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회사인간

dalai 2022. 8. 20. 22:30

- 일생동안 일만 하고 지내다가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였고 피할 수 없는 것이면 무엇이나 달게 받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손상되기를 거부했던 강인하고 씁쓸한 표정의 한 사내 (알베르 까뮈 Albert Camus, 최초의 인간 중에서)
- 개념의 발견 또한 위대한 것이었다. 정갈한 사고를 위해 복 잡한 예외들이 제거되고 추상화된 개념은 사상과 사유의 폭발적 발전을 도왔다. 개념은 동등하지 않은 사물을 등치시킴으로써 발생한다. 하나의 나무가 다른 나무와 완전히 똑같은 경우가 없는데 나무라는 개념이 나무의 개성적인 차이를 임의로 탈락 시키고 다양함을 망각하게 한다. 실체적인 그나무는 나무라는 말에 의해 구성되고 묘사되며 측량되고 꾸며지고 오그라들며 채색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라는 개념은 부모, 형제, 친구, 이 웃, 민족으로 편리하게 묶였다. 반면 보편과 개념을 위해 자르고 베어지고 탈락된 것들의 희생은 컸다. 평범이 번식하여 특별함 은 사라졌고 보편을 위해 특수들은 갈 곳을 잃었다. 개념을 위해 다채로움이 멸종된 자리에 존재적 단순함이 들어섰다. 가라타니 고진(谷行人)의 말처럼 지금까지 사람들은 개인을 같은 가족으로서,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국민, 같은 인류로서만 승인해 왔다. 요컨대 고차적인 존재를 통해서만 개인을 인정해 왔던 것이지, 개인을 단지 개인으로서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단순화는 단번에 질긴 생명력을 얻게 되는데 그 진화적 끝자리에 회사인간은 존재한다. 평범과 보편이라는 뿌 리에 회색과 시시함이 더해진 회사인간은 19세기 이후 풍요롭 게 지구에 퍼져 현대 인간에서 수적으론 절대적 자리를, 문화적으론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 그들의 꿈은 늘 박멸 당한다. 평범한 대중은 비범을 꿈꾸고 행복을 집요하게 요구하지만, 대중문화에 의해 간접적 마스터 베이션으로 늘 마무리되면서 꿈은 접힌다. 그리하여 대중은 불 만이 내면화된 집단이 된다. 회사인간은 사회와 대중 사이, 산업 과 시민 그 언저리에 서식한다.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개별 적인 회사인간의 한계는 그의 잘못도 아니고 불찰 또한 아니다. 19세기 이후 진행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로의 역 사적 이행은 개별적이던 인간의 삶을 대중과 보편의 세계로 완 전히 편입시킴으로써 광범위한 불행을 선사했던 것이다. 회사 인간은 죄가 없다.
-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 중 하나인 미국의 워런 버핏이 계급에 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계급 투쟁이 현재 세계와 들 어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단지 한 계급의 일방적 승리 상태가 만 들어내는 착시”라 했다. 그 자신은 상위 1%의 자본가 계급에 해 당함을 자인하며 확연한 계급 구조의 실체를 반증했는데 중요한 것은 그가 상위 1% 부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1% 외의 인간들은 늘 자신의 육체와 능력을 놓고 쓸모를 고민해야 하는 계급적 자각이 없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실이다. 계급은 사회의 구조가 만든 형태이므로 그 사회적 형태의 변화를 근본적으로 사유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은 사회의 출발이다. 다 수의 사람들이 쓸모라는 불안함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그렇지 만 이런 얘기조차 여전히 현실에서는 쓸모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지 못하는 회사인간에겐 멀고 먼 이야기가 되고 만다. 다만, 거지같은 쓸모'를 누가 찬양했건 말건 싱거운 농담처럼 무시하고 나만의 일을 찾아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인간의 길을 가게 되기를 힘겹게 바랄 뿐이다. 세상의 월급쟁이 회사인간들이 쓸모를 걷어차고 함께 손잡는 날은 올 것인가.
- 역사적으로 우리는 과연 시간에 맞는 보수를 받고 있는 것일까.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내세운 주장에 따르면 중세시대 사람들은 일 년 중 반 정도만 일을 했다고 한다. 공휴일은 141일이나 되었다고 설명하며 영원히 노동으로 고통 받는, 일하는 현대 인류, 회사인간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앞으로 다가올 자동화의 위험은 자연적 삶을 훨씬 더 파탄시키는 기계화와 인공화가 아니라 삶의 인공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의 생산력이 매우 강렬한 삶의 과정 속에 흡수되어 수고와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자연적 순환을 따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일 년 중 반 정도만 일하였다. 공휴일은 141일이나 되었다. 평일의 기하급수적인 확대는 노동자들이 새로 도입된 기계와 경쟁해야만 했던 산업혁명 초기의 특징이다. 산업혁명 이전 15세기에는 근로시간이 영국에서는 총 11시간에서 12시간이었으며 17세기에는 10시간 정도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19세기 전반의 노동자들은 그 이전 세기의 가장 빈곤한 계층의 사람들보다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살았다. 우리 시대가 달성한 진보의 정도는 일반적으로 과대평가 된 것이다.”
- 사실을 보충하면 13세기 영국의 농노는 일주일에 31시간 노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리오 휴버먼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서 농노는 제 경작지에서 노동하는 3일 동안 관리나 통제를 받지 않았고 경작지에 대한 점유권과 상속권도 농노가 가졌다고 전한다. 말하자면 농노는 일일 5시간 노동에 무상 제공되 는 주택과 평생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으로서 주택과 고용을 자 식에게 대물림했다. 또한, 농한기 몇 달은 일하지 않았고 종교적 인 행사와 마을 축제에도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여유를 보냈다. 무엇보다 오늘 회사인간이 가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게 없었다. 
- 절대로 가격을 흥정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삶. 운명이 부여하는 찬스, 살거나 죽을 기회 그것을 놓치지 말라 (산도르 마라이, 하늘과 땅 중에서)
- 외로움, 불안은 자유의 조건이다. 집단에 속한 정규적이라는 소속감으로 외로움은 사라진다. 가처분소득의 증가와 그로 인한 소비와 소유는 불안을 줄여 준다. 대신 소속감과 소유로 인해 자유는 멀어진다. 자신의 생각을 지우면 편안하다. 집단의 생각을 자기 생각인 양 하면 된다. 힘들게 자기 생각을 쥐어짤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 감정, 나의 사유, 나의 취향은 사라진다.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금욕이 수도원의 방에서 나와 직업생활에 옮겨지고 현세적 윤리가 지배하기 시작함에 따라 이 금욕은 (중략) 근대적 경제 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이 우주는 오늘날 이 러한 동력기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생활양식을 압도적인 강제력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그 마지막 화석연료가 다 탈 때까지 아마 규정할 것이다.
- 프로이트는 금욕주의의 뿌리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종교의 다양한 금제와 의례가 강박신경증 환자의 일상적 의례와 깊은 유사성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강박신경증 환자는 자기 안에서 일어난 충동과 유혹을 누르기 위해 혹은 그것을 예견하고 방지하기 위해 강한 금제를 설정하고 어떤 행위들 을 의례적으로 엄격히 수행하는데 이것이 종교 의례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경건한 사람은 죄악으로 완전한 타락에 빠지는 일이 많은데 이것이 참회라고 하는 종교 활동의 형태를 만들어낸다'고도 했다. 속죄와 구원이라는 미명하에 금욕주의적 조치가 이루어진 곳에서 발작적으로 신경증이 나타난다. 오늘 강박적인 신경증이 출몰하는 곳도 다르지 않다. 월급 쟁이의 책상정리, 유난히 일찍 잠에 드는 일요일 저녁, 금제가 많고 규칙이 많은 곳, 수많은 충동들을 억제하기 위한 규정들, 더욱 경건해지는 의례, 창업자의 신적 추앙. 철학자 니체는 금욕 주의자들을 비난하며 기계적인 활동과 그것과 함께 행해지는 것, 절대적인 규칙성, 꼼꼼하면서도 생각이 없는 복종, 단호하게 고정된 생활양식, 완전히 짜여진 시간, 비인격성이나 자기망각, 자기무시를 위한 어떠한 허가, 그뿐 아니라 그것을 위한 훈련 같은 것'이라 말했는데 여지없는 회사인간의 생활 바로 그것이다.
-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제일이다. 그 러나 월급쟁이 금욕주의자는 스스로 잘라버린 욕망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욕망의 욕망까지 스스로 억압한다. 금욕, 그것은 가두어진 생활이다. 절제라 부르기도 하고 이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절제는 넘쳐나는 욕망을 모질게 베어낸다. 회사인간들은 일상의 모든 시간을 회사에 맞추고 욕망을 생각할 시간조차 스스로 베어버린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서인 월급쟁이들은 삶의 의미 있는 시간들을 조금씩 깎아낸다. 그것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도 아니요 일상의 신성한 리추얼로 보기도 힘들다. 그건, 그저 그런 시시함이요, 째째함이다.
- 가난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인간이 차곡차곡 쌓아온 근대적 욕망이 그 발명을 도왔다. 싸구려 옷의 해진 팔꿈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가난이다. 구두 앞굽이 뭉텅해지고 마 모된 신발 뒷굽이 신경 쓰이면 그건 가난이다. 그것이 신경 쓰이게 만드는 사회에서 가난은 비로소 작동된다. 허름한 옷차림을 얕보는 사회에서 가난은 출발한다. 아무리 궁핍해도 궁핍함 이 신경 쓰이지 않으면 그것은 가난이 아니다. 확장해 보면 가진게 있고 없고, 신분이 높고 낮고, 남녀의 구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사람 자체를 보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건 배후세계를 늘 의심하는 시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어린아이의 시선이라 말한 바있다. 모든 땅과 건물에 그 주인이 있다는 걸 믿지 않는 어린아이의 맑은 시선에 대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엄연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로부터 빌려온 것 같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스피노자의 삶에의 의지다. 삶의 의지는 우리가 기쁠 때 생겨난다. 우리가 기쁠 때 코나투스는 증가한다. 우리가 슬플 때 코나투스는 감소한다. 그러므로 자신 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욕망하고 자신을 슬프게 하는 것들을 거 부하는 해야 한다. 기쁨은 우리를 의지로 충만하게 하고, 살고 싶게 하고, 높아지게 한다. 슬픔은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낮아 지게 하고, 작아지게 만든다. 코사투스, 우리 삶의 의지 안에는 원래 소심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외적 작용에 일희일비하여 우리 안에 서식하 는 우주적 신의 씨앗을 말살하고야 말았으니 우리는 소심함으 로 뒤덮여 존재가 멈추게 되는 것이다.
- 19세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 1867)는 그의 유일한 시집, 《악의 꽃(Les Fleuts du mal)》에서 시인 자신을 알바트로스에 비유한다. 새파란 창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하는 큰 날개는 진흙탕 세상을 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깊은 사유와 넓은 형이상학적 시선을 지니고 무한과 자유에 닿기를 꿈꾸지만, 이겨야 하고, 밟아야 하고, 화내고 절망하고 얍삽해야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 인 삶 앞에서 자유는, 큰 날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시인은 세상 에 농락당하고 넘어지는 알바트로스에 자신을 투사한다. 핍진한 세상이 자유로운 인간을 조롱한다.
- 그대는 모르는 사이 사회가 들씌운 온갖 가면, 페르소나로 덮여 있다. 그것을 알게 되면 가면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시도로 사회와 싸우게 된다. 페르소나와 그대는 한데 엉겨있어 메스를 깊게 들이댈수록 고통스럽지만 견뎌라.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 는가. '그대는 그대를 견딜 수 없는 것인가? 회사인간, 그 너저분 한 모욕의 삶부터 정리하고 벗겨내라. 서서히, 신중하게, 부드럽 게, 하지만 가차 없이!
회사인간은 나 짜라투스트라가 증오하는 '현자(顯者)'다. 똑 똑한 채 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자들, 바른 길은 애초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길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회사인간의 삶은 가엾다. 나는 종국에 그대 삶이 부정되고 부끄러워지는 사태만큼은 막고 싶은 것이다. 정신 차려라.
-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갈망하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핀다로스, 아폴로 기념 경기 우승자에게 바치는 축가 3)
- 그대는 조금 늦게 필 것이다. 조급해 하지 마라. 늦은 만큼 살 떨리는 환희가 기다리고 있을 테다. 움츠렸다 활짝 터져버리 는 황홀 말이다. 그 전에 그대 안에서 걸려든 것은 어떻게든 잡 아야 한다. 잡지 못하거나 물러서거나 피하면 꽃을 피울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굴욕의 시간에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이것저것 매달리며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품고 또 품고 응축하고 또 응축해서 어느 날, 어느 순간 그대 안에 걸려든, 내 마음을 흔드는 그것을 놓지 않으리라는 신념을 키우는 것이다. 그때는 반드시 온다. 일 잘하려 애쓰지 말고 그대 주변을 먼저 살피라.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대에게 맞닥뜨려진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대를 꼭 붙들고 지키 면서 말이다.
- 경박한 일상, 무엇이든 알고 있어야 하고 뭐든 잘해야 한다 는 강박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삶에서 빠져 나와 침묵으로 자신에 게 침잠하라. 고요하게 빠져들 때 회사인간의 몸은 오래 전 '진 짜 인간이었던 때를 불현듯 기억해 낼 것이다. 한 인간은 그가 말하는 것들에 의해서보다 침묵하는 것들에 의해서 한결 더 인 간이다. 우리는 회사인간이 아니라 진짜 인간이다. 광막한 사막 에 홀로 의젓하게 존재하는 오아시스 같은 인간이며 지구를 통 째로 사는 신화 같은 인간이다. 입가에 미소, 의연하게 출입문을 밀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