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붓다와 아들러의 대화

dalai 2022. 7. 23. 12:46

- 아들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약함 특히 죽음과 병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가 되려고 결심했고, 처음에는 심리학자가 아닌 의사가 되었다. 반복하자면 자신의 약함에 대한 괴로운 체험이 아들러의 인생관과 학설 의 출발점이 되었다. “무력하다고 하는 감각, 즉 열등감은 개인심리학의 근본적인 개념5이라고도 한다. 자신의 약함에 대항해 보완하려는 힘을 얻는 것을 '보상'이라고 부르고, 아들러 자신은 의사, 그중 안과의사가 됨으로써 신체의 약함, 시력의 약함을 보상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후에 서술하겠지만 ‘열등감, 콤플렉스', '보상' 등 일 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아들러 심리학의 개념은 이런 유아기의 절실한 체험으로부터 왔다.
- 인간은 자신이 약하고 무력하다는 마이너스 감각을 견디지 못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문제를 극복해 플러스 감각을 가지려는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들러는 “사람은 누구나 우월성을 목표로 한다.”8 고 말하고, 초기에는 힘을 향한 의지wille zur Macht, will to power(권력을 향한 의지라고도 번역됨)’, ‘우월성을 향한 의지will to superiority 또는 ‘우월성을 향한 노력striving for superiority)'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우리의 노력은 모두 안심감, 즉 인생의 온갖 곤란을 극복하고 환경 전체와 연결되어 마침내 안전하고 의기양양하게 상승시켜 왔다는 느낌이 달성된 상태로 향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 아들러는 처음엔 서로 생각이 비슷하다고 여겨 프로이트와 함께 일했 지만, 곧 주제와 강조하는 바가 다른 것이 확실해지면서 1911년에 결별 하고, 1912년경에는 ‘개인심리학 Individual psychology'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학 파를 형성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아들러의 이름 짓는 솜씨는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데, 개인심리학'이라고 하면 뭐야, 개인밖에 생각하지 않는 심리학인가? 라는 인상을 주기 십상인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인디비주얼individual'이라 는 말은 '사회와 분리된 개인'과는 반대의 의미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불가분한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와 개인은 사회, 공동체, 다른 인간 과 불가분의 존재'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나아가 후기에는 개인은
사회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 자연 전체, 우주와 불가분이라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오히려 '자아초월심리학'에 매우 근접해 있다.
- 아들러는 ‘개인 Individual'이라는 말을 그런 의미로 사용해 자신의 심리학에 ‘개인심리학'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깊은 의미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단어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
주의 깊게 설명하지 않으면 진짜 의미를 알 수 없는 개념이므로 외부 사람에게는 '뭐야, 핵심은 개인밖에 생각하지 않는 건가.' 라는 인상으로 파악되어 읽지 않고 비판받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특히 한자어 ‘개인個人'에는 어원적으로도 영어처럼 불가분이라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더 오해받는 부분이 있다.
‘개인심리학도 앞서 서술한 '힘을 향한 의지’나 ‘우월성을 향한 의지', 열등감의 경우와 같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부적절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는 썩 좋은 이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용어들은 ‘요컨대 인간이란 권력의지밖에 가지지 않은 에고이스트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라거나 ‘요컨대 열등감을 가진 인간이 타인 과 경쟁해 남을 밀어냄으로써 우월한 입장에 서고자 한다는 것을 인정하 는 것인가? 인간, 개인이란 어차피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인가?'라는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이는 마음이 병든 사람의 상태이고 앞에서 서술 했듯이 심리적으로 건강한 인간에 대해 아들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완전 반대였던 것이다.
- 거듭 말하지만, ‘공동체감각' 개념이야말로 아들러 심리학과 불교를 통합적 - 상보적으로 파악하는 결정적인, 핵심개념이다. '공동체감각'은 쉬운 말로 ‘유대감'이라고 말해도 좋고, ‘모든 것은 연緣= 이어짐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에서 '연기' 개념과 일치한다. 특히 후기 아들러에서 공동체감각은 '우주의식'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에 깊이와 폭을 보이고 있으므로 ‘우주와 자기와의 일체성에 눈뜨기’라는 의미에서 '연기의 이법理法을 깨달음, 공, 일여를 깨달음에도 가까워지고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아들러의 말이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연대감이나 공동체감각은 어린이의 마음속에 제대로 뿌리내리지만 그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정신생활이 심하게 병들어 퇴화했을 때뿐 이다. 그것은 뉘앙스가 변하거나 제한받거나 확대되면서도 일생 지속되어 기회가 많아지면 가족 구성원뿐만 아니라 일족이나 민족, 전 인류에게까지 넓어지기도 한다. 나아가 그런 한계를 넘어 동식물이나 다른 무생물에게까지, 급기야 저 멀리 우주에까지 넓어지는 경우도 있다.
- 아들러는 병원을 개업했을 즈음 프로이트의 강연을 들으러 다녔다. 하지만 강연 내용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1900년에 출판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많은 의사들이 비난하자 프로이트를 옹호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이 일과 자신의 환자인 의사 슈 테켈Wilhen Stekl의 추천을 계기로 1902년 매주 1회 열리는 심리학에 관한 토론회 초대장을 아들러에게 보냈다. 아들러도 초대에 응해 토론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즉, 시작부터 아들러는 '초대받은 손님'이었고, 자신의 의 지로 입문한 제자가 아니었다. 훗날 심층심리학의 거장이 된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1월 6일 목요일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 토론회는 수요일이 정례가 되어 프로이트는 매 회 마지막에 자신이 논의의 결말을 짓고 점점 교조처럼 되어 갔다. 그와 달리 아들러는 처음 부터 독자적인 생각과 스타일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프로이트를 추종하 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토론회에 참가해 활발한 논의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학설을 알고 있었고, 초기단계에는 자신의 생각과 매우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프로이트에게 토론회 초대장을 받게 되어 만남이 이뤄진 것 같은데, 막상 프로이트와 만나 보니 역시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깨닫고 멀어졌다는 것은 앞서 서술한 대로이 다. 아들러가 프로이트에게 공감했던 것은 “인간은 자신이 안고 있는 문 제가 무엇인지를 잘 자각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무의식이라면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문제점을 의식화할 수 있으면 해결의 방향을 마주할 수 있다.”라는 발상이었다.
프로이트에게 문제의 포인트는 성 심리였다. 하지만 아들러는 핸디캡이나 열등성을 짊어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주제 였다. 또한 프로이트는 의식과 무의식을 마음의 다른 영역으로 파악했지 만, 아들러는 어느 정도 알아차리고 있는지 점진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마음이 의식과 무의식 두 개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고방식은 채용하지 않았다.
- 용기 주기는 다른 말로 '격려'와 닮아 있다.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의 '용기 주기'는 '힘내라’라는 것이 아니다. 힘내라는 말은 남아 있는 힘이 있을 때라면 힘을 내보겠지만, 아무 힘도 남아 있지 않다면 이토록 마음 이 우울한데 아직도 힘내라고 말하는 건가? 싶어 오히려 힘이 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미 힘이 빠져버린 사람을 격려하면 안 된다. 남아 있는 힘이 없는 사람에 대한 'encourage'는 우선 '힘겹다', '그런 상황이라면 힘겨운 게 당연하지.'라고 공동체감각으로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평범하게 생각되는 격려와 아들러 심리학의 '용기 주기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 '칭찬'과 '용기 주기'는 다르다. 칭찬과 용기 주기의 차이점을 7개 항목으로 설명하겠다.
(1) 칭찬은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에 부응했을 경우에 이루어진다. “자네, 좋은 성적을 거두었군.”, “너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대단하네.” 하고 칭찬하지만 성적이 나쁘면 칭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반면 실패 했더라도 조건 없이 주는 것이 용기이다. 큰 실패를 한 사람에게도 용기 는 줄 수 있는 것이다. 
(2) 예를 들면 칭찬을 하는 사람은 성적에 관심이 있다. 그 관심사가 플러스의 결과를 내면 칭찬을 하는 것이다. 반면 용기 주기는 상대방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3) 칭찬하는 사람과 칭찬받는 사람은 어떤 종류의 상하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용기 주기는 평등한 관계이다. 받는 쪽의 관심으로 이루어 진다. 받는 쪽의 기분이 되어 말하고 접근하는 것이 용기 주기이다. 
(4) 칭찬은 “너는 착한 아이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행위를 한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용기 주기는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5) 칭찬은 칭찬받는 사람과 타인과의 경쟁으로 인식되고, 칭찬의 결 과는 당사자가 점점 경쟁을 의식하고 주위의 평가를 신경 쓰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반면 용기 주기는 당사자의 성장, 진보로 의식을 향하게 해 자립심과 책임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6) “착하다.” 라는 칭찬을 들은 상대방은 정작 ‘진심이 아니라 빈말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아무 조건 없이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용기 주기의 접근이라면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물 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용기 주기 쪽이 상대에게 통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7) 칭찬은 당시에는 기쁘고 만족스럽다. 하지만 반드시 지속되는 것 은 아니다. 한편 용기 주기는 자기긍정감을 높여줘 내일을 향한 의욕, 지속성이 생기는 경향이 강하다.
- 용기 주기의 말은 공동체감각을 유발한다. “착한 아이네.”가 아니라 “고마워, 네 덕분에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두 말의 차이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착한 아이네.”라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을 평 가해 칭찬하는 것이다. 반면 “네 덕분에 도움이 되었어.”라는 말은 상대 방의 능력을 인정하고, 공헌에 감사해 '너는 그렇게 해서 남들과 잘 지낼 수 있는, 공동체감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상대방의 공동체감각을 일으키는 말은 “해라”가 아니라 “이렇게 해줬 으면 좋겠어. 너의 도움이 필요해. 도와주길 바라.” 이다. 도와주길 바라.'는 상대방이 돕지 않을 권리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동료로서 “도와주길 바란다고 생각해.”라고 전한다.
하지 않은 일로 비난받지 않고, 자신이 한 행위로 “고마워, 도움이 되었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된다. “네가 큰 도움이 되었어. 고마워.”라고 듣는 것과 “어, 이거 했구나, 꽤 하잖아.”라고 듣는 것, 어느 쪽이 기쁘고 의욕이 생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