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초, 프랑스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는 모든 생명체는 '내부 환경'이 있다고 확신했다. 내부 환경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 생 명체는 주변 환경에서 독립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일정하게 유지되 는 내부 환경이라는 발상은 분명 생명체의 건강이 내부 균형에 달렸 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생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지구 최초 세포들의 내부 환경은 아마도 그네들 수중 환경과 일 치했을 것이다. 외부와 내부가 일치했다. 삶이 더 복잡해지고 삶의 터전이 육지로 올라가면서, 환경도 달라졌다. 내부의 세포들이 생존 하기에는 외부 환경의 물이 부족했다. 

- 스트레스는 수행 능력이 위험에 처했을 때 신호를 보내는 경보기와 같다. 수행 능력이 떨어지면 적합성도 낮아진다. 적합성이 낮아지면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스트레스는 삶에서 뭔가 달라져야 한 다고 알리는 신호다. 아마도 토끼는 살아남기 위해 도주하거나 투쟁 하거나 죽은 척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길게 보아 식량이 더 많고 포 식자가 적은 다른 장소로 이주해야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새로운 식 량원을 찾으며 포식자에게 들키지 않고 잘 숨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때로는 다른 토끼들과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도 집단 안에서 더 많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 모든 일이 높은 적합성을 회복하기 위해 생 명체가 궁리한 스트레스 반응이다. 스트레스와 적합성 개념은 모든 생명체에 적용할 수 있어 좋다. 자기 DNA를 물려주는 일은 곰팡이 건 식물이건 동물이건 생명 자체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이제 누군가 내게 스트레스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주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스트레스는 적합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다. 다음 세대에 DNA를 많이 물려줄수록 당신의 적합성은 올라간 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건강이 최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건강은 당 신의 수행 능력으로 수월하게 측정할 수 있다. 

- 달팽이가 식물이 된다면
미토 사야카는 달팽이 신체가 잘려 나가고 단 몇 시간 만에 머 리가 바닷말 샐러드를 먹기 시작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바닷말은 곰 팡이, 식물, 동물과 똑같은 세포 유형으로 구성된 조류로, 바다든 민 물이든 오로지 물속에서만 살고 엽록체를 지녔다. 엽록체는 엽록소 라는 녹색 색소가 담긴 세포 구성 요소이고, 엽록소는 햇빛을 이용 해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달팽이가 이 바닷말을 먹으면 엽록소를 함 유한 엽록체도 같이 섭취하게 된다. 그렇다면 달팽이는 녹색 색소로 무얼 할까? 갯민숭붙이나 갯민숭달팽이 부류한테는 뭔가 특별한 것 이 있다. 머리를 포함한 온몸의 표면에 촘촘하게 가지를 뻗은 소화샘 이 있다. 이 소화샘에는 청각과의 코디움 토멘토숨Codium tomentosum의 엽록체를 저장할 수 있는 세포가 들었다. 이 세포 이름이 도둑색소체 Kleptoplasty다. 도둑색소체에 저장된 훔친 엽록소로 달팽이는 몸과 소 화기관이 없어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당분간 식물로 변신 해 광합성을 한다. 달팽이 머리는 빛, 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새로 운 몸을 자라게 할 고열량 에너지인 탄수화물을 넉넉히 생산할 수 있 다. 게다가 크기가 겨우 5밀리미터밖에 안 되어 심장에서 피를 공급 하지 않아도 괜찮다. 보라, 어느 누가 달팽이를 지루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매일 자연을 연구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미친' 일들에 매번 충격을 받는다. 앞에 소개한 달팽이 연구는 아주 단순한 동물이라도 기생충이나 식량 부족 같은 스트레스 요인에 반응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암 기생충 은 분명히 달팽이의 적합성을 해치고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런 스 트레스 요인에 대응하는 현상이 바로 자절이라는 대담하되 효과적인 스트레스 반응이다. 이 스트레스 반응은 달팽이를 죽음에서 삶으로 이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길을 찾는 자연의 놀라운 힘을 보여준 다. 그곳에서는 머리가 굴러다니고, 엽록체가 도난당하고, 달팽이가 잠시 식물로 변신한다. 
- 추위가 몰려오면, 식물세포는 글자 그대로 유연성을 잃고 경직된다. 생체막 때문이다. 이 막이 세포를 외부와 분리한다. 아울러 세 포 내부의 여러 부서를 분리하는 칸막이이기도 하다. 제 기능을 하는 생체막은 액상이어서 흘러 다니는 이중 막이다. 추위가 거세지면, 이 이중 막은 유동성을 잃는다. 말 그대로 추위에 얼어붙는다. 낮은 온 도에서도 이런 동결을 막아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식물은 생체 막 구성을 변경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생체막은 몇 시간 또는 며칠 안에 불포화지방산을 저장한다. 그러나 지방산 전술은 기온이 서서 히 떨어질 때만 통한다. 한파가 몰아닥치면, 식물은 추운 기간을 대 비할 시간이 없다.
- 서리는 특히 심각하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동식물 세포 사이사이에 얼음 결정이 생긴다. 세포 내부 내용물은 단박에 동결되지 않는데, 당이나 이온 같은 용해 물질이 세포 사이보다 내부에 더 많 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결 속도가 달라서 수분 불균형이 생긴다. 그 러면 세포는 내부 수분을 세포 사이로 흘려보내 불균형을 해소한다. 이제 세포의 생존은 이런 탈수를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느냐에 달렸 다. 세포 사이사이에 생긴 얼음 결정이 커지지 않게 막는 단백질이 몇몇 척추동물, 곰팡이, 박테리아, 수많은 식물에서 발견되었다. 이 런 부동단백질 Antifreeze Protein, AFP은 얼음 결정 표면에 달라붙는다. AFP의 구조와 성장은 얼음 결정이 세포에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고 여기에 영향도 끼친다.
- 한마디로, 식물은 스트레스 요인을 관리하는 데 진정한 고수다. 여기서도 스트레스는 식물의 적합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개 나래새 실험에서 보여주듯이, 식물세포는 심지어 과거의 스트레스 요인도 기억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비슷한 상황에서 더 빠르고 효과 적으로 대응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식물은 경험을 심지어 자손에 게 물려준다. 스트레스 기억이 유전된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이런 방식으로 담배풀은 박각시 애벌레를 공격할 최적의 타이밍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동물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다음에 숲이 나 들판을 산책할 때 식물을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 야생토끼는 생태공학자다. 제 서식지를 직접 만들기 때문이다. 빙하기 이후로 이 포유류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넓은 반건조 초원을 차지했다. 순수 채식주의자인지라 식물에 의존한다. 풀 또한 토끼 가 없으면 자랄 수 없다. 이 둘은 어떤 관계일까?
프랑크푸르트 사람들 눈에는 볼썽사나운 지뢰인 것이 자연 관 점에서 보면 작은 생태공학자들의 최고 업적이다. 작은 생태공학자 동료들이 한 장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면 머지않아 똥 무더기, 즉 공 중변소가 만들어진다. 어떤 변소는 거주지 바로 옆에 있기도 하고, 어떤 변소는 멀리 국경 지대에 있다. 그런데 토끼들은 왜 공중변소를 사용할까? 소통을 위해서다! 토끼의 똥과 오줌에는 나이, 사회적 지 위, 성별 등을 나타내는 매우 개별적인 냄새 물질이 들었다. 토끼들 은 변소에 들를 때마다 이런 냄새 물질을 서로 교환한다. 거주지 바 로 옆에 있는 중앙변소는 그곳에 거주하는 토끼들만 사용한다. 공중 변소를 사용하면 조만간 개별적인 냄새가 풍기는데, 나는 이를 '집 냄 새'라고 부른다. 집 냄새는 토기 털에 배어 그들의 소속을 나타낸다. 몇몇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집 냄새는 집단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국경 지대 변소는 사회적 지위가 아주 높 은 수컷들만 사용한다. 그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침략자들에게 섣불리 침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다.
- 토끼들은 변소에서 온갖 잡담과 소문을 교환하는 동시에, 똥을 눌 때마다 서식지를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한다. 그들의 똥은 식물 씨 앗을 퍼트리고, 토양을 비옥하게 가꾸며, 넓은 초원에 풀이 무성하게 웃자라지 않도록 방지한다. 똥에는 질소 같은 영양소가 들었는데, 수 많은 식물이 이를 이용한다. 이를테면 벼과 식물인 불피아 실리아타 Vulpia ciliata나 안드리알라 인티그리폴리아Andryala integrifolia라는 노란 들 꽃 또는 선개불알풀Veronica arvensis이 여기에 속한다. 에스파냐 초원의 척박한 토양에서 토끼의 공중변소는 진정한 오아시스다. 또한 토끼 들은 변소를 지을 때 강력한 발톱으로 지표면을 긁는다. 그렇게 토끼 들이 풀을 뜯어 먹고 땅을 긁으며 식물의 발달을 자꾸 방해해서 식물 이 심하게 우거지지 않도록 방지한다. 
-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장소가 과연 있을까? 모든 것이 옳고 스트레스 요인이 전혀 없는 이른바 지상 낙원 말이다. 모든 산업이 우리 삶에서 스트레스를 말끔히 없애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돈을 번 다. 그들은 우리가 이 앱을 사용하거나 저 휴양지를 방문하기만 하면 완벽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떠벌린다. 그러다 보면 나는 스트레스의 아버지 한스 셀리에를 떠올리게 된다. 셀리에는 끊임없이 스트레스 가 삶의 양념이요 수프에 뿌리는 소금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썼다. "스트레스는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사실 스트레스를 피할 수 도 없다. 당신이 무엇을 하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건 계속 살 아 있으려면, 그리고 변화하는 조건에 적응하려면 항상 에너지가 필 요하다. 긴장을 싹 풀고 잠을 푹 자더라도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는 다. 심장은 계속 피를 펌프질해야 하고, 위장은 음식을 소화해야 하고, 근육은 당신이 호흡할 수 있게 가슴을 움직여야 한다. 당신이 꿈 을 꾼다면 뇌조차 좀처럼 쉬지 않는다.” 셀리에의 말이 옳다면, 최고의 적합성을 위한 완벽한 장소는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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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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