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진화

과학 2019. 11. 4. 08:04

- 나는 개체의 감각적 판단과 인지적 선택을 통해 전개되는 진화과정을 미적진화라고 부른다. 미적진화를 연구하려면 성적매력의 양쪽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는 욕구의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욕구 자체의 형태다. 생물학자들은 전자를 과시형질, 후자를 짝짓기 선호라 부름. 우리는 어떤 배우자감이 선호되는지를 연구함으로써 성적 욕구의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 이 관찰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은, 욕구의 대상이 진화된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성적 욕구의 진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즉, 주어진 종 특유의 성적 장식물을 선정하여, 그것이 다양한 종들 사이에서 진화한 과정을 검토해보는 것이다.
- 성선택의 작동방식을 이해함으로써 드러나는 사실은, 놀랍게도 욕구자체와 욕구의 대상이 공진화해왔다는 것이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성적 아름다움의 사례는 대부분 공진화의 결과다. 다시 말해 과시형질과 짝짓기 선호는 우연히 서로 들어맞게 된 게 아니라, 오랜 진화적 시간에 걸쳐 서로를 형성해온 것이다. 자연계의 비범한 미적 다양성이 탄생하게 된 것은 바로 이 공진화 메커니즘을 통해서였다.
- 대니얼 대신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적 진화'를 가리켜 '다윈의 위험한 생각'이라고 한 바 있다. 그것은 다윈의 첫번째 걸작 종의기원의 주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윈의 정말로 위험한 생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성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라는 개념으로, 다윈의 두번째 걸작인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의 주제다. 다윈이 제안한 성선택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위험한 것이냐고? 무엇보다도, 다윈의 성선택은 신다윈주의자들에게 특히 위험함. 왜냐하면 성선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연선택의 힘을 진화의 유일한 원동력으로 간주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생물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도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윈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주장한 것처럼, 자연선택은 진화의 유일한 원동력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이 우리가 생물계에서 보는 장식물의 엄청난 다양성을 전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 딜레마와 씨름하느라 오랜 시간을 들였다. 얼마나 고민이 많았으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유명할까. "나는 공작의 꽁지에 있는 깃털을 들여다볼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네" 공작의 깃털은 자연선택의 결과로 진화한 다른 유전성 형질들과는 달리, 생존가치 면에서는 완전히 낭비 그 자체다. 이것은 그가 종의기원에서 내세운 원리들과 완전히 배치된다. 그래서 그가 고심끝에 최종적으로 얻은 통찰은 '뭔가 다른 진화적 힘이 작용하는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윈의 정통과 적응주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용서할 수 없는 변절로 간주. 결과적으로, 다윈의 성선택이론은 그 후 억압되고 오해받고 재규정되어, 끝내 잊히고 말았다.
- '성선택에 의한 미적진화'는 너무나 위험한 이론이어서, 자연선택의 전능한 설명력을 지키기 위해 다윈주의에서 배제되어야 했다. 그러나 자연계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다양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윈의 미적진화 이론을 생물학과 문화의 주류에 복귀시켜댜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셀 수 없을만큼 다양한 생물학적 아름다움을 설명할 길이 없다.
- 1871년 출간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다윈은 인간의 기원과 아름다움의 진화라는 두가지 문제를 과감하게 언급. 이 책에서 그는 무기와 장식물, 전쟁과 미적 취향을 설명하기 위해 독립적인 제2의 메커니즘인 성선택을 제시. 만약 자연선택의 결과가 유전성 변이의 차별적 생존에 의해 결정된다면, 성선택의 결과는 차별적 성적 성과(배우자 획득에 유리한 유전적 특징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이다. 다윈은 성선택 과정에서 두 개의, 독특하면서 잠재적으로 상반되는 진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상정했다. 첫번째 메커니즘은 전쟁의 법칙으로, 하나의 성(종종 수컷)에 속하는 개체들 사이에서 벌어시는 이성개체에 대한 성적통제를 둘러싼 투쟁이다. 다윈은 이런 가설을 세웠다. 성적 통제를 둘러싼 전쟁은 큰 몸집, 공격용 무기, 물리적 통제 메커니즘의 진화로 이어진다. 두번째 성선택 메커니즘은 미적 취향으로, 하나의 성(특히 암컷)에 속하는 개체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선호에 근거하여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다윈의 가설에 따르면, 자연계에서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형질을 보유한 개체들이 많이 진화한 것은 성선택 때문이다. 이러한 형질들을 장식용 형질이라고 하며, 새의 노래, 다채로운 깃털, 각종 치장에서부터 맨드릴개코원숭이의 빛나는 파란색 얼굴과 후구(뒷다리와 궁둥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함. 거미, 곤충, 새, 포유류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다윈은 많은 종에 나타난 성선택의 증거를 검토했다. 그는 전쟁의 법칙과 미적취향에 따라, 자연계에서 무기와 장식물이 진화한 과정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언급을 회피했던 인간의 진화적 기원에 대한 이론을 명백히 제시했다. 그는 서두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들 사이의 연속성을 길게 논의하며, 인간의 독특성과 예외성이라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서서히 점진적으로 무너뜨려나갔다. 문화적으로 예민한 주제의 특성을 고려하여, 매우 신중한 페이스로 진화적 연속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관철. 그는 시종일관 자극적 결론을 삼가다가, 맨 마지막 장인 전반적 요약과 결론에서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털복숭이 네발짐승에서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 피셔의 주장에 따르면, 암컷의 짝짓기선호가 계속 진화하는 이유는 특정한 수컷의 품질이 다른 수컷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성적으로 성공한 수컷은 간혹 생존에 불리하거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쪽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만약 과시형질이 배우자적 자질(전반적 유전적 품질, 질병에 대한 저항력, 식생활의 건전성, 양육투자능력)의 다른 외적 표시와 동떨어진다면, 그 과시형질은 임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임의적이란 그 과시형질이 우발적이거나 무작위적이거나 설명불가하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 이상의 정보를 전달하지 않음'을 뜻한다. 과시형질은 단지 관찰되고 평가받기 위해 존재할 뿐이며, 임의적인 형질은 정직하지도 부정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거짓이고 뭐고, 애초에 아무런 정보를 내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매력적이거나 아름다울 뿐, 배우자적 자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진화 메커니즘은 패션스타일의 유행과 상당히 비슷하다.
- 안타깝께도 전문 과학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는 선입견을 품기 쉬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뇌는 감각정보와 인지정보의 흐름 속에서 보기 드문 패턴을 탐지할 경우 큰 보상감을 느낌. 아마도 지능의 가장 기본적 이득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뭔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일 게다. 예컨대, 어떤 사냥꾼이 물가에서 짐승발자국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할 수 있다. '진흙탕 속에서 물소들이 방금 지나간 흔적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이 매일 아침 물을 마시러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만약 내일 아침 일찍 여기 와서 숨어 있는다면, 물소 한 마리를 잡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의미로 가득 차 있으며, 합리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인지능력은 우리를 그릇된 결론으로 이끌 수 있다. 그리하여 사실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확신을 하게 한다. 유령이야기, 기적, 마술, 점성술, 음모론, 스포츠에서의 연승, 저주와 징크스, 행운의 주사위는 언제 어디서든 이치와 순리를 찾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많은 사람은 비합리적인 지적 욕구에 탐닉한 나머지 혼돈된 세상에 대한 유의미한 설명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데, 만약 자신의 성향이 대세와 일치하는 경우에는 그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 암컷 청란이 (완벽한 유전체 정보로 무장한) 인간 과학자보다 배우자감의 유전적 적합성에 대해 더욱 타당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함.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실증적 이슈이므로, 맹신에 의존하여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에 따라 판단해야 함. '인간의 유전체 의학이 대부분의 목잡한 건강결과를 예측하는, 신뢰성 있는 도구를 개발하는 데 실패했다'라는 것은 좋은 유전자 가설의 타당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며, '모든 장식물을 이용하여 배우자의 적응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 정직한 대칭성은 이제 좀비 아이디어가 되었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매력적인 아이디어여서, 왜곡을 반복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든, 대칭가설은 청란의 날갯직과 꽁지깃에 나타난 패턴가 복잡한 장식물이 진화를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설사 그런 측면이 존재하더라도, 완벽하게 대칭적인 신호에 대한 자연선택으로는 청란의 기설과 과시형질에 무수히 숨어 있는 특이적이고 복잡한 세부사항을 단 하나도 설명할 수 없다.
- 경제학자의 경우, 주어진 가격에서 하나의 자산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가격이 자산의 가치를 정확히 반영한다'라고 생각함. 진화생물학자들이 특정 환경에서 하나의 나무나 새가 존재하는 것을 보고, 다른 생태적 경쟁자들에 의해 대체되지 않는 걸 보면, 그들이 생존이라는 과제에 대한 최적해를 달성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와 매우 비슷함. 과학자와 생물학자들은 모두 자신의 견해를 '세상이 내 견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석하는 데 사용한다. 이러한 논리는 실증적인 지적경향을 초래하여,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보다는 실증분석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검증하는 데 몰두하는 과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 세상에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지만, 성적 과시형질이 늘 생존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 아니며, 특정 과시형질의 진화가 개체에게 되레 큰 비용을 부과할 수도 있다. 모든 과시형질은 성적 이점과 생존비용이 균형을 이루는 선에서 진화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균형점은 자연선택이 수컷의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에 치중하여 선호하는 최적점과 거리가 멀 수 있다. '배우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라는 성적 이점은 '잘 적응할 수 있다'라는 생존적 이점을 능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잘생긴 용모를 가졌지만 무모함 때문에 요절한' 제임스딘 스타일의 수컷이 '책만 파면서 여든 살까지 생존한' 범생이 스타일의 수컷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다.
- 아름다움(대부분의 경우 수컷)과 아름다움에 대한 선호(대부분의 경우 암컷)는 성적 이점을 얼마나 보장할까? 킴 보스트웍은 곤봉날개마나킨에 대한 후속연구에서, 끊이지 않는 질문에 대해 명쾌한 과학적 답변을 내놓았따. 그녀는 '아름다움은 한 꺼풀에 불과한 게 아니다. 곤봉날개마나킨은 뼛속까지 아름답다'라고 강조함으로써, 미적 진화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심오한 통찰을 제공했다. "새들이 특이한 날개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특이한 깃털과 운동이상의 무엇이 필요한데, 곤봉날개마나킨이 경우 날개뼈의 형태와 구조, 날개근육의 크기와 인대에 중요한 진화가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 비행하는 새들의 날개가 해부학적으로 표준화되어 있다는 것은 그 형태가 자연선택에 의해 유지되어 왔음을 입증하는 증거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적어도 비행의 효율성에 관한 한, 수컷 곤봉날개마나킨이 자연선택의 최적점에서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다. 만약 수컷 곤봉날개마나킨의 날개의 해부학적 특징이 기능 및 생존 면에서 추가적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다면, 다른 새들의 날개에서도 그와 비슷한 형태학적 변이가 진화했을 거라 예상할 수 있음.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사례는 한 건도 보고된 적이 없다.
- 곤봉날개마나킨의 날개노래는 진화적 데카당스의 극명한 예를 보여줌. 진화적 데카당스란 성선택을 통해 한 개체군의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을 말함. 성선택에 위협을 느낀 적응주의자들이 "충분한 근거 없이 임의적 성선택을 주장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사악하다"라고 낙인을 찍도록 만든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그들은 진화적 데카당스의 혼란스러움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적응적 배우자선택론에 따르면, 수컷 곤봉마나킨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날개뼈를 가졌다는 것은 '매력적인 수컷이 그런 특별한 생리적, 기능적 약점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라는 증거로 간주된다. 그러나 자하비 본래의 핸디캡 원리 (또는 스머커스 원리)는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 만약 장식물의 비용이 이익을 갉아먹는다면, 순이익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적응주의자들이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은 단 하나, "생존능력과 생식능력의 관점에서 볼 때, 과시형질의 한계이익이 한계비용을 웃돈다"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생물이 됐든 과시형질의 순이익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으며, 곤봉날개마나킨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요컨대, "미적으로 변형된 곤봉날개마나킨 날개의 해부학적 구조는 성적 데카당스가 자연계에서 진화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설득력있고 탁월한 증거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비용에 대한 생리학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확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러한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면 좀더 깊숙한 곳을 들여다봐야 한다.
- 진화는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과 동의어이며, 종의 지속적 발전을 지향한다고 배운 사람들에게, 미적 데카당스의 진화라는 개념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비실용적인 욕구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단순한 견해를 재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이 이토록 비이성적인데, 다른 동물은 오죽하겠는가
- 깃털의 기원에 관한 공기역학 이론은 새로운 신체 부위의 기원에 대한 적응주의적 접근법의 일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깃털의 기원을 밝히겠다는 20세기의 거창한 지적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깃털은 비행도구에 대한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다'라는 신념에 사로잡혀 연구에 착수한 100년 동안, 깃털의 진화과정에 대한 지식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순서가 틀렸기 때문. 깃털이라는 혁신적 도구의 진화과정을 제대로 알려면, 개별 혁신의 선택이익에 대한 의문을 일단 보류하고, 각각의 깃털발달 단계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고 진화방향을 예측하는 게 먼저다. 이게 바로 이보디보의 접근방법인데, 그 핵심은 '깃털의 각 요소가 왜 진화했는지를 궁리하기에 앞서서, 깃털의 진화과정에서 무슨 요소들이 생겨났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나는 이보디보를 통해 깃털의 진화과정을 이해한 후, 각 진화단계의 선택이익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초기의 관 및 솜털다발 단계는 체온조절과 발수성 때문에 진화한 것으로 가정되어왔는데, 이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오늘날의 닭처럼 복슬복슬한 솜털로 구성된 깃털이 따뜻하거나 발수성이 충분하여, 체온조절의 요구를 충족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아기오리는 북슬북슬한 솜털을 갖고서 매우 따뜻하고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북슬북슬한 솜털 깃털(2단계)이 깃판 달린 깃털로 진화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 지금으로부터 6600만년 전,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여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칙술루브에 지름 180킬로미터의 분화구를 남겼다. 엄청난 충돌후에 연쇄적으로 나타난 환경적, 생태적 변화는 육상생물과 수서생물의 대멸종을 초래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공룡의 멸종이다. 물론 우리는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바로 세가지 중요 현생조류의 날아다니는 조상이었다. 이 세가지 혈통은 번성하고 다양화하여(그중 하나는 폭발적으로 다양화했다), 1만종 이상의 새로 진화하여 오늘날 지구를 덮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새의 조상들만 백악기-팔레오기 멸종에서 살아남고, 다른 공룡들은 그러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깃털을 가졌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출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함. 왜냐하면 다른 깃털 달린 수각류, 예컨대 온몸이 깃털로 뒤덮였던 랍토르 공룡, 오르니토미미드, 트로오돈트는 몰살당했기 때문. 사실 백악기-팔레오기 멸종에서 살아남은 공룡 혈통들은 평평한 깃털을 이용하여 날아오를 수 있는 종들이었다. 아마도 비행능력이 그들로 하여금 최악의 생태적 결과에서 탈출하거나 회피하여 재빨리 흩어짐으로써, 잇다른 생태적 혼돈 속에서 단기적 피난처를 찾게 해준 것 같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비행능력이 없었다면 현생조류의 조상들은 다른 공룡들과 함께 멸종하고 말았을 것임. 그러므로 미적 잠재력을 지닌 혁신적인 평평한 깃털은 비행의 진화를 촉진하여, 조류 공룡의 위기탈출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음
- 오리의 복잡한 생식생물학의 중심에는 아이의 아버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암수의 성 갈등이 도사리고 있음. 공진화한 수컷의 아름다움(깃털, 노래, 과시행동)에 기반을 둔 성선택을 통한 암컷의 자발적 선택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강제교미를 통한 수컷의 강압에 맡길 것인가? 79년 제프리 파커는 성 갈등을 '생식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른 성별을 가진 개체들의 진화적 이해관계의 대립'이라고 정의. 성갈등은 생식의 다양한 측면과 관련된 문제들, 예컨대 짝짓기의 대상과 빈도, 자녀양육의 비용 및 책임분담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음. 이러한 갈등의 원천인 '수정을 누가 지배할 것인가', '정자를 누가 제공할 것인가', '알을 누가 돌볼 것인가'는 성선택의 진화에 매우 중요
- 암컷 오리 질의 해부학적 구조가 다양해진 원인은 뭘까? 핵심적 원인은 '생식기의 구조와 사회적, 성적 생활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 즉, 영토를 보유하며 일부일처제를 채택한 오리의 경우, 수컷은 표면이 밋밋하고 크기가 매우 작은 페니스를 보유하고 있고, 암컷은 맹낭이나 꼬임이 없는 단순한 질을 갖고 있음. 그와 대조적으로, 영토를 보유하지 않으며 강제교미를 일삼는 오리의 경우, 수컷은 길고 표면이 꺼칠꺼칠한 페니스를 보유하고 있고, 암컷은 구조가 매우 복잡한 질을 갖고 있음. 페니스와 질의 형태를 비교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두가지 특징(길이가 길고 정교한 페니스, 복잡하고 구불구불한 질)은 공진화한 게 분명해 보임. 그렇다면 이러한 공진화를 추동한 요인은 뭘까? 우리는 '오리의 페니스와 질의 공진화는 자녀의 아버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암수 간의 성갈등의 산물이라는 가설을 수립했다. 물새의 경우, 성 갈등은 양성간의 가속화되는 전쟁을 초래하는데, 이 전쟁을 성적으로 적대적인 공진화라고 부름. 적대적 공진화는 암수 간에 일종의 군비경쟁을 초래하여, 각각은 성은 이성의 진화적 노력(수컷: 생식에 대한 주도권 장악, 암컷: 생식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 확보)을 압도하기 위해 성공적인 행동적, 행태학적, 생화학적 메커니즘을 진화시킨다. 즉, 한 성의 진화적 발전은 다른 성의 보상적 대응전략을 추동하게 된다. 수컷오리는 내켜 하지 않는 암컷의 질에 강제로 삽입할 수 있는 폭발적인 코르크스크루 모양의 페니스를 진화시켰고, 암컷 오리는 이에 맞서 강압적 수정을 저지할 수 있는 해부학적 메커니즘을 진화시켰다. 수컷 오리의 페니스는 뻣뻣하지않고, 암컷 오리의 생식관 속에서 반시계방향으로 소용돌이치며 유유히 전진한다는 점을 상기하라. 내가 보기에, 암컷 오리의 질 속에 맹낭이 존재하고 있고 질의 모양이 시계방향 코르크스크루 형태인 것은 '강제교미가 일어날 때 수컷 오리의 페니스가 생식관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만약 암컷 오리의 진화적 발전(질의 복잡하고 기만적인 해부학적 구조)이 강압적 수정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수컷 오리는 좀더 길고 잘 무장된 페니스를 진화시켜 맞대응할 것이고, 암컷 오리는 이에 대응하여 좀 더 복잡하고 기만적인 해부학적 구조를 무한 군비경쟁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임. 이러한 역동적 공진화과정에 작용하는 선택 메커니즘은 매우 복잡함. 첫째로, 배우자선택에 의한 성선택이 작용하여, 수컷의 과시형질과 암컷의 선호도 공진화를 추동함. 둘째로, 수컷 간의 경쟁이라는 제2의 성선택이 작용하여 강압적 행동과 좀더 길고 공격적으로 무장된 페니스를 진화시킴으로써, 수컷의 강압적인 수정을 가능케 함. 셋째로, 암컷은 자율적 배우자 선택의 간접적, 유전적 이점을 누리기 위해 행동적, 해부적 저항 메커니즘을 진화시키는데, 이 역시 일종의 성선택이라 할 수 있다. 암컷의 행동이나 질 형태와 관련된 유전적 변이가 진화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한 변이는 암컷이 성폭력의 간접적, 유전적 비용(즉, 다른 암컷들이 선호하지 않는 매력없는 아들을 낳음)을 회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우리가 오리의 성생활을 연구하면서 얻은 교훈은 번식 체계에 만연한 성폭력에도 불구하고, 암컷 오리의 성선택은 변함없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컷의 깃털, 노래, 과시행동 역시 계속 진화할 수밖에 없다. 배우자선택의 자유를 파괴하려는 폭력적 시도가 곳곳에 깔려 있지만, 암컷의 배우자선택이 우위를 유지하는 한 아름다움은 계속 발전하기 마련. 그러나 암컷의 성적 자율성은 수컷에 대한 권력행사의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단지 배우자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메커니즘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함. 암컷 오리는 수컷에게 성적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배우자에게 언제든지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암컷은 성폭력에 맞대응 하여 수컷을 지배하도록 진화하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진화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적으로 적대적인 공진화에 의한 군비경쟁이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다. 왜냐하혐 이성간의 전쟁은 매우 비대칭적이어서, 수컷은 암컷을 통제할 무기를 진화시키는 반면, 암컷은 선택의 기회를 창조하는 방어체계를 공진화시킬 뿐이기 때문. 실제로 전쟁을 벌이는 쪽은 수컷이기 때문에, 이것은 공정한 전쟁이 아니다. 그러나 오리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암컷의 성적 자율성은 여전히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 새들이 복잡한 감각계, 인지능력, 그리고 (페니스 상실 덕에 확대된) 배우자선택의 기회를 가진 극소수 동무임을 고려할 때, 그들이 인간 다음으로 가장 심미적 동물로 진화한 것은 결코 우여이 아니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페니스의 상실로 인한 암컷의 비가역적 성적 자율성 증가는, 새들 사이에서 진화한 미적 화려함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별의별 아름다움이 있다는 가설에서 예측될 수 있는 이 같은 미적 화려함의 진화는 새의 폭발적 종 분화와 미적 방산에 기여했으며, 이는 종의 수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그룹이 페니스 없는 새들인 이유가 뭔가라는 의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됨. 물론 조류의 진화적 성공, 시속한 종분화, ㄷ양화에 기여한 요인들은 많으며, 그중에는 생태적 다양화, 이주, 노래, 노래학습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미적 진화와 신조류의 페니스 상실이라는 요인을 배제하고 새의 진화적 성공과 다양성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페니스 없는 조류의 암컷에서 나타나는 성적 자율성을 관찰할 때 두드러진 점은, 성적 자율성과 일부일처제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흥미롭게도 진화를 설명하는 이런 논리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조류의 발생, 생리, 사회행동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수컷의 페니스 상실과 암컷의 성적 자율성 확대이므로, 만성조의 새끼들은 일부일처제 진화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다. 즉, 페니스를 가진 새들은 모두 부화한 후 즉각 제 밥벌이를 하는 새끼들을 낳으며(조성조), 그 새끼들은 편부모에 의해 안전하게 양육되고 보호받을 수 있다. 단 영토방어가 필요한 경우에는 조성조에서도 편부모 양육대신 양친양육이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페니스가 상실되고 나면, 암컷은 확대된 성적 자율성을 누리도록 진화하여 수컷의 양육투자를 좀 더 많이 요구하게 됨. 페니스 없는 수컷은 강제교미를 할 수 없으므로, 생식을 위해서 암컷의 짝짓기 선호를 충족할 것이 기본적으로 요구됨. 만약 암컷의 수컷의 생식투자를 좀더 많이 요구하도록 진화한다면, 수컷들 사이에서는 까다로운 암컷을 충족시키기 위해 양육에 필요한 자원을 좀 더 많이 제공하려는 경쟁시스템이 진화할 것임. 그 결과 좀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배우자 유대가 진화하여, 수컷은 자녀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투자하게 될 것이다. 수컷의 생식투자가 확대되면 무기력한 새끼의 진화가 촉진되며, 그 새끼들을 양육하려면 수컷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신조류의 수컷 페니스 상실에서 비롯된 암컷의 성적 자율성 확대를 통해, 양육투자를 둘러싼 수컷과의 갈등이 극복될 수 있었다.
- 우리는 바우어가 수컷 바우어새의 확장된 표현형의 구성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확장된 표현형이란 도킨스가 동명의 저서에서 내세운 용어인데, 도킨스는 그 책에서 '생물은 DNA 발현에 의해 생성되는 단백질, 해부학적 구조, 생리학, 행동 이상의 확장된 표현형을 갖는다'고 주장. 그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의 완전한 표현형(확장된 표현형)에는 유전체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 결과가 포함되며, '생물이 환경에 미치 영향'도 이에 해당함. 그렇다면 비버의 댐도 비버의 확장된 표현형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댐으로 인해 생신 연못에 토사가 점차 흘러들어와 습지가 형성되면 생태계가 크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 모든 생물이 만드는 건축물은 그것을 건설한 종의 확장된 표현형이며, 모든 생물은 다른 종의 확장된 표현형을 집어삼키거나 보호하도록 진화할 수 있다. '멀리까지 세력을 미치는 유전자'라는 부제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도킨스는 확장된 표현형의 모든 구성요소를 이기적 유전자에 작용하는 적응적 진화의 힘이 추가로 작용한 결과물로 간주. 도킨스는 확보부동한 신월리스주의자로서, 확장된 표현형은 확장된 프런티어며, 우리가 거기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적응적 자연선택의 보편적 효과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장식용 성적과시도 확장된 표현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면, 바우어는 자연선택이 아니라 성선택에 종속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확장된 표현형은 이 대목에서 해묵은 논쟁과 불가피하게 직면하게 되는데, 여기서 해묵은 논쟁이란 배우자 선택, 성선택, 그리고 자연선택을 둘러싼 다윈-월리스 논쟁을 말한다. 확장된 표현형은 오로지 적응적 자연선택에 의해서만 형성될까, 아니면 별의별 아름다움에 의해 형성될 수도 있을까? 만약 별의별 아름다움이 확장된 표현형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진화적 패턴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바우어새와 그들이 지은 바우어는 비월리스적 패러다임이 아름다움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조사할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진호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다행스럽게도, 바우어새과에는 충분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 오리와는 달리, 수컷과 암컷 바우어새는 엄청난 대가를 군비경쟁으로 치닫지 않았다. 암컷은 방어수단을 진화시키는 대신, 수컷의 미적 속성에 선택권을 행사함으로써 암컷의 성적 자율성을 향상시키고, 성적 강제의 위험과 비용을 감소시키는 쪽으로 진화했다. 성 갈등에 대한 이처럼 독특한 진화적 반응은 내가 미적 리모델링이라 부르는 과정의 한 가지 사례다. 미적 리모델링이란 성적 과시행동과 그에 대한 선호가 공진화함으로써 성적 선택의 자유가 증가하는 것을 말함. 바우어새의 경우, 미적 리모델링은 수컷의 구애용 구조물의 혁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런 변화들이 모두 그렇듯, 혁신적 구애용 구조물은 맨 처음 우연히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아마도 구애장소를 장식하는 과정에서, 방어를 짓는 새들의 초기 조상들은 막대기 몇 개를 물어다 녹색 잎이라는 표준 레퍼토리 위에 얹었을 것이다. 막대기를 배치하는 방식이 조금 바뀌어 기본적 가리개가 탄생했고, 이것은 암컷을 위한 성적 학대의 피난처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임. 따라서 이 같은 막대기를 모으는 새들은 암컷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을 것임. 왜냐하면 그들이 지은 바우어의 전구체가 그녀들에게 평가와 선택의 기회를 확대해줬을 것이기 때문. 암컷에게 미적 구조물을 제공하는 것의 성적 이점은, 계속 증가하는 수컷 자손들에 의해 바우어 건축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독특한 진입로형 및 메이폴형 바우어가 진화했고, 두가지 유형의 바우어는 각각 다른 물리적 방법으로 암컷의 성적 안전을 향상시켰다. 바우어를 짓는 수컷을 방문한 암컷들은 오랜시간 동안 안전하게 머물며 수컷의 용모와 구애장소를 꼼꼼히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관적 감각경험과 판단의 기회가 많아질수록, 수컷의 신체행동 및 과시행동과 확장된 표현형의 건축적, 장식적 특징에 근거한 성선택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결과적으로 수컷의 과시행동과 바우어의 건축 및 장식은 암컷의 배우자 선호와 함께 공진화하여, 좀 더 정교하고 복잡하고 종별로 다양해졌을 것이다.
- 암컷 마나킨새들의 배우자선택은 자신의 성적 욕망과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 평소에 거의 마주칠 일조차 없는 수컷들만의 세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수컷들의 구애행동 자체는 물론 그 많은 종에서 발견되는 놀랍도록 많고 다양한 협응적 과시행동이 진화했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 발간된 지 거의 1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새들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심미적이다. 물론 인간은 제외하고 말이다'라는 다윈의 말이 과연 적절했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만약 한 개체나 종의 미적 성과를 '미적 표현에 투자하는 에너지와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마나킨새가 인간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마나킨새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컷들은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고난도의 안무가 수반되는 노래와 댄스를 리허설하고, 완성하고, 공연하는 데 소모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다윈도 마나킨새와 바우어새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영장류 중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암컷의 성적 장식물에 대한 수컷의 배우자 선호가 생명의 나무에서 뻗어온 인간가지(계통)에서 독특하게 진화한 것은 분명함. 수컷이 강력한 선호(까다로운 취향)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진부한 진화심리학의 뻔한 소리 중 하나(정자는 저렴하고 양이 풍부한데 반해 난자는 값비싸고 희귀하므로, 남성은 성적으로 헤프고 여성은 내숭 떠는 경향이 있다)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듯하다. 그런 고정관념의 폐해는 인간의 행동심리를 어설프게 반영하는 시늉만 할 뿐, 실상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남성의 헤픔과 여성의 내숭이라는 적응주의적 설명이 널리 퍼진 게 신기할 정도로, 남성과 여성이 평생 상대하는 성생활 상대의 수는 평균적으로 사실상 별반 다르지 않다.
- 짝짓기가치의 개념의 문제점 중 하나는 성적 매력의 이면에는 단순한 섹스어필을 넘어서는 커다란 가치가 도사리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가정에 의존하며 임의적인 미적형질의 섹스어필 가능성조차 배제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진화심리학자들은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과 같아서, 모든 진화한 장식의 배후에는 뭔가 외재적인 가치(이를테면, 좋은 유전자라든가 직접적인 혜택이 잔뜩 들어 있는 진화적 금 항아리)가 숨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성적 매력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개체는 어떤 면에서든 객관적으로 우월하다고 가정한다. 인간의 배우자 선택은 적응적이라는 생각을 지탱하려고 노력하는 연구자들은 부지기수지만, 적응적 배우자선택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함. 예컨대, 보편적으로 선호되는 낮은 허리/엉덩이 비율은 여성의 유전적 자질이나 건강과 실제로 관련되어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제시된 증거는 가설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 신념에 바탕을 둔 배우자선택의 적응적 능력에 대한 열광을 잠재울 방법은 별의별 아름다움이라는 영가설을 수용하는 것밖에 없다. 별의별 아름다움 가설은 인간 여성의 성적 장식은 인간 남성의 성적 신호와 함께 임의적으로 공진화한 것이지, 유전적 자질이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별의별 아름다움 모델이 정직한 광고의 가능성을 덮어놓고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아름다움 뒤에 숨어 있는 진화적 금 항아리의 존재를 좋은 과학을 통해 뒷받침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적 열광에 휩싸이지 말고, 제대로 된 가설검증 절차에 따라 영가설을 정식으로 기각하라는 것이다. 지금껏 별의별 아름다움 가설에 입각한 설명보다 훌륭한 것은 없었다.
- 만약 구약성서 창세기가 아담의 음경골 상실을 신의 행동으로 설명한다면, 진화생물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할까? 인간의 페니스를 전반적으로 다루거나 음경골의 상실을 특별히 다룬 진화심리학 이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한 용감한 생물학자가 총대를 메고 나서서 관심을 끈다. 그는 바로 리처드 도킨스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인간의 페니스가 음경골이 없는 쪽으로 진화한 이유는, 페니스가 남성의 건강과 유전적 자실을 나타내는 정직한 지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진단을 잘하는 의사처럼 가장 건강한 남성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여성은, 자녀에게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주는 경향이 있음. 자연선택 덕에 그녀들의 진단기술이 예리해져서, 페니스의 생김새와 각도만 봐도 남성의 건강과 스트레스 대처능력에 관한 온갖 단서들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이다. 그러나 페니스에 뼈가 있다면 여성의 판단력이 흐려진다. 페니스 속에 뼈가 들어 있다면, 특별히 건강하거나 강인하지 않은 남성도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성으로부터의 선택압이 남성에게 음경골을 상실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실제로 건강하거나 강인한 남성만이 페니스의 진정한 강직도를 선보임으로써, 여성이 올바르게 진단할 수 있을테이 말이다. 만약 당신이 내 페니스 가설의 논리를 수긍한다면, 남성은 음경골을 상실함으로써 수세에 몰리게 되었으며, 그게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게될 것이다. 유압식 발기 메커니즘만큼 남서의 건강과 강인함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은 없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말하자면, 도킨스 자신도, 자하비의 핸디캡 원리와 좋은 유전자간의 관련성을 설명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궁리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뿐이므로, 내 가설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인정했음. 그러나 도킨스가 '내 아이디어의 설득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애교로 봐달라'라고 꼬리를 내린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적응적 배우자 선택이라는 분야 전체를 깎아 내리는 폭로를 한 셈이 된다.
- 도킨스 자신도 자신의 가설(남성들이 여성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음경골을 상실했다는 가설)을 가리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심리학자들은 그의 페니스 핸디캡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도킨스의 가설에는 훨씬 더 받아들일 만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음경골의 진화적 상실이 여성의 배우자선택을 통해 일어났다는 미학적으로 완벽한 제안이었다. 요컨대, 정직한 광고가설과 수컷 간 경쟁이론에 대한 대안은 음경골 상실, 페니스 크기 증가, 페니스 형태 변화는 모두 (여성들이 임의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미적 선호를 통해 공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여성들은 왜, 길고 두껍고 독특한 형태의 페니스를 선호한 걸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방면에 걸친 성적 쾌락이다. 인간의 페니스는 복잡한 성적 장식물로, 그 다양한 특징은 두가지 독특한 감각양상, 즉 시각과 촉각을 통해 경험하도록 진화했다. 그리하여 상호적이고 친밀한 터치를 통해 시각적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공감각적 장식물로 빚어졌다. 다른 말로 하면 생식기에도 별의별 아름다움이 다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특징들은 '인간은 음경골과 그로 인한 페니스 회수기능을 상실한 덕분에, 다른 영장류들과 달리 발기하지 않았을 때 페니스가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발기하지 않은 페니스는 회수되어 자취를 감추지 않고 매달려 있으므로, 다른 영장류의 페니스보다 더 크고 길어보임. 따라서 음경골 상실과, 페니스 크기의 점진적 증가는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둘 다 매달린 생식기 과시에 대한 여성의 짝짓기선호의 결과물이다. 남성의 매달린 생식기는 지난 500만년간 두발보행이 진화하면서 점점 더 돋보이는 과시형질로 진화했다. 완전히 매달린 생식기의 미적기능은, 인간의 음낭이 다른 영장류의 음낭보다 더 축 늘어져 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고릴라와 오랑우탄은 외부로 돌출된 음낭이 없으며, 침팬지는 축 늘어진 음낭과 매우 큰 고환을 가짐. 그러나 인간은 침팬지보다 훨씬 더 크고 낮게 늘어진 음낭을 갖고 있어, 일견 역설적 현상(고환의 점진적 축소 대 음낭의 점진적 확대)을 보여줌. 왜냐하면 인간의 고환은 침팬지보다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인간의 음낭이 지나치게 커서 고환을 수용하고도 남는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이것은 생리적 기능때문이라기보다 여성들의 선호가 반영된 결과로 보임. 즉, 여성들은 팽팽한 음낭보다 축 늘어진 음낭을 선호했기 때문에, 남성의 음낭이 필요이상으로 커진 것이다.
- 인간여성은 다른 암컷 유인원들과 달리 은폐된 배란을 진화시켰으므로, 개별적 섹스가 수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음. 따라서 인간은 단순한 짝짓기 선호가 아니라 반복적 짝짓기 선호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반복적 짝짓기 선호는 섹스 자체의 감가경험에 기반을 두므로, 인간 남성의 생식기 진화에 관한 완벽한 미적 이론은 두 가지 요소에 대한 평가로 구성된다. 그중 하나는 성교 전에 평가될 수 있는 매달린 페니스와 음낭이며, 다른 하나는 성교도중에 평가될 수 있는 발기된 페니스의 크기와 형태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진화 메커니즘은 여성을 행위주체로 간주하며, 성적으로 수줍어하는 여성이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는 것이다.
-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 차이는 남성의 경우에는 쾌락의 진화가 배관기능에 대한 자연선택에 의해 제한됐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성의 성적 취향은 가까운 유인원 친척들보다 훨씬 더 까다로우며, 남녀 모두 배우자 선택에서 선보였던 까다로운 취향이 유인원들보다 훨씬 많은 성적 쾌락을 경험하도록 진화하는 행운으로 이어졌음. 이런 면에서 볼 때, 남성과 여성은 한통속이라 할 수 있다. 남녀의 상호적 배우자 선택이 작용하여 쾌락의 강도와 질을 높이는 성적 상호작용을 촉진함으로써, 양쪽의 오르가즘이 모두 정교화되는 결과를 초래했을 것임.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도 2000년 발간한 The mating mind에서 인간의 오르가즘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피셔의 폭주과정이 수행한 역할을 강조. 그러나 미학적 사고가 영 못마땅했던지, 밀러는 그 과정을 페니스와 클리토리스 간의 자극적 군비경쟁으로 상정. 이 안타까운 경쟁적, 군사적 비유는 남녀의 오르가즘이 갖는 포괄적, 쾌락적, 감각적 차원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페니스의 형태와 성행동에 나타난 변화는 여성의 욕구에 의해 추동되었지만, 그게 남성의 성적 쾌락을 증가시켰으면 증가시켰지 전혀 감소시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르가즘의 진화는 양성간의 전쟁의 결과가 아니라, 미학적, 공진화적 야합이라 해야 옳다.
- 암컷 오리들이 진화시킨 이처럼 정교한 질 형태은 불행하게도 큰 단점이 하나 있었다. 왜냐하면 암컷의 방어능력과 수컷의 강압적 도구 및 능력 사이에서 점점 큰 비용이 필요하게 되면서, 점차 가속되는 성적 군비경쟁이 초래되었기 때문. 그러므로 물새류 전체의 생식성공은 고통과 맞바꾼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편 바우어새와 마나킨새의 경우에는 성적 군비경쟁을 용케 피할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은 심미적 배우자선택을 통해 수컷들을 특정한 방향(암컷의 성적 자율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개조한 것이었음.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컷의 강제력을 제한하는 위력을 발휘한 공진화 댄스가 비리비리한(사회적으로 지배하거나 다루기 쉬운) 수컷에 대한 암컷의 짝짓기 선호로 귀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암컷들은 빠릿빠릿한(극적이고 정교하고 복잡하고 감각적인 과시행동을 펼치는) 수컷에 대한 선호를 지속해서 진화시킴. 사실 암컷의 관점에서 볼 때, 수컷 위에 사회적으로 군림하는 것은 진화적 이점이 없다. 암컷에게 진화적으로 득이 되는 것은 성적 선택의 자율성이 확대되는 것이며, 그 열매는 매력적인 자녀의 탄생이라는 생식성과로 나타남. 인간 여성의 성적 자율성에도 이와 똑같은 원리가 훨씬 더 심오하게 적용됨.
- 자신과 비슷한 몸집을 가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짝짓기 선호와 마찬가지로, 위축되고 무뎌진 송곳니를 가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짝짓기 선호는 여성의 선택의 자율성을 향상시켰을 것임. 남성의 무기가 작고 무뎌지면 남성의 강제력 및 영아살해의 효율성이 떨어져, 여성이 성공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기회는 더욱 증가. 작은 송곳니를 가진 남성을 선호하는 여성은 간접적, 유전적 혜택도 누리는 데, 그 내용인 즉 아빠를 닮은 매력적인 아들이 탄새앟여 다른 여성들의 자유로운 선택기회가 보다 많아진다는 것. 그리하여 여성의 짝짓기 선호는 여성의 사회적, 성적 자율성을 미적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했음. 몸집의 성적 이형성이 감소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송곳니의 무장해제가 비리비리하고 겁 많고 순종적인 남성의 탄생으로 귀결되지는 않음. 그와 반대로 여성의 짝짓기 선호는 매력적인 남성형질을 지속적으로 진화시킴. 여성이 남성을 개인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진화적 이점이 전혀 없으며, 진화적으로 유리한 것은 오로지 선택의 자유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적응적이 아니어서, 인간과 환경 사이의 적합성이 조금도 향상되지 않음. 인류가 이런 방향으로 진화한 이유는, 여성의 성적 자율성이 남성의 성적 강제로 인한 피래를 감소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아의 생존율이 증가하고, 여성의 직접적 피해가 감소하고, 개체군의 성장률이 증가했다.
- 사실상 모든 인간 사회와 환경에서, 남성은 식생활, 경제적 자원, 보호, 혈연관계, 정서적 관계라는 형태로 실질적 양육투자를 분담함. 따라서 인간 특유의 자녀양육 패턴인 협동적 자녀양육은 인간의 생식생물학과 관련된 제2의 중요한 혁신으로, 여기에는 진화적 설명이 필요함. 남성의 영아살해를 감소시키거나 제거하는 데 충분한 성적 자율성을 획득한 후, 여성의 조상들은 다른 성갈등 영역에서 추가적인 혜택을 확보하기 위해 배우자선택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기 시작. 특히 여성의 선택은 직접 감지할 수 있는 배우자감의 신체적 특징을 넘어 광범위한 사회적 성격과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고, 궁극적으로 남성의 양육투자를 진화시키기에 이름. 이러한 개혁에는 섹스 자체의 미적 확장이 수반되어, 섹스는 좀더 빈번하고, 오래 지속되고, 복잡하고, 다양하고, 쾌락적이고, 매력적이고, 생식과 덜 관련되고, (은폐된 배란 탓에) 부권이 모호하고, 새로운 정서적 내용과 의미를 갖게 됨. 사교성이 뛰어나고 대인관계가 좋은 남성배우자들이 여성들에게 선택됨에 다라, 남성들은 배우자와 자녀를 위해 새로운 재생산 투자(식생활, 보호, 협동적 사회관계)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점차 진화. 궁극적으로 남성의 재생산 투자는 (까다로운 여성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남성들 간의 경쟁을 통해 진화했고, 그로 인해 지속적인 성접촉 기회와 (배우자 유대에 수반하는) 사회적 관계를 얻게 됨. 물론 자녀에 대한 남성이 재생산 투자는 자녀의 건강, 웰빙, 생존능력을 향상시켜, 그들이 성적으로 성숙하여 생식이 가능한 연령에 도달하도록 도와줄 것임. 또한 배우자에 대한 남성의 재생산 투자는 여성의 생존, 웰빙, 생식능력을 향상시켜, 그녀의 출산간격이 단축되고, 평생의 생식성과가 향상되도록 도와줄 것임. 인간이 개체군 성자능력이 다른 유인원들을 크게 앞지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출산간격 단축 덕분이었음. 따라서 남성의 자녀양육은 여성의 배우자 선택이 얻어낸 적응적이고 직접적 혜택인 셈이다.
- 남성의 동성간 성행동이 (여성이 사회적, 물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나약하고 수동적이고, 여성적이고 무기력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선호를 통해 진화해다고 시사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여성의 이러한 선택 메커니즘은 남성의 강제적 성적 지배의 효율성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려, 장차 배우자 선택으로 인한 수정이 전체 수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성적 강제로 인한 수정의 비율은 여성 선택의 성공가능성을 높여, 성적 자율성을 눈덩이처럼 부풀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
- 미적 이론에 따르면 여성의 배우자 선택은 남성의 사회행동을 개조하여 여성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틀을 넘어서게 하느데, 이는 집단적 구애행동을 하는 새들에게 발견된 과정과 정확히 일치. 암컷 마나킨 새의 배우자 선택은 수컷의 사회적 경쟁을 본질적으로 바꿔, 브로맨스를 로맨스 성공을 위한 열쇠로 만들었다. 인간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동성 간 성행동은 이러한 암컷에 의해 추동되는 수컷의 사회관계의 미적 리모델링의 또 다른 형태이자, 수컷의 성적 강제라는 문제에 대한 또 다른 진화적 해답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동성간 성행동이 반 강압적,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는 보노보에서 발견됨. 보노보는 계통수상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 중 하나로, 빈번하고 자유분방하고 대체로 비생식적인 섹스로 유명. 보노보들의 섹스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보노보 사회는 눈에 띄게 평등하고 평화적임. 암수 보노보의 현격한 신체적 차이는 인간보다 두드러지지만, 보노보 사회는 거의 완벽한 성적 강제의 부재로 유명하다. 따라서 보노보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증명함. (1) 동성간 성행동은 영장류 수컷의 성적 위계질서와 성적 통제를 약화시킨다. (2) 암컷의 동성간 성행동은 암컷의 사회적 연대를 강화함과 동시에 수컷들 간의 성적, 사회적 경쟁을 감소시킨다. (3) 수컷의 동성간 성행동은 경쟁을 완화하고 그룹의 사회결속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기능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보노보의 동성간 성행동은 인간과 무관한, 매우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진화
- 인간의 동성간 성행동은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통해 진화했다는 가설은 인간의 성적 신호 및 행동의 다양성에 대한 수많은 증거와 부합. 그러나 이 가설은 많은 문화권에서는 남성의 동성간 성행동이 여성의 사회적, 성적 자율성의 심각한 제한과 공존한다는 관찰과 일견 상반되는 듯 보임. 하지만 그런 문화적 사례는 지나치게 예외적이므로, 이 가설을 기각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런 문화권에서는 구성원 간의 관계가 연령별, 신분별로 엄격히 구조화되는 게 상례이므로 모든 사회행동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동성간 성행동도 구조화된 관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동성 간 성행동에 참여하는 남성들은 사회적 갑과 을로 구성됨. 일부 문화권에 확립된 경직된 위계질서는, 동성간 성행동을 남성의 강압적 위계질서에 편입함으로써 자율성 향상이라는 동성간 성행동의 본질을 흐리는 문화적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임
- 벌린에 따르면 지적인 두더지는 조화로운 우주를 탐구한 나머지, 하나의 중심시만을 가진 렌즈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본다. 두더지의 지적 임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위대한 시각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지적인 여우는 단일화된 생각의 매혹적인 힘에 전혀 무관심. 여우는 그 대신, 매우 다양한 경험의 절묘한 복잡성에 이끌린다. 즉, 그는 다양한 경험을 하나의 포괄적 틀에 꿰어 맞추려고 시도하지 않음. 임무수행에 충실한 두더지와 달리, 여우는 즐겁게 노니는 데 치중.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갖고 놀던 장난감을 아무 데나 내팽개치고 새로운 놀이를 시작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벌린이 말한 두더지와 여우의 지적 스타일은, 자연선택 개념의 공동 발견자들에 관한 통찰을 제공. 단도직입적으로, 다윈은 여우고 월리스는 두더지라 할 수 있다 . 두 사람 모두 자연선갱에 의 한 적응적 진화의 메커니즘을 직감했지만, 그 핵심적 통찰을 정교화한 방법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다윈은 자연계에서 관찰한 현상이 다양성을 이루기 위해, 계통발생, 성선택, 수분에 대한 생물학 이론을 추가로 제시했으며, 심지어 (지렁이의 생태학적 영향에 대한 연구에서)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이론까지 제시. 다윈이 다방면으로 제시한 이론들은 각각 미묘하게 다르므로, 저마다 새로운 논증, 사고방식, 데이터가 필요했다. 반면 원리스는 광범위한 실증연구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다윈주의를 확립하는 데만 주력. 그리하여 월리스의 이론에서는 모든 생물학적 진화가 증류되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이라는 하나의 전지전능한 설명으로 응축됨. 진화생물학에서 벌어지는 두더지와 여우간의 갈등은 오늘날까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여우에 해당하는 다윈주의의 하위분야인 진화발생생물학, 일명 이보디보는 두더지에 해당하는 적응주의자들이 지배했던(사실상 독점했던) 진화생물학에서 제자리를 되찾기 위해 노려해왔음. 나는 이 책에서 다윈의 미적 진화이론이 진화생물학에 복귀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보디보와 미적진화이론이라는 두가지 하위 분야는, 적응과정을 마치 법칙처럼 일반화하는 것을 지양하고 다양성(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개별적 사례)에 주목한다.
- 인간의 미적 리모델링이 여성의 성적 자율성을 크게 발달시킨게 사실이지만, 뒤이어 진화한 인간의 문화가 성 갈등의 새로운 문화적 메커니즘을 등장시켰다. 다시 말해 남성의 권력, 성적 지배, 사회적 위계질서(가부장제)라는 문화적 이데올로기가 발달하여, 여성의 성적 자율성 확대에 대한 대응조치로 수정, 생식, 양육투자에 관한 남성의 지배권을 재확립한 것이다. 그 결과, 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한 인간의 성갈등이라는 새로운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침팬지아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이후 수백만년 동안 발달한 여성의 성적 자율성은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두가지 문화혁신의 도전에 직면. 하나는 농업이고, 다른 하나는 농업과 함께 발달한 시장경제다. 이 쌍둥이 혁신은 우리 조상들이 궁핍한 생활을 영위하던 600세대 이전에 나타나 부를 창출하고 차별적으로 분배할 기회를 창조. 남성들이 이러한 기회를 틈타 물질자원에 대한 문화적 통제권을 장악하자, 남성의 사회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새로 창출되었다. 전 세계의 많은 문화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고안된 가부장제는, 여성의 삶 중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한 통제권을 남성에게 넘기는 기능을 수행해옴. 요컨대 현대 여성들이 과거에 진화를 통해 얻은 성적 자율성을 완전히 향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주범은 가부장제라는 문화의 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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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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