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

dalai 2022. 4. 28. 20:12

- 지금의 미국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절호의 기회다. 밀레니얼 세대는 대부분 자본주의를 미심쩍어 하면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에 호의적이다. 하버드정치연구소의 한 조사원은 자신들이 실시한 여 론조사의 놀라운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자본주의에 온전히 긍정적인 지지를 표현한 집단은 50세 이상뿐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 인원수를 자랑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자본주의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나은 길을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다. 38 사회주의라는 단어의 낙인 효과는 사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자유 시장이 밀레니얼 세대가 버는 돈을 모두 빨아들이고 미국의 대의민주제'가 대의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이때, 자유 시장과 위대한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찬가를 듣고 비웃지 않기란 힘들다. 우파가 자신들의 견해가 우리 삶을 어떻게 개선할지, 안 그래도 엄청 나게 부유한 자들에게 경제성장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게 하면서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지 밀레니얼 세대에게 설명한다면 청년들이 자본주의를 그토록 싫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파는 그런 계획을, 아니 최소한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 계획조차 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좌파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현장의 상황도 고무적이다. 급진적 후보들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 코빈이 어느 날 영국 수상이 된다거나 샌더스가 트럼프에게 승리를 거둔다는 생각은 이제 말도 안 되는 공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공화당은 당원이 계속 감소해온 반면, 독립적인 좌파 언론 매체들은 구독자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비록 그 매체들이 계속 생존할 가능성은 여러분이 내는 구독료에
달렸지만,)
- 몇 가지 변명과 그 변명이 내게 의심스럽게 보인 이유
*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성과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레이 달리오Ray Dali 는 말했다. “사람들은 삶에서 자신이 받을 만한 것을 받으며, 사람 들이 버는 돈의 액수는 대체로 그들이 사회가 원하는 것을 얼 마나 제공했는지 알려주는 척도다. 이 주장이 경험적으로 맞 든 틀리든(틀렸다), 나는 치과 진료비를 낼 돈이 없어서 치아 를 잃거나 차 수리비가 없어서 일자리를 잃거나 휴가를 낼 수 없어서 아이를 낳자마자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을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 나는 정의로운 보상이라는 달리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 부자들이 소유한 재산은 자발적인 거래로 얻은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다. 이는 자유 지상주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 Robert Nozick 이 윌트 체 임벌린을 예로 들면서 제시한 이론이다. 노직은 말 한다. 100만 명이 윌트 체임벌린의 농구 경기를 보기 위해 25 센트씩 지불해서 결국 체임벌린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부자 가 된다면, 이는 자발적 교환의 공정한 결과 아닌가? 그러나 정당한 방식으로 얻는다는 것만으로 부의 축적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이론상으로 사람들이 자신이 벌어들인 것에 대해 어떤 자격이나 권리가 있든, 내게는 다른 사람들의 빈곤을 줄이는 것이 부에 대한 권리를 지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해 보인다. 농 구장 입장권과 돈을 자발적으로 교환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한 사람은 돈더미에 앉고 다른 사람들은 인슐린이나 천식 치료용 흡입기를 살 수 없는 것을 정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과로로 탈진할 만큼 열심히 일하는데도 결국 빚의 수렁에 빠져 사회생활이라 고 할 수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봤다. 그런데 보수주의 평론 가 벤 샤피로는 말한다. “(미국에 살면서) 실패한다면, 십중팔구 당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저 깊은 곳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 잠깐이라도 자신이 사는 나라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많은 이의 실패가 그들이 전혀 통제 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다. 그러니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논리적 오류다. “내가 경쟁에서 승리했으니, 누구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건 이상하기 짝이 없는 논리다. 30개 자리를 두고 60명이 경쟁한다면 30명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 1879년에 경제학자 헨리 조지 Henry George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그런 오류는 참가자 누구든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내포된 오류와 비 슷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런 주장이 지금까지 이어 진다. 홈디포Home Deporo의 CEO 켄 랭곤ken Langone은 최근에 《나 는 자본주의를 사랑한다 ! I Love Capitalism 》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는 빈자에서 출발해 억만장자가 된 자신이야말로 '자본주의 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능한다는 살아 있는 증거라고 주장한 다. 그는 말한다. “내가 성공할 수 있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 빚은 현대 미국 생활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다. 2019년 미국의 총가구 부채는 13조 6700억 달러였다.43 이 가운데 1조 4900억 달러가 4400만 명이 학자금으로 대출한 것이다. 이들은 졸업할 때 거의 평균 3만 달러씩 빚이 있는 셈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빚은 좋거나 중립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빌리면 그동안 못 하던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빚은 빌려주는 사람 과 빌리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경제학자 베스 에 이커스Beth Akers 와 매튜 칭고스Matthew M. Chingos는 《융자의 게임 Game of Loans》에서 대다수 학생은 학자금 대출 덕분에 대학에 다닐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 결국 대출금을 다 갚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동안 학생들의 빚 문제가 과장돼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빚진 사람의 현실은 문서상의 빚과 다르다. 빚이 있는 사 람은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받는다. 렌딩트리 LendingTree 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대다수 채무자는 학자금 대출에 따른 걱정 때문에 살기 힘들고, 두통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날마다 이자가 붙는 빚 이 10만 달러 있으면 누구나 지치고 절망할 수밖에 없다. 
- 미국은 채무자의 나라다. 미국인 80퍼센트가 현재 어떤 형태로든 빚이 있고, 가구당 평균 채무는 날마다 늘어난다. 채무가 실제로 사 람들의 삶에 끼치는 손해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부 부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언쟁을 벌이는가? 학자금 대출이 만기가 되면 차를 몰 수 없게 될 일이 걱정돼 잠 못 이루는 밤이 얼마나 많은 가? 자신이 가진 게 모두 빚내서 얻은 것이고, 12년 혹은 그 이상 동 안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아는 기분은 어떨까?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느끼는 나라가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런 영구적 노예 계약 아래 살고, 우리는 이 상황을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질 수도 있고, 소수의 손에 부가 집중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둘 다 가질 순 없다. (루이스 브랜다이스 Louis Brandeis 《위대한 미국인, 브랜다이스 대법관 Mr. Justice Brandeis, Great American ))
- 소수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이 모든 사람의 생계 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한 자들이 기업, 은행가, 토지 투기꾼, 노동 착취자 를 위해 국가를 지배한다. 인류는 대다수가 노동하는 사람이다. 소유권과 생계 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달라는 이 사람들의 공정한 요구는 무시당하 고, 우리는 남자의 권리도 여자의 권리도 가질 수 없다. 인류는 대부분 소 수의 안락한 삶을 위해 산업적 억압에 시달린다. (헬렌 켈러 Helen Keller, 영국의 여성 참정권론자에게 To an English Woman Suffragist ) 《맨체스터 어드버타이저 Manchester Advertiser》)
- 19세기 철학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은 소유는 도둑질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소유'를 그 의미도 제시하지 않은 채 다짜고짜 '도둑질' 이라고 규정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프루동에게는 소유 자체가 역설이었다.
프루동은 애초에 소유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잘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우리는 소유가 무엇인지 알거나, 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셔츠와 책을 소유한다. 이 말은 내게 내 셔츠와 책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셔츠와 책을 파괴할 수도, 팔 수도, 여기서 저기로 옮길 수도 있다. 나 외에 아무도 내 셔츠와 책을 통제할 법적 권리가 없다. 누군가가 내 셔츠와 책을 파괴하거나 파는 식으로 나와 같은 권리를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는 내게서 셔츠와 책, 권리를 훔친 것이다.
셔츠와 책에 대한 내 권리는 어디서 왔는가? 남들에게서 그 물건을 샀기 때문이다. 즉 내가 가진 돈을 다른 물건과 교환했기 때문이다. 내게 그 물건을 판 사람들의 권리는 어디서 왔는가? 그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샀고, 그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샀고...... 이런 과정은 계속 소급할 수 있다. 그러나 프루동은 애초에 소유가 어떻게 생겨났을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도대체 소유권이 왜 존재하는가? 세상이 소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소유된 상 태로 넘어갔는가? 인류의 머나먼 조상이 단세포생물이거나 물고기거 나 호모에렉투스일 때, 세상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 금은 왜 세상이 누군가의 소유가 됐는가? 프루동은 이 질문에 여러 곳에서 누군가가 세상의 일부를 자기 것 이라며 권리를 주장' 해왔다고 답했다. 프루동이 볼 때, 그런 권리 주장은 자연적 정당성이 결여됐다. 소유되지 않은 세계를 보면, 내 힘으로 그 일부를 차지해서 남들에게 내 권리를 인정하라고 주장할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 대체 무슨 권리로 세계의 특정 부분에서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가? 그 권리는 어디서 오는가? 프루동은 그런 권리 는 없으며, 그것들이 '내 것'이므로 남들이 세계의 자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들에게서 세계의 일부를 훔치 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소유는 도둑질이다. 소유권은 어떤 것 에 대한 사람들의 사용권을 보호한다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이 세계 의 자원을 공유할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의 사용권을 금지하는 것이다.  사실 사적 소유의 기원은 대개 이보다 훨씬 부당하다. 현존하는 소유를 그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많은 것이 정복에서 획득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소유 자체가 훔친 데서 온 것인 상황에서 소유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긴 어렵다. 텍사스는 멕시코에게서,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서 훔친 것이다. 영국에서 공유지는 인 클로저를 통해 강탈 · 사유화됐다. 이 가운데 어느 경우에도 힘이 만들어낸 권리를 제외하곤 '권리'는 없었다. 현재 소유한 것에 대해 자 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재산권이 조금이라도 침해당한 사실을 알면 노발대발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전체 복지는 상당한 부를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재분배할 때 최적 극대화에 이른다. 일론 머스크 Elon Musk 의 은행 계좌에서 1만 달러를 빼내 미얀마에 사는 농부의 계좌에 넣으면 머스 크는 그 돈이 없어진 걸 알아차리지도 못하겠지만, 농부의 삶은 완전 히 달라질 것이다. 부를 재분배하는 데 실패하면 심각한 경제적 비효율이 초래된다. 재분배의 실패는 부의 사용을 최적화하지 못함으로써 막대한 잠재적 효용을 파괴한다. 이와 같은 효용의 낭비가 소유권 개념에 따라 정당화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재분배의 결과를 들어 재분배에 반대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 내가 본 것을 남들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 비전이다. (윌리엄 모리스,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
- "너는 여전히 그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가 네가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니고 몬토야, 프린세스 브라이드 The Princess Bride)
- 지금까지 내가 용어를 다룬 방식이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분명히 정의 하지 않은 것은 기본적인 데서부터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는 것을 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나름대로 생각한 정의가 없진 않 다. 다음은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내린 정의다. 물론 이와 다른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 사회주의 
부의 불평등과 이윤을 위한 사적 소유에 반대하는 평등주의적 정치 전통, 마르크스주의, 무정부주의, 상대적으로 덜 급진적인 '페이비언' 사회주의 등 다양한 사회주의 철학 이 있다. 그중에는 중앙집권 국가를 지지하는 것도 있고, 국가 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도 있다. 혁명적인 것도 있고 개혁적인 것도 있다. 시장, 돈, 부분적인 사적 소유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도 있고,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고 보는 것도 있다. 그러나 모두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와 경제에 대한 급진적 비전 이 있으며, 상품과 서비스 생산의 통제권을 부유한 소유자가 아니라 보통 노동자가 쥘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기성 경제 권력의 급격한 변화를 열망하지 않는 자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니 막연하게 '평등'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론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다.
* 민주사회주의 
인민이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것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노선, 비선출직 중앙 계획가들이 인민 대신 결정하는 사회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민주'라는 수식어를 사용한다. 민 주사회주의자는 인민이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결정해야 한다 는 강한 믿음이 있다.
*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을 바탕으로 하는 사 회적·경제적 사상. 마르크스주의도 사회주의만큼 많은 갈래 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광범위한 평등주의적 비전에 동의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자와 다를 바 없으나, 계급투쟁과 유물론적 역사관 등 마르크스가 고안한 분석 도구를 사용한다.
* 자본주의 
대다수 사람이 임금을 위해 일하고, 소수가 국가의 경제적 자원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경제체제. 자본주의와 '시 장경제'는 같은 게 아니다. 시장경제는 수천 년간 존재해왔지만, 자본주의가 출현한 지는 몇백 년 되지 않는다. 계급 차이, 임금, 이윤은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이다. 모든 공장을 집단이 소유하고 부유한 부당이득자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경제 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없다.
* 민주주의 
인민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상. 민주주의는 과두정의 우두머리나 귀족이 아니라 인민이 정치권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사회주의자는 민주주의가 인민이 자신의 대표를 뽑을 수 있다는 것 이상을 뜻한다고 본다. 인민이 직장 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는 뜻이라고 본다. 많은 보수주의자는 '다수의 독재' (그들은 이 말을 일반적으로 '빈자가 부자의 지시를 받는 데 질렸음'이라는 뜻으
로 이해한다)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불신한다. 자유주의자 가운데는 노동하는 보통 사람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 지 못해 권력을 책임 있게 행사할 줄 모른다며 민주주의를 불 신하는 자들이 있다.
* 사회민주주의 
많은 논란이 있는 용어. 사회민주주의자 중에는 정부가 노동계급 구성원에게 실질적인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면, 소수의 부유한 소유자와 다수의 가난한 노동자들이라는 자 본주의의 기본 구조를 유지하면서 사회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정의에서는 국가가 국민보건 계획과 무료 보육을 제공하면 누가 공장을 소유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버니 샌더스 같은 다른 사회민주주의자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식의 이해를 거부하며 사회민 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를 비슷한 정치사상이라고 본다. 그 들은 정치사상에 '민주주의'나 '민주'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한, 소수 부자가 거대한 권력을 쥐지 못하게 할 것을 요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헬렌 켈러, 마틴 루서 킹 Martin Luther King 등 역사상 위대한 지성 가운데 급진적 사회주의자가 적지 않다. 이들은 모두 훨씬 더 평등한 세상, 광범위한 착취와 약탈적 행동을 초래하는 이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꿈꿨다. 더욱 이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생긴 때는 19세기 초지만, 그전부터 수많은 사상가가 더 공정한 노선에 따라 사회를 재구성하고자 시도했다. | 미국의 건국 선조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고 단연코 가장 흥미로운 인물인 토머스 페인을 보자. 오늘날 페인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그가 쓴 소책자 《상식 Common Sense 》은 많은 인기를 끌었고 미국 혁명의 지적 토대를 제공했다. 자유사상가이자 인본주의자 페인은 기독교 의 교리와 성경의 정당성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결국 많은 동 료와 소원한 사이가 됐다. 그는 부의 재분배를 주장했다. 《토지 정의 Agrarian Justice》는 강력한 사회복지 정책과 부자 과세를 주장한 초기 저 작 가운데 하나로, 페인은 이 책에서 부가 개인이 생산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산된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을 사회에서 분리한 다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섬이나 대륙을 주면, 그에게는 동산권이 있을 수 없다. 그는 부자가 될 수 없다.... 한 사람이 자기 손으로 생산한 이상으로 축적한 모든 것은 그가 사 회에서 살아가는 데서 온 것이다. 정의의 원칙으로 보나 감사의 원 칙으로 보나 문명의 원칙으로 보나, 그가 축적한 일부는 모든 것을 만든 사회에서 온 것이다.
- (소외된 노동자는) 자신을 긍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며,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에너지를 마음껏 발휘하는 게 아 니라 신체를 쇠약하게 만들고 정신을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노동 자는 일에서 벗어나야 자신과 함께라고 느끼며, 일할 때는 자신을 떠나 있다고 느낀다. 그는 노동하지 않을 때는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노동할 때는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의 노동은 자 발적인 게 아니라 강요된 것, 즉 강제 노동이다. 그 노동은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노동 이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신체나 그 밖의 강제가 없어지자마자 노동이 페스트처럼 기피된다. 는 사실이야말로 그에게 노동이 낯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진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서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과거 부터 주어진 상황에서 역사를 만든다. 모든 앞선 세대의 전통은 악 몽처럼 산 자의 머리를 짓누른다. 
이 문장은 몇 시간이고 곱씹어볼 위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과거는 우리의 행위를 어떻게 제약하는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의 역사를 만들 힘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 종교적 고통은 현실적 고통의 표현이자 현실적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압받는 자의 한숨, 잔인한 세상 속의 심장, 비인간 적인 조건 속의 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환각적 행복인 종교의 폐지는 곧 현실적 행복에 대한 요구다. 사람에게 자기 조건에 대한 환각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각이 필요한 조건을 제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비판은 종교라는 후광을 만드는 저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다. 
이 말은 종교를 마약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다. 종교가 절실한 처지 에 놓인 사람에게 강력하고도 중요한 무엇을 어떤 식으로 제공하는 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다. 마르크스가 문제라고 보는 건 종교가 아니라 종교가 필요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마르크스의 저술은 일상적 현상을 새로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독창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 개혁가는 정치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개혁가는 잠시 뭔가를 보여줄 순 있지만 결국 빠른 속도로 추락한다. 정치는 식료품 가게나 약국만큼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훈련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 정치인은 공이 울릴 때마다 싸우러 일어서는데 개혁가는 1라운드나 2라운드에서 쓰러지고 마는 이유를 이제 알겠는가? 정치인은 항상 훈련하고 경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상세히 아는 반면, 개혁가는 아무런 훈련도 하지 않고 싸우러 가기 때문이다. (윌리엄 리어던 William L. Riordon, 《태머니홀의 플런킷 Plunkitt of Tammany Hall 》)
- 당신이 이야기하는 대중이란 게 발밑에서 짓이겨지는 진흙, 따뜻함을 누릴 자격이 있는 자를 위해 태워질 연료 외에 도대체 무엇인가?... 자기 생각도, 자기 꿈도, 자기 의지도 없이 그저 먹고 자고 남들이 그들의 곰팡이 슨 두뇌 속에 쑤셔 넣은 말이나 지껄여대는 보잘것없고 왜소하고 무력한 영혼 외에 무엇인가? 내가 아는 한, 모두를 위한 정의만큼 나쁜 불의는 없다. 사람은 원래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나는 왜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고 싶어 하 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나는 저 사람들을 대부분 몹시 싫어한다. (아인 랜드, 우리는 살아 있다 We the Living X 초판))
- 현대 정치 이론이 추구하는 평등주의적 이상은 인간을 구별하는 차이를 경시한다. 어떤 사람이 사회생활의 어떤 측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 다는 말은 입 밖에 내선 안 될 말이 됐다... 이전에 바람직한 의미로 쓰이 던 구별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거의 늘 경멸적 의미로 쓰인다. (찰스 머레이 · 리처드 헤른스타인 Richard J. Herrnstein, 《종형 곡선 The Bell Curve 》_
- “아무도 여러분이 꿈을 실현하는 것을 가로막을 만큼 여러분에게 신경 쓰 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에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는 자유국가에서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이 본인에 게 있다는 뜻입니다.” (벤 샤피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연설)
- 정치학자 코리 로빈은 《보수주의자들은 왜? 에서 보수주의는 권력을 잃을 위험에 직면했을 때 나타 나는 반응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에 다음과 같은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이 세계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운명에 맞선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항의하고, 편지와 탄원서를 쓰고, 운동에 가담 하고, 이런저런 것을 요구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아주 작고, 별개일 수 있으나, 그 목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우월한 자의 마음 에 권력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 앨버트 하시면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보수주의자의 주된 논리로 도착, 쓸모없음, 위 협 가능성이라는 세 범주를 제시했다. 우파의 거의 모든 논변은 이 범주 가운데 하나 혹은 둘 이상에 의거한다. X를 해선 안 된다. 자연 적인 도덕 질서를 거스르는 도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Y를 해선 안 된다. 불가능한 것을 해결하려고 시간을 낭비하는 쓸모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Z를 해선 안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제도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시먼의 세 범주는 거의 모든 보수적 주장의 기본적인 논리적 틀을 잘 보여준다.
- 이 범주는 왜 보수주의가 대체로 매우 제한적인 철학인지도 알려 준다. 사회공학적 시도는 문제를 다소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으므 로 주의하고 조심하라는 조언은 분명 유용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보수주의는 항상 우리에게 지금의 세상을 그냥 받아들이 라고 권할 뿐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마거릿 대처 Margaret Thatcher 의 유 명한 말처럼 “아무런 대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 다면 보수주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하는 절망과 비관의 철학이 되고 만다. 노예제 시대라면 보수주의는 인간에 대한 소유권은 자연 질서고, 그에 맞서 싸우는 건 헛된 일이며 문명에 위협이 된다고 말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사회 계급, 인종적 ·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 군사화된 국경, 전쟁 등의 문제에 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진보를 희망하는 한, 우 리는 이런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우파 쪽에서는 왜 나쁜 일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 왜 우파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모두 사실을 감당 못 하고 불평하며 징징대는 눈송이인지 하는 이야기만 한다. 나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 좌파는 화를 잘 내는 편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좌파가 심각한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라크 전쟁으로 50만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면 눈앞에서 자식의 죽음을 지켜본 이라크 어머니 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토머스 소웰Thomas Sowell은 좌파는 스스로 돕 기를 거절하는 사람을 도울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한다며 조 롱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의무가 있다. 그 의무는 즐겁지 않고 많은 점에서 공정하지도 않다. 그러나 더 나은 인간이라면 짊어져야 하는 의무다. 보수주의적 사고의 적의와 비생산성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 자유주의의 유해한 특징은 무엇인가? 좌파주의자가 정치에서 제 거하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본질적인 특징 가운데 몇 가지만 살 펴보자.
* 힘 있는 자와의 맞대결 회피 골드만삭스 없는 세상을 건설하려 하기보다 돈을 받고 골드만삭스에 가서 강연한다면 당신은 잘 못된 편에 서 있는 것이다. 민주적 관리는 월가, 제약 회사,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같은 억압적인 정부에 충성해왔다. 밸도 없냐, 배짱 좀 길러라!!
* 사회운동 구축의 결여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자신이 세운 강력한 풀뿌리 조직인 미국을위한조직OFA을 해체했다. 그 결과 그에게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자신을 지지해줄 사회운동 세력이 없었고, 이는 그가 많은 정치권력을 거머쥐지 못한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자유주의자는 여전히 사람들 을 어떻게 조직할지 생각하지 않는다(옥스는 “기부금은 모두 보내 주겠지만 집 밖으로 나가 너희와 행동을 함께하진 않겠다”고 말하는 자유주의자에 대해 노래했다). 이는 자유주의자들이 보수적 권력 에 맞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 노동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해오는 데도 한몫했다.
* 초당파성에 대한 믿음 
정치는 경우에 따라 상대방과 타협해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코리 부커 같은 정치가도 《단합: 공통점 을 찾고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에 관하여 United: Thoughts on Finding Common Ground and Advancing the Common Go
그러나 초당파성은 본질적으로 좋은 게 아니다. 이라크 전쟁 은 초당파적인 것이었다. 복지 개혁, 대량 감금, 애국자법 Patriot Act 도 초당파적인 것이었다. 빌 클린턴은 공화당의 입장을 채택함으로써 여러 차례 공화당과 정치적 합의를 이뤘다. 원칙이 있는 사람은 합의에 이르는 것보다 권력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속성의 정치 
자유주의는 어떤 후보가 권력을 갖고 실제로 무엇을 할지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심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south Bend 시장 피트 부티지지 Pete Butigity 는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자신이 왜 최고의 후보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 나라에 중도 후보는 있지만, 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젊은 후보는 있지만, 행정가는 거의 없습니다. 행정가는 있지 만, 경험이 많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속성의 조합이 어떤 후보를 원하십니까? “
속성의 조합은 완벽한 표현이다. 이는 실질적이 아니라 상징 적인 정치, 정책이 아니라 인물에 대해 생각하는 정치를 보여 준다. (실제로 부티지지에 대한 기사는 그가 시장으로서 한 일보다 어떤 양말을 신는다거나 어떤 책을 읽는다는 따위에만 관심을 보인 다.
* 역사 호도하기 
미국은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우리가 사는 땅 은 원주민에게서 빼앗았고, 그들은 조직적으로 제거됐다. 하지 만 '자유주의적 역사'는 미국인을 가슴 벅차게 만들고 사기를 북돋우는 이야기를 원한다. 미국을 문제와 결함이 있지만 계 속 좋아지는 나라로 서술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하버드대 학교 사학자 질 레포어Jill Lepore 가 쓴 《진실 These Truths》은 미국의 역사를 민주적 사상의 역사로 서술하면서 노동운동과 원주민 의 역사는 거의 배제하고 흑인의 역사에 지면을 약간 할애할 뿐이다. 그게 아니면 뮤지컬 〈해밀턴 Hamilton)을 보라. 이 뮤지 컬에서는 건국의 아버지 역을 유색인종이 맡고 있지만 노예제 를 다루지 않는다. 관객은 불편한 진실과 씨름해야 하는 고역 을 피하는 동시에, 깨어 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미국 을 사랑할 수 있다.
* 우파의 전제 사용 
때때로 자유주의자는 “우리야말로 진짜 애국자다”, “우리야말로 건국 선조가 세운 원칙을 진정으로 실현하 고 있다” 같은 말을 한다. 반면에 좌파주의자는 말한다. “애국 주의는 과대 포장된 것이다. 건국 선조 중 다수는 노예를 때리 고 강간했다. 그러니 건국 선조의 원칙은 좋은 게 아니다. 그 들은 어쩌다 보니 그런 원칙을 믿게 된 것이다. 흔히 자유주 의자는 좌파적으로 보이는 주장을 할 때도 우파의 전제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공화당이 거액의 법인세 감면안을 통과시킬 때, 민주당은 자신들이야말로 중산층에 대한 감세를 지지하는 진정한 당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감세야말로 누구나 추구해야 할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추인한 셈이다. “나는 여러분의 세금을 깎아주려 하는데 저들이 여러분의 세금을 올리고 싶어 한다”는 공화당원의 말에 “아니, 여러분의 세금을 올리고 싶어 하는 것은 저들이고 나는 여러분의 세금을 깎아주기를 원한다”고 답할 경우, 둘은 암묵적으로 같은 원칙을 채택하는 것이다. 즉 정치란 누가 세금을 가장 많이 깎아줄 수 있느냐를 둘러싼 경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채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