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오지 않는다

과학 2019. 12. 30. 12:25

- 소로스는 경제나 증권에 있어서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돈을 벌려면 미래가 아닌 과거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 그래서 그는 양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수많은 전쟁과 경제위기를 겪고도 살아남았던 회사를 집중 추적해 투자함으로써 큰 이익을 냄. 과학에 비유하자면 이런 기업은 여러 차례의 반증 시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과학임. 죽어버린 이론이 아니라 살아남은 이론이 대단한 것처럼, 시련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던 회사에 투자. 포퍼가 강조한 열린과학의 철학을 소로스는 사회와 경제에 적용한 것.
- 벨라루스 출신 학자이자 논평가 예브게니 모로조프는 11년 '넷의 망상'이라는 책을 출간. 이 책의 부제는 '인터넷 자유의 어두운 면'이다. 인터넷이 얼마든지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억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 모로조프는 '디지털 유토피안'들이 인터넷 중심주의에 빠져서,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변화가 인터넷을 통해 자연스레 발생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 그의 다음 책 '모든 것을 구원하려면, 여기를 클릭하라'는 기술해결사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비판함. 기술해결사주의는 어떤 문제든 거기에 필요한 기술을 잘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실리콘밸리식 사고방식. 스마트폰 도입 초기에 무슨 일이든 그것을 해결해주는 앱을 개발하려는 생각부터 하던 때를 떠올려보세요. 교통에 문제가 생기면 교통관련 앱을 만들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적절하게 개발해서 사용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모로조프는 사이버 유토피아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변화는 가져오지 못한 채 메신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전파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프레임에 빠져 있다고 비판.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권력에 대해 트윗을 마구 날리는 것이 제대로된 저항의 방법은 아님.
- 하이테크 유토피아, 사이버 유토피아 같은 기술중심의 미래사회 담론은 기술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사회도 진보한다는 기술결정론적 믿음에 근거. 그렇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계는 이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기술이 발전해도 사회적 불평등이 증가하는 것처럼 사회의 어두운 면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 오히려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일이 가속화될 수도 있음. 인공지능은 원래 있던 편견이나 차별을 없애는 대신 더 고착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미래를 기술중심적으로만 생각하면 이런 복잡한 관계들에 주목하지 못할 수 있음.
- 전등이 나올 무렵에 가스등 기술도 꽤 발달해서 가스등을 켜도 크게 어둡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사람들은 어두워지면 활동을 멈추고 잠자리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가스회사들이 호락호락 눈 뜨고 시장을 빼앗길 사람들도 아니었다. 도시에 거미줄처럼 가스관을 깔기 위해서 큰 투자를 했으니까요. 따라서 에디슨과 같은 발명가들은 전등이 단지 가스등의 문제만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대 세상에 부합하는 조명이다, 계몽의 상징이다, 밤을 대낮처럼 밝게 비추는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 즉, 전등의 문화적 의미를 새롭게 창조해서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두가지 조건 (1)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2) 그러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새롭고 더 값싼, 더 효율적 기술이 나왔다는 조건이 만족되어도, 이것이 자동적으로 기술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
- 왜 전화와 같은 혁신적 기술에 대한 시장조사가 불가능할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발명했고 폴라로이드사 사장을 지낸 에드윈 랜드는 "시장조사는 당신의 제품이 썩 좋지 못할 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음. 그는 "모든 중요한 발명은 반드시 놀라운 것이어야 하고, 그것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세상에 던지는 것이다"라고 말했음. "만약 세상이 그것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발명이라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전화, 폴라로이드, 카메라 같은 것이 이런 중요한 발명들이었다. 랜드에게는 세 가지 경영원칙이 있었다. 첫째, 진정한 기업은 인문예술과 과학의 교차점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 둘째, 이상적인 기업은 경영자와 상상가들로 구성된다는 것, 후자를 보호하는 것이 전자의 임무다. 셋째, 사실들이 드러나고 그것들이 당신이 예상한 것이 아닐지라도 손을 뻗쳐서 그것들을 잡고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 랜드를 다른 어떤 기업가보다 높게 평가했던 젊은 기업가가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랜드)는 국가의 보배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모델로 떠받들어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가장 놀라운 존재다. 우주인이나 풋볼 선수가 아니라 바로 그가 국가의 보밸 떠받들어져야 한다." 이런 평가를 내린 사람은 바로 스티브 잡스다. 그는 랜드를 존경했고, 랜드를 만나러 가는 것이 마치 신전에 가는 기분이라고 할 정도. 잡스는 기업이 인문예술가 과학적 교차점에 존재해야 한다는 랜드의 경영철학을 100% 수용해서 이를 애플의 철학으로 삼았음.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애플의 DNA다. 우리의 심장을 노래하게 한 결과를 낳은 것은 인문예술과 결합한 기술,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이다. PC 이후의 기기들에서 이는 너무나 분명하다."
- 잡스는 혁명적 기술에 대해서는 시장조사가 불가능하다는 랜드의 철학을 이어받음. 실제로 잡스는 랜드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
계산기만을 사용하던 사람에게 내가 '매킨토시 컴퓨터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물었다면, 그는 아마 대답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매킨토시 컴퓨터에 대해서 소비자 조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만들었고, 사람들에게 보여줬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된 거죠.
- 팩스나 화상전화에서 중요한 점은 소비자들에게 "이 통신수단이 지금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널리 쓰일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는 것. 생산자는 이를 위해서 기술을 표준화하고, 기술의 낙관적 미래에 대한 담론을 유포하며, 소비자들을 직접 설득하기도 한다. 신제품을 공짜로 뿌리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통신기술에서의 혁신은 새로운 사용자의 점진적 유입과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게 하는 플랫폼 형성과정이다. 기술발달의 초기엔 그 기능과 가치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기술의 미래, 기술이 제공하는 약속에 끌리게 됨.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는 화상전화가 소비자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확산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 돌이켜보면 에디슨의 전등이 가스등을 누르고 승리하는 것은 자명한 일처럼 보임.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에디슨은 단순히 전등을 팔았다기보다 무수히 많은 전등이 켜져서 밤을 몰아내는 미래세상의 비전을 파는 데 성공했던 것. 전등이 나온 직후인 1880년대에 전등의 미래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았다. 미래는 에디슨이 만든 것이지, 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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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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