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양자공부

과학 2019. 1. 14. 07:28

- 양자역학의 정통이론인 코펜하겐 해석은 측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선 우주를 둘로 나눈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거시세계는 뉴턴이 만든 고전역학이 지배. 하나의 입자가 하나의 구멍을 지하는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다. 미시세계는 양자역학의 지배하는 세계다. 여기서는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가지며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2개, 아니 수십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기도 함. 이와 같이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갖는 상태를 중첩상태라 함. 측정은 거시세계의 실험장치가 수행. 측정을 하면 미시 세계의 중첩상태는 깨어지고 거시세계의 한 상태로 귀결됨. 이 해석은 보어가 이끄는 물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내놓은 것. 당시 보어가 살았던 덴마크 수도 이름을 따서 코펜하겐 해석이라 함. 이 해석에는 두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측정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정체가 분명치 않다는 것. 측정을 하면 상태에 변화가 일어남. 하지만 그 물리적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측정을 하지 않았어도 전자가 입자라면 분명 하나의 구멍을 지나지 않았을까? 이 문제에 대해 코펜하겐 해석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측정을 안했다면 어디로 지났는지 절대 알 수 없다. 하나의 구멍으로 지났는데,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님. 원리적으로, 절대로, 구글 신도, 아이언맨도, 스티븐 호킹도 알 수 없다. 다시 정리하면, 측정 전에는 중첩 상태에 있지만, 측정을 하면 하나의 분명한 실재 상황으로 귀결된다.
- 빛은 이중슬릿 실험에서 파동으로 행동하고 흑체 복사나 광전효과에서 입자로 행동.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우리는 왜 파동과 입자가 다르다는 우리의 직관이 옳다고 생각할까?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경험뿐이다. 과학의 역사가 우리에게 일관된게 들려주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으니, 바로 경험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우주는 팽창하며, 생명은 진화한다. 빛의 이중성은 경험과 직관의 빈약한 근거를 다시 보여준다.
- 전자가 하나의 정상상태에서 다른 정상상태로 이동할 때 단 하나의 진동수를 갖는 빛만 흡수되거나 방출된다. 이 진동수는 정학히 두 정상상태의 에너지차로 주어짐. 전자가 중간 단계를 거쳐 이동했다면 처음과 중간 단계 사이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진동수의 빛을 내야 함. 하지만 다른 진동수의 빛은 전혀 관측되지 않는다. 즉 중간 단계 없이 전자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불연속적으로 이동했다는 의미. 이것이 보어의 생각이었다. 보어는 기본적으로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보어는 철저히 실험결과에만 의존해서 최선의 현상론적 이론을 만든 것이다. 보어 이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할 수 있으리라. 전자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중간공간을 거치지 않고 이동하다니! 양자 도약이 준 충격은 오늘날까지 언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여기서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의 직관이다. 화성궤도를 돌던 우주선이 갑자기 사라져서 지구궤도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나? 이게 가능하다면 화성에 조난당한 나사 우주인을 다룬 마션의 주인공은 헛고생을 한 셈이다. 단번에 이동하면 되니까.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음. 하지만 보어에 따르면 원자 세계에서는 가능. 우리는 원자 세계에서 일어나는 양자 도약을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우리는 왜 태양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원자도 설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걸까? 우리가 원자와 전자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이런 문제는 없을 것임.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이런 경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적용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맞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 인간의 경험이나 상식이 우주의 실제 모습과 차이를 보인 사례는 과학의 역사에서 허다함. 양자역학이 특별한 것은 그 차이의 크기가 아니라 성격에 있다. 지구가 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지구의 자리에 태양을 놓으면 되는 것이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었던 것도 무척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도 원 대신 타원을 놓으면 된다. 달이 지구로 낙하하고 있으나 땅에 닿지 않을 분 뉴턴의 설명은 놀랍다. 이것은 우주 밖으로 나가서 지구와 달을 함께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뉴턴의 설명에 이해할 수 없는 단어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파동이면서 입자다. 하나의 정상상태에서 다른 정상상태로 전자가 도약한다. 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표현이 등장.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특수상대성 이론도 직관과 맞지 않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상황을 상상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반면 '파동이면서 입자'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입자가 파동의 모습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양자도약하는 전자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자 역학은 정말 이상하다. 하지만 문제는 원자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 과학의 역사는 인간의 상식이나 경험이 얼마나 근거 없는가를 보여준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지구상의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보잘것 없는 암석 덩어리 같은 것이며, 우주는 138억년 전 폭발하며 생겨났다. 일견 말도 안되는 것 같다는 사실이 옳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 과학이다. 과학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철썩같이 믿고 있는 상식조차 의심해야 한다. 따라서 과학의 핵심은 합리적 의심이다. 허나 의심 전문가인 과학자들조차 상식의 덫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직관 때문이다. 과학자에게 직관은 중요하다. 과학자는 직관으로 할 일을 결정하고, 결과를 예측한다. 물론 학술논문에는 엄밀한 확인과 수학적 논증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과학자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언제나 직관이다. 아인슈타인은 전자가 실제한다는 직관을 버리지 않는다. 어찌보면 이것은 철학의 영역이다. 전자는 실재하는가? 이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질문은 '실재란 무엇인가?'이다. 사실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도 논쟁을 벌였다. 과학자에게 직관은 중요하지만 그것 역시 근거없는 것이다. 직관으로부터 얻은 예상이 옳지 않다면 직관을 버려야 한다. 인공지능 알파고는 우리에게 직관이 무엇인지 하는 의문을 던져 주었다. 알파고는 바둑 프로기사들의 직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어 결국 이겼다. 컴퓨터는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었기에 인간 프로기사가 가진 직관의 덫에서 자유로웠던 것이다. 사실 직관은 믿음의 일종이다. 정확한 근거나 논리적 이유 없이 경험과 느낌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상당히 근거 있는 믿음이라 종종 유용하기는 하지만 믿음은 믿음이다. 코펜하게 해석을 둘러싼 솔베이 회의의 논쟁은 알파고와 비슷한 교훈을 준다. 물리학자조차 직관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전자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이상하다. 아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을 정도로 이상하다.
-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사실 물리학자가 신을 들먹일 때쯤 되면 다 끝난 게임이다. 물리학자라면 수학이나 실험 데이터로 공격을 해야 하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물리학자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우주가 법칙에 따라 오차나 무작위성 없이 완벽하게 작동한다고 믿은 것 같다. 27년 솔베이에서 열린 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은 학회기간 내내 보어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이것을 보다 못한 에렌페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인슈타인 박사. 자네가 부끄럽네. 마치 자네 적들이 상대성 이론에 대해 반박하는 바로 그런 식으로 새로운 양자론을 반박하고 있지 않나?"
- 불확정성 원리는 일반 대중에게 물리학자조차 불완전하다는 느낌늘 주는 듯 하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함께 과학과 수학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로 언급되기도 함.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자명하게 알고 있다고 믿는 위치나 속도 같은 물리량이 사실은 정확히 알 수 없는 대상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불가지론과 거리가 멀다. 수소 원자에 있는 전자의 정확한 위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물리량, 예를 들어 에너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 양자역학은 원자를 설명하는 이론. 원자에 대한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면 그 해가 바로 원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왜 헬륨은 반응성이 약한지, 금속조각을 가열하면 왜 불꽃이 특별한 색깔만 나타내는지, 수소, 리튬, 나트륨, 칼륨, 루비듐은 왜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지 등등. 원자들이 갖는 모든 특성은 양자역학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화학자들이 수백년 동안 노력하여 만들어낸 주기율표를 양자역학이 설명해준다. 폴 디랙은 "모든 화학은 원칙적으로 전자들과 원자핵의 성질로부터 슈뢰딩거 방정식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한바 있다. 물론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론 간단하지 않다. 화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는 이유다.
- 법칙이 있다고 해서 미래를 항상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님. 바로 카오스 때문. 올 여름 태풍이 언제 올지 알려면 나비 한마리의 움직임까지 조사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원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거이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못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비는 물론 파리, 모기,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곤충,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입자의 운동을 다 조사할 수 있다면 예측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곤충들의 운동을 조사하러 다닐 생각은 말 것. 어차피 양자역학에는 카오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올 여름 태풍이 언제 올지 알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양자 역학에는 보다 본질적인 불확실성이 있다. 오직 확률 밖에 알 수 없다. 우주의 불확실성은 고전 역학, 양자 역학 모두에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신은 자연에 법칙을 주었지만, 어쩐 일인지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할까.
- 열역학 제2법칙은 결국 확률이 높은 것이 많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확률은 엔트로피라는 양으로 정량화된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열역학이랴말로 최후까지 살아남을 물리학이라고 했다. 이것은 결코 틀릴 수 없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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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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