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음식 이야기
- 빵은 단백질 함량이많은데 비해 정작 쌀보다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적은 편이라 고기와 우유 등을 함께 섭취해 아미노산을 보충해 주어야 함. 지중해 해상 교역을 처음 시작했던 페니키아 지역(가나안과 레바논 지역)의 경우, 물이 있는 계곡에서 밀 농작은 가능했으나 나머지 땅은 사막성 기후의 광야라 풀이 부족해 목축업은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은 밀과 고기를 서로 바꾸기 위해 길을 만들어 먼 거리 거래를 시작. 이렇게 거래가 시작되어 상업과 교역이 발달하게 되었음.
- 고대 그리스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였던 스트라본에 의하면, 기원전 2000년경 가나안 사람들은 소금을 갖고 멀리 영국 남부 콘웰까지 가서 주석과 바꾸어 온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 청동. 이로써 유럽대력에 대량의 주석이 보급되면서 청동시 시대가 만개함. 소금의 위력은 참 대단하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러한 원거리 해상교역을 위해 중간중간에 보급품을 조달받을 수 있도록 식민도시를 건설. 이 식민도시들이 나중에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주요 도시로 성장. 카르타고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또 가나안에는 주변에서 소금을 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개발된 길이 해안길과 왕의 대로였다. 거래가 활발하고 시장이 발달한 곳에서는 경제가 더 빨리 발전. 역사적으로 소금이 생산되는 곳이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이유가 여기 있다. 고대 유럽에서 소금생산이 가능한 지중해 연안은 경제적 중심지의 역할을 했다. 당시 암염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이라서 소금생산이 가능한 곳은 지중해 해안 중에서도 일부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소금을 이용해 지중해 문명을 만든 최초의 사람들이 바로 가나안 사람들이었다. 그들 스스로는 가나안 사람이라고 했음에도 그리스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자주색 옷을 입고 다닌다 하여 그들을 페니키아, 곧 자주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라 불렀다. 이는 페티키아 사람들이 값비싼 자주색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 이 페니키아란 이름은 기원전 1200년 경 가나안 사람들이 해상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부터 불린 것으로 추정됨.
- 몽골군에게는 보급부대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어 기동력 있는 작전이 가능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장병 스스로 먹을 것을 안장 밑에 깔고 다니며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 그 안장 밑 음식이 바로 육포.
몽골군은 겨울에 소를 잡아 살코기 부분만을 두께 2-3센티, 폭 5-7센티로 찢은 뒤 줄에 매달아 바싹 말린다. 건조한 기후에서 고기의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무게와 부피가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포를 절구에 넣고 갈거나, 망치나 돌멩이로 두들겨 가루로 만들었다. 이를 보르츠라 불렀다. 몽골군은 보르츠를 깨끗이 씻은 소의 위나 오줌보 안에다 보관하여 이를 안장 밑에 깔고 다니며 물에 불려 먹었다.
- 육포 가루만 물에 타 먹어도 한끼 식사로 충분. 바짝 말라있던 육포가루가 배에서 서서히 부풀어 올라 공복을 채워주기 때문에 한 봉지의 육포만 있어도 일주일치 비상식량이 되었다.
특히 전쟁 중에 불을 피워 조리를 할 필요도 없으므로 부대가 적에게 쉽게 노출되지도 않음. 이게 바로 몽골군의 신출귀몰한 기습작전이 가능했던 이유.
보르츠는 간편하고 부피가 작고 가벼워 운반이 쉽고 2-3년 동안 실온에서 장기간 보관해도 변질되지 않음. 보르츠는 주로 쇠고기로 만들었지만 양고기, 말고기, 물고기 등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 후추무역 중심지, 베네치아
중세 사람들은 아시아와 교역할 때 바그다드를 지나 흑해의 남부해안을 경유해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경로를 이용. 향신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항구도시 베네치아로 운반됨. 15세기 말이 될때까지 400년 동안 거의 모든 무역은 베네치아에서 이루어짐.
6세기부터 베네치아는 인근 개펄에서 생산한 소금을 갖고 동방무역을 시작. 당시 소금 역시 귀하고 비쌌다. 이후 베네치아는 수세기 동안 동방무역으로 번영을 누림. 베네치아 상인들은 11세기 후반에 시작해 근 200년간 진행된 십자군 원정 덕분에 세계 향료시장에서 제왕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동방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 게다가 베네치아 공화국은 서유럽에서 온 십자군에게 수송선, 전함, 무기, 자금을 공급해서 바로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전 유럽의 무역업자들은 향신류 특히 후추를 사기 위해 베네치아로 몰려듬. 15세기 향료무역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독점으로 다른 나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며 베네치아 상인들이 챙긴 이윤은 어마어마했다.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만행
포르투갈로부터 말루쿠 제도를 접수한 네덜란드인은 정향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이 섬에서만 정향을 생산하도록 했다. 약간 매운듯 하면서 향기를 내는 정향은 늘 푸르고 키가 큰 나무로 분홍꽃이 피는데, 이 꽃이 정향의 원료. 꽃이 피기 바로 직전에 따서 햇볕이나 불을 지펴 말린다. 말린 꽃봉오리가 마치 못을 닮았다고 못의 모양을 본뜬 글자인 못 정자를 써서 정향이라고 하며, 영어리음 클로브 역시 클루(못)에서 유래. 정향은 고대부터 대표적 묘약의 하나였다. 게다가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우리가 쓰는 향료 가운데 부패방지와 살균력이 가장 뛰어남. 현재도 정향은 햄, 소스, 수프 등 서양요리에서 필수적 향신료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사람들은 이후에도 향신료 시장을 넓혀감. 그러나 대량공급은 정향의 가격을 떨어뜨림. 그러자 향신료에 다른 품종을 첨가하는 부정을 저지르기 시작. 그 결과 소비자의 불신을 초래하여 가격이 폭락함. 1760년 암스테르담에서는 향료가격을 인상할 욕심으로 산더미같은 향료재고를 불태워버리는 사건도 발생.
정향가격이 폭락하자 네덜란드인은 극히 일부지역을 제외한 모든 향료의 섬들에서 자라는 정향나무를 모두 뽑아버림. 그 뒤 향료를 불법적으로 재배하거나 거래하는 자들은 모조리 처형. 오랫동안 정향에 의존해 왔던 원주민은 이런 조치 때문에 수입이 줄어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1770년 모리셔스의 프랑스인 총독은 말라카로부터 어렵게 정향나무 씨앗을 훔쳐 동아프리카 농장에서 재배. 이후 광범위한 향료산지로부터 향료공급이 증가되자 향료독점권은 무너지고 가격이 하락하여 일반 서민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됨. 오늘날 동아프리카 탄자니아는 세계 정향의 90%를 공급함. 반면 정향나무 원산지였던 인도네시아는 오히려 정향의 최대 수입국이 됨.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가장 많은 정향을 소비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9세기 후반에 인도네시아인들은 담배와 정향을 혼합해 크레텍이라는 정향담배를 최초로 생산했는데, 현재 인도네이사에서는 7만명이 노동자가 정향담배 생산에 종사할 정도로 크레텍은 엄청난 인기를 끈다.
-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는 고추맛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 하지만 김치가 원래부터 매웠던 것은 아니다. 국물이 많은 절인 채소라는 의미의 침채가 김치의 어원인데, 여기에 고추를 넣어 담그게 된 것은 1700년경부터. 그 전까지는 마늘이나 산초, 생강, 파 등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로 사용하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발효시켜 먹었다.
1614년 편찬된 지봉유설에서는 일본에서 전래되었다 해서 고추를 왜개자(일본에서 들여온 겨자)라 불렀으며,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왜초라고 일컬었다. 당시엔 고추를 일본인이 조선인을 독살할 목적으로 가져온 독초로 취급했다고 함. 그래서 멀리해 오다 향신료 가격이 오르면서 점차 고추로 눈을 돌리게 됨. 18세기 들어 김치나 젓갈의 맛이 변하는 것을 방지하고 냄새를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비로소 매운맛의 재료로 자리잡음. 그 뒤 고추를 고초라 불렀는데, 이는 후추같이 매운 맛을 내는 식물이라 하여 붙인 이름. 이런 과정을 거쳐 고추의 매운맛이 서민들 밥상에 정착하게된 것은 불과 19세기 초반이었다. 한국 요리가 맵다는 고정관념도 실제로는 2백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 커피와 와인은 인류 역사를 이끈 쌍두마차다.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린 곳이라면 어디서나 포도농장을 볼 수 있었던 반면,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곳에서는 어디서나 커피향이 가득했다. 기독교에서는 와인을 하느님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멋진 선물로 여김. 심지어 와인은 예수이 피를 상징하기도 함.
반면 이슬람에서는 인간을 인사불성으로 만드는 와인을 혐오. 이성과 절제를 추구하는 이슬람들은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커피를 애호했음. 커피는 이슬람에게 종교나 다름 없었다. 이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호메트에게 전해준 음료였기 때문이다. 이슬람 사원에서만 마시던 커피는 11세기가 되자 일반대중에게가지 널리 퍼짐. 이렇게 커피가 음료로 발전한 곳이 아라비아 지역이다.
- 카페에서 제일 무난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은 단연 아메리카노다. 아메리카노는 1773년 발생한 보스턴 차사건과 관련이 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 시절 당시 미국인들은 차를 즐겨 마셨는데, 영국이 수입 차에 상당한 세금을 부과.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은 수입차 불매운동을 하며, 대체음료로 커피를 선택하게 됨.
하지만 이들은 홍차를 마시던 버릇 때문에 커피도 홍차와 비슷하게 만들어 마심. 진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묽게 만들면 색깔도 홍차와 비슷해지고 맛도 차와 가까워짐. 그렇게 해서 미국에서는 차 대신 연한 커피, 곧 아메리카노가 유행. 커피는 각성작용이 강해 사람을 일시적으로 활력있게 만든다. 특히 업무성과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특성 덕분에 미국에 어울리는 문화로 정착.
- 우리나라에는 감자가 1824년 만주에서 처음 전해졌다는 설과 1832년 영국 상선에 의해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우리의 가난한 시절을 함께 한 감자가 한국 땅에 발을 들인지는 불과 180년밖에 안 되었다.
감자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기근에서 구해낸 고마운 작물. 특히 강원도가 감자로 유명한데, 이는 1920년대초 강원도 회양군 난곡면에서 농업연구를 하던 독일인 매그린이 개발한 품종인 난곡1호-5호가 1930년대 강원도에서 대규모로 재배된 데에서 비롯됨.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강원도에는 화전민이 약 35만명 정도 살았는데 이는 도 인구의 약 25%였다. 강원도의 기후조건이 감자재배에 적합하고, 감자가 다른 작물에 비해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많았기 때문에 벼농사가 어려웠던 이 지역에서는 화전민을 중심으로 감자가 주식으로 재배되었음.
- 콩은 우리 한민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궁합작물로 오랫동안 한반도에 부족했던 단백질과 지방을 책임져 왔다. 오늘날 농학에서는 코의 한 종류인 대두의 원산지를 한반도와 만주남부로 보고 있으며, 약 5천년 전에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함. 고조선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밭농사를 지었는데, 북한의 회령 오동 고조선 유적지에서는 기원전 1300년경의 청동기 유물과 함께 콩, 팥, 기장이 나왔다. 실제로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임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조사가 있었다. 1920년대 미국은 세계 식량종자 확보를 위해 세계각지의 야생작물 채취에 나섬. 그들은 한반도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전 세계 야생콩 종자의 절반이 넘는 무려 3379종의 야생콩을 채취. 식물의 원산지는 변이종의 다양성을 기준으로 추정하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콩의 변이종이 발견된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야생콩이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어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임을 실증적으로 증명했다.
- 콩 유전자로 콩 종자 패권을 취한 미국
우리나라와 중국은 60년대만 해도 세계 콩 생산국 1,2위를 다투었지만 지금은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콩 생산국 세계 1,2,3위를 차지하고 우리나라와 중국은 대표적 콩수입국으로 전락.
현재 미국에서 생산하는 대두의 90%는 아시아에서 채집한 종자 35가지를 개량한 것이며, 이중 6가지 품종은 한반도에서 채집한 것. 미국은 1901년부터 1976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5496종의 재래종콩을 수집해갔으며 이 가운데 3200여종의 콩을 일리노이 대학에 보존. 이와 별도로 미국 농무부는 47년가지 1만개의 콩에 대한 유전자형을 우리나라에서 수집해갔는데,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수집한 콩 종자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수집한 콩이 74%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
강낭콩은 콩과 작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미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나머지 콩과식물은 아시아와 유럽이 원산지. 이 가운데 비둘기콩은 인도, 녹두는 인도중부, 렌즈콩과 완두콩, 향완두콩, 병아리콩은 남유럽과 서아시아, 캅사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프로폴리스는 신비의 영약이다. 프로폴리스는 꿀벌이 나무의 수액, 꽃의 암수술에서 채취한 화분과 벌 자신의 분비물을 이용하여 만든 천연의 항균, 항산화물질로 벌집의 무균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 프로폴리스는 그리스어로 앞을 뜻하는 프로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에서 유래. 세균이 번식하기 쉬운 높은 내부온도와 수만 마리의 벌들이 함께 모여사는 벌집이 외부오염으로부터 안전하게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프로폴리스의 뛰어난 항균능력 때문.
프로폴리스에는 항산화 작용과 노화방지, 면역력강화 작용을 하는 성분과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인체의 면역력을 키우고, 항바이러스, 항산화, 항균 기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로마병사들은 전쟁에 출정할 때 꼭 프로폴리스를 휴대하여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 코란에는 시체해부와 소독에 프로폴리스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이집트 미라는 프로폴리스로 도포되어 있었다.
- 19세기 나폴리를 중심으로 피자가 발전한데는 당시 이 지역을 통치했던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페르디난도 1세와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의 역할이 컸다. 왕비는 입맛이 소박해 서민음식인 피자를 좋아했다. 궁궐에서 왕비가 피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귀족이나 일반 백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아졌다. 집에 피자오븐을 직접 들여놓는 귀족들이 생겨남.
그 뒤 피자가 이탈리아 국민음식이 되는 데는 한 상징적 사건이 있었다. 1889년 나폴리를 방문한 사부아 왕가의 움베르토 왕과 마르게리타 왕비는 이탈리아 요리를 맛보고 싶어했다. 그래스 이들에게 바칠 특별한 피자가 준비되었다. 토마토아 모차렐라, 바질을 얹어 초록, 하양, 빨강으로 된 이탈리아국기를 상징하는 피자를 만들었다. 그 뒤 왕비의 이름을 따서 이 피자를 마르게리타 피자라 부름. 이탈리아 통일기운이 높아지던 시대의 흐름과도 절묘하게 맞았던 이 피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피자가 됨.
- 효모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끓는다는 뜻. 이는 발효중 이산화탄소가 생겨 거품이 생기는 것에서 비롯됨. 효모는 대부분 토양 속에 살지 않고 꽃의 꿀샘이나 과실표면과 같은 당 농도가 높은 곳에 살고 있으며 당을 발효시켜 에탄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산하는 능력을 갖춘 것이 많음. 이 성질 덕에 맥주제조나 빵의 발표에 사용됨. 효소의 어머니라는 뜻에서 어미 모자를 써서 효모라고 하며 이 효모속에 효소가 들어 있다.
이에 비해 효소는 생물체 내의 촉매를 말한다. 생명체가 아니므로 효소는 효모와 같은 증식을 하지 않는 반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촉매작용을 한다. 우리 인체를 포함한 생물체의 몸속에서 생리활성을 촉진하는 생명의 촉매.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 효소의 기본작용은 몸속 음식물을 소화시켜 영양분으로 만들어 신진대사를 돕는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효소를 갖는 곰팡이(효모)를 곡류에 번식시킨 것. 우리 선조들은 보리 썩힌 것을 누룩이라고 하고 곡식의 싹을 틔운 것을 맥아, 싹을 좀 길게 키운 것을 엿기름이라고 했다.
- 과일즙의 당분이 발효, 분해되어 술이 만들어진다. 1키로그램의 당이 발효가 되면 약 0.55리터의 에탄올고 300리터의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짐. 곧 과일이 갖고 있는 당의 절반 정도가 알콜로 변하는 것. 결국은 과일즙의 당 농도를 변화시키면, 원하는 알콜 도수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알콜도수가 높은 아마로네 와인이나 아이스와인은 제조방법과 시기가 다름.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특산물인 아마로네 와인은 포도를 수확후 선반 등에 펼쳐 놓고 이듬해 1-2월까지 건조시킨다. 이렇게 건포도처럼 수분이 빠져나간 포도는 당도가 농축되며 무게도 수확직후에서 약 50%가 줄어든다.
반면 아이스와인은 늦게까지 수확을 미루어 이듬해 2월경 포도알갱이가 반 건조 동결되어 당분이 농축된 상태의 포도를 따서 언 상태로 압착해 포도주를 만든다. 아이스와인이 비싼 이유는 보통 와인 한 병을 만드는 데는 1.5송이의 포도가 필요하다면 아이스와인의 경우 자연동결괸 10송이의 포도가 필요하기 때문. 아이스와인은 도수가 높지 않은 대신 맛이 달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