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비드는 재료를 비닐봉지에 넣고 진공포장하여 낮고 일정한 온도에서 장시간 요리한다. 이 온도의 설정과 시간조절에 과학적 원리가 있다. 쇠고기의 근육단백질 중 미오신은 50도에서 변성되고, 액틴은 65.5도에서 변성됨. 대부분의 식중독균은 55도에서 죽고, 맛과 향을 더해주는 메일라드(갈변) 반응은 160도 이상에서 잘 일어남. 이런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아주 부드러운 스테이크를 만들려면 미오신은 변성되면서 액틴은 변성되지 않는 50-65.5도 사이에서 가열하면 됨. 여기에 식중독균을 고려하면 55도를 넘겨야 하고, 온도가 높을수록 시간을 줄일 수 있으므로 60-65도 사이에서 가열하면 안전하면서도 아주 부드럽게 익혀진 스테이크를 만들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온도를 61도로 설정하면 며칠이 지난 후에도 미디엄 레어 상태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 시간이 지난다고 점점 더 구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장점은 열이 천천히 전달되어 음식 전체가 고루 익는다는 덤. 그릴에서 구운 고기의 경우 겉은 타버리고 안은 설익는 온도경사가 존재. 그러나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하면 이런 온도경사 없이 고기 전체를 완벽한 미디엄 레어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열만 들어갈 뿐 아무것도 빠져나올 수 없기에 재료의 모든 성분이 그대로 남게 된다. 단지 고온에서만 일어나는 갈변반응이 없어서 특유의 맛과 향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수비드로 조리한 고기를 다시 팬에 살짝 굽거나 토치로 겉을 굽기도 함
- 혀로 느끼는 미각은 고작 5종류 뿐이고 수만 가지 음식의 다양한 맛은 전적으로 향에 의한 것. 이런 향기물질의 자격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요소는 분자의 크기다. 향기물질을 코로 느끼기 위해서는 휘발성이 있어야 함. 따라서 향기물질은 무조건 크기가 1나노미터 이하이고, 분자량은 300이하인 아주 작은 분자다.
맛 물질도 분자 크기에 따라 결정됨. 혀의 미뢰에 존재하는 맛 세포도 실제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는 나노크기여서 맛의 분자도 나노크기만 감지가능함. 결국 분자량이 적은 것 중에서 물에 잘 녹으면 맛성분이 되고, 기름에 잘 녹고 휘발성이 있는 물질이 향기성분이 된다.
- 크기에 따라 표면적이 늘어나는 현상은 생각보다 여러 의미를 가진다. 표면적이 늘면 일단 반응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증가. 그래서 산소와 반응이 활발해져 산화 안전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용매의 작용이 활발하여 추출이 빨라지기도 함. 그리고 흐름성은 낮아짐. 그래서 액체가 고체처럼 변하기도 한다.
식용유와 달걀을 이용하면 마요네즈를 만들 수 있다. 기본은 둘 다 액체인데 마요네즈로 만들면 반고형의 상태가 된다. 특별한 화학적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교반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숫자의 지방구가 만들어지며 그만큼 표면적이 급격하게 늘어나 벌어지는 일이다. 표면적이 늘면 표면적끼리의 마찰력이 커져서 움직이지 못해 고체가 되는 것이지 마술은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요네즈를 냉동실에서 얼렸다 녹이면 유화가 깨져 다시 액체인 달걀과 식용유로 분리됨. 그럼에도 우리는 평소 달걀이 굳은 모습을 자주 보기 때문에 달걀에 월애 굳는 성질이 있어서 고체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움.
- 세포 안에는 많은 미세구조물이 있기 때문에 표면적이 매우 넓고, 효소도 있기 때문에 시험관에서보다 생화학반응이 매우 빨리 일어남. 그런데 물방울의 크기를 1마이크로미터로 줄이면 효소가 없이도 생화학 반응이 저절로 일어난다고 한다. 15년 남홍길 교수 등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인산, 리보스, 염기를 섞은 물을 분사해 직경이 1마이크로미터 정도인 초미세 물방울을 만들자, RNA의 구성성분인 리보뉴클레오사이드 4종이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함. 보통의 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반응이다. 남교수는 마이크로 물방울에서 생화학반응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거나 반응이 수천배나 빠른 것을 보고, RNA같이 복잡한 물질도 합성이 되는지를 실험했다. 그러자 물방울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표면적이 증가하고, 물방울 표면 안팎에는 강한 전기장 등이 형성됨. 이런 요인들이 물방울 자체를 촉매처럼 만들어준 것이다. 생명반응이 효소와 같은 생화학적 요인뿐 아니라 표면적과 같은 물리적 현상에 의해서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크기는 물성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 브라운 운동은 영구운동이다.
꽃가루가 흔들리는 것은 꽃가루 자체보다 주변의 물분자가 꾸준히 꽃가루를 흔들기 때문. 물분자의 크기는 0.2나노에 불과하고, 아무리 작은 꽃가루도 5000-50,000나노이므로 물 분자보다 직경이 10,000배 이상 크다. 크기가 1조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뜻. 그런데 그렇게 작은 물분자들이 자기보다 1좨 큰 꽃가루를 끊임없이 흔들리게 할 정도로 격렬하게 진동한다. 이런 물의 진동이 결국 모든 생명현상의 근본이고 모든 생명체가 그렇게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근본적 이유일지도 모른다. 물은 우리 몸무게의 60% 이상이지만, 숫자로는 99%가 넘는다.
우리 맨눈으로는 마이크로 이상의 크기만 보고, 클수록 빨리 움직이는 것을 보는데, 세상의 기반을 이루는 분자와 마이크로 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정반대로 작을수록 빨리 움직인다.
- 포화지방은 융점이 높고 산패에 강함. 우리는 액체인 기름과 고체인 기름을 모두 쓰지만, 고체기릅도 체온에서 녹는 정도의 기름만 사용. 왁스도 지방의 일종이지만 너무 융점이 높아 식용으로 사용불가. 상온에서는 딱딱한 고체이지만 체온에서 녹는 가장 대표적 지방이 코코아버터다. 코코아버터는 상온에서는 딱딱하지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데, 그 특성은 팔미트산(26%), 스테아르산(32%), 올레산(35%)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순한 조성 때문. 팔미트산과 스테아르산은 포화지방이면서 비교적 융점이 높다. 올레산은 불포화지방 중에서 융점이 높은 펴. 이들이 조합되어 상온에서 가장 딱딱한 편이지만 절묘하게 혀에서 잘 녹는 융점을 가짐. 그리고 포화지방의 비율이 높으니 산화에도 안정적.
코코아버터는 포화지방이 63%인데, 야자유는 92%정도. 그러면 야자유가 코코아버터보다 딱딱할 것 같지만 실은 훨씬 부드럽다. 그 이유는 포화지방이지만 지방사느이 길이가 훨씬 짧은 로르산(C12)이 주성분이기 때문. 그래서 야자유는 체온에서 잘 녹고, 요즘은 중쇄지방이라는 이름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100% 포화지방도 있다. MCT라는 지방인데 야자유보다 지방산의 길이가 짧은 C6, C8, C10이 주성분임. 불포화지방보다 더 융점이 낮은 액체기름이면서 산패에 강한 포화지방의 장점을 그대로 갖고 있음. MCT는 식물성/동물성, 포화/불포화 기름의 구분이 얼마나 의미없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 고온에서 만들어진 고소한 향은 아주 치명적 유혹이다. 지방자체는 맛이 없고 느끼하지만 아미노산, 당과 함께 반응하면 너무나 매력적인 향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마이야를 반응이라 하는데 당과 시스테인 같은 아미노산에 소기름이 있으면 소고기향, 돼지기름이 있으면 돼지고기향, 닭기름이 있으면 닭고기향이 만들어짐. 그리고 향기성분은 원래 지방에 잘 녹는 성분이라 가열중 생긴 향이 지방에 잘 포집되어 풍부한 향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삼겹살이나 마블링이 좋은 고기가 맛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방은 향의 방출패턴에 큰 영향을 준다. 지방이 있으면 향이 지방속에 녹아 들어가 붙잡혀 있다가 조금씩 방출됨. 향료는 수십-수백가지 물질로 구성되는데 물질별로 모두 지방에 녹는 정도와 방출되는 정도가 달라서 동일한 향도 어디에 녹아 있는지에 따라 향의 느낌이 달라짐. 보통 지방이 있으면 향의 방출이 완만하고 느려짐. 그만큼 부드러워지며 약해지기도 한다. 향의 양이 많으면 약하다는 느낌 대신 풍성하다는 느낌을 준다.
- 보통의 식품은 성분이 물에 녹아 있는 상태. 그런데 초콜릿은 기름에 식품성분이 녹아 있다. 맛 성분은 물에 잘 녹고, 향기성분은 기름에 잘 녹음. 코코아에는 쓴맛 성분도 상당히 많은데, 만약 물이 있다면 쓴맛 성분은 녹아나오기 쉽다. 그런데 초콜릿은 용매가 기름이라 이들 쓴맛이 덜 녹아나옴. 그래서 쓴맛이 적고 풍부한 맛의 초콜릿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유성분이 없는 다크초콜릿은 대략 50%의 코코아 지방과 20%의 코코아 분말을 함유하고 있다. 나머지 성분의 대부분은 설탕이다. 보통 달콤한 음료에 들은 설탕의 양이 10% 정도인데, 설탕이 30%나 포함돼 있으므로 매우 달게 느껴져야 할 것 같지만 다크초콜릿은 그렇게 달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떨 때는 전혀 달지 않기도 하다. 이것은 설탕이 코코아 지방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 지방이 녹아야 비로소 설탕을 느낄 수 있고, 이와 동시에 코코아 분말에 있는 카페인과 테오브로민 같은 알칼로이드와 페놀릭 성분이 나온다. 이들은 쓰고 떫은 맛이라 쓴맛과 신맛의 수용체를 활성화하고 설탕의 단맛을 상쇄한다.
초콜릿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만졌을 때는 딱딱하지만, 입안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아내린다는 것. 다코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혀를 통해 단단한 덩어리를 느낄 수 있지만, 곧바로 풍미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잠시 시간이 지나야 초콜릿 덩어리가 혀에서 열을 흡수해 녹으면서 갑자기 부드러워지기 시작. 초콜릿이 녹아 액체가 되어감에 따라 혀에는 시원함이 느껴지고, 이어서 달고 쓴 여러 맛들이 입안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어 과일과 견과류 등의 복잡한 풍미가 가득찬다. 초콜릿을 만드는 복잡한 과정에서의 정성과 노력이 오직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 딱딱하다가 한순간에 시원하게 녹는 초콜릿의 물성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이렇게 녹는 비밀은 코코아버터(지방)의 특성에 있다. 코코아 기름은 상온에서 딱딱한 고체. 그래서 초콜릿을 상온에서 판매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딱딱한 지방이 입안에서는 가장 깔끔하게 사르를 녹는다. 코코아버터는 지방산 조성이 팔미트산, 스테아르산, 올레산으로 아주 간단함. 지방산은 각각 녹는 온도가 다르다. 보통의 기름은 지방산의 조성이 복잡하여 넓은 범위에서 녹는데, 코코아버터는 지바산의 조성이 단순하여 좁은 범위에서도 녹을 수 있다. 좁은 온도범위에서 급격하게 녹으니 열을 빼앗아 청량감을 주기도 한다. 자일리톨도 녹으면서 열을 빼앗기에 시원함을 느끼는데 지방 중에는 코코아버터가 그런 특성을 보임.
입안에서 녹지 않으면 맛으로 느낄 수 없고 몸에도 좋지 않다. 입안에서 조금이라도 덜 녹는 부분이 있으면 초를 씹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을 주는데, 코코아버터는 입안에서 완전히 녹는다. 초콜릿을 만들기에 최고의 기름이고, 비싼 대접을 받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대체할 지방이 상당히 개발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특성이 떨어진다.
- 식이섬유 중에는 포도당과 같은 단순당이 길게 결합한 형태가 많음. 그래서 난소화성 다당류라고 한다. 그중에서 식품 첨가물로 주로 쓰는 것은 증점 다당류 즉, 친수성 다당류다. 물에 녹아서 많은 양의 물을 붙잡아야 점도를 높이거나 겔화가 가능하기 때문. 통칭하여 검류나 안정제라고 부르기도 하고, 점도가 주목적일 때는 증점제나 호료, 겔로 굳이는 게 목적일 때는 겔화제라고 한다. 동일한 물질이지만 목적에 따라 여러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 식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증점다당류는 적은 양으로도 효과적으로 점도와 물성을 부여하고, 전분과 달리 노화현상이 없으므로 장기간 안정적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적 물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들의 선호다. 사람은 단순히 점도가 높거나 단단한 물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볼륨감은 있지만 입안에서 깔끔하게 잘 녹는 제품을 요구. 따라서 분자의 길이가 긴 다당류를 지나치게 쓰면 식감이 떨어질 수가 있으니, 비록 효율은 떨어지더라도 길이가 짧은 폴리머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 아밀로스는 가지가 없는 선형이기 때문에 아밀로스끼리 촘촘히 결합하고 쌓여서 단단한 결정을 형성. 그리고 아밀로펙틴에 비해 적은 공간을 차지하므로 에너지비축에 유리. 대신에 찬물에 녹지 않고, 효소의 작용이 쉽지 않아 소화가 느리다.
아밀로스는 뜨거운 물에 녹고 식품이나 산업용에서 증점제, 유화안정제, 겔화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선구조 안쪽은 소수성을 띠고 있어서 지방이나 향기성분의 포집능력이 있다.
호화된 아밀로스는 노화되려는 성향이 큰데, 노화 시 수분을 방출하는 이수현상이 생기고, 겔의 점성이나 탄성은 떨어지면서 단단해지는 단점이 있다. 또한 소스의 점도를 높여주지만 식으면서 고체와 물의 분리가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장기간 안정적 품질을 유지하려면 별도의 증점다당류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 아밀로스는 아밀로펙틴에 비해 분자가 작아 호화와 노화의 상태변화가 심하고 속도도 매우 빠름. 그 양은 적지만 숫자로는 아밀로펙틴보다 40-80배나 많은 상태이니 결코 그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아밀로펙틴은 매우 가지가 많고 거대한 분자이고, 전분의 70-100%를 차지하는 중요한 분자이다. 그리고 용해 및 분해가 쉬운 가지형 구조이지만 포도당이 2000-200,000개가 결합한 초거대분자라 움직임이 느리고 노화가 천천히 일어남. 떡을 아밀로펙틴으로 된 찹쌀로 만들면 훨씬 오랫동안 말랑말랑한 이유다. 아밀로펙틴이 많은 쌀은 부드럽고 끈적이고, 아밀로스가 많은 쌀은 단단하여 밥알이 잘 분리됨. 그런데 식거나 노화되면 심하게 단단해진다.
- 호화전분(알파전분)을 실온에 방치하면 점차 굳어져서 베타전분으로 되돌아가는데, 이것을 노화, 혹은 베타화라고 함. 냉장고에 밥, 식빵, 떡을 보관하면 며칠 안에 촉촉하고 윤기나던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딱딱하고 까끌까글해진다. 그래서 상하지 않아도 버리게 된다. 노화된 전분은 효소의 작용을 받기 힘들어 소화가 잘 안된다. 우리가 더운밥을 선호하는 이유다. 전분 노화는 소화율뿐 아니라 식품 고유의 향미와 조직감을 떨어뜨리는 등 전반적 식품품질을 떨어뜨리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전 세계적으로 30%의 곡류 가공식품이 소비되기 전 폐기되고 있으며, 이 중 빵류의 5%, 떡류의 10%가 노화로 인해 폐기되고 있다. 어느 대 노화가 잘 일어나는지 알아야 하는 이유다.
- 온도가 높을수록 운동이 활발하므로 노화가 지연된다. 일반적으로 60도 이상의 온도에서는 노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노화가 가장 잘 일어나는 온도는 2-5도로 냉장온도다. 온도가 0도보다 낮아져 -20~-30도에 이르면 노화현상은 크게 감소. 이것은 온도가 내려가면 물분자 간의 수소결합이 안정화되고, 전분분자들의 운동이 억제되기 때문. 밥이나 빵은 냉장온도로 보관하는 것보다 아예 얼리거나 상온에 보관하는 것이 유리한 이유다.
- 우리 몸에서 포도당을 저장하는 형태인 글리코겐은 전분의 보관형태중 가장 곁가지가 많다. 그래서 효소에 의해 빠른 속도로 분해가 가능하다. 만약 포도당으로 보관하면 부하가 생기고, 촘촘한 형태로 보관하면 분해속도가 느려 폭발적 에너지를 낼 때 불리.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고, 육식동물은 젖먹던 힘까지 보태서 그날의 먹잇감을 사냥한다. 살기 위해서는 순간적인 힘이 필요함. 요즘은 운동선수도 마라톤을 할 때 글리코겐 형태의 보관량을 늘리려고 특별한 식이요법을 한다.
- 글리코겐은 체내에서 완전 산화되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성분이며, 사람의 대사작용에 매우 중요. 성인의 체내에는 약 300-350그램의 탄수화물이 저장되어 있는데, 그중 100그램 정도는 간에, 200-250은 심장, 연조직 및 골격근육에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되어 있으며, 약 15그램은 혈액과 세포외액에 포도당으로 존재.
- 콜라겐과 젤라틴
식물세포의 뼈대가 셀룰로스라면, 동물세포의 뼈대는 콜라겐. 콜라겐은 우리 몸 단백질의 20-30%를 차지하는 가장 많고 중요한 단백질이다. 교원질이라고도 하며, 기관과 조직을 하나로 묶어 연결하는 세포간 접착제 기능을 함. 콜라겐이 부족하거나 튼튼하지 못하면 피부, 뼈, 연골, 혈관벽, 치아, 근육 등의 구조와 기능이 떨어진다. 소장에서 흡수된 영양소는 콜라겐을 통해 혈관으로 운반되어 몸 밖으로 배출된다. 또한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도 강인한 흰색 섬유성 단백질이라 근육의 액틴과 미오신 조직보다 100배는 단단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비타민 C가 중요한 것은 이 콜라겐 때문. 콜라겐 합성에는 주로 세 종류의 아미노산이 사용됨. 글리신, 라이신, 프롤린이다. 이들은 단백질을 섭취해도 생기고 탄수호물을 먹어도 생긴다. 그런데 두 종류의 아미노산은 추가적 변신이 필요. 라이신과 프롤린의 일부에 -OH기가 추가되어 하이드록시라이신과 하이드록시프롤린이 되어야 함. 하이드록시기가 증가되면 세 가닥으로 꼬이는 콜라겐 사슬 간에 수소결합이 증가하여 단단한 구조체를 형성하는데,이때 라이신과 프롤린에 하이드록시기를 추가하는 용도로 비타민C가 사용됨. 비타민C가 부족하면 괴혈병에 걸리는 이유도 콜라겐 합성이 부족하여 모든 세포가 약해지기 때문. 약해진 세포 중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출혈이 나타남.
콜라겐은 여러 중요한 기능을 한다. 피부미용(탄력)의 핵심이고, 단단한 세포결합으로 감기 등의 바이러스 감염을 줄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기능의 주체는 콜라겐이지 비타민C가 아니다. 비타민C는 콜라겐 합성에 필요한 원료 중 하나일 뿐. 콜라겐을 녹이면 젤라틴이 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 일반적으로 우리는 질기고 마른 고기보다 연하고 육즙이 많은 고기를 좋아한다. 따라서 고리를 조리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수분유실과 섬유조직이 쪼그라드는 현상을 최소화하고, 질긴 결합조직인 콜라겐을 최대한 유동성 있는 젤라틴으로 전환하는 것.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두 목표는 서로 모순된다. 섬유가 굳는 현상과 수분유실을 최소화한다는 것은, 곧 고기를 55-60도가 넘지 않는 온도에서 잠깐 동안만 익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콜라겐을 젤라틴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70도 이상의 온도에서 장시간 익혀야 한다. 따라서 모든 고기에 적용할 수 있는 이상적인 조립법은 없다. 조리방법은 그 고기의 질긴 정도에 따라 조정할 수밖에 없다. 연한 고기는 육즙이 흥건해지는 시점까지 재빨리 익히는 것이 최선이다. 석쇠구이, 프라이, 로스팅은 흔히 쓰는 빠른 조립법이다. 질긴 고기는 삶거나 고거나 끓는점에 가까운 온도에서 장시간 익히는 것이 최선이다. (음식과 요리, 해롤드 맥기)
- 단백질은 효소의 작용으로 크게 달라진다. 단백질 분해효소에 의해 분해되고, 응유효소에 의해서는 굳어지고, 트랜스글루타미나에에 의해서는 결착이 된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중 가장 흔한 것이 글루탐산과 라이신인데, 트랜스글루타미나제는 이들 사이에 강력한 결합을 형성한다. 그러면 단백질 사이를 잇는 결착제로 쓸 수 있다. 시중에서 살이 거의 없는 갈비뼈에 이런 효소를 이용해 목심이나 등심을 붙여 만든 갈빗살을 팔기도 하는데, 외견상으로는 일반 갈비와 거의 차이가 없다. 효소는 불법이 아니고 위험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갈비에 살코기를 추가로 덧붙였어도 갈빗살이라고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어서 단속할 근거도 없다.
보통의 두부에는 쓰이지 않지만, 섬유소가 많은 제품이 이 효소를 사용하면 단백질의 양에 비해 훨씬 탱탱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몸의 혈액 응고과정에서도 이런 효소의 작용이 관여한다.
- 칼슘이 주된 역할이 뼈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도 알고보면 큰 착각이다. 체내 칼슘의 99%가 뼈에 있고, 1%만 체액에 녹아 있지만, 실제로 우리 몸에 중요한 기능은 이 1%가 한다. 우선 여러 신호를 완결하는 물질이며, 골격근, 심근, 평활근 등의 수축, 신경세포 축색의 물질수송, 원형질 유동, 외포작용, 내포작용, 세포의 변형운동, 미세섬유의 운동, 세포분열 등에 관여. 칼슘이 없으면 생명현상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하기 때문에 뼈의 형태로 비축해 둔 것이지 단단해서 뼈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단단한 물질은 탄소다. 킹크랩 같은 갑각류의 단단한 껍질은 칼슘은 전혀 없이 포도당과 유사한 당류로 만들어진 것이고, 나무의 단단함을 유지하는 셀룰로스도 포도당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 수분을 지키는 것이 생존이라는 사실은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의 수분함량은 50-70% 정도이고, 신체부위에 따라 다름. 혈액은 83%, 근육은 75%, 뼈는 22%, 심지어 그렇게 단단한 치아도 2%이 수분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신체의 수분함량이 감소함. 신생아일 때는 90%, 유아일 때는 80%였다가 아이때는 70%, 어른일 때 60-65%가 된다. 그리고 노년에는 55%까지 떨어지는데 50% 이하가 되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점점 건조해진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 샤론 모알렘은 아파야 산다를 통해 철분이 축적되어 발생하는 치명적인 혈색증마저도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내 몸의 세포뿐 아니라 세균, 기생충, 심지어 암세포마저도 철분이 있어야 살 수 있는데, 철분이 개별적으로 단백질과 결합한 상태로 있을 때는 우리와 세균도 활용할 수 있지만, 철분끼리 결합시켜 침전시키면 우리몸도 괴롭지만 세균도 증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혈색증이 많은 민족은 아이러니하게도 철분이 부족하여 흑사병의 원인균이 많이 자라지 못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이처럼 혈색증은 치료하지 않으면 중년을 넘기기 힘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년까지는 감염이나 치명적 질환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한다.
- 단백질의 자발적 결정화
단백질은 부드럽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결석이 될 수 있다. 단백질은 형태로 작용하는 물질인데, 단백질이 잘못 접히면 단순히 기능이 불량해지는 차원을 벗어나 알츠하이머나 광우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광우병은 프라이온이라는 단백질의 잘못된 접힘과 관련이 크다는 주장이 있다. 어떤 원인으로 단백질이 결정화되고, 어떤 방법으로든 잘못 접힌 하나의 단백질이 다른 단백질의 잘못 접힘도 유발하여, 주변의 단백질을 연속적으로 결정화시키면 신경계와 뇌의 모든 작동을 파괴한다는 것. 이처럼 용해도는 물성뿐 아니라 생명현성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용해도를 완전히 이해했다는 말은 식품현상의 절반은 이해했다는 말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