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

dalai 2022. 3. 16. 22:31

- 인류 역사에 등장한 돈은 여러 가지지만, 그 재화를 더 생산하는 데 제한을 가하는 장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존 재화의 가치가 유지된다는 특성은 공통이다. 새로 더 생산하기가 힘들수록 그 돈은 견고하다. 공급을 늘리기 어려운 돈을 단단한 돈, 경화(硬貨, hard money)라고 하고, 공급을 늘리기 쉬운 돈을 부드러운 돈, 연화 (軟貨, easy money)라고 한다.
(hard'에 '단단한'과 '어려운 이라는 뜻이 모두 있기 때문에 'hard money' 에도 '(가치가) 견고한 돈과 (얻거나 만들기) 어려운 돈'이라는 중의성이  다. 마찬가지로 'hardness'는 '돈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정도'라는 의미도 포괄하고, 또 그렇게 이해하는 편이 저자의 의도에 더욱 적합한 경우도 있으나, 번역문에서는 혼선을 피하기 위하여 (돈의 가치가) 견고한 정도로 통일 해도 전반적 의미가 왜곡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 옮긴이)
- 현대에 기술이 발전하여 조개를 수입하거나 채집하기 쉬워지자 조 개껍질을 돈으로 쓰던 사회는 금속화폐나 지폐로 방향을 틀었고, 정 부가 화폐 공급을 늘리면 국민은 외화나 금처럼 비교적 믿을만한 화 폐성 자산을 보유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20세기에는, 특히 개발도상 국에서는 그런 비극적 사례가 안타까울 정도로 많이 등장했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화폐란 공급 확대를 제한하는 매우 믿을만한 장치를 갖춘 화폐, 다시 말해 경화다. 화폐끼리는 언제나 치열하게 경쟁하는 데, 그 결과를 내다보려면 다음 장에서 살펴보듯 기술 발전이 경쟁 당사자의 저량/유량 비율에 끼치는 영향을 보면 된다.
- 오키프는 섬에서 고코넛을 사서 코코넛 오일 제조업자에게 팔아 이 익을 남길 기회를 찾아냈다. 하지만 열대 낙원에서 살던 섬사람들은 자기 삶에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던 데다 외국 돈을 받아 봤자 쓸모가 없으니, 일하라고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오키프는 순순히 포 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배를 홍콩으로 몰고 가 큰 배와 폭약을 구하고 팔라우로 간 후, 폭약과 현대식 도구로 큼지막한 라이를 여러 개 캐내어 야프 섬에 싣고 가서 주민들에게 코코넛 대금으로 치르려 했다. 그런데 오키프가 예상했던 바와 달리 마을 사람들은 라이를 받 기 꺼려했다. 촌장은 오키프가 가져온 돌이 지나치게 쉽게 얻어온 것 이기 때문에 아무 가치도 없다고 선언하고, 마을 사람들이 일한 대가로 그 돌을 받는 것을 금지했다. 야프 섬에서는 사람들이 전통 방식으로 피땀 흘려 캐낸 돌만 인정했다. 하지만 섬사람 가운데에서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은 몇몇은 오키프가 원하던 대로 코코넛을 공급했 다. 섬에서 갈등이 일어난 끝에, 라이는 돈으로서 종말을 맞았다. 오늘날 야프 섬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화폐는 현대식 정부화폐고, 라이는 문화와 의례에 관련한 기능을 주로 한다.  이야기가 상징하는 바는 매우 크지만, 언제가 되었든 현대 산업 문 명이 야프 섬과 섬사람에게 일단 침입하면 라이는 화폐 기능을 잃을 운명이었고 오키프는 그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다. 야프에 현대식 도구와 공업력이 도착하면 라이 생산 비용은 이전보다 크게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오키프가 그랬듯 이전보다 훨씬 많은 라이를 야프에 들여 올 사람은 현지인이 되었든 외지인이 되었든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 다. 현대 기술이 도입되자 라이의 저량/유량 비율은 극적으로 낮아졌다. 매해마다 훨씬 더 많은 돌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자 섬에 원래 있던 돌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이제 이 돌을 가치저장 수단으로 쓰겠다는 결정은 점점 더 어리석은 판단이 되었다. 라이는 시간을 뛰어넘는 판매가능성을 잃었고, 그리하여 교환매개 기능도 잃었다.
이 책을 쓰는 지금도 계속 가치가 폭락하는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처럼 지금까지 화폐 기능을 잃은 돈 모두가 저량/유량 비율 하락에서 받은 영향은 세부사항만 다를 뿐 결국 동일하다.
- 금속은 가지고 돌아다니기 편할 만큼 크기도 작고 규격이 통일되었으며 가치는 매우 높은 돈을 만들기 쉬워서 조 개껍질, 돌, 구슬, 소, 소금보다 좋은 교환매개로 입증되었다. 또 탄 화수소 연료 사용이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인간의 생산능력이 크게 증 가하자 예전에 화폐로 쓰던 물건의 추가 공급량(즉, 유량)이 급격히 늘 어났다. 다시 말하면 예전 화폐가 저량/유량 비율을 높이 유지하던것은 생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이제 생산능력 향상으로 그 어려움을 잃자 자연화폐가 든 관 뚜껑에는 못이 하나 더 박혔다. 현대 탄화수소 연료가 도입되자 라이를 만들 돌은 캐기 쉬워졌고, 아그리 구슬을 만드는 비용은 매우 낮아졌으며, 조개는 큰 배를 타고 무더기로 긁어모으게 되었다. 이러한 돈이 견고함을 잃자 그 돈을 가지고 있 던 사람은 엄청난 부를 빼앗기는 피해를 보았고, 그 결과 사회 구조는 완전히 무너졌다. 오키프가 싸게 들여온 라이를 거부한 야프 섬 촌장은 요즘 경제학자 가운데서도 이해한 사람이 많지 않은 사실을 알 았던 것이다. 만들기 쉬운 돈은 절대 돈이 아니고, 연화를 사용한다고 사회가 부유해지지도 않으며, 사실은 힘들게 모은 부를 생산하기 쉬운 무언가와 바꿔 헐값에 넘기게 되기에 사회가 오히려 빈곤해진 다는 사실 말이다.
- 어떤 물건이든 가치저장 기능을 잘 수행하려면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올라가야 하는 한편, 생산자는 가격이 크게 떨어질 정도로 공급을 부풀리지 못할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난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런 상품이 있다면 이를 가치저장 수단으로 쓴 사람 이 보상을 받고 장기적으로 부를 늘리게 될 것이다. 다른 상품을 선택 한 사람도 앉아서 재산을 잃지 않으려면 이미 내린 결정을 뒤집고 더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의 선택을 베낄 것이므로 해당 상품은 가장 중요 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내내 벌어진 이 경쟁에서 승자는 단연 금이다. 
- 페르디난트 립스(Ferdinand Lips)가 요약한 다음 내용은 오늘날 독자에게도 교훈이 된다.
로마 황제들이 경제를 관리하려는 데 몰두했지만 상황을 더 악화 했을 뿐이라는 사실에는 현 세대 투자자 뿐 아니라 현대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도 주목해야 한다. 물가와 임금을 통제하고 법정통화를 관 리하는 법을 제정해 봤자 밀물을 막으려는 노력과 다를 바 없었다. 폭동·부패·무법 · 맹목적 투기와 도박 열풍이 역병처럼 제국을 휩쓸었다. 화폐가 가치를 절하당하여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당시에는 상품을 만들기보다 상품에 투기하는 편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 도시국가 등장은 유럽을 암흑시대에서 구해 르네상스로 끌고 간 원동력으로 널리 인정받지만, 도시국가가 등장하는 데 건전화폐가 기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도시국가가 사람이 일하고 생산하고 교역하여 번창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이 된 것은 대체로 건전화폐본위제를 채택한 덕으로 돌릴 만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우레우스를 발행한 이래 처음으로 유럽에서 발행된 주요 건전주화 는 피렌체에서 1252년에 찍어낸 플로린(florin, 또는 피오리노(fiorino)) 이다. 피렌체가 유럽 상업 중심지로 발전해 나가자 플로린도 유럽 제 1의 교환 수단이 되어, 유럽 대륙 전체로 뻗어나가던 피렌체 금융기관에게 힘을 실었다. 이후 베네치아가 피렌체를 처음으로 모방하여 1270년에 플로린과 특성이 같은 두카트(ducat)를 주조했고, 14세기 말까지는 150개가 넘는 유럽 국가와 도시가 플로린과 특성이 같은 주화 뿐 아니라 액면가가 낮은 주화도 함께 발행하여, 자국 시민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판매가능성이 매우 높고 가치를 나누기도 쉬운 화폐를 쓰면서 부를 축적하고 교역할 자유를 누리며 긍지를 느끼게 했다. 그렇게 유럽 소농이 누린 경제 자유와 이탈리아 도시국가가 누 린 정치 · 과학 · 지성 · 문화적 번영은 점차 유럽 대륙 전체로 퍼져나 갔다. 로마 · 콘스탄티노플 · 피렌체 · 베네치아 어느 곳의 역사를 보 아도 건전화폐본위제는 인류 번영에 전제이자 필요조건이고, 건전화 폐본위제를 채택하지 않은 사회는 야만과 붕괴로 떨어질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 실물이 직접 결제에 쓰이던 동안에는 금과 은 둘 다 화폐 기능을 지녔다. 상대 가격은 땅속에 묻혀 있는 양과 채굴의 난이도 및 비용 비율과 비슷하게 대략 금 1온스 당 은 12온스에서 15온스를 유지했 다. 하지만 귀금속으로 가치를 보장받는 지폐와 금융상품이 널리 쓰 이게 되자 은은 더 이상 화폐 기능을 가질 이유를 잃었고, 개인과 국 가가 금을 보유하는 쪽으로 쏠리자 은 가격은 크게 떨어져 다시 회복 하지 못했다. 금과 은 가격 비율은 20세기 평균 47:1이었고 2017년 에는 75:1을 기록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을 보유하는 데서 보듯 금 은 여전히 화폐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만 은은 사실상 화폐 기능을 잃었다. 
- 은이 화폐 기능을 잃자 당시에 은을 본위화폐로 사용하던 국가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인도 루피 가치가 유럽 국가의 금본위화폐에 비하여 계속 떨어지자 영국 식민 정부는 운영경비를 대려고 세금을 올렸는데, 그 때문에 영국 식민정책에 반대하는 폭동이 늘었다. 프로 이센-프랑스 전쟁이 끝난 1871년부터, 금으로 가치가 보장된 파운드 스털링을 본위화폐로 삼기 시작한 1898년까지 27년 동안 루피 가치 는 56% 떨어졌다. 1935년까지 은본위제를 유지했던 중국에서는 다 양한 형태로 존재하던 은 가치가 인도 사례와 같은 기간 동안 78% 사 라졌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과 인도가 20세기 동안 서구를 따라잡는 데 실패한 이유는, 두 나라가 사용하던 화폐성 금속이 화폐 기능을 잃 으면서 부와 자본이 엄청나게 파괴되었던 역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 다. 결국 은이 화폐 기능을 잃자 중국인과 인도인이 처한 상황은 아 그리 구슬을 쓸 때 유럽인을 맞아들인 서아프리카 인과 사실상 같다. 국내에서 경화였던 것이 외국에서는 연화였기 때문에 외국의 경화에 밀려났고, 그 과정에서 중국과 인도의 자본과 자원은 점점 더 외국인 에게 넘어갔다. 비트코인을 거부하기만 하면 신경 쓸 필요도 없으리 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아주 중요한 이 역사의 교훈을 마음에 새겨 야 한다. 역사가 말하듯, 남이 더 견고한 돈을 보유하면 자기도 영향 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 건전한 화폐 덕분에 자유무역이 전 세계에서 활발해지기도 했지 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금본위제를 채택한 선진 사회 대부분에서 저축률을 올리는 효과를 낸 덕분에 자본 축적을 도와 오늘날 현대식 삶의 기틀을 잡아온 산업화, 도시화 기술발전에 드는 자금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1900년에 금본위제를 정식으로 채택한 국가는 산업화 국가 모두를 포함하여 50여 개 국이었고, 그밖에 금본위제를 공식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금화를 주요 화폐로 쓰는 국가도 있었다. 인간이 기술 · 의학 · 경제 · 예술에서 얻어낸 결실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 금본위제 시대에 발명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유럽의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즉 '아름다운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영국 제국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도 대규모 군사 분쟁에 휘말리지 않은 절정기, 팍스 브 리타니카(Pax Britannica)가 이 때다. 1899년에 미국 작가 넬리 블라 이(Nellie Bly)가 72일 만에 세계를 일주하는 기록을 세웠을 때 가지고 다닌 돈이 영국 금화와 영국은행권이었다. 넬리가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발 딛은 곳 어디서든 한 가지 돈만 사용해도 되었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1879년에 금본위제로 돌아간 이후 경제가 급격히 성장한 이 시대를 도금 시대(the Gilded Age)라고 불렀다. 도금 시대를 한 번 끊었던 사건은 6장에서 다루듯 미국 재무부가 은을 화폐로 규정하여 화폐 기능을 다시 부여하려고 시도하던 일로, 화폐 역사에 등장한 괴상한 일화이자 은이 돈으로서 낸 사실상 마지막 단말마였다. 그 덕에 화폐 공급량은 크게 늘었고, 사람들이 몰 려와 지폐와 은을 내고 금을 찾아가려는 바람에 은행은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 결과 1893년에 공황이 발생한 다음에야 미국 경제가 다시 성장했다.
- 금이 집중되자 금의 화폐 기능이 적에게 넘어갈 위험이 커졌다. 그리고 미제스가 잘 이해한 대로, 금에게는 애초부터 적이 지나치게 많았다.
민족주의자가 금본위제에 맞서 싸우는 이유는 자기 나라를 세계 시 장에서 단절하여 가능한 한 자급자족하는 나라로 만들고 싶어서다. 개입주의 정부와 압력단체가 금본위제에 맞서 싸우는 이유는 가격과 임률을 마음대로 조작하려는 시도에 가장 심각한 방해물이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금을 가장 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신용팽창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신용팽창이란 모든 경제 병폐를 치료할 만병통치약이다.
- 금본위제가 채택되면 정치판은 화폐 발행량에 손대 구매력을 조정할 힘을 잃는다. 다수가 금본위제를 받아들이려면 돈을 찍어낸다고 모두가 부유해질 수는 없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전능한 정부 가 종이쪼가리에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미신이 금본위제를 혐오 하는 태도를 낳는다. (중략) 정부는 신용팽창이 이자율을 낮추고 무역 수지를 개선' 하기에 적당한 수단이라는 오류에 푹 빠져서, 금본 위제를 파괴하는 데 열을 올렸다. (중략) 사람들이 금본위제에 맞서 싸우는 이유는 자유무역을 자급자족으로, 평화를 전쟁으로, 자유를 전능한 정부의 전체주의로 바꾸는 데 있다.
20세기는 정부가 금본위제 위에 세운 현대식 중앙은행을 발명하 여 시민의 금을 장악하면서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하자 각 국 정부는 금을 중앙에 집중한 덕분에 화폐 공급량을 금 보유고보다 훨씬 크게 늘리고 자국 화폐 가치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도 중앙은행이 금을 빼앗아 쌓아가는 행태가 계속되다가, 1960년대 가 되어서야 미국 달러를 국제 기준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은 1971년에 화폐 기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하지만 중앙은행은 상당한 금 보유고를 유지했고, 그나마 금을 조금씩 팔다가 지난 10년 동안은 다시 금을 사들이는 쪽으로 돌아섰다. 중앙은행들 이 말로는 금의 화폐기능이 끝났다고 계속 선언했지만, 진실은 금 보유고를 유지하는 행동에 드러난다. 화폐 경쟁 관점에서 보면 금 보유고 유지는 완벽히 이성적인 판단이다. 외국 정부가 발행한 연화를 보유한다면 시뇨리지(seniorage, 화폐의 액면가에서 제조 비용을 뺀 이익), 즉 화폐발행차익은 자국 중앙은행이 아니라 외화를 발행하는 국가에 쌓이는데, 외화 가치가 떨어지면 자국 화폐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 다. 게다가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전 세계 금 비축량 대비 약 20%로 추정되는) 금을 일제히 내다팔 때 가장 있음직한 효과는, 금은 산업용으로나 미적으로나 높이 평가받기 때문에 거의 떨어지지 않은 가격에 매우 빨리 팔려나가고 중앙은행의 금 보유고는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정부가 발행한 연화와 금이라는 경화 사이에 화폐 경쟁이 벌어진다면 장기적으로 승자 하나만 남을 확률이 높다. 말보다 행동을보면 확연하듯, 정부가 화폐를 발행하는 세상에서조차 정부는 금에게서 화폐 기능을 빼앗아가지 못했다.
- 오늘날 정부가 승인한 경제학 교과과정에서는 여전히 금본위제가 대공황의 원흉으로 손가락질 당한다. 1870년부터 1914년까지 40년이 넘도록 거칠 것 없이 세계에 성장과 번영을 가져다 준 그 금본위제가 1930년대에는 정부가 대공황에 맞서는 데 필요한 화폐 공급 확대 를 막았기 때문에 갑자기 효과가 없어졌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말하 는 경제학자에게 정작 대공황의 원인을 물어보면 야성적 충동' 때문이 라는 케인스의 무의미한 발언밖에 내놓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경제 학자 가운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인데, 정말 금본위제가 문 제였다면 금본위제를 정지한 다음에는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했어야 했다. 실제로는 정반대로 금본위제를 정지한 후 10년도 넘게 흘러서야 다시 경제가 성장했던 것이다. 화폐와 경제를 기본적으로나마 이 해하는 사람이라면,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금 본위제에서 이탈한 데 있고, 침체가 더욱 깊어진 원인은 후버와 루즈 벨트 시절에 정부 통제와 경제 사회화가 강해진 데 있다고 확실히 결 론을 내릴 것이다. 금본위제 정지도 전시 지출도 대공황을 완화하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계 주요 국가가 금본위제에서 이탈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제 교역은 요동치는 명목화폐의 바다에서 난파했다. 국제 가격 구조가 성립하는 데 필수인 가치 표준은 없고 정부는 국가 통제주의와 고립주의의 충동에 점점 깊이 사로잡히는 상황에서, 자국 화폐 가치를 낮 추어 수출업자에게 이익을 주는 화폐 정책이 무역 정책 도구로 등장 했다. 무역 장벽이 점점 더 많이 세워지고 경제 민족주의가 그 시절 을 지배하는 정신이 되었으니 결국 파멸은 시간문제였다. 40년 전에 는 금본위제라는 보편 기준에 따라 교역하며 함께 번영했던 나라들 이 이제는 거대한 화폐·무역 장벽을 쌓아 서로 왕래를 막고, 자기 실 패를 모두 다른 나라 탓으로 돌리는 데 소리를 높이는 대중영합주의 지도자를 따르며, 증오 가득한 민족주의의 파도에 점점 더 깊이 잠겼 으니, 미국 경제학자 오토 맬러리(Otto Mallery)가 남긴 예언이 곧 실 현될 차례였다.
"군대가 국경을 넘지 않으려면 물자가 국경을 넘어야 한다. 교역이 족쇄를 떨치지 못한다면 폭탄이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다.”
-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거장인 미 제스가 잘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데 스스로 존재하는 가치란 없고, 금속 같은 물질에 원래부터 화폐 기능을 하는 본 질 같은 것은 전혀 없다. 금은 다음과 같은 건전화폐의 조건을 충족하 기 때문에 화폐 지위를 지닌다고 미제스는 생각했다.
건전화폐 원칙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시장이 선택한 널리 쓰이는 교환 수단을 인정한다는 데서는 적극적이다. 화폐 제도에 간섭하 려는 정부 경향에 저항한다는 데서는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미제스의 견해에 따른 건전화폐란 시장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소유자만이 계속 통제하며, 강압적 간섭과 개입에도 안전한 화폐다. 소유자 아닌 다른 사람이 화폐를 통제하는 한, 화폐를 통제하는 사람은 누구든 인플레이션이나 몰수를 통하여 화폐 가치를 빼돌리고 화폐 보유자에게 비용을 떠넘겨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화폐를 사용하려는 너무나 강력한 유인에 항상 유혹당 할 것이다. 2장에서 살펴보았듯 유럽 상인이 싸구려 구슬을 잔뜩 풀 어 아프리카 사회에서 부를 빼돌렸던 사례처럼, 결국 부를 생산하는 사람에게서 부를 빼앗아, 사회에 가치가 있는 물건을 실제로 생산하지도 않으면서 화폐를 통제하는 데만 특화한 사람에게 넘겨주는 결과가 된다. 생산적 방법으로 부를 얻으려는 사람을 가난하게 만듦으로써 부자가 되는 길이 계속 열려 있다면 그런 사회는 절대로 번영할 수 없다. 반면 건전화폐를 사용하면 오직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주어 야만 번영할 수 있으므로 사회가 생산 · 협력 · 자본축적·교역에 노력을 집중하게 된다.
- 20세기는 정부가 시장이 선택한 화폐를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정부 발행 지폐를 폭력과 협박으로 사람들에게 강요한 시절이므로 불건전 화폐와 전능한 국가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출과 적자가 늘자 정부는 건전화폐에서 계속 멀어졌고, 정부화폐 가치는 계속 떨어졌으며, 정부가 국가 수입 중 점점 더 큰 부분을 장악했다. 정부는 삶의 모든 측면에 점점 더 깊이 간섭했고, 교육 제도를 점점 더 깊이 통제하고 활용하여 “경제학 법칙과 달리 정부는 더 많이 지출할수록 번영한다”는 비현실적 개념을 사람들 마음속에 각인했다. 
- “화폐를 정부 손에서 빼앗아 와야 우리가 좋은 화폐를 다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폭력으로는 그것을 정부 손에서 가져올 수 없으니, 그들이 멈출 수 없는 무언가를 교묘하게 우회하는 방식 으로 도입하는 방법밖에는 없지요."
"그들이 멈출 수 없는 무언가가 실제로 어떤 형태를 갖추었는지를 완전히 망각한 시대인 1984년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보여준 통찰은 오늘날에 보아도 탁월하다. 
- 신용카드와 소비자대출 덕 분에 사람들은 미래에 투자한다는 구실도 댈 필요 없이 돈을 빌려 소비할 수 있다. 저축에 따른 자본 축적에 기반을 둔 경제 제도인 자본주의가 자본 축적과 정반대 개념인 과시적 소비를 불러일으켰다고 비 난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면 케인스주의가 현대에 얼마나 심각한 경제적 무지를 조장했는지 드러난다. 자본주의란 사람들이 자기 시간 선호를 낮추고 만족을 미루며 미래에 투자할 때 번영한다. 빚으로 부채질한 대중의 소비가 자본주의의 정상적 일부라면, 호흡곤란도 호흡의 정상적 일부다.
- 세대가 바뀔수록 상속 재산이 줄어들어 가족 전체의 힘이 약해지는 반면, 정부는 사용 한도가 없는 수표책으로 점점 힘을 키운 덕에 개인 인생사의 방향까지 결정하고 틀을 잡으며 더욱 다양한 방향에서 더욱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개인비용을 대는 기능이 가족의 재력에서 국가의 은혜로 다가오자 가족을 유지할 필요도 줄어들게 되었다.
전통 사회 사람들은 앞으로 자녀에게 부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건강한 청년 시절을 투자하여 가족을 꾸리고 자녀에게 가능한 한 최고의 삶을 선사한다. 하지만 장기투자를 할 필요가 전반적으로 줄어든다면 그리고 화폐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저축하면 손해가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가족을 향한 투자는 수지가 맞지 않게 된다. 게다가 정치인이 화폐인쇄기라는 마법을 사용하면 복지혜택과 퇴직연금을 영원히 받을 수 있다'고 거짓말하며 사람들을 꼬드긴다면 가족을 향한 투자는 가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시간이 흐 를수록 가족을 꾸릴 이유가 없어져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계속 늘어 날 것이다. 결혼생활을 계속하기에 충분할 만큼 감정·윤리 · 재무적 으로 배우자끼리 투자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이혼이 늘 것이고, 그나 마 결혼을 유지하는 가정에서도 아이를 덜 낳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 서 두드러진 가정 붕괴 현상을 이해하려면, 불건전화폐 탓에 이제껏 수천 년 동안 가정이 수행한 필수 기능을 국가에 빼앗기고 가족 구성 원 모두가 장기적 가족 관계에 투자할 유인이 줄었다는 사실을 인식 해야만 한다.
- 장기적 관점에 아무 관심이 없던 남자의 경제적 가르침을 적용한 때에 가정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케인스는 세대를 거듭하며 상당한 자본을 쌓은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을 뿐 아 니라, 지중해 지역을 돌아다니며 아동 사창가를 방문하는 등 어린이 들과 성관계하며 성년 이후 인생을 대부분 낭비한 쾌락주의 난봉꾼 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시간선호가 낮아 도덕관념이 강하 고 사람끼리 분쟁이 적으며 가정이 안정된 사회였지만, 이러한 전통 은 사람을 억압하므로 없애야 한다'며 반기를 들며 출현한 것이 케인스 세대다. 케인스가 만들기 원했고 또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사회의 윤리관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케인스 경제학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 자크 바전(Jacques Barzun)은 현대 '민중' 문화를 샅샅 이 분석한 저서 《새벽에서 황혼까지(From Dawn to Decadence)》에서 이렇게 결론지었다.
"20세기가 기여하고 창조해 낸 것이라고는 분석에 따른 개선 또는 짜깁기와 패러디에 따른 비평이 전부다.”
바전의 저작이 지금 세대 다수에게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우 울한 진실을 담아서다. 즉 '진보는 불가피하다는 편견을 물려받았다 해도 끝내 극복해 낸 사람이라면, 우리 세대는 문화와 개량이라는 면 에서 앞 세대보다 열등하다는 결론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인플레이션을 통해 지출하고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야만적 광경에 취해 살던 디오클레티아누스 시절 로마 신민들이 아우레우스 금화를 벌려면 진지하게 열심히 일해야만 했던 카이사르 시절 위대한 로마인 에 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경제가 점점 발전하고 복잡해지면 물리적 자본과 대출 시장의 실제 관계는 변하지 않는 반면 사람들은 둘을 점점 혼동하게 된다. 중앙은 행을 갖춘 현대 경제는 이러한 근본적 상충관계를 무시한 채, 소비자 가 소비를 포기하지 않아도 은행이 새로 돈을 찍어 투자 자금을 댈 수 있다는 가정을 토대로 건설되었다. 저축과 대출 가능 금액을 잇던 연결고리가 끊긴 지금은, 그 관계를 무시할 때 발생하는 재앙은 고사하고 심지어 관계 자체를 가르치는 경제학 교과서조차 없다.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과 이자율을 관리하면 저축과 대출 가능 금액 사이에는 반드시 괴리가 생긴다. 중앙은행은 보통 경제성장과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소비를 늘리려 하므로 통화 공급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추곤 하는데 그 결과 대출 가능 금액이 저축액보다 커지게 된다. 이 처럼 인위적으로 이자율을 낮추면 기업은 저축자가 투자 자금을 대려 고 남겨놓은 금액보다 더 많이 빌려서 사업을 개시한다. 다시 말해 미 뤄둔 소비 가치가 빌린 자본 가치보다 적어진다. 소비를 충분히 미뤄 두지 못했다면, 생산 초기 단계에 자본 · 토지 · 노동력이라는 자원이 소비재보다 중요한 자본재에 충분히 투입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공 짜 점심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소비자가 저축을 줄인다면 투자자가 사용할 자본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저축은 모자란 상황에서 종잇조각만 새로 만들고 여기에 디지털 계정만 연결한다고 해서 실제 자본이 사회에 마법처럼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기존에 공급된 화폐 가 치가 떨어지고 가격이 왜곡될 뿐이다.
이렇게 실제 자본이 부족해도 즉시 눈에 띄지는 않는데, 중앙은행 과 일반은행이 얼마든지 돈을 찍어내 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이 불건전화폐를 쓰는 주요 이점이다. 건전화폐를 쓰는 경제에서 는 자본 가격을 그렇게 조작하기가 불가능하다. 이자율을 인위적으로 낮게 설정하면 은행이 보유한 저축액이 줄어들고, 빌릴 수 있는 자본 양이 즉시 그만큼 줄어들어 이자율이 오르게 되며, 따라서 균형이 맞을 때까지 대출 수요가 줄어들고 저축 공급이 늘어난다.
-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애나 슈워츠(Anna Schwartz) 가 미국 화폐사를 다룬 결정판 《미국화폐사(The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통화주의의 뿌리가 되는 책이다. 두 사람은 888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에서 사실과 세부사항과 통계와 분석도 구를 끝없이 늘어놓으며 놀라운 능력을 과시하지만 한 가지 핵심 쟁 점은 불운한 독자에게 끝내 해설하지 않는다. 바로 금융위기와 불황 의 원인 말이다. 엄밀함으로 논리를 대체하는 데 공을 들이는 현대 학계의 근본 결점은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저서에도 드러난다. 이 책은 한 세기가 넘 는 동안 몇 번이고 미국 경제에 영향을 끼친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 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체계적 · 조직적으로 회피하고, 그 대신 그럴듯 한 연구 자료와 사실과 사소한 정보와 상세내용을 독자에게 쏟아 붓 는다. 이 책의 핵심 주장에 따르면 금융 위기, 대규모 예금인출사태, 디플레이션에 따른 경제 붕괴가 일어날 때 정부가 신속하게 통화 공 급을 팽창하여 은행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고, 그러지 못한 결과가 불황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지상주의 패거리의 우두머리 답게 경제 문제만 보면 정부를 탓하지만, 근거에 오류가 있으니 해결책이랍시고 내놓은 주장도 정부가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는 정도다.
이 책에는 저자가 금융위기, 대규모 예금인출사태, 디플레이션 붕괴 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논하지 않은 잘못이 확연 하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 이론을 논하며 보았듯, 애초에 전 반적 경제 불황을 부른 유일한 원인은 화폐 공급 확대다.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을 치워버렸으니, 안심하고 원인 그 자체를 해결책이랍시고 추천한다. 즉 정부는 경제 불황의 신호 가 처음 나타나자마자 개입하여 은행계에 자본을 적극적으로 투입하 고 유동성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왜 현대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는지 슬슬 이해가 갈 것이다. 그랬다가는 자기들이 제시한 해결책 중 거의 모두가 오류투성이로 드러날 테니까.
- 대공황은 1920년대 통화 팽창이 주식시장에 가짜 부라는 버블을 엄청나게 만들어 낸 결과였다. 통화 팽창 속도가 늦어지면 거품은 바로 꺼질 수밖에 없었다. 거품이 꺼지면 거품이 만들어 낸 가짜 부는 모두 디플레이션이 자아내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라질 운명이었다. 부가 사라지자 은행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규모 인출사태는 불가피했다. 그리고 부분지급준비제도의 문제가 드러났다. 결국 언젠가는 터질 재앙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연방준비제도가 예금액을 보장하는 편이 (하지만 기업과 주식시장의 손실은 보장하지 않는 편이) 옳았을지도 모 른다. 이에 따른 피해는 은행에게만 지우고, 회사를 청산하고 물가가 떨어지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러면 불황이 닥쳐 고통을 피할 도리가 없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통화 팽창을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유동성을 더욱 쏟아 부어 불황을 피하려 해 봤자, 애초에 위기의 원인인 왜곡만 심해질 뿐이다.
통화 팽창이 가짜 부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원이 부적절하게 배분되 었으니, 가짜 부가 없어져야만 시장이 적정한 가격 장치에 따라 다시 적절하게 돌아간다. 애초에 붕괴를 일으킨 것이 바로 가짜 부다. 가짜 부를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정도라면, 더욱 크게 몰려올 다음 번 붕괴에 대비하려 하면서 모래성을 다시 세우는 격이다.
- 고전경제학은 두 학파와 달리 전 세계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진 학문의 극치다. 고전경제학파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황금시대에 오스트리아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위대한 경제학자 세대를 기리고자 오늘날 오스트리아학파라고 흔히 불리며, 고전경제학파는 고대 그리 스와 스코틀랜드 · 프랑스 · 스페인 · 아랍의 고전 경제학이 낸 성과에 의지하여 경제학을 이해하고자 한다. 엄밀한 수치 분석과 수학적 궤변에나 집착하는 케인스주의나 통화주의와 달리 오스트리아학파는 인과에 따라 현상을 이해하고, 명백히 진실된 공리로부터 논리적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데 집중한다.
오스트리아학파의 화폐론에서는 가장 시장성 높은 상품이자 가장 판매가능성 높은 자산, 즉 소유자가 유리한 조건으로 제일 간편하게 팔 수 있는 자산이 시장에서 화폐로서 등장한다고 가정한다. 가치를 잃는 자산보다는 자기 가치를 보전하는 자산이 좋기 때문에, 교환매 개를 선택하려는 저축자는 시간이 흘러도 자기 가치를 보전하는 자산 을 화폐로 쓰는 쪽으로 이끌릴 것이다. 이윽고 네트워크 효과에 따라 단 하나 또는 소수의 자산만이 교환매개로 쓰인다. 저축자가 투자한 화폐에 부가 쌓이기 시작할 때마다 정부는 자국 화폐 가치를 떨어뜨 릴 유혹을 느낄 것이므로 정부에게 통제받지 않는 것이 화폐가 건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미제스는 생각한다.
나중에 8장에서 살펴볼 내용인데 나카모토는 비트코인 총 공급량 에 절대적 상한선을 설정했다. 그가 교과서에 나오는 표준 거시경제 학이 아니라 오스트리아학파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여기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오스트리아학파에 따르면 화폐는 얼마든지 작은 단위로 나뉠 수 있고, 또 화폐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로 표현된 수량이 아니라 실제 재화와 서비스 기준으로 측정된 구매력이기 때문에, 화 폐 공급량은 얼마가 된다 해도 규모가 큰 경제는 작은 경제는 운영하 는 데 충분하며, 따라서 화폐 수량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화폐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화폐의 구매력에 따라 결정된다. 화폐를 얼마만큼 원한다는 것은 일정한 개수 또는 무게만큼 원한다는 말이 아니라 일정한 구매력만큼 원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화폐의 구매 력은 시장이 작동한 결과 화폐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할 때 최종적으 로 결정되므로, 화폐의 과잉이나 부족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 화 폐 총량은 크든 작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개인으로서나 전체로서나 화폐를 사용하여 간접교환하고 편익을 누리기에 언제나 충분하다. (중략) 화폐 공급량을 바꾸기만 해서는 화폐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다. (중략) 경제 전체에서 사용 가능한 화폐 총량이 얼마가 되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화폐가 제공하고 또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 오스트리아학파가 볼 때, 통화량이 고정된 상태에서 경제가 성장하면 상품과 서비스의 실질 가격이 떨어지고,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이 갈수록 늘어난다. 그런 세상에서는 케인스주의 자가 두려워하듯 즉시 소비하기를 꺼리게 되지만, 대신 저축과 투자 가 장려되므로 미래에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다. 케인스는 높은 시간선호에 푹 빠진 학파의 시조이므로, 현재 저축이 증가하여 소비가 줄어드는 폭보다는 과거에 저축이 증가한 덕에 소비가 늘어난 폭이 압도 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장기적으 로 보면 소비를 계속 미루는 사회는 적게 저축하는 사회보다도 많이 소비하게 되는데, 시간선호가 낮은 사회는 더 많이 투자하여 구성원 에게 더 많은 소득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시간선호가 낮은 사회는 소 득 중 저축 비율이 훨씬 높지만, 자본 축적량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 수준도 올라가게 된다.
- 케인스주의자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명목화폐를 운영한다는 사실에서 자기 사상이 우월하다는 증거를 본다. 반면 오스트리아 학파는 정부가 금을 화폐로 쓰지 못하게 강압하고 명목화폐로 지불 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사실이, 명목화폐가 열등하기에 자유시장에서 성공할 능력이 없음을 똑똑하게 보여주는 증거라고 본다. 또한 명목화폐는 모든 호황과 불황을 만들어 내는 근원이기도 하다. 불황 이 발생하는 원인을 물어보면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는 야성적 충동 을 들먹일 뿐이지만,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는 경기 변동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을 개발했다. 바로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 변동 이론이다. 
- 고전적 자유주의 개념에 따른 정부가 존재하려면 정부가 독재와 과잉통치를 하지 못하도록 자연스레 제약하는 건전화폐가 있어야만 했다.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야만 운영비를 댈 수 있었기에 국민이 견딜 만한 한도 안으로 운영 범위를 제한해야만 했다. 정부는 언제나 세금을 거두어 생긴 수입까지만 지출하도록 균형재정을 유지해야 했다. 건전화폐를 쓰는 사회라면 정부는 국민이 운영비를 대겠다고 동의하 는 한도까지만 운영할 수 있다. 정부는 새로운 사업을 제안할 때마다 먼저 그 비용을 댈 세금을 거두거나 장기 국채를 판매함으로써 국민 이 해당 전략의 진정한 비용을 정확히 측정하여 수익과 쉽게 비교하 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진행하려는 국방이나 기반시설 건설 사업이 정당하다면, 국민에게도 이익이 보일 테니 세금을 부과하거나 채권을 팔아 재원을 마련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군주의 사치스러운 생활비를 대려고 세금을 올린다면 국민이 크게 분노할 것이므로 군주의 통치권은 정당성에 타격을 입고 매우 위태로워질 것이다. 정부가 부과한 세금과 부담이 클수록 납세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 아지니 징세비용이 크게 올라갈 것이고, 심지어 국민이 봉기하여 투 표로든, 무기로든 정부를 갈아치울 지도 모른다.
따라서 건전화페는 정부가 정직하고 투명하도록 강요하는 수단이 되어, 국민이 바람직하고 또 견딜만하다고 느낄 범위 안으로만 지배 를 제한했다. 또 건전화페는 행동이 일으키는 비용과 이익을 정직하 게 계산하는 분위기와 어떤 조직과 개인이라도 소비하려면 먼저 생산 해야 한다는 경제적 재임감을 사회 전반에 조성한다.
- 반면 불건전화폐를 사용하면 정부가 인기 있는 목표를 이루려 하면서도 비용은 청구할 필요가 없으니 국민에게 충성과 인기를 살 수 있다. 정부는 어이없는 계획을 꾸며 놓고 비용은 그저 화폐 공급을 늘 려 충당하는데, 국민이 그러한 계획에 드는 진정한 비용을 알아채려 면 화폐 공급이 늘어나 물가가 오르기까지 몇 년이 지나야 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화폐 가치가 손상된 이유를 외국인, 은행, 소수민족집단, 이전 정권이나 다음 정권이 사악한 음모를 실행해서라는 등 수많은 요인 탓으로 돌리기 어렵지 않다. 특히 계속 선거 압력을 받는 현대 민 주주의 정부 손에 들어가면 불건전화폐는 위험한 도구가 된다. 오늘 날 유권자라면 자기 계획에 연관된 비용과 이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후보자를 선호할 가능성보다는 공짜 점심을 약속하고 청구된 비용은 전임자나 사악한 음모 탓으로 돌리는 악당과 함께 할 가능성이 높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밀턴 프리드먼은 금본위제에서 이탈하고 정부 발행 지폐로 전환하면 금 채굴 비용이 줄어들고 지폐 발행 비용도 금 채굴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든다는 이점이 있다고 보았다. 두 사람은 공급을 늘리기가 훨씬 쉬운 다른 재화에 비하여 금 생산에 들어가는 자원이 훨씬 적다는 사실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중과 특수 이익 집단의 정치행동에 민감한 정부가 원하는 대로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화폐를 썼을 때 사회가 부담하는 진짜 비용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하기까지 했다. 진짜 비용은 인쇄기를 돌리는 직접비용이 아니라, 생산적 자원을 경제생산이 아니라 정부화폐를 새로 인쇄하는 데 들이느라 포기하게 된 모든 경제 활동이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가 대공 황을 다룬 저서19)에서 '횡령'이라고 부른 것이 사회 전체 수준으로 확 대되었다고 보면 '통화팽창 신용창조(inflationary credit creation)'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쉽다. 1920년에 신용이 급격히 확대되자 기업에는 돈이 넘쳐났고, 그 돈을 손쉽게 가로채는 방법도 여러 가지였다.
- 신용이 흐르는 동안에는 희생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다 보니, 희생자와 도둑 모두 돈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부가 늘어났다는 환상이 온 사회에 가득했다. 중앙은행이 신용을 확대하면서 수익성 없는 사업이 자금을 얻고 비생산적 활동에 자원을 소비함에 따 라 호황이 일어났지만 지속할 수는 없었다. 건전통화체제에서는 어떤 기업이든 상품을 팔아서 투입비용보다. 높은 수익을 얻으며 사회에 가치를 제공해야 살아남는다. 기업은 시장가치가 일정한 투입을 시장가치가 더 높은 산출로 바꾸어야 생산적 이다. 투입가치보다 산출가치가 낮은 기업은 모두 도태될 것이고, 그 기업이 쓰던 자원은 자유롭게 풀려나 더욱 생산적인 기업에게 사용되는데, 이를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다. 자유 시장에서는 실제 손실 위험을 지지 않는 이익이 있을 수 없고, 모든 참여자는 결과에 득실을 건다. 언제든 실패할 수 있는 한편, 상당한 대가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불건전화폐 를 발행하여 이 절차가 멈추면, 비생산적 기업은 생생히 살아있는 생 산적 기업의 자원을 빨아먹으면서 투입한 자원만도 못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나 만들어 내면서 마치 좀비나 흡혈귀처럼 죽지도, 그렇다고 진정 살지도 못한 상태로 근근이 유지한다. 또 불건전화폐는 판돈을 거는 법 없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규칙에 따라 존재하는 사회 계층을 새로 만들어낸다. 이들은 자기 성과를 시장에서 시험당하는 법 없고, 자기 행동이 불러온 결과에도 영향 받지 않는다. 이 새로운 사회 계층 은 정부 자금을 지원받는 모든 경제 분야에 존재한다.
- 자본투자 재원을 저축에서 마련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시간선호가 낮은 사람이 자본을 소유하고,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을 스스로 예상하여 자본을 할당하며, 예상이 맞았으면 보상을 받고 틀렸으면 손실을 본다. 하지만 불건전화폐를 사용하면 저축액 가치는 손상되고 자본은 은행이 신 용을 부풀림으로써 창출되며, 이 자본을 어떻게 할당할지는 중앙은행 및 협력 은행이 결정한다. 할당을 결정하는 주체는 시간선호가 가장 낮고 시장을 가장 잘 내다보며 신중하게 판단하는 사회구성원이 아니라 정부 관료인데, 이들은 손실을 봐도 상당 부분 보호받기 때문이다.

- 블록을 기록하는 비용은 극히 비싸게 만든 반면, 기록이 타당한지 검증하는 비용은 극히 싸게 만들어 부당한 거래를 하려는 요인을 거 의 모두 제거한 것이 PoW다. 부당한 거래를 시도한다면 전력과 연 산력만 낭비하고 블록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비트코인이 란 연산력을 소모하여 전력을 믿을만한 기록으로 바꾸어내는 기술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전력을 소비하는 사람은 비트코인 화폐로 보상 받으므로, 비트코인을 진실하게 유지할 강한 동기를 가진다. 비트코 인 장부는 정직하게 행동할 강력한 경제적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사 실상 훼손당할 가능성이 없어졌고, 그래서 이제까지 운영하면서 승 인받은 거래 가운데 이중지불 공격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이처럼 비트코인 장부는 진실한 거래만 기록해 냈지만, 그러기 위하여 특정 당 사자가 정직할 필요는 없었다. 비트코인은 순전히 검증에 의존함으 로써, 거래를 완결하는 데 누군가를 신뢰할 필요를 없애고 사기 거래 에 종말을 고했다.
- 노드가 거래를 검증하고 받는 보상은 연산력에 걸맞은 가치를 입증했다. 2017년 1월 현재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보유한 연산력은 일반 개인용 노트북 2조 대 분량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보 다 2백만 배고, 세계 슈퍼컴퓨터 상위 500대를 합한 연산력에 비하 면 200,000배다. 비트코인은 연산력을 바로 돈으로 바꿈으로써 단일 목적을 위한 컴퓨터 네트워크로서 세계 최대의 네트워크가 되었다. 연산력이 이처럼 증가하는 데는, 거래를 검증하고 PoW 문제를 푸는 작업을 처음에는 개인용 컴퓨터로 하다가 가면 갈수록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데 가장 적합하게 설계한 특수 프로세서로 하게 된 변화도 기여했다. 이 특수 프로세서를 ASIC(Application Specific Integrated Circuits, 주문형 반도체)라고 한다. 2012년부터 ASIC을 도 입한 덕분에, 범용 연산 유닛과 달리 비트코인과 무관한 연산에 전력 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더욱 효율적으로 연산 력을 공급하게 되었다. 이런 채굴기의 목적은 오직 비트코인 거래를 검증하고 작업증명 문제를 푸는 것뿐이다. 따라서 비트코인이 무슨 이 유로든 실패한다면 ASIC이 쓸모없어질 테니, 보유자는 투자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하여 네트워크를 정직하게 유지할 강력한 유인을 얻는다.
- 누군가 비트코인 네트워크 기록을 바꾸려면 ASIC 칩을 새로 사는 데 수억 달러, 아니 어쩌면 수천억 달러까지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네트워크를 공격하여 기록을 바꾸는데 성공한다 해도, 네트워크 에 손상이 가면 비트코인 가치가 0에 가깝게 떨어질 테니 아무런 경 제 이익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을 파괴하려면 엄청난 돈을 써야 하는데, 그리하여 얻을 수익이 없다. 게다가 그런 시도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정직한 노드가 공격 전 거래 기록을 복원해 운영을 재개할 수 있다. 그러면 공격자는 정직한 노드끼리 합의한 내용을 계속 공격하기 위하여 엄청난 운영비 를 계속 지출해야 할 것이다.
- 비트코인 초창기에는 사용자가 자기 거래를 처리하고 서로 거래를 검증하려고 노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노드 하나하나가 모두 지갑이자 검증자고 채굴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기능은 각각 분리되었다. 지금은 거래를 검증하고 비트코인을 보상받는 데만 특화한 ASIC 칩이 있다(그래서 ASIC 칩을 채굴기라고들 한다). 이제는 노드를 운영하 거나 거래를 검증하는 데 연산력을 쓰지 않고 비트코인만 주고받으려 는 일반 사용자도 있고, 지갑을 무한정 만들어 내 이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노드 운영자도 있다. 그 결과 비트코인은 동등한 노드끼 리 구성한 순수 개인 대 개인 네트워크에서 점점 멀어졌지만, 노드가 여전히 다수 존재하는 데다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특정 당 사자가 없으므로, 탈중앙 분산 네트워크라는 주요 기능적 본질은 여전히 온전하다. 게다가 전문 채굴기 덕분에 네트워크를 뒷받침하는 연산력이 지금처럼 엄청나게 커졌다.
- 비트코인을 장기적으로 가치를 저장할 디지털 수단으로 사용하려 거나, 압제적 정부를 거치지 않고 중요한 거래를 하는 데 쓰려는 사람 에게는 높은 거래수수료도 낼만한 가치가 있다. 비트코인을 저축 용 도로 쓴다면 본질상 거래를 많이 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높은 거래비용도 낼만하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나 자본 통제를 피해서 나라 밖으로 돈을 옮기려는 등 일반 금융시스템으로 처리할 수 없는 거래를 할 때도 비싼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를 낼만한 가치가 있다. 디지털 현금과 디지털 건전화폐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비트코인 채택률이 낮은 지금도 이미 거래 수수료가 페이팔(Paypal)이나 신용카드처럼 소규모 거래를 처리하는 중앙식 방법과 경쟁하지 못할 정도로 올라갔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의 성장이 정체되지 않았으니, 비트코인의 시장 수요를 견인하는 것은 소액 디지털 결제 용도가 아니라 디지털 현 금과 디지털 가치저장 수단 용도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비트코인이 인기를 더해간다면, 비트코인 자체 구조가 아니라 거 래 구조를 바꿔 처리 가능한 결제 건을 늘리는 방법으로 비트코인의 크기를 키울 잠재적 해결책이 몇 가지 있다. 비트코인 각각은 여러 가 지 입력값과 출력값을 포함하는데, 코인조인(CoinJoin)이라는 기술을 활용하면 결제 건 각각을 거래 하나로 묶을 수 있으므로 포함해야 할 입력값과 출력값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비트코인 거래량이 매일 수백만 건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거래비용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널리 쓰이는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리적 차원에서 조작할 수 없고 언제나 잔액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든 디지털 모바일 USB 지갑도 비트코인 크기를 키울 만한 해결책이다. 이 USB 드라이브에는 특정한 양의 비트코인에만 연동한 개인키를 실어, 누구든 여기서 돈을 뽑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소유자가 드라이브의 가치를 검증하고 마치 현금처럼 쓸 수 있다. 네트워크에서 수수료가 오르는데도 가격이 오르는 데서 보듯 비트코인 수요는 꺾일 줄 모르고 커 갔으며, 따라서 사용자들은 지불해야 하는 거래수수료보다 거래해서 얻는 가치가 크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수수료가 올라간 결과 비트코인 보급 속도가 느려진 것이 아니 라, 덜 중요한 거래가 오프체인으로 옮겨가고 더욱 중요한 거래가 온 체인에 남게 된 것이다. 
- 그럴 가능성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오늘날에도 비트코인 거래 중 대다수는 오프체인에서 실행되고 청산만 온체인에서 처리된다. 거래소 · 도박장 ·게임 웹사이트 같이 비트코인에 기반을 둔 회사는 고객과 입출금 처리를 할 때만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이용하고, 자사 플랫폼 안에서 일어나는 거래는 모두 비트코인 단위로 표시하여 자기 로컬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한다. 이런 회사 수가 엄청나게 많고, 회사별 플 랫폼에서 일어나는 거래를 집계한 공식 자료도 없으며, 비트코인 경제 의 역학관계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이런 거래 수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비트코인 블록체인에서 실행되는 거래량에 비하여 열 배 이상 정도라고 보면 무리 없다. 요컨대, 비 트코인은 비트코인 경제에서 일어나는 거래 중 대다수에서 이미 준비 통화 내지 준비자산으로 쓰이고 있다. 비트코인이 계속 성장한다면 온 체인 거래보다 오프체인 거래 수가 더 빠르게 느는 편이 자연스럽다.
- 비트코인을 이중지불 문제에 진정 효과적인 해결책이자 성공한 디 지털 현금으로 만든 것은 비트코인 코드가 작업증명으로 확보한 자주 성이다. 그리고 다른 디지털 화폐가 복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신뢰불필요성이다. 비트코인 이후에 제작된 디지털 화폐는 모두 심각 한 존재 위기를 겪는다. 보안과 연산력과 확고한 사용자 기반을 우월 하게 갖춘 비트코인이 이미 존재하다보니, 누구든 디지털 현금을 사용하려고 살펴보다보면 규모도 작고 덜 안전한 대안보다는 자연스레 비트코인을 선호하게 된다. 코드를 복제하기만 하면 비용도 거의 들이지 않고 새 코인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모방품이 범람하게 된 결과, 어떤 코인이라도 크게 성장할 잠재력을 갖추려면 적극적으로 헌신하여 코인을 돌보고 키우고 코딩하고 지키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 비트코인은 그러한 발명품 중 최초였기 때문에 디지털 현금이자 경화로서 가치를 보여주기만 해도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키우는 데 충분했고, 그래서 제작에 유일하게 관여한 익명의 프로그래머가 홍보비를 한 푼도 들이지 않았는데도 성공했다. 반면 모든 알트코인은 애초에 다시 만들기 매우 쉬운 모조품이라서 현실 수요라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므로 적극적으로 수요를 만들고 늘려야만 한다.
- 사실상 모든 알트코인에는 책임자 집단이 있다. 이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마케팅하며 마케팅 자료를 만들고 마치 뉴 스거리라도 생긴 양 언론에 보도자료를 밀어 넣는 한편, 다른 누가 그 코인 얘기를 들어보기도 한참 전에 코인을 대량으로 미리 채굴해 두 는 이점을 누린다. 이런 집단은 유명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고, 또 그 화폐가 나갈 방향을 자기들이 전혀 통제할 수 없다고 애써 주장 해 봤자 신뢰를 얻기도 어려우니, 비트코인 말고 다른 화폐는 제3자 가운데 누구에게도 편집당하거나 통제당하지 않는 디지털 화폐라고 주장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이라는 요정이 램프 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는 비트코인의 대안을 만들어 성공하려면 코인 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고, 그래서 그 투자자 개인이 코 인을 사실상 장악하게 된다. 그리고 디지털 화폐에 주권을 행사하는 집단이 있는 한 그 화폐는 디지털 현금이라기보다는 결제 중개수단으로, 그것도 매우 비효율적인 수단으로 봐야 한다.
- 대안 화폐를 설계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딜레마에 부딪힌다. 디지털 화폐가 1,000개가 넘게 사는 바다에서 자본이든 일말의 관심이든 끌어들이려면 개발자와 마케팅 담당자가 모여 팀을 만들고 적극적으 로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한 팀이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개발하고 마 케팅하는 화폐라면 이들에게 통제받지 않는다고 주장해 봤자 설득력 이 없다. 개발자 집단이 코인과 연산력과 코딩에 필요한 전문성을 대부분 장악한 화폐는 사실상 중앙식 화폐이며, 따라서 발전 방향도 그 팀의 손익에 따라 결정된다. 물론 디지털 화폐가 중앙화 방식을 따르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고, 정부 규제가 없는 자유 시장에서라면 당연히 그런 경쟁자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급소가 없다는 한 가지 이점 때문에 매우 번거롭고 효율도 떨어지는 구조를 중앙식 화폐가 채택한 다면 심각한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 문제는 암호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 ICO)로 시작하는 디지털 화폐에서 더 두드러진다. ICO를 하면 개발자 집단이 투자자와 공개적으로 소통해야 하므로 눈에 띄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프로 젝트 전체가 사실상 중앙화하게 된다. 비트코인 다음으로 시장가치가 큰 코인인 이더리움이 겪은 시행착오에서 생생히 드러나는 문제기도 하다.
-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 자율조직)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처음 실현한 스마트 계약이다. 이 스마트 계약에는 1억 5천만 달러가 넘는 돈이 투자되었는데, 그 후 어떤 사람 이 코드를 실행하여 DAO의 전체 자산 중 약 1/3 가량을 자기 계좌로 옮기는 공격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 공격을 절도라고 말하기는 부정 확하다. 돈을 입금한 모든 사람은 오직 코드만이 자기 돈을 통제한다는 데 동의했고, 공격자는 입금자가 동의한 대로 코드를 실행했을 뿐 이기 때문이다. DAO 해킹의 여파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더리움 개발 자들은 이렇게 불편한 실수가 일어나지 않은 이더리움의 새 버전을 만듦으로써 공격자의 자금을 몰수하여 희생자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이 주관에 따라 다시 개입한 것은 코드만을 법칙으로 삼는 객관성과 상충되며, 따라서 스마트 계약의 존재 근거가 모두 의심받게 된다.
- 좋은 공학기술은 문제를 명확히 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데서 등장한다. 최적의 해결책이란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이라는 말 그대로 무관하거나 무의미한 과잉도 없어야 한다. 비트코인 제작자는 ‘개인 대 개인 전자 현금을 만든다는 동기를 지니고, 그 목적에 적합한 구조를 만들었다. 비트코인의 기술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그 구조가 다른 기능에도 적합하리라고 기대할 근거 도 없어진다. 9년이 흘려 사용자 수백만 명을 확보한 현재, 나카모토가 만든 구조는 디지털 현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을 뿐 그 외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았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전 자 현금을 디지털 분야에 상업적으로 응용하기는 가능하지만, 블록 체인 기술 자체가 다양한 분야에 응용 가능한 혁신적 기술인 양 논해 봤자 의미는 없다. 블록체인이란, 개인 대 개인 전자 현금을 예측 가능한 양 만큼 만들어 내는 기계에서 뺄 수 없는 톱니바퀴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