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뇌와 세계

dalai 2021. 11. 24. 12:27

- 공학자들이 만든 기계적 컴퓨터, 전기 컴퓨터, 디지털 컴퓨 터, 양자 컴퓨터와는 달리 유기 컴퓨터는 자연적인 진화 과정의 결과로 등장했다. 유기 컴퓨터의 주요 특징은 바로 자신의 유기 구조와 물리화학 법칙을 이용해서 정보를 취득, 처리, 저장한다는 것이다. 이 근본적 속성이 의미하는 바는 유기 컴퓨 터가 일부 경우에서는 디지털 계산의 요소를 사용할 수도 있 지만 아날로그 컴퓨터에 주로 의존해서 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 함께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열역학이 우리의 출발점이었음을 생각하면, 로널드와 나는 모스크바 태생의 벨기에 화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일리야 프리고진 Ilya Prigogine의 연구와 그 의 열역학 기반 생명관에 깊은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사벨 스탕제 Isabelle Stengers와 함께 쓴 《혼돈으로부터 의 질서order out of Chaos》에서 프리고진은 복잡한 화학반응의 열역학에 대한 자신의 이론과 연구에 즉각적으로 따라오는 결 론을 설명했다. 이런 결론을 바탕으로 프리고진은 생명에 대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정의를 대단히 구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지금은 자기조직적 화학 반응self-organizing chemical reaction 으로 알려지게 된 것을 다루고 있는 프리고진의 이론은 생명이 없는 물질로부터 어떻게 살아 있는 시스템이 등장할 수 있는지 이해할 방법을 제공한다.
프리고진의 생각의 핵심에는 열역학적 평형 thermodynamic eequilibrium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한 계 system는 전체적 으로 보았을 때 계 안에서 혹은 계와 그 주변 환경 사이에서 에 너지나 물질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을 때 평형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든 에너지 기울기 energy gradient가 나타나서 에너지가 더 많아지거나 줄어드는 영역이 생기면 그 계는 에너 지가 많아진 곳에서 에너지가 줄어든 곳으로 과잉의 에너지를 자발적으로 소산시킨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상온의 찻주전
- 프리고진에 따르면 세균에서 나무,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기체는 스스로를 평형에서 먼 조건으로 유지해야만 살아남 을 수 있는 열린계 open system다. 살아 있기 위해서는 유기체 자 체의 내부에서, 그리고 유기체와 그를 둘러싼 환경 사이에서 에너지, 물질, 정보가 끊임없이 교환되어, 세포 안에서, 전체 유기체 안에서, 유기체와 그 외부 환경 사이에서 화학적·열적 기울기를 계속 유지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이런 몸부림은 한 유기체의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런 평형에서 먼 조건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유기체는 죽어서 썩을 수밖에 없는 비가역적인 운명을 맞이한다.
- 1852년에 윌리엄 톰슨William Thompson 이 처음으로 공식화 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고립된 닫힌계의 총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르면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법칙은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만, 살아 있는 유기체가 궁극의 무작위 상태로 해 체되는 것을 뒤로 미루기 위해 만들어낸 '국소적 저항 웅덩이 local pools of resistance'의 등장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생명체의 이 런 게릴라식 저항을 또 한 명의 저명한 오스트리아인 물리학자 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고, 양자물리학의 거장 중 한 명 인 에르빈 슈뢰딩거 Erwin Schrodinger가 멋지게 묘사했다. 그는 자신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 What Is Life?》에서 산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감소된 섬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끝없는 몸부림 이라 제안했다. 이 섬을 우리는 유기체라 부른다. 그의 말을 빌 리면, “대사의 본질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필연적으로 만 들어낼 수밖에 없는 그 모든 엔트로피로부터 유기체가 스스로 를 해방시키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 지구에서 생명이 진화할 때 RNA와 DNA가 아직 등장하 지 않아 스스로를 복제할 능력이 없었던 단순 유기체들은 그저 막으로 둘러싸인 소포vesicle에 불과했다. 그 내부에서는 짧은 시간 동안 생명을 유지해줄 몇몇 기본적인 화학 반응만 일어났다. 이 단계에서는 햇빛의 주기와 주변 환경의 조건이 지구 위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의 프로그래밍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관점이 암시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먼저 지구에 처음 등 장한 유기 물질의 자취에 에너지 소산에 의해 괴델 정보(아날 로그)가 쌓였고, 그 후에 RNA와 DNA를 바탕으로 하는 자기 복제 메커니즘이 등장하고 난 후에야 유기체가 섀넌 정보(디지털)를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리보솜이 튜링기계Turing machine 처럼 행동하며 DNA 가닥에서 만들어진 전령RNA messenger RNA로부터 단백질을 생산하려면 그전에 아날 로그 막이 먼저 존재해서 우리 행성 최초의 생명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따로 격리해줄 소포가 형성되어야 했다. 따라서 살아 있는 것들의 경우에는 '존재에서 비트로 from BEing to BITing'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기적으로 말하 자면, 최초의 유기체가 먼저 존재해야만 했고 이 유기체는 일부 필수적인 괴델 정보를 축적하고 난 다음에야 비트 정보를 발산해서 스스로를 복제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 여러 해에 걸쳐 심사숙고해보니 활동전위의 최대 전달 속도 (초당 약 120미터)만으로는 여러 가지 인지 기능을 응집된 하나의 정신으로 통합하는 등 뇌가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속도를 설명하기에 분명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아는 우주에서 가장 빠른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뇌 전 체를 가로지를 수 있는 아날로그 신호를 찾기 시작했다. 광속 같은 속도 말이다!
인간 뇌의 구조에서 가장 근본적인 특성 중 하나는 수천만 개의 축삭돌기가 빽빽하게 채워져 형성된 신경 다발과 신경 루 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축삭돌기들은 뇌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활동전위를 차례대로 신속하게 전송하는 일을 담당한다(2장과 4장), 19세기 초에 마이클 패러데이가 발견했듯이 전류는 자기장을 유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자기장도 전도체에 전류를 유도한다. 이 점을 염 두에 두면서 나는 우리 뇌에 있는 그 모든 백질의 루프들이 그 저 전기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수많은 뉴런 전자기장으로 뇌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라 추론하기 시작 했다. 내가 겉질 구조물과 겉질아래 구조물들을 연결하는 백질 을 생물학적 솔레노이드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920년대 중반 이후 겉질의 전기장은 뇌전도라는 기술을 이용해서 측정이 이루어졌다. 거기에 더해서 뇌의 자기장도 뇌자 도magnetoencephalography라는 또 다른 기술을 통해 수십 년째 측정되고 있다. 하지만 뇌자도는 현재로서는 뇌 깊숙한 부위까 지 도달할 수 있는 세밀한 방법이 없어 주로 겉질에 한정해서 측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대론적 뇌 이론에서는 전위가 우리 뇌 여기저기서 발견되 는 많은 생물학적 솔레노이드를 따라 흐르면 대단히 복잡한 시 공간적 뉴런 전자기장 패턴이 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런 생물학적 솔레노이드에는 아주 큰 신경 루프만 포함되는 것 이 아니라 크기가 제각각인 다른 수많은 백질 고리들도 포함된 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작은 뉴런 네트워크의 가지돌기 와 축삭돌기에 의해 형성되는 미시적인 백질 고리도 여기에 포 함된다. 어디나 퍼져 있는 이 해부학적 배열에 근거해서 상대론적 뇌 이론에서는 잘 밝혀져 있는 겉질의 전자기장뿐만 아니 라 겉질아래 영역에서도 폭넓은 전자기장이 존재할 것으로 예측한다.
나의 관점에서 보면 두 종류의 뇌 신호, 즉 디지털 방식으로 생성되는 활동전위, 그리고 그 활동전위가 신경을 통해 이동 하면서 만들어내는 아날로그 전자기장 사이의 재귀적 상호작용이 우리 뇌가 갖고 있는 독특한 계산 능력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그림 5-1). 이런 맥락에서 나는 인간 뇌가 고등한 정신 적 인지적 능력을 발현하는 데 필수적이라 믿는 신경의 창발성emergent neural property은 뉴런 전자기장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라 주장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이런 전자기장이 모든 새겉질을 하나의 유기 컴퓨터로 통합하는 데 필요한 생리 학적 접착제 역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유기 컴퓨터 는 모든 정신적 능력을 결합하고, 뇌의 겉질 영역과 겉질아래 영역들 간의 대단히 신속한 조정을 가능케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뇌는 하나의 전체로서 계산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주 많은 아날로그 뇌 전자기장이 평형에서 먼 조합을 이루고 함께 공모해서 내가 말하는 뉴런 시공간 연속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우주 전체를 대상으로 시간과 공간을 융합했던 것처럼 뉴런의 시간과 공간도 통합이 가능하다.
- 종합해보면 이 전자기 결합은 뇌로 하여금 거리상, 시간상 으로 떨어져 있는 아니든 상관없이 그 안의 이질적인 영역들의 활성을 조종하고 정교하게 동기화할 수 있게 해준다. 아인 슈타인의 이론에서 공간과 시간 자체가 질량의 존재로 인해 접 혀 사물 간의 시공간 거리를 바꾸어놓는 것처럼, 나는 이 뉴런 시공간 연속체도 신경생리학적인 의미에서 스스로 접힐 수 있 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이런 접힘을 통해 꽤 멀리 있는 뇌의 서로 다른 영역들이 하나의 신경생리학적·계산적 실체로 한데 모일 수 있게 된다. 나는 모든 고등동물에 이런 현상이 원초적 인 형태로나마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인간에서는 그 결과로 생기는 뉴런 연속체neuronal continuum 혹은 내가 좋아하는 이름인 정신 공간 mental space 이 아날로그 뉴런 기질neuronal substrate을 이루어 그로부터 모든 고등한 인간의 뇌 기능이 등 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몇 요인이 정신 공간의 동역학을 빚어낼 것이다. 뇌 속 뉴 런 풀의 공간적 분포와 구성, 이런 뉴런 클러스터들을 잇는 백 질의 신경로와 루프가 갖고 있는 구조적 특성, 뇌의 가용 에너 지, 신경조직에게 가용한 서로 다른 유형의 신경전달물질들, 그 리고 우리의 기억 등이다. 기억은 뇌의 자체적 관점을 정의하 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사실 뇌의 크기나 뉴런의 숫자 같은 변 화와 아울러 공간적 구성, 축삭돌기의 밀도, 백질 루프의 수초 화 수준 등의 개별 요소들 중 하나나 몇 개 혹은 다수에 생긴 변화가 호미니드의 600만 년에 걸친 현저한 뇌 능력의 변화를 설명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 렘수면은 기억 응고화 및 운동 학습과 연관되어왔다. 상대론적 뇌이론에 따르면 수면 주기 동안에 뉴런 전자기장은 광범위한 뇌동기성 brain synchrony의 서로 다른 상태들을 확립하는 데 필요한 접착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낮에 만들어진 시냅스를 응고하거나 제거하는 과정에 기여함으로써 기억 저장에 필요한 원동력도 제공해줄지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꿈은 우리의 연상기호 기록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매일 밤 뉴런 미세회로를 정교하게 조각하는 일을 담당하는 아날로그디지털 계산 엔진이 작동하면서 만들어내는 부산물인 셈이다.
상대론적 뇌 이론에서는 재귀적 아날로그-디지털 계산이라 는 새로운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직관, 통찰, 창의성, 일반화를 통한 문제 해결 같은 대단히 복잡하고 계산 불가능한 인지 능력의 발생을 책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지난 반세기에 걸쳐 디지털 플랫폼 안에서 인간의 이런 기본적인 인지 기능을 흉내 내보려 했지만 도저히 극복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이것 을 계산 불가능한 실체라고 지칭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 다. 6장에서 논의하겠지만, 나는 이것을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 지 인간만의 정신적 속성들은 알고리즘 공식화로 환원하거나 그 어떤 디지털 시스템으로도 시뮬레이션하거나 흉내 낼 수 없 을 것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재귀적 아날로그-디지털 계산 전 략이 확립되고, 여기에 뉴런 조직에 인과 효율을 행사하고, 또 쉽게 섀넌 출력으로 투사될 수 있는 괴델 정보를 물리적으로 새기는 능력이 결합되면서 이것이 우리 뇌에서 그런 정신적 능 력이 등장하게 된 신경생리학적 메커니즘에 일조하게 되었는 지도 모른다.
- 전체적으로 보면 아날로그 영역의 존재는 동물의 뇌에 또 다 른 수준의 가소성 적응 능력을 부여해준다. 실제로 전자기장이 겉질을 뉴런 연속체 neuronal continuum로 융합할 수 있다면, 특 별히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는 원칙적으로 겉질의 어느 부분이라도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시력을 일 시적으로는 영구적으로든 상실하면 그 사람의 시각겉질이 몇 초나 몇 분 정도의 빠른 시간 안에 촉각 정보 처리에 동원된다. 이 사람이 점자를 손가락으로 문질러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 는 경우는 특히나 그렇다. 만약 이것이 순수하게 기존에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뉴런 사이에 새로운 연결이 형성되어야 하 는 문제였다면 시각겉질을 새로운 용도로 이렇게 신속하게 동 원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중추신경 계가 오직 디지털 작동 모드로 신경에 의해 전도되는 활동전위 흐름을 통한 섀넌 정보의 전송에만 의존하고 있다면 이런 일을 달성하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내가 여기서 제안하는 아날로그 메커니즘을 추가함으로써 인간의 뇌는 짧은 시간에 그런 재주 를 부릴 수 있는 강력한 수준의 유연성과 여유를 획득하게 되 었는지도 모른다. 이 메커니즘은 뉴런 전자기장의 광속으로 원 격 작용하니까 말이다.
- 상대론적 뇌 이론에 따르면 깨어 있는 동안에 지각 경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뇌의 생물학적 솔레노이드가 고도로 동기 화된 주파수로 완전 가동되어 뇌 안에 전자기장의 복잡한 조 합을 발생시켜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의식적 경험의 풍부 함과 예측 불가능성은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태어난 지 얼 마 되지 않은 아기에게 명확한 자기감이 발달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듯 뉴런 전자기장이 미숙성한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 겠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뇌의 백질이 뇌를 하나의 뉴 런 연속체로 묶는 강한 전자기장을 발생시킬 만한 수준으로 성 숙하는 것이다. 이런 뉴런 연속체로부터 자기감이 구체화되어 야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도 구현될 수 있다.
- 인간 뇌의 정교한 작동 방식을 알고리즘으로 환원해서 디지털 논리로 재현할 수 있다는 개념은 그저 포스트모던 시대의 또 하나의 미신, 일종의 도시 전설, 탈진실 시대의 한 사례라 생 각해야 한다. 현대는 거짓 진술이 대중 사이에 널리 퍼져 꾸준 히 반복되면 결국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효율 좋은 전자소자들을 대량으로 연결만 하면 우리 뇌에서 보이는 것 같은 복잡성을 재창조할 수 있으리라는 개념은 현실과 크게 동떨어 져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이 파고들어 보면 성공할 가능성도 보 이지 않는다. 지금도 불가능하지만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관점을 믿는 사람들 중 인간의 뇌가 디지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의 진정한 창조자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생 각을 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자신의 창조주에게 등을 돌리고 창조주를 능가할 것이라는 맹목적 믿 음은 인간의 뇌를 비롯해서 어떤 종류의 시스템이든 자기 자신 보다 더 복잡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념을 쉬지 않고 홍보하고 다니기만 바쁘지, 어떻게 이런 잉여 의 복잡성이 등장할 수 있는지는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않는 다. 나는 이런 주장은 분명 거짓이라 생각한다. 이런 주장들은 쿠르트 괴델의 두 가지 불완정성 정리와 최근 아르헨티나계 미 국인 수학자 그레고리 카이틴 Gregory Chain 이 제안한 복잡성 정리 complexity theorem 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논리적 정리에 위 배되기 때문이다. 카이틴에 따르면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형 식 체계는 자신보다 더 복잡한 하위 체계 subsystem, 즉 다른 프 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 존 캐스티John Casti와 베르너 드파울리 Werner Depauli가 《괴델Godel)에서 기술한 것처럼 더 형식적으 로 표현하면, 그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도 만들어낼 수 없을 정도의 복잡도를 가진 수가 존재한다.
- 시간적 비가역성의 한 측면을 연구하던 미국의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J. 굴드 Stephen J. Gould는 결정론적인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복잡한 생물 유기체의 역설계reverse engineering'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굴드는 이것을 '생명의 테이프 실험 tape of life experiment' 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인간 종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된 모든 진화적 사건들을 기록으로 저장한 가상의 테이프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것을 되 감은 뒤 다시 틀었을 때 기존과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 결국 인 간 종이 등장할 확률은 0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바꿔 말하면 생 명의 테이프는 지구 역사에서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수많은 무작위적 사건으로 이루어진 경로를 따르기 때문에 애초에 수 백만 년 전에 인류라는 종을 탄생시킨 사건의 조합이 정확히 똑같이 재현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내가 이 책을 시작하면서 〈스타트렉>의 외계인 스팍의 뇌가 십 중팔구 우리 뇌와는 크게 다를 것이며, 따라서 우주에 대한 관 점도 다를 것이라고 주장했던 부분도 정당화해준다.
- 선거와 야구도 시뮬레이션과 예측을 하기에 만만치 않은 복잡한 과정이지만 860억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뇌의 동역학 을 다룰 때는 그 어려움이 훨씬 커진다. 사실 수십억 개의 뉴런 이 다양한 조직 수준에서 정교하고 일관되게 행동해야 기능을 할 수 있는 동물의 뇌를 통째로 시뮬레이션하려면, 그 시뮬레이션의 일탈 가능성은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수학도 뇌를 시뮬레이션할 때 문제를 일으킨다.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계산 가능성이다. 계산 가능성이란 수학적 공식화를 디지털 기계에서 작동 가능한 효과적인 알고리즘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말한다. 계산 가능성은 문자-숫자 구성물 alpha-numerical construct을 생성할 수 있느냐는 가능성과 관련이 있지, 계의 어떤 물리적 속성에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큰 벽에 부딪힌다. 자연현상에 관한 대부분의 수학적 공식화는 알고리즘으로 환원할 수 없기 때문에 계산 불가능한 함수 noncomputable function 로 정의된다. 예를 들면 디지털 컴퓨터의 체계적인 디버깅을 가능하게 해주는 범용 절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작동을 방해할지 모를 미래의 잠재적 버그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함수 F를 알고리즘으로 표 현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 계는 항상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는 예상할 수 없던 잘못된 행동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이 함수 F는 계산 불가능한 함수로 분류된다. 그래서 이것은 튜링기계로 시뮬레이션할 수 없는 함수의 종류를 정의하는 처치-튜링 명제를 통과하지 못 한다. 만능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모든 프로그램에 바이러스 가 들어 있지 않다는 출력을 내놓는 함수 F 역시 계산 불가능한 함수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계에서 작동하는 만능 암호 시스템이나 동역학계 dynamical system 가 카오스적인지 아닌지 말해줄 알고리즘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도 동일한 유형의 추론을 통해 입증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뇌도 마찬가지다. 뇌는 계산 불가능한 함수로만 온전한 기술할 수 있는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튜링기계는 그런 함수를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기능을 디지털 컴퓨터에서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 이미 자신의 계산 기계가 갖고 있는 한계를 인식하고 있던 앨런 튜링은 1939년에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오라클기계 Oracle machine라는 것을 상상해서 직접 이것을 극복하려고 시 도했다. 오라클기계의 핵심은 튜링기계를 통해 수학적으로 처 리할 수 없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 세계의 도구를 도입하 는 것이었다. 튜링기계는 오라클, 즉 신탁을 전하는 자가 응답 한 이후에 계산을 이어갈 수 있다. 튜링은 일부 오라클기계가 튜링기계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우리는 오라클이 기계일 수 없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그것의 본질에 대해 더 따지고 들어서는 안 된다.”
튜링의 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디지털 정보 시대가 시작되던 순간부터 개척자 중 한 명이 이미 컴퓨터에 한계가 있 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그 와 동시에 튜링이 이미 인간 뇌의 계산 능력이 자신이 창조한 계산 기계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계로 풀 수 있는 부류의 문제들은 꽤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본질을 이 해하지 않아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작업하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물론 여기에 덧붙여 종이도 무제한 공급 해주어야 할 테지만, 이런 결론을 통해 튜링은 무심코 고도연산 hypercomputation 이라는 분야를 개시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튜링 자신은 오라클 같은 존재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제안을 한 적이 전혀 없음을 강조해야겠다. 그는 직관(계 산 불가능한 인간적 속성)은 수학적 사고의 모든 부분에 녹아 있다고 거듭해서 주장했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튜링은 기본적으로 괴델이 자신의 정리에서 표현한 결론을 확증한 셈이다. 괴델의 입장에서는 수학적 증명이 공식화될 때 직관은 수학자가 기존에는 증명할 수 없었던 진술의 진리를 이해하는 그 단계들 속 에서 명백하게 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튜링은 그런 직관의 순간에 뇌가 물리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제안한 바가 없다.
- 뇌 중심 우주론의 개념이 처음에는 과장되고, 심지어 허황되 게 들릴 수도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우주가 뇌를 등장시키고, 그 뇌가 자신이 기원한 우주 그 자체의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다는 순환적 속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세기에 걸 쳐 수많은 위대한 지성들이 우주에서 우리 뇌가 차지하는 위치 를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틀 잡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면 적잖 이 안심된다. 예를 들면 1734년에 이탈리아의 학자 잠바티스 EL H) ZGiambattista Vico = (HEI 7789 $2] Verum Factum) || 서 '새로운 과학'이 탄생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주장했다. 이 과학은 인간 사회의 원리를 연구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추는 과학이었다. 데이비드 루이스 윌리엄스 J. David Lewis-Williams는 자신의 책 《동굴 속의 정신 The Mind in the Cave》에서 비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비코는 인간의 정신이 물질세계에 형태를 부여하고, 이 형태 혹 은 일관성 coherence 덕분에 사람들이 효과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자연발생적인 것 혹은 주어진 것으로 보지만 세상은 인간 정신의 형태를 따라, 인간 정신에 의해 형태가 만들어진다. 세상에 형태를 부여하는 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인류는 스스로를 창조해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공동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보편적인 정신의 언어'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 자연 세계의 카오스로부터 무언가 일관된 것을 조직하고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 비코의 주장과 비슷하게 미국의 위대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 Joseph Campbell도 《다시, 신화를 읽는 시간Myths to Live By》에 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가장假裝 행위를 통해 살고, 가장 행위를 자기 삶의 모델로 삼는 것은 미숙한 우리 종이 갖고 있는 신기한 특징이다.” 그는 이 생각을 다음과 같이 더 자세하게 풀 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사기가 여전히 효과를 보고 있다. 이런 사기는 실제 일상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가 무의식이라 부르는 것의 심연으 로부터 가져온 꿈같은 신화적 이미지를 인간의 육체, 의례복, 건축 석조물 등의 형태로 현실세계에 투사한다. 그래서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서 꿈같은 비합리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그 결과 신화적 주제나 모티프를 의례 ritual로 옮겼을 때는 개인을 개인의 수준을 초월한 목적과 힘에 연결시키는 특징적인 효과가 나타난 다. 이미 생물권에서는 구애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나 구애의 전 투가 벌어지는 상황처럼 종에 중요한 관심사species-concerns가 지 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형화되고 의례화된 행동 패턴이 생물 개체들을 그 종에 공통으로 프로그래밍된 행동 순서에 따라 움 직이게 만든다는 사실이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에 의해 관 찰된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사회적 교류의 모든 영역 에서 의례화된 과정은 그 참가자들을 몰개성화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오게 만든다. 그럼 이제 그들의 행동은 자기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종, 사회, 계급, 직종의 행동이 된다.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캠벨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리고 있다. “신화와 거기에 나오는 신들이 우리 정신세계(즉, 인간의 뇌)가 투사되어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나는 이제 우리 모두가 이런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되지 않은 신이 있을까? 그런 신이 있기는 했을까?"
- 시간과 공간 모두 우리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처음에는 충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제 나는 상대 론적 뇌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통증과 비슷하고 공간 은 자기감과 비슷한 이유를 밝힐 준비가 됐다. 내가 이 진술에 서 의미하는 바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대단히 원초적인 개념 또 한 인간의 정신이 외부 세계에서 획득한 복잡하고 잠재적인 정 보의 차원 수를 줄일 목적으로 창조한 정신적 추상이라는 것이 다. 더 나아가 나는 기본적인 정신적 추상으로서의 시간과 공 간은 자연선택 과정의 결과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의 진화 적합성 evolutionary fitness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연 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우주를 시간과 공간으로 만들어진 연속적인 발판으로 채움으로써 우리 뇌는 탄생 이후로 우리 종이 몸 담아온 환경에 발생 하는 만일의 사태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뇌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꽤 단 순하다. 외부 세계에는 시간이나 공간의 물리적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위에서 보았듯이 역사적으 로 제안되었던 대부분의 우주 모형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양으로 여겨지거나(뉴턴의 우주), 기하학적 기술로 환원되었 다(상대성이론), 그 누구도 시간의 기본입자나 공간의 기본입자' 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이 두 기초 요소의 존재나 속성을 설명해줄 물리적 실체에 해당하는 시간 보손boson 이나 공간 보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시간이나 공간 그 자체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논거다. 대신 시간과 공간은 모두 우리가 외부 세계 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상태나 물체의 연속적 변화(우리는 이것 을 시간의 흐름으로 인식한다), 혹은 우리가 개개의 것으로 취급하는 대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우리는 이것을 '공간'이라 부른다) 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뇌가 구축한 정신적 추상에 해당한 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간 자체를 측정하지 않고 시간의 흐 름, 혹은 델타 시간 delta time 만을 측정한다는 사실도 이런 관점 과 잘 부합한다.
- “우리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거나 경험하도록 진화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부과하는 대부분의 상황에 서 살아남을 능력을 극대화하도록 선택되었다. 이 둘은 별개의 문제다.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한다고 해서 적합성이 보장되 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 다. 따라서 우리 뇌는 세상을 설명할 때 '실재적' 이어야 할 이유 가 없다. 대신 뇌의 기능은 우리가 이 세상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예상하고 완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결코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고 우리 영장류 뇌가 만들어 제공하는 관점을 통해 경험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 융은 집단무의식을 이렇게 묘사한다. “주어진 원형에 부합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원형이 활성화되고 강박적인 상태가 등장한다. 이것은 본능적 욕구처럼 모든 이성과 의지를 이기고 목적을 달성하거나 아니면 병적 차원들의 갈등, 즉 신경증 neurosis 을 만들어낸다. 그럼 그에 따르는 결과가 분명해진다. “폭력이 사람에 영향을 미쳐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상태에는 별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다.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만으로도 자아와 무의식이 서로 자리를 바꾸게 만드는 데 충분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면으로는 생각이 건강한 사람들도 아주 이상한 개념에 사로잡힐 수 있다. 집단, 지역 공동체, 심지어는 국가 전체가 이런 식으로 심리적 역병에 장악될 수 있다.”
집단무의식이란 우리들 각자에게서 똑같은 사고 패턴, 본능, 행동이 방출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융은 이 집단무의식 의 씨앗을 우리 뇌 깊숙한 곳에 심어놓은 진화의 역할을 언급 하지 않고도, 이 '역사적 요소가 내가 이 책 전반에서 뇌의 자 체적 관점이라 부른 것을 빚어내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를 강조해서 보여주었다. “우리는 한 해를 단위로 생각하는 반 면, 무의식은 수천 년을 단위로 생각하고 살아간다.” 여기서 융은 의식적 사고가 조금 더 최근에 진화한 인간의 정신적 산물이며, 따라서 어느 때이든 더 오래되고 지배적인 무의식의 레퍼토리에 장악될 수 있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의식은 무의식의 심리에서 자란다. 무의식은 의식보다 더 오래되었고, 의식과 함께 혹은 의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기능을 이어간다. ..... 또한 무의식적 동기가 우리의 의식적 결정을 무효화하는 일이 잦다. 특히 극도로 중요한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융의 개념이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신경생리학에 기 반한 작동 가능한 제안과 수렴한다는 사실은 수천 년에 걸쳐 대규모 인간 브레인넷의 창조를 가능하게 했던 메커니즘을 분 석해볼 수 있는 대단히 흥미로운 접근방식을 제안한다. 여기서 는 역사 전반에 걸쳐 인간의 사회집단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서게 되어 인간의 원초적 원형에 호소하는 힘을 획득하게 된 정신적 추상의 역할, 그리고 일단 '정보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수많은 사람의 뇌를 감염시킬 수 있게 된 후에는 인간의 뇌가 긴밀하게 동기화할 수 있게 해준 통신 수단, 이 두 가지를 반드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 적어도 나에게 가장 걱정스러운 결론 중 하나는 포드의 책에 서 인용한 일부 미국 경제학자들의 주장이었다. 노동자들이 기계와 경쟁한다는 개념은 잊어버리고, 대신 굴욕의 상처를 보듬고 일어나 인간이 우월하다는 자존심을 삼키고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미래에 살아남기 위한 딱 한 가지 실천 가능한 전략은 기계를 보좌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바꿔 말하면 기계와 컴 퓨터를 돌봐주는 조력자가 되는 것 말고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다. 좋게 말해서 조력자지 기계의 주인이 아닌 하인이나 노예 가 되라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소리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 시나리오와 아주 유사한 일들이 이미 비행기 조종사, 방사선 전문의, 건축가,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고숙련 전문가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항복 소리가 여기저기서 크고 분명하게 들리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응으로 일부 사 람들은 이미 자신의 정신적 무기를 몰수당하고 패배를 받아들 이고 있다.
이 시나리오로도 이미 마음이 불편하지만, 나는 인류의 미래 에 훨씬 더 파괴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약 10만 년 전에 현대적인 인간의 정신이 등장한 이후로 인간 조건을 정의해왔던 바로 그 특징들이 뇌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이야기가 아니 라 아주 현실적이고 걱정스러운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이런 부 분은 이미 많은 저자가 제기한 내용이다. 이들은 우리가 잠을 자는 몇 시간 말고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디지털 기술에 이렇게 푹 빠져 살다 보면 우리 뇌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과 독특한 작동 영역이 빠르게 질적으로 침식당할 것이라 결론 내리고 있 다. 거기에 더해서 인간 조건의 탁월함과 특수성을 정의해주 었던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또한 사라지게 될 것이다. 50퍼센트의 사람이 실직하는 세상을 생각해도 충격이 오지 않 는다면 이런 세상을 상상해보자. 이런 예측이 현실이 되어 더 많은 사람이 한낱 디지털 좀비에 불과한 존재로 변한 세상 말 이다. 그럼 초기 호모 사피엔스 부족의 유전자와 문화적 전통 을 이어가는 자랑스러운 후손이라는 자긍심, 초라한 영장류에 서 기원하였으나 빙하기에서 기근, 역병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위협하는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번창하여 백질과 회백질의 젤리 비슷한 덩어리, 그리고 1피코테슬라의 자기력으로부터 인간 만의 우주를 창조해낸 자랑스러운 존재라는 자긍심은 사라지 고 없을 것이다.
- 그 시기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듯, 1960년대에 최초의 대화형 컴퓨터 프로그램인 엘리자(ELIZA)를 개척한 MIT의 컴퓨터과학자 조지프 와이젠바움Joseph Weizenbaum은 이렇게 말 했다.
디지털 컴퓨터가 대학교 실험실에서 나와 미국의 비즈니스, 군 사, 산업 시설에 도입될 당시에는 그 잠재적 유용성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미국의 경영자와 기술자들은 재앙과도 같은 위기를 피할 수 있게 컴퓨터가 딱 알맞은 시간에 도착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주장에 따르면, 컴퓨터가 적절한 시기에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은행에서 일할 직원을 충분히 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전 세계로 퍼진 미군 병력들의 점점 복잡해지는 소 통 문제와 군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주식과 원자 재 거래도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에는 전례 없이 크고 복잡한 규모의 계산 과제가 미국 사회를 기다리고 있었고, 거의 기적처럼 그 과제를 다룰 컴퓨터가 시 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하지만 와이젠바움은 이 딱 맞춰 찾아온 기적'이 그저 미 국 주류 사회에 컴퓨터가 도입되는 것에 이해관계가 달려 있 는 모든 분파의 집단적인 정신적 구성물, 즉 시대정신에 불과 하다고 신속하게 결론 내린다. 그 후로 펼쳐진 미래가 당시에 가능했던 유일한 미래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는 이런 관점을 지지하며, 원자폭탄을 탄생시킨 맨해튼프로젝 트 Manhattan Project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전쟁 수행 과제가 컴 퓨터가 널리 가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성공적으로 수행되었 다고 말했다. 대신 가장 지겨운 것에서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 기까지 필요한 모든 계산을 수행하는 데 사람의 지적 능력이 동원되었다. 컴퓨터가 이 과정의 속도를 상당히 높여준 것은 분명하지만 컴퓨터의 도입으로 혜택을 입은 과정이나 과학에 서 컴퓨터 덕분에 새로 얻은 이해나 지식은 없었다. 사실 와이 젠바움은 점점 더 많은 초기 사용자들이 컴퓨터를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컴퓨터가 실제로 그렇게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계산의 초 기 시절에 미국인의 삶의 대부분의 측면에서 컴퓨터가 즉각적 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결과를 내놓는 속도가 핵심 변수로 작용 했다. 와이젠바움에 따르면, “디지털 컴퓨터는 전후 시대와 그 이후 시대에 현대 사회의 전제조건이 아니었다. 미국 정부, 비즈니스, 산업에서 대부분의 '진보적 요소들이 디지털 컴퓨터를 열정적이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컴퓨터는 컴퓨터 자체가 필수 요소로 작용해서 형성된 형태로 사회의 생존에서 필수불가결한 자원으로 자리 잡게 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다 른 저자들도 이런 개념을 뒷받침했다. 예를 들어 폴 에드워즈는 와이젠바움의 뒤를 이어 이렇게 말했다. “도구와 그 사용은 인 간의 담론에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런 담 론을 통해 직접적으로 물질적 실재가 형성될 뿐 아니라 정신적 모형, 개념, 그리고 그런 형성을 인도하는 이론이 나온다.”
- 인공지능 시스템은 과거의 정보, 그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된 규칙,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 새겨진 훈련 규칙 세트에 속박되어 있는 노예다. 인공지 능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과거를 통해 이 우주의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라플라스의 꿈을 반영하는 셈이다. 그래서 음악을 작곡 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 모차르트 심포니의 훈련 규칙 세트만을 받았다면 이 시스템은 다른 스타일의 음악은 절대 창조할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 은 그 무엇도 창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하며, 그 무엇도 일반화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사 람이 떠먹여준 것만을 뱉어낼 뿐이다. 인간이 말하는 '지능'의 정의에서 보면 이런 지적 시스템이 지능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간에게 적용하는 지능의 기준을 수행 능 력 평가의 표준으로 삼는다면 인공지능 시스템은 매번 비참한 실패를 맞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인공지능이 꼭 지금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지 않아도 미래에 우리보다 더 막강해질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미래에 도달할 수 있는 훨씬 편하고 실현 가능성 높은 우 회로가 존재한다. 인간의 뇌를 디지털 시스템에 과도하게 노출 시켜 스스로 디지털 시스템 중 하나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의 미 있는 대안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 니컬러스 카 Nicholas Carr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컴퓨터에 의지해서 세상을 이해 하게 됨에 따라 우리 자신의 지능이 점점 더 단조로워져 인공 지능이 될 것이다.”
-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뇌가 오늘날 직면한 위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20세기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인 T. S. 엘리엇의 글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다. 그는 1934년에 바위로부터의 합창 Choruses from The Rock)에서 선견지명을 발 휘하여 우리 시대의 가장 큰 곤경을 단 세 줄의 문장 속에 정확 히 담아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삶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지식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로 갔는가?
- 인류 대다수가 완전한 예측 불가능성을 인식하고 압도되 는 것을 보며 폴란드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지그문트 바우 만Zygmunt Bauman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 했다. “얼마 전에는 '탈현대성 post-modernity' 이라고 잘못 부르다 가 지금은 적절하게 유동적 현대성 liquid modermity' 이라고 부르 게 된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밖에 없고, 확실한 것은 불확 실성밖에 없다는 확신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100년 전에는 '현대적이라는 말이 최종적으로 완벽한 상태'를 추구 한다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최종적 상태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 고 그런 상태를 바라지도 않는 상태에서 개선이 무한히 이루어 짐을 의미하게 됐다.” 바우만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 나는 점점 현재 우리가 대공위interregnum의 시대에 들어와 있다 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낡은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 고, 오래전에 학습했거나 물려받은 생활양식이 현재의 인간 조 건과 더 이상 맞아떨어지지도 않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조건에 적합한 새로운 생활양식이 아직 발명되지 도, 자리 잡지도, 가동되지도 않는 시대인 것이다. 현대적인 삶의 형태들은 몇몇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형태를 하나로 묶는 공통분모는 연약함, 덧없음, 취약함,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성향 등이다. 현대적이다'라고 함은 강제적으로, 강박적으로 현대화하는 것이다. 그저 '현대적 인 상태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유지하기는커녕 마무리되지도, 완전히 정의되지도 않은 상태로 머물면서 영원히 '현대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 바우만은 이렇게 결론 내리고 있다. “유동적 현대성의 조건 아래 살아가는 것은 지뢰밭을 걷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폭발이 일어날 수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순간이 언제이고, 그 장소가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화된 세상에서는 이런 조건이 보편적이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고, 그 결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