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지배사회

과학 2024. 7. 26. 07:36

- 다윈이 1871년에 출간한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은 과학적으로 재조명되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암컷들이 수컷들의 구애 행위를 보고 짝을 선택한다는 개념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쉽게 받아 들여지지 못했던 것이다.
다윈의 이론에서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다름 아닌 유전이다. 하지만 이 유전에 대한 제대로 된 이론을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이 만들어 낸 것은 1865년이었으며, 이것이 '멘델의 유전법칙'이 라는 이름으로 확립된 것이 1900년이었다. 그리고 이 유전물질의 정체 가 DNA라는 것이 처음 밝혀진 것은 1944년이었으며, 이것이 보다 확 실하게 학계에 받아들여진 것은 1952년의 일이었다. 1953년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랜시스 크릭 Francis Crick은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의 데이터를 이용해 DNA 이중나선의 구조를 밝혀냈고, 1955년 에 프레더릭 생어 Frederick Sanger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을 규명하는 방법을 개발해 인슐린의 서열을 밝혀냈으며, 1977년에는 드디어 단백 질을 암호화하는 궁극적인 유전물질인 DNA 자체의 서열을 읽어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세 가지 업적에는 모두 노벨상이 주어져 생어는 두 차례 수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생어의 DNA 서열분석 방법은 생명 정보의 암호를 푸는 열쇠로서, 그야말로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의 전성 기를 열어젖혔다.
- 다윈의 진화론은 이렇게 새로이 태동한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지식과 결합되어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고 불리는 본격적인 현대진 화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다윈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질들을 통해 관찰했던 변이들이 바로 유전자를 이루는 DNA에서 유래된 것 이라는 점이 밝혀졌고, 수많은 유전자들의 진화 과정에서의 역할 또한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가 세상에 나온 1976년은 바로 이러한 현대 진화 이론이 한 창 전개되던 시점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종의 기원』 이후로 다시 한 번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 이시대의 고전이다. 『종의 기원』이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남기기는 했지 만, 유전자의 작용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시절에는 그 진화적 기원 이 어떠하더라도 인간은 최소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다른 동물과 달 리 고상한 문명을 구축하며 살아가는 특별한 종으로 남아 있을 수 있 었다. 더구나 사회진화론은 진화적 원시성을 사회적 약자들과 식민지 의 '미개한' 종족들에 떠넘기고, 그들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기적 유전자'라는 새로 운 용어로 대변되는 신다윈주의의 유전자 중심 세계관의 등장과 함께,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오직 유전자들의 번식을 위해 그들의 조종을 받는 번식 기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 생존과 번식을 위해 발달한 우리의 인지능력은 늘 바깥 환경을 향해 있으며, 우리 몸속 유전자들의 행동 은 우리의 인식 세계로부터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유전자들의 생존하고 번식하고자 하는 '욕구'를 전혀 느끼지 못 한다. 인간의 행위를 추동하는 것은 유전자가 가진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있는 감정적인 만족이다. 즉, 분자 수준에서 작동 하는 유전자의 욕구는 개체 수준에서 경험되는 감정적 욕구로 위장된 다. 예컨대 자식을 가짐으로써 달성되는 유전자의 번식 욕구는 성욕 으로,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발현된다. 많은 현대인들이 아이를 원치 않으면서도 결혼을 한다거나 성적 쾌락이나 만남을 추구하는 것 은 유전자의 욕구와 인간의 생리적, 감정적 만족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성적 매력을 과시하고 사회적 서열을 높이고자 하 는 여러 진화적 행위들도 과거에는 없던 문화라는 형태로 포장되어 나 타난다. 남자들이 근육을 키우고 여자들이 치장을 할 때, 음악이나 미 술과 같은 예술 활동을 할 때, 자기와 다른 성향의 이성에게 끌릴 때, 자녀 교육을 위해 관심과 투자를 쏟아부을 때, 그리고 직업에서의 성 공, 지위 향상, 과시적인 소비를 좇을 때 행위자인 인간은 그 근원에 있 는 번식을 향한 진화적인 욕구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비싼 차를 몰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려고 한다거나 (노골적 인 일부 젊은 남성들을 제외하면) 그것을 통해 짝짓기 기회를 엿보려고 의도하지는 않는다. 그저 문화적인 만족을 누릴 뿐이다. 또한 다른 인종이나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 역시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며, 이들을 기피하고자 하는 유전자의 '두려움'은 혐오라는 감정으로 발현 되어 우리가 통상 가지는 두려움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인간이 가정과 사회를 이루고 다양한 경제와 정치 행위를 할 때 그 속에 도사 리고 있는 이기적 유전자들의 '의도'를 감지하고 윤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나 도덕적 문제만 이 아니라, 우리 몸을 점차 늙게 하고 병들게 하며 암에 걸리게 하고 결 국 죽게 만드는 유전자들의 작용도 우리의 감각에는 미지의 세계와 같 이 아득한 것이다.
- '20세기의 다윈'으로 불린 위대한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 Ernst Mayr는 20년간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지내며 현대 진화론의 성립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책 『진화란 무엇인가What Evolution Is』에서 그는 '진 화론'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해야 할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보자. "진화가 늘 일어났으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너 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은 사실이어서 이러한 주장을 '이론'으로 부르 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인 것이 되었다. 확실히 공통 유래 이론이나 생 명의 기원, 점진주의, 종 분화, 자연선택 등과 같은 특정 진화 이론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 상충하는 이론들이 과학적 논쟁을 벌인다고 해서 진화 그 자체가 확고한 사실이라는 데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생명이 출현한 이래로 진화는 계속되어 왔다."
- 새끼를 갖기 위해서는 짝을 만나야 하므로 사랑이라는 감정은 짝짓기를 유도하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사랑을 가장한 유전자 의 책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 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 회로에 작동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마치 마 약처럼 작동하며, 중독과 같은 이러한 자기 만족은 성관계라는 궁극적 인 쾌락에서 그 절정을 맞게 된다.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옥시 토신은 특히 엄마와 아기의 유대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많이 분비되며 연인 사이에 스킨십을 할 때도 분비되어 애정을 고무시킨다. 이런 의 미에서 사랑은 유전자의 번식이라는,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지상과 제를 수행하게끔 만드는 자기 만족 기제다.
- 《네이처》에 보고된 붉은불개미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에 게 '녹색 수염'은 바로 몸에서 나오는 냄새일 것으로 추정되었다. 붉은 불개미 일개미들은 'Gp'이라는 유전자가 자신들과 같은 여왕개미는 살려두고 자신들과 다른 여왕개미는 구별해 죽인다. 그런데 이때 일개 미들을 다른 유전형을 지닌 여왕개미의 몸에 비벼 냄새를 묻힌 다음 다시 원래 무리에 넣어주면, 이들은 동료들에게 공격당해 죽을 가능성 이 높아진다. 이후 <사이언스> 논문에서는 이 유전자가 같은 종의 동 물들끼리 의사소통하는 데 사용되는 화학물질인 페로몬에 결합하는 단백질이라는 것을 보였다. 

- 부모는 여러 자식에게 효 율적으로 투자해 효용을 극대화하기를 원하는 반면, 자식들은 자신에 게 최대한의 투자가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러한 부모와 자식 간의 진 화적 갈등을 유전학적인 맥락에서 체계화한 것이 바로 저명한 진화생 물학자 중 한 명인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다.21
이러한 부모-자식 갈등은 자식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표출된다. 태 아는 산모로부터 최대한의 영양분을 받으려고 하고, 산모는 이미 태어 나 있는 아이나 다음번 임신으로 태어날 아이의 잠재적 가치를 고려해 태아에게 공급되는 자원을 조정하려고 한다. 우리 몸의 에너지원인 포 도당이 혈액에 많아지면, 췌장에서는 인슐린을 분비함으로써 혈당을 세포로 유입시켜 에너지를 만들거나 영양분의 형태로 저장하게 한다. 임신 중에는 당연히 태아도 포도당을 필요로 하는데, 이때 태아는 조 금이라도 더 많은 포도당을 빼앗아 오기 위해 어머니의 인슐린 작용을 방해하는 물질을 분비한다. 흥미롭게도, 인슐린과 닮은 형태의 'IGF2'라고 불리는 이 단백질은 '유전체 각인genomic imprinting'이라는 기작에 의해 오직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에서만 만들어진다. 다시 말 해, 아버지의 유전자가 태아에게 영양분을 더 달라고 어머니에게 신호 를 보낸다는 뜻이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 는 태아가 산모로부터 많은 영양분을 빼앗아 건강하게 살아남기를 바 라는 것이다. 산모는 이에 대항해 인슐린을 더 많이 분비해 자신의 세 포들로 포도당을 유입시키려고 하고, 태아는 IGF2와 같은 물질을 더 분비해 어머니의 인슐린을 방해하려는 줄다리기가 이어진다. 이 과정 에서 생기는 것이 바로 임신성 당뇨다.
- 배 속에 있는 자식과의 갈등은 훨씬 더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영국의 동물학자 힐다 브루스 Hilda Bruce는 새끼를 밴 암컷이 새로운 수 컷과 함께 살게 될 경우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현상을 실험동물에게서 발견해 일찍이 <네이처》에 보고한 바 있다. 이 브루스 효과 Bruce effect 는 최근 야생 원숭이들 가운데서도 관찰되어 <사이언스》에 보고되었 다. 24 겔라다개코원숭이라는 원숭이들의 한 집단을 새로운 알파 수컷 이 장악하자 놀랍게도 그 수컷이 집권한 바로 그날 암컷들이 일제히 유산한 것이다. 유산하지 않은 2마리 가운데 하나는 재빨리 배란의 징 후를 보여 임신 상태임에도 새 수컷과 짝짓기를 했고, 그런 기만 행위 를 하지 않은 다른 암컷의 새끼는 결과적으로 그 수컷에게 죽임을 당 하고 말았다. 이는 암컷들이 내리는 비정한 손익계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태어나면 어차피 새로운 수컷에게 죽임당할 가능성이 높은 새끼를 낳기 위해 자신의 자원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배 속의 새끼를 빨리 포기하고 새로운 수컷과의 번식 기회를 갖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매우 가까운 친척인 원숭이에게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암시하는 바가 매우 크다.
- 살생으로까지 이어지는 부모와 자식의 갈등은 자식이 태어난 후 에도 계속되는데, 인간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 해 어린이는 살해당할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이었는데, 어린아이를 죽 이는 가해자의 대부분은 다름 아닌 부모였다. 원시적인 수렵채집 혹은 산업화 이전의 농경 사회에서는 특히 여자아이의 살해가 주기적으로 행해졌다. 25 이는 사냥을 하거나 농사일을 할 수 있으며 외부의 적에 대 한 방어 능력을 지닌 사내아이가 선호되었기 때문인데, 산업화 이전 사 회의 인구통계가 이러한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태어나는 아기 들의 성비는 거의 1:1 에 가깝지만, 유년기부터는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아진다. 수렵채집 사회를 포함해 112개 사회에 속하는 561개의 인구집 단을 조사한 결과 유년기의 평균 성비는 1.27:1로 나타났으며, 에스키모 와 같이 혹독한 환경에 사는 집단들 중에서는 1.5:1, 심지어는 2:1과 같 은 극단적인 사례도 발견되었다. 구석기시대 수렵채집인들 가운데 남 자의 유골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습이 아주 오래전 부터 행해졌을 가능성을 말해준다.27
자식 살해filicide는 산업화된 사회를 포함해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 걸쳐 발생한다. 부부 진화심리학자 마틴 데일리 Martin Daly와 마고 윌슨 Margo Wilson은 불후의 명저로 꼽히는 그들의 저서 『살인 Homicide』에서, 문 명사회에서의 자식 살해 역시 번식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진화적 계산 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28 예를 들어, 어머니의 연령이 낮을수록 살해율이 높다는 것은 어린 여성일수록 앞으로 임신할 가능성 이 높기 때문이고, 아이의 나이가 많을수록 살해당할 가능성이 낮은 것 은 성장한 자식일수록 번식 가치가 더 높게 계산되기 때문이다. 아이 의 나이가 많을수록 아이의 자기 방어 능력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설 명할 수는 없는 것이,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사람에 의한 살해율은 정 반대의 양상으로서 특히 10대 중반 이후로 급속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과 같은 주변 여건이 좋지 않거나 아기가 기형이나 장애 등 결함이 있을 때 아이가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는 것도 밝혀졌다. 이는 모두 새로운 알파 수컷의 등장이라는 불리한 상황에서 배 속의 새끼를 유산시켜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 18세기 영국의 많은 어머니들은 일부러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옷 으로 아이를 두르거나 실수를 가장해 템스강에 아이를 빠뜨리고는 했 다. 아이를 직접 죽이기에는 마음이 약한 부모들은 유모를 고용해 이 런 일을 맡기고는 했는데, 특히 일부 유모들은 이런 일을 잘 처리해 주 는 덕분에 부모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프랑 스에서는 병원 입구에 달아둔 베이비박스에 한 해에만 10만 명이 넘는 아기들이 담겨 이 중 80퍼센트가 1년 내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 한민국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영아 유 기는 1,379건, 영아 살해는 110건으로 나타났다.
자식들 역시 살해당할 위험을 피하기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야 생의 동물들은 어미의 자궁에서 나온 후 거의 곧바로 홀로 활동이 가 능한 반면, 인간 아기는 목도 가누지 못할 만큼 매우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 장기간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큰 머리 때문인데, 직립보행으로 좁아진 어머니의 산도를 안전하게 통과 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머리통이 작은 상태에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 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포유류나 영장류와 달리 사람 아기 는 굉장히 많은 피하지방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이다. 몸집을 줄여 야 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지방을 축적한 상태로 태어나는 이유는 자기 를 홍보하기 위함이라는 가설로 설명되는데,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 을 통해 자신이 건강하며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부모의 선택을 받고 살해당할 위험을 피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 런 면에서 통통한 아기들을 보면 귀엽다고 느끼는 것 역시 건강한 아 이를 선별하기 위해 진화해 온 뇌의 생물학적 반응이다. 동물행동학의 유전자와의 연결고리가 강하면서도 어느 쪽이 확실히 좋다고 할 수 없는 타고난 성향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매력을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색적이고 내성적인 남자와 밝고 외향적인 여성 은 서로에게 끌리며, 순종적인 성향의 사람과 지배적인 성향의 사람 간에도 마찬가지다. 실제 조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흥미로운 가설 중 하나는 자신의 심리적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와 상반되는 방어 기제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3152 그 심리학적 기제가 무 엇이든, 다른 성향에게 이끌리는 것은 유전학적인 차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유전자의 유도 전략일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유전체 전체를 조 사해 배우자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찾아보면 MHC뿐만 아 니라 많은 수의 다른 유전자들에게서 '이류교배disassortative mating', 즉자 신과 다른 변이를 찾으려는 경향이 발견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화학적 충동과 유전학적 차이점이라는 매력에 이끌려 결혼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뜨거웠던 감정은 사라지고 서로 간의 차이가 부각되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서로 다르게 진화 한 남녀가 개인적인 차이까지 맞닥뜨리면 극복하기 힘든 갈등이 불거 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생물학적 배경을 알고 나면 이혼 사유로 가 장 많이 제기되는 원인이 성격 차이라는 것도 놀랍지 않다. 그러나 자 연선택의 관심 대상은 유전자의 성공적인 번식이지 개체의 행복한 삶 이 아니다. 따라서 진화의 세계에서 오직 생물학적으로 건강하고 다양 한 후손을 남길 수만 있다면 부부의 삶과 행복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 결혼이라는 기만적 거래
이렇듯 유전자는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나 페로몬과같은 화학물질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짝짓기를 하도록 충동할 뿐 아 니라, 심지어 유전적 조성에 따라 상대를 선별적으로 선택하게끔 유도 한다. 다시 말해, 진화적 관점에서 결혼이란 자기 유전자의 50퍼센트 를 후손에게 남기고 최대한 잘 살아남게 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상 대와 맺는, 욕망에 이끌린 거래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현존하 든 사라졌든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인간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공식 적인 번식 동맹을 맺었으며, 결혼이라 불리는 이 이익 공동체에서 부 부는 유성생식에 가담하고 육아를 함께함으로써 이를 실현한다"라고 했다.28 재혼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데려온 자식이 있는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결혼 생활이 성공적이지 못하 며, 첫 번째 결혼에서와 달리 자녀 문제가 가장 큰 갈등 요인으로 지목 된다. 재혼한 여성은 새로운 남편이 전남편의 자식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기를 원하지만, 이것이 새 남편의 진화적 이해관계와는 완전히 배치되기 때문이다.
- 어쨌거나 유성생식은 다수의 다양한 자손을 낳아 번식 가능성을 높이 기에 적합한 짝짓기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아이들의 생존 가능성이 극적으로 높아지고 극소수의 아이만 낳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유성생식은 득보다 실이 많은, 여러 종 류의 갈등과 불행을 초래하는 나쁜 번식 방법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양육 본능은 경쟁에서 뒤 처지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했던 원시시대와 똑같은 상태로 남아 있 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많은 부모들이 한두 명의 자녀에게 무제한적 인 투자를 하도록 만든다. 결국 부모의 양육 본능이란 유전자가 자신 의 번식 성공을 위해 부모라는 아바타를 조종하는 강력한 동력인 것이 다. 부모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식이 다른 집 아이들보다 뒤 처지지 않도록 자식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이것은 다시 다른 부모들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면서 결국에는 모두가 지지 않기 위해 점 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도록 부추긴다. 이는 마치 세계의 여러 나라
- 학업성취도에 대한 전장유전체 연관분석 연구에 활발히 참여했던 텍사스대학교 오스틴캠퍼스의 캐스린 하든Kathryn Harden 교수는 한 인간의 인생을 좌 우할 수 있는 학업성취도가 유전자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있다는 사실 을 빗대어 '유전자 로또genetic lottery'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시 말하 면, 인지능력 평가를 위주로 개발된 현재의 학업성취도 지표가 결국 유전자의 경쟁을 위한 도구로 환원되고, 우리 모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전자의 경쟁에 휩쓸려 불행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만 들어 낸 '능력주의 meritocracy'라는 용어를 빌려 최근 많은 논의가 이루어 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 역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이라는 저서에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6566 유전자 로또에 당첨되어, 그리고 여러 가 지 유리한 사회적 환경 덕분에 고등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에서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은 단지 운이 좋았던 것뿐인데 이것을 '재능'과 '노력'이 라는 단어로 정당화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또한 예일대학교의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 교수는 『엘리트 세습 The Meritocracy Trap』에서 한국을 비롯한 능력주의 사회에서 엘리트들이 스스로 '인적 자본'이 되어 자기 자신을 착취해 가며 불행한 삶을 살고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 결론적으로 부부 갈등과 자식 문제 등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가정 생활과 관련해 겪고 있는 근본적인 불행,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어 사회로까지 확장된 경쟁의 문제는, 유전자가 스스로를 번식시키기 위 해 고안한 사랑이라는 진화적 메커니즘에 우리가 놀아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유전자에게 필요한 것에는 번식뿐만 아니라 생존도 포함된다. 일단은 생존을 해야 번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전 자는 사랑이라는 감정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반대쪽에 놓여 있는 혐오라는 감정 역시 진화가 발명해 낸 산물인데, 이는 유전자의 생존을 위해 작동한다. 사랑이 가족을 비롯한 혈연으로 이루어진 관계 를 향해, 어디까지나 유전자의 번식을 위해 '조건적으로 발휘된다면, 혐오는 가정과 혈연관계 밖에 있는 사회 속 타인들을 향해, 오직 유전 자의 생존만을 목표로 '무조건적으로' 행사된다. 이제 교묘한 기만이 아닌 무차별적 폭력이라는 진화의 또 다른 전략을 살펴볼 차례다.

- <네이처> 연구에 의하면, 체질량지수는 지방이 인슐린 대사뿐만 아니라 식욕과 포만감 등을 주관하는 뇌신경회로 를 조절하는 많은 유전자 변이들의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널리 사 용되는 비만 약인 세마글루타이드는 위에서 음식물이 배출되는 속도 를 지연시키며 뇌 시상하부의 식욕중추에 작용해 식욕 억제와 포만 감 증가를 일으킴으로써 체중 감소에 도움을 준다. 또한 의학 분야에 서 세계 최고의 학술지로 일컬어지는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비만 유전자 변 이 하나를 고치는 것만으로도 갈색지방의 열생성 반응을 무려 7배나 증가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비만은 철저히 생리학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문화적 압력과 개인의 절제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합의된 결론이다.
- 비만에 대한 혐오의 기저에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된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예를 들어, 비만한 사람에 대한 반감은 신체적 접촉이 있을 때 더 강해지는데 이는 마치 전염가능성에 대한 반응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또한 평상시 병원체의 전염에 대한 염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혹은 병원균이나 전염 병과 연관된 시각자극들을 통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에서 비 만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강화된다. 비만이 왜 감염 위험 성과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비만인 사람들이 게으르고 자기 관리가 부족하다는 편견이 위생에 대한 인식과 연관될 수 있 다. 어떤 학자들은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한 포괄적인 기피 반응이 비만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심한 흉터와 같이 기형적인 얼굴에 대한 비인격적인 거부 반응은 혐오를 매개하는 편도 체라는 뇌 부위가 주도하는데, 비만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반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상이라고 간주되는 체격이 남성 에 비해 여성이 훨씬 작기에 여성 비만인은 더욱 비정상적으로 인식될 수 있고, 이것이 여성에 대한 비만 낙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를 침략한 독일군은 큰 문제 하나를 맞닥뜨렸는데, 바로 이질이었다. 항생제도 없던 시절이라 마땅한 대응 책도 없었다. 그러던 중 현지인들은 이질에 걸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 는 낙타의 똥을 먹는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는데, 독일에서 파견된 의료 진이 이를 조사해 보니 그 안에서 고초균Bacillus subtilis 이 발견되었다. 고 초균에는 다른 세균을 억제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이질균도 마찬가지 로 억제되었을 것이다. 84 사람의 똥도 실제 약으로 사용된다. 클로스 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리Clostridioides difficile 장염이란, 장기간 항생제를 복용하는 환자의 장내 정상세균총이 망가짐에 따라 디피실리균이 증 식하면서 생기는 증상이다. 설사와 복통, 메스꺼움을 동반하는 염증 이 발생하고, 심할 경우 천공이 생기거나 패혈증이 생기며 사망에 이 를 수 있다. 디피실리균은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어서 아직까 지 치료제가 없는 데 반해, 대변 이식의 전체 성공률은 90퍼센트로 보 고될 정도로 치료 효과가 크고 안전하다. 8586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 생태계가 살아 있는 상태로 옮겨져 이식받은 사람의 장 건강도 개선하 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 분야에서도 대변 이식이 시도되고 있다. 면역 항암제는 다양한 암종에서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여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많은 환자에게서 내성이 발생하는 한계도 있다. 이 를 극복하기 위해 장내 미생물이 인체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을 활용하 기도 한다. 즉, 면역항암제에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인 환자의 대변을 면 역항암제 내성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 누군가는 인종, 성별, 장애 등 다른 혐오의 대상과는 달리 동성애의 경우 자연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한 성적 지향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동성애적 취향에 대한 생 물학적 근거는 차고도 넘친다. 우선 앞서 논의한 공격성과 마찬가지로, 동성애가 사회적, 문화적 현상이 아닌 생물학 현상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는 바로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 사이에도 동성애가 만연하다는 것 이다. 1999년에 출판된 『생물학적 풍요 Biological Exuberance』는 약 470종에 달하는 동물들의 동성애 행동을 상세히 기록한 백과사전이다. 129 현존 하는 동물들 가운데 침팬지와 함께 인간과 가장 가까운 보노보가 대표 적인 예다. 그러나 이후 더 많은 종이 추가되어, 곤충, 거미, 극피동물(성 게, 불가사리, 해삼 등), 선형동물(회충, 편충, 선충 등)을 포함한 무척추동 물과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 주요 척추동물들을 포함해 무려 1,500종에게서 동성 간 성행위가 발견되었다.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포유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특히 유인 원과 같이 사회를 이루어 살거나 폭력 행위가 빈번한 종들에서 동성애 가 더욱 많이 관찰되는데, 이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갈등을 완화하 는 데 동성 간의 성행위가 진화적 적응의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로 좁힌다고 하더라도 너무 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어서 여기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신경과학의 세계 적인 권위자인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린든David Linden 교수 가 쓴 『우연한 마음 The Accidental Mind』과, 스탠퍼드대학교의 생태학자이 자 진화생물학자인 조안 러프가든Joan Roughgarden 교수의 『진화의 무지개 Evolution's Rainbow』, 그리고 신경유전학 전문가로서 여러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한 샤론 모알렘sharon Moalem 박사의 『진화의 선물, 사랑의 작동원리How Sex Works』에 소개된 주요 결과만 요약하도록 하겠다. 131-133 첫째, 통계적으로 형제자매 중 동성애자가 있는 사람은 동성애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일란성 쌍둥이 형제나 자매 중 어느 한쪽이 동성애자이면 다른 한 명도 동성애자일 확률이 48~50퍼센트에 이른 다는 것은 유전자의 강력한 영향력을 입증한다. 둘째, 수많은 동성애 자와 이성애자를 모집해 전장유전체 연관분석을 수행한 결과, X 염색 체 및 7, 8, 10번 염색체에서 양쪽 그룹 간에 상이한 차이를 보이는 유 전 변이들이 실제로 발견되었다. 셋째, 이성애자 아들에 비해 동성애 자 아들의 어머니와 어머니쪽 여자 친척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는다. 이에 대한 간단명료한 해석은 남자로 하여금 남자를 좋아하게 하는 바로 그 유전자가 여자로 하여금 남자를 좋아하게 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아이를 낳게 하므로 진화적인 이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태 아가 자궁 안에서 호르몬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성적 지향에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형이 여럿인 남자아이의 경우 자궁에서 더 많은 남 성호르몬에 노출되며 그 결과로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 지막으로, 사망한 동성애자 및 이성애자의 뇌 조직을 직접 채취해 조 사한 결과 동성애자들의 시상하부핵 INAH3의 부피가 이성애자들보 다 2, 3배나 작았으며 반대로 전교련anterior commissure이라는 부위는 이성 애자들보다 더 컸다.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과 진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표준 자료로서 '정신의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에서 '동성애'라는 진단명을 아예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1973년의 일로써, 이 책의 2판 6쇄에서 그 이름이 삭제된 이후 동성애는 정신의학의 역사에서 영구히 사라지 게 되었으며 더 이상 치료의 대상도 아니다. 134 1990년 5월 17일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동성애'를 질병 부문에서 삭제했고, 현재 이날 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로 매년 기념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일부 이성애자들은 본인이 가진 성적 취향만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이며 심지어 신이 마련한 거룩한 욕구라고 치장하지만, 동성애자에 대 한 거부감은 비만에 대한 낙인이나 인종차별만큼이나 근거 없고 부당 한 혐오의 감정이다.

- 현존하는 수렵채집 사회는 인류 조상들의 행동 양식을 알 수 있는 좋은 모델인데, 인류학자들의 관찰 에 의하면 어떤 수렵채집 사회에서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과제는 '누 구와 결혼하는가'와 '식량을 어떻게 배분하는가'다. 그런데 식량 배분 의 문제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되는 양상이 하나 있다. 바로 남성들은 큰 짐승을 사냥하려는 경향이 있고, 이렇게 큰 사냥감을 얻으면 자기 가족들뿐만 아니라 집단 구성원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통계치를 보면 훌륭한 사냥꾼의 가족이 다른 가족들보다 고기 를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이들 사냥꾼의 죽음이나 이혼이 아이들의 생존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인류학자들은 위 험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큰 동물을 사냥하고 나누어 주는 남자들의 행 동을 값비싼 신호로 설명한다. 157 이것이 바로 누구와 결혼할 수 있는가, 즉 번식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라과이의 아체 족과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에 대한 관찰 결과를 보면, 158-162 뛰어난 사 냥꾼이라는 평판이 있는 남성일수록 혼인 대상으로 더 인기가 많은 여 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고, 나이대별 생식 성공률도 높게 나타난다. 특히, 훌륭한 사냥꾼일수록 여자들이 아기를 임신한 시점에 남편 외에 관계를 가졌던 상대로 지목할 가능성이 높았으며, 나이 든 남자들의 경우에는 젊은 여자와 결혼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두 번째 가정을 꾸렸음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남자들 스스로도 사냥 능력이 여자들과 의 관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남자들이 번식량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부다처를 통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식량의 공급이 불안정하고 저장하는 방법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일부다처보다 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생식능력이 더 좋은 상대를 차지하거나 혼외정 사를 통한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 1만 년 전부터 신석기 혁 명이 시작되고 농경 사회로 접어들면서 해결책은 더욱 단순해졌다. 안 정적인 식량의 축적과 신분 사회의 시작은 본격적인 일부다처를 가능 하게 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인간 사회의 대다수는 일부다처 제를 유지했거나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163-164 유전학적으로 볼 때도 이 것이 입증된다. 즉, 지리적으로 다양한 인구 집단의 유전체에서 X 염색 체와 상염색체에서 나타나는 유전 변이의 다양성을 조사해 보면, X 염 색체에서의 변이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통해 인류의 역 사에서 일부다처가 지배적인 생식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165 특히 막 강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수많은 아내를 가졌다는 것은 역사적 기록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아시아나 유럽에 거주하는 현대인들의 Y 염색체를 조사해 보면 칭기즈칸이나 청나라 태조, 아일랜드 왕조의 혈통 등 권력자들이 남긴 유전학적 발자취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66-169 예를 들어, 수백 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알려진 칭기즈칸의 DNA는 불과 1,000여 년, 즉 30여 세대 만에 무려 1,600만 명의 남성 에게 전해진 것으로 파악된다.
자신과 부양가족의 한계효용 이상으로 더 많은 사냥을 했던 것이 과시적 소비의 원시적 형태였다면, 농경 사회로 접어든 이후로는 자연 적으로 가용한 자원에만 의존하지 않는 경제학적 노동과 생산이 이루 어졌을 것이고, 거기서 비롯된 잉여가치의 획득을 통해 본격적인 과시 적 소비와 신분 향상의 추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권력자들이 누렸던 온갖 장식물과 사치스러운 생활이 이를 잘 보여준다. 왕이나 귀족들이 입었던 휘황찬란하고 거추장스러운 의복은 입고 벗고 세탁하는 데도 많은 하인이나 신하가 필요했을 텐데, 이는 공작의 꼬리나 사슴의 뿔 과 같은 값비싼 신호를 연상시킨다.
근대사회로 내려와 보면, 1899년에 출간된 고전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Veblen이 낱낱이 파헤 친 미국 사회에서의 과시적 소비 행태가 있다. 170 여기서 '유한有閑'이란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는 한가로움이 있다는 뜻이다. 베블런은 무언가 를 소유하고 여가를 즐기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남들에게 보 여주는 것이 소비와 유흥의 궁극적인 동기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하 며, 이를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고 불렀다. 

- 호모 사피엔스의 치열한 번식 경쟁은 놀이조차 값비싼 신호로 변질시켰다. 잘 노는 것이 부와 능력을 드러내는 상징 이 된 것이다. 심지어 잘 노는 것을 과시하는 행위만으로도 엄청난 돈 벌이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프로스포츠와 연예, 대중예술의 세계다. 이렇게 호모 루덴스는 자신의 번식 경쟁력을 과시하는, 도구로서의 유 희를 즐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유한계급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게다가 많은 호모 루덴스들은 오직 자기 인생을 최대한 즐기는 것만을 지상 과제로 삼으며 자식도 낳지 않는다. 이들의 과시적 여가와 소비 행위 는 실은 번식을 위한 유전자들의 욕구의 발현인데, 실제로 번식은 하 지 않으면서 번식을 목표로 발동되는 가열한 경쟁 심리에 쫓겨 발버둥 치는 괴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 과거에는 없었으나 현대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값비
싼 신호 중 하나는 학력이다. 학력은 특히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많 은 현대인들이 얻고자 하는 대표적인 지위재 중 하나다. 그런데 1장에 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학업성취도는 유전자의 강력한 영향력하에 있어 서, 사실 예술이나 스포츠 못지않게 타고난 재능을 필요로 하는 영역 이다. 그래도 고등교육만큼은 사회에서 실질적인 가치의 생산에 기여 하지 않을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의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에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높은 교육 수준이 한 국가의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84 예를 들어, '스위스 패러독스Swiss paradox'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산업화된 스위스의 대학 진학률이 다른 잘사는 나라들 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데, 이는 교육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하준 교수는 이 것이 고등교육의 주된 목표가 생산성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의 전수보 다는 고용 시장에서 피교육자들의 순위를 매기는 데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고등교육을 받고 높은 연봉을 받는 인력들이 많다고 나라 전체의 생산성이 높지는 않다는 것은 이런 고급 인력들이 그만큼 가치 의 생산보다는 착취에 몰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앞서 착취의 대표적인 예로 햇빛이라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높이 자라는 나무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 과들에 의하면, 식물들은 자신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족을 대상으로 는 이러한 착취적인 행동을 절제한다. 캐나다 맥마스터대학교 수전 더 들리 Susan Dudley 교수의 선구적인 연구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이 놀라운 현상을 반복적으로 관찰함으로써, 한때 이단시되었던 이 이론이 이제 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0191 예를 들어, 주변에 유전적으 로 관련 없는 개체들이 있을 때 물과 토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 으로 뿌리를 뻗던 식물들이, 주변에 친족이 있을 때는 이러한 행동을 억제한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192 햇빛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마찬가 지다. 주변에 친족이 있으면 식물들은 잎이나 줄기의 성장 방향을 조 정함으로써 서로를 가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피토크롬phytochrome이나 크립토크롬cryptochrome과 같은 광감지 수용체들이 공기 중의 신호를 통 해 친족을 인지하게끔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191-193-194 또한, 꽃을 더 크 게 많이 피우면 나비와 같은 꽃가루 매개자들을 전체적으로 더 많이 끌어들여 주위의 개체들과 함께 이득을 얻을 수 있는데, 《네이처 커뮤 니케이션스》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주변 식물들과 근친 도가 높을 경우에만 나타난다. 

- 실제로 진보와 보수 간의 생 물학적 특성의 차이를 측정한 최초의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2007년 <네이처 신경과학과 2008년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2007년 연구에서는 평상시와 다른, 즉 예상치 못한 자극이 들어왔을 때 진보와 보수로 분류된 사람들의 뇌가 일으키는 반응이 뇌전도 측정 결과에서 차 이를 보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5 2008년 연구에서는 근전도 및 피부 전도 검사를 사용해, 갑작스러운 소음이나 위협적인 시각 자극이 주어 졌을 때 근육과 피부에서 측정되는 교감신경 반응이 18가지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입장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206 결과는 두 입장 간에 확연한 차이를 보였는데, 보수적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서 교감신경의 활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2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교감신경의 중추는 편도체라는 뇌 기관이며, 이 논문에서도 당연히 편 도체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에 따라, 정치적 성향에 따른 편도체의 크기나 활성을 측정한 연 구들이 이어졌다. 먼저 2011년 연구에서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90명의 뇌 구조를 살펴본 결과, 진보적 성향이 강할수록 전측대상피질의 회색질 부피가 큰 반면 보수적 성향이 강할수록 편도체의 회색질 부 피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207 2013년 연구에서는 기능성 MRI를 도입 해 편도체가 물리적 구조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서도 정치 성향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지를 확인했다. 208 즉, 위험이 동반된 의사결정 과제 를 수행하는 82명의 뇌를 기능성 MRI로 검사한 결과 보수 성향의 참 가자들이 편도체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22년에는 기능성 MRI 데이터를 딥러닝이라는 최신 인공지능 기법으로 분석해 사람의 정치 성향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209 이 연구에서도 역시 편도체가 예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는 것이 밝혀졌다. 앞서 2장에서 상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공포와 혐오 는 기본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편도체는 이 두 반응을 모두 주관한다. 2만 5,588명의 미국인과 121개국의 5.4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규모 연구 결과에서, 혐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일수록 보 수정당의 후보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10
2018년, 편도체가 뇌 인지 과정에 미치는 또 다른 영향에 대한 흥미 로운 연구가 《네이처 인간행동> 학술지에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총 93명의 뇌 MRI 분석을 통해 편도체의 크기가 클수록, 정치적, 사회 적, 경제적 현 상태status quo를 합리화하는, 즉 기성 체제가 정당하거나 바람직하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 런 사람들은 사회운동이나 시위에도 잘 참여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 은 실험 참가자가 사회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지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지와 상관없이 일관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생물학적 원인이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렇게 기성 체제와 현 상태를 옹호하 는 심리를 '체제 정당화system justification'라고 하는데, 이것은 뉴욕대학교 존 조스트John Jost 교수와 하버드대학교 마자린 바나지 Mahzarin Banaji 교 수에 의해 1994년에 처음 제시되었고,212 이후 많은 연구로 뒷받침된 이론이다.213 바나지 교수는 앞서 소개한 암묵적 연합검사를 개발한 학 자이기도 하다.
2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편도체와 교감신경은 생존을 위해 발달 한 두려움과 혐오라는 진화적 전략을 구현하는 매개체다. 혐오는 편견 이나 고정관념과 결합해 경계 대상에 대한 재빠른 분류와 판단을 하 게끔 만들고, 이것은 사회적 낙인이라는 현상으로 발달한다. 보수적인 국가관을 나타내는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은 이민 자 등 소수집단의 시민 전체를 외부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214215 이와 같이 무엇 혹은 누군가에 대한 신속한 판 단을 내릴 때는 자신의 신념을 반추하고 검토하는 행위가 아니라 흔들 리지 않는 신념이 필요하다. 따라서 편견과 고정관념이 구축되고 강화 되는 기저에는 자신의 기존 견해에 합하는 정보만을 취사 선택하려는 경향, 즉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존재한다.
크리스 무니 Chris Mooney는 신경과학과 사회심리학 등의 여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에 비해 보수적 성향을 지닌 이들에게서 확증 편향에 기반한 사고방식이 더 자주 그리고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216 실제로 이를 입증한 연구가 국제 학술지 《사 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되었다. 217 연구진은 2019년 2월 부터 7월까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가장 활발하게 공유된 5,000개의 뉴 스 기사에서 참과 거짓으로 구분된 20개의 정치적 진술을 도출한 다 음, 미국인 1,204명을 대상으로 각 진술을 참이라고 믿는 경향을 측정 하고 이를 여러 변수와 함께 분석하는 통계 모델을 만들었다. 결과적 으로 보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 이 있으며, 그에 따라 보수적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거짓 정보가 더 많이 유통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 런던대학교 정치경제대학의 가나자와 사 토시 Kanazawa Satoshi 교수는 『지능의 역설 The Intelligence Paradox』에서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지능지수가 높다는 조사 결과들을 제시 한다. 249 사토시 교수는 과학적 사고와 논리 능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현대적 개념의 지능지수가 높다는 것은 진화적으로는 부자연스 러운 성질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확실히 지능이 높은 사람은 뛰어난 의사, 뛰어난 우주비행사, 뛰어난 과학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직업은 진 화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인간의 생활에서 중요한 일들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의사나 우 주비행사, 과학자가 될 수 있게끔 만들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현대사 회에서 말하는 지능지수는 사회적 관계를 잘 맺거나, 성공적인 연애를 하거나, 좋은 부모가 되거나, 길을 잘 찾거나 하는 등 생존이나 생활과 관련된 지능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지능지수 가 높은 사람들 중에는 '헛똑똑이'가 꽤 많다.
사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한 인간의 뇌에게 과학과 수학이 자 연스러운 주제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 예를 들어, 3차원의 물리학적 공 간에서 차원이 하나만 추가되어도 인간의 머리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그려낼 수가 없고, 음수와 음수의 곱이 양수가 된다는 간단한 수학적 법칙도 원리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지구상에는 103개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고 추정된다. 이들을 한데 모아 나란히 세우면 그 길이가 1억 광년에 이르는데, 이는 우리 은하 500개를 이어놓은 것과 같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크기도, 10"이라는 개수도, 1억 광년이라는 거리도, 우리 은하 500개라는 규모도 모두 우리의 두뇌로 처리하기에 는 너무나 버거운 수치들이다. 양자역학은 거시 세계를 인지하도록 진 화된 인간의 뇌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세계의 결정체다. 양자 역학만큼은 아니지만, 진화론 역시 난해한 개념이며 방대한 분자생물 학, 해부학, 발생학, 생태학 지식 없이는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 미 국 캘리포니아 옥시덴탈칼리지의 심리학과 교수 앤드루 슈툴먼Andrew Shtulman이 『사이언스 블라인드Scienceblind』에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진화론보다 창조 설화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 250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 이유나, 생물에는 무생물과 달리 목적을 실현하는 특별한 생명력이 있다는 생기론적 사고가 만연한 것 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헬렌 피셔가 정리했듯이, 보수 성향의 사람들 은 이론적이고 복잡한 것보다 직관적이고 분명한 것을 더 선호한다. 222 게다가 편견, 고정관념, 확증 편향, 거짓 정보에 취약한 경우 음모론이 나 유사과학에 빠질 위험성도 높다.
- 그런데 탐색 성향의 진화적 유불리를 떠나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왜 자연이 만들어 내는 경쟁과 서열을 거슬러 굳이 평등을 추구하 는 사고방식이 등장했는가 하는 점이다. 당연히 체제 안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 러나 편도체와 체제 정당화의 연관성을 조사한 2018년 연구에서도 뒷 받침되었듯이, 기성 체제를 정당화하려는 경향은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베블런도 『유한계급론』에서 가 난한 사람들이 보수적 성향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 "일체의 에너지를 당장의 생존 투쟁에 쏟아부어야 하는 절대 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논증은 그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을 연상시킨다. 이 실험의 내용 은 아이들이 차후의 더 나은 보상을 위해 당장의 만족, 즉 눈앞의 마시 멜로를 참을 수 있는지 여부로 이후의 학업성취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실험은 여러 연구에 의해 반복되었는데, 특히 주목할 만 한 것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일수록 절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당장의 보상을 취하는 경향이 높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자기통제력을 비롯해 주의력이나 실행력 등 아이들의 정서적인 발달 정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가 미주신경의 활동성이다.  미 주신경은 부교감신경의 역할을 하므로 이것이 활성화되면 교감신경의 흥분을 빠르게 가라앉혀 안정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데, 실제로 교감 신경이 스트레스로 흥분해 있을 때 미주신경을 자극해 긴장도를 높이 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환경의 아이들에게서는 이러한 미주신경의 활성도가 낮게 관측된 바 있다. 262 이와 같이 생존에 대한 위협과 경쟁에 민감한 환경일수록 교감신 경은 더 활성화될 수 있고, 이러한 생리학적 조건은 사회 정책에 대한 인식에도 반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대처 능력 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다른 나라들이 더 큰 위 협으로 다가올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취업이나 임금 경쟁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 정책적인 면에서 국방, 안보, 이민 등에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체제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 은 진보적 입장을 취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진보적 사고방식은 체제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서 더 자주 발견된다. 실제로 보수층에서는 학계나 예술, 연예, 대중매 체 등을 진보 진영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불평이 많다. 미국 대학교 수진의 대다수가 좌파 성향이라는 것을 근거로 진보층이 학계의 헤게 모니를 쥐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263 한국도 마찬가지다. 노정 태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의 <신동아> 2023년 3월호의 글을 인용 해 보자.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는 불만의 원성이 높다. 대통령은 바뀌 었지만 사회 전반을 쥐락펴락하는 건 여전히 진보 세력이라고 한다.
- 그러한 비난의 원성은 문화예술계를 향할 때가 많다." "지식인 사회 전 체를 보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점가에서 정치 사회 분야로 분류 되는 책의 베스트셀러 순위는 언제나 진보 성향 필자들이 쓴 것이다." “보수의 문화적, 지적 자산은 빈약하다 못해 황량하다." "청년이건 노 년이건 보수는 책을 읽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만들지도 않 는다. 각자의 유튜브 화면을 보고 있을 뿐이다."
-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의미를 상식선에서 어림짐작으로 받아들이 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의는 모호하기만 하다. 경제, 교육, 외교, 사 회, 과학기술,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걸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두 진영의 입장을 분석해 보면, 보수는 전통을 옹호하고 진보는 변화 를 추구한다는 사전적 정의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관적이고 내재적 인 공통의 신념 혹은 가치관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뇌과 학 및 유전학에서는 인간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요인들에 대한 연구가 이미 많이 이루어졌다. 먼저 편도체와 교감 신경의 높은 활성은 주로 보수 성향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기 성 체제를 정당화하는 심리를 설명해 준다. 편도체 기능과 유전학

- 로토닌은 사회 위계질서 확립과 서열 향 상을 꾀하는 행동을 촉진한다.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도파민과는 달리, 세로토닌의 활성은 진화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해 왔 다. 또 다른 요소는 짝짓기와 관련된 다양한 행동의 기저에 있는 페 로몬과 그 수용체다. 실제로 보수층에서는 생애 번식 성공률 지표 가 높게 나타난다. 이와 같이 생물학적으로 정의할 때, 보수란 성공 적으로 진화한 유전자들의 발현이자 자연이라는 원초적인 체제에 대한 정당화이며, 진보란 진화로부터의 일탈이자 자연 체제에 대한 저항과 도전이다.
- 한때 50억 마리의 개체 수를 자랑하던 여행비둘기가 불과 30여 년 만에 수수께끼처럼 멸종한 것은 바로 진화 과정에 서 유전적 다양성이 지나치게 낮아진 데 그 원인이 있다. 
이와 같이 집단이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 자신의 소멸과 다른 변이의 탄생을 맞바꾸는 유전자들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 런 방식으로 다양한 변이들이 많이 생겨나야 혹독하고도 변동하는 환경에서 집단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유전자가 스스로 선택 한 이타적인 결정이 아니라, 환경의 압력에 의해 강제된 유전자들의 희 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돌연변이는 유전자의 의도에 반해 무작위적 으로 발생하고, 또한 다양성의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치된 것이 기 때문이다. (이는 3장에서 언급한 집단선택설, 즉 집단을 위해 이타적으 로 행동하게 만드는 변이들이 많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유리하 다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최근 들어 생물 다양성에 대한 논의 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은 생태계 유지의 차원 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다양성 그 자체가 선하거나 아름다운 것은 아 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생물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연이 얼마나 생명체에게 적대적인 환경인지를 말해주는 방증이다.

- 이와 같이 체세포에 일어나는 돌연변이가 노화를 통해 죽음을 초 래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로가 바로 암이다. KAIST의 우리 연구실에 서도 국제 컨소시엄 참여나 국내 대형 병원과의 협업 등을 통해 암세 포에 나타나는 체세포 돌연변이를 분석하는 연구를 여러 차례 수행했 다. 290-292 우리 연구실에서 암유전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졸업생이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참여한 연구가 돌연변이-노화-암의 관계에 대 한 매우 중대한 연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93 2022년 《네이처》에 발 표된 이 연구에서는 체세포를 대표해 혈액세포, 보다 정확히는 조혈모 세포의 돌연변이 분포를 사람의 나이에 따라 조사했다. 294 여러 돌연변 이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해당 세포를 잘 자라게 만드는데, 이렇게 특 정 변이가 빠르게 세포 집단 안에서 퍼져가는 과정을 '클론 확장clonal expansion'이라고 한다.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놀랍게도 딱 70세가 넘으 면 이러한 클론들이 갑작스럽게 전체 세포 집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구진은 이와 같은 세포 집단 구성의 급격한 변화가 다양한 노화 현 상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암의 진행 경로일 것이라고 설명하 고 있다. 다른 세포에 비해 경쟁적으로 빠르게 분열하다가 급기야 조절 능력을 잃고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것이 바로 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커크우드 교수의 논리를 따른다면 기대 수명이 낮은 가혹 한 자연환경에서는 돌연변이의 증가로 인해 암 발생률이 특히 높을 것 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실제로 188개 국가에 대한 17가지 다른 변수들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보니, 연간 평균 기온이 낮을수록 암으 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25 특히 알래스카나 그 린란드 등 극한의 추위 속에 사는 이누이트나 아메리카 원주민 등의 암 발생률이 월등히 높다는 것도 밝혀졌다.26 그런데 기대 수명에 따라 DNA 복구 활성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추운 환경을 예 로 들자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낮은 온도가 DNA 복구를 저해하는 것 일까?
간단한 추정 중 한 가지는, 추운 환경에서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높은 대사 스트레스로 인해 DNA 복구에 들어가는 자원과 에너지가 물리적으로 제한되고, 이로 인해 암을 발생시키는 돌연변이의 양이 증 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이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최근 네이 처》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추운 조건에 노출되는 것이 오히려 암세 포를 굶겨 죽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27 또한 하버 드대학교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싱클레어 David Sinclair 교수도 『노화의 종말Lifespan』에서 간헐적으로 몸을 추위에 노출시키는 것이 오히려 세포 의 노화 방지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고 주장한다. 298 무엇보다도 개인 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시적 현상을 넘어, 수십 세대에 걸쳐 그런 지역 에 살아온 사람들이 진화를 겪으며 적응해 온 유전학적 결과를 고려해 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불리한 환경에서 DNA 복구 기능이 저해되고 암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은 애초부터 진화를 통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면역계의 노화 문제는 또 있다. 우리 몸에는 흉선 혹은 가슴샘이라 는 조직이 있는데,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면역세포의 하나인 T 세포 가양성되는 곳이다. 일단 만들어진 무수히 많은 종류의 T 세포들은 그 것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는지, 함께 일해야 하는 다른 면역세포들과의 상호작용이 제대로 일어나는지, 그리고 자가 세 포나 단백질을 타자로 잘못 인식하는지 테스트를 거친다. 이러한 치밀 한 훈련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T 세포들은 모두 제거되고 오직 2퍼센트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어린 시절 활발하게 작동하던 가슴샘 조직 은 나이가 들수록 크기가 줄어들고 기능도 위축된다. 물론 우리 몸에 는 가슴샘 말고도 T 세포를 훈련시키는 다른 장소들도 있지만, 이때쯤 이면 면역 기능이 점차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가슴샘이 기능하지 않 으면 추가적인 T 세포 양성 없이 사실상 그때까지 훈련된 T 세포들만 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에, 고령자들은 감염 질환에 훨씬 취약해진다.
- 사실 인간이 자연에 저항하고 맞서고 개척하기 위해 넘어야 할 가 장 큰 장애물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다. 특히 자연 친화적인 본능은 기 술의 진보에 대한 의심과 경계를 유발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인위 적으로 합성된 약을 가급적 안 먹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자연이 제공하는 것은 거의 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식품이나 화장품 에 '자연', '천연', '유기농'과 같은 말이 붙어 있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여기에는 두 가지 착각이 존재한다. 첫째는 약이라는 것이 인공물로서 근본적으로 자연물과 다르다는 착각이다. 하지만 약도 지구상에 존재 하는 자연의 원소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합성물이나 천연물이나 모두 화학물질로서 그 경계 자체가 불분명하다. 단지 그러한 조성이 지금까지 자연에서 발견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른 차이일 뿐 이다. 둘째는 자연 그 자체가 순수하고 건강한 자원을 제공한다는 착 각이다.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로, 알레르 기의 주된 요인은 모두 자연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또한 꽃가루, 동물 의 털, 진드기와 함께 가장 빈번한 원인 중 하나는 음식물이다. 우유, 달걀, 견과류, 콩, 밀, 생선, 갑각류 등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데, 특히 땅콩 알레르기 같은 경우는 사망을 초래할 정도로 위험하다. 식중독도 있다. 날로 먹는 고기나 해산물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 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수십만 종의 식물 중에서도 사람이 먹고 탈나 지 않거나 죽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 일부 버섯은 독성이 매우 강해 치명적이다. 일부 아몬드와 사과, 체 리, 복숭아, 살구 등의 씨에는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것 이 몸에 들어가 대사가 되면 청산가리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흔치 않 지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식으로 먹는 카사바에 들어 있는 리나마린 역시 청산가리로 변하기 때문에 과량을 날로 먹으면 중독된다. 그래서 카사바는 껍질을 벗기고 한동안 물에 담가놓았다가 고온에서 쪄서 먹 어야만 안전하다. 헤마글루티닌 또는 적혈구응집소는 많은 콩과식물 에 천연적으로 존재하는 독성 물질로서 적혈구 세포를 응집시킨다. 붉 은 강낭콩은 네 알만 날로 먹어도 소화기관의 내벽이 손상되어 메스꺼 움, 구토, 설사, 그리고 장이 뒤틀리는 고통이 따라온다. 섭씨 80도 정 도의 온도에 노출되면 독성이 약 5배 증가하기 때문에 어설픈 가열은 금물이다. 반드시 끓는 물로 10분 이상 끓여야 한다. 감자를 햇볕에 오래 노출시키거나 오래 보관하면 표면이 초록색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부분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성 물질이 생긴다. 감자의 싹에도 들 어 있는 솔라닌은 구토, 설사, 위경련, 신경학적 문제 등을 유발하며, 심한 경우에는 호흡곤란을 일으키므로 다량 섭취하면 상당히 위험하 다. 감자의 독성을 몰랐던 초기 유럽인들은 감자를 먹고 탈이 나는 경 우가 많아 감자를 악마의 음식이라고 불렀다.
식물이 동물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혹은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생각은 다분히 순진한 착각에 불과하다. 모두가 생 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하는 곳이 바로 자연이다. 식물 역시 동물에게 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며, 독성도 바로 그러한 방편 중 하나다. 

- 막스 플랑크는 양자역학의 성립에 핵심적 인 기여를 했으며, 특허청 공무원 신분으로 연구 활동을 하던 아인슈 타인을 발굴해 내기도 했는데, 그런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새 로운 과학적 진리는 반대자들을 설득하거나 감화시키지 않는다. 그보 다는 반대자들이 다 죽고 나서 새로운 진리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나타날 때 비로소 승리한다.” 이것이 과학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종교는 더더욱 그렇다.

-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그러나 이기성이 유전자의 본래적 속성은 아 니다. 그저 우연히 생겨난 이기적인 변이들만이 진화 과정에서 경 쟁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다. 각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변이의 발생 이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생명의 진화는 혹독한 자연 속에서 일부 개체라도 살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변이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자연에 의해 유전자들이 '다양성'이라 는 이름으로 당하는 희생이, 인간에게서는 질병과 노화와 죽음으로 나타난다. 질병과 마찬가지로 노화와 죽음도 변이의 문제로 귀결되 는데, 그것은 우리 몸이 야생에서의 기대 수명에 미칠 만큼만 DNA 복구에 에너지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생식 기능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즉, 적대적인 자연환경에서의 기대 수명은 어차피 제한되어 있 기에, 우리는 건강을 챙겨 장수하는 대신 젊을 때 더 많은 자식을 낳 고 일찍 죽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개체들 간에 일어 나는 약육강식의 생존 투쟁과 사회적 갈등뿐만 아니라 개체 안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비극 역시 궁극적으로 자연의 문제다. 그럼에 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경외하고 선망하며, 많은 문제에 대 해 인간 자신을 탓하는 가운데 문명의 진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을 갖는다. 특히, 인간보다 자연을 우선시하는 극단적인 생태주의 와 환경운동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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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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