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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카인드

사회 2024. 5. 11. 07:18

- 이 모든 슬픈 이야기에서 나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사실은 주된 행위자 모두가 같은 덫에 빠졌다는 점이다. 히틀러와 처칠, 루스벨트와 린데만 등 이들 모두는 문명의 수준이 보기보다 얄팍하다는 심리학자 귀 스타브 르봉의 주장을 따랐다. 그들은 공습을 가하면 이런 허약한 외피는 산산조각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폭격을 가할수록 문명의 껍데기 는 점점 더 두꺼워졌다. 얇은 막이 아니라 굳은살이었던 것 같다.
불행하게도 군사전문가들은 이해가 느렸다. 이로부터 25년 뒤 미군은 베트남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총량의 3배에 이르는 폭탄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번에는 전보다 더욱 큰 규모로 실패했다.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우리는 어떻게든 이를 부인해온 것이다. 오늘날까지 많 은사람은 런던 대공습 기간동안 영국인이 보여준 회복력은 영국인의 특 이한 속성 덕분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것은 영국인의 특성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속성이다.

- 뉴올리언스에서 일어난 재난은 극단적 사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재 난 기간 중의 역학은 거의 항상 동일하다. 역경에 처하면 그에 대응해 협 력의 물결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당국은 당황해 2차 재난을 일으킨다.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2009년에 출간한 《이 폐허를 응시하라A Paradise Built in Hell》에서 카트리나의 여파에 대해 뛰어난 통찰을 드러낸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받은 인상에 따르면 엘리트가 공황에 빠 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모두의 인간 본성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독재자와 전제군주, 주지사와 장군들은 모두 자신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너 무자주 무력에 의존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이기심에 의 해 지배를 받는다고 가정하는 탓이다.

- 나는 뉴스가 개인의 발전에 좋다고 믿으며 자랐다. 참여하는 시민으로 서 우리의 의무는 신문을 읽고 저녁에는 뉴스를 시청하는 것이다. 뉴스 를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민주주의 는 더욱 튼튼해진다. 아직도 많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뉴스의 이 같은 효 용을 말하며 권하지만 과학자들의 결론은 이와 크게 다르다. 수십 건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뉴스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 1990년대 처음으로 이 분야의 연구를 개척한 사람은 조지 거브너George Gerbner였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도 만들었다. '잔혹한 세계 증후군' syndrome'으로, 임상 증상은 냉소주의, 염세, 비관주의 등이다. 뉴스를 신봉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 동의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우리 개 개인이 세상을 개선하는 데 무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스 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더욱 크다.

- 우리 인간은 왜 그렇게 비관적인 뉴스에 취약한 것일까? 두 가지 이유 가 있다. 첫 번째는 심리학자들이 부정편향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많이 이끌린다. 과거 인류가 사냥과 채집을 하던 시절, 거미나 뱀을 보고 너무 자주 겁을 먹는 편이 아 주 드물게 무서워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나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두려워 한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면 틀림 없이 죽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등에 가용성 편향이라는 짐도 지 워져 있다는 점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면 상 대적으로 그것이 흔하다고 우리는 추측한다. 우리가 매일 끔찍한뉴스에 폭격을 당하는 탓에 우리의 세계관은 완전히 왜곡된다. 대형 항공사고, 어린이 납치, 참수형에 관한 이야기는 기억에 똬리를 트는 경향이 있다. 레바논의 통계학자 나심 탈레브Nassim Taleb가 냉담하게 지적했듯이 "우리 는 뉴스에 노출되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이성적이지 못하다."
디지털시대에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는 점점 더 극단적이 되어갈 뿐 이다. 예전에는 언론인들이 독자 개개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대중을 위해 글을 썼다. 하지만 오늘날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당신을 충격과 공포에 떨게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당신을 클릭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또 당신 의 관심을 끌고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개인별 맞춤 광고에서 가장 수익성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같은 현대 미디어의 광란은 일상에 대한 공격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삶은 예측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기는 하지만 지루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루한 삶을 살 고 있는 훌륭한 이웃을 더 좋아하지만(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이웃은 여기에 해당 한다), '지루함'은 당신을 주목하게 만들수없다. '좋다'는 광고를 팔수없 다. 그래서 실리콘밸리는 어느 스위스 소설가의 재담처럼 "뉴스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설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면서도 우리에게 점점 더 선정적인 클릭베이트를 계속 제공하는 것이다.

- 야생 여우는 생후 약 8주가 지나 성체가 되면 급격히 공격적이 된다. 하지만 류드밀라가 선택적으로 번식시킨 여우들은 영원 히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었다. 온종일 노는 것에만 열중했다. 훗날 류드 밀라는 "길들인 여우들은 성체가 되는 임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기록했다.24
한편 신체에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여우의 귀가 아래로 처지고 꼬 리가 말리며 털에 반점이 나타났다. 주둥이는 짧아졌으며 뼈는 더 가늘어 지고 수컷은 점점 더 암컷을 닮아갔다. 심지어 개처럼 짖기 시작했다. 또 한얼마 지나지 않아 사육사들이 이름을 부르면 반응을 보였다. 이는 이전 까지 여우에게서 결코 본적이 없는 행동이었다. 기억해둘 것은 이런 특징 중 어느 것도 류드밀라가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유일한 기 준은 친밀감이었다. 다른 모든 특징은 그저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 이 실험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1978년 구소련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생물학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연구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진 화론은 자본주의자들의 음모가 아니었고, 공산당국은 이제 구소련 과학 을 부흥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그해 8월 드미트리는 모스크바에서 유전학 국제학술대회를 주최했다. 참가자들은 6,000명을 수용할 수 있 는 크렘린궁전에서 환대를 받았다. 샴페인은 넘쳐났으며 캐비아는 굴러 다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드미트리의 이야기만큼 회원들에게 깊은 인 상을 주지 못했다. 간단한 소개 후 조명이 어두워지고 비디오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화면에서는 은여우가 꼬리를 흔드는 등 실제로 있을 법하지 않은 존재가 튀어나왔다. 객석에서는 합창처럼 탄성이 터져 나왔고, 조명이 다시 켜진 뒤에도 흥분한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는 한참 계속되었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아직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디오 상영 직후 자신의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순한 여우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덜 분비했고, 세로토닌(행복 호르몬)과 옥시토신('사랑 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했다. 드미트리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이런 현상 은 여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 이론은 "당연히 인 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 돌이켜보면 이것은 역사적인 발언이었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 전자에 관한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지 2년 뒤 사람들은 '이기적인 존재로 태어났다'고 결론지었는데, 여기 무명의 구소련 유전학자가 그 반대의 주 장을 펼친 것이다. 드미트리 벨라예프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길들여진 유인원이다. 가장 친화적이고 성품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식을 갖는 현상이 수만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종의 진화는 '가장 우호적인 자의 생존'에 근거를 두고 있다.

- 네안데르탈인은 천재와 비슷하다. 개개인의 뇌는 더 컸지만 집단으로 서는 똑똑하지 못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개별 호모 사피엔스보 다 더 똑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더 큰 집단을 이루어 모 여 살았고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더 자주 이주했으며, 아마 모방도 더 잘 했을지도 모른다. 네안데르탈인이 초고속 컴퓨터였다면 우리는 구 식 PC이지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던 셈이다. 우리는 더 느렸지만 더 잘 연결되었다. 일부 과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 발달 역시 사교성의 산물이다. 언어는 모방자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의 매우 좋은 예이다. 언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류드밀라의 여우가 짖기 시작한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말하는 인간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호모 퍼피는 결국 이들을 모두 쓸어버렸을까? 이 같은 생각으로 스릴 넘치는 읽을거리나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는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이보다 설득력 있는 이론은 우리 인간이 마지막 빙하기(기원전 11만 5000년 전부터 기원전 1만 5000년 전)의 혹독한 기후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었 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한 덕분이다.

- 1877년 전염병이 마침내 진정되었을 때 살아남은 주민은 110명에 불 과했다. 800년 전 카누를 타고 해안에 도착했던 첫 정착민들과 거의 같은 숫자였다. 전통은 사라지고 의식은 잊히고 문화는 파괴되었다. 노예상인 들과 그들의 질병은 마침내 원주민과쥐가 달성하지 못한 것을 이루었다. 이스터섬을 파괴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문명을 망가지도록 낭비한 이기적인 섬 주민들의 이 야기 중에서 남은 부분은 무엇일까? 별로 없다. 전쟁도 기근도 다른사람을 잡아먹은 일도 없었다. 삼림 벌채는 땅을 황량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비옥하게 만들었다. 1680년경에는 대량학살이 이루어지지 않 았다. 수세기 후인 1860년경까지 진정한 쇠퇴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 고섬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쇠퇴하는 문명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문명을절벽에서 밀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토착 식물과 동물종들을 멸종시킨 쥐라는 재앙이 뜻하지 않 게 유입된 것처럼 주민들이 그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순조롭지 못한 시작 이후 가장 눈에 띈 것은 회복탄력성 과적응성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세상이 그들을 보아왔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했다. 그렇다면 이스터섬은 여전히 우리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적 절한 비유일까? 보어세마 교수와 대화를 나눈 지 며칠 후 나는 "기후변화 탓에 이스터섬 석상들이 위험에 빠졌다"고 공표한 신문 머리기사를 보았다. 과학자들은 해수면 상승과 해안침식의 영향을 분석했으며, 기사는 이들이 예측하는 시나리오를 반영했다
나는 기후변화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도 전이며, 대처할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 다. 그러나 내가 회의적인 것은 붕괴라는 숙명론적 수사이다. 우리 인간 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거나 더 나쁘게는 지구의 재앙이라는 인식이 다. 나는 이런 인식이 '현실적으로 널리 퍼질 때 의심을 품으며, 여기에 출 구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회의적이 된다. 너무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인류의 회복력을 과소평가한다. 나의 두려움은 그들의 냉소주의가 자기충족적 예언, 즉 지구 기온이 변함없이 오르는 동안 우리를 절망으로 마비시키는 노시보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후행동 역시 새로운 현실주의를 적용할 수 있다.
보어세마 교수는 나에게 "문제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들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해낼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요. 그러나 그들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라 고 말했다.
이스터섬이 이를 증명한다. 섬 주민들은 마지막 나무가 사라졌을 때 수 확량을 높이는 새로운 기술로 농업을 다시 일구었다. 이스터섬의 실제 이 야기의 주인공은 수완이 매우 좋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임박 한 파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르지 않는 희망의 원천이다.

- 조작된 인간 본성 실험
무자퍼 셰리프 박사의 조작이 사악하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이것은 17년뒤 날조되는 시나리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표면적으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과 로버스 동굴 공원 실험은 공통점이 많다. 피험자가 24명의 백인 남성이었으며, 착한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악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된 실험이었다." 그러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필립 짐바르도의 연구는 의심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사기였다.
2007년에 출간된 그의 <루시퍼 이펙트>를 읽으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 했다. 나는 그의 교도소 '교도관들이 자발적으로 가학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다. 짐바르도 자신도 수없이 많은 인터뷰와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교도관이 "법, 질서 및 존경심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 규칙을 만들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짐바르도는 《루시퍼 이펙트》에서 실험 전 토 요일에 갑자기 교도관들과 만났다고 언급했다. 그날 오후 그는 교도관들 에게 각자 맡을 역할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의 지시는 착각할 수 없는 내 용이었다.
우리는 좌절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그들 속에 두려움을 심을 수
있다. [・・・・・・]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의 개성을 제거할 것이다. 그들 은 수인복을 입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번호를 부여받으며 오직 번호로만 불릴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모 든 것을 통해 우리가 그들에게 심어주어야 하는 것은 무력감이다.14
이 구절에 이르렀을 때 나는깜짝놀랐다. 객관적이어야 할 과학자가자 신의 교도관을 훈련시켰다고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다니. 교도관들 스스 로가 수감자들을 번호로 부르거나 선글라스를 쓰거나 가학적인 게임 등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이었 다. 뿐만 아니라 짐바르도는 실험이 시작되기 전 토요일에 마치 그와 교 도관이 같은 팀인 것처럼 이미 '우리'와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는 실험이 진행됨에 따라 짐바르도 자신이 교도소 감독관으로서의 역 할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짐바르도 는 첫날부터 명령을 내렸다.
- 필립 짐바르도는 40년 동안 수백 건의 인터뷰와 기사에서 스탠퍼드 교 도소 실험의 교도관은 아무 지시도 받지 않았다고 변함없이 주장해왔다. 각종 규칙, 처벌 및 수감자들에게 가한 모욕 등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생 각해냈다는 것이다. 짐바르도는 재피를 그저 이 실험에 휩쓸린 평범한교 도관 중 한명으로 묘사했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17가지 규칙 중 11 가지를 재피가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수감자들을 맞이하는 절차에 대한 세부적인 의례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도 재피였다.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는 것? 그의 생각이었다. 수감자들의 옷을 벗기는 것? 마찬가지이다. 15분 동안 벌거벗은 채로 서 있게 강요하는 것? 이 또한 재피의 생각이었다.
재피는 실험 전 토요일 다른 교도관들과 함께 6시간을 보내면서 체인 과 방망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재피 는 "나는 일어날 일 일어나야만하는 일에 대한 목록을 가지고 있다"고교 도관들에게 이야기했다." 이 혹독한 시련이 끝난 뒤 동료 교도관들은 그 의 '창의적인 가학적 발상을 칭찬했다. 한편 짐바르도 역시 가학적인 게 임 계획에 기여했다. 그는 수감자들의 수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오전 2시 30분과 오전 6시에 깨워 점호를 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잡았다. 수감자들 에 대한 가벼운 처벌로 팔굽혀펴기를 제안하거나 담요에 가시가 있는 스 티커나 꺼끌꺼끌한 풀씨를 넣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독방에 감금하는 것이 좋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짐바르도가 실험을 제어하는데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는 무 엇일까? 대답은 단순하다. 애초에 짐바르도는 교도관들에게 관심이 없었 다. 처음부터 그의 실험은 수감자들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수감자들이 극 심한 압박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었다. 얼마나 지루해할까? 얼마나 좌절할까? 얼마나 두려워할까? 교도관들은 스스로 짐바르도의 연구보조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짐바르도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 각해보면 타당한 일이다. 짐바르도가 그들의 가학적인 행동에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이것이 실험의 진정한 교훈이라는 생각은 모두 사후에 조작된 내용이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밀그램의 실험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사람들의 선 함을 옹호하는 책을 쓰려고 하면 몇 가지 큰 도전 과제가 목록으로 주어 진다. 윌리엄 골딩과 그의 어두운 상상력, 리처드 도킨스와 《이기적 유전 자》,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사기를 꺾는 이스터섬 이야기, 그리고 살아 있 는 심리학자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필립 짐바르도 등. 하지만 내 목록 맨 위에는 스탠리 밀그램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그의 충격 기계 실험만 큼냉소적이고 우울한 동시에 유명한 연구는 본적이 없다.
몇 개월에 걸친 조사를 마칠 무렵 나는 그의 유산을 처리하기에 충분한 탄약을 모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최근에 공개된 그의 개인기록보관소가 있는데, 그곳에는 치부를 드러내는 자료가 상당히 많이 있음이 밝혀졌다. "보관소의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그 이면을 보 고 싶었어요." 지나 페리가 멜버른을 방문했을 때 나에게 한 말이다(로버스 동굴 공원 실험이 사기라고 폭로한 지나 페리와 동일 인물이다. 7장 참조). 페리가 말하는 '환멸의 과정'은 그렇게 시작되어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통렬하게 기록한 책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녀가 폭로한 내용은 그녀를 밀그램 팬에 서 신랄한 비평가로 바꾸어놓았다.
먼저 페리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살펴보자.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명성 과 찬사를좇는 의욕 넘치는 심리학자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 를 얻기 위해 오도하고 조작한 남자. 자신을 신뢰하고 돕고자 했던 사람 들에게 의도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준 인물.
- 1970년대에 밀그램의 실험을 재현한 심리학자 돈믹슨Don Mixon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훗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실 사람들은 선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커다란 고통도 참아낸다. 좋은 사 람이 되려고 애쓰는 데 온 힘을 다한다......."24 다시 말해서 충분히 강하 게 압박하고 찌르고 재촉하고 미끼를 던지고 조작하면 우리 중 많은 사람 에게 실제로 악을 행하게 할 수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 어 있다. 그러나 악은 표면을 들추기만 하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악 을 끌어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는것처럼 악을 위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의도는 7장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학생 교도관 데이브 에셜먼은 명시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렇게까지 했을지 궁금해하던 인물이다. 그 역시 자신에 대해 '내심은 과학자였다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했기 때문에 자신이 긍정적인 일을 한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것은 애초 교도소 연구라는 개념을 생각해낸 짐바르도의 연구 보조 원인 데이비드 재피도 마찬가지였다. 재피는 연구의 숭고한 의도를 지적 함으로써 선의의 교도관들에게 더욱 강경한 노선을 취하도록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마음이 흔들리는 교도관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작업한 결과를 가지고 [............] 세상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에요. '자 보세요.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교도관이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 이런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교도관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궁극적으로 데이비드 재피와 필립 짐바르도는 자신들의 작업이 교도 소 시스템을 완전히 개편하는 충격요법으로 작용하기를 바랐다. 재피는 “이 연구로부터 개혁을 위한 매우 진지한 권고사항이 나오게 되기를 기대 한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우리 모두가 음, 단지 사디스트이기 때문 에 이런 일을 하려는것이 아니다"라고 교도관을 안심시켰다. 

- 아렌트에 관한 오해
이를 염두에 두고 아돌프 아이히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1961년 4월 11일 전쟁범죄를 저지른 나치 장교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후 14주 동안 수백 명의 증인이 증언대에 섰으며, 검찰은 아이히만이 어떤 괴물인지 보 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것은 법원의 재판 사건 그 이상이 었다. 대규모의 역사 수업이었고, 수백만 명이 시청한 미디어의 구경거리 이기도 했다. 시청자 중에는 그의 아내가 뉴스 중독자'로 묘사한 스탠리 밀그램이 있었는데, 그는 재판의 진행 과정을 면밀히 추적했다.
한편 한나 아렌트는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아이히만의 문제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와 똑같았는데 그들이 변태적이거나 가학 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들은 예전에도 끔찍하고도 무서울 정도로 정상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라고 기술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아이히만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 평범성을 나타내는 인물로 서 생각없는 '살인 관료'를 대변하게 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역사학자들은 매우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1960년 이스 라엘의 비밀요원에게 체포될 당시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에 숨어 있었 다. 네덜란드의 나치 친위대(SS) 장교였던 빌럼 사센Willem Sassen은 그곳에 서 몇 개월 동안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센은 아이히만으로 하여금 홀로코스트가 나치 정권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조작된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아 이히만은 "나는 아무 후회도 없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1945 년 이미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나는 웃으며 나의 무덤 속으로 뛰어 들 것이다. 내 양심 속에 500만 명의 인간이 있다는 느낌이 나에게 엄청 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32 비뚤어진 생각과 환상으로 가득 찬 1,300 쪽의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면 아이히만은 생각 없는 관료가 아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는 광신자였다. 그는 무관심이 아니라 신념에 따라 행 동했다. 밀그램의 실험 대상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스스로 선을 행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악행을 저질렀다.
-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나는 아돌프 히틀러나 상관들로부터 사전에 명 시적인 지시를 받지 않고는 크든 작든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라고 증언 했다. 이는 뻔뻔스러운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나치들은 "단지 명 령을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그의 거짓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그 후 역사학자들이 깨닫게 된 사실은 제3제국의 관료제도 내에서 내려 온 명령은 내용이 모호한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공식 명령이 거의 내 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히틀러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창의성에 의존해야 했다. 영국 역사학자 이언 커쇼lan Kershaw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단순히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총통의 정신에 맞게 행동하려고 노력 하면서 "그를 위해, 그를 바라보고 일했다."33 이는 나치당원들에게 점점 더 급진화하는 당원들이 히틀러의 호감을 얻기 위해 더욱더 과격한 조치 를 고안하는 남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경쟁하는 문화를 조성했다.

- 방관자 효과는 여전히 많은 교과서 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2011년에 발표된 메타 분석은 방관자가 긴급 상 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메타 분석은 연구에 대한 연구로 수많은 연구 사례를 분석한다. 이번 메타 분석은 라 타네와 달리의 첫 번째 실험(학생들이 있는 방)을 포함해 지난 50년 동안 방 관자 효과를 다룬 것 중 가장 중요한 105건의 연구를 검토했다!"
이 연구에서 두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방관자 효과가 존재 한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 기 때문에 비상 상황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우리는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아무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통찰은? 생명이 위험한 비상상황에서 (누군가 익사하거나 공격을 당하고 있음) 목격자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별도의 방에 격리되지 않음), 역방관자 효과가 나타난다. 논 문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추가적인 목격자들이 있으면 도움이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증가한다."
- 충격적인 사실은 실제 이야기에서 살아남은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 다. 운명적인 그날 밤 실패한 것은 평범한 뉴요커가 아니라 당국자들이었 다. 키티는 혼자가 아닌 친구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근본적 으로 목격자의 존재는 과학이 오랫동안 주장했던 것과 정반대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대도시, 지하철, 붐비는 거리에서 혼자가 아니다. 우 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그리고 키티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예상 밖의 반전이 있었다. 키티가 죽은 지 5일 후퀸스주민인 라울 클리어리는 거리 에서 낯선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대낮에 텔레비전을 들고 이웃집에서 나 오는 중이었다. 라울이 그를 막아서자 그 남자는 자신을 일꾼이라고 주장 했다. 그러나 라울은 의심스러워 이웃인 잭 브라운에게 전화를 걸어 "배 니스터가 이사를가나요?"라고 물었다. 브라운은 "전혀 아니에요"라고 대 답했다. 두 남자는 주저하지 않았다. 잭이 그 남자의 차량을 움직일 수 없 게 만드는 동안 라울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출동한 경찰은 (도망갔던) 도둑이 다시 나타나자마자 체포했다. 바로 몇 시간 뒤 그는 범행을 자백 했다. 무단 침입뿐 아니라 큐 가든스에서 젊은 여성을 살해한 사실도 시 인한 것이다. 그렇다. 키티의 살인범은 두 명의 목격자가 개입한 덕분 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살인범 체포 사실을 보도한 신문은 단 한 곳도 없 었다.
이것이 키티 제노비스의 실제 이야기이다. 심리학과 1학년뿐만 아니라 언론인 지망생도 반드시 읽어야 할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 쳐주기 때문이다. 첫째,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얼마나 자주 엉 망이 되는가. 둘째, 기자들이 선정적인 이야기를 팔기 위해 얼마나 교묘 하게 자판을 두드리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때는 정확히 위급한 상황에서라는 점이다.

- '친절한' 테러리스트
나는 이런 발상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네덜란드에서 자란 10대 시절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용맹한 영웅들과 나쁜 악당들 사이의 장렬한전투인 20세기의 <반지의 제왕> 정도로 상상했다. 하지만 모리스 자노위츠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악 의 기원이 타락한 악당들의 가학적 성향이 아니라 용감한 전사들의 결속 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가진 최고의 특성 인 우정, 충성, 결속이 수백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역사상 최악의 대 학살을 저지르게 고무시킨 영웅적 투쟁이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 Roy Baumeister에 따르면 우리의 적이 악의로 가득한 가학성애자들이라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이것을 '순수한 악의 신화'라고 부른다. 실제로 우리의 적은 우리와 흡사하다.

- 문제는 인간 본성에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첫 번째 실 험 이후 몇 년 뒤 햄린과 그녀의 팀은 같은 주제의 다른 연구를 생각해냈 다. 이번에는 유아들에게 통밀 비스킷과 녹색 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 는 기회를 주어 선호도를 확인했다. 그런 다음 아기들에게 하나는 크래커 를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콩을 좋아하는 2개의 인형을 제시했다. 다시 한 번 그들은 아기들이 어떤 인형을 좋아하는지 관찰했다. 당연히 압도적으 로 많은 아기들이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는 인형에게 끌렸다. 놀라운 사실 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인형이 비열하고 다른 인형이 착한 것으로 밝혀진 뒤에도 이 선호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햄린의 동료 중 한 명은 "우리가 계속해서 발견한 것은 아기들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좋은] 사람보다는 실제로 비열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선택한다는 사실 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을 알면 알수록 우울해지지 않는가? 말하는 것을 배우기도 전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혐오감을 느끼는 것 같다. 아기 연구소의 연 구원들은 아기들이 낯선 얼굴, 알수없는 냄새, 외국어, 이상한 억양 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십 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마치 우리 모두가 타고난 외국인 혐오자인 듯하다.

- 그런 다음 나는 이것이 '우리의 치명적인 부조화의 증상일까?'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선호하 는 것은 인류가 존재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별 문제가 되지 않다가 문명 이 발전하면서 비로소 문제가 된 것일 수도 있을까? 인류 역사의 95퍼센 트가 넘는 기간 동안 우리는 떠돌아다니면서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았다. 우리는 낯선 사람과 함께 고개를 넘을 때 언제라도 멈춰 서서 대화를 나 눌 수 있었으며, 그 사람은 더 이상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요즘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우리는 익명의 도시에 살고 있으며,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에 대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언론과 언론인에게서 나온다. 문제는 이들이 썩은 사과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그렇게 의심하게 된 것이 놀라운 일인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 한우리의 타고난 혐오감이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을까?

- 블룸 교수는 실질적인 측면에서 공감은 절망적으로 제한된 기술이라 고 말한다. 공감은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 즉 우리가 냄새를 맡고 보고 듣 고 만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밴드의 팬들, 그리고 아마도 길거리에 있는 노숙자 등에 게. 우리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의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학대당한 동 물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손으로 쓰다듬을 수 있는 귀여운 강아지들에게 공감을 느낀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경우 슬픈 배경 음악이 점 점 크게 울리는 동안 주로 카메라가 확대하는 대상에게 공감을 느낀다.
나는 블룸의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뉴스라는 현대의 현상과 꼭 닮았다 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1장에서 우리는 뉴스가 스포트라이트처럼 작 동하는 것을 보았다. 공감이 특정 항목을 확대해 우리를 오도하는 것처 럼 뉴스도 예외 항목을 확대해 우리를 속인다. 한가지는 확실하다. 더 나 은 세상은 더 많은 공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공감은 우리로 하여금 덜 용서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가 피해자와 더 많이 동일시할수록 적에 대해 더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소수에게 밝은 스 포트라이트를 비추면 적의 관점은 보지 못하게 된다. 다른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강아지 전문가 브라이언 헤 어가 이야기한 우리를 지구상에서 가장 친절하면서도 잔인한 종으로 만 드는 메커니즘이다. 슬픈 진실은 공감과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 이 함께한 다는 것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 여기에서도 우리는 텔레비전과 영화산업에 속아 넘어갔다. <왕좌의 게임> 같은 시리즈나 <스타워즈> 같은 영화는 다른사람을 꼬챙이로 찌르는 것이 식은 죽 먹기라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사람의 몸을 찌 르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지난 1만 년 동안 전쟁에서 발생한 수억 명의 사상자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죽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법의학적인 조사가 필요하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사망 원인을 예로 들 어보겠다.
기타 : 1퍼센트 화학: 2퍼센트
폭발, 압착 : 2퍼센트
지뢰, 부비트랩 : 10퍼센트
총알, 대전차 지뢰 : 10퍼센트
박격포, 수류탄, 공중 폭탄, 포탄 : 75퍼센트
뭔가 눈치챘는가? 이 희생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대부분이 원격 으로 제거되었다는 점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병사들은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거나 폭탄을 떨어뜨리거나 지뢰를 설치한 결과 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바지를 추켜올리
- 어느 시대에서나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멀리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이 백년전쟁(1337~1453) 동안 크레시와 아쟁쿠르에서 프랑스를 패배시킨 방법이었다. 스페인 정 복자들이 15, 16세기에 아메리카를 정복한 방법이자 오늘날 미군이 무장 무인기 편대로 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군대는 장거리 무기 외에도 적과의 심리적 거리를 넓히는 수단을 추구 한다. 만약 상대방을 해충으로 묘사하는 방법 등으로 그들을 비인간화할 수 있다면 상대를 정말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대하기가 더 쉬워진다. 또 한 병사들을 마약에 취하게 해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공감능력과 폭력에 대한 반감을 무디게 만들 수도 있다. 트로이에서 워털루, 한국에서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취하게 만드는 물질의 도움 없이 싸운 군대는 거의 없었다. 오늘날 학자들은 만일 독일 군대가 메스암페타민 알약(일명 크리스탈메스 극도의 공격성을 유발할 수 있는 마약) 3500만정을 먹지 않았다면 1940년 파리가 함락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군대는 군인들을 '조건화할 수 있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셜 대령의 권유로 이를 시작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신병들은 신병 훈련소에서 전우애뿐만 아니라 가장 잔인한 폭력성도 고취되어 병사들 은 '죽여! 죽여! 죽여!'라고 목이 쉴 때까지 외쳐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대부분 죽이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은 이런 종류의 훈련 이미지 를 보여주자 충격을 받았다.
- 요즘 병사들은 더 이상 평범한 종이 과녁으로 연습하지 않는다. 인간형 상의 과녁을 향해 본능적으로 사격하도록 훈련을 받음으로써 총을 쏘는 것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도 수행할 수 있는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반응이 된다. 저격수들은 훈련이 훨씬 더 과격하다. 검증된 방법 중 하나는 훈련 병이 특수 장치로 인해 강제로 눈을 크게 뜨고 의자에 묶여 앉아 있는 동 안 점점 더 끔찍한 일련의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고난 뿌리 깊은 감정인 폭력에 대한 혐오감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현대 군대에서 전우애의 중요성은 작아졌다. 그 대신 미국의 한 참전용사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만들어진 경멸" 을 갖게 되었다. 이 조건화는 실제로 효과가 있다. 이러한 기법으로 훈 련을 받은 병사들과 구식 군대를 마주치게 하면 구식 군대는 매번 박살이 나고 만다. 1982년의 포클랜드전쟁을 예로 들어보자. 구식 훈련을 받은 아르헨티나 군대는 비록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영국의 조건화된 사격 기 계와 맞붙었을 때 승리의 기회가 전혀 없었다.
또한 미군은 '발사율을 높이는 데 어렵사리 성공해 총을 쏘는 병사의 비율을 한국전쟁에서는 55퍼센트, 베트남전쟁에서는 95퍼센트까지 높 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가가 따랐다. 수백만 명의 젊은 병사들을 훈련 중 세뇌시킨다면 베트남전쟁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실제로 그랬던 것처 럼 이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였으며, 이때 그들 안에 있는 무엇인가도 함께 죽었다.
- 마지막으로 적과 거리를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지도 자들이다. 높은 곳에서 명령을 내리는 군대나 테러 조직의 지휘관은 적 에 대한 공감의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병사들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지도자들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테러 전문가와 역사학자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권력을 가진 사 람들의 심리학적 상태는 독특하다.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theh 같은 전쟁범죄자들은 권력에 굶주린 편집증적 나르시시스트의 전 형적 사례이다." 이와 비슷하게 알카에다와 이슬람 무장단체 IS 지도자 들은 사람을 조종하는 데 능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연민이나 의심으로 괴 로워하는일이 거의 없다."

- 권력은 타인에게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마취제처럼 작용하는 것 같다. 2014년 연구에서 세 명의 미국 신경학자는 '경두개 자기자극 기계'를 사 용해 권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인지 기능을 검사했다. 그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은 공감에 핵심적인 역 할을 하는 정신적 과정인 미러링mirroring을 방해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항상 미러링을 한다. 누군가 웃으면 당신도 웃는다. 누군가 하품을 하면 당신도 하품을 한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매우 약하다. 이는 마치 플러그가 뽑힌 것처럼 자신들이 더 이상 동료 인간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과 같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덜 받으면 그들 이 더 냉소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게 사실일까?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권 력의 영향 중 하나는 타인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 만약 당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들에게는 감독과 감시, 관리와 규 제. 검열과 명령이 필요하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권력은 당신을 다른 사 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당신이 이 모든 감시를 담당해 야 한다고 믿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권력을 갖지 못하면 정반대의 결 과가 나타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힘이 없다고 느끼는사람들은 자신 감도 훨씬 떨어진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를 주저하고 집단에서 스스 로를 더 작아 보이게 만들며 자신의 지능을 과소평가한다."
- 권력자들에게 이러한 망설임은 편리하다. 자기 의심은 사람들이 반격 할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스스로 침묵하 기 때문에 검열이 불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노시보효과가 작동하는 것 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을 어리석은 것처럼 대하면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 다고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통치자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추론하 게 만든다. '대중은 너무 멍청해서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비 전과 통찰력을 가진 내가 책임을 맡아야 해.' 하지만 진상은 정확히 그 반 대가 아닌가? 우리를 근시안적으로 만드는 것이 권력 아닌가? 정상에 오 르면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싶은 동력이 감소한다. 공감은 필수 요 소가 아니게 된다. 자신이 보기에 비합리적이거나 짜증나는 사람은 무시 하거나 제재하거나 가두거나 이보다 더욱 나쁘게 처리할 수도 있기 때문 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으므로 편 협한 시각을 갖게 된다.
- 이는 공감 테스트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와도 연결지을 수 있다. 2018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실시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가져오는 유전적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대신 과학자 들이 사회화라고 부르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 권력이 분배되는 전통 적 방식 때문에 남성을 이해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직관력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끈질기게 지속되는 이유는 아마 도 이와 같은 불균형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시각으 로 세계를 볼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 정착 생활이 시작되고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족장과 왕은 자신이 신 민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는 이유를 정당화해야 했다. 즉 그들은 선 전을 하기 시작했다. 유목민족의 족장들이 모두 겸손했던 것과 달리 이제 지도자들은 잘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왕은 자신이 신성한 권리에 의해 다스리고 있다거나 그 자신이 신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오늘날 권력의 선전은 더 미묘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독창적인 이 데올로기를 설계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부 개인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권위, 지위 또는 부를 갖는 것이 '마땅한 이유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장점merit' 논리를 사 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가 큰 장점이 있는지 어떻게 결정할까? 누 가 사회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지 어떻게 판단할까? 은행가 아니면 청소 부? 간호사 혹은 항상 고정관념 밖에서 생각하는 소위 교란자? 자신에 대 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낼수록 자신의 몫은 더 커진다. 사실 문명의 진화 전체를 자신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론을 지속적으로 고안해낸 통치자들의 역사로 볼 수 있다.
- 우리가 수천 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대규모 집단을 이루어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서로를 시야에서 놓 쳤다. 수천, 수만 명 혹은 100만 명의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방법 이 없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자라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 들이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에 기생한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등골이 휘도록 일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래서 통치자들에게는 대중을 감시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모든 것을 듣고, 모든것을 보는사람. 모든 것을 보는 눈 바로 하느님이다. 새로운신들이 복수심을 품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은 모든 사람을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감시하는 슈퍼 리바이어던 이 되었다. 신은 당신의 생각도 감시한다. 성경의 '마태복음 10장 30절에 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전지적 존재는 이제 하늘에서 세상을 지켜보고 감시, 감독하다가 필요한 경우 공격을 가했다.
신화는 인류를 돕는 열쇠였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이전에 다른 종들 이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수백만 명의 낯선 사 람들과 대규모로 함께 일할 수 있게 했다. 더욱이 이 이론은 위대한 문명 이 생겨난 것은 이러한 거대한 위조의 힘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계속해 서 이야기한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민족주의와 자본주의는 모두 상상 의 산물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 스》 (2011)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 모두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것 중심으로 돌아간다."
- 이는 매혹적인 이론이지만 한가지 단점이 있다. 인류 역사의 95퍼센트 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의 유목민 조상들은 이미 150명의 친 구라는 마법의 한계를 넘어섰다. 물론 우리는 소집단을 이루어 사냥 및 채집을 했지만 집단들도 정기적으로 구성원을 교환했다. 그 결과 우리는 교차 꽃가루받이를 하는 호모 퍼피의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3장에서 파라과이의 아체족과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의 경우를 살 펴보았다. 이들은 평생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난다.29
게다가 선사시대 사람들 역시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독창적인 신화를 창조해 서로에게 전해주어 수많은 사람이 협력하 는 바퀴가 매끄럽게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오늘날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 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5장 참조)은 수천 명이 협력해서 건설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유일한 차이점은 선사시대에는 이런 신화들이 불안정했다는 점이다. 족장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기념물은 빠르게 파괴 될 수 있다. 두 인류학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선사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불평등이라는 정령이 어떻게든 병에서 빠져나 올 때까지 태초의 순수함 속에서 유유자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기보 다는 정기적으로 문제의 병을 여닫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제의적인 시대극 안에 불평등을 가둬두고 자신들이 기념물을 건설했듯이 신들과 왕국을 만들어냈으며, 그 이후에 다시 한 번 이것들을 즐겁게 해체했다.

- 일부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democracy'라는 분산형 권력 시스템을 설계함으로써 이에 대처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사람들이 통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그리스어에서 '데모스demos'는 '사람들'을, '크라토스kratos'는 '권력'을 의미 한다)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루소는 이미 이러한 형태의 정부가 더 정확하게는 '선출된 귀족제'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왜 냐하면 사람들은 실제로 권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누 가우리를 지배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이 모델이 애초에 사회의 평민을 배제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헌법을 살펴보면 역사학자들은 이것이 "원래 당시의 민주적 경향 을 제어하기 위해 설계된 귀족 문서"였다는 데 동의한다.35 일반 대중이 정치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의도가 결 코 아니었다. 지금도 모든 시민은 누구나 공직에 출마할 수 있지만 기부 자 및 로비스트들로 구성된 귀족적 네트워크에 접근하지 않고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힘들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왕조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케네디 가문, 클린턴 가문, 부시 가문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더 나은 지도자를 계속해서 원하지만 이런 희망은 너무 자주좌 절된다. 켈트너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친절하고 겸손한 덕분에 당선되더라도 권력은 이런 자질을 잃게 만들거나 애초에 그런 훌륭한자 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계층적으로 조직된 사회에서 마 키아벨리안은 한발 앞서 있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기는 궁극적인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는 뻔뻔함이다.

- 우리는 앞에서 호모 퍼피가 수치심을 느끼도록 진화했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우리가 동물계의 모든 종 중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몇 안 되는 부 류에 속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천 년 동안 수치심은 지도자를 길들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과적인 장치일 수 있다. 수치심은 규칙이나 규정, 비난이나 강압보다 더 효과적이다. 수 치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제어하기 때문이다. 기대에 어긋났다 고 느낄 때 또 자신이 가십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말에 자신이 없어지고 역력히 얼굴을 붉힌다." 수치심에는 분명히 어두 운면(예를 들어 빈곤으로 인한 수치심)도 있지만 만약 수치심이 존재하지 않 는다면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라. 지옥이 열릴 것이다.

- 계몽주의의 모순은 인간본성에 대한 묘사를 검토할 때 두드러진다. 표 면적으로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같은 철학자들은 냉소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근대 자본주의, 민주주의, 법치주의는 모든 사람이 이기 적이라는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책을 읽어보면 계몽주의 작가들이 완고한 냉소주의자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자본주의의 경전이 될 운명)을 출판하기 17년 전에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 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 려 있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라고 보는가와 상관없이 그의 본성에는 몇 가지 원칙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른 사람의 운명에 관심을 갖게 만들며, 그들의 행복을 자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원칙 말이다. 그것으로부 터 얻는 것이라고는 그것을 보는 즐거움밖에 없을지라도.
- 스미스와 흄 같은 영향력 있는 합리주의자들은 공감 및 이타주의와 관 련해 인간이 보여주는 방대한 능력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철학자 들이 우리의 훌륭한 자질에 그토록 익숙하다면 그들의 제도(민주주의, 무 역, 산업)는 왜 비관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을까? 왜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 한 부정적인 견해를 계속 키워왔을까?
그 대답은 계몽주의 사상에 내재해 있는 모순을 정확하게 표현한 데이 비드 흄의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악한이라고 생각 해야만 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격언에 불과하다. 물론 어떤 격언이 실제로는 거짓이면서 정치에서는 참이어야 한다는 것은 뭔가 이상해 보 이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서 흄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 으면서도 사람의 본성이 이기적인 것처럼 우리가 행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마음속에 노시보라는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 다. 이것이 계몽주의와 더 나아가 우리 현대사회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인간 본성에 대한 틀린 모델을 기반으로 사회를 계속 운 영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일까?
1장에서 우리는 어떤 것들은 우리가 그것을 신봉하기 때문에 진실이 된다는 것을 비관주의는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 다. 현대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타고난 이기주의자라 가정하고 이기적 인 행동을 부추기는 정책을 옹호했다. 정치인들이 정치가 냉소적인 게 임이라고 스스로 확신했을 때 그것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제 우리 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까? 머리를 사용하고 이성을 활용해 새로운 제도를 설계할 수 있을까? 인간 본성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운영되는 기관은 가능할까? 학교와 기업, 도 시와 국가가 인간에 대해 최악의 경우 대신 최선을 기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 로젠탈은 자신의 발견에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이름을 붙였 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조각가로 자신의 창작물 중 하나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신들이 그의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렇다. 우리가 헌신하는 믿음 역시 진실인지 상상인지의 여부에 관계없 이 현실화되어 세상에 커다란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1장에서 언급한 플라시보 효과와 유사하지만 기대 효과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사람에게 미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처음에 나는 1960년대 미디어의 각광을 받은 다른 모든 실험과 마찬가 지로 이 오래된 연구가 틀렸다는 것이 지금쯤이면 확실히 밝혀졌을 것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피그말리온 효과는 심리학 연구에서 중요한 발견으로 남아 있다. 군대, 대학, 법정, 가족, 요양원 및 조직 내에서 수백 건의 연구결과를 통해 검증되었다. 사 실 그 효과는 로젠탈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항상 강력하지는 않다. 특히 아이들이 지능검사에서 나타내는 성적에 이르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에 시행된 비판적 리뷰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 다. “교사의 기대가 학생들에게 명확한 영향을 실제로 미치는 일이 최 소한 종종 일어난다는 자연적이고 실험적인 증거가 풍부하다.” 높은 기대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관리자들이 활용하면 피고용인들 의 업무 성과가 향상된다. 장교들이 활용하면 병사들은 더 열심히 싸운 다. 간호사들이 활용하면 환자는 더 빨리 회복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젠탈의 발견은 그와 그의 팀이 바라던 혁명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의 한 심리학자는 "피그말리온 효과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위대한 과학이다. 이것이 세상에서 일으켰어야 할 변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이는 매우 실망스럽다"라고 한탄했다. "
한 가지 더 좋지 않은 소식은 긍정적인 기대가 매우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악몽도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피그말리온효 과의 반대인 골렘 효과Golem Effect는 원래 프라하 시민을 보호하던 생물이 일탈해서 괴물로 변한다는 유대인 신화 속 이름에서 유래했다. 피그말리 온 효과와 마찬가지로 골렘 효과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누군가에 대해 부 정적인 기대를 할 때 우리는 그들을 자주 쳐다보지 않게 되며 그들과 거 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자주 웃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우리 는 로젠탈의 학생들이 '멍청한' 쥐를 미로에 풀어놓았을 때 했던 일을 똑 같이 반복한다.

- 골렘 효과는 일종의 노시보이다. 가난한 학생들은 더 뒤처지게 만들고, 노숙자는 희망을 잃게, 고립된 10대들은 더 과격하게 만든다. 이는 또한 인종차별의 이면에 있는 사악한 메커니즘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기대치가 낮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되고 이것은 다른사람들의 기대를 더욱 떨어뜨려서 자신의 성취를 더욱 낮게 만들기 때문이다. 골렘 효과와 부정적인 기대를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조직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증거도 있다."

- 인터뷰어: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있나요?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요스: 저도 그의 책을 읽었지만 한 마디도 믿지 않아요.'
인터뷰어: 인맥 쌓기 모임networking session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까?
요스: 대부분의 경우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재확인하는 게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터뷰어: 직원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합니까?
요스: 그러지 않습니다.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윗사람 행세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터뷰어: 당신의 수평선에 있는 작은 점은 무엇입니까? 당신과 팀원들에게 영감을 주는 먼 곳의 목표 말입니다.
요스: 나에게 그런 목표는 없습니다. 작은 점에서 받는 영감은 전혀 없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런던의 왕립예술 협회로부터 권위 있는 앨버트 메달을 수여받았다. 이 메달을 수여받은사 람은 월드 와이드 웹www의 두뇌인 팀 버너스리, DNA 구조를 밝힌 프랜 시스크릭, 그리고 뛰어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이 있다. 2014년 11월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출신인 요스 드 블록이 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영국 학계의 거물이 그의 기조연설을 듣기 위해 참석했다. 드 블록은 서툰 영어로 처음에는 수상 소식이 농담인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농담 이 아니었다. 마침 알맞은 때에 이루어진 수상이었다.

-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자유를 관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에게 자유를 부여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지의 여부이다. 이것은 중대한 질문이다. 심리학자 브라이언 서턴스미스Brian Sutton-Smith는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다. 놀이의 반대는 우울증이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유도 놀이도 내재적 동기도 없이 일하는 방식은 우울증 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을 부채질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우울증은 이제 전 세계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질병이 되었다. 우리의 가장 큰 결핍은 은행 계좌나 예산 명세서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다. 우 리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부족하다. 놀이가 부족하다.
나는 아고라를 방문한 뒤 희망의 빛을 보았다. 시예프드루먼은 나를 역에 내려주면서 다시 한번 크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오늘 말을지 나치게 많이 한 것 같아요." 사실이지만 나도 그의 학교를 잠깐이라도 걸 어보면 상당히 많은 확신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것이라며 그 를 칭찬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이것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다. 아고라는 수렵채집 사회와 동일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 은 다양한 연령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모아 코치와 놀이 리더의 지원을 받는 공동체에서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둘 때 가장 잘 배운다. 드 루먼은 이를 '교육 0.0'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호모 루덴스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 시장과 국가가 계속해서 점점 더 많은 공유지를 흡수한 것은 오로지 지 난 1만 년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이는 과거 모든 사람이 공유했던 땅에 대해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한 최초의 족장과 왕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오 늘날 식수원에서 생명을 구하는 약물, 새로운 과학 지식에서 우리 모두가 부르는 노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공유지를 도용하는 것은 주로 다 국적 기업들이다(19세기 히트작 '생일 축하곡Happy Birthday'은 2015년까지 워너뮤 직그룹이 저작권을 소유해 수천만 달러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또는 전 세계 도시 전역을 보기 흉한 광고판으로 도배한 광고산업의 부상을 가져올 수 있다. 누군가 당신의 집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면 우리는 그것을 기물파손이 라고 한다. 그러나 광고의 경우는 공공 공간을 훼손할 수 있으며 경제학 자들은 이를 '성장'이라고 일컬을것이다.

-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공정하게 이야기하면 적어도 한 사람은 개릿 하딘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았다.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대학이 여성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던 시대의 야심만만한 정치경제학자이자 연구원이었다. 그리고 하딘과 달 리 오스트롬은 이론적 모델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현실 세계에서 실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싶어 했다. 하딘의 논문이 간과 한 중요한 세부사항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 지 않았다. 인간은 말할 수 있다. 농부와 어부 그리고 이웃은 자신의 밭이 사막으로 변하지 않고, 호수에서 물고기가 남획되지 않고,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합의하는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이스터섬 주민들이 계속해서 협력하고, 참여 예산 책정자들이 건설적 인 대화를 통해 결정을 내리듯이 일반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공유지를성 공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오스트롬은 스위스의 공유 목초지와 일본의 경 작지에서 필리핀의 공동 관개시설 및 네팔의 수원 지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공유지 사례를 기록하기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오스트럼이 들여다본 모든 곳에서 드러난 사실은 하딘이 주장한대로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 비극을 만드는 비법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34
물론 공유지는 이해 상충이나 탐욕의 희생양이 될 수 있지만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오스트롬과 그녀의 팀은 총 5,000여 곳 이상의 현재 운용 되고 있는 공유지 사례를 수집했다. 여기에는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곳 이 적지 않은데, 어업권을 두고 제비를 뽑는 오랜 전통의 터키 알라니아 의 어부나 부족한 장작 사용을 공동으로 조정하는 스위스퇴르벨 마을의 농부 등을 들 수 있다. 오스트롬은 자신의 획기적인 저서 《공유의 비극을 넘어》 (1990)에서 공유지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일련의 '설계 원칙' 을 공식화했다. 예를 들어 공동체에는 최소한의 자율성과 효과적인 감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오스트롬은 성공을 위한 청사진은 따로 없 다고 강조했다. 공유지의 특성은 궁극적으로 지역적 맥락에 의해 형성되 기 때문이다.

- 깨진 유리창, 부서진 삶
깨진 유리창 이론의 기사가 디 애틀랜틱>에 처음 실린지 약 40년이 지났다. 그동안 윌슨과 켈링의 철학은 미국의 가장 먼 곳, 나아가 유럽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졌다. 말콤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 트》에서 이 이론을 대성공이라고 평가했고, 나 역시 첫 저서에서 그 이론 에 대해 열광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범죄학자들이 더 이상 이 이론 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실 <디 애틀랜틱>의 기사를 읽자 마자 내 마음에 경고등이 켜졌어야 했다. 윌슨과 켈링의 이론은 한 가지 모호한 실험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실험에서 한 연구원은 꽤 괜찮은 동네에 일주일 동안 자동차를 세워 두고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망치를 가지고 돌아와서 창문 한 개를 부숴버렸다. 그러자마자 수문이 열린 듯 불과 몇 시간만에 길을 가던 평범한사람들이 자동차를 완파해버렸다. 그 연구원 의 이름은 바로 필립 짐바르도였다.
- 어떤 과학 저널에도 게재되지 않은 짐바르도의 이 자동차 실험은 깨진 유리창 이론에 영감을 주었고, 그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과 마찬가지로 이 이론은 그 이후로 철저히 반박당했다. 예를 들어 윌리엄 브래튼과 그 의 추종자들이 내놓은 '혁신적 치안 유지는 뉴욕시의 범죄율 하락과 전 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범죄율은 이전부터 하락하고 있었고, 이는 경찰이 잡범은 잡지 않았던 샌디에이고 같은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 가지였다.
깨진 유리창 이론에 대해 30개의 연구를 메타분석한 2015년 결과에 따르면 브래튼의 공격적인 치안 전략이 범죄를 줄이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그 어떤 증거도 없다." 전혀, 아무것도 없다. 갑판을 닦는다고 타이타닉호의 침몰을 막을수없었던 것처럼 주차위반 딱지를 발부한다고 동 네가 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초기에 '그래, 부랑자와 술주정뱅이를 체포한다고 해서 심각한 범 죄가 줄어드는 건 아니지. 하지만 여전히 공공질서를 강제할 필요는 있 다'고 반응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질문이 빠져 있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질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뉴욕시에서 체포 건수가 치솟 았을 때 경찰의 위법 행위에 대한 보고 역시 급증했기 때문이다. 

-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읽은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 깨진 유리창 이론 을 뒷받침하는 것이 인간 본성에 대한 완전히 비현실적인 관점이라는 것 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는 껍데기 이론의 또 다른 변형으로, 뉴욕의 경 찰이 평범한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게 만들었다. 작은 실수라 도 그것이 훨씬 더 나쁜 길로 빠지는 단초가 될 수 있으며, 결국 우리 문명 의 껍데기는 극히 얇다는 것이다.
한편 경찰관들은 내재적 동기 없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관리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서가 서류상 최대한 좋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상사들에게 훈련을 받았다. 이 말은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는 일을 잊어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유리창을 수리하고, 집을 꾸미고, 지역 주민들의 우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훌륭한 아이디어이다. 질서정연한 교도소가 신뢰감을 내뿜듯 깔끔한 동네는 훨씬 더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유리창을 수리하고 나면 그 유리창을 더 활짝 열 수 있는 법이다. 하 지만윌슨과 켈링의 이론은 주로 깨진 유리창이나 어두운 거리 그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입건되고 구속되고 규제되는 보통사람들에 관 한 것이었다. '깨진 유리창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비유였다.
윌슨 교수는 끝까지 굳건한 입장을 유지했는데, 2012년 사망할 때까지 브래튼식 접근법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의 공동 저자 인 조지 켈링은 증폭되는 의심에 시달렸다. 그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너 무 자주 잘못 적용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관심사는 항상 깨진 유리 창자체에 관한 것이지 가능한 많은 흑인과 유색인종을 체포하고 투옥하 는 것이 아니었다. 2016년 켈링은 "깨진 유리창의 이름으로 행해진 많은 일을 나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전국의 경찰서장이 그 이론 을 언급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뇌리에 두 단어가 스쳐갔다. '이런 망할'

- '만델라식 방법'이 순진하다고 믿는 데서 시작한 미국인 에리카 체노 웨스Erica Chenoweth의 최근 연구를 살펴보자. 그녀는 현실 세계에서 힘은 총 구를 통해 발휘된다는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19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저항 운동에 관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2014년 체노웨스는 "그 뒤에 나는 계산을 해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비폭력 운 동의 성공률은 50퍼센트가 넘었지만 폭력적 운동에서는 겨우 26퍼센트 에 불과했던 것이다. 체노웨스는 비폭력 운동의 성공률이 높은 주된 이유 는 바로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무려 평균 11배 이상 참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높은 젊은이 들뿐 아니라 여성과 어린이, 노인과 장애인도 여기 포함된다. 정권은 그 런 군중을 이길 수 있는 준비가되어 있지 않다. 선이 악을 압도하는 방법 은 바로 숫자로 압도하는 것이다.

- 오랫동안 1914년 크리스마스의 휴전은 감상적 동화에 불과하거나 더 나쁘게는 반역자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신화 취급을 당했다. 휴일이 끝나고 전쟁이 재개되자 100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전사했다. 그리고 그 해 크리스마스에 실제로 발생했던 일은 점점 더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 다. 1981년 BBC 다큐멘터리 <무인지대의 평화>가 방영되면서 비로소 이 이야기가 단지 한낱 소문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영국 전선 의 3분의 2가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전투를 중단했다. 대부분의 경우 영국 측에 우정의 제안을 한 독일인과 관련이 있다(벨기에와 프랑스가 담당한 전선 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했다). 모두 10만명 이상의 병사가 손에서 무기를 내려 놓았다" 사실 1914년 크리스마스의 평화는 하나의 따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스페인 내전과 남아프리카의 보어전쟁 중에도 같은 일이 일어 났으며, 미국의 남북전쟁, 크림전쟁 및 나폴레옹전쟁에서도 일어난 일이 다. 그러나 플랑드르의 크리스마스만큼 광범위하고 갑작스러운 곳은 없 었다.

- 우리가 스스로의 참호 속에 몸을 숨기면 현실을 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 는 증오를 유발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인류를 반영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거의 모든 악성 게시물을 익명으로 올리는 소수의 온라인 트롤처럼 말이다." 그리고 심지어 가장 신랄한 키보드워 리어들도 다른때에는 사려 깊은 친구나 애정 어린 간병인일 수 있다. 사람들이 원래 친절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것은 감상적이거나 지나치 게 순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화와 용서를 믿는 것은 용감하고 현실 적이다. 뮬런로웨의 호세 소콜로프는 콜롬비아 군대의 한 장교가 광고대 행사의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몇 달 뒤 그는 작전 중 사망했는데, 호세는 친구에게서 배운 내용을 여전 히 기억하며 감정적이 된다. 장교는 그에게 "나는 이 일을 하고 싶다. 관 대함이 나를 강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부하들도 스스로 더 강인하다고 느끼게 해준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세월만큼 오래된 진리이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과 마찬가지 로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신뢰와 우정에 관 한진실이자 평화의 진실이다.

- 한 남자가 여자를 납치해 그녀를 5년 동안 라디에이터에 묶어놓는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도 역사상 한 번쯤 일어났을 사건이다. 이것은 사회 에 대한 혹독하게 현실적인 분석이라고 일컬어진다. 만일 내가 사랑에 빠 지는 사람들을 다룬 <러브 액츄얼리> 같은 영화를 만들면 오늘날 영국에 서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약 100만 명 정도인데도 그것은 비현실적인 세계에 대한 감상적인 표현이라고 평가받는다. (리처드 커티스Richard Curtis(1956))

- 얼마전 리카르는 신경과 전문의인 타니아 싱어Tania Singer의 초청을 받아 뇌스캐너 안에서 아 침을 보내게 되었다" 싱어는 우리가 공감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고 싶어 했고, 무엇보다 공감에 대안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알고 싶어 했다. 싱어는 실험 준비를 위해 전날 저녁 리카르에게 루마니아 고아원의 외로운 고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게 했다. 다음 날 싱어는 리카 르의 머리를 스캐너에 밀어 넣으면서 그에게 고아들의 텅 빈 눈빛을 떠올 려달라고 요청했다. 가늘고 긴 팔다리도 떠올려보라. 리카르는 싱어가 요 청한 대로 루마니아 고아들이 어떻게 느꼈을지를 가능한 열심히 상상했 다. 1시간 뒤 그는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 이것이 공감이 우리에게 행하는 일이다. 공감은 우리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이후 실험에서 싱어는 지원자 그룹에게 눈을 감고 가능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라고 주문했다. 이 실험은 날마다 15분씩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그들은 한계에 부딪혔고, 주말이 되자 모든 참가자들이 더 비 관적으로 변했다. 나중에 한 여성이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기차에서 동료 승객들을 쳐다보았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고통뿐이었다 고 한다."
리카르와의 첫 번째 실험 이후싱어는 다른것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 시 한번 그녀는 스님에게 루마니아의 고아에 대해 생각해달라고 요청했 지만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상상하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그보다는 그가 여러 해 동안 완벽하게 수련해온 기술을 적용해 그들과 함께가아니라 그 들을위해 느끼기를 원했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대신 따뜻함과 배 려, 보살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집중했다. 그들의 고통을 개인적으 로 경험하는 대신 고통에서 벗어난 상태를 유지했다.
- 싱어는 그 차이를 모니터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리카르의 뇌에 서 완전히 다른 부분이 밝아진 것이다. 공감은 대부분 귀 바로 위의 앞뇌 섬엽을 활성화하지만, 이때 반짝인 것은 그의 선조체와 안와전두피질이 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리카르의 새로운 사고방식은 우 리가 연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과는 달리 연민은 우리의 에 너지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사실 그 후 리카르는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연민이 동시에 더 통제되고, 더 거리를 두고 있으며, 더 건설적이기 때문 이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고 행동 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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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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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중국

사회 2024. 5. 9. 07:41

- 하버드 대학교 사회학자 마티 화이트Marty White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30년간 심각하고 계속 악화하는 중국의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적 하위 계급 사이에서 원망이나 분노는 매우 적었다. 화이트의 연구는 경제 체제의 하부 층을 이루는 사람들이 불행하거나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현 상을 반복적으로 발견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금 그들의 상황이 10~20년 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낙관적이었 다. 가난한 이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 자신과 자녀들의 상황이 계속해서 더 나아질 거라 믿고 있다. 이 믿음이 평화와 안 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세금을 낼 인센티브가 되었다.
만약 중국이 경제적 위기에 처하거나 이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 몰린다면, 이 낙관주의와 사회적 신뢰는 갑작스럽게 종말을 맞이 할지도 모른다. 만약 많은 중국인이 더 나은 미래를 믿을 이유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원망이 치솟기 시작할 수도 있다.
- 일부 노동자들이 너무나 실망하고 불만에 차서 시스템 밖으로 완전히 밀려날 수도 있다는 점이 두렵다. 특히 경제위기가 대규모 로 심각하게 일어나면 새로 실업자가 된 이들이 불만을 품고 범죄 자가 되는 길을 택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중국에서 벌어진다는 것이 믿기 힘들겠지만, 젊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원 을 빼앗긴다면 아마도 시스템에 분노할 것이다. 삶이 점점 더 나 아질 거라는 꿈과 믿음이 흐려진다면, 이들 중 일부는 더욱 극단 적인 길을 택할지도 모른다. 침체에 빠진 다른 중진국들에서 벌어 진 사례를 보면 조직범죄의 급증이 이런 불만의 최종 출구가 된다 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지난 몇백 년간 세계 대부분 나라는 성장했다. 사실, 평균적으로 보드판 위에서 많은 상승이 있었다.
하지만 성장은 직선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같은 양을 투입한다고 같은 양의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경제학자 폴 콜리어 Paul Collier가 관찰한 것처럼, 발전은 '미끄럼틀과 사다리 Chutes and Ladders' 게임과 같다. 만약 한 나라가 다행히 '사다리'에 발을 디딘다면, 그 나라는 보드판의 더 앞쪽까지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다. 반대로 '미끄럼틀'에 발을 디딘다면, 게임에서 더 낮은 지점으로 급속히 내려가 다른 사람의 걸음을 뒤따르게 된다는 의 미다. 주사위를 굴려서 나오는 어떤 숫자는 놀랄 정도로 빨리 커 다란 보상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주사위(와 보드판 위)의 다른 숫자 들은 큰 도전 과제들로 가득하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은 보드판 위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다리 를 타고 있었다. 이것은 저임금 제조업에 특화된 국가에 보상을 주는 사다리였다. 하지만 올라간 임금이 다시 내려올 일은 없어 보이기에, 중국은 더 이상 그 사다리를 탈 수 없다. 대신, 주사위를 한 번 더 굴려 게임 보드판의 새로운 부분을 향해 요리조리 잘 지 나가야 한다.
문제는 중국의 급속한 성장이 중국을 게임의 가장 위험한 부분으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으려 할수록 중국은 가장 긴 미끄럼틀 중 하나의 끄트머리에 자꾸 위태롭게 서 게 되는 것이다.
이 미끄럼틀은 '중진국 함정'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여기는 너 무 위험해, 이 게임에서 중국이 도달한 위치까지 갔던 대부분의 나라가 그곳에서 희생되고 말았다. 중국이 특히 취약할 것이라고 우려할 만한 이유가 있다.
-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드게임에서 거의 가장 아래쪽 에 있는 가난한 국가로 출발했다. 그 구역에는 몇 개의 미끄럼틀 이 있었지만, 중국은 그것을 운 좋게 피해나갔다. 중국은 (르완다나 엘살바도르처럼) 폭력의 악순환에 갇히지도 않았고, (베네수엘라나 파푸 아뉴기니처럼) 희소한 천연자원을 둘러싼 엘리트들의 내분에 휘청 거리지도 않았다. 이는 빈곤한 국가의 발전을 막는 가장 일반적인 장애물이다.3
대신 중국은 빈곤한 시기에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장 주 요한 사다리를 생각해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부터 중국은 저임금 제조업의 사다리를 올라갔고, 1980년 1000달러 미만이던 1인당 국민소득을 2016년에는 1만5000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단시간에 엄청난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다른 여러 중진국도 이 사다리를 이용해 빈곤에서 탈출했다. 아일랜드, 터키, 태국을 예로 들 수 있다. 베트남, 방글라데시, 페루 같은 나라 도 비슷한 경제정책을 통해 성공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성장해 중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이 제 이전과 다른 성장 방법(사다리)과 침체되거나 하락하는 방법 (미 끄럼틀)이 있는 구역에 들어섰다. 안타깝게도, 보드판 위의 중진국 구간에는 곳곳에 미끄럼틀이 있고, 여기까지 다다랐던 많은 나라 가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고 미끄럼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곤 했다. 2004년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실린 기 사에서 정치학자 제프리 개릿Geoffrey Garret은 놀라운 분석을 내 놓았다. 그는 최근 경제발전 역사를 관찰한 결과, 부유한 나라들은 계속 잘 해나가고, 가난한 나라들은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데 반해, 세계적으로 소득이 중간쯤에 위치한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 보다 더 느리고 덜 성공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세계은행 소속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의 전체적인 모습을 드러 내 보여준 보고서를 발표해 세계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이 보 고서에 따르면, 1960년에 중진국이던 101개 국가 중 2008년까지 고소득 국가가 된 곳은 13개국밖에 없다. 나머지는 50년 동안 그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심지어 더 가난해진 국가도 있었다.

-지금 중국이 쌓아둔 인적 자본을 보면, 1980년대 한국이나 대만보다는 1980년대 멕시 코나 터키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 어떤 국가도 고등학교 취학률 50% 이하로는 고소득 국가에 도달하지 못했다. 현재 중국의 고등 학교 취학률 30%로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최근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 '중국이 현대적 경제발전의 신시대'에 들어섰다고 선언했다. 국가 연구기관, 중앙 정부 싱크탱크, 그리고 공식적으 로 승인받은 학술지들은 앞으로 '중진국 함정'이라는 용어를 쓰 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분명히, 중국 최고 지도자에 따르면 중 진국 함정은 더 이상 임박한 것이 아니다. 위협은 끝났고 더는 두 려울 것이 없다. '신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그저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였을 수도 있다.
 
-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의 공장주들은 대규모로 자동화를 진행 하기 시작했다. 기계화는 자동차 부품, 전자기기, 금속 제조 분야 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 다른 어떤 국가보 다 빠르게 로봇을 받아들이고 있다. 2016년, 중국은 공업용 로봇 의 세계 최대 고객이 되었는데, 전 세계 판매량의 30%를 차지했 다.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자동화와 로봇 공학의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가속화될 것이다. 사실 자 동화는 앞으로 몇십 년간, 지난 30~40년간 세계화가 미국에서 빼 앗아간 일자리보다 훨씬 많은 중국의 일자리를 없애버릴 가능성 이 높다. 중국 노동자들이 베트남인으로 대체되든 기계로 대체되든, 이 일자리가 더 이상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기념비적인 변화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중국 동료들이 나를 만나러 미국에 올 때마다, 나는 그들을 가장 가까운 월마트에 데려갔다. 그러고는 매장의 통로로 가서 그들에 게 아무 숫자나 고르라고 한 뒤 그 숫자만큼 발걸음을 옮기고, 또 다른 숫자를 고르라고 하여 그 번호의 진열대로 가서 함께 무작 위로 선정한 그 진열대 위 물건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확인했다. 그 시기 이 게임의 묘미는 바로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중국에서 만 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장난감 코너에 있든, 가전제품 코너에 있든, 의류 코너에 있든 모든 제품에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이 간단한 게임은 중국이 전 세계 제조업을 얼마나 완 전히 지배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상황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보려고 최근에 똑같이 해보았다. 가 장 가까운 월마트로 가서 아무 숫자나 골랐다. 맨 처음 내가 진열 대에서 꺼낸 티셔츠는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다 음 품목인 신발은 인도에서 만들어졌고, 진열대에서 꺼낸 장난감 은 중국에서 만들어졌지만, 그다음 통로에 있던 플라스틱 계산기 는 멕시코에서 제조되었다. 여전히 많은 물건이 중국에서 오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가 진열대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시장이 움직 이고 있는 것이다.

- 중국과 마찬가지로, 얼마 전까지 대만은 가난한 나라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대만은 엉망이었다. 중국처럼, 대 만의 급격한 성장은 저기술 제조업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와 1970년대부터 대만은 저임금 제조업의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 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세계를 지배하기 전에는 많은 상품이 '메이드 인 타이완'이었다. 그때는 대만의 (그리고 한국의 상품이 시 어스 백화점의 통로를 가득 채웠다. 1990년대 막 사업을 확장하 던 월마트를 중국산 제품으로 가득 채운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두어, 대만은 빠르게 중진국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대만에도 오늘날의 중국에 찾아온 그 전환점이 찾아왔다. 성장의 시간이 지난 뒤 1980년대에는 사실상 대만의 모 든 사람이 일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잉여 노동력이 거의 완전히 사용되었다. 1980년대 초반의 대만은 2010년의 중국과 같았다. 대만 제조업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이었다. 임금 상승은 곧 이윤에 영향을 주 었고, 장난감과 섬유, 간단한 전자기기처럼 저숙련 노동으로 만들 어지거나 조립되는 상품들을 제조하는 기업들은 임금이 낮은 나 라로 공장을 옮기는 것으로 대응했다.
1986년부터 1989년 사이 대만에서 약 30만 개의 제조업 일자 리가 사라졌다. 1990년부터 1998년 사이 8만 개의 대만 기업이 해외로 나갔는데, 그중 절반은 대만해협을 건너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 대륙의 노동자들은 대만 노동자들이 요구한 임금에 비해 훨 씬 적은 액수로도 일하려 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쉬운 선택이 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오늘날 대만에 가면 좋은 일 자리들로 이루어진 활기찬 경제, 높은 생활 수준과 안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은 잘 해낸 듯 보인다. 대만은 이 전환점에서 어 떤 식으로 길을 찾아냈는가?
임금 상승에 대응해 대만은 공급망을 향상시켰다. 대만 기업들 은 국제적 경쟁에서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으로 승부를 보기보다 상품의 품질, 발명품의 참신함, 브랜드의 명망으로 차별화하기 시작했다.
- 이렇게 몇십 년 만에 대만은 발전 경로의 세 가지 단계를 모두 뛰어넘었다. 인구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경제에서 시 작해, 1980년대까지는 중진국의 저숙련 제조업 사다리를 올라갔 고, 게임판 가장 윗부분의 고소득 부분까지 올라서는 데 성공했 다. 1990년대 후반에, 대만의 기적적인 전환은 마무리되었다. 오 늘날 대만은 세계 부국들과 견줄 만한 생활 수준과 강력한 제도, 완전히 현대화된 경제를 가지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대만은 과거 대만을 식민지배했던 일본보다도 부유하다. 여러 난관을 헤 치고, 대만은 미끄럼틀과 사다리 게임에서 승리했다.
거의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대만'을 '한국'으로 바꾸고 이야기 내용을 거의 바꾸지 않아도 틀리지 않다. 대만처 럼, 한국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시작해 30년 만에 1인 당 국민소득이 매우 높은 국가로 성장했다. 
- 아일랜드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아일랜드는 제2차 세계대 전 이후 비교적 가난한 농업 국가였다. 1950년대에는 10여 년간 불황을 겪었고, 확실히 가난한(혹은 중간소득 국가 가운데 하위) 국가 의 반열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마찬가지로 저임 금 제조업 사다리와 (아일랜드의 경우에는) 수출 지향 농업 덕분에 가 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는 섬유와 가공식품을 더 부 유한 국가들에 수출하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더욱 성장했다. 1973년 유럽연합 가입이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번영에 일조 한 것은 분명하지만, 아일랜드가 성장의 사다리를 오른 대부분은 스스로 해낸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아일랜드는 교과서 에 나오는 것처럼 저임금, 저숙련, 농업 기반 경제에서 유럽의 번 영하는 첨단기술 중심지로 전환했다. 이는 자유무역지대보다도 더 나아간 것이다. 2013년 <포브스>는 아일랜드를 유럽에서 사업 하기 가장 좋은 국가로 선정했다. 아일랜드는 UN의 인간개발지 수에서 최상위권인 8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 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이나 리히텐슈타인과 룩셈부르 크를 제외한 어떤 유럽 국가보다 훨씬 높다. 아일랜드 역시 미끄 럼틀과 사다리 게임의 믿기 힘든 승자 중 하나다. 

- 가난한 나라의 저임금 공장 노동자들과 건설 노동자들은 거의 매일 똑같은) 반복 작업을 하지만, 고소득 국가의 노동자들은 유연 하게 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고임금의 현대적이 고 숙련 기술에 기반한 경제는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노동자들이 '배우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업무가 변화한다. 노동 자들이 업무를 바꾼다. 그들은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기술적 변화가 일어나면, 직원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워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기대된다. 그들은 새롭게 출현하는 모든 일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커다란 차이다. 만약 휴대폰 조립 공장의 노동자가 업 무를 바꾼다면, 그 일을 몇 분 만에 배울 수 있고, 사흘 뒤면 최대 성과를 낼 수 있다. 현대적인 고임금 경제를 지탱하는 일자리에는 이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자란 내 아들을 예로 들어보겠다.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에는 판매업 같은 기본적인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이 일은 한번 배운 내용이 꾸준하게 통하는 고정된 일자리가 아니 었다. 5년 동안 아들은 일자리를 네 번 바꾸었다.
아들은 고급 헬스장에서 회원권을 파는 일을 했다가, 온라인 고객 관리 매니저가 되었다가, 스포츠 분야에서 일하다 다시 헬스 장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업무를 바꿀 때마다 유연성, 새로운 업 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 학습, 새로운 기술 습득, 새로운 상품에 대 한 완벽한 이해,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상호작용 등이 필 요했다. 그것을 해내기 위해 아들은 수학, 컴퓨터 기술, 비판적 사 고 기술, 창의성이 필요했다. 그것은 부유한 나라에서 일하는 노 동자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고, (적어도) 고등학교 교육을 받지 않 으면 해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한국, 대만, 아일랜드는 운이 좋았다. 그들은 미래를 잘 내다보 았다. 처음에 높은 수준의 교육을 요구하지 않는 일자리에서 일했 던 공장 노동자나 건설업 노동자, 광부로 일했던 모든 이가 이미 좋은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 더 자세히 말한다면, 중국과 마찬가지로 멕시코의 인적 자본은 심각하게 양극화되어 있었다. 멕시코에는 수준 높은 21세기 교육 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환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대부분 일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력 중 대다수는 중학교 수준 의 기술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멕시코 인 구의 교육 분배 수준은 두 극단으로 나뉘어 있다. 한 그룹은 평균 15년의 교육을 받고, 다른 그룹은8년 이하 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교육의 양극화는 노동의 양극화로 이어졌고, 이후 중국의 미래에 도사리고 있을 수도 있는 바로 그 위험한 경제적·사회적 영향을 촉발시켰다.
2000년대 초반 멕시코에서 공장을 철수시킨 투자자들은 임금 상승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멕시코 노동 력의 낮은 교육 수준 때문에 멕시코에 공장을 유지하면서 공장을 업그레이드시킬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평균적 인' 노동자들이 중학교 졸업자 정도 기술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 다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노동자들이 공급망 에서 상향 이동하거나 화이트칼라 일자리에서 일할 것으로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더 나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다른 많은 지역을 선택할 수 있는데, 왜 투자자들이 멕시코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는가?
공식 일자리에서 배제되자 많은 멕시코 사람이 비공식 분야에 의존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0년 넘게 멕시코의 비공식 분야는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멕시코에서 많은 공장이 대량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 비공식 분야 취업이 늘 어났고, 그 후 급증했다.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이 분야의 취업 률은 무려 115%나 증가했다. 오늘날에는 멕시코 인구의 절반이 비공식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가난한 지역은 더 심각하다. 멕시 코의 가장 가난한 주(치아파스)에서는 인구 중 80%가 비공식 분야 에서 일한다

- 언론인 하워드 프렌치Howard French는 최근 출판한 책에서 현재 중국 지도부 아래에서 경제적 곤경이 특히 심각한 정치적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오늘날 중국 공산당CCP이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개의 주요한 요소에 의 존해왔음을 보여준다. 바로 빠른 경제성장과 민족주의다. 민족주 의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고, 신중히 관리된 대중적 메시지 캠페인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만약 그 정통성의 기둥 중 하나인 지속적이고 빠른 경제성장이 돌이킬 수 없게 무너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프렌치는 중국공산당이 더 많은 애국주의 열정을 부추기는 것 말고는 정통 성을 강화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낄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중 국 경제가 실제로 하락하기 시작해 사람들이 분노하면, 중국공산 당은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장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공공연한 군사행동을 일으켜 위협으로 성공을 거둘 때가 왔다고 결심할 수 도 있다. 일본과의 전쟁 위험을 불사하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까? 일본이 아니라면 어디가 될까?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오 랫동안 끓고 있던 갈등들이 마침내 폭발해,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군사적 결과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단지 가능성으로만 존재하지만, 이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 요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이 책 전 체에서 나는 중국 미래의 많은 부분이 일반 노동자들의 기술과 능 력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노동자들이 더 높은 수준의 기술 력을 가져야만 미래 중국의 경제를 결정하는 종류의 일자리들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더 고도의 기술을 가진 노동력을 육성해야만 떠나버린 기업과 자동화된 공장들을 대신할 새로운 투자자들과 새로운 기 업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직업교육을 확대하기로 했는지 설명하기 위해 비슷한 주장을 펼쳤을 것이다. 그들은 중국의 발전 전망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노동의 기술력 수준이 향상되기를 희 망하고 있다.
-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 맥락에서 '기술'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기술이 중국 노동자들이 다가오는 전환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를 결정 짓는가?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에게는 두 가지 기술이 쓸모 있다. 첫 째, 순수하게 직업적이거나 전문적인 기술이다. 바로 특정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용접 기술,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의) 타이핑 기술, 혹은 자동차 수리 능력 등이다. 여기서 중요 한 것은 이 기술들은 특정 일자리에는 곧바로 적용되지만, 그 특 정한 일자리에만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보편적이거나 학문적인 기술이다. 이런 기술은 전통적인 중학교 혹은 인문계 고등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 여기에는 수학, 독해, 작문, 과학, 논리, 정 보기술, 그리고 세계 많은 곳에서) 영어 등이 포함된다. 이는 한 사 람에게 '어떻게 배우는지를 알려주는 기술이다. 이 기술들은 학 생들에게 다음 단계 학습을 위한 기초를 갖추게 해주고, 미래에 직업 관련 혹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능력 을 길러준다.
문제는 이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직업 고등학교 시스템은 직업 기술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다른 것은 거의 모두 배제 된다. 하지만 나는 중국의 모든 아이가 보편적 기술을 배우는 능 력에 중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믿는다.

- 이 공중 보건 위기의 규모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보인다. 문제는 이 보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 아니다. 오 히려 세 가지 모두 저렴하고 빠른 해결책이 있다.
빈혈은 대개 음식 섭취에서 철분이 모자랄 때 발생하기 때문 에 식습관을 바꾸거나 더 간단하고 저렴하게는 권장량의 철분을 함유한 종합 비타민제를 매일 섭취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효과적인 종합 비타민제는 아이 한 명당 하루에 10센트 정도면 구 입할 수 있다.
시력 문제에 대한 해법은 이미 언급했다. 90%의 시력 문제는 제대로 된 안경만 있으면 교정할 수 있다. 근시로 고생하는 학생 한 명당 30달러 정도 들기 때문에 이 해결책은 비용이 약간 더 들 지만, 평균적인 농촌 가정의 수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다. 사 실, 오늘날의 임금률(시간당 2~3달러)을 생각하면, 안경 하나 사려면 농촌 지역 가족의 2~3일 치 임금 정도 든다. 게다가 안경은 보통 2년이나 그 이상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연간 들어가는 돈은 그렇 게 많지 않다(매년 부모 중 한 명의 하루 임금이 든다). 결론적으로, 하루 당 비용은 빈혈 치료 비용보다 더 저렴하다. 13
장내 기생충을 위한 저렴하고 잘 만들어진 해결책도 있다. 좋 은 위생과 건강한 식습관은 아이들의 기생충 감염을 막아준다. 하지만 중국 농촌의 많은 지역처럼) 위생이 그렇게 좋지 못한 곳에서 는 1년에 두 번 구충제를 먹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약은 안전하며 (감염되었든 아니든 모든 아이가 먹어도 될 만큼 안전하다) 효과도 좋고(하루에서 이틀이면 기생충이 완전히 제거된다) 저렴하다. 기 생충 감염을 방지하는데 한아이당 1년에 2달러도 들지 않는다. 1년에 부모 중 한 명의 1시간 임금에 해당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진짜 어려운 문제는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런 것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존 재한다. 빈혈, 시력 문제, 기생충은 모두 맨눈으로 보면 알 수가 없 다. 빈혈은 그 영향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아 '감춰진 기아'로 알 려져 있다. 기생충 역시 질병의 증상이 뚜렷하지 않다.
- 수정부터 다섯 살까 지 우리의 뇌는 기본 구조를 만들고, 일생의 학습 및 사고 사회성 과 관련해 기초를 마련한다. 이 나이 때 뇌는 매초 1000개의 시냅 스를 만들어낸다. 일생 동안 우리가 생각하고, 배우고, 숫자 이해, 언 어 능력, 부호나 상징을 이해하는 능력을 포함하는) 인지 능력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적인 뇌 네트워크에 대해, 가장 중요한 뇌의 성 장은 세 살 이전에 일어난다. 이 정점을 지나면 기본 역량을 확보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 기술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에 이어 또 다른 하나가 만들어지는 식이라서, 초기에 부족한 게 하나 생기면 그것이 쌓여 평생에 걸쳐 문제를 남긴다?
이는 어린아이가 핵심적인 인지와 사회 능력을 키울 기회의 창 문이 유한하다는 뜻이다. 중국 농촌에서 진진과 다른 아이들처럼 인생 초기에 뒤처지면 (아주 높은 확률로) 평생에 걸쳐 더 적은 능력을 지닌 채 살아간다. 너무 오랫동안 중요한 자원이 없다면 기회의 창 문은 닫혀버리고, 남은 인생을 더 낮은 능력만 가진 채 살아가게 된 다.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말할 정도로 성장하기 전에, 더 낮은 IQ, 더 많은 행동 문제, 좋지 않은 학업 결과, 더 높은 범죄 행동 가능 성, 평생 더 낮은 수입 궤도로 진입하게 한다.
그러면 중국 농촌에서 살아가는 진진과 다른 아이들은 오늘날 얼마나 좋지 못한 상황에 있는가? 우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 국 농촌 아이 중 절반은 인지 테스트에서 낮은 결과를 기록해 (당 장 무언가 조치를 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IQ 90에 도달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 IQ가 90이나 그 이하를 기록한 아이는 평범한 인구 가운데 최하위 16%에 속하고 중국의 중학교 커리큘럼에서 가르치는 많은 기본 기술들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미국에서 IQ 90 이하 학생은 특별 교육반에 보낸다. 중국 전역에 진진과 같은 아이가 2000만~3000만 명 있고, 매년 500만에서 1000만 명 정도 태어나는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이 아이들은 이 범주에 머물 것이다.
- 아이에게 나타나는 심각한 차이는 아주 간단한 근 원에서 비롯된다. 바로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얼마나 말을 거느 냐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하는 연구자들은 인생의 첫 3년간 부 유한 집의 아이들은 가난한 집의 아이들보다 3000만 개의 단어를 더 듣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 살이 되었을 때 이 두 그룹의 단 어 사용 차이는 그들이 집에서 듣는 단어 빈도에 거의 직접적으로 비례했다. 게다가 이 초기의 차이점은 장기적 성과의 차이로 이어 졌고, 초기에 언어 능력이 지연되면 10년 후 더 낮은 인지 능력 점 수와 더 좋지 못한 학업 성적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육아법의 아 주 작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 중국의 조타수로서 마오쩌둥은 장기 집권기 동안 공산주의자 교육을 수학, 중국어, 영어보다 중시하고, 국가를 그의 문화대혁 명에 종속시켰다. 그것은 전 세계가 경험한 적 없는 대규모의 고 의적인 인적 자원 파괴였다. 마오쩌둥 사망 후 중국의 새로운 지 도자가 된 덩샤오핑은 유명한 개혁가였다. 그는 엘리트 교육 확대 를 포함해 경제를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중국은 경제 적 기적을 조율한 것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 나 (문자 해독과 산수 이상의) 대중 교육은 그의 거대 계획에 포함되지 않아, 중국이 꾸준히 더 높은 수준의 인적 자본을 축적했어야 하 는 수십 년이 낭비되었다.
현재 노동력의 낮은 교육 수준은 오래전에 사망한 이 두 지도 자의 책임이 크다. 실제로 현재 중국 노동력의 대부분(약 65%)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교육 체제 아래에서 성년이 되었다. 이 시 스템에서는 고등학교 교육과 현대적인, 선진국 경제에서 활약하 기 위해 필요한 일반적인 기술 교육을 중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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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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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여 년 전에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 Max Weber는 체제 정당성의 근거로 전통적 권위 traditional authority, 카리스마적 권위 charismatic authority, 합리적법적 권위 rational-legal authority를 들었다. 전통 을 근거로 한 체제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라는 이유로 군주 에게 복종한다. 베버는 절대 왕정 시대의 중국을 전통적 지배의 전 형적 사례로 들었다. 1911년에 발발한 신해혁명으로 2천 년 동안 유지된 절대 군주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공화 체제가 수립되면 서 전통에 근거한 체제의 정당성도 함께 붕괴했다. 카리스마를 바 탕으로 한 체제에서는 뛰어난 지도자에 대한 추종과 경외가 정권 의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학자들이 마오쩌둥 시 절의 중국을 이러한 카리스마적 통치의 전형적 사례로 든다.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국민 주권을 회복한 위대한 지도 자 마오쩌둥은 동시대 및 후배 정치인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도 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1976년 마오쩌둥의 사 망과 함께 그의 카리스마에 기대 체제의 정당성을 지키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근대 민주주의의 존립 근거이기도 한 합리적 - 법적 권 위에 기대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경우에는 특정 개인이 아니 라 법과 관료주의적 행정 절차가 시민 복종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전제 국가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중국의 역사 중 합리적법적 권위가 시민 복종의 근간을 이뤘던 적은 한 번도 없었 다고 봐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인치'가 '법' 를 압도하는 상황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 마오쩌둥 시대 이후, 당과 정부의 책임 영역을 명확히 밝히고, 중 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구성된 별도의 집단 지 도 체제를 확립하고, 당과 정부 관료에 대해 정년 및 임기 제한 규 정을 두는 등 다양한 제도 개혁을 통해 합리적법적 정당성 창출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 화 움직임이 최근 들어 역전되는 분위기다. 시진핑 체제하에서 모 든 권력이 최고 지도자에게 집중됐고, 공산당이 정부보다 상위에 있음을 재천명했으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정년과 임기 제한 규정도 만지작거렸다.
현재의 중국 체제를 보면 베버가 말한 체제 정당성의 세 가지 근 거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마오쩌둥 사망 이후 40여 년 동안, 그리고 동유럽의 공산 체제가 붕괴한 후 25년 동안 중국의 공산정권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이 모순 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강압'만으로는 중국 공산정권이 지금 껏 건재한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전의 일부 공산정권 과 비교하자면 중국은 공안기관이 그렇게 노골적이며 강압적으로 국민의 생활을 감시하고 간섭하지는 않는다(동독의 비밀경찰과 비교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기관에서 수행한 여론 조사 결과 중국 공산정권에 대한 시민의 지지가 여전한 것으로 나 타났다. 정치학자 웬팡 탕Wenfang Tang 은 저서 《대중영합적 권위주의 Populist Authoritarianism 》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핵심 정치 제도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신뢰, 국정 수행에 대한 만족도, 정치 체계 혹은 현 정치 지도자에 대한 지지 등을 포함해 다양한 기준으로 정권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를 측정해보면, 중국인은 다른 어떤 국가의 국민 보다 자국 정권에 대해 일관되게 높은 지지도를 보인다. 중국인의 자국 정치에 대한 지지도는 심지어 대다수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민보다도 높다.”
- 시진핑의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미래를 향해 '되돌아가는 것처 럼 보인다. 어떤 측면에서는 마오쩌둥주의의 제도와 가치가 복원되 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시진핑의 정치 철학은 마오쩌둥의 사상과 궤를 달리한다. 마오쩌둥은 중국의 젊은이를 혁명의 길로 이끌었으나, 지금 시진핑의 중국에서 마오쩌둥주의를 지지하는 이 념 자경단이 계속 용인되기는 힘들 것이다. 부패와의 전쟁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시진핑 정권에서 마오쩌둥은 마치 자철석 같은 존재다. 마오쩌둥은 시진핑의 정책을 그리고 시 진핑이라는 개인의 국가·사회적 역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주 는 궁극적인 도구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주시'라 불리 는, 중국공산당 역사상 유일무이한 종신 주석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여전히 톈안먼 광장에 걸려 있고, 중국인은 계속해서 마오쩌둥의 시신이 안치된 기념관을 찾을 것이다. 중국에게 그리고 중국인에게 마오쩌둥은 아직도 중요한 존재다.

- 소련 해체의 길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중국공산당
민족 갈등은 중국 근대사를 얼룩지게 하며 내내 정부를 괴롭힌 골 칫거리였다. 20세기 초, 국민당은 비한족 또한 '중국인'으로 인식하 고 이들이 한족의 규범에 동화돼 결국은 하나가 되리라 기대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롯된 온정주의적 태도는 안타깝게도 비한족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비한족의 불만에서 기회를 포착한 쪽은 공산 당이었다. 그래서 공산당은 비한족의 외면을 받는 '중국화' 정책을 버리고, 비한족 집단에게 더 큰 자치권을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게다가 분리 독립권마저 부여하겠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헌법 제정 이 이루어지기 훨씬 전에 이 단서 조항은 없어졌으나, 소수 인종의 종교 · 문화 · 언어를 보호한다는 조항은 포함됐다.
- 마오쩌둥은 국민당의 '한족 우월주의'가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공 개적으로 비난했고, 비한족 집단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문화대혁명기에는 소수 민족에 대한 관대한 태도를 잠시 접어두기도 했으나, 1980년대에 다시 부활하면서 그들에 대한 비 교적 진보적인 정책이 많이 시행됐다. 1990년대에는 소수 민족의 자치권 요구, 특히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티베트인의 요구가 거세 질 것을 우려한 당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진보적인 정책 대부분이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2000년대 초에는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 직이 국경을 초월해 등장하면서 신장 지구의 민족 갈등 문제가 더 욱 복잡해졌다.
중국은 오랜 왕조 통치 시대를 거쳐 21세기에 이른 지금까지 전제 국가의 탈을 벗는 과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족 문제에 관한 20세기 해법은 이제 내려놔야 한다. 중국 변방 지역에서 빈발하는 민족 갈등은 직접 당사자인 비한 뿐 아니라 현 중국의 지배 민족인 한족에게도 엄연한 현실이다. 양 쪽 모두 과거를 돌이켜볼 때 각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소 련의 해체 과정을 지켜본 중국공산당은 이와 유사한 일이 중국에 서 벌어지는 일만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막고 싶어 한다. 비 러시아 민족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준 것이 패착이고, 이 '잘못된' 정책이 소련 해체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분리주의를 지지하는 티베트인, 위구르인, 몽골인들 중에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캐 나다의 토착민들이 직면해야 했던 운명이 자신들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고유의 생활 방식은 없어졌고, 말살된 고유문화는 박제 신세가 돼 박물관에 보존된 채 관광객들의 눈요 깃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앞선 나라들의 예를 드러내놓고 언급하려 하지는 않는다('원주민은 중국에서 금기시하는 단어다). 그러나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는 쉽게 감지할 수 있다.
- 시진핑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이, 혹은 차선책으로 공 식적 최고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려 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2002년부터 2012년 까지 국가 주석을 지냈던 시진핑의 전임자 후진타오는 권좌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러나 시진핑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장쩌민은 개 혁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덩샤오핑과 함께 모든 공식 직 함을 내려놓고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막강한 권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실 2012년 시진핑이 국가 주석 자리 에 오른 것도 80대인 장쩌민의 영향력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이었 다. 즉, 권좌에서 내려온 후에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장쩌민의 막후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쩌민은 공직 에서 은퇴한 지 한참 됐고 공식적으로는 정치권에서 활동하지 않았음에도 2002년과 2012년에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구성할 때 자 신의 측근 인사를 상무위원으로 선출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 다. 장쩌민의 전임자 덩샤오핑은 이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력 을 행사했다. 1980년대 말에 정치권에서 공식 은퇴한 이후에도 덩 샤오핑의 정치적 영향력은 변함없이 작동했다. 덩샤오핑은 1987년 11월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제외하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 났다. 그러나 이로부터 2년 후인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가 발발 했을 때 인민해방군을 동원한 시위대 진압을 승인한 것은 덩샤오 핑이었다. 개혁 지향적 경제 의제를 재차 강조하며 경제 성장의 불 씨를 당겼던 것도 1992년의 남부 지역 순시 때였다. 공식 은퇴 이 후에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던 사람이 장쩌민이나 덩샤오핑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중국 정치권의 일반적 현상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고, 그 밖에도 공식 직위 없이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 100여 년 전에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 Max Weber는 체제 정당성의 근거로 전통적 권위 traditional authority, 카리스마적 권위 charismatic authority, 합리적법적 권위 rational-legal authority를 들었다. 전통 을 근거로 한 체제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관례라는 이유로 군주 에게 복종한다. 베버는 절대 왕정 시대의 중국을 전통적 지배의 전 형적 사례로 들었다. 1911년에 발발한 신해혁명으로 2천 년 동안 유지된 절대 군주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공화 체제가 수립되면 서 전통에 근거한 체제의 정당성도 함께 붕괴했다. 카리스마를 바 탕으로 한 체제에서는 뛰어난 지도자에 대한 추종과 경외가 정권 의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학자들이 마오쩌둥 시 절의 중국을 이러한 카리스마적 통치의 전형적 사례로 든다.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국민 주권을 회복한 위대한 지도 자 마오쩌둥은 동시대 및 후배 정치인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도 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1976년 마오쩌둥의 사 망과 함께 그의 카리스마에 기대 체제의 정당성을 지키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근대 민주주의의 존립 근거이기도 한 합리적 - 법적 권 위에 기대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경우에는 특정 개인이 아니 라 법과 관료주의적 행정 절차가 시민 복종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전제 국가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중국의 역사 중 합리적법적 권위가 시민 복종의 근간을 이뤘던 적은 한 번도 없었 다고 봐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인치'가 '법' 를 압도하는 상황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 마오쩌둥 시대 이후, 당과 정부의 책임 영역을 명확히 밝히고, 중 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구성된 별도의 집단 지 도 체제를 확립하고, 당과 정부 관료에 대해 정년 및 임기 제한 규 정을 두는 등 다양한 제도 개혁을 통해 합리적법적 정당성 창출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 화 움직임이 최근 들어 역전되는 분위기다. 시진핑 체제하에서 모 든 권력이 최고 지도자에게 집중됐고, 공산당이 정부보다 상위에 있음을 재천명했으며,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두고 정년과 임기 제한 규정도 만지작거렸다.
현재의 중국 체제를 보면 베버가 말한 체제 정당성의 세 가지 근 거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마오쩌둥 사망 이후 40여 년 동안, 그리고 동유럽의 공산 체제가 붕괴한 후 25년 동안 중국의 공산정권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이 모순 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강압'만으로는 중국 공산정권이 지금 껏 건재한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전의 일부 공산정권 과 비교하자면 중국은 공안기관이 그렇게 노골적이며 강압적으로 국민의 생활을 감시하고 간섭하지는 않는다(동독의 비밀경찰과 비교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기관에서 수행한 여론 조사 결과 중국 공산정권에 대한 시민의 지지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 다양한 역사서와 전기 자료를 바탕으로 역대 왕조 및 황제에 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중국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왕조는 없다. 49개 중국 왕조 가운데 5대 10국 시대의 후한後漢 (947~950)처럼 단명한 왕조부터 장장 289년 동안 중국을 통치한 당나라(618~907년)까지 왕조의 존 속 기간은 매우 다양하며, 이들의 평균 존속 기간은 70년이었다. 중 화인민공화국이 2019년까지 건재하다면 역대 왕조의 평균 존속 기 간인 70년에 얼추 도달할 것이다.
둘째, 왕조 몰락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정치 엘리트의 반란이다. 역대 왕조 대다수가 외적이나 민중의 반란이 아니라 구정 권 출신의 이른바 정치 엘리트 때문에 무너졌다. 예를 들어 한나라 를 세운 초대 황제 유방은 고향인 패현 (지금의 장쑤성 - 옮긴 이)의 시골 마을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로 일하다가 진나 라 타도 세력에 합류했다. 유방이 이끄는 군대가 다른 두 명의 농 민이 이끌었던 또 다른 반란군보다(진승과 오광이 이끈 농민 반란군을 말한다-옮긴이) 먼저 수도인 함양을 함락시켰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 가운데 하나인 당나라는 이전 왕조인 수나라 때의 지방관 이연이 세웠다. 수나라 말기에 수많은 농민 반란군이 봉기 했으나 대부분이 수나라 군대에 패퇴하거나 이연이 이끄는 군사에 진압됐다. 중국 왕정 시대의 막을 내리게 한 1911년의 신해혁명도 농민이 아니라 청나라의 지방군 수뇌부로 구성된 이른바 엘리트 집단이 주도한 일이었다. 한나라 말기의 장각, 명나라 말기의 이 자성청나라 말기의 홍수전 같은 농민 출신 반란군 장수 는 민중의 지지와 호응 속에 대단한 명성을 얻었음에도 권좌에 오 르는 데는 실패했다. 엘리트 집단은 반란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자 원과 지식을 더 많이 지니고 있으며, 정치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정부군의 요새, 무기고, 곡물 창고, 정부 문서, 지도, 기타 보물 등이 어디에 있는지도 다 알고 있다. 큰 도시를 가본 적이 없는 농민 반란군에게 황궁이 있는 수도首都는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황궁 안을 손바닥 보듯 잘 아는 정치 엘리트는 황제의 거처로 바로 쳐들어갈 수 있다. 패현의 주리(법률 담당 관리-옮긴이) 출신으로서 유방의 핵심 참모였던 소하는 유방군이 수도로 입성한 직후 진나라 황궁에 보관된 지도를 전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셋째, 자연스럽게 권좌에서 물러난 황제는 절반밖에 안 된다. <표 2>는 총 282명의 중국 황제가 어떻게 폐위됐는지를 보여준다. 전체 황제 가운데 절반은 자연사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나머지 절 반은 불상사(살해, 반정, 퇴위 강요, 자살 강요 등)를 통해 비정상적 으로 폐위됐다. 그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폐위 원인은 내란시에 사망하거나 독살당하는 것이다. 외란, 즉 외적의 침략 때문에 권좌에서 물러난 황제는 극소수(7명)다. 황제의 폐위 원인이나 왕 조의 몰락 원인은 서로 비슷하다.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사회 내부나 외적이 아니라 정권, 즉 조정朝廷 내부에 있었다.
넷째,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후계자를 미리 지정한 황제가 더 오 래 살았다. 황제 282명 가운데 130명(46%)이 자신의 뒤를 이을 황 태자를 정했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황제에 즉위하고 나서 5년 내에 후계자를 정해놓았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실 혼례와 관련해 종교적 차원의 제한이나 통제가 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을 많이 둘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아들 중에서 후계자를 선택할 수 있었고, 선택지가 다양한 까닭에 유능한 사람이 후계자로 채택될 가능성이 컸다. 통계적 분석 결과 후계자를 정해놓은 황제는 그렇 지 않은 경우보다 강제 폐위될 확률이 64%나 낮았다. 후계자를 지 정하지 않는 경우는 황제에게 아들이 없거나 다른 승계 방식을 채 택한 때였다. 예를 들어 원나라를 세운 몽골족 황제는 방계승 계(황족 중 연장자를 우선으로 함) 방식과 후보자 중 최적임자를 왕으 로 추대하는 방식을 혼합했다. 그 결과 몽골 황제 가운데 자신의 아 들이 후계자였던 경우는 33.33%에 불과했고, 황제의 평균 재임 기 간은 10.8년이었다. 다음 왕조 명나라를 세운 한족 황제의 평균 재 임 기간 17.8년보다 훨씬 짧았다.
후계자를 정해놓는 것은 왜 황제에게 도움이 되는가? 경제학자 고든 털럭 Gordon Tullock의 주장대로, 후계자를 정하면 정치 엘리트 집단이 현 황제가 아니라 후계자의 통치를 전제로 훗날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즉, 지금 황제보다 후계자 밑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을 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후계자를 정해놓는 것에도 위험은 존 재한다. 털럭이 지적한 바와 같이 황제가 후계 구도를 공식화하면 후계자는 황제를 암살하고 일찌감치 자기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 '황태자의 문제 crown prince problem 라고 하는데, 마오쩌둥은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르고 이 교훈을 되새 기게 됐다. 마오쩌둥이 지정한 후계자 린뱌오가 최고 지도자 자리 를 노리고 마오쩌둥이 탄 열차를 폭파하려 한 것이다. 털럭은 차라 리 권력을 세습하는 방식이, 황제가 재임하는 동안에도 그 이후에 도 정권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황태자 가 된 황제의 아들은 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 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중국 정부는 미국과 지역 우방국 그리고 안보 파트너의 군사적 취약점을 겨냥해 군대를 조직 · 육성하고 있다. 여기에는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중국의 영유권 분쟁에 섣불리 개입하는 것이 얼마 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린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미사일 기지 를 비롯한 지상기지를 기반으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 세력 의 개입을 차단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적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무력화시키는 전 략은 일반적 방어 전술보다 비용이 훨씬 덜 들고 작전을 구사하기 도 쉽다. 이는 '육지를 이용해 해상을 통제한다'는 인민해방군의 전 통적 전술 개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중국 정부의 목적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고 자국의 '핵심' 안보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는 것도 아마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중국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중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첫째, 자국의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치명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 것이 이 상적) 외국 군대의 개입을 아예 차단하는 방법이다. 미국과 그 우방 국에 중국의 군사력이 막강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이처럼 강한 군대를 상대하려면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는 점을 내비침으로써 분쟁에 개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두 번째는 다소 저급한 방식이다. 중국 해경과 민병대를 이용 해 전쟁과 평화의 중간 상태인 '회색 지대'에서의 대결을 조장함으 로써 전쟁의 문턱 바로 밑에서 야금야금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기도 한 시진핑은 중국 이 추구하는 목적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인민해방군이 현 대전 수행 능력을 갖추도록 야심 찬 개편을 실시했으며 나머지 두 주축군의 전력도 보강했다.

- 중국 최정예 군 조직인 인민해방군은 기술적인 요소와 관련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기술적 측면에서 군 전력의 첨단화가 이루어질수록 비용 부담이 점점 증가하게 되고, 이는 향후 더 발전 되는 상황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진보하기는커녕 외국군과의 경쟁 상황에서 현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최첨단 기술 혁신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므로 목표 달성 자체도 쉽지 않다. 이는 미국이 이미 겪었던 현실이기도 하다. 당연 한 말이겠지만 첨단 무기 체계 및 이와 관련된 인프라는 재래식 무 기를 포함한 이전의 단순한 체계보다 구축과 운용, 유지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군사 장비와 무기 체계가 노동 집약적 차원 에서 기술 집약적 차원으로 진화함에 따라 그동안 중국군이 누렸 던 비용우위 효과도 점점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인민해방군이 점점 정밀하고 기술 집약적인 체계로 나아갈수록 외국에서 도입한 기술 을 현지화하는 데서 비롯되는 상대적 이점이 줄어들고, 첨단 기술 및 체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부분에서의 비용우위도 점차 감소할 것이다. 게다가 최첨단 장비 및 무기를 운용하려면 정확한 상호 작용 시스템이 필요한데 중국은 이를 구축하는 데 따른 정밀 장비, 전자 장치, 기타 복잡한 기술 체계에서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 중국 이 국내 기술과 외국 기술을 단편적으로 혼합하는 방식을 선호하 는 것도 이러한 취약성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중국은 군사적으로 미국만큼 정교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근해에서의 팽창주의 야심을 달성하는 데는 충분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만큼의 첨단성과 정교성은 원거리 전투에서 필 수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지리적인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군사 안보 측면에서 중국의 발전은 원거리 교전에 수반되 는 여러 문제, 미국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 등 다양한 암초 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 호구제가 만들어낸 기형적 도시화
중국의 정치·경제 제도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이 바로 '호구제'라 는 가구 등록 제도다. 이는 도농 간 인구 이동 관리를 목적으로 한 다. 말이 이동 '관리'이지 실질적으로는 이동 제한'에 더 가깝다. 중 국공산당은 1950년대 초에 농촌 거주자의 도시 이주를 막기 위해 일종의 인구 관리 체계인 호구제를 시행했다. 1980년대에는 이 제도를 좀 완화해 농촌 노동력이 도시로 유입되는 것을 허용했다. 그 러나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농촌 호구를 지닌 도시 이주자는 여러 가지 차별 대우를 받아야 했다. 대다수 학자는 호구제가 '2등 시민' 을 양산하는 제도라는 데 동의하고 있으며, 나아가 흑인에게 신분 증명서 소지를 의무화한 인종차별적 제도와 흡사하다는 이들도 있 다. 호구제는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 불안이나 사회 갈등 등 도시화에 따른 각종 병리 현상을 막아내는 데 매우 효과적 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농촌 호구를 지닌) 도시 이주자의 사회·경제적 배제에 따른 인적 비용 발생은 물론이고, 부적절한 노 동력 배분, 비정상으로 높은 저축률, 도시 지역의 소비 둔화 등 다 양한 문제를 만들어냈다.
노동 시장과 시민 집단의 이중적 구조는 토지 관리 제도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중국의 토지 제도는 국유제와 집체體 소유 제로 이분화돼 있다. 도시 지역의 토지는 국유지로 돼 있는데, 농 촌 지역의 토지는 집체 소유지로서 공동 관리의 대상이다. 농촌 거 주자는 도시로 이주할 때 토지를 매각하거나 토지 소유권을 이전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도시 이주가 제한되는 한편 농촌에 는 소유권이 불분명한 미경작 토지와 빈집이 넘쳐난다. 집체 소유 토지를 건설용으로 써야 할 때는 국가만이 이를 국가 소유의 도시 지역 토지로 전환해 활용할 수 있다. 도시 지역에서는 지방 정부가 '국가'를 대표해 토지 소유자로서 임대료를 징수한다. 따라서 이 제 도는 지방 정부로 하여금 농민으로부터 낮은 가격으로 토지를 수용한 다음 높은 시장가로 임대해 수익을 올리는 일에 몰두하게 한 다. 이 때문에 토지의 도시화가 시민의 도시화보다 훨씬 빠르게 진 행되면서 토지 자원의 부적절한 배분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중국 국토자원부는 식량 생산을 위한 농지가 줄어들자 국가 식량 안보에 필요한 농지 한계선은 1억 2,000만 헥타르'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각 지방 정부가 농지 한계선을 유지함과 동시에 건설용 부지 할당량 확보를 위한 경쟁을 벌이면서 정부 기관 간에 갈등이 빚어졌다.

- 한 자녀 정책은 가혹하고 악명 높은 출산 정책이었다. 이는 인구통 계학적으로 불가피한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도 아닌, 한마디로 결함이 많은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중국공산당 정 부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해 두 자녀를 허용하는 예외 조항을 둔 채 한 자녀 정책을 강행했다. 그리고 이 정책은 중국과 중국인을 완 전히 바꿔놓았다.
일반적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물론 이 정책이 출 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중국 정부는 4억 명 정도의 출산 감소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나 최소 절반은 부풀려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럼 에도 시장의 힘과 사회적 변화의 물결과 더불어 양적·질적 향상을 도모한 인구 정책 덕분에 교육 수준이 높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 강하며, 다방면의 지식을 갖춘 새로운 '세대'가 탄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새롭게 등장한 '신중국인'은 중국을 국제 사회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게 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또 이 정책은 사회적·인 구통계학적으로 현대 국가에 걸맞은 시민을 만들어내면서 중국 사 회를 현대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내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 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이 가혹한 정책을 견뎌내 야 했던 농촌 여성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입은 피해는 수치화하기 어려울 정도다. 영아 살해를 통해 피폐해진 여성의 삶, 남아 선호에 따라 태중 여아의 낙태가 일상화된 부분은 또 어떠한가? 단 한 명 뿐인 아이를 잃었을 때 정상적인 가정을 만들고 싶었던 소박한 꿈 이 산산조각 나면서 부모가 겪었을 상실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는 수치화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손실이다.
- 한 자녀 정책이 출산 부문의 새롭고 현대적인 규범(자질이 우수 한 아이', '체계적으로 양육하는 부모' 등)에 걸맞은 '개인'을 만들어낸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규범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국가가 제 공하는 사회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탈자'도 양산했다. 이 정책 과 관련해 금지된 행위 가운데 하나는 두 번째 아이를 임신하는 일 이었다. 국가 시책을 어기고 둘째를 낳은 부모는 국가로부터 엄중 한 제재를 받는다. 그리고 국가가 허락하지 않은 아이, 이른바 '검 은 아이 (헤이하이즈)는 이보다 훨씬 큰 불이익을 받는다. 호구 에 오르지 못하는 이 아이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돼 국가 가 제공하는 사회복지 혜택에서 배제된다. 따라서 교육과 보건·의료 서비스는 물론이고 취업과 결혼 심지어 사망과 관련한 그 어떤 권리나 혜택도 받지 못한다. 또한 출산이나 성적 취향, 결혼 등에서 중국의 전통적 규범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또 다른 유형의 '비현대 인'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동성 부부, 미혼모, 무자녀 성인 등은 사 회적으로 배제된 채 살아가며 규범을 따르라는 사회적 압박을 견 뎌내야 한다.
한 자녀 정책은 전체 인구 구조도 뒤틀어놓았다. 노인 인구는 증 가하는 반면 생산 가능 인구는 줄어들면서 1억 5,000만 명을 약 간 웃도는 한 자녀 세대가 연로한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남아 선호 전통이 여전한 상황에서 한 자녀 정책은 가뜩이 나 불균형한 성비 격차를 더욱 넓혀놓았다. 여아 100명에 대해 남 아 119명으로, 세계에서 성비 불균형이 가장 심하다. 이 때문에 여 성은 상대를 골라가며 결혼을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정 도인데 반해 남성은 그렇지가 못하다. 하위 계층에 속한 남성 중 2,000만~4,000만 명은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한 채 이른바 노총각으 로 남아 있다. 이들은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상적 방법으로는 결혼을 할 수가 없다. 이에 따라 열매를 맺지 못하는 '빈 가지'로 불 리는 이들 노총각은 원치 않는 비정상인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 중국도 발전을 거듭하다보면 결국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궁극의 '법' 사회로 진입하게 되리 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순진하고 섣부른 생각은 잠시 접어 둘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2014년 10월, 중국공산당 18기 4중 전회(중앙위원회 4차 전체 회의)에서 법치에 관한 결정문을 통해 '법에 따른 국가 통치', 즉 '의 법치국依法治國'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중 국이 법체계를 정비하면서 법률 부문의 발전을 도모한 목적이 무 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 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 그리고 주요 연설에서 드러난 시진핑의 사상'을 계승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이 결정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당의 리더십이야말로 중국식 사회주의의 핵심이며 사회주의 법치 실현 을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당의 지도력이 법에 따른 통치 과정 의 모든 측면에 미치는 일에서 중국식 사회주의 법치 국가 건설의 초석 이 다져진다. 헌법에도 중국공산당의 주도적 지위와 역할이 명시돼 있 다. 당이 계속해서 사회주의 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 당과 국가 존립 의 명운이 여기에 달렸으며, 민족을 불문한 모든 국민의 이익과 행복 또 한 여기에 달렸다. 법에 따른 국가 통치의 기본 동력 또한 여기에서 나 온다. 당과 사회주의 법치는 같은 것이다. 사회주의 법치 실현에는 당의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컨대 법치는 당이 주도해야 하고, 당은 사회주의 법치에 의존해야 한다.
공산당은 이 결정문의 의미와 목적을 곡해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일이 없도록 당과 이념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다. 즉, 입법·행정·사법을 비롯한 국가 통치 개념과 운영 방식, 법 조계와 법조인 교육, 기타 법제도의 모든 측면에 하나의 조직체로 서당과당의 공식적 이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중국 학생은 다양한 이유로 미국을 택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역사적인 부분이다. 1949년 공산당이 정권을 잡기 전 유학길에 올 랐던 중국인 대부분이 미국으로 갔다. 19세기에 청나라가 최초로 해외 교육 사절단을 보냈던 곳도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였다. 1900년대 초에는 일본 유학이 많아졌고, 분야에 따라 독일이나 영 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래도 중국 학생이 가장 선호했던 곳은 미국이었다.
중국의 2대 명문 가운데 하나인 칭화대학도 처음에는 미국 유학 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시작했다. 말하자면 일 종의 미국 유학생 양성기관이었던 셈이다. 청나라 조정이 미국 유 학 준비생을 위한 예비 학교로서 유미학무처游美學務處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칭화대학의 시초였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일리노이대학 에드 먼드 제임스Edmund J. James 총장의 권유로 의화단 사건 때 받은 배상금 일부를 미국 유학생 양성 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개설 한 유미학무처가 1911년 칭화학당淸華學堂으로 발전한 것이다. 당시 제임스 총장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중국의 젊은 세대에게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면 후일 윤리 · 지성 ·상업적 차원에서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교육 사업이 시작되고 첫 10년 동안 일리노이대학 대강당을 본떠 만든 건물 등이 포함된 미국식 캠퍼스가 조성됐다. 나중에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게 될 학 생들이 현지 환경에 익숙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후 칭화 '학당' 은 '학교'로 개칭되면서 종합대학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미국과의 친밀한 관계는 계속 유지됐다.

- 마오쩌둥은 공자를 공산주의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자신의 꿈에 가장 적대적인 인물로 인식했다. 그런데 오늘날 중국 정권은 공자 를 서구 신자유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항마로 인식한다. 유교적 통 치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중국 정부의 행보와 함께 두드러지 고 있는 새로운 흐름도 있다. 한때 전통 문화라며 폄하했던 것들을 이제는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을 둔 국제 활동이 바로 그것이 다. 요컨대 중국 정부는 중국어와 중국 문화 전파를 위해 세계 곳곳 에 '공자학원學院이라는 일종의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있다. 한때 파괴의 대상이었던 전통이 이제는 또 다른 비전으로 간주되면 서 21세기 인류 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 는 것이다. 이전까지 공자는 인간 사회의 발전을 방해하는 전통적 세계관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일반적 차원에서는 서구 근대성의 그림자인 소외, 개인주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대 안으로, 좀 더 특수하게는 서구 통치 방식의 역기능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과거제의 기원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과 거제가 관료 등용의 주요 수단이 된 것은 10세기 말에 이르러서였 다. 처음에는 문장력을, 그다음에는 사서에 대한 해석 능력을 시험 하는 관문이었다. 따라서 과거제는 각 현에 공립 교육 기관 하나와 사립 학당 수백 개를 두는 교육 체계 정립으로 이어졌다. 13세기에 몽골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세운 원나라는 과거제의 역할을 엄격히 제한하면서도, 향교와 같은 공립 교육 기관과 서원 같은 사설 교육 기관을 많이 설립했다. 16세기 유럽인의 관점에서 과거제는 철학 자가 왕이 돼야 한다는 플라톤의 철인 정치 이론과 매우 닮아 보였 다. 어쨌거나 중국 같은 거대한 국가가 '교육'을 관직에 오르기 위 한 필수 관문이자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의 준비 과정으로 삼았다 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라운 일이다.
- 이러한 상황은 (중세 귀족의 몰락, 상업의 발달, 지역 사회 내 엘리트 지식인의 영향력 증대 등과 함께) 중국의 '거대함'과도 연관되어 있었 다. 예를 들어 과거 준비를 열심히 하고도, 또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직에 오르지 않은 사람이 많아지는 시기가 있었고 이들은 각 지 방의 지식인으로 남게 됐다. 따라서 전국 어느 지역에 가든 비슷한 수준의 지식과 능력, 가치관을 지닌 엘리트가 포진하게 됐다. 관료 가 되기 위한 준비라는 차원에서만 보면 과거 중심 교육은 일종의 직업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는 뛰어난 문장력, 과거 기록물에 대한 지식과 해석 능력 등을 요하는 과정이었다. 과거 공부는 공자와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가 주장하는 '자신을 위한 공부' 개념에 더 가까웠다. 추론, 비판적 사고, 다양한 관점, 역사적 깊이, 도덕적 선택 등 과거제에 기반을 둔 교육 체계는 사실 과학만 빠진 이상적 인문교양 교육과 다를 바가 없다. 현대 교육의 기본 목적에도 단순 히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기본적 가 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포함된다.
가치관 함양이라는 차원에서, 배우는 사람에게 어떤 가치관을 어떻게 심어줘야 하느냐는 늘 중요한 쟁점이다. 인의가 중요한 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가 중요한가? 사물을 탐 구하고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한가? 분명한 것은 이러한 부분에서 도 옛것을 되살리는 일과 새것을 창조하는 일, 국가를 위해 봉사하 는 것과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 등 상충하는 가치가 늘 존재했다는 점이다.

- 그런데 오늘날 중국에서 이 같은 쟁점이 또다시 부상했다. 처음 에는 시장 경제 체계에서의 자유가 곧 정치 부문에서의 자유로 이 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진영과, 세계화와 시장 경제에서 비롯된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사회주의 시대의 집산주의 정책으로의 회귀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신좌파 간의 갈등 으로 쟁점이 재점화됐다. 그러다가 '제3의 길'을 주장하는 사람들 이 나타났다. 말하자면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중국 고유의 '중도적 노선'에서 답을 찾자는 주장이었다. 사실 '중화'라는 기치 아래 위대한 국가를 운운하는 자긍심의 원천에는 한때 봉건적이라며 폄하했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위대함을 순전히 '힘'의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은 다른 국가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만이 강 대국의 지위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또 중국의 위대함은 공자의 가치를 토대로 융성했던 문명을 회복하는 데서 찾아야 한 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유학적 가치가 인본 주의적인지 전제주의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지만 말 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진영과 노선을 불문하고 지식 인들 모두가 과거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각기 중국의 미래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서기 위해 정부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는 점 이다.
- 현재 공산당 지도부는 유교 사상과 사회주의 사상 양쪽의 손을 모두 들어주고 있다. 시진핑은 베이징대학을 방문해 저명한 유교 사상가 고탕이지에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탕이지에는 중국 이라는 국가의 위대성을 회복하는 길은 유교 사상의 부활에 달렸 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가치의 기본 토대로서 《대학>을 가르치 기도 했다. 중국의 대학은 '국학교육 차원에서 정부로부터 많 은 지금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이는 다른 문명과 역사에 대한 이해 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국 정권을 비판하는 지식인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문학부 쪽 사람들에게는 기회였다. 진정한 중국의 가치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에 권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 은 물론이고 현 정권의 지지자이자 비판자의 역할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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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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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 사람들에게 주어진 전 지구적 이야기의 선택지는 세가 지였고, 1968년에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러다 1998년에는 한가 지 이야기만 득세하는 듯 보였다. 급기야 2018년 우리 앞에는 하나 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세계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충격과 혼미의 상태에 빠진 것도 당 연하다. 하나의 이야기만 존재한다는 것은 가장 마음이 놓이는 상 황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작스럽 게 아무런 이야기도 없어진 상태는 끔찍한 일이다. 아무런 의미도 파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흡사 1980년대 소련의 엘리트처럼 지금 자유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 역사가 예정된 경로에서 벗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을 해석할 대안적인 프리즘도 가진 게 없다. 방향감을 잃은 이들은 마치 역사가 자신들이 머릿속에 그린 해피 엔딩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마겟돈을 향해 돌진하는 일이라 도 되는 양 종말론적 사고에 빠져들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정신은 재앙적 시나리오에 집착하게 된다. 지독한 두통을 치명적인 뇌종양의 신호라고 상상하는 사람처럼,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브렉 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이 인류 문명의 종언을 예고한다고 우 려한다.

- 1938년 소련과 독일 혹은 미국에 살았던 보통 사 람은 삶의 조건이 암울했을 수는 있지만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 요한 존재이며 미래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물론 그가 유대인이거 나 흑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임을 전제로 했을 때 얘기다). 그는 선전 포스 터를 보았고 여기에는 보통 석탄 캐는 광부, 철강노동자, 영웅적 인 포즈를 취한 가정주부가 그려져 있었다-그 속에서 자신을 봤 다. "저 포스터 속에 있는 건 나야! 나는 미래의 주인공이야!"5
하지만 2018년의 보통 사람은 점점 자신이 사회와 무관하다고 느낀다. 수많은 신비한 단어들 - 세계화, 블록체인, 유전공학, 인공 지능,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이 테드 강연과 정부 싱크탱크, 하 이테크 콘퍼런스 같은 곳에서 신나게 오르내리지만, 보통 사람은 이 중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다고 의심할 법하다. 자 유주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보통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떻게 하면 사이보그와 알고리즘 네트워크의 세계에서도 그런 적실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20세기에 대중은 착취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고, 경제에서의 핵심적 역할을 정치권력으로 환산하려 했다. 이제 대중은 자신이 사회 와 무관해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남 은 정치권력을 사용하는 데 필사적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부 상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혁명과는 반대되는 궤도의 사례를 보여준 것일 수 있다. 러시아, 중국, 쿠바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은 경제에 서는 핵심적이었으나 정치권력은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반면, 2016년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지지한 것은 아직 정치권력은 누리고 있지만 자신의 경제 가치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많은 사람들이었 다. 아마도 21세기 포퓰리즘 반란은 사람들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 트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엘리트에 맞서 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지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착 취에 반대하는 것보다 사회와 무관해지는 것에 맞서 투쟁하기가 훨 씬 힘들기 때문이다.

- 하지만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이제 신임을 잃었다면 인류는 하나의 전 지구적 이야기라는 생각 자체를 포기해야 할까? 결국 이 모든 지구적 이야기들 - 심지어 공산주의까지 -도서방 제국주 의의 산물 아니었나? 왜 베트남 시골 사람들이 트리어 출신 독일인 (카를 마르크스-옮긴이)과 맨체스터 기업가(프리드리히 엥겔스-옮긴 이)의 머리에서 나온 사상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혹시 모든 나라는 저마다 오랜 전통에 따른 고유한 길을 택해야만 할까? 어쩌면 서방 사람들도 세계를 관리하려는 노력을 잠시 멈추고 기분 전환 삼아 자기 일에 집중해야 할까?
단언컨대, 그런 일이 지금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유주 의의 고장으로 공백이 생기자 잠정적이나마 각 국가의 지나간 황금 시절을 그리워하는 환상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는 미국의 고립주의에 대한 촉구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자'는 약속을 연결했다. 마치 1980년대나 1950년대의 미국이 21세기에도 미국인들이 어떻게든 되살려야 하는 완벽한 사회였다는 듯이 브렉시트 지지자들 역시 영국을 독립 강국으로 만드는 꿈을 꾼 다. 마치 아직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살고 있는 듯이, 그리고 지난 시절에나 통했던 '영광의 고립'이 인터넷과 지구온난화 시대에도 실행 가능한 정책이라는 것처럼. 중국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제국과 유교의 유산에 다시 눈을 뜨면서 그것을 서방에서 수입해 온 미심쩍은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의 보완재나 대용품으로까지 생 각한다. 러시아에서 푸틴이 공식적으로 제시하는 청사진도 부패한 과두제의 건설이 아니라 옛 차르 제국의 재건이다. 볼셰비키 혁명 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푸틴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정교회 의 신앙심에 힘입은 전제 정부를 통해 옛 제정 시대의 영광을 되찾 는 한편 발트해에서 캅카스까지 세력을 확장하겠다고 약속한다.

-이처럼 민족주의적 애착과 종교적 전통을 뒤섞은 향수 어린 꿈은 인도와 폴란드 외에도 수많은 체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환상의 힘이 중동만큼 극단적인 곳도 없다. 이곳 이슬람주의 자들은 1,400년 전 예언자 무함마드가 메디나 시에서 세운 체제를 그대로 모방하고 싶어 한다. 이스라엘의 근본주의 유대교도들은 한 술 더 뜬다. 2,500년 전 성경 시대로 돌아가려는 꿈을 꾼다는 점에 서 그들은 이슬람주의자들마저 능가한다. 이스라엘 집권 연립정부 의 각료들은 지금 이스라엘의 국경을 성경 속의 이스라엘에 좀 더 가깝게 확장하려는 희망을 공공연히 밝힌다.

- 예술에서 의료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전통적인 일자리 다수가 사라지면 새로운 인간 일자리 창출로 상쇄될 것이다. 알려진 질병을 진단하고 익숙한 치료를 관장하는 데 집중하는 일반 의사들은 AI 의사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획기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신약이나 수술 절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인간 의사와 연구소 조교에게 훨씬 더 많은 돈을 지급해 야 할 것이다."
AI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인간 일자리 창출을 도울 수 있다. 인 간은 AI와 경쟁하는 대신 AI를 정비하고 활용하는 데 집중할 수 있 을 것이다. 가령, 드론이 인간 비행사를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정비와 원격 조종, 데이터 분석,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는 새 로운 기회가 많이 생겨났다. 미군의 경우 무인기 프레데터나 리퍼 드론 한 대를 시리아 상공으로 날려보내는 데 30명이 필요한데, 그 렇게 수집해 온 정보를 분석하는 데는 최소 80명이 더 필요하다. 2015년 미 공군은 이 직무를 맡을 숙련자가 부족해, 무인 항공기 운용 인력 부족이라는 역설적인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2050년 고용시장은 인간-AI의 경쟁보다는 상호 협력 이 두드러진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부터 은행 업무에 이르 기까지 인간과 AI가 한 팀을 이루면서 인간과 컴퓨터 모두를 능가 할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IBM의 체스 프로그램인 딥 블루가 세 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후에도 인간이 체스를 그만두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AI 트레이너 덕분에 인간 체스 챔피 언은 실력이 유례없이 좋아졌고, 잠시나마 '켄타우로스'로 알려진 인간-AI 팀이 체스에서 인간과 컴퓨터 모두를 능가했다. 마찬가지 로 AI는 인간이 사상 최고의 형사, 은행원, 군인으로 단장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생겨난 새로운 일자리는 모두 고도의 전 문성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비숙련 노동자의 실직 문 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거라는 점이다. 그런 일자리를 실제로 메울 사람을 재교육하기보다 아예 새로운 인간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이 더 쉬운 일로 판명될 수 있다. 이전에 자동화 물결이 밀려들었을 때, 사람들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기계적인 직업을 또 다른 비 슷한 수준의 일로 바꿀 수 있었다. 1920년 농업이 기계화하면서 해 고된 농장의 일꾼은 트랙터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새 일을 찾을 수 있었다. 1980년 공장 노동자는 실직하더라도 슈퍼마켓의 현금출납 원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직업 변화가 가능했다. 농장 에서 공장으로, 다시 공장에서 슈퍼마켓으로 옮겨가는 데는 훈련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2050년에는 현금출납원이나 방직공장 노동자가 로봇에 게 일자리를 잃고 나서 암 연구원이나 드론 조종사, 혹은 은행의 인 간-AI 팀원으로 새 일을 시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 결과적으로, 인간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해도 새로운 '무용' 계급 의 부상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두 세계의 최악을 함께 겪을 수도 있다. 높은 실업률과 숙련 노동력의 부족이 동시에 닥치 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19세기의 마차 몰이꾼이 아닌 말의 운명을 맞을 수 있다. 마차 몰이꾼은 택시 기사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말은 점점 고용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해 결국에는 완전히 퇴출됐다. 5 더욱이 남은 인간 일자리도 결코 미래 자동화 위협으로부터 안전 할 수 없을 것이다. 기계 학습과 로봇은 계속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 다. 40세에 실직한 월마트 현금출납원이 초인적인 노력 끝에 간신 히 드론 조종사가 됐다 해도 10년 후에 그는 다시 자기 변신을 해 야만 할 수 있다. 그때쯤이면 드론을 날리는 일도 자동화됐을 수 있 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업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노조를 조직하거나 노동권을 확보하는 일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오늘날에도 선 진국에서 생겨나는 많은 신규 일자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이거나 자유계약직, 혹은 일회성 업무직이다." 버섯구름처럼 급속 하게 생겨났다가 10년도 안 돼 사라지는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노 조를 결성할까?

[- 앞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노동자들 을 재훈련할 수 있다 하더라도, 평균적인 인간이 그런 끝없는 격변 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의 근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 아해할 수도 있다. 변화는 늘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21세기 초 세 계는 미친 듯 바빠지면서 온 지구는 스트레스라는 유행병을 앓고 있다." 고용 시장과 개인 직업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람 들은 현실에 잘 대처해나갈 수 있을까? 아마도 사피엔스의 정신 이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가 큰 스트레스 경감 기술- 약물부터 뉴로피드백neuro-feedback (뇌파 측정을 통한 조절 훈 련- 옮긴이), 명상에 이르기까지 -이 필요할 것이다. 2050년 '무용' 계급이 출현하는 원인에는 일자리의 절대 부족이나 관련 교육의 결여뿐 아니라 정신 근력의 부족도 포함될 것이다.

-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두고 어떤 정의를 따르든, 일단 한 번 누 구에게나 그것을 무료로 제공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하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기본이 아닌 사치 - 호화 자율주행차량, 가상 현실 공원 접속 혹은 생명공학적으로 증강된 신체를 두고 치열 한 사회 경쟁과 정치적 투쟁이 집중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실업 대중이 그만한 경제 자산을 갖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그런 사치를 누리기를 희망할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그 결과, 부유 층(텐센트 매니저와 구글 주주)과 빈곤층(보편기본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 간의 격차는 점점 커질 뿐 아니라 사실상 메울 수 없게 될 것이다.

- 어떤 식으로든 보편 지원 구상 덕분에 2050년에는 빈곤 층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들은 전 지구에 불평등이 만연하고 사회적 이동성이 사라진 것 에 극도로 분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불리하 게 조작돼 있고, 정부는 초부유층에만 봉사하며, 미래는 자신과 자 녀들에게 더욱 나빠질 거라고 느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을 위해서만 설계되지는 않았다. 인간의 행 복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우리 자신의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기대는 조건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조건 도 포함된다. 상황이 좋아지면 기대도 높아지며, 그 결과 여건이 극 적으로 좋아진 후에도 이전처럼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보편 기본 지원이 2050년 평균인의 객관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 로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꽤 높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 에 대해 주관적으로 더 만족하는 것과 사회적 불만을 막는 것을 목 표로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아마존의 답이 늘 옳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데이터 부족, 프로그램 오류, 목표 설정 혼란, 삶의 근본적인 무질서 때문에 알고리즘은 반복해서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마존이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평균적으로 우리 인간보다 낫 기만 하면 된다. 그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 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 때가 많 다. 데이터 부족과 (유전적이고 문화적인) 프로그램 오류, 목표 설정 혼란과 인생의 무질서로 인한 고충도 인간이 알고리즘보다 훨씬 더 크게 겪는다.
당신은 알고리즘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을 열거하고 나서는, 그렇 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코 알고리즘을 신뢰하지 않을 거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모든 결점들을 나열한 후에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런 체제는 지지하려 들지 않을 거라고 결론짓는 것과 비슷하다.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정치 체제다, 다른 모든 체제를 제 외하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런 판단이 옳 든 그르든 똑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즉, 알고리즘은 장애도 많 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다
- 사람들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기계적인 직업을 또 다른 비 슷한 수준의 일로 바꿀 수 있었다. 1920년 농업이 기계화하면서 해 고된 농장의 일꾼은 트랙터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새 일을 찾을 수 있었다. 1980년 공장 노동자는 실직하더라도 슈퍼마켓의 현금출납 원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직업 변화가 가능했다. 농장 에서 공장으로, 다시 공장에서 슈퍼마켓으로 옮겨가는 데는 훈련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2050년에는 현금출납원이나 방직공장 노동자가 로봇에 게 일자리를 잃고 나서 암 연구원이나 드론 조종사, 혹은 은행의 인 간-AI 팀원으로 새 일을 시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 결과적으로, 인간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해도 새로운 '무용' 계급 의 부상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두 세계의 최악을 함께 겪을 수도 있다. 높은 실업률과 숙련 노동력의 부족이 동시에 닥치 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19세기의 마차 몰이꾼이 아닌 말의 운명을 맞을 수 있다. 마차 몰이꾼은 택시 기사로 전환할 수 있었지만, 말은 점점 고용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해 결국에는 완전히 퇴출됐다. 5 더욱이 남은 인간 일자리도 결코 미래 자동화 위협으로부터 안전 할 수 없을 것이다. 기계 학습과 로봇은 계속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 다. 40세에 실직한 월마트 현금출납원이 초인적인 노력 끝에 간신 히 드론 조종사가 됐다 해도 10년 후에 그는 다시 자기 변신을 해 야만 할 수 있다. 그때쯤이면 드론을 날리는 일도 자동화됐을 수 있 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업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노조를 조직하거나 노동권을 확보하는 일도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오늘날에도 선 진국에서 생겨나는 많은 신규 일자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이거나 자유계약직, 혹은 일회성 업무직이다." 버섯구름처럼 급속 하게 생겨났다가 10년도 안 돼 사라지는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노 조를 결성할까?
- 앞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노동자들 을 재훈련할 수 있다 하더라도, 평균적인 인간이 그런 끝없는 격변 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정의 근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 아해할 수도 있다. 변화는 늘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21세기 초 세 계는 미친 듯 바빠지면서 온 지구는 스트레스라는 유행병을 앓고 있다." 고용 시장과 개인 직업의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람 들은 현실에 잘 대처해나갈 수 있을까? 아마도 사피엔스의 정신 이 나가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가 큰 스트레스 경감 기술- 약물부터 뉴로피드백neuro-feedback (뇌파 측정을 통한 조절 훈 련- 옮긴이), 명상에 이르기까지 -이 필요할 것이다. 2050년 '무용' 계급이 출현하는 원인에는 일자리의 절대 부족이나 관련 교육의 결여뿐 아니라 정신 근력의 부족도 포함될 것이다.

-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두고 어떤 정의를 따르든, 일단 한 번 누 구에게나 그것을 무료로 제공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하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는 기본이 아닌 사치 - 호화 자율주행차량, 가상 현실 공원 접속 혹은 생명공학적으로 증강된 신체를 두고 치열 한 사회 경쟁과 정치적 투쟁이 집중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실업 대중이 그만한 경제 자산을 갖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그런 사치를 누리기를 희망할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그 결과, 부유 층(텐센트 매니저와 구글 주주)과 빈곤층(보편기본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 간의 격차는 점점 커질 뿐 아니라 사실상 메울 수 없게 될 것이다.
-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보편 지원 구상 덕분에 2050년에는 빈곤 층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들은 전 지구에 불평등이 만연하고 사회적 이동성이 사라진 것 에 극도로 분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불리하 게 조작돼 있고, 정부는 초부유층에만 봉사하며, 미래는 자신과 자 녀들에게 더욱 나빠질 거라고 느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을 위해서만 설계되지는 않았다. 인간의 행 복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우리 자신의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 하지만 기대는 조건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조건 도 포함된다. 상황이 좋아지면 기대도 높아지며, 그 결과 여건이 극 적으로 좋아진 후에도 이전처럼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보편 기본 지원이 2050년 평균인의 객관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 로 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꽤 높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 에 대해 주관적으로 더 만족하는 것과 사회적 불만을 막는 것을 목 표로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 물론 아마존의 답이 늘 옳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데이터 부족, 프로그램 오류, 목표 설정 혼란, 삶의 근본적인 무질서 때문에 알고리즘은 반복해서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마존이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평균적으로 우리 인간보다 낫 기만 하면 된다. 그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 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 때가 많 다. 데이터 부족과 (유전적이고 문화적인) 프로그램 오류, 목표 설정 혼란과 인생의 무질서로 인한 고충도 인간이 알고리즘보다 훨씬 더 크게 겪는다.
당신은 알고리즘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을 열거하고 나서는, 그렇 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코 알고리즘을 신뢰하지 않을 거라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의 모든 결점들을 나열한 후에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그런 체제는 지지하려 들지 않을 거라고 결론짓는 것과 비슷하다.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정치 체제다, 다른 모든 체제를 제 외하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런 판단이 옳 든 그르든 똑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즉, 알고리즘은 장애도 많 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다.

- 무수히 많은 다른 상황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철학적 이론을 이긴 다. 이 때문에 세계가 보아온 윤리와 철학의 역사는, 이상은 훌륭하 나 행동은 이상에 못 미치는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얼마나 많 은 기독교인이 실제로 상대를 관대히 용서하고, 얼마나 많은 불교 도가 이기적인 집착을 초월해서 행동하며,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일상에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가? 이는 자연선택이 호모 사 피엔스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호 모 사피엔스도 감정을 사용해 재빨리 생사의 결정을 내린다. 우리 는 분노와 두려움, 탐욕을 수백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는데, 이들 모두는 자연선택이라는 가장 엄격한 품질 관리 시험을 통과했다.
-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의 생존과 재생산에 유리했던 것이 반드시 21세기 고속도로 위의 책임 있는 행동에도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주의가 산만하거나 화가 났거나 불안에 쫓기는 인간 운전자가 일으키는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이 매년 100만 명이 넘는다. 우리는 이 운전자들에게 우리의 모든 철 학자와 예언가, 사제들을 보내 윤리를 설교할 수 있다. 하지만 도 로 위에서는 여전히 포유류의 감정과 사바나의 본능이 운전석을 차 지할 것이다. 그 결과, 서둘러 가는 신학생은 곤경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고, 위급 상황의 운전자는 무기력한 보행자를 치고 지나갈 것이다.

-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이 융합하는 시대에 민주주의는 현재 형태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민주 주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인 간은 '디지털 독재'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 시대로 회귀한다는 말은 아니다. 나치 독일이 '구체제' 프랑스와는 달랐듯이, 디지털 독재도 나치 독일과는 다를 것이다. 루이 14세는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였지만 근대 전체주의 국 가를 건설할 기술은 없었다. 그의 지배에 반대하는 세력은 없었지 만, 그에게는 라디오, 텔레비전, 기차도 없었기에 외딴 브르타뉴 시골 농민은커녕 심장부 파리 도회인의 일상조차 거의 통제하지 못했다. 그는 대중 정당이나 전국 단위의 청년 운동, 국민교육 체계를 수립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히틀러에게 그런 것들을 실행할 동기와 힘을 준 것이 20세기 신기술이었다. 우리는 2084년 디지털 독재의 동기와 힘이 무엇이 될지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히틀러와 스탈린을 모방하는 데만 머무를 리는 만무하다. 1930년 대의 전투를 다시 치를 준비만 하다가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날 아드는 공격에 허를 찔릴 수도 있다.

-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위험은 디지털 독재만이 아니다. 자유주의 질서는 자유와 더불어 평등의 가치도 중시해왔다. 자유주의는 늘 정치적 평등을 소중히 여겨왔을 뿐 아니라, 경제적 평등 또한 중요 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사회 안전망 없이 쥐꼬리만 한 경제적 평등만 가지고서는 자유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빅데이 터 알고리즘은 자유를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이 유례없는 최고의 불 평등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부와 권력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 에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정 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나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바로 사회와의 관련성을 잃는 것이다.

- 만약 모든 부와 권력이 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싶다면, 그 열쇠는 데이터 소유를 규제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토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정치는 땅을 지배하기 위한 투쟁이었는데, 너무나 많은 땅이 너무나 적은 수의 손에 집중되었고 사회는 귀족과 평민으로 갈라졌다. 근대에 와서는 기계와 공장이 토지보다 더 중요해졌고, 정치 투쟁도 이런 핵심적 인 생산 수단을 지배하는 데 집중됐다. 너무나 많은 기계가 너무나 적은 손에 집중되면서 사회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양 분됐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부상하
면서 토지와 기계는 밀려났다. 정치는 데이터 흐름을 지배하기 위 한 투쟁이 될 것이다. 앞으로 데이터가 너무나 적은 손에 집중되면 인류는 서로 다른 종으로 나뉠 것이다.

- 인간에게는 몸이 있다. 지난 세기 동안 기술은 우리를 우리 몸으 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우리는 우리가 냄새를 맡고 맛을 보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어왔다. 대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길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스위스에 사는 사촌과 이야기하기는 어느 때보다 쉬 워졌는데 아침 식사를 할 때 남편과 대화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눈 은 끊임없이 나 대신 스마트폰에 가 있다.'
과거에 인간은 그런 부주의를 누릴 형편도 못 됐다. 고대 수렵 . 채집인은 언제나 주의를 살피고 경계했다. 버섯을 찾아 숲속을 헤 맬 때는 땅 위로 조금이라도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있는지 예의 주시했다. 행여 뱀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 풀 속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귀를 세웠다. 먹을 수 있는 버섯을 찾았을 때도 독버섯과 분간하 기 위해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맛을 봤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사회 에 사는 사람은 그때만큼 예민한 경각심이 필요 없다. 우리는 슈퍼 마켓 복도 사이를 돌아다닐 때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수많은 음 식을 골라서 살 수 있다. 하나같이 보건 당국의 안전검사를 거친 것 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무슨 음식을 고르든 다음 수순은 똑같다. 화 면을 앞에 두고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서둘러 먹 을 뿐, 정작 실제 음식 맛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 원자폭탄은 너무나 명확하고 즉각적인 위협이어서 아무도 무시 할 수 없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상대적으로 불분명하고 오래 계속 된 위협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환경을 고려하다가도 단기적으로 고 통스러운 희생이 요구될 때마다 민족주의자들은 당장의 국가 이익 을 우선시하고 환경 문제는 나중에 걱정해도 된다거나 다른 누군가 에게 떠넘기는 쪽으로 행동하기 쉽다. 아니면 아예 문제 자체를 부 인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주의를 민족주의 우파가 옹 호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좌파 사회주의 자가 "기후변화는 중국의 농간"이라고 트윗을 날리는 경우는 드물 다. 지구온난화 문제에 민족주의식 해답이란 없다 보니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아예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어 한다. 

- 솔직히 말해 전통 종교가 그토록 많은 영역을 뺏긴 것은 애당초 농사나 의료에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제와 구루의 진짜 특 기는 비가 오게 하거나, 병을 치료하거나, 예언하거나 마술을 부리 는 것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의 특기는 언제나 해석이었 다. 사제는 기우제 춤을 추거나 가뭄을 끝내는 법을 아는 사람이 아 니었다. 오히려 기우제 춤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나, 신이 우리의 기 도를 못 알아듣는 것처럼 보일 때도 왜 신을 믿어야 하는지 정당화 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가 과학자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 게 된 것도 바로 그 해석의 천재성 때문이다. 과학자도 지름길을 찾 아내고 증거를 비트는 법을 안다. 하지만 궁극에 가서 과학이 보여주는 특징은, 언제든지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 이다. 그래서 과학자는 점점 더 농작물을 잘 키우고 더 나은 의약품 을 개발하는 법을 알게 되는 데 반해, 사제와 구루는 더 나은 변명 거리를 내놓는 법만 익히게 된다. 수 세기에 걸쳐 참된 신앙인들조 차 그런 차이에 주목해왔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종교는 기술적인 영역에서 갈수록 권위를 잃어왔다. 전 세계가 점점 단일 문명이 되 어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무엇이든 실제로 효과가 있으면 누 구나 그것을 받아들인다.
- 전통 종교는 인류가 당면한 문제의 치유책이 아니라 일부이다. 종교는 여전히 민족의 정체성을 다지고 제 3차 세계대전을 촉발할 수 있을 만큼의 정치적 힘을 갖고 있다. 하 지만 21세기 지구촌이 직면한 문제를 추가하기보다 해결하는 데 이 르면 종교가 제공할 것은 많지 않다. 많은 전통적 종교들이 보편 가 치를 옹호하고 우주적 타당성을 주장해도, 지금은 근대 민족주의의 시녀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이나 러시아나 이란이나 이스라엘 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민족적 차이를 넘어 핵전쟁과 생태 붕 괴와 기술적 파괴 위협에 대한 지구적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
- 지구온난화나 핵확산을 다룰 때 시아파 성직자는 이란 국민에게 이 문제를 이란의 관점에서 보게 한다. 마찬가지로 유대인 랍비는 이스라엘인에게 무엇이 이스라엘에 좋은지에 대해 주로 관심을 갖 도록 부추기고, 동방정교회 사제는 러시아인에게 러시아인을 먼저 생각하고 러시아의 이익을 우선 생각하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신 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니 우리 민족에게 좋은 것이 신도 기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민족주의의 과열을 배격하고 보편적인 전망 을 앞세우는 종교계 현자들도 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그런 현자 들이 행사하는 정치적 영향력은 열세에 있다.
우리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인류는 지금 단일 문명을 이뤄 살고 있으며, 핵전쟁과 생태 붕괴, 기술적 파괴의 문제는 지구촌 차원 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와 종교는 여전히 우리 인류의 문명을 다양한 진영들로 사분오열시키고 있다. 상호 적대감을 조장할 때도 많다. 이런 지구 차원의 문제와 지역 정체성 의 충돌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현재 위기에 처한 세계 최대 다 문화 실험의 장, 유럽연합이다. 유럽연합은 보편 자유주의 가치의 약속 위에 건설되었지만, 지금은 통합과 이민 문제의 어려움 때문 에 와해될 지경에 이르렀다.

- 지난 수십 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농업 사회 초기에는 인간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 사망률의 15퍼센트까 지 올라갔지만, 20세기에는 5퍼센트로 낮아졌고 지금은 1퍼센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국제 상황은 급속 히 나빠지고 있다. 전쟁 도발이 다시 유행인 데다 군비 지출 규모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 1914년에 일어난 오스트리아 대공의 피살이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했던 것 처럼, 2018년 시리아 사막에서의 어떤 사고나 한반도에서의 현명 하지 못한 움직임이 글로벌 분쟁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한다. 세계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상황에서 워싱턴과 평양, 또 다 른 몇몇 나라 지도자들의 인성까지 감안하면 분명히 우려할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1914년과 2018년 사이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특히 1914년에는 전쟁이 세계 전역 엘리트들의 구미 를 당겼다. 전쟁을 잘만 치르면 자국의 경제 번영과 정치권력에 도 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2018년의 상황에서 전쟁은 이겨봐야 수많은 종이 사라질 위 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시리아와 진나라 때부터 대제국들은 대개 폭력적인 정복을 통해 건설됐다. 1914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모든 강대국들은 전 쟁에서 승리한 덕분에 그만한 지위를 누렸다. 예를 들어, 일본 제국 은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덕분에 지역 강국으로 부상했고, 독일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과 프랑스를 각각 전쟁에서 이기고 유럽의 맹주가 되었다. 영국 역시 지구 곳곳에서 잇따라 벌 인 화려한 소小전쟁들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영화로운 제국을 건설했다. 1882년 영국이 이집트를 쳐들어가 점령했을 때도, 승부 처가 된 텔엘케비르 전투에서 숨진 영국군 병사는 57명에 불과했 다. 오늘날 서방 국가에 무슬림 국가 점령이란 악몽의 불쏘시개이 지만, 당시 영국은 텔엘케비르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는 무장 저항 에 거의 시달리지 않았다. 그 뒤로 영국은 나일 계곡과 요충지인 수 에즈 운하를 60년 이상 지배했다. 다른 유럽 강국들도 영국을 따라 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벨기에가 각각 베트남과 리비아, 콩고의 군사 점령을 꾀했을 때 유일한 걱정거리는 다른 나라가 선수를 치는 것이었다.
미국이 강대국 지위에 오르는 데는 경제 사업뿐 아니라 군사 행동 덕도 톡톡히 봤다. 1846년에는 멕시코를 침공했고, 캘리포니아 와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 캔자스 일부, 와이 오밍, 오클라호마를 차례로 정복했다. 평화협정으로 미국의 이전 텍사스 병합까지 확정했다. 약 1만 3,000명의 미군 병사들이 전쟁 터에서 사망한 끝에 미국의 영토는 230만 제곱킬로미터 더 늘어났 다(프랑스와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를 합친 것보다 넓은 규모다. 그것 은 새천년의 거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1914년 미국과 영국, 독일의 엘리트들은 전쟁에 서 이기면 어떻게 되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반면 2018년 글로벌 엘리트들로서는 이런 유형의 전쟁이 더 이상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 모스크바는 호기로운 말을 쏟아내지만 러시아 엘리트 자신이 십 중팔구 군사적 모험의 실제 비용과 이득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상황을 더 이상 키우지 않으려고 대단히 조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까 러시아는 '제일 약한 아이를 골라서 때리되 선생님이 개 입할 정도로 너무 많이 때리지는 말라'는 학교 내 '왕따' 원칙을 따 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푸틴이 스탈린이나 표트르 대제, 칭기즈칸 의 정신으로 전쟁을 수행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러시아 탱크는 바 르샤바와 베를린은 아니라도 트빌리시와 키예프까지 진격했을 것 이다. 하지만 푸틴은 칭기즈칸도 스탈린도 아니다. 그는 21세기에 와서 군사력만으로는 멀리 갈 수 없으며, 성공적인 전쟁이란 제한 적인 전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시리아 에서도 러시아는 공중 폭격은 인정사정없이 퍼부었지만 보병 투입 은 최소화했고, 다른 당사자들이 심각한 전투를 벌이도록 하되 전 쟁이 인접국들로 번지는 것은 막았다.
실제로 러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최근 몇 년 사이에 취한 이른바 공격적인 행보는 새로운 글로벌 전쟁으로 가기 위한 포석이라기보 다 노출된 방어벽을 보강하려는 시도였다. 

- 지금처럼 무력 위협과 흉흉한 기운이 가득한 세계에서 그나마 우 리가 평화를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주요 강대국들이 최근의 성공 적인 전쟁 사례는 별로 접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 칭기즈 칸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외국을 침공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지만 오늘날 에르도안이나 모디, 네타냐후 같은 민족주의 지도 자들은 목소리만 클 뿐 실제 개전에 관해서는 대단히 조심스러워한 다. 물론 누군가 21세기의 조건하에서도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묘수를 찾아낸다면 일거에 지옥의 문들이 열릴 수 있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 침공에 성공한 일이 특별히 무서운 징조로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부디 그것은 두고두고 예외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 이 문제에 대해서도 옥신각신할지 모른다. 유일신의 첫 번째 분명한 증거는 기원전 1350년경 파라오 아케나톤의 종교혁명에서 나왔 으며, 메사 석비(기원전 9세기경 모아브 왕국의 메사 왕이 이스라엘에 승리 하고 세운 기념비-옮긴이) 같은 기록은 성경 시대 이스라엘의 종교 가 당시 모아브 같은 이웃 왕국들의 종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메사 왕이 자신들의 위대한 신 그모스를 묘사한 방식을 보면 구약 성경에서 야훼를 묘사한 것과 거의 같다. 하지만 유대교 가 유일신 사상에 공헌했다는 생각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좀처럼 자랑스러워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윤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유일신 사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사상 중 하나였다는 주 장도 있다.
- 유일신교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개선하는 데 별로 기여한 게 없다. 단지 힌두교도는 여러 신을 믿는 반면 무슬림은 유일신을 믿 기 때문에 무슬림이 힌두교도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 람은 없을 것이다. 기독교도 정복자들이 이교도인 아메리카 원주 민 부족들보다 더 윤리적이었던가? 유일신교가 한 가지 확실하게 했던 일은, 사람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편협하게 만들어 종교적 처 형과 성전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이다. 다신교를 믿는 사람들 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신을 섬기고 다양한 의식과 의례를 수행하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반 면 일신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이야말로 유일한 신이며 이 신은 보편적인 복종을 요구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세계로 확산될 때마다 십자군과 지하드, 종교재판과 종교적 차별도 함께 늘어났다."

- 1800년대 이전까지 유대인이 과학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당연히 유대인은 중국이나 인도, 마야 문명에서 진행된 과학의 진 보에 아무런 중요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 유럽과 중동에서 마이모 니데스 같은 일부 유대인 사상가들이 비유대인 동료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유대인이 미친 영향은 대체로 인구 비중에 비례했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일어난 과 학혁명에도 유대교가 기여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스피노자(그 도 유대 공동체의 눈 밖에 나 파문당했다)를 제외하면, 유대인으로서 근 대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과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 물은 단 한 명도 찾기 어렵다. 아인슈타인의 조상들이 갈릴레이와 뉴턴 시절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십중팔구 는 빛을 연구하기보다 탈무드를 공부하는 데 훨씬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 거대한 변화는 19세기와 20세기에 와서야 일어났다. 세속화와 유대인의 계몽주의가 진행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비유대교도의 세계관과 생활방식을 채택했다. 그런 다음 유대인들은 독일과 프랑 스, 미국 같은 나라의 대학교와 연구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유대 인 학자들은 게토와 슈테틀(과거 동유럽에 있던 소규모 유대인 마을 - 옮 긴이)에서 자신들이 누렸던 중요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갔다. 교육을 중심 가치로 여기는 유대 문화는 유대인 과학자들이 학계에서 비범 한 성공을 거두는 데 밑거름이 됐다. 여기에는 다른 요인들도 작용했다. 박해받는 소수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보이려는 욕망도 있었고, 군이나 행정기관 같은 반유대 성향이 더 강한 제도권에서 는 재능 있는 유대인의 승진이 막힌 탓도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 과학자들이 예시바에서 체득한 강한 기율과 지식 의 가치에 대한 깊은 믿음은 외부로 가져가긴 했어도,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아이디어와 통찰의 묶음을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아인 슈타인은 유대인이었지만 그가 창안한 상대성 이론은 '유대 물리 학'이 아니었다. 토라의 신성함을 믿는 것과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빛의 속도 제곱'이라는 과학적 통찰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묻는 질문을 받으 면, 먼저 우주의 불가해한 신비와 인간 이해력의 한계에 관한 이야 기부터 한다. 이들은 “과학은 빅뱅을 설명할 수 없다"라고 운을 뗀 뒤 “그래서 신이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마치 마술사가 카드 한 장을 다른 카드와 감쪽같이 바꿔치 기해 관객을 속이는 것처럼, 우주의 신비를 재빨리 세상의 입법자 로 대체한다. 알 수 없는 우주의 비밀에 '신'의 이름을 갖다 붙이고 서 그다음에는 그것을 어떻게든 비키니와 이혼을 비난하는 데 활용 한다. "우리는 빅뱅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공장소 에서는 두발을 가려야 하고 동성애 결혼 합법화에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 이 두 명제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을뿐더러 사실은 상충 된다. 우주의 신비가 깊을수록, 그것에 책임이 있는 것은 무엇이 됐 건 여성의 복장이나 인간의 성적 행동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희 박하다.
- 우주의 신비와 세상의 입법자 간의 빠진 연결고리는 흔히 어떤 신성한 책이 제공한다. 이 책은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규제들로 가 득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우주의 신비 탓으로 돌린다. 신도들의 설명대로라면 그 책도 시간과 공간을 창조한 신이 지었다. 그 신은 어리석은 우리 인간을 깨우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내 용은 주로 어떤 불가사의한 신전의 의식과 음식 터부에 관한 것들 이다. 사실은 성경이 됐건, 쿠란이 됐건, 모르몬 경전이 됐건, 베다 가 됐건, 다른 어떤 신성한 책이 됐건, 그 책이 에너지는 질량 곱하 기 빛의 속도의 제곱이며 양성자의 질량은 전자의 1,837 배라는 법 칙을 결정한 것과 같은 힘에 의해 씌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아는 최선의 과학 지식에 따르면, 이 모든 성스러운 텍스트들은 상상력이 뛰어난 호모 사피엔스가 쓴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선조가 사회 규범과 정치 구조를 정당화하려고 발명 한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존재의 신비에 관해 늘 궁금해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유대교와 기독교, 힌두교의 성가신 법률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법률들은 수천 년 동안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확실히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이 법률들도 세속 국가와 제도의 법률과 근본적으 로 다르지 않다.
-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 신조에는 그늘이 있다. 어떤 신조를 따 르든지 불가피한 그늘을 인정하고, "우리에게는 일어날 리 없다”라 는 안일한 확신을 피해야 한다. 세속주의 과학은 전통 종교 대다수 와 비교하면 한 가지 큰 이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그늘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은 원리상 기꺼이 자신의 실수와 맹점 을 인정한다. 그것이 아니라 어떤 초월적인 힘이 계시한 절대 진리 를 믿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실수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경 우 자신이 믿는 이야기 전체를 무효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 만 오류를 범하기 마련인 인간의 진리 추구를 믿는다면, 실수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게임의 일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독단적이지 않은 세속주의 운동은 상대적으로 겸 손한 약속들을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기 때문에 작고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키길 희망한다. 최저임금을 몇 달러라도 올리고 아동 사망률을 몇 퍼센트라도 낮추려는 식이다. 반면, 독단 적인 이데올로기는 자기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습관적으로 불가능 한 것을 이루겠다고 서약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지도자는 너 무나 거침없이 '영원'과 '순수', '구원'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치 어 떤 법률을 시행하거나, 어떤 사원을 짓거나, 어떤 영토를 정복하면 일거에 전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지금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이런 때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무오류성을 주 장하는 사람보다 무지를 인정하는 사람을 더 신뢰할 것이다. 만약 자신의 종교나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이 세계를 이끌기를 바란다면, 내가 던지고 싶은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종교, 이데올 로기, 세계관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나요? 무엇을 잘못 했지요?" 아무런 심각한 잘못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나는 당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 호모 사피엔스 종으로서 인간은 진실보다는 힘을 선호한다. 세계 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통제하려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도, 그러면 통제하기가 쉬 워질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따라서 진실이 지배하고 신화는 무시 되는 사회를 꿈꾼다면 '호모 사피엔스'에게서 기대할 것은 거의 없 다. 차라리 침팬지에게 운을 시험해보는 게 낫다.

- 우리는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많은 교육 전문 가들은 학교의 교육 내용을 'C', 즉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의사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보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학교는 기술적 기량의 교육 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 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일 것이다. 2050년의 세계에 발맞춰 살아가려면 새로운 생각과 상품을 발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경제뿐 아니라 '인간이 라는 것'의 의미 자체가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1848년 에 《공산당 선언>은 “모든 단단한 것들은 공중으로 분해된다"고 선 포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로 염두에 둔 것은 사회적, 경제적 구조였다. 2048년이면 물리적, 인지적 구조 또한 공중이나 클라우드 속 데이터 비트로 분해될 것이다.
1848년에는 수백만 명이 시골 농장에서 일자리를 잃고서 대도시 로 이주한 후 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대도시에 이르렀다고 그들의 젠더가 바뀌어 있거나 여섯 번째 감각이 더해져 있을 가능성은 없 었다. 만일 도시의 어떤 방직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면, 노동자로서 남은 인생을 그 일을 하며 보내리라 기대할 수 있었다.
반면, 2048년이 되면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으로의 이민이라든가 유동적인 젠더 정체성, 컴퓨터 체내이식을 통한 새로운 감각 체험 등에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다. 설령 자신이 3D 가상현실 게임에 쓸 최신 유행 패션을 디자인하는 데서 일과 의미를 찾았다 해도, 10년안에 이런 특정 직업뿐 아니라 이 정도 수준의 예술적 창의력을 요 구하는 모든 직업이 AI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다. 25세 때는 데이 트 사이트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런던에 살며 패션숍에서 일하는 25세 이성애자 여성'이라 하고, 35세가 되어서는 '젠더 불특정 인 간으로, 나이 조정 시술을 거쳤으며, 신피질 활동은 주로 뉴코스모 스 가상세계에서 이뤄지고 있고, 평생의 목표는 어떤 패션디자이너 도 가본 적 없는 곳에 가는 것"이라고 소개할지도 모른다. 45세 때 는 데이트며 자기소개 따위는 다 한물간 것이 된다. 그냥 알고리즘 이 내게 꼭 맞는 짝을 찾아주기만(혹은 만들어주기만 기다리면 된다. 패션디자인이라는 예술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만 하더라도, 이때가 되면 알고리즘에 의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추월당해 10년 전 자신의 최고 성과물을 보면 자부심보다 수치감에 휩싸이게 된다. 더구나 이제 겨우 45세다. 아직도 자기 앞에는 급격한 변화의 시간 이 수십 년 더 남아 있다.

- 우리에게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하는 이야기는 모두가 허구적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믿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야기를 실제처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이야 기를 믿고 싶어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실제로 믿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미 수천 년 전에 사제들과 무당들은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의식이다. 의식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 고 허구적인 것을 실제로 만드는 마술적인 행동이다. 의식의 핵심 이 바로 이런 마법의 주문이다. “호쿠스 포쿠스, X는 Y!' (X를 Y로 변하게 할때 외는 주문 - 옮긴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신봉자에게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천주교 사제는 미사를 집전하면서 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 잔을 들고서는 빵은 그리스도의 살이며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라고 선포한다. 신도는 그것을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와의 교감을 얻 는다. 그리스도를 실제로 입안에 넣고 맛보는 것보다 무엇이 더 생생 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사제는 성찬식 때 이런 과감한 선포를 라 틴어로 했다. 라틴어는 고대 종교와 법률 그리고 생명의 비밀을 이야 기할 때 쓰는 언어였다. 모여 있던 농민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사제는 빵 한 조각을 높이 들고 이렇게 선포했다. "호크 에스 트 코르푸스!(Hoc est corpus!, 이것은 몸이다!)" 그러면 아마도 그 빵은 그리스도의 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크 에스트 코르푸스” 라는 라틴어를 몰랐던 까막눈의 농민들 머릿속에서는 그 말이 "호 쿠스 포쿠스Hocus pocus!"로 와전됐고, 그 뒤 이것은 개구리를 왕자로 변하게 하고 호박을 마차로 바꿔놓는 강력한 주문으로 거듭났다."
기독교가 탄생하기 1,000년 전에 고대 힌두교도 같은 수를 썼다. 《브리하다라냐카 우파니샤드》는 말을 바치는 의식을 우주의 모든 이야기를 구현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경전 역시 "호쿠스 포쿠 스, X는 Y!"의 구조를 따라 이렇게 말한다. '제물인 말의 머리는 새 벽이며 눈은 태양, 활력은 공기, 벌린 입은 바이스라바나vaisravana (다 문천왕多聞天王, 불교의 사천왕 중 수미산의 북방을 수호하는 천왕 - 옮긴이)라 불리는 불, 그리고 제물인 말의 몸통은 연年 (...) 사지는 계절, 관 절은 월과 격주, 발은 낮과 밤, 뼈는 별, 살은 구름 (...) 하품은 번개, 전율은 천둥, 소변은 강우, 울음은 음성이다.""그리하여 한 마리의 불쌍한 말은 온 우주가 된다.
초에 불을 붙이거나 종을 치거나 묵주를 굴리는 것 같은 세속적 인 동작도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면 거의 모두가 의식으로 바뀔 수 있다. 머리를 숙이거나(목례) 엎드리거나(부복) 두 손바닥을 맞대는(합장) 식의 몸짓도 마찬가지다. 시크교도의 터번부터 무슬림 의 히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쓰개에도 너무나 깊은 의미가 담긴 나머지, 이 때문에 수 세기 동안 열정적인 투쟁이 계속돼왔다. 음식에도 또한 영양가를 훌쩍 뛰어넘는 영적인 중요성이 부여될 수 있다. 새 생명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부활절 달걀이나 유대인이 유월절에 이집트 노예 시절과 기적적인 탈출을 기억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도 다 마찬가지 다. 뭔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아온 세상의 음식이 드물 정도다. 그래서 새해 첫날이면 종교적인 유대인은 새해가 달콤하기 를 바라면서 꿀을 먹고, 물고기처럼 다산에 전진만 했으면 하는 마 음에서 생선 대가리를 먹고, 석류의 수많은 씨앗처럼 좋은 행실이 불어났으면 해서 석류를 먹는다.
비슷한 의식들이 정치적 목적으로도 활용돼왔다. 수천 년 동안 왕관과 왕좌, 지휘봉이 왕국과 온 제국을 대표했고, 수백만의 양민이 '왕좌'와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진 전쟁에서 죽어갔다. 왕실은 극도로 정교한 의전을 개발했고, 그 복잡함이란 종교 예식과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군에서도 기율과 의식은 불가분의 관계다. 고대 로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병사들은 오와 열을 맞춰 행진 하고, 상관에게 경례하고, 군화에 광을 내는 데 무수히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폴레옹이 화려한 색의 리본을 위해 남자들이 목숨을 바 치게 만든 것은 유명하다(나폴레옹은 영국과의 전쟁 개전 1년 후 붉은색 리본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제정해 군인들에게 대거 수여함으로써 사기를 진작했다-옮긴이).
아마 공자만큼 의식의 정치적 중요성을 잘 이해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의례를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사회가 조화를 이루고 정치가 안정을 얻는 열쇠라고 봤다. 공자가 쓴 《예기》와 《주례> <의 례》 같은 고전을 보면 국가 행사에서 따라야 할 의례에 대해 더없 이 상세하게 기록해놓았다. 심지어 예식에 사용되는 제기의 수, 연주에 사용되는 악기 유형, 참가자가 갖춰 입어야 할 의복의 색상 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중국에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유학자 들은 곧장 의례를 소홀히 한 탓으로 돌리곤 했다. 마치 군부대의 주 임상사가 군사적인 패배를 두고 군기 빠진 병사들이 군화에 광을 내지 않은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
- 근대 서구에서는 유교가 의식에 집착한 것을 두고 흔히 인간에 대한 얕은 이해와 고주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공자야말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 을 깊이 꿰뚫어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 문화-중국을 필두 로 이웃 나라인 한국과 베트남, 일본에서 극도로 수명이 긴 사 회적, 정치적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 다. 인생의 궁극적인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의례와 의식이 거대한 장애물이다. 하지만 공자와 같이 사회의 안정과 조화에 관 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실은 골칫거리일 때가 많다. 그런 사람에 게는 의례와 의식이야말로 최선의 동맹이다.
- 성경과 쿠란, 베다를 쓴 것도 우리 인간의 손가락이고, 이들 이야 기에 힘을 부여한 것도 우리의 정신이다. 모두가 아름다운 이야기 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아름다움도 철저히 보는 사람 눈에만 그렇 게 보인다. 예루살렘, 메카, 바라나시와 부다가야(둘 다 인도의 힌두교 성지-옮긴이)는 성스러운 장소이지만, 그 역시 인간이 그곳에 갔을 때 경험하는 느낌 때문이다. 우주도 그 자체로는 의미 없는 원자들 의 뒤죽박죽일 뿐이다. 아무것도 아름답거나 성스럽거나 섹시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의 느낌이 그렇게 만든다. 빨간 사과를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것도, 똥 덩이를 역겹게 만드는 것도 오로지 인간의 느 낌이다. 인간의 느낌을 제거하면 남는 것은 분자 다발뿐이다.
우리는 의미를 찾고 싶어 하면서도 우주에 관해 이미 다 만들어 진 어떤 이야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세계에 관한 자유 주의의 해석에 따르면 진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우주가 내게 의미 를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우주에 의미를 준다. 이것은 나의 우주적인 소명이다. 나는 정해진 운명 혹은 다르마가 있다. 만일 내가 심바 나 아르주나 입장이라면 왕국의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운명 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나는 유 랑 서커스단에 합류할 수도 있고, 브로드웨이로 가서 뮤지컬 배우 로 노래를 할 수도 있고, 실리콘밸리에 가서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도 있다. 자유롭게 나 자신의 다르마를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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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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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의 즐거움

사회 2024. 4. 17. 08:11

- 베트남전쟁이라는 엄청난 기회를 맞은 맥린은 드디어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제는 아예 일본, 대만에 한국까지 가세해서 더 싸고 더 빠른 배를 찍 어냈다. 국가가 나서서 대형 항구와 컨테이너선을 만든 동아시아는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2014년 기준으로 세계 10대 무역항 중 7곳이 동아시아에 있다. 첫 컨테이너 선을 띄운 뉴욕항은 순위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혁신이 성공으로 이어지려면,
1) 그 혁신이 사업성이 있어야 하고(제록스),
2) 정치적 문제를 돌파해야 하고(타다),
3) 언제가 될지 모를 '그때'를 기다려야 하고(테슬라),
4) 누가 승자가 될지 모르는 무한경쟁을 이겨내야 하며(삼성전자),
5) 대중화를 이룰 이벤트도 있어야 한다(애플).
이런저런 굴곡이 있는데, 여하튼 맥린은 나중에 파산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 결국 1990년대 들어 컨테이너는 세상을 바꿨지만, 혁명을 완성하 기까지 첫 출항 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할 줄은 몰랐던 거다. 물론 그는 컨테이너화의 선구자로 역사에 남았고, 그가 죽었을 때 전 세계의 컨테이너 선은 뱃고동을 울려 예의를 표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미 혁명이 일어났다거나 '사실상 완성됐다거나 '이건 실 패할 수 없는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테슬라에 대한 시선이 떠올랐다. 1960년 대에 컨테이너화는 전기차보다 덜 매력적인 아이템이었을까?
컨테이너는 세계 경제를 넘어 '동아시아의 부상(上)'이라는 지정학적 격 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컨테이너 선사에 투자해서 돈을 번 사람은 없었다. 혁 신은 참 먼 길이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따르면, 가스는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 공급까 지 넘쳐서 석유 같은 영향력을 갖긴 어렵지 않을까? 언제나 심각하고 무거웠 던 예긴의 저서를 처음으로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너 무 많은 전략가가 이미 '셰일혁명'을 다루기도 했다.
물론 화석연료가 짧은 기간에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15세기에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 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인도에 간 후에도 지중해 무역은 융성했다. 베네치아는 16세기에도 오히려 무역량이 늘었다. 하지만 천천히 쇠락했고, 결국은 멸망했다.
- 이 책에서 가스의 지정학을 얘기한 예긴은 여러 차례 '무례한 환경운동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가 책에서 이렇게 불쾌함을 드러낸 건 처음이다. 석 유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압박,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방식의 여론전, 석유 의 죄악화 등에 대해 얘기할 때는 이 나이 든 신사도 혈압이 오르는 모양이다. 이 책이 유독 명쾌한 느낌이 없는 건 예긴이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않아서 다. 모호한 표현은 쓰지만 그는 205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 1.5도 제한'이란 목표를 비판하진 않는다. 매우 어려울 것이고, 화석연료는 없앨 수 없다고 변 호하는 선에 그친다. 아마도 평생을 화석연료에 바쳤고, 지금도 화석연료 컨 설팅을 하는 그의 한계일 것이다.
확실히 한 시대는 저물고 있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의 '과도기'를 책임질 운명인가스는 질풍노도의 시간을 견뎌내야만 한다. 이른바 '가스의 시간'이 다. 검은 황금이 그저 탄소덩어리 취급으로 추락하는 게 겨우 한 세대에 일어 났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탄소의 시대가 저무는 시점에 많은 기회 가 열리고 있다.
- 빌 게이츠는 화력발전소의 탄소 포집을 정색을 하며 비판한다. 최근 나온 IEA(국제에너지기구)의 자료를 봐도 (가스)화력발전은 잠깐 역할을 하고 사라 질 존재일 뿐 타당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는 결국 대안이 원자력뿐이라고 말 한다. 국토가 축복 받은 땅덩이가 아닌 한 원자력 확대는 피할 수 없어 보인 다. 물론 빌 게이츠가 원자력 기업 '테라 파워' 창업자라는 점은 고려하고 그 의 주장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에는 암담한 얘기다. 국토는 좁고, 산업 구조는 탄소를 뿜어내는 중후 장대 제조업 중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가 2050 년 탄소중립 선언을 했다. 포항시장은 포스코가 뿜어내는 탄소의 양을 알고 그런 선언을 한 걸까. 수소환원제철은 당장 상용화가 어렵다 해도, 철을 생산하는 고로를 용광로 대신 전기로로 모두 대체하면 제조원가가 크게 상승한다는 사실을 진정 모르는 걸까.
수조 달러의 비용이 필요하고, 우리의 거의 모든 삶을 바꿔야 한다는 걸 알 고 나면 '탄소중립, 이게 과연 가능할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되고 말 고를 떠나 앞으로 모든 산업을 송두리째 흔들 '메가 트렌드'인 것만은 틀림 없다. 이른바 '혁명'이라고 야단법석을 떤 전기차 보급은 이 큰 그림 안에서 는 애피타이저 수준의 작은 문제로 쪼그라든다.
가스보일러를 만드는 회사는 기울어갈 것이고, 전기식 열펌프를 만드는 회사는 성장할 것이다. 이런 변화가 모든 국가, 모든 산업에서 일어날 것 같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국전력은 인도네시아에 가서 석탄 사업을 하겠다고 하 고, 심지어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철강회사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삶의 방식과 산업 구조를 바꾸려면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세금 을 물려야 한다는 얘기다. 탈탄소기술보다 저렴한 기존 제품이나 탄소 배출 기업에 높은 '탄소세를 부과해야 구조를 바꾸는데 속도를 낼 수 있다. 유럽 이나 미국에선 예상되는 탄소세의 파급력이 너무 커서 심지어 탄소세 인플 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다. 그런데 탈탄소 드라이브가 본격화해도 여론은 동 의할까. 중요한 포인트다.
탈탄소는 또 다른 패권 경쟁이 될 수도 있다. 중국은 태양광에서 압도적인 선두 국가다. 이미 풍력은 화력발전보다 저렴해졌고 태양광도 시간문제다. 전 세계가 태양광 패널을 깔려면 중국으로 가야할 처지다. 미국은 환경에서 다시 한 번 패권을 잡을 수 있을까. 이 판은 커도 너무 큰 판이다. 이제는 피 할 수가 없다.
- '셰일가스의 아버지' 조지 미첼George P. Mitchell " 이 석유도 아닌 셰일가스에 인생 을 건 계기는, 그가 1972년에 읽은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였다. '로마클럽(Club of Rome)'이라는 환경단체가 쓴 보고서인데, 요 지는 인류의 수가 감당 못할 만큼 늘 것이고 천연자원 고갈될 거란 경고였 다. 석유가 고갈되기 시작했다는 '오일 피크' 공포는 전 세계를 떨게 했다. 이 런 전망에 따르면 고유가는 필연이었다. 조지 미첼은 1970년대에는 경제성 이 낮았던 셰일가스도 향후에는 개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 다만 현재로서는, 이 보고서는 틀렸다. 석유 매장량은 파도 파도 늘고 있고 지금은 수요 피크 가능성이 훨씬 높다. 아메드 자키 야마니Ahmed Zaki Yamani 전사 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2000년에 예언한 대로 석유가 떨어져서 우리가 다 른 자원을 쏠리는 없다. 결국 대체할 더 좋은 에너지원을 찾아낼 것이다. 로 마클럽 보고서는 문명의 원천은 땅이 아니라 인간의 창의성이란 걸 놓쳤다. 뒤늦게 로마클럽의 빗나간 예언을 꼬집으려는 건 아니다. 이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건 세계 석유 산업의 패권 구도를 뒤집은 셰일혁명이 틀린 전망에 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석유는 끝났다'는 착각에 빠진 텍사스 아저씨, 조지 미첼은 기어코 미국을 세계 최대 에너지 부국으로 만들었다.
요즘도 기후위기를 의심하는 이들이 있다.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다. 비록 과학자의 거의 모두가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한 결과라는 점에 동의하더라도, 부정론자들은 며칠 뒤 날씨도 알기 힘든 인간이 한 세대 후의 기후를 '예측' 하는 건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부정론자들이 만에 하나 먼 미래에 옳았다는 게 드러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전 세계는 이미 '지구는 뜨거워질 것이다'라는 예측에 따라 흐르고 있 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는 파리기후협정이라는 게임의 룰에 합의했다. 도장 찍고 나선 다른 소리해 봐야 소용없다. 탈탄소를 향한 레이스의 총성은 이미 울렸다. 이젠 '틀려도 맞는 예측이다.

- 뛰어난 관료 선발과 고위직 관료들의 큰 재량권, 효율적인 전략 수립에 따른 고성장은 중국식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반면, 부패는 그 대가다. 재량권이 있는 곳엔 부패가 있다. '권력필부 '다. 부패를 없앤다는 건 중국식 자본주의의 핵심인 재량권을 없앤다는 의미다.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부패에도 중국식 자본주의 가 지지받는 이유는 뭘까? 눈부신 경제 성장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이 계약이 신기해 보일지 몰라도 동아시아 끝에 있는 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퍽 익숙한 얘기다. '독재할 테니 잘 먹고 살게는 해 주겠다'는 약속, 우리는 개발독재 때 이미 경험했다.

- 큰 시장 규모와 유통 채널의 변화는 왜 유독 케이팝만 그 수혜를 입었는지 는 설명하지 못한다. 케이팝의 핵심은 미국식 팝의 보편성과 한국 특유의 색 깔이 묘하게 섞인 '혼종성'이다. 케이팝은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도 '보편성' 의 문을 열 많은 열쇠도 품고 있다. 한 때는 콤플렉스였던 '정체불명'이 이젠 아이덴티티가 된 것이다. 케이팝 한 곡 안에 힙합부터 록, EDM에서 라틴음악 까지 모두 섞여있다.
케이팝은 미국의 흑인음악과 제이팝의 영향을 받았고 그 특성을 모두 품 었다. 케이팝의 시초로 보는 서태지는 당시로선 낯선 흑인음악의 코드를 들여왔다. 우리가 익숙한 아이돌 시스템은 일본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아이 돌 시스템을 수출한 일본은 '일본스러움'에 갇혀 내수에 머물렀지만, 케이 팝은 아이돌 시스템에 보편성을 갖춘 음악을 실어 혼종 그 자체인 문화를 만 들었다.
아시아의 특수성과 미국이 대표하는 주류 시장의 특징이 만나 결합할 경 우 나오는 폭발력은 홍콩 문화가 보여줬다. 90년대 아시아에서 강한 영향력 을 보인 홍콩 문화는 중국 문화와 자유로운 홍콩의 세련된 특성이 묘하게 결 합돼 탄생했다. 중국과 영국이 닿는 경계에서 변이가 일어난 사례다.
- '변이'를 기획하는 기획사
기획사는 이런 전파자를 더 활용하기 위한 요소를 알고 있다. 바로 '떡밥'이 다. 보통 케이팝 덕질을 시작하면 유튜브에서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은 모두 보고, 소셜 미디어에서 한 말 한마디까지 꼼꼼하게 살핀 후 팬덤 커뮤니티에 모여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타는 여러 채널을 통해 많은 떡밥을 뿌린 다. 아예 데뷔 전부터 콘텐츠를 찍어 소셜 미디어에 뿌리며 떡밥을 만든다. 라이브나 비하인드 콘텐츠도 이런 역할에 충실하다.
이런 과정은 바이러스가 활발하게 '변이'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케이팝 기 회사는 이런 변이 가능성을 높일 여러 장치를 만든다. 한 그룹을 여러 조합으 로 쪼개 다양한 콘셉트를 소화하게 만드는 유닛(unit) 활동이 대표적이다. 멤 버가 거의 20명에 가까운 그룹을 만드는 건 애초에 그 안에서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내려는 의도다. 그 안에서 알파, 베타, 델타・・・・・・ 끝없이 새로운 조합을 만들고 실험해 전파 가능성을 높인다.
여러 성공을 거듭하며 다양한 덕질 콘텐츠를 만드는 시스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신곡 하나가 나오면 우선 티저(teaser)부터 여러 개를 제작해 발표한다. 그러다 공식 뮤직비디오가 나오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퍼포먼스 버전, 세로버전, 직캠버전, 무대 뒤 영상, 각 멤버별 영상, 무대 전체 영상이 쏟아진 다. 여기에 '광야' 같은 독특한 코드를 넣어서 세계관을 구축하며, 또 한 번 콘텐츠를 만든다.
케이팝의 부상에서 기획에만 초점을 맞추면 반쪽짜리 정답이 나온다. 기획 사는 성공을 기획하지 않는다. 애초에 한국의 작은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신 대중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포인트를 찾고 배치한다. 얻 어 걸리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지 않는가. 케이팝 그룹이 갑자기 '빵'하고 뜨 면 대체 무슨 일인가 싶지만, 그 또한 기획이 행운을 만나 터진 결과다.
변이를 거치며 케이팝은 강해지고 있다. 2010년대 벌어진 불공정 계약 논 란은 진통 끝에 표준계약서 문화를 낳았다. 변이 가능성을 강화하기 위해 적 극적으로 도입한 외국인 멤버 구성은 국가주의(애국심 논란) 리스크를 키웠 다. 이런 문제에 여러 번 부딪히면서 기획사들은 다국적 그룹의 경우 철저하 게 정치적 이슈를 피해가게 만들었다. 아예 가상의 세계관을 만드는 기획도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작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벼농사의 특징은 '공동생산개별소유'다. 함께 농사를 짓지만 산출물은 각 자 나눠 갖는다. 내 집, 내 밭에 씨 뿌리고 유유자적 사는 삶을 버리고 이런 집단노동에 투신한 까닭은 쌀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면적당 생산 열량을 비교하면 밀의 2배가 넘는다. 열량이 높을 뿐 아니라 육류와 함께 먹어야 하 는 밀이나, 콩이 필요한 옥수수와 달리 쌀은 완전식품이다. 이런 쌀의 매력에 빠진 선조들은 압록강을 넘어 건조한 기후의 만주에 가서도 불가능해보였던 쌀농사를 기어이 해냈다.

- 유교의 통치는 모두가 자신의 마음속에 달아놓은 CCTV의 통제를 스스로 받는 저비용 통치 구조다. 불행은 개인 탓이요, 모두가 성공은 할 수 있다. 다 만 처지가 딱한 건 수양이 부족해서다. 이 얼마나 성군의 치세인가. 작은 법 위반에도 팔다리를 자르고 사사건건 개입하는 '나쁜 나라님'이 다스리는 법 가의 통치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결국 이기지 않았을까. 이런 피통치자의 마음속에 CCTV를 다는 일을 아주 넓게 우리는 '문화'라 고 부른다. 적어도 수천 년의 동아시아 역사에서 위력을 검증한 통치 수단이 다. '충(忠)'과 '효(孝)'를 실천한 미담을 발굴하고 이런 원리를 담은 철학을 바탕으로 관리를 선발해 많은 이들이 자나깨나 읊고 외우게 만들었다. 피통 치자가 자발적으로 유순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신민(臣民)이 되는 시스템의 기반을 소프트웨어에서 찾은 것이다.

- '조선은 왜 망했는가?'는 일제 강점의 역사가 있는 한국에서 중요한 질문 이다. 하지만 그렇게 문제가 많은 나라가 500여 년이나 유지된 이유도 고민 해봐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전 근대 역사에서 한 왕조가 100년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이다. 비록 500여 년의 끄트머리는 처참하고 굴욕적인 결말로 귀결됐지만, 그 앞의 긴 역사를 이끈 원동력은 생각해볼 점 이 있다.
굴욕의 역사를 겪은 한국 사람들은 철두철미한 하드웨어의 힘에 천착해 전진해왔다. 그 결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G8'을 논하는 데까지 왔다. 동 시에 하나의 성적표를 더 받았다. 삶에 대한 만족도는 세계 꼴찌 (42.3%)이고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건 1등이며 자녀가 기쁨보다는 부담이라는 생각도 세계 1등을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울하고 불행하고 자녀까지 부담스러운 자칭 'G8'이 한국의 성적표다.
전통적인 유교의 가치를 되살리자거나 논어의 가르침을 받들자는 의미가 아니다. 필자는 유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한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가 단순히 경제와 같은 '하드웨어'만으로 해결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오천만 명이 모인 이 공동체가 하나의 국가와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엔진이 꺼졌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수천 년의 역사를 지배해온 '마음속의 CCTV'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활용 해야 할까. '문화'라는 소프트웨어는 이 불행한 나라에 어떤 답을 찾아줄 수 있을까.

- <신뢰이동>에는 공유경제의 3단계 과정을 '아이디어 -플랫폼-신뢰 형성'으로 나눈다. '겨우 앱으로 차와 사람을 이어주는 게 무슨 혁신?'이라는 비 판은 플랫폼만 갖춘 기업에 적용된다. 타다는 그 위에서 신뢰까지 성공적으 로 만들어냈다.
'부르면 제때 올까?', '불친절하진 않을까?', '불쾌한 일을 당할 때 책임져 줄까?' 이 3가지는 신뢰의 문제다. 원래는 국가의 보증(= 면허)이 해야 하지 만 잘 해결하지 못했다. 타다는 알고리즘과 적극적인 차량 투자로 이 3가지 신뢰 문제를 해결했다. 별점은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소했다. 이 별점을 믿는 것도 타다를 믿기 때문이다. 타다는 신뢰를 면허에서 플랫폼으로 빨아들였 다. 모빌리티 시장의 신뢰가 국가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한 것이다.
- 글로벌 PR기업인 에델만의 신뢰지표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부 관계자보다 페이스북 친구를 두 배 이상 믿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믿음이 점차 자기 랑 비슷한 사람에게 옮겨가 플랫폼으로 모이는 것이다.
국가나 대기업 브랜드와 마찬가지의 역할을 해온 매스 미디어의 고민도 여기서 나온다. 과거에는 매스 미디어가 전문성과 사실에 대한 '도장'을 찍어 줬다. 신문에 나와야 전문가이고 팩트였다. 지금은? 소셜 미디어에서 인정받 고, 유튜브 채널에서 구독자를 모으며 영향력이 쌓인다. 여전히 레거시 미디 어의 영향력은 크지만 고민도 커지는 지점이다.
앞으로 유니콘은 훨씬 더 많아질 전망이다. 반면, 그들이 평가받는 가치만 큼 국가와 대기업의 기득권은 줄어들 것이다. 17세기에 스코틀랜드 금세공업자들은 금 보관증을 화폐로 만들어 왕실의 시뇨리지(seigniorage, 주조차익)를 잠식해갔다. 왕이 도장을 찍어야 인정받던 화폐를 금 보관증이 대신한 것 이다. 훗날 정부가 이걸 깨닫고 규제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꼭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흐름을 알아채고 신뢰를 쌓은 '신뢰 부자' 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개업한 별점 5점짜리 맛집이 100년 노포를 이기는 게 현실이다. 1인 유튜버가 기자가 수백 명인 전문 매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평판이나 계정의 신뢰성은 그 사람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뢰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보다 훨씬 냉정하다. 유명 인플루언서도 '광고' 한 번에 무너지곤 한다. 광고비를 받고 신뢰를 팔았기 때문이다.

- 지금은 희귀금속 생산량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하지만, 1980년대까지는 미국이 이 시장을 지배했다. 이게 중국으로 넘어간 건 한마디로 '너무 더러워 서'다. 개발도상국의 오지로 넘길 만큼 심각한 오염을 초래하는 산업이란 얘 기다. 여기에 환경주의 진영에서 기겁하는 방사능까지 배출한다. 바오터우의 취수장 방사능 수치는 체르노빌의 2배나 된다. 희귀금속에서 방사능이 나오 는건 아니지만, 정제 과정에서 배출량이 상당하다.
유럽과 미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드라이브의 이면에는 중국이나 아프리 카의 희귀금속 채굴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에 전기차가 늘어나면 서울의 대 기오염은 줄지만, 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충청남도의 대기는 더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테슬라 차주가 늘어나면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의 코발트 광산에는 더 많은 아이 노동자가 투입된다.
경제적 문제도 남아있다. 전 세계 희토류 시장 규모는 7조원 정도다. 이 시 장의 95%를 중국이 지배한다. 여기에 반도체와 앞으로 수십 배 성장할 신재 생에너지, 전기차가 올라타 있다. 반도체만 해도 시장 규모가 600조 원이 넘 는다. 희귀한 한 줌의 흙에 세계 경제가 올라탄 셈이다.
1970년대까지 석유 공급에 출렁이던 세계 경제는, 산유국이 늘고 결정적 으로 미국발 셰일혁명을 겪으며 안정을 찾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미사일이 떨어지면 세계 경제가 하루 이틀은 충격을 받겠지만, 그 이상 휘청거리진 않 는다. 반면,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20~30가지씩 들어가는 희귀금속 중 몇 가지만 병목이 걸려도 애플과 삼성, 테슬라 같은 거대 공룡들의 생산 체계가 삐걱대면서 글로벌 경제를 위태롭게 만든다.
1980년대 들어 서구사회는 희귀금속 시장을 중국에 완전히 넘겨줬다. 하지만 중국은 그저 돈이나 많이 벌려고 이 시장을 선택한 게 아니다. 1992년에 덩 샤오핑은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30여 년 전부터 중국은 희귀금속에 대해 전략자원으로 접근한 것이다.

- 우리가 알던 룰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공짜' 세계화가 끝나간다는 것이다. 상황이 변했고 세계의 규칙도 바뀌고 있다. '주식회사 미국 그룹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미국의 계열사로 남으려면 더 이상 공짜는 없다. 호주처럼 자원 기지가 되든지, 폴란드처럼 최전선 보루가 되든지, 일본처럼 바다를 나눠 지키든지. 이제는 본사 미국에 보낼 수표에 얼마를 써서 낼지 정할 시간이다.

- 중국의 현재가 '서구식 자본주의 발전 경로'라는 틀로 설명이 안 되면 새로 운 틀이 필요하다. 이 책이 말하는 '중국화'가 바로 그 틀이다. '중국화'라고 하면 대게는 기분 나쁜 인상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화는 정확히 말하 면 '송나라화'다. 1000년 전 중국 왕조, 그 송나라다.
저자는, 중국은 '서구화하는 게 아니라 1000년 전 시작한 '송나라화'를 다 시 가열차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근대의 기틀을 닦은 근세(近世)가 15세기 유럽이 아니라 9세기 송나라에서 시작됐다는 '송 근세'이다. 이 관 점으로 보면 중국이 외치는 '굴기(起)'가 미스터리하지 않다. 경로이탈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1000년 전 송나라에서 근세가 시작됐다고? 이는 젊은 재야사학자가 한 얘 기가 아니라 1920년대 일본의 석학 나이토 고난湖南이 한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 <중국화 하는 일본>은 100년 전 나온 송 근세설을 가져와서 최근 동북 아의 정세를 살짝 풀어냈을 뿐이다.
송나라화의 핵심은 '귀족제도를 폐지하고 황제 전제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송나라 때 귀족제가 폐지됐다고 말한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본격 도입한 과거제로 선발한 관료에 의한 통치로 대체됐다고 말한다.
한국은 조선사 500년 경험이 있어 과거제도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당시 송나라 입장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일이었다. 1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통일 된 지식 체계를 공부하고, 시험을 거쳐서 권력을 얻어낸 거니까. 그것도 무려 1000년 전에 말이다.
지방으로 발령 받은 중앙 관료가 귀족(=호족)의 권력을 제압하면서 국가 시스템이 확립된다. 즉, 황제 빼곤 모두가 (상대적으로) 대등하게 경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작두로 호족의 망나니 아들의 목을 뎅강뎅강 하던 판관 포청천이 바로 송나라 관료다. 저자는, 중국이 송나라 때부터 계급제가 폐지 됐다고 주장한다. 파격적이다.
- 화폐경제도 이때 시작됐다. 세계 최초의 지폐가 사용됐고, 화폐 공급이 경제를 따라가지 못하자 신용 화폐인 어음까지 등장했다. 화폐경제는 국가가 나서서 권장했는데 세금을 물납(物)이 아닌 돈으로 받기 시작한 게 결정적 이다. 1000년 전에 말이다. 지금이야 세금을 화폐로 내는 게 당연하지만, 세 계사를 보면 쌀 같은 현물로 내는 게 대부분 아니었던가
송나라는 중앙 권력이 강했지만,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은 풀어놨다. 봉건 제에서 농민은 귀족의 재산'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었다. 송나라 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지니 농민 입장에선 "어라, 쌀을 팔면 돈이 생기네. 그럼 다른 도시로 가서 사고팔아 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화폐경제와 이동의 자유가 만나면서 상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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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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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일본책

사회 2024. 4. 6. 20:15

- 한국인들은 20세기 내내 '민족주의'에 기대 살아온 사람들이다. 유교적 보편문명의 사고에 너무 익숙한 나머 지, '민족nation'이라는 근대의 발명품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고, '민족'을 막 알아가려던 참에 망국의 비운을 당했다. 어쩌면 나라가 망한 후 타국의 압제하에서 '민족'을 온전히 알게 되었 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민족'이란 한국인들에 게 마치 가질 수 없는 연인처럼 더 절절한, 어떤 것이 되어버 렸다.
'민족주의자nationalist'가 우리말의 국수주의자와 비슷한 어감 으로 통용되는 다른 선진국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 그 말은 여전히 칭찬이다. 그러니 이제 민족주의는 그만'이라는 말에 많은 한국인들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민족주의의 만연이 더 이상 우리 민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시점에 와 있다고, 나는 본다. 예전의 민족주의가 한국인들을 단결시키고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면, 지금은 우 리를 배타적. 폐쇄적으로 만들고, 과학과 학문이 제시하는 곳 과는 다른 길로 오도하는 데 쓰이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북한을 보라. 주체사상의 나라, 북한만큼 민족주의적인 나라 는 지구상에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나라만큼 민 족주의의 폐해를 선명히 보여주는 경우도 없다.
이 세상에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나 좋은 것은 없다. 절대 적 가치인 것처럼 보이던 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의 미를 갖게 된다. 만인의 우러름을 받던 민족주의자가 정작 독 립이 되어 집권하고는 자기 민족에 학정을 펴는 경우는 비일 비재하다. 민족주의는 영원한 진리도, 절대적 선도 아닌, 많은 얼굴을 한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 일본에서 음식 차리는 것을 보면 밥은 두어 홉을 넘지 않고 반찬도 두어 가지에 지나지 않아 몹시 간소하다. 다 먹으면 다시 덜어 서 먹기 때문에 남기는 일이 없다. (중략) 여름에 파리와 모기가 매우 드문데, 이는 실내가 정결하고 지저분한 물건이 없기 때문 이다. (중략) 길가에서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질서정연 하고 엄숙한 분위기라 떠드는 사람이 없다. 인파가 수천 리 길에 이르렀는데 단 한 명도 제멋대로 행동하여 행렬을 방해하는 사람 이 없다.
내가 20여 년 전 일본 유학을 갔을 때 일본의 인상이 딱 이 랬다. 일본을 가보신 독자들도 비슷한 인상을 갖고 계실 것이 다. 그런데 이건 내 얘기가 아니고 1719년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신유한이 한 말이다. 《조선 문인의 일본견문록: 해유록》)
'질서를 잘 지키고 줄을 잘 선다', '깨끗하고 위생적이다', '친 절하다. 우리가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들이다. 일본이 근대화를 빨리 해서 앞서 있으니, 우리도 부지런히 따 라가야 한다고. 하지만 신유한이 전했듯 그들이 줄 잘 서고 말 잘 듣는 건, 근대화 때문이 아니라 도쿠가와 시대부터 원래(?) 그랬다.
신유한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일본인들은 상하관계가 한 번 정해지면 위아래의 구별이 엄격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두렵게 여기며 (중략) 엎드려 기면서 시키는 일을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받들어 행한다." 지하철이 운행을 멈춰도, 세습 의원들이 국회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도 그저 조용하기만 한 지금의 일본 국민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럼 조선인은 어땠나. "조선에서는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경쟁하는 데 몰두한다. (중략) 이 나라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자 리로 올라가는 일이 곧잘 벌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는 일이 많고 뇌물도 행해져 아침에는 출세하고 저녁에는 망하니 조용할 날이 없다.” 누가 한 말인지 참 신랄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며 웃음이 피식 나온다. 도쿠가와 시 대 일본 최고의 조선통이었던 아메노모리 호雨의 조선 평이다. 

- 도시와 상업이 이렇게 발달했다면 사회적, 지역적 유동성도 일본 쪽이 높을 것 같지만 실제는 달랐다. 일본은 조선보다 더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사무라이-상인(조닌町人)-농민-부락민 (천민)으로 엄격히 구분됐을 뿐만 아니라 각 신분 내에서도 계 층 차는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신분만이 아니라 직업도 잘 바꾸지 못했다(않았다). 초밥집 을 하는 이에의 자손은 으레 그 일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 았다. 대가 끊기거나, 자손이 있더라도 초밥집을 감당할 능력 이 없다고 생각될 때는 재능 있는 양자를 들여 초밥집을 유지했다. 때로는 성이 다른 사람이 양자로 들어오기도 했다. 혈연보다 가업을 앞세우는 것이다. 이러니 그 초밥이 맛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 초밥집이 오래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성은 혈연의 이름이자, 이에의 상호였다. 일본 회사나 가게 이름 에 스즈키, 다나카 등 곧잘 성이 붙어 있는 이유다.
거기에 비하면 조선의 가문은 무엇보다 혈연이 최우선이다. 대가 끊기면 재능보다는 같은 혈연의 양자를 들였다. 타성양 자란 생각하기 어려웠다. 직업은 자주 바뀌었다. 구한 말 서울 종로를 방문한 한 일본인이 "어떻게 1년을 가는 가게 가 없냐”며 놀라더라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 사무라이의 나라, 무의 나라 일본이 어쩌다가 세계가 주목 하는 문의 국가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 연원을 찾으려면 조 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퇴계 이황이 고봉 기대승과 수준 높 은 철학적 논쟁을 벌이고 있던 시대에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 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臣秀吉 같은 무장들이 군웅할 거하고 있었다(전국시대), 서원이나 향교, 과거나 상서 같 은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있는 것은 오로지 근육과 칼, 힘과 전투뿐이었다. 과연 양국은 문의 나라, 무의 나라라고 불릴 만 했다.
그런데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이 마침내 끝났다. 모두 무기 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전투가 벌어질지 알 수 없으 니, 사무라이는 전투 대기 상태였다. 칼도 허리춤에 차고 군대도 유지한 채 이게 그대로 행정조직이 되었다. 군주인 쇼군은 이름 그대로 최고사령관이었고, 이하 사무라이들은 계급별 로 신분이 고정된 채 자신의 직무를 세습하며 수행했다(가업).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쟁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다.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조차 할 수 없을 정도 로 세상은 태평성대로 접어들었다.
1600년경 1200만 명 정도였던 인구는 1720년경 3000만 명 을 가볍게 넘었고(조선은 1300만 명 정도), 얼마 안 있어 에도 인구는 100만 명(한양 30만 명)에 이르렀다. 경제는 농업 혁신과 상업 발달에 힘입어 약진했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세상은 점점 군인인 사무라이들에게 무예 대신 지식을 요구했 다. 전투 능력은 아무 쓸모가 없는 시대였으므로. 아닌 게 아 니라 차고 다니던 칼도 다 녹슬었기 때문에 궁한 김에 상인에 게 팔아치우고 목도를 대신 차고 다니는 자들도 있었다. 때마침 막부나 봉건국가) 정부도 번교를 세우고 향 교를 지원하며 학문을 장려했다. 이전부터 있던 사숙私들은 더욱 번성했다. 요즘으로 치면 지방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번 교들이 우후죽순 세워졌다(막부 말기에 이미 200개가 넘었다). 그 속도는 어느 학자가 '교육 폭발의 시대'라고 칭할 정도로 놀라웠다. 19세기 초 다산 정약용은 벌써 일본의 학문 수준이 범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일본 유학자들의 고전 주석을 인용했다. 이미 유학 교육이 한풀 꺾이고 심지어는 사회적 병폐로까지 변질되었던 조선, 중국과 달리 19세기 일본은 유학중심은 주자 학朱子學)을 비롯하여 학문과 교육 열풍에 휩싸였다. 번 정부는 사무라이들의 번교 출석을 엄격하게 확인했다.
한편 무예로 전투에서 공을 세워 출세하는 것이 더 이상 불 가능해진 현실에서 젊은 사무라이들은 학문과 학교에서 돌파 구를 찾으려 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사무라이 간의 학적 네 트워크가 결국 정치화되어 메이지유신의 촉매제가 되었다.
<1987>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1980년대 이념 서클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19세기부터 시작된 맹렬한 공부 붐이 근대 일본을 만들었 다. 그 추세는 20세기 100년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독서 대국 도, 노벨상도, 세계적 동아시아학도 그 기반 위에서 만들어졌 다. '문의 나라 한국은 언제쯤 이뤄질 것인가?

- 사회나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위에 두고, 사회에 대한 개인의 비판, 저항, 이탈을 용인하는 것을 개인주의라고 한다면, 일본은 개인주의가 매우 희박한 사회다. 소속 집단보다 개인 이 더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의 일본인은 거의 없을 것이 며, 집단을 상대로 대의 혹은 자기 이익을 내걸고 투쟁하는 개 인도 드물다. 우선 일본 사람들은 말수가 적으며, 입을 열어도 자기주장을 하려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주변 공기를 읽고서 그에 맞춰 말한다(분위기 파악이라는 일본말은 '空氣讀', 즉 '공 기를 읽는다'다). 한국에서 분위기 파악을 못 하면 핀잔 좀 받는 데 그치지만, 일본에서 공기를 읽지 못하면 진지하게(!) 주목 의 대상이 된다. 거듭되면 아웃된다.
이런 사회에서 한 개인이 사회를 상대로 도도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거나, 사회 전체의 원리를 비판하며 그것을 초월하려는 행동이나 발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런 사회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모두가 모두를 배려 혹은 의 식하며 질서와 규율을 지키고 공동의 이익(예를 들면 국익)을 추구하기에 용이하다. 그 속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긴장과 반 발의 에너지를 무마하는 장치가 '고립의 허용'이다. 개인이 집 단에 저항하여 집단 전체의 원리를 왈가왈부하는 것은 용서 하지 않지만, 그 원리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나는 따로 살겠다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단 전체의 원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 안에서다. 교토대학교 학생들이 면벽식사를 하도록 배려해주고, 어떤 친구가 도깨비 같은 패션으로 지하철을 타도 간섭하거나 나무라지 않는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고립 허용주의'다(오타쿠御는 사회에 당당 하게 발언하는 '개인'들이 아니라 허용된 고립의 공간에서 뛰노는 존재 들이다).

- 한국이 민심의 나라라면, 일본은 엘리트, 그중에서도 '야쿠닌'(관리 혹은 공무원)의 나라다. 일본인들의 감각에 관리나 정치인은 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일반 시민은 일반 시민의 세 계와 일이 있고, 그들은 그들의 세계와 일이 있다. 각자의 '야 쿠役'(역할)가 있는 것이다. 이러니 우리가 볼 때 의아할 정도 로 일본인들은 정치에 대해 관심도 비판도 없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위정자, 엘리트들 은 그에 부응해 자신들의 '야쿠'를 잘 수행해왔다. 일본 사회에서 대대로 관리를 비롯한 엘리트의 신뢰도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대략 1990년대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야쿠 닌'들이 부패하고 무능해진 것이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 그룹 인 오쿠라성省(우리의 재정경제부) 부패 사건이 잇달아 발생 한 것을 계기로, 일본의 리더십은 관료사회에서 정치가로 넘 어갔다. 그런데 정치가들은 더 무능했다.
일본 사회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정치의 '야쿠'를 담당 하는 엘리트들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데도 일본 시민들은 자기 '야쿠'만 수행할 뿐 이에 간섭하거나 항의하지 않는 다. 그 사이에 거대한 공백이 생긴다. 이 틈새에서 일본 사회 는 기능부전에 빠졌다. 3.11 동일본대지진 때도 그랬고, 코로 나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의 '야쿠'가 제대로 회복되든 지, 아니면 오래된 전통을 깨고 '야쿠'의 사회를 바꿔 '야쿠' 밖 으로 소리치고 감시하고 저항하지 않는 한 21세기 일본은 매 우 힘든 난관에 거듭 봉착할 것이다.
그 대척점에 한국이 있다. 한국에는 애초에 '야쿠'라는 게 없다. 직업은 언제든 바꿀 준비가 돼 있고, 내 직업을 굳이 자식이 하길 원하지 않는다. 내 일보다는 '남 일'에 관심 많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가장 만만한 '남 일'은 정치다. 내 일을 팽개 치고 '남일'인 정치에 비말을 날리며 울부짖는 건 한국 시민 의 일상사다. 놀랄 만큼 많은 수의 시민들이 자기 분야보다 정 치에 더 해박한 지식과 정밀한 분석을 선보이는 신공을 갖고 있다. 그만큼 한국 민심의 수준도 높다. 이러니 민심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 늘 각자도생이 먼저이면서도 공동체 붕괴의 위 기 때는 온갖 아이디어와 충심을 발휘하며 다이나믹하게 대응 한다. 금 모으기 운동과 코로나 대응은 그 백미였다.

- 한반도 세력에게 일본제국은 약 40년간 패자였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의해 미국이 그 자리를 대신한 지 60년이 되었다. 그 샌프란시스코 체제도 동요하기 시작한 지 이미 오 래다. 명청 교체기, 구한말 같은 지역 질서의 격변기가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 북한은 중국에 점점 목을 매고 있고, 남한의 전략가들은 미래에 대한 합의를 좀처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은 당 고종의 신라 정복 실패 이후 포기했던 '한반도 직할 카드를 혹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한에서는 조만간 구한말 때처럼 친미파와 친중파가 요란스레 대립하게 되지는 않을지...
일본은 쓰나미에 당했다지만 나는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는 '지정학 쓰나미'가 더 두렵다.

- 1987년 이후 한국 현대사는 혁명보다는 유신에 가깝다. 변 혁을 밀어붙인 핵심 세력은 반체제가 아니라 체제 내 비주류 세력이었다. 예비 엘리트인 대학생들, 야권 정치 세력과 사회 세력, 합리적 사회를 바라는 광범한 시민과 노동자들이 그들 이다.
커다란 변혁을 달성했으면서도 사회질서가 붕괴되거나 대 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질서 있는 변혁', 그것도 메이지유신보다는 훨씬 시민의 힘에 기댄 바가 크다. '위로부 터의 질서 있는 변혁'이 아니라 '아래에 기댄 질서 있는 변혁'.
- 이 미증유의 실험 한가운데에 586이 있다. 그들은 당연히 기성 체제의 핵심이다. 그것도 장기간 그러했다. 영화 <1987> 에 대한 586들의 나르시시즘적 반응은 자기도취다.
586세대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오랫동안 누리고 있다는 것 을 칼바람 맞듯,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혁신, 자기연마 해야 한다. 역사는 아직 586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586에게 는 유신의 길밖에 없다. 만약 우리 사회에 정말 혁명이 일어난 다면, 그들이 대상이 될 것이므로.

- 정말 통일신라·고려·조선 왕국은 후진국이고 별 볼 일 없는 나라였나? 예를 들어 18세기 조선은 인구 1300만 명 정도가 먹고살 수 있는 나라였다. 다른 나라에 비해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도 아니었다. 주자학을 비롯한 지적 수준은 잘 알 려진 대로 대단했다. 당시를 지금처럼 국가 랭킹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 조선이 'G20'과 한참 거리가 멀었으리라 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또 흔히 듣는 말 중에 "우리나라가 중국에 앞선 것은 20세 기 몇십 년뿐인데, 그나마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있다. 그게 어디 한국뿐인가. 일본도 베트남도 다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현상을 두고 나만 못났다고 하니 반성이 아니 라 자학에 가깝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은 매우 특수한, 아마도 세계사에서 유일한 케이스일지도 모른다. 흔히 우리 역 사에 대해 평할 때 "중국 옆에서 살아남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 다”고 하는데 결코 과분한 평가가 아니다. 베트남이 비슷한 경 우라고 볼 수 있겠으나, 베이징과 하노이는 베이징과 서울에 비하면 저 너머 세상이다. 우리 역사를 바라볼 때는 이런 배경 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역사는 중국처럼 수천 년간 지역의 패자로, 문명의 센터로 지내온 역사도 아니고, 일본처럼 저 멀리 바다 한가운 데서 지정학적 행운을 즐기며 자폐적으로 살아온 경우도 아니 다. 그만큼 더 복잡하고 깊은 사연이 있다. '고투의 역사'에 대 해 적절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지적으로 이만큼 흥미를 자 극하는 역사도 드물 것이다. 독특한 조건 속에서 분투해온 한 국사의 경험은 역사에서 지혜를 구하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에 게 커다란 교훈과 영감을 줄 것이다.

- 나는 불안하다. 우리가 일본을 너무 일찍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의 중추인 50~60대는 일본과 가장 격절된 세대다.
이들은 일제를 경험한 윗세대나, 일본 문화를 통해 일본 사 회를 줄곧 접해온 젊은 세대와 비교할 때 일본을 잘 모르는 세 대에 속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 세대 오피니언 리더들과 얘기해보면, 미 국이 보는 시각으로 일본을 내려다본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이런 것이 영향을 끼쳐서일까? 일본은 한물간 나라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일본사 수업에서도 일본어 텍스트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일본어는 '변방어’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아직 도전자의 자세로 일본을 더 알아야 한다. 알아 도 샅샅이 알아야 한다. 일본이 무서워하는 나라는 큰소리치 는 나라가 아니다.

- 서울 지하철 젊은 여성의 손에 도쿠가와 시대 역사서가 들려 있고, 무라카미 하루키뿐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도 베스트셀러가 되며, 중년 남성들의 술집 대화에서 메 이지유신 지도자 이름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오고, 학교 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으로서의 이토 히로부미만이 아니라, 그런 자가 어떻게 근대 일본의 헌법과 정당정치의 아버지로 평가되는지, 그 불편함과 복잡성에 대해 파헤치는 그런 한국 을, 일본은 정말 두려워할 것이다.
화풀이만으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 물론 화가 나니 화도 풀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극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일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부와 식견이 좀 더 높아져야 한다. 여기에는 왕도가 없다. 돋보기 들고 차근차근, 엉덩이 붙이고 끈덕지게 공부 또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세계인 모두가 일본 을 존경해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동시에 세계인 모두가 일본 을 무시해도 우리만은 무시해선 안 된다.

- 1910년 조선이 망한 것은 반일 감정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일본을 증오하고 규탄하는 사람들은 전국에 넘쳐흘렀고, 일본 을 깔보고 멸시하는 사람들도 사방에 빽빽했다. 모자랐던 것 은 메이지유신 이후 40여 년간 일본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게 우리의 운명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었 다. 해방 후 지금만큼 한일 간의 국력 차가 좁혀진 적은 없었 다. 그러나 섣불리 우쭐거리는 것은 독약이다. 장차 우리가 일 본을 정말 앞서는 날이 와도 우리는 일본을 경시하는 맨 마지 막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일본은 정말 경계해야 할 상대이기 때 문이다.

- 일제 치하 조선 민족의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논리와 팩 트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해 작가 상허 이태 준은 일갈했다고 한다. "주기율표(화학에서 중시하는 원소 배열표) 대로 하라. 연금술은 반대한다." 역사를 논할 때 입으로는 논 리와 팩트를 말하지만, 사실은 연금술을 부리려는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 조선 민족의 위대성을 이태준인들 소리쳐 외 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차근차근 주기율표대로 하지 않고 연금술을 부려 '민족의 위대성'을 만들어낸다면 그건 환 상에 불과하며, 결국 독립은커녕 우리를 더더욱 열등 민족으 로 내몰 것이라는 차가운 사실을 상허는 내뱉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연금술은 뚝딱하고 주장하기 쉽지만 논리와 팩트에 기초한 주장을 하는 데에는 품이 많이 든다. 왜냐하면 논리와 팩트에 하자가 있을 경우 그 사람의 신뢰성이 떨어지므로 거 듭거듭, 단단히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뉴스 프로그램 에 '팩트체크' 코너가 생겨난 것은 반가운 일이나 아직도 우 리 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언론 플레이 잘하는 사람)이 행세 하곤 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단단한 논리와 팩트로 무장한 사람일 지라도 큰 목소리 한 방에 묻혀버린다. 큰 목소리가 가짜란 게 드러나도 더 큰 소리를 내면 상관없다. 이런 판국에 누가 논리 와 팩트에 공을 들이겠는가. '아니면 말고'는 퇴장해야 한다.

-한국인들(남북한)은 너나없이 제국주의 비판에 열을 올린다.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제 욕을 해대는 북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남한 사람들도 그에 못 지않다. 대신 미제가 아니라 일제다. 북한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이견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이 문제만큼은 총화단결 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국 근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 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음모의 산물이고, 메이지 정권 수립 (1868년) 당시에는 일개 약소 농업국에 불과하여 제국주의를 하고 싶어도 할 능력이 없었던 일본은 이미 이때부터 '일제' 다. '일제'는 강화도조약(1876년)부터 한국병합(1910년)에 이르 기까지 한반도 침략을 치밀하게 기획하여 결국 실현해냈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이런 시각은 일본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격변의 40년 동안 일관되게 대외 방침을 유지하고 부동의 실천력으로 다른 나라를 집어삼켰으니, 이런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강화도조약 당시 일본은 정한론을 주장하던 국내의 반정부파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 어떻게든 조 약을 성사시키려고 허둥댔고, 조선의 외교 관료들은 무능했다 고만은 매도할 수 없는 교섭력을 보여줬다. 강화도조약의 내 용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불평등하지만은 않았다(서울대 김종학 교수 등의 설). 이때부터 적어도 청일전쟁까지 일본은 능 수능란하게 한국병합을 착착 추진한 것이 아니라 갈팡질팡, 우왕좌왕했다. '일제'를 규탄하려다 본의 아니게 일본을 '무소불위의 능력자'로 만드는 이런 시각은 자연스레 당시 한국인 들의 대응을 '예정된 실패'로 왜소화시켜버린다. 침략에 대한 일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다가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민족적 자긍심이 아 니라 패배주의와 콤플렉스다.
패배주의와 콤플렉스는 희한한 현상을 유발한다. 제국주의 라면 핏대부터 올리는 사람이 '대쥬신제국' 운운하며 한국사에 제국을 만들지 못해 안달한다. 이들이 날조한 '조선 제국'은 산둥반도 백제 진출설, 일본열도 삼한 진출설을 넘어 이따금 중앙아시아로도, 심지어는 동유럽으로도 확장한다. 이런 사이비 역사학은 조소와 함께 비교적 쉽게 치지도외置之度外 할 수 있다. 문제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사이에 폭넓게 잠재되어 있는 '제국에 대한 은밀한 욕망'이다. 오래전 페이스북에 쓴 적이 있지만 과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고려 관련 전시 는 고려가 가끔 자칭한 '황제국', '천자국'에 대해 과도하게 집 착했다. 내가 볼 때 하나의 '소극笑이었던 대한제국' 수립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심성도, 또 '만주 고토 회복' 운운 에 대해 대중적 인기가 여전한 것도 한국인들이 제국·제국주 의를 비판하면서 내심 그리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 2017년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어 전임 대통령이 연이어 구속되었다. 그와 함께 대통령직, 혹은 국가원수의 권 위도 또 한 번 큰 상처를 입었다. 권력과 분리된 권위가 제대 로 존재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권위는 늘 권력의 성패에 의 지하게 된다. 국민 대다수가 심복하는 사회적 권위가 쉽사리 형성되지 않는 이유다. 모든 것이 중앙으로 휘몰아쳐 올라가 는 사회에서 최고 권력은 제왕적인 힘을 갖지만, 그만큼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
중앙 권력을 향한 풍압風壓은 가히 초대형 태풍급이다. 그 풍압은 무한한 권력을 주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제왕적 대통 령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권위도 산산조각 낸다. 이런 사회에 선 안정된 권력도 고색창연한 권위도 존재하기 어렵다. 일본 의 권력자가 구름 위에 있다면, 한국의 권력자는 칼날 위에 바 람을 맞으며 서 있는 존재다. 이 풍압을 능란하게 다뤄 거대한 발전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인물을, 우리는 찾고 있다.

- 일본에서는 혐한 분위기가 한창이다. 그 계기는 2012년 한 국 대통령이 천황의 사죄를 요구한 것이었다. 우익에게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것이다. 그 대통령은 독도에도 상륙했지만, 일본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천황 문제에 비교가 안 되었다. 독 도 문제에는 한국에 이해를 표하던 많은 일본 지인들도 천황 사죄 발언 앞에서는 등을 돌렸다. 몇 년 전 비슷한 발언을 했 던 우리 국회의장은 여러 차례 사과하며 곤경에 처했다.
일본인에게 신성불가침의 존재이니, 우리도 존경해야 한다 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천황에 대한 그들의 자세를 감안하고 계산하면서 일본을 대하자는 것이다. 독도·위안부·강제징용 문제에 아무 생각 없이 천황을 끌어들여 일본 우익을 신나게 하고 일본 내 우리 편을 내쫓을 이유가 뭐가 있는가. 우리 국 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철두철미 전략적이어야 한다. 특히 천황을 상대로는 섣부른 애국심보다는 전략적으로 그 존재의 무게를 이용할 필요가 있 다. 얕은 애국심으로 국익에 깊은 손해를 끼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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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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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 변화가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이나 지역 자영업자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이는 기후 위기가 인권, 불평등의 문제와 이어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8월 전국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폭염 민감계층 실태 조사'에서 지금 생활 공간의 온도가 적정한지, 에어컨 사용이 가능한지 여부 등을 물었는데요. 더위 때문에 저소득층이 일반집단에 비해 큰 고통을 받고 있었어요. 더위를 견디기 힘들지만 전기 료 탓에 에어컨 사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고, 더워도 그냥 참고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제가 기후 변화와 인권 문제를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저소득층 주민들의 태도였어요. 취재 전에는 쪽방촌처럼 열악 한 주거 환경에 사시는 분들은 폭염과 한파 같은 이상 기후에 화가 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체념하신 상태였 어요. 자신들의 삶은 늘 그랬다면서 그저 에너지 바우처 같은 지원이나 늘려 줬으면 좋겠다고 해요. 기자로서 당사자 목소리를 존중 해야 했지만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으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저희가 다른 식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기후 변화 문제를 심각 하다고 인식하는 사람이 일반 가정은 90%가 넘는데, 저소득층은 60%예요. 피해는 저소득층이 더 보는데 문제의식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높은 거죠. 이는 기후 위기에 관해 당사자가 직접 발 언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 도시 중산층 그리고 교육 수준이 높은 40~50대가 가장 많은 발언을 하 고, 친환경 인식도 높다는 연구가 있어요. 복지 전문가들도 기후 위기가 저소득층에게 더 치명적일 거라고 입을 모읍니다. 
- 1998년 이후부터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히로시마 원자 폭탄 31억 개가 터진 만큼의 에너지가 우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지구에 잡혀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기후 위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80만 년 동안 빙기와 간빙기가 10만 년 주기로 반복했습니 다. 이는 인간이 일으킨 100년 동안의 변화와는 달리 10만 년에 걸 쳐 일어난 변화이기에 자연스럽죠. 이때 자연에서는 1000년에 약 1도 상승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기온 상승 속도입니다. 인간은 화석 연료를 태워 지난 100년 동안 약 1도를 상승시켰습니다. 인간에 의 한 기온 상승 속도는 자연 상태일 때보다 10배나 빠릅니다. 이처럼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는 크기보다 속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기온 변화 속도가 커진다는 것은 기온 변동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즉, 극단적인 날씨가 크게 증가하여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 다. 1980년도에 전 세계적으로 약 250개 정도의 극단적인 날씨가 발생했어요. 2019년에는 그 수가 800개를 돌파합니다. 지난 40여 년 사이에 발생 빈도가 세 배 이상 증가한 거예요.
- 현재 온실가스 배출 수준이라면 기후 위험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1.5도는 2030년대에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 다. 위험을 헤쳐 나가는 것도 한계에 부딪혀 결국 파국에 도달할 수 도 있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2도는 2050년대에 일어날 수 있습니 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우리와 직접 상관없는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기후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기후 위기는 지금껏 인류가 경험한 모든 위험과 질적으로 다릅 니다. 바로 '회복 불가능성' 때문이에요. 지금까지는 아무리 큰 위 기가 있었다고 해도 지나고 나면 회복할 수가 있었어요. 안 그랬다 면 우리가 지금 여기 함께 있을 수가 없겠죠. 기후 위기는 점진적으 로 조금씩 다가오는 게 아니라 어느 날 느닷없이 급격한 변화로 다 가올 수 있습니다. 젖은 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는데 도로 표면 온도 가영상 1도에서 영하 1도로 변하면, 약간 미끄럽던 도로가 순식간 에 치명적인 도로로 바뀌죠. 이처럼 어느 순간에 전체 균형이 깨져 버리는 상태가 되는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 합니다. 티핑 포인트는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되어 버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지구 가열이 커질수록 결과가 원인이 되어 더 큰 결과 를 낳는 순환이 일어나 극단적인 기후 위기가 가속됩니다. 이러한 조짐이 지금 전 세계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 기득권 집단들은 우리나라 자연환경으로는 재생 에너지로 전력 수요를 감당 못 할 것이고, 재생 에너지 폐기물 문제가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을 합니다. 결국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불가능하므로 그 대안으로 핵 발전 확대를 주장합니다. 태양광은 위도가 낮을수록 유리한데 우리나라는 '재생 에너지의 나라' 독일보다도 위도가 무려 15도나 낮습니다. 우리나라는 풍력이 북유럽보다 작기 는 하지만 풍력 발전을 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닙니다. 보존해야 하는 농지와 산지가 아니어도 건물, 도로와 철도 주변, 주차장, 댐, 저수 지와 대륙붕 등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할 곳이 우리 국토에 널려 있 습니다. 서울시 크기만 한 면적을 골프장으로 사용하는 게 우리나라입니다.

- 우리는 내일의 위험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늘 당장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죠. 현재의 전력 공급 체계에서 핵 발전은 필 요합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할 근거는 없습니다. 핵 발 전은 미봉책일 뿐이며 대체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핵 발전은 '위험과 혜택' 수준뿐만이 아니라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도 더 가능하지 않습니다.
선진국들은 화석 연료 기반의 산업을 무너뜨리고 재생 에너지 기반의 산업을 일으켜 새로운 세상에서도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합 니다. 우리나라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변화하 는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할 처 지예요. 세계 시장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합니다. 일본의 미쓰비시가 튀르키예에서, 히타치와 도시바가 영국에서 수주한 핵 발전소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이미 투자한 수조 원은 매몰 비용으로 처리 했습니다. 계속 진행할수록 더 큰 손실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재생 에너지 전환에는 수많은 난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계를 뛰어넘는 재생 에너지 기술 혁신 역시 활발합니다. 우 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정책 결정자와 지도층이 전환 시대에 흐 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재생 에너지의 현재 한 계를 넘으려는 노력과 전망에 대해서는 눈감고, 현재 한계에만 잡 혀 있기 때문입니다.

- 기후 위기는 국경을 가로질러 진행되는 전 지구적 문제이자 전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인 해결책 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기후 위기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소수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모두의 장기적 이익이 침해 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의사 결정자의 무책임이 미래 기후 위험을 발생시키지만, 미래 세대는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책임 져야 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공정하죠. 기후 위기는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일어나기에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기후 위기에서 벗 어날 수 있습니다.

-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므로 자연을 해치는 문명이 결국 인간을 해칩니다. 기후 위기보다 인간에게 더 제한을 가하는 지배적인 조 건은 없어요. 우리가 10미터 높이에서 낙하한다고 가정해 보죠. 너 무 위험하니 중력 가속도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타협할 수 없습니 다. 자연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죠.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지금껏 달려왔던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가 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기후 위기는 문명 자체의 위기이므로 해오던 방식대로 하면 미래로 갈 수 없어요. 지금 세대가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그만큼 우리 세대의 책임 이 큽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해방적 파국'을 말했습 니다. 우리 앞의 파국은 지금 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 리에게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어쩌면 기후 위기라는 계기가 지구적 공론과 연대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 소득 수준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살펴보면, 전 세 계 상위 10% 소득 계층의 소비 기반 배출량이 대략 50% 차지합니 다. 이 사람들이 사서 쓰는 물건 만드느라 그만큼의 탄소를 배출한 다는 뜻이에요. 하위 50% 소득 계층은 대략 10%를 차지하지요. 쉽 게 말해 최상위 10%의 사람들 8억 명 정도가 온실가스 전체의 절 반을 배출한다는 뜻이에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많이 버는 사람들은 많이 쓰잖아요. 오늘날 소비 행위는 그 자체로 온실 가스 배출 행위입니다.
지난 1990년에서 2019년까지 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 누구의 책임일까요? 전 세계 50%의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은 16%에 불과하지만, 상위 1%의 책임은 무려 21%나 됩니다. 하위 50%의 가난한 사람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는 전등을 켜서 밤 에 불을 밝히는 일과 관련이 되어 있을 거지만, 상위 1%의 부유한 이들의 배출량 증가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더 커다란 자동차를 몰고 거대한 저택에서 호화로운 삶을 탐닉했기 때문일 겁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부유한 나라의 중·저소득 계층의 사람들만 배출량이 줄어든 겁니다. 전 세계가 증가했는데 이 계층만 배출이 줄 었어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이유를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 다. 하나는 환경적 실천들, 친환경적 생활 방식이 증가했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잖아요. 일회용품 안 쓰고, 유기농 제 품 사용하고, 걸어 다니고 합니다. 부유한 국가들의 중산층들이 그 렇게 탄소 배출을 줄여온 거예요. 그러나 아마도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을지 모릅니다. 부유한 국가에서도 나타난 사회적 양극화 와 불평등 심화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저소득층의 임금이 하락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 탓에 소비를 하고 싶어도 못 한 결과 그 계층의 배출이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에요

- 여러분, 혹시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우주 관광'에 대해 들어 보셨어요? 옛날에는 특별한 임무를 가진 이들이 우주선에 올랐습니다. 조종사, 과학자, 엔지니어처럼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 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우주로 나갈 수 있어 요. 수백억 원 되는 비용을 내고 부자들이 우주 비행선에 타기 시작 합니다. 그중에는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있었어요. 우 주선 발사장에서 우주로 올라가는 데까지 11분 걸립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량이 75톤이나 됩니다. 참고로 한국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이 1인당 14.7톤입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뤼카 샹셀은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극단적인 부는 극단적인 오염을 가져온다."
이제 한국 이야기를 해볼까요. 2021년 작성된 '한국의 소득 및 탄 소 불평등 현황'이라는 자료를 보면 상위 10%가 가져가는 소득 비 중이 계속 늡니다. 1980년에 32%였다가 2000년대 이후로 46~47% 까지 늘어났습니다. 앞서 전 세계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2% 를 차지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아직 괜찮은 건가 요? 한편 소득 하위 50%는 1980년에 23%였다가 지금 한 16% 정 도까지 내려갔습니다.
- 양극화의 심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현상이에요.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불평등이 완화되고 있었습니 다. 국가가 세금으로 부를 재분배하고 복지 정책도 적극적으로 펼 쳤어요. 그러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소위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작은 정부, 기업의 자유, 무역의 자유가 강조되죠. 쉽 게 말해 돈 버는 데 방해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후로 복지는 줄고 양극화는 심해집니다.
한국도 이런 흐름과 비슷하게 가죠. 그 결과 빈부 격차는 물론 탄 소배출 불평등도 강화됩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인당 평균 배출량이 14.7톤인데 상위 1%가 배출하는 양이 180톤입니다. 
- 한 사람 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각성해서 지구를 살리자는 건 신 화에 불과합니다. '너, 배달 음식 시켰어? 지구를 생각해.' 흔한 캠 페인 내용이잖아요. 물론 이런 홍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해요.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해, 혹은 신분 상승을 위해 끊임 없이 경쟁합니다. 이런 심리적·사회적 압박은 더 많은 소비로 치 닫게 해요. 내가 저걸 못 사면 왠지 뒤처지고 불행한 기분이 들어 요. 쫓기듯이 소비합니다. 그래서 소비주의의 압박 자체를 전반적 으로 낮춰야 한다고 거예요. 그래서 히켈은 다소 급진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최고 부유층들의 소득을 줄이는 모든 정책은 생태적으 로 효과가 있다고 얘기해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말한 부유세 같은 것도 여기에 해당하겠죠. 결론적으로 최상층의 구매력 감소는 그 자체로 탄소 배출 감소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기후 위기의 해법은 평등이라는 겁니다. 평등한 사회가 탄 소 배출을 줄인다는 거예요.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소비와 지출이 많이 줄 었어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동차, 가전제품 지출이 상승했어요. 주로 부자들이 많이 샀습니다. 다들 집 밖에 안 나올 시기였잖아요.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고 돈을 쓸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차도 사고 가전제품도 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런 품목은 탄소 배출이 많습니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전 체 탄소 배출량은 줄었지만, 상위층은 오히려 더 많이 배출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국에 전 세계 최고 부자들은 돈을 더 많이 벌었어요. 재난이 절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또 한번 확인 할 수 있었죠.
- 그런데 누군가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면서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녹색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시스템을 유 지하면서 기후 위기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유럽을 그 증거 로 생각하죠. 실제로 유럽은 1990년을 기점으로 했을 때, 지속적으 로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시기 동안 온실가 스 배출량은 떨어뜨렸죠. 딱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세상에 이보다 좋 은 결과가 없어요. 과거 화석 연료를 펑펑 쓰면서 경제 성장을 추진 해온 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전망을 보여 준 결과이니까요. 그야 말로 '녹색 성장'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는 비밀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유럽이 자 신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떠넘긴 결과라는 거예요. 유럽 국가들은 지금 제조업이 별로 없어요. 그럼 제품들은 어디에서 만들까요?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만들어요. 당연히 온실가스도 만든 쪽에서 발생시킵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에서 배출하여 만들어진 수입품을 쓰기 때문에 자신들의 배출량이 줄어든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겁 니다.
유럽의 깨끗함은 많은 개발 도상국한테 오염을 떠넘긴 결과입니 다. 탄소 제국주의니 탄소 식민주의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입니다. 만약 이런 '오염 떠넘기기'가 없었다면, 유럽이 경제 성장 을 하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래서 녹색 성장 전략 자체가 전 지구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씀 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유럽을 대신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 계의 공장' 중국도 '녹색 성장'을 한다면, 지구상의 다른 나라에게 전가하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 끊임없이 화석 연료를 채굴해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사이클이 지구상에서 반복되는 한 기후 위기 극복은 불가능합니다. 일부 지역에서 온실가스를 줄인 것처럼 보여도 지구 전체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학자들의 딜레마도 여기에서 비롯해요. 전 세계 경제 성장률을 2~3% 정도 유지하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여서 지구 상승 온도를 1.5도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나 애를 먹 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형적인 대책이 나오는 거예요. 전 세계 농토를 밀어서 숲을 만든다든지 우주에 인공 그늘막을 만든다든지, 이런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입니다.
답은 이미 있습니다. 물질적 생산 자체가 줄어드는 방식, 소위 탈 성장이라고 불릴 만한 방식의 시나리오를 개발해야 해요. 경제 성 장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던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벗어나야 기후 위기 극복이 가능합니다. 또 그래야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불평등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동의하 고 있어요.
- 그러면 인간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을까요? 지난 80만년 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분석해 보니까, 그래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해요. 대략 10만 년을 주기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변 화를 했고, 그에 따라서 지구 온도도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했습니 다. 인간이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도 자연 상태에서 농도가 올라갔 다 낮아졌다 했다는 뜻입니다.
인류가 없던 시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구는 거대한 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섯 개의 판이 계속 떠다녀요. 과거에는 하나의 거대 대륙을 형성했다가 떨어져 나왔다가 뭉치기를 반복했습니다. 대륙 운동이 활발할 때는 화산 활동이 빈번해집니다. 바로 이것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게 돼요. 지구 온도도 함께 상승하면서 온난기가 찾아옵니다. 그러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시 줄어듭니다. 이유는 풍화와 침식 작용이 에요. 여러분 교과서에서 배웠죠? 암석이 풍화, 침식되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가져가요.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지구 온도 는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주기적으로 반복합니다.

-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과거 200만 년 동안의 기후환경을 복원해 그에 따른 지역별 인구 분포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기후 위기를 못 막으면 인류 대이동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점점 줄어들잖아 요. 그런데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외부인이 자기 땅 에 들어와서 사는 걸 쉽게 허락할 리가 없잖아요. 분쟁이 생길 수밖 에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기후 위기에 취약한 지역을 1등부터 25등까지 순위를 매겨보니까, 그중 13개 지역이 내란 상태입니다. 난민이 많이 생겼죠. 이 사람들 지금 다른 나라에는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독일처럼 잘 받아 주는 나라도 있지만 대부분 소극적입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8년에 제주도로 예멘 사람 500명이 난민 신청을 해왔을 때 반대 여론이 상당했어요. 그러니까, 생각만큼 이동이 쉽지 않아요.
- 우리나라 전기차 이용 실태를 조사해 보니까 평균적으로 내연기관차 이용자보다 전기 차 이용자가 주행 거리가 많습니다. 아이 오닉 전기 차를 기준으로 1년에 2만 5000킬로미터 정도 탑니다. 전 기를 한 달에 약 388킬로와트를 사용해요. 그런데 전기 1킬로와트 만드는 데 약 840그램의 이산화탄소가 나옵니다. 천연가스로 만들 면 420그램이 나오고요. 그래서 제가 계산을 쭉 해보니까 결과적 으로는 아이오닉 전기 차를 쓰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1년 동안 배출 하는 이산화탄소량이 2.5톤이 나옵니다. 반면에 내연 기관차인 아 반떼를 1년 동안 1만 킬로미터를 탄다면 약 1.3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요.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전기 차를 타는 사람이 내연 차 타는 사람보다 배출량이 더 많아요. 그래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재생 에너지를 쓰는 전기 차여야 하는 거예요. 수소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료인 수소에도 종류가 있어요. 재생 에너지인 태양광, 풍력을 이용해서 물 분해를 해서 나온 수소는 '그린 수소' 라고 합니다. 이걸 사용하면 당연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 어요. 그런데 부생수소라고 해서 석유 화학물이나 철강 등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많이 써요. 이건 따로 설비를 만들 필요 가 없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낮습니다. 1킬로그램을 얻는 도중에 이산화탄소가 10킬로그램을 배출해요.
지금 상태라면 수소를 쓰면 쓸수록 탄소 배출이 늘어요. 그럼에 도 전기 차와 수소 차를 키우는 건 일단 시장을 만들자는 차원이에 요. 그다음에 재생 에너지 비율을 높이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정 책의 면면을 보면 기후 변화 대응이라기보다는 관련 산업 키우기 의 측면이 커요.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면서 영국 시민들 처럼 의회에 가서 입법권을 요구해야 할 지경입니다.

- 다시 '핏포55' 이야기로 돌아오면, 수송에서는 내연 기관 금지가 있었고요. 그다음에 항공 산업 같은 경우에는 기본 배출권을 안 주 기로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운행하려면 무조건 전부 다 배출권을 사와야겠죠. 그런 데다가 유럽으로 향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 가 능한 항공 연료 혼합을 의무화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 연료 같은 게 여기에 속하는데요, 이런 연료는 값이 세 배나 비싸요. 기업 입장에서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그다음에, 항구에 배 들어오는 배가 있잖아요. 이건 총량을 딱 정합니다. 이제 세계 여러 나라 물 건을 대량으로 실어 나르던 '자유무역'의 시대가 끝나가는 거죠.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는 쓰레기 소각장도 짓는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이 격렬 하게 반대하죠? 그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면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같은 곳에서는 7000억을 들여서 소각장 을 짓는데 소각장 위에 스키장을 설치하고 기술로 연기도 다 잡아 버리기 때문에 냄새도 안 납니다. 덴마크의 아마게르 바케 열병합 발전소의 이야기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소각장이 주는 피해를 모 르고 지내요. 주변에는 카페 시설도 많고 해서 오히려 관광 명소가 돼 있거든요. 오스트리아에는 지하철 바로 옆에 소각장이 있습니 다. 일본도 그렇고, 외국의 쓰레기 소각장은 음악관, 미술관 등 문 화 시설이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 지금 태양광 발전은 대기업 중심입니다. 주민들이 출자자로 참 여하는 시민햇빛발전소와 같은 소규모 사업자들이 역할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신·재생 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RPS)를 도입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 사업자에게 일정량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의무화 한 거예요. 따라서 한전은 일정량의 재생 에너지를 구입해야 해요. 그런데 입찰로 재생 에너지를 구매하기 때문에 대규모 투자로 가 격을 낮출 수 있는 대기업이 유리합니다. 이렇게 하는 나라는 전 세 계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두 군데밖에 없어요. 다른 데는 전부 다 고정 가격제입니다. 그래야 안심하고 재생 에너지 사 업을 시작하죠. 결국 여기서도 시장 논리로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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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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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술 혁명

사회 2024. 3. 25. 07:30

- “선을 계획하면 악이 방해한다. 선은 비효과적이지만, 악은 효과적이고 완강하다.” (디에고 우르타도 데 멘도사 Diego Hurtado de Mendoza, 1503~1575)
- “과거와 현재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역사가 인간의 계획을 얼마나 손쉽게 따돌리는지 감탄하게 된다." (타키투스 Tacitus)

- 기원전 2세기 초반, 로마는 사회적 타락을 막으려고 과도한 소비를 금지하는 사치 금지법을 통과시켰으나 의도했던 효과를 얻지 못했으 며 로마인들은 계속해서 타락해갔다. 기원전 1세기 초반, 로마가 정치적 으로 불안정해지자 루시우스 코넬리우스 술라Lucius Cornelius Sulla는 자신 의 군대를 이용해 수도를 점령하고, 반대파들을 처형하고, 안정적인 정부 를 복구하고자 개혁 정책들을 펼쳤다. 하지만 술라가 “합법적인 정부를 수호하던 사람들을 죽이고, "귀족정을 꽃피우게 했던 공공 봉사 정신과 는 정반대 성향의 무책임한 사람들로 원로원을 채워 넣었기 때문에 상 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로마의 정치 체제는 계속해서 망가져 갔으며, 기원전 1세기 중반에 이르러 로마의 공화정 전통은 사실상 무너졌다.
-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국제기구를 통해 전 세계에 원자력에 관련 지식과 물자를 나누어 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 Atoms for Peace" 정책을 추진했다. 1957년, 평화적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증진하기 위해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가 설립되었고, 1968년 UN총회는 “핵확산 방지" 조약에 서명해 핵무기 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국가들에 원자력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을 승인했다.22 이 정책 관계자들이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봤다면, 국가 들은 대개 조약이 자신에게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때만 조약을 지키며 그 마저도 금방 어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을 추 진한 사람들은 국가들이 원자력 기술을 전수받으면 너무나도 고마운 나 머지 원자력 기술을 평화적 용도로만 사용할 것이며, 역사적으로 파괴적 인 무기 개발의 원동력이었던 권력에의 욕망과 치열한 경쟁을 영원히 중 단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 따라서 인류가 역사를 통해 얻은 경험과 인간 사회의 복잡성, 혼돈이론, 논리적 역설들을 고려하면 인간 사회는 절대 자기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으므로 어떤 형태의 사회도 자신의 미래를 장기적으로 계획 할 수 없다.
이 결론은 특이하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다. 지식인 들은 옛날부터 인간 사회가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스턴Robert W. Thurston은 이렇게 적었다. "어떤 정부도 국가를 물 리적으로 완벽하게 관리할 수 없었으며 중앙 정부가 내린 결정에 따르 는 부작용들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실패한 노력과, 실현되지 않은 열망과, 실현되었으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던 소망들의 이야기이다."
노버트 엘리어스 Norbert Elias는 이렇게 적었다. "전체로서의 실제 역사의 경로는... 누구의 의도도, 계획도 아니다. ... 문명은... 맹목적인 움직임이며, 관계망의 역학의 자율성에 따라 움직인다. 
- "우리가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이상'이 무엇인지 누가 정하는가?"라 는 질문에 인류가 보편적 합의를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890년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역사의 최종 결과는 언제나 수많은 의지들의 투쟁 결과로서 결정된다. 각 각의 의지는 삶을 결정하는 수많은 조건을 통해 형성된다. 세상에는 무수 히 많은 힘이 교차하고 평행하며 여기서 역사적 사건이 태어난다. 다른 측 면에서 보면, 전체로서는 무의식적이고 누구의 의지도 따르지 않는 하나 의 힘으로 볼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은 다른 모든 이들의 의지에 반해 움직 이며, 그 결과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 등장한다.
- 노버트 엘리어스는 맑스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엥겔스와 대단히 유 사한 주장을 했다.
서로 협력하거나 반목하는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이익과 의도가 엮어진 결과, 누구도 계획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은 무언가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두의 의도와 행동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모두가 특정 정책에 동의해도 "공유지의 문제" 때문에 정책 을 효과적으로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유지의 문제”는 모두가 따르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각각의 개인에게 있어서는 따르지 않는 게 이익일 때 벌어진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가 세금을 내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으나 개인에게는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이 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금을 자진해서 내거나 초과해서 내는 사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예상되는 반론은, 바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 체제가 존재 한다는 것이다.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결정들은 수많은 의지들 의 투쟁 결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거 등의 방법을 통해 공적으로 권 력을 부여받은 소수의 정치지도자들이 개인들에게 전체의 복지를 위한 행동을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식으로 내려진다. 소수의 정치지도 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공유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정치지도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지도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으므로 사회 발전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
-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는 이렇게 불평했다.
재무부는 너무나 방만하고 관습에 젖어있어서, 재무부를 움직여 내가 원 하는 결과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재 무부는 국무부에 비하면 양반이다. 무엇 하나라도 바꾸기 위해서는 외교 전문가들을 하나하나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재무부와 국무부를 다 합쳐 도 해군에 비하면 양반이다. 제독들을 상대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다는 것 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해군을 바꾸는 것은 마치 깃털 침대에 주먹을 휘 두르는 것과 같다. 왼쪽 주먹과 오른쪽 주먹을 번갈아 가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휘둘러도, 그 빌어먹을 침대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된다.
- 루즈벨트의 후임자,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권력이 얼마나 강한지, 최고통수권자가 얼마나 강하 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든다. 경험자로서 말해주겠다. 미국 헌 법과 미국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은 강한 권력을 가질 수도 있 다. 하지만 대통령의 핵심 권력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원래 설득하지 않았 어도 해야 했을 일을 하게끔 설득하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 그게 바로 대통령의 권력이다.

- 그래도 태양 에너지는 괜찮겠죠? 그렇죠? 글쎄, 아닌 것 같다. 태양광 패널은 생명체들에게서 햇빛을 차단한다. 앞서 지적했던 바, 기술 체제는 언제나 가용 에너지가 다 떨어질때까지 확장하고서는, 더 많은 에너지를 달라고 요구한다. 만약 화석 연료와 원자력 에너지가75 기술 체제의 무한한 에너지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없으면, 햇빛이 닿는 모든 장소에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될 것이다. 태양광 패널들이 점차 자연 서식지들을 파괴할 것이고, 햇빛을 차단하고, 대부분의 생명체들을 죽일 것이다. 지 금도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멸종 위기 동식물들 의 주요 서식지였던"76 미국 서부 사막에 “대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77 2011년 Western Lands Project의 상임이사쟈닌 밸로 치Janine Blaeloch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 발전소는 공유지, 서식지를 심하 게 훼손할 것입니다." 밸로치의 예측은 사실로 밝혀졌다.그리고 기술 체제의 에너지 욕구는 무한대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기술 체제는 농경지 를 제외한 모든 지표면에 태양광 패널들을 설치할 것이며 결국 지표면의 자연 서식지들을 모조리 파괴할 것이다.
- 현재 파트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술적 세계체제가 그 논리 적 귀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두면, 지구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 등 생명체들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필자의 개인 적 의견에 불과하며 이를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기서 제 시한 사실과 주장들은 충분히 설득력 있으며, 충분한 근거 없이 우리가 마주한 종말이 지구 역사에 수차례 있었던 과거의 대멸종들보다 더 심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짓는 태도야말로 경솔한 것이다.
기술 체제의 발전이 그 논리적 귀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생물권은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며, 지금 진행 중인 여섯번째 대멸종이 공룡을 절멸시킨 백악기 멸종보다 심각하지 않다면 그것만큼 좋은 소식이 또 없을 것이다. 여섯번째 대멸종과 함께 기술 체제는 당연히 무너질 것 이며 인류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숫자는 대단히 작을 것이다.
하지만 앞선 진술의 유보조항, “기술 체제의 발전이 그 논리적 귀 결점에 도달하도록 내버려 둔다면"에 주목하라. 필자는 가끔 이런 질문 을 받는다. “기술 체제가 어차피 스스로 무너진다면, 뭐하러 무너뜨리나 요?" 당연히 기술 체제를 지금 제거하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 문이다. 기술 체제가 발전할수록, 생물권과 인류는 더 큰 피해를 입을 것 이고, 지구가 죽음의 행성이 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 "두 개 이상의 모순이 존재하는 복잡 과정을 연구할 때는, 가장 주된 모순을 최선을 다해 찾아내야 한다. 일단 주된 모순이 해결되면, 모든 문제들이 동시에 해결된다.” (마오쩌둥)
“목표가 단순해야 인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언제나 명쾌한 거짓말이 불분명진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것이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

- 1949년 3월, 중국 공산당이 승리를 앞두고 있을 때 마오쩌둥은 경고했다.
승리와 함께, 오만함, 영웅심리, 타성, 무사태평함이 당 내부에 자라고 있다. 동지들은 반드시 겸손하고 신중하게 남아있어야 하며, 오만함과 경 솔함을 경계해야 한다. 동지들은 반드시 검소하고 투쟁적 삶을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마오쩌둥의 경고는 무의미했다. 이미 1957년 그는 불평했다.
최근 우리 동지들 사이에 인민과 희로애락을 함께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려는 위험한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 정권은 그 부패로 악명높다. 당원들과 관료들은 공산주의 이상보다는 그들의 경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중국 정부 내 부는 노골적인 부정행위로 가득차 있다.
-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나기 직전, 토마스 제퍼슨은 이렇게 적었다.
모든 법률적 기본권들을 수정할 최적의 시간은 우리 지도자들이 정직하 고 우리가 단결하고 있는 지금이라는 사실을 몇번이고 지적해도 지나치 지 않다. 일단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끝나자 마자 13개 주 사이에서 신생국가가 분열될 정 도의 불화와 다툼이 터져나왔다. 1787년 헌법 제정을 통해 미국 혁명가 들은 연방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으나 1798년 반자유주의적 법률 이민- 소요죄법 Alien and Sedition Acts  제정은 기존 혁명가들도 혁명적 이상을 잃 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존 혁명가 대부분이 죽고난 후 미국 정치에 는 일말의 이상도, 진실성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수십 년 후 기술 진보로 인해 인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어 선진국들이 심각하고 만성적인 실업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고 가정해보 자. 46만성적 실업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할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반드시 기술 체제의 존속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위기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분노한 사람들이 2011년~2012년 스페인과 그 리스에서 발생한 것과 유사한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으나, 이것은 비조직 적인 절망감 분출에 불과했으며 거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비효과적이었던 스페인, 그리스 폭동을 2011년 이집트의 “아랍의 봄”과 비교해보자. 아랍의 봄은 지적인 지도자들이 대중의 분노를 활용 해 권력구조로부터 중대한 양보를 얻어냈다. 결과적으로 이집트 혁명은 실패했으나 지금의 논점과는 무관하며, 요점은 유능한 혁명가들이 대중의 분노와 절망을 이용해 유익한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반기술 혁명가들은 권력구조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것에서 만족해서는 안되며, 권력구조를 무너뜨려야 한다. 위에서 가정한 것처럼, 기술적으로 진보한 국가들이 만성적인 실업문제에 시달리게 된다면 여 전히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일자리를 잃을까봐 겁에 질려있 을 것이며 기술 체제에 대한 존중을 상실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직업 을 최대한 오래 붙잡을 궁리만 할 것이며, 실업자들은 냉소에 빠지거나, 분노하거나, 절망할 것이다. 광범위한 폭동이 발생한다면 권력구조는 압박을 받겠지만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잘 준비된 혁명가들은 분노하고 절망한 사람들을 조직하고 지도해서 단순 폭력 사태를 넘어 유의미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 유의미한 행동은 추측의 영역일 수밖에 없지만,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반기술 혁명가들이 이집트인들처럼 권력구조에게서 양보를 받아낼 수도 있을텐데, 이집트와의 차이점은 그 양보가 너무나 중대해서 권력구조가 큰 수치심을 느끼리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권력구조 구성 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권력구조 내부에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유발 시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일단 이 단계에 도달하면, 권력구조를 붕괴 시킬 전망은 밝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시나리오는 설명을 위해 제시한 가상의 사례임을 명심하자. 현실의 혁명은 전혀 다른 노선을 걷게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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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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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테러범

사회 2024. 3. 25. 07:29

- 플라스틱 오염과 벌이는 전쟁, 그리고 생산량을 두 배로 늘 리려는 막대한 투자. 이런 불편한 모순에서 관심을 돌리려면 교 란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 40년 동안 재활용이라는 최후의 교 활한 계략을 내놓았다. 일부 미국 산업체 경영진은 재활용을 촉 진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죄의식을 덜어 주고 소비에만 집중하도 록 장려하기 위해 그들이 고안해 낸 전략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 했다. 실제로, 발표된 기적은 신기루에 가까웠다. 1950년 이후 생 성된 플라스틱 쓰레기 가운데 단지 9퍼센트만이 재활용되었으 며, 12퍼센트는 소각되었고,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자연 속에 버 려졌다. 제조업체는 재활용을 열렬히 옹호하고, 다수의 비정부기 구NGO는 완전히 혼란에 빠진 소비자에게 재활용은 성공할 수 없 다는 걸 설명하려고 애쓰는 전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 석유 산업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산업도 의혹을 바꾸고 조작하는 데 능숙하다. 의혹을 방어하려고 이 분야에서 펼치는 로비는 꽤나 강력하다. 플라스틱은 새로운 담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석면이 될 것인가? 담배가 20세 기에만 1억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동안 반세기에 걸쳐 담배 회사 는 담배의 유해성을 부정하고, 이 산업이 계속 번창할 수 있도록 담배와 폐암의 연관성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전략을 펼쳤다. 19세 기 후반에 널리 사용되었던 석면을 생산한 업계도 길을 열었다. 1930년에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석면 먼지와 폐 질환 사이의 <반박할 수 없는 연관성>이 드러났다. 업계는 알고 있었지 만 직원들에게 계속 이 사실을 숨겼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그 속임수를 폭로하기 위해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었다. 플라스틱 테러범들은 그 피고석에 앉게 될까?

- 수천 가지의 폴리머가 발명되었지만, 단지 여섯 가지가 시장의 90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 그것들은 모두 열가소성 플라스틱으로, 새로운 용도를 위해 다시 녹일 수 있다.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 렌, 폴리스티렌, PVC,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직물에 사 용되는 합성 섬유(나일론, 폴리에스테르 등등)가 그것이다. 그러 나 각각의 물질은 추가하는 첨가제에 따라 수천 가지의 제형을 생성한다. 폴리에틸렌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폴리에틸렌이 있다. 일곱 번째 폴리머는 폴리우레탄인데 이것도 비교적 널리 보급되어 있다. 제조업계에서 많이 사용하며 신발 밑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6종의 플라스 틱과는 달리 폴리우레탄은 열경화성 수지라는 다른 범주에 속한다. 

- 플라스틱 제조업계가 그렇게 투자를 한다는 건 시장이 있다는 이야기다. 기후 보호가 비상사태가 되고 열을 동력으로 하는 자동차가 사라지려는 세상에서 그들은 화석 연료가 반드시 새로 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맹신 하는 재료가 계속 세상을 뒤덮고 자신들의 미래를 보장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계산은 단순하고 정확하다. 더 많은 사람 과 더 많은 수입은 곧 더 많은 플라스틱을 의미하는데, 특히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그렇다. 10년 전부터 연간 4퍼센트씩 성 장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면 향후 30년 동안 2~4퍼센트 성 장이 가능하다.
미국 화학협회가 의뢰한 연구는 포장재를 많이 소비하는 온라인 상거래와 음식 배달의 지속적인 증가, 플라스틱이 편재하는 (변기, 파이프 등) 분야에 해당하는 개발도상국의 <화장실 혁명>, 주택 단열재, 전자 장비나 태양 전지판처럼 에너지 전환에 필수 불가결한 플라스틱 재료 등을 통해 그런 예측이 타당하다는 걸 증명했다. 영국의 시장 조사 회사 IHS마킷IHS Markit의 연구 사무 소는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중산층이 증가하면서 스포츠와 여 가활동에 비용 부담이 줄어들어 기능성, 충격 내성, 중량감소가 가능해진 플라스틱 소재의 다양한 제품에 대한 소비로 이어질 것 이다. 말하자면 카약, 헬멧, 운동장, 경기장 좌석 같은 스포츠 장 비, 보호 장비, 지원 플랫폼과 설비 등 몇 가지 실례를 들 수 있 다.>" 플라스틱 제조업자들은 자사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동남아 시아, 그리고 특히 인도와 아프리카에 주력하여 가장 많이 투자 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신흥 중산층이 <생활 수준의 향상>을 추 구하며 점점 더 도시화가 진전되고 있는 곳이다.

- 배럴당 10~80퍼센트를 플라스틱 생산에
결론을 말하자면, 정유 업체들은 대개 원유 배럴당 10퍼센트 미 만에 해당하는 양을 우선 플라스틱 생산을 위한 화학 유도체로 전환했지만, 현재는 40~80퍼센트 수준으로 추출할 수 있는 새로 운 공정을 실험하고 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시장 조사 업체 IHS마킷은 이것을 배럴당 수익성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혁신 적인 기술>로 보고 있다. 엑손모빌이 운영하는 이런 종류의 정유 소중 하나는 이미 싱가포르에서 가동되고 있다. 인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대 다섯 배 크기의 정유소가 건설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너지 대기업 사우디아람코는 이런 새로운 기회를 개발하려고 향후 10년에 걸쳐 1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 획을 세웠다. <화학 제품의 놀라운 성장은 우리에게 근사한 기회 의 창을 제공한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창구는 신속하게 행동하 는 사람들에게만 최고의 혜택을 줄 것"이라고 사우디 아람코는 내다보았고, 행동으로 옮겨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의 미래를 보 장받기 몇 달 전, 2018년에 플라스틱 챔피언인 동료 기업 사빅을 장악했다.
- 모래와 화학 물질이 담긴 물을 땅속에 주입하여 천연가스를 추출 하는 수압 파쇄법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이 기술을 사용하면 극 도로 심각한 오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심각한 메탄 누출이 일어 난다. 메탄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메탄이 대기에 유출된 후 첫 20년 동안 온난화를 발생시키는 능 력은 이산화탄소의 그것에 비해 80배에 달한다. 그리고 2008년 이후 대기의 메탄 농도가 급증했는데, 북아메리카의 셰일가스 추 출과 함께 등장한 현상이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생태학자 로버 트 하워스Robert Howarth에게 이 현상은 우연이 아니었다. 2019년 그는 메탄가스의 급격한 증가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소의 사 육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에서의 셰일가스 생산이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하워스에 따르면 메탄 의 대기 유출이 셰일가스 생산량의 3.2~6.4퍼센트를 차지하며, 지난 10년 동안 기록된 새로운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의 35퍼센트 에 기여했을 수 있다. 유독성을 띠는 데다 지진 발생의 원인이기 도 한 파쇄법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되거나 중지되었다. 

- 상징적인 물건이 되어 버린 비닐봉지는 화석 에너지로부터 비롯된 기적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간혹 폴리프로필렌으로 만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폴리에틸렌으로 만든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되는 폴리머인 폴리에틸렌은 뜻하지 않은 실수로 발명 되었다. 1933년, 영국의 화학자들이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흰 색의 밀랍 같은 잔여물을 얻게 되었는데, 이 물질의 성질이 아주 주목할 만한 것으로 드러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은 통신 케이블을 강화하려고 비밀리에 폴리에틸렌을 사용했고, 그 결과 독일보다 한발 앞선 위치를 점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첫 번째 성공은 훌라후프다. 1958년, 폴리에틸렌은 소녀들의 허리주변을 열광적으로 도는 유색의 원형 틀을 만드는 데 쓰였다. 훌 라후프의 열광적인 인기는 이후에 재미는 덜하지만 돈벌이는 훨 씬 더 잘되는 비닐봉지로 이어진다. 1950년대부터 몇몇 기업이 이런 유형의 포장재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1965년에 스웨덴 회사 셀로플라스트Celloplast가 멜빵 형태의 손잡이 두 개가 달린 일체형 주머니의 특허권을 소유하게 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 해진 그 비닐봉지다. 이 신제품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 다. 비닐봉지는 불과 몇 년 만에, 한 세기가 넘게 훌륭하고 충실한 임무를 수행한 자신의 조상 종이봉투의 자리를 빼앗고, 재사용이 가능한 가방도 퇴장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유럽이 이 유행을 창출했으며, 1970년대 후반에는 이를 미국으로 전파 했다. 어디서나 플라스틱은 계산대에 등장한다. 무료로 끊임없이 말이다. 20년 동안 소비자와 비닐봉지 사이의 러브 스토리에는 거의 불화가 없었다.

- <생분해성> 봉지의 유혹에 대해 경고한다. <생분해성>이라는 용 어는 예를 들어 가정에서 퇴비를 만드는 것처럼, 자연 환경 속에 서 저절로 빠르게 분해되는 봉지를 지칭해야 할 것이다. 유엔은 <실제로 대부분의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매우 높은 온도에서만 분 해가 된다>고 경고한다. 달리 말하면 여러분의 정원이나 발코니 가 아니라 소각로에서나 분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옥수수 전분, 카사바 뿌리, 사탕수수, 지질이나 당분의 미생물 발 효물질(PHA)처럼 재생 가능한 소재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도 환경 속에서 저절로 분해되지 않으며, 특히 바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석유에서 추출한 기존 비닐봉지를 바이오 성분 의 비닐봉지로 대체한다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닐 수 있다. 유 엔에 따르면, 이는 <식량작물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기근으로 이어지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플라스틱 업계가 대 안을 늘리면서 소비자에게는 혼란만 일으킨다. 소비자는 결국 재 활용이 가능하지도 않고 실제로 생분해되지도 않는 봉지를 빈번 하게 분리배출장으로 보내게 된다.
- 플라스틱이 가볍다는 장점으로 인간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다면, 물질의 독성과 플라스틱의 환경 유출에 관한 질문은 생략하고 몇 가지 질문만 하면 되는 것이다. 플라스틱 업계가 그렇게 한다. 그러면 평가는 매우 과학적 관점에 따른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다. 「수명 주기 평가, 이건 깜깜이 블랙박스입니다. 즉 자신에게 맞는 대로 자신 이 원하는 모든 것을 넣을 수 있습니다. 연구의 진정성으로 평판 이 높은 영국 환경 단체, 켐 트러스트CHEM Trust의 이사이자 생화 학자 마이클 워허스트 Michael Warhurst는 이렇게 확신한다.
- 이런 평가 분석을 우리가 사용하는 비닐봉지에 적용해 보면, 비닐봉지가 면으로 만든 재사용 가방보다 탄소의 영향이 적다고 나온다." 제작과 운송에 에너지가 적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 만 환경 공학자이자 환경 디자인 전문 조직인 쉐이핑 인바이런먼 털 액션Shaping Environmental Action의 설립자 율리엔 부셔 Julien Boucher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결정짓는 것은 그 재료보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입니다. 면으로 만든 가방은 10년 동안 1,000번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설정이라면, 당연히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영향을 덜 미치게 되겠죠.」 업계에서 떠벌리는 비닐봉지의 축소된 영향은 오로지 <쓰레기들 이 완전히 수거되고 재활용되거나 소각되어 에너지를 생산하 라는 이상적인 시스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생산 규모를 축소 하면 기후 정책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는 플라스틱 업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유엔조차도 이 분석에 대해 경계할 것을 요구하며, 결국에는 <환 경에 가장 영향을 덜 주는 쇼핑백은 소비자들이 이미 집에 가지 고 있는 장바구니다>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 뉴저 지주는 2020년 가을, 플라스틱이든 종이든 모든 일회용 봉지를 금지하는 조치를 표결에 붙여, 이 방면으로는 가장 야심찬 법안 가운데 하나를 채택했다. 3회 위반하면 벌금이 약 4,800달러 정 도 부과된다.

- PVC 같은 폴리머에는, 종종 첨가제가 플라스틱보다 더 많이 들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 눈에 띄지 않지만, 첨가물의 세계 시장 매출 규모는 600억 달러 이상이다.
플라스틱의 경우 다양한 구성에서 독성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모노머: 그 자체로 폴리머를 구성한다. 폴리카보네이 트 조성에 들어가는 비스페놀A 즉 BPA가 이에 해당한다. 
*첨가물: 플라스틱에 주입하여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하고, 착색과 착향을 가능하게 하며, 열, 물, 기름 등에 내구성을 갖도록 그 성질을 변화시킨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들로는 프탈레이트, 과불화 화합물, 브롬화 난연제가 있다.
*NIAS: Non-intentionally added substances에서 나온, 전혀 끌리지 않는 이 약자는, 의도적으로 첨가된 물 질들이 아닌, 불순물 또는 제조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산물을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그 표면인데, 플라스틱 표면은 화학 물질과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세균들을 옮길 수 있다. 해양학자들은 플라스틱을 바이러스와 세균을 수천 킬로미터까지 운송하는 뗏목이라고 말하곤 한다.

- 환경 단체 티어펀드TearFund의 조사에 따르면, 개발 도상국에서는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30초마다 한 명이 숨진다고 한다. 또한 유엔에 의하면, 사업장에 서 유독성 제품에 노출되어 15초마다 근로자 한 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보건 기구WHO는 연간 인류 사망자 수의 4분의 1, 즉 1300만 명의 죽음이 환경과 관련 있다고 추정한다. 플라스틱에서 방출되는 내분비 교란물질을 포함한 독성 화학물 질이 이 사망률에 일조한다. 그럼 플라스틱으로 인한 전체 사망 자수는 얼마나 되는 걸까? 정확히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 법정에 선 과불화 화합물
사실, 이미 터졌다............. 그것은 바로 미국 파커스버그에서 판결이 난 과불화 화합물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6년에 「뉴욕타임스」 에서 냉담한 어조의 기사로 다루었고, 2019년에는 영화 「다크 워터스Dark Waters」에 등장했다. 폴리 및 퍼플루오로알킬Poly-and perfluoroalky|이란 물질은 1940년대부터 제조되었고, 영어 약자인 PFAS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물질은 과불화 화합물이라는 용 어로 분류되는데, 방수성을 가진 데다가 오염과 기름기에 강하고 눌어붙지 않는 등 기적적인 특성을 지닌 4,700개 이상의 분 자들이 그룹을 이루고 있다. 이동성이 매우 뛰어나며 거의 파괴 되지 않는 과불화 화합물은 80년 동안 환경과 먹이 사슬 도처로 퍼져 나갔다. 브레스트에 살든 보고타에 살든 그 어디에 살든 간에, 우리는 이를 수돗물로 마시고, 먹고, 들이마신다. 그리고 이 물질들은 우리 신체 기관에 축적되어 몇 년 동안 머무르게 된다. 지금은 <불멸의 화학 물질Forever chemicals>이라는 별명을 달고 과 학 문헌에 등장하기까지 할 정도다. 가장 잘 알려진 것들은 PFOA 와 PFOS로, 좀 더 난해한 말로는 퍼플루오로옥탄산 및 퍼플루오 로옥탄술폰산이다. 2015년에 200명의 과학자들은 대안으로 제 시되었던 <짧은 사슬> PFAS의 위험성을 세심히 경고하면서, <이 물질들의 생산과 사용을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과불화 화합물 제조업자들을 대변하는 미국 화학 협회 산하 지부인 불소 협회FluoroCouncil는 곧바로 반박했다. 대안 물질에 관해 표명된 우 려가 충분히 <강력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비행기, 자동차, 스마트폰>은 이런 물질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물질들이 <현대 생활에 필수가 된 것뿐이라고 한다. 현대 생활에는 그럴 수도 있겠으나, 삶에서는 아닐 수 있다. PFAS는 고환암, 신 장암, 간 기능 장애, 면역 체계 약화, 생식력 감퇴 등과 연결되어 뒤죽박죽 엉켜 있다.
요약하자면, 파커스버그 사건은 미국 기업 듀폰이 코팅제인 테플론, PFOA가 함유된 대표 프라이팬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 서 나온 잔류 물질을 자연환경에 방출하자, 이로 인해 40년간 7만 명의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이 어떻게 독성에 노출되었는지 밝 혀 가는 내용이다. 또한 200년 된 기업이 <그런 방법이 위험하다 는 것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출해 버렸다>는 사실을 입증해 내는 데 성공한 로버트 빌롯Robert Bilott이라는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듀폰 그룹은 희생자들과 암, 간질환, 심장에 문제가 생긴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수억 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지자, 듀폰은 2015년에 <케무어스>라고 이름 을 붙인 새로운 독립 법인에 논란의 대상인 제품의 생산을 위탁 하는 것으로 이 문제에서 적당히 빠져나왔다. 케무어스는 PFAS 오염과 관련된 30여 개의 소송을 수습했다. 인간과 동물 건강 보 호를 목표로 하는 영국 환경 단체, 켐 트러스트의 이사 마이클 워 허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런던에서 로버트 빌롯과 마주쳤을 때,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듀폰에 파커스버그 오 염 문제에 대해 문의하면 이를 케무어스의 책임으로 돌리고, 케 무어스는 또다시 듀폰에 떠넘겨 버립니다. 참 편리하죠. 믿기 힘 들지만 이런 방식으로 기업들은 언제나 모든 책임에서 성공적으 로 빠져나가곤 합니다.」

- 토양은 해양보다 4배에서 23배까지 더 오염됐을 수 있 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앤더슨 아벨 지소자 마샤두Anderson Abel de Souza Machado는 <이 분야에 관해서는 거의 연구가 행해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얻은 결과만으로도 걱정스럽다. 플라스틱 조 각들은 실제로 세계 도처에 존재하며, 수많은 해로운 결과를 유 발할 수 있다>라고 정리한다. 주요 원인은...... 하수구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폐수에 존재하는 미세 플라스틱, 특 히 세탁기에서 나온 직물 섬유의 80~90퍼센트는 하수 처리장의 필터를 통과해 폐수 찌꺼기에 남는다. 폐수 찌꺼기들은 종종 비 료로 들판에 흘려보내지는데, 그 속에 든 수천 톤의 미세 플라스 틱도 함께 끌려가는 것이다. 여기에다 농업에 사용되는 플라스틱도 더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중 하나는 비료인데, 매 우 작은 플라스틱 껍질 속에 비료를 캡슐화하는 것은 높이 평가 받는 기술이다. 이는 비료를 토양에 서서히 퍼트리는 장점을 가 진 반면, 미세 플라스틱을 토양 속에 잔류시키고 농축시키는 단 점이 있다. 또 다른 것은 습도 유지와 잡초 방지를 위해 경작지에 덮는 비닐 덮개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폴 리에틸렌으로 된 이 비닐을 재활용하지만, 유럽 전체에서 그러지 는 않으며, 나머지 지역들에서는 더욱 그러지 않는다. 종종 방수 포는 거둬지지 않고 방치되어, 결국 토양과 섞여 버리게 된다. 일 부 파급 효과들이 이미 관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렁이들은 토양에 미세 플라스틱이 있을 때 땅굴을 다르게 판다. 지렁이의 생태 특성과 토양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라고 독일의 연구는 지적한다. 다른 연구들에서는 이 입자들이 식물 자체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한다. 그 예로 중미 합작 연구팀은 나노 플라 스틱이 식물 내에 축적될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결과는 식 물들의 발육 상태가 나빠지고 뿌리가 짧아진 것이다. 이는 식물 의 영양가치 하락과 전 세계적인 식량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이 후, 이탈리아 카타니아 대학교 연구원들은 플라스틱 미세먼지들 이 현재도 과일과 채소 속으로 침투해 사과, 당근, 상추 등을 오염 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
- 우리는 자주 로비 황금률인 <3D> 원칙을 언급한다. 영어로 <Deny, Delay, Deflect>, 즉 <부인하라, 지연시키라, 주의를 돌리 라〉다. 담배, 석면, 화석 연료 회사이건 오늘날 플라스틱 회사이 건 간에, 이 원칙을 쓰면 이미 이긴 게임이며, 더욱이 몇 년간의 수익을 절대적으로 보장한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산업계가 이 원칙을 적용했기에, 이제 3D 원칙은 꽤 많이 노출되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여전히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왜냐 하면 원칙이 절대로 저지받을 위험 없이, 무한히 반복될 수 있도 록 규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비스트들은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글자 그대로 로드맵을 따르는 일상을 수행하는 정비사들인 것이다. 3D 원칙 첫째, 부인하라. 보건 위협을 부인하 고, 과학자들을 분열시키고, 진실한 연구원들에 대한 신뢰를 훼 손하고, 안심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기 위해, 돈으로 산 진짜 내 편인 -사이비 전문가들을 동원해 연구를 완성한다. 둘째, 지 연시키라. 모든 수단을 써서 규제와 금지 조치를 지연시킨다. 끝 없이 긴 법적 절차를 진행하며, 해당 물질이 현대적 생활에 필수 적이라는 걸 주장하며, 보건 의료 기관에 잠입하고, 요청받은 자료를 제출하는 데 늑장을 부리며, 이런 자료들은 기밀이며, 경제 가 무너지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영업 기밀 에 대한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지연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 주의를 돌리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아직 존재하 지는 않지만 장차 우리 모두를 구하게 될 해결책에 대해 떠벌리 며, 언론에 거짓을 말하고, 대중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게 변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자발적 약속을 하며, 의혹, 또 의혹, 계속해서 의혹을 만들어 가며 주의를 분산시킨다. 이런 애매모호한 불확실성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동 안 기업은 대체 물질, 아마도 전과 마찬가지로 위험성을 띨 물질 을 개발하고, 그럼 다시 순환의 원점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과 화학적으로 묶여 있지 않아서 쉽게 스며 나와, 환경과 인체에 침투할 수 있다. 이 분자들은 빠져나 오면서, 일부 플라스틱에서 나는 새 제품 냄새에 일조한다. 소변, 혈액, 모유,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이 합성물은 엄청난 단점을 지 니고 있는데, 그 일부가 내분비 교란 물질이라는 점이다. 내분비 교란물질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성장에도 필수적 호르몬인 테 스토스테론 생산을 방해한다. 남성 생식력이 이례적으로 감소한 현상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 전염병학자 샤나 스완Shanna Swan 이 2017년 발표한 연구는 많은 독자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서양 남성들의 정액 속 정자 수가 불과 40년 만에 60퍼센트가 줄 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 연구자는 2021년 2월에 이 민감한 주제와 인류를 짓누르는 위협을 다룬, 『정자 0 카운트다운 Count Down』이라는 매우 기대되는 책으로 돌 아올 예정이었다. 이 흥을 깨지 않으려는 건지, 프탈레이트는 암 (특히 간암과 고환암), 비만, 당뇨, 천식의 발병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의심된다. 유럽연합은 1999년부터 DEHP와 그 동종 일부 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고, 미국과 캐나다는 2008년 이후로, 특히 장난감과 유아들이 입으로 가져가기 쉬운 물건들에 사용을 제한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발암 가능 물질>로 간주되는 DEHP는 2008년 유럽에서는 <생식에 유해한 물질>로도 분류되었다.
- 그런데 어떻게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일회용 마스크가 팬데 믹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까? 제네바 대학교의 과학사 학자 두 명이 던지는 질문이다. 마스크 품귀 현상 속에서, 브루 노슈트라서 Bruno Strasser와 토마스 슐리히Thomas Schlich는 세계 교 역의 실패보다는, 사회 다른 분야처럼 1950년대부터 소비 문화 에 사로잡힌 <현대 의학의 취약점>을 읽는다. 의료진들이 세균에 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마스크를 착용한 것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당시 미국 샌 프란시스코에서 대중이 마스크를 사용했다. 1930년대까지 모든 마스크는 천으로 만들어져서 재사용이 가능했다. 이후 일회용 종 이 마스크로 대체됐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 합성 섬유로 된 마 스크가 등장했는데, 살균 과정에서 천이 손상되기 때문에 일회용 으로 제작됐다. 슈트라서와 슐리히는 이렇게 분석한다. 일회용 마스크로 옮겨 간 것은 위생을 고려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건비를 절약하고, 공급 관리가 쉬우며, 너무나 편리한 일회용 마스크에 매료된 의료 종사자들을 향한 공격적 마케팅이 빚어낸 일회용품 의 수요 증가와 그에 부응하기 위한 업계의 열망> 때문이라고 설 명된다.
두 역사학자는 합성 섬유로 된 마스크가 전통적인 면 마스크 보다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는 당시의 연구들은 <업계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재사용 가능 마스 크는 <비교 연구에서 가장 많이 누락>되었다. 1975년, 산업적으 로 생산된 면 마스크가 포함된 마지막 테스트 중 하나에서, 실험 자는 구조만 잘 설계된다면, <4겹의 면 모슬린으로 된 재사용 가능 마스크가 일회용 종이 마스크나 합성 섬유로 만든 새로운 마 스크보다 우수하다>고 결론지었다. 일부 연구는 재활용 가능 마 스크를 세척하면 섬유를 수축시켜서 세균을 거르는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고 제안하기까지 한다. 안타깝게도, <한때 의료 장비의 핵심 부분이었던>, 신중하게 제작되고 테스트를 거친 재사용 가 능 마스크는 1970년대 이후 사라졌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마스크에 대하여 1918년에 의료 연구원들이 써놓은 것, 《마스크는 여러 번 세탁해도 되고 영구히 사용할 수 있다》를 언젠 가 다시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두 학자는 말을 맺는다.
- Tatiana Santos도 이에 동의한다. 「플라스틱 대부분은 재활용되어 서는 안 되고, 독성 폐기물로 분류되어야 합니다.」 브뤼셀에 기반 을 둔 유럽 환경국의 관점에서는, <진정한 순환 경제를 원한다면, 플라스틱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 유리나 강철 같은 금속은 더할 나위 없는 대상이지만 플라스틱은 아니다. 왜냐하면 설계 부터가 유해한 물질이기 때문이다. 석유로부터 추출되고, 불안정 하며, 수천 가지의 첨가제를 함유하고 있다.
재활용된 플라스틱은 특히 이것과 접촉한 식품을 섭취하거나 아이들이 흔히 장난감을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씹을 때 위험 하다. 이는 국제오염물질제거네트워크IPEN가 연구에서 내렸던 결론이다. 연구원들은 전자 장비를 재활용해 만든 장난감에 높 은 수치의 다이옥신과 브롬화 난연제가 함유된 걸 확인했다. 전 화기와 컴퓨터의 인화성을 낮추기 위해 사용하는 난연제는 <잔류 성 유기 오염 물질> 혹은 <POP>라고 부르는 물질에 속한다.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가장 독성이 강한 물질인 POP는 2004년 스톡 홀름협약Stockholm Convention on Persistent Organic Pollutants에 등재되었 다. 협약 채택 당시, 목록에 기재된 초기 12가지 물질에 <12개 악 당들Dirty Doze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이후로, 5개 물질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이 목록에 올라가기 위해 물질이 갖춰야 할 조 건으로는, 인간이나 환경에 유해하고, 오랜 시간 잔류해야 하며, 쉽게 옮겨 가고 먹이 사슬을 따라 살아 있는 유기체 안에 축적되 어야 한다. 이 혼합물들은 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신경계와 호르 몬에 연관한 문제도 일으키는 것으로 의심된다.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던 프랑스 정부도 <POP의 잔류성과 독성은 그 배출원에 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확산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지 않는 지 역까지 포함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보건과 환경에 위협이 된다> 라고 인정한다.
대다수 플라스틱은 재활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지만, 무슨 상 관이겠는가. 이는 플라스틱 산업계가 계속해서 플라스틱을 팔려 고 한다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다. 게다가, 제재 를 피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기업들은 잘 알고 있다.
- 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은 아직 실제하지도 않는데도, 이미 전쟁에 돌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좌측에는 산업계가, 우측에는 비 정부기구가 진을 치고 있으며, 이 전쟁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 인다. 양 진영에서는 저마다 주장에 날을 세운다. 무기를 들기 전 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명확히 확인하고 시작해보자. 재 활용을 떠올릴 때, 우리는 직관적으로 기계적 재활용, 예를 들면 하 나의 병을 다른 하나의 병으로 재활용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렇 지만 현재, 업계는 완전히 다른 방식인 화학적 재활용에 대해 떠 벌린다. 플라스틱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포장재들을 분류, 세척, 분쇄, 용해한 뒤 재사용하는 기계적 재활용과 달리, 화학적 재활 용은 폴리머를 분해하는데, 좀 더 짧은 분자 상태로 변형시켜 모 노머로 되돌리는 것이다. 열과 화학 용매를 이용하는 이 방식은 더 많은 종류의 플라스틱, 심지어 오염되거나 혼합된 것까지도 재활용할 수 있고 새 플라스틱만큼이나 질이 좋은 폴리머를 생산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술은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즉 PET(오래전부터 기계적 재활용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에 적용 이 가능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PET 내부의 모노머들을 연결하는 화학적 결합이 대체로 깔끔하게 분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 만 이건 예외적 경우이고, 〈PVC, 폴리스티렌, 폴리프로필렌과 같이 그 구조가 훨씬 《가단성>이 적은 다른 폴리머들의 경우는 훨 씬 위험할 수 있다>. 환경단체 네트워크 유럽 환경국의 화학자 장뤼크 비토르 Jean-Luc Wietor는 이렇게 경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2017년 이후로 이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세 계 곳곳에서, 특히 유럽에서는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과 시범 공 장시설의 건설이 발표되고 있다.
- 미국에 이어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두 번째로 많은 일본 의 예를 들어 보자. 이 섬나라는 연간 약 900만 톤의 플라스틱 쓰 레기를 배출하는데, 그중에서 40퍼센트 이상이 일회용 식품용기 와 포장재다. 80퍼센트에 근접하는 높은 재활용률로, 좋은 사례 로 자주 인용되는 일본은 훌륭한 재활용 수거 시스템과 국민의 철저한 준수 정신으로 평판이 높다. 그러나 소각되는 플라스틱을 제외하면, 재활용률은 실제로 2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네덜 란드의 체인징 마켓 재단은 조사 보고서에 이렇게 서술한다. 〈그 런데 이 수치도 문제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는 중국, 말레이 시아, 태국과 같은 국가로 수출되는 플라스틱 폐기물 14퍼센트가 -매립하거나 소각하거나 자연에 버려지는 게 아닌 - 재활용 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예는 <플라 스틱의 진정한 운명을 밝히기 위해서는 공개된 통계 수치 너머의 현실을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 효과적으로 재활용이나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전혀 없이 포장재를 대량수거해, 결국은 소각, 가스화, 쓰레기 수출과 같은 해결책을 쓰면서 문제를 소비자들에게 숨기면, 이후 소비자는 기업과 공권력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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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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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서

사회 2024. 3. 21. 07:22

- 평화는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현실주의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홉스는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의 본질은 이기적이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홉스의 '세계는 경쟁의 축으로 돌아간다'라는 생각은 하나의 견해에 불과할 뿐이죠. 하지만 실증도 반증도 할 수 없기에 18세기경부터 많은 사람이 홉스의 견해를 받아들였 고, 이후 이 생각은 30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우리를 얽매 어 왔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강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현실 세계는 이미 홉스가 말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원래 인간은 자신만을 생 각하는 동물이다'라는 관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현실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죠. 우리 마음속에 깃든 '생존 전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강 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원래 이기적인 인간은 내버려 두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렇게 직감한 홉스 자신은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공포와 함께 나를 낳았다'고 말했다.
그의 주문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다.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 중 하나가 학교다. 그리고 그 학교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 "스스로 규율을 지키는 인간, 교도관이 없이도 명령을 따 르는 인간, 즉 '기계화된 인간'을 만들어내는 구조라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제러미 밴덤이 발명했지. 정말 완벽한 구조야."
그는 감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죄수를 감시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면서 가장 저렴하고 우 수한 교도소. 그게 바로 파놉티콘이지. 잘 들어, 학교도 마 찬가지야. 학교는 감시 · 상벌. 시험이라는 세 가지 메커니즘의 복합체야. 규율과 훈련으로 아이들을 질서에 끼워 맞추고 교묘하게 학생 스스로 복종하도록 만들지."
저는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자주성을 끌어낸다는 교육적 배려가 사실은 규율 과 훈련을 통해 스스로 복종하는 인간이 되게 하는 권력 메 커니즘의 일부일 뿐이야. 그렇게 형성한 권력으로 사람들의 손에서 교묘하게 자유를 빼앗아 가는 거지.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현 재 질서에 복종하는 존재이기도 해."

- 저는 일리치의 절제의 사회를 집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학교는 다음의 세 가지 목적이 결합한 장소입니다.
1. 제대로 먹고살 수 있는 노동자로 만들기 위한 기능 훈련
2. 사회의 일원으로서 규율을 지키는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훈육
3. 좋은 인격을 지닌 훌륭한 인간 만들기
- 우연히 시험 성적이 좋았다, 나빴다는 말이 어느 새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나쁜 사람보다 훌륭하다'라는 상 하 관계를 만든 것입니다. 나쁜 성적을 받은 학생은 '학력이 낮다=머리가 나쁘다=낙오자' 취급을 당하고, 교칙을 어긴 학생에게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태도가 나쁘다=반항적이 라는 불량학생 딱지를 붙이는 탓에 학생들은 학교를 어려워 하거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학교가 세 가지 목적을 결합한 장소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생긴 이러한 생각이 사회 전체로 퍼진 결 과 '전문가가 아마추어보다 훌륭하다'는 상식이 굳어졌습니 다.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전문 가가 만든 제도에 완벽히 의존하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 조교 제도는 당시 최첨단을 달리던 공장의 분업 시스템을 교육에 응용한 것으로 뛰어난 효율 덕분에 단번에 유럽 전역 으로 퍼졌습니다.
이후 영국의 교육자 사무엘 와일더스핀Samuel Wilderspin이 '갤 러리 방식'이라 불리는 새로운 교육법을 개발했습니다. 계단식 강의실에 수십 명의 학생이 앉아, 정면에 있는 교사에게 수업을 받는 방식입니다. 이로 인해 교사는 모든 학생을 볼 수 있고 학생도 다른 친구들의 행동을 보며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62년 영국 정부는 이 두 개의 시스템을 결합했 습니다. 학생의 출석 일수와 학력에 따라 국가가 학교에 보 조금을 주는 제도가 생기자, 학생을 고르게 구성하는 편이 교육에 효율적이고 보조금을 받기도 쉬워 같은 나이의 아이 들로 학급을 꾸리는 '학년 제도grade system'가 탄생했습니다. 그 렇게 같은 학년의 아이들이 같은 교육과정을 함께 배우는 형 식이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21세기가 된 지금도 같은 형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 어떤 분야든 유일한 방법과 순서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보다 '인류의 지혜는 수많은 질문과 결론이 얽히고설킨 거대한 그물코 같다'는 표 현이 정확합니다.
어딘가로 도달하는 길은 무한히 존재합니다. 즉, 무엇이 기초이고 무엇이 응용인가의 경계는 없습니다. 요약하면 기초에서 응용 순서로 학습시키는 교육은 애초에 인류의 지혜 와 맞지 않습니다.
- '기초'라고 부르는 것은 기초라는 이유에서 불필요한 것들 은 빼고 핵심만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루하 고 따분한 훈련이 되기 쉽습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그 내용을 배우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초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재미없는 내용을 여러 번 반복시 키다 보니 겨우 관심이 생긴 사람까지 싫어하게 하는 문제를 일으킵니다.
다만 '기초연습'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이 기 초라고 여기는 부분을 습득하기 위한 연습'을 모두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초 연습은 동기부여가 높은 중상급자가 기능을 철저하게 익히기 위해 자신이 기초라고 여기는 부분을 철저하게 공부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기초'라는 사고방식은 배움을 '형태'에 끼워 넣으면서 재미를 없앴고 결국에는 배움이 싫어지게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초가 중요하다는 그럴싸한 말에 생각을 멈춘다. 기초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배움은 더욱 자유로워야 하고 더욱 재밌어야 한다.

- 절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 그것이 가장 편하다고 지어낸 말을 믿어서입 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이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일조차 귀찮아 단순히 지금까지 그렇 게 해왔으니까라는 습관과 규칙에 몸을 맡겨서 그렇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따르는 것은 사고를 정지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강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또한 '해야 하는' 일과 동시에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사회에 많습니다. 실패가 빤히 보이는 일을 하려고 하면 선생 과 부모, 선배, 친구들이 "안 돼, 하지 마, 실패할 게 뻔해!", "아니야, 이렇게 하는 게 좋아!"처럼 충고하거나 나무라며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입니다.
그들은 실패하면 안 되니까, 그 사람을 위해 조언할 뿐 나 쁜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실패를 사전에 막았으니, 고마워해 주길 바라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쓸 데없는 참견입니다. 더 나아가 방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이 실패에서 배울 권리를 빼앗았으니까요.
- 세상에서 말하는 '규칙'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자,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권리를 빼앗는 구조입니다.
원래 규칙이란 선인들이 맛본 다양한 실패를 바탕으로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이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유비무환의 마음 으로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말은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인간의 성 장에서 중요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며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 이와 관련해서 실패할 권리를 완벽하게 존중하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선교의 수행입니다. 선의 수행은 기간 중 전원 이 실패하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밥을 지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장작을 사용해 내일부터 밥을 지으 라며 쌀 다섯 되(약 8킬로그램)를 줍니다. 하지만 그렇게 밥을 지어본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드시 실패하고 꾸중을 듣게 됩니다.
밥 짓기뿐만 아니라 지도와 가르침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수행을 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원이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렇게 설계된 수행에 대해 선종의 승려 마쓰야마 다이고松山는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이것은 (정답을 알려주면 맹목적으로 그것만 하게 되 기 때문입니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되죠. 무조건 실패하게 만들면, 거꾸로 말해 시행착오를 겪게 하면 제아무리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성공할 수 있습니 다. 모두 실패하게 해, 모두 성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선은 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거죠.
규칙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에서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실제로 천 년 전부터 증명되었습니다.

- 사에키는 《인지과학 혁명 「」探究》 (2004)에서 "배움이 재미없어진 배경에는 놀지 못하게 삼중으로 둘 러싼 구조가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에서 '놀이'와 '일'을 구별해서입니다. 사회 의 공업화가 진행되자 사람들이 노동자로 고용되고, 손님과 거래처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것만이 일이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들 먹고살기에 급급해 놀 여력조차 없어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놀이'와 '배움'을 구별해서입니다. 약 100년 전부터 학교는 전문교육 시설로 발달했으며, 그 목적 은 아이들의 공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루한 공부만 하다 보면 금세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쉬는 시간을 넣고, 쉬는 시간만큼은 놀아도 된다는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 었지요.
- 일본의 근세사학자 시바타준의 <일본유아사 日本幼兒史》(2013)에 따르면 고대부터 에도시대 중기에 이르기 까지 사람들은 아이를 보호하거나 교육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길가에 아이가 버려져 울고 있어도 특별히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많은 아이 가 죽었다고요.
하지만 근대에 들어 아이의 교육과 복지에 관심이 높아지 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7세 미만의 아이는 '신'이며 신성하게 여겨야 한다는 '일곱 전까지는 신의 영역 55'이라는 말이 정착되었습니다. 일본인의 아이에 대한 특 별한 애정도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이죠.
어쨌든 아이와 어른을 구별하고, 놀이와 배움과 일을 구별 해 법률 등의 제도로 고정하면서 우리 사회가 메말라 갔습니 다. 이 사실을 꼭 알아야 합니다.

- 현대로 이어지는 고유의 교육 사상은 로크가 만들었습니 다. 로크는 인간을 새로운 타불라 라사라고 생각하며 "아이 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배우는 습관을 만들어줄 것, 그것이 교육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 다. 이 생각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면서 아이를 특별한 존 재'로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루소는 “자연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문명사회 속 에서 삐뚤어지지 않게 키우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말했습니 다. 그 결과 아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이론화했고, 아이와 어른을 완전히 구별했습니다.
이후 로크와 루소의 영향을 받은 오언은 '어릴 때부터 좋 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좋은 인격이 형성된다'는 생각을 바 탕으로 세계 최초로 유아학교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이어지 고 있는 학교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보호한 다는 명분 아래 아이들을 학교에 가두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 했습니다.
확실히 그들은 엄청난 혁신가였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혁신적인 생각이 안타깝게도 아이를 '어린 애 취급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순수하고 사랑 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훌륭한 어른으로 키우 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말은 '아이는 미숙하고 여리기 때문에 어른이 교육하고 이끌어줄 필요가 있다'고 얕 보는 것과 같습니다. 즉, 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시각이 매우 거만했던 것이죠.
- 어린애 취급을 한 결과 '아동의 노동은 없어야 한다'라는 대의명분 아래, 아이는 어른이 될 때까지 사회와 관련된 일 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학교 운영 에 참여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무엇이든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나요?", "아이에게 도시를 조성하는 행정에 관여할 권리가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네”라고 딱 잘라 대답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산업사회는 사람들에게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를 요구하며 무엇이든 세분 화했습니다. 그러한 성질이 선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일이 분업화되면서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전문적인 지식 과 기능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 생산성과 효율을 따지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재미없는 일만 하며 미 래에 불안을 느낍니다. 이 냉엄한 실력주의가 학교에 번지면 서 서서히 '배움'에서 '놀이'를 지워버린 것입니다.
로크와 루소, 오언이 그 시대에 떠올린 생각은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이고 의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늘어 나고 있습니다. 결코 그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 원인은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깊이 이해하지 않고 비판하려는 자 세도 갖지 않으면서 그저 사상만 따라가려는 우리의 사고정지 에 있습니다.

- 저는 능력신앙이 어떻게 태어나,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찾 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직접적인 기원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1905년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 박사와 테오도르 시몬Théodore Simon 박사가 개발한 '지능지수 IQ=Intelligence Quotient' 테스트입니다. 이 테스트에서 '지능'이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이 테스트는 지적장애 아동을 분별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심리학자 로 버트 여키스Robert Mearns Yerkes 박사가 개발한 '아미 알파/베타 Army Alpha/Beta'를 175만 명의 미군 병사 배속에 사용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의 우생학자 칼 브리검Carl C. Brigham 박사가 만든 대학입학시험용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 등에 응용되면서 기업 과 학교 등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통계적 숫자일 뿐인 능력을 사람마다 타고난 특수 한 것', '노력할수록 더욱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능력이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이를 섬기는 능력신앙이 탄생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이 자라 났습니다.
능력이 실체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신앙’으로 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사는 산업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 산업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분업'입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업무를 세분화하고 철저한 전문성을 추구합니다. 실제 로 공업 생산은 분업과 기계화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습 니다. 그로 인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전문적인 지식과 지능을 높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 람은 높은 급여를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낮은 급여를 받 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능력이 만능 통화utility가 되면서 사람들은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떵떵거리며 살듯 '능력자'가 되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죠.

- 일본의 사회심리학자 고자카이 도시아키小坂晶를 만났습니 다. 그의 저서 <책임이라는 허구任5虛構》(2008)를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며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그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행 학교 교육은 격차의 원인이 우연히 결정됐음에도 평 등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데다 순위로 노력의 결과(책임)를 떠넘깁니다. 능력 격차는 대개 우연으로 결정되지만, 이와 달리 학교는 자기책임론적 격차 정당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즉, 학교는 '모든 건 자기 책임'이라는 격차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했습니다. 로크와 루소에서 시작한 '모든 아이에게 자유 롭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드높은 이념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혹한 책임을 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격차와 불평등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사람들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몰리면서 오히려 좋아하는 것을 탐 구할 기회를 전부 빼앗기게 되는 결과에 이른 것입니다.
- 이처럼 재능은 능력과 마찬가지로 편견에 의해 내려진 외부인의 얄팍한 평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재능이 능력보다 질이 나쁜 이유는 여기에 결정론적 생각이 숨어 있기 때문입 니다.
결정론determinism이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 이 전부 자연법칙과 운명 등 무언가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 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능력신앙은 '노력을 거듭하면 반드시 능력이 높아진다'라 는 신념을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결정론보다 낫습니다. 하지만, 재능은 '노력해도 재능이 없으면 능력은 높아지지 않는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 라며 포기하게 하므로 매우 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평가'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낮춥니다. 평가가 인간의 배움을 어렵 게 만들고 그것이 재능이라는 미신을 낳아 사람들로부터 자 신감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능력이 낮은 사람을 '게으 름뱅이', '낙오자' 취급하며 불행에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보 통 평가는 '본인에게 의욕과 격려를 북돋아 줄 정도가 적당 하며 그 이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 '테스트'의 어원은 연금술사가 광석의 성분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했던 흙 항아리를 나타내는 라틴어 'testum'에 있습니 다. 이 말이 제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테스트를 의미하게 되 었습니다. 단어의 유래만 보더라도 말 그대로 '인간은 공업제품과 같다'라는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테스트는 지금까지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이 순간에도 다 양한 곳에서 까다로운 테스트가 생겨나고 있지만 저는 이것 이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계속 참아가며 한들, 테스트 성적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며 노력한다 한들,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능력이 뛰어 난 시대에 억지로 외운 내용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재미있어서 질릴 틈이 없는' 인생이 훨씬 더 즐겁 습니다. 남보다 뒤처진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꾸준히 즐기는 인생이 더욱 풍요로우니까요. 무언가를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결코 '우열'이 아닌 '개성' 이므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 니다.
- 하나의 기준으로 결과를 평가하는 대신 발상 자체나 창조 과정 전체를 응원하는 칭찬이 있으면 좋다. 이러한 자세는 성과에 대한 존경은 물론이고 행동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낳는다. 칭찬이 격려가 되고, 새로운 도전이 더욱 큰 칭찬을 낳는다. 그 끝에 다양한 장점을 인정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배움의 장소는 평가로 자신감을 빼앗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다양한 칭찬으로 용기를 채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 스스로 '우수한 기계'가 되려는 인간은 머지않아 '능력주의의 최종병기'인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만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하기보다 인공지능을 인간이 기계로 일하는 것에서 해방시켜 준 '능력주의의 해방자'라고 생각하자. 이것이 내가 인공지능을 보는 견해다. 그리고 이는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에도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 제가 능력신앙과 능력주의를 비판하고 능력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다음의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배움'에서 '놀이'가 분리되면서 모두 재미없어지게 된 것
2. '능력'과 '재능'이라는 개념이 의욕과 자신감을 빼앗은 것
3. 능력신앙과 능력주의가 쉽게 낙오자를 만드는 원인이 된 것
4. 불필요한 비관주의에 빠진 불행한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는 것
5. 마지막으로 대다수 사람의 일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는 것

- '혁신은 사전에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를 되돌아 보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기술 발명도 좋은 사례입니다. 그가 발명한 인쇄기 덕분에 독서라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와 동시에 많 은 사람이 자신이 원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안경이 발명되었습니다. 안경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렌즈 를 생산하거나 렌즈를 사용해 실험하는 사람이 늘었고, 그것 이 현미경의 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신 의 몸이 아주 작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었습니다.
즉,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현미경과 세포생물학을 만들 었습니다. 활판인쇄기술과 우리의 시야가 세포 수준까지 넓 어진 것이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왜일까?'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흥미롭게 시작한 것이 뜻 밖에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탄생시킬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는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이해하기 어려워도, 재미있고 편리 하면 조금씩 전 세계로 확산됩니다. 이것이 전체에 보급되면 사회가 변합니다. 사회가 변하면 그동안 문제로 여겨왔던 일 들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즉, 문제가 해결됩니다.
- 따라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려운 문제만 가득한 앞으 로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 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라며 실 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이른바 논리적 사고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 는 점에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생각나는 대로 질문을 던지고 자유롭게 행동 하기를 권하기는커녕 '하면 안 된다'고 제한하는 경우가 많 습니다. 거기에 불만을 제기한 사람이 학교를 자퇴하거나 퇴학을 당한 후, 자신이 원하는 탐구 여행을 떠나 획기적인 발견과 발명을 한 사례가 많습니다.
요컨대 '어떠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하는 자세의 문제입니다.
세상을 변화시켜 후대에 조금이라도 나아진 형태로 바통 을 건네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저만의 탐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주체가 된 학문은 매우 즐겁고, 설레고, 무척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 니다.
- 대답하지 마. 오히려 질문해. 본질적으로 계속 질문하고, 그 질문에 깊이를 더하는 행동을 하는 사이에 문제가 해결될 때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혁신이라고 부른다. 혁신을 일으키고 세상을 좋아지게 해 미래 세대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배움을 이어간다.

- 작은 '질문'으로 시작해 '만들어' 보고 '알게' 된다, 동시에 '모르는 것'이 수없이 생기고 거기에서 또 '물음'이 생긴다. 이를 반복하는 사이에 무언가 '형태'가 탄생한다. 무언가를 해결하면 '혁신'이라 부르고, 전에 없던 인류에 새로운 지식 을 연다면 '발명'이라 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예술'이 라 부른다.
이는 창조의 풍부한 버라이어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창조는 '칭찬'이 뒷받침되어 더욱 훌륭한 것으로 성장 합니다.

- 세간에서는 '평가'와 '사정'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사용합니다.
능력주의가 사회에 침투하면서 사람들은 돈과 시간 등 예 산에는 한계가 있으니 누구에게 얼마만큼 나눠줄지 실적 검 정과 실력 평가로 결정하자'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사회를 힘들게 합니다.
사정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준으로 활동을 수치화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면 모두 같 은 일을 해야만 합니다. 돌발행동을 하면 곤란해집니다. 즉, 평가와 사정은 '남과 다른 일을 하지 마라'라는 '또래압력 peer pressure'을 강화시킵니다.
또래압력이 강한 사회는 살아가기가 무척 힘듭니다. 남들 과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비난을 받으면 자 책을 하므로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며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합니다. 
-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해 왔 듯이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합니다. 칭찬을 받든, 욕을 먹든 무시하면 됩니다.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욕을 먹어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 습니다. 또래압력은 신경을 쓰면 쓸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주변에 압력을 가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평가는 신경 쓰지 말고 오히려 무시해야 합니다.

- 어떤 분야든 광대한 지식의 세계가 펼쳐지며, 배움에는 끝 이 없습니다. 전문가는 내용을 깊이 있게 알고, 무언가를 주 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 에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사이비 전 문가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는데 이 이상은 필요 없다'며 지 식의 체계를 과소평가하고, '나는 뭐 거의 다 알고 있어'라며 자신을 과대평가합니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만 단정 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뛰어나다'며 스스로 를 과대평가하고, 잘 아는 사람일수록 '저는 잘 몰라요'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이를 발견한 두 심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합니다.
- 진짜 전문가는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일 반인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라며 답답해하기 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결론 이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알 고 있지 않은가)'입니다. 그걸 알면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인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 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미개척 분 야에서 전문가와 아마추어는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가치판단은 전문 분야를 뛰어넘어 모든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하기에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두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매 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수한 전문가의 훌륭한 점은 바로 그것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즉, 우리는 전문가에게 "지식의 미개척 분야가 어디에 있 는가?", "상식과 다른 견해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전문가에게 묻고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생각의 범위가 좁혀 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고, 자신들만으로는 생 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전문가와 우리의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 사물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관점이 생기는 것은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똑똑한 사람이 한 말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는 맞았던 말이 다른 곳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서 온몸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 기브 앤 테이크와 같은 등가교환의 사고방식은 언뜻 보기에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세계를 굉장히 차갑게 한다.
그 세계관이 '자립'이라는 사고방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무연사회를 초래할 뿐이었다. 자립해서 자유를 손에 넣는다. 이런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되었다.

- 세상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이 메시지 자체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학교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인간을 키운다' 를 사명으로 여긴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만 한다.
거기에 학교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힌트가 숨겨져 있다.

- 바꾼 마하트마 간디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향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 자신을 바꿀 수 있으면 세상도 바뀐다. 자신의 근성을 바꾼 인간에게는 세상도 태도를 바꾼다. 이것이야말 로 가르침의 비법이다. 이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 행복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 프레이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과 대립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세상에서 일어 나는 일에 귀 기울이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세상에서 표면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의 껍질을 벗겨내기를 두려 워하지 말기. 사람과 만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대화 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 대화를 통해 서로가 더욱 성 장하기. 자신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생각하거나 인간 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혹은 반대의 의미로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해방자가 될 수 있 다고 생각하지 말기. 역사 속에 있음을 느끼고 서로 연결되어 함께 싸우기. 그런 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 프레이리는 읽고 쓰지 못하는 빈곤층에게 그들이 직접 느낄 수 있는 토론을 시작으로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한편, 그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 세상을 바꿨다.
그것은 사막에 물을 채워 숲을 만들 만큼의 엄청난 일이었다. 결국 그는 이론과 실천, 두 가지 측면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프레이리는 마지막까지 대화의 힘을 믿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을 바꾸면 상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마법이라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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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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