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은 끝없는 영혼과 같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는 덧없는 꿈과 같다. 삶은 시간과 공간의 백지 위에 의지가 그려놓은 짓궂은 그림이다. 이 그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리면, 그 뒤에 또 다른 짓궂은 그림이 그려진다.
- 시간이란 인간의 두뇌 속에 있는 장치로, 사물뿐만 아니라 허무적 존재인 인간에게 지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실재성이라는 가상을 선사한다. 과거에 행복 또는 향락의 기회를 놓쳤다고 한타낳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설령 그 기회를 잡았다고 햇도 어느 만큼이나 득을 봤겠는가! 추억은 말라빠진 미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간 그 자체는 우리에게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향락의 허무성을 가르쳐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 모든 인간의 생활은 단지 욕망과 욕망의 만족 사이를 왔다갔다할 뿐이다. 이때의 욕망은 고통일 뿐이며, 욕망이 충족되고 나면 이내 지루함이 몰려온다. 목표라혹 하는 것도 임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건을 손에 넣고 나면 이내 자극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욕망이나 욕구가 얼굴을 내민다. 이때 새로운 욕망이 나타나지 않으면 따분함이나 공허함, 지루함이 몰려오고, 이를 물리치는 일은 결핍과 싸우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 인간은 누구나 생애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행복은 오직 망상의 산물에 불과하며 괴로움만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총명한 사람들은 강렬한 향락보다 차라리 고통이 없기를 바라며, 조금이라도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입장에 서려고 한다.
-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경우는 오직 고독할 때뿐이며, 자유를 즐기는 경우 역시 나 혼자 있을 때뿐이다. 모든 사교는 반드시 부자유와 희생을 요구하며, 개성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이러한 요구를 절실히 느낀다.
-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대외적인 친분과계를 줄이고, 나아가서는 교제를 끊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독과 자아의 공허함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교와 여행, 관광을 즐기는 것이다.
- 사교는 모닥불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지혜로운 사람은 모닥불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서 불을 쬐지만, 지각이 없는 사람은 모닥불 가까이에 앉아 있다가 손을 데고는 한파 속에서 모닥불의 위험성만을 탓한다.
-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견해 차이로 다투어서는 안된다. 상대방이 믿고 있는 모든 불합리함을 납득시키는 데 투여되는 시간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우리는 그를 설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를 화나게 하는 일은 쉽지만, 그를 교화하는 것은 비록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대화가 너무 어리석어서 화가 난다면, 그 상황을 단순히 희극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라.
-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라는 말이 처세술의 절반이라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가 나머지 절반이다.
- 우리는 평온한 현재의 생활을 확실치 않은 재난의 구름으로 덮어서는 안된다. 또한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내난을 지금 당장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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