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인류와 만나다
- 원래 돌 속에 숨어 있는 구리 원자들을 산소 원자들로부터 떼어놓으려 면 섭씨 2,400도까지 온도를 높여야 한다. 그야말로 상상하기 힘든 도다. 그러나 구리 광석을 잘게 부수고 거기에 숯(탄소)을 고루 섞어 넣은 뒤 불을 붙이면 탄소 원자들이 산소 원자를 알아서 먼저 데리고 나가기 때문에 1,000도 근처에서 충분히 구리를 뽑아낼 수 있다. 이 원리는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낼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더욱이 철은 원래 여 러 면에서 구리에 비해 열등했는데 만약 탄소와 적정 비율로 섞이면 구 리보다 가벼우면서도 엄청나게 강해졌다. 여기서의 탄소는 엄밀히 따져 촉매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암석 속에 들어가 반짝이는 금속을 만들어내 는 '현자의 돌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 이온화 경향에 대해 알고 나면, 왜 구리가 철이나 알루미늄보다 인류에게 먼저 다가오게 되었는지 이해가 간다. 이온화 경향이 구리보다 앞서는 철이 나 알루미늄은 산소 등과 단단히 결합하여 암석의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알아보기도 힘들고 제련하기도 힘들다. 반면 상대적으로 더 안정한 구리는 지 표면에 존재하는 양은 적더라도 대신 순수한 형태로 존재할 확률도 높고, 산소와 결합하여 암석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비교적 손쉽게 암석에서 뽑아낼 수 있기에 인류의 손에 먼저 쥐어질 수 있었다.
- 만일 누가 절벽 위에 순수한 구리로 만든 막대를 꽂아놓고 거기에 매달려보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순수한 구리는 몹시 물러서 사람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동으로 만든 막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거기에 자신 있게 밧줄을 걸고 온갖 멋을 다 부리며 레펠(rappel, 등반 기술의 하나로, 급경사인 고지대에서 로프의 도움을 받아 저지대로 내려오는 것)을 시도해도 될지 모른다. 구리에 주석을 10% 안팎으로 섞은 청동은 순수한 구리에 비해 그 강도가 10배 이상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맹물에다 에탄올을 그 정도만 섞어 넣어도 사람들을 몰라보게 용감하게 또는 무모하게 만들 수 있으니, 청동이 구리보다 10배 이상 단단해진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닐 법도 하다.
청동은 공기 속의 수분, 이산화탄소 등과 반응하여 표면에 동록(銅線)또는 녹청(綠靑, verdigris, patina)이라는 청록색의 녹이 스는데 이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청동을 만드는 데는 주로 주석(tin, 원소기호 Sn)이 들어가며, 넓은 의미에서는 황동, 백동, 양은을 제외한 모든 구리 합금을 청동이라 부른다. 그런데 황동이나 백동, 양은 같은 구리 합금은 청동보다 강도가 약하며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황동(黃銅, brass)은 구리에 아연(zinc, 원소기호 Zn)을 합금한 것이고, 백동(白銅, cupro nickel)은 니켈(nickel, 원소기호 Ni)을, 양은(洋銀, nickel silver, German silver)은 아연과 니켈 2가지를 합금한 것이다.
- 언더독의 반란, 청동기의 몰락과 철기의 시작
사실 당시의 '철기' 기술은 주석이 부족해 청동기가 귀해지자 궁여지책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쓰던 청동기들을 모아 다시 녹여 재활용하는 방법을 택했으나, 청동기의 수요가 워낙 늘어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구리를 제련할 때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약간의 철광석을 넣는다. 철광석은 원료 중에 섞여 있는 모래와 결합 하여 아래로 가라앉아 슬래그(slag)라는 덩어리를 형성하기 때문에 찌꺼 기를 구리(또는 청동)로부터 쉽게 분리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슬래그에는 당연히 하얗게 반짝이는 철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여기 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철광석은 구리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녹기 때문에 제련하기도 어렵고, 제대로 된 합금을 만들려면 탄소의 함량을 1% 안팎으로 정확히 맞춰야 하므로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따라서 초기의 철기는 청 동기에 비해 품질이 떨어져 외면받았다. 하지만 점차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특히 해양 민족의 영향으로 급속히 발전했다.
- 많은 학자가 블레셋 족속과 가나안 족속을 바로 이 해양 민족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조상이 누구인지는 역사상 기록이 전혀 없지만 이들의 침략이 청동기 시대가 급격히 몰락한 주요 원인이라는 데는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은 자신들의 영업 비밀이자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첨단 기술, 곧 철기를 다루는 노하우를 철저히 비밀로 하였다. 사무엘상 13장 19절이 바로 그 내용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제정분리(祭政分離)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부족 단위의 지도 체제에서 막 벗어나 왕정으로 넘어간 직후라 국가로서 기틀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고 전반적 생활수준도 보잘것없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을 치르고 블레셋으 로부터 철기를 수입해 써야 했고 사후 관리마저 그들에게 의존해야 했 다. 즉,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예속된 나라였다. 당연히 일반 병사들은 제대로 무장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청동 제 무기는 철제 무기보다도 더 귀했기 때문에, 철기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이스라엘 병사들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나무를 깎아 만든 창이나 돌 도끼 정도였다고 보는 게 실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철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다윗은 나중에 왕이 된 뒤 철기 기술을 보유한 히타이트 사람을 참모로 둔다.
- 조선으로부터 첨단 자기의 소성 기술을 습득한 일본은 중국의 안료 기술을 사들여, 화려한 채색을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인 '아리타 자기를 탄생시킨다. 1647년 드디어 외국에 내다 팔 만한 수준의 자기 기술이 확보되었고, 이 무렵 동아시아의 정세는 다시 한번 일본에 미소를 짓는다. 새로 일어난 청나라가 세력을 넓혀감에 따라 도요지(陶窯址)들이 파괴되어 중국의 도자기는 씨가 말랐으며 조선 또한 이미 임진왜란으로 생산기반이 거덜 난 상태였다. 공급선이 끊긴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본의 아리타 자기를 신상품이라며 유럽에 소개했는데 이게 대히트를 쳤다. 마침내 중국을 접수한 청나라에서도 이번에는 역으로 아리타 자기를 모방한 짝퉁을 만들어낸다.
유럽풍 형태에 화려한 채색을 특징으로 하는 아리타 자기는 유럽 문화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자포니슴(Japonisme) 열풍이 불었다. 1855년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우키요에(浮世?, Ukiyo-e)라고 불리는 일본의 채색판화를 보고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이 영감을 얻은 데서 시작하여 그 뒤를 채색 자기가 받쳐준 것이다. 자포니슴의 영향을 받은 화가는 마네, 모네, 고흐, 고갱, 드가 등 미술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상파 화가를 비롯해 20세기 초반의 클림트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자기는 서구의 정신문화까지 장악할 정도로 명성을 얻어 유럽의 돈을 쓸어 담았다.
- 간혹 사막의 모래 속에서 유리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를 섬전암(閃電岩, fulgurite)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 그대로 모래에 벼락이 떨어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벼락이 땅을 때리면 최대 1억 볼트의 전압을 가진 전류가 흐르며 순간적으로 섭씨 1만 도 정도까지 온도가 치솟는다. 섬전암은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속이 빈 튜브 모양을 하고 있어 생긴 것도 번개를 닮았다. 그래서 번개화석이라고도 부르며, 큰 것은 길이가 수 미터에 이른다. 또 가끔은 운석이 사막의 모래에 떨어지며 그 충돌에 의한 열로 모래가 녹았다가 유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텍타이트(tektite)라고 부른다.
인류는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화산이 만들어준 자연유리인 흑요석을 깨뜨려 도구로 사용하였고, 고대 문명이 태동하면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모래를 가지고 유리구슬 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유리가 일상생활에 친숙한 소재로 본격 사용된 것은 로마제국에 들어와서였다. 로마제국 후반기에는 현재의 독일 지역이 유리가공의 중심지였는데, 이 동네 사투리로 투명하고 반짝거리는 물질을 'glesum'이라 하였고 이 말이 나중에 영어의 glass'가 되었다. 모래를 녹이려면 섭씨 약 1,700도의 열이 필요하다. 고대에 이렇게 높은 온도를 낼 수 있는 가마를 만드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사람들은 모래에 잿물이나 석회(石灰, lime) 등을 섞으면 훨씬 더 낮은 온도에서 녹 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로마인들은 무기질 비료이자 세제로 사용되는 탄산나트륨(natron, soda ash)을 넣어 유리의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오늘날의 유리만큼 깨끗하고 투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로마인들은 아쉬 운 대로 이것을 창문에 달았다. 이전까지는 바람이 불면 나무 덧문이나 커튼으로 바람을 막았는데 그러면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 서 이전에 'wind eye'라고 부르던 말이 변해 window'가 되었다.
- 흑색화약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원료는 염초(彌)로서 그 주성분은질산칼륨(KNO3)이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는 초석(石)이라는 광물에서 주로 얻었는데, 영어로는 saltpeter 또는 niter(nitre)이다. 초석은 고 대 기록에 nitron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등장하는 물질인데, 탄산나트 륨(Na,CO,)을 가리키는 natron과 이름이 비슷하여 자주 헷갈렸고, 많은 경우 이 두 단어는 특별한 구분 없이 혼용되었다. 사실상 근대 화학에서 원소의 개념이 새롭게 정의되고 정제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saltpeter 나 niter라는 단어는 질산염, 탄산염 등 꽤 넓은 범위의 광물질을 가리키 는 말로 사용되었다. 초석은 물에도 잘 녹고 원래는 폭발성도 없을뿐더러 일부러 숯불에 던져 넣지 않는 한 쉽게 불이 붙지도 않는다. 주로 세제와 비료로 사용되 는데, 오늘날에는 식육가공품(특히 샤르퀴트리, charcuterie'")의 발색제 및 치즈와 청주의 이상 발효를 억제하는 목적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초석을 어디서 채취하였는지 알고 나면 비료로서는 몰라도 세제나 식품첨가물로 사용했다는 것은 상당히 찜찜함을 느끼게 된다. 건조한 지하 저장고나 석굴 벽에 소금처럼 맺혀 있는 것을 긁어내기도 하지만, 박쥐가 많이 서식하는 동굴에 쌓인 박쥐구아노(bat guano) 속에 많이 들어 있기 때 문이다. 박쥐구아노는 박쥐의 사체와 배설물이 엉겨 붙은 것이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었다가 화석화된 것이다. 박쥐구아노를 물에 오래 담가둔 뒤 마치 염전에서 소금을 채취하듯 물을 증발시키면 초석이 얻어진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식물이 생장하기 위해서는 질소(N), 인(P), 칼륨(K)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 가운데 특히 칼륨은 자연에서 구하기가 어려운 물질이다. 초석은 칼륨과 질소 성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니 비료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물질인 것이다. 그런데 폭발성 없는 초석이 어떻게 화약의 주재료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초석의 화학식은 KNO, 인데, 여기에서 식물이 칼륨(K)과 질소(N)를 잘 흡수하려면 산소(O)가 눈치 빠르게 잘 떨어져 나와 자리를 비켜줘야 한 다. 화약 성분으로서 초석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즉 초석은 그 자체가 타는 것이 아니라 연료가 잘 타도록 산소를 많이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초석이 가열되면 일단 각각의 성분인 칼륨과 질소와 산소 원자들로 분해가 되는데, 이렇게 떨어져 나온 산소는 주변에 궁합이 더 잘 맞는 탄소(C)나 황(S) 등이 있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결합하 면서 갖고 있던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을 산화제'라고하며, 오늘날 로켓엔진을 만드는 데도 중요하게 사용된다.
- 일반인들이 다이너마이트와 TNT를 혼동하게 된 것은 유명한 만화영화 벅스머니 때문인 듯ㅎ다. 이 만화영화에서 폭탄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은 다이너마이트 모양으로 그려놓고 옆에는 정 작 빨간 글씨로 TNT라고 써놓았다. TNT는 액체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수시킨 다이너마이트와는 달리, 처음 합성될 때부터 고체 형태이다. 액체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웬만한 열이나 기계적 자극에도 끄떡없어 처음에는 TNT에 폭발성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고, 30년이 지난 뒤에야 폭약으로서 그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그 후 1902년, 독일군이 처음 TNT를 채워 넣은 포탄을 만든 것을 계기로 전 세계 해군 함포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오늘날 군용 이나 민간용으로나 가장 널리 쓰이는 폭약으로 자리 잡았다. TNT는 다른 폭 약들과 달리 산소와 반응하여 연소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온도로 가열되면 그 구성 원소인 기체들로 분해되면서 엄청난 열과 함께 부피가 갑자기 팽창한 다. 그래서 TNT는 산소가 없어도 발파가 되지만, 그럼에도 산소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다른 물질들과 폭발력을 비교하며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TNT 1그램이 1,000칼로리를 내는 데 비해 같은 무게의 흑색화약은 약 700칼로리, 다이너 마이트는 약 1,800칼로리, 자동차 엔진 속에서 폭발하는 휘발유와 산소의 혼 합 기체만 해도 2,500칼로리나 낸다. TNT의 명성에 비추어 생각하면 왠지 좀 초라해 보이는 성적표다. 그런데 여기에 산소가 있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 라진다. TNT가 폭발할 때 분해되어 나오는 기체의 60% 이상이 탄소와 일산화 탄소이다. 그런데 주변에 산소가 있으면 이들이 다시 연소하면서 2차 폭발을 일으킨다. 이렇게 나오는 에너지를 다 합치면 3,500칼로리로서 다른 것들을 가뿐히 압도한다. 그래서 흔히 TNT에 산소를 공급해줄 수 있는 질산암모늄 을 혼합해서 사용하는데, 이는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대표적 질소비료이다.
- 최근 MIT의 타산(Cem Tasan) 교수는 저명한 과학 저널 사이언스 지에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면도날은 닳아서 뭉툭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파여서 울퉁불퉁해진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면 도날의 끝부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완벽한 직선이 아니고 군데군 데 미세하게 옴폭 들어간 부분 및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이 존재하는 불균질(heterogeneous)한 양상을 띠고 있다. 털이 이 부분에 닿으면 마치 이가 빠지듯 파이면서 부스러져 나가는 것이 관찰되었다. 더구나 칼날을 단단하고 날카롭게 만들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불균질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다마스쿠스 칼은 십자군 전쟁 때 사라센(Saracen)군이 사용하여 유럽에서 원정 온 십자군을 두려움과 놀라움에 빠뜨렸다. 십자군 원정을 그린 영화들을 보면, 십자군 기사들의 칼은 투박하고 두꺼운 데 반해 사라센 병사들의 칼은 훨씬 얇고 날렵하게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그토록 두께와 크기가 확연히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다마스쿠스 칼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하고 단단했다. 그래서 손수건을 칼날 위에 떨어뜨리면 그대로 갈라진다는 둥, 바위를 내리쳐 두 동강을 내어도 칼날은 멀쩡하다는 등 숱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우수한 성능에 더해 철저히 비밀에 부 쳐진 제작 공법으로 인해, 이슬람 사람들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마법을 배워 칼을 만들게 되었다는 전설까지 떠돌았다. 결국 십자군 원정에 실패한 유럽 사람들은 다마스쿠스 칼의 비밀을 캐려고 수없이 첩자를 보냈으나 소용이 없었다. 비밀의 핵심은 원료인 우 츠강에 있었기 때문이다. 우츠강에만 들어 있는 미량의 불순물 성분들 덕택에 우수한 특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인데, 이 성분은 인도에서 산출 되는 철광석에만 적절한 비율로 들어 있는 것이었으니 다른 곳에서 나는 철광석으로는 아무리 해도 그것을 재현할 수 없었다. 우츠강은 워낙 공 급량이 한정되어 있었던 데다 15세기 이후에는 광산 고갈로 생산이 중단되었으므로 다마스쿠스 칼의 제조법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스테인리스강 제품도 엄밀히 따지면 녹이 슨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통제(control)하느냐이다. 발효와 부패는 똑같이 미생물이 작용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 부산물이 인간에게 유익한가 해로운가 하는 기준에 따라 익었다'와 '썩었다'로 갈린다. 마찬가지로 금속이 산소 또는 다른 기체와 결합해 산화되었을 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녹이 슬었다고 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면 산화물 또는 산화막이 형성되었다고 점잖게 표현한다. 우리가 김치나 장을 담글 때 부패를 억제하고 발효가 촉진되는 방향으로 모든 조건을 맞춰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속을 다룰 때에도 단단한 산화막이 만 들어지게 하여 녹이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게 된다. 철이 공기와 접촉하면 철 산화물(Fe2O)이 생기는데 이 물질은 철강 제품 표면에 단단히 붙어 있지 못하고 각질처럼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철 표면이 드러나 계속 녹이 진행된다. 녹을 열심히 사포로 문질러 닦아보았자 금세 다시 녹이 스는 이유다. 그래서 녹을 방지하려 면 페인트를 칠하거나 기름을 두껍게 발라 산소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반면에 스테인리스강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 그 안에 포함되 어 있는 크롬이 재빨리 산소와 반응해 얇은 크롬 산화막(CrO;)을 형성 한다. 이 물질은 무색투명하며 매우 치밀하고 단단해서 산소조차 더는 뚫고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그래서 안쪽에 있는 철 원자들은 산소를 구경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여 녹이 슬지 않고 보호된다. 혹시 표면이 긁 혀 상처가 나더라도 철 원자 4개마다 하나 꼴로 존재하는 크롬 원자들이 바로 산소와 결합해 보호막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눈치챌 수가 없다.
이 산화막의 역할은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식기가 우리의 밥상을 점령하는 데 있어 단순히 녹이 슬지 않도록 한다는 위생적인 측면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미각과 관련해서는 더 큰 역할을 했다. 놋수저나 은수저를 혀로 핥아보면 특유의 '쇠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 금속 표면에서는 전자들이 쉽게 떨어져 나올 수 있어 혀끝의 타액과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테인리스강 표면에서는 전자들이 산화막 속에 단단히 갇혀 있기 때문에 우리 혀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