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프랙티스
- 창의성은 반복되지 않으며 반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창의성을 발휘하는 과정은 패턴을 따른다. 그것은 성장과 연결에 관한 습관이자 너그러움과 담대함을 쌓는 습관이다. 더불어 이타심과 자아가 끊임없이 어우러지는 습관이다. 이러한 행동 양식은 리더와 예술가들을 위해 존재한다. 실세계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다만 이 습관을 쌓아가는 여정에 함께하는 상사는 없다.
- 그 누구도 책임져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힌두교의 중요한 성전 중 하나인 《바가바드기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길을 완벽히 따라 걷기보다는 불완전하 더라도 나의 길을 걷는 것이 낫다.”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변 화를 일으킨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걸었던 길은 남들과 달랐지만, 그들의 습관은 여러 면에서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가진 습관의 중심에는 신뢰가 자리한 다. 자아(self), 숨겨진 자아, 유일무이한 자아를 믿어야 하는 어 려운 과정이 있지만, 당신만의 습관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한 다면 당신은 마법을 부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 마법은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지금 당신에게 꼭 필요 한 것이다.
- “열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그럼 자연스레 이런 질문도 따른다.
“지금 하는 일에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일단 자신을 믿기로 마음먹었다면 열정은 찾아올 것이다. 열정은 타고나는 게 아닌 데다 한 가지에만 쏟아붓는다고 저절 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 영역은 한정되어 있지 않다. 열정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우리가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기로 정한 일이다.
다만, 그 일에 대해서 분석해볼 가치는 있다. “소명을 찾 는다.”라는 목표를 세운다면, 그 뒤에 몸을 숨기기 너무 좋기 때 문이다. 잘되지 않을지도 모를 일에 누가 에너지를 쏟고 싶겠는 가? 그 일을 위해 숙명적으로 태어났다는 걸 알기 전에는 누가 그 여정에 힘을 쏟고 싶겠는가?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힘든 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일은 소명이 된다. 과정을 믿어야만 비로소 열정이 생긴다.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건 아마추어들을 위한 말이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라!”는 건 프로가 외우는 주문이다.
- 일이 어떻게 될지 확신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 있겠는가? 설명서가 있거나 효과가 입증된 세계 최고의 성과 창출 운영방식 같은 건 당연히 없다. 혁신의 본질은 마치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멋진 일을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 일이 잘될 것처럼 행동하고, 참여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다 보면 좋은 결과를 내는 데 불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 드류 데르나비치는 업계 최정상에 있는 만화가이다. 그는 잡지 〈뉴요커〉에 그 누구보다 많은 만화를 실었다. 꿈의 직업이 아닌가!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몇 분 동안 웃긴 이야기를 떠올린 다음 스케치해서 돈을 번다. 분명 재밌기만 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 일은 진짜 탤런트 가 있는 사람, 천재, 그리고 그걸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드류 데르나비치가 자신의 책상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큰 화제가 되었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다. 그저 우리 보다 종이가 더 많을 뿐이었다.
당신이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작 품을 거절당하게 될까? 반면 재밌는 만화를 그리는 법을 터득 하기까지는 그저 그런 만화를 얼마나 많이 그려야 할까? 분명한 것은 이 2가지 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 전문 낚시꾼이 되면 물고기를 낚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매일 낚시하러 가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물고기를 잡는 건 낚시 습관을 기르는 일에 따라오는 부산물이다. 이처럼 습관을 바르게 잡는다면, 그 노력으로 시장(market)의 문이 열 수 있을 것이다.
조각가이자 작가인 엘리자베스 킹은 “의욕이 떨어졌을 때 우리를 구해주는 건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낚시에도 적용된다. 낚시하는 사람들은 물고기를 빨리 잡을 손쉬운 방법 을 찾는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낚시 습관을 기르는 일에는 소홀하게 된다. 따라서 프랙티스에 노력을 기울여 할 일을 하게 될 때까지는 판단을 제쳐 두는 것이 현명하다.
- 예술은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는 긴장을 불러온다. 배움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배움(교육과는 반대다)은 긴장과 불편(스킬을 익히는 동안 계속 느껴지는 무능한 기분)을 감수하는 자발적인 경험을 통해 이뤄진다.
프랙티스를 따르려면 당신이 이끌고, 위하며,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불편함을 줘야 할 뿐 아니라 당신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영역에 들어가서 느끼는 거북함을 감내해야 한 다. 예술가는 적극적으로 관객(audience)에게 불편함을 유도한 다. 이 기분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하 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누구나 불편을 느낀다. 이 감정을 이용해 사람들을 관대하는 새로운 방법(사람들을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 변화하도록 돕는 일) 역시 당신을 괴롭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묻고 답한다면, 더 쉽고 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오직 편안함만 주는 건 예술가와 리더가 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줄고, 그건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게 아닌 셈이 된다.
프랙티스는 자신이 하는 일에 공감하며 변화를 위한 여 정에 있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더불어 불편함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관객)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다. 그런 불편함은 언제든 만들어도 좋다.
- 한족의 한 갈래인 호키엔족 말로 키아수(Kiasu)는 뒤처질지 모 른다는 두려움 혹은 충분히 얻지 못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뜻 한다. 이 단어는 싱가포르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 세계 어디서 나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다. 고립공포감보다 훨씬 강력한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사회는 사람들을 지시에 따르게 하려고 자꾸 부족하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품절이 되기 전에 소비자가 물건을 더 많이 사도록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일자리를 내주지 않도록 더 열심 히 일하게 만들며 두려움 속에 살게 한다. 그래서 패닉바잉 현 상으로 물건을 집에 쌓아두는 일도 일어난다. 부족하다는 느낌 을 자꾸 주는 건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거나 군중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조종할 때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키아수는 실제적인 두려움과 부족함에 관한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가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난 길을 이미 걷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을 만큼 스스로를 믿고 있다면, 존재하지 않을 표현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결과물을 일의 연료로 삼으면 번아웃을 피할 수 없다. 그런 연료는 다시 채울 수 없을뿐더러, 제대로 타지도 않기 때문이다.
- “아직 작동하지 않을 뿐이야.”
당신이 진정 필요로 하는 위안의 말은 이것 하나뿐이다.
우리에게는 프랙티스가 있다. 그 효과가 입증되었고, 그 래서 우리는 프랙티스를 따르기로 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이' 이다.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반복, 더 많은 용기, 더 많은 과정, 그리고 더 많은 믿음이 다. 훨씬 더 많이 나 자신에게 쏟아부어야 한다. 더 많은 별난 구석과 더 많은 장르, 더 많은 시각과 더 많이 베푸는 마음, 그리고 더 많은 배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직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왜 걱정하는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걱정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인도의 승려 샨티데바)
- 탤런트란 타고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타고난 유전자가 마법처럼 정렬된 DNA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스킬은 어떨까? 스킬은 우리가 후천적으로 얻는 것이다. 배우고, 연습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다. 그러므로 전문가를 탤런트가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건 그 사람을 모욕하는 일이다. 전문가는 다른 무엇보다 스킬을 갖춘 사람이다. 탤런트를 타고난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완전히 드러날 만큼 노력해 스킬을 갖춘 사람은 극소수이다. 스킬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탤런트를 타고난 사람보다 훨씬 드물다. 그런데 스킬은 누구나 충분히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
프랙티스를 따르는 데 노력을 쏟는다면 더 나은 무언가 로 보상받을 것이다. 일가견이 생기고, 판단력이 좋아지며 능력 또한 커진다. 명배우 스티브 마틴이 말했다. “내게 탤런트는 없었다. 전혀.”
- 음악 전문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조니 미첼이 말했다.
"똑같이 유지하며 첫 성공을 가져다주었던 공식을 지키 는 겁니다. 그럼 사람들은 당신에게 더 나아가지 않는다고 비판 할 겁니다. 그래서 변화를 택하면 사람들은 변했다고 비판하겠죠. 그런데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건 지겨워요. 변하는 건 흥미롭죠. 그러니 2가지 중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변했다고 비판받는 쪽을 택하겠어요.”
그녀는 쾌활하게 결론지었다. 선도자는 예술을 만들고 예 술가는 선도한다.
- 우리는 진정성 있는 심장외과 의사를 원하지 않는다(당 신이 집주인과 싸웠더라도 관심 없습니다. 오늘이 최고의 날인 것처럼 수술을 해주세요"), 혹은 진정성 있는 요리사도 원하지 않는다. (오늘 저녁, 멕시칸 요리를 만들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 해도 상관없 습니다. 그건 메뉴에 있는 음식이고, 제가 시킨 요리입니다").
우리가 찾는 건 우리를 바라봐주고, 창조적 마법을 부리 기 위해 꾸준히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제 했던 일에 리듬 을 맞춰 오늘도 전념하는 사람이다.
프로가 될 만큼 자신을 신뢰한다는 건 자신이 도우려는 사람과 약속을 맺는 일이다. 우리는 의도를 바탕으로 일을 설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고, 대중은 당신이 보여주겠다고 약속 한 일에 함께하겠다고 동의하는 것이다.
- 우리가 하는 일은 실패를 바탕으로 삼는다.
과정을 따르려면 개척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개척자는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새로운 관객을 찾아 나서며, 기존의 관객을 위해 새로운 마법을 만든다. 하나의 접근법이나 스킬을 완벽하게 익히자마자 더욱 강력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을 찾을 유일한 길은 바른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틀릴 준비를 하는 (심지어 틀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닌텐도는 화투 제조 업체였다.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잘 팔릴 음식을 정하는 데 연거푸 실패했다. 어도비가 선보인 소프 트웨어 제품 가운데 인기를 얻지 못한 제품은 수백 개나 된다.
개별 창작자도 마찬가지이다. 코미디언 제리 사인필드의 삶을 무대로 옮긴 미국 드라마 '사인필드'를 보면, 그 작품을 명 작의 반열에 올린 뛰어난 회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내용의 회차 들이 전 시즌에 걸쳐 나온다. 당신이 좋아하는 모든 작가들은 당 신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법한 책을 적어도 한 권씩은 냈다.
프랙티스를 하는 건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이지만, 그 과 정에는 독창성(originality)이 필요하다. 프랙티스는 꾸준히 해야 하지만, 그 꾸준함은 의도의 일관성을 뜻하는 것이지, 실행 방법의 일관성을 뜻하는 건 아니다.
- 프랙티스에 전념하는 모든 창작자는 길고 긴, 거의 무한 에 가까운 실패를 거듭한다. 글을 쓰는 것을 시작하지 못하는, 전구를 발명하지 못하는, 관계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모든 길을 걷는다. 창의적인 리더는 실패를 반복하고, 반복한다. 그게 우리 일의 바탕이 된다. 우리는 실패하고, 그 실패를 수정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시도하는 것이다.
- 창의적인 사람이라서 작품을 선보이는 게 아니다.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때문에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 하다 보면, 하고 싶어진다.
미국 화가 애비 라이언은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그녀는 1,0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고, 하루에 1점씩 그린다.
과학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400권이 넘는 책을 썼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아이작 아시모프는 매일 아침, 수동 타자기 앞에 앉아 타자기를 쳤다. 그게 그의 일 이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만든 로봇과 그 외 등장인물이 나오 는 이야기는 타자 치는 일에 따라온 보너스였다.
그는 영감을 받지 않은 날에도 타자기를 쳤다. 그러다 보 면 글이 써졌고, 영감을 얻게 되었다. 글은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다. 쓰다 보면 쓰고 싶어진다.
- 수천 년 전에, 중국 당대의 사람 방거사(龐居士)는 이런 글을 썼다.
매일 하는 일에 별다른 건 없으니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며 지낸다.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이...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다.
요즘 말로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다(chop wood, carry water)."가 여기서 나온 말이다. 시에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핵 심은 '그냥(simply)’ 한다는 것이다. 토를 달거나 극적인 반응 없이 그저 할 일을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한다. 원하는 결과물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한다.
이처럼 단순한 선(禪) 사상의 가르침을 통해 창작가로서 우리의 일을 대하는 방식을 알 수 있다. 외부적 요인은 제거하고 극적인 반응은 완화하며 특별한 상황을 피한다.
이게 바로 프랙티스이다.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것이다. 계속, 계속, 몇 번이고 반복한다. 외부적인 성공은 그저 일을 반복하는 능력에 힘을 실어 주는 것뿐이다.
- 몰입은 노력의 산물이다. 일을 해야 뮤즈가 나타난다. 뮤즈가 나타나야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도구를 정비하고, 인터넷을 끄고, 일하러 돌아가라.
- “그냥 해(Just do it).”라는 소리는 당신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는 조언이 아니다. “알 게 뭐야. 아무렴 어때."라거나 “얼른 끝내버 려."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슬로건을 우리에게 유용한 표현으로 고친다면 “그저 해(Merely do it).”라고 할 수 있다. 뭐라고 토를 달거나 극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화내지 않고 그저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일으 키려는 변화에 집중하고, 작품에 의도를 불어넣는다. 그냥 그것 뿐이다. 더도 덜도 아니다.
- 아니, 사실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회의란 몸을 숨기기 에 정말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책임지기 를 바라며 회의에 참석한다. 회의는 안전한 천국이고, 일어날지 모를 일로부터 도망치는 피난처이다.
모든 회의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일한 다. 만일 우리의 고유한 꿈을 확대하고 키우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과 회의한다면, 작품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반대로 지위에 따른 역할이나 현상 유지, 거절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과 회의를 한다면, 그 결과는 반대가 될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기존의 텔레비전 방송국 임원들은 아이 디어를 죽이는 회의만 해왔다. 반면 같은 시간 HBO, 넷플릭스, 쇼타임과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에서는 프로그램 제작업체들이 더욱 눈에 띄는 작품을 만들도록 독려하는 회의를 했다.
- 텔레비전 퀴즈쇼 '제퍼디!'에 출연할 일은 없겠지만, 혹시 출연 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비밀을 알려 주고자 한다.
그건 바로 답을 알아내기 전, 먼저 버저를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답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눌러야 한다).
일단 내가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아 마 답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때 버저를 눌러야 한다. 그러고 나면 사회자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쯤에는 무 언가 답할 거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가 옳다고 확신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우선은 주장하면서 시작하는 게 낫다. 그러고 나서 답을 찾는 것이다.
- 상자의 밖은 춥고 어둡다.
그렇다면 상자의 모서리는 어떨까?
상자의 모서리라면 지렛대와 같이 활용할 수 있다. 그 지점을 찾았다면, 당신은 당신보다 앞서간 사람들이 쫓겨난 바로 그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제약조건을 변명이 아닌 기회로 바꾸는 일은 바로 그 모서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