 북부 사람들이 인도반도 남부쪽으로 이주하면서 다시 짙어진 것이 좋은 예다. 이누이트는 이 규칙에서 예외적인 경우. 그러나 나는 이 예외야 말로 오히려 일반적 법칙을 반증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누이트는 피부색이 짙어서 비타민 D 가설에 모순되는 듯 보임. 그러나 전통적으로 이누이트는 엄청난 양의 푸른 생선을 먹고, 거기에 간혹 동물의 간도 먹으므로 필요한 비타민 D를 얻는데 햇빛은 중요하지 않았음. 그리고 극지방에서 자외선에 많이 노출되는 것은 그다지 해롭지 않지만, 얼음에 반사된 햇빛에도 노출된다는 사실은 약간 짙은 피부색이 자연선택되도록 하기에 충분한 자극이었던 듯하다.
- 일조량이 많은 곳에서는 짙은 색 피부가, 일조량이 적고 온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옅은 색 피부가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에게만 적용되는 현상이 아님. 위도가 피부색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은 네안데르탈인에게서도 관찰됨. 유럽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연구로 그들 또한 더 옅은 피부색을 지녔음이 밝혀졌음. 특히 어두운 동굴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종에게 옅은 피부색은 확실히 유익한 돌연변이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유럽지역 네안데르탈인의 피부색을 옅게 만든 돌연변이 유전자는 현대 유럽인의 피부색을 옅게 만든 어떤 돌연변이와도 다름. 그리고 유럽 남부지역의 동굴에서 살던 네안데르탈인은 피부색이 옅었지만, 중동지역처럼 해가 많이 나는 곳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은 피부색이 짙었다. 색소는 피부에만 영향을 끼칠지 모르지만, 그런 색소의 변화를 촉발한 돌연변이는 인간의 생존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후 19만년, 즉 9500세대 동안 모든 인간 성인은 유당 분해효소 결핍증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를 가축으로 길들이고 이어서 염소, 낙타 등을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변화. 이집트에서 가축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9000년 전이고, 중동에서는 약 4500년전부터임. 그리고 이렇게 동물을 가축으로 기르면서부터 고기뿐 아니라 젖도 인간의 영양 공급원으로 사용할 기회가 생겼다. 따라서 약 7000년 전, 그러니까 소를 처음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한 지 약 2000년 이내에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바로 락타아제를 활성화하는 유전자의 염기상 하나에서 무작위 변화가 일어난 것. 이 돌연변이 하나만으로 락타아제 유전자를 영구히 활성상태로 남아 있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지난 몇 천 년 동안 생우유에 든 유당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유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생존에서 4-10% 정도 더 유리. 우유가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음식'이 아닐 수도 있고, 유아기 이후 '우유를 먹을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들 중 매우 건강한 이들도 많다. 하지만 우유와 유제품이 뼈의 성장과 키에 유익하다는 것, 특히 다른 음식이 풍부하지 않을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상당한 자료가 있다. 소젖은 우리에게 필요한 물, 소금, 칼슘을 공급하므로 위에서 언급한 혜택은 납득할 만하다. 우유는 또 효율적으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수단. 1 에이커에서 생산되는 풀을 먹였을 때 소의 젖은 고기의 5배, 치즈의 2배에 해당하는 열량을 공급할 수 있음. 유당 소화력으로 생존에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 새로운 돌연변이 인간은 가축과 함께 이주하며 많은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들을 쫓아내고 정착. 현대에는 북유럽인의 95%, 중유럽과 미국인의 70-85%,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의 80% 이상, 그리고 북부인도 지역주민의 70%가 평생 락타아제가 활동하는 체질을 갖고 있음. 이에 반해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에서 가축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은 10-20% 만이 유당 소화력을 지니고 있으며, 동아시아와 동남아에서는 극히 드물고, 전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30-40%를 넘지 않음
-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추측은 평균 잡아 수렵, 채집인의 식사 중 약 20-35%가 지방이고, 그 대부분은 견과류와 풀을 먹고 자란 근육질의 사냥감에서 얻은 불포화 지방이라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료를 과다하게 먹여 기르는 가축에서 얻는 포화지방과는 다름. 따라서 우리 조상들의 콜레스테롤 수치는 현존하는 수렵, 채집 사회의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낮았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동물 단백질에 크게 의존하는 유명한 현대의 앳킨스 다이어트는, 마블링이 들어간 스테이크나 베이컨 대신 사냥으로 잡은 야생동물의 고기나 바다표범 지장을 먹지 않는 한 조상들이 섭취했던 불포화 지방보다 훨씬 바람직하지 못한 포화지방을 섭취하기 십상이다.
- 시상하부는 들어오는 데이터를 끊임없이 해석해 음식이 더 필요한지 판단하고 그에 따라 어떨 때는 더 먹도로 권장하고, 어떨 때는 그만 먹도로 지시. 이 복잡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의사소통을 하는 일에 우리 몸이 타고난 분자와 호르몬 중 적어도 20개가 관여함. 어떤 신호는 소화기관에서 들어온다. 예를 들어 그렐린은 먹으라는 지시를 내리는 유일한 장 속 호르몬이다. 무슨 이유든 이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면 우리는 계속 허기를 느끼고 따라서 계속 먹음. 하지만 음식을 먹으면 위, 소장, 대장, 췌장, 쓸개 등에서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해 음식에 대한 수요가 충족되었다는 신호를 뇌로 보냄. 위가 팽창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었다는 메시지가 뇌로 간다. 신호는 지방조직에서도 들어옴. 지방은 렙틴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해서 음식을 덜 먹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냄. 렙틴 수치가 낮으면 몸은 음식을 더 먹고 열량은 덜 소비하라는 자극을 받음. 렙틴이 부족한 사람은 계속 허기를 느낌. 그래서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비만 환자 중 상당한 체중증가를 보이다가 렙틴을 처방하면 정상을 찾는 경우가 있음. 렙틴 수치는 정상이지만 뇌에서 렙틴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는데, 그런 환자는 비만도가 아주 높고 렙틴을 처방해도 뇌에서 감지를 못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음
- 배가 고프다는 것은 시상하부가 알려주고, 배가 부르다는 것은 장에서 보내는 피드백이 알려줌.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음식을 먹도록 만드는 것은 시상하부도 장도 아님. 그 일을 하는 것은 바로 미각이다. 그리고 이 미각은 혀에 있는 세포기관인 미뢰에서 시작됨. 우리 혀 표면에는 수천 개의 미뢰가 자리잡고 있음. 혀 뒤쪽 골진 곳, 혀 양쪽 가장자리, 그리고 입천장까지 모두 이 미뢰가 깔려 있다. 미뢰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을 감지하기 때문에, 혀끝으로만 뭔가를 핥는 것은 제대로 된 맛을 다 느끼기에 적당한 방법이 아님. 포도주 감정가들이 포도주 한 모금을 입 전체에 굴려 혀와 입천장 모두 닿도록 하는 것은 그저 잘난 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거 있는 행동임. 각각의 미뢰는 50-150개의 미각세포를 갖고 있고, 이 세포들은 다섯 종류의 맛 중 하나를 감지. 어떤 사람들은 기름진 맛을 느끼는 것이 여섯 번째 미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경우에도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맛인 듯 하다.
- 각 미뢰에 있는 미각센서들 하나하나는 감지하도록 되어 있는 물질을 감지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뇌에 신호를 보냄. 그리고 놀랍게도 어떤 유형의 맛에 특화된 미각 센서들 각각은 그것들이 어느 곳에 위치해 있든 상관없이 모두 뇌의 정해진 부분으로 정확히 메시지를 보낸다
- 우리가 풍미라고 생각하는 것은 맛, 향기, 질감, 그리고 다른 감각 자극의 어우러짐이다. 예를들어 우리는 냄새가 좋은 음식을 좋아함. 포도주 감정가가 맛을 보기 전에 향기를 맡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또 단맛이 지방과 합쳐졌을 때 더 좋아함. 두 가지가 어우러져 더 기분 좋은 느낌을 주기 때문. 맛과 풍미 외에 다른 요소도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지에 영향을 줌. 예컨대 우리는 쓴맛이나 신맛이 나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좋아하는 취향을 배우기도 함. 이것을 후천적 기호라고 함. 커피, 맥주, 레몬을 처음부터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결국 그 맛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음. 기호를 후천적으로 익히는 이 과정은 미뢰에서 벌어지는 생물학적 변화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듯하다.이는 사회적 신호를 통해 우리가 먹거나 마시는 어떤 음식이 맛이 주는 첫인상과 달리 몸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거나, 커피가 주는 자극 또는 알콜이 주는 느긋함을 받아들이면서 벌어짐. 그러나 쓴맛의 다채로운 변형 말고는 아직까지 우리가 왜 서로 다른 음식을 선호하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미뢰는 전 세계에 걸친 몇 가지 흥미로운 과거와 현재의 식습관을 설명해줌. 단맛을 원하는 성향은 현대인이 설탕이 들어간 음식과 음료뿐 아니라 꿀도 좋아하는 습성을 이해하는 근거를 제공. 꿀은 수렵, 채집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의 중요한 식량이었고, 지금도 탄자니아의 수렵, 채집 공동체 하드자족의 중요 열량 공급원임. 모유에 포함된 L-글루탐산은 감칠맛을 느끼는 수용체를 자극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유아들은 본능적으로 젖을 빤다. 감칠맛이 풍부한 다른 음식으로는 간장, 생선국물, 파마산 치즈, 표고버섯, 잘 익은 토마토 등이 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음식들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 미뢰와 음식에 대한 욕구 사이의 관계는 특정 음식을 더 먹고 싶어하는 현상도 설명해줌. 우리가 단백질을 좋아하는 것은 체내에서 만들 수 없는 아미노산을 먹어야 하기 때문. 그러나 단백질만 먹어서는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필요한 탄수화물을 제공해주는 설탕을 먹고 싶어함. 초콜릿이나 후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우리는 또 소금도 먹고 싶어 하는데, 특히 소금이 필요할 때 짠 음식이 더 당긴다. 임신한 여성이 피클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몸에 소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 미뢰와 다양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구 덕분에 우리 조상들은 균형잡힌 식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맛, 짠맛, 감칠맛을 원하는 욕구 말고는, 필요한 어떤 것을 특별히 함유하고 있는 특정 음식을 선택적으로 먹고 싶어 하는 욕구에 대해서는 별다른 증거가 나와 있지 않다. 단 한가지 알려진 예외로는 별난 음식이나 음식이 아닌 물질을 먹는 이식증이 있는데, 철분이 부족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진흙, 페인트, 얼음, 먼지, 모래 따위를 먹는 증상. 그러나 이 이식증조차 일관되게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진흙과 페인트에는 철분이 들어 있지만 얼음에는 안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타민C 결핍증을 앓던 18세기 영국 선원들은 괴혈병을 막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단맛, 짠맛, 감칠맛을 원하고 다양한 식사를 선호하는 본능이 우리에게 필요한 중요 영양소들을 제대로 공급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 간은 흡수한 물질을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로 바꾸는 화학처리공장. 기본적으로 장에서 흡수된 영양소는 장과 간 사이의 혈관인 간문맥을 통해 일단 간으로 모두 전달되고, 간에서는 그것들을 몸의 다른 기관들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꾸거나 저장함. 일을 제대로 하기위해 간은 우리 혈액 내에 당, 콜레스테롤을 비롯한 여러 중요 물질이 적당량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다양한 측정장치들을 갖고 있다. 그 측정장치들을 통해 들어오는 신호로 간에서 어떤 물질을 더 만들어야 할지 덜 만들어야 할지를 판단함. 예를 들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우리가 먹는 콜레스테롤의 양보다 간에서 만드는 콜레스테롤의 양에 훨씬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이 수치는 어느 정도는 포화 지방산을 얼마나 먹는지에 따라 결정되지만, 또 어느 정도는 간의 콜레스테롤 감지 측정장치가 어떤 수준을 적정하다고 받아들이도록 설정되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 수렵, 채집을 하던 유목민인 우리 조상들은 놀라울 정도로 영양상태가 좋았다. 구석기 시대 유적들을 살펴보면 남성은 평균 179센티에 67킬로, 여성은 그보다 작은 157센티에 54킬로로 추정됨. 약 1만년 전 신석기 시대에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류의 체구는 오히려 줄었다.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 남성은 165센티에 63킬로, 여성은 149센티에 44킬로밖에 되지 않았다.
- 건강한 사람이 살찌기보다 살빼기가 실제로 더 어려운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살이 빠지면서 필요한 열량도 감소. 인체는 체중의 1%가 감소할 때마다 20칼로리를 덜 소모하게 됨. 둘째, 거기에 더해 체중이 감소할 때, 얼마나 살이 쪘는지에 상관없이 입맛을 돋우는 적어도 일곱가지의 서로 다른 호르몬과 분자의 분비가 상승함. 이런 물질의 분비는 한번 높아지면 그 수준에서 몇 년 동안 지속됨. 이는 우리 조상들이 생존하는 데는 아주 유용한 형질이었지만 살을 빼려는 현대인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이것보다 열량이 덜 필요한데 더 배가 고파지면 원래 체중이 얼마냐에 상관없이 살빼기는 굉장이 어려워짐. 셋째, 체중을 유지하려는 이러한 신체 내부의 요인을 생각하면, 애초에 살이 찌지 않도록 하는 쪽이 한번 쪘다 빼는 쪽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음
- 45년 당시만 해도 고혈압의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 증상이 우리 조상들의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간 탈수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생물학적 메커니즘 때문에 벌어진다는 것을 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현대인보다 더 많은 육체활동을 해야 했으므로 우리보다 더 많은 열량이 필요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은 땀을 더 많이 흘렸다. 특히 원래 인류가 살던 아프리카라는 환경에서 활동적인 생활을 하는 데는 더 많은 양의 물과 소금이 필수적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현대인보다 안정적으로 물과 소금을 손에 넣을 기회가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미래의 부족에 대비해 물과 소금을 찾고 충분히 몸속에 저장하도록 몸이 적응해야만 했다. 그리고 물과 소금이 부족해지면 다양한 호르몬이 동원되어 탈수로 인해 혈압이 위험할 정도로 낮아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요컨대 루스벨트는 인류의 생존을 20만년 동안 보장해 온 과잉보호혀형질과 호르몬들이 작동한 결과로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 우리는 아포크린과 애크린이라는 두가지 땀샘을 갖고 있음.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있는 아포크린 땀샘은 진하고 반투명적인 톡 쏘는 냄새가 나는 땀을 모낭에서 분비. 땀을 좋아하는 박테리아가 이 부위에서 서식하므로 냄새가 난다. 그렇지만 아포크린 땀샘에서는 체온을 상당히 낮출 정도로 충분한 양의 땀을 분비하지 못함. 반면 우리는 몸 전체에서 약 200만개의 에크린 땀샌을 갖고 있다. 손바닥, 발바닥, 머리에 특히 많이 모여 있는 이 땀샘은 육체 노동자이 경우 평소 1시간에 약 0.47리터의 묽은 땀을 분비. 그러나 섭씨 35도에서 마라톤이나 축구같은 격렬한 운동을 계속할 경우 약 1.4-1.9리터 정도의 땀을 1시간 만에 흘리기도 함. 그리고 열대 지방에서 완전히 그 환경에 적응해 사는 사람은 1시간에 자그마치 약 3.3리터 정도의 땀을 분비한다. 다른 포유류는 어떨까? 대부분의 비영장류 포유류는 주둥이와 발바다 부위에 소수의 에크린 땀샘을 갖고 있다. 이 동물들이 열을 식히는 데 가장 많이 의존하는 방법은 헐떡이는 것이다. 더 빨리 숨을 쉼으로써 폐 속의 뜨거운 공기와 바깥의 시원한 공기를 더 많이 교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헐떡거리기는 열을 효율적으로 식히는 방법이 아니다. 특히 박깥 공기가 뜨거울 때는 더욱 그렇다. 바로 그래서 치타가 인간만큼 오래 뛰지 못하는 것이다. 땀을 흘리는 말이 온 몸에 거품이 이는 것은 이 때문. 말의 땀에는 라세닌이라는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어 비누처럼 거품이 인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말은 사람보다 더 빨리 체온이 올라간다.
- 혈중 나트륨 수준이 너무 높으면 체내 세포에서 물이 빠져나와 세포 탈수현상이 생기는데 이것은 독약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바닷물을 마시면 죽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다른 극단에는 혈중 나트륨 수준이 너무 낮아 의식 혼란을 느기거나 심지어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때 우리 호르몬은 가능한 한 빨리 불균형을 감지하고 그것을 정확히 바로잡는 방식으로, 몸속의 물과 나트륨 수준을 미세하게 조정해야 함
-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으면 과잉보호를 선택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 나트륨과 물의 경우 과잉 보호가 주는 유리함은 간단하다. 몸에 나트륨과 물이 부족하면 탈수현상이 일어나 몸 전체에 혈액을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최저수준 이하로 혈압이 낮아질 수 있음. 혈압이 너무 낮아지면 우리는 기절하거나 죽는다. 이에 반해 나트륨과 물이 몸에 조금 더 있으면 땀을 많이 흘리거나 설사를 하거나 한동안 물을 못 마시는 일이 있어도 혈압이 위험알 정도러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남아도는 나트륨과 물 때문에 혈압이 조금 높아져 그 상태로 몇 년 동안 지속되더라도 몸이 견뎌낼 수 있음. 따라서 몸에 물과 나트륨이 조금 남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너무 없는 것을 걱정하는 쪽으로 몸의 미세조정장치가 작동하는 것이 합당함
- 페이디피데스가 그리스의 산악지대를 달린 그날은 아마 기온이 최소 27도는 되었을 것이다. 현대 마라톤 경주와 달리 그의 여정에는 물을 비롯한 음료를 건네며 응원하는 관중도 없었다. 만일 그가 예상대로 1시간에 약 1.9리터 가까이 되는 땀을 흘렸다면 가장 큰 위험은 탈수증이었을 것이다. 탈수가 더 심해지면서 그는 땀을 계속 흘리지 못했을 것이고, 일단 땀이 멈추면 체온이 오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체온이 너무 많이 오르면 열사병 증상이 나타남. 탈수로 인한 열사병은 특히 더운 여름에는 장거리 선수들이 겪는 가장 큰 위험이다. 페이디피데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이 열사병이었음이 거의 확실.
- 적어도 자손을 낳아 기르기 전에 탈수증으로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생존형질이 필요했다. 갈증, 소금을 먹고 싶은 욕구, 그리고 물과 나트륨을 몸 안에 보존할 수 있는 신장의 능력 같은 과잉 보호기제가 작동해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형질조차 페이디피데스를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우리는 때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그때마다 일시적으로나마 혈압이 올라가지는 않음. 불안정한 혈압을 가진 사람들은 반응이 빠른 동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사람들보다 고혈압이 될 확률이 높음. 그러나 이는 그들이 만성 고혈압이 될 성향을 타고 났기 때문이지 스트레스 자체가 만성적으로 계속되는 고혈압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중 하나는 자신의 혈압이 높아진 것 자체는 아무런 증상도 불러일으키지 않음. 고혈압은 영어로 하이퍼텐션이라 부르지만 이 증상은 고도로 긴장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 평균적으로 볼 때 여유 있고 차분한 사람에 비해 초조하고 긴장을 잘하는 사람의 혈압이 만성적으로 더 높은 것은 아니다.
- 선진국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수축기 혈압이 점차 증가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정상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중 많은 수가 시간이 흐르면서 꾸준히 진행되는 동맥경화증을 앓게 되어 벌어지는 비정상이다. 동맥 경화증이 생기면 심장이 수축할 때 혈액이 잘 흐르도록 동맥확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확장기 혈압은 50세에서 59세 사이에 최고점을 찍고 그다음부터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혈관이 경화되어 탄력이 떨어지면 심장 고동이 치는 사이사이, 즉 확장기에 탄력적 저항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
- 현대인의 고혈압 중 약 95%는 본태성 고혈압으로 분류된. 이용어는 나트륨 조절장치가 잘못 맞춰져서 생긴 고혈압이라는 말을 어렵게 표현한 것. 탈수증 방지를 위해 체내 나트륨을 보존하거나 동맥을 수축하는 일을 맡은 호르몬 중 하나 이상이 과다분비되었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남. 이와 같은 호르몬 수치 증가는 해당 호르몬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고 현재까지 밝혀진 40개 이상의 유전자에 일어난 돌연변이 때문일 가능성이 있음. 오늘날 우리는 더 오래살고 필요한 양보다 만성정긍로 더 많은 양의 나트륨을 섭취하기에, 우리 조상들의 탈수증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조절장치, 그 과잉보호조절장치가 이제는 고혈압을 촉발하고 점점 더 심화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
- 고혈압 환자의 나머지 5%는 정상적 물과 소금의 균형상태를 깨는 특정 조건들에 의해 초래됨. 그중 2%는 신장 하나 또는 둘 모두에 이르는 주 동맥이 좁아지는 경우다. 신장으로 이어지는 동맥들은 죽상동맥 경화증이나 섬유근육 형성 이상이라 불리는 동맥 근육조직의 과도한 형성으로 좁아짐. 왜 이것이 문제가 될까? 신장은 심장 박출량, 즉 심장이 1분간 뿜어내는 혈액의 양을 감지해서 탈수증 같은 신체 이상 여부를 판단함. 예를 들어 신장은 심장 박출량이 줄어들면 탈수가 되었다고 감지. 그러나 유감스레 이 방법은 단순한 만큼 불완전하다. 신장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대동맥안 선택적으로 좁아지면 신장이 몸에 필요한 소금과 물의 양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심장 박출량에 대한 추산은 완전히 빗나가 버릴 수 있다. 실제 심장박출량은 정상인데 신장으로 들어가는 혈액량이 줄어들면 심장 박출량이 줄어들었다고 오판할 수 있기 때문. 그 결과 신장은 나트륨과 물을 배출하지 않고 저정하면서 몸 전체의 동맥을 수축시티는 호르몬들을 분비. 탈수증이 생겼을 때 내려야 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또 다른 1%는 신장 자체에 손상이 생겨 혈액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필요없는 나트륨과 물을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나머지 2%의 대부분은 양쪽 신장 위톡에 위치한 내분비샘인 부신에 생긴 종양 때문에 아드레날린을 비롯한 여러 물질을 과다 분비해 동맥을 수축시키거나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나트륨과 물을 보존하도록 만들어 생기는 고혈압이다. 여러가지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장치가 잘못 맞춰진 본태성 고혈압과 달리 부신에 생긴 종양은 신체의 다른 조절장치들의 관할을 전혀 받지 않음. 따라서 이렇게 생긴 고혈압은 유익한 생존형질의 뜻하지 않은 부작용으로 간주할 수 없다.
- 사구체가 고혈압으로 손상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신장에서 걸러내는 물의 양도 감소. 하루에 걸러지는 양이 약 50%, 심지어 75%까지 감소해도 우리는 별 지장 없이 살아갈 수 있음. 그러나 하루 여과량이 23리터 아래로 떨어지면 신장이 작업하는 물이 충분치 않아 독성 폐기물이 혈액에 쌓임. 신장 투석기로 이 독성물질을 혈액에서 빼주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중독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신장은 우리가 탈수증을 겪는다고 생각하고 소금을 보존하고 혈압을 높이는 호르몬들을 작동시킴. 역설적이게도 고혈압으로 손상된 신장이 혈압을 더 높이기 위해 애를 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신부전 중 4분의 1 이상이 고혈압 때문에 생긴다.
- 고혈압은 단기간에는 심장근육을 더 강하게 만들지만 세월이 흐르면 호히려 손상을 초래한다. 혈압이 장기간 높은 상태로 계속 유지되면 결국 심장근육을 소진시킴. 너무 무거운 덤벨을 오랫동안 들어 올리면 팔이 피곤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효과적인 약이 나오기전 미국에서는 고혈압이 심부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혔고, 효과적인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개도국에서는 여전히 그렇다.
- 의사즐은 처음에는 심장근육을 더 힘차게 수축하도록 하는 약을 쓰는 것이 심부전 치료에 가장 좋으리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디기탈리스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동명의 강심제는 심장 근육의 기능을 약간 향상시켜준다. 심장 근육에 작용하는 아드레날린과 몇몇 의약품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그러나 아주 제한적인 효과를 보이는 디기탈리스를 제외한 다른 약은 혜택보다 피해가 더 많다. 왜일까? 심부전의 경우 심장근육은 이미 몸에서 스스로 분비된 호르몬에 최대한으로 자극받은 상태여서 더 이상의 과도한 자극은 도움이 되지 않음. 심장근육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채찍질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양의 소금과 물을 몸속에 잡아두는 호르몬, 즉 애초에 고혈압을 만들어낸 호르몬의 악순환을 끊는 것. 졸랍게도 오늘날 우리는 고혈압 치료약으로 심부전까지 치료하고 있다.
- 조상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 방어 또는 식량, 물, 배우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명예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도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인간은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어떤 두려움은 타고나 우리의 반사적 행동 중 일부가 되고, 어떤 두려움은 경험을 통해 얻음.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어떨 때는 맞서 싸우고, 어떨 때는 위험으로부터 도피하며, 또 어떨 때는 순종적 자세를 취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상대방이 너무 심한 상처를 입히지 않기를 바란다.
-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와 조슈아 던틀리는 살인을 저지르는 능력은 구석기 시대부터 보존되고 신자오디어 온 진화의 자산이라고 부장. 역사적으로 살인자는 거의 대부분 남성이었는데, 살인을 통해 식량과 물, 그리고 원하는 여성과 그녀의 자손번식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살인은 또 사회적 위상을 유지, 신장하거나 명예를 지키는 수단인 동시에 주도권을 과시함으로써 거두는 이차적 혜택을 누리는 일을 가능케 했음.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조상들이 싸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싸워서 이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살해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의 자손이다. 간혹 우리 조상들은 다른 방법에 의존해 살아남기도 했다. 도주하고, 협상하고, 그리고 순종적 태도를 취하는 방법. 그리고 이 모든 본성은 우리 DNA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구석기 시대에 주도권을 잡았던 사람들은 온유한 자들이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온유한 자들이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온유한 자들의 자손이 이 땅을 물려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육체적 능력과 피살자가 되는 것을 피하는 데 필요한 방어기제가, 법과 법 집행기구가 존재하는 선진사회에서는 중요하지 않게 된 정도가 아니라 방해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 우리는 이제 육체적 폭력을 동원한 생사를 건 싸움이 아니라 스포츠나 비즈니스에서 경쟁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위상을 확보함. 그 결과 우리가 가진 방어기제의 많은 부분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적 도전에 대처하는 데 부적절한 것이 되어버렸다.
- 우리는 기억이 처음에는 이마 양쪽에 위치한 측두엽 깊숙한 곳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다음 기억은 뇌의 다름 곳들로 분산되어 저장되는데, 이 과정에서 측두엽의 해마는 문서 정리원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어떤 기억이 필요할 때 찾아내는 검색엔진 역할도 함. 기억을 부호화하는 뇌 부위를 인공적으로 자극해 거짓 기억을 만들어내는 일까지 가능함. 53년 헨리 몰레이슨이라는 남성의 고질적 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뇌의 해마부분을 제거하자 어떤 기억도 30초 이상 지속하지 못했다. 저장했던 기억을 꺼내 왔을 때 그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같은 사건을 조금씩 달리 기억한 사람들이 정확히 어떻게 일이 벌어졌는지를 두고 말다툼을 벌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기억을 회수할 때, 우리는 머릿속에서 그 기억을 강화하거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 후 일어난 사건들의 영향을 받아 기억을 수정하기도 함. 그러나 완벽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무섭거나 위험한 상황에 대한 기억은 잊지 못하며, 그에 따른 두려움은 우리가 미래에 그런 상황을 피하거나 처리하는 방법에 영향을 끼침
- 정신과 전문의 하임 스테판 브라카는 위험이나 돌발적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여섯가지 방법을 묘사한다. 얼어붙기, 기절하기, 도망치기, 싸우기, 순종하기, 협상하기가 그것이다. 이 방어법은 하나같이 놀라울 정도로 유용함. 예를 들어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고소공포증은 완전히 몸이 굳어버리는 마비현상을 촉발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 피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절하는 것은 피를 흘릴 때 서 있는 것보다 누운 자세가 뇌로 피를 보내기에 더 적절하기 때문. 말코 손바닥 사슴과 맞닥뜨리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전속력으로 뛰어 달아나야 한다. 퓨마를 만나면 당당하게 맞서 큰 소리를 내고 돌을 던지며 목숨을 건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반면 늑대와 맞닥뜨리면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곰을 만나면 싸우기와 순종하기 중간정도 전략을 취해야 한다. 큰 소리를 내서 곰이 놀라 도망가게 하다가 그래도 안되면 그 자리에 드러누워 죽은 척하는 것이 좋다.
- 스트레스는 뇌하수체를 자극해서 신장 가까이 위치한 부신에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을 분비하라는 메시즈를 보내게 함. 아드레날린이 대량 분비되면 맥박수와 혈압이 증가하고 정신이 더 바짝 나서 싸우거나 도망할 준비를 재빨리 갖출 수 있다. 생리작용에 따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자연적으로 분비되면, 우리는 정신이 더 기민해지고, 몸속에 소금을 보존하고, 감염에 맞서 싸울 능력이 더 강해짐. 우리 대다수는 이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분비되는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보가 거짓임을 학습하면서 두려움과 스트레스가 줄어들기 때문. 그러나 일부는 스트레스 정도가 심해지며 문제가 생기기도 함. 예를 들어 쥐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특정 소리와 전기 충격 사이의 관계를 재빨리 학습하는데, 코르티솔을 미리 투여받은 쥐들의 경우 두려워하도록 훈련받은 소리뿐 아니라 비슷한 다른 소리도 두려워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 코르티솔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뇌세포를 비롯한 몸 전체의 세포가 손상됨. 컬럼비아대 앤드루 마크스의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우리 세포 내의 칼슘 조절장치를 손상시킬 수 있음. 심장, 근육, 뇌 등을 이루는 세포의 칼슘조절 장치가 손상되면 망가진 자동차 엔진에서 기름이 새듯 세포에서 칼슘이 새어 나옴. 칼슘 조절장치는 뇌가 기본적 투쟁/도피 반응을 일으키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스트레스로 손상이 가면 학습과 기억에 문제가 생김. 칼슘누출은 우리가 잘 아는 현상의 원인을 설명해 준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우리는 생각을 명료하게 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확률이 높아짐. 그로 인해 스트레스가 더욱 쌓여 악순환에 들어간다
- 일반적인 공포증도 과거 조상들을 위협했던 위험들과 직접 관련이 있음. 고소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함. 산을 넘고 절벽을 타던 조상들이 조심해야 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함. 광장 공포증을 가진 사람은 맹수나 적으로부터 숨을 수 없는 열린 공간을 무서워했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보임
- 잠재적 위험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을 과대평가함으로써 부적응 과민반응과 부작용을 경험하듯, 우리는 실제로 직면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과민반응을 보일 수 있음. 예를 들어 해결불가능한 상황이나 이길 수 없는 도전에 부닥쳤을 경우 순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생존에 가장 유리. 그렇지만 그 결과로 나타나는 부작용인 낮은 자존감은 사회적 과잉 위축가 지나친 슬픔을 초래할 수 있음. 구석기 시대에는 슬픈 감정이 더 강한 적으로부터 살해당하는 것을 방지하는 순종적 태도의 일부를 이루는 유용한 방어기제였음.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슬픔은 육체적 대립상황과는 관련 없는 다양한 상실로 인해 촉발되는 경우가 많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슬픔은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일시적 감정임. 하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슬픔에서 심각한 슬픔에 이르기까지 슬픈 감정이 2주일 이상 계속되면 우울증으로 발전하기 시작. 현대사회에서 우울증은 인류가 타고난 심리적 생존본능이 낳은 가장 심각한 부작용이다.
- 정신과 전문의 폴 키드웰은 저서 '슬픔의 생존법: 우울증의 진화적 기초'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관점을 제시함. 그가 지적하듯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우울증에 빠지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상황이 충분히 나빠지면 누구나 적어도 어느 정도는 우울해짐. 이런 맥락에서 키드웰은 대체로 지난 수천 세대 동안 슬퍼하고 우울해지는 능력은 아마 우리가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또는 최소한 불리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 주장. 그를 비롯한 진화심리학자들은 슬픈 감정은 상실과 패배에 대한 타고난 정신적 반응이라고 강조함. 슬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슬픔은 비록 불쾌한 방법이지만,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행복 추구권을 다른 방법으로 찾아보라고 알려주는 신호 역할을 함. 슬픈 사람들은 내성적이 되고, 에너지를 아기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며, 자기 성찰적이 된다. 슬픔은 나아가던 진로를 바꾸라는 모닝콜이다. 목표는 그대로 두고 다른 전략을 찾든, 더 타당하고 성취가능한 목표로 갈아타든 간에 말이다.
- 슬픈 감정이 왜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하는 걸까? 키드웰이 강조하듯,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목표를 오랫동안 이루지 못하거나, 더 성취가능한 목표로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 진짜 우울증에 걸리면 부적응 과민반응이 나타남.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먹기를 중단하고 잠을 못자며 자신을 고립시킴. 수렵, 채집활동을 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생존능력을 떨어뜨리는 확실한 방법임. 구석기 시대에 우울감은 남에게 많이 의존해야 하는 약한 성원이 무리 전체에 부담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자체제거 메커니즘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심한 우울증은 사춘기아 노년기에 가장 흔한데, 바로 이때가 수렵, 채집생활 인생 중 획득한 것보다 더 많은 열량을 소비하는 연령대다
- 물리적이든 다른 형태로든 해를 입는 것을 피하기 위해 우울증을 가진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경쟁보다 순종을, 싸우기보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쪽을 택함. 우울한 사람은 생산성이 낮은 임무를 포기하고, 불가능하거나 위험할 가능성이 있는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하기를 멈추며, 스스로 초래한 좌절과 실패에 대처하려고 시도함. 슬픔 또는 심지어 경미한 우울증마저 일시적 증상으로 끝난다면 전환기 역할을 해서, 그 기간 동안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현실적 전략을 찾는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음. 죽임을 당하거나 무리에서 배척되기보다는 자신을 재정비하고 힘을 재충전해, 지금 당장이든 미래든 더 나은 조건에서 경쟁할 준비를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이 전환기야말로 한시적 우울반응의 진화적 혜택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상황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심사숙고해보고 미래에 성공을 거두기 위해 에너지를 보존할 기회를 주기 때문.
- 과학자들이 불안감, 두려움, 우울을 촉발하는 정확한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밝혀내려 애쓰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잘 이해된다. 불안감은 위험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고, 두려움은 위험을 피하는데 도움이 됨. 한편 이길 수 없는 적이나 해결불가능한 상황을 만나면 적어도 임시로마나 순종적 자세를 취하고, 슬퍼하고, 심지어 잠시나마 우울해지는 수단을 동원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전의 경험이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주었다면, 고통스런 그 기억은 다시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끊임없는 자극제가 되어 줄 것이다.
-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사실은 DRD4 돌연변이가 4만년 전,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의 다른 곳을 탐험하기 시작한 때 출현했가고 과학자들이 추정한다는 것. DRD4에 나타난 돌연변이는 인류 전체의 약 20%에서 발견되지만,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더 멀리 이주한 인구집단일수록 더 많이 발견됨. 인류 가운데 일부는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강하고, 일부는 조심스런 성향이 강한 것은 바람직한 조합일 수 있다. 바로 이 점때문에 과학자들은 DRD4 돌연변이의 확산이 인구 20% 선에서 균형점에 이르렀다고 추측, 세계를 통틀어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 20%와 더 조심스런 사람들 80%가 섞여 있는 것이 사회적으로 균형이 맞다는 것이다
- 흥미로운 점은 인류가 야생성을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 즉 구석기 시대에 서로 협도하는 무리로 시작해 농업공동체로 계속 발전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 지난 8만년 사이에 인류는 툭 튀어나온 눈썹 부위 뼈가 줄어들고 얼굴이 더 작아짐. 특히 남성의 얼굴이 많이 작아녀 이제는 구석기 시대 초기와 비교해 여성의 얼굴 크기와 차이가 훨씬 감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져 벌어진 현상이라는 것이 현재의 추측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 덜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남성이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죽음을 당하지 않고 다른 인간들과 공존하는 데 더 나은 조건을 가졌기 때문.
- 우울증의 기준은 매일 대부분의 시간동안 우울하거나, 대부분의 일상활동에 관심이 없어지거나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상태가 2주일 이상 지속되는 것. 이에 더해 다음 증상 중 적어도 세가지 이상이 해당되어야 함. 상당한 체중 감소 혹은 증가, 거의 매일 겪는 불면이나 지나친 수면, 다른 사람이 분명히 알아차릴 정도로 느려진 행동과 사고, 거의 매일 느끼는 피로나 무기력, 무가치감 또는 과도한 죄의식, 우유부단함 또는 집중력 상실, 자꾸 되풀이되는 죽음이나 자살생각.
- 더 안전한 문명세계 그러니까 살인자는 결국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존재하는 세계에서는 타인을 향한 폭력은 점점 더 매력이 떨어지는 행동방식이 되어간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을 향해 밖으로 표출되던 분노가 점점 더 자기 내부로 향하는 경향이 심해져 불안증과 우울증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 표출되는 공격성도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 혈액응고 신속대응 체계에는 서로 독립적이지만 깊이 연관된 두가지 경로가 있음. 하나는 혈소판에 기초한 체계다. 혈소판은 평소에는 혈액 속을 떠돌다가 혈관 안쪽 세포방어벽에 손상이 가면 노출되는 특정 수용체에 자석처럼 재빨리 가서 붙는다. 각 혈소판은 노출된 수용체와 결합하며 유인물질을 분비해 다른 혈소판들에게 동맥이나 정맥에 난 구멍을 막는 전투에 신속히 참가하도록 독려.
- 우리 피 한방울에는 보통 1500만개 가량의 혈소판이 들어 있음. 이 정도면 큰 외상을 입은 후 피를 제대로 응고시키는 데 필요한 혈소판 숫자의 네 배, 일상 생활을 하면서 혈관에 늘입는 손상으로 출혈이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필요한 숫자의 적어도 열 배는 되는 양이다. 빈혈의 가장 흔한 원인은 철분부족인데, 영양이 부족한 식생활 때문인 경우도 간혹 있지만, 보통은 만성적으로 위장관 출혈을 일으키거나 생리량이 너무 많아 식품을 통해 흡수한 철분으로 상쇄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철분을 잃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 철분 부족형 빈혈이 생기면 흔히 혈소판 수치가 정상 수준 이상으로 증가. 이 얼마나 완벽한 보상반응인가.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져 더 이상 많은 피를 잃으면 안될 때 혈소판이 자연스레 증가해 출혈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것임. 두번째 혈액응고 경로는 열가지가 넘는 혈액 응고 단백질이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켜 일종의 섬유 그물망을 만드는 메커니즘. 이 그물망은 혈관벽에 난 더 큰 상처를 때우는 동시에 혈소판들이 와서 쌓일 수 있는 기본구조물 역할을 함.
- 출산 출혈을 막아주는 세가지 장치 : 출산 과정에서 태반이 자연적으로 떨어지고 자궁동맥이 절단될 때, 왜 모든 산모가 약 0.47리터가 넘는 양이 피를 잃고 쇼크상태에 빠져 몇 분내에 죽지 않는걸까?
(1) 임신기간 동안 임산부의 적혈구 숫자는 약 25%, 그리고 액체 혈장의 양은 약 두배 증가. 이 추가혈액은 태반으로 가는 혈액을 보충할 뿐 아니라 출산 시 잃어버릴 수 있는 혈액량에 대한 보험이기도 함. 빈혈이 생기는 일 없이 태반에 영양을 잘 공급하는 이 여분의 적혈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임산부는 평소보다 더 많은 철분과 비타민을 섭취해야 하는데, 이는 자연스레 입맛이 당겨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요즘은 임산부에게 철분이 보강된 종합 비타민제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음
(2) 임신후기에 들어서면 임산부의 간에서 혈액을 응고시키는 단백질이 더 많이 만들어져서 태반이 떨어져 나갈 때 심한 출혈을 할 가능성을 낮춤. 이렇게 응고 단백질이 추가로 만들어지는 데는 위험도 따름. 임신하지 않은 여성에 비해 불필요한 혈전이 만들어질 상대적 위험도가 약 10배 증가하기 때문. 특히 몸을 많이 움직이지 못하는 출산 직후가 위험함. 이 응고단백질가 혈전의 위험성은 출산 후 4-6주까지 감소하지 않고 유지됨. 출산 직후(0.1%)와 출산 전 9개월 동안(0.2%) 불필요하게 혈액이 응고해 사망에 이를 위험(0.3%)은 90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러 곳에서 기록된 출산 후 출혈로 인한 사망위험과 맞먹음. 이 통계수치는 선사시대 임산부들이 혈액응고와 출혈의 위험을 제어하는 데서 매우 균형이 잘 잡힌 체계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줌. 특히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의료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이 균형은 더욱 중요함.
(3) 태아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자궁을 수축하게 만들었던 호르몬들은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자궁을 수축하고 혈관을 조이는 작업을 계속함. 물론 이렇게 더 작고 수축된 혈관 안에 혈전이 생기기가 훨씬 쉽다.
- 역사적으로 볼 때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한 쪽에 약간 더 무게를 두는 우리 몸의 특성은 늘 우리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사실 잠재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혈색소증이나 혈액응고 5인자 라이덴 같은 돌연변이가 확산된 것도 출혈을 피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보여주는 반증임. 이 두 돌연변이가 확산된 것과는 반대로, 혈액응고 방지 유전자 돌연변이는 그런 규모로 확산된 예가 없다.
- 피부 가까이 있어 눈에 보이는 다리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하지정맥류라 함. 하지 정맥류는 보기에 그다지 좋지 않고 살짝 불편한 것만 빼고는 다른 부작용이 없다. 이에 비해 깊이 자리잡은 더 큰 정맥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나거나 피부 가까운 정맥에서 만들어진 것이 확장되어 생긴 혈전은 크기가 훨씬 더 커지면서 상당한 불편을 끼치고 심지어 다리가 부어오르기도 함. 이런 큰 혈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점점 더 큰 정맥을 따라 움직이다가 심장 오른쪽 부분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위험해짐. 보통 이렇게 돌아들어온 혈전은 우심방과 우심실을 거쳐 폐동맥으로 별 문제없이 빠져나가곤 함. 그러나 폐동맥은 가지치기를 해서 점점 작아지므로 혈전이 그중 한 곳에 자리잡고 폐로 가는 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음. 이 심각하고 간혹 치명적 결과까지 낳곤 하는 증상은 폐색전이라고 부름
- 정맥에 생긴 혈전이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심장에서 신체 각 기관으로 피를 전달하고 훨씬 더 빠른 속도와 큰 압력으로 피가 흐르는 동맥에 생긴 혈전은 그보다 더 위험할 수 있음. 동맥에서는 완전히 정상적인 혈류가 유지될 때조차 혈액 응고체계가 활동에 들어가기도 함. 혈액의 흐름이나 응고 체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실제로 혈관에 구멍이 나고 찢어져서가 아니라, 혈관을 보호하는 한 겹 짜리 세포층에 손상이 갔을 때다. 이런 손상을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죽상 동맥 경화증이다. 이것은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지방이 동맥 안쪽 벽에 달라붙듯 축적되면서 생김. 미국인은 하루 평균 200-300밀리그램의 콜레스테롤을 음식을 통해 섭취하지만, 간에서는 그보다 세배에서 다섯배나 많은 콜레스테롤을 만들어낸다. 콜레스테롤은 우리 건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함. 100조개에 달하는 몸속 세포의 세포막 일부를 이루는 동시에 다양한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재료고, 지방과 비타민 A,D,E,K를 흡수하는 데 필요한 쓸개즙에도 들어가기 때문. 흥미롭게도 우리가 먹는 순수 콜레스테롤의 양은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음. 수렵, 채집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적어도 현대인이 섭취하는 콜레스테롤과 맞먹는 양을 섭취했을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조상들이 먹은 야생동물은 지방이 적고 그 지방도 더 건강한 고도 불포화 지방이 더 많았다는 사실. 이에 반해 현대인의 식단에는 가축의 고기에 많이 함유된 포화지방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식물성 경화유인 트랜스 지방이 잔뜩 들어 있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먹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아니라 이런 나쁜 지방들이다
- 우리가 섭취한 지방은 소장에서 흡수된. 지질이라 부르는 이 지방은 수용성이 아니므로 혈장에서 바로 녹지 않고 지질 단백질이라 부르는 수용성 물질에 실려 이동. 지질 단백질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운반용 컨테이너아 같은 물질이다. 어떤 지방은 소장에서 바로 각 신체기관으로 운반되어 즉각 연료로 사용되고, 어떤 지방은 굶주릴지도 모를 미래를 대비해 지방세포에 바로 저장됨.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은 피의 혈장에 들어 있는 지질 단백질에 실려 돌아다니며 밤낮 구별 업싱 식사시간 중에도 계속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함. 몸속을 순환하는 이 지질단백질에는 처음엔 지방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 지질 단백질은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운반함. 중성지방은 열량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콜레스테롤은 필요한 세포에 조달되거나 지질단백질의 운반용기 자체를 이루는 요소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함. 지질 단백질은 자석처럼 작동하는 특정 수용체에 의해 몸속의 다양한 부분으로 호출되고, 그렇게 지질 단백질을 불러들인 수용체는 지질 단백질이 어디에 임시로 정박한 채 열량 공급원인 중성 지방을 하역하고, 어떤 콜레스테롤을 필요한 곳에 공급할지를 지시함. 지질 단백질은 서서히 싣고 있던 짐, 즉 대부분의 중성지방과 일부 콜레스테롤을 내려 놓는다. 그러나 단백질과 콜레스테롤로 만들어진 운반 용기 자체는 하역하지 않고 갖고 있다. 그 결과 하역을 마친 지질 단백질은 저밀도 지질 단백질, 즉 LDL이 된다. LDL이 싣고 다니는 콜레스테롤은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도 부르는 데 간에서 제거되지 않는 초과분이 동맥 벽에 가서 붙는 경향이 있기 때문.
- 서구 사람들은 너무 많은 포화지방을 먹고, 그로 인해 간은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지질 단백질을 더 많이 만들어내도록 자극받음. 설상가상으로 간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콜레스테롤과 지질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음. 많은 경우 간은 위에서 언급한 물질의 생산을 우리가 원하는 시점에서 중단하지 않음. 지질 단백질을 과잉생산하는 경향은 아마 구석기 시대에는 중요한 기능이었을 것임. 그때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어쩌다가 한번씩 많은 양의 식사를 해서 흡수한 지방을 저장해 핏속에서 돌리다가 먹을 것이 충분치 않을 때 바로 쓸 수 있는 연료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질 단백질 운반 용기를 많이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이렇게 잘못 맟춰진 자동온도 조절장치 때문에 우리 뭄은 필요한 양보다 너무 많은 지질 단백질과 나쁜 콜레스테를을 만들어내고 있다.
- 우리는 포화지방을 덜 먹거나 간을 속여서 콜레스테롤과 지질 단백질을 덜 만들어도 된다고 설득하는 방법으로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음. 높아진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가장 흔히 쓰이는 약품인 스타틴은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간의 능력을 방해하는 기능이 가장 크지만, 부차적으로 LDL 콜레스테롤을 혈액에서 제거하는 특정 하역 수용체의 활동을 증가시키는 역할도 함. 더 최근에 나오는 새 약들은 장에서 콜레스테롤을 흡수하는 능력을 줄이거나 간에 있는 콜레스테롤 제거 수용체 숫자를 늘리는 작용을 함. 한편 고밀도 지질 단백질, 즉 HDL은 대부분 단백질로 되어 있고 지방은 거의 없다. HDL이 몸속 조직과 혈액에 있는 여분의 콜레스테롤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여 간으로 되돌려 보내면, 거기 모인 콜레스테롤은 쓸개즙으로 만들어지거나 나중에 필요할 때 다시 재순환됨
-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순조로운 흐름을 유지하고 필요할 때는 급속하게 혈액을 응고시키도록 미세 조정된 이 체계는 수천 년에 걸쳐 발달했음. 그 기간 동안 우리 조상들은 극도로 활동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했다. 정맥에 혈전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히 움직였고, 고동치는 동맥에 혈전이 생길 정도로 오래 살지도 못했다. 구석기 생활방식에 맞게 발달한 혈액 응고체계가 우리 조상들 모두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정말 큰 부상을 당하면 여전히 이 체계는 우리를 보호하기에 불충분함. 부상이 너무 심각해 아무리 좋은 응고체계도 역부족일 때가 있는 것이다.
- 봉합술, 수혈, 줄어든 폭력, 그리고 향상된 산과 의료기술 덕에 우리는 이제 역사상 어느 때보다 과다출혈로 죽을 위험이 가장 낮은 시대에 살고 있음. 하지만 우리는 혈액응고에 아주 능했던 사람들의 자손이므로, 그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특징은 산업화 사회에서 가장 흔한 사망원인들과 직접 연관됨. 오늘날 미국에서 혈전으로 인한 질병 (심장마비, 혈전성 뇌졸중, 폐색전)은 모든 사망원인의 25%를 차지. 이는 외상, 살인, 자살, 출혈성 뇌졸중, 궤양 등 출혈증상으로 인한 사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네배 이상 많음. 그리고 이런 불균형을 초래하는 유전하는 계속해서 후세에 전달될 것이다. 혈전으로 인한 질병이 자손을 낳기 전에 발생해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드물기 때문.
- 심장마비시 취하는 조치들. 심장마비 증상과 일치하는 증상을 느끼면 가능한 한 빨리 응급실로 가는 것이 중요. 응급실까지 차로 데려다 줄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는 필요한 처치를 해 줄 수 있는 구급차로 가는 것이 더 낫다. 응급실에서 진단을 위해 하는 가장 중요한 검사는 심전도 검사다. 이 검사는 도착 즉시, 의사나 간호사가 맥박과 혈압을 재는 중에도 바로 실시될 것이다. 심전도 검사에서 심장마비의 증거가 포착되면 몸속에 주입하는 의료용 관인 카테터 설치실로 신속히 옮겨져 관상동맥이 실제로 막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상동맥에 염료가 주입될 것이다. 관상동맥이 막혀 있으면 카테터 시술을 하고 카테터 설치실이 없다면 혈전을 없애는 약을 처방받거나 카테터 설치실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짐. 의사들이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하면, 보통 6시간 관찰대상으로 분류하고 심전도 검사와 혈액검사를 반복하면서 심장근육에 손상이 간 증거가 나오는지를 관찰한다.
- 심장마비를 겪는 모든 사람은 가슴에서 불편한 느낌이 시작되어 팔, 목, 턱으로 통증이 확산되고, 숨이 차고, 땀이 나며, 힘이 빠지고, 현기증가 구토증상을 보임. 활동이 적은 사람은 활동적인 사람보다 이런 위험신호를 느낄 확률이 적음. 협심증은 휴식 상태에서는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다가도 운동 중 심장근육에 혈액 공급이 불충분해질 때 촉발되는 증상이기 때문. 따라서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히지 않고 부분적으로 막혀 생기는 증상이 활동량이 적은 사람에게서 관찰되는 확률이 더 낮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 뇌졸중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는 위험신호 증상은 '일과성 뇌허혈 발작' 또는 '미니 뇌졸중'이라 부름. 주로 말하기 또는 신체 일부분을 움직이는 능력 등 특정 기능을 일시적으로 잃지만 환자는 겉으로는 다시 완전히 회복된 것 같은 모습을 보임. 본격적인 뇌졸중을 겪고 나면 이런 기능상실이 하루 이상 또는 영원히 지속됨. 현대 의료기술 덕에 이제는 막힌 뇌동맥을 다시 열고 뇌속 출혈 핏줄을 수선할 수 있으므로, 뇌졸중이 의심되는 환자는 심장마비가 의심되는 환자가 따라야 하는 응급조치를 동일하게 밟는 것이 좋음. 뇌로 통하는 동맥이 혈전으로 막혀 뇌졸중을 일으켰을 때, 의사가 혈전 너머에 있는 조직이 죽지 않도록 재빨리 혈액의 흐름을 복구할 수 있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음.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의사들은 가능한 한 증상이 처음 나타난지 90분 이내에 혈전을 녹이는 약을 투여함. 혈액 공급이 완전히 끊긴 상태가 단 5분이라도 지속된 뇌세포는 어떤 치료로든 복구할 수 없음. 그러나 부족하나마 약간의 혈액 공급이라도 받은 주변 조직은 잠시 버틸 수 있으며 서너 시간 안에 충분한 혈액공급이 재개되면 구할 수 있다.
- 심장마비와 뇌줄중의 세가지 중요한 차이. 심장마비와 뇌졸중은 유사점이 있지만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1) 발병원인 :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 큰 경동맥에 생긴 플라크가 균열하면서 혈관이 완전히 막혀 뇌졸중이 촉발될 확률은 거의 없다. 이 경동맥은 심장의 관상동맥보다 훨씬 더 넓기 때문. 뇌줄중은 그런 원인보다는 플라크가 균열된 곳에서 떨어져 나온 혈전이나 플라크 조각이 혈액을 따라 돌아다니다가 뇌의 더 작은 동맥을 막으면서 생기는 경우가 더 많음. 뇌줄중 또는 미니 뇌졸중 증세를 보인 환자는 경동맥이 좁항진 것이 관찰된 환자가 뇌졸중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는 데는 항혈소판제 또는 혈액응고단백질을 억제하는 약이 유용. 또 뇌졸중을 겪을 위험이 높은 환자는 혈압을 정상화하는 약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스타틴을 복용해야 함. 이와 더불어 일과성 뇌허혈 발작 같은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심각한 경동맥 부분 막힘을 보이는 환자는 동맥 내막 절제술로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음. 이것은 외과의사가 글자 그대로 죽상 동맥경화증을 일으키고 있는 플라크를 동맥 내벽에서 긁어내는 치료법이다.
(2) 응급처치법 : 심장마비의 경우 혈전 제거제가 아무리 강력한 효과를 자랑해도 단순히 약에 의존하기보다 혈관성형술을 실시. 급성 뇌졸중의 경우 카테터 삽입시술보다 혈전제거 약물 투여를 실시
(3) 동맥이 막혀 생긴 손상을 심장과 뇌가 상쇄하는 정도의 차이. 우리 심장은 상당한 여력을 지닌 기관으로, 심장근육의 20-30%가 죽는다 해도 목숨을 잃지 않을 정도로 박동을 계속할 수 있음. 그러나 특정 영역마다 고유 기능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뇌는 한 군데가 기능을 상실하면 다른 영역에서 그 기능을 상쇄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 몸 오른편을 움직이는 뇌 영역이 죽으면 그쪽이 마비된다. 아무리 공격적인 재활치료를 해도 잃어버린 기능의 일부밖에 복구할 수 없다.
- 과잉보호형질이 사라지기 힘든 이유. 과잉보호 형질 중 고혈압과 혈액응고 두가지는, 현대 나와 있는 의술의 도움을 받으면 그 부작용이 성장, 발달, 생식에 거의 악영향을 끼치지 못하므로 남녀 모두 자손 증식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임. 그렇다면 우울과 불안은 어떨까? 불안과 우울증을 겪는 사람, 특히 그 정도가 심한 사람은 배우자를 찾고 자손증식을 할 확률이 떨어짐. 하지만 슬픔과 우울증에 잠기는 증상은 우리가 아는 한 인류와 항상 공존해 왔음. 우울증은 적어도 일정기간 동안은 비현실적인 야망을 포기하고 소속 집단 내의 자기위치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익한 적응력임. 그리고 불안 역시 우리가 가진 조기경보체제의 일부여서 사라질 확률은 거의 없다. 비만과 당뇨병은 사정이 다를까? 당뇨병은 30-60%까지 유산 위험을 증가시킴. 따라서 정상적 혈당수치를 가진 여성은 생식 성공률에서 45% 정도 우위를 점함. 당뇨병이 없는 여성이 자식을 더 많이 낳고 그 자식들이 당뇨병을 가질 확률이 더 낮다면 당뇨병을 갖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점점 늘어날 것임. 그러나 유익한 돌연변이의 확산을 계산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비율로 생식한다고 가정함. 선진국에 사는 대부분의 여성은 예전보다 더 늦게 결혼하고, 가임여부를 스스로 조정하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자녀의 숫자가 일정 수 이상을 넘어가는 것을 방지. 가족계획에 관한 작은 선택의 차이가 생존에 상당히 유익하거나 불리한 유전형질이 자연선택에 미치는 효과를 축소시킬 수 있다.
- 이제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질 때 후성유전학적 꼬리표가 모두 지워지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다. 장기의 발달에 영향을 주지 않는 꼬리표는 태아에게 전달이 됨. 이 꼬리표는 거의 모든 경우 정자와 난자가 만나 분화 전능성 세포를 형성한지 2주 정도 지나면 없어짐. 그렇지만 아주 극소량의 끈질긴 꼬리표만 남아 있더라도 적어도 한 세대 한에 수백 개, 심지어 수천 개의 꼬리표를 물려받는다는 의미가 됨. 이렇게 가끔 끈질긴 후성유전학적 꼬리표가 남기 때문에 아이를 임신하기 전 부모 중 한쪽 또는 양쪽 모두가 한 경험이 아이의 행동에 반영되어 나타나기도 함. 예를 들어 아버지가 비만이면 정자의 꼬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동물 실험결과 그런 꼬리표가 그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자식의 설탕 대사 작용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후성유전학적 꼬리표를 물려받는다는 증거는 식물의 경우 8세대까지, 초팔, 지렁이, 쥐의 경우 최소한 2세대까지 발견됨. 그러나 인간의 경우 후성유전학적 꼬리표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지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음. 하지만 역학 데이터에 따르면 비만과 당뇨병 성향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할아버지에게서 손자로, 할머니에게서 손녀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혀짐. 이는 성별가 관련된 후성유전학적 꼬리표 전달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암시는 되지만 증거는 아니다.
- 목표성취에서 완벽하게 하려는 것은 잘하려는 것의 적일 수 있음. 통계에 따르면 완벽주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음. 완벽주의자들은 완벽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아예 포기해 버리기도 하는 반면, 보통 사람들은 계획이나 전략을 바꾸는 융통성을 부려서 가능한 한 가장 목표에 가깝게 도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기 때문.
- 우리는 왜 실패를 밥 먹듯이 하는 걸까? 첫째, 많은 사람들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목표를 세운 시점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는 시점 사이가 길면 길수록 목표지점에 도달확율이 낮아짐.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는 진전을 보이다가도 익숙한 상황과 오랜 친구들이 이전의 나쁜 행동들을 편안해 보이도록 하면 옆길로 새 버리는 경우도 있음. 습관적 행동은 상황에 의해 촉발되는 경우가 많음. 예를 들면 다른 사람들이 과식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과식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특정한 행동을 촉발하는 상황이나 습관적, 무의식적 반응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변화하겠다는 의도를 갖더라도 실제로 행동이 변화하지 않는 경우가 흔함. 또 다른 문제는 만족감이 나중에 온다는 사실. 대부분의 행동변화는 바로 기분이 좋아지거나, 바로 더 나은 외모를 갖거나 친구들에게 즉시 더 환영받는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 우리는 또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전에 어떤 목표를 성취하려 할 때도 예상보다 훨씬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렸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 다시 과소평가를 하곤 함.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리자면, 습관은 습관이기 때문에, 창문 밖으로 휙 던져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살 구슬려서 한 번에 한 계단씩 차근차근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단단한 실행 의도를 지녔다 하더라도 우리는 어쩌다 한 번씩 유혹에 넘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나중에 상쇄하면 될 단 한 번의 예외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탈선하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고 아주 잠시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탐닉을 정당화하는 우리의 의식적, 무의식적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초콜릿 맛 시식을 하기 직전에 겉으로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설문지에서 개인적 탐닉을 정당화하는 것에 관한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초콜릿을 더 먹었음. 변화하겠다는 강력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목표보다 과거의 행동이 미래의 행동에 네 배나 강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자연과 환경의 영향으로 형성된 과거의 행동, 즉 유전자와 그때까지 살면서 얻은 경험이 합쳐져 굳어진 행동방식으로 다시 돌아가곤 하는 것이다. 현실의 이런 행동패턴 때문에 체중감량, 소금 섭취량 감소, 운동량 증가, 불안과 우울증 해소 등에서 우리의 능력은 문제에 봉착한다.
- 나이든 미국인을 상대로 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2.3그램 이상 나트륨을 섭취해도 사망 위험이 약간 올라가는 데 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최근 연구에서는 하루에 3-6그램의 나트륨을 섭취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가장 높은 생존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연구 모두 2.3그램 이상 섭취하면 안된다는 이전의 과학적 정보와 상충. 그러나 소금 섭취량이 늘면 그에 상응해 혈압도 오른다는 사실은 모든 연구의 공통 결론. 따라서 만일 하루 나트륨 섭취량을 3-6그램으로 유지하는 것이 탈수와 탈수 관련 문제를 방지하는 최고 적정선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고혈압에 걸릴 것이다. 이렇게 높은 소금 섭취량이 건강을 위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혈압을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함. 요컨대 우리 중 일부는 소금을 더 먹어도 주로 고혈압과 같은 별다른 부작용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 즉 미국인의 경우 30%는 소금 섭취량을 줄이고 고혈압약을 먹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임. 약간 더 조심하는 것이 미래의 심각한 병에 걸릴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완충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당뇨병에 걸리거나 혈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높거나 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
- 행복은 자율성, 자기역량에 대한 자신감, 타인과의 유대감과 관련이 있는 웰빙과 흔히 동일시됨. 사람들은 더 건강하고, 교육정도가 더 높고, 기혼이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좋아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즐기는 여가활동에 참여하고, 더 종교적이고, 더 많은 친구를 갖고 있을수록 일반적으로 더 행복함. 단순히 말하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그것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평가를 받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줄 때 더 행복하거나, 적어도 덜 불행함. 남성과 여성의 행복도는 별 차이가 없으며, 연령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지지 않음. 돈 역시 도움이 된다. 행복은 부유할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수입이 높아짐에 따라 행복의 증가량은 점점 작아짐. 행복은 절대적 수입보다 우리가 속한 사회적 비교집단 사이에서 느끼는 상대적 수입수준과 연관성이 더 높음. 절대적 부의 양보다 주변 사람에게 뒤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 당연히 행복한 사람들은 유전자와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더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
- 인지행동치료: 불안과 우울완화에 가장 뛰어난 접근법.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각한 불안과 우울한 생각에 대처하는 데 가장 성공적이고 널리 사용되는 접근법은 인지행동치료다. 이는 부적응적인 사고 또는 거기에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면 우리의 기분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접근법. 인지행동치료는 시각화 연습, 자기동기부여, 기분전환 기법, 긴장완화 기술, 명상, 또는 부정적 생각 줄이기와 긍정적 피드백 늘리기, 그리고 목표 정하기로 문제에 대처하는 법 등을 배움으로써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인지행동치료는 30% 가량 증상을 완화하고 50% 가량 재발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 치료법을 통해 공황 증상과 대인기피증, 그리고 일반적인 불안감을 줄일 수 있는데 효과가 우울증 환자들에게서보다 더 크게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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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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