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행복에 대한 대화를 그리 자주 나누지 않는다. 기독교적인 특질과 반대로 세속적이고 진 지한 스칸디나비아인들에게는 행복이란 단어 자체가 너무도 거창하고 야심차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자 주 "Are you happy?"라고 묻는다. 이 말을 스칸디나비아어 로 번역할 경우, "당신은 행복합니까?"보다 "잘 지내십니까?" 라고 번역이 되는 경우가 많다. 스칸디나비아에서 '행복'은 동화책에서 읽을 수 있는 마지막 줄, "그래서 이들은 오래오 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에서나 볼 수 있다. 하지만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얼마 안 가 침대에서 방귀를 뿡병 뀌는 왕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고,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 이와 지접도록 댄스파티를 하는 대신 법률 공부를 하고 싶어 할 것이며,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기독교 국가를 침략한 이 교도에 반대하는 데모 행렬에 참여하고 싶어 하루가 멀다 하고 침대에서 훌쩍일지도 모른다
- 행복은 어쨌거나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귀에 거북하게 들리는 단어임엔 틀림없다. 일상과 동떨어진 단어처럼 들릴 때가 많다. 반면 질 지낸다'라는 말에서는 이런 거부감을 찾 아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잘 지내고 싶어 하고, 또 남들 앞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해도 별 로 민망함을 느끼지 않는다. "당신을 사랑해"라든가 "난 행복 해"라는 말을 좀처럼 입에 담지 않는 사람들도 "잘 지내고 있 다"라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할뿐더러 상대방에게 사랑에 빠져 있다는 의심을 주지 않고서도 편히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이 바로 이 "잘 지내?" 또는 "잘 지낸다"라는 말이다
- 어쩌면 잘 산다는 것,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밋밋하고 지루한 일일지도 모른다. 또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새롭게 불평할 거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디어에서는 특히, 유럽 지역의 미디어에서는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풍요롭게 '잘 살아 있다'라고 강조하기를 잊지 않는다. 어느 정도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건 맞는 말이다. 북유럽의 생활 수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반세기에 이르는 시간 동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고, 천국을 방불케 하는 사회를 건설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부와 풍요가 점진적으로 증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은 이에 비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불평을 늘어놓고, 절망하고, 정신적인 고갈을 느끼며 목표 없이 떠도는 불 안정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 문화인류학자인 클리 포드 게르츠는 "인간은 스스로 엮어 짠 의미의 그물 속에서 사는 동물이다"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그의 말에 비평가인 밥 숄트는 "스스로 의미의 그물을 짜는 인간은 극히 소수이며, 대부분은 타인이 엮어 짠 그물 속에 억류되어 살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의 삶 에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시스템의 희생 자일 뿐인가? 이것은 사회철학의 가장 큰 문제라고도 할 수 있으며, 어느 사람도 궁극적인 대답을 줄 수 없는 질문이라 고 할 수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두 가지 모두 맞는 말이다. 인간은 자립적인 동물이며, 동시에 사회적 도덕적 시스템에 얽매여 사는 동물이다
- 우리가 비교 대상으로 삼는 이들 중에는 직장 동료도 포함된다. 영국의 국회 거리라고 할 수 있는 화이트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사회학자 마이클 마멋은 상당히 놀랄 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바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 비해 눈에 띄게 오래 산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흡연과 음주량, 그리고 운동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지 위였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높은 지위 에 있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더 나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의학자 레델마이어"etdlmie"와 싱sims"이 행한 또 다른 조사 에서도 이와 비슷한 관점을 포착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오 스카상을 받은 적이 있는 배우들은 이 상에 노미네이트만 되 었던 배우들보다 평균적으로 4년이나 더 오래 산다는 결과 를 얻을 수 있었다(일반적으로 노미네이트된 배우들보다 실제로 상을 받은 배우들이 평균적으로 나이가 좀 더 많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미국인들이 말하는 성취감,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는 개인적인 감각은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당근을 먹고, 조깅하 고, 매일 여덟 시간의 수면을 규칙적으로 취한다고 해서 더 오래 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래 살아보겠다 고 한다면 조깅하면서 '만세!'를 수차례 외치며 즐겁게 뛰어야 하지 않을까. 하긴, 조깅을 하면 정확히 조깅에 소비한 그 시간만큼만 오래 산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비교 관점은 가끔 일정량의 알코올을 섭취하는 사람들이 철저한 금주가보다 오래 산다는 말과도 관계가 있 다. 그러나 할렘의 주민들이 방글라데시 국민보다 평균 소득은 몇 배나 더 높지만, 평균 수명은 휠씬 짧은 것도 사실이 다. 그 이유는 이들의 비교 대상이 국제적인 개체가 아니라 뉴욕시의 주민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 배리 슈바르츠는 강요된 선택에 대해 주목할 만한 예를 언급했다. 그가 도시 외곽의 한적한 곳에서 살 때는 가게에 서 어떤 비디오를 대여해 와도 그의 친구들은 만족했다. 그 들은 대여점에 구비된 영화 비디오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가고 나니, 그 지역의 대여점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 류의 비디오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그가 어떤 비디오를 빌려 도 친구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어렵게 찾아낸 유럽 의 모호한 예술 영화조차도 성에 차지 않았다. 어떤 영화를 빌리든 간에 항상 더 나은 영화를 빌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하 는 심리가 그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러한 강요된 선택은 결국 행위의 마비를 가져온다. 노 르웨이의 작은 마을에서 콘서트나 강연회가 열리면, 거기는 항상 사람들로 꼭 찬다. 하지만 같은 콘서트나 강연회가 수 도 오슬로에서 열릴 때면, 그곳을 찾는 군중이 얼마나 될지 장담을 할 수 없다. 텅 빌 때도 가끔 있으니까. 오슬로 시민 들은 매일 저녁 도시 여기저기서 열리는 행사들에 익숙해져 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들은 끝이 없다. 따라서 이 것저것 재어보다가 결국 아무런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집에 있는 경우가 많다. 오슬로에서 행사가 열릴 때면 참석 자 수는 때에 따라 8명에서 500명까지 매우 다양하다. 하지 만 아렌달 같은 소도시에서 행사가 열린다고 하면 참석자 수 는 항상 100여 명 선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은 선 택적 대안에 더 자주 노출될수록, 결국은 아무런 결정을 내 리지 못하게 될 확률도 크다 어쩌면 우울증의 증가와 프로작 같은 약물들의 일반적 중독은 앞에 언급한 현상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소비 행위의 일시적 매력이 사라지면 우리가 느꼈던 순간적 만족 감도 함께 사라진다. 더욱이 필요도 없는 물건을 구입했을 때나, 어떤 물건을 구입한 직후 같은 종류의 더 나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는 더 그렇다. 선택의 자유는 순간적 만족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은 사랑, 종교, 그리고 우정 같은 것들뿐이다. 만약 이런 것들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면 삶의 진정한 만족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짝이 없는 방글라데시 국민은 아주 높은 '주관적 행복감'을 기록했다. 방글라데시 국민의 대다수는 신을 믿지만, 죽은 후 지옥 불에 던 져지거나 살아생전 주술이나 마법에 시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신이 자신들의 삶에 저마다의 가치를 부여했다고 믿으며, 동시에 자신들의 삶은 먼지처럼 미약한 것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이런 생각을 지닌 종 교인들은 인터넷과 자동차를 소유하지 못한 무신론자보다 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라고 말한다 단순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옳은 말이다. 왜냐 하면 진짜 중요한 것은 돈 외에 다른 대가를 추가로 주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술에 대한 감탄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서서 히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음악 자체는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아니, 오히려 음질은 더 나빠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근래의 MP3는 음악 파일의 용량을 줄이기 위해 소리의 특정 주파수를 제거했다. MP3 또는 더 발전된 형태인 AAC 방식을 사용하게 되면 CD 음악과 비교 했을 때 그 용량은 거의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 하지만 음질의 차이는 뚜렷해서, 싸구려 스테레오를 통해 비교를 해봐도 금방 알아챌 수가 있다(바이닐 음반의 음질이 CD 음질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즘에도 볼 수 있다)
- 만약 모두 동시에 더 나은 외모를 지니게 된다면, 결국은 더 잘생긴 사람도, 더 못생긴 사람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 다. 아름다움이란 것은 상대적이니까. 만약 모두 앞날만 바 라보고 현재의 추세에 비판의식 없이 동참하게 된다면, 박 씨 청년의 경우와 같이 계속 어딘가 뜯어고칠 곳만 눈에 띄 게 될 것이 뻔하다. 그는 아직 발가락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은 듯하다. "내 발가락은 남들보다 더 쭈글쭈글하지 않을까? 발가락도 성형수술을 한다면 내 외모는 완벽에 가까워질지 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지 않 을까?" 몇 년 후면 사람들은 누런색의 고르지 못한 치아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썩은 이를 뽑아낸 자리가 덩그러니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그리워할지 모른다. 최첨단 기술로 가득한 풍요로운 물질 사회에서는 아무도 삐뚤삐뚤하고 누 런 치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렇게 모두들 가지런하고 하 얀 치아를 가지게 되면,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가 특별히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정말 그런 때가 온다면 각각의 산업체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또 다른 무엇을 들고 광고를 시작할 것이 틀림없다. 삐딱한 덧니 가 섹시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고르지 않은 앞니들이 더 매력적이고 특색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이다. 이렇게 돌고 도는 사회에서 시장 경제는 무언가 계속 만들어낸다. 심지어는 필요 없는 것들까지도.
- 각자의 삶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 것들에는 이 런 한계효용의 하락을 다루는 경제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오슬로 시민들이 울레볼세터 평야를 438번 다녀왔다고 해서 439번째의 산책이 더 지루하다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맛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도 마찬가 지다. 오랫동안 사귀고 만나왔다고 해도 그 횟수를 더할수록 만남이 지루해진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에 심 취한 사람들은 <햄릿>이나 <템페스트>를 읽을 때마다 새롭 다고 느낄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일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면 그 횟수가 반복된다고 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습관처럼 변해버린 일들과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어 떤 것들과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기에 그것이 무덤덤한 습관처럼 변해버리는 건 아닐까. 만약 후자 가 맞다면 만족감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극대화 부류 인간보다는 만족화 부류 인간으로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삶을 단순한 모놀리스(한 덩어리의 석재로만 이루어져 있는 구조물-옮긴이) 로 만들기보다는 지그재그, 또는 모자이크처럼 꾸며가며 사 는 게 더나은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삶의 정점을 여러 곳으로 분산해 놓는 것은 현명 한 일이다. 술을 다량으로 자주 마셔서 다음 날 아침 속이 아 플 정도가 되면 술을 마시는 즐거움은 사라져 버린다. 그 정 도가 되면 알코올중독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흡연도 마찬가지다. 비록 흡연은 다음 날 일을 하는 데 지장을 주진 않지만 말이다
- 기대감은 현실화 직전에 가장 달콤하게 느껴진다. 여행 중에 실망감이 드는 이유는 여행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대가 현실화되어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느린 시간'은 숨이 멎을 만큼 지루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빠른 시간' 은 스트레스 때문에 정말 숨을 멎 게 만들어 모든 것을 정지시켜버리고 말 수도 있다. 세상에는 느릿느릿 진행해야만 하는 일들도 많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거나, 나무를 심거나, 좋은 책 한 권을 읽는 일 등이 바로 그렇다. 현대 사회에서 이혼율이 급증하는 이유는 기대의 척도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 시대에는 남녀 간 의 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결혼이 이루어졌기에, 결혼생활 그 자체가 상당히 굳건하게 유지되었다. 이 점과 관련해, 나는 기대감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기대감을 유지하는 기간이 달라졌기 때문에 이혼율이 증가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기대 기간이 상당히 길었지만, 현대에는 이 기간이 짧아 졌다. 결혼을 하는 이유는 '좋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함께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 북유럽 사람들은 성탄절을 향한 기대감 때문에 어두침침 하고 매서운 한기로 가득한 11월과 12월을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성탄절 휴일은 금방 지나가 버리기 마련이다. 좀 자 란 아이 중에는 연말연시의 떠들썩함 속에서, 지난두 달 동 안 이걸 기다리느라 그렇게도 들떠 있었던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내년이면 또 같은 일이 되 풀이될 것이고, 올해의 이 이상하고 멜랑콜리한 실망감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성탄절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 기대에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길버트는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나, 지난주에 어머니가 우편으로 부쳤다던 폭신한 잠옷을 기다릴 때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팔을 걷어붙인 후에 열심히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말했다. 열심히 움직이지 않아도, 우리의 뇌는 이전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현재 상상하는 일에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항상 꿈과 희망이 필요하다. 꿈꿔왔 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이를 머릿속에 그리기 위해서는 시간과 동경이 필요하다.
- 우리에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5년 또는 10년 이상을 기다릴 만한 끈기와 여유가 없다. 사 람들은 지금 당장 미래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 이런 사회에 서는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다림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 다. 끈기와 인내심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회에선 기대 감이 더 달콤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니까. 1950년대와 비교해 2000년대 선진 부국에서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가 더 낮은 이유는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요구의 즉각적인 충족으로 인해 우리는 무언가를 오래, 끈기 있게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 들이 허무하게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예 기다리는 일 자체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 행복학을 다룬 소위 학술 서적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행복은 개인적 요소(타고난 성격. 살아 가며 내리는 선택과 결정 등)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 나는 사회적 관계와 시스템 속에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요 소가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 긍정 심리학'을 주장하는 셀리그먼 같은 학자들이며, 이들은 주로 개인적 일상과 직장 생활에서의 예에 초점을 맞추고 있 다. 이들은 부부간의 대화 부족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초래하며, 무능한 상사 때문에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경우 불행한 직장 생활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천성적으 로 타고난 개인의 낙관적 태도가 사회와 주변 사람의 영향 을 받아 변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고 말한다. 이런 형태의 연구 중에서 눈에 띄는 결과를 발표한 이는 심리학자인 랑힐 방네스를 들 수 있다. 그녀는 수천 쌍의 쌍둥이 들을 대상으로 연구했으며, 개인의 만족과 행복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윈주의적 연구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원주의 학자 중의 하 나인 그린데는 사회의 영향과 역할을 크게 강조한 것이 특징 적이다. 삶의 질과 만족의 원인을 사회, 문화, 정치 등에서 찾는 이들은 방대한 설문 조사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 간 상황을 비교하는 연구 방법에 집중한다. 이들은 물질적 삶의 수준에서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한 일본인들이 주관적 행복 과 만족도 연구에서는 왜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지 큰 관심을 보인다. 이것은 유전자와는 관련이 없는 사항이기도 하다. 리처드 월킨슨이 바로 이 방향의 연구를 대표하는 학 자이다. 그는 일간지의 칼럼과 휴가 여행지, 범죄율, 평균 수명 등 각종 경험주의적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했으며, 사회학 부문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학자의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의 연구 프로젝트는 지적일 뿐 아니라 도덕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연구를 통해 단순하고 일관적인 견해나 결론을 도출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바로 그 때문에 그의 연구 결과는 신뢰할 수 있고 흥미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