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 영국의 경제학자 앤드루 오즈월드Andrew Oswald와 그의 제자인 나타드 파우드타비Natavudh Powdthavee는 「죽음, 행복, 그리고 손상 보상 계산」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을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 로스쿨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게재했습니다! 저자들은 가까운 인물의 죽음에 대해 느끼는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을 화폐가치로 환산하고자 했습니다. 한마디로 삶과 죽음 의 경제적 가치에 관한 실증연구라고 할 수 있죠. 두 연구자는 1만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패널Panel' 연구 기법을 사용했습 니다. 동일한 사람들을 여러 해에 걸쳐 추적 조사하여 자료를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이들은 조사 대상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사망했을 때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얼마만큼 의 금전적 보상이 필요한지 통계모형을 통한 정량 분석을 시도 했습니다. 가족의 생명을 돈과 연관 지어 설명하기에 연구 설계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소지가 적지 않았죠.
분석 결과를 살펴볼까요. 자신의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사망 이전의 정신적인 행복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평균 22만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식과 부모가 사망하는 경우라면 각각 11만 8000달러와 2만 8000달러가 필요했고요. 친한 친구는 1만 6000달러를 필요로 한 반면, 형제나 자매는 2000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서양 문화의 특징이 반영됐을 수 있으나, 친구의 생명을 형제나 자매의 생명보다 여덟 배나 소중하다고 여긴다는 점이 특이하게 다가옵니다. 가족과 친구를 포함하여 특별한 관계인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생명 가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연구 결과인 셈이죠.
경제학자들은 왜 이런 도발적인 연구를 감행하는 것일까요? 자신과 피를 나눈 사람의 죽음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슬픔 을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경제학자도 예외가 아니죠. 생명은 본래 돈으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세간의 비판도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오즈월드 교수의 설명을 한번 볼까요.
“사망 피해자에 대한 법원의 배상 금액 판결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많다. 우리 연구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피해자에게 지불되는 배상 금액을 좀 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유 도하는 기초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연구는 계속 이뤄져야 한다."
오즈월드 교수의 문제의식은 분명했습니다. 인간 생명을 화 폐가치로 환산하는 일이 불가피하다면, 제대로 된 연구 방법을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한 사람에 대한 법원의 배상판결 방식을 볼까요. 통상적으로 사망자의 잃어버 린 시간가치, 즉 사망 시점부터 은퇴할 때까지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소득 상실액Expected Forgone Earnings'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정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경제학에서는 '인적자본 근법'이라고 하죠.
기대소득 상실액 방식에 따르면 동일한 사고라고 해도 대기 업 CEO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배상액에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와 후자의 소득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죠. 같은 논리로 남성 직장인과 여성 가정주부에게 주어지는 배상액이 다를 것입니다. 후자는 외형상 소득이 없기 때문이죠. 과연 이 것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일까요? 사망자의 인권이 제대로 반영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기후변화로 인한 금전적 피해 추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하면 잘사는 나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 피해는 크게 부각되고, 못사는 나라 국민의 고통은 작게 치부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접근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1974년 애로 교수는 버클리 대학의 앤서니 피셔 Anthony Fisher교수와 함께 「환경보전, 불확실성, 그리고 불가역성이라는 짧은 이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댐 건설과 같이 토지나 강,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 있다고 해보죠. 통상적으로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방 식은 댐 건설에 따른 경제적 편익과 비용을 각각 계산한 후 이 둘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형 개발 사업의 편익과 비 용에는 사업 진행에 따른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습니다. 만약 어떤 개발 사업이 자연환경에 돌이키기 힘든 악영향을 초래한 다면, 이 사업 때문에 미래 어느 시점에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상실할 수도 있는 것이죠.
애로와 피셔의 논문은 특정 개발 사업에 불확실성과 불가역 성이 존재한다면, 개발보다는 보전을 택하는 전략이 경제적으로 타당한 의사결정일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일정 기간 개발 사업을 늦추되, 그 시간 동안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추가 정보를 획득함으로써 다음 시점에서 좀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닦자는 것이죠. 저자 들은 충분한 정보를 확보할 때까지 자연환경을 개발하지 않고 보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경제 가치를 '준옵션가 Quasi-Option Value'라고 불렀습니다. 준옵션가치가 크면 클수록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도 개발보다는 보전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의 논문은 불확실성을 줄이고 대안을 모색하는 접근이 당장 대규모 사업을 시행하는 선택에 비해 결과적으로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논증해 보입니다.
- 탄소세의 학문적 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경제이론으로 보자면 이른바 '피구세Pigouvian Tax'가 원조에 해당합니 다. 피구세는 20세기 전반 영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인 아서 피구Authur Pigou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피구는 전임자인 앨 프리드 마셜의 뒤를 이어 1908년부터 1943년까지 장장 35년 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정치경제학 영구교수직에 오른 대 학자입니다. 그는 대표 저서인 『후생경제학Economics of Welfare』 (1920)에서 환경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오염을 일으킨 생산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환경오염 이 유발하는 환경 피해에 상응하는 세율을 오염 당사자에게 부과함으로써 오염배출량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많은 국가가 피구세 원리를 적용하여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정책수단을 만들어가고 있지요.
경제학자들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환경오염은 시장 내에서 자율적인 해결이 어려운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기 때문이죠. 환경문제는 생산이나 소비와 같은 경제활동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제학에서는 거래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가리켜 '외 부효과'라고 부릅니다. 의도한 행위가 아니기에 피해가 발생해 도 법적 책임이나 금전적 배상을 요구할 수 없죠. 환경오염 피 해자는 존재하는데,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 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겁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지금껏 경험한 가장 큰 외부효과다." 당대의 경제학자들이 치 열한 논쟁을 벌였던, 2장에서 살펴본 『스턴 보고서』에도 등장 하는 문장입니다.
-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배출권거래제Emission Trading System'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과 쾌감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학부때부터 들어왔던 피구세와는 환경문제를 인식하는 기본 철학 부터 달랐기 때문이죠. 피구세는 좀 심하게 말하자면 오염 주 체를 응징하는 제도입니다. 비용 부담을 통해 오염행위를 벌 하기 때문이죠. 이를 전문용어로 '오염자부담원칙Polluter Pays Principle'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배출권거래제는 오염 당사자 에게 오염행위를 허용하는 법적 권리를 제공하는 데서 출발합 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는 사적 허가권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청년 시절, 환경오염은 악(惡)이 라는 세계관에 익숙했던 저에게 배출권거래제는 불편할 수밖 에 없는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역발상으로 고안한 새로운 정책 에 내심 전율을 느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죠.
- 혁신적 환경정책의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배출권거래제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경제학자는 별로 없을 듯싶습니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환경오염 행위에 무상 또는 유상으로 배출할 권리를 부여한 후, 이를 오염 주체 간에 서로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그 대표적인 방식으로 '배출 허용 총량 설정 후 거래Cap-and-Trade'가 있습니다. 이는 다음 두 단계를 거쳐 집행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정부가 총배출량 상한선을 정한 후 일정한 방식에 따라 기업에 배출권을 나누어줍니다. 둘째, 기업은 확보한 배출 권을 기반으로 필요 시 배출권을 사고파는 의사결정을 합니다. 배출권이라는 상품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죠. 기업은 자신이 가진 배출권이 필요량보다 많을 경우 시장에 내다 팔아 수입을 챙기고, 반대로 부족하면 시장에서 배출권을 추가로 구입합니다. 시장에서는 배출권의 수요와 공 급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격이 형성됩니다.
배출권거래제의 백미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시장의 인위적 창출에 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시장에서 배출권이라는 특수한 상품을 거래하는 것이죠. 만약 정부가 기업들에게 배출권을 할당하고 오직 그 한도 내에서만 오염 물질을 배출하라 고 강제한다면, 이는 명령과 통제에 따른 직접 환경규제 방식 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배출권 거래를 허용하는 순 간, 기업들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오염 물질을 줄일 수 있는 합 리적이고 유연한 방안을 강구하게 됩니다.
오염을 줄이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 배출권의 시장가격보다 적다면, 기업은 배출권뿐 아니라 오염을 줄일 방법을 더 갖게 됩니다.
- 배출권거래제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최초의 경제학자는 캐나 다 토론토 대학의 존 데일스 John Dales 교수입니다. 1968년 출간 한 그의 저서 『오염, 재산, 그리고 가격Pollution, Property and Prices』을 통해 배출권거래제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제도에 대한 경 제학계의 첫 반응은 뜨거웠죠. 시장 기능을 활용해 환경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반면 환경단체와 환경론자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환경오염이라는 '공공악Public Bad'에 국가가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환경오염은 그 자체로서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이기에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생 각이었죠.
1960년대 미국에서는 유독성 살충제가 생태계에 미친 영향 을 고발한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의 『침묵의 봄』이 출간되면서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 관심이 고조되었습니다. 배출권거래제 는 기업의 오염행위에 일정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들로서는 환경문제를 시장가격 기능을 활용해 해결하려는 '세 속적인 발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죠. 더불어 시 민사회 안에서는 정부가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더라도 강력하 고 선명한 오염저감 목표를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환경단체의 시각은 점차 바뀌었죠. 오히려 이 제도가 갖는 장점에 주목하 기 시작했습니다. 배출총량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다 는 점에서 배출권거래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 다. 배출권거래제는 적은 비용으로 환경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 성하는 정책수단이라는 논리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 자유무역과 환경보전 간 충돌 사례들에서 보았듯이 제품의 소비 과정이 아닌, 생산 혹은 공정 방법의 차이에 근거한 일방적 무역 조치는 GATT와 WTO 체제에서 전통적으로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새우-바다거북 사례는 WTO가 환경 관련 예외 조항을 좀 더 유연하게 해석하여 확대 적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미 환경 관련 무역제한 조치에 따른 국가간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요. 그동안의 흐름으로 볼 때 앞으로 WTO가 환경보전을 위한 예외 조항을 포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일방적 무역규제 조치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세계 각국의 무역과 통상 정책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탄소국경조정제도로 돌아올까요.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기존의 글로벌 무역규범을 '탈탄소화Decarbonization' 중심으로 송 두리째 바꿀 파괴력이 있는 사안입니다. 역사적으로 WTO는 자유무역 질서를 침해하는 무역제한 조치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견지해 왔죠. 분명한 근거가 있지 않은 한, GATT 제20조의 예외 조항 수용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이슈는 WTO가 자신의 입장을 선회할 잠재력을 지 니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야말로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 공통적 으로 피해가 미치는 지구환경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오존층 파괴가 심각한 지구환경문제로 등장했을 때, 국제사회는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를 채택하여 염화불화탄소Chlorofluorocarbons, CFCs를 규제하고자 했습니다. CFCs는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 냉매로 쓰여 성층권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입니다. CFCs 퇴출은 걱정했던 것보다 빠르고 성공적으로 이 루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죠. 첫째, 오존층 파 괴를 일으키지 않는 대체 물질이 속속 개발됐습니다. 규제가 강화되자 기업들이 앞다투어 기술개발에 매진한 덕분입니다. 둘째, CFCs를 이용하여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공정과 공장은 전 세계적으로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모니터링과 규제 가 용이했습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오존층 파괴 문제 는 서서히 줄어가는 추세입니다.
기후변화는 완전히 다르죠. 기후문제를 일으키는 오염 물질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이산화탄소는 화석연료를 사용하기만 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나옵니다. 탄소 배출원은 지구상에 존 재하는 사람 수만큼 많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죠. 배 출원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제어하기가 매우 어렵고요. 에너 지는 인류 생존과 경제활동을 위한 필수재이기에 쉽사리 사용 을 중단할 수도 없습니다. 오존층 파괴 문제와는 달리 이산화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개발도 쉽지 않습니다. 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 사이에 존재하는 직접적인 상관성 을 과학자들이 충분히 밝혀냈음에도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 WTO의 무차별원칙은 동종 제품에 대한 동일 대우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언급 할 때 수입제품에 대한 '탄소세 부과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현재 유럽연합에서는 일부 국가들만이 탄소세를 부 과하고 있고, 그 세율 또한 동일하지 않습니다. 만약 유럽연합 권역 내 제품에는 탄소세를 일관되게 부과하지 않으면서 수입 제품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WTO 규정 위배라는 비판과 함께 통상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죠.
- 유럽연합은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이미 15년 이상 시행해 온 배출권거래제와 연결할 계 획입니다. 유럽연합에 소속된 모든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배출 권거래 시장에서 결정되는 탄소가격을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적 용 기준으로 삼겠다는 계산이죠. 무역 분쟁 소지를 최소화하 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매우 전략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할 근거를 GATT 제20조 환경 관련 예외 조항에서 찾는 데 더 이상 걸림 돌이 없어 보이지 않나요? 유럽연합이 WTO 무역규범과 충돌 하지 않으면서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자 신하는 속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 Commission 와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가 제안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의 밑그림은 이렇습니다. '수입 업자는 수입한 상품의 원산지에서부터 내재한 탄소비용에 상 응하여 탄소인증서를 구매한다. 내재한 탄소비용이 낮으면 낮을수록 수입업자가 지불해야 할 탄소비용은 커지게 된다. 대상 품목으로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력의 5개 산업을 고려하고 있으나, 여기에 더하여 유기물 기반 화학제품과 수소를 포함해 대상 산업을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상을 5개 산업에 한정할 경우 우리나라의 대(對) EU 수출 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저촉을 받는 수출 규모는 5% 정도로 추산합니다. 하지만 석유화학산업으로 적용 대상이 늘어날 경 우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15%로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 다. 그만큼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지는 셈이죠.
유럽의회는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적용 범위 확대 역시 검토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품 생산 과정에서 직접 배출하는 탄소만을 포함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간 접배출, 즉 기업이 소비하는 전력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탄소 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중입니다. 이것이 확정된다면 우리처럼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60%가 넘는 나라로서는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될 수 있습니다.
- 기후변화 회의론자가 가진 심리 상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조지 마셜의 직관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대목을 말해보겠습니다. 먼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입니다. 확증 편향이란 기존에 자신에게 형성된 지식과 태도, 신념과 가치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거죠. 기후변화와 관련한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마음의 문을 닫는 사람은 기후 담론을 거대한 음모의 일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에게 화석연료를 포기하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호소가 먹혀들 리 없죠.
- 조지 마셜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을 직접 인터뷰합니다. 카너먼은 경 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학자로 유명하죠 카너먼은 이익은 없 고 손실만 걱정해야 하는 문제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에 관 심을 끌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단기적인 손실이 아니라 장기에 걸친 손실이라면 더욱 관심을 갖지 않고요. 게다가 불확실성마 저 크다면 말할 필요도 없죠 문제는 기후변화가 이러한 요소 를 골고루 갖춘 이슈라는 겁니다. 기후변화 피해로 미래에 불 확실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사람들은 무관심 하거나 고개를 가로젓는다는 것이죠
'기후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라는 마셜의 질문에 카너먼은 답합니다. "아무리 심 리적 각성이 높아진다고 해도 생활수준의 하락을 꺼리는 마음을 극복하지는 못할 겁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리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카너먼의 비관주의에 적지 않은 통찰이 숨어 있다고 믿습니다. 기후위기 해결의 출발은 미래에 발생할 편익을 위해 지금 기꺼이 비용을 치를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조지 마셜은 기후위기 극복에 동참하자고 호소하는 전문가 나 환경운동가들이 너무 당위적인 언행에 익숙해져 있다고 지 적합니다. 마치 '우리'는 올바르고, '너희는 잘못됐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는 공감대를 넓히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대신,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와 행동 변화의 필요성에 회의적인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들어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기 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자녀 사랑, 건강 유지, 안전 보 장, 공동체 번영 때문임을 강조하는 식이죠. 우리 사회가 인정 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연결해야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 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공동체 번영을 위해서는 경제발전, 일자리 만들기와 같은 먹 고사는 문제가 마땅히 전제돼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강 조하는 기후와 경제의 연결고리입니다. 화석연료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부작용을 일으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번영과 풍요에 기여해 왔다는 점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이죠. 이렇듯 균 형 잡힌 관점이야말로 기후문제를 풀어가는 현실적인 출발점 이라고 생각합니다.
- 2050년까지 우리나라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지금보다 약 20배 더 늘려야 합니 다. 이 중 태양광 설비 규모는 350~400GW 정도 돼야 하고요.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태양광 패널 18% 효율을 기준으로 국토 면적의 3.5~4%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서울시 면적의 여섯 배 정도죠. 적지 않은 면적인 것은 맞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나라 농지 면적은 전국토의 18%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지만,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020년 기준 19.3%에 불과합니다. 사료 를 포함한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거죠. 만약 우리가 국토의 3.5%를 사용해서 순수한 국산 에너지인 재생에 너지로 경제를 돌리고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 아닐까요?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나라와 독일 중 어느 나라가 연간 일사량이 많을까요? 독일은 재생에너지 천국이니까 독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답 은 한국입니다. 한국은 북위 33도에서 38도에 위치해 있지만, 독일은 훨씬 높은 북위 48도에서 55도에 있습니다. 당연히 한 국의 연평균 일사량은 1459kWh/m2인 반면, 독일은 1056kWh/ m2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독일 국민은 남쪽을 중심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열심히 짓고 있고, 성과도 대단하죠.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여건이 훨씬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 CBAM이 도입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나라 철강 산 업의 수출물량 11%가 유럽연합을 향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CBAM이 도입되면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 습니다. 탄소비용의 국가 간 차액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당장 수출 단가가 올라가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CBAM에 선제적 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이는 기후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에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일본도 탄소국경 조정제도를 찬성하거나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 다. CBAM은 제도의 특성상 WTO 체제 내에서 통상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개도국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합니다. 겉으로는 환경과 기후위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국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비판이죠.
그럼에도 유럽연합이 CBAM과 같은 논쟁적인 제도를 도입 하려는 명분과 근거는 분명합니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글로벌 오염 물질은 누가 배출하는가에 관계없이 기후변화에 악영향 을 미친다는 겁니다. 따라서 탄소 배출이 야기하는 피해 비용 에 입각해서 국가 간 공평한 비용 부담이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감축 효과가 발생한다는 논리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나요? 유럽연합은 기존 통상무역 질서를 뒤흔들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뒤로하고 CBAM 도입을 본격화 하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죠.
유럽연합은 CBAM을 넘어 훨씬 더 근본적으로 기후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간 유 럽 경제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후문제와 경제문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이른바 '그린 딜Green Green Deal'을 내걸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정책을 발표했죠. 이름만 다르지 지향점은 동일합니다. 그린 뉴딜은 탈탄소와 자원절약, 순환경제를 지향하는 '녹색'에,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사회통합을 의미하는 '뉴 딜' 정책을 합한 단어입니다. 한마디로 선진국들은 그린 딜 혹 은 그린 뉴딜을 통해 기후위기를 해결함과 동시에 경제도 살리 겠다는 야심 찬 구상을 펼치고 있는 것이죠. 유럽이 얼마나 그 린 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 니다. 2021년 1월을 기해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을 대상 으로 플라스틱세를 전격 도입한 것입니다. 처리 곤란한 플라스틱은 속히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유럽연합은 플라스틱세를 통해 연간 70~80억 유로 규모의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의 기후위기 대응책을 보니 어떠신가요? 과거에는 기업이 환경보전 기술과 설비에 투자하면 원가 상승으로 경쟁 력을 잃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정부의 환경규 제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죠. 하지만 기후변화 시대, 이제는 경제가 돌아가는 근본 원리가 바뀌고 있습니다. 부가가치나 에 너지 소비량 대비 얼마나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가를 측정하는 탈탄소경쟁력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으니까요. 탈탄소경쟁력이 곧 산업의 기후경쟁력이고, 이것이 모여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 원전문제는 기후위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후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형평성 문제로 귀결됩니다. 우리 세대가 싸고 편하게 화석연료를 쓰고 나면, 다음 세대가 그로 인한 기후피해에 노출되는 것이니까요. 원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원전을 통해 혜택을 볼 수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후손에게는 많은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넘겨주게 됩니다. 원전을 얼마나, 언제까지 사용하는 것이 대대손손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이 땅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