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맛있는 세계사

dalai 2025. 2. 27. 06:56

- 원래 빵이란 말은 포르투갈어 파오에서 유래. 15세기 이후 포르투갈 상선이 동아시아에 자주 나타났다. 카톨릭 예수회 신부였던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1549년 포르투갈 상선을 타고 일본 규슈의 가고시마에 도착. 이후 일본열도에 카톨릭이 전해졌고, 미사때마다 포르투갈어 파오가 성찬과정에서 말해짐. 하지만 일본인들은 빵을 파오라 부르면서도 한자로는 증병, 혹은 맥병이라고 적음. 1912년이 되어서야 일본에서도 비로소 빵이란 말이 보통명사로 쓰였고, 한국에도 이 말이 들어오게 됨.

- 낙타를 이용하여 사막을 통과하면서 오아시스에 형성된 마을에 상품을 판매하던 서아시아 대상인들이 젖 대신에 치즈를 만들어서 이동식량으로 사용하면서 치즈는 전세계로 퍼져나감. 그러니 치즈는 서아시아에서 발명되어 그리스로 전해진 셈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동물의 역사에서 액체의 젖은 오로스라 부르며, 딱딱한 젖은 타이로스라 부른다고 적음. 이 타이로스가 바로 치즈다. 
고대 로마에서는 치즈를 카세우스라 불렀다. 남자라는 뜻도 갖고 있는 이 단어는 주로 남자들이 치즈를 만들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 이것이 영어로 옮겨지며 카세로 변했고, 다시 치세와 치즈로 바뀜

- 수확한 밀은 쌀과 달리 밥을 지을 수 없다. 쌀에 비해 밀은 딱딱한 겉껍질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속의 알갱이는 너무 부드러워 쌀알처럼 깎아내리기 어렵다. 그래서 밀을 그 자체로 잘게 부순 다음 고운 채로 여러번 걸러서 껍질을 제거하고 밀가루를 얻는 방법을 써야 함. 예전에는 당연히 갈돌이나 절구 혹은 맷돌이 있어야 밀가루를 만들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이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었고, 서아시아인들과 유럽인들은 빵을 만들었다.

- 국수때문에 생겨난 빠른 젓가락
국수가 북송과 남송에서 대대적 인기를 누리면서 중국인들의 식사도구도 젓가락 하나로 변함. 고대중국인들은 오늘날 우리와 마찬가지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했음. 그런데 국수가 인기를 누리면서 젓가락 위주로 식사를 하게 됨. 중국어로 젓가락은 쿠아이쯔라고 부름. 원래 빨리라는 의미를 지닌 쿠아이에 대나무를 뜻하는 죽이 붙었다. 곧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인데 음식을 빨리 먹을 수 있는 도구라는 뜻이 쿠아이쯔에 담겨 있음. 북송과 남송의 도읍지에 있던 식당에서 국수가 일종의 패스트푸드로 판매되었기 때문. 가게에서는 손님이 가능한 빨리 먹도록 하기 위해서 값싼 대나무로 젓가락을 만들었고 지금도 중국인들은 쿠아이쯔로 국수 말고도 각종 음식을 먹는다.

- 소시지란 말은 고대 로마의 말은 라틴어의 살수스에서 유래. 그 뜻은 소금에 절인다는 의미, 이 말이 고대 북부 프랑스로 옮겨져서 소싯세가 되었고, 영어로 소시지가 됨. 그 어원이나 만드는 방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시지는 고기를 소금에 절여서 오랫동안 보관하는 방법에서 생겨난 음식임.
햄이나 베이컨도 소시지와 비슷. 햄은 원래 돼지의 넓적다리 살을 소금에 절인 후 연기에 훈제한 식품. 이에 비해 베이컨은 돼지의 옆구리 살로 햄을 만든 다음 그것을 말려서 얇게 썬 식품. 모두 육식을 했던 유목민이나 목축민이 개발한 것. 
비록 모양과 맛은 약간씩 다르지만, 세계 각 곳의 사람들은 소시지와 비슷한 음식을 오래전부터 먹어왔다. 우리나라 순대도 일종의 소시지. 다만 오늘날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아 전 세계에 퍼져나간 것은 서유럽 사람들이 즐겨 먹던 소시지다.

- 특별한 날에 많이 잡은 고기는 한꺼번에 먹기보다 오랫동안 저장하여 두고두고 먹는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고기를 소금에 절이든지, 연기로 굽든지, 겨울에 야외에 두고 말리든지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특히 가축을 잡아도 제대로 살코기를 먹기 어려웠던 하층민들은 버려진 가축의 골, 혀, 귀, 염통, 콩팥, 코, 창자, 피 등의 부산물을 구해서 이것을 잘게 썰어 소금에 버무린 다음, 창자 속에 넣고 말리거나 훈제하는 방법을 개발. 소시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동물성 단백질을 먹기 위해 발명한 음식. 이런 발명은 인류가 사회를 이루어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발달과정이다.

- 로마제국이 돗어로 갈라져 쇠락할 무렵, 이웃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강력한 이슬람 제국이 일어섰다. 마호네트라는 선지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뿐 아니라 지중해 남쪽과 에스파냐, 심지어 동로마 제국까지 쳐들어옴.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이슬람 제국에 붙잡혀 감옥에 갇히는 굴욕적 사건까지 일어남. 다급해진 교황 루르비누스 2세는 이슬람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되찾자고 호소하며 주변 왕국에 군대를 요청. 유럽의 여러 왕국들은 다같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군대를 모아서 이슬람 제국으로 쳐들어감.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전쟁은 예루살렘 탈환과는 전혀 관계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됨. 약 여덟번에 걸친 원정과정에서 서유럽 십자군은 수많은 민족을 학살하고 약탈을 일삼더니, 심지어 비잔티움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도교를 공격하기에 이름. 애초에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국가들은 전쟁으로 얻게 될 새로운 영토와 경제적 이익이 목적이었기 때문.
결국 예루살렘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이 전쟁으로 서유럽은 이슬람의 앞선 과학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었던 이탈리아는 무역이 발달하게 됨. 그 결과 이탈리아는 훗날 르네상스의 주역이 되었다.

- 인도에서 커리소스의 재료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향신료는 커리나무라고 불리는 쿠라야 코엔니지라는 나무의 잎이다. 인도가 원산지인 만큼 남인도와 스리랑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 때 이 잎을 곱게 간 가루를 반드시 넣는다. 커리 잎은 말리면 향기가 적어지기 때문에 보통 생잎 그대로 식용유에 살짝 볶아서 가루로 만듬. 생강과 비슷한 강황도 커리소스의 중요한 재료임. 이것들은 주로 남아시아나 동남아 같은 열대지역에서 자람. 인도에서는 이 재료를 말린 뒤 절구에 빻아 커리소스로 사용.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고수라고 불리는 코리앤더의 열매를 말려서 가루낸 것, 후춧가루, 계피가루, 육두구, 미나리과에 속하는 식물인 커민과 딜의 씨를 가루낸 것 등이 모두 커리소스의 재료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