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의장 이의 있습니다

dalai 2023. 3. 4. 10:06

- 20세기 초에는 왜 주주행동주의가 그렇게 드물었을까? 첫째, 상장기업의 지분이 대개 설립자, 설립자 가족, 자본가 등 극소수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 주주들은 회사에 영향을 미치기가 어려웠다. 둘째, 상장기업들은 재무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아서, 투자자들이 회사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웠다. 노던파이프라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회사가 보유한 현금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을 아는 주주는 아무도 없었으며, 23% 지분을 보 유한 록펠러재단이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월스트리트 는 주제넘게 나서는 주주들을 강도 취급했다.
이런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주도한 혁신적인 증권분 석은 1934년 증권거래법의 공시 조항 덕분에 힘을 얻게 되었다. 상장기업들 의 소유권이 빠른 속도로 분산되면서, 기업 감독의 성격도 대폭 바뀌었다. 그래도 관례라는 게 있지 않을까? 돈 문제가 걸리면 관례는 가차 없이 밀려나고 만다. 가장 먼저 대규모 철도 회사들이 상세한 재무 정보를 주주들에게 널리 공시했다. 19세기 말까지도 철도 회사들은 경영권을 차지하려고 거친 싸움을 벌였다. 이리철도 위임장 대결이 그랬고, 코닐리어스 밴더빌트가 뉴욕센트럴 철도를 인수한 것이 그랬다.'
- 일각에서는 벤저민 그레이엄을 헤지펀드와 주주행동주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과소평가다. 그레이엄은 헤지펀드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헤지펀드를 창시했다고 알려진 A.W. 존스 Jones보다 10여 년 앞서 투자조합을 결성해 공매도 전략을 구사하면 서 성과보수를 받았다.' 그레이엄은 투자 전략으로 주주행동주의를 자주 사 용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으로 경영에 개입한 기업이 노던파 이프라인이다. 노던파이프라인으로부터 현금을 분배받는 것은 절대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주주가 기업으로부터 잉여현금을 돌려받은 전형적인 사례를 만들어 냈다. 이는 주주행동주의의 최초 사례이기도 하다.
- 노던파이프라인 경영진의 잘못은 주주를 무시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들어 가는 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상장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은 법의 테두리 안에 서 주주들을 위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즉, 경영진과 이사회는 회사 자산 을 최대한 활용해 수익률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노던파이프라인 경영진 은 회사가 막대한 현금과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주들에게 숨겼 다. 잉여현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막대한 유동자산을 숨김으로써 주식의 가치가 저평가되도록 한 것이다.
노던파이프라인은 회사 권력이 상호 견제를 통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전형 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주주들은 무관심했고 이사회는 경영진에 지배당했다. 이사회 구성원 5명 중 3명이 CEO와 스탠더드오일 관련사의 임원들이었다." 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James Madison은 《페더랄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에서 "누구든 자신이 관여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관이 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노던파이프라인 경영진은 이사회를 지배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감시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 그레이엄의 주주행동주의는 기업의 자본 배분 개선에 초점을 두었다. 매우 타당한 방식이다. 사업 운영에 탁월한 경영진도 자본 배분에는 서툴 수가 있다. 기업가치 평가와 자본 배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투자자들이 전문성을 발휘할 수 도 있다. 기업의 경제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투자자들이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더 높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본 배분의 대안으로는 자본 재투자. 자사주 매입, 배당 지급, 기업인수 및 투자를 들 수 있다. 이런 식의 주주 개입 은 상장기업의 구조에도 어울린다. 이사회는 경영진을 감시하고 자본 지출을 통제한다. 경영진은 사업을 운영하고 임직원들의 급여를 결정하며 주주들의 질 문에 답한다. 그러나 그레이엄이 시작한 주주행동주의는 이제 자본 배분의 수 준을 훨씬 넘어서서, 경영진 임면과 경영권 획득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
- 《스노볼》에는 그레이엄이 버핏에게 돈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대목 이 나온다. "꼭 기억해 두게. 자네나 나나 인생에서 돈은 중요하지 않다네. 우 리는 매일 함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일하면서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43 회사에서 버핏이 애널리스트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자, 그레이엄은 핏을 댄스교습소에 등록시켜 주었고, 댄스를 배우는지 확인하려고 교습소까 지 따라가기도 했다.
그레이엄은 겨우 예순한 살에 은퇴하면서, 버핏에게 그레이엄뉴먼의 제너 럴파트너 겸 포트폴리오 매니저 자리를 대신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버핏은 영광으로 생각했지만, 자신의 영웅 그레이엄과 함께 일할 수 없다면 더는 뉴욕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레이엄이 은퇴하자, 버핏은 오마하로 돌아가 회사를 세웠다. 1956년 그레이엄은 회사를 청산하고 캘리포니아로 갔다.
- 미국이 점점 부유해지고 상장기업의 소유권이 분산됨에 따라, 곳곳에서 경 영권 분쟁이 일어났다. 그레이엄이 노던파이프라인을 상대로 벌인 위임장 대 결은 현재 기준으로 보면 온건한 수준이었다. "우리는 이사를 많이 선출하려 하지 않았다. 많은 이사를 선출하면 회사 운영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우리에 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그레이엄은 회고한다. 후대의 행동 주의 투자자들은 이런 식으로 절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엄의 캠페인은 게릴라식 기습 공격이었다. 1950년대까지는 이사회실이 일종의 작전실로 확대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 로스 페로는 GM과 전혀 맞지 않았다. 자동차 산업에 대해 알면 알 수록 페로가 보기에, 신기술에 집착하는 스미스는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GM이 로봇과 생산 자동화에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을 때 일본의 자동차 회 사들은 낡은 장비로 더 좋은 차를 만들어 시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GM은 직 원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회사 내에 팽배한 관료주 의가 GM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훗날 《포춘> 인터뷰에서 페로는 이렇게 말 한다. "저는 뱀을 보면 뱀을 죽입니다. 그것이 제 삶의 방식입니다. GM은 뱀 을 보면 먼저 뱀 컨설턴트를 고용했습니다. 그런 다음 뱀 위원회를 만들고 약 2년 동안 회의를 합니다. 그 결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날 공 산이 큽니다. 즉, 이런 식이죠. 뱀이 아무도 물지 않았으니 공장 바닥을 그냥 기어 다니게 놔둡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뱀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이 뱀을 잡아 죽이는 문화입니다.'
- 알프레드 슬론이 처음 경력을 쌓은 곳은 자동차 회사에 롤러 베어링을 납 품하는 뉴저지 주의 회사였다. 총괄 관리직까지 오른 그는 1916년 회사를 듀 랜트에게 팔게 된다. 듀랜트가 슬론에게 자동차부품 생산 부문 전체 경영을 곧바로 맡긴 것을 보면 그에게서 특별한 재능을 발견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슬론은 획기적인 조직 연구의 기반이 되는 원칙을 고안하게 된다.
GM의 전체 구조는 흡사 자동차 액세서리 부문의 모습과 같아서, 전국에 흩어진 다양한 회사들의 모임이었다. 슬론은 이 부문을 GM의 분권화 철학에 입각해 경영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점화장치나 라디에이터, 혹은 경 적기를 만드는 사업에 간섭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러나 재무를 통제하지 않고서는 실적이 바닥을 기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 문제는 GM 전체의 문제이기도 했다. 자본적 지출에 관해서는 아무도 최선의 것을 판단할 수 없었으므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 다. 각 부문 책임자들은 자신의 예산이 통과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서로서로 봐주는 형편이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분권화였다고 슬론은 회고한다.'
슬론은 회계사는 아니었지만 자기가 경영하는 회사들의 실적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각 사업의 수익이 아니라 투자수익 률이었다. 투자된 자본이 어디서 가장 높은 성과를 달성하는지를 알아야, 추 가로 자본을 투입하거나 개선할 사업을 구분할 수 있었다. 슬론은 훗날, "내 가 알고 있는 한, 사업상 판단에 도움이 되는 객관적인 도구로 투자수익률만 한 것이 없다"고 밝힌다.
슬론은 자기가 맡았던 사업 부문의 실적을 개선한 지혜를 바탕으로 GM의 미래를 그렸다. 무엇보다 각 사업 부문은 투자수익률에 근거해 합리적인 재 무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일단 재무관리가 정립되자, 중앙집중화를 도모해 '분권화의 철학과 본질을 보존하는 동시에 적절한 감독을 진행하며 불필요한 비효율성을 제거하고자 했다. 슬론은 분권화와 적절한 감독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원칙들은 본질상 서로 모순임을 알 고 있었다. 훗날, 슬론은 "모순 자체가 문제의 핵심이다”라고 《나의 GM 시절 (My Years with General Motors)》이라는 저서에서 이야기한다.
알프레드 슬론이 분권화를 신봉했던 것은 각 부문에 독립성과 경쟁력을 불어넣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경영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시스템은 만들지 못 했다. 사실 슬론이 GM에서 이룬 가장 큰 업적들은 다분히 중앙집권적이다. 듀랜트가 GM을 떠나자마자 슬론이 제일 먼저 취한 조치 중 하나는 상품 전 략을 재정립한 것으로, 개별 브랜드를 가격별 시장으로 나눈 일이었다. "다양한 책임을 구분해 적절히 부여하는 명확하고 간편한 방법은 없다"고 훗날 그 는 이야기한다." 슬론은 자신의 경영 능력과 리더십에 의존했다. 반대 의견 과 열린 토론을 극성스러울 정도로 장려했다. 하향식 명령보다는 합의를 이 끌어 내는 것을 선호했고, 가급적이면 조직 내 가장 말단에까지 권한을 주려 고 했다. 슬론은 수많은 위원회와 정책그룹을 만들어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 을 개선하려 했으며, 그런 모든 조직에 빠짐없이 참여함으로써 제대로 된 결 과가 나오도록 했다.
슬론의 지휘 아래 GM은 세계 자동차 산업을 지배하게 된다. 진입장벽이 거의 없는 산업이라는 점과 포드라는 가공할 경쟁자를 감안했을 때 놀라운 성과였다. 1956년 슬론이 이사회에서 물러났을 때 GM은 미국 자동차시장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GM은 규모의 경제 덕에 낮은 원가가 가능했다. 누구나 아는 친숙한 브랜드 이름인 데다, 규모가 크고 부유한 자동차 딜러 네트워크에 힘입어 자동차 판매는 명백한 우위를 점했다. 알프레드 슬론의 승리는 완성돼 보였다.
- 1943년 서른셋의 정치학 교수였던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는 GM에 관해 2년 간의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GM의 부회장 도널드슨 브라운이 미래의 관 리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GM을 분석해 달라고 드러커를 초빙했다. 미국 내 대기업들의 성장에 매료된 드러커는 기업을 내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를 마다하지 않았다.
1946년 드러커의 기업의 개념(Concept of the Corporation)>이 출간되면서 기업 경영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책은 불편할 정도로 GM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다. 드러커는 하나의 기업이 이토록 다양한 제품을 성 공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드러커의 연구가 진행될 때는 마침 GM이 전쟁 동원령에 참여할 때였다. 드러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GM이, 특히 알프레드 슬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하며 공로가 과소평가되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기존의 업적에도, 드러커는 과연 GM이 이런 위대함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를 의심했다.
드러커는 GM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직원들에게 권한을 넘기려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결정권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상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위원회를 위협했던 문제, 즉 조직 단위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교착 상태에 빠지고 파벌주의와 권력 싸움으로 조직이 분열될 수 있는 위협을 GM은 어떻게 모면할지 묻게된다.” 드러커는 '명확히 정해진 질서, 엄격하게 구분된 권한과 책임' 없이는 GM의 관리자가 누리는 자유도 결국에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명 확히 정해진 질서'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슬론은 사업 부문과 본사 간의 책임을 명확히 구분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슬론은 자신의 리더십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GM을 만들어 갔 다. 그는 이성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뛰어난 경영자였지만, GM은 그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극성스러운 채용 방식을 회사의 문화로 정착시키지 못했다. 슬론이 있는 GM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돌아가던 시스템이 그가 없 는 GM에서는 삐걱댔다. 드러커는 GM이 잘 돌아가는 것이 과연 슬론의 경영 방식 때문인지를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한다. "GM 시스템이 정말로 개인의 능 력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회사의 운명은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설 수 없을 것 이다.” 실제로 슬론이 사망한 1966년 GM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 GM에 합류한 로스 페로는 당장 일을 시작했다. 최고위 임원 200명을 8명 씩 그룹으로 짜서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또한, 1,000명이 넘 는 GM 전산업무 직원들을 50명씩 그룹으로 나눠 모임을 가졌다. 주말에는 편안한 복장으로 GM 딜러들을 방문해 고객서비스를 점검하고 GM 자동차를 판매 현장에서 직접 살폈다. 심지어는 사전 예고도 없이 GM 공장을 방문해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라인에서 점심을 먹기도 했다. 페로는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제조업체 중 하나가 어째서 예산이 쥐꼬리만 한 일본 자동차 회 사들과의 경쟁에서 뒤지는지를 알고 싶었다.
페로가 몇몇 캐딜락Cadillac 딜러들에게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한 사람이 답했다. "혼다의 딜러처럼 되고 싶어요!" 농담이 아니었다. 캐딜락 의 품질이 워낙 떨어져서, 이 딜러는 하루 2교대로 근무하면서 차량 1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정비시설을 운영해야 했다. 반면 혼다의 딜러는 하루 1교대로 20대만을 위한 정비시설을 운영하면 충분했다. 그 딜러는 페로에게 "혼다의 딜러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동차를 팝니다"라고 말했다.
페로는 딜러들을 다루는 GM의 적대적인 태도에 분노했다. 가장 화나는 것은 GM이 딜러들의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 이었다. 페로는 이런 태도를 회사 내외의 모든 미팅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모두가 회사의 문제를 끝도 없이 호소했다. 그들이 보기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었지만, 회사는 그 문제를 적임자에게 맡기고 있지 않았다. 그런 현상은 공장의 생산 현장에서 특히 심했다.
토요타의 직원들은 3개월마다 각 딜러의 영업점을 돌면서 차량의 개선점 과 소비자의 요구에 관련된 목소리를 경청했다. 페로에게는 무척이나 인상적 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생산 현장을 경영하는 방식에 비하면 그 정도의 협력 관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본 업체는 모든 생산과 정을 향상하고 개선하기 위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임직원에게 매달렸다. 1985년까지 토요타가 공장의 생산성을 개선하기 위해 자사 근로자로부터 받 은 아이디어는 1,000만 건이 넘는다. 이처럼 사소한 제조 현장 개선이 누적된 힘은 막강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GM과 똑같은 공장을 훨씬 적은 돈으로 지을 수 있었다. 일단 공장이 돌아가면 GM은 공장 가동률이 60%인 데 반해 일본 회사 들은 90%였다. 관리 단계도 GM은 14단계였지만, 일본은 5단계였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현격히 낮은 가격에 훨씬 더 우수한 자동차를 만들어 냈다. 일본 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운송비를 감안하더라도 그랬다. 레이저 스캐너와 로봇을 갖춘 최신의 미국 공장조차 수명이 20년 된 미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일본 공장에 비해 효율이 떨어졌다. 구체적인 생산 기능을 비교하면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가령, 일본 자동차공장의 페인트 공정은 2%의 불량률을 보이 는데, 미국 자동차공장은 20~30%를 기록했다.
페로는 GM이 공장근로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40년 전 드러커가 지적한 것과 매우 흡사한 내용이었다. 드러커는 GM이 '노동력을 비용이 아닌 자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숙련된 중간 관리자가 많이 부족한 가운데 현장의 공장근로자들이 책임감 있게 문제를 해결해 나갔던 점을 드러커는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다. 전쟁이 끝 난 후 GM은 노동자들의 이런 능력을 활용해 자치적인 공장 공동체'를 조직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그런 방식을 채택한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다. 드러커는 디트로이트에서는 냉대받았을지 모르지만 일본 에서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스미스는 GM 노조와 어떤 형태로든 건설적인 관계 맺기를 포기했다. GM은 딜러들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사의 근로자들에게도 적대적이었다. 스 미스가 그토록 신기술에 집착했던 이유 중 하나는 노사관계를 부정적으로 각한 때문이었다. “우리는 노동으로 많은 비용을 쓰고 있기 때문에 최첨단 : 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의 생각이었다. 스미스는 극소수 외 에는 로봇이 일하는 미래 공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 1980년대 GM 공장은 매우 절망적인 곳이었다. 적개심을 품고 걸핏하면 회사를 비난하는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다. 결근율은 20%에 달했다. 작업 현장에서 술과 마약, 도박, 매춘 등이 횡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이클 무어 Michael Moore가 제작한 1989년 다큐멘터리 <로저와 나(Roger and Me)>에 등장하 는 부반장 프레드는 그런 점을 잘 보여 준다. 영화 내내 가난한 사람들을 강 제 퇴거시키는 일을 맡았던 프레드는, 플린트Flint 시의 GM 공장에서 17년을 근무한 후 퇴사한다. 그렇게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고 누군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감옥 같은 곳이었어. 공장 때문에 내가 다 이상해진다니까."
이렇게 엉망인 공장에서 경쟁력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 낸다는 게 가능했겠는가?
- 나는 이 책 곳곳에서 자기 지위만을 공고히 하려는 이사진과 군림하려는 CEO. 또한 이들을 그냥 보고만 있던 주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벤저 민 그레이엄의 경우, 노던파이프라인의 남아도는 자금을 풀기 위해 록펠러재 단에 열정적으로 간청하고 몇년을 기다려야 했다. 6장에서는 R.P. 쉐러 Scherer 사의 이사진이 최대주주이자 창업자 딸인 칼라 쉐러 Karla Scherer가 이사회 이사가 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시도를 살펴볼 것이다. 페로는 GM의 최대주주이 자 이사회의 이사였지만, 페로 개인이기도 했다. 그는 대중과 언론의 사랑을 받은 연예인과도 같은 억만장자였다. 그런 페로조차 GM 이사회와 경영진을 흔들지 못하자 주주들은 자기들이 괴물을 만들어 냈음을 깨달았다.
1986년 페로의 바이아웃은 기관투자가들의 각성을 촉발했다. 이로써 상장 기업의 지배구조는 즉시 큰 변화를 맞이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방식으로 CEO와 이사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캠퍼스가 스미스 를 이사회에서 몰아내려던 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미약하게 시작했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견고해지고 있던 기관투자가들의 결의가 그것이다. 페로의 바이아웃이 있은 직후 SWIB의 수장은 이렇게 말했 다. "주주들이 계속해서 수동적으로 나오면, 양털이 깎이듯 주주들의 이익도 깎일 것입니다."" 진심이었다. 페로 사건 이후 대형 기관투자가는 더는 호구 가 아니었다. 이로써 기업사냥꾼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고, 주주행동 주의가 확산되어 오늘날 시장을 지배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 미국의 많은 상장기업은 주주와 경영진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사 회는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기관이다. 이사회는 경영진과 주주들의 이해 관계가 같아지도록 하는 일종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이사회는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기도 한다. CEO를 선임하고 중요한 전략적 결정에 자문을 제공하는 일을 맡기도 한다. 이사회는 그 어떤 집단보다 강력하게 기업을 지배한다.
기업의 이사들에게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주주이자 사회의 일원인 우리 입장에서는 이사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사들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이사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수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효율성이 떨어지기가 쉽다.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의무를 살펴보자. 이사회는 경영진을 선임하고 이들이 회사를 잘 꾸려 갈 수 있게 인도해야 하는 동시에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평가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말 로 하면, 이사회는 회사의 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고 그 전략이 잘 수행되는지 책임도 져야 한다는 뜻이다. CEO를 선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이사 들이 회사의 실적을 평가할 때 과연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겠는가? 
- 기업의 이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힘의 역학은 결과적으로 경영진과 이사들 을 가깝게 만든다. 그 결과 이사회가 메워야 할 경영진과 주주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칼라 쉐러가 RP쉐러를 상대로 벌인 싸움은 이사들이 형편없 는 경영진에 권한을 부여하는 여러 방법을 잘 보여 준다. 다행인 것은 우리도 이런 사건을 보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우선, RP쉐러의 이사진 사이에 건강한 반론이 오고가지 못하도록 가로막 은 장벽을 살펴보자. 가장 쉽게 눈에 띄는 문제는 이사회 내에 존재하는 명백 한 금전적 이해관계다. 이사회 의장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큰 보수를 받고 있었다. 이사회 자리에는 회사의 대출은행과 투자은행, 변호사, 최대 납품업자 등이 앉아 있었다. 회사의 CEO와 COO 역시 이사였다. 다시 말해, 11명의 이사진 중 7명이 금전적 이해관계로 크게 충돌하고 있었다. 그 중 3명은 회사에서 직접 상당한 보수를 받고 있었고 나머지 4명은 고객이거 나 거래처였다.
RP쉐러 이사회의 또 다른 문제점은 피터 핑크가 직접 임명한 이사진의 숫자였다. 이사회는 돈과 명성이 동시에 보장되는 자리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이사로 재직하는 것은 큰 영광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CEO가 이사를 선임하 면 실질적으로 CEO 개인이 이사에게 명예와 보수를 주는 꼴이 된다. 경영진 을 객관적으로 감독해야 할 이사진의 권한은 시작부터 타락하는 것이다.
CEO가 이사를 선임하면 이사회에서 자신에게 골칫덩이가 되지 않을 사람 을 뽑으려 한다. RP쉐러의 이사회에 공석이 생겼을 때 칼라는 피터 핑크와 주고받은 대화를 이렇게 기억한다. 핑크는 그 자리에 앉힌 인물에 대해 "마음 이 약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 RP쉐러가 이룩한 1990년대의 대성공은 훌륭한 리더십의 위력을 증명한 것이지만, 상장기업들이 겪는 곤경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왜 RP쉐러의 원래 주주들은 이런 엄청난 성장 잠재력에 동참할 수 없었던 것일까? 왜 회사 는 25년 동안이나 형편없는 리더십에 놓여야 했으며, 훌륭하기 그지없는 핵 심 사업을 내팽개치고 연이은 악성 기업인수를 해야만 했는가? 회사를 경영 진의 손아귀에서 빼내 정당한 가격을 받고 매각한 칼라는 주주들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칼라가 어들젠이나 그에 버금가는 누군가를 영입해 서 RP쉐러를 맡길 수는 없었을까?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 알렉스 어들젠의 생각이다. "피터 핑크는 CEO직을 좋아했습니다. CEO로서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지만요. (...) 그로스포인트 친구들은 전부 다 이사회에 모아 놓고 말입니다"라고 어들은 말한다. 그는 주인이 있는 회사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사모펀드가 잘하는 일이 있 다면 그건 바로 기업 지배구조입니다. 자기들 돈을 걸었습니다. 곤란한 질문 도 서슴없이 던지고 사업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필요한 조치도 취하지요. 이사회는 가야 할 사람을 내보내는 데 너무 긴 시간을 허비합니다. 형편없는 CEO를 물러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 불행히도 칼라로서는 회사를 매각하는 방법 말고는 주주들을 설득할 방법 이 없었다. 칼라가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주주들에게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려면 피터 핑크와 다른 이사진으로부터 회사를 빼내 매각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경영진을 해고하려고 시도 했더라도 투자자들로부터 그다지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칼라는 선친이 세운 회사에서 매우 기이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저조한 실적에도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는 이사회로부터 회사를 지키기 위해 자신 은 물론 다른 주주들의 몫인 장래의 성장과 이윤을 포기해야만 했다.
로버트 쉐러가 회전식 금형 기계를 발명한 지 8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의 기술은 여전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로버트가 세운 회사는 이제 캐털 런트Catalent의 일부로 여전히 성장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 어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연질 젤 기술을 과소평가한 이유가 있지 요.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서 특허만 본 거예요. 그것보다 더 가치 있 는 것이 노하우라는 사실을 잘 모른 겁니다." RP쉐러의 사업은 대단한 것이 었지만 경영진은 그 가치를 몰라봤다. “그들은 형편없는 경영진이었습니다. 형편없는 경영진은 형편없는 결정을 내리는 법이지요.'
- 벤저민 그레이엄은 《현명한 투자자》를 마무리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가 장 사업처럼 하는 투자가 가장 현명한 투자다." 투자자는 주식을 통해 부분적 으로나마 기업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그레이엄의 생각으로 자주 인용 되는 문장이다. 그러나 그레이엄이 말하고자 한 것은 그것 이상으로, 진정한 투자 철학을 선언한 것이다. 즉, 투자자가 주식을 사는 행위는 회사를 부분적 으로 사는 것이므로, 투자자는 마치 내 사업을 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따라서 빼어난 수익을 내려면 투자와 관련된 모든 요소에 사려 깊은 사업가의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 한쪽에서는, 주당 의결권이 하나인 많은 상장기업이 이 구조 때문에 주주행 동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회사가 설립자에 게 복수의결권이 있는 종류주식을 제공함으로써 기업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는 길을 택한다. 그 결과 구글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은 엄청난 현금을 쌓아 두 고 스페이스엑스Space x 같은 회사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도 주주행동주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명실공히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기업 가운데 하나인 구글애드워즈 Google AdWords의 주주들은 성장에 동참하기 위해 관리감독권을 회사에 넘기는 길을 택했다. 회사와 주주의 관계를 무엇보다 신뢰에 기반을 둔다는 취지다. 이제 까지 투자자들이 받은 보상은 엄청났다. 구글이 안드로이드와 유튜브를 사들 일 때 눈살을 찌푸린 주주도 있었지만, 인수합병 결과는 대성공으로 드러났 다. 하지만 이 같은 선의의 독재가 어떻게 판가름 날지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흥미로울 것이다. 이미 구글은 종업원들에게 준 후한 자사주와 옵션으로 의 결권 주식이 희석되자 설립자들에게 지배권을 다시 몰아줌으로써 일반 주주들과 맺은 약속을 저버렸다. 이 주주들이 회사를 언제까지 믿을 것인가?
- 주주행동주의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주주행동주의는 기업 지배구조라 는 정원 한가운데 심어져 지난 100년간 깊이 뿌리를 내렸다. 계절 따라 변하 고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기도 했다. 하지만 주주행동주의의 핵심 원리는 간단하다. 35년 전 칼 아이칸이 지적했듯, 상장기업 자산이 경매 시의 입찰가격보다 싸거나 다른 경영진이 운영할 때보다 저렴하게 거래되면 차익 거래 기회가 존재한다. 벤저민 그레이엄 시절, 주식시장은 노던파이프라인의 가치를 투자증권의 청산가치보다 훨씬 낮게 평가했다. 오늘날 많은 주주행동 주의자는 동종 업계에 비해 경영이 부실하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공격 대상으 로 삼는다. 이 방법은 BKF캐피털에서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순식간에 소유와 경영을 건전하게 분리하는' 로버트 채프먼의 접근법은 여전히 유용한 투자 전략으로 남아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상장기업 지배구조의 약점을 이용해 엄청난 성과로 연결 할 수 있다. 이사회와 경영진은 주주행동주의를 무력화하려면 아이칸의 말처 럼, 차익거래 기회를 없앨 만큼 충분히 성과를 개선해야 한다. 
- 상장기업에서 참사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관심한 주주, 열심히 일하지 않는 이사, 초점을 잃은 경영진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만성적 책임 부재 및 관리감독 결여가 누적되어 참사로 나타난다. 주주행동주의자들은 이런 상황 을 이용해 이익을 챙긴다. 즉, 비효율적인 경영진을 먹이로 삼고, 회사와 다 른 주주들에게 득이 되는 방식을 취한다. 본문에서 살펴보았듯이, 주주행동 주의자들은 기회를 잡았다 싶으면 무관심한 주주들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 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주행동주의자들이 모든 주주를 위해 가치를 창출한다고 떠들지만, 그들의 속셈은 자신과 재정적 후원자들의 이익을 챙기 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