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아득한 식나 동안 쌓인 무수한 사건과 인물의 기록.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컨텐츠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과 그 과정에서 혀성된 문화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다. 여러분이 어느 새로운 대상을 접하든, 어떤 일을 벌이든 역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없어요. 음시고, 옷도, 우리 삶을 구성하는 주변의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함께 발전해온 것이니까요.
역사를 골치 아픈 암기과목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역사의 품으로 첫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 없다. 이제 보물이 가득 쌓여 있는 그 지도를 신나게 펼쳐보기만 하면 된다.
-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보면 희망이라는 말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말하자면 역사는 실체가 있는 희망. 아무런 근거 없이 조금 더 살아보자고, 버텨보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단지 조금만 더 멀리 보면 좋겟다. 지금 당장은 두렵겠지만 나의 삶의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세상도 변하는데 나의 인생이라고 늘 지금과 같을까? 힘든 세상에서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
스피노자는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는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는 모두 어떤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 경주 사람들이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농사를 지으러 나가면 무엇이 가장 먼저 보였을까요? 황룡사 9층 목탑이었겠죠. 이것이 선덕여왕의 바람이었어요. 신라인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는 비전을 신라인과 공유하는 것이죠.
혼자만의 비전은 몽상이나 망상으로 그칠 수 있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됩니다. 조직이 움직이려면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분명한 상을 보여주고 그곳을 향해 같이 가자고 설득해야 해요. 선덕여왕은 그 비전과 꿈의 상징으로 황룡사 9층목탑을 지은 것입니다. 실제로 선덕여왕은 이 탑을 완공한 뒤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삼국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이 꿈은 결국 이뤄지지요. 신라는 660년에 백제를 제압하고, 668년에 고구려까지 물리칩니다. 가장 작고 힘없던 나라가 삼국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저는 신라의 삼국통일, 그 발칙한 상상이 황룡사 9층목탑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선덕여왕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가슴에 품고, 황룡사 9층목탑을 지었어요. 그렇게 꿈을 향해 한 발 내디딘 것이죠.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분명한 비전이 있었기에 혁신도 가능했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급급했더라면, 또는 강국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면 혁신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 그들이 김일성의 죽음을 슬퍼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경험의 공유라고 생각합니다. 6.25 전쟁이 끝난 뒤 북한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일성이라는 지도자와 함께 북한 주민들도 일어선 것이지요. 풍족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먹고살 만한 나라로 만들었어요. 그 세대의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에 대해 갖고 있는 향수는 사실 김일성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역경을 극복한 자신들의 젊은 시절과 그 성공과 연대감에 관한 것이라고 봅니다. 내가 살아온 시대의 지도자 김일성을 부정하는 것은 곧 그와 함께 그 시대를 견뎌온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할 때, 혹은 미국 국기를 들고 흔들며 친미구호를 외칠 때, 일부 젊은 사람들은 경악합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정희라는 지도자와 미국이라는 우방은 소위 빨갱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주는 절대적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에 자신도 속해 있던 거에요. 그런데 젊은 세대가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고 우방국 미국도 부정해요. 그들은 마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뿐인 젊음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늘 사람들에게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앞선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은 뒤이어 이 땅에서 살아갈 사라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주고 싶어요. 그리하여 훗날 눈을 감는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생으로 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는 늘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에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제란 별로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의 움직임도 알고보면 역사에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더 폭넓게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인류 역사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언제나 존재. 제각기 다른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서 꼭 거쳐야 할 과정인 경우도 있음. 그러니 나의이익, 내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세요. 문제를 제기하세요. 다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과연 옳은지, 역사나 인류의 발전가 맥을 같이 하는지는 반드시 짚어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도 해야 하고요.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내가 속한 집단의 편에 서는 대신에 말입니다.
도처에 갈등요인이 널려 있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는 당면한 문제에 나의 온도를 몇 도로 맞출 것이지 조절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서인과 남인의 이념싸움처럼 허무한 싸움에 나의 열정을 쏟을 필요는 없습니다.
- 커먼즈 이론가들과 활동가들,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전환의 패러다임으로 커먼즈를 주목하는 사람들은 커먼즈를 자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영국에서 민중의 삶의 토대였던 커먼즈가 사라지는 과정을 추적한 역사학자 피터 라인보우는 "커먼즈를 마치 천연자원인듯이 말하는 것은 최선의 경우에라도 뜻을 오도하며 가장 나쁜 경우에는 위험하다"고 경고. 그는 "커먼즈는 활동이며,자연과의 관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므로 차라리 커머닝이라는 동사형을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한편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커먼즈라는 일반명사 대신 공통의 것이라는 추상명사를 사용한다. 네그리에 따르면 "공통적인 것은 너와 내가 무언가를 함께 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며, 무언가를 함께 하는 활동 그 자체임.
-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서 계산되고 교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커먼즈의 감각은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사랑조차 소유의 형식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거나 손익을 계산하는 교환관계로 생각하는 불행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 하지만 커먼즈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완전히 낯선 어떤 원리가 아니라는 사실, 반대로 우리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이며 삶을 꾸려온 공통의(커먼한) 원리라는 점은 중요한 포인트다. 우리 몸은 사실 이미 커머닝을 알고 있음. 길고 긴 인류의 역사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 하고, 그를 통해 공통의 관계를 만들며 그 관계속에 거주해왔기 때문. 커머닝은 대화할 때, 누군가와 친구가 될 때 언제나 일어나는 활동이며, 우리가 함께 사회를 짓는 공동원리다. 게자다 우리는 유례없을 만큼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전 세계적 공통화(커머닝)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 하딘의 논문은 세계적으로 5만번 넘게 인용되며 커먼즈의 지배적 담론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이 내용은 고교 사회교과서에 실리고, 논술 문제로 출제되면서 커먼즈에 대해 굉장히 선명한 인상, 일종의 상식을 구축. 좀 황당한 사실은 하딘의 논문은 커먼즈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것. 논문의 핵심내용은 감당할 수 없는 식량난이 벌어지기 전에 인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목초지는 자기조절능력을 상실한 지구를 비유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하딘의 글은 그의 논지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신나게 인용되며 제3세게 시장화를 추진하던 신자유주의에 학문적 정당성을 실어줌.
- 조선시대 마을은 민중이 생산활동을 조직하고 살림살이를 꾸리는 커먼즈의 기본단위였을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와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자율적 단위였다. 사람들은 나라의 부세를 공동납부하고 지방행정의 부세 수취가 과중해지지 않도록 조절. 중앙정부를 상대로 지방관리의 부정부패를 고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음. 일본도 마찬가지. 막부시대 마을은 신사의 제사나 공동노동을 통해 강한 결속력을 만들었음. 특히 총촌이라 불리던 자치마을의 운영은 촌장의 지도아래 주민들의 회의로 결정되었고 마을내의 질서를 위해 규약을 만들거나 스스로 경찰권을 행사하는 일도 있었다고 함. 관개용수 관리를 직접하는 것은 물론 영주에게 바치는 공물을 마을 단위로 한꺼번에 청부받음. 자연재해 등이 일어나면 영주에게 공물의 감면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모두 경작을 그만두는 것은 물론이고 이웃마을의 농민들과 함께 잇끼라는 농민의 난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이런 힘과 역량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기반, 즉 커먼즈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집합적 노동으로 자연과 서로를 연결하며 구성되는 커먼즈는 함께 살아간다는 공통의 감각이다. 또한 삶을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과정이자 역량이다. 이는 소수의 지배계급, 엘리트, 귀족에 속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즉 민중에 의한 것이다. 민중은 커먼즈에 기반해 자신의 살림살이를 통치했을 뿐 아니라 지배권력에 직접 대항했다.
- 자유롭고 평등한 삶, 커먼즈
서구의 역사를 인류의 역사로 구성하는 세계사에는 누락되어 있지만, 세계의 많은 곳에서 사람들은 커먼즈적 관계가 위계적 관계로 변질될 위험을 정확히 인지하고 주의를 기울였다. 1960년대 파라과이와 베네주엘라에서 생활하며 연구한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원시사회는 미개해서 국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지배장치를 거부한 사회라고 분석.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로 분리되지 않도록 내부의 사회적 장치를 발전시킨 것.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에 존재하는 평등한 부족사회를 연구한 크리스토퍼 보엠은 이런 사회들이 발전시킨 평등주의가 권력 출현과 강화를 막는 신중하고 면밀한 감시와 견제의 지속적인 작업, 즉 잘짜인 전략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함. 뛰어난 능력을 뽐내는 사람(권력의 원천)이나 재화를 갖고도 나누지 않은 인색한 사람(자본 축적)을 끌어내리기 위해 다양한 메커니즘이 고안되었다. 조롱과 구박, 유머와 같은 기술을 통해 숙련되고 능력있는 사냥꾼을 체계적으로 경시하는 문화, 사냥한 고기를 부족사람들과 나눌때 짐증을 잡은 사람이 아닌 무작위로 선택된 사람이 나눠주는 분배체계 등의 법률과 관습들이다.
- 17세기 유럽 계몽주의자들은 사회규모가 커질 때 초월적 권력을가진 국가의 등장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고고학적 증거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류 역사가 작고 평등한 수렵 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발달하고, 계급, 국가, 종교가 출현하고 산업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식의 일직선적 변화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 우리가 구석기 시대라 부르는 때는 이미 대규모 문명이 존재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불과 몇 세기전까지만 해도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에서 같은 토템과 언어를 가진 원주민 캠프들이 대륙의 절반을 가로지르며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평등한 사회가 작은 규모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을 배신함. 또한 많은 곳에서 사람들은 중앙집중적 권력의 위험성을 예리하게 인식했고, 시기와 필요에 따라 권력을 조직하고 해체했다.
농업의 발달이 계급사회를 초래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님. 계급은 농업과 함께 출현했지만 많은 농부들은, 평등한 삶을 유지했다. 농업이 시작되고 계급이 출현할 때까지 수세기, 수천년이 걸린 곳도 있었다. 폭력배나 영주가 권력을 장악한 곳에서도 민중이 국가의 지속적 노예화와 군사적 습격에 끈질기게 저항하며 권력을 전복하거나 권력으로부터 탈주하는 상황은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런 사실들은 인간의 본성이나 문명의 진화에 대한 지배적 가설을 페기할 것을 요구. 많은 곳에서 사람들은 위계가 나타나는 다양한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성찰하고, 더 즐겁고 자유로운 삶을 조직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했다. 커먼즈의 정치는 삶의 주권을 누군가에게 양도하지 않는 것이다.
- 생산양식으로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상품이 아니라, 상품관계를 통해 삶을 재생산하게 된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 사람들은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특정한 욕망을 본능으로 여기기 시작함. 데 안젤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포식자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의 감각마저 식민지"로 만든다. 사람들은 스스로 비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커먼즈는 사회 전환 키워드로 발견됨. 사회적 관계의 공통적 원리이자 삶의 양식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근대적 삶의 방식과 관계를 그 내부에서부터 침식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운동이라는 또 하나의 적극적인 의미를 품게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커먼즈는 삶의 공통원리일 뿐만 아니라 "현실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 운동"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커먼즈는 세계를 하나의 방향성으로 진보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다. 커먼즈는 세계가 언제나 우발적 복수의 프로젝트임을 인지하고 세계의 가변성에 몸을 적극적으로 집어넣어서 다른 방식의 세계 짓기를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 15세기 말에서 16세기에 걸쳐 서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부랑과 도둑질을 방지하는 법이 만들어진다. 늙어나 아파서 노동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만 거지면허를 부여하고, 면허가 없는 부랑자는 태형과 낙인, 감금과 강제노동은 물로 사형까지 부과하는 가혹한 조치였음. 그 잔인함 때문에 피의 입법이라 불린 이 새로운 법은 영국의 헨리 8세 때만 무려 7만 명이 넘는 부랑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임금노동을 자유의 상실로 여겼고, 임노동을 하느니 방랑하는 위험을 감수. 이어지는 17-18세기는 유럽국가와 지방정치체들이 빈민, 실업자, 게으름뱅이, 거지, 광인, 범죄자를 색출해서 감옥에 가두는 이른바 대감금의 시대임. 종합병원 혹은 교화소라 불린 이 거대한 수용시설에 파리에서만 시민의 1% 이상이 감금됨. 광인을 제외한 부랑자들이 수용소에서 풀려난 것은 산업발달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18세기 후반. 대부분 산업현장의 가장 싸구려 노동력을 편입됨.
가장 가난하나 사람들을 시설에 몰아 넣고 강제노동을 통해 교화하는 한편, 게으름을 악마화하고 부지런함을 찬양하는 정신교육이 사회 전체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짐. 게으름은 인생을 파괴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다양한 버전들이 쏟아져 나옴.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로잡은 것은 바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라는 설교였다.
- 화폐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만들어지는 공동체적 관계를 끊어내고 그것을 독립적인 개인간의 관계로 대체함. 교환은 등가로 여겨지므로 교환이 성립하는 순간 관계는 종료되고 어떤 빚도 의무도 남지 않음. 물론 현실에서 이런 의미의 칼 같은 등가교환은 일어나지 않음. 회사에서 거래처를 바꾸기도 하고, 누군가를 해고할 때는 갈등이 발생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거래는 관계를 만듬. 그럼에도 시장의 이데올로기는 이런 감정과 관계를 지우도록 추동함.
- 커먼즈 운동은 경제(살림살이)의 목적을 이윤이 아닌 삶 그자체로 되돌리는 동시에 우리 삶의 방식을 우리 스스로 창안한다는 (즉 국가에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다 우리 스스로가 자율적 공통체의 통치자가 된다는) 두가지 의미에서 삶을 그 자체로 존엄한 것, 살만한 것으로 복구하고자 하는 시도. 운동의 목표는 생계 자립과 삶의 활성화가 가능한 기반을 구축하고 집단적 노동과 나눔을 우리 스스로 통치하는 것, 즉 삶의 자율적 기반과 역량을 회복하는 것. 이는 정치학자 하승우가 풀뿌리 민주주의라 부른 것과 강하게 공명함. 단지 운동의 전략이 아니라 "서로 뿌리를 단단히 얽어서 함께 살아보자는 생활의 전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적으로 소외된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조직하고 살림살이의 문제르 결정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요.
- 커머즈가 어려운 이유는 커먼즈를 감각하고 탐색할 때조차 우리가 여전히 주체와 객체를 나누고 커먼즈를 자원으로 여기는 근대적 언어와 습관에 갇혀 있기 때문.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유의 형식으로밖에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 사회에서 커먼즈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유하고 감각하고 의지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는 일", 즉 "인간이 세계와 관계맺는 모든 법"의 새로운 구성을 의미. 게다가 그 새로운 구성은 커머닝을 통해서만 가능. 동료들과 함께 무수한 시행착오를 해나가는 가운데 커머닝의 경험은 우리의 집단적 존재를 확장시키고, 우리가 걷는 방식을, 시공간을 느끼는 방법을, 우리가 사고하고 감각하는 언어와 몸을 조금씩 흔들고 균열댈 것입니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천천히,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연루될수록 점점 더 활발하게, 지금 여기서 무수한 방향으로 활짝 열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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