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와 인터넷이 나오기 이전의 세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은 인쇄된 책이 우리에게 엄청난 상상력을 가능케 했다는 사실 을 강조하면서 지금의 지적 파편화를 안타까워 하지만, 인쇄된 책이 그 이전의 구술문화oral culture가 지녔던 독특한 상상력의 세 계를 소멸시켰고 이를 안타까워했던 사람들도 과거에 많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기술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하 는 방식을 바꾼다. 새롭게 도입된 기술은 우리를 둘러싼 '기술 환경' 을 바꾸고, 결과적으로 사회 세력들과 조직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바뀐다. 새로운 기술 때문에 더 힘을 가지게 된 그룹과 힘을 잃게 된 그 룹이 생기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구조의 변화가 수반된다. 이렇게 변화된 사회구조는 다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을 만든다. 기술 중에는 우리가 잘 이해하고 통제하는 기술 도 있지만, 대규모 기술 시스템은 한두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통 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에 기술은 그 내적 논리에 따라 발전하 고,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기술이 언제나 사람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믿다가는 기술의 지배와 통제를 벗어나기 힘들다. 기술이 살아 움직이면 서 인간을 지배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술로 인해서 더 큰 권 력을 얻는 사람들이 기술을 통한 암묵적이고 보편적인 지배와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기술에 대 한 철학과 사상이, 그것도 비판적이면서 균형 잡힌 철학과 사상 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술에 대한 이 해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바로 통해 있는 것이다.
- 기술사학자인 바살라는 『기술의 진화』(1988)라는 책에서 “필요는 발 명의 어머니" 라는 말은 통념일 뿐이 라고 주장한다. 가령, 19세기 중엽 에 영국의 한 도시에서는 500종의 망치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굴뚝 불 꽃 장치가 무려 1,000종이나 존재 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발명에 집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까운 예들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천만 화소까지 늘려야 할 필요가 있는가? 용도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 5~600만 화소면 충분하다. 또한 두께가 7mm인 초박형 휴대 전화는 과연 사용자에게 필요한가? 너무 얇으면 오히려 만족도 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휴대전화 회사들은 서로 군비경쟁 을 한다. 이런 예들을 통해 볼 때 인간의 기술은, 바살라의 말대로, 필요의 산물이 아니라 "잉여의 산물” 이다. 통념과는 다르지만, 변이가 발생하는 방식은 생물체나 기술이나 비슷하다.
- 장자의 기계론과 포정해우
장자의 기계론에 대한 일화는 자공子貢이 초楚나라를 여행하고 진晉나라로 돌아가는 도중 한수漢水 남쪽에서 밭일을 하는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 일화에 등장한다. 『장자』 천지天地편에 나와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기계機械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에 의한 일이 생겨나고, 기계에 의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런 마음이 심중에 있으면 순수한 본 연적 자연스러움이 없어지게 되고, 순수한 본연적 자연스러움이 없어지게 되면 정 신의 작용이 불안정하게 된다. 정신의 작용이 불안정하게 되면 도가 깃들지 않는 다.”
포정해우에 대한 글은 『장자』 양생주生主 편에 보인다.
문혜군이 말했다.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 하는 것은 도道인데, 이것은 기술에서 더 나아간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해부하던 때에는 눈에 비치는 것이 온전한 소 아 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뒤에는 온전한 소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신神을 통해 소를 대하고,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의 지각 능 력이 활동을 멈추고, 대신 신묘한 작용이 움직이면 자연의 결을 따라 커다란 틈새 를 치며, 커다란 공간에서 칼을 움직이되 본시 그러한 바를 따를 뿐인지라 경락經絡 과 긍경이 칼의 움직임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데 하물며 큰 뼈이겠습니까? 솜씨 좋은 백정은 일 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살코기를 베기 때문이고, 보통의 백정은 한 달에 한 번씩 칼을 바꾸는데 뼈를 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칼은 19년이 되었고, 그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인데도 칼날이 마치 숫돌에서 막 새로 갈아낸 듯합니다.”
- 사진은 아마도 전통 예술에 가장 커다란 변혁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화가는 이제 더 이상 사진에 몇 번이나 찍힌 적이 있는 세계를 그릴 수 없게 되었다. 대신 화가는 인상주의와 추상주의를 통해 창조의 내적 과정을 표현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소설가도 사진, 출판물, 영화, 라디오 등을 통하여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이나 사건들을 더 이상 묘사할 수 없게 되었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우리가 통찰력을 얻을 수 있고 우리 자신과 우리 세계를 만들게 하는 정신 내면의 움직임 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하여 예술은 외부 세계를 모사하는 것에서 내면을 창조해내 는 것으로 방향을 돌렸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그대로 묘사하는 대신, 예술가들은 대중들의 참여를 위해서 창조적 과정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마샬 맥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 현대 기술은 자연에게 에너지와 원자재를 내놓으라고 강요(닦 달)한다. 현대 기술 앞에서 모든 존재자는 필요하면 언제라도 갖 다 쓸 수 있고 대체와 변형이 가능한 “부품이 되어 버린다. 강 에 수력 댐이 건설되고 나면, 강물은 에너지 공급의 지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강의 흐름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부적합하다면 그 물줄기의 흐름을 강제로 바꿀 수도 있다. 수많은 전설이 숨어있던 울창한 숲은, 이제 신문을 만들 종이의 재료의 생산공장 취급을 받는다.
- 옛날의 기술은 그렇지 않았다. 농사를 지을 때 농부들은 씨에 게 강요하지 않았다. 농부의 역할은 씨가 절로 나서 자라는 것 을 잘 돌보는 것이었다. 농부에게 밭은 한 알의 씨를 많은 곡식으로 바꾸어내는 공장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 신의 섭리가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이 드러남' 을 하이데거는 탈은폐' 라 부르 는데, 탈은폐의 또 다른 예들로 장인이 제사에 쓸 성배를 만드는 것이나 자연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 등이 있다. 강 위에 놓 인 소박한 나무다리는 강의 흐름에 맞추어서 설치되기 때문에, 다리를 만들면서 강의 흐름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해준다. 그 다리는 강을 건너기 위해 만들지만, 강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는 그 행위를 통해 강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전에는 익명의 존재였던 강 건너 마을이 이웃으로 드러나기 도 하는 것이다.
- 이처럼 기술은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 사용하는 것 이 맞지만, 동시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이데거는 기술 을 인간의 도구로 보는 인간적, 도구적 정의가 맞기는 하지만 기술의 본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한다. 기술은 인간에게 완 전히 종속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새로운 무엇인가를 제시하 고, 인간의 목적을 이루면서도 새로운 계기들을 만들어낸다. 그 래서 하이데거는 기술이 예술과 더불어 숨겨진 진리가 드러나 는 통로라고 보았고, 이를 '존재가 자기 자신을 내보이는 한 방 식' 이라고 표현했다. 현대 기술 역시 인간적, 도구적 정의로 규정될 수 없다. 현대 기술도 전통적 기술과 마찬가지로 한편으로는 인간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이면서, 그 행위를 통해 인간과 인간의 목적을 넘어 서는 무엇인가를 드러낸다. 닦달'은 전통적 기술의 드러냄과 구별되는 현대 기술의 드러냄의 방식이다.
- 닦달로서의 드러냄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현대 기술과 하이데거 존재철학의 연결점을 보게 된다. 하이데거의 핵심 사상은 존재와 존재자의 구별이다. 본래 존재 론, 혹은 형이상학의 물음은 동사적 있음' 에 대한 관심, 즉 한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들과 더불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 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플라톤 이래로 서양 형이상학이 언제나 존재자, 즉 있는 것' beings들에 대한 것이었 지 동사적 의미에서의 존재, 즉 '있음' Being에 대한 것이 아니었 다. 다시 말해서, 신, 인간, 자연이 존재하는 방식을 묻지 않고, 그것들을 인간 인식의 대상, 즉 '있는 것' 들로만 파악하였다. 플라톤이 모든 사물의 이데아, 곧 불변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물 었던 것이나, 중세의 신학자들이 신의 본성을 물으려 했던 것은 있음 보다는 '있는 것' 에 치중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태도는 근대에 와서 훨씬 더 심화되었다. 근대의 사상 가들은 존재자들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신비롭고 초월적인 질 서나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진리가 있음을 부인하고, 이성적인 인간 주체를 절대화했다. 근대 과학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근본에 깔려 있는 자연법칙을 밝혀내면 진리의 주인이 되는 것이 라 생각했다. 이렇게 모든 관심이 존재자들에게 쏠리면서, 존재 에 대한 물음은 그만 망각되고 말았다. 그러나 존재자에 대해 안다고 해서 존재를 아는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자 중심의 사유가 극에 달한 것이 바로 현대기술이다. 현대 기술은 농부처럼 씨가 자연적으로 자라 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농약을 뿌리고 온도를 포함한 모든 조건 을 임의로 조절해서 생산량을 억지로 높이고 필요하다면 유전자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식품 생산시스템 하에서는 모든 조건들이 통제되고 생산 증가와 무관한 부분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농법에 녹아 있는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요소들이 배제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바로 현대 기술의 닦달이 가지는 문제점이다.이러한 닦달의 대상은 자연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술사회에 서는 인간도 부품처럼 취급받는다. 사람을 인간자원human resource 이라 부르고, 고용한 사람을 해고할 때는 구조 조정' 이라 부른다. 가구를 재배치하는 것처럼 사람을 재배치하고, 새로운 구 조'에 불필요한 사람은 버린다. 근대 이후의 인간은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인간 자신마저 포함되어 스스로 지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현대의 인간은 눈부신 성취를 이룩했지만 공허함에 허덕이고, 끊임없이 지배욕을 충족시 키려 애쓰면서도 권태에 빠진다. 근대에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 했던 결과로 자연의 다른 존재자들을 학문과 응용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결국 스스로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주체는 없어지고 지배하려는 의지만 남은 셈이다.
기술은 우리가 보는 세계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아이디는 그의 저서 『도구적 실재론』(1991)에서 기술시대의 인간이 이전의 인간과 다르다고 봄으로써, 기술이 인간의 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인정한다. 현대 실 험수학자들의 컴퓨터 작업에 관한 다음의 요약 인용은 아이디의 이런 점을 잘 드러 낸다. "우리는 지도의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볼 때마다 오직 불규칙성만을 볼 뿐이다. 하지만 수학자 만델브로트Benoit B. Mandelbrot는 컴퓨터 모의실험을 통해 이를 지각 가 능한 패턴으로, 즉 불규칙한 해안선이 아니라 프랙탈 규칙성을 지닌 해안선으로 보 여주었다. (중략) 즉 기술시대 이전의 인간이 단지 해안선을 불규칙한 것으로 보았 다면, 기술시대의 인간은 인간과 컴퓨터의 공생적 관계에 의거하여 해안선을 프랙 탈 규칙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세계는 결코 인간 앞에서 동 일하지 않다.” (돈 아이디, 1991, Instrumental Realism, Indiana Univ Pr., p.79)
- 에디슨이 처음 축음기를 발명했을 때는 이 첨단 기기가 매우 진지하게 사용될 것 을 기대했다. 물론 에디슨도 원칙적으로 이 기계가 태엽으로 감는 음악상자를 대신하는 장난감 등으로 사 용될 가능성을 예측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중요한 공적 메시 지를 기록에 남기거나 문서를 구술시키거나 역사적으로 기념비 적인 연설을 모아 대중강연의 기법을 가르치는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축음기가 음악을 재생하는 기구로 사용되기 시작할 때 기업가로서의 재능이 뛰어났던 에디슨은 금세 대중의 수용에 반응하여 레코드 회사를 만들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싸고 대중적인 원판형 기록매체로 넘어갈 때도 여전히 비싼 대신 고급스러운 실린더 형태의 기록매체를 고집 하면서 보다. '진지한 기록매체로서의 축 음기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축음기의 가장 일반적 용도는 기술개발자가 기대하지 못 했던, 대중들에게 소리로서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전화기의 개발자들도 처음에는 친구와 수다를 떠는 일과 같은 하찮은 일에 전화처럼 첨단기기가 사용되는 데 대해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심각한 기술을 사소한 용도에 사용했 고 결국 기술개발자들도 고집을 꺾고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기술 사용자는 기술의 용도만이 아니라 이후의 기술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축음기와 전화기의 경우는 기술의 예기치 못한 용도가 그래 도 '생산적인 다른 용도로 전환된 것에 해당된다. 하지만 기술 연구의 결과가 항상 이렇게 행복한 결말을 갖는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인류는 플라스틱의 내구성에 찬 탄을 보냈다. 이 놀라운 문명의 이기가 가진 '썩지 않는 장점이 미래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결정적 원인이 되리라는 점을 예 상한 기술자는 거의 없었다.
- 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한 가지 강력한 이론인 기술 결정론에서는 기술의 발전은 물론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이미 기술 속에 결정되어 있음을 강조한 다. 그 단어 자체에서 느낄 수 있듯이, 기술 결정론은 기술이 사회 변화의 작인 중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기술과 사회의 관계는 기술에서 사회로 그 영향력이 뻗치는 일방적인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 결정론자들은 어떤 특정한 기술의 영향은 어 느 사회의 경우나 동일하다고 간주한다. 기술 결정론에 의하면, 기술은 사회의 외부에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기후가 사회의 성격을 형성한다”는 19세기의 '기후 결정론' 과 같은 맥락이다. 이때 기후는 독립적인 요소에 해당되며 사회는 기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기술 결정론에서는 기술 그 자체가 사회와, 더 나아가 인간 과도 무관하게 발전한다고 간주하며, 심지어는 기술이 독자적 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가장 강한 기술 결 정론적 견해는 기술 변화가 사회 변화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모든 기술 결정론자들이 이렇게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만이 사회 변화의 요소라고 보는 입장을 "강성 기술 결정론” 이라 부른다면, 기술이 계급, 성gender, 법, 경제 등 다른 요소와 함께 사회 변화를 가져온다는 입장을 "연성 기술 결정론" 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강성 기술 결정론에서는 기 술이 역사 변화의 유일한 작인임에 반해서, 연성 기술 결정론은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요소가 포함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강성 기술 결정론자들 중에는 기술의 궤적이 예측 가능하 지만 통제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예측도 불가능하고 따라서 기술은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기술 결정론으로 많이 거론된 예가 서양 중세시대의 마구인 등자의 역할이다. 등자란 말을 타는 사람이 발을 고정시키는 마구의 일종인데, 등자가 도입되면서 말을 탄 채로 창이나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 가능해졌다. 결국 등자의 도입 때문에 기마충격전투를 담당하는 기병이 부상했고, 프랑크 왕국의 궁재 샤를 마르텔(charles Martel: 689~741)이 교회의 재산을 몰수해서 이들에게 주었으며, 이것은 이들을 중세 영주로 키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중세 영주를 중심 세력으로 한 봉건제도가 이렇 게 부상한 것이다. 결국 등자라는 작은 기술이 봉건제라는 거대한 사회 변화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주장은 중세 기술사를 연구한 린 화이트 주니어에 의해 제기되었다.
- 기술의 사회구성론은 기술 발전의 궤적이 이미 기술 내에 결 정되어 있다는 식의 기술 결정론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기술 의 사회구성론은 결정론적인 '본질주의' 를 비판하면서 기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회 집단들을 강조한다. 기술의 사회구성론(기술의 사회구성론은 그 영어 표현인 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의 앞글자를 따서 보통 SCOT이라고 불린다)을 정립하는 데 선구적인 연구를 한 과학기술학자 핀치rrevor Pinch와 바이커wiebe Bijker는 자전거의 변 천에 관한 사례 연구를 통해 기술의 구성 과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 자전거의 발달을 이를 둘러싼 사회집단의 맥락 속에서 분석해보면, 자전거의 초기 발전단계는 지금 우리가 사 용하는 표준 자전거로의 단선적 발전을 반영한다기보다, 오히 려 자전거라는 기술과 여러 사회집단, 그리고 풀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의 분산된 네트워크를 반영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공기타이어가 자전거에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초기에는 아무도 공기타이어가 자전거 설계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지 않았다. 기술자들에게 공기타이어는 매우 골치 아픈 문 제였고, 스포츠 자전거를 즐겼던 사람들에겐 쿠션을 제공하는 공기타이어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회집단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일한 기술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서로 다르게 파악하며 이에 대한 해결책도 다르게 제 시한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회집단들 사이에 는 그 기술이 가진 문제점과 해결책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갈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이 사법적, 도덕적, 정치적 성격을 띠는 복잡한 협상을 통해 해소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 하게 되면 안정적인 기술적 인공물의 형태가 선택된다. 그런데 사회구성론자들은 이 합의의 과정이 다시 사회적 과정임을 강조한다. 자전거의 경우에도 자전거 경주와 같은 사회적 요소 가 논쟁의 종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자전거 경주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공기 타이어를 장착한 안전 자전거가 다른 자전거보다 빠르다는 것이 경주를 통해 입증되 었다. 이 과정에서 초기 자전거 설계에서 중요하지 않던 속도가 자전거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새로이 부각되었는데, 그 결과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안전 자전거 쪽으로 경쟁이 종결되었다는 것이다. 기술 디자인을 종결하는 데 중요했던 또 다른 요소는 여성 자전거 애호가들이었다. 자전거를 격렬한 스포츠로 여기던 남성들은 큰 앞바퀴가 있는 자전거를 선호했지만, 여성들은 치마라는 복장 때문에 앞바퀴가 작고 타이어가 쿠션 역할을 해주는 안전 자전거를 선호했다. 그러므로 안전 자전거가 다른 자전거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은 기술적 논리(가령, 효율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집단, 이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자전거라는 인공물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나온 여러 가지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전 자전거가 다른 자전거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담론은 논쟁이 종결된 후에 그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 해서 재구성되었다는 것이 사회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 기술시스템 이론은 기술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 기 술의 역사에서 거론되는 유명한 인물들은 대부분 단편적인 기술을 넘어 기술시스템을 구성한 사람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에디슨은 백열등만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전기, 배 전기, 계량기 등과 같이 전력시스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적 요소들을 확보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는 전등의 연구개발, 전력 의 공급, 발전기의 생산 등을 담당하는 기업을 잇달아 설립하여 전기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전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인쇄술과 자동차를 포함한 다른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텐베르크 Johannes Gutenberg나 포드Henry Ford도 단순한 발명가가 아니라 시스템 구축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술시스템 이론은 주로 성공한 기술에 주목하면서 특정한 인물을 지나치게 영웅시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기술시스템 이론이 군사적 유비를 많이 활용 고 있다는 점이나 대기업의 성공을 합리 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기술시스템 이론은 기술 변화에 관한 대안적 해석에 해당한다. 즉, 기술이 사회 변화를 결정한다는 기술결정론과 사회적 이해관계가 기술을 형성한다는 사회결정론을 모두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기술시스템 내에 기술적인 것과 사회적 인 것이 녹아져 있으며 기술과 사회는 동시에 진화하는 것이다. 물론 기술시스템이 진화하는 단계에 따라 기술과 사회가 가진 영향력의 상대적 비중이 달라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예 를 들어, 초기 단계의 기술시스템에는 사회적 요소가 영향을 미 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반면, 성숙한 기술시스템의 경우에는 외부 환경의 개입이 축소되면서 자신의 발전 경로를 강화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숙한 기술시스템은 기술결정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자율성" 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휴즈는 “기술시 스템은 공고화된 이후에도 자율성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에 모멘텀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숙한 기술시스템을 변 경하기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과 무관한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휴즈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다. 그가 2004년에 발간한 저작이 “기술이 만든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세계 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 기술이 정치적이라는 명제를 조금 뜯어보면 그 의미 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분명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인공물인 기술이 어떻게 정치적일 수 있을까? 정치라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권력관계, 아니 넓게 보아도 사람들 사이의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가? 핵무기가 정치적 기술이라고 했는데, 핵무기를 구성하는 여러 부품들 중에 (핵탄두, 미사일유도장치, 로 켓, 발사장치, 운반장치, 제어 시스템, 통신 시스템 등) 어느 것이 정 치적인가? 기술 디자인을 잘게 쪼갤수록 기술이 정치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모호해진다. 그렇다면 기술이 정치적이라는 얘기 는 기술을 수단으로 사람들의 정치적 행위가 강화(혹은 약화)되거나, 변형되거나, 매개되는 것만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미국의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가 제공하고 있다. 그는 기술의 사용만이 아니라 기술 그 자체가 정치적일 수 있다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주장한다. 첫 번째 는 발명이나 디자인이 특정한 그룹의 이해를 대변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미국의 건축가 모제스Robert Moses는 뉴욕의 존스비치 공원 진입 고가도로 를 흑인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가 지나다닐 수 없도록 낮게 설계했 는데, 이런 경우는 기술이 백인들의 인종차별주의를 담는 식으로 디자인된 경우이다. 이러한 예는 기술사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기술사학자 데이비드 노블David Noble은 2차 대전 이후에 MIT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수치제어 공작기계가 특정한 정치적 이해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공작기계는 숙련노동자의 작업을 테 이프에 입력해서 작동되는 방식과 숙련노동자의 노 동에 의존하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수치제어 방식이라는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개발 가능했는데, 숙련노동자들의 노조를 무력화하길 원했던 GE사와 기계가 인간보다 훨씬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MIT | 엔지니어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공작기계가 전 자동 방식인 수치제어 쪽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발 된 수치제어 공작기계는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들의 이해를 충족했다고 할 수 있다.
- 기술이 정치적일 수 있는 두 번째 경우는 선천적으로 정치적인 기술이다. 위너는 이를 다시 두 가지로 나누는데, 그 첫 번째는 특정한 사회적 조건을 필요로 하는 기술이며, 두 번째는 특정한 사회적 조건과 더 잘 부합하는 기술이다.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은 반드시 중앙에서 이를 통제할 과학기술자 · 군인이라는 강력한 엘리트 그룹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경우가 전자 의 예이다. 반면에 태양력 발전이라는 기술은, 비록 분산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를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이런 사회와 더 잘 부 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예가 위너의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기술이다. 기술철학자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1960년대에 기술을 민주적 기술과 독재적 기술로 나누었고 현대 사회가 점점 독재적 기술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개탄했는데, 위너가 예로 든 핵발전소와 태양열 발전은 각각 멈포드의 독재적, 민주적 기 술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 번 민주적인 기술은 계속 민주적이고, 한 번 독재적인 기술은 계속 독재적인가? 노블이 분석한 수치제어 공작기계는 군산학복합체의 산물이었다. 이를 도입한 GE사는 숙련노동자들 의 힘을 약화시키길 꾀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의도가 생각대로 관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계가 도입된 뒤 매니저들은 기계공들의 임금을 삭감하였는데, 그 결과 기계공들은 일 할 동기를 잃었다. 또한 기계의 속도에 따른 기술적 어려움으로 인해 예기치 못했던 여러 문제가 발생했고 결과적으로 생산라인에서의 비효율이 초래되었다. 그리하여 GE사는 고참 공작기 계공들에게 기계와 프로그램을 조작, 통제, 수정할 수 있는 권 한을 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수치제어 공작기계는 이 기계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고급 숙련노동자들을 낳았고, 이들은 오히려 그 이전의 노동자들에 비해 더 높은 임금을 받게 되었다.
- 기술은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정치적 영향을 낳곤 한다. 그 이유는 기술의 궤적이, 기술이 새롭게 열어주고 힘을 부여하는 사회 세력들과 동시에 그 기술 때문에 힘을 잃는 사회 세력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때그때 형성되는 불안 정한 균형에 따라 불규칙하고 가지치기 식의 경로를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한 기술이 특정한 궤적을 그리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를 들어 정보기술은 반드시 감시 기술을 낳는다는 식의) 자칫 비관적인 결정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기술의 궤적에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 세력 들 사이의 힘의 관계이지, 기술의 초기 디자인에 각인된 발전 방향성이 아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명백하게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적이지 못 한 정치적 기술을 놓고 이 기술이 가져올 수도 있는 미래의 역 설적인 결과만을 기다리는 것 또한 위험한 태도이다. 이럴 경우 기술의 궤적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를 원하는 사람 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궤적을 결정하는 것은 항상 기술과 사회 세력들의 다양한 개입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 시계의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을 보다 더 정확하게 측 정하게 한 역사이다.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함으로써 우리는 시 간을 더 세밀하게 통제하게 되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의 주인공인 소련의 곤충분류학자 알렉산드르 류비셰프 는 평생 70여 권의 학술서적과 단행본, 100권에 달하는 연구논 문, 수천 권의 소책자를 남겼다. 그는 50여 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시간통계' 를 작성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서로 시 간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시계의 네트워크가 없이는 이러한 시간통계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시간을 통제하면서 우리는 시간에 더 얽매이고 시간에 의해 더 지배당하게 되었다. '느리게 살기’가 유행이라지만, 느리게 살자고 주장하는 책을 단숨에 읽어야 하는 것이 “시간이 돈" 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 현재 컴퓨터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쿼티 QVERTY 체계(키보드의 왼쪽 위 여섯 글자를 따서 이름붙인 문자배열 체계)는 원래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 널리 사용되던 타자기 자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사용한 조판기술이 발달되는 과정에서 쿼티 체계는 강력한 라이벌이자 쿼티와는매우 다른 라이노타이프 체계와 경쟁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최 종적으로 쿼티 체계가 승리를 거두게 된 데는 당시 높은 임금을 받으며 강력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라이노타이프 식자공의 힘을 무너뜨리고 노동의 통제권과 비용 절감을 달성하려는 관리자의 이해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관리자와 식자공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남자 숙련 식자공에 비해 낮은 임금에 오직 타자기만 다룰 줄 아는 여성 타자수들은 비자발적 동맹자 역할 을 수행하게 된다. 즉, 관리자들은 숙련도가 떨어지는 여성 타자수들에게 그전까지 라이노타이프 숙련 식자공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쿼티체계를 사용하여 하게 함으로써 숙련 식자공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숙련 식자공들도 관리자와 여성 타자수의 동맹에 힘 없이 당하고 마는 피해자였던 것은 아니다. 남성 노동자들도 그 전까지 식자과정에서 사용되는 표준조판을 지나치게 크게 만듦으로써 조판 기술과 근육 사용을 본질적으로 결합시키고 결과 적으로 여성을 식자공 지위에서 배제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여성과 노동자, 관리자 계층은 각자가 지닌 복잡한 사정에 따라 사무 기술의 도입 과정에서 복잡한 동맹관계를 의식적, 무 의식적으로 맺으며 기술의 발전 경로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 마르크스를 기술결정론자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가 "생산력 = 기술”로 간주했다고 본다. 기술이 생산관계와 경제구 조를 결정하며, 그것이 다시 상부구조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 다는 전형적인 기술결정론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에 게 있어 생산력이란 기술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특히 마 르크스의 생산력은 노동자의 노동력, 숙련 지식, 경험까지도 포 함하는 개념이었다. 이렇게 생산력이 인간의 노동을 포함한다. 면 이는 역사의 변동 요인으로서 의식적인 인간의 존재를 인정 하는 것이 된다. 마르크스에게 노동이란 육체노동만이 아니라 정신노동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마르크스의 주장은 기술결정론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주장이 된다. 또 마르크스는 기술의 발전을 무조건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 하지도, 기술을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 방직기술, 제련기술, 증기기관과 같은 몇몇 기술의 발전이 산업혁명을 촉 발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혁명기에 나타난 핵심적인 기술 혁신은 자본가들의 이윤을 더 증대시키기 위한 동기에서 이루 어졌다. 마르크스는 자동기계와 같은 기술이 노동자들의 숙련 노동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세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을 통찰했다. 이렇게 생산력의 발전은 계급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며, 이러한 계급투쟁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 테일러가 공장 관리의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는 미드베일 철강회사에서의'투쟁' 에서 찾을 수 있다. 테일러는 그 회사에 일 반노동자로 입사한 후 사무원, 기계공, 선반조 조장, 기계제작 소의 직장 foreman, 기계의 수리와 관리를 담당하는 주임을 거쳐 기사장chief engineer 으로 승진하였다. 이처럼 평사원에서 핵심 간 부로 승진하는 데에는 6년이 걸렸다. 그것은 전무후무한 기록 이었다. 기사장이 되었을 때 테일러의 나이는 28세에 불과했다. 그는 미드베일 사에 근무하는 동안 스티븐스 공과대학을 야간 으로 다니면서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기도 했다. 테일러는 당시의 노동자들이 '은밀한 태업'을 통해 출고를 체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은 밀한 태업은 19세기에 철강산업과 기계산업을 중심으로 보편화 된 관행으로서, 공식적 태업saborage과 달리 적당히 일함으로써 산출고를 제한하는 것을 뜻한다. 숙련 노동자들은 오랜 훈련과 경험을 통하여 생산 과정에 대한 숙련과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 던 반면, 사용자 측은 세부적인 생산 과정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이에 따라 작업 방법과 작업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훈련과 규율의 확립, 심지어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도 사실상 숙련 노동자들에게 위임되어 있었다. 그들은 신입사원들을 처음 부터 장악하고 내부적 규율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물리적·정신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적당한 산출고를 유지하였다. 산출고를 증가시킬 경우에는 작업 속도가 빨라지고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염려했던 것이다. 1878년 말에 조장이 되었던 테일러는 노동자들이 더욱 열심 히 일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테일러는 몇 명의 노동자들을 선발하여 시범을 보이고 훈련도 시켰지만 그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결탁하여 결코 산출고를 증 가시키지 않았다. 이에 테일러는 산출고를 제한했던 노동자들 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방법도 써 보았지만 노동자들 은 기계를 파손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테일러는 파손된 장비에 대하여 벌금을 물게 하고 벌금을 노동자의 복지기금으로 활용 하는 것으로 맞섰다. 테일러는 이러한 상황을 '투쟁' 으로 표현 하면서도 "나는 단단한 벽에 부딪혔지만 내 마음속에서 노동자 들을 나무라지는 않았다”고 회고하였다. 오히려 테일러는 과 학적인 제도 없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의 원리
과학적 관리의 원리는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노동자가 수 행하는 업무의 각 요소에 대하여 과학을 발전시키고, 과거의 주먹구구식 관리 방법 을 그만둔다.
둘째, 과거에는 노동자가 스스로 업무를 선택하고 자신의 능력이 미 치는 곳까지 스스로 학습을 했지만, 지금부터는 노동자를 과학적으로 선발하여 훈 련과 교육을 시킴으로써 각 노동자가 자기의 업무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으로 개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발전시킨 과학의 원리에 맞추어 모든 업무가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자가 노동자와 우호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과거에는 업무 수행의 거의 전부와 책임의 상당 부분이 노동자에게 지워졌던 반면에,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관리자가 노동자보다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모두 떠맡음으로써 노사 간에 업무와 책임이 거의 균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중략) 종합해보면, 과거와 같은 솔선과 격려의 관리에서는 모든 문제가 실질적으로 노동자에게 달려 있는 반면, 과학적 관리에서는 문제의 절반은 관리자에게 달려 있다. (프레더릭 테일러, 『과학적 관리의 원칙』(박진우 옮김, 박영사, 1994), 40~42쪽)
- 오노 다이이치는 1956년에 미국을 방문했는데, 미국의 자동차 공장보다는 슈퍼마켓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슈퍼마켓은 물건을 고르는 구매자가 자신이 원하는 수량만큼의 물건을 집어들고 계산을 하면 매니저가 빈 진열대를 재빨리 파악하고 이를 다시 채워 넣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얘기지만, 일본에서 슈퍼마켓을 구경하지 못했던 오 노에게 미국의 슈퍼마켓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소비자 의 요구에 따라서 물건이 채워지는 방식을 주시했고, 일본에 돌 아와서 이를 자동차 생산에 응용했다. 기존의 자동차 생산은 부품의 공급에서 시작했다. 생산라인 은 공급받은 부품을 조립해서 다음 라인으로 넘겼고, 그 다음 라인은 이를 받아서 다음 단계의 조립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앞 라인이 뒷 라인의 부품에 의존하다보니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 어질 경우에 항상 재고가 문제가 되었다. 재고 혹은 낭비 (muda)를 줄이는 것은 '카이젠' 이라고 불리던 도요타 공장의 오랜 경영철학이었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오노는 공장의 생산라인을 슈퍼마켓의 진열대 식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소비자가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골라 들 듯이, 한 생산라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품만을 이전 생산라인으로부터 취사선택한다는 개념이었다.
- 전신은 글쓰기에도 변화를 가지고 왔다. 특히 신문의 6하 원칙' 이라는 독특한 문체는 전신 때문에 발달했다. 원래 신문기사 는 소설처럼 늘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기자들이 비싼 전신 을 이용해서 기사를 송고하는 일이 잦아지고 특히 미국의 남북 전쟁 중에 전신선이 자주 절단되자 기자들은 기사 첫머리에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간단히 요약하고, 그 다음 문단에 이를 조금 서술하고, 다음 문단에 더 자세한 서 술을 붙이는 피라미드 형태의 문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 작했다. 지금도 신문의 사건 기사에서 볼 수 있는 간결한 문체는 전신이 낳은 부산물이었다. 전신과 같은 새로운 통신기술은 정치, 외교 행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 Archduke Ferdinand 이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후에 유럽의 위기가 고조되었는데, 이 시점에서 세르비아, 오스트리아, 러시아, 독일, 영국의 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은 전신을 통해서 각국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런데 외교관 들이 서로 만나서 복잡한 문제를 협상하던 과거와는 달리 전신을 통해서 전달되는 뉴스는 각국의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고, 정 치인들과 외교관들은 이러한 여론에 떠밀려서 상대에 대한 최후통첩을 급박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신중하게 생각하거나 흥 분을 냉각시킬 기회를 잃어버린 채로 신속하게 최후통첩을 주 고받던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다. 전신은 경제활동의 스피드를 증가시켰으며, 경제를 국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를 반영하듯이 19세기 말엽에 경제 신문들 이 창간되었고, 1899년에는 미국의 현대적 광고회사 제이 월터 톰슨 사가 유럽의 기업가를 겨냥해서 영국 런던에 지부를 냈다. 미국의 본부와 영국의 지부는 전신을 이용해서 정보를 교 환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개인과 사회가 서로 연결되고 있음 을 서술하기 위해 “상호의존"interdependence 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국제화" intermationalization 라는 단어도 19세기 말엽에 지금의 의미로 정착되었다. 당시 국제화가 어느 정도로 진척이 되었는가 하면, 독일 주식시장의 주가가 전신을 타고 송신되어 러시아의 한 시골에서 반시간마다 그 동향이 게시될 정도였다. 우리가 개화파와 수구파로 나뉘어 상투를 자르니 마느니 논쟁 을 하고 있을 무렵에, 유럽과 미국은 이미 '정보사회' 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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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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