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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4.09.28 이주하는 인류
  4. 2024.09.28 20240928

파스칼 인생공부

인문 2024. 9. 28. 12:39

우리는 흔히 파스칼을 수학자, 혹은 팡세의 저자로 알고 있지만, 파스칼은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 발명가이자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작가로서 다양한 분야에 걸처 업적을 남겼는데, 철학과 신학에서 특별히 큰 기여를 했다. 

니체, 루소, 톨스토이, 앙리 베르그송, 샤르트르, 다윈, 볼테르 등 수많은 학자들이 파스칼의 업적을 칭송했다. 특히 니체는 "파스칼은 비관주의자였지만 그의 지적 능력과 논리적 재능은 인정하지 않으르 수 없다. 팡세는 그의 내면적 갈등과 철학적 고민을 잘 드러낸다."고 평한 바 있다. 찰스 다윈도 "파스칼의 지적 깊이는 과학적 탐구에도 큰 영감을 준다. 그의 논리적 사고와 철학적 사유는 자연선택 이론을 개발하는 데 있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라며 극찬한 바 있다.

이 책은 파스칼의 팡세 중에서 현대인에게 인생의 지침 및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67개의 구절을 선택하고,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다.", "인간 불행의 대부분은 혼자 있지 못하는 데서 왔다.", "인간의 마음에는 타인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4개의 주제로 분류하여 원문과 함께 알기 쉬운 해설을 곁들인 책이다.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례 형태로 설명을 추가하였다.

팡세는 독자가 자신의 존재와 삶의 목적을 성찰하게 하며, 자기 이해를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다.
(1)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2) 지적 성장을 돕는다
(3) 윤리적 성찰을 촉진한다
(4) 삶의 지혜를 제공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의미를 가지는 천재 인문학자 파스칼의 생각과 인간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 도서제공 이후 자유롭게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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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역사 2024. 9. 28. 08:02

-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역사는 단순한 읽을 거리가 아니다. 하물며 주로 과거에 관련된 것만도 아니다. 역사는 우리 안에 역사가 있고, 우리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따라서 문자 그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지닌다. (제임스 볼드윈, 백인의 죄의식 중에서)

- 유목민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의 그늘진 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짐나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보다 덜 훌륭하거나 덜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로마 공화국이 카르타고를 무찔러 지중해의 맹주가 되고, 중국이 한 무제의 치세하에 번영을 구가하면서 황허와 유럽을 잇는 초기 실크로드를 오가며 교역을 조금씩 발전시키던 기원전 2세기만 하더라도 흉노의 세력은 만주에서 카자흐스탄까지 뻗어 있었고, 이 세력권 안에는 시베리아의 일부지역, 몽골, 지금의 중국 산시성 신장이 포함되었다. 같은 시기에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들의 동맹 유목민들도 흑해에서 카자흐스탄의 알타이 산맥에 이르는 땅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을 한데 모으면 유목민들의 영토는 로마제국이나 중국의 한 제국보다도 넓고 강력했다. 게다가 우리는 매장지를 발굴함으로써 그들의 지배자들이 치타 털로 단이 장식된 중국 비단 의대를 착용하고, 페르시아 양탄자에 앉으며, 로마의 유리를 사용하고, 그리스의 금은 장신구를 애호했음을 알고 있다. 이는 이동성 종족이 원시적이고 고립되어 있다는 통념과 상반되며, 그 유목민들이 동중국해부터 대서양까지 이어진 교역세계의 달인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 이븐 할둔은 이렇게 말한다. "사막생활이 용맹의 원천이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야성적 집단은 다른 집단들보다 용감하다. 따라서 이들은 우월함도 더 잘 확보할 수 있고, 다른 종족들의 수중에 있는 것돌드 더 잘 빼앗을 수 있다." 여기에서 이븐 할둔이 말하는 다른 종족들의 수중에 있는 것들이란 힘, 왕권, 땅과 부를 의미. 또한 그는 유목민 지도자는 아무리 힘을 가지고 싶어도 연대의식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그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할 수 없고,... 그렇게해서 왕권은 연대의식이 도달하는 목표가 된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발언 같지만, 이븐 할둔 이전에는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고, 이론으로 체계화하여 국가와 제국들의 흥망을 설명한 사람도 없었다.

- 이븐 할둔도 그런 괴리가, 아바스 왕조가 몰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 중 하나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왕조에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자연적 수명이 있다"라는 단원에서 자신이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본 것이 단계를 이렇게 제시.
(1) 왕조를 수립한 세대는 왕조에 대해 강경하고 거칠게 굴며, 아사비야로 결합되어 있다.
(2) 그러다 일단 권력과 권이가 확립되면 "사막인의 태도는 정주민 문화에 물들고, 결핍이 사치와 풍부함으로 대체되는 2세대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부패가 만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지배자는 집단의 나머지 사라들과 분리되고, 나아가 그것은 애초에 정복을 가능하게 했던 연대의식의 와해로 이어진다.
(3) 3세대가 되면, 사막인의 삶과 강인했던 시절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런 때를 깡그리 잊는다. 그들은 명예의 맛과 연대의식이 주는 달콤함을 느끼지 못한다.... 유복하고 편안한 삶에 젖어 사치가 극에 달한다.

- 왕조의 흥망에 대해서 이븐 할둔이 개략한 부분은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에도 잘 들어맞는다.
(1) 알 사파(초대 칼리프)와 알 만수르(2대 칼리프)는 왕조를 수립하고 수도를 건설
(2) 알 만수르에 이어 칼리프가 된 그의 아들 알 마흐디는 말에 열중하면서, 사치스럽고 풍족한 삶에 만족
(3) 알 마흐디의 아들 하룬 알 라시드는 극도의 번영과 안락함을 즐김

-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뒤비가 지적했듯이, 몽골의 부상으로 유럽은 본의 아니게 "세계는 그들의 조상이 보았을 법한 것보다 무한정으로 더 크고 더 다양하며 덜 순종적이었다. 세계는 하느님의 말슴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들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무력으로 쉽게 정복당하지 않을 사람들로 가득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 깨달음은 유럽에 특별히 중요한 세가지 진전을 가져옸다.
첫째, 유럽의 상상력이 구속에서 해방된 것이고, 이 자유는 샤르트르 대성당과 캔터베리 대성당, 스페인의 부르고스 대성당과 부다페스트의 마차시 성당에 이르기까지 몽골의 침략이 끝났음을 기념하여 발주한 그 시대 유럽 대성당들의 형태와 야망으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는 그 성당들의 구조, 하늘을 향한 첨탑, 빛으로 가득한 실내, 무역에서 나오는 자금, 그런 건축을 가능하게 해준 아랍 학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수학으로부터 나타났다. 
두번째 진전은 유럽이 유목민 국가인 몽골의 부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뒤비도 설명했듯이, "협상하여 천하무적 왕국들의 환심을 사려고 시도하는 편이 한층 유리한데도 그 모든 이교도, 전투의 달인들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몽골의 힘과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 걸친 그들의 지배력의 광대함이 유럽인들로 하여금 시야를 넓히도록 자극해 그들이 동쪽의 인도와 서쪽의 대서양 너머를 바라보게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종국에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의 변화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바스쿠 다 가마와 콜럼버스와 같은 탐험가들의 항해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에게 화물이 지배당하는 상황에 대한 반응에서 나온 행위였다.

- 몽골에 의한 평화로 가능해진 그 문화 교류는 유라시아 반대편의 끝 지역도 변화시킴. 오랫동안 고립된 왕조를 유지했다고 알려진 중국만 해도 이제는 육지에 둘러싸이고 말 위주로 살아가던 스텝 지대 출신 유목민 칸의 지배를 받으면서 해양강국으로 떠오름. 애초에 쿠빌하이 칸은 마스트가 넷인 정크선들로 새 함대를 만들면서, 그것이 바다를 면한 두 이웃나라 일본과 고려를 상대로 한 원정에서 큰 힘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자 그들은 배들의 용도를 바꿔서 2차대전 전까지는 세계 최대였을 무적의 선단으로 만들었다. 그 새로운 화물선단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던지, 중국은 동중국해와 홍해사이의 해상무역까지 지배했다.

- 더 크고 더 완벽한 그림에서는 유목민대 정착민, 부족민 대 국민과 같은 극명한 차이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여태껏 그랬던 적은 없다. 하지만 역사의 중심에는 이분법이 있는 듯 하다. (팀 매킨토시, 스미스의 아랍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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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하는 인류

역사 2024. 9. 28. 07:59

- 유구한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 고셍 머물며 생활하는 것은 비교적 현대적인 현상이며 40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인구의 3분의 1은 유목생활을 했다. 현재도 3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전통적 유목생활을 하고 있으며, 고용 유목민 혹은 단기 이주근로자라 부르는 사람들도 수백만명이 넘는다. 자기가 태어난 곳, 혹은그 부근에 머무르는 것이 당연히 정상이거나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접으면 인류에 대해 색다른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 마밀라피나타파이(야간족 언어, 세계에서 가장 간결한 단어) : 두 사람이 다 바라는 일이지만 둘 중 누구도 본인이 먼저 나서서 하고 싶지는 않아 서로 상대방이 해주었으면 하며 나누는 눈길

- 고대 아테네에서 원주민들은 이주민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에 따라 이주민과 그들의 후손은 결코 진정한 아테네인이 될 수 없다는 불편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테네 예외주의는 그곳에 사는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적용되어 도시 국가의 사회구조에 영구적 분열을 일으켰다. 아테네에는 메틱이라고 알려진 대규모 이주민 공동체가 있었는데, 그들은그곳에 정착했지만 시민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들의 후손 역시 아테네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 최초의 인도-유럽어족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대초원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실 중 하나는 그들 역시 정착민이 아니라 이동 중인 유목민이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특정 장소에 속해 있는 고대세계를 지어내려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우리는 결국 유목민의 후손이다. 정말로 우리의 근원을 찾고 싶다면, 인류의 역사가 고대부터 지속되었다는 인간의 깊은 심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다면 우리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이주해왔고, 아프리카야말로 우리 모두의 단 하나뿐인 진정한 본향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 로마에서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군사와 돈, 행운과 무자비함이 필요했고, 노예를 거느린 지독한 군국주의적 압제 체제를 관장해야 했다. 그리고는 전쟁터에서 죽거나 아니면 자기 침대에서 살해당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피부색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로마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생김새가 다르고, 억양이 이상하고, 어릴 대 로마에서 자라지 않은 데서 오는 불리함은 (특히 강한 군단을 자기 편으로 갖고 있으면)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 이주민들은 이제 정주주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원치 않거나 들어갈 자격이 없거나 그 두 가지 다인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쉽게 비난받을 수 있어, 적 아니면 희생양이 된다. 
이는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는 공감능력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감능력의 부족은 때로는 배를 타고 망명하다가 죽은 아이가 해변에서 발견되거나 아니면 냉동 트럭에서 서로 얽힌 채 얼아 죽은 난민 집단이 발견되거나 하면 그때서야 조금 채워진다. 그 짧은 순간에는 온 세계가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 같지만, 그때뿐이다. 이주민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주주의의 압제라 할 수 있다.
현재 있는 곳에 계속해서 머무르는 것이 정상인 세상에서 이동은 일탈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생명이 위험에 처하거나 자신이 보유한 기술이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필요해지는 것처럼 특별한 상황에서만 이주가 허락된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집에 머물러 있거나 적어도 태어난 국가에서 계속살아야 하며, 이주 충동이나 다른 곳에 대한 갈망은 해외 휴가와 순례처럼 무해한 행위로 대체하면 된다. 이주가 비정상적이고 인류 역사에서 이주의 역할을 잊도록 권장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고향은 신성시되고 낭만화되는 반면 낯선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마치 고대 아테네 사람들처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의 흙에서 태어났다고 믿기라도 하듯 이주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 오늘날 정주주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역사를 너무 자주 잊고 있다.우리는 인간이 지루하거나 호기심 혹은 모험심 때문에, 아니면 도전을 즐기거나 꿈을 이루고 싶어서 이주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수천 년 동은인류는 지구의 거의 모든 곳으로 이주했고, 그것을 막으려는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이주의 역사야말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유인원과 인류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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