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종말
- 지구의 아름다움을 응시하는 사람들은 비축된 힘이 생명이 존속하는 만큼만 유지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레이철 카슨, 생물학자)
- 우리가 만들어낸 문명은 고래 한 마리의 생명이 얼마나 값어 치가
있는지는 표현할 수 있지만(대략 500만 달러 정도 한다), 바다에 서 고래를 보게 되면 왜 거의 모든 사람이 그토록 마음속 깊이 감동하는지를 서술하지는 못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런 감동은 가치 없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런 광경에 감동하 는 우리의 능력은 자연에 대한 그런 식의 반응이 선천적임을 시 사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그 능력은 오래전부터 엄청난 장점 이다. 바카피그미족처럼 다른 생명 및 자연현상과 자신을 연결 하는 능력을 가진 자는 생존하고 번식할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중앙아프리카의 정글이 아니라 12세기의 유럽에 사는 사람도 자연에 감동하는 능력을 지녔다면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충만함 을 발견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게다가 자연은 몸과 마음에 이롭다. 자연은 우리의 집중력을 높이고 면역계를 지원한다. 숲이 나 초원은 장수를 선물할 수 있다.
이 분야에 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두드러진 연 구 결과들은 경탄을 자아낸다. 덴마크인 100만 명의 심리 상태 를 평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공원이나 풀밭, 숲에 둘러싸여 성장한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신 질환을 앓을 위 험이 55퍼센트 낮았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매 일 이삼십 분을 야외의 녹지에서 보낸 피험자들은 스트레스호 르몬인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가 확연히 더 낮았다. 대표성을 갖 도록 선발한 영국인 거의 2만 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야외의 자연에 머무는 시간과 안녕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있음이 발견되었다. 응답을 분석한 결과, 주당 2시간에서 2시간 반이 가 장 좋다는 결론이 나왔다. 심지어 일본 과학자들은, 식물이 생산 하는 테르펜rerpen을 분무해놓은 공기를 하룻밤 동안 호흡한 (몇 명 안 되는) 피실험자들의 피 속에서 면역세포들의 농도가 높아졌 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1980년대에 발표된 한 유명한 연구는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한 병원의 환자 데이터를 비교했다. 병실에 서 녹색 자연을 내다본 환자들은 더 일찍 퇴원했고 진통제를 더 적게 사용했다.
- 유전자는 의도도 감정도 지니지 않았지만 생명의 진정한 동력이다. 유전자의 유일한 목표는 증식하기, 그리고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다. 우리의 몸은 탈것에 불과하며, 유전자는 그 탈것 안에서 더 넓은 시간적 공간적 활동 범위를 확보한다. 유전자가 깃든 몸이 번식에 성공하면, 유전자는 새로운 몸들에 깃들 수 있다. 그러면 유전자는 다시 그 몸들을 증식으로 몰아간다. 벌써 수십 억 년 전부터 그러했다. 유전자는 무수한 단세포동물, 물고기, 영 장류를 거치며 변화했고 그때그때의 환경 조건에 맞게 자신과 자신이 깃든 몸을 적응시켰으며 이제는 우리도 조종한다. 이것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다. 이 이론은 개체를 생존기계로 격하한다.
- 팽창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것에서 비롯된 결과들 중 하나 는 항상 더 나아가려는, 끝없이 새로운 곳에 발을 들이려는 우리 의 욕구다. 물론 모든 종들이 서식지를 확장하지만, 다윈 이래로 알려졌듯이, 우리는 정말 특별한 가능성들을 보유하고 있다. 우 리의 정복 의지는 우리를 가장 강하게 정의하는 속성들 중 하나 다. 새로움은 물론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또한 동시에 우리를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인류의 발생사는 개척의 역사다. 인간이라는 개척자 종은 새로운 삶의 터전에 진입하여 그곳의 자원을 써먹고, 그 자원이 바닥나거나 다른 곳이 더 풍요로워 보이면 또다시 이동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충분히 많아서 모든 곳에 이미 있다. 우리는 모든 터전을 벌써 정복했다. 다음 한걸음 은 저 바깥의 우주를 향해야 한다. 오직 우주에서만 확장이 계속 될 수 있을 듯하고, 오직 우주에서만 인간이 아직 본 적 없는 구 역들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할 듯하다. 우리는 강박적으로 팽창하며 우리 자신의 성공에 희생된다.
- 우리는 적응해야 하고 생태적 한계들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전 지구적 문명은 과거에 거침없이 팽창하다가 생존의 위기에 처하 거나 심지어 제풀에 멸망한 마오리족, 이스터섬의 거주자들, 마 야족, 크메르족, 그 밖에 수많은 문명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생물지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문명의 붕괴,에서 그 문명들 중 몇몇을 탐구했다. 그가 도달한 결론에 따르 면, 문명의 생존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환경 파괴에 대처하는 지적 혹은 조직적 능력이다. 우리는 그 능력을 키워야할 것이다.
- 인간은 결핍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자원을 획득하 여 쌓아둔다. 수천 세대 동안 그것은 유의미한 행동이었다. 그러 나 늦어도 근대가 시작된 이래로 소유물의 축적은 위협적인 자 체 추진력을 얻었다. 그 결과로 두 세대 전부터 우리는 지속적인 과잉 속에서 살며, 영화 「파이트 클럽」에 나오는 대사처럼, 우리 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뻐기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는 물건들을 구매한다. 오늘날 평균적인 유럽인은 추정하건대 약 1만 개의 물품을 소유하고 있다. 그중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은 극히 드물다. 다목적 승용차 내부의 가죽 시트? 열 세 켤레의 신발?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도 세 대나 들여놓은 샴페인 냉각기? 그럼에도 소유물 줄이기는 진지하게 고려되는 선택지가 아니다. 무언가를 일단 손에 쥐면, 우리는 그것을 내어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물건들의 폭정이다. 우리는 과잉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는 중이다.
- 지구의 진짜 폐는 규조류와 그 친척인 플랑크톤들이다. 이들로부터 우리의 호흡과 생명에 필수적인 산소의 절반 이상이 유 래한다. 기후 위기가 현재 수준보다 훨씬 더 심각해지지 않은 도 이들 덕분이다. 인간이 생산하는 이산화탄소의 많은 부분을 이들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없다면, 무게의 총합이 4억 톤에 달할 만큼 많은 크릴새우도 없을 것이다. 크릴새우는 물고기와 고래의 먹이다. 동물성 플랑크톤인 크릴새우는 바다동 물들에게 감자칩과도 같다. 모두가 크릴새우로 배를 채운다. 더는 먹을 수 없을 때까지 가득. 그런 다음에 물고기와 고래가 소화를 거쳐 배출하는 배설물은 나머지 규조류에 들러붙어 흰 딱지들을 형성하고, 그것들은 조밀한 바다 눈marine snow'을 이뤄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해마다 바다 밑바닥에 퇴적층이 쌓이는데, 그 퇴적층은 다량의 탄소를 함유하고 있다.
그 후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 지질학적 힘들이 바다 밑바닥을 밀어 올리거나 해수면이 낮아지면, 가라앉았던 규조류의 껍질들 이 다시 해수면으로 올라온다. 예컨대 에티오피아, 정확히 말하 면,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들 가운데 하나인 다나 킬 함몰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거센 바람이 다나킬 사막의 모래를 몇 킬로미터 상공으로 날려 올리고, 보덜레 함몰지를 비롯한 여러 건조 지역에서 날아오른 더 많은 모래와 함께 대서양 너머로 운반한다. 바람의 방향이 적당하면, 그 미세한 모래는 결국 지구 최대의 열대우림인 아마존 분지에 떨어진다. 그곳의 나무들 중 일부는 다른 나무들보다 키가 커서 최대 70미터에 달한다. 아프리 카에서 불어오는 사막의 바람이 없다면, 그 나무들은 그렇게 크 게 성장하기에 충분한 양분을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아마존 분 지의 밀림에서는 온갖 식물이 휘황찬란하게 번성하지만, 그곳의 토양은 비옥하지 않다. 규조류의 껍질과 함께 날아서 대서양을 건너온 광물질이 요긴한 비료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 처음엔 화성도 전망이 아주 좋았다. 화성은 중력이 약간 약하긴 하지만 대기를 붙들어둘 만큼은 되고 태양으로부터 떨어진 거리도 생명이 거주하기에 적당하다. 과거에 화성은 액체 상태의 물과 밀도 높은 대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붉은 행성에서도 단순한 생물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러나 복잡한 생물들이 진화할 새도 없이 일이 틀어져버렸다. 왜 냐하면 지질학적 조건 하나가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행성 내부가 부드러운 물질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아몬드를 과일잼으로 감싸고 그 위를 다시 초콜릿으로 감싼 사탕인 '프랄린'과 유사하다. 지구는 껍질이 적당히 단단하고, 그 아래에 부드러운 크림이 있으며, 한가운데는 단단한 핵이 있다. 껍질과 핵 사이에 놓인 융해된 암석 - 크림 - 이 움직이기 때문에, 지구를 둘러싼 자기장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자기장이 우리를 치명적인 우주복사(cosmic radiation와 위험한 태양풍으로부터 보호한다. 반면에 화성은 그저 암석 덩어리일 뿐이다. 화성 은 자기장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 따라서 화성의 대기는 태양 풍에 휩쓸려 차츰 우주 공간으로 유출되었다. 대기가 없어지자 물도 사라졌고, 이로써 복잡한 생물이 진화할 기반이 사라졌다. 화성에는 녹색 난쟁이들이 없다.
- 발명은 진보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해법은 없다. 석면은 처음에 벽이 불에 타지 않게 만드는 성과를 냈지만 나중에는 암을 일으켰다. 살충제 DDT는 처음 에 해충을 죽였지만 나중에는 새들도 죽였다. 인공 암모니아는 처음에 농지를 비옥하게 했지만 나중에는 바다에 죽음의 구역이 생겨나게 했다. 원자력은 처음에 미래를 여는 기술이었지만 곧 공포의 기술이 되었다. 자연이 일을 처리할 때의 우아함, 창의성, 효율과 비교하면, 인간의 기술적 성취는 기껏해야 자연의 따분한 복제품에 불과하다.
- 『인간의 유래 The Dorcent of Man』에서 다윈은 우리 종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도덕이 점점 더 확장되어왔다고 서술한다. 처음에 우 리의 도덕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만 적용 되었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는 점차 “자신의 동료 인간 모두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나중에는 “더 다정해져서 결국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장애인과 동물까지 도덕의 범위 안에 포함시켰다. 이제는 더 많은 공감과 다정함이 필요하다. 태양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지 않음을 우리가 깨달았을 때, 중세가 끝났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느낌과 생각과 내면세계를 가진 유일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중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법체계는 이 깨달음을 여전히 일관되게 외면한다. 그 깨달음에 기초하여 우리의 도덕을 확장해야 한다. 주식회사가 권리를 가질 수 있다면, 미시시피강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할 근거는 없다.
- 개인의 이익 추구가 공익을 얼마나 심하게 해칠 수 있는지 보 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주식회사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들 수 있 다. 자동차 산업의 개척자 헨리 포드는 1919년에 법정에 섰다. 그를 고소한 인물은 포드 자동차 회사의 지분 10퍼센트 정도를 소유한 닷지 형제였다. 헨리 포드는 그 자동차 회사의 엄청난 이익이 어떻게 처분되는지 아주 명확하게 밝혔다. “이 산업 시 스템의 이익을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분배하여 그들이 생활과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나의 의 도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익의 거의 전부를 사업에 재투자 합니다.”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인 자사 의 T모델 판매가를 낮추고 직원들의 임금을 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위법이라고 미시건주 대법원은 판결했다. “자본회사는 무엇보다도 지분 소유자의 이익에 종사해야 한다.” 따라서 영리기업은 공익을 위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헨리 포드는 자사의 주주들에게 당시로서는 천문학 적 액수였던 1900만 달러 이상을 추가 배당금으로 지불해야 했 다. 그 판결은 주주 가치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순간으로 여겨진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공익을 희생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것이다.
- 최근 들어 주로 도시의 엘리트층에서 포기는 아주 멋진 유행이 되었다. 더 적은 것이 더 많다 Less is more"라는 구호로 대표되 는 그 유행은 생활양식을 다루는 책과 자율적 최적화를 논하는 세미나를 점령하고 사교모임의 뜨거운 화제로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 비판과 소비 비판은 인기가 좋다. 비성장no-growth 운동, 심지어 역성장degrowth 운동이 자본주의와 생태의 원리적 불화에서 벗어날 길을 제공할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시장은 “더 적은 것이 더 많다”라는 구호에 능숙하게 대응한다. 늘 그렇듯 이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음으로써 말이다. 기후 위기를 상쇄하 는 휴가 항공권,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잔, 테 슬라의 600마력짜리 전기차, 리필용 용기에 담긴 화장품, 야자 유가 들어 있지 않은 마가린이 판매된다. 물론 이것들 각각은 그 자체로만 보면 실제로 작은 진보이지만, 전반적으로 이런 형태의 친환경 소비는 중세의 면죄부 판매를 연상시킨다. 친환경 소비란 어쩌면 약간의 비용을 추가로 내면서 익숙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 래리 핑크가 갑자기 환경보호자로 돌변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투자자이며 최대한 많은 돈을 벌고자 한다. 앞으 로는 지속가능한 산업에 투자해도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면, 그는 그렇게 투자한다. 이 행동은 그의 환경정 치적 신념과 무관하다. 블랙록의 전향은 금융산업의 의식 변화 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니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오히려 정 반대다. 왜냐하면 유일한 관건은 여전히 수익률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래리 핑크, 제이피모건 체이스, 기타 모든 금융계의 거물들은 오로지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를 주목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환경보호자, 정치인, 과학자, 활동가 가 사회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촉발 했고 이제 금융업의 기본 조건을 변화시킬 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짐을 감지하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환경보호를 성장의 적으로 낙인찍던 이들마저도 지금은 녹색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시장의 눈에는 목표나 이데올로기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오로지 돈 냄새를 맡고 따라갈 뿐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정 치와 시민사회의 힘이 드러난다. 새로운 규범과 규칙은 과거의 탐욕을 녹색 세계를 일구는 동력으로 변환할 수 있다.
- 물론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돈을 녹색 프로젝트들에 투 자하겠다는 금융계 거물들의 발표는 현재까지 단지 발표에 불과 하다. 비영리 기구 기후 다수 프로젝트Climate Majority Project'가 명 확히 보여주었듯이, 다양한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예컨대 블랙록 은 대주주로서 여전히 거의 항상 환경보호에 반하는 안건을 지 지한다. 어쩌면 래리 핑크는, 블랙록이 지속가능한 투자를 충분 히 늘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 연기금이 많은 돈을 그 회사로 부터 회수하고 나자, 약간의 녹색을 가미하는 것이 사업에 이롭 다고 판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요컨대 현재까지는 녹색 기업 광 고는 많고 녹색 투자는 적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 서 참 슬프지만, 이것만 해도 진보다.
- 일본은 혼란스럽던 16세기가 끝나면서 마침내 평화와 복지의 시대를 맞이했다. 인구가 급증했고, 그 결과로 일본은 17세기에 환경 위기에 빠졌다. 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문명 의 붕괴를 보면, 건물과 선박이 거의 온통 목재로 제작되었고 건축이 여전히 호황이었으므로 일본 열도에서 숲이 대규모로 벌 목되었다. 그리하여 가파른 경사지가 침식되고, 하천에 퇴적물 이 쌓이고, 비료와 사료가 부족해지고, 홍수로 농지가 물에 잠겼 다. 기근이 거듭해서 일본을 덮쳤다.
그러나 일본은 전환에 성공했다. 한편으로 절제와 예견이 공 식적인 이데올로기로서 발전했고, 다른 한편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지배자들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나무를 베어내도 되는지에 관하여 점점 더 정교한 법령을 선포했다. 부분적으로는 영아 살해(주로 에도 시대에 성행했던 마비키'라는 풍습으로, 마비키는 솎아내기'란 뜻이다 ― 옮긴이)와 같은 과격한 조치를 통해 인구 증가가 안정화되었고, 대규모의 숲 재생 프로그램을 통해 숲 파괴의 귀결들이 완화되었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위기를 예견하고 일찌감치 행동할 용기를 낸 책임자들이”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었다.
-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들은 위기에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