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빌런들

경영 2024. 7. 28. 18:31

- '자본주의 황금기'라 불린 전후 호황기가 지나고 유류파동으 로 미국 경제가 흔들리자 1970년대 여성 1,000명당 출생아 수 가 다시 80명 이하로 폭락했다. 급격히 감소하는 출산율의 직격탄 을 맞은 기업이 바로 네슬레였다. 네슬레의 주력 제품이 '분유'였 기 때문이다. 네슬레로서는 부쩍 줄어든 분유 판매량을 늘릴 새로 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때 네슬레가 눈을 돌린 곳이 아프리카다. 네슬레는 본격적으로 분유를 판매하기 전에 무료 분유 샘플을 아 프리카 전역에 뿌려 댔다. “유럽의 건강하고 통통한 아기들은 모두 모유 대신 분유를 먹는다."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말이다. 그렇지 않 아도 가난에 찌들었던 아프리카의 엄마들은 네슬레가 나눠 주는 공 짜 분유 샘플을 덥석 받아 아기들에게 먹였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설사와 구토 등 배앓이 증상을 보이면서 죽어 나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본적으로 분유는 젖병으로 먹인다. 따라서 위생을 위해 반드시 젖병을 소독해 야 한다. 하지만 당시 아프리카에는 젖병을 소독할 주방 시설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도 끓이지 않고 마시는 형편에 젖병을 어떻게 소독 한단 말인가?
더 큰 문제는 네슬레가 무료 판촉을 중단한 뒤부터 시작됐다. 엄 마의 젖은 아이가 주기적으로 빨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 즉 한번 모 유수유를 중단하면 되돌아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네 슬레가 분유 샘플을 뿌린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번 분유를 입 에 댄 아기는 분유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회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그러나 슬프게도 아프리카의 엄마 가운데 상당수는 분윳값을 감 당할 능력이 없었다. 다시 모유를 먹이려 해도 이미 젖은 말라 버렸 다.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아기들에게 마른 젖을 억지로 물리거나 턱없이 묽게 탄 분유를 먹였고,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아기 들은 영양실조로 죽어 나갔다. 네슬레는 많은 분유를 팔았지만, 그 결 과로 아프리카의 아기들은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 그렇다면 인간의 뇌가 낙관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피해야 할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 바로 '실패의 기억'이다. 고통스러운 실패의 기억 이 강렬하게 남은 사람은 절대로 낙관주의자가 될 수 없다. 예를 들 어 한 부족이 사냥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여 부족원들만 잔뜩 잃었다 고 상상해 보자. 이렇게 실패한 기억이 뇌리에 강하게 남으면 그 부 족은 두려움 때문에 절대 사냥에 재도전하지 못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뇌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 실패의 기억, 혹은 아픈 기억을 잽싸게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 인지신경과 학자이자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실험심리학 교수인 탈리 샤롯 Tali Sharot은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망각이라는 기법을 사용한다"고 주 장했다. 뇌가 나쁜 기억을 빨리 잊어버리려 하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무려 38년 전에 벌어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 사고를 다 수습했을까? 원전 사고가 무서운 까닭은 방사성물질이 끊임없이 유출되기 때문이다. 방사성물질은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고 직후 인류는 방사성물질 유출 문제를 어떻게 해 결했을까? 냉정히 말해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그냥 '덮어 버렸다. 비유가 아니다. 인류는 방사성물질 유출을 막겠답시고 폭발이 일어 난 원자로를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어 버렸다.
그 공사에 무려 80만 명가량이 동원됐다. 이토록 많은 인원이 동원된 이유는 방사성물질이 워낙 위험한 탓에 노동자가 현장에 몇 초 이상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디 자세히 읽어 주길 바란다. '몇 시간' 혹은 '몇 분'이 아니라 '몇 초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그만큼 방 사성물질은 위험하다. 이 당시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초 단위로 노동 자들을 교대시켰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 가운데 상당수가 방사성물질에 노출돼,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거나 병에 걸렸다.
게다가 이 콘크리트 구조물에는 30년이라는 유효기간이 있어서, 지난 2010년부터 방사성물질 유출을 막을 구조물을 새로 지어야 했다. 이 말은, 사고가 난 지 30년이 지나도록 인류는 방사성물질 유출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2016년에 완공된 두 번째 콘크리트 구조물의 수명은 100년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앞으로 100년 안에 해법을 찾지 못하면 인류는 체 르노빌 원전에 또다시 콘크리트를 덧입혀야 한다. 즉 인류는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단지 100년이라는 시간을 번 것뿐이다. 그런데 만 약 사고 현장에 지진이라도 난다면? 그래서 구조물이 무너진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갇혀 있던 막대한 양의 방사 성물질이 또 우크라이나 일대를 덮칠 것이고, 인류는 다시 한번 거대 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래도 원전 사고를 쉽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 대형 사고는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통계학엔 '하인리히 법칙'이라 불리는 이론이 있다. 1931년 미국의 산업 안전 전문가인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 Herbert William Heinrich가 『산 업재해 예방: 과학적 접근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에서 정 립한 산업재해 발생에 관한 법칙이다.
하인리히가 산업재해 사례 7만 5,000건을 조사한 결과 노동 현장 에서 1건의 사망 사고가 생기기까지 그것의 수십 배에 이르는 '부상 사고'와 수백 배에 달하는 사고 징후, 즉 '다칠 뻔한 사고'가 선행했다.
1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기까지 평균 29명의 노동자가 다쳤고, 평균 300명의 노동자가 '다칠 뻔했다는 말이다. 하인리히의 이 통계는 어느 곳에 적용해도 잘 들어맞았고, 그는 이를 통해 '1:29: 300'이라는 비율을 만들어 냈다.
하인리히 법칙이 발표된 지 45년이 지난 1976년에는 미국의 저술 가 프랭크 버드Frank E. Bird가 하인리히 법칙을 보완하여 새로운 통계를 발표했다. 이를 '버드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하인리히는 사고를 분석할 때 노동자의 사망 사고와 부상 사고, 사고 징후만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지만 버드는 여기에 '아차 사고near miss' (실제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위험했던 순간)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그리고 사망 사고와 부상 사고, 물적 손실을 불러온 사고, 아차 사고 의 통계적 비율을 '1:10:30: 600'이라는 숫자로 도출해 냈다.
숫자가 조금 바뀌었어도 하인리히와 버드가 이야기하려는 바는 같다. 사망 사고 같은 대형 사고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으며, 그전에 이미 수많은 징후가 나타난다는 게 두 법칙의 핵심이다.

- 세계적 규모의 곡물 기업이 네 군데 있다. 이들을 '4대 곡물 메이저'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기업은 미국의 '카길Cargill'이다. 이 한 곳에서 거래하는 곡물의 양이 세계 곡물 시장 전체 거래량의 40퍼 센트를 차지한다. 또 미국의 '아대니얼스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ADM'와 '벙기 Bunge', 프랑스의 '루이드레퓌스Louis Dreyfus Company, LDC'가 카길 의 뒤를 잇는다.
사람들은 네 개 기업명의 주요 알파벳을 따서 'ABCD'라고 칭하기 도 한다. 이 4대 곡물 메이저, ABCD가 곡물 시장 전체 거래량에서 차 지하는 비율은 무려 80퍼센트에 가깝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 대 부분이 이들 손안에서 거래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4대 곡물 메이저는 식량을 얼마나 생산하고 어디에 판매할지도 결정한다. 그런데 이들은 굳이 '곡물을 충분히 생산하라'고 농민을 독 려하지 않는다. 식량이 부족해서 곡물 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곡 물을 파는 기업의 이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곡물 파동으로 수 많은 사람이 굶어 죽던 2008년, 카길의 1분기 순이익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83퍼센트 증가했다.
식량이 부족한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곡물 메이저가 생산하는 곡물은 사람이 먹는 데만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놀랍 게도 2022년 기준,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1을 사람이 아니 라소가 먹었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무려 8억 5,000만 명이나 있 어도 말이다.
왜냐고? 옥수수 등의 곡식을 소에게 먹인 뒤 그 소고기로 햄버거를 만들어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옥수수를 아프리카 난민들 에게 팔면 돈을 별로 못 벌기 때문이다. 맥도날드나 버거킹 같은 패 스트푸드 회사는 아프리카 빈민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에 옥수수를 구매할 능력이 있다. 4대 곡물 메이저의 돈벌이 탓에 실로 많은 사람 이 굶어 죽는 것이다.

- 오피오이드는 원래 WHO가 암 통증 관리 효과를 인정한 진통제다. 이 말은 '암처럼 심각한 병이 발병했을 때만 제한된 범위에서 처 방할 수 있는 약'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1995년 '퍼듀파마Purdue Pharma' 라는 미국의 제약회사가 '옥시콘틴oxycontin'이라는 오피오이드 계열의 진통제를 만들어 이를 암환자가 아닌 일반 만성 통증 환자에게도 판 매하기 시작했다. 퍼듀파마는 옥시콘틴의 판매를 정부 당국으로부터 승인받기 위해 강력한 로비를 벌였다. 또 처방·판매 승인이 나자마자 의사와 병원 측에도 마케팅을 시행해 이 약의 처방을 늘려 갔다.
- 퍼듀파마가 맨 처음 노린 지역은 광업과 농업, 벌목업 등이 성행하는 시골 마을이었다. 이런 곳에서는 업종 성격상 노동자들의 부상 이 잦다. 퍼듀파마의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은 이런 지역에서 불티 나게 팔려 나갔다. 크게 다친 노동자들은 통증을 삽시간에 가라앉히 는 진통제에 열광했다. 시골 마을에서 엄청난 판매 성과를 확인한 퍼 듀파마는 대도시에서의 판촉을 본격화했다. 퍼듀파마의 영업 사원들 은 병원과 약국에 옥시콘틴 무료 샘플을 마구 뿌려댔다. 퍼듀파마로 부터 로비를 받은 의사들은 이 약을 암과 상관없는 단순 만성 통증 환자에게 대거 처방했다.
- 환자의 중독 상태가 너무 심각해져 병원 측이 처방을 중단하거나 줄이자 옥시콘틴에 중독된 사람들은 진짜 마약을 찾아 나섰다. '펜타 닐fentanyl'이라는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마약으로 소비하는 층이 대거 확대된 게 바로 이때였다. 마약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진통 제를 더 복용하기 위해 약국에서 강도 짓을 벌이기까지 했다.
참다못한 피해자들은 2007년 퍼듀파마를 연방 법원에 고소했다. 수백 개의 도시와 카운티 (우리나라의 '군'과 성격이 비슷한 미국의 자치단 체), 그리고 24개의 주 정부도 퍼듀파마 등 오피오이드 진통제를 제 조·판매한 제약 업체와의 소송을 시작했다. 2021년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오피오이드를 판촉한 혐의가 인정되며 퍼듀파마는 45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조2,000억 원)의 합의금을 물기로 한 뒤 파산해 버렸다. 하지만 파산만으로 그 죄를 다 갚았다고 하기에는 마약성 진통제가 남긴 후유증이 너무나 컸다.
- 1999년부터 2020년까지 오피오이드 남용 및 중독으로 목숨을 잃 은 미국인은 무려 50만 명에 이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 르면, 2019년 미국에서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이 3만 9,566명이 다. 오피오이드 남용으로 죽은 환자의 수가 총격 사건 희생자보다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오피오이드 사태는 돈벌이에 눈이 먼 퍼듀파마 의 탐욕이 야기한 슬픈 참사였다.

- 과거 플라스틱이 지금처럼 음료 용기로 사용되기 전까지 음료를 담 는 병은 모두 유리로 제조되었다. 그런데 20세기 초반 미국 전역에서 코카콜라가 인기를 끌자 수많은 유사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흔하 게 생긴 유리병에 콜라를 담아서는 유사품과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코 카콜라는 병에 '코카-콜라Coca-Cola'라는 로고를 새겼다. 하지만 유사품 업체들은 이 로고마저 흉내를 낸 뒤 상품 이름을 '코카-놀라Koka-Nola', '마 코카-코Ma Coca-Co', '토카-콜라Toka-Cola' 등으로 교묘하게 변형해 팔 았다.
참다못한 코카콜라는 병의 디자인을 바꾸는 데서 해법을 찾았다. 포상금 500달러가 걸린 새 콜라병 디자인 공모에 코카콜라가 내건 조건은 단 두 가지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만져도, 그리고 깨진 병 조각들만 봐도 코카콜라 병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공모에 서 1915년에 당선된 디자인이 지금까지도 코카콜라의 상징인 '컨투 어 보틀Contour Bottle'이다. 컨투어 보틀 디자인의 핵심은 볼록하게 튀어 나온 중간 부분의 곡선이다. 컨투어 보틀 이전의 콜라병은 마치 참기 름병처럼 일직선 형태여서 코카콜라와 유사품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 려웠다.
컨투어 보틀의 디자이너들은 코코아 열매의 흐르는 곡선을 본 따 이 병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병의 모습을 보고 신 체의 곡선과 닮았다고 생각해 코카콜라 병을 그에 비유하곤 했다. 앞 서 언급했듯 워홀이 이 병으로 수많은 예술 작품을 만들었을 정도로 컨투어 보틀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코카콜라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플라스틱 산업이 발전하면서 탄산음료를 담을 수 있는 페트병이 등장했다. 무겁고 깨지기 쉬운 유리병에 비해 페트병은 가볍고 깨질 염려조차 없었다. 코카콜라는 1978년 세계 최 초로 2리터짜리 페트병에 담긴 콜라를 출시하며 탄산음료의 페트병 시대를 열었다. 전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던 코카콜라의 변신 은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유리는 깨트린 다음 녹이면 재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깨지지도, 제대로 녹지도 않는 물질이기에 유리보다 재활용이 매우 어렵다. 코카콜라가 '세계 최악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 기업이라는 오명을 얻은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옥시레킷벤키저는 어떤 회사일까? 원래 '옥시'라는 브랜드는 우리나 라 기업 동양제철화학(현 OCI)의 브랜드였다. 1991년 동양제철화학의 계열사로 설립되었다가 2001년 영국 기업 레킷벤키저가 인수하면서 옥시레킷벤키저라는 회사가 탄생했다. 즉 옥시레킷벤키저는 영국을 대표하는 생활용품 업체 레킷벤키저의 한국 자회사인 셈이다.
사건 자체도 심각했지만 더 큰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원인과 사건 이 불거진 이후 옥시레킷벤키저가 보인 태도였다. 첫째, 가습기 살균 제 시장에서 80퍼센트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던 기업인 옥시레킷벤 키저는 단 한 번도 제품의 화학 성분이 인체에 유해한지 검사하지 않 았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근원인 할 수 있다.
둘째, 사건이 불거진 이후 옥시레킷벤키저는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조작을 시도했다. 2011년 사태가 확산하자 옥시레킷벤키저는 자 사 제품에 독성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조사하겠다며 서울대학교, 호 서대학교,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을 비롯한 한국 연구소 세 곳 과 미국 연구소 세 곳에 연구를 의뢰했다. 그러곤 서울대학교 연구진 에 로비를 벌여 자사 제품에 독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받아 내는 등 피해자들을 농락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았다.
셋째, 옥시레킷벤키저의 본사인 영국 기업 레킷벤키저는 진심 어 린 사과를 지금까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전 레킷벤키저 대표 라케 시커푸어 Rakesh Kapoor는 2016년 영국을 방문한 한국 피해자들과 40여 분 동안 만난 자리에서 "대단히 유감스러우며 개인적으로 죄송하다." 라고 밝혔지만 "한국을 방문해 사과하라."라는 한국 측 피해자들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지금도 한국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으며, '옥시크린', '물먹는하마' 등의 상품이 지금도 인기 리에 판매 중이다.
앞선 장에서도 언급했듯, 일본의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자 신의 책 『우리의 민주주의거든』에서 일본인들이 지닌 '망각의 습성' 을 질타한 바 있다. 다카하시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잊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그들이 저지른 전쟁의 참사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의 참상도 그냥 쉽게 잊어버린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가습기 살 균제 사건은 보팔 재앙에 못지않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담한 화학제 품 재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의 주범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는 레킷 벤키저로 대외적인 상표명만 바꾼 채 지금도 한국에서 버젓이 제품 을 팔고 있다.

- 생산업체는 유통업체의 한마디에 꼼짝을 못 한다. 유통업체들이 전 통적으로 '갑질의 왕국'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 라에선 대형 마트와 백화점을 운영하는 그룹인 롯데나 신세계가 이 런 갑질로 유명하다. 특히 롯데는 수십 년 전부터 생산업체를 쥐어짜 는' 갑질로 악명을 떨쳤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불공정 거래를 지 적받은 횟수가 너무 많아, 국내 기업 중 '올해의 불공정 거래 1위'라 는 불명예도 여러 해 차지했다.
나는 롯데그룹의 갑질을 꽤 자세히 취재했다. 갑질의 정도가 너무 심한 사실을 확인하고 한번은 그들을 프로야구 구단 '롯데 자이언츠'에 빗대어 '롯데 갑질스'라 표현한 적도 있다. 이 문제로 롯데그룹의 항의를 자주 받았고, 하소연("과거엔 그랬지만 요즘 우리는 정말 많이 바뀌 었어요.")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무언가 바뀌었다고 한들 그들이 남긴 갑질의 역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마트를 운영하는 신세계는 노동조합을 여러 차례 불법적으로 탄압한 바 있다. 특히 2013년에는 '이마트노조 파괴 공작'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줬다. 이마트는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자 '기업문화팀'이라 는 조직을 구성했고, 그 아래로 지원본부, 실체파악조, 현장대응조, 채증조, 미행조, 면담조, 자폭조 등을 뒀다고 알려졌다. 무슨 테러리 스트 체포 작전인가? 도대체 노조를 파괴하겠다고 해서 '자폭조'까지 둘 이유가 뭔가?
심지어 당시 이마트 각 점포엔 일명 '해바라기팀'이라는 비밀조직이 존재했고, 이 팀 역시 씨앗조(노조 실체 파악 담당) · 울타리조(집회 및 시위 대응 담당) · 제초조(노조 홍보물 수거 담당) 등 희한한 이름을 가진 노 조 파괴 집단을 산하에 뒀다. 유통업체의 갑질은 생산업체에도, 자사 직원들에게도 이만큼 뿌리가 깊고 단단하다.

- 미국의 사회학자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Alexandrea J. Ravenelle 이 출간한 공유 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다. 여기에 나온 우버 노동자의 현실을 살펴보자.
28세 바란은 대학에 다니면서 우버와 리프트(승차 공유 서비스) 기사 로 일하고 있다. (...) 바란도 주당 400달러에 그런 차량을 렌트해서 몰고 있다. "일주일에 최소 사흘은 일해야 차량 유지비를 댈 수 있어 요. 이틀은 렌트비를 벌고 하루는 유류비 같은 부대 비용을 버는 거 죠. 그 후에 버는 돈은 다 기사의 몫입니다."
(...)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현대판 노예'가 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다. 하지만 일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지금의 상황 은 이미 100년도 더 전에 금지된 고용노예(미국으로 건너오는 비용을 제공받고 정해진 기간 동안 노예로 일하는 것)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 선진국에서는 초중고 시절부터 노조 활동에 관해 긍정적으로 배운다. 독일은 아예 초등학교 때부터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해 1년에 무 려 여섯 차례나 모의 노사 교섭을 한다.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 과정 에는 노동법률.사회라는 교과목이 있는데, 이 과목 교과서의 3분이 1이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로 채워져 있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노사 협상의 기술'을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2015년 노동절 때는 미국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 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라며 공식 석상에서 노 조 가입을 독려하기도 했다.
한편 이런 분위기와 달리 미국에서 1994년 기업 설립 이후 무려 30년 가까이 '무노조勞組 정책'을 고수한 회사가 있다. 그곳은 바로 세 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업체인 아마존amazon이다.
- 2021년 미국 산업안전보건위원회NCOSH는 아마존을 '더티 더즌Dirty Dozen'에 포함했다. 더티 더즌이란 미국 기업 가운데 노동자의 안전과 업무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가장 위험한 기업들을 지목 한 명단이다. 15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는 아마존은 미국에서 월마트 다음으로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이다. NCOSH에 따르 면 아마존 노동자가 업무 도중 다칠 확률은 월마트 노동자의 갑절이 나 됐다. 아마존 배송 노동자의 부상 확률은 물류 회사인 UPS보다도 50퍼센트나 높았다.
한편 아마존의 노동자에겐 고용 안전성도 보장되지 않았다. 아마 존에서는 문자메시지로 해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2021년 《뉴 욕타임스》의 조사에서 아마존 노동자의 이직률은 무려 연간 150퍼센 트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 법인사업자는 개인과 전혀 다르게 대접받는다. 개인사업자는 소득세를 납부하지만, 법인사업자는 '법인세를 낸다. 문제는 법인세율 이 소득세율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데 있다. 법인의 수익이 2억원 이 하면 적용되는 세율은 고작 9퍼센트다. 2억 원에서 200억 원까지 벌 면 19퍼센트, 200억 원에서 3,000억 원까지는 21퍼센트다. 수익이 3,000억을 넘어도 적용 세율은 24퍼센트에 불과하다.
- 박새로이가 법인사업자를 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컨대 1년에 포장마차 사업으로 10억 원 넘는 돈을 벌었을 경우, 그가 개인 사업자로 남아 있었다면 45퍼센트의 높은 소득세율을 적용받았을 것 이다. 하지만 법인사업자가 되면 19퍼센트의 법인세만 부담하면 된 다. 내야 할 세금에서 몇억 원이나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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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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