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한 용량이라는 꼼수
워싱턴대학에서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화학물질은 자극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보다 적게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각 염료의 농도가 더해지면 단독으로 들어 있을 때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가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TBP같은 물질은 피부 장벽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 몇몇 아조염료는 피부민감제이지만, 심각한 해를 끼치는 것은 염료 자체가 아니다. 많은 염료가 피부 박테리아와 접촉하면 아민이라는 화합물을 방출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아민은 발암성, 돌연변이성 및 유전 독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즉 암을 유발하고 인간세포에 유전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당신이 옷을 먹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업계전문가는 말하지만, 아조 분산염료가 집 먼지에 존재한다면 우리는 옷을 먹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성 아조 먼지가 옷에만 붙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옷에서 떨어져 나와 지안 곳곳에 존재하는 이 유독성분을 사람들은 매일 들이마시고 삼킨다.
- 19세기 소비자들이 만성 수은 노출로 고통받았는지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피로, 근력약화, 발진, 복부통증, 불면증 같은 수은중독 현상은 자가면역질환, 염증성장질환, 우울증 및 기타 신경퇴행성 질환의 일반적 증세와 비슷. 수은중독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표준증상목록이 오늘날가지도 없기 때문에 감정기복, 기억상실, 정신질환, 자살충동 같은 증세를 보이는 만성 수은중독 희생자는 마을의 괴짜나 주정뱅이 취급을 받았다. 온몸을 떨고 편집증이 있으며 심술 궂은 여자는 중금속 중독으로 진단받기보다 이상한 노파라고 불릴 가능성이 더 컸다.
- 영국에서는 모자제조 과정에서 수은을 금지한 적이 없다. 66년까지만 해도 영국 모자공장에서 수은을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미친 모자장수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은 적극적인 법적 대응 덕분이 아니라 남성모자, 특히 구식 모피펠트의 유행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코네티컷 주 댄버리에 있던 마지막 모자 공장은 변화하는 트렌드와 세계화의 희생양이 되어 1987년에 문을 닫았다. 이제 모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패션제품이 해외에서 만들어진다.
- 가죽 무두질은 지저분하고 건강에 해로운 과정이다. 수백 년 동안 무두질 공장에서는 고기썩는 냄새뿐 아니라 배설물 냄새가 났다. 유럽의 많은 무두질 공장에서는 가죽을 매끄럽고 유연하게 하려고, 개, 닭, 비둘기 배설물을 사용. 모로코의 일부 전통 가죽공장에서는 여전히 이런 방식을 따름. 소변 대신 나무껍질이나 밤껍질처럼 탄닌 함량이 높은 식물성 재료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만든 가죽은 장갑처럼 부드러운 장신구에는 부적합. 더 두텁고 덜 유연한 가죽밖에 만들 수 없어서 정장용 구두에나 쓰일 뿐이다.
- 프랑스 화학자 니콜라 루이 보클랭이 1797년에 발견한 크로뮴 원소는 수백년간 이어져 온 상업용 가죽제조 과정을 단번에 바꾸어 버림. 1800년대 중반 제조업자들은 전통적인 탄닌 성분 대신 크로뮴염을 사용하면 무두질 과정이 단 하루로 단축될 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얇으며 다루기 편한 가죽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됨. 이런 가죽은 염색과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푸르스름한 색을 띄는데, 여기에 밝은 색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장점이었다. 물론 이렇게 작업한 가죽에서는 참기 힘든 배설물 냄새도 나지 않았다.
- PVC를 유연하게 만들려면 무언가를 첨가해야 하는데, 그중 가장 흔한 것이 내분비교란물질이자 생식독성이 있는 프탈레이트다. 이 물질은 남자아기에게 음낭수종, 드물게는 잠복고환과 요관구멍 이상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연구에 다르면 프탈레이트는 남성의 생식력 감소와 관련이 있으며 모든 성별의 아동에게 천식, 암, 행동문제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조업체들이 수천가지 제품에서 프탈레이트의 일종인 DHEP를 다른 종류의 프탈레이트인 DINP로 대체했는데, 나중에 과학자들은 이 대체물질이 남성 생식기의 선천성 결함, 성인 남성의 생식력 저하와 관련 있음을 밝혀냈다.
- 소방관 12명중 4명의 비율로 암에 걸리는 이유는 무얼까? 고환암, 중피종, 비호지킨 림프종 등으로 소방관이 사망할 위험은 일반인보다 14%더 높다. 혹시 연기가 아니라 소방복 자체에 등 성분 때문은 아닐까? 21세기 전까지, 소방 호스로 쏘아 올리는 물대포를 맞으며 화재현장에 진입해야 하는 소방관들은 몸이 젖지 않도록 폴리우레탄 안감이 들어간 방화복을 입었다. 2000년대 중반 폴리 우레탄을 몇시간 동안 크세논램프 아래 두면 경화, 균열 및 파손이 발생산다는 연구가 등장했는데, 이 연구를 후원한 곳이 듀폰과 유니폼 제조업체인 라이언이었다. 폴리우레탄이 옷의 안감으로 사용될 때는 햇빛이나 자외선, 특히 크네논램프에 노출될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화재예방협회는 연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모든 방화장비에 테플론 안감을 사용하라고 요구하기 시작. 듀폰과 고어텍스 제조사인 고어는 이 정책변화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방수, 방염직물을 만드는 밀리켄도 마찬가지였다.
- 1778년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삼산화비소와 구리를 조합해 녹색안료를 만드는 법을 발표. 짜릿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전에는 불안정한 푸른색 염료위에역시 불안정한 노란색 염료를 겹겹이 쌓아야 했기 때문에 녹색으로 염색하기 매우 어려웠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녹색은 시골에 자신의 영지를 소유할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색이었다.
자연과 녹색을 강조한 낭만주의가 유럽의 살롱을 휩쓸자 셸레가 만든 녹색은 말 그대로 사탕이나 어린이 장난감에서 양초, 벽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널리 사용됨. 1814년 더욱 선명하고강렬한 안료인 아세트산아비산구리가 합성되었을 때, 녹색은 온 패션계를 강타.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되면서 가장 세련된 여성들은 에메랄드그린색 드레스와 파리스 그린색 숄로 몸을 감쌌다. 어린 소녀들은 보베르(아름다운 녹색) 드레스를 입었다. 녹색 잎과 꽃 장식을 이용해 머리와 모자, 옷을 꾸미는 것이 당시 유럽 대륙의 최신 유행이었다.
- 비소가 교활한 살인무기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정부와 대부분의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비소에 대해 비교적 느슨한 태도를 보임. 무색무취의 고운 흰색 가루인 비소는 값사고 흔한 가정용 물질이었고, 식료품 저장고 주변의 쥐를 잡기 위해 아이를 약국에 보내서 바로 사 올 수 있었다. 1846년 프랑스는 비소염료의 상업적 사용을 금지했지만, 영국에서는 1851년 비소판매규제법과 1868년 약사법을 통해 개인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양에 대해서만 제한을 두었음. 염색공장들은 이 물질에 계속해서 자유롭게 접근.
- 영국 왕립화학대학 설립자 중 한 명인 독일 화학자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호프만은 콜타르의 다양한 성분을 분리하는 작업에 착수. 1845년에 콜타르로 만든 그의 첫번째 화학제품은 벤젠. 2년이 채 지나기 전에 영국의 한 화학자가 콜타르에서 추출한 니트로벤젠으로 특허를 얻었고, 이 물질을 향수공장에 판매했다. 호프만은 아민이라는 일련의 화합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이 물질은 훗날 발암성 물질로 밝혀짐. 1856년 그는 조숙한 18세 영국인 학생 윌리엄 퍼킨에게 콜타르를 이용해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이는 퀴닌을 합성하는 임무를 맡김. 퍼킨이 벤젠에서 얻은 아닐린을 다이크로뮴산칼륨 및 황산과 섞었더니 검은 물질이 침전되어 시험관 바닥에 가라앉음. 시험관을 닦기 위해 천을 알콜에 담근 그는 천이 천천히 보라색을 물드는 것을 발견.
그때까지만 해도 패션에 사용되는 색채들은 따분했다. 충분한 기술과 자원을 갖춘 염색업자라면 식물과 꽃을 사용해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스페인은 지금의 멕시코를 식민지로 삼았을 때, 검은색, 보라색, 회색을 만드는 데 쓰이는 로그우드와 밝은 빨간색, 주황색, 보라색 염색을 가능하게 해주는 작은 선인장 곤충인 연지벌레를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 비소에서 유래한 밝은 녹색도 패션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유럽인들이 입는 드레스는 노란색, 회색, 갈색의 차분한 색조로 제한되었으며, 세탁을 하면 색이 쉽게 바래곤 했다.
- 스웨터나 청바지, 양말 또는 속옷의 표면에 보이지 않는 수십가지 인공 석유화학물질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평범한 사람들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화학공정을 거쳐 화석연료로 만든 물질이 면 티셔츠에 들어 있다고? 말도 안돼!
말이 되는 일이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화학은 그저 패션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패션 덕분에 존재하게 되었다. 화학이 곧 패션이고, 패션이 곧 화학이다. 그런데 이런 공통된 유산이 부끄러운 가족사의 비밀처럼 숨겨져 왔다.
- 수영장에 떨어진 물 한 방울에 해당할 아주 적은 양의 내분비 교란물질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결과가 영구적일 수도 있다. 이때 말하는 용량은 십억분율 수준인데, 내분비교란물질이 포함된 옷을 입을 때 우리가 흡수하게 되는 양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레이엄 피슬리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가공처리된 섬유에서는 과불화화합물이 백만분율 수준으로 떨어져 나온다. 문제가 되는 양의 1000배 이상이다.
부모로부터 전달된 내분비교란물질이 자녀에게 생식기기형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있다. 임신한 동물과 사람이 프탈레이트에 노출될 경우 수컷 새끼와 남자 아이의 생식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고, 여기에 프탈레이트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성이 임신 8주에서 12주 사이에 프탈레이트에 노출되면 특히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됨
22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전역 다양한 계층의 여성 171명의 소변을 검사했더니, 살균제, 벤조페논, BPA, 제초제, 살충제, 파라벤, 프탈레이트 및 가소제, 다환방향족 탄화수소 등 9가지 계열의 103가지 물질이 검출됨.
- 의사가 화학물질 민감증 진단을 주저하는 주된 이유는 정확히 눈에 띄는 생물표지자가 없기 때문. 반면에 반려동물의 비듬이나 땅콩 같은 일반적인 알레르기의 경우는 원인물질에 노출되면 항체가 생성되고, 이러한 항체는 혈액검사로 확인가능.
- 최근까지 내부 작동기제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또 다른 면역체계가 있다. 세포성면역은 비만세포와 관련이 있는데, 우리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기 이전인 5억년 전부터 인간의 몸에 존재해 온 오래된 방어 메커니즘. 밀러 박사는 "이것이 인간이 지닌 가장 초기의 가장 기본적인 면역반응"이라고 말한다.
비만세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연구자들이 이해하게 된 것은 최근 십여년 사이. 요새의 화살구멍 사이에 배치된 궁수처럼, 이 세포들은 피부, 소화기, 뇌혈관 장멱, 폐 등 인체조직이 외부환경과 접촉하는 모든 곳에 존재. 그러다 박테리아나 독극물처럼 싫어하는 이물질을 만나게 되면 사이토카인이라는 천연 화학물질을 방출해 침입당한 곳의 면역체계를 가동시킴. 그러면 공격 받고 있다고 느끼는 신체 각 부위에서 염증이 일어나 발진, 복통, 천식, 브레인 포그 같은 여러 증상이 나타날 수 있음.
문제는 비만세포가 과잉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점. 비만세포는 특정물질에 한번 당하고 나면 극도의 경계태세를 취하게 된다. 폭격을 당한 경험 때문에 정신적 외상이 생겨 쾅 하는소리만 들으면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군인과 비슷. 문제가 되었던 것과 같거나 유사하 물질의 기미만 발견해도 비만세포가 놀라서 사이토카인을 다시 대량으로 방출하고 과도한 염증반응을 일으킴. 이렇게 생각해보자. 누군가 당신을 포옹했다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기침을 해대고 사과함 뒤로 물러선다. 당신이 향이 강한 세탁용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저 뒤로 물러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주저앉거나 심지어 자리를 뜰 정도로 격렬한 반응을 보일수도 있다.
일단 비만세포가 민감해지면 반응을 유발하는 데 1분도 안 걸린다.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 문제는 화학적 내성이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화학물질의 양이 독성학자 대부분이 안전한 수준이라고 정의한 것보다 훨씬 적다는 점이다. 실험과 관찰의 대상이 되는 동물은 집중력과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지, 브레인포그가 있는지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없다. 먹이를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생겼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일단 독성물질로 인한 내성저하가 생기면, 증상을 유발하는 수준이 독성학자가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정도라는 것이 환자들이 겪는 문제임.
- 모든 제품의 화학물을 다 측정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패션제품이 존재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오코텍스, 블루사인, 또는 대여섯개 정도의 친환경 라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 오코텍스 인증제품은 전체 의류의 0.1%에 지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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