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와 떨어져 있게 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것이 뇌의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어미와 몇 시간 떨어진 동물이 다 자랐을 때 뇌를 조사해보니 그렇지 않은 동물과 비교했을 때 수용체의 수나 신경섬유의 활동에 명확한 차이가 있었던 것. 실제로 이런 새끼는 스트레스에 과민반응을 보임. 성장함에 따라 아이는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만 공교롭게도 어머니와의 애착이 안정된 아이일수록 모험을 즐기고, 활발하게 바깥 세계를 탐색하며, 타인과 교류하려 한다. 애착대상에 대한 신뢰감이나 안도감이 아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데 든든한 방패가 되는 것. 이 방패막이 기능을 안전기지라고 부름. 애착이 안전된 아이는 사회성과 활동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지능도 높은 경향을 보임. 안전기지가 아이의 학습능력이나 사회적응 능력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
- 회피형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없다. 타인에게 기대를 품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 함부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비난을 받거나 공연히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간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문제나 사건이 생겨도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만약 자기한계를 넘는 스트레스나 해결이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리면 궁지에 몰려 자신을 소모하게 됨. 더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이 설 때까지 계속 버티다가 갑자기 좌절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에도 자신의 괴로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호소하지 않고, 그냥 도망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것. 어떻게든 참을 수 있을 때는 문제 따위 전혀 없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도 이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음보다 몸이 먼저 비명을 질러서 두통이나 복통, 설사, 구토, 두근거림, 현기증 같은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음. 안정형 인간은 이와 똑같은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접촉을 원한다. 타인이 전해주는 온기에서 안도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임. 하지만 회피형 인간 특히 방치당안 유형의 인간은 오히려 혼자가 되려 한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도움조차 번잡스러운 일이 되고 만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회피형 인간 중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강한 지배를 받은 유형이 있는데, 이 유형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의존하는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그래서 부모 밑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 정서적 측면을 억제하는 회피형 인간의 성향이 장점이 되는 경우도 있음. 슬픈 장며이나 힘든 장면과 마주치더라도 냉정하고 쿨하게 대처가능. 그래서 일이나 취미에소 집중할 수 있다. 실제 회피형 인간은 정서적 문제와 얽히지 않는 일 쪽에서 능력을 잘 발휘함. 이런 회피형 인간의 특성은 또 다른 특성과도 연결됨, 그것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에서 편안함이나 즐거움을 맛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방치당한 회피형 인간도, 과도한 지배를 받은 회피형 인간도 마찬가지. 전자의 경우 인간관계를 즐기는 회로가 성장하지 못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비난을 받거나 무리한 요구가 들어오지 않을까하여 긴장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타인과 함께 있으면 어색하거나 거북함을 느끼고 만다. 이렇듯 타인과 기분좋게 교류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드러내거나 감정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특징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 타인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것은 회피형인간의 기본전략이며, 이것은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만한 상황일수록 강해짐. 실제로 배우자가 신상에 문제가 생겨 고통스런 표정을 드러낼수록 회피형 인간은 분노를 느기고,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언뜻 보면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그 경우에도 자연스러운 감정에 의해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욱 성가시게 되거나 헌신적인 척 하면 유리하게 일이 진행될 것 같다는 이해타산이 작용한 결과. 타인의 고통이나 괴로움에 대한 회피형 인간의 태도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냉담, 무관심, 분노, 초조, 연민 등이다. 여기서의 연민도 상대방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내려다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성격을 띤다.
- 회피형 인간은 인간관계에서 득점을 쌓아 자신의 평가를 올림으로써 살아남는 전략은 쓸 수 없다.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전문적 기능이나 실력뿐이다. 그래서 회피형 인간 중에 성공한 사람은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더 일에 엄격하고, 높은 기술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누구도 참견할 수 없을 만한 기능과 지식, 능력을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타협하지 않고 실력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
- 적당히 인간관계르 얼버무리고 대충 사랑온 사람과는 달리 실력만큼은 진짜다.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철저히 그 둘 중 하나만 선태갛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도 엄격한 눈길을 보낸다. 모호한 태도는 납득하지 못한다. 실적을 명확히 하기 위해 수치에 얽매이는 측면도 있다. 주관적 평가보다 답이 확실한 쪽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실적과 숫자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경영체제와는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저서나 연고에 좌우되지 않는 회피형 인간의 냉철한 일처리는 오늘날 비즈니스 감각과 잘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완전한 회피형 인간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회피형 인간의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쪽이 관리자나 경영자로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 롤링이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원고와 계속 씨름하고 있었을 때는 그 작품이 정말 성공할지, 아니 출판될 수 있을지조차 완전히 미지수였다. 그녀의 원고가 어떤 편집자의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 편집자가 자신의 딸에게 그 원고를 읽어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롤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 중 하나였을 것임. 하지만 만약 그녀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본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가능성을 시험한 것 자체가 회피로부터 가능성을 시험한다는 것 자체는 회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뜻. 그것이 사회의 기준과는 어긋난 일이라고 해도 오히려 그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 회피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삶의 주체성을 되찾는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다. 그를 위한 첫걸음은 지금까지 피하기만 했던 문제와 마주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그것은 완전한 회복을 위해 피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단계다. 회피에서 벗어날 때는 반드시 이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것이 불만이나 분노, 절망 같은 것이라 해도 먼저 그것을 말하고, 자신이 상처받은 지점과 마주하는 것이 거꾸로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 심리치료는 생겨난 증상만을 문제삼고, 그것을 줄여가는 것으로 대처하려 한다. 회피의 근저에 있는 원인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거기에서 이차적으로 파생된 불안이나 분노, 신경과민 같은 것을 안정제 등을 통해 억제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일상의 고통은 완화되지만 근본적인 회복에서는 오히려 멀어진다. 회피하고 있는 상황 그대로 고정되어 버릴 뿐, 회피 자체를 벗어나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는다.
물론 상처받은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탄하고 절망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작어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일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기에 회복의 열쇠가 있다.
- 회피하는 습관에 빠져버린 사람의 뇌는 불안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예기불안이라고도 하는데, 현실에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게 특징이다. 폭로요법은 예기불안에 빠진 사람이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그 문제의 상황속으로 뛰어들어 가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를 극복하도록 해 준다.
이 요법을 행할 때는 우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여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 상처가 깊은 회피형 인간의 경우 그저 그걸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서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평정심을 잃기도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자신을 격려하면서 그 마음에서 도망치지 않고 계속 그 상황을 느껴봐야 한다. 본인이 도망치지 않고 맞설 수 있다면 공포와 불안은 점차 희미해지면서 상황을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된다.
- 안전기지란 안정감을 회복시켜주는 존재. 한마디로 어느때든 괜찮다고 말해주는 존재다. 그 기본적인 태도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 응답이다. 상대가 원할 때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응답해주는 것. 원하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면 안정감에 상처를 입힌다. 또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거나 쓸데없는 참견을 하면 안정감이 자존감에 상처를 주고 만다.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의사와 페이스를 존중해주는 게 중요하다.
-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나 연인관계에서 안전기지 역할을 해주는 쪽이 정상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느느 상대방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 설령 자식이나 배우자라 해도 독립된 인격을 가진 존재로소 존중하고, 주체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스럼없는 관계라는 말과 안전기지는 동일어가 아니다.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맞춰주고 있을 뿐, 속으로는 싫어하거나 성가셔하는 경우도 있다. 종기를 만지듯 하다는 표현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정도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실제로 애착관계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상처가 곪은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아무렇게나 만지면 좋을 리 없다.
- 인생의 벽에 부딪히거나 궁지에 몰렸을 때에 잘 돌아보라. 현재 발등에 떨어진 문제만이 아니라 자신이 줄곧 방치하던 문제가 새삼슬 욱신거리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자기 존재가 흔들릴 정도로 큰 사건을 당했을 때, 사람은 자신을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발아보며 일어서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그것은 위기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대지진이 나서 집이 거의 부서진 이후, 지금까지 방치했던 집의 결함을 파악하고 좀 더 견고한 집으로 고칠 기회로 삼듯, 인생에서도 지진과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애착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마주하고 그것을 복구할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회피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일은 자신의 인생에 주체성을 되찾는 일. 그러나 모든 일이 자기 맘ㄷ로 될 만큼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인과의 사슬과 우연의 결과에 불과하다. 아무리 당신이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관리하려 해도 온갖 우발적 요소와 타인의 행동에 의해 영향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망하는 것,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처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우리는 인생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우리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자신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기회의 대부분은 그렇게 우연히 나타난다. 중요한 점은 기회가 왔을 때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거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 운명이 자신에게 무엇을 시키려고 하는가, 그런 관점에서 상황을 되돌아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느꼈다면 순순히 그것을 따라야 한다.
실패하지 않을까, 잘 안 되지 않을까, 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싶어 겨우 찾아온 운명의 목소리에 귀를 막지 않아야 한다. 하늘의 뜻이라는 순간이 평생 몇 번인가는 있다. 그때는 일단 해보는 것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회피형 인간은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는 교착상태에 빠지기 쉽지만 외부에서 손을 당겨주면 의외로 움직인다. 만약 누군가가 손을 내민다면 그것에 순순히 매달려보자. 꼼짝도 않고, 아무것도 바꿔보려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결과는 실패라 하더라도 도전할 자유가 있다. 실패하는 결과에만 사로잡혀 살 것인가,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가능성이라는 과정을 음미하며 살아갈 것인가, 결국 인생은 결과에 의미가 있지 않다. 그 묘미는 과정에 있다. 도전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피하면 인생이라는 과일을 맛보지 못한 채 썩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일은 어차피 썩게 마련이다. 그러니 썩기 전에 먹는 게 무슨 문제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