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필로소피
- 매일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가?
우리 삶의 주요 과제는 단순하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선택과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 인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 둘을 분리하는 것이야.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은 외부 요인에서 찾을 수 없네. 오로지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나 자신의 선택 안에서 찾을 수 있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2.5.4-5)
- 철인 황제처럼 아침을 맞이하는 법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다면 마음속으로 이 생각을 하라. 나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깨어나야 한다. 이 세상에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짜증을 낼 필요가 있는가? 나는 기껏 이부자리나 끌어안고 살기 위해 태 어났는가? 이것이 내게 주어진 낙이란 말인가? 나는 분투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아니면 자기 위해 태어났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1)
- 거절의 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삶을 낭비한다. 무의미한 슬 픔, 어리석은 즐거움, 탐욕스러운 욕망, 형식적인 관계에 자신의 유한한 자원을 투자한 다. 이것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남아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네카, 삶의 덧없음에 대해, 3.3b)
- 행동의 의도를 분명히 하라
모든 노력을 집중시켜 끝이 보일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행동하는 사람은 불안에 빠지지 않는다. 잘못된 신념만이 우리를 불안으로 이끌 뿐이다. (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대해, 12.5)
- 쾌락을 단호히 거부하라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우리에게 쾌락을 가져다주는 것들이라면 반드시 버려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용기는 사라지고 끊임없는 유혹만이 남게 되어, 영혼의 위대함도 사라지 고 말지. 군중이 열망하는 사소한 것들을 경멸하지 않는 한, 영혼의 위대함은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74.12b-13)
-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하여
선의 본질은 일종의 합리적인 선택이라네. 하지만 악의 본질 또한 다른 종류의 합리적 선택이지. 그렇다면 외적 현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합리적 선택을 내리기 위한 있는 그대로의 재료들이라네. 그것들이 어우러져 선과 악이 되지. 그렇다면 어떻게 선을 알아 볼 수 있을까? 어떤 사실에 대해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알 수 있다네. 죽음은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인간의 감정적 반응으로 인해 '나쁜 것'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판단했을 때 우리의 선택은 선이 되네. 판단이 뒤틀리면 그 선택은 악으로 바뀌고 말지. (에픽테토스, 대화록, 1.29.1-3)
- 통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자신의 합리적 선택은 통제할 수 있으며, 모든 행동은 자신의 도덕적 의지에 달려 있다 네. 이와 달리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지. 그리고 부모, 형제, 자매, 아이들, 고향 등 나와 관계 맺는 모든 것은 통제할 수 없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1.22.10)
- 마음의 평정은 확고부동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만이 손에 쥘 수 있다네. 나머지 사람은 거절과 허락을 번갈아 하며 자신의 결정에 따라 감정적 동요를 반복할 뿐이지. 무엇이 이런 감정적 동요를 지속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들의 내면에 분명한 것이라곤 없기 때 문이라네. 그들은 '상식'이라는 가장 불확실한 것에 의지할 뿐이지.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95.57b-58a)
세네카는 평정을 에우티미아(Euthymia)라고 했다. 그리고 에우티 미아에 대해 정의하기를 "자신에 대한 믿음이자 올바른 길 위에 있다는 신념이며 모든 방향으로 뻗어 가는 수많은 오솔길 앞에서도 의심하지 않 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마음 상태는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대한 100퍼센트 확신이 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뜻한다.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럴 때에만 다른 사 람과 자신을 지속적으로 비교하지 않으며, 새로운 정보가 방해하더라도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 일단 시작하라, 나머지는 따라온다
스승으로서 나의 목표는 자네를 완성시키는 것이야. 제약받지 않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부터 자유로우며, 거리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네를 가르칠 것이네. 사회와 타 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유로운 삶, 구속받지 않는 행복, 그리고 하찮은 사물들 속에서 도 신의 섭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자네는 이 모든 것을 부지런히 배우고 연습해 야 할 것이야. 자네가 올바른 마음을 가졌고 내가 바른 목표를 제시하고 교육했다면 왜 이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겠는가? 모든 것은 실현 가능할 뿐더러 이미 우리 안에 있다네. 지난 일은 잊어버리게나.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나를 믿고 앞을 보게나. (에픽테토스, 대화록, 2.19.29-34)
-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발전하고자 한다면 외적인 문제(재물, 평판)에 무감각해야 하고 그 속에서 어리석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하라. 누군가 당신을 중요한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스스로를 불신하라.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13a)
-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수심이 가득한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네. 저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저들이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저토록 걱정에 사로잡혀 고통 받을 필요가 있을까? (에픽테토스, 대화록, 2.13.1)
- 두려움은 자신을 향한 예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고통 받는다. 그들이 운명을 두려워하는 동안 운명은 그들을 찾아낸다. (세네카, 오이디푸스, 992)
-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는 어떤 사물에 대해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의 평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할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사물에는 우리의 판단을 좌지우지할 자연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52)
- 두려움은 백일몽이다
마음을 정화하고 참자아를 유지하라. 어리석음으로부터 깨어나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 이 단지 꿈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라. 일어나서 단지 저 모든 것들이 그냥 꿈일 뿐임 을 응시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31)
세네카는 두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려움은 본디 정확한 실체가 없다. 우리가 두려워한 것이 일어나지 않는 그 순간에도 두려움은 여전히 불분명한 모습으로 우리를 노려본다."
세상의 온갖 사건과 사물이 우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 히는 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이 상상한 것일 뿐 실재가 아니다. 그것들은 마치 꿈처럼 어느 한순간에는 현실로 느껴지지만, 곧이어 터무니없는 본래의 모습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 욕망은 삶을 난파시킨다
기억하게나. 부와 지위에 대한 갈망이 우리를 약화시키고 예속시킨다네. 평화와 휴식, 여행, 배움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라네. 외적인 요소가 무엇이든 상관없네. 우리가 가 치를 두는 것이 우리를 다른 것에 예속되도록 만들지. (...) 명심하게. 마음이 가는 곳에 장애물이 놓여 있음을. (에픽테토스, 대화록, 4.4.1-2;15)
- 황제와 철학자가 지킨 단 하나의 규칙
행동할 때는 망설이지 말라. 대화할 때는 부조리하지 말라. 사고할 때는 방황하지 말라. 영혼을 위해 수동적이어서도, 공격적이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삶에 있어 너무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바쁘게 살려고 하지도 말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51)
-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구속받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건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지.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자유인이라 부른다네. 하지만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 받는 사람들은 노예라고 하지. (에픽테토스, 대화록, 4.1.128b-129a)
-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다
3천 년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할지라도 명 심하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현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순간의 삶이며 소유할 수 있는 것 또한 지금 이 순간의 삶뿐이다. 긴 삶이든 짧은 삶이든 동일하다. 우리 모두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스쳐 지나고 있는 현재밖에 없다. 과거를 잃어버리거나 미래 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어떻게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겠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14)
- 나의 선택이 나를 완성한다
자네의 용모와 머리 모양이 자네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네. 선택의 능력이야말로 자네가 누구인지 온전히 드러낸다네. 선택이 아름다우면, 자네 또한 그렇게 될 것이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3.1.39b-40a)
- 가장 기본적인 원칙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명확한 판단력, 지금 이 순간에 맞는 상식적인 행동, 그리고 일이 잘 되어갈 때 감사하는 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9.6)
- 역경을 담대하게 마주하라
고통이 찾아오지 않기를 희망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고통이 찾아온다면 용맹과 명예로 움으로 인내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참아낼 것이네. 어떻게 전쟁의 참화에 떨어지지 않기 를 희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전쟁이 나에게 닥쳐온다면 나는 부상과 굶주림 그리고 전쟁이 가져오는 모든 불행에 고결하게 맞설 것이네. 나는 질병을 욕망하는 광인도 아니고 고통에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도 아니지만, 고통이 찾아왔을 때 경솔한 짓과 불명예스러운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요점은 이것이네. 내가 역경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미덕을 희망한다는 것일세.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67.4)
- 가장 좋은 안식처
사람들은 시골이나 바다, 혹은 산에서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으려 한다. 우리에게는 매번 동일한 것을 열망하는 버릇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에 찬 사람들의 특성일 뿐이다. 안식처를 찾으려 한다면 어떤 순간일지라도 자신에게서 안식처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영혼보다 더 평화롭고 여유로운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성찰로 가득 찬 삶을 살 아가고자 한다면 나는 이곳만큼 조화로운 곳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안식처를 마련하고 항상 새롭게 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4.3.1)
-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억지로 행동하지 말라. 이기적인 행동도 삼가라. 배려심 없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 자신 의 생각을 교묘한 언어로 꾸미지 말라. 말이 많은 사람이 되지 말고 작은 행동 하나에도 조심하라. (...) 활기를 유지하며 외부로부터의 도움이나 구원을 바라지 말라. 사람은 오 직 자신의 힘으로 서야 하며 타인의 원조는 거절해야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3.5)
- 욕망을 해체하는 법
우리 앞에 화려한 음식이 놓여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죽은 물고기이고 저것은 죽은 새 혹은 돼지들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향기로운 와인은 한 다발의 포도 에서 즙을 낸 것이고 저기 화려한 자주색 예복은 조개껍데기에서 추출한 염료로 양털을 염색한 것일 뿐이다.' 남녀의 육체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그저 내밀한 부분을 서 로 문지름으로써 분비물이 따라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은 이런 방식으로 실제 사건을 포착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 사건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13)
- 배우는 사람은 싸울 이유가 없다
논쟁 상대가 우리를 해코지할 수 있다. 그때 그에게 항의하지 말라. 음모를 꾸미고 있는 놈이라거나 교활한 인간이라 말하지도 말라. 이런 감정을 그 사람에게 드러내서는 안 된 다. 단지 그를 계속 지켜보라. 하지만 적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며 의혹을 품고 바라보지도 말라. 단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삶에 있어 모든 행동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들과 우리는 모두 함께 배워 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러 니 조금은 관대해지자. 그렇게 해야 내가 말했던 것처럼 의심과 증오 없이 충돌을 피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20)
- 신의 선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율법이 하나 있네. “좋은 것을 원한다면 네 자신에게서 찾아라." (에픽테토스, 대화록, 1.29.4)
오늘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좋은 일을 하 는 것이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원천은 대개 통제 밖에 있거 나 재생이 불가능한 자원이다. 하지만 오직 한 가지만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경구는 스토아 철학의 생각과 비슷하다. "신은 악마가 인간의 행복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가장 안전한 장소에 숨겼다네. 그곳은 바로 인간의 마음속이라네."
- 오직 선택에 집중하라
선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합리적 선택 안에 있다네. 그럼 악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 역시 우리의 합리적 선택 안에 있다네. 그렇다면 선도 악도 아닌 것은 어디에 있을까? 젊은이, 그런 것들은 우리의 합리적 선택 바깥에 있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2.16.1)
- 부러움의 악순환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은 이미 당신이 갖고 있는 것처럼 관심을 두지 말라. 하지만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은 만약 그것들이 없었다면 내가 얼마나 그것들을 갈망했을 지에 대해 떠올려라.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을 언젠가 잃게 되었을 때 수심에 잠길 정도로는 가치를 두지 않도록 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7.27)
-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지금 당신 앞에 놓여 있는 모든 것에 정신을 집중하라. 원칙, 주어진 과제, 던져진 말. 그 모든 것에 집중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22)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과거를 곰곰이 되새겨 보 는 것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놓인 과제에 집중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것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더욱 그 렇다.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이건 단지 주어진 일일 뿐이야. 내가 누구 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야. 중요하지 않아." 아니, 중요한 일이다. 누가 아는가, 당신이 늘 하는 일이 마지막 일이 될지?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진리다. '오늘을 어떻게 다루느냐'라는 것으로 '다른 날들을 어떻게 다루느냐'를 알 수 있는 것처럼.
- 당신은 어떤 선수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단지 앞날을 위해 우리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것을 철학이라 말하 는가? 우리 스스로 인내할 준비가 되었다면 어떤 사건에도 맞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상대의 공격을 받고 퇴장하고 마는 격투기선수와 같은 것인 가? 하지만 그런 비참한 결과가 없어도 우리는 사각의 링을 떠날 수 있네. 그런데 지혜 의 추구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이점은 무엇일까? 우리가 마주치는 다양한 시행착오 앞에 서 무어라고 말해야 할까? 이것이 내가 훈련한 이유라네. 이 원칙을 위해 훈련했다고 말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에픽테토스, 대화록, 3.10.6-7)
오늘날 우리가 야구와 축구 비유를 들 듯, 스토아 철학자는 권투와 레슬링이 혼합된 판크라티온이라는 스포츠를 자주 언급했다. 이 격투기 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네카는 부상을 두려워하는 선수는 연약하며 쉽게 패배한다고 썼다. 그리고 “불운과 끊임없이 반목하는 사내야말로 고통 으로부터 굳은살을 획득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선수야말로 바닥에 쓰 러져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 행운은 무작위로 찾아온다
당신은 이렇게 말한다. "행운은 우리가 구석에 몰릴 때 마주치는 녀석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행운은 잘 조율 된 영혼이자 좋은 충동이며, 좋은 행동인 동시에 좋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36)
- '행운'이란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해 보자. 하나는 완전히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는 것으로, 무작위로 발생한다. 또 다른 하나는 비록 확실하 지는 않지만 올바른 결정과 준비를 통해 일어날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것 이다. 후자는 어느 정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행운을 마치 중력에 이끌려 오는 듯한 미스터리한 무엇으로 바라본다.
스토아식 행운의 개념은 16세기 속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근 면은 행운의 어머니다.” 1920년대 작가인 콜먼 콕스는 이 말에 현대적 인 감각을 보태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운의 거룩한 신봉자다. 더 열 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행운이 찾아온다."
이런 말에는 여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마법적인 행운에 대한 기대 가 담겨 있다. 하지만 행운은 무작위적이다. 행운은 선과 악, 근면과 불 성실을 가리지 않고 사람에게 다가오는 눈먼 천사와 같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행동을 하는 데 집중하여 행운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하자. 아이 러니하게도 이 경우 행운은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 신경 끄기의 기술
나는 다른 무엇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는 것에 놀라고는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의 판단보다 다른 사람의 판단을 더 신뢰한다. (...) 어 떻게 나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판단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2.4)
- 품성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라
철학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관심이 없다. 단지 필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에 담아둘 것에만 관심을 둔다. (무소니우스 루푸스, 강의록, 16.75.15-16)
승려는 승복을 입는다. 가톨릭 사제는 로만칼라가 달린 신부복을 입는다. 은행원은 값비싼 양복과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닌다. 하지만 스토 아 철학자들은 법복이 없었으며 이들을 규정할 수 있는 일관된 양식도 없었다. 보이는 외양으로 이들을 규정하거나 구별할 수 없었다. 그렇다 면 이들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오직 품성뿐이다.
- 그가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떠올려라. 힘든 시기는 좋아질 수 있으며, 압력은 느슨해질 것이고, 무거운 짐은 가벼워질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적절한 방법을 생각해 내기 때문이다. (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대해, 10.4b)
- 직업과 당신을 분리하라
누군가의 서열이나 지위에 변동이 생기고 누군가의 이름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릴 때 질 투하지 말라. 그와 같은 일에는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누군가는 성공으로 가는 길목 에서 첫발을 떼지 못하고 죽고 또 누군가는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죽는다. 오직 자신의 야망에 도달한 극소수만이 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비석에 새길 한 줄의 글을 위해 수천 번의 모욕을 감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네카, 삶의 덧없음에 대해, 20)
때때로 직업에 헌신하는 모습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정치인은 공무 수행에 몰두한다는 핑계로 가족에게 소홀히 대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작가는 자신의 재능으로 자신의 비사교적인 태도와 이기적 인 행동을 변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정치인은 명성을 더 사랑하는 것뿐이고 작가는 우월감을 즐기고 있는 것뿐이다.
일에 대한 몰입은 그에 따른 성취로 정당화되는 듯하지만 그 성취 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일하 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곡괭이 를 손에 쥐고 죽는다고 해서 즐거울 이유는 없지 않은가?" 소설가인 알렉 산드르 솔제니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노새는 일만 하다가 죽는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인생에 교과서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반드시 이해하게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제게 말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친구에게 내가 무슨 조언을 할 수 있을까? 가능한 답변은 이것이네. “어떤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마음을 훈련하라." (...) 답이 주어지 지 않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네. 그런 상황에서 절망만 하고 있을 것인가? (에픽테토스, 대화록, 2.2.20b-1; 24b-25a)
- 다른 손잡이를 잡아라
모든 사안에는 두 개의 손잡이가 있다. 열 수 있는 것과 열 수 없는 것. 형제가 당신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잘못'이라는 손잡이를 움켜쥐지 말라. 그 손잡이로는 아무것도 열 수 없다. 그 대신 다른 손잡이를 잡아라. 당신이 형제와 함께 자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손잡이를 잡았다면, 당신은 열 수 있는 손잡이를 잡은 것이다.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43)
- 운명 대신 철학에 의지하라
운명의 여신은 우리 생각만큼 팔이 길지 않네. 그는 그저 자신에게 매달리려는 자들을 잡을 수 있을 뿐이야. 그러니 우리, 그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도록 하세.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82.5b-6)
- 운명과 싸우지 말라
운명이 우리를 찾아낼 때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를 수 있어야 하네. 운명을 받아 들이는 자, 거기에 바로 위대한 영혼이 있네. 그에 반해 연약하고 타락한 자들은 운명과 싸우려 들고 세상의 질서를 무시하려 들지. 그들은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신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드는 자들이라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107.12)
-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
인생 전반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생각하지 말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쁜 일에 대 해 걱정하지도 말라. 단지 현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스스로 물어 보라. 지금 여기에서 참 고 견딜 수 없는 이유,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 보라. 그러고 나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질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36)
- 먼 길을 돌아가는 어리석음
스스로 박탈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먼 길을 돌아 당신이 얻으려 희망하는 모든 것들을 지금 이 순간에 거머쥘 수 있다. 과거는 버려두고, 미래는 섭리에 맡기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2.1)
- 운명을 내 편으로 만드는 두 단어
지나간 과거는 내버려 두어라. 위대한 섭리에 미래를 맡겨라. 그리고 오직 현재만이 경 건함과 정의로움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몰두하라. 경건함이란 우리에게 부여된 운명을 사 랑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이 우리에게는 운명을, 운명에게는 우리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정의로움이란 우물쭈물 회피하지 않고 자유롭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법대로 행동할 수 있으며 사물에게 요구되는 가치대로 움직일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2.1)
로마 시대 저술가 아우룰스 겔리우스는 에픽테토스가 이렇게 말 했다고 기록을 남겼다. "만일 누군가가 두 단어를 마음에 새긴 뒤 그것으 로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을 돌본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평정 심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 두 단어란 바로 집요함과 저항이다."
그렇다면 어떤 원칙으로 지속하고 저항해야 하는 걸까? 아우렐리 우스 황제는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경건함으로 지속하고 정의로움으로 저항하라."
- 결과는 신의 영역이다
나는 한 번도 내 의지를 방해받은 적이 없네. 내 의지를 강제하는 일을 겪지 않았어. 어 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내 선택을 신의 의지와 함께하도록 묶어 놓으면 된다네. 신의 의지가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나의 의지야. 신의 의지로 무언가 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야. 그가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갖게 하고 무엇 을 주고자 한다면 나는 그와 동일한 것을 희망할 것이야. 신이 바라지 않으면 나 또한 희망하지 않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4.1.89)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시되기 전 날, 아이젠하워 장군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생 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짜내어 연합군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도록 했어. 하지만 답은 신의 무릎 위에 있겠지.”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에픽테토스가 말한 것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수용할 자세를 갖추었다.
- 불평은 시간 낭비다
비참하고 우울한 인생으로도 충분하다. 어리석은 행동은 그만하라. 왜 투덜거리는가? 뭔가 새로운 것이라도 있는가? 왜 혼란스러워 하는가? 책임감이 문제인가? 잘 살펴보 라. 혹은 사건 자체가 문제인가? 그것도 잘 살펴보라. 그것들 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가치가 없다. 이제 신들 앞으로 나아가듯 더 솔직하고 선량한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라. 100년, 아니 고작 3년을 심사숙고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9.37)
작가인 조앤 디디온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인격이란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의지로 자기 존중감이 샘솟는 원천"이라고 했다. 아우렐리 우스는 우리에게 자신이 갖지 못한 것, 제대로 되지 않는 일 때문에 불평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 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 지 않아야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바로 설 수 있다. 인격은 계발할 수 있 는 것이며, 인격이 계발되어야 자기 존중감도 따라온다. 그 시작은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인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오면 그 생각을 가볍게 유지하라. 화가 증폭되지만 않으면 된다. 상냥함과 공손함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분노와 불만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 는 인간이야말로 강인하며 진정한 용기와 참을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은 평정심 을 유지할 때 더욱 강인해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1.18.5b)
- 증오심을 다루는 법
누군가 나를 경멸한다면? 그렇게 보도록 놓아두어라. 하지만 나는 경멸받을 만한 어떠한 행동도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누군가 나를 증오한다면? 그들이 그렇게 보 도록 놓아두어라. 하지만 나는 친절과 온화로 모두를 대하도록 조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잘못했을 때 그 잘못을 지적할 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비난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인내하고 있음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단지 진솔하고 참되게 대할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1.13)
- 반대에 부딪혀도 단념하지 말라
우리가 이성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때, 타인이 막아설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우리의 타당한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선한 의지로 대하라. 그리고 다음 두 가지를 유념하라. 옳은 판단과 행동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앞길을 방해하 는 사람과 난관에도 친절하게 대하라. 분노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약하다는 반증이다. 과 업을 포기하지도, 공포에 사로잡히지도 말라. 무서워하는 자들, 부모와 친구에게서 멀어지는 자들 모두가 의무로부터의 탈영한 병사들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1.9)
- 이성의 일곱 가지 기능
이성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선택하고, 거절하고, 갈망하고, 혐오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야 하네. 또한 준비해야 하는, 나아가야 하는, 승인해야 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하지. 그렇다면 이성의 정상적인 기능을 오염시키는 것은 무엇이겠는 가? 바로 부도덕한 결정이라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4.11.6-7)
- 생각이 삶을 물들인다
인간의 마음은 어떤 생각을 자주 하느냐에 의해 그 모양을 갖춰간다. 인간의 영혼과 정신은 생각에 의해 착색되기 때문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16)
- 비극을 마주하는 법
불쾌한 소식이 자네에게 전해질 때면 그 소식이 자네의 합리적 선택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어느 누가 자네의 기대나 욕망이 잘못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겠는 가?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네! 하지만 그들은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할 수는 있 네.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에픽테토스, 대화록, 3.18.1-2)
- 운명보다 강한 영혼
영혼은 어떤 운명보다도 강하다네. 영혼은 선과 악 어디로든지 자신을 스스로 이끌어가며 행복하거나 불행한 삶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야.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98.2b)
소 카토는 넉넉한 돈이 있는데도 종종 맨발로 로마를 돌아다녔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무심했다. 늘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음에도 간단하고 소박한 식사를 즐겼으며, 여 느 귀족과 달리 비가 오거나 폭염이 내려쬐는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맨몸으로 돌아다녔다.
왜 그는 재력에 걸맞은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카토는 자신을 강하고 회복력이 높은 영혼으로 단련하고자 했다. 특히 '무심'을 수련하 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세속적 욕망의 가치 판단에서 자유롭고자 전선 의 참호 속에서도 권모술수가 넘치는 원로원과 정치 토론의 장에서도 자 신만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유지했다. 카토는 어떤 조건이나 어떤 불운 이 닥쳐와도 자신을 준비하려 했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무심이란 결코 즐거움 없는 삶을 뜻하지 않는다. 좋은 순간이 찾아와도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음을, 나쁜 때가 와도 오래 머물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그 속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강인 한 의지가 들어 있다.
- 자책하지 말라
철학은 단지 검소한 삶을 요구하는 것이지 속죄하는 삶을 바라는 것이 아니네. 함부로 살지 않으면서 검소하게 사는 것은 가능하다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5.5)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자기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 스 토아 철학자들의 저작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할 것은 거기까지였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자책이 없었다. 속죄를 바라지도 않았다. 자기혐오도 없었다.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한 적도 없었고 중 세 시대 수도사처럼 자신의 실수를 단죄하기 위해 단식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자기비판은 건설적이었다.
과도하게 자신을 압박하는 것과 자신에게 벌을 주려는 의도가 있 는 모든 것은 자책이다. 자책은 어떤 향상도 개선도 가져오지 않는다. 자 신에게 가혹하게 굴 필요는 없다. 불가능하지 않을 만큼 높은 도덕적 기 준을 유지하라. 그리고 행여 실수했을 때 용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라.
- 유리는 이미 깨졌다
불운이란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우리에게 떨어지는 법입니다. 망루에서 항상 지켜보는 자만이 쉽게 인내할 수 있지요. (세네카,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5.3)
아름다운 유리컵을 가진 선승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늘 이렇 게 말했다. "컵은 이미 깨졌다." 그는 컵을 아끼고 즐겨 사용했으며, 방문 객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일에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러던 어 느날 정말로 컵이 깨졌다. 선승은 이렇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지."
에픽테토스와 램프에 관한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에픽테토스 에게는 아주 값비싼 램프가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문단속을 잘 하지 않 았던 그는 어느 날 그 램프를 도난당하고 만다. 에픽테토스는 미련 없이 싼 것으로 교체했다. 다시 도둑맞아도 될 만큼 아주 싼 램프였다.
- 완벽을 기대하지 말라
저 오이는 쓰다. 그렇다면 내다 버려라! 길 위에 가시덤불이 있다. 그러면 그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귀찮은 존재들 은 왜 있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면 자연의 진실한 탐구자인 우리는 웃음 거리가 될 뿐이다. 이는 마치 목수나 구두 수선공의 가게에 톱밥과 가죽 조각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그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한 쓰레기통이 있지만 자연은 그와 같은 것이 필요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50)
- 역경과 강인함
왜 기분이 상했는가? 왜 불평하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다. 우리는 참고 견디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네카, 섭리에 대해, 5.7b-8)
- 첫인상에 머물러라
첫인상이 전달해 주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 누군가 당신을 험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너에게 전해진 것은 그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으로 네가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아들이 병에 걸린 것을 보았다. 병에 걸렸을 뿐 생명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첫인상 안에 머물러라. 머릿속에 어떤 것도 보태지 말라. 이것이야 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8.49)
- 완벽하려고 하지 말라
단지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되네. 완벽을 바라는 순간 그 속엔 절망만 있을 뿐이야. (에픽테토스, 대화록, 1.2.37b)
- 미리 비참해하지 말라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영혼은 비참하다네. 고통이 오기 전에 먼저 고통스러워하지. 그들 이 그렇게 불안에 휩싸이는 이유는 가진 것을 끝까지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야. 하 지만 그와 같은 영혼에게는 결코 안식이 있을 수 없다네. 오히려 갈망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현재를 잃어버리고 말 뿐이지.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98.5b-6a)
- 난파선에서 찾은 것
나는 배에 승선하기도 전에 난파당하고 말았네. 하지만 그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지.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를, 그리고 상실의 고통 없이 그것 들을 얼마나 쉽게 내다 버릴 수 있는지를.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87.1)
- 웃으면서 절망과 싸워라
헤라클레이토스는 대중 속으로 갈 때마다 울었고 데모크리토스는 웃었다. 한 사람은 세 상을 불행의 연속이라 보았고 다른 사람은 어리석음의 연속이라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 는 가벼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유연한 정신과 함께해야 삶을 인내할 수 있다. 삶을 애도하는 것보다 웃는 것이 더 인간적인 것이다. (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대해, 15.2)
- 갖고자 하는 것을 바꿔라
바라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갖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을 힘은 있다네. 그러니 우리가 가진 이 힘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123.3)
- 역경의 쓸모
한 번도 불행 속에 살아 본 적이 없다면, 나는 당신이 불행하다고 말하겠다. 적대자와 마 주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행운 속에서만 살아왔다면 누구도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조차도! (세네카, 섭리에 대해, 4.3)
- 사슬로도 묶을 수 없는 것
자네는 나의 다리를 묶을 수는 있지. 하지만 제우스 신조차 내 자유의지를 파괴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1.1.23)
- 화창한 날에 준비해야 할 것들
자네가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시험해 보겠나? 일주일 동안 퍽퍽한 싸구려 음식만 먹어 야 한다면, 그리고 다 낡아 해진 옷을 입어야 한다면 자신에게 물어보게. 이것이 자네가 두려워하는 최악의 상황인지 말이네. 좋은 시절일 때 우리는 다가올 힘든 시기를 위해 대비해야 한다네. 운명은 우리 앞의 햇살이 따사로울 때 자신의 이빨과 발톱을 갈아두는 짐승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군인들은 평화로울 때 병법을 수련하고, 적이 시야에 없을 때 참호를 판다네. 지쳐 있을 때 적이 공격해 오지 못하도록 그렇게 대비를 하지.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18.5-6)
- 덜 갖는 연습을 하라
동료 없이 식사하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자. 노예를 두지 않는 삶에도 익숙해지도록 하 고, 본래의 목적으로 옷을 입는 데도 익숙해지도록 하며, 좀 더 합리적인 넓이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에도 익숙해지도록 하자. (세네카, 마음의 평정에 대해, 9.3b)
- 언제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당신이 정상 체중이라면 몸무게가 두 배로 불지 않았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수명이 길지 않다고, 더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품는가? 체중에 만족하 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도 만족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49)
- 신은 현명한 자에게 역경을 준다
성공은 하찮고 볼품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도 찾아온다. 그러나 오직 위대한 사람만이 재앙과 불운에 대항해 업적을 남긴다. (세네카, 섭리에 대해, 4.1)
- 인생은 레슬링이다
삶에 필요한 기술은 춤이 아니라 레슬링을 더 닮았다. 우아하게 살기 위해서는 뜻하지 않는 기습공격을 이겨 낼 준비와 굳건히 버텨 낼 능력이 필요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7.61)
- 복수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복수이다
가장 좋은 복수 방법은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6)
상처를 보고 복수를 꿈꾸는 것보다 치료하는 것이 훨씬 낫다. 복수는 시간을 낭비할 뿐 만 아니라 처음보다 더 많은 상처를 준다. 분노는 상처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러니 악에 악으로 맞서지 않고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다. 노새를 차고 개를 물어서 분풀이 하겠다는 사람을 누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가? (세네카, 분노에 대해, 3.27.2)
- 좋은 습관으로 나쁜 습관을 몰아내라
습관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네. 우리는 자신의 통제 바깥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해, 혹은 회피하기 위해 충동을 따라가곤 하지. 그래서 그와 반대되는 습관을 만들어 야만 한다네. 나쁜 습관은 항상 미끌거리면서 빠져나가려고 하니, 대항할 수 있는 습관을 훈련해야 해. (에픽테토스, 대화록, 3.12.6)
- 삶은 주사위처럼 무작위적이다
기억하라. 당신은 연극에 출연한 배우이고 극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을 연기해야 한 다. 그가 짧은 연극을 원한다면 짧을 것이요, 긴 연극을 원한다면 길 것이다. 그가 거지 역할을 바란다면 그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 그가 불구자, 우두머리, 혹은 평범한 사람의 역할을 맡기더라도 잘 해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의무다. 당신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 행하라. 하지만 배역 선택의 권한은 다른 이에게 있다.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17)
- 철학이 향하는 곳
오만하고 아집에 사로잡힌 채 철학을 행하면 파멸의 원인이 된다네. 타인의 허물에 격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네의 허물을 벗겨내기 위해 철학을 행하도록 하게.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103.4b-5a)
- 잃는 연습을 해라
상실의 고통을 경험할 때마다 신체의 일부를 잃은 것처럼 느낄 것이 아니라 언제든 깨 질 수 있는 유리였던 것으로 생각하게. 이를 기억해야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야. 자네의 아이, 형제자매, 친구에게 입맞춤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네. 그것이 자네가 바라던 최 상의 경험이었다 할지라도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장군이 죽음을 회피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없네. 단지 잠깐 주어지는 것일 뿐, 영원히 가질 수는 없네. (에픽테토스, 대화록, 3.24.84-86a)
- 루푸스의 역설
나라면 화려하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질병에 걸리는 것을 선택하겠다. 질병은 몸을 해롭 게 할 뿐이지만 화려한 삶은 몸과 마음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삶은 몸을 연약하 게 만들뿐더러 영혼을 통제 불능의 겁쟁이로 만들고, 더 나아가 불공정과 탐욕까지 잉태하게 한다. (무소니우스 루푸스, 강의록, 20.95.14-17)
- 영원하지 않기에 특별하다
해야 할 일을 하자. 지금이라도 바로 이승을 떠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2.11.1)
- 메멘토 모리
끝난 것처럼, 이미 죽은 사람인 것처럼 자신의 삶을 생각하라. 남은 것을 여분의 은혜라 생각하고, 자연의 본성에 맞추어 살라. 운명이 당신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고 맡은 역 할을 다하라. 그것 외에 무엇이 더 잘 어울리겠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7.56-57)
- 미련이 남지 않는 삶
우리는 곧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아직 삶에 전정성이 없고, 평정을 얻지 못했으며, 외부 사건이 우리를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또 다른 이에게 자비롭지도 못하며 지혜와 올바른 행동이 동일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4.37)
아우렐리우스는 생의 후반부에 명상록』을 집필하면서 심각한 질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곧 죽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자 신의 필멸을 스스럼없이 고백한 것이다. 이 구절에는 그가 느낀 두려움 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죽음을 똑바로 응시했던 그는 자신이 본 것 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실제 많은 것을 성취하였음에도 죽음 앞에서 그 의 감정은 고통과 불쾌로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 다는 사실과 더 나은 선택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안도감을 가져다주 었다.
당신에게는 지금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지금 죽는다고 해도 당신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우리의 삶은 끝까지 완성되지 않 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죽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 또한 가능하다.
-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그의 노새지기도 죽음의 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우주의 창조적 이성에게 회수되었거나, 원자들 사이로 흩어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6.24)
- 존재의 하찮음
우주의 규모에 견주어 네가 가진 몫이 얼마나 하찮은지 생각하라. 시간의 무한함에 견주 어 너에게 부여된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 생각하라. 운명의 오묘함에 견주어 너의 역할이 얼마나 극미한지 생각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24)
- 자신만의 지혜를 축적하라
통찰을 다른 사람의 비망록에서 빌려 오는 것만큼 늙은이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 네. '제논이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 자네는 뭐라고 말할 텐가? '클레안테스는 이렇게 말 했다! 거기에다 자네는 또 뭐라고 말할 텐가? 얼마나 오랫동안 다른 이의 주장만 쫓아 다닐 것인가? 이제 자네만의 주장을 하게. 후대에 물려줄 자산을 말이야.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33.7)
- 배설되지 않고 남는 것
자네는 수많은 와인과 온갖 종류의 증류주 맛을 알고 있지. 하지만 백통 아니 수천 통이 자네의 방광을 지나갔다는 의미에서 그것들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자네는 단지 알코올을 걸러 내는 거름막이었을 뿐이었네. (세네카, 도덕에 관한 서한, 77.16)
- 지금 바로 시작하라
더 이상 방황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너 자신의 비망록도, 고대의 역사도, 노년에 읽기 위해 수집해 놓은 문집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의 목적에 충실하라. 헛된 희망일랑 던 져 버리고 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움직여라. 너 자신을 돌보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동안 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