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리학자이자 자폐 연구자로서 나는 35년간 인간의 마음을 연구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발명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소개 하고자 한다. 간추린 요점은 이렇다.
첫째, 인간만이 뇌 속에 특정한 종류의 엔진을 지니고 있다. 그 엔진은 시스템을 최소한으로 정의하는 만일 그리고 그렇 다면 패턴을 끊임없이 찾는다. 우리 뇌 속에 있는 이 엔진을 나 는 체계화 메커니즘Systemizing Mechanism이라고 부른다.
둘째, 체계화 메커니즘은 7만~10만 년 전 최초의 인간이 복 잡한 도구들을 만들어낸 인류 진화상 기념비적인 순간에 발달 했다. 그 도구들은 그 전에 존재했던 어떤 동물도 만들지 못했 으며, 오늘날까지 인간 아닌 어떤 동물도 만들지 못했다!!
셋째, 체계화 메커니즘 덕분에 오직 인간만이 다른 모든 생 물종을 제치고 이 혹성에서 과학기술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넷째, 체계화 메커니즘은 발명가, STEM 분야(과학 Science, 기술 Technology, 공학 Engineering, 수학 Mathematics) 종사자, 그 밖에 완 벽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음악가, 장인, 영화제작자, 사진가, 운동선수, 사업가, 변호사 등)의 마음속에서 아주 높은 수준으로 맞춰져 있다. 이들은 정확성과 아주 사소해 보이 는 세부까지 집중하는 '고도로 체계화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 서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 시스템을 향상하는 방식을 생각하는 걸 즐긴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소용없다.
다섯째, 체계화 메커니즘은 자폐인의 마음속에서도 매우 높 은 수준으로 맞춰져 있다.
여섯째, 새로운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체계화는 부분적으로 유전의 영향을 받으므로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되어 왔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여기서 놀라운 연결성이 나온다. 자폐인, STEM 분야 종사자, 그 외에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들은 공통 적으로 이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다.
진화의 기나긴 역사를 돌아본 후,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면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음속에서 체계화 메커니즘이 높은 수준으로 작동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과거는 물론 바로 이 순간에도 발명이라는 장대한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심에 서 있음을.
- 현생 인류의 뇌에서 공감회로는 적어도 두 가지 네트워크를 가진다. 하나는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을, 다른 하나는 정 서적 공감affective empathy을 불러일으킨다. 인지적 공감은 다른 사 람이나 동물의 생각과 느낌을 상상하는 능력이다. 정서적 공감 은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에 적절한 감정으로 반응하려는 욕구 다. 인지적 공감은 인식 요소이고, 정서적 공감은 반응 요소다. 인지적 공감은 영장류학자 데이비드 프리맥David Premack이 마음 이론 theory of mind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그 덕분에 인간은 사회 적 세계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인지적 공감으로 세계에 존재하 는 사물들에 대해, 특히 우리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 하는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이론을 가진다는 것 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성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기 성찰 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침팬지 같은 비인간 영장류를 비롯해 동 물도 다른 동물의 목표와 욕망을 알아차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마음이론의 요소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인간처럼 다른 동물의 믿음을 상상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
공감회로는 인간의 뇌에서 복내측 전전두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과 편도체amygdala를 비롯해 적어도 열 개 영역에 걸친 네트워크 속에 존재한다.
- 인지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가 뇌 속에 어떤 새로운 기작을 가지게 되었기에 선조들이 할 수 없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 었을까? 두 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그런 진화는 대개 비약적인 발전보다 아주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일어난다. 둘째, 그런 특성의 자연선택은 한 가지 특성을 나타내는 단일 유전자 보다 각각 아주 작은 효과를 나타내지만 결국 전체적으로 어떤 특성의 개인적 차이에 기여하는 흔한 유전적 변이들을 통해 나 타나는 경향이 있다. (수천 가지는 아니라도 최소 수백 가지의 변이 가 작용한다.) 나중에 공감과 체계화의 유전학을 다시 살펴보겠 지만 그런 경향은 체계화 메커니즘도 마찬가지여서, 원형 또는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는 통계적 학습이나 간단한 도구 사용은 많은 동물에서도 관찰된다. 마찬가지로 공감회로의 원형일 가 능성이 큰 다른 개체의 구조 요청에 반응하는 행동 같은 것도 많은 동물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호기심에서 시작해 수많은 패턴의 변형에 질문을 던지고 실험에 나서게 하는 완전한 체계화 메커니즘과 마음이론을 포함하는 완전한 공감회로는 오직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능 력이다. 다른 어떤 동물에서도 볼 수 없다. 마음이론 덕에 우리 가 어떤 이익을 누리게 되었는지 중요한 것만이라도 요약해보 면 인간의 뇌가 진화한 과정에서 공감회로가 얼마나 혁명적이 었는지 알 수 있다. 마음이론, 특히 다른 사람의 믿음을 상상하 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적어도 세 가지 기술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술들은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 첫째, 마음이론을 가지고 있으면 유연한 기만flexible deception 이 가능하다. 유연한 기만이란 남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 이라고 믿게 만드는 능력인데, 이런 능력을 발휘하려면 애초에 다른 사람이 마음속에 믿음들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가능하 다. 유연한 기만 능력을 지니고, 수많은 맥락에서 그런 능력을 활용하는 동물은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한 것 같다. 일부 동물도 고유한 형태의 기만을 이용하지만 다양한 맥락에서 창의적인, 즉 유연한 기만을 활용하는 것 같지는 않으며, 그저 몇 가지 알 고리듬(또는 규칙)을 익힌 데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49 여기에도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할 수 있다. 동물의 행동을 더 단순한 심 리적 메커니즘으로 더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복잡한 심리 적 메커니즘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유연한 기만을 설명하는 가장 간결한 방식은 완전한 마음이론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연한 기만 능력은 자연선택에 있어 엄청난 이점을 제공한다. 인간은 어떤 곤충처럼 나뭇가지로 위장하거나, 어떤 물고기처럼 바위로 위장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어떤 것으로든 위장 할 수 있다. 깊은 구덩이를 파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얽어 입 구를 덮은 후, 위에 나뭇잎을 흩뿌려 단단한 지면으로 위장하는 능력을 생각해보자. 이제 사냥감이나 경쟁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 위를 지나다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리면 된 다. 이렇듯 호모 사피엔스는 유연한 기만을 이용해 상대의 마음 속에 잘못된 믿음을 이식할 수 있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상황 에 맞게 얼마든지 바꿔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떠오를지 모른다. 예컨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그런 기만 능력이 없었다는 증거는 어디 있단 말인가? 함정을 파서 동물을 사냥하거나, 화살 등 원거리 암살용 무기를 사용했다면 그런 능 력은 분명 시간의 시험을 견디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 재까지 보고된 고고학적 자료상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이 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50
둘째, 마음이론이 있으면 유연한 교육 flexible teaching이 가능하 다. 마음이론이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알며, 무엇을 알아야 하 는지 이해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역시 지금으로서는 오직 인 간만이 다른 개체를 가르치는 것으로 보인다. 진화생물학자 케 빈 랠런드Kevin Laland는 동물도 다른 개체를 교육한다고 주장하면서, 미어캣이 저항할 힘을 잃은 사냥감(독침을 제거한 전갈 등)을 새끼들에게 가져다주어 안전하게 죽이는 법을 익히게 하 는 예를 들었다. 분명 매우 흥미로운 양육 행동으로 어미와 새 끼에게 모두 적응적 이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행동은 진 화 과정에서 선택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미와 새끼 양쪽 모두 유연한 학습과 관련되기 때문에 게놈genome (유전체) 속에 완전 히 부호화되었을 가능성은 작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교육이라 고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여기에 마음이론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것이 마음이론의 증거라면 미 어캣과 다른 동물종에서 훨씬 다양한 교육의 예를 볼 수 있고, 교사가 학생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가르치는 전략 을 수정한다는 증거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마음이론 덕에 우리는 유연한 지시적 의사소통 flexible referential communication이 가능하다. 어떤 단어 (또는 동굴 벽에 그려 진 기호)는 세상에 존재하는 뭔가를 가리킨다. 우리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을 이해한다.52 인간의 삶에서 가장 일찍 나 타나는 마음이론과 유연한 지시적 의사소통의 징후는 14개월 쯤 된 어린이가 마치 "저것 좀 봐!”라고 말하듯 뭔가를 가리키 는 동작을 취하는 것이다.53 아이는 검지를 뻗어 뭔가를 가리킨 다. 본질적으로 이런 동작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뭔가를 가리키면서, 다른 사람의 관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가진 지시 라는 점을 확고히 함과 동시에 공유하려는 것이다.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인간이 뭔가를 가리키는 동작은 언어 발달 속도를 예 측하는 믿을 만한 지표다. 가리킨다는 것은 사실상 동작을 통해 말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이 있어 내 마음과 소통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주장하는 사람 도 있지만, 나는 자연계에서 인간 아닌 동물이 가리키는 동작을 사용한다는 설득력 있는 사례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 체계화와 공감이 제로섬게임이라는 생각으로 돌아가보자. 한쪽 능력을 더 많이 가지면, 다른 한쪽 능력은 줄어든다는 것 이다. 정말 그렇다면 일종의 교환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공감 과 체계화는 한쪽이 뛰어날수록 다른 능력은 줄어드는 역상관 관계를 보일 것이다. 영국 뇌 유형 연구 결과, 규모는 작지만 실제로 이런 교환 현상이 관찰되었다.13 이런 결과는 두 가지 차원이 대체로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공통적인 생물학적 인자가 있 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생물학적 인자는 남녀 간에 양적 차이를 나타내 는 분자일지도 모른다. 극단 E형은 여자가 남자보다 3배나 많 고, 극단 S형은 남자가 여자보다 2배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 생 물학적 인자의 후보로 자궁 속에서 태아의 뇌가 얼마나 많은 테 스토스테론에 노출되었는지를 꼽는다.14 출생 전 뇌가 형성되 는 동안 남성인 태아는 여성인 태아에 비해 테스토스테론을 2배 이상 더 생성한다. 동물 연구에서 이 호르몬은 뇌를 변화시키는 (남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고도로 체계화하는 성향의 원인 유전자 중 일부와 자폐의 원인 유전 자 중 일부는 동일한 유전자다.
- SQ 점수가 매우 높고 EQ 점수가 매우 낮은 극단 S형 뇌를 지닌 사람, 즉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이란 대부분의 사람과 다 르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들의 마음은 대부분의 자폐인과 마 찬가지로 전혀 다른 운영 체제를 가지고 있다. 사람에 덜 집중 하고 사물, 패턴에 훨씬 더 집중하는 이 운영 체제가 어떤 환 경에서는 제대로 기능하는 데 애를 먹지만, 다른 환경에서는 '슈퍼 파워'를 보인다
- 테슬라는 에디슨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공학자이자, 역시 자폐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빛과 소리에 엄청나게 예 민했으며, 3이라는 숫자에 강박적으로 집착했고,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다른 입장을 고집했기 에 서로 협력할 수 없었다. (협력했다면 또 다른 놀라운 발명품들이 쏟아졌을 것이다.) 그들의 반목은 양쪽 모두 공감 능력이 부족했 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각자 자신의 관점이 유일한 답이며, 상대방은 절대로 옳지 않다고 믿었다. 공감 능력이 부족했기에 다른 관점을 수용하거나, 똑같이 타당한 다른 관점이 있음을 인정하려는 마음이 아예 없었을 것이다.
- 모든 과학자나 공학자가 이런 극단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빌 게이츠 Bill Gates 같은 현대의 발명가들 역시 공감보다는 체 계화 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그는 20대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했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광신자였다. 주말 따위는 믿지 않았다. 휴가도 믿지 않 았다. 모든 사람의 자동차 번호판을 외우고 있었기에,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지 훤히 알았다. 20
수백 명의 직원과 자동차 번호판 사이의 만일 그리고그렇 다면 패턴을 파악하는 일람표를 마음속에 그려놓았던 것이다.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를 보면 분명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로 불편한 어린 시절과 10대를 보냈으며, 자신을 도우려고 그토록 노력한 어머니의 감정과 생각 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어머니는 보통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익힐 나이가 훨씬 지나서도 인내심을 가지고 아들 에게 사회적 기술을 가르쳤다.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 야 하는지에 관한 규칙을 일일이 정해주는 방식이었다. 이런 기 록을 볼 때 게이츠의 정서적 공감은 분명 온전했지만(지금도 세 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재산 을 엄청나게 기부한다) 사회적 기능 발달은 지연되었으며, 대조 적으로 체계화 능력은 또래를 훨씬 앞섰음을 알 수 있다. 《와이 어드》에 다큐멘터리에 대한 평을 싣고, 그를 여러 차례 인터뷰 했던 스티븐 레비 Steven Levy는 말했다. "빌 게이츠는 지구에 착륙 한 화성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여러 가지 특징은 고도로 체계 화하는 사람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 고도로 체계화하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게임의 세계다. 맥스 박Max Park은 자폐인으로 두 살 때 사회적 기능과 소 근육 운동 발달 지연 진단을 받았다. 열 살 때 처음 루빅큐브* 를 선물 받았는데, 열다섯 살이 되어 3×3 루빅큐브와 한손으로 맞추기 등 두 분야에서 모두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완전히 맞 추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양손 6.85초, 한 손은 10.31초였다. 3×3 큐브를 완전히 체계화한 것이다. 최상의 상태에서 큐브를 맞추는 데는 최소한 스물두 번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여기서 만일-그리고-그렇다면 추론이 큐브라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다. 만일 옆면이 초록색인 빨간색 큐브가 맨 위층 오른쪽에 있다면, 그리고 맨 위층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90도 돌리면, 그렇다면 맨 위층은 모두 같은 색 깔이 된다. 이런 경지라면 빠르다는 말조차 절제된 표현이다. 31 엘리트 운동선수들에서도 고도로 체계화하는 경향과 발명 을 볼 수 있다. 2020년 비극적인 헬리콥터 사고로 세상을 떠난 로스앤젤레스레이커스 올스타 코비 브라이언트 Kobe Bryant를 보 자. 그는 자신의 플레이에서 패턴을 찾아낸 뒤 엄격한 규칙에 따랐다. 고등학교 때 새벽 5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매일 열네 시간 동안 농구 동작을 연습했다. 프로 선수가 된 뒤로는 자기 집의 방 하나를 개조해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상상 속 여러 가지 슈팅과 관련된 동작을 수십, 수백 번 연습할 수 있는 환경 을 만들었다. 그 방에는 농구공도, 골대도 없었다. 심지어 만일 농구화 밑창을 면밀히 조사한다면,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몇 밀 리미터 깎아낸다면, 그렇다면 반응 시간을 100분의 1초 정도 단축할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해냈다. 브라이언트는 취미인 음악 도 체계화해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무한 반복하면서 귀로 듣고 악보를 완성하는 방법을 배웠다. 농구와 음악에 대한 브라 이언트의 접근 방법을 보면 그의 행동이 체계화 메커니즘을 고 도로 끌어올린 결과임을 알 수 있다.
- 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고도로 체계화를 추구한다고 해 서 자동적으로 자메인인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는 인지(정보를 처리하는 방식)라는 면에서든 유전과 출생 전 성호르몬(원인적 인자의 극히 일부로서)이라는 면에서든 단순히 겹칠 뿐 동의어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고도로 체계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자동적 으로 뛰어난 발명가나음악가나 운동선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향이 있다면 뭔가를 발명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 은 사실이다. 새로운 만일 그리고그렇다면 패턴을 계속 실험 하다보면 획기적인 결과를 낳는 패턴을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고도로 체계화하는 사람은 만일 그리고그렇다면 패턴을 찾는 어떤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시스템 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인지는 아이디어를 적용할 기회와 자 원과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앞서 논의했던 발명과 혁신의 차이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런 일에는 종종 널리 퍼 뜨리거나 제품을 상용화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원이 필 요하다.
- 내가 보기에 인간의 뇌에서 인지혁명이 일어났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도구 제작 연대표에서 발명 속도가 갑자기 변했다는 점이다. 260만 년간 거의 변화가 없다가 7만~10만 년 전 사이에 어떤 변곡점에 도달했던 것이다.
유발 하라리도 인지혁명의 시점을 7만 년 전으로 본다. 나는 7만~10만년 전 사이로 약간 넉넉하게 잡았는데, 고고학적 증 거들로 보아 인지혁명이 이 기간 전체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으 며, 고고학 분야에서 이 기간 중 제작된 복잡한 도구들을 새로 발견하리라 예측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자 리처드 클라인 Richard Klein 은 4만~5만 년 전 어떤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나 인류의 인지와 행동에 급작스러운 변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20 나 는 그가 제시한 시점에 동의한다. 그 시점 이후로 발명의 증거 가 훨씬 뚜렷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계화 메커니즘의 진화 를 단일 유전자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몇 가지 큰 유전적 변화가 체계화 메커니즘의 진화를 추동했을 지도 모르지만, 수천 개까지는 몰라도 수백 개의 흔한 유전자 변이가 한데 모여 이런 능력을 진화시켰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 유전적 증거는 나중에 살피기로 하고, 우선 다유전자성 형질 (수많은 유전자가 관여해 각기 작은 영향을 미치는 형질)은 갑자기 변하지 않고 서서히 진화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점만 짚고 넘어 간다.
인지혁명의 시점을 약 10만 년 전 어간으로 넓게 잡을 때, 인류가 두 차례 아프리카를 벗어나 대규모로 이동한 사건에 인 지혁명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인 류는 10만 8000년 전 레반트* 지방으로 진출해 네안데르탈인 과 공존했으며, 5만 년 전 다시 대이동을 시작해 4만 년 전까 지 네안데르탈인을 완전히 대체했다. 인류가 오늘날 호주 땅에 당도한 것은 4만 년 전이며, 오늘날의 북미에 이른 것은 1만 6000년 전이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진 것 이 인지혁명의 결과일까? 새로운 복잡한 도구(배 등)와 자연계 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별을 보고 길을 찾는 방법 등)를 발명해 대 륙 사이를 오갈 수 있게 되었을까?
이렇게 복잡하고 특화된 도구들이 모두 체계화 메커니즘에 서 나왔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점이다. 인류의 마음속에는 끊 임없이 패턴을 찾는 새로운 엔진이 생겨났다. 이 엔진은 생성적 알고리듬을 이용해 무한한 수의 새로운 만일 그리고-그렇다면 패턴을 떠올리고 검증해가며 놀라운 속도로 새로운 발명을 쏟 아냈다. 그 덕분에 인간은 이렇게 추론할 수 있었다. '만일 X를 선택한다면, 그리고 거기서 한 가지를 변화시킨다면, 그렇다면 X는 Y가 된다. 패턴을 찾는 존재, 그것도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이다. 단순한 돌도끼나 망치를 만드는 존재에서 시작해 무엇 이든 발명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체계화 메커니즘 덕 분에 최초의 인간은 상당히 특이한 뭔가를 할 수 있었다. 다른 동물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리듬과 음악을 발명했던 것 이다.
- 최초로 불의 사용을 제어한 확실한 예는 화덕(불무지 주변에 진흙을 돔 모양으로 쌓아 올린 것)을 만들어 조리와 난방을 해결하 고, 그것을 가마로 사용해 진흙 인형을 구워 굳힌 것이다. 이런 용도로 사용한 것은 4만 년 전 이후, 즉 인지혁명 이후의 일이며, 땔감(목재, 토탄, 동물의 똥, 짚 등)을 보다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과 때를 같이한다.
불의 사용을 제어한 것은 인류에게 큰 인지적 변화가 나타 났다는 지표이지만, 단순한 불의 사용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 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여러 개의 예가 발견되었을 때만 어떤 동물에게 발명 또는 실험 능력이 있다고 간주한다면, 호모 에렉투스의 단순한 불 사용은 한 번의 우연한 사건에 뒤따른 연 상 학습의 결과일 뿐 진정한 발명 능력의 징표는 아니라고 결론 지을 수밖에 없다.
- 체계화 메커니즘은 발명과 실험 능력을 낳은 반면, 공감회로는 남과 자신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부여해 유연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했다. 두 가지 인지적 모듈은 함께 작용해 인지혁명을 일으켰다. 많은 자폐인이 마음이론을 그토록 어려 워하면서도 실험에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체계화 메커니즘과 공감회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분명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한다.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 는 두 가지 독특한 행동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로 언어 와 음악이다.
우리는 체계화를 통해 문법과 기타 규칙을 기반으로 한 언 어 패턴을 만들고 이해하며, 멜로디의 패턴을 만들고 인식한다. 우리는 공감을 통해 언어의 행간에 숨은 뜻을 포착하거나, 남 이 하거나 하지 않은 말 뒤에 숨은 의도를 이해하거나, 완곡한 표현 또는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공감 능력이 있기에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연결된다. 종합하면 공감과 마음이론으로 왜 초기 인류가 장신구와 그림, 조각과 음악 을 만드는 실험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초 기 인류가 어떻게 실험을 통해 장신구와 다른 형태의 예술을 만 들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그 부분을 설명해주는 것이 체계화 메커니즘이다.
- 신경다양성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생물다양성이 사실인 것과 꼭 같다. 일부 학자는 자폐에서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까지, 난독증에서 통합 운동장 애dyspraxia까지 다양한 장애를 고려하면, 인구의 최대 25퍼센트 가 신경 다양성 범주에 들어간다고 추정한다. 모든 사람은 서 로 다르기 때문에, 신경다양성이란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 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각 개인이 공감 과 체계화 정규분포곡선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기준으로 정 의한 다섯 가지 뇌 유형은 그런 관점과 일치한다. 서로 다른 뇌 유형은 아마 특정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진화했을 것이 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천재다. 하지만 나무에 오르는 능력을 기준으로 물고기를 평가한다면, 그 물고 기는 평생 스스로 멍청하다고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그야말 로 요점을 정확히 짚은 말이다. 모든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이 아 니라 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 오티콘은 자폐인의 마음이 기본적으로 '전혀 다른 운영체제'를 사용한다고 믿는다. 스티브 실버만Steve Silberman도 사용했 던 은유다. 나는 이 은유를 좋아하는데, 자폐인과 고도로 체계 화하는 사람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부각하 기 때문이다. 그들은 객관적이고, 사실 지향적이며, 정확하다. 주관적이고, 감정 지향적이며, 어림짐작하려는 성향이 덜하다. 뇌의 운영 체제라는 면에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 낫거나 못하다 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서로 다를 뿐이다. 서로 다른 일을 하 는데 더 적합하게 타고난 것이다. 운영 체제가 설계 목적에 맞는 일을 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다. 하지만 맞지 않는 일을 하라 고 강요하면 충돌을 일으키고 아예 기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주변 환경이 적절하면 고도로 체계화하는 성향은 놀라 운 강점과 재능을 발휘한다. 지칠 줄 모르고 만일 그리고그렇 다면 패턴을 추구하는 성향은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 는 환경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 자폐인이 변화를 그토록 어려워 하고, 종종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항하려고 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최대한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 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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