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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dalai 2025. 2. 25. 06:43

- 천일염은 바닷물을 말려 얻는 소금이다. 천일염은 계절고, 소금이 결정되는 그날의 날씨, 소금의 결정시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섭씨 25도 전후의 볕좋은 날에 바람이 살랑살랑 불 때를 맞추어 아침나절 함수를 염판에 넣고 그날 안에 거두는 천일염이 가장 맛있다. 한반도에서는 이런 조건의 날씨를 보이는 날이 한 해에 얼마 되지 않으며, 따라서 맛있는 천일염은 매우 귀하다.
이 최상의 천일염 이외의 소금에는 쓴맛의 염화마그네슘이 많이 들어있다. 염화마그네슘은 간수의 주요 성분이다. 그래서 한국의 천일염은 3년 또는 5년씩 저장을 하여 이 염화마그네슘을 제거해야만 음식에 쓸 수 있다. 프랑스 게랑드 천일염을 세계명품이라 하는 것은 그 지역의 갯벌이 좋아서라기보다 그 지역의 날씨가 좋은 천일염을 낼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
- 바닷물을 끓여 만든 자염은 천일염보다 미네랄이 많으면서도 쓴맛이 받지 않는다. 유리아미노산이 많기 때문. 바닷물을 개흙에서 농축하면서 그 개흙에 쌓여 있는 각종 생물의 시체들이 묻어 들어간 결과다. 유리아미노산은 구수한 맛을 내는데, 자염에서 유리아미노산이 염화마그네슘의 쓴맛을 줄이는 것과 맛소금에서 화학조미료가 소금의 튀는 맛을 잡는 것 같은 이치. 그러니까, 자염은 쓴맛이 없는 소금이 아니라 쓴맛이 느껴지지 않는 소금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소금이란 소금 그 자체의 맛이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안됨, 그런 식의 맛있는 소금은 인공으로 얼마든 제조가능함. 소금의 노릇은, 음식재료에 숨어 있는 맛을 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잡다한 맛이 없으면서 짠맛이 부드러운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이라 할 수 있다.

- 고추를 말리는 방법은 두가지. 햇볕에 말리는 것과 열풍건조기에 말리는 것이다. 앞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고추를 태양초, 뒤의 방법으로 만든 고추를 화건초라고 함. 태양초에는 화건초에서 맡을 수 없는 발효향이 난다. 약간의 시큼한 향인데, 잘 말린 태양초에서는 고추의 달콤한 향내와 이 발효향이 적절히 어우러져 냄새만으로 입 안에 침이 고임.
태양초 식별법은 꼭지가 누렇게 바랜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열풍건조기에서 대충 찌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말려도 꼭지가 누렇게 된다. 시중에 파는 태양초는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짐. 가짜 태양초다. 심지어 꼭지의 탈색을 위해 물을 뿌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말린 고추는 발효가 과하게 일어나거나 잡균이 붙어 발효향이라 할 수 없는, 다소 역한 시큼한 냄새를 풍기기도 함.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금물을 쓰기도 하므로 고추에서 짠맛이 나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다.
화건초도 여러 질이 있다. 건조기에서 급작스럽게 말린 것은 맛이 없다. 향이 다 달아나기 때문. 저온에서 오랜시간 은근히 말린 것이 좋다. 이런 고추의 꼭지는 녹색을 많이 띤다.
고추 말리는 방법이 또 하나 있는데, 그늘에서 말리는 것. 이렇게 말린 고추를 음건초라고 하는데 태양초보다 맛이 좋다. 붉은 색이 맑고 고추 특유의 향이 많이 남. 귀한 것이라 구하기 어려움. 햇볕에 내놓아도 희아리가 나 버리는 게 다반사인데 그늘에서 말린다는 것은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비닐하우스의 반그늘에서 환기를 잘 조절하며 말린다면 음건초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 것이다.
- 좋은 건고추를 고르는 요령
첫째, 고추를 손아귀에 꽉 쥐었다 폈을 때 10초 안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
둘째, 고추 안쪽이 오돌토돌한 것
셋째, 윤기가 나는것
넷째, 씨가 붙어 있는 심(태좌)을 씹었을 때 매운맛과 단맛이 적절히 조화된 것
다섯째, 심의 색깔이 선명한 노란색인 것
여섯째, 씨가 많지 않은 것

- 화학조미료가 건강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일은 식약청에서 알아서 할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화학조미료를 금지하지 않으니 먹어서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화학조미료의 가장 큰 해악은 식재료의 질을 숨길 수 있다는 것. 최하질의 재료이든 최고급의 재료이든 이 화학조미료 한 방이면 맛을 다 비슷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비싼 중멸에 장다시마로 제대로 맛을 낸 육수와 싸구려 대멸에 화학조미료 한 숟가락으로 맛을 낸 육수를 소비자들은 구별하지 못한다. 식당에서 싸구려 식자재로 맛을 내도 버티는 것은 다 화학조미료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음식을 먹자면 화학조미료부터 없애야 한다.
- 화학조미료는 그 자체로 맛이 있는 것은 아님. 식재료들 제각각의 맛을 뭉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맛들의 중간에 서서 조절을 한다. 이것저것 양념을 넣었는데 맛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 고민일 때 화학조미료 한 숙가락이면 모두 해결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따라서 짜고 매운 맛을 음식의 중심에 두고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는 한국음식에 화학조미료는 맛의 조절자로서 항상 유용할 수 있다. 그러니, 한국음식에서 화학조미료를 버리자면 짜고 맵고 강한 양념에서 벗어나야 함. 심심하고 순하게 먹으면 화학조미료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 멸치젓국은 아시아권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어장의 일종. 남아시아에서는 이 어장을 거의 모든 음식에 양념으로 사용. 한국의 멸치젓국은 활용도에서 아니상 여느 어장에 비해 모자람이 있다. 때깔과 향 때문. 아시아의 어장은 대체로 투명하며 좋은 것은 황금색을 띠지만 한국의 멸치젓국은 칙칙한 검정색. 아지사의 어장은 감칠맛이 가볍게 다가오지만 한국의 멸치젓국은 거칠고 두툼하다. 심지어 기름전내가 난다.
한국의 멸치젓국이 색깔과 맛에서 부족함이 있는 것은 원료의 문제일 수도 있음. 남방의 생선들에 비해 우리 연근해 멸치가 지방함량이 높은 탓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멸치젓국의 생산지를 확인하면 꼭 원료 탓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플라스틱이나 양철로 만든 통에 멸치젓이 담겨 있는데, 한여름의 땡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예사임. 뚜껑을 열면 기름이 산패하여 역한 냄새가 풍긴다. 이건 숙성이라 할 수 없으며 부패라고 보는 것이 맛다. 현재 멸치젓국 생산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아시아 다른 나라의 어장을 쓰는 것이 낫다.

- 양념은 간장과 설탕이 기본이다. 여기에 참기름, 마늘, 양파, 파 배, 사과 등이 첨가된다. 돼지갈비를 구우면 간장과 설탕이 불에 타며 내는 향이 제일 강하고 참기름 등의 양념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간장과 설탕이 불에 타면서 내는 향은 들척지근하면서 찝찌름하다. 간장의 발효향을 극대화하고 여기에 달콤한 향을 더한 것. 음식에 장류를 쓰는 한국인에게 이 강렬한 향은 식욕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돼지갈비 굽는 향을 돋우기 위해 이미 불기운의 맛을 갖고 있는 캐러멜 시럽을 넣은 일이 흔하다. 캐러멜 시럽은 돼지고기의 희멀그레한 살색을 숨기는 역할도 함. 설탕에 물엿, 캐러멜 시럽까지 더하면 돼지갈비는 번질번질해지고 불판에 찐득한 잔여물을 남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는데, 이 정도이면 과도한 단맛과 밸런스를 이루기 위해 간이 세지고, 결국 돼지강정 수준의 돼지갈비를 먹게 된다.
과다하게 양념한 돼지갈비에서는 돼지고기 맛을 느낄 수 없다.
- 외식업체에서 과다한 양념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함. 질 떨어지는 돼지고기일수록 양념은 강해지고 숙성시간은 길어진다. 신선하고 잡내 없는 돼지고긴는 흐릿한 간장에 조금의 설탕과 파, 마늘, 참기름, 과일즙 정도 양념을 하여 두어 시간 재워 구워도 맛있다.

- 한우고기의 등급은 근내 지방도에 따라 결정됨. 한우고기 중 최상급은 1등급 투뿔이다 이 투뿔 한우고기를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순전히 근내 지방(마블링) 덕. 붉은 고기 사이에 촘촘히 박힌 지방은 불기운이 닿으면 순식간에 녹아 고리전체를 감싸 고소한 맛을 더하며, 녹지 않고 남은 지방은 고리를 씹을 때 부드러움을 더해줌. 부드럽고 고소하기로 한우 1등급 투뿔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마블링 고기에 대한 강한 기호도는 일본인들의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임. 그들은 음식을 이로 씹는 행위를 강하게 하지 않음. 그들이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씹는다기보다 오물거린다는 표현이 맞다. 그에 반해 우리 민족은 치아 사이에 음식물을 두고 강하게 오래 씹는 버릇이 있다. 입에 살살녹는 고기가 맛있다는 생각은 일본인들의 쇠고기 기호를 무턱대고 쫓아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지방이 불기운에 녹아내리면서 내는 고소함이 1등급 투뿔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이 과다한 지방이 오히려 붉으니 고기의 감칠맛을 죽이고 있다. 지방 하나 없는 우둔살이나 사태를 생으로 씹을 때 맛볼 수 있는 쇠고기 특유의 감칠맛은 1등급 투뿔의 마블링 쇠고기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
붉은 고기의 감칠맛은 2주정도 숙성되었을 때 더 깊어짐. 그러나 마블링이 잘 되어 있는 부위는 숙성을 시키면 미끄덩거리면서 식감이 떨어지고 지방이 타면서 내는 고소함의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잘 숙성된 붉은 고기의 깊은 감칠맛을 맛보게 되면 오랜 육식문화를 유지해온 서구인들이 마블링에 연연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될 것.
마블링 쇠고기에 대한 잘못된 신화가 한우고기의 진정한 매력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 설렁탕은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에 구수함이 섞이고 뒤에는 개운함이 있어야 한다. 좋은 설렁탕은 단맛도 있다.
설렁탕의 맛은 어떤 소를 쓰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짐. 한우 설렁탕이 맛있다고 하는 것은 한우고기에 올레인산이 많기 때문. 올레인산은 감칠맛을 낸다. 풀 사료만 먹인 수입소의 고기와 뼈로는 맛있는 설렁탕을 얻을 수 없다. 곡물사료를 먹인 수입소의 경우 웬만큼 맛을 낸다. 곡물사료가 올레인산 함량을 늘리기 때문
재료 다음으로 끓여내는 기술이 중요하다. 설렁탕 제대로 한다는 식당들은 나름대로 노하우 하나씩은 갖고 있음. 뼈와 고기의 끓여내는 시간을 달리해 뼈국물을 나누고, 고기국물을 더하는 기술에 따라 맛 차이가 난다. 특히 뼈와 고기 외에 쇠기름이 중요한데, 마지막에 쇠기름을 넣어 고소한 맛을 더함. 쇠기름으로는 콩팥 옆의 두태를 쓴다. 한우를 썼는데도 맹탕의 국물맛이 나는 것은 고기양을 적게 썼기 때문이며, 뼈비린내가 풍기는 것은 국물을 진하게 보이려고 쇠뼈를 너무 곤 결과이다.
설렁탕에 나오는 국수는 없애야 한다. 국수의 밀가루냄새로 국물맛이 다치기 때문. 설렁탕에 국수가 들어가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흔해지면서부터. 못 먹고 살 때 양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지 맛을 더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꼭 국수를 말아 먹겠다면 주방에서부터 탕에 넣지 말고 따로 내는 것이 맞다.

- 고추장은 한식식재료 중 최강군이다. 고추장 한 숟가락이면 한 드럼의 육개장 맛도 변하게 할 정도임. 여리디여린 나물들을 조물조물 무쳐놓고 왜 이 강력한 향의 고추장으로 비벼 마무리를 하는가. 밥이 더해져 나물만으로는 간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나물이란 원래 밥과 함께 먹을 수 있게끔 조리되는 것이니 비빔을 해도 간에 부족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 정상.
옛날에는 가정집에서 이렇게 익힌 나물로 비빔밥을 해 먹을 때 고추장을 더하는 일이 없었다. 추측하건대, 비빔밥이 식당에서 팔리면서 고추장이 더해진 것으로 보임. 나물들 각각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니 고추장 맛으로 맛을 얼버무리기 위한 술책으로 밖에 안 보인다.
비빔밥의 나물들을 제대로 조리해 내자면 보통의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 공력을 고추장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 2000년대 중반 외식업계에 국수바람이 크게 일었다. 식재료 원가가 낮아 싸게 팔아도 수지를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주목을 받은 결과. 그러다 식품공장에서 생산하는 혼합조미료나 저질의 멸치를 사다 국물을 내어 잔치국수 맛을 떨어쓰리는 노릇만 하고 있다. 혼합조미료로 낸 국물은 들척지근한 맛이 강하고 저질의 멸치로 낸 국물은 비리고 쓰다.
대멸을 쓰려면 멸치의 머리와 내장은 버려야 함. 중멸은 그냥 써도 된다. 오래되어 눅눅한 멸치는 팬에 덖으면 잡내가 달아나지만 좋은 멸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멸치는 강한 불에 오래 끓이면 쓴맛이 많아진다. 찬물에 하룻밤 우려냈다가 살짝 끓여 비린내만 날리면 고급스러운 국물이 만들어짐. 대멸을 불에 구워 끓이면 강하고 복잡한 맛의 국물이 만들어짐. 디포리를 섞어 쓰기도 하는데, 디포리가 쌀 대는 넉넉히 넣어 풍성한 맛을 낼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멸치와 값이 비슷하면 이득이 없다. 디포리는 멸치에 비해 맛이 약하기 때문.
기계소면이나 중면은 제조공장의 특징이 없이 다 비슷하다. 소금이나 전분을 첨가하여 쫄깃함을 더하기도 하는데, 소금이 많이 든 것은 삶은 후에도 짜며 전분이 든 것은 부드러운 식감을 해칠 뿐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우리 땅에 남기고 간 수연소면이 식감에서 가장 좋다. 국수는 제조한 후 묵힌 것이 좋다. 그래야 생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다.
국수를 삶을 대는 물의 온도변화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끓여서 국수를 넣고 난 다음에도 물 온도가 유지되게 해야 함. 물이 끓으면서 그 힘으로 국수가 저절로 휘돌아치게 하는 것이 좋다. 헹구는 물은 얼음처럼 차가워야 한다.
싼 가격의 잔치국수라고 함부로 맛을 내는 경향이 있다. 맛있는 잔치국수는 제대로 된 국물과 국수를 만들어 내자면, 돈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 평양냉면은 메일면과 육수의 조화를 중시하는 음식이고, 함흥냉면은 감자면과 고춧가루 양념의 조화를 중심으로 함. 함흥냉면을 평양냉명과 한 부류에 넣자면 일본 냉라면, 중국냉면, 인천쫄면, 부산밀면 등등도 다 평양냉면과 같은 부류에 넣어야 할 것이다. 또 평양냉면과 가장 유사한 음식으로 막국수를 들 수 있는데, 평양냉면을 이야기할 때 함흥냉면은 꼭 끼워 넣으면서 이상하게 막국수는 제외한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음식은 안보고 냉면이라는 이름에만 집착하기 때문.
이렇게 분류해야 맞다.
* 메밀국수 :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
* 감자국수 : 함흥냉면
* 밀국수 : 부산밀면
매사에 분별력이 없으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음식의 분류를 엉터리로 하면 그 음식맛의 중심을 찾을 수 없다.

- 요즘 떡은 공장에서 가공된 쌀가루로 만듬. 쌀가루의 입도는 높고 분포도는 좁다. 아주 고운 입자임. 공장에서는 쌀의 전분이 변성되지 않게 습식으로 분쇄한다고 하지만, 고운입도의 쌀가루를 짧은 시간에 다량으로 생산하다 보니 온도가 올라가고 전분에 손상이 가기 마련. 또 보관과 이동 중에도 손상이 있다. 이렇게 전분이 변성된 고운 쌀가루로 떡을 만들면, 백설기와 시루떡은 퍽퍽하고, 가래떡과 절편은 단단하며, 찹쌀떡은 뻐득뻐득해짐.
물에 불린 쌀을 절구 같은 재래도구로 빻아 떡을 빚으면 떡에서 쌀알이 씹힌다. 아무리 곱게 빻아도 입자가 고르지 않고 거칠기 때문. 이 엉성한 떡조직이 오히려 떡을 부드럽게 함. 또 전분의 변성이 없어 질긴 느낌이 엇다. 가래떡을 예로 들자면, 공장 쌀가루떡은 질긴 쫀득함이고, 절구떡은 부드럽게 입에서 스스로 녹는 쫄깃함이다.

- 콩나물무침의 맛요소는 줄기의 아삭 씹히는 맛, 콩대가리의 고소한 맛, 짭짜름한 소금 간 뒤에 우러나오는 달콤한 맛이라 할 수 있다. 이 맛을 내기 위해서는 잘 데쳐야 한다. 데치기, 이게 콩나물 요리의 알파이며 오메가다. 콩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콩나물은 찬물에 넣고 불을 올린 후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한다고들 배웠으나, 해보면 팔팔 끓는 물에 소금 조금 넣고 뚜껑을 연 채로 데치는 것이 낫다. 비린내를 다 잡자면 데칠 때 마늘을 조금 넣으면 되는데, 이러면 단맛가지 더해짐.
그런데 온 정신을 집중해 콩나물을 데치고 몇 년 묵은 청장에 국산 참기름을 더해도, 맛에 예민한 사람들은 예저의 그 콩나물 맛이 나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콩은 예전 그 콩이라 해도 콩나물 생산방식이 바뀌어 맛이 달라진 것임.
옛날 집에서나 조그만 콩나물 공장에서는 콩나물시루 위로 물을 부으면 콩나물이 먹고 난 후 그 아래 물받이 통으로 내려온다. 이 물을 다시 콩나물에 부었다. 그런데 요즘 콩나물 공장에서는 콩나물 시루가 짝 깔려 있고 그 위로 안개 같은 물이 분사되는 자동기계가 왔다갔다 한다. 그러니까 새로운 물이 콩나물에 공급되는 것. 이런 물주기 방식에 따른 맛 차이는 의외로 크다. 콩나물이 자라면서 내놓는 물에 여러 영양과 맛 요소가 함유되어 있는 이유다.

- 배추김치의 맛의 핵심은 개운한 산미다. 배추의 조직이 반투명하게 살아 아삭하게 씹히면서 산뜻하게 신맛을 코로 올려야 제대로 된 배추김치다. 이런 배추김치를 만들기 위한 첫째 조건은 양념을 최소화하는 것. 조금의 젓갈, 조금의 고춧가루, 조금의 마늘, 조금의 무채, 조금의 ... 절임배추에 유산균이 잘 퍼져 맛있게 발효될 수 있을 정도의 양념이면 된다. 과다한 양념은 오히려 잡균들의 먹이로 작용해 쉬 멀러지고 잡내를 낼 뿐이다.
옛날 우리 배추김치들은 가벼운 양념에 물이 축축하게 있고 개운한 산미가 잘 살아 있었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니 양념을 충분히 넣지 못한 덕. 그러던 것이 80년대 후반을 넘기면서 양념범벅의 배추김치로 변해갔다. 살림이 나아지면서 김치에 양념을 잔뜩 넣어야 잘 사는 집 모양이 난다고 여긴 순진한 아낙네들의 마음이 투영된 결과로도 보이고, 궁중요리입네, 반가요리입테하고 텔레비전에 나와 갓 해서 먹어야 하는 보쌈김치 수준으로 온갖 양념을 범벅해 담그는 것을 자주 보여준 탓으로도 읽힌다.

- 고수의 약재명은 호유실, 빈대풀이다. 서양에서는 코리앤더라고함. 빈배를 뜻하는 그리스어 코리스와 좋은 향기아 나는 식물이름인 아니스를 합친 것. 약간의 비릿한 향이 있는데 이게 오히려 후각을 자극해 곁들이는 음식을 더 맛있게도 함. 중화권에서는 음식에 이 고수가 꼭 들어감. 한자로 향채라고 쓰고, 시앙차이라고 읽는다. 향기나는 풀이다.
한국인의 입맛은 보수적이다. 외래의 것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을 드러낸다. 5000년동안 한반도에 갇혀 살아오면서 고착화된 나쁜 습성이다. 또 고수가 애초 동남아 음식에 흔히 쓰는 채소로 잘못 알려지면서 그들 민족을 낮추어 보는 못된 눈이 이 채소에도 관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고수가 외래에서 온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고수는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재배하였던 푸성귀다. 특히 남도 시골을 다니다모변 이 고수를 겉절이로 내는 곳을 흔히 보게 된다. 한국이 산업화하면서 농촌에 있던 옛것들을 잊고 살다가 이제는 착각까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수는 독특한 향을 내는 맛있는 푸성귀다. 고기 요리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한국음식에서 귀중한 맛 하나를 잃는 것이다.

- 국내 사과 품종은 거의 후지. 저장성이 좋기 때문. 후지는 알이 크고 단단하며 단맛이 강함. 최근에 나오는 새로운 품종들도 대부분 후지를 모체로 함. 특히 후지계열인 조생종 료카가 시장을 넓히고 있는데 다소 가벼운 후지의 맛을 낸다. 당분간 후지 계열의 사과를 이길 품종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과의 신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품종은 홍옥이다. 선명한 붉은 색과 짙은 향에서 어떤 품종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작고 신맛이 강하다는 이유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요즘 사과는 싱겁다. 대부분 봉지를 씌워 재배하는 까닭. 봉지를 씌우면 옅은 붉은 색이 고루 번져 맛깔스럽게 보인다.이런 봉지사과는 신맛이 덜하고 당도가 높으며 조직감이 부드럽다. 봉지를 씌우지 않으면 조직은 단단해지고 향도 깊어진다. 그러나 붉은색이 너무 짙어 소비자들은 맛없다 여긴다. 봉지 씌우지 않은 사괴맛을 보고 나면 봉지사과는 싱겁다 할 것이다. 보기 좋은 것, 단맛 강한 것 좇다가 진정한 사과맛을 잊고 사는 것이다.

- 커피 맛의 중심은 쓴 맛. 강배전했을 때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쓴맛의 성분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신맛이 달아나기 때문. 단맛도 배전이 강할수록 강해지는데 이 역시 신맛이 줄어들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음. 그러니 배전을 강도를 높이면서 신맛까지 붙잡으면 신맛, 단맛, 쓴맛이 좀더 복잡하게 배합을 이룰 수 있음.
에스프레서는 커피가 갖고 있는 쓴맛을 극단에까지 이르게 함. 여기에 여러 부재료를 첨가하여 맛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커피 자체의 맛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핸드드립은 커피가 갖고 있는 맛을 가장 잘 배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분쇄된 커피의 성질에 따라 드립하는 방식을 달리하여야 하는데, 신맛을 잘 우려내어 단맛, 쓴맛과 어울리게 하는 것이 중요. 커피마다 똑같은 드립방식으로 내리면 안된다는 말이다.
커피가 뜨거울 때는 맛 성분의 활동이 심하여 신맛, 단맛, 쓴맛의 밸런스를 짐작하기 어려움. 커피가 식었을 때에야 그 커피의 맨얼굴을 대할 수 있다. 또 이때면 썩은 원두냄새, 커피의 탄내, 금속성의 속껍질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커피가 강배전으로 쓴맛만 내는 것은 커피가 식었을 때에조차 그 잡내들을 숨기기 위한 것.
커피 맛이 다양하다고 해서 신비한 그 무엇이 있는 양 환상을 불어넣는 것은 장사꾼들의 술책이다. 커피에 대해 문화적 시각을 갖는 것은 좋으나 서구문화를 무조건 추종하는 식민지 근성이 가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필 일이다.

- 요즘 춘장은 공장에서 만든다. 사자표가 가장 흔함. 본래 춘장은 2년 정도 발효해야 하나 요즘은 속성으로 낸다. 짧음 발효기간으로 색깔이 나지 않으니 캐러멜을 넣음. 맛을 더하기 위해 조미료를 첨가하기도 함. 기름도 바뀌었다. 동물성 기름이 몸에 나쁘다는 말이 번지면서 식물성 기름이 주로 쓰인다. 이런 사정들로 자장면의 맛은 흐리멍덩해지고 말았다.
춘장은 우리 된장과 큰 차이가 없는 음식. 춘장공장에서 쓰는 황국균을 된장공장에서도 쓴다. 우리 된장과 달리 콩 외에 밀이 들어가 단맛과 떫은 맛이 난다는 점이 차이인데, 이런 맛은 경상도와 강원도 지방의 막장과 비슷해서 우리 음식역사에서 전혀 색다른 것은 아니다. 중국음식의 자장면이 한국에서 크게 번창하여 한국화한 것이 전혀 엉뚱한 일이 아니다.
요즘 자장면은 너무 달다. 공장 춘장이 충분히 달게 나오는데도 주방에서 또 설탕을 첨가한다. 춘장의 큼큼한 발효향과 돼지기름의 고소한 맛을 단맛이 가리고 있는 것이다. 옛날 자장면은 없다.

- 인도 음식은 향신료 잔치다. 온갖 종류의 맛 요소들이 음식 안에서 요동친다. 대부분 음식 감상법은 이러한 여러 맛의 요소들을 하나씩 음미하고 그 맛 요소들이 얼마나 서로 잘 어울리는가를 따지는 것. 그러나 인도음식에는 이 맛요소들을 하나씩 음미하는 것이 의미가 엇다. 머스터드의 톡 쏘는 맛이 지나면 로즈마리의 화사한 향이 코끝을 감싸고 민트의 가벼움이 마무리를 하는 식의 감상법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갖가지의 맛과 향이 덩어리로 느껴질 뿐이다.
이는 김치 맛을 보면서 젓갈과 마늘, 고춧가루의 맛을 하나하나 따져 음미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재료로 들어간 젓갈, 마늘, 고춧가루 따위의 각각의 맛 요소들이 결합되어 김치라는 제3의 맛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유다. 인도 음식이 꼭 이렇다.

- 요즘 전통적 방식의 명란젓은 없다. 소금에 절이는 것이 아니라 청주와 다시마 달인 물 등을 섞은 침지액에 명란을 담갔다가 꺼낸다. 이런 명란젓은 입 안에 넣자 마자, 명란을 씹지 않아도, 감칠맛이 먼저 치고 올라온다. 겉에 바른 양념들의 맛이 너무 강한 탓이다. 명란의 본디 맛은 그 다음에 슬슬 기면서 올라오는데 그때에서야 비로소 입 안에 든 것이 명란젓임을 알 수 있다.
명란젓이 이렇게 바뀐 것은 일본의 영향이다. 애초에 명란젓은 한국의 음식이었으나 일본인들이 이를 좋아하여 자기식의 가공법을 만들어내고 이를 다시 한국에서 받아들인 것. 일본의 명란젓 가공공장에서 일했다는 것을 커다란 경력으로 내세우는 업체들이 있는데, 음식 사대주의로 읽혀 보기 좋지 않다.
현재 시판 명란젓의 가장 큰 문제는 때깔을 곱게 하기위해 아질산나트륨을 넣는다는 것. 햄, 소시지 등에 넣는 발색제의 일종. 이를 넣으면 숙성기간이 짧아지고 보존기가닝 늘어나 명란젓 가공업체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다. 그러나 명란젓의 본디 맛을 잃으면서 이럴 것인가는 고민해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