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식사에 대한 생각

dalai 2022. 5. 22. 15:05

- 오늘날 포도는 예외 없이 항상 달다. 자몽이나 핑크레이디 사과 같은 현대 과일처럼 포도 역시 달콤한 음식에 길들여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재배되고 숙성되기 때문이다. 달콤한 과일이 꼭 영양소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쓴맛이 제거된 현대 과일 은 보통 식물영양소 phyto-nutrients 가 적게 들어 있다. 과일과 채소 섭취가 건강에 이로운 것은 바로 이 식물영양소 덕분인데, 청포도는 대부 분의 식물영양소가 씨에 들어 있다. 적포도는 씨가 없어도 여전히 껍질의 색소에 페놀 성분(특정 암의 발 병 위험을 줄여주는 영양소)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하지만 씨 없는 청포도에는 이런 식물영양소가 거의 없다. 이런 과일은 열량은 제공해주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건강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가지 식재료가 아니라 식재료의 균형과 다양성이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과 신념, 소화력, 음식 과민증에 따라 식사에 포함하면 좋은 몇 가지 식품이 있다. 비교적 가공이 덜 된 식품, 견과류와 씨앗류, 콩류, 생선(기름질수록 좋은데, 정어리 통조림이 저렴한 대안이다)이 이런 식품에 해당한다. 최근 밝혀지기 시작한 바에 따르면 요구르트와 케피어(유산균과 효모가 결합된 케 피어 그레인을 발효시켜 만든 발효유 옮긴이), 김치 같은 발효 식품이 장 건강에서부터 당뇨병 예방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에서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채소와 과일, 통곡물처럼 섬유 질이 많은 식품을 섭취하는 것도 여러모로 좋다. 꼭 케일처럼 유 행하는 슈퍼푸드에 돈을 쓸 필요는 없다. 모든 채소가 도움이 되 므로, 최대한 다양한 채소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좋은 식단은 절대량이 아니라 비율에 기초한다. 단백질을 섭취 하자. 식단에서 탄수화물 대 단백질의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의 비만 위기에서 우리가 놓친 연결 고리 중 하나일지 모른다. 생물학자 데이비드 로벤하이머David Raubenheimer와 스티븐 심슨Stephen Simpson이 2005년에 처음으로 입증한 이 현상 은 '단백질 영향력 가설protein leverage hypothesis' 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절대량 측면에서 보면 부유한 국가의 국민들은 대 개 육류를 통해 단백질을 충분히 많이 섭취한다. 떨어지고 있는 것은 탄수화물과 지방 대비 단백질의 비율이다. 우리의 식품 체 계가 값싼 지방과 정제 탄수화물(설탕 포함)을 봇물처럼 쏟아내면 서 미국인이 섭취하는 평균 단백질 비율은 전체 에너지 섭취량의 14~15퍼센트(보디빌더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비율이다)에서 12.5퍼센트로 떨어졌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칼로리를 필요 이상 섭취하고 있으면서도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로벤하이머와 심슨은 인간 외에 여러 동물 종에서 이런 단백질 부족 현상을 발견했다. 귀뚜라미는 단백질이 부족해지면 동족을 잡아먹는다. 메뚜기는 이상적인 단백질 균형 상태가 될 때 까지 다양한 먹이를 찾아다닌다. 인간은 메뚜기처럼 현명하지도 않고 귀뚜라미처럼 잔인하지도 않다. 우리는 단백질이 부족하면 탄수화물을 통해 나머지를 보충하려 하고, 이는 과식을 불러온다. 로벤하이머와 심슨의 주장이 옳다면 비만은 (여러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단백질 부족의 증상이다.
- 전 세계에는 먹을 수 있는 작물이 대략 7000종 있지만 우리가 먹는 것의 95퍼센트가 겨 우 30개 남짓한 작물에서 나온다. 잡식동물인 인간은 본래 다양 한 음식을 먹도록 타고났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음식 선택이 이렇게 한정된 데에는 어딘가 이상하고 잘못된 점이 있다.28
다음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랄 수도 있는데(나는 놀랐다), 음식 면 에서 전 세계 평균에 가장 가까운 국가는 미국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은 식단 구성이 매우 극단적이다. 예를 들면, 미국인이 육류에서 얻는 칼로리는 세계 평균의 두 배다(미국은 약 1000칼로리, 세계 평균은 500칼로리), 또한 미국인은 설탕과 감미료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많이 섭취한다.
- 캐번디시 이전에 가장 많이 먹던 바나나 품종은 그로미셸Gros Michel 이었고, 그로미셸은 캐번디시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로미셸은 옛날 과일이 현대 과일보다 더 달콤한 흔치 않은 사례로, 식감도 훨씬 부드러 울 뿐만 아니라 깊고 복합적인 와인 같은 풍미가 있었다. 얼얼할 정도로 달콤하고 깊은 향의 바나나 맛 사탕을 먹어본 적이 있다. 면 아마 그 맛은 캐번디시보다 그로미셸에 가까울 것이다. 문제 는 그로미셸이 1950년대 파나마병으로 전멸했다는 것이다.37
전 세계 바나나 농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인 소유 의 기업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The United Fruit Company는 소비자 가 받아들일 새로운 바나나 품종을 찾다가 캐번디시에 눈을 돌렸다. 캐번디시는 그로미셸의 맛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의 재배업자들은 캐번디시가 맛도 떨어지고 식감도 퍼석퍼석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캐번디시는 그로미텔과 똑같이 생겼고 운송이 쉬웠으며 무엇보다도 파나마병에 저항성이 있었다. 맛이나 질감 면에서 뛰어난 점은 별로 없었음에도 캐번디시는 세상을 정복한 바나나 품종이 되었고, 여기에는 캐번디시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나나와 똑같이 생겼다는 점이 한몫을 했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캐번디시는 신종 파나마병에 타격을 입고 있다. 한 품종에만 크게 투자하는 바나나 산업의 타당성에 더욱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 한국이 얼마나 빨리 부를 획득하고 국제 시장에 노출되었는지를 고려하면, 한국의 식단 역시 설탕과 지방 그리고 포장 시이 비율이 높아 비만을 유발하는 식단으로 순식간에 바뀌었을 거라 고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급속히 발전한 다른 국가의 국민에 비 해 한국인은 전통 식단을 훨씬 잘 유지했다. 1960년대에서 1990 년대까지의 한국 자료를 검토한 연구자들은 한국인이 여전히 지 방을 비교적 적게 섭취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1996년 한국 은 중국보다 국내총생산이 열네 배나 높았는데도 한국인은 중국 인보다 지방을 덜 섭취했다. 한국의 비만율 역시 경제 발전 수 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1998년 한국에서 비만인 사람은 남성 의 1.7퍼센트, 여성의 3퍼센트뿐이었다.- 한국이 커브를 가장 잘 꺾은 지점은 채소 소비량이다. 1969) 년 한국인은 생채소나 조리한 채소를 하루 평균 271 그램 먹었다. 1995년 한국인의 채소 섭취량은 286그램으로 살짝 더 늘어났다. 1990년대 도시에 살던 한국인들은 1950년대 시골에 살던 한국 인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채소를 먹었다. 한국의 사례는 현대인이 양배추를 역겨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떻게 한국인은 온갖 변화와 현대적 삶의 압박 아래에서도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은 서구에서처럼 채소를 단순히 몸에 좋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맛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콩나물과 시금치 같은 채소를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게 즐긴다. 한국의 시골에서는 무려 300여 가지가 넘는 채소를 먹는 것으로 추정되며, 사람들은 각각의 채소가 지닌 고유의 맛과 질 감을 소중히 여긴다. 한국 채소 요리의 최고봉은 김치다. 배추에 매운 양념을 해서 발효시킨 김치는 소스처럼 살짝 곁들여 먹는 음식이 아닌, 주식이며, 2002년 한국에서 쌀 다음으로 가장 많이 섭취한 식품이다.
채소를 사랑하는 문화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영양 전이의 타격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정부 계획도 한몫을 했다. 다른 개발 도상국과 달리 한국은 세계를 휩쓴 새로운 식단에 맞서 전통 요 리를 지키려고 혼신의 노력을 했다. 한국의 농촌생활연구소는 1980년대부터 무료 요리 워크숍을 열어 수천 명의 노동자에게 쌀밥과 된장, 김치 같은 전통 요리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또한 매스미디어 캠페인을 통해 자국 식품을 홍보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자국 식품의 뛰어난 품질은 물론, 국내 작물과 농민을 지원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강조했다. 1980년대 전 세계 대부분의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켜면 사탕과 과자, 탄산음료와 시 리얼 광고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한국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켜면 국내 생산 식품의 장점을 홍보하는 정부 캠페인을 보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평균 식단은 1990년대만큼 건강하지 않다. 2009년 다시 한국의 식단 자료를 살펴본 팝킨은 알코올과 탄산음료 소비가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9년까지 약 10여 년간 한국 정부는 통곡물 소비를 늘리려고 애를 썼지만 1인당 통곡물 소비량은 평균 16칼로리 정도밖에 늘 지 않았다. 이번 정부 메시지는 전보다 효과가 없었다. 2009년 현재 비만과 당뇨병, 심장질환 환자의 비율도 10년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다른 부유한 국가들에 비해 채소를 훨씬 많이 섭취하며, 김치는 늘 그래왔듯 오늘날에도 인기가 많 다. 이는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가격이 1970년대에서 2009년 사이에 60퍼센트 상승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 다. 한국인의 평균 식단은 완벽하지 않을지 모른다(그동안 완벽한 식단이라는 게 있긴 했던가?). 그럼에도 한국은 건강에는 좋지만 양이 너무 부족했던 과거의 식단과, 양은 넘쳐나지만 건강에는 나쁜 현대 식단 사이에서 알맞은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훌륭한 증거다.
- 원래 인도에서의 당뇨병 확산은 주로 부족하고 일정치 못한 식량 공급으로 고생한 인도인 사이에서 수 세대에 걸쳐 전달된 '절약형’ 유전자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수십 년간 이어진 영양 결 핍 때문에 인도인들은 풍성한 현대 식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 했다. 하지만 야즈닉의 새 발견은 이런 부적응의 시간 단위가 훨 씬 짧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는 절약 유전자가 아니라 절약 표 현형의 존재를 입증했는데, 이는 단 한 세대 만에 유전자가 환경 과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전자는 어떤 환경에서 형 성되느냐에 따라 다른 표현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마른 비만 아기는 생물학적 환경의 부조화를 잘 보여준다. 이 아기들은 영 양이 부족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굶주림에 맞설 표현형을 지니고 성장했지만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인도의 식량 공급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예상치도 못한 풍요로운 식단을 먹게 된 것이다.
-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마른 비만 아기였다가 지금은 성인이 된 사람들 중 다수가 현대 인도에서 당뇨병 환자로 살아가고 있 다. 이들은 아무런 잘못 없이 어린 나이에 평생 관리해야 할 질병 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제2형 당뇨병에 걸렸다는 것은 곧 주류 식량 공급 체계와 정반대인 식단을 먹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다. 정제 탄수화물이 넘쳐나는 식품 시장에서 이들은 설탕과 흰 쌀 없이 지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음식의 양이 그 어느 때보다. 도 많은 세상에서 칼로리 섭취를 제한해야만 한다.
마른 비만 인도인이 겪는 딜레마는 현대사회에서 수백만 명이 직면한 문제의 극단적 형태라 할 수 있다. 
- 우리의 신체는 고칼로리 음료의 등장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현대 음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 설탕의 해 악은 논하지만 인간의 허기와 포만감에 대해서는 그다지 논하지 않는다. 우리의 유전자는 맑은 액체를 마시는 것으로는 포만감을 느끼지 않게 진화했다. 음료에 3코스짜리 점심 식사만큼의 에너 지가 들어 있어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음료의 난제다. 누군 가는 저녁을 먹기 전에 커다란 잔으로 샤도네이(화이트 와인의 한 종류 옮긴이)를 두 잔 마신 다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 시 상당한 양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어쩌면 나만 그런 걸지도), 또 다른 사람은 마운틴듀Mountain Dew 반 리터를 마시고도 여전히 30 센티미터짜리 샌드위치를 먹고 싶을 수 있다. 몇몇 예외를 빼면 우리의 신체는 액체에 들어 있는 칼로리를 고형 음식에 들어 있 는 칼로리와 똑같이 인식하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 활동과 현재의 식사 패턴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장 극명한 부조화 중 하나다.  약 1만 1000년 전 벌꿀로 처음 와인을 빚기까지 인간이 마실 수 있는 음료는 물과 모유뿐이었으며, 아기를 제외하면 인간의 진화 역사상 음료와 음식은 대개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것이었 다. 허기와 갈증의 메커니즘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생존에 도움 이 되었다. 만약 수렵 채집인이 물에서 충분한 포만감을 느꼈다면 나가서 먹을 것을 찾을 필요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 것 이고, 결국에는 굶어 죽었을 것이다.
- 수많은 연구에서 입증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료 에서 에너지를 섭취한 만큼 식사를 적게 하지 않는다. 물을 마시면 물은 빠르게 장으로 내려가 갈증을 해소해주지만 허기를 달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건 물에 설탕이 들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신체는 잔이나 컵, 또는 캔에서 나온 칼로 리는 칼로리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 스포츠 드링크나 과일 주스, 콜라, 가당 아이스티 같은 맑은 액체는 허기를 달래는 데 특 히 소용이 없으며, 라테나 초콜릿 우유처럼 우유가 들어 있는 음 료 역시 영양분이 들어 있음에도 대부분 놀라울 정도로 배를 채 워주지 못한다. 여러 과학 연구가 음료에 든 칼로리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맑은 음료에 포만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즉 음료는 같은 양의 칼로리가 들어 있는 고형 음식만큼 우 리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음료를 통해 애초에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섭취하게 되었다.
- 건강 관련 낙인은 공중보건 역사 곳곳에 자리하며 낙인찍힌 이들은 낙인에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콜레라와 매독, 결핵은 환자에게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 여겨질 때에는 통제가 아예 불가능했다. 2017년 영국 의학 저널 〈란셋의 사설에 따르면, 비 만이 의지 부족에 기인한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여겨지는 한, 의 료 체계는 아동 비만을 결코 실질적으로 예방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비만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생활방식이 아니라"는 집단적 인식이 생기기 전까지는 비만율이 낮아질 가능성은 적다.
집단적 변화가 없을 경우, 비만을 유발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주요 방법은 개인적으로 식단 관리와 운동을 시작하는 것 이다. 하지만 체중 낙인은 여기서도 우리를 좌절시킨다. 비만 낙인이 체중을 감량하려는 개인의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가 금세 다시 평소대로 돌아온 후 수치심에 시달려본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람들은 숨은 설탕(예를 들면 미처 생각지 못한 피자 토핑 속의 액상 포도당이나 데리야키 소스에 들어 있는 막대한 설탕량)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기름은 우리 식단 속에서 설탕보다 더 깊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탕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 신이 설탕을 많이 섭취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우 리는 반짝이는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 설탕에 졸인 견과류가 들 어 있는 아이스크림, 오독오독한 M&M 초콜릿 한 움큼 속에서 우리를 향해 빛나는 달콤함을 본다. 반면 기름진 음식을 일부러 찾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한 채로 기름을 섭취하는 것이다.
- 대두유는 194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바로 맛이 쉽게 변하는 성질 때문에 주요 경쟁 상대인 땅콩기름이나 목화씨기름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 저렴한 가격 때문에 제조업체들은 더 맛 좋은 기름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수많은 튀김 음식뿐만 아니라 크래커나 과자 같은 제품에까지 대두유를 사용했다.
- 왜 이렇게 많은 국가의 부자들이 맛없는 빵을 먹는 걸까? 가난 한 사람들도 주로 맛없는 빵을 먹긴 하지만 이들에게는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실제로 빵 맛이 나는 건강 빵을 쉽게 살 수 있는) 부자들이 너무나도 자주 그저 그런 맛없는 빵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부유한 현대사회의 기이한 점은 풍족해질수록 빵을 덜 먹고, 심지어 자기가 먹는 빵의 품질에도 관심을 덜 기울인다는 것이 다. 공장제 '빵'은 소금 함량만 높은 것이 아니다. 설탕도 많이 들 어 있고 반죽 조절제'와 방부제가 첨가될 뿐만 아니라 오븐에 들 어가기 전에 발효도 거의 거치지 않는다. 빵이 '농가식’ 이는 '저 탄수화물이든 '통밀이든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물질을 '빵'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면 이런 빵을 더 선호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아는 빵이기 때문이다.
다른 식품과 마찬가지로 공장제 식빵은 타협에서 나온 선택 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특정 식품에 대해 더 쉽게 타협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기 돈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우리 문화가 무 엇을 중시하는지를 보여준다. 신선한 블루베리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 블루베리는 사치품이었으나 오늘날 영국에서 초고속 블 렌더로 스무디를 만들어 먹는 것이 유행하고 블루베리가 '슈퍼푸드'가 되면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생블루베리의 판매량이 사과와 바나나의 판매량을 앞질렀다. 많은 이들에게 베리류는 이제 사치품이 아니라 주식이다. 반면 빵은 수백 년간 차지해온 주식 의 지위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우리 문화는 가장 기본적인 식품 인 빵의 품질보다 운동 후에 먹는 간식의 품질에 더욱 집착한다. 빵의 가치 하락은 우리 문화가 더 이상 음식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일종의 여가 활동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 영양 전이는 주로 경제가 번영하면서 발생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번영이 늘 주식의 품질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반대 상황이 많이 벌어지곤 한다. 사람들은 (한 국가나 개인이) 부유해지면 자연히 더 영양이 풍부한 고품질 음식을 먹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양은 많지만 질은 낮은 식단이 따라온다. 증조할머니 세대처럼 우리 역시 빵이나 쌀 같은 따분한 주식보다는 고기, 과일, 설탕처럼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한 음식을 훨씬 가치 있게 여긴다. 하지만 (쌀 한 톨도 소중하게 여긴) 증조할머니 세대 와는 달리 우리는 특별한 음식을 너무 많이 먹게 된 나머지 기본 식품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 경제학자들은 빵을 열등재'로 분류한다. 사람들이 부유해질수록 가치와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감자도 마찬가지다. 열등재는 소득이 증가하면 가치가 낮아지는 재화다. 탄수화물로 구성된 이런 주식들은 사람들이 부유해지면 어김없이 수요가 줄어든다. 전 세계 모든 부유한 국가에서 빵 소비가 급락했다. 영국의 빵 소비는 1880년에서 1975년 사이에 사실상 절반으로 줄었다. 빵을 전보다 덜 먹게 된 만큼 빵에 대한 관심도 줄어든 듯하다. 과거에 빵은 우리 삶의 중심이었다. 빵이 소득의 상당 부분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 서머싯주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보통 집세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을 빵 구매에 썼다. (1년 평균 집세는 5파운드 4실링, 1년 평균 빵 값은 11파운드 14실링). 하지만 공장제 빵이 등장하고 소득이 증가한 오늘날에는 한 가족 이 빵과 버터 구입보다는 휴대전화와 와이파이 요금에 매달 더 많은 돈을 쓸 확률이 높다. 빵이 너무 많이 버려진다는 사실에서 도 빵의 지위 하락이 잘 드러난다. 우리 조상들은 빵 한 덩이를 부스러기 하나까지 남김없이 먹었고 오래된 빵은 요리에 활용했 다. 빵을 넣어 걸쭉하고 기름지게 끓여낸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의 수프, 빵 조각에 여러 재료를 섞어 오븐에 구워낸 미국 요리를 떠올려보라. 하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오래된 빵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공장제 빵이 곱게 묵지 못하고, 부드럽고 신선한 상태에서 바로 곰팡이 핀 상태로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빵은 가장 많이 낭비 되는 단일 식품으로, 소비자가 구매한 전체 빵의 32퍼센트가 그 대로 버려진다.
심지어 좋은 빵이 모든 요리의 기반이었던 곳에서조차 빵 문 화가 바뀌고 있다. 호밀을 살펴보자. 이 독특한 풍미를 가진 짙은 색깔의 곡물은 한때 체코(과거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매일 사 랑받는 주식이었다. 호밀은 중세 시대부터 중유럽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듀럼밀 파스타를 좋아하듯 호밀을 좋아하는 것이 곧 체코인의 정체성이었다. 원래 체코의 대표 빵 은 밀과 호밀을 반씩 섞어 캐러웨이씨로 맛을 낸 동그란 사워도 였다. 체코 사람들은 매 끼니마다 이 빵을 두툼하게 썰어 먹었고, 빵이 오래 묵으면 마지막 남은 질긴 빵조각을 모아 버섯, 딜(허브 의 한 종류)과 함께 수프를 끓여 먹었다.
- 주식 없는 식생활이 전 세계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빵이나 쌀 같은 주식에서 멀어지는 것은 굶주림에서 멀어지는 과정의 일 부다. 더 이상 한 가지 탄수화물 식품으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되 는 것은 엄청난 사치이며, 이 지점에 이르면 전 인구가 살기 위해 먹는 대신 먹기 위해 살 수 있다. 주식 없는 식사에는 나름의 딜레마가 있다. 식단에서 주식이 사라지면 문화마다 달리 나타나는 요리 구조의 감각 역시 사라진다. 원래 프랑스 사람들에게 빵 없는 식사는 식사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밥 없는 식사는 식사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 먹어도 될 때 우리 몸과 정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선택의 자유는 특별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주식 없는 식단의 두 번째 딜레마는 더 이상 허기를 채우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다면 과거만큼 음식을 중시하지 않게 되므 로 그만큼 음식의 품질 변화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셜록 홈스 가 담뱃재만 보고 온갖 담배의 종류를 알아차렸듯 18세기 유럽 인은 빵을 한 입만 먹고도 밀의 종류를 분간할 수 있었다. 사람 들은 질 낮은 밀로 만든 빵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셰프 댄 바버 Dan Barber가 말했듯 오늘날 우리는 밀에 맛이 있기를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 우리에게 빵에 쓰는 밀가루는 그저 설탕과 소금처럼 부엌에 있는 공장제의 하얀 가루일 뿐이다. 현대의 빵은 제조 방식만 문 제인 것이 아니다. 밀 같은 기본 재료의 품질이 크게 낮아진 것 또한 문제다. 미국 빵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밀가루는 매우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그러면 영양가도 줄어든다) 생산량과 유통기한 을 늘리기 위해 표백되고 글루텐이 첨가된다.
빵의 품질 저하는 음식의 역설 핵심에 있는 더 큰 현상의 일부 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빵의 품질만이 아닌 음식 전체의 품질이다. 오늘날 우리는 음식에 무심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워졌기에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식사에 많은 돈을 쓰려 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음식을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영국 신경제재단 New Economics Foundation, NEF 의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식품업계는 전체 노동 인구의 11퍼센트를 고용하고 있으면서도 영국 평균 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지급했다. 현재 우리는 음식 자 체가 열등재가 되어가는 위험에 처해 있다. 소비는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리는 방법 중에 하나인데, 지금 우리는 소비를 통해 음식은 그리 중요치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영양 전이의 4단계에서는 우리가 먹는 음식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4단계는 우리가 과거에 실천한 식사 의례까지 없애버린다. 우리의 건강은 식단의 내용만큼이나 식사 의례와 그 리듬의 영향을 받는다. 그동안 사람들은 식사에서 중요한 것은 음식에 들어 있는 영양소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하고 고독한 상태에서 급히 밀어 넣는 유기농 샐러드가 친구들과 여유롭게 먹는 테이크아웃 피시앤칩스보다 반드시 더 '건강'한 것은 아니다.
- 오늘날의 식사에 나타나는 이러한 개인주의는 혼자 식사하는 방식과 더불어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혼자 식사하는 덕분에 이제 많은 이들이 원치 않는 음식은 조금도 먹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가령 오늘은 글루텐을 함유하지 않은 음식을 먹더라도 내일은 글루텐을 함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한번은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한 젊은 여성이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 여성은 채소를 면처 럼 길고 가늘게 썬 샐러드를 스타벅스에서 사들고 온 라테와 함 께 먹었다.
식품 선택의 가능성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오늘날 우리는 원 하는 만큼 변덕을 부릴 수 있다. 이제는 정해진 식사 시간에 한 가지 메인 요리를 나눠 먹는다는 생각은 텔레비전 채널이 오직 세 개뿐인 세계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불합리한 요구로 보인다. 식사 시간이 사라진 배경에는 사회의 분열이 자리하고 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집단의 가치에 순응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의무의 약화는 양방향으로 나타난다. 원래 고정된 식사 시간은 먹는 사람과 요리하는 사람 사이에서 일종의 계약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계약의 두 당사자가 해체되었 다. 어린 시절 정해진 시간에 식탁에 앉아 주어진 것을 먹어야 한 다고 느꼈던 의무감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런 의무감을 느낀 것 은 누군가가 수고를 아끼지 않고 나를 먹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 다. 이제는, 특히 노동의 세계에서는 내가 밥을 먹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 마케팅은 아시아 전체에 전에 없던 간식 먹는 습관을 만들어 냈다. 1999년 태국 사람들은 상업적 스낵을 1년에 1인당 1킬로 그램씩 먹었다. 같은 시기 멕시코 사람들은 1인당 3킬로그램을, 미국 사람들은 놀랍게도 10킬로그램을 먹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그리 많은 양은 아니다. 그때 펩시코의 자회사인 프리토레 이rito-Lay가 태국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프리토레이는 태국 구매 자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즉 마케팅만 제대로 하 면 태국인들이 짭짤한 스낵을 더 많이 구매할 여지가 있다는 뜻 이었다. 1999년부터 2003년 사이 프리토레이는 태국에서 광고 비를 두 배 이상 늘렸고 다양한 고객층에 맞춘 여러 텔레비전 광 고를 진행했다. 새우 맛 치토스는 어린아이들을 타깃으로 삼았고 레이즈Lay's 감자칩은 더 나이가 많고 부유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됐다. 태국 전통 음식과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는 도리토스 나초의 경우 주로 새로운 고객층을 찾아 기존에 없던 취향을 만 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우리는 중간중간 휴식 시간을 두고 여러 사람과 함께 푸짐한 식사로 배를 채웠던 기존의 식문화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스낵은 오래된 삶의 리듬을 파괴하며 하루 종일 거의 무한정으 로 무언가를 먹게 만들었다. 원래 아침·점심·저녁 식사는 우리 삶에 중심점을 제공했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정해주었다. 식사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방식이자 기쁜 일을 축하하는 방식이었다.
- 식사는 우리에게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부여했다. 하지만 끝없는 간식에는 어떤 구조도 규칙도 없다. 간식은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으며, 지금 내가 잘 먹고 있는지 아닌지를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을 일도 없다. 간식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오늘날 많은 식사 경험이 그러하듯) 보통 혼자 먹는다는 것이다.
- 성공한 식품 트렌드는 대개 순수한 혁신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좋아하는 맛이나 식재료에 대한 편승에 가깝다. 이전에 그릭 요구르트가 유행하지 않았더라면 스퀴르는 이만큼 갑자기 성 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장 내부자들은 스퀴르를 여러 국가가 벌이는 '원조 요구르트’ 경쟁의 일부로 바라본다. 주로 마시는 형태인 불가리아 요구르트는 싱가포르와 태국에서 큰 성공을 거 두었고, 크림 같은 오스트레일리아식 요구르트는 북미에서 인기 를 얻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는 아이슬란드의 스퀴르가 있다. 하지만 이 '원조 요구르트' 중 그 어떤 것도 그릭 요구르트 에 버금가지는 못한다.
- 이제 외식은 너무 평범해져서 그렇지 않았던 때를 기억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지난 수천 년간은 집에서 만든 요리가 전 세계에서 섭취하는 대부분의 칼로리를 책임졌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평범한 가족이 즐거움을 얻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부유한 상류층을 제외하면 외식은 대부분 즐거움이 아니라 유 용성을 위한 것이었다. 미국에는 옛날부터 다이너diner나 간이식 당처럼 노동자를 위한 소박한 식당들이 있었는데, 여기서 샌드위 치나 달걀, 해시브라운 hash brown(감자를 다지거나 잘게 썰어 튀긴 요리-옮긴이) 같은 소박한 즉석요리와 끝없이 리필되는 묽은 커피를 사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식탁보와 와인이 갖추어진 곳에서 집에서 만든 것과는 다른 음식을 사 먹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도 미국과 다르지 않았다(프랑스와 이탈리아 처럼 가족 소유의 작고 저렴한 식당이 오래도록 전통을 잇고 있는 일부 국 가는 제외), 1960년 조사 결과 네덜란드 인구의 84퍼센트는 외식 을 “거의 또는 아예 하지 않았다. 잦은 레스토랑 방문은 부자들 만의 전유물이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레스토랑들은 너무 딱딱하고 형식적이며 비싸다는 평판이 있었다.
- 패스트푸드 애호가들이 전부 몸무게가 늘어나거나 아플 거라는 말은 아니다. 음식이 관련되면 늘 그렇듯 이 또한 복잡한 문제다. 여러 종류의 패스트푸드에서 위험 요인을 구분하려 했던 몇 안 되는 연구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했다. 30세 이상 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4만 명 사이에서 10년 후 제2형 당뇨 병의 발병률은 햄버거와 감자튀김, 치킨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먹었을 때 가장 높았고, 기름에 튀긴 생선이나 중국 음식을 주기 적으로 포장해 먹은 경우에는 발병 위험이 그보다 낮았으며, 멕시코 음식이나 피자는 발병률을 높이지 않았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 오늘날 사람들이 음식을 논하는 방식은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우리는 즐거운 여가 활동으로서의 음식에 대해서는 지나 치게 많이 이야기하고 인간의 기본욕구로서의 음식에 대해서는 너무 적게 이야기한다. 양질의 식사를 규칙적으로, 기왕이면 다 른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은 부리토에 구아카몰레를 넣을지 말지 를 결정하는 것처럼 그리 중요치 않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양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처럼 신나고 풍요롭게 먹고 살 수 있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지만, 이런 풍요 속에서도 아직 우리는 모든 사람을 파티에 초대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닐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권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 48가지 색깔의 크레용 상자를 가진 아이는 이제 여덟 가지 색깔의 크레용에는 절대 만족할 수 없다.” 작가 앤절라 파머Angela Palmer는 현대사회에서 '필요'에 대한 감각이 어떻게 막무가내로 확대되는가를 다룬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인 다. “어쩌면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더 적은 것을 요청하는 법을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 식문화에서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 중 하나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갑자기 더 적은 것을 요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색깔 중 일부를 다시 크레용 상자에 넣겠다고 말한다. 유럽의 리들.idl이나 알디Aldi, 알디 소유인 미국의 트레이더 조Trader Joe's같이 불필요한 서비스를 뺀 식료품점이 인기를 끄는 것이 그 증거 중 하나다. 알디는 트레이더조와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알디는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는 반면 트레이더조는 견과류와 크랜베리, 초콜릿이 섞인 스낵이나 해바라기씨 버터 같은 유기농 건강식품에 주력한다.
- 셀리악 병은 밀과 호밀, 보리에 함유된 단백질인 글루텐이 장 표면을 손상시키는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로, 실제 셀리악병을 앓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뿐이다. 그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셀 리악병보다 훨씬 가벼운 (그리고 아직 논란이 많은) 질환인 비셀리 악성 글루텐 민감성을 앓고 있을 수 있는데, 정신이 멍한 상태, 복통, 더부룩함이 그 증상이다. 하지만 이 두 질환만으로는 왜 1억명의 미국인, 즉 미국 인구의 3분의 1이 적극적으로 글루텐을 피한다고 말하는지를(업계 자료에 따르면 그렇다) 설명할 수 없다. 셀리악병이 있는 내 친구들은 잇클린 덕분에 한때는 건강 전문 식료품점에서만 살 수 있었던 식재료들을 훨씬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셀리악병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때 널리 사랑받았던 음식을 자발적으로 거부하고 건강이라는 이름 하에 별 이유 없이 글루텐을 함유하지 않은 값비싼 상품을 구매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 오로지 '건강'만을 위한 식사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면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실질적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러네이 맥그리거Renee McGregor는 운동선수와 식이 장애가 있는 일반인을 돕는 영국의 영양사다. 맥그리거 는 2016년 이후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식이 장애 환자가 전부 클린한 식사법을 따르고 있거나 따르길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클린 이팅이 반드시 식이 장애나 정신질환을 유발한다 는 이야기가 아니다. 식이 장애와 정신질환의 원인은 매우 깊고 복잡하며 때로는 유전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맥그리거가 진료실 에서 만나는 약한 사람들에게 클린 이팅이 제공하는 매력적인 규 칙들은 한번 마음에 박히면 회복을 더욱더 어렵게 한다. 맥그리 거가 정의하는 건강한 식사는 “제한 없는 단순한 식사”다. 폭식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책감이나 두려움 없이 주요 식품군을 골고루 먹으면 된다는 뜻이다.
-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다른 많은 상품과 마찬가지로 프로틴바도 매우 모순적이다. 프로틴 바는 사탕을 먹어놓고 정갈한 메인 코스를 먹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설탕이 가득한 식품환경에서 프로틴 바 역시 또 하나의 달콤한 음식이지만 어째서인지 이 제품은 자기는 다르다고, 비스킷이나 스콘과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다고 우리를 설득한다. 음식의 맛이 수없이 다양한 세상에서 음식 대신 먹는 바는 거의 항상 초콜릿 맛이나 견과류 맛, 아니면 두 개가 섞인 맛이 난다.
- 식사 대용 음료로 모든 끼니를 대체하는 사람은 아직 소수이지만 음식을 음미하기보다는 마치 연료처럼 꿀떡꿀떡 삼키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발상은 우리의 식습관이 얼마나 크게 바뀌었 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간 역사에서 식사를 할 때 중요한 것은 혀와 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였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쌀이나 빵 같은 밋밋하고 단조로운 주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감각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식사 대용식은 단조로움으로의 회귀를 보여준다. 우리 조상이 먹었던 귀리죽이 어떤 맛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오늘날 알루미늄 파우치에 담긴 채로 널리 판매되며 평범한 아침 식사를 대신하는 짜 먹는 오트밀과 비슷한 맛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맛과 식감은 그에 비해 다양하지 못하지만) 식사 대용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현대인에게 음식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 되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왜 수백만 명이 매일 스포츠 바를 먹고 식사 대용 음료를 마시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음식에서는 얻을 수 없지만 이런 제품에서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다.
- 나는 여전히 우리가 어떻게든 영양 전이의 4단계를 지나 5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배리 팝킨이 설명한 것처럼 5단계에는 '행동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식사 패턴과 생활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5단계에는 무엇보다도 문화의 변화가 일어날 것 이다. 한국에서처럼 5단계는 4단계의 풍요를 제공하지만 그 풍요 는 채소 중심의 더 절제된 식생활로 나타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김치처럼 오늘날의 식문화가 소개해준 흥미진진한 요리들 은 계속 즐길 테지만 클린 이팅과 음식에 대한 죄책감은 내던질 것이다. 5단계가 되면 사람들이 다시 물을 선택하고 '칼로리가 든 음료'의 소비가 줄어들 것이다. 4단계와 달리 자동차 의존도가 줄고 사람들이 다시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의도적 인 활동' 이 증가할 것이다. 식단 관련 질병이 급속히 증가한 4단 계를 지나 5단계가 오면 비감염성 질환과 비만이 줄어들 것이다. 나의 희망은 비만 공포증이 줄어들고 인스타그램 사진 속의 몸이 건강한 식생활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는 것이다. 음식은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고 다시 우리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