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의 미래

과학 2024. 5. 29. 07:02

- 양자 슈프리머시
지난 2012년에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칼텍)의 물리학자 존 프레스킬 이 '양자 슈프리머시Quantum Supremacy'(양자우위)라는 단어를 처음 언 급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대부 분의 과학자는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될 때까지 적어도 수십 년, 길게 는 수백 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실제로 개개의 원자를 이 용하여 계산하는 것은 실리콘 웨이퍼(반도체 기판)에서 계산하는 것보 다 훨씬 어렵다. 양자컴퓨터는 작동 원리가 워낙 미묘해서 진동이나 잡음이 조금만 끼어들어도 계산 전체를 망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프 레스킬의 선언은 비관론자들의 부정적 생각을 한 방에 날려버렸고, 그 후로 사람들은 양자컴퓨터가 완성되는 날을 고대하며 카운트다운 에 들어갔다.
양자컴퓨터의 회오리는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에도 불어닥쳤다. 내 부고발자들이 유출한 문서에 의하면,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 보국(NSA)에서는 이 분야의 진척 상황을 오래전부터 예의주시해왔 다. 양자컴퓨터가 완성되면 모든 보안 코드를 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1급 기밀이 새어나가는 건 물론이고, 모든 기업 과 개인의 신상정보도 사방에 유출될 수 있다. 절대로 공연한 엄살이 아니다. 미국의 정책과 표준을 수립하는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에서는 최근 불어닥친 변화에 대기업과 정부기관들이 빠르게 적응하 도록 돕는 지침서를 공개하면서, 2029년이 되면 양자컴퓨터로 128비 트짜리 고급암호화표준Advanced Encryption Standard (AES)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암호전문가 알리 엘 카파라니는 2021년 7월에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감한 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기관의 입장에서 양자컴퓨터는 악몽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양자컴퓨터의 선두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국립 양자정보 과학연구소에 이미 100억 달러를 투자한 상태이다. 국가 정보의 안 위가 달린 일인데, 이 시점에서 수백억 달러를 아꼈다간 훗날 대재앙 을 피할 길이 없다. 악질 해커가 양자컴퓨터를 손에 넣는다면 지구상의 '모든' 디지털 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국가의 군대까지 극 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들이 훔친 정보는 비밀 경매시장에서 최 고가를 부른 또 다른 악당에게 넘어갈 것이며, 이들이 월스트리트 컴 퓨터의 가장 깊은 곳에 침투하여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또 한 양자컴퓨터로 블록체인(가상화폐로 거래할 때 해킹을 막는 기술-옮긴 이)의 잠금을 해제하면 비트코인 시장도 순식간에 와해된다. 영국의 다국적 회계법인이자 자문회사 딜로이트의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25퍼센트가 양자컴퓨터 해킹에 취약하다고 평가했으며, 데이터 소프 트웨어 IT 기업 CB인사이트에서는 "블록체인 소프트웨어 관리자들 은 당분간 양자컴퓨터의 개방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경 고했다"
그러므로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것은 디지털 기술에 기반을 둔 세계 경제이다. 지금 월스트리트의 은행에서는 수십억 달러의 거 래가 오직 컴퓨터에 의존하여 진행되고 있다. 또한 공학자들은 컴퓨 터를 이용하여 고층건물과 교량, 우주로켓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할 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도 대부분이 컴퓨터의 산물이다. 제약회사 들은 컴퓨터로 신약을 개발하고, 아이들의 여가는 이미 오래전에 컴 퓨터에게 점령당했다. 물론 어른들도 친척이나 친구, 또는 동료들에 게 소식을 전할 때 주로 휴대폰을 사용한다(다들 알다시피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가끔은 전화기로도 쓸 수 있는 컴퓨터이다-옮긴이). 독자 들은 휴대폰이 작동하지 않을 때 공황상태에 빠진 경험이 한 번쯤 있 을 것이다. 사실 현대인이 하는 행위 중에는 컴퓨터와 무관한 것이 거 의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지나칠 정도로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기 에, 모든 컴퓨터가 어느 날 갑자기 작동을 멈춘다면 지구 문명 자체가 극도의 혼란에 빠질 것이다. 과학자들이 양자컴퓨터에 촉각을 곤두세 우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요즘 생산되는 마이크로칩에서 트랜지스터의 가장 얇은 층은 원자 20개가 들어가는 정도인데, 이 간격이 더 좁아지면 양자적 효과가 두 드러지게 나타나서 성능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트랜 지스터 사이의 간격이 원자 5개 정도라면,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위 치가 불확실해진 전자들이 사방으로 튀어나와 회로를 단락시키거나 과도한 열을 발생시켜 칩을 녹일 수도 있다. 즉, 실리콘(반도체)에 기 반을 둔 컴퓨터에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은 물리법 칙으로부터 초래된 필연적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리콘 시대의 종말을 목격하는 산 증인이 될 것이며, 후-실리콘 시대(또는 양자 시 대)의 서막을 현장에서 관람하는 첫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텔의 산제이 나타라잔이 말했듯이, "이 정도면 우리는 반도체 컴 퓨터를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다"
실리콘밸리는 머지않아 러스트벨트Rust Belt(전성기가 지난 후 최악의 불황을 맞이한 산업단지를 일컫는 용어-옮긴이)로 전락할 운명이다.

-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은 디지털 정보에 대한 새로 운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1959년에 <바닥에는 아직도 여유 공 간이 많이 남아 있다There'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했다. 0과 1로 이루어진 수열을 원자의 상태로 대체하면 원자 규모의 컴퓨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트랜지스터를 가장 작은 물체(원자)로 바꾸면 컴퓨터의 크기 가 혁신적으로 줄어들지 않겠는가?

- 원자의 세계는 인간계와 달리 참으로 희한한 세계여서, 원자는 두 방향의 조합으로 자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원자는 주 어진 시간의 10퍼센트 동안 up이고 90퍼센트는 down이며, 또 어떤 원자는 65퍼센트가 up이고 35퍼센트는 down 일 수도 있다. 실제로 원자가 자전하는 방법(즉, 원자가 가질 수 있는 스핀 값)은 무수히 많으 며, 따라서 원자가 놓일 수 있는 상태도 무수히 많다. 이는 곧 원자가 0 이나 1로 결정된 비트뿐만 아니라, 0과 1의 중간상태(up과 down이 혼합된 상태)인 '큐비트qubit'(양자비트)의 형태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 음을 의미한다. 디지털 비트는 한 번에 단 1개의 정보밖에 운반할 수 없어서 연산 능력에 뚜렷한 한계가 있지만, 큐비트의 연산 능력은 거 의 무한대에 가깝다. 원자 규모에서 물리적 객체가 여러 개의 상태에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을 'superposition'이라 한다(그래서 원자세 계에는 일상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냉장고 같은 거시적 물체는 오직 하나의 위치만을 갖지만, 원자 규모에서 전자는 '이곳'과 '저곳' 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디지털 비트는 다른 비트에 영향을 줄 수 없지만, 큐비 트는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교환할 수 있다. 이것을 물리학 용어로 '얽힘entanglement'이라 한다. 디지털 비트는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비트를 추가해도 달라지는 것이 거의 없지만, 큐비트 집단에 새로운 큐비트를 추가하면 새로 유입된 큐비트가 기존의 모든 큐비 트와 상호작용을 교환하므로 가능한 상호작용의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어난다. 따라서 양자컴퓨터는 디지털 컴퓨터보다 강력할 수밖에 없 다. 큐비트 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상호작용의 수가 두 배로 많아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숫자로 예를 들어보자. 현재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는 약 100개의 큐비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 컴퓨터는 큐비트 1개로 이 루어진 양자컴퓨터보다 200배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양자 슈프리머시를 최초로 달성한 구글의 양자컴퓨터 시카모어는 53개의 큐비트로 720억×10억 바이트(1바이트=8비트)의 메모리를 처 리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하면 기존의 컴퓨터는 거의 주판 수준에 불과 하다.

- 프사이퀀텀의 설립자인 제레미 오브라이언은 빠른 컴퓨터를 만드 는 것이 새로운 혁명의 골자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양자 혁명의 진정한 의미란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로는 아무리 긴 시간을 들여도 결코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복잡한 화학적, 생물학적 반응의 얼 개)의 답을 얻어내는 것이다."
오브라이언은 말한다. "양자컴퓨터의 본분은 과거에도 할 수 있었 던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양자컴퓨터에 기대 를 거는 이유는 과거에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디지털 컴퓨터로 복잡한 화학반응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원리 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구에 매장된 실리콘을 몽땅 채취해서 초대형 슈퍼컴퓨터를 만든다 해도, 과거의 디지털 방식으로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플랑크는 실험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양자가설을 제안하여 물 리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뉴턴의 고전역학을 하늘처럼 믿는 사 람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여기서 잠시 그의 항변을 들어보자. “새로운 과학적 진실이 발견되었을 때, 반대론자들 을 설득해서 인정받겠다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그들의 생 각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이론이 수용되려면 반대론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신세대 물리학자들이 새로운 진실에 친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두 물체가 결맞음 상태에 있으면(동일한 패턴으로 진동하면) 둘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져도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요즘 물리학자 들은 이 현상을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바로 이것이 양자컴퓨터의 핵심원리이다. 서로 얽혀 있는 큐비트는 거리가 멀어져도 상호작용을 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막강한 계산 능 력이 발휘된다.
비유하자면, 일상적인 디지털 컴퓨터는 여러 명의 회계사들이 독립적으로 일하는 사무실과 같다. 이들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각자 자신에게 할당된 계산을 수행한 후 결과를 순차적으로 넘겨준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방 안을 가득 메운 회계사들이 수시로 상호작 용을 하면서 동시에 계산을 수행하고, 얽힘을 통해 정보를 교환한다. 즉, 양자컴퓨터의 회계사들은 결맞음 상태에서 주어진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있다.

- 파인먼은 원자 규모에서 환상적인 발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시세계에 적용되는 물리법칙은 원자 규모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959년에 칼텍에서 열린 미국 물리학회에서 "바닥에는 여유 공간이 많이 남아 있다"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는데, 그것은 실로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강연에서 파인먼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24권짜리 백과사전을 바늘의 뾰족한 끝에 몽땅 새겨넣을 수는 없을까요?"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원자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배 열해주는 작은 기계를 만들면 된다. 망치와 핀셋 등 우리가 일상적으 로 사용하는 도구를 기본입자(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 입자의 총칭-옮긴이) 크기로 소형화하는 것이다. 자연은 우주 초창기부터 원자를 마음대로 조작해왔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파인먼은 양자컴퓨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자연은 고전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자연을 흉내내려면 양자역학적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사실 여기에는 심오한 통찰이 숨어 있다.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는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양자적 과정을 시뮬레이션하 기에는 역부족이다. (IBM의 부사장 로버트 수터는 다음과 같은 비유 를 들었다. 디지털 컴퓨터로 카페인 같은 단순한 분자가 형성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려면 10비트의 정보가 필요한데, 이 수는 지구를 구성하는 총 원자 개수의 10퍼센트에 해당한다. 따라서 디지털 컴퓨 터로는 단순한 분자조차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
파인먼은 이 유명한 강연에서 몇 가지 놀라운 아이디어를 제안했는 데이 강연은 얼마 후 책으로 출판되었다-옮긴이), 그중 하나가 혈관을 타 고 이동하면서 다양한 병을 치료하는 초소형 로봇이다. 파인먼 삼 키는 의사swallowing doctor'라고 불렀던 이 로봇은 백혈구처럼 몸 전체 를 돌아다니면서 인체에 해로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공격하거나, 문제가 생긴 부위를 수술할 수도 있다. 모든 치료가 몸속에서 이루어 지기 때문에 피부를 절개하지 않아도 되고, 통증과 감염을 걱정할 필 요도 없다.

- 양자 튜링머신
1981년에 파인먼은 양자적 과정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양자컴퓨터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당시 파인먼은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 후 파인먼 의 바통을 이어받은 옥스퍼드대학교의 데이비드 도이치는 튜링머신 에 양자역학을 적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파인먼도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지만 양자 튜링머신을 위한 방정식까지 유도하진 않았는데, 그 세부사항을 도이치가 마무리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가상의 양자튜링머신에서 실행되는 알고리듬까지 설계했다.
앞서 말한 대로 튜링머신은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무한히 긴 테이프 에 기록된 숫자를 다른 숫자로 변환하여 일련의 수학연산을 수행하 는 고전적 기계로, 이것을 이용하면 디지털 컴퓨터의 특성을 요약하 여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튜링머신에 양자역학을 추 가하면 양자컴퓨터의 기이한 특성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도이치는 튜링머신의 고전적 비트를 양자적 큐비트로 바꾸면 양자 튜링머신이 된다고 생각했고, 이로부터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첫째, 튜링머신의 기본적인 조작(0을 1로 바꾸거나 1을 0으로 바꾸기, 테이프를 한 칸 앞이나 뒤로 이동시키기 등)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지만, 비트는 더 이상 0과 1이 아니다. 양자 튜링머신은 중첩superposition (하 나의 입자가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이라는 기이한 양자적 특성을 이용하여 0과 1 사이에 존재하는 큐비트를 생성할 수 있다. 둘째, 양 자 튜링머신의 모든 큐비트는 서로 얽힌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나의 큐비트에 일어난 일은 멀리 떨어진 다른 큐비트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계산이 종료되었을 때 명확한 숫자를 얻으려면, 모든 큐 비트가 0 또는 1이 되도록 '파동을 붕괴시켜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 면 양자컴퓨터로 원하는 답(숫자)을 얻을 수 있다.
튜링이 튜링머신에 정확한 규칙을 도입하여 디지털 컴퓨터의 기초 를 세웠듯이, 도이치는 양자컴퓨터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 을 했다. 그는 큐비트가 작동하는 방식의 핵심을 밝힘으로써 양자컴 퓨터의 표준화에 크게 기여했다.

- 거실에 존재하는 평행우주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어느 날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머리에 쥐가 나지 않으면서 평행우주를 이해하는 비법을 알려주었다. 지금 당신은 거실에 홀로 조용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눈에 는 보이지 않지만, 거실 내부는 전 세계 방송국에서 송출한 수백 종의 라디오 전파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이들 중 단 하나의 방송 만 들을 수 있다. 라디오는 여러 개의 주파수를 동시에 수신할 수 없 기 때문이다. 즉, 당신의 라디오는 거실을 가득 채운 다른 전파와 '결 어긋남 상태'에 있다. 거실은 다양한 라디오 전파로 가득 차 있지만, 당신이 그 주파수에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결어긋남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방송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라디오파를 전자와 원자의 양자적 파동으로 바꿔보자. 거실 에는 평행우주의 파동(공룡, 외계인, 해적, 화산 등의 파동)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들과 결어긋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들 과 상호작용을 교환할 수 없다. 당신의 파동은 공룡의 파동과 같은 모 드로 진동하지 않는다. 평행우주는 우주 바깥이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거실 안에 당신과 함께 존재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다른 평행우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원리적으로는 가능하 다. 그러나 이런 희한한 일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해보면, 천문학적인 시간을 기다려야 간신히 한 번쯤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이다.
우리 우주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당신의 거실에 있는 다른 평행우주에서 멀쩡하게 살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는 결어긋남 상태에 있기 때문에, 직접 접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엘비스가 살아 있다 해도, 그는 우리와 연결될 수 없는 다른 평행우주 에서 노래하고 있다.
당신이 다른 평행우주로 들어갈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의'라는 수식어이다. 양자역학에서 모든 사건은 확률로 표현된다. 나는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자신이 다음 날 아침에 화성에서 깨어날 확률을 계산하라'는 문제를 내주곤 한다. 물론 뉴 턴역학으로 계산하면 답은 당연히 0이다. 아무런 도움 없이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의하면 중력이라는 장애물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여 화성에서 깨 어날 확률은 0이 아니다. (단, 실제로 계산을 해보면 확률이 거의 0에 가까워서 우주의 나이만큼 기다려도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 러므로 밤에 침대에 누울 때 다음날 화성에서 깨어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데이비드 도이치는 이 황당무계한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양 자컴퓨터는 왜 그토록 강력한가? 다른 전자들이 평행우주에서 동시 에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양자 얽힘'을 통해 상호작용 을 교환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양자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달랑 하나의 우주에서 고군분투하는 디지털 컴퓨터보다 훨씬 강력하다.

- 양자이론 요약
양자컴퓨터를 가능하게 만든 양자이론의 기이한 특성은 다음 네 가 지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중첩
모든 물체는 누군가에게 관측되기 전까지 여러 개의 가능한 상태에 '동시에 존재한다. 즉, 하나의 전자는 이곳 저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 특성을 컴퓨터에 응용하면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의 수가 많기 때문에 엄청난 연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2. 얽힘
양자적으로 얽힌 관계에 있는 두 입자는 둘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어져도 상대방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 영향은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양자컴퓨터는 큐비트가 많을수록 상호작용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성능도 그와 비슷한 비율로 빠르게 향상된다.
3. 경로합
입자가 두 지점 사이를 이동할 때에는 두 점 사이를 연결하는 모든 가능한 경로를 동시에 지나간다. 각 경로에는 확률이 가중치처럼 할 당되어 있는데, 이들 중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은 고전역학의 해답에 해 당하는 경로이다. 그러나 확률이 아무리 낮은 경로라 해도 이들까지 모두 더해야 정확한 최종확률을 구할 수 있다. 이는 곧 확률이 지극히 낮은 경로도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척박했던 지구에 생명이 창조된 것도 확률이 매우 낮은 분자의 경로가 현실세계에 구현되었 기 때문일 것이다.
4. 터널효과
일반적으로 입자는 높은 에너지 장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높은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 이 확률은 장벽이 높을수록 0에 가까워지지만, 어쨌거나 0은 아니다(이것은 입자가 벽을 뚫어서 벽에 흠집을 내는 것이 아니라, 벽에 아무런 손상도 입히지 않고 통과 하는 현상이다-옮긴이).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복잡한 화학반응이 상 온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 터널효과 덕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 광합성의 양자역학
대부분의 과학자는 광합성이 양자적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독자들 도 학창시절에 배웠겠지만, 광합성은 불연속의 에너지 덩어리인 광자가 잎에 함유된 엽록소chlorophyll를 때리면서 시작된다. 엽록소 분자 는 빨간색과 파란색 빛을 흡수하고 초록색 빛을 주변 환경으로 반사 한다. 대부분의 식물이 녹색을 띠는 이유는 그들이 녹색 빛을 흡수하 지 않기 때문이다(만일 식물이 모든 빛을 흡수한다면, 나뭇잎은 초록 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보일 것이다).
광자가 나뭇잎에 충돌하면 모든 방향으로 산란되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바로 여기서 양자 마법이 기적을 일 으키기 때문이다. 광자가 엽록소를 때리는 순간 '엑시톤exciton'이라 불리는 진동에너지가 발생하여 잎의 표면을 따라 전달되고, 결국 이 에너지는 잎 표면에 있는 '에너지 수집 센터 energy collection center'에 모여서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데 사용된다.
-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에너지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뀔 때 대부분이 무용한 에너지가 되어 주변 환경에 버려진다. 따라 서 광자가 엽록소 분자와 충돌했을 때 알뜰하게 사용되는 에너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폐열로 사라질 것 같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엑시톤의 에너지는 거의 아무런 손실 없이 에너 지 수집 센터로 운반된다. 이 과정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효율 을 자랑하는데, 이유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광자가 만든 엑시톤이 수집 센터에 모이는 현상은 여러 명의 골퍼 가 각자 임의의 방향으로 티샷을 날리는 마구잡이 골프경기와 비슷 하다. 이런 대회라면 골프공이 거의 모든 방향으로 날아가면서 아까 운 공만 낭비하고 말겠지만, 양자 골프에서는 날아가는 공들이 돌연 방향을 바꿔 한결같이 홀인원을 달성한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지 만, 실제로 실험실에서 관측되는 현상이다.
-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엑시톤의 경로를 리처드 파인먼의 경로적분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경로적분은 양자역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양자역학 전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 라보는 또 하나의 역학체계이다. 전자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모든 가능한 경로'를 탐색한 후, 각 경로에 할당된 확률을 계산한다. 무슨 마술을 어떻게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전자 는 두 점 사이를 잇는 모든 경로를 '알고 있다'. 이는 곧 전자가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미스터리도 있다. 일반적으로 광합성은 상온에서 진행되는 데,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는 주변 원자들의 무작위 운동 때문에 엑시 톤 사이의 결맞음이 쉽게 붕괴된다. 대부분의 양자컴퓨터는 이 현상 을 방지하기 위해 OK 근처까지 냉각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그러나 식물은 상온에서도 멀쩡하게 잘 자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 까?

- 리튬-이온 배터리가 유난히 편리한 이유는 리튬 원자의 화학적 특 성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리튬은 가볍다.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금속 원소 중 제일 가벼운 것이 리튬이다(원자번호 3번). 자동차나 비행기는 무게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므로, 무게를 놓고 따지면 리튬만 한 것이 없다.
리튬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리튬 원자는 3개의 전자를 갖고 있다. 처음 2개는 원자의 가장 낮은 에너지준위인 1S에 있고, 나머지 1개는 두 번째 준위에 비교적 느슨하게 묶여 있어서 전자를 제거하기 쉽고 배터리에 에너지를 공급하기도 쉽다. 리튬 배터리가 전류를 쉽 게 생성하는 것은 이런 특성 때문이다.
-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은 흑연이고 음극은 리튬 코발트 산화물 이며, 전해질로는 에테르가 사용된다. 이 환상적인 배터리를 발명한 존 구디너프와 스탠리 휘팅엄, 그리고 요시노 아키라는 2019년에 노 벨 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그러나 리튬-이온 배터리는 모든 배터리 중에서 에너지밀도가 가 장 높은데도 불구하고,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같은 무게의 휘발유 에 저장된 에너지의 1퍼센트에 불과하다. 누구나 꿈꾸는 탄소 제로 시대를 구현하려면 화석연료와 견줄 만한 배터리가 있어야 한다.
- 리튬-이온 배터리는 느리게나마 개선되고 있지만, 200년 전에 볼 타가 제시했던 기본구조는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분야에 양 자컴퓨터가 도입되면 수백만 건에 달하는 실험을 훨씬 효율적으로 빠르게 수행하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배터리 혁명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배터리 안에서 진행되는 화학반응이 뉴턴의 운동법칙처럼 간단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복잡 한 화학반응을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할 수 있으므로 방정식을 일일이 풀지 않고서도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 회사들이 순수수학만으로 슈퍼배터리를 설계하기 위해 양 자컴퓨터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효율 배터리는 청정에너지 생산의 걸림돌인 전기의 저장 문제를 해결하여 태양에너지 시대로 가는 길을 활짝 열어줄 것이다.

- 암 종양이 세포와 분자를 체액으로 배출한다는 것은 100년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암세포와 그 분자는 혈액과 소변, 뇌척수액 에서 발견되며, 심지어 타액(침)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이미 몸속에 수십억 개의 암세포가 자라난 후 에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체액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면 대부분 종양 제거 수술에 들어간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전공학자들은 (외부 로 유출되지 않은) 혈액이나 기타 체액 속에서 암세포를 탐지하는 기술 을 개발했다. 앞으로 이 기술이 더욱 정밀하게 개선되어 암세포가 수 백 개에 불과한 초기에 이상 징후를 감지한다면, 암 종양이 생기기 몇 년 전부터 다양한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이 암에 대비한 조기경보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중 하나인 '액체생검液體生檢, liquid biopsy'은 빠르고 간편한 다목적 암세포 탐지법으로, 암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리즈 쿼와 제나 애런슨은 미국 의학저널 <미국관리의료저널 American Journal of Managed Care>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암을 대상으로 한 액체생검은 암세포를 골라내는 혁신적 선별도구로서, 최 근 몇 년간 확보한 임상실험 데이터는 우리에게 매우 낙관적인 미래 를 보여주고 있다."1
현재 액체 생검은 최대 50종의 암세포를 탐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검사를 받으면, 암이 목숨을 위협하기 전에 조기발견이 가능하다.
미래에는 화장실 변기에 부착된 센서가 체액에 실려 떠도는 암세 포와 효소, 유전자 등의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여 알려줄 것이다. 이쯤 되면 암은 감기와 비슷한 수준의 '지나가는 병'에 불과하다. 센 서를 심은 '스마트변기가 암을 저지하는 첫 번째 방어벽 역할을 해준 덕분이다.

- 초기의 유전공학 실험은 면역요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환자의 몸속에 생성되기를 원하는 유전자를 무해한 바이러스에 주입하고 숙주를 공격할 수 없도록 수정을 가한 후, 바이러스를 환자 에게 주입하여 '원하는 유전자'에 감염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곧바로 부작용이 발생했다. 환자의 몸이 바이러스를 적으로 판단하고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그래도 유전공학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실험을 계속했지만, 1999년에 한 환자가 유전자 시술을 받 은 후 사망하자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고 일부 병원에서 유전자 치료를 금지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이 뒤따랐다. 그리하여 유전자 치 료 연구 프로그램은 대폭 축소되었으며, 유전공학자와 의사들은 대부 분의 치료법을 수정하거나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된서리를 맞은 유전자 치료는 최근 들어 자연이 바이러스 를 공격하는 방식이 밝혀지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사 람들은 흔히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놈들'로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사람뿐만 아 니라 박테리아도 공격한다. 그렇다면 박테리아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내고 있을까? 놀랍게도 박테리아는 이미 수백만 년 전에 자신의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자르는' 기술을 개발했다. 바이러스가 공격을 시도하면 박테리아는 자신이 겨냥한 정확한 지점 에서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절단하는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살포한다. 유전자가 잘린 바이러스는 더 이상 바이러스가 아니므로 박테리아를 공격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이 강력한 메커니즘을 이용하여 바이러 스의 유전자를 원하는 위치에서 잘라내는 데 성공했고, 이 혁명적인 연구를 선도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는 2020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 유전공학자들은 p53이라는 유전자를 특히 주목하고 있다. 이 유전 자가 변이를 일으키면 유방암, 대장암, 간암, 폐암, 난소암 등 다양한 암이 발생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암의 종류 중 거의 절반이 p53과 관련되어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유전자가 유난히 길어서 돌연변 이가 발생할 여지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p53은 종양을 억제하 는 유전자로서, 암의 성장을 막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게 놈의 수호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p53 이 변이를 일으키면 암세포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유전자로 돌변한다. 실제로 특정 부위의 돌연변이는 특정 암과 밀접 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담배를 오랫동안 피워온 사람은 종종 p53의 특정한 세 가지 돌연변이에 의해 암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간접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미래에는 유전자 치료와 크리스퍼를 이용하여 p53 유전자의 오류 를 수정하고, 여기에 면역요법과 양자컴퓨터를 도입하여 다양한 형태 의 암을 치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면역요법은 (드물긴 하지만) 환자가 사망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암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기술이 부정 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p53은 매우 긴 유전자이므로 절단과정에서 오류를 범할 소지가 많다. 양자컴퓨터를 도입하면 이런 치 명적인 부작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컴퓨터가 특정 암세포의 유전자 안에 있는 분자구조를 해독해서 정밀한 지도를 작 성하면, 크리스퍼로 원하는 부위를 정확하게 자를 수 있다. 그러므로 유전자 치료와 크리스퍼에 양자컴퓨터를 결합하면 유전자를 최고의 정밀도로 정확하게 절단하고 이어붙여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 페토의 역설
암에 대한 역설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생물학자 리처드 페토는 코끼리를 관찰하다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코끼리 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언뜻 생각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작은 동물보 다 높을 것 같다. 질량이 크다는 것은 몸속에서 세포분열이 그만큼 자 주 일어난다는 뜻이고, 복잡한 과정이 자주 일어날수록 오류가 발생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코끼리의 암 발병률은 작은 동물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이 바로 '페토의 역설'이다.
- 암 발병률이 체중에 비례하지 않는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 흔히 발 견되는 현상이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파고든 끝에, 사람에게 단 하 나뿐인 p53 유전자 복사본이 코끼리에게는 무려 20개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20개의 복사본이 LIF라는 또 다 른 유전자와 협동하여 코끼리의 항암 능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추정 된다. 즉, 대형동물의 몸에서는 p53과 LIF 같은 유전자가 암을 억제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고래는 p53 사본이 사람처럼 단 하나뿐이고 LIF는 한 가지 버전밖에 없는데도 암 발병률이 현저하게 낮다. 아직 발견되진 않았지만, 아마도 고래는 암 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많 은 과학자들은 대형동물에게 암을 막아주는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으 로 믿고 있다. 그린란드 상어는 최대 500년까지 살 수 있는데, 이것도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일부 유전자의 특별한 기능 덕분일 것이다.
- 동물의 p53 유전자를 연구 중인 카를로 메일리는 말한다. "동물은 긴 세월 동안 진화해오면서 암을 막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해왔다. 우 리의 목표는 이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여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암 퇴 치법을 찾는 것이다. 대형동물들은 페토의 역설에 대하여 각자 나름 대로 해결책을 갖고 있다. 자연에는 다양한 암 퇴치법이 이미 존재하 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 물론 여기서도 양자 컴퓨터가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암과의 전쟁에서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액체생검에 적용하여 종양이 형성되기 몇 년 전에 암세포를 조기 발 견할 수도 있고, 모든 국민의 욕실에 부착된 센서로부터 매일 전송되 는 생체 데이터를 분석하여 암세포를 골라내거나 거대한 게놈 데이 터베이스를 구축할 수도 있다.
- 암이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난 경우에는 양자컴퓨터를 이용하여 수백 종의 암 중에서 해당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하도록 면역체계를 수정할 수도 있다. 유전자 치료와 면역요법, 그리고 크리스퍼에 양자 컴퓨터를 결합하여 암 유전자를 정확하게 자르거나 붙여넣으면 부작 용 없는 면역요법이 가능해진다. 또한 대부분의 암은 p53 같은 몇몇 유전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를 통해 암을 조기에 차단할 수도 있다.
액체생검과 면역요법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한껏 고무된 조지프 바 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에 향후 25년 동안 암 사망률을 50퍼센트 이상 줄이는 '캔서 문샷Cancer Moonshot' 계획을 발표했다. 요즘 생명공 학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볼 때, 그 정도는 얼마든지 달성 가능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 민스키는 내게, 인공지능 학자들은 원리를 따라 논리를 전개하면 하나로 통일된 우아한 결론에 도달하는 물리학을 엄청 부러워하고 있다며 통일장이론은 우주의 특성을 아름답게 설명하고 있지만 인공 지능 분야에는 그런 기본 원리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인공지 능을 연구하다보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은 대상들을 하나 로 묶기도 하고, 심지어 상충되는 것들을 강제로 묶어야 할 때도 있어 서 이 분야는 온갖 잡동사니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또다시 혹한기를 겪지 않으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 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인공지능에 양자컴퓨터 를 도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공지능을 디지털 컴퓨터로 구현했기 때문에 계산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인공 지능과 양자컴퓨터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인공지능은 새롭고 복잡한 것을 배울 수 있고 양자컴퓨터는 막강한 계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양자컴퓨터는 엄청난 계산 능력을 보유했지만 실수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기능은 없다. 그러나 양자컴퓨터에 신경망을 탑재하면 계산을 반복할 때마다 성능이 향상되므로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인공지능은 실수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있지만 복잡한 문제를 풀기에는 계산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로 보완된 인공지능은 그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난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새로운 길로 인도할 것이다. 양자이론 자체가 인공지능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두 분야의 결합은 과학의 모든 분야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생 활방식을 바꾸고, 세계 경제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과 비슷한 학습기계learning machine를 구현하 고, 양자컴퓨터는 환상적인 계산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높이고, 양자컴퓨터는 인공지능의 성능을 높여준다." 구글의 CEO 순다 피차이의 말이다.

- 자연의 지능은 하향식으로 창조되지 않는다. 브룩스는 갓 태어난 새끼 동물은 곧바로 걸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계속 넘어지면 서 어렵게 배워나가는 것이다. 자연의 키워드는 바로 '시행착오'였다. 이것은 음악 교사가 재능 있는 학생에게 해주는 조언과 비슷하다. 카네기홀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연습 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창조물은 시행착오를 통해 세상을 파악해나가 는 일종의 학습기계로서, 실수를 저지를수록 성공에 점점 가까워진다. 이것이 바로 '상향식 접근법'으로, 일단 무턱대고 부딪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어른을 흉내내면서 세상을 배워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는 자는 동안 끊임없이 옹알이를 한다. 아 이가자는 동안 소리를 녹음했다가 나중에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깨어 있을 때 들은 소리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 을 하고 있는 것이다.
브룩스는 여기에 착안하여 '인섹토이드insectoid', 또는 '버그봇 bugbot'으로 불리는 일련의 초소형 로봇들을 만들었다. 이들은 자연의 방식을 따라 마구잡이로 부딪치면서 걷는 법을 익혀나가도록 설계되 었는데, 처음에 MIT 연구소 바닥에 풀어놓았을 때는 수시로 벽에 충돌하고 뒤집히는 등 서툰 모습을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향식 로봇을 훨씬 능가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로봇을 만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브룩스는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 사람의 뇌를 전화연결망으로 묘 사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보다 전에는 뇌를 역학 시스템이나 증 기엔진에 비유했고, 1960년대에는 디지털 컴퓨터와 동격이었다. 1980년대에는 병렬로 연결된 대규모 디지털 컴퓨터가 되었다. 아마 도 요즘에는 뇌를 월드와이드웹에 비유한 어린이 책도 있을 것이다." 두뇌는 신경망을 기반으로 관찰 대상에서 특정 패턴을 찾는 학습기 계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컴퓨터과학자들은 신경망을 구축할 때 ' 의 법칙Hebb's rule'을 사용하고 있다. 워낙 광범위하면서도 중요한 법 칙이어서 설명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나와 있는데, 그중 한 버전에 의 하면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이전의 실수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 다보면, 올바른 길에 점점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즉, 인공지능 시 스템에서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면 전기신호가 '올바르게 흐르는 길' 이 점점 더 강화된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학습기계가 고양이 식별법을 배울 때, 고양이에 대한 수 학적 서술은 단 하나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저 자고, 기어다니고, 사 냥하고, 점프하는 등 몇 가지 자세의 고양이 사진만 보여줄 뿐이다. 그러면 컴퓨터는 시행착오를 통해 다양한 환경에서 고양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방식을 '딥러 닝'이라 한다.
딥러닝은 2017년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구글에서 설계한 인 공지능 알파고가 바둑 두는 법을 익힌 후, 당시 세계챔피언을 이긴 것이다. 바둑판에는 돌을 놓을 수 있는 곳이 총 19×19개가 있으므로 게임이 진행되는 경우의 수는 거의 10의 170승이나 된다. 이 정도면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 많다. 그런데도 알파고는 이 모든 경우를 유 형별로 분석하여 챔피언 이세돌을 4:1로 물리침으로써 상향식 인공 지능의 우수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알파고는 사람뿐만 아니라 거 의 빛의 속도로 바둑을 두는 자신의 복제품과 대국을 벌이면서 맹훈 련을 했다고 한다.

- 여러 개의 단백질 돌기가 중심에서 바깥을 향해 뻗어 있 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생각해보자(전체적인 모양이 태양의 제일 바깥쪽 띠를 뜻하는 코로나와 비슷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돌 기는 폐 세포 표면의 특정 자물쇠를 여는 열쇠로서, 한 번 열리기만 하면 돌기 모양의 단백질이 폐 세포 안에 자신의 유전물질을 주입 하여 수많은 복사본을 만들어내고, 폐 세포가 죽으면 치명적인 바이 러스가 방출되어 근처에 있는 건강한 폐 세포를 감염시킨다. 2020~ 2022년에 세계 경제가 극심한 침체를 겪은 것은 바로 이 단백질 돌기 때문이었다.
- 이처럼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분자의 형태이므로, 각 단백질 분자의 생긴 모습을 알면 작동방식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중요한 단백질의 구조가 밝혀지면 많은 난 불치병의 비밀도 함께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단백질 접힘 문제protein folding problem'라 하는데, X선 결정학을 이용하면 언젠가는 해결되겠 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작업은 분석 대상 으로 선택한 단백질을 화학적 방법으로 추출해서 정제한 후 결정화結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결정으로 굳어진 단백질을 X선 회절기에 집어넣고 X선을 쪼이면 필름에 특정한 패턴의 간섭무늬가 형성된다. 여기서 얻은 X선 사진은 언뜻 보기에 점과 선이 뒤죽박죽으로 섞인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물리법칙과 직관에 약간의 행운이 더해지면 단 백질의 구조를 해독할 수 있다.

- 전산생물학의 탄생
전산생물학의 목표는 화학적 구성 요소를 컴퓨터로 분석하여 단백질 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과학자들은 단백질 분자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거의 중노동을 해왔는데, 앞으로 이 모 든 과정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컴퓨터 버튼을 누르는 것 으로 대치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과학자들은 이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생각해냈다. '구조예측평가Critical Assessment of Structure Prediction(CASP)'라는 타이틀을 걸고 단백질 접힘 문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공모전을 개최한 것이다.
공모전의 목표가 흥미로우면서도 매우 구체적이었기에, 젊은 과학 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자신의 프로그램 실력을 뽐냈다. 인공지능으로 단백질 접힘 문제를 해결하면 일약 스타로 떠오를 수 있고, 이로부터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이 탄생할 수도 있으니,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대회의 규칙은 간단명료했다. 주최 측에서 아미노산을 연달아 이어 붙인 특정 단백질을 제시하면, 응모자들은 단백질을 접는 방법을 컴 퓨터 프로그램으로 찾아내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 은 리처드 파인먼의 최소작용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최소작용원리를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윌리엄 해밀턴이다. 그로부터 약 100년 후, 파인먼은 양자역학에 이 원리를 적용하여 '경로적분법'을 개발했 다-옮긴이). 앞서 말했듯이 파인먼은 고등학생 시절에 공의 작용 (운동 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차이)이 최소가 되는 경로를 계산함으로써 공의 궤적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단백질 분자의 접힘 문제도 이와 동일한 원리로 해결할 수 있다. 즉, 아미노산의 모든 가능한 배열 중 에너지가 가장 낮은 배열을 찾으 면 된다. 이것은 등산 중인 사람이 계곡의 가장 낮은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처음에 등산객은 모든 방향으로 경사진 정도를 확 인한 후, 고도가 제일 빠르게 낮아지는 방향을 선택하여 한 걸음 이동 한다(어쩐지 등산객이 앞을 못 본다는 가정도 필요할 것 같다-옮긴이). 그리 고 그 지점에서 조금 전에 했던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여 또 한 걸음 이동하고.. 이런 식으로 내려가다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도 지금보다 고도가 높아지는 지점에 도달하면 그곳이 바로 고도가 최저인 지점이다.
에너지가 가장 낮은 아미노산 배열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는데, 구체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일단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문제를 단순화시켜야 한다. 분자 내부 에서는 전자와 원자핵의 파동함수가 복잡한 상호작용을 교환하고 있 는데, 이 모든 요인을 고려해서 디지털 컴퓨터로 계산한다면 다음 세 기에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 는 사소한 요인들(전자와 원자핵의 상호작용, 전자끼리의 상호작용 등)은 과감하게 무시하는 게 좋다.

- 이제 프로그램이 준비되었으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차례다. 첫 째, 다양한 아미노산을 이어붙여서 기다란 배열을 만든다. 이것은 단 백질의 형태를 흉내낸 '장난감 모형'에 해당한다. 특정 원자들이 결합 할 때 형성되는 각도는 주최 측이 제공한 기본정보에 포함되어 있으 므로, 이로부터 단백질의 형태에 대한 초기 근사치를 얻을 수 있다. 둘째, 선택한 배열에서 전하분포에 의한 에너지 및 결합이 이동하 는 방식을 알고 있으므로(이 정보도 기본으로 제공됨), 이로부터 단백질 분자의 총에너지를 계산한다.
셋째, 선택한 결합을 조금 비틀거나 회전시켜서 동일한 계산을 수 행한 후, 이전의 에너지와 비교하여 작은 쪽을 선택한다. 이것은 등산 객이 각 지점에서 모든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어보는 것과 같다.
넷째, 에너지가 이전보다 커지는 배열을 모두 버리고, 작아지는 배 열만 유지한다. 그러면 컴퓨터는 원자가 어떻게 이동해야 분자의 에 너지가 작아지는지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미노산의 배열을 비틀거나 통째로 바꿔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한다. 단계마다 에너지가 감소하는 아미노산 배열을 찾아나 가다보면, 결국 에너지가 가장 낮은 배열에 도달하게 된다.
원자의 위치를 계속 바꾸면서 목적지로 접근하려면 엄청난 양의 계 산을 수행해야 하는데, 지금의 디지털 컴퓨터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자잘한 요인들을 과감하게 무시한 채 컴퓨터를 가동하여 몇 시간, 또는 며칠 안에 단순화된 버전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처음에는 한마디로 참담함 그 자체였 다. 컴퓨터가 예측한 분자는 X선으로 알아낸 실제 모양과 비슷한 구 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컴퓨터 학습 프로그램 이 정교해짐에 따라 결과도 점차 개선되었다.
- 앞으로 단백질 접힘에 대한 연구는 과거에 유전체학이 그랬던 것처럼 몇 단계를 거쳐 진행될 것이다.
1단계: 접힌 단백질의 지도 작성하기
제일 먼저 할 일은 여러 종의 단백질이 접힐 수 있는 수십만 가지 경우를 종합하여 거대한 사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과학자들은 첫 번째 단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사전의 각 항목은 복잡한 단백 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이고, 전체적인 구조는 X선 사진을 분석하여 얻 어진다. 이 엄청난 사전에는 모든 단백질의 철자(구성 원자)가 정확하 게 수록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빈칸으로 남아 있 다. 또한 이 사전의 목록은 디지털 컴퓨터의 계산 능력을 감안하여 근 사적인 접근법으로 구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철자를 알아낸 것은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2단계: 단백질의 기능 결정하기
다음 단계로 가면 단백질 분자의 기하학적 형태와 기능 사이의 관 계를 규명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를 결합하면 접힌 단백질 에서 특정한 원자 배열이 몸속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그리고 단백질이 신체기능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3단계: 새로운 단백질 및 의약품 만들기
마지막 단계는 단백질 사전을 이용하여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고, 이로부터 새로운 의약품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단계이다. 이 원대한 목표를 이루려면 근사적 접근법 폐기하고 제대로 된 양자역학을 적 용해서 분자의 특성을 알아내야 하는데, 앞서 말한 대로 이 일은 오직 양자컴퓨터만이 할 수 있다.

- 프리온은 잘못된 방식으로 접힌 단백질로서, 일반적인 질병과 달리 다른 단백질과의 접촉을 통해 퍼져나간다. 이들이 정상적인 단백질 과 접촉하면 올바르게 접혀 있던 구조를 망가뜨리고 엉뚱한 방향으 로 접히도록 만든다. 그래서 프리온 질환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 면 다른 질병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노인성 질병의 대부분이 프리온에 의해 유발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흔히 '세기의 질 병'으로 불리는 알츠하이머도 여기 포함된다. 현재 미국에서만 600만 명이 이 병을 앓고 있으며, 환자의 대다수는 65세가 넘은 노인들이다. 또한 알츠하이머는 미국에서 여섯 번째 사망원인으로 전체 노령인구 의 3분의 1이 이 병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80세까지 생존한 사람 중 거의 절반이 알츠하이머 위험군(알츠하이머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 으로 분류될 정도이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무언가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 가 많다. 단기기억은 두뇌의 중심부에 있는 해마에 저장되는데, 알츠 하이머에 걸리면 이 부분이 제일 먼저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 츠하이머의 초기증세는 방금 겪은 일을 쉽게 잊는 형태로 나타난다. 60년 전에 일어난 일은 사진처럼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6분 전에 겪 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식이다. 그러나 병이 더 진행되면 뇌 전체가 손상되면서 오래된 기억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이렇게 우리의 가 장 사적이고 소중한 소유물인 기억,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공격하기에 알츠하이머는 환자의 가족에게 가장 큰 슬픔을 안겨주는 병이기도 하다.

- 생체시계 재설정하기
적절한 의학적 조치(유전공학, 생활방식의 변화 등)를 취하면 제2법칙으 로 인한 손상을 교정하여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생체시계'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염색체의 길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진다. 예를 들어 피부세포는 60번쯤 재생된 후 노화를 겪다가 결 국 죽은 세포가 된다. 방금 언급한 숫자 '60'을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라 하는데, 세포가 죽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즉, 세포에는 죽을 때를 알려주는 생체시계가 내장되어 있다.
- 몇 해 전, 내가 레너드 헤이플릭과 인터뷰를 하다가 헤이플릭 한계 에 대해 묻자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이 생물학적 시 계를 놓고 가끔 과도한 상상을 펼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노화에 대 한 이해는 지금 막 첫걸음을 뗀 수준이고, 노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 는 생물노인학biogerontology 분야에서 식습관을 바꾸면 오래 살 수 있 다며 특정 다이어트 식단을 권장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잘못된 정보 라는 것이다.
헤이플릭 한계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의 끝부분에 달린 말단소체 '텔로미어'가 점점 짧아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신발을 오래 신으면 끈의 끝부분 애글릿aglet이 마모되어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세 포도 60번쯤 분열하면 텔로미어가 닳아 없어져서 노화가 시작되고 결국 죽은 세포가 된다.
가차 없이 흐르는 생체시계를 인위적으로 멈출 수는 없을까? 텔로 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방지하는 텔로머레이스telomerase(끝분절효소) 라는 효소가 있는데, 이것을 잘 활용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사람의 피부에 텔로머레이스를 주입하여 60회가 한계였 던 분열횟수를 수백 회로 늘릴 수 있었다. 적어도 한 가지 형태의 생 명을 '불멸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완벽한 공짜는 없다. 텔로머레이스가 피부세 포뿐만 아니라 암세포까지 불멸의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신체 내 부 종양의 90퍼센트에서 텔로머레이스가 발견되었으니, 아군인지 적 군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래서 텔로머레이스를 처방할 때에는 멀쩡한 세포가 암세포로 바뀌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영생의 묘약을 찾는 사람에게 텔로머레이스는 부분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용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텔로머레이스로 노화만 방지하고 암세포를 키우지 않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인데, 양자컴퓨터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이 메커니즘이 분자 수준에서 밝혀진다면 세포를 수정하여 수 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 핵융합은 인류의 에너지 소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지만, 몇 가지 걸림돌이 항상 발목을 잡아왔다.
과거에도 핵융합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가 사투를 벌여왔 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1950년대 이후로 100종이 넘는 핵융합 로가 만들어졌지만 이들 중 Q> 1을 달성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대 부분이 빛을 보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핵융합로의 기본구조가 토카막처럼 도넛 모양이라는 점이다. 이 조치 로 한 가지 문제(고온 플라스마를 가두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불안정성)가 대두되었다.
핵융합반응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온도와 압력, 지속시간 등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이것을 로슨 기준Lawson criterion이 라 하는데, 도넛형 자기장의 기하학적 특성 때문에 이 조건을 만족하 기가 엄청나게 어려워졌다.
토카막 융합로의 자기장에 조금이라도 불규칙한 부분이 생기면, 그 즉시 플라스마는 안정성을 상실한다.
게다가 플라스마와 자기장의 상호작용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외부에서 만든 자기장이 플라스마를 담을 수 있을 만큼 안정적이라 해도 플라스마에는 자체적으로 생성된 자기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들이 더해져서 안정성을 해치는 것이다.
플라스마와 자기장의 방정식이 밀접하게 엮어서 파급효과를 낳는 것이 문제이다. 도넛 내부에 걸어놓은 자기장에 약간의 불규칙이 발 생하면 이 영향이 플라스마에 전달되어 또 다른 불규칙성을 낳는다. 그런데 플라스마도 자체적으로 자기장을 만들기 때문에 처음에 미미 했던 불규칙성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두 자기장이 이 효과를 '나쁜 쪽으로' 주고받다가 불규칙성이 도를 넘으면 플라스마가 도넛의 내 벽에 닿아 구멍을 내는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바로 이런 요인 때문에 핵융합반응을 긴 시간 동안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 결국 태양은 헬륨까지 모두 소모한 후 백색왜성으로 쪼그라들 것 이다. 질량은 이전과 비슷한데 크기는 거의 지구만 하다. 이제 핵융합 을 일으킬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으니, 남은 일은 차가운 우주에서 흑 색왜성이 되어 식어가는 것뿐이다. 즉, 우리의 태양은 불이 아닌 얼음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보다 훨씬 큰 별이 적색거성 단계에 이르면 무거운 원 자핵으로 핵융합을 계속 이어나가다가 철(Fe)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멈추게 된다. 철의 원자핵에는 양성자가 너무 많아서 반발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핵융합반응을 일으킬 수 없다. 이때가 되면 별은 자체 중력에 의해 안으로 붕괴되고, 내부 온도가 수조°C까지 치 솟다가 우주 최강의 초대형 폭발을 일으키면서 장렬하게 전사하는데, 이것이 바로 '초신성 폭발'이다.
그러므로 덩치가 큰 별은 얼음이 아닌 불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가스구름에서 초신성에 이르는 별의 일생을 각 단계 별로 설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지만, 아직도 설명하지 못한 부분 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여기에 양자컴퓨터를 도입하면 그중 많은 부 분을 채워넣을 수 있을 것이다.
별의 일생이 완벽하게 규명되면 지구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대재앙 중 하나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다. 인류의 문명을 순식간에 수백 년 전으로 퇴보시키는 '태양 플레어'가 바로 그것이다. 이 끔찍한 재앙을 예측하려면 별의 깊숙한 곳에서 진행되는 은밀한 사건을 시시콜콜 알아야 하는데,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 만물의 이론이 만족해야 할 필수조건
1.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2. 쿼크, 글루온, 중성미자(뉴트리노) 등 표준모형에 등장하는 모 든 입자들이 이론에 포함되어야 한다.
3. 이론으로 계산된 모든 물리량은 유한해야 하며, 수학적 
변칙이 없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이론은 끈이론뿐이다.
- 끈이론에 의하면 모든 기본입자는 작은 점이 아니라 '진동하는 작 은 줄'이다. 기타 줄의 진동수가 다르면 음의 높이가 달라지는 것처 럼, 끈의 진동수가 다르면 다른 입자가 된다. 그러므로 표준모형에 등장하는 전자와 쿼크, 중성미자 등은 끈이론의 음악에서 각기 다른 '음'에 대응되는 셈이다. 물리학은 끈으로 만든 화성harmony이고, 화 학은 끈을 진동시켜서 만든 멜로디이며, 우주는 모든 끈이 함께 연주 하는 교향곡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이 언급했던 '신의 마 음mind of God'은 우주 전역에 울려퍼지는 장엄한 우주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표준모형에는 중력이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지 않고, 다른 이론은 중력을 도입해서 계산할 때마다 무한대가 발생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끈이론에는 중력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 끈이 일으키는 진동 의 특성을 계산하다보면 중력이 저절로 유도되는 것이다. 이론물리학 자들이 끈이론을 만물의 이론(TOE)의 강력한 후보로 미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라는 인물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 았다 해도, 일반상대성이론은 끈이론의 부산물, 즉 최저에너지 진동 으로 발견되었을 것이다.)
끈이론이 이렇게 대단한 이론인데, 노벨상을 받은 최고의 석학들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개중에는 '아인슈타인도 발견하지 못 한 새로운 이론'이라고 극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막다른 골목에 갇힌 이론'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막강한 이론을 앞에 놓 고 왜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이론의 예 측 능력이다. 끈이론에는 표준모형을 비롯한 광범위한 이론이 패키지 처럼 포함되어 있어서, 이론이 제시하는 해도 무수히 많다. 물론 정보 는 많을수록 좋지만, 방정식의 해가 많으면 그것만큼 당혹스러운 것 도 없다. 끈이론이 제시하는 그 많은 우주(해)들 중에서 우리의 우주 는 대체 어떤 해에 해당하는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과거의 모든 위대한 방정식에는 무한히 많은 해가 존재했다. 끈이론도 예외는 아니다. 뉴턴의 이론은 야구공 과 로켓, 고층건물, 비행기 등 무수히 많은 사물의 역학적 거동을 설 명할 수 있다. 단, 운동방정식을 적용하려면 적용대상에 대한 최소한 의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방정식에 주어지는 초기조건 initial condition이다.
- 끈이론은 우주 전체를 서술하는 이론이어서, 방정식을 풀려면 빅뱅의 초기조건을 입력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어마무시한 폭발 사 건이 어떤 조건에서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끈이론의 '풍경문제landscape problem'라 한다. 끈이론의 무수 히 많은 해가 다양한 확률의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풍경 위의 각 점은 각기 다른 우주에 해당하며, 우리의 우주는 그중 하나일 것 이다.
그렇다면 어떤 지점이 우리 우주에 해당하는가? 끈이론은 '모든 것 을 서술하는 만물의 이론인가, 아니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서술하 는' 헤픈 이론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물리학자들은 앞서 언 급한 차세대입자가속기(FCC)나 중국에서 계획 중인 원형 전자양전 자충돌기(CEPC), 또는 일본의 국제선형충돌기(ILC)에 기대를 걸고 있 지만, 이 야심 찬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해도 풍경문제 가 해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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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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