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시프트
- 탈탄소로 인해 무역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우선 탄소 국경세가 몰고 올 파장이다. EU는 2023년부터 탄소국 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시범 운영 후, 2026년부터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EU는 이미 역내에서 탄소 배 출을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격차를 보전하기 위해 탄소 조정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 고 있어 탄소 국경세는 시행 시기와 범위의 차이가 있을 뿐 피할 수 없 는 현실이 되고 있다.
각국이 탄소를 빌미로 관세를 부가하는 형태의 통상 압박을 강 화하면 기업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막대 한 규모의 추가 인프라 투자가 불가피해진다. 제품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업종은 철강, 석유화학, 시 멘트, 알루미늄 등이다. EY한영 회계법인은 2030년 EU가 톤당 75달러의 탄소 국경세를 부과한다고 가정할 때, EU에 대한 철강 수출액의 12.3%를 탄소 국경세로 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한편 국내 업체를 포함한 세계 주요 철강사의 영업 이익률은 2018년 기준 최대 10%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두 가지 추정치를 종합하면, EU가 탄소 국경세를 공격적으로 부과할 경우 철강 업계는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에 직면한다. 버는 족족 탄소세로 다 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수출 산업의 탄소 집약도 역시 높은 우리경제에는 충격적 수준의 영향이 불가피함을 짐작할 수 있다.
- MSCI지수(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index)를 작성, 발표하는 모건스탠리 캐피털인터내셔널의 헨리 퍼낸데즈 회장의 발언을 살펴보자.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자본주의 체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외부성(externalities), 즉 열악한 지배 구조, 불공정한 고용 행태, 환경 파괴 등에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 글로벌 투자 산업이 이러한 ESG 외부성을 내재화한다면, 특히 기후변화의 비용을 반영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제하의 금융자산 및 물적 자산 가격이 현저히 재조정되고, 자산의 재분배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그 과정에서 많은 승자와 패자가 생겨날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에 좀 더 책임을 다하게 하는 과정이며, 자본주의가 세계를 위해 더 기여하는 길이다."
- RE100에 참여하는 해외 기업의 경우, 2018년 기준으로 인증서구매(43%) 〉 녹색 프리미엄(31%) > PPA (19%) 〉 자가발전(4%) 순서로 재생에너지 전환을 이룬 것으로 나타난다. RE100의 초기인 2015년에는 인증서 구매 방식이 60%로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이 방식은 차 줄어드는 반면, 재생에너지 발전 확산에 직접 기여하는 PPA 방식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 2021년 1월에 도입된 녹색 프리미엄제는 전력 소비자가 한국전력에 녹색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력을 구입하는 방식이다. 녹색 프리미엄을 지불한 기업은 한전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받아 K-RE100 이행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2021년 2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입찰을 진행했는데,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 해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장 쉽고 저렴한 이행 수단임에도 참여가 저조한 원인은 프리미엄을 주고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구 입해도 온실가스 감축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과정이 이미 온실가스 감축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 전기를 구매할 때 또다시 감축 실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 2021년 5월에 도입된 제3자 PPA는 PPA를 보완한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전기사업법에 따라 생산(발전)과 판매의 겸업을 금지해 왔다. 따라서 발전 사업자는 직접 판매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발전 사업자와 소비자(기업) 간의 직거래가 허용되지 않아 국내에서는 PPA 방식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2021년 3월에 전기사업법이 개정되어 발전 사업자와 소비자(기업) 간의 직거래가 허용되었다. 다만 발전사에서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송배전망을 이용해야 하는데, 국내의 송배전망은 한국전력이 독점적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전력망 사용에 따른 요금을 한국전력에 별도로 지불해야 하며, 한전이 중개 사업자로 참여하기 때문에 제3자PPA 로 불린다. 재생에너지 인증서(REC) 구매 방식은 기업 입장에서 복잡한 절차 없이 편리하고 손쉽게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차원에서 가장 많이 이용된 방식이다. 2021년 8월 REC 거래 시장이 개설되어 국내 기업들도 REC를 구입해 인증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거래 당사자 간 상시적인 장외 거래를 통해 계약을 체결 한 후 시스템에 등록하고 정산하는 방식과, 플랫폼에 매물을 등록해 매매(월 2회)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 2020년 2월 《파이낸셜 타임스》가 리스타드에너지, IPCC, IEA) WEC(세계에너지협의회) 등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 역시 큰 틀 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100년까지 지구의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과 대비하여 2도 이내로 억제하는 시나리오와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좌초 자산의 규모를 전망했다.
현재 에너지 기업들이 보유한 광산이나 유정의 화석연료에 담긴 탄소는 2910기가 톤으로 추정된다.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 기 위해 앞으로 지구에 주어진 탄소 예산(carbon budget)은 약 1200기가 톤이다. 탄소 예산이란 IPCC가 제시한 개념으로,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이다. 태울 수 있는 탄소는 1200기가 톤밖에 없는데 2910기가 톤이나 남아 있으니, 여분의 1710기가 톤 분량의 화 석연료는 좌초 자산이 된다. 이는 매장된 화석연료의 약 59%에 해당 하는 양이다.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탄소예산을 더 줄 여야 한다. 이 경우 지구의 탄소 예산은 464기가 톤에 불과하다. 태울 수 있는 탄소가 464기가 톤인 상태에서 2910기가 톤이 남게 되므로 여분의 2446기가 톤 분량의 화석연료가 모두 좌초 자산이 되어 버린 다. 매장된 화석연료의 무려 84%에 해당하는 양이다.
- 솔라 리스란 말 그대로 주거용 태양광 임대 프로그램이다. 주태 또는 건물 주인은 솔라 리스를 통해 초기 설치 비용 부담 없이 주택이나 건물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생산되는 모든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그 대가로 태양광 패널을 임대하는 설치 업체측에 계약 기간 동안 일정 금액의 리스 요금을 매달 지불한다. 솔라리스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설치 초기에 계약금이 없어 목돈이 필요치 않다는 점이다. 또한 태양광의 유지 수선을 설치 업체가 책임지기 때문에 관리의 어려움도 없다. 게다가 리스 요금은 일반적으로 태양광발전을 통한 전기 요금 절약분보다 적다. 그렇다면 설치 업체는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수익을 낼까. 설치 업체는 리스 요금을 받는 한편, 태양광 설치에 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고 더불어 재생에너지 관련 세액 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솔라 리스와 유사한 금융 상품으로 '태양광 전력 구매 계약(Solar Power Purchase Agreements)'이 있다. 솔라 리스는 리스 요금이 태양광 발전의 생산 규모에 관계없이 일정한 반면, 태양광 전력 구매 계약은 태양광발전의 생산 규모에 따라 요금이 변동된다는 차이가 있다.
2013년 미국의 솔라시티는 사상 최초로 5440만 달러의 주택용 태양광 자산 담보부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태양광발전을 금융 증권화함으로써 주택용 태양광 금융 시장을 유동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 온실가스 총량, 즉 탄소 발자국을 정확히 산출해야 한다. 탄소 발자국 은 그 범위와 성격에 따라 3단계의 스코프(scope)로 구분해 측정, 집계된다.
스코프 1은 사업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직접 배출하 는 탄소를 의미한다.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탄소는 사용자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통제 가능한 직접 배출에 해당한다.
스코프 2는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기 등에서 발생하는 간접배출까지 포함한다. 예를 들어 공장을 가동하는 데 전기를 사용했다면, 그 전기는 발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간접 배출로 본다. 그 전기가 석탄발전으로 만들어졌다면 배 출량이 많을 것이고,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졌다면 배출량이 없다. 전기 사용량과 어떤 에너지원으로 만들어진 전기를 사용하느냐에 따 라 배출량이 결정되며, 이 역시 사용자가 '통제 가능한 간접 배출에 해당한다.
스코프 3은 범위가 훨씬 더 넓을 뿐 아니라 측정도 복잡하며, 통 제하기도 어렵다. 기업 가치 사슬의 전후방에 해당하는 모든 외부 배출을 함께 집계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공급망 내의 모든 협력 업체가 부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뿐 아니라 물류. 유통, 판매, 최종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까지 모두 포함된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 배출에 해당한다.
스코프 3과 같이 제품의 라이프사이클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전 과정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는 기업에게 매우 도전적인 과 제다. 이제까지는 기업들이 탄소 발자국을 산출하는 것은 온실가스 를 관리하고 줄이는 유인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게 친환경 제품임을 알리는 정도에 그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탄소 발자국을 측 정하고, 줄이고, 상쇄하는 것이 기업과 제품의 수출 경쟁력을 좌지우 지하는 요인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이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스코프 3까지 포함한 탄소 발자국 줄이기에 동참하고 있다.
- EU는 2022년부터 친환경 기술 및 사업의 기준을 제공하는 EU 택소노미(EU taxonomy)를 본격 시행한다. 해당 기술이나 사업이 환경 친화적인지 아닌지, 지속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를 분류하는 작업 이다. 기술과 사업의 '친환경 여부를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을 만드는 의도는 명확하다. 투자자나 금융기관이 해당 기술과 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유인하기 위해서다. 자본의 흐름을 기후변화 완화에 공헌하는 기술과 사업으로 유도해 해당 기술과 사업의 성장을 이끌고 탄소 중립의 목표를 이루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이 EU 택소노미의 빅 픽처다.
기술과 사업이 친환경 적합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EU 택소노미가 규정한 적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EU 택소노미에는 네 가지 적격 요건이 있는데, 이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한다. 첫 번째, 해당 기술과 사업이 여섯 개의 환경 목표 중 한 가지 항목 이상에 상당히 기여해야 한다. 여섯 개의 환경 목표란 기후변화의 완화(mitigation),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adaptation), 수자원 및 해양자원의 지속 가능한 오염의 방지 및 억제,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의 보전 및 회복이다. 두 번째, 해당 기술과 사업이 앞서 여섯 개의 환경 목표 중 어느 하나에 도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세 번째, 해당 기술과 사업이 최 소한의 사회적 안전 장치를 준수해야 한다. 네 번째, 기술 선별 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택소노미의 최종 결정을 앞두고 유럽에서는 연일 격론이 벌어지 고 있다. 논쟁의 최대 쟁점은 원자력발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할지 여부 다. 공사 기간이 길고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원전 사업에서 채 권 발행이나 대출 등을 통한 금융 조달은 사업 성공의 최대 관건 중 하나다. 택소노미에서 배제되는 사업은 자금 조달 경로가 막히면서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아직 최종안은 나오지 않았지 만 2021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에 원 자력과 LNG를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는 EU 택소노미 초안을 전 달한 상태다. 여기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원자력과 LNG(액화천연가스) 산업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 예를 들어 포스코가 현재 가동 중인 고로 9기를 모두 수소 환원 설비로 대체할 경우 그 비용은 5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매몰 비용 27조 원에, 설치 비용 27조 원을 더한 비용이다. 이 경우 2~2.5배가량 원가가 상승하게 되는데, 포스코는 원가 상승이 수출 경 쟁력 악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따라서 이들 업종에 대한 업종별 국가 지원이 시급하다는 것이 산업계의 입장이다.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자. 독일은 유럽의 대표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제조업 비중이 20.7%로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제조업 중 철강 산업 비중은 13%에 이른다.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로부터 자유로울 리 없다.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인 철강 산업의 배출량은 제조업 전체 배출량의 30%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독일 정부는 EU보다도 5년 앞당긴 2045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내걸었다. 독일 철강 업계 역 시 2045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독일 철강 업계는 수소 환원 제철 을 통한 탈탄소화를 주요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2045년까 지 제조법을 전환해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데는 약 300억 유로(41조 4000억 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독일 철강 업계는 정 부에 대대적인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첫째, ‘그린(저탄소) 철강' 제품의 초기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최저 비율 의무화를 요구한다. 철강 제품의 일정 비율을 그린 철강으로 구입하도록 의무화할 경우, 그린 철강의 초기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물 론 철강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산업의 탄소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일례로 자동차에 사용되는 철강을 모두 그린 철강으로 바꿀 경 우, 자동차 공급망에서 탄소 배출을 25%나 줄일 수 있다. 최근 공급 망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그린 철강은 제조 업체나 구입 업체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
둘째, 수소 환원 제철이 탄소 중립에 궁극적으로 기여하기 위해 서는 그린 수소 확보가 필수 불가결하다. 따라서 정부 주도의 국가 수소 전략을 통해 수소 제조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편 그린 수소를 업체 차원에서 확보하기 위해 그린 수소의 자가 조달 움직임 역시 활발히 하고 있다.
셋째, 철강 업계의 탈탄소화 비용과 탄소 배출권 가격의 차액을 정부로부터 보전받는 차액 결제 계약(CCIDs: Carbon Contracts for Difference) 의 도입을 요구한다. 철강 업계가 제조 공정의 탈탄소화를 위해 투자 하는 비용은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되는 탄소 배출권 가격을 상회한 다. 따라서 탈탄소를 위한 기업의 투자 비용과 시장에서 형성되는 배 출권 가격의 차액을 정부가 보전하도록 하는 것이 CCfDs다. 독일 연 방 정부 역시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CCRDS 도입을 검토해 왔으며, 2021년 5월에는 2022년부터 2년간 철강업의 탈탄소화에 50억 유로 (6조 9000억 원)를 투자할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