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몸은 제멋대로 한다

dalai 2025. 4. 22. 07:06

- 어떤 동작을 깔끔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동작의 명확한 상이 머릿속에 있어야 함. 한편으로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동작은 경험이 없기에 상을 그려볼 수도 없다. 성공하려면 상을 그려야 하는데, 할 줄 모르니까 아무런 상이 없는 것. 할 수 없다에서 할 수 있다로 건너가려면 이 역설을 뛰어넘어 상이 없지만 우연히 해냈다, 라는 우연이 일어나야 한다.
바로 그 역설을 뛰어넘도록 해주는 도구가 외골격이다. 후루야씨의 가설에 따르면 성공까지 다다르는 길을 짐작할 수 없을 때, 외골격이 목표지점을 설정해 준다. 외골격은 의식과 상관없이 손가락을 움직여주어서 의식할 수 없었던 동작으로, 즉 머릿속으로 그릴 수 없던 영역에 몸을 데려가준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없는 동작의 상을 그릴 수 있게 해준다.

- 손가락의 힘을 균등하게 만들려는 무리한 연습이 지금까지 무척 오랫동안 이뤄졌다. 손가락은 만듦새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손갉 고유의 매력을 손상하지 않는 편이 좋으며, ... 오히려 그 매력을 충분히 살리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쇼팽)
물론 손가락의 고유성을 살리려면 각 손가락을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 어째서 '오차를 포함한 정답'이 유효할까?
가시노씨는 애초에 투구 같은 운동기술이란 변동 속의 재현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다.
(실제 투구에서는) 마운드의 기울기가 좀 완만하다든지, 바닥이 무르다든지, 앞선 투수가 땅을 엄청 팠다든지, 하는 다양한 요소가 있습니다. ... 그러니까 운동기술이란 그런 변동 속의 재현인 셈인데, 재현성만 계속 훈련한다고 변동속의 재현을 실천할 수는 없죠.

- 달인이 되면 경험에 근거하여 원숙해진 이해력에 기초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데 몰두하여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해결하려 하지 않고, 나중을 걱정하거나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 인간은 걷거나 말하거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 보통 의식적으로 생각한 끝에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처럼 달인의 단계에서는 기능이 몸의 일부처럼 익어서 거의 의식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달인 수준의 운전자는 자동차와 일체가 되어 자신이 자동차를 움직인다기보다 자동차와 내가 함께 운직이는 듯이 움직인다.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가 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데 비해 어른이  아무런 의식적 노력 없이 걷는 것과 마찬가지. 비행기 조종사에 따르면 초보자일 때는 자신이 비행기를 날린다는 감각이 있었지만, 베테랑이 되자 비행기가 스스로 날아가는 듯이 느껴진다고 한다.

- 달인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건 몸에 맡길 때 한정될 뿐이고, 돌발적 사고가 일어났을 때나 잘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매일 연습할 때 달인은 오히려 매우 많은 생각을 한다.
어쨌든 이와 같은 단계를 통해서 성인의 학습이 추상적인 규칙과 멀어지고, 구체적 상황으로 파고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가시노씨가 말한 변동 속의 재현이다. 달인일수록 복잡한 규칙을 알고 있다는 것은 오해아며, 어린아이의 학습과 달리 기능습득은 깊이 파고들수록 규칙과 멀어지게 마련.
그 때문에 드레이퍼스는 달인에게 규칙을 물어서는 안된다고 말함. "달인에게 규칙을 언어로 표현하라고 채근하면, 달인은 초보자 단계로 후퇴해서 자신이 기억은 하지만 더 이상 쓰지 않는 규칙을 답하고는 한다."

- 운동능력에는 항상 같은 동작을 하는 기계적 재현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대응해 운동양상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변동속의 재현이 중요. 이 말을 한마디로 하면 실행의 환경적합성이다. 한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학습의 환경의존성이다. 능력을 습득하는 단계에서도 학습하려는 내용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온갖 환경요인이 학습에 관여한다. 그 때문에 환경과 학습내용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재활과정에서도 큰 난관으로 작용함. 이를 테면 HMD를 쓰고 가상공간에서 연습하여 성공한 것을 HMD가 없는 현실공간에서는 할 수 없게 된다. 혹은 실험용 전신기구를 착용하면 가능했던 일을 기구를 벗은 상황에서는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 가소성은 열과 힘 등을 가해 기능과 모양을 새롭게 바꾼 뒤에 열과 힘 같은 게 업어져도 한 번 바뀐 기능 등이 그대로 유지되는 성질. 뇌의 특성에서도 경험과 자극 등으로 변화가 일어난 뒤에 그 결과가 나중에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가소성이라 한다. 그에 비해 자극과 경험 등으로 변화했지만 나중에 원래대로 돌아가는 성질은 탄성이다. 뇌에는 탄성이 없기에 일단 잘못된 학습을 하면 unlearn, 즉 학습을 없던 일로 하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뇌의 가소성이라는 성질은 새로운 신경경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척 많은 가능성을 주지만, 제대로 유도하지 않으면 잘못된 학습, 잘못된 적응을 초래해서 그 결과를 웨만해서는 지울 수 없다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