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드
- 단맛은 당도계, 짠맛은 염도 계, 신맛은 산도계, 매운맛은 스코빌 지수를 측정하는 크래마 토그래피를 활용했다. 이 기계들은 음식의 달고, 짜고, 매운 정도를 냉철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그 값을 안다 한들 우리가 맛을 완벽히 알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계와 달리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 각각의 맛이 동시에 입 안에서 섞이며 어우러지는 '조화'를 맛으로 경험한다. 인간이 입안에서 느끼는 맛은 여러 맛이 상호작용하여 조화된 맛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엄청 짠맛이 다른 맛과 상호작용하여 덜 짜게 느껴지기도 한다. 맛의 세계란 생각할수록 심오하다.
- 찌개를 끓인다고 가정해보자. 찌개를 끓이다가 더 달게 만 들고 싶으면 설탕을 넣는다. 설탕을 넣으면 더 달아진다. 그런데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인간의 뇌는 더 달다고 느끼기보다는 설탕 특유의 느끼한 향만 강해진다. 는 신호를 받는다. 동시에 우리는 찌개가 망했음을 깨닫는다. 이 경우 단맛을 내고 싶다면 무작정 설탕을 넣지 말고 소금을 살짝 넣어보자. 세상에, 단맛이 용솟음치며 살아 올라온다. 설탕을 넣지 않았음에도 더 달게 느껴진다. 당도계로 측정해보면 실제로는 당도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맛이 상호작용한 것뿐이다. 찌개가 너무 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찌개에 물을 넣으면 전반적으로 맛이 옅어져버린다. 해결책은 단맛이 나는 양파를 넣어서 조금 더 끓이거나 설탕 반 스푼을 넣는 것이다. 그럼 놀랍게도 짠맛이 가신다. 염도계로 측정해보면 염도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역시 맛의 상호작용 효과다. 이렇듯 인간은 맛을 개별적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동시에 경험한다.
- 고객들은 음식이나 재료를 구매할 때 불확실성이 있으면 구 매를 꺼립니다. 그 불확실성은 품질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취향의 문제에서 오는 경우가 오히려 더 클 수 있습니다. 품질의 문제는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기본적인 품질의 불확실성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엔 취향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음식은 오감을 활용하며 소비하는 상품이어서 불확실성이 더 크죠. 샀다가 입맛에 안 맞으면 큰 낭패거든요. 비쌀수록 이 불확실성 은 더 강하게 구매 욕구를 저하시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맛보기로 모든 고객에게 다 먹여보고 팔 수는 없지요. 이럴 때는 맛에 대한 간단한 시각화 그래프를 잘 활용해보십시오. 특히 상품을 제대로 만져볼 수 없는 온라인에서는 이 시각화 그래 프가 더 효과적입니다. 오프라인이라면 포장에 표기하는 방법이 있고, 매대 라벨지에 표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실제로 비 오는 날에 사람들이 파전과 막걸리를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필립 코틀러 Philip) Koller가 소매점이나 식당의 음악이나 조명, 색, 향기와 같은 '분위기적 요소'를 연구한 이래로 학계에서는 이 요소들이 소 비자들의 판단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많은 관심 을 가졌다. 소비자들이 받아들이는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등 의 감각적 자극들은 최종적인 행동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분위기적 요소들은 소비자들의 감성을 알게 모르게 공략한다. 거기에는 어떤 강제성도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저항력이 낮다. 우리의 이야기에 적용하자면, 추적추적 내리는 비의 풍경과 소리는 사람들에게 파전에 막걸리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적 요소로서 분명히 모종의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비 때문에 전집에 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위기적 요소와 대상의 일치는 마케팅은 물론 소비자들 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우리는 대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분위기적 요소와 대상이 일치할 때 더 큰 만족을 느낀다. 비 내리는 휴일 한산한 노포에서 먹는 파전과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먹는 파전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제품이나 메뉴에 관한 좋은 스토리는 고객이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훨씬 맛있다고 판단하도록 만듭니다. 토마토 소스로 볶은 닭'을 '황금빛이 돌 때까지 구워 가장 부드러운 치킨과 토마토, 샬롯, 그리고 산에서 채집한 버섯으로 감칠맛을 낸 맛있는 소스'라고 메뉴판에 표현하면 고객들은 훨 씬 맛있게 느낍니다. 짬뽕수제비국도 '하얀 수제비가 들어간 얼큰 짬뽕 국'이라고 하면 맛이 구체적으로 상상되면서 입에 침이 고이게 됩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은 어릴 적 먹던' 이라는 것만 앞에 달아도 고객들은 더 맛있다고 생각할걸요? 버섯고기잡채'를 '봄나물과 향긋한 버섯으로 함께 볶아낸 잡채'라고 하면 더 맛있어집니다. 여기에다 '봄나 물과 향긋한 버섯으로 함께 볶아낸 어릴 적 먹던 잡채'라고 하면 훨씬 더 맛있어집니다. 안 그럴까요?
- 현미 다이어트 실험을 마친 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안철우 교수팀이 진행한 혈액검사 및 호르몬 변화 분석 또한 현 미의 놀라운 효과를 입증해주었다. 식후에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PYY 호르몬이 현미를 섭취한 그룹 A에서는 유지된 반면 백미와 밀가루를 섭취한 그룹 B에서는 감소했다는 결과 가 나온 것이다. 또한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 호르몬이 그룹 A에서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 말인즉 현미를 먹으 면 배가 덜 고프고 식욕이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현미 중심으 로 식단을 짠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실천하면 단순히 살만 빠 지는 게 아니다. 대사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인슐린 저항성이 좋아지고, 식욕 호르몬(그렐린)과 포만감 호르몬PYY 의 균형이 생기며, 콜레스테롤 지질대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나 면서 혈관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 토종닭 복원 프로젝트의 여러 과업 중 하나는 품종 고정 작업이다. 현재 존재하는 품종 가운데 토종 형질을 잘 보유하고 있는 품종을 유전적으로 확인한 뒤 같은 품종으로 유지시키는 작업을 고정’이라고 한다. 품종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으면 세대가 지나면서 균질한 특성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를 명확한 하나의 품종'이라 말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고정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다음에 필요한 것이 경영학적 접근일 것이다.
- 프랑스에서는 토종닭을 풀레 페르미에poulet fermier 라고 부르는데, '풀레'는 닭을 뜻하고 '페르미에'는 농장을 뜻한다. 직 역하면 '농장 닭’ 정도가 된다. 이름에서부터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곡물과 풀을 쪼아 먹어야 토종닭이 될 수 있다는 프랑스의 전통이 묻어 있다. 실제로 농가를 방문해보니 많은 닭이 넓은 초원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축사도 일반 양계장과 달리 쾌적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짚을 높게 쌓아 닭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배 려하고 있었다. 알자스와 브레스, 드롬의 토종닭은 지역마다 품종도 다르고 법 규정도 조금씩 달랐지만, 병아리 시절이 지나면 낮 시간대에 야외에 풀어놓아야 하고, 곡물과 풀을 쪼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하며, 무엇보다 오래 길러야 한다는 내용은 어딜 가나 똑같았다. 최소 80일 이상을 이렇게 사육해야 비로소 '풀레 페르미에’자격을 얻는다.
현장 관계자들과 이야기 나누며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토종닭 농가와 소비자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셰프들이 었다.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제 생산자가 아니라 셰프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 프랑스 당국은 이들의 역할을 적극 활용한다.
- 식품에 관해 표기할 때 딸기나 사과의 경우 발기 맛이나 사과 '만' 대신 딸기 '향’, 사과 '향'이라고 표기하는 이유를 이야기해야겠다. 그 이유는 엄밀한 의미에 서 맛과 향은 분명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혀가 구분할 수 있는 맛은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 다섯 가지가 전 부다 (최근에 금속 맛, 깊은 맛 등의 새로운 맛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 럼 우리가 분명히 느끼는 딸기 맛, 사과 맛, 포도 맛의 정체는? 실은 사과 맛, 딸기 맛, 포도 맛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과향, 딸기 향, 포도 향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외부에서 직접 코로 들어오는 향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입안에서 씹었을 때 조직이 깨지면 그 복잡한 향미 물질들이 입 뒤편에서 코로 올라 오면서 향을 느끼게 되는데, 이게 훨씬 더 강렬하다. 그래서 우리는 향을 향이 아니라 맛이라고 인지하기도 한다. 우리가 맛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사실은 혀를 통해 느끼는 맛이 아니라 코를 통해 느끼는 향이다. 감기에라도 걸려 냄새를 맡 을 수 없게 되면 양파를 먹으면서도 사과를 먹는다고 착각할 수 있다. 설마 싶겠지만 농담이 아니다. 맛과 향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음식물에는 다양한 이유 로 이런저런 식품첨가물들이 첨가된다. 식품첨가물 중 하나인 식용색소는 대개 맛깔스러워 보이기 위해 사용된다. 음식 물이 입에 들어가기 전에 시선을 잡아 끌기 위해 쓰이는 것이다. 이렇듯 식용색소는 맛이나 건강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맛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종합예술의 일부분을 완성하는 데 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실제로 사람들 은 무색의 딸기 맛 음료보다 빨간 색의 딸기 맛 음료를 마실 때 더 만족감을 느낀다. 그것이 우리가 음식물을 대하는 보편 적인 선호체계라고 할 때, 적어도 어떤 음식물에 식용색소가 첨가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과일에 있는 당을 발효시키면 당이 효모의 먹이가 되면서 줄어들며 탄산이 나오고, 다양한 향미 물질과 비타민도 생성 된다. 발효에서 매력적인 포인트 중 하나는 그 과정에서 알코 올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알코올은 어른들에게는 기쁜 일이 겠지만, 아이들을 위한 음료라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천연 발효 과일 음료를 만들려면 알코올이 최대한 적어야 한 다. 과일 발효의 또 다른 특징 하나! 발효 과정에서 당도가 내 려간다. 달기만 한 주스가 아닌 발효에서 오는 복잡미묘한 향 과 함께 과일의 향이 독특하게 올라온다.
- 와인은 포도를 발효시킨 결과물이다. 잘 익은 포도를 압착하여 착즙하고 여기에 효모를 앉혀 발효시키면 와인이 된다. 원래 탄산도 함께 있지만, 우리가 흔히 마시는 와인은 숙성 과정에서 그 탄산이 대기 중으로 날아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탄산감이 없다. 반면에 탄산을 잘 보존하여 입안에서 터지는 기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와인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프랑스의 샴페인이고, 다른 하나가 이탈리아의 람브루스코 와인이다. 이 두 와인은 기포감이 특징인데, 만드는 공정이 달라서 기포감이 서로 다르다. 진짜 과일이 발효될 때 발생하는 자연 탄산을 그대로 병에 잘 보존한 와인이 바로 람 브루스코 와인이다.
콜라나 사이다를 마실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탄산은 그 기포의 알이 굵다. 이 탄산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탄산감을 자 아낸다. 이런 음료의 탄산은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나중에 주입한 것이다. 반면에 자잘자잘하고 보골보골 올라오는 람브루스코 와인의 기포는 완전히 다른 식감을 주는데, 자연 발효에서 나온다. 샴페인의 기포가 입안을 짜릿하게 자극한다면, 람브루스코 와인의 기포는 마치 잘 휘핑한 크림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다가 사라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