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대전환
- 인류의 진정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구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는 감정과, 중세의 제도, 신과 같은 테크놀로지를 갖고 있다. (E. O. 윌슨)
- 시카고학파의 '아름다운 생각'
주주 가치 극대화가 경영진의 유일한 의무라는 믿음은 2차 세계대 전 이후 프리드먼과 시카고대학 동료들이 주도한 경제적 사유 변화의 산물이다.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대단히 전문적이지만 연구의 기반이 되는 사유는 직관적이다.
첫째, 이들은 자유 시장은 완벽하게 효율적이며,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자유 시장은 경제적 번영을 낳는 눈부신 동인이 된다고 주장한 다. 직관적으로 볼 때, 어떤 산업의 모든 기업이 무자비하게 순익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경쟁으로 인해 모든 기업은 효율적이고 혁신적일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이와 동시에 어떤 단일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완전히 경쟁적인 시장은 가격을 이용해 생산을 소비에 맞추므로, 수백만 개의 기업들이 수십억 명의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다. 프리드먼은 일상적인 예를 들어 자신들은 그야말로 전 세계를 거쳐 제조되고 있으니 말이다. 프리드먼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진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은 우리가 이제껏 시도해본 그 어떤 것보다도 자원을 훨씬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 으로 할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1950~1960년대의 혁신적 연구들에 따르면 자유로운 경쟁, 담합 및 사적 정보의 부재, 외부 효과에 대한 적절한 평가 등 여러 요소가 잘 정의된 조건에서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가 공공복리를 극대화했다.
주주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라는 명령을 뒷받침하는 두 번째 근거는 개인적 자유의 규범적 우선성, 즉 개인의 자유가 사회의 가장 일차 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고, 개인이 자신의 자원과 시간을 어떻게 활용 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18세기와 19세기 후계몽주의적인 고전적 자유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Friedrich Hayek는 이러한 전통에 근거해서 소련의 중앙집권적 통제경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여기에서 자유는 침해로부터의 면제' 또는 '~로부터의 자유', 즉 타자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을 의미한다. 프리드먼과 동료들은 자유 시장은 계획경제와는 달리, 사람들이 하고픈 일과 그 일을 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선택 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개인의 자유를 낳는다고 주장 했다. 국가 혹은 소수의 과두 집단이 당신이 누구 밑에서 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를 통제하는 사회에서라면 진정 자 유롭기란 힘든 일이다.
세 번째, 프리드먼과 동료들에 따르면 경영자는 투자자의 대리인이다. 경영자가 신뢰받는 대리인이 되기 위해서는 나름의 도덕적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 도덕적 약속이란 경영자는 신의를 지키고, 투자자들이 맡긴 자금을 오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널리 공유되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경영자는 대리인이므로, 투자자들이 바라는 대로 기업을 운영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프리드먼은 투자자들은 대체로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 것'을 바란다고 가정했다.
- 주주 가치 극대화를 강력하게 부르짖는 이 세 주장은 이익 극대화 야말로 규범적인 약속을 실천하는 방법이라는 경영자들의 믿음을 뒷 받침하는 도덕적 힘이 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주주 수익극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투자자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체제의 효율성을 훼손함으로써 번영을 축소하고, 모든 사람의 경제적·정치적 자유를 줄이는 행위이기도 하다. 수익 극대화가 아닌 다른 모든 것, 예를 들어 뚜렷한 근거도 없이 직원들에게 적정 임금 이상을 지급하거나, 지역의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가 싸고 풍부한데도 불구하고 지붕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는 행동은 사회를 더 가난하고 더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투자자에 대한 의무를 배신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특정한 제도적 조건의 산물이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위험할 정도로 그릇된 생각이다. 프리드먼과 동료들이 이러한 생각을 처음 가졌던 것은 2차 세계 대전 직후였다. 당시에는 시장 의존 경제가 중앙집중화된 계획경제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심각한 위험이 존재했다. 경제 공황과 전쟁을 이미 극복한 정부는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던 반면, 자본주의는 그렇지 못했다. 전쟁보다 먼저 일어났던 대공황의 기억이 아직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대공황이 한창일 때 미국의 GDP는 30% 하락했고, 산업 생산은 거의 50% 떨어 졌으며, 노동인구의 4분의 1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렇다 보니 그 후 20년 동안 규제와 구속이 없는 자본주의는 모든 곳에서 의심의 대상 이었다. 유럽에서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일본 기업계는 직원들의 복지를 강조하며 장기근속을 보장하는 자본주 의 모델을 받아들였다. 독일에서는 기업, 은행, 노조가 합심하여 기업 과 직원과 사회 사이에 균형 잡힌 안녕을 추구하는 '노동자 경영 참여’ 제도가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략 30년 동안 선진국에서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시장 경쟁을 보장하고, 공해 등의 외부 효과에 가격을 매기거나 규제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전쟁 경험으 로 인해 믿기 힘들 정도로 쉽게 사회적 통합이 성취되었다. 교육과 건 강에 투자하고, '올바른 일을 하고,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다.
프리드먼의 생각은 1970년대 초반까지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 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1차 석유 파동으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 과 강도 높은 국제적 경쟁이 10년도 넘게 지속되면서 미국 경제는 심 각한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경영자들에게 그들의 유일 한 과제는 주주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지시함으로써 시장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경제 성장은 물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해주리라 믿는 게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 대부분의 자본주의자는 경제라는 파이를 분배하는 방법을 모르고,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는 파이를 키우는 방법을 잘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a)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협동하여 파이를 잘 키우는 동시에 잘 분배하는 체제를 만들어내든지,
(b) 커다란 분쟁과 일종의 변혁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타격을 입고 파이는 줄어들게 하든지 기로에 놓여 있다.
(레이 달리오)
- 돈은 사랑과 같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그것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을 죽이며, 다른 인간에게 그것을 주는 사람들을 활기차게 만든다. (칼릴지브란, 〈어제와 오늘, 12〉, 《칼릴 지브란의 삶에 대한 소책자》)
- 돈은 불과 같다. 대단히 훌륭한 하인이지만, 형편없는 주인이다. (P. T. 바넘, 《부의 황금률》)
- 월마트는 에너지 절약이 엄청난 수익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월마트는 2017년에 운송 수단의 효율성을 2배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는데, 그 결과 연간 10억 달러 이상 운송비가 줄어들었다. 순이익의 4%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월마트가 직접 상세한 수치를 발표하지는 않지만, 우리 는 월마트가 2007년과 2009년에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데 대략 5억 달러를 지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월마트가 계속해서 이 정도의 지출을 유지했고 이러한 지출로 발생한 편익이 운송 효율성 증가뿐이라고 가정한다면, 대충 계산해보더라도 적어도 13% 정도의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많은 소매기업이 5~6% 의 수익을 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같은 기간 월 마트 지점들의 에너지 효율도 12% 증가했다. 어림잡아도 연간 2억 5000만 달러를 절감한 셈이다.
- 아키텍처 혁신은 시스템의 구성요소는 바꾸지 않은 채 구성 요소 사이의 관계, 다시 말해 시스템의 아 키텍처를 바꾸는 혁신을 말한다. 대부분의 조직 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속한 시스템의 구성 요소 사이의 관계보다는 구성 요소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아키텍처 혁신을 찾아내기도 힘들고, 이 혁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키텍처 지식, 다시 말해 구성 요소가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가에 대한 지식은 조직의 구조, 인센티브, 정보 처리 능력에 내재해 있어 사실상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꾸기란 매우 힘들다.
- 급진적 혹은 파괴적혁신은 대단히 많은 주목을 받는다. 이러한 혁신은 이전의 방식을 완전히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디지털 사진이나 환자의 면역 체계를 자극하여 암과 싸우도록 만드는 신 약을 생각해보라. 이 급진적 혁신은 성공적인 기업에는 상당한 도전일 수 있지만, 어쨌든 그 혁신의 영역은 처음부터 분명하게 보인다. 디지털 사진으로 인해 코닥이 파산했다고 해서, 코닥이 디지털 사진이 제기하는 위협을 간과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코닥은 처음부터 디 지털 사진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분야에서 많은 획기적 인 발견도 했다.
문제는 아키텍처 혁신이었고, 이로 인해 코닥은 도산했다. 디지털 사진으로의 전환은 제품 아키텍처를 바꾸어놓았다. 카메라는 이제 무겁게 들고 다녀야 하는 독립적인 기계가 아니라 전화기의 일부가 되 었다. 사진이 공유되고, 인쇄되고, 사용되는 방식 모두가 바뀌었다. 코 닥으로서는 적응이 거의 불가능한 혁신이었다. 급진적인 혁신은 어렵긴 하지만 예측할 수 있다. 제약회사들은 신약 개발에 유전학 이해가 필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했고, 유전학 연구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아키텍처 혁신은 다르다. 보통은 퍼즐의 한 작은 조각에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퍼즐을 맞추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새로워진다.
- 탐욕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결국 너그러움이 더 낫다는 것은 누누이 입증된 사실이다. (파울 폴만, 유니레버 전 CEO)
-1957년 토요타가 미국에 처음 지사를 열었을 때,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 두 대 중 한 대는 GM의 차였다. 미국 소비자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확신한 GM 경영진은 일본 수입차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1980년대가 되기도 전에 미국 소비자들은 일본 차와 사랑에 빠졌다. 사람들은 미국 차는 소음과 진동이 심하고 일본 차보다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토요타가 미국 차와 거의 같은 가격이지만 훨씬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자동차 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시스템과 시스템 내 핵심 업무자들 사이의 관 계를 완전히 바꾸었다는 것이었다. 즉 자동차가 설계되고 만들어지는 구조를 완전히 바꾸었다. 당시 거의 모든 미국 기업들이 그랬듯이 GM의 작업도 엄격하게 기능에 따라 위계적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조립 라인 설계와 개선은 철저하게 감독자와 제조 기술자의 몫이었고, 차량 품질은 조립 라인에서 나오는 차량들을 검수하는 품질 담당 부서의 책임이었다. GM 관 리자들은 블루칼라 노동자는 생산 과정 개선에 이바지할 바가 없다. 고 믿었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나사를 조이는 등의 똑같은 일을 하 루에 8~10시간씩 60초마다 반복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그 일 외의 그 어떤 것도 요구되지 않았고, 권장되지도 않았다. 현장 노동자와 지역 경영진의 관계는 적대적이었다.
- GM은 잘 정의된 규칙, 예를 들어 마감일 준수 여부와 같이 식별 가능한 지표를 바탕으로 개인의 실적을 평가했다. 반면 토요타는 팀 전체의 실적을 기반으로 개인의 실적을 평가했다. 토요타의 목표는 조직의 여러 수준에서 활발한 토론을 거쳐 결정되었다. 하향식 지휘 통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GM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당장의 분기에만 집중하고, 목표 판매량을 달성하고, 기존 시스템을 미세 조정하며 평생 일해온 관리자들은 직원 관리의 기본 원칙을 다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공급업체와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다그치 며 관리해온 사람들은 이들이 지속적인 개선의 원천이라는 발상은 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들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잘 대우할 수도 없었다.
- 무엇보다 성과가 높은 작업 관행을 성공적으로 도입하려면 신뢰를 구축해야 하지만, GM의 역사는 이 기업이 이런 쪽으로는 형편없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GM은 수치를 바탕으로 관리하며, 양적인 실적을 기준으로 직원들을 승진시켰다. 그러나 높은 성과를 내는 기업의 특징은 그 어떤 수치로도 나타낼 수 없다. 고위 경영진이 장기적인 관계를 약속하고 신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할 수는 있지만, 지역적 수준에서 유사한 공약과 장려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지역 관리자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다.
- 트리오도스 은행은 아무리 정교한 ESG 지표라도 무조건 의지할 수는 없다는, ESG 지표의 한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예를 들어 대출 결정에는 개인과 집단의 정교한 판단 과정이 필요하다. 대출 담당자는 신청받은 대출 내용이 은행의 사명과 일치하는지를 검토해야 하고, 제대로 된 리스크 프로파일을 제시해야 한다. 트리오도스 은행에서 자주 쓰는 말을 빌리자면 “만일 한 아이가 5유로를 빌리러 왔다면 먼저 '왜 그 돈이 필요하니?'라고 물어야 한다” CFO 피에르 아에비 Pierre Aeby 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출에 투자할 때는 먼저 그 대출이 무엇을 위 한 것인지 살펴봅니다. 채무자의 사명은 무엇일까? 채무자는 사회에 어떤 가치를 더하려 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가치와 어울리는가? 그다음에야 은행가로서 엄격하게 따져봅니다. 상환 능력은 있는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담보는 무엇인가? 그러고 나서 적정한 이율을 결정합니다.”
네덜란드 기업 대출을 담당하는 다니엘 포벌 Daniel Povel은 이렇게 말 한다. “예를 들어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을 고용해 유기농/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농사지으며,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아트 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 지붕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기 위해 대출을 원한다면, 대출은 매우 쉬울 겁니다. 정말 쉽죠. 누구나 승인하라고 할 겁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이렇게 명확하지는 않다. 은행은 회색 지 대에 빠진 이러한 난제들을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개인의 판단과 분별력을 이용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니엘은 매주 월요일
- 숲의 한구석에서 다른 이들이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돼. 때로는 스스로 다른 이들을 찾아 나서야 한단다. (A. A. 밀른, 《곰돌이 푸》)
- 자율 규제, 무임승차 없는 협력은 가능한가
업계 자율 규제의 핵심 전제가 바로 이것이다. 같은 업계에 속한 모 든 기업이 무언가를 하고 싶거나 혹은 어떤 일을 그만두고 싶은데, 혼 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함께 행동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다. 팜유의 경우, (수천억 달러 가치의 브랜드를 가진) 주요 소비재 기업들은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있다며 NGO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여지가 있었다. 예를 들어 펩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팜유를 구매하는 업체 중 하나다. M&M 초콜릿을 만드는 마스도 마찬가지다. 불타는 숲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다 죽은 오랑우탄의 사진과 그들 제품을 연결하는 지속적인 캠페인과 맞서서 버 텨낼 수 있는 기업은 없었다.
지속 가능한 팜유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기업은 지속 가능한 팜유를 찾아야 하는 힘겨운 문제는 물론, 상당한 비용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 다. 하지만 업계 내 모든 기업이 함께 행동하기로 동의한다면, 지속 가 능한 팜유 구매는 모든 기업이 자신의 브랜드에 미칠 수 있는 피해 위 험을 줄이기 위해 부담하는 경쟁 전 협력'이나 최소한의 공동 지분이 될 터였다. 같은 업계에 속한 모든 기업이 지속 가능한 팜유를 구매하기로 동의한다면, 기업의 비용은 증가하겠지만 모든 브랜드는 보호를 받고 누구도 경쟁 불이익 상태에 놓이지 않게 될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자발적인 협약은 근본적으로 취약하다. 올바른 일을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행하지 않는 기업도 있을 수 있다. 약속을 어기는 기업은 단기적인 비용 우위를 갖게 되므로, 약속을 실천에 옮기는 기업으로서는 (화가 난) 얼간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자율 규제에 관해 연구해온 한 역사학자에게 업체 전반의 협력이 세 계의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자, 그는 낄낄거리는 반응부터 보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기업가들이 자율 규제를 이용해온 이유는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저 정부의 규제 위협을 피하고 소규모 기업 및 잠재적인 시장 진입자 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였고, 일반적으로 자율 규제는 정부 규제 라는 후광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필사적인 상황에서는 필사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많은 곳에서 정부는 부패하고 규제가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우리의 많은 문제 는 전 지구적이지만, 효과적인 전 지구적 규제 기관도 거의 없다. 하지만 산업 협력이 대단히 성공적이었던 때와 장소는 있었다
- 산업의 관련 당사자들이 그 산업에 장기적으로 종사하고 있을 때, 좀 더 엄밀히 말해서 산업에 진입하고 빠져나가는 것이 어려울 때, 협력은 훨씬 쉬워진다. 다시 한번, 원자력발전소와 바닷가재 사례를 보면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수명이 60년이나 되고 움 직일 수도 없다. 바닷가재 어부들은 배와 장비를 사느라 빚더미에 올 라앉는다. 어업이 무너지면 가치가 0으로 수렴하는 자산들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은 협력의 편익이 부정행위나 무임승차가 누구에게 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줄 때 협력이 가능하다는 사실 을 보여준다. 국제상공회의소 같은 자발적 조직이 성공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제시하는 편익이 구체적이고 즉각적이며, 동시에 부정 행위에 대한 유혹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상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군가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을 때 아주 쉽사리 적발 할 수 있어야만 협력은 지속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사례에서, 원자력발전운전협회는 연간 점검을 통해 모든 발전소가 최신 기법에 발맞춰 나갈 수 있도록 돕고, 최선을 다해 그 기법을 쓰게끔 했다. 바닷 가재 어획량을 지키는지 확인하기는 이보다 힘들지만, 어부들의 공동체는 규모가 크지 않아 부정행위 탐지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 정부는 무척 해롭다는 믿음, 다시 말해서 반응이 없는 관료, 높은 세금, 끊임없는 규제로 표상되는 게 바로 정부라는 믿음은 지난 50년에 걸쳐서 조금씩 만들어져왔다. 이는 우리가 사는 시대에 만들 어진 신화이며,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또는 구 축해온 정부의 역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부는 두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첫째, 정부는 독재를 지향하며, 특히 자유 시장을 국가 통제 혹은 중앙 계획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둘 째, 정부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며 비효율적이다. 물론 독재적인 정 부도 있고, 제 기능을 못 하는 정부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언제나 그 런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닌 정부도 있고, 한 번도 그렇지 않았던 정부도 있으며, 지금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 포용적인 제도는 어디에서 오는가? 자유 시장과 자유 정치제도는 유럽에서 처음 대규모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상인 계급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하며 착취적인 통치자들을 압박해 권력을 공유하기 도 했고, 군사적 위협에 직면한 정부들이 정치적 포용이 경제 성장을 자극하고 교역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더 번창하고자 권력을 공유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중세 베네치아에는 합자회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콜레간차colleganza라는 계약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를 통 해서 부유한 자본가들은 장거리 무역 상인들에게 투자했다. 위험한 여행에서 수익이 나면 그 수익은 공유되었다. 더불어 사회적 계급보다는 본인의 능력에 의해 선택받은 무역 상인들에게는 상당한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열렸다. 얼마 가지 않아 이러한 경제적 포용은 정치 적 포용으로 이어졌다. 성장한 상인 계급이 베네치아의 통치자를 압박해 세습 통치를 없애고 의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베네치아는 10세기에서 13세기까지 번창할 수 있었다. 하지만 14세기 초반이 되자 부유한 상인들로 구성된 배타적인 집단이 콜레간차와 의회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데 성공한다. 그 후 몇 개 가문이 베네치아 경제와 정치를 200년간 지배하게 되었고, 베네치아는 오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 기업은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여러 번 수행해왔다. 간단하게 세 번의 사례를 살펴보겠다. 1·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19세기 후반 덴마크, 1960년대 모리셔스의 사례다. 독일은 기업 들이 과연 재기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스템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러나 기업들은 직원들과 더불어 일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며 독일을 부유하고 성공적인 사회로 만들어놓았다. 덴마크에 서 궁지에 몰린 지배 엘리트들은 노동계, 기업계, 정부가 협력하는 시 스템을 만들어 작고 가난한 나라를 부유하고 평등하며 시장 친화적인나라로 바꾸어놓았다. 독일과 덴마크의 성공을 유럽의 유산, 혹은 근본적으로 동질적인 사회 덕분으로 치부하지 않도록 모리셔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려 한다. 모리셔스는 심한 인종 분쟁을 겪었지만 번 창하는 다문화 사회와 강력한 자유 시장을 만들어, 현재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각각의 경우에서 선견지명이 있는 기업 지도자들은 새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담대함과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그 일은 바로 모든 사람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협력이었다. 그들의 결단은 당연하고도 쉬워 보인다. 하지만 당시에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수습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독일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수습 훈련 제도를 갖춘 나라다. 수습생은 수 백 가지 직업 중 아무 일이나 선택해 2년에서 4년간 수습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이 기간에는 강의실 교육과 더불어 현장 실습을 받는다. 모 든 기업에서 교육은 연방정부가 사용자, 교육자, 노조 대표자와 협력하여 개발한 표준화된 커리큘럼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 커리큘럼은 직원들이 이직해도 괜찮을 정도로 표준화되어 있다.
독일 이야기는 지금 곤경에 처한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해준다. 첫 번째, 기업은 어디에서 가장 큰 이익이 나올지 항상 알 수는 없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으로 인해 독일 기업 엘리트 들은 현대 미국의 경영자라면 전력을 다해 거부하려고 할, 노동자와의 타협을 구축했다. 그 타협이 만든 제도들을 통해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평등한 사회 중 하나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는 목적 지향적인 기업이 새로운 일의 방식을 발견하는 촉매제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1990년대 나이키가 공급사슬과의 관 계 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했던 것처럼 많은 기업이 사회·정치 시스템이 그들의 성공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 두 번째 시사점은 민간 부문이 제도를 재정립하는 데 진정 중요한 역할을 하길 바란다면, 국가적인 대화에서 적극적이고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강력한 노동자 조직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는 덴마크의 경험에서 최소한 세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 째, 포용적인 제도는 번영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다. 덴마크는 주요 천연자원이 없는 아주 작은 나라이지만 사회·정 치 제도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었 다. 둘째, 시장과 국가는 서로 상보적이어야 한다. 덴마크는 자유 시장 의 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경제적 기회와 사회 복지를 보 장하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그만큼 신뢰한다. 국가 보건 서비스 와 광범위한 정부 지원 직업 재교육이 결합하며 자유 시장의 힘과 유 연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더라도 리스크가 크지 않고,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세 번째 교훈이 가장 중요하다. 덴마크 사례는 기업이 민주주의 절차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정책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 는 법을 보여준다. 기업은 대화에서 중요하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만, 과정이나 결과를 마음대로 하려 들지 않는다. 기업의 우선순위는 국가의 건강이지, 눈앞에 있는 재무 수익이 아니다. 100년도 넘게 덴마크의 기업이 성공을 거듭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러한 국가에 대한 헌신이었다.
- 힘든 시대에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어리석은 낭만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잔인함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감, 희생, 용기, 친절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복잡한 역사에서 무엇을 강조하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 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최악만 본다면, 무언가 할 수 있는 우 리의 능력이 사그라질 것이다. 사람들이 당당하게 행동했던 장소와 시간 을(그런 시간과 장소는 많다) 기억한다면, 우리에게는 행동할 힘이 생기고, 최소한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아무리 사소 하더라도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단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 미래란 현재의 무한정한 연속이다. 우리 주변의 모든 나쁜 것들에 저항하며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 하는 대로 현재를 살아간다면, 그것 자체로 엄청난 승리다. (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