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이 답이다

심리 2014. 10. 3. 11:54

 


지금 생각이 답이다

저자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출판사
추수밭 | 2014-05-30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세상, 어떻게 판단 성공률을 높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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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끔찍한 위험의 공포는 왜 나타날까? 인간 진화의 역사에서 이것은 당연한 반응이었음. 인간은 대부분 20~50명으로 구성된 소집단으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진화해왔고, 아직 지구상에 남아 있는 수렵, 채집집단의 규모도 그 정도임. 소집단에서 갑자기 많은 구성원의 죽는 것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굶어죽을 위험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므로, 전체 집단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 사건임. 과거에 당연하던 것이 현대에는 당연하지 않음.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생존은 소집단이나 부족의 지원과 보호에 의존하지 않음. 그러나 심리적 반응은 여전히 남아, 실제 혹은 상상 속의 재난은 현대인에게도 공포반응을 불러일으킴. 우리의 오래된 뇌에 기억된 끔찍한 위험에 대한 공포는 새로운 뇌가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하게 억압함. 로욜라 대학교 시카고캠퍼스의 한 교수는 "9/11이후 나는 아내에게 비행기보다는 자동차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설명하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소."라고 했음. 이성적 주장이 항상 오래된 뇌의 공포를 이기는 것은 아니며, 한쪽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를 가르치려 들 때는 더욱 그러함. 그러나 그 교수에게 도움이 될만한 어림셈법이 있다. "이성이 강한 감정과 충돌할 때는 감정을 설득하려 들지 마라. 그와 상충하면서도 더 강력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라"
끔찍한 위험의 공포와 상충되는 감정은 부모의 걱정이다. 교수는 아내에게 장거리 운전을 하면 남편뿐 아니라 아이들의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 됨. 부모의 걱정을 이용하면 비행기를 타야하는 꺼림직함이 싹 가실 것임. 똑똑한 새로운 뇌는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기 유리하도록 새로운 공포를 하나하나 극복해나갈 수 있음. 진화는 운명이 아님
- (1) 누구나 위험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2) 전문가들은 해결책보다 문제의 일부다.
(3) 적을수록 좋다.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면 대부분 복잡한 해결책을 찾는다. 그러고도 해결이 안되면 더 복잡한 해결책을 찾는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이것은 큰 오류임. 복잡한 문제에 언제나 복잡한 해결책이 필요하진 않다. 파생금융상품부터 조세제도까지 지나치게 복잡한 제도는 파악하기 어렵고 악용하기 쉬워 위험하며, 사람들의 신뢰를 높이지 못한다. 반대로 간단한 규칙은 우리를 현명하게, 사회를 안전하게 만든다
-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자신의 지성을 다른 이의 지도 없이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다른 이의 지도 없이 지성을 사용하려는 결단과 용기가 결여되었을 때 미성년 상태는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그러니 과감히 알려고 하라!(칸트, 계몽이란 무엇인가)
- 화려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 두명이 서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의자에 마주 앉았다. 바퀴를 돌리는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눈을 가린채 왼쪽에 앉았고, 인간들은 그녀의 손에 들린 바퀴에 처절하게 매달리거나 그녀의 손 위로 떨어졌다. 계산하는 헛된 과학의 여신 사피엔시아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었다. 두 여신의 우화적인 그림은 오랜 대립구도를 보여줌. 포르투나는 내키는 대로 행운이나 불운을 가져오는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이지만, 과학은 확실성을 약속한다. 이 16세기 목판화는 인간정신의 혁명중 하나인 확률혁명으로 불릴 확률이론이 발견되기 한세기 전에 제작됨. 확률이론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부터임. 이후 포르투나와 사피엔시아의 대립은 상대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면서 더 친밀한 관계로 진화. 과학은 사람들을 포르투나의 바퀴에서 해방하고, 운명에 대한 믿음을 몰아내며 가능성의 자리에 원인을 대체했음. 포르투나는 가능성으로 과학을 반격해, 그 힘을 약화하고 확률과 통계라는 제국을 건설. 이 투쟁이 끝나고 둘의 모습은 전과 달라졌다. 포르투나는 길들여졌고, 사피엔시아는 확실성을 잃었다.
- 어림셈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규칙이 든 도구상자가 필요하다. 못을 박으려면 망치가 필요하고 나사를 돌리려면 드라이버가 필요한 것처럼, 어림셈법도 상황에 맞게 골라써야 한다. 지능적 결정은 어떤 문제에 어떤 도구를 써야 할지 아는 것이다. 지능은 IQ처럼 추상적 숫자가 아니라 목수가 마땅히 아는 용도별 도구에 대한 지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지능연구는 의도적이고 직관적 결정으로 안내하는 진화하고 학습된 규칙이자, 개인과 조직과 문화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유연한 도구상자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어림셈법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중 일부는 인간은 물론 동물과도 오랜세월 함께 해왔음. 박쥐와 개, 물고기는 시선발견법으로 먹잇감이나 짝짓기 상대를 낚아챔. 물고기는 자신이 이동하는 궤도와 목표물이 이동하는 궤도 사이에 일정한 각도를 유지함으로써 먹잇감을 사냥함. 원반을 쫓아 뛰어가는 개도 마찬가지 규칙에 따라 원반이 늘 같은 각도로 보이게 달림
- 시선 발견법은 복잡한 문제에 단순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법을 보여줌. 발견법은 중요한 한두가지 정보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함. 전문가들은 종종 발견법을 이용해 비전문가들보다 정보를 적게 검색함. US에어웨이 조종사들은 날아가는 비행기의 궤적을 계산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무시하고, 앞 유리로 보이는 관제탑의 모습만 생각했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정보를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고 빠르고 안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 시선 발견법이 성공적인 것은 우리의 진화한 뇌 때문. 로봇과 컴퓨터에게는 그다지 쓸모 없는 것이 조종사나 외야수, 개에게 매우 유용한 것도 같은 이유임. 방해 요소가 많은 곳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시선을 고정하는 능력은 로봇과 컴퓨터에서는 진화하지 않았음. 이런 정신적 능력 대신 이들은 궤적을 계산해야 함. 인간에게는 간단한 일이 컴퓨터에게는 그렇지 못하며, 반대도 마찬가지. 왜곡된 글자와 숫자를 해독하는 인간의 능력은 웹 로봇에 의한 자동가입 방지기능 같은 안전장치에 이용되는 반면, 컴퓨터가 17자시 숫자의 7번째 제곱근 값을 구하는 능력은 수학천재라도 이기지 못할 것
- 위원회 회의는 추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음.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결정이 미뤄진 데 기뻐함. 일주일 정도를 지나 데이터를 취합해도 일이 진전되지 않음. 의미없는 회의와 더 많은 데이터 취합에 시간이 낭비됨. 이 사태의 범인은 나중에 책임을 물을까 두려워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부정적 오류 문화임. 책임질 것이 두려워 결정을 회피하거나 유보하는 것은 가장 뻔뻔스러운 방어적 의사결정임. 잘못되어도 내탓은 아님. 그러나 더 미묘하고 지능적인 책임회피방법이 있다. 소송과 책임의 공포는 방어적 의사결정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회사와 납세자, 환자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현대의 자기방어 기술이 그것이다.
- 피곤하고 머리와 배도 좀 아파서 병원에 간다. 프랑스에서는 간의 위기라는 간 발작 진단이 나올 것이다. 이는 프랑스에만 있는 국민병으로, 예부터 프랑스인은 지나치게 잘 먹고 마셔서 간이 발작을 일으킨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런 진단을 들으면 '고작 간 때문이야? 그럴 줄 알았지'라며 안심함. 대다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미국인은 간에 문제가 있다면 몹시 불안해할 것임. 독일이라면 진단은 심장 쪽으로 나와 혈액순환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흔한 병이다보니 독일인은 이런 진단을 들으면 안심함. 역시 그럴 줄 알았지 하는 반응임. 독일에서 저혈압은 약물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질병인 반면, 고혈압을 두려워하는 미국에서는 저혈압 진료를 의료과실 정도로 생각할 것임. 마지막으로 미국이라면 바이러스에서 원인을 찾으려 할 것임. 프랑스와 독일이라면 환자가 안절부절못하겠지만, 미국 환자들은 바이러스란 말에 안심함. 미국인의 관점에서 간과 심장의 질환은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반면, 바이러스는 몸이 건강한데 적(바이러스)이 밖에서 들어왔으므로 안심이 된다. 의사들은 원인을 모를 때 간, 혈액순환, 바이러스처럼 환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 것으로 증상의 원인을 돌리려는 경향이 있음. 안심한다고 해서 그 질병이 대수롭지 않은 건 아니지만, 원가 특이한 것도 아님. 프랑스인이나 독일인, 미국인만 안심할 곳이나 기댈 곳을 찾는 것은 아님. 영국에서는 아마 우울증 진단을 받을 것이다. 의학적 치료는 문화마다 다르다. 독일인은 심장에 낭만적 느낌이 드는 반면, 미국인은 심장을 펌핑기계로 여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보다 관상동맥 우회술을 많이 실시. 반대로 건강을 신체의 조화로 생각하는 중국인은 수술 자체를 꺼림
- 단순화의 정도를 결정할 때는 세가지 특성에 따름.
(1) 불확실성이 클수록 단순해야 함. 불확실성이 적을수록 복잡해야 함. 예측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주식시장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불확실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N분의 1처럼 단순한 방법이 먹힘.
(2) 대안이 많을수록 단순해야 함. 대안이 적으면 좀 복잡해도 됨. 복잡한 방법은 위험요인을 추정해야 하고, 대안이 많다는 것은 추정할 요인도 많다는 뜻이고, 추정오류도 늘어날 것임. 반대로 N분의 1은 과거 데이터에서 추정할 필요가 없으니 대안이 많아져도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
(3) 과거 데이터가 많을수록 복잡한 방법이 유리. 이런 이유로 500년간 주식 데이터가 쌓이면 마코위츠의 계산이 유용. 다양한 원인이 함께 작용하는데, 대안이 50개가 아니라 25개라면 주식 데이터오 250년 분량이 필요함. 이런 식으로 적을수록 좋은 때와 단순화의 정도를 이해할 수 있음.
- 직관은 성스러운 선물이며, 합리성은 충직한 하인이다.
우리 사회는 하인을 섬기고 선물을 잊어버렸다. (아인슈타인)
- 임원들은 왜 직감대로 행동하지 못할까?
(1) 합리적 근거는 예상할 수 있지만 직관은 그렇지 않다.
(2) 집단 의사결정은 직감과 상충한다.
(3) 모든 원인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깊은 불안
- 망치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 하나로 집수리를 마칠 수 없는 것처럼 규칙도 한가지가 만병 통치약일 수 없음. 모든 CEO에게 다양한 도구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
- 직관에 대한 오해
(1) 직관은 이성의 반대다? 직관은 개인의 경험과 현명한 어림셈법에 근거한 무의식적 지능이다. 합리적 사고에는 직관과 이성 모두 필요하다
(2) 직관은 여성적이다? 이것은 계몽주의 이래로 내려오는 교리임. 남성도 직관은 있짐나, 남성은 직관에 따르거나 직감에 귀기울인다는 점을 인정하기 망설인다는 것이 결정적 차이
(3) 직관은 의식적 사고보다 열등하다? 의식적 사고와 논리가 일반적으로 직관보아 우월하거나 그 반대인 것은 아님. 논리(혹은 통계)는 알려진 위험을 다루는 데 최선인 반면, 탁월한 직관과 어림셈법은 불확실한 세상에서 꼭 필요함
(4) 직관은 모든 증거의 복잡한 무의식적 평가에 근거한다? 이 명제는 직관적 결정이 종종 탁월한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다. 지성은 항상 좋은 것이므로, 여기에도 모든 요소의 가중치를 평가하는 회계적 방법이 이용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회계는 알려진 위험에나 유효하지 불확실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직관은 가용한 정보만 이용하는 단순하고 현명한 규칙에 따른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음.
- 다양한 스포츠에서 프로선수들에 대한 분석을 보면, 자신의 플레이에 신경쓰거나 오래 생각하면 오히려 성과가 떨어짐. 예를 들어 노련한 골퍼에게 스윙에 신경 쓰라고 말하면 스윙이 더 나빠짐. (골프 입문자의 경우는 반대) 프로 핸드볼 선수도 다음 플레이를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면 차선의 플레이를 함.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레만이 자신을 분석한 정보를 들여다보는 동안 어떻게 할지 의식적으로 생각한 탓에 독일팀에 승리를 빼앗긴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해석은 스포츠와 직관에 대한 연구에서도 입증되었지만, 마지막 승부차기 주자로 나선 아르헨티나 선수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사례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음. 레만은 시간을 끌면서 캄비아소에 대한 정보를 연구하는 척 했음. 그러나 캄비아소는 실제로 그 종이에 자신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을 몰랐고, 레만은 캄비아소가 찬 공을 막아냄. 이 장면은 우리에게 경기에서 이기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프로라면 다음 플레이를 깊게 생각하지 말라. 입문자라면 어떻게 할지 신중하게 생각하라" 경기에서 이기려면 "상대편 선수가 직관에 따르기보다 생각하게 만들라"
- 가중치와 확률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힘들게 계산해 봐야 헛일이다. 대안은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어림셈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림셈법 중 하나는 최선 유일의 규칙이다. "가장 중요한 근거(이유)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무시하라" 이 경우 결정은 최선의 근거 하나에 따른 것이므로 계산할 필요도 없다. 다윈의 결정을 보면 '증명완료'라는 글귀 바로 위에 영원한 반려자를 원한다는 결정적 근거 하나만 고려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문구가 있음. "우중충한 런던 하늘 아래 더러운 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라....사랑스렁누 아내가 소파에 앉은 모습을 그려보자."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통 결정적 이유 하나에 근거해 결정을 내림. 게다가 그런 결정은 모든 이유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보다 좋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이유를 한꺼번에 고려하려면 모든 이유를 공통의 기준으로 전환해야 함. 그렇다면 지적인 친구들과 얼마나 대화해야 자녀 10명을 둔 효용과 같은지, 의무적인 처가 방문을 얼마나 해야 소파에 앉아서 아늑한 시간을 보내는 효용과 같은지 계산해야 함. 하지만 인간정신에 관한 것을 숫자로 환산해서 비교하는 일은 불가능할뿐더러 비도덕적이기도 함. 진정한 사랑, 우정, 군인의 명예와 박사학위 등은 가격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품과 같은 기준으로 가치를 측정할 수 없음
- 대안은 MRI가 개발되기 훨씬 전부터 경험이 풍부한 의사들이 실시해 온 임상진찰임. 여기에는 숙련된 의사만 있으면 됨. HINTS로 불리는 이 방법은 세가지 검사로 구성되며, 1분이면 됨. 대기시간도, 불편함도, 정맥주사도 필요없음. HINTS라는 이름은 두부충동 검사(head impulse), 안구진탕(nystagmus), 스큐편위검사(test of skew)의 영문 앞글자를 딴 것이다. 예를 들어 두부충동검사에서는 환자는 검사자의 코만 쳐다보면 된다. 검사자는 환자의 머리를 10~20도로 빠르게 한쪽으로 기울인다. 머리를 빨리 기울이면 정상인은 보던 대상을 계속보기 위해 눈동자가 기울인 머리의 반대편으로 동시에 쏠린다. 이에 반해 비정상적인 반응은 시선도 기울인 방향으로 따라간다. 따라서 머리의 움직임을 멈추면 검사자의 코를 계속 보려고 시선을 돌린다. 급성 전정 증후군 고위험자 10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MRI와 HINTS로 진단했다. MRI는 76명 중 8명을 놓친 반면, HINTS는 모든 환자를 정확히 진단했다. HINTS는 뇌경색이 없는 25명 중에서 1명을 뇌경색으로 잘못 진단했는데, 이는 MRI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오류. 이 단순한 검사는 값비싼 영상진단 기술보다 위험한 뇌경색을 잡아내는 데 훨씬 유용했음. 그렇다면 CT검사는 어떨까? CT는 MRI보다 많은 뇌경색을 놓쳐 오진율이 훨씬 높고, 방사선 피폭의 잠재적 부작용도 크다. 간단한 임상진찰은 환자의 안전을 도모하고, 시간과 돈을 절약함. 마지막으로 개도국을 포함해 세계 어디서나 활용가능
- 조기발견이 전립샘암에 따른 사망률을 줄인다는 증거가 있는가? 대잡은 없다이다. 검사여부와 전립샘암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에는 연관이 없다. 암의 조기발견이 어떤 원인이든 사망자수를 줄인다는 증거가 있는가? 이번에도 대답은 없다이다. 10년 동안 꼬박꼬박 검사받은 사람이나 검사받지 않은 사람들이나 5분의 1이 사망한 것은 같다. 조기발견이 생명을 구한다는 증거는 없다는 의미. 조기진단은 전립샘암의 사망률이나 총사망률을 낮추지 못함
- 유방암 조기검사의 부작용
(1) 유방암의 없는 여성들이 거짓양성 판정과 불필요한 조직검사를 받을 수 있음. 이는 수진자 1000명 중 100명이 경험. 수많은 여성이 그 과정에서 고통 받았고, 관련된 불안감도 겪음. 거짓양성 판정이후 수많은 여성이 몇 달 동안 걱정속에서 보내면서 수면장애, 대인관계 위축을 경험
(2) 유방암이 있지만 비진행성이거나 서서히 자라는 경우는 평생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데 아무런 이득이 없는 덩이 절제술, 유방절제술, 독성이 있는 화학요법이나 기타 중재적 시술을 받아 삶의 질이 낮아짐. 수진자 1000명 중 약 5명이 이런 피해를 당함. 탈모, 오심, 빈혈같은 일시적 부작용 외에 심각한 부작용으로는 만성피로, 조기폐경, 심장장애 등이 있음
- 유방암 조기진단 관련 4가지 기만
(1) 유방촬영술이 전체 암 사망률을 낮춘다고 언급하지 말것. 유방암 사망률을 낮춘다는 점만 언급하라
(2) 검사가 유방암 사망률을 20% 이상 낮춘다고 말할 것. 절대 위험으로 말하면 1000명 중 1명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비밀이다
(3) 생존율 증가를 들 것. 예를 들어 '검사에서 유방암이 발견된다면 당신의 생존율은 98%입니다'라고 말하고, 사망률은 비밀이다.
(4) 불필요한 수술과 조직검사, 기타 과잉진료의 부작용은 절대 언급하지 말 것. 질문을 받으면 축소해서 말하라
- 지성적인 바보는 무엇이든 더 크게, 더 복잡하게, 더 대단하게 만들 수 있따. 그러나 그 반대로 만드는 데는 약간의 천재성과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에른스트 슈마허)
- 금융 로비스트가 말하지 않는 4가지 진실
(1) 은행이 위험을 신중하게 계산할 수 있다는 칠면조의 환상. 복잡한 위험모델은 위기를 예측하거나 예방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 게다가 1996년 이후 은행의 자체 위험 모델 적용이 허용되어 위험조정을 조작하기가 훨씬 쉬워짐
(2) 레버리지처럼 단순한 규칙이 쉽게 악용된다는 것. 복잡한 규칙은 은행이 마음껏 주무를 수 있고, 복잡할수록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수천가지 추정을 꼬아놓기도 쉬움. 그 결과 금융계와 규제당국이 복잡성을 계속강화하는 비생산적 악순환이 이어짐. 반면에 단순한 규칙 위반은 발견이 쉬움
(3) 자본에 1달러가 추가되면 경제에는 1달러가 부족하다는 익숙한 주문. 여기에서 자본이라는 말에 넘어가서는 안됨. 자본은 충당금이 아님. 자본은 개인 은행이라면 소유주의 돈이고, 법인이라면 주주의 돈. 누구의 돈이든 가계의 자본이 될 수 있듯이, 자본은 경제에 보탬이 되는 돈이다. 자본은 장롱 속에 둔 눈먼 돈이 아니다.
(4) 자본은 비싸고 은행에 비용부담을 준다는 논리다. 현재까지는 모든 기업 중 은행이 가장 많은 차입을 함. 미국의 대다수 기업(비금융권)에서 부채는 자산의 절반이 되지 않는 반면, 일부 거대은행은 차입이 97% 이상을 차지. 애플, 배드배드앤드비욘드, 시트릭스 같은 일부 성공적 기업은 부채가 거의 없다. 사실 기업은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확보하는 등 차입을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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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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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전쟁

역사 2014. 10. 3. 11:53

 


원시전쟁

저자
로렌스 H. 킬리 지음
출판사
수막새 | 2014-04-2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원시전쟁』은 미국 일리노이 주립 시카고 대학(Univer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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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평화로웠던 것으로 만들려는 경향은 현재 인류학계에 만연되어 있으며, 이는 인류진보의 신화와 인류의 황금기라는 개념간의 대립이 계속되고 의미함과 동시에, 원시사회와 선사시대의 성격에 관한 홉스적/루소적 관점간의 갈등임. 이에 민족학적 유추라는 고전적인 고고학 기법에 의존하는 고고학자들이 선사시대의 전쟁을 무시하는 추세가 늘어가고 있음. 그들은 발굴 후 원자료를 정리하고 요약하는 과정에서 원시시대의 폭력에 관한 증거를 누락시키는 방법으로 원시전쟁을 없애버리고 있음. 최근 일부 사회인류학자들은 보다 적극적인 평화론자로 돌변해 민족학지에 등장하는 모든 원시전쟁의 모습을 부정하며, 이를 평화로웠던 선사시대에 대한 문명 간섭의 산물로 간주하고 있음. 만약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인류학이 전쟁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음. 그러나 원시전쟁과 원시평화 주창자들 모두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하는 일에 관심이 없어 보임. 원시전쟁의 치열함, 위험도, 그리고 효율성을 알기 위해서는 원시전쟁의 직접적 결과물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 예를 들어 사상자, 전쟁으로 인한 손실, 영토 또는 다른 중요한 사물의 점유와 상실 등이 이에 해당. 만약 원시사회가 문명사회와 접촉하기 전에 진정으로 평화로웠다면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를 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님. 위의 주장들 또는 이들에 대한 반론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은 최근 부족전투와 원시전쟁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고,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민족학적, 고고학적 자료의 면밀한 고찰을 요함. 그리고 원시전쟁에 대한 담론은 문명사회의 전쟁과 비교를 묵시적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를 하더라도 동등한 조건하에서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중요. 이렇게 해야만 모든 형태의 전쟁에 대해 현실적 관점이 형성될 수 있으며, 비로소 인류학이 전쟁이라는 병폐를 이해하고 종국에는 없애는데 기여할 수 있음.
- 북미 인디언 부족과 씨족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관찰대상인 157개 집단 중 불과 135만이 적에 대한 습격이 드물거나 습격을 당하는 경우가 드문 것으로 파악됨. 여기서 드물다는 것은 1년에 1회 이상을 말함. 여기에 포함된 소위 평화로운 21개 부족 중에도 14개 부족은 몇년에 한번씩 기습을 하거나 기습을 막아내는 싸움을 벌인 것으로 추측됨. 따라서 어떤 형태로건 전쟁이나 습격행위를 하지 않는 진정으로 평화로운 부족은 불과 7개(약 4.5%)에 불과. 그나마도 북미 서부 콜롬비아 평원이나 대분지 지역에서 가장 고립된 곳에 사는 소규모 떠돌이 집단이었음. 평화로운 집단은 인구밀도가 극히 낮거나 거리가 멀거나 완전히 황무지인 지역에 살고 있어서 다른 집단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있음을 알수 있음. 하지만 지역적으로 고립되고,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거주하며, 수렵/채집을 영위하는 집단이라도 반드시 평화적이지는 않음. 예를 들어 채집을 위주로 살아가는 많은 오스트레일리아 애보리진 부족들이나 심지어 사막에 사는 부족들도 상습적으로 습격을 감행했음. 결국 소규모 수렵, 채집 집단의 평화성은 진정한 평화라기 보다는 해당 집단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일반적인 의미의 전쟁개념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뿐. 독립된 하나의 사회, 정치집단이 하나의 핵가족이나 몇개의 대가족이 연결된 형태(4~25명)로 구성되고, 성비 면에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더라도 전쟁에 나설 수 있는 전사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됨. 이런 소규모 집단의 남성들이 다른 씨족이나 가족집단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심지어 이들이 넓은 들판에서 다른 집단의 남성들과 공개적으로 전투를 벌이더라도 이는 대결, 복수, 살인행위 등으로 일컬어지며 전쟁으로 불리는 일은 없음. 이런 이유 때문에 민족학자들은 대다수의 소규모 집단들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살인행위의 빈도가 높다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족은 매우 평화로운 집단으로 여겨져 왔음.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어떤 민족지에서는 그들을 유순한 사람들로 소개. 그러나 1920~55년 동안 이 부족에 나타난 살인발생률은 1950~60년의 미국과 비교하면 4배나 높았으며, 같은 시기 주요 선진국가들의 20~80배에 달했음.
- 비교문화학적 연구에서 평화로운 집단으로 나타난 이누이트 역시 캐나다 기마경찰의 금지조치가 취해지기 전까지는 대결빈도와 살인발생률이 높았음. 20세기 초에 처음 외부와 접촉한 어느 이누이트 마을에서는 마을을 구성하는 15개 가족의 남성 모두가 살인행위에 가담한 적이 있었음. 소규모 마을 단위로 조직된 북극권의 여타 이누이트 마을도 이런 경향에 부합. 다른 자료에 의하면 네트실릭 이누이트 부족의 살인 발생률은 캐나다 경찰이 집단간의 대결은 금지시킨 후에도 미국의 4배였으며, 현대 유럽국가의 15~40배에 달했음. 신대륙 반대쪽인 남쪽 극단 티에라 델 푸에고 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야간족은 혈연적인 가족 외에는 정치조적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지만 19세기 말 미국에 비해 살인발생률이 무려 10배나 높았음. 그러니 사회통합의 가장 초기적인 단계에서도 사회집단간의 무장투쟁이 없었다고 볼 수 없음. 다만 용어가 전쟁이 아닌 대결이나 살인으로 바뀔 뿐임
- 평화주의적 사회집단은 드물기는 하지만 모든 사회적, 경제적 발전단계에서 발견됨. 완전히 평화로운 농경사회는 평화로운 수렵, 채집집단보다 발생빈도가 더욱 낮음. 조사에서 보이는 평화로운 농경사회는 거의 모두가 전쟁난민이거나 국가사회의 통치하에 오랫동안 살았던 소수민족, 또는 식민모국이나 국민국가의 경찰력이나 군사력에 의해 진압된 부족으로 분류됨. 인구밀도가 낮은 떠돌이 수렵, 채집집단은 소유물이 거의 없고, 있다해도 쉽게 옮길 수 있으며, 광활한 지역에 살고, 영구적인 자원이나 시설물이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분쟁이나 습격을 피해 이주할 수 있었음. 그들은 이주하면 심리적 안정을 잃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잃는 것도 없었음. 그러나 사는 지역이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소유물의 수가 많고, 많은 노동력을 이용하여 만든 주택과 축적된 식량, 그리고 토지 등 부동재산이 많은 수렵, 채집민이나 농경민들은 분쟁을 피해 이주하는 경우 모든 것을 잃고 굶주림의 위협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농경민과 수렵, 채집집단은 힘에는 힘으로 맞서거나, 재침을 막기 위해 복수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음. 특히 특정 지역에만 있는 필수적 자원, 예를 들어 사막의 샘물이나 비옥한 땅, 초지, 어류자원이 많은 어장 등에 의존하는 집단은 이를 지켜내야만 했으며, 그러지 못할 경우 지독한 궁핍에 시달렸음. 넓은 초원에 사는 유목집단들도 그들이 어디에 있건 간에 그들의 가축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음. 농경민이건 유목민이건 그리고 비교적 정주생활을 하는 채집집단이건 간에 완전히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 그렇지만 완전히 평화로운 농경집단이 나타나는 일도 간혹 있었음.
- 대부분의 원시전자들은 매우 적극적인 탄도물을 사용했지만(군사용어로 화력제공, 대개는 무기의 최대사정거리에서) 이런 화력을 전진이나 단계적 후퇴 등 일정한 기동과 연결시키지는 못했음. 사실 전사들을 적 무기의 살상반경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기동은 극단적인 위험에 대한 거부반응을 극복하는 훈련과 강제된 기강이 요구됨. 문명세계의 지휘관들은 부대뒤편에서 도주하거나 전진하지 않는 아군 병사를 처형하는 독전대를 배치. 원시전투에서는 다니족처럼 소규모 전투를 하면서 전사들이 앞뒤로 진퇴를 거듭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전투하는 전사들 사이의 공간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됨. 씨족과 부족단계의 사회에서는 개인이나 최고전사들 간의 격투가 아닌 집단적인 근접전투가 벌어지는 일이 드물었으며, 이는 군장사회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었음. 원시전투의 대부분은 어느 한편이 포기하고 도주하지 않는 한 장거리 탄도물을 날려보내는 형태로 이루어졌음. 만약 어느 한편이 견디지 못하고 도주하면 몽둥이와 도끼, 창 등을 동원하여 적을 잡아 처단함. 일부 학자들은 국가이전 사회의 전술이 기습에 과도하게 치중되어 있는 것은 빈약한 경계활동 때문이라고 주장. 일반적으로 경계활동은 동틀 무렵 주변에 대한 빈틈없는 감시가 요구되며, 임무 태만에 대한 처벌을 두려워하면서 동시게 기강이 잡힌 보초들이 필요. 기강이 잡힌 문명군대에서도 경계임무 중에 자는 일은 흔히 나타나며, 이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내려졌음. 원시부족 전투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위협이 소규모 집단의 기습이었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경계하는 데는 상당한 애로가 따랐음. 전사건 군인이건 간에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소수의 전사들을 미리 감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움. 뉴기니의 다니족은 마을 주변에 파수대를 세우고 소수의 전사들을 상시 배치. 하지만 이런 경계체제로도 소수의 적에 의한 기습을 전부 막을 수는 없었음. 원시부족이 기습을 예방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습한 적들이 무사히 도주하지 못하게 하는 것. 사실 많은 학자들이 원시부족 전사들의 정찰과 정보수집능력을 높게 평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습이 수월했다는 것은 상당한 모순.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경계기능의 부족은 원시전쟁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었으며, 기습은 당연히 효과적인 방법이었음.
- 원시시대의 발사무기는 현대의 소형화기에 버금가는 살상력을 갖고 있었으며,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총기류보다 월등히 효과적이었음. 최근 고대와 근현대전투의 사상률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고대전투에 참가한 병력의 70%정도가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데 비해, 가장 치열했다는 근현대전투에서는 사상률이 전체 병력의 60%를 넘지 않았음. 검을 제외한 고대문명 사회의 전투무기는 원시시대의 무기(투석기, 창, 화살)와 같았기 때문에 살상력은 거의 동등했다고 볼 수 있음. 물론 이를 근거로 머스킷 소총이 활이나 투석기에 비해 이점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이점은 상당히 제한적임. 머스킷 소총의 가장 큰 이점은 바로 일제사격이 정착된 후 사용이 덜 복잡해지고, 훈련에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으며, 작은 힘으로도 쏠 수 있다는 것. 아울러 발사되는 탄환의 타격력은 월등했고, 가까운 거리에서는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었음. 그러나 머스킷 소총의 유효사거리(80~100야드)는 활보다 우수하다고 볼 수 없으며, 활에 비해 발사속도도 느렸고, 매우 부정확했음. 사실 19세기 중반 강선소총이 등장하기 전까지 보병들에게 내려지는 명령은 '조준'이 아니라 '똑바로 들어'였음. 조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었기 때문. 18세기 후반 남미 에스파냐 식민지 총독은 인디오들에게 머스킷 소총과 충분한 탄약을 제공할 것을 제안. 그 이유는 인디오들이 활을 다루는 기술을 잊게 하기 위해서였음. 총독의 인식으로도 당시 소총보다는 활이 효과적 무기였던 것. 개인용 화약무기가 활보다 월등한 성능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머스킷에 비해 정확도, 사거리, 그리고 연사속도가 획기적으로 향상된 후장소총이 등장한 이후. 적어도 19세기 후반까지 문명국은 원시부족에 비해 발사무기의 성능이 약간을 뒤져 있었음.
- 독자들은 전투라는 것이 시대를 막론하고 사전 합의에 의해 벌어진다는 것을 유념해야 함. 전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싸움 당사자들의 합의, 즉 서로 동의해야 한다. 전쟁사가인 존 키컨은 '만약 전투를 벌여야 한다면 두개의 대립적인 세력에 의한 상호적이고 지속적인 전투의지의 발현이 필수적이며, 만약 한편이 싸우기를 거부하는 경우 다른 한편은 전투계획에 심각한 차질을 받을 수 있다'라고 했음. 언제 어디서 전투를 치르거나 상대의 전투요구를 수용하느냐는 전쟁지도부가 내리는 결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근대전쟁이 원시전쟁보다 의식화의 정도가 심함. 그중 하나가 항복에 관련된 것인데 병사 개인이나 부대차원의 항복 모두 포함됨. 개인의 항복의식은 백기를 들거나, 무기를 넘겨주거나 버리는 것, 특정 단어를 외치는 것 등이 있음. 부대차원에서는 백기를 든 항복사절의 접은, 항복조건에 관한 협상, 미리 정해진 시간에 휴전, 그리고 대부대의 경우 공식 서류에 서명하는 것 등 개인의 경우보다 세심한 사전 연출이 필요. 이리하여 적들을 죽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던 개인과 집단들은 어느 순간 적합한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적들이 가할 수 있는 직접적 위해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었음. 포로교환과 적대행위 중지에 관한 약속을 받고 풀어주는 사면의식은 전장에서 사라지기는 했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일반적 현상이었음. 아울러 함선과 비행기에서 이탈한 상대편 수병과 조종사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심지어 그들을 구해주는 관습도 있었음. 최근까지도 항복을 하기 전에 전투의식을 치르는 관습이 남아 있었음. 2차대전 중에 연합국이나 추축국 지휘관들은 아군이 명예롭게 항복할 수 있도록 아군의 위치에 잠시 사격해줄 것을 요청했음. 심지어 세르부르 요새의 독일군 지휘관은 포위하고 있는 미군에게 성문을 포격해달라고 했음. 항복할 수 있는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음. 원시전쟁에서는 위와 같은 항복과 관련된 관습이 드물다
- 원시전쟁에서는 소규모 기습과 매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문명전쟁에서는 잘 구사되지 않는 전투유형임. 이는 공격부족의 남자 몇명이 상대의 영역에 숨어들어가 적어도 한명 이상을 죽이거나 매복하여 죽이는 형식으로 전대됨. 이런 기습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이 살해당하는 것은 일반적이었음. 카토족과 유키족간의 전투는 두 부족간의 분쟁거리였던 흑요석 채석장에서 카토족 처녀들이 흑요석과 식물을 채취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유키족 부족원이 카토족 처녀 4명을 살해한 것이 발단. 원시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습방법은 동이 트기 직전에 적이 사는 집을 포위하여 얇은 벽에 창을 찔러 넣거나 문이 나 연기 구멍으로 화살쏘기, 집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오는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것.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의 칠코틴 부족은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면 고립된 타 부족이 작은 마을이나 가족들의 숙영지를 습격하여 사람을 모두 죽이고 그들이 저장한 식량으로 겨울을 났음. 캐나다 퀘백의 동 크리 부족은 이누이트들을 보는 족족 살해하고 아기들만 포로로 삼음. 원시부족의 기습앞에 연령과 성별은 목숨을 보장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
- 대개의 경우 문명국 군대는 원시부족의 전술을 채용한 후에야 비로소 원시전사들에게 패배를 안길 수 있었음. 유럽국가들이 식민지를 넓히는 과정에서 원시부족 전사들을 이기려면 문명세계의 전술과 무기를 여러차례 버려야 했음. 아울러 기동성 있는 소규모 부대편성(야포대신 소화기 사용 비중 높이기), 열린대형과 소규모 유격전투(매복, 급습, 기습빈도 높이기), 적의 경제기반(가옥, 식량, 가축, 이동수단) 파괴, 인적자원 소모전략(문명세계의 월등한 보급능력을 이용한 지속적인 추격), 그리고 원주민을 정찰병이나 보조병력으로 채용하는 방법을 도입. 다시 말하면 문명세계의 전투방법으로는 원시전사들을 꺾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문명세계의 군대능력으로는 원시전사들과 싸우는 데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 것. 따라서 원시전사들을 격파하려면 다른 원시전사들과 협력하는 것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음.
- 세계에는 남미보다 군사기술이 원시적이고 향료, 황금, 상아 등 유럽인들의 탐욕을 일으킬만한 자원들이 풍부하며, 호주보다 가깝고, 기후도 온화한 부족사회 지역이 많았음. 19세기 말까지 유업인들에게 정복되지 않은 부족지역이 상당히 많았음. 이런 미정복 지역과 400년간 유럽인들에 의해 신속히 장악되었던 지역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의 질명에 면역력이 있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몇몇 지역에서는 유럽인들에게 치명적 풍토병을 안겨주었음.
- 남미 가이아나의 마룬인(신대륙에 노예로 끌려왔다가 탈출하여 정글에 정착한 흑인집단)처럼 유럽인들의 병에 면역이 있는 신대륙 집단들은 17세기와 18세기의 유럽침입자들에게 맞서 승리할 수 있었음. 다시 말하면 유럽인들이 생물학적 우위를 상실할 경우 그들이 보유한 군사적 우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 현대의학과 위생, 증기선, 연발소총, 그리고 기관총 등이 등장한 후에야 유럽인들은 적대적 부족들에 대한 체력, 보급 그리고 화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음. 이를 볼 때 유럽인들의 우월한 전술과 기강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시베리아 등지에서 승리를 가져다주었다는 주장은 가소롭기까지 하다. 다만 그 주장을 뒤집는 사례들이 너무나도 비극적이어서 웃음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명세계의 무기들이 가진 잠재적인 위력을 깨닫는데 이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문명세계 군인들보다 오히려 빠른 경우가 많았음. 지금의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던 인디언 부족들은 초기의 유럽계 개척민들과는 달리 화승총(불붙은 노끈으로 화약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소총)보다 수석총(방아틀뭉치에 부싯돌을 달아 방아쇠를 당기면 부싯돌을 장착한 기계장치가 마찰을 일으켜 화약을 점화해 발사되는 총)을 선호했고, 전투에서 수석총의 명중률과 살사력을 높일 수 있는 장전법과 사용방법을 터득했음
- 게릴라들이 전쟁에서 패한 까닭은 보급체계가 없거나 현대적 경제체제에 의해 보급니 끊어졌기 때문. 원시전쟁이 지닌 단 하나의 결정적 약점임과 동시에 문명세계 전쟁방식이 가진 결정적 강점임. 아마추어 군인들은 작전을 논하고, 전문군인들은 보급을 논한다는 격언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줌. 게릴라들이 정규군에게 승리했다고 해서 문명국 군대의 정교한 전술이나 복잡한 조직, 그리고 엄격한 기강이 의미없는 의식이나 비합리적 관습이라는 것은 아님. 문명세계의 전쟁방식은 전투에서 이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 비해 원시부족과 게릴라들은 전투 이외의 모든 것(전쟁 자체)에 집중함. 대부분의 경우 원시전쟁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장기간, 심지어 몇세대에 걸쳐 전쟁을 치름. 이에 비해 문명세계의 전쟁은 이루기가 상당히 어려운 결정타를 적에게 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문명세계의 전쟁방식은 비슷한 병력과 대규모 대형을 형성하고, 크고 복잡한 무기를 사용하는 문명화된 상대끼리 전투를 벌일 때보다 효과적임. 이는 18세기와 19세기 유럽군대나 유럽인들이 지휘하는 군대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군대와 싸워 승리한 사실로 증명되었음. 2차대전 당시 우월한 무기와 전술로 무장한 독일군과 자살까지 감수하는 무모한 용맹함을 지닌 일본군의 연합국이 인력자원과 압도적 공업생산능력의 위력에 여지없이 분쇄되었음.
- 문명세게의 기강있는 밀집대형과 난해한 군사기술이 원시부족의 느슨한 방식보다 낫다는 개념은 성립하기도 어렵거니와 차라리 환상에 가까움. 전쟁에 대한 광범위한 고찰에 의하면 단기전이나 전술적 차원에서 병력의 우위와 방어시설이, 그리고 장기전과 전략적 차원에서는 보다 많은 인구와 우수한 보급체계가 승리의 핵심요소가 됨. 문명국가들이 원시부족이나 게릴라들을 무찌르기 위해 무기와 병력, 보급의 우위와는 상관없이 원시전술을 수용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함. 이는 전술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원시전쟁의 전술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문명국가의 군대는 호되고 망신스런 패배를 수차례 당한 후에야 비로소 이런 사실을 인정.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20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고도 동남아의 게릴라들을 꺾을 수 없었음. 그러나 양국은 걸프전에서 인도차이나에 동원한 전력의 몇분의 일만 투입하고도 세계에서 가장 병력이 많고 무장이 잘된 정규군 중 하나를 궤멸시킴. 걸프전의 이라크군과 달리 아파치족은 문명군대의 압력 앞에 무려 300년을 버텼으며, 결국 원시전쟁의 방법을 차용한 미군(미군복을 입힌 다른 아파치 전사라고 해도 무방0에게 패함. 이런 것을 볼 때 과연 전술로 타격하고, 기강으로 지배하여 승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19세기의 일반적 치료행위는 환자를 쇼크상태로 몰아넣거나 상처의 감염 가능성을 오히려 높였음. 그렇지 않아도 이질 때문에 고생하던 병사들에게 미미한 증세에도 강력한 설사약을 일괄 처방하는 등의 관습적 치료가 도움이 되었을 리 없음.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19세기 군의학은 효과가 없는 정도를 넘어 오히려 환자를 큰 위험에 빠뜨렸음. 이와 비교하여 원시부족 치료사들은 화살촉이나 창촉을 뽑은 다음 상처부위를 씻고, 치료효과가 있는 식물들로 만든 연고를 발랐음. 최근 2천종의 식물 추출물에 대한 약학 연구결과 61%에 일정 정도의 항생효과가 있음이 밝혀졌고, 이러한 원시부족의 고약이 적어도 20세기 이전의 치료행위보다 낫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줌. 북미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또 다른 치료행위는 상처에서 피를 빨아내는 것. 독화살이 사용된 경우 취하는 조치였지만 어찌되었던 상처를 세척하는 효과가 있었음. 외과차원에서 19세기 서양 군의관들이 원시치료사들에 비해 나았던 유일한 점은 동맥이나 정맥에서 발생하는 대량 출혈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 선사시대 상당수의 부족과 근래의 군장사회에서는 두개골 골절을 치료하기 위해 두개골 조각을 제거하는 천공술을 행한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서양 외과의사들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천공술을 능숙하게 할 수 있었음. 고고학자들이 천공술 시술 후 아문 흉터가 여러개 있는 두개골들을 발견하면서 선사시대 천공술의 성공률이 의외로 높았음이 밝혀짐
- 원시사회의 영역변동을 비율로 살펴보면 식민지를 팽창하던 시기의 유럽이나 19세기의 미국, 또는 로마제국과 비슷함.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국가 이전의 부족전쟁은 영역을 변화시키고, 패자에게 빼앗은 땅을 승자가 갖는 측면에서 문명사회 전쟁과 별반 다르지 않음
- 부족사회의 전쟁동기 중에서 전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종속과 조공임. 자기 집단의 주민들을 복종하게 하고 그들에게서 공납이나 납세를 강제할 수 있는 물리력도 부족한 정치집단이 같은 목적을 위해 전쟁을 감행할 리 만무함. 승리를 패권과 세금이라는 형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제도적, 행정적 수단이 없기 때문. 중앙집권화가 부족한 집단들은 위험한 이웃들을 평정하는 데 중점을 두었음. 이와 더불어 약탈과 포로, 그리고 물리적 축출 등의 방법으로 식량, 귀중품, 노동력과 영토를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김. 발달정도가 높은 군장사회나 국가는 이러한 목적을 정복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룰 수 있음. 국가에게 정복이란 안보, 복수, 경제, 영토획득을 포함하는 목적적 개념이 될 수 있지만, 부족사회는 그 특성상 정복이란 개념에 동반되는 것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불가능함
- 국가 이전의 사회 중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집단들은 인구밀도가 낮았던 북미 대분지, 호주 서부의 사막지대, 그리고 말레이시아와 아프리카 중앙의 울창한 정글 등지에 살고 있었음. 이들 평화적 집단들은 적들로부터 멀리 떨어짐으로써 집단간 분쟁과 갈등이 무장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음. 그러나 이 방법은 이들이 지닌 소유물들이 모두 쉽게 옮길 수 있을 정도이고, 비록 부족하더라고 필요한 자원이 넓게 분포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함. 따라서 낮은 인구밀도가 반드시 평화로 이어지지는 않음. 이미 언급했지만 굉장히 낮은 상태로 살아가는 집단들 중에는 상당히 폭력적인 집단들이 있기 때문. 위의 비교를 통하여 인구압과 전쟁의 강도는 어느정도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이런 연관성은 상당히 약하거나 복잡하거나 두가지 모두인 경우. 근대 문명 국가들은 대개의 원시사회에 비해 전쟁에 참가하는 빈도와 인구대비 전쟁 사상자 비율이 낮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전쟁빈도와 전쟁사상자 비율은 오히려 낮아진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함
- 근대 문명 시대에서도 교역국들이 때때로 적대관계로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 과거 역사를 보면 교역관계가 별로 없는 국가들간의 갈등보다 오히려 교역국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음. 이런 현상과 관련하여 20세기 나타난 가장 좋은 사례는 일본임. 20세기 내내 일본의 가장 중요한 교역상대국은 미국이었음. 미국은 20세기 초에는 일본의 기초공업에 필요한 원자재의 공급처였고, 2차대전 이후에는 완제품 시장이었음. 그러나 일본은 전쟁 발발 전 자국 상품의 최대시장인 중국,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자재 공급국인 미국을 상대로 파멸적 전쟁을 시작. 같은 사례로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는 순간까지 상당량의 곡물, 석유, 그리고 전략물자가 소련에서 나치독일로 넘어갔음. 아울러 1차대전 교전국들의 왕실사이에는 혼인, 혈연관계가 밀접했던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음. 이런 현상이 원시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음.
- 고고학자들은 희귀품이 교역의 증거이며, 교역은 전쟁을 방지한다고 여김으로써 평화로운 과거를 만들어내고 있음. 그러나 민족학 증거는 위의 경우 모두가 오류라는 것을 암시. 전쟁은 활발한 물품 교류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물적 교류에 못지 않으며 물물교환은 전쟁의 촉발요인이 될 수 있음.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집단들은 혼인관계를 맺은 집단과 싸움. 아울러 물물교환을 하는 상대집단을 습격하고 자신들이 습격하던 집단과 물물교환을 한다.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선사 사회집단간의 교류는 전쟁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교류가 전쟁을 방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거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변경에서는 사람들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들(토지, 노동력, 이성, 기타 물품)이 있지만 그것이 경계 밖에 있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 통용되는 방법(나눔, 등가교환, 지도집단에 의한 분배 등)으로 획득될 수 없음. 따라서 싸움을 통해 빼앗으려는 유혹이 유달리 심할 수 있음. 평화로운 변경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두번째 문제는 이런 지역은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장치가 없다는 것. 변경의 독립된 사회집단에는 촌장이나 마을회의, 추장 같이 집단간의 중재역할을 전담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 또한 변경에서는 공유된 가치관이 없이 때문에 같은 부족이나 같은 나라의 국민들 간에 이루어지는 살육행위를 보고 끔찍하다거나 영적으로 부정하다고 규정하는 것도 볼 수 없음. 예를 들어 유대인들의 십계명 중 제6계명은 유대인 상호간에만 적용되며 이후 가나안 족에게 한 짓을 보면 다른 집단에게는 적용되지 않음. 사실 6계명은 살생보다는 살인하지 말지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보다 정확함. 그 이유는 살인은 동족을 해치는 행위만을 지칭할 뿐 전쟁에서 이방인을 죽이는 것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 마지막으로 변경지역은 항시적으로 습격에 노출되어 있고, 약탈의 최우선적 대상이 되며, 이에 대한 반격이나 반응이 즉각적이기 때문에 대개는 사회문화권 내부 지역보다 평화롭지 않음. 변경지대는 인구가 적고 기습이 용이하며 만약 저항이 심할 경우 즉각적으로 후퇴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약탈자들을 유혹함. 대다수의 변경지대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완충지역을 두고 있고, 이 지역의 마을들은 방벽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변경의 취약성과 폭력성을 감안하면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캐롤과 멜빈 앰버 부부의 산업화 이전의 전쟁과 그 주변상황에 대한 문화비교학 연구에 의하면 전근대에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으면서도 예측불가능한 사태(가뭄, 홍수, 병충해 등)를 자주 겪는 집단이 전쟁이 휘말리는 경우가 많음. 아울러 이러한 사태에는 높은 위도에 사는 채집집단과 자급자족하는 농경민이 겨울의 끝자락과 이른 봄에 겪는 궁기 같은 것이 집계되지도 않았다. 이 연구가 암시하는 것은 가장 호전적 집단들은 대개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을 메꾸고, 줄어드는 목초지나 농경지를 확장하며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한 피해를 최소하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것이다. 전쟁을 야기하는 자연재해 중에는 가뭄이 매우 빈번하게 등장한다. 북미 남서부에 살던 푸에블로 족을 괴롭혔던 다양한 유랑족들을 보면 가뭄이 있었던 시기에 활동이 급격히 많아진 것을 알 수 있다.
- 세계 어디든 간에 적을 죽인지 얼마 되지 않은 전사들은 영적으로 더럽져졌다거나 오염되었다고 간주됨. 따라서 해당전사는 영적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술적 정화과정을 거쳐야 했음. 즉, 상당기간 은둔과 근신을 하거나, 특별한 음식을 섭취하거나, 금식을 하기도 했음. 아울러 집단의례에 참여할 수 없었고, 성관계도 금지됨. 뉴기니의 훌리족은 전사가 전장에서 살인을 한 경우 며칠간 활 쏘는 손을 사용할 수 없었고, 당일은 주문을 외우면서 밤을 새워야 했음. 그리고 주술로 처리된 물을 마시고 활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했음. 남미 카리브족 전사들은 적을 죽일경우 한달동안 머리에 천을 뒤집어쓰고 지내야 했음. 아프리카의 메루족 전사는 적을 죽인 후에는 주술사에게 일정한 대가를 주어 자신의 부정한 상태를 해소하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의식을 치렀음. 마르케사스 인의 경우 적을 죽인 후 10일 동안 터부대상이 됨. 지금의 캐나다 칠코틴 부족 전사는 적을 죽인 후 일정기간 동안 부족으로부터 떨어져 지내야 했으며, 약탈에서 돌아오는 전사들은 모두 물을 마시고 토해내는 정화의식을 거쳤음. 이와 같은 의식은 비록 전장에서 적을 죽였더라도 살인행위가 지극히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보여줌.
- 매우 호전적인 집단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사나 전투지도자에게 가장 높은 지위나 지도자 자리를 주는 일은 없었음. 이러한 지위는 전투에 사서서 용감하고 잘 싸우는 이보다 웅변, 재산축적, 관대함, 협상, 그리고 의식에 대한 박식 등 소위 평화로운 기능이 뛰어난 사람에게 돌아감. 북미 서부 아파치족의 경우 족장이 될만한 사람에게 기대하는 여섯가지 성품은 성실함, 관대함, 공평함, 인내심, 양심, 그리고 화술의 유려함으로 전쟁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것들이었음. 샤이엔족은 일명 평화추장들이 전투추장들보다 정치적 영향력, 보유재산, 그리고 부인의 수에서 월등. 군사적으로 높은 수준에 달해 있고, 전쟁도 빈번했던 북미 서북구 해안지대 부족들의 추장과 고위 남성들의 지위는 전투능력의 우수함보다는 혈통과 재산이 척도가 됨. 뉴기니 고원지대 부족들도 족장들이 뛰어난 전사인 경우는 드물었으며, 오히려 재산이 많고, 관대하며, 설득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음. 마에 엥가 부족원들은 변변한 재산도 없고, 지위도 하찮음 소위 쓰레기인간들이 전투에서는 가장 뛰어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음. 작가 키플링도 문명국가의 군인들은 총성이 울리는 순간에는 구원자로 대접받지만 평시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며, 어떤 경우에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고 스스로 평하는 이들의 모습을 이야기했음.
- 종족간의 화합이나 문화적 공감같은 것은 평화의 전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빅토리아시대의 캐나다와 싱구아노들은 배타적이고, 상호불신이 가득하고, 말썽많은 집단들 사이에서도 평화상태를 만들고, 지속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증거사례임. 종족간의 평화에 요구되는 조건은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각 집단간의 차이에 대해 실질적 차원에서 최소한 용인해주는 것임. 즉 자기집단은 바르게 살고 있지만 상대집단이 엉뚱하고 이상한 모습으로 살더라도 이를 놔두면 되는 것이었다. 싱구아노 집단들은 다른 집단이 자신들이 보기에 거칠고, 거슬리는 말을 쓰고, 요란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역겨운 음식을 먹고, 틀린 방법으로 신을 모시고, 소음수준의 음악을 듣더라고 채무를 제때 갚고 약속을 지키는 한,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지 않는 한, 그리고 자기집단의 옳은 삶을 방해하지 않는 한, 다른 집단을 건드리지 않았음. 동맹부족들은 토마스 그레고르의 표현대로 가장된 친절함으로 서로를 대했음. 캐나다에서도 여러 형태의 인종적 편견이 존재했고, 이것이 많은 정치적 분쟁의 원인이 되기는 했음. 하지만 1820년대 이후 발생한 부족간의 살인사건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희극 수준의 두차례 봉기 외에는 조직적인 폭력사건이라 할만한 것이 없었음. 약간의 편견적 태도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자기 것이 가장 좋다는 관점을 없애거나 자기 것과 완전히 다른 행동이나 관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것보다 상대를 약간 비하하는 상태에서 관용하는 태도를 심어주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 평화란 자신의 일에만 신경쓰고, 무관심하지만 적절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지 세뇌로 다른 사람들을 완전히 바꾸려는 것은 오히려 위험함
- 일부 인류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통해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있음을 부정하지만 이들도 홉스적인 현실에서 홀로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집단적인 자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란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 전쟁의 승리나 약탈의 성공으로 얻은 약탈물과 포로들은 전투에 따르는 위험과 고통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됨. 전쟁은 식량과 필수물품을 획득하고, 영토를 늘리고, 노동력과 성적 파트너의 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함. 물론 위험성과 고역때문에 힘들기는 하지만 전쟁이 이득을 가져다주는 경우는 분명히 존재. 이런 이득이 반드시 전쟁을 촉발시키는 목적, 동기, 또는 원인은 아니지만 전쟁하는 자들에게는 보상기제로 작용. 전쟁은 젊은이들, 특히 미혼 청년들이 전쟁을 시작하고 수행하는 데 가장 적극적임. 그 이유는 전쟁을 통해 잃을 것이 별로 없는 대신 성공하면 얻을 것이 가장 많기때문. 이들은 대개 미혼이고, 변변한 재산도 없으며, 연장자들에 비해 지위나 영향력도 떨어짐. 이들은 전사하더라도 뒤에 남겨지는 과부나 고아들이 없기 때문에 패할 경우 부족에게 부담이 되거나 포로로서의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도 없음. 부상당할 경우 나이든 남자들에 비해 회복도 빠름.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부와 명예 심지어 아내도 얻을 수 있음. 패할 경우 잃을 것이 많고 승리하더라도 얻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은 연장자들이 미혼청년들을 반드시 자제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음.
- 19세기 초반에 이르러 홉스의 선사시대관이 우위를 점하게 됨. 그 이유는 유럽의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야심에 잘 부합되었기 때문. 이 논리로 야만인들은 인생자체가 범죄의 연속이고, 무정부상태에서 살기 때문에 수준높은 직업활동에 의한 생산을 하지 않고, 교양있는 소비도 하지 않으며, 그들의 존재자체가 인근 문명의 변경지대에 무질서와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정치적, 영토적 권리는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 이런 관점에서 정착민들과 식민관료들에게 야만인들은 해적이나 도적떼 같은 가만히 놔둘수 없는 존재들이었음. 19세기 말에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홉스적 관점이 적용되면서 법도 없이 사는 수준 낮은 종족들에게 평화와 함께 문명세계의 풍요를 가져다 주어야 한다는 위선적인 논리(백인의 책무)로 발전. 그러나 서양인들은 그들이 말하는 법과 질서가 원주민들에게는 노예상태와 빈곤을 의미할 수 있으며, 원주민들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탐욕스런 식민지인들이 가만히 둘 수 없는 해적과 도적들 같은 존재였다는 점을 간과했음. 심지어 19세기 중반의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새롭게 해석된 홉스적 관점을 갖고 사회적 진화론과 인종주의라는 두가지 이론을 만들어 냈음. 이는 오히려 홉스가 조심스레 펼친 인간평등의 주장에 역행하는 것이었음. 많은 원주민들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유럽의 문명과 종교의 우월성을 거부했고, 제국주의론자들은 이에 상당한 우려를 나타냄. 그러나 가장 뛰어난 자만이 존재하고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 이론이 새롭게 등장하여 많은 것을 설명하였고, 정당화시켜주어싿. 서방, 유럽 문명이 다른 문명과 종족들을 밀어내면서 확장과 팽창을 하는 현상은 허버트 스펜서의 적자생존이 제대로 전개되고 있다는 아주 좋은 증거였음. 야만인들의 고집스런 저항은 생래적인 무지와 지적능력의 열세때문이라고 해석되었음. 이 관점에서 야만인드르이 더럽고 덧없고 짧은 삶은 그들의 문화적, 유전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음. 19세기 말, 제국주의자들은 비로소 뒤떨어진 인간들로부터 세계를 빼앗고 지배해야 하는 도덕적인 임무와 생물학적인 권리를 찾아낸 것이다. 2차대전 이전의 유럽 제국주의가 전쟁과 정복을 정상적이며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면, 2차대전과 그 여파는 이런 관념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음. 2차대전 중에 발생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나치들이 유럽인들에게 자행한 짓이었음. 하지만 이들의 악행은 이미 바로 유럽인들이 비유럽 인종들에게 오랫동안 하던 짓(다만 덜 잔인하고 다소 비효율적일 뿐이었음) 이었음. 나치들은 그들이 행하는 인종청소와 가장 극악한 노동착취, 그리고 정복민들에 대한 폭압적 통치를 인종적, 기술적, 문화적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정당화시킴. 나치들이 휩쓸고 간 후 전쟁과 정복은 고귀한 원정이나 자연적인 법칙의 반영이 아니라 가장 더러운 형태의 범죄일 뿐이었음. 서유럽인들은 400년이란 오랜세월 동안 제국주의를 행한 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을 자신들이 당하게 된 것.
- 인위적으로 원시시대를 평화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린 인류학자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당시의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볼 수 있음. 모든 관념이 그렇듯이 과학적 관점 역시 특정 시대나 문화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근거함. 그러나 어떤 과학적 명제가 단순한 지적 유행이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비판적 증거분석과정을 거치기 때문. 평화로운 원시시대 개념이 틀린 이유는 그들이 유행을 따랐거나 선입견이 반영됐기 때문이 아니라 민족학, 고고학 증거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 그렇다고 해서 홉스주의적 관점에 의거한 과거의 유행이나 신루소주의적 관점에 의한 현재의 유행이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님. 두 관점 모두 부족민들의 인간성을 온전히 인정하기 않기 때문. 과거에는 부족민들의 지적능력과 사회성, 관대함은 물론 생활방식의 다채로움과 효율성,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았음. 또한 현대의 대중적 관점은 원시 부족민들에게 현대인과 유사한 탐욕과 잔학성, 환경에 대한 무시, 그리고 정치적 모략이 있다는 것에 대해 긍정하기 어려워함. 예를 들어 현대인에 대한 환경론적 비난이 난무할 때 무려 10개종의 모아 새들이 뉴질랜드에 처음 정착한 폴리네시아인들의 사냥감이 되어 멸종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반인과 전문학자들은 환경론적 신비감과 물질적 삶에 대한 혐오에 경도되어 부족집단들을 에덴 동산의 선량한 인간으로 보고싶어 함. 한마디로 문명인들은 부족민들이 의롭고, 영적(그들 스스로가 아닌 현대인의 관점에서)이며, 보다 행복하고, 심리적으로 복잡하지 않아 이기적 계산을 할 가능성이 적은 사람들이기를 원함.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지난 수세기 동안 서양인들은 선사, 원시부족들이 현대인만큼이나 꾀가 많고 도덕에 선택적이며 심리적으로 복잡다단한 인간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음. 하지만 원시, 선사부족들에게 장점만 가져다 붙이면서 단점 보기를 거부하는 것은 문명인 스스로만큼이나 그들을 비인간화시키는 것임. 어떤 현명한 문인은 스스로를 짐승으로 여기는 자는 인간으로서 사는 고통을 잊게 된다고 했음. 문명인들은 원시, 선사부족들이 문명인들보다 인간적이고 평화적이라고 믿음으로써 스스로를 짐승에 비유하고 있음. 우리는 조직적 폭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로 인한 전쟁은 모두 추악하다. 그리고 평화를 이루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겪는 고통이다. 평화로운 과거에 대한 신화를 믿으며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외면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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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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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배신

심리 2014. 10. 3. 11:52

 


믿음의 배신

저자
마이클 맥과이어 지음
출판사
페퍼민트 | 2014-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행동과학 및 정신의학의 권위자 맥과이어 교수가 18년간의 연구를...
가격비교

- 91년 발표된 우리는 그렇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아는가에서 토머스 길로비치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잘못된 믿음들의 원인을 자세히 설명. 우리는 피상적인 특징이나 겉으로 보이는 유사성에 기반을 두어 사물을 평가하기 때문에 임의적인 데이터를 잘못 인식하고 해석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현상의 특정 부분만을 골라 인식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정보를 받아들임. 또한 자신이 발견한 모호하고 불완전한 사실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무시하면서 편향된 시각을 만들어감. 사실 우리는 믿음을 갖기 전에 어떤 의도를 갖고 자신이 믿을 것을 결정함. 자신의 의도대로 믿는 것에서 만족감이 들기 때문. 또한 자신의 편견대로 어떤 소문이나 근거없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임. 게다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 생각에 동의한다고 추측하면서 자신의 믿음이 사회적 지지를 받는다는 착각을 함. 길로비치 박사의 책이 나온 지 10년 후에 마이클 셔머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발표.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현실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것들을 믿는 25가지 이유를 서술.
* 머릿속의 생각이 사물의 관찰에 영향을 미친다.
*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실패를 합리화해버린다.
*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그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만들어낸다.
*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고 속단을 내린다.
* 권위자에 대해 지나친 의존을 보인다
* 순환논법의 오류에 빠진다.
인간은 확신, 통제, 단순함에 대한 욕구를 갖게 마련임. 셔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이렇게 요약.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자신이 지닌 기존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애초에 별로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지니게 된 믿음이라고 해도 말이죠"
- '06년 토마스 키다는 생각의 오류에서 믿음이 지닌 여섯가지 기본적 오류를 소개
(1) 우리는 객관적 통계보다 어떤 이야기를 좋아한다
(2) 우리는 이미 지니고 있는 믿음과 추론이 옳다고 확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3) 우리는 어떤 사건을 해석할 때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4) 우리는 종종 세상을 잘못 인식하고 오해한다
(5) 우리는 사물이나 형상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다
(6) 우리의 기억체계는 불완전하다
- 같은 해에 코델리아 파인은 뇌마음대로를 발표. 이 책에는 뇌가 어떤 식으로 편향적 인식과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음.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 오만한 뇌-뇌는 멋대로 인식을 조작한다.
* 감정적인 뇌-뇌는 어떤 생각이 옳은지 감정적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 비도적적인 뇌-뇌는 도덕적 우월성을 유비하려 한다
* 고집불통의 뇌-뇌는 우리가 지닌 믿음을 충실히 지킨다
* 의지가 약한 뇌-뇌는 좋은 계획들을 떠올려도 막상 실행에는 잘 옮기지 못한다
* 편견이 심한 뇌-뇌는 자신의 편협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 착각하는 뇌-뇌는 사고과정에 온갖 편견을 밀어넣는다
- '11년 셔머는 믿음을 주제로 한 세번째 책인 믿음의 탄생을 발표. 이 책에서 그는 믿음의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 첫번째는 패턴성임. 뇌는 임의의 정보들 속에서도 어떤 패턴을 인식하도록 진화됨. 두번째는 행위자성. 뇌는 어떤 사건을 인식할 때 그것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적 행위가 원인이라고 봄. 세번째는 우리가 일단 어떤 믿음을 형성한 후에 그에 맞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는다는 사실. 유령, 정치, 종교, 도덕성, 외계생명체 등에 대한 믿음에는 셔머의 말이 대체로 맞을수도 있음. 객관적 증거에 앞서 어떤 믿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끔은 믿음에 대한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 하지만 셔머가 말한 특징은 일상의 믿음과는 좀 다를 수 있음. 일상에서는 먼저 어떤 증거를 획득한 후에 이를 설명해주는 믿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예를 들어 정원에 어떤 식물을 심었는데 잘 자라지 않는다고 치자. 그러면 왜 식물이 자라지 않는지 그 원인을 관찰해보는 것이 보통임. 이런 경우에는 어떤 믿음부터 형성하지 않을 것임. 관찰결과 식물 옆에서 흙더미를 발견했다고 치자. 그러면 이 관찰을 기반으로 믿음을 형성하기 될 것이다. 바로 땅 다람쥐가 식물뿌리를 파먹어서 식물이 자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 '11년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을 발표. 그는 죄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두가지 시스템으로 분류. 첫번째 시스템은 직관으로 매우 빠르고 자동적인 무의식적 시스템. 이 시스템은 재빠른 판단을 내리며 이는 순간적 믿음과 행동으로 이어짐. 두번째 시스템은 속도가 훨씬 느린 분석적 시스템.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추론을 하면서 첫번째 시스템에 의한 판단을 교정하는 역할을 함. 카너먼이 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예를 살펴보면 뇌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결론을 쉽게 도출할 수 있음. 카너먼이 분류한 두가지 시스템은 뇌의 정보 처리 방식에 대해 대략적인 지도를 그려줌. 하지만 몇몇 저자들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꼭 두가지로 한정될 필요는 없다고 지적. 우리는 종종 빈약한 증거 혹은 의심할만한 정보를 기반으로 즉각적 판단을 내리고 믿음을 형성함. 하지만 논리적 생각을 통해 이런 성급한 판단을 수정하기도 함. 그런데 이 두가지 시스템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님. 이 두 시스템은 매우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 얽혀 있음.
- 최후의 심판일 같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믿음, 살아생전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벌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믿음, 사탄 같은 사악한 힘의 존재와 관련된 믿음은 기쁨과 보상의 이유로 선택하기보다는 인간의 뇌에서 발생하는 산물이라는 것. 인류는 세대마다 그만의 믿음을 창조해잼. 그중 일부는 문화속에 자리잡기도 함. 그런데 이러한 믿음들이 어떤 증거도 없이 만들어졌거나 모순적이라면 이미 비논리적으로 자리잡은 믿음을 논리로 반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렇게 모순적인 본성이 오히려 그 믿음이 쉽게 기억되도록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음. 어쨌든 고통, 두려움, 결핍보다는 기쁨과 보상을 선호하는 뇌의 편향성 때문에 이러한 믿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라질 수 있음. 이 경우 믿음의 간격이 점점 넓어지고 진실에 대한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수세기이 이를 정도로 길어질 수 있음.
- 믿음의 근원이 무엇이든 뇌는 하앙 믿음의 과정에 관여함. 이말은 믿음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의 산물이 아니라 뇌의 내부적 구조와 기본적으로 타고난 기능을 반영하여 생각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산물이라는 것.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타고난 뇌의 기본적 특성이며 믿음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그 믿음의 수용과 오랜 지속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 서로 다른 추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문화를 꼽을 수 있음.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양인들은 사건을 해석할 때 하나의 중심적 대상을 정해 처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남. 예를 들어 같은 품종, 크기, 연식을 지닌 두 과일나무가 있는데 과일의 수확량은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면 그 차이를 대상으로 정해서 원인을 추론한다는 것. 반면 동아시아인들은 지각적이고 개념적 분야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음. 또한 통념적인 유사성이 아닌 가족적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집단에 더욱 주의를 기울임. 북미인들은 또 어떨까? 북미인들은 어떤 그룹에 속한 사람의 감정을 파아갛려고 할 때 주로 그 사람에 대해 집중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그 그룹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고려. 종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남. 예를 들어 칼뱅주의자들은 개인의 도덕적 역할을 강조하는데, 이들은 전반적인 사회적 단합을 중시하는 카톨릭이나 유대인에 비해 지역적 특성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남. 이렇게 다양한 요인이 사건에 대한 해것에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 같은 증거를 보고도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님
-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생각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생각을 뒷받침하고 지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끌어 모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받아들인 생각과 반대되는 중요한 사례들이 더 많이 발견된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경멸을 보내거나, 한쪽으로 치워버리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이미 내린 결론의 권위가 이러한 치명적인 것들로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현대의 과학적 방법론이 4세기반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 과학적 방법론의 시초는 코페르니쿠스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는 1550년 태양계에서 지구를 비롯한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을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설명.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서 현대적 방법론이 왜 이렇게 늦게 등장했는지는 흥미로운 질문임. 바빌론 시대에도 매우 유능한 과학자들이 많았으며 그 훨씬 이전에도 아마 많았을 것임. 하지만 역사상 이렇게 늦게 방법론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1550년 이전에 과학자들이 이용했던 작업방식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음. 당시 과학자들은 자신이 가진 정보를 이용하여 독창적인 방식으로 추론을 했지만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거나 많은 사람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는 방법론을 통해 자신의 설명이나 증거를 체계적으로 평가하지는 못했음. 특히 의사과학을 믿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많이 보임. 그러다가 16세기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 과학계는 방법론 그리고 연구전략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임. 과거에는 자기생각과 가설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과학적방법을 통해 그것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쪽으로 변화가 시작. 자기 생각을 증명하는 것에서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은 그저 단어 하나의 차이로 하찮은 변화처럼 보일수도 있음. 하지만 이는 중요한 영향력을 지닌 것이었음. 실증적 연구에 대한 방법과 평가는 느리지만 커다란 변화를 겪으려 하고 있었음. 경험과학은 증거 및 표준화된 연구방법에 대한 정밀한 법칙과 절차를 받아들이게 되었음. 또한 과학 및 과학적 설명에 대한 건강한 의구심을 제기살 수 있게 됨. 증거는 정확하게 묘사되고 측정되어야 했음. 증거를 설명하는 해석은 되도록 정확하고 자세해야 했음. 믿음과 증거사이의 간극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복적 실험을 통해 자신이 지닌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얻어야 했음. 이러한 방법론은 과학적 연구의 근본적 한계점을 인식하는 것이었음. 즉 어떤 것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전략을 채택한다는 것은 어떤 것도 확실히 증명될 수 없다는 시각을 갖게 된 것. 그리고 이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짐. 과학 및 과학자들은 대중들 사이에서 새로운 권위를 획득했음. 과학적 증거, 방법론, 해석은 이르르 지지하는 사람들은 물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새로운 평가방법으로 받아들여짐. 하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꼭 보편적으로 좋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님. 20세기와 21세기로 넘어오면 과학자, 철학가, 역사학자, 포스트모더니즘을 믿는 사람들이 과학적 방법론과 추론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비판하게 되면서 최적성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됨. 물리학자 겸 역사학자 토머스 쿤은 이에 대해 가장 영향력 있는 시각을 선보임. 그는 틀렸음을 입증하는 방법론이 과장된 이상주의적 방법일 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조차 연구과정에서 종종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음. 다른 과학자들도 그와 유사한 시각을 주장했음. 화학과 물리학처럼 자연과학에 해당하는 분야에는 이 틀린 것을 입증하는 전략이 옳은 방법이자 최적의 방식일 수 있음. 하지만 다른 과학분야를 탐구할 때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음.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정신의학 등의 분야에는 실험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음. 그 이유는 다양함. 예를 들어 환청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환청의 내용, 빈도, 환청과 행동과의 관계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환청이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인간은 과거를 정확하게 재연할 수 없다는 점도 이유로 작용함. 이 말은 고고학 그리고 역사가 증거만이 아닌 정교한 추론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
- 모호함과 불확실성은 스트레스를 주고, 뇌의 화학적 변화를 가져오며, 신체상태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대신 믿음을 형성하면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고, 더 중요한 뇌의 임무를 위해 에너지를 보존할 수 있는 것임.
- 신경학자 로버트 버턴이 08년 발표한 확신의 요약. 이책의 중심 메시지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느낌, 옳다는 느낌, 신념, 확실하다는 느낌이 어떤 신중한 사고에서 나온 결론이나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점. 이는 그냥 우리에게 일어나는 정신적 느낌일 뿐이다. 효율적이고 강력한 보상심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느낌들, 예를 들어 자신이 알고 있다는 느낌과 신념은 반드시 의식적이고 신중한 사고를 거친 결론이라는 느낌이 나야 한다. 그 결과 뇌는 사고라고 느껴지는 정신적 감각의 집합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고가 아니다.
-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상상을 하는 것은 감정과 인시상태에 대한 생물학적 차이 때문일수도 있음. 예를 들어 뇌에서 도파민 활동수준이 높은 사람은 상호관계에서 의미를 찾고 인과관계를 유추하는 것이 더 자주 나타나는 것을 밝혀짐. 뇌 화학물질 세로토닌의 수준이 높은 사람은 낙관적인 전망을 하며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실망이나 개인적 차이를 더 잘 참아내는 것으로 밝혀짐. 감각을 추구하고 충동적인 성격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짐. 최근의 연구에서는 개인의 유전자 이상 및 도파민 활동과 이러한 행동들을 연관시키기도 했음. 즉 아주 위험한 행동을 재미있는 것으로 인식하거나 규범에서 벗어난 이상한 시각으로 인과관계 및 세상을 인식하는 등 자신만의 잘못된 상상의 결과로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이런 실험도 있음. 두 사람이 같은 사건을 볼 때 fMRI로 뇌 활동을 살펴보면 둘이 유사하게 나타남.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영화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말할 때는 서로 매우 다른 뇌 활동양상을 보임. 이런 결과는 어떤 경험을 해석하는 공통된 방식이 없다는 것, 각자의 해서이 저마다 다르다는 원칙이 상상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는 의미
- 초기 인류에게는 지금의 인류보다는 개개인의 정보처리능력에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을 가능성이 큼. 또한 상상이 믿음으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더 큼. 이는 자신의 상상이 틀렸음을 입증해줄 수 있는 경험이나 간접적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 이런 정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간극을 좁히는 강력한 성햐잉 나타났을 것임
- 먼 과거 초기인류는 오늘날의 인류처럼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선호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됨. 대개 우리는 확실하고 명확하고 예측가능한 것을 선호. 불확실성과 모호함은 특정 뇌 화학물질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음. 또한 fMRI로 뇌를 관찰해본 결과 모호함을 느낄 때 뇌의 20군데가 넘는 영역이 활성화 됨. 예를 들어 뇌에서 감정을 관리하는 영역인 편도체는 결과가 불확실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느끼며 활성화됨. 그 행동을 해도 될지, 간극이 모호해지는 것임. 그런데 이러한 위험성을 무시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음. 왜일까? 뇌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음. 뇌는 불쾌한 생리학적 영향을 관리하는 그만의 비법을 갖고 있음. 뇌가 그만의 독립된 계획으로 주인의 의도나 의식과는 상관없는 일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뇌가 좋아하는 비법의 하나가 바로 믿음을 발전시키고 간극을 줄이는 방식을 통해 불쾌한 느낌을 줄이는 것이다. 이 방법은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줄여주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래서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아기에 대한 걱정과 불확실성을 버리고 아이가 건강하고 똑똑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자랄 것을 믿어버림. 또한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주치의가 최고이고 그의 치료법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버림.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바람직한 생리학적 변화로 이어짐
- 사람들이 감정과 인식을 부여한 믿음은 변화에 대한 저항을 기본값으로 가짐. 비타협적 믿음이 바로 이러한 특징을 지님. 이런 믿음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매우 확신하게 됨. 모호함과 불확실성은 매우 줄어들고 생리학적, 심리학적으로 유쾌한 상태가 나타남. 일단 이런 믿음이 자리 잡으면 뇌의 에너지 사용량은 최소한으로 줄어듬. 또한 믿음의 간극은 좁다. 이러한 믿음을 품은 사람은 강한 확신으로 이를 주장하며 이를 증명할 증거나 권위가 있다고 말함. 또한 자신의 믿음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믿음 및 증거에 부정적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무시하거나 거부함. 비타협적인 믿음의 특징은 이러한 대안적 믿음과 증거를 반박하는 동시에 이를 제시하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를 믿음보존편향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믿음을 반박하는 확실한 증거나 다른 믿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기존의 믿음을 고수하는 것을 말함. 예를 들어 정치적 이념이 여기에 해당.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 지닌 타당성과 가치를 확신하는 반면 다른 관점은 틀렸다고 믿음. 또한 종교적인 믿음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가짐. 다른 믿음을 지닌 사람은 무지몽매하거나 진실을 외면하는 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 요약
* 우리는 선천적으로 믿음을 지니도록 태어났다
* 뇌는 믿음을 지닐 준비가 되어있다
*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과대평가한다
* 믿음이라는 것은 기쁨과 보상, 자신이 옳다는 생각과 관련있다
* 뇌는 간극을 줄이려는 사상을 지닌다
* 뇌는 믿음의 발전과 영구보존을 용이하게 하는 수많은 시스템으로 구서오디어 있다
* 간극만으로 믿음의 강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 자신이 믿는대로 본다
* 감정에 따라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 믿음은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 믿음은 뇌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준다
* 다시말해 우리는 믿음을 생성하고 그 믿음을 어떻게든 지키려 하는 성향을 타고 났으며, 이 성향이 의식보다 한발 앞서는 것이다
- 철학가 니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인은 지식에 대한 갈망없이 지식을 취한다" 이 말은 현대인이 열정, 필요성, 분석없이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의미. 그리고 이는 현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의 특징임. 99년 작가 프레이저는 '시간을 압축한 현재'라는 용어를 만들어냄. 이 말은 현재, 즉 지금 이순간이 생각과 감정의 지배적 중심이 된다는 것. 지금 이순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과거로부터의 소중한 교훈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사라지고 끝없는 선택에 대한 상상으로 대체됨.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가 인지적 그리고 감정적으로 현재와 분리되는 것임. 결국 과거와 미래에 기초하는 이야기와 모델들은 그 타당성을 잃게 됨. 어제 어떤 일이 일어났어도 그 일이 오늘 혹은 내일 또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뇌 읽기와 속성 부여하기 등을 통해 지금 이순간과 여기를 과도하게 중시함. 이렇게 현재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은 역사를 배우는 지혜를 거부하고 이제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진지한 평가를 무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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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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