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
- 몸에서 열이 나고 목이 아픈 환자가 병원을 찾아오면 의사는 연쇄 구균streptococcus 감염을 의심하여 검사를 해 보고 연쇄구균이 발견되지 않으면 바이러스성 인후염으로 진단하고서 환자에게 약을 처방한다. 환자들에게는 하루나 이틀 사이에 증상이 호전될 것이라고 말해 준 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시 병원에 오라고 권한다. 물론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인후염일 가능성이 크지만,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진단이 틀릴 수도 있다. 전염성 단핵세포증infectious mononucleosis 일 수 있고, 다른 종류의 세균성 편도염이나, 인후두부의 암일 수도 있다. 의사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자동차를 보고 점화 플러그를 뽑아서 직접 확인하고 교체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정비기술자처럼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 대신에 환자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간접적인 증거들을 토대로 환자의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추정해야만 한다.
목이 아파서 온 환자에게 바이러스성 인후염(감기)이라고 말하고 집에 보냈다가 증상이 악화되어 다시 찾아왔다면 이런 경우는 진단오류에 해당하나? 아마도 환자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분명 올바른 진단은 아니다. 의사가 실수를 한 것일까? 뭔가 다른 조치를 취했어 야 했나? 물론 좀 더 확실하게 할 수도 있었다. 환자를 이비인후과 전 문의에게 보내서 특수 장비로 목을 확인받게 할 수도 있었다. 최초의 진단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빨갛게 부어오른 편도의 일부를 떼어 내서 조직 검사를 의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은 모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환자에게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며, 비용도 많 이 들어가는 것들이다. 더더군다나 그런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그 진 단은 100퍼센트 확실한 것이 아니다.
단순한 인후통이 아닌 복잡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진단하는 과정에는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많다. 환자들의 생각과 달리 의 사들은 오류의 일부는 피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의사는 환자를 처음 진찰하면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 즉 감별진단 differential diagnosis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한다. 환자의 증상에 대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감별진단의 목록은 다양해진다. 이후 신체검사와 각종 임상 검사 결과 를 종합한 다음에야 가능성 높은 질환의 목록이 완성된다. 이 과정이 잘 진행됐다면 감별진단 목록 중에 정확한 진단명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맞는 진단명 이외의 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쉽게 말해, 모든 의사들은 바른 진단을 내리기 위해 매번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의학이란 워낙 복잡한 분야인 데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 는 다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환자의 증상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질환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의사들은 환자를 진찰한 다음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을 내리지만, 때로는 대안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진단명이 모호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과연 이 병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병이 원인인지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한다.
-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서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환자에게 그가 앓고 있는 질병과 그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의사에게 있어서 가 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다. 이 설명이 성공적으로 받 아들여진 다음에야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좀 더 알려주 고 싶어 한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환자는 자 신의 병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설사 자신의 병 자체를 조 절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병에 대처하는 방법을 숙지할 수 있다. 매 우 심각한 질병도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어 설명하면 그 자체로 치유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 의사의 기본적인 임무는 환자의 통증 pain을 치료하고 고통 suffering을 완화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 두 가지를 같은 것이라고 여긴다. 의료 윤리학의 대가인 에릭 카셀 Eric Cassell 박사는 논문을 통해 통증과 고통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카셀 박사에 따르면 통증은 육체의 괴로움이며, 고통은 자아의 괴로움이다. 그는 고통을 온전한 자아에 위협 을 느끼거나, 혹은 자아의 온전함이 파괴될 때 느끼는 절망적인 상태 라고 정의했다. 지독한 통증에 시달리는 경우라도 고통을 느끼지 않 을 수도 있다. 출산 과정이 바로 그 예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을 때 극 심한 통증을 경험하지만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현대의 첨단 기술에도 모순점이 있다. 노동력과 시간을 절약한다는 발명품들이 많이 개발됐지만 이것들은 하나같이 노동력이나 시간 어떤 것도 줄이지 못했다. 컴퓨터의 메모지 기능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종이 메모지보다 편한가? 실생활에서 많이 이 용하는 간단한 덧셈이나 뺄셈을 할 때 암산을 하는 것과 계산기를 사 용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인가? 의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다. 첨단 장비를 이용한 검사도 진단에 이르는 한 방법일 뿐이다. 레일리 박사의 주장이 맞는다면, 25퍼센트 이상의 환자들은 단순한 신체검사만으로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 경험 많은 노장의 공통점
진단이 어려운 질병은 대개 가장 경험이 많은 의사가 밝혀내거나, 혹은 가장 경험이 없는 의사가 찾아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다. 나이가 지긋한 노장들은 자신의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그들은 넓고 다양하게 관찰하기 때문에 거의 타당성이 없는 사항들을 제외할 능력이 있다. 신참들은 어떨까? 그들 은 기대할 경험이 없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편견에 휩싸일 위 힘이 없기 때문에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