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 뉴런은 근처 뉴런들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가지돌기를 통해 아날로그 신호를 발생시켜 세포체로 전달하고, 그 크기가 역치값을 넘으면 다시 펄스 형태의 신호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스파이크'다. 축 삭돌기를 따라 전송되는 스파이크는 시냅스를 통해 다음 신경세포에 아날로그 신호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 결국 뇌란 아날로그 신호 를 스파이크 형태의 디지털 신호로 바꾸고 다시 그것을 아날로그 신 호로 바꾸면서 '정신'이라는 놀라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뉴런들의 복 잡한 네트워크다. 따라서 뇌과학자란 '스파이크'로 대표되는 뉴런의 전기 활동이 어떻게 마음을 표상하고 정신을 만들어내는가를 탐구한다.
- 스파이크는 뇌의 작동 방식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이다. 우리 는 이 창문을 통해 전압 펄스의 생성과 전달 과정의 관점에서 뇌의 작용을 조망한다. 감각, 기억, 느낌, 의식은 모두 신경세포에서 만들 어진 전압 펄스가 작용한 결과이다. 이 책은 뇌 속 전압 펄스의 작용 을 '자발적 스파이크'로 설명한다. 뇌가 감각 정보를 부호화하는 방식 은 지금껏 두 가지 이론, 즉 스파이크의 개수로 표상하는 ‘개수 방식’ 과 스파이크의 타이밍으로 표상하는 '시간 방식'으로 설명되었다. 일 부 뇌 영역이 개수 방식과 시간 방식으로 작동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신경세포 집단의 연결 회로가 감각 입력과 무관하게 자 발적 스파이크를 항상 생성하고 있다. 저자 마그 험프리스의 핵심 이론은, 외부 자극에 의해 촉발된 스파이크보다 신경 집단에 의한 자발적 스파이크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이 작용에 뇌 에너지의 대부분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 저자는 자발적 스파이크가 하는 일이 바로 '예측' 이라고 주장한다. 외부 입력과 무관하게 항상 존재하는 자발적 스파이크들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뇌 속 신경연결망이 외부 자극에 따라 스파이크를 방출하여 자연환경을 지속적으로 부호화한 결과이다. 이렇게 만들어 진 자발적 스파이크는 우리가 생존해야 하는 환경의 예측 신호로 사 용된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들어오는 감각 입력은 자연에 대 한 예측값에 오류가 발생할 때 신호를 보정하는 역할만 한다. 우리가 세계를 즉시 지각하는 이유는 감각이 입력되기도 전에 자발적 스파 이크를 통해 세계에 대한 모형이 항상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결론은 자발적 스파이크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신경세포 집단이 생성하는 자발적 스파이크들이 끊임없이 예측 신호 스파이크를 방출한다. 우리는 항상 예측하고 있으므로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다. 감각 신호가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예측하고 있으므로 세상 을 즉각 알아차린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시냅스 실패, 암흑뉴런, 자발적 스파이크는 최근 들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뇌 작용의 새로운 측면들이다. 시냅스 실 패는, 학습한 내용에서 공통점을 범주화하는 인간 뇌의 일반화 능력과 관련된다. 스파이크를 생성하는 뉴런보다 침묵하는 암흑뉴런이 훨씬 많아서 뇌가 입출력의 균형을 유지하고 에너지 효율이 고도로 높아진 다는 저자의 설명은 신경 시스템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해준다.
신경세포 집단이 스파이크를 생성하고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이해하는 바탕에는 신경세포가 스스로 생성하는 스파이크가 있다. 쿠키 한 조각을 향해 손을 내미는 2.1초 동안 벌어지는 뇌의 작용은 스파이크가 만들어내는 기적같이 놀라운 세계이다. 이 책은 신경세포가 생성하는 스파이크에 올라타 질주하면서 감각 입력에서 운동 출력까지의 뇌 작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매우 드문 책이다.
- 모든 세포와 마찬가지로 뉴런은 막을 지녔다. 그 막은 마치 피부처럼 뉴런을 둘러싸고 뉴런의 내용물이 내부에 머물게 한다. 이 피부는 뉴런 내부에 있는 많은 이온과 외부에 있는 많은 이온을 갈라놓는다. 그런데 내부 이온들의 전하량과 외부 이온들 의 전하량이 다르기 때문에 뉴런은 미세한 전압(전문용어로 막전위 membrane potential)을 가지게 되고, 그 전압은 끊임없이 미세하게 오르내린다. 하지만 뉴런 본체의 전압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뉴런의 피부에서 구멍들이 연달아 빠르게 열리고 닫히는 연쇄 과정이 일어난다. 그러면 이온들이 그 구멍들로 몰려 들어오고 몰려 나가면서 전기 펄스가 생겨나는데, 그 펄스는 뉴런 본체에서 가장 먼 변방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있다. 그렇게 태어난 스파이크는 뉴런의 축삭돌기axon - 한 뉴런과 다른 뉴런을 연결하는 케이블 를 따라 괴성을 지르며 이동하고, 멀리 떨어진 목적지인 다른 뉴런에 도달한다(그림2-1).
구멍들이 열리고 닫히는 연쇄 과정은 항상 똑같다. 따라서 스파이 크는 모양과 크기가 항상 똑같다. 스파이크는 있거나, 아니면 없다.
- 우리의 시선이 쿠키에 꽂히면 망막은 쿠키와 그 주변에 관한 정보를 세분하여 서로 별개인 정보 통로channel 수십 개로 배분한다. 그 통로들은 쿠키에 관하여 제각각 다른 메시지를 쿠키의 둥근 모양, 초콜릿 덩어리의 갈색, 상자뚜껑의 각도 겉질로 운반한다. 또한 쿠키 조각들의 상대적 위치에 관한 메시지를 운반하는 통로도 있고, 그 조각들이 어느 방향에 있는 지에 관한 메시지를 운반하는 통로도 있다. 우리가 머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며 쿠키 상자를 주시하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빛에 반응하는 신경절세포들이 가장 많이 흥분한다 (우리의 머리가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빛이 우리의 망막을 가로지른다). 이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신경절세포 축삭돌기들을 따라 전송된다. 최소 100만개의 축삭돌기가 다발을 이뤄 굵고 하얀 밧줄을 형성하는데, 그 밧줄이 시신경이다.
- 스파이크 군단이 입력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스파이크 몇백 개 만 입력되면 새 스파이크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입력들은 수천 개의 입력선에 분산되어 있다. 바꿔 말해 가능한 입력의 최대수는 수천 개에 달한다. 더구나 모든 입력 중에서 흥분성 입력이 억제성 입력보다 최소 5배 많다. 수천 개의 입력 가운데 잉여 스파이크 2~3개만 폭주 고리 runaway loop - 스파이크가 일으킨 스파이크가 또 스파이크를 일으키는 일이 끝없이 계속되는 상황 를 형성하더라도 뇌는 고장 날 것이다. 뇌전증은 그런 고장의 한 예다. 뇌전증 발작이 일어나면 거대한 스파이크 물결이 겉질을 휩쓴다. 물결에 맞닥뜨린 모든 뉴런은 즉각 임계점에 도달하여 동시에 스파이크를 발생시 키고, 그렇게 다음번 물결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고장은 드물다. 왜냐하면 뇌는 골디락스 구역 안에 있기 때문이다. 즉 뇌는 너무 활동적이지도 않고 너무 고요하지도 않다. 뇌는 딱 적당한 정도로 활동한다. 그렇게 골디락스 구역 안에 머무르기 위하여 뇌는 흥분과 억제의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한다.
- 시각에 대해서는, 몇십 년의 연구를 통해 그런 고속도로 중 2개가 특히 자세히 밝혀졌다. 그것들은 무엇 고속도로 Highway What'와 '하 기 고속도로 Highway Do'다(그림 4-2).10 첫째 고속도로로 전송된 우리 의 스파이크는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건너가며 '무엇' 메시지의 창조에 기여할 것이다. 곡선, 윤곽선, 갈색, 흰색 등에 관한 메시지를 운반하는 스파이크들이 종합되어, 손이 닿을까 말까 한 책상 구석에 쿠키 상자가 있고 뚜껑이 비스듬히 열려 있으며 그 안에 생강과 배 와 초콜릿을 첨가한 쿠키가 딱 하나 남아 있음을 드러낼 것이다. 둘째 고속도로로 전송된 스파이크가 통과하는 영역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면 무엇을 알 필요가 있는지에 관한 메시지를 창조할 것이다. 그 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주위의 거리, 크기, 윤곽선과 곡선의 운동에 관한 메시지를 운반하는 스파이크들은 우리가 팔을 뻗으며, 손가락들을 적당히 벌려 멈춰 있는 쿠키를 집어드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함을 드러낼 것이다.
- 무엇 고속도로'와 '하기 고속도로의 넓은 구간들은 아주 많은 띠 모양의 겉질 구역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단일 뉴런 수준에서는 각 뉴런의 축삭돌기가 엄격한 논리를 따르는 듯하다. 그것들은 우리 가 V2 또는 V4라고 부르는 수억 개의 뉴런들 가운데 특정 구역에 있 는 특정 유형의 뉴런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우리는 V1을 지배하는 그 논리를 이제 막 밝혀내기 시작했다.26 “RNA 바코딩barcoding" 이라는 기발한 기술 덕분이다.
유일무이한 합성 RNA 가닥을 제작하여 V1에 있는 한 뉴런에 주 입하라. 그런 다음에 기다려라. 그 RNA 가닥은 뉴런의 축삭돌기를 따라 운반되어, 축삭돌기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갈 것이다. 그 가닥이 X 영역으로 가는지 확인하려면, 그 영역의 조직을 떼어내 유 전자 검사를 하라. 관건은 그 유일한 RNA 가닥이 검출되는지 여부 다. 검출된다면 대성공이다. 우리의 뉴런은 X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
- 이 접근법의 탁월한 장점은 시간과 에너지가 허용되는 한 얼마든지 많은 유일무이한 가닥을 수많은 뉴런에 주입한 다음 우리가 떼어낸 조직에서 그 가닥들 모두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연구하면, 단일 뉴런 수백 개의 정확한 연결들을 알 아낼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규모의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생쥐의 V1에서 수백 개의 뉴런을 RNA 바코딩 기술로 연구해보니, 실제로 엄격한 논리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므르식 플로걸의 연구 팀은 바코드가 붙은 RNA(유일무이한 합성 RNA)를 생쥐의 V1 뉴런들 에 주입한 다음, V1의 표적 영역으로 짐작되는 시각곁질 구역 여섯 곳에서 그 RNA를 검사했다. 그 결과, V1 뉴런들의 절반이 6개의 구 역 중 2~3개와 연결되었음이 드러났는데, 그 구역들은 무작위한 조합들이 아니었다. 각각의 뉴런은 자신의 표적 영역들의 조합을 마구 잡이로 선택하지 않는 듯했다. 대신에, 표적 영역 2개 또는 3개, 또는 4개로 만들 수 있는 16개의 조합 가운데 딱 4개 조합이 압도적으로 많이 선택되었다. 따라서 V1에 속한 뉴런의 절반은 인근 겉질 구역들 가운데 어떤 조합을 선택하여 신호를 보내는지에 따라 네 집단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의 발견을 위한 감질나는 단서일 뿐이 다. 우리는 겉질 뉴런들이 인근의 뉴런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 해서는 많이 알지만, 멀리 떨어진 뉴런들과의 연결에 대해서는 더 적 게 알고 있으며 건너편 뇌 반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 이처럼 겉질 횡단 스파이크들은 단어와 대상을 짝짓는 작업뿐 아 니라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우뇌 겉질은 좌뇌 겉질이 우뇌 겉질 자신과 몸의 오른쪽 절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또한 좌뇌 겉질도 마찬가지로 우뇌 겉질의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뇌들보를 건너는 스파이크들은 양쪽 반구 겉질을 통합하여 우리 몸에 대한 하나의 해석 가능한 경험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듯하다.
- 시냅스 실패는 뉴런들의 소통 효율을 통제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즉 뉴런들에게 새로운 계산의 방도를 열어줄 가능 성이 있다. 왜냐하면 시냅스 실패는 동일한 시냅스에 거의 동시에 도 착하는 스파이크들을 가지고 뉴런들이 멋진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시냅스 실패는 시냅스를 전혀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시냅스의 겉보기 강도를 몇 밀리초 안에 변화시킬 수 있 다는 것이다.
스파이크 2개가 짧은 시간 간격으로 어떤 시냅스에 도착한다고 해 보자. 첫 스파이크에 대한 실패율이 낮으면, 그 시냅스가 둘째 스파 이크를 전달할 확률도 낮아진다. 왜냐고? 첫째 스파이크가 분자 꾸러미를 이미 많이 소진하여 둘째 스파이크가 도착했을 때는 건너편으로 내용물을 쏟아낼 꾸러미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째 스파이크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상태에서 잇따라 도착하는 둘째 스파이크는 너무 많은 꾸러미를 소진할 가능성이 있다. 시냅스에게는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충분히 많은 스파이크가 연 달아 도착하면 꾸러미들이 텅 비어 재충전에 긴 시간 약 10초 이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뇌는 스파이크 연쇄에 대한 분자 방출률을 줄이기 위해 실패를 이용한다. 바꿔 말해, 더 나중 스파이크로 갈수 록 시냅스의 강도가 점차 약해진다. 이를 일컬어 시냅스에서 '단기 저 하short-term depression’가 일어난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시냅스의 첫째 스파이크에 대한 실패율이 높으면 둘째 스파이크가 전달될 확률도 높아진다. 왜냐고? 첫째 스파이크가 시냅스를 준비시켜서, 다른 스파이크가 도착했을 때 곧바로(약 100밀 리초 안에) 분자를 방출하도록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즉 시냅스 연쇄에 대한 시냅스의 강도는 나중 스파이크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이를 일컬어 시냅스에서 '단기 촉진 short-term facilitation'이 일어난다고 한다(그림 5-1)
- 거의 한 세기 동안 스파이크의 의미를 놓고 개수주의자 Counter와 시간주의자 Timer의 양 진영이 전쟁을 벌여왔다.'
개수주의자는 뉴런이 스파이크의 개수에 메시지를 실어서 전송한 다고 믿는다. 그들은 스파이크의 개수에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 다. 시간주의자는 뉴런이 스파이크를 방출하는 시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송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스파이크가 언제 발생하느냐에 의미가 담겨 있다고, 특히 스파이크들의 상대적인 발생 시점에 의미가 담겨 있 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에 에드거 에이드리언 Edgar Adrian 경, 조지프 얼랭어 Joseph Erlanger 등이 처음으로 스파이크를 포착한 이래로 이 전쟁은 신경과학계의 최고 인재들을 힘겹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