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처럼 사랑하라
지난 12월29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펠레의 생전 자취가 새삼 조명 받고 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1999년 그를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로 선정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그의 업적과 성가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펠레가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10대의 나이에 여섯 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에 우승을 안기자, 전 세계 프로팀들이 그를 영입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당시 브라질 정부가 펠레를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는 ‘해외반출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펠레가 전성기를 국내 프로리그에서만 보낸 이유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2월31일자 A25면 <‘축구황제’ 펠레, 하늘 그라운드로 떠나다> 기사가 소개한 인스타그램의 추모 글은 그가 평생 추구해 온 삶을 요약해 줍니다. “스포츠에 관한 천재성으로 세계를 매료시켰고, 전쟁을 멈추게 했고, 전 세계에서 사회적 사업을 수행했으며, 우리 모든 문제의 치료법이라고 믿었던 사랑을 퍼뜨렸다.” 펠레는 숨을 거두는 순간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라는 말을 남겼다고 그의 딸이 전했습니다.
한경 제휴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의 1월3일자 칼럼 <펠레가 식당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When Pelé Met the Public at Chart House)>는 펠레의 그런 삶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미국 극작가이자 영화감독인 테럴 태넌은 이 기고문에서 1982년 가을, 펠레를 주연으로 한 영화 <작은 기적(A Minor Miracle)>을 촬영하기 위해 LA에서 샌디에이고로 함께 대형 리무진을 타고 이동하면서 벌어진 일을 들려줍니다.
“점심때가 되자 펠레는 고속도로변의 한 식당을 가리키며 ‘저곳에서 먹자’고 했다. 그가 좋아한 대중음식점 체인 차트하우스(Chart House)였다. 우리 일행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종업원과 손님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당시 펠레는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2위로 뽑힌 때였습니다. “자리에 앉았는데 종업원 소년 한 명이 다가와 망설이며 한 가지 부탁을 털어놓았다. 멕시코 출신인 그가 펠레를 보자마자 고향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했는데, 어머니가 펠레와 통화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펠레는 다행히도 스페인어를 할 수 있었다. 소년의 요청을 밝은 표정으로 수락하고는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소년의 어머니에게 그녀의 가족들 이름과 나이를 한 사람 한 사람씩 묻고, 심지어 강아지 이름까지 질문해가며 10분 동안 통화를 했다.” 그는 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다가와서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응수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답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펠레는 식사를 마친 뒤 리무진 안에 있던 대형 포스터 사진뭉치를 들고 나와 20분 넘게 식당 종업원과 손님들에게 일일이 사인까지 해주었다.”
태넌은 동료 영화감독 존 휴스턴이 눈물을 글썽이며 펠레를 추억한 말을 전하는 것으로 칼럼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았다. 늘 관대했고, 열려 있었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한마디로 모두를 순수하게 비춰주는 적외선(black light) 같은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