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무기

과학 2019. 11. 6. 08:22

- 제3차 세계대전에서 어떤 무기가 쓰일지는 몰라도, 제4차 세계대전 때는 막대기와 돌멩이를 들고 싸우게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
- 육식 포유류는 모양과 기능이 다른 이빨을 두루 가짐으로써 놀랍도록 성공적인 특화된 사냥꾼이 되었음. 그러나 이런 해법은 결코 완전한 게 아니었다. 이 같은 타협에는 근본적 한계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송곳니와 소구치, 어금니 모두가 여전히 같은 턱 안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서, 스위스 군용칼의 모든 도구를 한꺼번에 펼쳐 놓은 것과 같았다. 이는 아주 조심스레 씹어야만 제구실을 할 수 있다는 의미. 뼈는 돔 형태의 어금니 위에 놓고 씹어야 하고, 힘줄이나 고기는 소구치로 뜯고, 그때 송곳니는 열외시켜야 함. 야생의 상위 포식자들은 우리 인간의 사치스러운 활동, 곧 프랑스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즐기면서 하는 것과 같은 섬세한 저작 행위를 할 여유가 없다. 먹이를 훔치려는 라이벌 포식자와 끊임없는 강도 높은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 살아 남으려면 재빨리 먹이를 물어 뜯어 목구멍으로 욱여 넣어야 함. 현실에서 이렇게 서두르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칼날은 무뎌지고 이빨은 부러진다. 산 동물이든 멸종한 동물이든 육식 포유류를 모두 조사해 보면, 이빨이 자연스레 부러지는 빈도가 놀랍도록 높다. 네 개중 한개는 금이 갔거나, 이가 나갔거나, 완전히 부서진 상태다
- 둥지를 장만하고, 알을 낳아 품고, 부화한 새끼를 먹이고 보호하는 데는 시간이 걸림. 이런 형태의 모계 양육 때문에 새로운 번식까지의 유예 기간은 더 늘어나게 되고, 양성 사이의 투자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 자카나와 인간이 분명 그렇듯이, 수컷 새끼에게 투자를 할 수 있지만, 동물의 세계에서 그런 경우는 놀랍도록 희귀함. 대다수 동물 종의 경우, 수컷은 거의 정자 이상을 투자하지 않는다. 이는 수컷이 암컷보다 번식가능 주기가 끔찍하게 빠르다는 의미. 번식을 위한 소요시간은 동물 무기를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 암수의 소요 시간이 다를 경우, 그 결과가 항상 겨쟁으로 나타나기 때문. 임의의 동물 종 모집단으로 들어가서 바로 지금 생리적으로 번식 가능한 성별 개체수를 세어보면, 모든 수컷은 번식가능하고 그럴 의지도 있지만, 암컷은 그렇지 않다.
- 다윈이 말한 성선택은, 한쪽 성의 개체들은 다른 성에게 접근하기 위해 경쟁을 한다. 원칙적으로 성선택은 양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수컷이 경쟁하거나 암컷이 경쟁하거나 말이다. 그러나 자카나와 같은 드문 사례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거의 항상 수컷이 암컷에게 접근하기 위해 경쟁함. 암컷 자카나도 더 큰 생식세포를 만들기는 하지만, 산란 후 회복을 하는 데 3주쯤 걸림. 하지만 암컷은 거기서 투자를 멈춤. 수컷 자카나는 알과 새끼를 돌보며 세달씩 투자. 그 결과 자카나 수컷의 소요시간은 암컷보다 길다. (암컷 24일, 수컷 78일) 임의의 한 시점에서 한 모집단의 자카나 수컷 가운데 약 절반은 알이나 새끼에게 매달려 있고, 소수만 새로운 번식을 할 수 있는 반면, 암컷 대부분은 짝짓기를 하고 산란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암컷들은 영역 내에 번식 준비를 마친 수컷만 있으면 바로 산란 가능. 자카나의 경우 짝짓기를 할 수컷이 충분치 않아서, 암컷들은 번식할 기회를 얻기 위해 싸워 이겨야 함. 자카나 암컷의 날카로운 노란 며느리 발톱의 진화를 촉진한 것은 성선택인 것이다.
- 성선택은 유전형질을 극한까지 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선택 대부분의 형태와 다름. 무엇보다도 성선택은 자연선택보다 더 효과가 강하다. 소수의 수컷이 다수 암컷에의 접근을 독점할 경우, 수컷들의 번식은 불균형이 심화됨. 소수의 승리자 수컷은 수십, 혹은 수백마리의 새끼를 낳는 데 반해, 압도적 다수의 수컷은 한마리도 낳지 못한다. 성공의 대가가 충분히 크면, 무기는 크기가 증가하는 쪽으로 진화. 또한 성선택은 다른 선택보다 일관성이 있어서, 이 점 역시 유전형질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게 한다.
- 성선택의 구조는 놀랍도록 사치스러움. 그런데 선택되는 유전형질은 무기가 전부가 아님. 때로 암컷들이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수컷들의 무기는 쓸모가 없어서 싸움을 통해 암컷에게 접근할 수 없다. 그런 동물 종은 수컷들이 간접적으로 경쟁함. 춤이나 노래, 화려하게 반짝이는 장식물 따위로 구애를 함으로써 암컷들이 주의를 끄는 식이다. 퉁가라 개구리 수컷은 끊임없이 섬뜩한 울음소리를 내서 자기 위치를 알림. 이는 너무나 힘들고 위험한 행동이다. 수컷들은 몇 시간씩 계속 밤이면 밤마다 울고, 울음소리가 포식자 박쥐를 불러들여도 끝없이 운다. 개구리가 잡아먹힐 확률은 낮지 않다. 그런데 암컷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면 그 대가는 훨씬 더 크다. 그러니 수컷들은 번식 기회를 잡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다.
- 무기 경쟁의 필수 요소 중 첫째는 치열한 경쟁. 이는 일반적으로 수컷들이 암컷에게 접근하기 위해 서로 싸움을 벌이는 모습으로 나타남. 둘째는 생태환경. 자원이 국지적으로 존재해서 경제적 방어가 가능한 환경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는 싸움의 모습, 곧 수컷들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 가와 관련이 있다. 무기가 투자효과가 있으려면, 여럿이 무질서한 쟁탈전을 벌이기보다 1대1로 마주보고 싸워야 한다. 더 큰 무기가 작은 무기보다 효과가 크려면, 서로 비교가 되는 무장을 갖추고서 얼굴을 맞대고 대결하는 경쟁자가 알맞은 상대이고, 전투가 대칭을 이루어야 함
-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수컷끼리 1대1로 대결하는 종이 그러지 않는 종보다 극한무기를 진화시킬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됨. 그런데 어떤 서식지가 동물의 1대1 대결을 유도하는 걸까? 대부분 경제적 방어가 가능한 자원을 지닌 생태상황이 1대1 대결을 유조하거나 강요하는 것으로 밝혀짐. 특별한 이 상황들은 극한무기 진화의 용광로가 된다. 극한무기의 진화를 이끄는 가장 보편적 생태상황은 아마도 굴일 것이다. 굴은 국지화된 공간이며 쉽게 방어 가능. 수컷은 암컷이 거주하는 굴 입구를 지키면 된다. 그럼으로서 경쟁자들이 암컷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 가능. 그러나 굴은 또한 적들끼리의 상호작용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적의 접근을 제한하는 구실을 한다. 경쟁사 수컷 쇠똥구리가 보초를 서고 있는 수컷에게 도전하려면 먼저 굴에 진입해야 한다. 굴에서는 열 마리의 수컷이 동시에 공격을 할 수 없다. 진입로가 좁아서 한 번에 한 마리 밖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 굴이라는 제약 때문에 쇠똥구리들은 불가피하게 1대1 대결을 연속해서 벌여야 함. 이와 달리 굴리기를 하는 쇠똥구리 종은 그런 접근의 제약이 없다. 수컷들이 사방에서 동시에 도전할 수 있어서, 서너 마리의 수컷이 혼란스러운 쟁탈전을 벌이는 일이 아주 흔함. 1대1 대결을 벌이는 쇠똥구리 종은 대개 뿔이 있지만, 혼란스런 쟁탈전을 벌이는 종은 뿔이 없다.
- 동물이 어떻게 발달한 것인가는 어떻게 자원을 할당하는 가에 달려 있지만 사실 대부분 그 효과가 미미. 그러나 동물이 특정 부위에 유난히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 이 타협의 효과는 훨씬 뚜렷해짐. 무기경쟁에 들어서면 무기가 아주 빠르게 커진다. 무기 확대 쪽으로 자원이 투입되면 신체 기능이 극적으로 약화됨. 곤충의 경우 그것은 때로 신체성장의 축소를 의미. 쇠똥구리의 경우 뿔의 성장은 종에 따라 눈, 또는 날개, 촉수, 생식기, 정소 등의 성장부진으로 이어짐. 전투능력을 얻은 대가로 시력이나 비행능력, 후각, 교미 성공률이 저하되는데, 이는 무기가 과하게 비싼 셈이다. 이런 식의 타협은 극한무기를 가진 종의 다양성을 감소시킴. 예를 들어 육중한 뿔을 가진 큰 장수풍뎅이는 날개가 상대적으로 더 작다. 가장 큰 아래턱을 가진 사슴벌레도 마찬가지. 대눈파리 수컷 또한 더 큰 무기에 투자함으로써 정소의 성장이 부진해졌다. 사회적 곤충의 병사계급에서 날개의 축소는 훨씬 더 극한의 모습으로 나타남. 머리가 큰 병사 벌과 병정개미는 날개와 해당 근육이 심하게 감소해서, 대부분의 시기에 아예 날개가 없다. 전투승리의 대가로 그저 비행능력이 떨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날지 못하는 것이다.
- 성선택의 역사가 사치스런 무기진화로 이어지긴 했지만, 사실상 아주 소수의 개체만 무기의 위용을 떨칠 수 있었고, 대다수 수컷들 무기는 신통치 않다. 가장 큰 무기를 가진 수컷이 모든 의미의 승리를 거머쥔다 하더라도, 그러니까 싸움에서 이겨서 암컷을 거의 독차지 하고 자식을 낳는다 하더라도, 모든 수컷이 그런 큰 무기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하다. 그럴 여유가 없는 것이다.
- 동물도 먼저 충당해야 할 의무적인 비용이 있는데, 기초대사 기능을 위한 에너지 요구량부터 채울 필요가 있다. 심박을 유지하고, 근육을 수축하고, 소화작용을 하고, 뇌를 쓰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이 모든 핵심기능은 열량과 영양분을 소모함. 동물에게 강제청구되는 이 비용은 협상 불가. 이 의무비용을 체납하면 동물은 사망함. 오로지 잉여자원만을 전투, 곧 큰 무기 생산에 이용가능함. 다른 신체부위가 성장 한 후 뒤늦게 무기가 자라기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 뿔과 발톱, 엄니는 신체 발달 도중 작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수컷이 신체발달을 마치고 거의 성테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확실하게 의무비용을 먼저 지불한 후, 비로소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함. 그때 남아 있는 자원만이 무기제작에 쓰인다.
- 무기경쟁국면에서 억제력은 종합적이고, 직관적으로 이루어짐. 무기크기가 증가할수록 비용도 증가. 비용을 댈 수 있는 수컷은 점점 줄어들고, 빈부격차가 커짐. 무기 크기가 더욱 극한적으로 진화할수록 가진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는 더욱 벌어짐. 없는 무기는 계속 없는 상태로 유지되지만, 가장 큰 무기는 점점 더 커진다. 신호로서의 무기는 더 정직해지는 동시에 더 시각적이 되면서, 억제력의 진화를 촉진한다. 억제력은 무기경쟁에서 비롯하지만, 무기진화를 점점 빠르게 촉진하기도 함. 무기가 전투력의 신호로 기능하기 시작하는 순간, 극한 크기를 유발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동기가 발생함. 이제 가장 큰 무기를 가진 수컷은 두 가지 이유에서 개가를 올린다. 첫째로 전투에서 경쟁자를 물리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둘째로 싸우지 않고도 적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 가장 큰 무기를 가진 수컷은 이미 큰 보상을 받았는데 억제력 덕에 전투비용을 아끼는 보상까지 받게 되는 것. 물론 무기크기를 주목하는 것은 수컷만이 아니다. 많은 종의 암컷도 무기 크기를 따진다. 무기는 수컷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명백하고 믿을만한 광고다.
- 억제력의 본질(수컷들이 서로를 평가한다는 것)은 1대1 수컷경쟁의 본질을 강화하고, 무기경쟁을 유도하는 조건들 또한 강화한다. 반복가능한 연속적 평가행동은 굴이나 나뭇가지처럼 기능함. 수컷들로 하여금 1대1 대결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열린 장소에서 싸움이 벌어지더라도, 북미 순록과 영양이 종종 그렇듯, 연속적인 평가는 경쟁자들을 줄세워 항상 전투가 1대1 대결로 벌어지게 함으로써, 더 나은 무장을 한 수컷의 승리를 보장하게 됨. 무기가 커지면서 점점 더 높은 억제력을 선택하면, 억제력은 점점 더 큰 무기를 선택하게 됨. 무기경쟁과 억제력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진화를 가속화함. 그래서 극한 무기의 진화는 갈수록 빨라짐.
- 해군의 기함은 1급의 배, 곧 당시 가장 육중한 배였다. 강력한 무기인 일급 전함은 뱃전의 대포를 한 차례 일제사격하는 것마으로도 더 작은 전함 선체를 박살낼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오싹한 힘의 화신이랄가. 이런 일급 전함이 전투에 얼마나 효율적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큰 배를 단순히 항구로 몰고 들어가기만 해도, 세계 그 어떤 나라의 반란이나 항쟁도 바로 진압가능했다. 대다수 나라에 일급 전함이 없던 시절에, 영국은 수십 척이나 보유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전쟁 때는, 74문 이상의 대포를 장착한 전함을 180척 보유했음. 스페인과 네덜란드, 프랑스 해군은 잠시 한두번 영국 해군과 겨룬 적이 있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무렵까지 호각을 이룬 적은 한 번도 없었음. 영국은 홀로 바다를 지배했다. 팍스 브리타니카라 불리는 19세기 대부분의 시기에, 각 지역의 대다수 갈등은 단순히 영국 전함이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게와 북미 순록의 경우처럼, 큰 무기와 억제력은 상대적 평화의 수호자 구실을 했다. 오늘날에도 일급 무기의 비용은 여전히 막대해서, 가장 부유한 국가만이 최고의 무기를 가질 수 있다. 길이 300미터 이상에 배수량 10만톤인 미국 니미츠급 핵 추진 항모는 다수의 대공 미사일 포대와 90척의 전투기를 탑재하고 승무원은 6000명이 넘음. 이 만한 크기의 배 한척을 건조하는 데 45억불이 소요됨. 물론 전투기는 뺀 비용이다. 보잉 F-18 슈퍼 호네트 같은 현대 전투기 가격은 대당 6700만 불 정도니까, 전체 항모 비용은 105억불이 됨. 6000명의 승무원 훈련비와 급여를 더하면 비용은 더욱 치솟는다. 게다가 항모 자체는 공격에 취약해서, 홀로 다니는 법이 없다. 항모 타격단은 일반적으로 초대형 항모 1척에, 유도 미사일을 탑재한 순양함 2척, 적 잠수함과 전투기를 파괴하기 위한 구축함 2-4척, 그리고 종종 핵잠수함 1척 등으로 이루어짐. 이 항모 타격단 하나의 구입가는 200억불이 넘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타격단 하나를 유지운영하는 비용은 하루 650만불로 추산됨. 미국에는 열 개의 니미츠 항모 타격단이 있다. 다른 나라에는 이와 비슷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미국은 19세기 영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해군을 운용. 덩치가 크고, 막강하고, 엄청나게 비싼 항모는 무기와 억제력으로 기능함. 체스의 말처럼 옮겨서 분쟁지역을 안정화시키는 군사력의 휴대용 신호로도 기능하는 것이다.
- 몰래 숨어들기, 정액 쏴 대기, 틈을 노리며 위성처럼 배회하기, 암컷 흉내내기 등 속임수에는 많은 방법이 있다. 동물들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지배자 수컷이 이제는 무장한 경쟁자와 재래식 결투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규칙을 파괴하는 수컷들의 더욱 불길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비슷하게, 게릴라와 지뢰, 사제폭탄, 사이버 해커 모두가 재래식 군사력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한 속임수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때는 큰 변화는 없다. 그러나 속임수의 효과가 너무 커지기 시작하면 무기경쟁을 종식시킬 수도 있다.
- 밀통이 활발해지면, 싸우는 수컷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크게 잠식될 수 있다. 막대한 비용에 더해, 속임수로 번식 성공률까지 깎아 먹으면 무기진화는 제동이 걸리고, 그 시점에서 모집단은 안정화되기 시작. 실제로 속임수가 너무 잘 통하기 시작하면, 무기의 편익이 아주 극적으로 잠식되어, 선택의 방향이 반대로 뒤집힐 수도 있음. 큰 무기가 부담이 되어, 무기경쟁이 억제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붕괴되는 것이다.
- 일단 큰 무기의 보상수준이 폭락하면, 크기 축소를 선호하는 쪽으로 빠른 선택이 이루어지기 시작함. 이론상, 이때 비싼 무기를 지닌 모집단이 충분히 빠르게 무기크기를 줄이지 못하면 멸종에 이를 수도 있음. 우리는 예를 들어 장엄한 큰뿔 사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히는 알아낼 수 없을 것임. 그러나 뿔의 성장비용을 모형화하려는 최근 시도에 따르면, 멸종 당시 큰뿔사슴의 뿔이 가장 비용이 큰 극한크기에 이르렀던 것으로 밝혀짐. 그런데 가장 성공적인 수컷조차도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칼슘과 인을 간신히 회복하는 수준이었음. 그러한 사실은 큰뿔사슴의 서식지의 먹이에서 무기질을 급격히 감소시킨 기후변동과 맞물림으로써, 더 이상 사치스러운 무기비용을 지불할 여유가 없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확실히 하는 것은, 먹이 질의 하락시점이 멸종시점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 대포의 개량, 특히 강선을 낸 포신과 폭발하는 포탄으로 인해 돛배 전함은 폐물이 되었다. 앞서 300년 동안 해군대포는 포신 내부가 강선이 없이 매끄러웠고, 단단한 쇠공을 발사했듬. 대포와 포탄이 점점 커졌지만, 기본기술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1850년대 대포의 포신 내부에 나선의 홈, 곧 강선을 냄으로써 투사물이 회전을 했다. 그럼으로써 포탄이 더 멀리까지 날아가서 더 정확히 과녁을 맞혔다. 비슷한 시기에 쇠공포탄이 폭약을 채워 폭발하는 뾰족한 포탄으로 교체됨으로써, 해상 전투의 포탄 피해 유형이 크게 달라짐. 단단한 쇠공 포탄은 선체에 구멍을 내고, 돛재를 무너뜨리고, 부서진 목재파편으로 선원에게 부상을 입힐수도 있었지만, 배를 침몰시키려면 많은 포탄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해상전투에서는 더 큰 배가 더 나았다. 더 큰 배는 더 많은 대포를 장착했고, 따라서 더 넓은 지역에 포격을 가했다. 작은 배는 더 두꺼운 목재 선체와 더 긴 선체의 배를 당할 수 없었음. 이는 정확히 무기경쟁을 불러일으키는 요건이 됨. 폭발성 포탄은 사기적이었다. 이 포탄은 금속파편을 사방으로 날렸고, 흘수선 아래의 선체를 터트리고, 끔찍한 화재를 일으킴. 목재 선체는 폭발하는 포탄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했다. 단 한 발만 직격을 당하면 배가 침몰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대포는 값싼 소형 선박에도 장착할 수 있어서, 재래식 전투의 규칙을 깨뜨렸다. 거의 하룻밤에 무적이었던 전함이 덩치만 큰 과녁이 되고 말았다. 해법은 선박 양옆에 금속 갑옷 판을 두르는 것이었지만, 강철선체는 너무 무거워 돛으로 추진할 수 없었음. 돛을 단 선박의 무기경쟁은 이렇게 끝났다. 해군은 오래 침체되어 있다가, 증기기관 스크루 추진기가 나옴으로써 비로소 무게제한이 풀려, 바람대신 추진기를 동력으로 삼는 무기경쟁이 시작됨.
- 병정개미와 더 작과 기동성 있는 일개미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함대는 큰 전함과 특수임무를 맡은 작은 배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속임수는 더욱 발달. 곧이어 어뢰를 싣고 다니는 수중선박이 등장해서, 수면 아래로 어뢰를 발사. 궁극적 속임수, 곧 잠수함은 가장 큰 전함이라도 몰래 수중에서 침몰시킬 수 있게 됨. 이로써 해군의 가장 강력한 무기의 위엄과 전술효과는 크게 손상됨. 석궁을 든 농부병사처럼, 잠수함이 재래식 교전수칙을 깨뜨린 것. 전함은 덩치만 큰 과녁이 되었다. 가장 큰 강점이 약점으로 바뀐 것. 거대 전함을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작은 배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다니는 것이었음. 각각의 거대 전함은 구축함과 호위함 등을 거느려야 했기에, 함대의 힘은 약화되고 움직임은 제한되었다.
- 독일은 스스로 영국 해군의 전함 건조열풍을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래서 은밀히 전함 건조비로 잠수함을 건조해서, 유보트 함대를 만듬.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유보트는 구축함 소함대의 호위를 받는 적군 전함을 침몰시키는 게 아니라 호위선 없이 대서양을 건너는 상선을 침몰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됨. 상선은 잠수함의 손쉬운 과녁이 됨으로써, 전쟁물자와 인원 수송에 차질이 생겼고, 연합국의 전쟁노력이 손상됨. 잠수함의 등장은 또 다른 형태의 속임수를 낳음. 영국이 함포를 설치한 군선을 무력한 상선처럼 보이도록 위장한 것. 이른바 큐선 이라 불린 이 무장상선은 1차대전 당시 가장 은밀한 비밀 가운데 하나였음. 영국은 이런 꼼수로 잠수함을 가까이 불러 수면으로 부상하도록 유도. 잠수함은 제한된 수의 어뢰만 갖고 다녀서, 상선이 충분히 무력해 보일 경우 수면으로 부상해서 갑판의 대포로 상선을 침몰시킴으로써 나중을 위해 귀중한 어뢰를 절약했다. 큐선이 침몰하는 척 하며 연기를 내뿜는 한편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구명보트에 올라타면 유보트가 마무리를 지으려고 수면으로 부상. 잠수함이 떠오르는 순간, 큐선에 남아 있던 선원들이 선체의 널판을 아래로 젖히고 감춰진 대포를 드러내 포격을 개시. 큐선의 이중 속임수는 대담하고 영악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위험하고 궁극적으로 비용대비 효과가 적은 것으로 입증됨. 전쟁기간에 큐선은 14척의 독일 잠수함을 침몰시켰지만, 그러기 위해 그 두배의 큐선을 상실.
- 감히 도전할 수 없던 로마군과 영국 해군의 패권이 상대적 평화를 초래했듯이, 일부 사람들은 미국 군대이 우세가 팍스 아메리카나를 맞아들였다고 주장. 다른 국가가 미국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필적할 수 있을 때까지, 미국에 대한 전면적 재래식 공격 위험은 미미함. 전면전은 생각할 수도 없고, 미국의 경쟁자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1대1 대결이 아닌 비대칭적인 것, 곧 규칙을 깨는 영악한 전술뿐이다. 미국을 결코 공격할 수 없는 국가들은 게릴라전술로 끊임없이 미국병사들을 저격해 싸우려는 의지를 꺾고자 한다. 자살폭탄, 차량폭탄, 사제폭탄 등의 공격은 재래식 무기의 효율성을 떨어뜨림. 그러한 공격은 자극적이고 소수의 사람에게 치명적일 뿐, 대다수 주민의 안전이나 미국의 주권에 직접적 위협이 되지 않음. 표면적으로 억제력은 정상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물의 무기가 엄청난 희생을 치르는 것을 감안하면, 현대 무기의 엄청난 비용도 정당화될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대량살상 무기다.
- 우리는 재래식 전투력의 상대적 강도나 크기아 무관하게, 수많은 국가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세상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핵무기와 생물무기는 규칙을 깨뜨린다. 자원이 거의 없는 국가들이 더 부유한 경쟁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기적 수단을 거머쥘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다면 대량살상 무기가 값비싼 재래식 병력의 비용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장궁과 머스킷이 중세 갑옷의 종말을 예고했듯이, 폭발하는 포탄이 돛을 단 전함과 요새의 종말을 또 예고했듯이, 저비용의 핵과 생물무기가 값비싼 재래식 군대에 종지부를 찍을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름.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무기 자체와 무기로 인한 부수적 피해가 더욱 큰 문제다. 억제력이 여전히 작용한다고 해도, 나는 그런다고 확신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이들 무기가 절대 사용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억제력이란 그저 사용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 가능성이 100번의 대립 가운데 단 1번, 또는 북미 순록처럼 11600번의 대립가운데 6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듯, 갈등은 결국 본격적 전투로 이어짐. 냉전시대 이전에는 이런 사실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임. 하지만 이제는 대량살상 무기로인해 모든 것이 달라짐. 내가 생각하기에 다행인 것은 무제한의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무엇보다 높은 갈등은 예측가능하다는 점. 호적수 사이의 1대1 대결도 이에 포함된다. 냉전시대의 무기경쟁은 해변에서 가장 큰 농게 두마리와 같은 경쟁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반드시 큰 게가 아니어도 가능. 해변에는 어디나 게들이 많다. 집게발을 흔들고 밀치고, 서로 크기를 재는 그 모든 대립은 고조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훨씬 더 큰 적과 마주한 게가 물러서기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일몰 속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길 가능성이 더 높은 전투를 추구할 뿐이다. 물러선 뒤에는 좀더 비슷한 적에게 접근할 것이다. 중간 크기의 게가 다른 중간 크기의 게와 대립할 때, 초기의 몸짓들만으로는 분쟁을 사전에 해결하지 못함. 서로를 밀치고 젖히려고 하면서, 양측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밀어붙이기가 더욱 강렬해지고, 후려치며 조이기에 돌입하다가,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으면 이윽고 불가피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고삐풀린 전면전으로.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래는 오지 않는다  (0) 2019.12.30
빌트, 우리가 지어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0) 2019.12.09
아름다움의 진화  (0) 2019.11.04
바람난 유전자  (0) 2019.09.29
진화의 배신  (0) 2019.06.21
Posted by dal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