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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몸을 챙깁니다

dalai 2023. 3. 17. 12:18

- 만성피로가 일반 피로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현재의 일 때문에 생긴 피로가 아니며, 휴식으로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입 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피로'와 '피곤'이라는 단어를 섞어서 사용하지만 두 단어 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피로疲勞)는 에너지가 일 시적으로 고갈된 상태를 말합니다. 말 그대로 일을 많이 해서 지친 것입니다. 그에 비해 '피곤)'은 '괴로울 곤(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지친 것을 넘어 괴롭다'라고 할 만큼 피로가 축적된 상태를 말합니다. '곤困)'이라는 글자처럼 마치 큰 나무가 작은 화 분에 갇혀 있는 것처럼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죠.
피곤은 피로보다 심하고 만성화된 상태로 '과'에 '억압'이 더해 질 때 나타납니다. 즉, 피로를 느끼고 쉬고 싶은데 제때 제대로 쉴 수 없고 계속 일을 해야 할 때 우리는 피곤해집니다.
- 보통 고강도 운동을 시작하고 40~50분이 경과하면 우리 몸에는 젖산과 같은 피로 물질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피곤과 통증을 느끼는데, 우리 몸에서는 이를 완화하 기 위해 '베타-엔돌핀'과 '아난다마이드'라는 물질이 분비됩니다. 마약 성분과 비슷한 천연 마약이라고 할까요. 베타-엔돌핀은 직접적 으로 쾌감을 주고, 아난다마이드는 뇌의 도파민 회로에 간접적으로 작용해 쾌감을 고양시킵니다.
즉, 격렬한 운동을 하면 우리 몸은 고통을 느끼고, 이때 베타-엔돌핀과 아난다마이드가 분비되어 진통 효과와 함께 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운동 중독자들은 이 쾌락 물질을 탐닉합니다.
문제는 운동 중독 역시 다른 중독처럼 내성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소주 한 병 정도면 기분이 좋았던 사람이 알코올 중독이 되면 점점 내성이 생겨 두 병, 세 병으로 자꾸 음주량이 늘어납니 다. 이처럼 운동 중독 역시 내성이 생깁니다.
결국 스스로 몸을 해치는 정도까지 운동을 해야만 비로소 쾌감 을 느끼는 상태가 됩니다. 중현 씨는 이를 자기 극복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극복이 아니라 중독입니다.
- 한자로 '장'이라는 말은 소화기관인 '창자' 즉, 소장과 대장을 말합니다. 그러나 한자 사전을 보면 놀랍게도 '마음'이라는 뜻이 함 께 있습니다. 창자가 곧 마음이라니요?
이때 마음이란 몸과 유리된 마음이 아니라 몸에서 우러나는 참 된 마음을 뜻합니다. 즉, 속마음을 말합니다. '腸'은 '속마음 충)'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형식적이거나 건성으로 하는 이야기에 대해 '영혼 없는 말'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사실 '몸에 없는 말' 혹은 '창자에 없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몸과 괴리된 채 머리로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점점 생각으로 빠져듭니다. 특히 인간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느냐,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따라 몸과 정반대의 판단과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몸은 상대를 거부하는데도 반갑다며 웃고, 몸은 배가 고픈데도 '배 안 고파'라고 이야기하고, 몸은 피곤한데도 '재밌어'라고 합니다. 물론 관계를 위해 이 정도의 표현은 거짓말이라기보다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로 살아가는 게 익숙해지면 우리는 점점 몸의 느낌과 감각을 잃어버리고 생각이나 표현을 자신의 감정으로 착각합니다. '열정적으로 살아야 해'라는 강박을 진짜 열정이라고 착각하고, '이 정도 조건이면 행복하지'라는 생각을 진짜 행복이라고 착각합니다
- 왜 자신의 욕구를 잘 모를까요? 그것은 사회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감춰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직장인들은 속마 음을 감추고 표정을 관리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감정 억압이 지속되면 감정 지각 능력은 크게 떨어집니다. 그것은 무난한 직장생활을 보장해 주지만 반대로 자신이 무엇을 좋 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려주는 감정에 대한 자기 이해 기능까 지 퇴화시키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노처럼 조직 생활에 영향을 주는 감정만 참았다 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감정은 선택적으로 억압되지 않습니다. 불쾌 한 감정을 누르면 불쾌한 감정만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유쾌한 감정 도 함께 억압되게 마련입니다. 화를 억누른다면 기쁨도 잘 느낄 수 없는 법입니다.
- 감정 억압은 몸의 억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몸으로 전해 오는 감정의 신호들, 즉 신체감각을 차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 므로 감정 억압이 큰 사람들일수록 신체감각을 지각하는 능력이 떨 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호흡이나 심박동의 변화, 근육의 긴장, 몸의 열감 등 신체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잘 인지하지도 분류하지도 못합니다.
- 우리 뇌에는 이 통합과 균형 역할을 해주는 부위가 있습니다. 바로 '부변연계(para-limbic area)'입니다. 부변연계란 해부학적으로 '이성의 뇌'라고 할 수 있는 대뇌피질과 '감정의 뇌'라고 할 수 있는 변연계 사이에 있는 구조물입니다.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상체와 하 체를 잇는 허리에 해당합니다. 허리가 튼튼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부변연계가 튼튼해야 뇌의 각 부위가 유기적으로 연결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변연계의 주요 구조물은 '대상회'와 '섬'입니다. 특히 전방 대상회는 '이성의 뇌'인 전두엽을 도와서 충동 조절, 판단 능력, 목적 지향성 같은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실행합니다. 동시에 '감정의 뇌'인 변연계를 도와 감정 처리와 조절에 영향을 줍니다. 즉, 대상회가 건강하면 감정 조절이 잘 이루어지고 생각과 감정의 조화를 이 룰 수 있습니다.
- 실제 많은 정신 질환의 경우 이 대상회의 기능에 이상을 보입니다. 그렇기에 역으로 대상회의 기능 회복은 치료의 경과를 알려주 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렇다면 부변연계의 섬엽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섬엽은 한마디로 '신체 자각의 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섬엽은 내장기관을 포함한 몸의 감각을 총괄함으로써 몸과 머리 즉, 말초신경과 중추신경을 연 결합니다. 그렇기에 몸과 마음의 연결은 섬엽이 잘 기능할 때 가능 하며, 주의를 기울여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은 섬엽을 활성화시키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섬엽은 뇌의 외측 틈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피질 부분으로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에 의해 덮여 있습니다. 영어 명칭 'insula'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섬(island)'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는 뇌의 많은 영역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섬이라기보다 는 국제공항 같은 허브 역할을 합니다.
섬엽은 몸의 곳곳에서 전달되는 감각과 통각 신호를 받아들이고, 이를 서열화하여 중요한 신호를 대뇌피질로 연결하여 판단과 결정 이 내려지도록 합니다. 이 섬엽으로 인해 우리는 몸의 내적 감각을 지각하고, 아픔이나 불편을 느끼고, 이러한 감각에 기초하여 자신 의 감정을 느끼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섬엽이 받아들이는 몸의 신호는 다양합니다. 심박동, 호흡, 근육의 긴장뿐 아니라 위장이나 대장의 움직임 역시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 러므로 만약 섬엽의 기능이 떨어진다면 우리는 신체감각이나 통증 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 환자들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몸으로 자꾸 떠오르기 때문에 몸의 감각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에 비해 섬엽의 활성도가 낮습니다. 문제는 몸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역시 점점 섬엽의 기능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뇌의 각 부위를 연결하고 몸과 머리를 통합시키는 부변연 계는 주의 집중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의 집중력을 전등에 비유하면 부변연계는 그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항상 집에 불을 켜놓지 않는 것처럼 우리 뇌는 24시간 주 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자극이나 집중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만 주의 집중력의 불이 켜집니다. 그렇다면 전구를 켜고 끄는 스 위치처럼 우리 뇌에도 주의 집중력의 스위치가 있겠지요. 그 스위치를 '현저성 신경망(salience network)'이라고 하는데 이 신경망의 주 요 구조물이 바로 부변연계의 대상회와 섬입니다.
- 주의력이 뛰어난 사람은 이 스위치가 잘 작동하기에 뇌가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하고, 뇌가 쉬어야 할 때 잘 쉽니다. 그러나 우울증이나 불안증처럼 주의 집중력에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러한 제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실제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는 깨어 있는 시간의 30~50퍼센트 동안 집중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생각에 빠지는 것으로 조 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집중하지 못하고 분주하게 움직이 는 상태를 '심리적 방황(mind wandering)'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우울증이나 ADHD 환자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뇌도 점점 심리적 방황 이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의 부변연계는 약화되고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부변연계에 쉴 틈을 주지 않는 과도 한 자극과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입니다. 둘째는 몸의 억압 때문입 니다. 몸을 잘 사용하지 않고 몸을 잘 느끼지 않는 현대인의 생활은 몸의 감각을 떨어뜨리고, 이와 관련된 섬엽과 부변연계의 기능을 약 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건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 몸의 감각을 깨워 부변연계를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 만약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오염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계속 다른 생각에 빠지고, 운동을 하면서도 회사 일을 걱정하고, 일을 하려고 책상 앞 에 앉아 있지만 공상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몸챙김과 마음챙김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모두 마 음이 지금 이 순간의 경험에 머무르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그 '이 순간의 경험'은 몸의 신체감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지 기 때문에 몸챙김이란 말은 그 의식의 주의점이 어디인지 보다 명확 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몸챙김은 생각이나 감정 혹은 외부의 자극 이전에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게 그 초점입니다. 이러한 몸챙김은 당연히 비판단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명확한 초점으로 인해 '알아차 림'의 힘을 길러내는 데 효과적입니다.
- 결국 몸을 챙기는 것은 마음을 챙기는 것이고, 삶을 챙기는 것이 됩니다. 심리 치료사이자 요가 지도자인 스티븐 코프(Stephen Cope)는 자신의 저서 『요가, 그리고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한 탐구 (Yoga and the Quest for the True Self)』에서 몸과 마음의 연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몸과의 본능적인 연결이 다시 이루어지고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면, 자기 자신을 열심히 사랑할 줄 아는 새로운 능력이 생긴다.
자기 몸을 돌보는 진정성 수준이 달라지면 건강 상태와 식생활, 몸 의 에너지, 시간 관리 방식에 대한 관심도 달라지고 재설정된다. 자신을 더욱 잘 돌보게 만드는 이 변화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자신을 돌볼 때 찾아오는 즉각적이고 본질적인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 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끊어져버린 '지속적 긴장 상태'가 현대 인의 몸과 마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일도, 사랑도, 공부도, 노는 것도, 모든 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 다. 그렇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힘을 빼는 것은 잘 하지 못합 니다.
이는 몸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몸은 긴장과 이완을 하게끔 되어 있지만 생각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이완이 안 되는 것입니다. 몸에 긴장이 많은 이들은 지나치게 엄격 한 생각이나 기준, 그리고 과도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 니다.
이들의 마음은 흔히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몸을 짓누릅니다. 몸은 어떤 일 로 인해 긴장했다면 그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이완하게 되어 있는데 이런 마음은 몸의 순환을 깨뜨립니다.
- 몸의 불필요한 긴장을 빼고 이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훌륭한 보호 장치가 됩니다.
시간을 돌아보세요. 당신에게 가장 편안했던 장면을 찾아보세요.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그곳에 있다고 느껴보세요. 그리고 그 편안한 느낌이 생생해질 때 몸과 약속의 몸짓을 만들어보세요. 마 지막으로 몸에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몸아! 내 마음이 힘들 때 지금 이 편안한 느낌이 저절로 떠오를 수 있도록 도와줘."
- 정신과에 오는 분들은 단지 고통이 커서가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을 위로하고 돌볼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를 위로하기는커녕 자신을 미워하고 비난합니다. 이들은 단 한 번도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본 적이 없으며, 생각은 있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불친절한 이들은 심리적 면역력이 결핍되어 작은 고통 앞에서도 쓰러지고 맙니다.
어른은 스스로 돌볼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은 고통 속에 있는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커간다는 것을 말합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친절을 능동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이는 가장 먼저 몸을 향해 드러나야 합니다. 무엇보다 몸이 힘들거나 아 플 때 따뜻한 관심과 친절을 베푸는 것이 시작입니다.
따뜻한 말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마치 친구의 병문안을 가서 손을 잡고 위로하는 것처럼 불편한 내 몸에 손을 얹고 몸이 건 강해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라도 좀더 관심을 가 지고 몸을 잘 돌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를 문장으로 만들어 자기 친절의 문구를 표현하는 게 좋습니다.
- 만약 당신이 위염 증세로 인해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쓰리다고 해봅시다. 그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 위장이 편안하기를................"
"내가 내 위장을 잘 돌볼 수 있기를................"
지금 당신의 몸에서 고통을 느끼는 곳은 어디인가요? 그 부위에 손을 얹고 친절의 문구를 말해 봅시다.
이때 다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왜 몸을 돌 보지 않았어'라는 질책이 아니라 '이제 내가 잘 돌볼 수 있기를'이라 는 격려입니다. 진정한 치유란 자신의 몸을 수단화하고 억압했던 태 도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보고 아낄 때 일어납니다.
- 만약 그런 긴장된 상황에서 걷기를 한다면 어떨까요? 걷기는 효 과적인 스트레스 대처 방법입니다. 특히 감정이나 긴장 과잉의 상태 에 놓일 때 걷게 되면 과각성된 감정 회로가 신체의 운동 회로와 연 결되어 일종의 방향 선회 역할을 합니다. 걷기가 '감정의 우회로' 역 할을 함으로써 감정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질 때 서성거리는 것은 긴장을 발산시키려는 우리 몸의 자동 방어 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성 거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걷는 것입니다. 불안할 때만이 아니라 분노나 슬픔을 느낄 때도 그렇습니다.
- 걷기는 우리의 감정적 에너지들을 신체의 운동 회로로 배출해 줍니다. 마치 걷기는 욕조 배수구의 마개를 여는 것과 같습니다. 걷게 되면 마음속에 갇혀 있는 꽉 막히고 답답한 감정들이 빠져나갑니 다. 어지러운 생각들은 이내 잦아듭니다.
사실 걸을 때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별로 없습 니다. 심각한 고민이라도 걷게 되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고,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그것은 걷기가 뇌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걷기를 통 해 감각과 운동의 뇌가 활성화되면 과잉 활성화되어 있던 감정의 뇌와 사고의 뇌는 진정됩니다. 다시 말해 과도한 스트레스나 고민이 많은 상태란 감정이나 사고 등 뇌의 한 부위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때 걷기는 한쪽에 편재되어 있는 뇌 활동의 흐 름을 바꾸어줍니다.
즉, 걷기는 뇌 전체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고여 있던 우리 마음을 다시 흐르게 합니다. 우리 몸이 앞으로 나아가면 우리 마음도 앞으 로 흘러갑니다.
이렇듯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의 고통과 스트레스에 대한 응급 조치가 됩니다. 가만히 앉아서 힘든 감정과 복잡한 생각을 맞서 싸우려하기보다 일단 몸부터 움직여보세요. 몸의 변화는 당신의 생각과 느낌에 영향을 줍니다.
- 감정과 충동이란 가만히 있으면 강해지고, 이를 없애려고 하면 더 반발하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감정과 충동도 따라 서 움직이게 됩니다. 의식적인 움직임은 뇌의 익숙한 회로를 우회하 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냄으로써 충동과 감정을 조절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무언가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한 경우에도 몸을 움 직이면 좋습니다. 생각이 꽉 막혀 있을 때에 가장 먼저 할 일은 몸 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기가 어렵다면 다른 방으로 이동합 니다. 몸을 움직이고 공간을 바꾸는 것은 우리 뇌에 환기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이러한 감정 관찰의 핵심은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바늘과 실처럼 감정이 있는 곳에는 몸의 감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마음이라고 하지만 감정은 기본적으로 몸의 경험입니다. 감각의 변화 양상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게 감정입니다. 이렇게 감정이 올라올 때 감각을 관찰하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감정이 동요될 때 흔히 호흡은 짧아지고 불안정해집니 다. 이때 내가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호흡을 관찰하게 되면 어떻 게 될까요? 짧았던 호흡이 자연스럽게 길어집니다. 이렇게 길어진 호흡은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켜 편도체의 흥분을 감소시키고 몸을 안정시킵니다.
이렇게 몸의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의식을 변화시키거나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을 상향식 조절방식이라고 합니다. 호흡법이나 근육 이완훈련은 대표적인 상향식 방법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은 전통적으로 하향식 조절 방식을 선호해 왔습니다. 감정이나 생각을 다루어 마음이나 뇌를 변화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양방향의 접근이 모두 필요하고, 즉각적인 효 과를 위해서는 상향식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몸을 통해 마음에 접근하는 것이 수월하고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 원래 라벨링 기법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간단하게는 "나는 화가 났어" "나는 슬퍼" "나는 지금 불안해”라 고 감정의 이름만 붙여도 감정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전두엽은 활성화되고 우리는 내적 경험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즉, 감정에 빠져들어 감정을 사실로 받아들이거나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에 브레이크를 걸어, 내적 경험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줍니다.
- 외상적 기억은 일반적 기억과 달리 망각이 되지 않습니다. 날이 바뀌고 새로운 일이 벌어져도 외상적 기억은 뒤로 밀려나지 않고 마음의 중심에 고스란히 머무르고 떠오릅니다.
이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억의 저장 방식부터 다릅니다. 외 상적 기억은 일반적 기억과 달리 뇌의 해마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미처 해마로까지 전달되지 못한 채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체와 몸에 저장됩니다. 이는 몸으로 떠올려지는 암묵적 기억이고 파편적 기억 이기에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6하원칙에 맞춰서 말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 트라우마는 중추와 말초 신경계, 근육, 내장기관, 호르몬 시스템 등 온몸에 각인되어 호흡, 동작, 감정, 생각, 표현, 관계, 사회적 행동 등 몸으로 행하는 삶의 전면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즉,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생겨난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 제대 로 방출되지 못하고 신경계에 각인된 상태가 바로 트라우마입니다. 그러므로 트라우마는 심리적 충격이자 동시에 신체적 충격입니 다.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몸으로 떠오르는 트라우마의 고통에서 벗 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몸의 억압입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이들은 몸을 느끼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공상에 빠지고, 과도한 지식과 논리에 사로잡히고, 술이나 약물로 감각을 마비시키고, 억지로 잠을 안 자고 멍한 상태로 있으려고 합니다.
- 여러 실험에 의하면 바른 자세와 구부정한 자세를 취할 때 떠오르는 생각의 내용이 다릅니다. 대부분 바른 자세를 취할 때는 행복하고 낙관적인 생각을 떠올리기 쉬웠다고 응답했고, 반대로 구부정한 자세를 취할 때는 안 좋은 일이나 비관적인 생각을 떠올리기 쉬 웠다고 합니다.
리스킨드는 이러한 현상을 몸과 마음의 '일치(congruence) 현상'이 라고 불렀습니다. 즉, 자세와 생각이 동기화된다는 것입니다. 자세가 움츠러들면 생각도 부정적으로 되고, 자세가 펴지면 생각도 확장되 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실험 결과,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몸의 자세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우리 몸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몸을 건드리면 마음이 건드려집니다. 몸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 음식에 탐닉하는 사람들의 뇌를 영상 촬영해 보면 약물이나 알코 올 중독자와 유사한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뇌의 보상 시스템에 관여하는 배쪽 줄무늬 체와 배후 선조체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됩니다. 이러한 쾌미 음식, 특히 단 음식은 기분을 좋게 하는 도파민이나 베타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기 분을 나아지게 합니다.
과연 이 기분 좋은 느낌은 얼마나 갈까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학 심리학과 로버트 테이어 교수는 1987년도 성격과 사회심리학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사탕이나 초콜 릿을 먹고 나서의 감정효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 사람들은 단 음식을 먹고 난 후 바로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지만, 한 시간이 지나자 감정은 오히려 먹기 전의 수준 아래로 떨어지고 오히려 긴장감이 증가하였습니다. 기분이 나 빠서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술이 깨고 나니 기분이 더 나 빠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의 좋은 기분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잠시라도 힘든 상태를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약 중독자들이 그 찰나의 황홀함을 끝내 잊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진짜 위로보 다 즉각적으로 기분을 바꿔줄 수 있는 눈앞의 위로를 원합니다.
그리고 중독자가 아니라 애주가라고 합리화하는 술꾼처럼 우리 는 음식 중독을 부정합니다. '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어쨌든 음식은 잠시라도 기분을 나아지게 하잖아' '먹는 게 나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라며 점점 더 깊은 물속으로 빠져듭니다. 음식 외에는 별로 삶의 낙이 없어지고, 혀의 즐거움만을 쫓아 결국 건강 이상을 일으키게 됩니다.
- 요리 수필가인 피셔(M. F. K. Fisher)는 인간은 자라면서 음식 선호에 대한 전형적인 변화의 패턴이 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음식에 대한 집착을 덜 하게 되고, 음식을 음미하는 능력을 터득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음미'란 맛을 느끼며 음식을 먹는 것뿐 아니라 맛을 느 끼는 감각기관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 은 혀의 맛으로만 음식을 먹는다면 나이 들수록 몸의 느낌을 감안 하며 음식을 먹게 됩니다. 스스로 위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 양 을 조절하거나, 혀 이외에도 음식이 몸에 주는 느낌을 중요하게 여 기거나, 음식의 영양소를 감안하며 먹는 것입니다.
-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좋은 잠을 잡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정신없이 깊은 잠을 잡니다. 그러나 40대가 넘어가면서부 터는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서 전체 수면 시간도 짧아지고 자주 깨 기 시작합니다. 아이들과 달리 생각과 고민이 많아지면서 긴장이 잘 해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잠의 깊이가 얕아지는 것은 정상적인 과정입 니다. 그렇기에 불면증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놓인 상황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나이든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 잠이 잘 안 오거나, 깨어난 뒤로 멍한 느낌이 가시지 않으면 사람 들은 잠을 잘 자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잠을 잘 자야 한다'는 생각이나 노력은 수면의 질을 더욱 떨어뜨립니다. 만일 당신 이 '오늘은 열 시에 잠들 거야'라고 계속 생각하고 주문을 외우면 열 시에 잠이 들까요? 결심한다고 해서 일찍 잠들 수 있다면 수면제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의지로 깨어날 수 있지만 의지로 잠들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정 수준에서 각성은 의지로 가능하지만 수면은 긴장이 풀어지고 이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계속 '잠을 자야지, 잠을 자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이완을 방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꼭 자야 한다는 생각이 클수록 '잠이 안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이 커지고 이는 불면을 악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잠을 잘 자려면 생각을 멈추고 힘을 뺄 줄 알아야 합니다.
-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차이는 이동성입니다. 그렇다면 왜 동물은 이동할 수 있고 왜 식물은 이동할 수 없을까요? 무엇이 동물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할까요?
물론 '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 본다면 발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신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뇌와 같 은 신경계가 있고 식물은 없습니다.
우리는 뇌의 기능을 떠올리면 먼저 '생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 다. 하지만 뇌의 기원은 이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뇌가 만들어진 것은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 잘 이동하기 위해서입니다. 수중생물인 멍게를 볼까요. 멍게는 헤엄쳐 다니는 유생 시기에는 '원시 뇌'라고 할 수 있는 신경절이 있습니다.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바위에 붙어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바위에 붙은 멍게는 스스로 자신의 뇌 를 먹어버립니다. 입과 항문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뇌가 퇴화하는 것은 생각을 안 해서라기보다 움직이지 않아서입니다. 움직임이 줄어들면 뇌는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랭거는 실험에 참여한 84명의 호텔 청소 노동자를 절반으로 나누 었습니다. 그리고 A그룹에게는 그들의 노동에 따른 열량 소모를 알 려 주었습니다. 객실 한 곳을 청소할 때마다 행위 별로 얼마나 열량 이 소모되는지를 설명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15분 동안의 시트 교 체는 40칼로리, 청소기 돌리기는 50칼로리, 욕실 청소는 60칼로리 가 소모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B그룹에게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하던 일을 그대로 하게 했습니다.
4주 후, 랭거 박사는 두 그룹의 건강 상태를 다시 비교해 보았습 니다. 물론 두 그룹이 하는 일은 실험 전과 동일했습니다. 어떻게 되 었을까요? 설명을 들은 A그룹의 청소원들은 혈압이 10퍼센트 감소하고, 체중이 1킬로그램 이상 감소했으며, 허리 대 엉덩이 둘레 비율도 유의미하게 감소했습니다. 일상의 움직임 또한 운동이 될 수 있 음을 인식하자 일상의 활동이 운동 효과를 발휘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실험 결과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습관적 움직임과 의식적 움직임의 차이입니다. 똑같은 시간 몸을 움직이 더라도 의식적인 움직임과 습관적인 움직임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의식적인 움직임은 스스로 움직임을 자각하는 상태로 운동과 관련된 뇌 영역뿐 아니라 신체감각 그리고 인지와 관련된 뇌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시킵니다. 그에 비해 습관적인 움직임은 대뇌피질의 의식적 경로를 거치지 않고 피질 아래의 기저핵에서 자동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매일 출퇴근을 하느라 30분씩 걷는다고 해봅시다. 그 시간 동안 움직임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며 습관적으로 걷는다면 이는 운동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몸과 자세에 주의를 기울여 걷는다면 운 동 효과도 좋을 뿐 아니라 인지능력 또한 개선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운동 시간이나 운동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자각하며 운동하는 것입니다.
- 몸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 몸은 자기 과시, 자기 위로, 자기 처벌의 도구가 됩니다. 스트레스가 과도한 사회에서 몸은 이를 받아내는 쓰레기통이 되고 맙니다. 도구로 전락한 몸! 은밀한 자해가 행해지는 몸! 지금 우리가 몸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할 또하나의 이유입니다.
- 외모에 대해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수록 외모만 바뀌면 모든게 해결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들은 흔히 자기가 외모 때문에 자존감이 낮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착각입니다. 이들은 몸의 부족함 때문에 부정적인 자 아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자아상 때문에 몸의 부족 함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몸의 존중감에 바탕을 두지 않는 자존감은 허구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고유의 몸이 그 모습 그대로 기능하고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몸 존 중감'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몸을 가꾸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화장을 하지 말 고 몸매에 신경 쓰지 말고 성형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외모 에만 신경을 쓰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몸 전체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외모로 좁아지고 있는 미의 기준을 좀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몸을 느끼고 돌보고, 몸과 함께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삶의 평화와 행복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바꿀 때 얻어지는 것 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끌어안을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내 몸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몸 존중감입니다. 내 몸을 받아들 이면 내 몸과 친해지고, 내 몸을 잘 이해하고 잘 돌볼 수 있게 됩니 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음도 관계도 삶도 풍요로워집니다.
- 늙고 병든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성격 탓이 아닙니다. 사회의 문제입니다. 효율성과 유능함을 중시하는 사회에 서 늙음과 질병은 무능과 무가치를 의미합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 게 오래 사는 것만을 원하는 사회에서 질병과 늙음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인생 과정으로 자리 잡을 틈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성공적 노화'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이 성공이고 병들어 늙 어가는 것은 실패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몇 퍼센트의 노인들이 아프 지 않고 활기차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이를 과연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렇듯 자신의 몸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 사회 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고 병들어가는 몸을 받아들일 수 없습 니다. 존중은커녕 연민을 느끼기조차 어렵습니다. 스스로 폐품이라고 여기고 치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노인자살률이 그렇게 높은지 모릅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늙어 보이지 않고 아프지 않으려 고 버둥거립니다. 아픈 것조차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면서 자신 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 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감에 강하게 저항합니다. '웰에이징(well aging)'이 아니라 '안티에이징(anti aging)'을 원합니다.
그러나 몸의 질병과 쇠락은 우리의 의지 밖에 존재하며 아주 자 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입니다. 우리에게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 다는 말은, 아프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얼마든지 아플 수 있고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적어도 이를 개인의 무능함으로 바라보는 잔혹한 시선은 거두어야 합니다.
- 우리 중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성공적인 노화를 할 수 없습 니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은 망상에 가까우 며 대부분은 병에 걸려 늙어가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죽 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출생부터 죽음까지 인간의 삶은 직선이라기보다는 원에 가깝습니다. 손가락 하나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태어 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두 발로 세상에 서서 살아가다가 나이 들면 또다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죽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사회란 어떤 곳일까요? 질병과 늙음이 머물다 갈 자리를 내어주고,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존중하고 연민의 마 음을 품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요?
-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머무르는 것이 바로 '바디풀니스입니다. 이는 작은 변화가 아닙니다. 몸에 마음이 머무르면 연쇄 효과가 나타납니다.
몸이 깨어나고 몸이 경험에 참여하면 우리는 더 깊이 느낄 수 있 습니다. 여행을 가서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먹어보지 못한 음 식을 먹어서도 아니고, 특급 호텔에 묵어서도 아니고, 숨이 막힐 것 같은 비경을 봐서도 아닙니다. 사소한 경험 하나하나도 깊이 있게 체험하도록 몸의 감각이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나라의 골목길 하나하나, 낯선 이와의 짧은 동행, 허름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이름 없는 시 장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 만약 일상에서 감각이 살아난다면 우리는 똑같은 일상이라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따뜻한 봄 햇살, 무더운 여름날의 한 줄기 바람, 형형색색 물들어가는 가을 숲, 소복이 쌓이는 겨울 눈길을 걸 으면서도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의 감각이 죽 어 있다면 아무리 비경을 보고, 진귀한 음식을 먹어도 행복할 수 없 습니다.
몸이 깨어나면 똑같은 경험이라도 우리는 더 깊이 경험합니다. 몸 내부의 감각이 깨어나면 몸 외부의 감각도 깨어납니다. 경험에 수반 되는 감각적 변화와 정서적 움직임을 다각적으로 체험하고 만끽함 으로써 그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몸의 감각이 깨어나면 길가에 핀 이름 없는 꽃을 보며 경탄할 수 있고, 매일 하는 요리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심취할 수 있습니다.
- 물론 아무리 친한 사람이더라도 다투고 나면 얼굴도 쳐다보고 싶 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라면 등을 돌리고 자거나 각방을 씁니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상해 있을 때에도 우리 몸은 상대의 몸을 원합니다. 살갗과 살갗이 닿기를 바라고, 눈과 눈을 마주하기 를 바라고, 손과 손을 맞잡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몸은 혼자 잘 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접촉을 원하고 깊이 연결될수록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 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은 다른 사람 과의 신체 접촉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혼자 살아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 시대에도, 인공지 능과 사랑에 빠지는 새로운 문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에도, 우 리의 몸은 여전히 누군가의 몸을 원합니다. 인간은 평생 동안 자신의 몸을 기대고, 자신의 몸과 맞닿을 다른 이의 몸을 필요로 합니다.
- 흔히 사람들은 생각을 깊이 하는 데서 지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 다. 하지만 더 큰 지혜는 머리가 아니라 우리의 몸에 있습니다.
분석적인 사고를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감각 을 '육감(感)'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이성적인 감각이 아니라 동물적 감각에 가깝기에 '육감(感)'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머리 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실제 영어로 육감은 장을 뜻하 는 'gut'을 넣어 'gut feeling'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장을 소화기관 정도로 보지만 장은 신체 기관 중에 뇌의 신호를 받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독보적인 기관입니다. 장은 그 자체로 장신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장에 있는 신경세포 수는 약 5천 만~1억 개로 이는 척수의 신경세포와 맞먹습니다. 게다가 면역체계 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20여 종 이상의 호르몬을 생산합니다.
- 이렇게 장은 중요한 신체기관이지만 주로 의식 수준 아래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시각각 내외부의 상황을 감지하는 장의 감각은 섬엽을 거쳐서 우리의 감정을 형성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안내해 줍니다. 사실 몸과 뇌 혹은 몸과 마음을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 니다. 두뇌뿐 아니라 몸 전체가 거대한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의식은 몸 구석구석에 뻗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몸은 그냥 몸뚱이가 아니라 의식과 지혜를 가진 몸입니다.
-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깨어난 자, 터득하고 있는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 체일 뿐, 그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에 깃들어 있 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고.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며,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 가축의 무리이자 목자이다.
- 니체는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정신은 작은 이성에 불과하고 신체야말로 큰 이성이라고 꾸짖듯 이야기합니다.
서양의 학문에서 오랫동안 몸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에는 불멸성과 완전성의 지위를 부여하고, 신체에는 유 한성과 불완전성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기독교의 등장 이후 신체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신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욕망이나 충동은 사악한 것으로까지 취급당했습니다. 심지어 섹스는 오직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연시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전통에 니체는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정신'은 작은 이성에 불과하고 정신은 큰 이성을 가진 '신체의 도구라고 본 것입니다. 놀 라운 발상입니다. 물론 니체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가 말하는 신체는 몸뚱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니체에게 신체란 정신이나 뇌 심지어 영혼보다 더 큰 개념입니다. 사 유가 있고, 감정과 감각들이 스며들어 있고, 영혼까지 깃들어 있습 니다. 니체에게 몸은 몸뚱이가 아니라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의 통 합체입니다.
니체는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정을 구분하는 일체의 이분법적 인 간관을 뛰어넘어 총체적 존재로서 인간의 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 다. 그렇게 보면 몸에 지혜가 있다는 점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 영성가인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몸에 대해 많이 인지할수록 면역 체계는 강해집니다. 마치 세포가 모두 활성화되는 것처럼 말이죠. 당신이 몸의 느낌에 주의 할수록 매우 강력한 자아 치료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당신이 몸 안 에 주둔하지 않으면 질병이 어느새 빈틈을 타고 공격해 들어오게 되죠. 주인 없는 집에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 침입하기 쉬운 것처럼 말입니다. 몸을 인지할수록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의 면역 체계도 강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