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 갇혀 있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과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의 경험이나 유산 등에 갇혀 있는, 많 은 노년층의 사고나 기득권 등은 미래의 발목을 잡고 변화를 거 부하고 있다. 일본과 차이가 있다면 65세 이상의 노년층 비중이 3분의 1에 가까운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직 20%가 채 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정치의 세습화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시대 변환기는 (정도 차이가 있지만) 기존 질서나 기득권 대 새로 운 변화의 힘 간에 사회 갈등이 증폭된다. 사회 갈등을 조절하며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하는 것이 정치 리더십이다. 한국 사회는 지구상에서 민주주의 역동성이 가장 큰 사회 중 하나이다. 예를 들면,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민 주주의나 정부 자질 등을 가장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세계 179개 국의 민주주의 수준 을 10개 그룹으로 분류하여 매년 3월에 발표하는 민주주의 보고 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에 3그룹에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1등급으로 상향 이동했다가 윤석열 정권 출범한 2022년에 2그룹 으로 내려갔다. 민주주의의 역동성과 더불어 취약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일본은 정치의 세습성과 노인층의 지배 등 으로 민주주의 역동성이 구조적으로 제약되어 있다. 이후 살펴 보겠지만 우리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가 미래를 여 는 키워드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현대 사회의 사회적 생산물은 화폐가치로 재구성되는 화폐경 제의 사회이기에, 사회적 생산물의 배분을 둘러싼 사회 구성원 의 관심은 돈의 배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즉 오늘날 시대에서 돈은 권력 그 자체이다. 그리고 돈은 시장에 의한 배분과 민주주 의에 의한 배분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시장 권력과 민주주의 권력은 끝없이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돈의 힘을 통제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명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 이다. 1980년대 이래 금융의 가치와 관점으로 사회를 재구성한) 이른바 '금융화Financialization'로 인해 민주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위협받는 배경이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공동 체의 존립 자체가 위기에 처한 이유이기도 하다.

- 흔히 영국의 절대왕정은 대륙의 절대왕정에 비해 '취약성'이 그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왕권이 취약한 영국 절대왕정을 상징 하는 역사적 사건은 우리가 잘 아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혹 은 '대헌장The Great Charter of Freedoms'이다. 그런데 왕의 절대권력에 제한을 걸기 시작한 마그나 카르타는 필연적으로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거나 혹은 "자유인은 같은 신분을 가진 사 람에 의한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으면 체포·감금할 수 없다" 는 권력의 분산과 자유의 확대 등, 이른바 우리가 알고 있는 '권 리장전 Bill of Rights'으로 이어졌다. 국왕이 의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 고 징병, 징세, 법률의 제정 및 폐지 등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은 바로 절대왕정 국왕 권력의 취약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권력 의 분산이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가 태동했음을 보여준다. 사회 안정을 위해 대내적 공존의 틀을 만든 것이다. 이 틀은 나아가 사회전체의 공동 번영을 위한, 근대 세계의 대외적 안보의 기준이 된다. 즉 절대왕정은 결코 권력 경쟁의 끝이 될 수 없었다. 필연적으로 국가(절대왕정) 간 패권 경쟁으로 이어졌다.
절대왕정과 당시 새로 부상하는 도시의 신흥 상공업자는 대외 팽창 및 식민지 개척에서 공통의 이해를 가졌다. 지하자원과 농산 물 등의 착취로 국가 및 부르주아의 부의 축적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서양 사회에서는 자국 이익 중심주의'라는 대 외안보의 철칙이 확립되었다. 대내적으로는 계급 간 이해 갈등을 보이지만, 대외적인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학계와 비 즈니스계, 언론 등 모든 분야의 엘리트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배 경이다. 이 부분이 (사적 이득을 위해서는 국가조차 수단으로 간주하는 이른 바 매판성을 갖는) 대한민국의 '자칭 보수집단과의 차이점이다.
- 대외적 국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강한 군사력은 필수조 건이었고, 국가 군사력 강화를 위한 국가 경제력 강화 역시 공동 목표가 되었다. 당시 군사력의 핵심은 함선의 구축이었다. 영국 이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이 해군 함선의 구축이었다. 이를 위해 함선 구축에 필요한 재원 (전쟁자금) 조달 문제, 이른바 새로운 금융의 뒷받침이 필요했다. 오늘날 영국 중앙은행의 뿌리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이런 배 경에서 탄생했다.
이처럼 대영제국의 힘은 (사회 구성원 간 협력을 통해 사회 공동의 문 제를 해결하는) '사회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한 민 주주의라는 사회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이처럼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으로 구성되는 은행시스템은 기 본적으로 공공금융의 성격을 갖는다. 최소한의 사회소득에 대한 기본권리와 더불어 최소한의 사회금융에 대한 기본권리 모두 정 치와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모든 국민에게 사회몫의 형태로 배 분되는 돈은 정치의 산물이고, 개인몫으로 배분되는 돈은 시장 (경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 는다.
그렇다면 누가 정치를 외면하거나 경제와 분리하여 사고하길 원하는지 알 것이다. 정치 영역을 최소화한다는 것은 사회몫, 즉 사회소득과 사회금융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최소화하려는 것이고, 사회몫을 축소할수록 (돈의 힘이 지배하는) 개인몫이 커지기 때 문이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금융화 이후 정부나 정치, 특 히 관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 기초한 '재정 지출 최소주 의'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배경이다.
재정 지출 최소주의란 필연적으로 감세를 수반할 수밖에 없 고, 감세의 혜택은 세금 부담이 큰 부유층에게 집중된다. 또한, 재정 지출 최소주의는 (돈이 되지 않는) 공공서비스의 축소로 이어 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서민에게 귀착된다. 공공서비스의 생 산과 공급 과정 중 돈이 되는 부문만 민간에게 넘기고, 공공서비스 요금 부담을 분산하거나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채를 축소한다는 핑계로 공공기관의 자산 매각을 추진한다. 생계 자체 가 어려운 최소한의 국민에게만 지원하고, 다수의 저소득층과 중 산층에게는 공공서비스 요금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2021년 기준 소득활동자 80%의 세후 월소득이 444만 원도 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 국민의 부담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 고자산 매각은 자본과 모피아 등의 뱃속을 채워줄 것이다.
-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경제와 정치는 1원 1표의 시장경제 원리와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 위에서 작동했다. 민 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1원 1표 원리, 즉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만 남고, 사회는 극단적 불평등을 향해 치닫고 결국 붕괴한 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최소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 야만 자본주의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 황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기본적으로 불평등 심화 의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프랭 클린 루스벨트의 사회개혁이 미국 자본주의를 살렸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 아닌가.
이런 점에서 현재 미국이 직면한 위기는 바로 대공황 이후 민 주주의를 강화했던 것과 달리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비롯한다. 이 처럼 1원 1표 원리는 1인 1표 원리를 제거하고 싶겠지만, 1인 1표 원리가 사라지면 자신도 소멸할 수밖에 없다. 낮은 밤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밤이 있기에 낮이 빛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돈의 흐름'을 의미하는 금융(금전 융통의 축약어)을 시장에만 맡 겨놓으면 사회는 순식간에 야만화되고 그런 사회는 지속이 불 가능하다. 불환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른바 화폐경제 시대의 경제 문제는 '돈의 배분 문제로 귀착한다. 함께 생산한 생산물은 대부분 화폐로 표현되고, 그 생산물의 배분은 결국 돈의 배분이 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생산한 사회적 생산의 화폐적 배분을 어떻게 시장에만 맡길 수 있다는 말인가.
공공금융의 복원은 좌파적이거나 진보적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시장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출발했고, 양축이 균형을 맞추었기에 번영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근대 사회의 본 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공공영역에서 금융을 분리하여 시장(민간)금융 중심으로 바꾼 것이 사회 전체를 금융 자본의 논리로 재 구성한) 이른바 금융화였고,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공공영역의 축 소로 이어졌다. 재정 지출 최소주의, 감세, 작은 정부,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불평등의 심화 및 가계 부채와 정부 채무의 급증 등 이 그 산물들이다.

- 이제 미국 은행 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던 실리콘밸리은행SVB 의 2023년 3월 10일 파산을 되돌아보자.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업 들이 주요 고객인 SVB는 금리 인상 속에 자금조달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운영자금에 압박을 받은 기업들의 평소보다 많은 자 금인출로 인해 자금확보 압박을 받자, 이에 대해 매각할 수 있는 수익증권 매각으로 대응한다. 그런데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국 채나 기관보증채권 등의 가격이 폭락했던 상황에서 손실을 입는 다. SVB의 경우 2022년도에 약 161억 달러의 예금 인출이 있었 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약 146억 달러의 차입을 늘렸으나 여전 히 부족해 수익증권을 매각했고, 증권 매각으로 약 18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만기까지 보유하는 증권에서도 미실현 손실액 이 약 50억 달러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게다가 85% 이상 이 보장받지 못하는 예금이다 보니 인출 사태는 사실상 뱅크런 수준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SVB 파산의 문제는 정도의 차이일 뿐 많은 미국 은행의 공통 문제였기에 3월 12일 시그니처은 행Signature Bank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사태의 심각성으로 '재무부-연준-월가'는 (항상 그랬듯이) 함 께 해결책을 논의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3월 13일 연준의 '긴 급 대출 프로그램 Bank Term Funding Program, BTFP'이다. BTFP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은행들 보유 채권의 담보가치를 액면가 기 준으로 해주고, 다른 하나는 대출 기간을 최대 1년까지 해주겠다 는 것이었다. 위기에 직면한 은행들에 대한 중앙은행의 긴급 지 원 대책이었다. 오늘날 중앙은행은 위기에 내몰린 은행에 자금 을 지원할 때,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을 지낸 월터 배젓Walter Bage- hot이 1873년 제안한 이른바 '배젓의 원칙'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배젓의 원칙은 위기에 내몰린 은행을 지원할 때 중앙은행은 "질 좋은 담보와 높은 이자를 조건으로 파산에 몰리는 은행에게 가능한 신속하게 그리고 무제한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 다. '배젓의 현대판 원칙'에서는 주주들이 상당한 대가를 감수해 야 하고, 경영진이 즉각 교체되는 조건이 추가됐다. 그런데 연준 은 익일물 연금리에 0.1%의 패널티 금리를 추가했을 뿐이다.
일반 기업, 특히 개인 사업자가 사업을 하다가 자산이 부채보다 많아도 자산을 현금화할 수 없어 부채 상환이 어려운 '유동성 위기' 상황 에 놓였다고 해서 중앙은행이 자금을 지원해주지는 않는다. 게 다가 시장가격이 하락한 채권들을 액면가치 기준으로 담보를 잡아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연준은 금융위기 때 은행과 금융회사 등의 가격이 폭락한 부실채권들조차 액면가치로 담보를 잡아주었다. 중앙은행이 얼마나 은행·금융 자본의 이익에 충실 한가를 보여준다. 물론, 은행 파산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이른바 '대마불사' 라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 아닌가. 이렇게 위기 상황에서 구제 해줬다고 해서 은행이 이익을 냈을 때 사회와 그 이익을 공유한 적이 있던가.

- 공공금융의 실종은 사회의 실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공공 금융은 사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회가 약화되고 없어지면 사 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 속에 살면서도 고립된 존재가 될 수밖 에 없다. 고독사가 바로 그 현상 중 하나이듯이 공공금융이 약화 된 사회는 황폐화되고, 야만화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돈이 너무 풀려 인플레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 으로 기존의 고금리 신용대출을 최저 금리로 전환시켜주는 것뿐 이다. 돈이 필요가 없음에도 대출을 이용하는 사람은 생기지 않 는다. 아무리 낮아도 대출금리가 예금금리보다는 높기 때문이 다. 심지어 이러한 권리 회복을 퍼주기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금융 자본 논리에 너무 세뇌된 결과이다. 이들은 자금난에 직면 한 금융회사나 건설기업 등에 대한 자금 지원을 '퍼주기'라 말하 지 않는다. 금융위원회(2023. 10. 31)에 따르면 1997년 외환위기 이 후 투입한 공적 자금 168.7조원 중 2023년 9월까지 회수하지 못 한 돈이 48.3조 원이나 된다.
- '낡은 빚을 갚기 위해 낸 '새 빚', 이른바 'IMF 구제금융'은 대 한민국에 자자형刺刑이나 다를 바 없는, 형극荊棘의 길을 열었다. 비워진 국부(눈에 보이는 대가)는 고생을 해 채워 넣으면 되었지만, 월가 자본 논리에 의한 한국 금융의 재구성은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대한민국을 총체적으로 해체시키는 원인으로 작 용해왔다. 공공금융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사회의 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에는 원자 화, 파편화된 개인만 존재할 뿐 사회적 존재는 사라지게 된 이유 이다. 이미 그때부터 각자도생의 길이 시작된 것이었다. 노후 파 산, 청년층에까지 확산한 고독사, 지방 소멸과 인구 소멸 그리고 국가소멸로의 진행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공공금융의 해체로 재벌 자본에 더해 '월가 자본의 아바타인 금융 자본'이 시장 권력을 더욱 공고화했다. 돈의 힘은 사람들을 욕망의 포로로 만들고, 민주주의가 고개를 들 때마다 무참히 짓밟았다. 돈의 힘이 통제되지 않는 한, 정치는 돈의 힘에 좌우되 고, 민주주의의 자리는 금권 과두정이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 이다. 공공금융은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에 사회를 구성하는 민 주주의와 시장 중 민주주의가 죽으면 시장만 남게 되고, 시장만 남은 사회는 죽어갈 수밖에 없다
- 인간 사회에서 핵심적인 경제 문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생산'과 함께 생산한 것을 '배분하는 문제로 구성된다. 사 회 구성원은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몫을 배 분받는다. 개인 소득이 그것이다. 그 소득 중 일부는 소비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소비하기 위해 저축한다. 소득 중 저축된 부분 이 자산으로 축적된다. 오랜 시간 축적된 자산은 세습으로 이어 질 수 있다. 그래서 사회는 전통적으로 소득 불평등에 관심을 가 겼다. 소득 불평등이 장기적으로 자산 불평등을 낳고 자산 불평 등은 경제력의 세습으로 이어져 사회 유동성과 활력을 저하시킨 다. 출발선의 차이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해지고, 빈익빈 부익 부가 심해지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의 '희년'이 제정된 이유이고, 극심한 토지 집중이 왕조교체로까지 이어졌던 동양 전통사회의 역사가 그 결과이다.
부동산자산 중심의 경제 구조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 주요국 중 최악의 자산 불평등 국가로 만들었다. 자산 불평등이 가장 심 한 선진국 중 하나인 미국의 경우 팬데믹 기간에 주식 자산가치 증가가 부동산 자산가치 증가보다 약 3배 컸던 반면, 한국은 정 반대였다. 부동산자산은 주식자산보다 불로소득 성격이 강하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고, 그 결 과 정부와 기업과 가계 모두가 부동산의 인질이 되었다.
- 문제는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일본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고, 금리의 조기 인하도 어렵 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시장이 이 상황을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카드의 소진으로 해석할 경우 이른바 공포 확산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계 부채를 숙주로 삼는 부동산 카르 텔 공화국의 종언은 예정된 것이다.
- 가계 부채 증가는 중단될 수밖에 없는 반면, 그 순간 부동산 자 산가치의 하락→ 부채 구조조정의 강제 → 부동산 투매Fire sale와 파산→ 소비와 경기 침체→ 일자리와 가계 소득의 악화 → 부동 산 자산가치의 수직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경제가 2023년 스태그플레이션에서 2024년 말에는 디 플레이션 국면으로 전환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부채 모래성의 필연적 결과이고 자연의 순리이다. 한국 사회는 좋든 싫든 부채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즉 부동산 카르텔 공화국과 결 별하고 새로운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 대한민국의 공공영역에서 가장 권한이 집중된 곳은 공적 물리 력의 집행기구인 검찰과 공공자금의 배분을 결정하는 기재부이 다. 과거 권위주의 군사정권은 이들보다 강한 물리력을 가진 탓 에 이들을 통제하여 지배 도구로 삼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민 주화 이후 선출 권력은 법에 의한 지배를 하기에 검찰과 기재부 에 대한 통제는 느슨해졌다.
게다가 군사정권 시절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로 이원화되었던 오늘날의 기재부는 (정부 주도 개발을 부정시했던) 문민정부에서 오히 려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면서 권한이 더 집중되었다. 선출 권 력의 공적 기구에 대한 통제력은 약화했으나 역설적으로 경제관 료의 권한은 더 강화된 것이다. 특히 가능한 국무총리의 권한을 최대 한 존중하려는 민주정권에서 사실상 내치를 책임지는) 국무총리를 보좌하 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즉 정부의 각 부처를 통할하고, 주요 정책을 기획·조정하고, 규제 개혁 및 정부 업무평가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핵심 국정운영 기관인 국무조정실의 실장(장관직)을 경 제관료가 장악하게 된 배경이다. 역대 국무조정실장을 보면, 멀 리 가지 않고 박근혜 정권에서 김동연-추경호-이석준이 모두 기재부 출신이고, 문재인 정권에서 홍남기 노형욱-구윤철이 기 재부 출신이고, 윤석열 정권에서 방문규부터 현재 (2023년 12월)의 방기선까지 모두가 기재부 출신이다.
국무조정실이 (대한민국 모피아가 본격적으로 부상한) 김대중 정부에 서 만들어진 것도 주목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서 예산 부문을 재정경제부에서 분리했지만 (모피아 사고에 젖어 있 는) 경제관료가 장악하는 한 공공금융에 대한 사고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균형재정' 신화에 갇혀 있는 '(경제)관료에 포획되어 예산을 장악하지 못한 후회를 퇴임 후 토로한 배경이다. “이거 하나는 내가 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던 거는 오히 려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버 리고, '여기에서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 (...) 지금 생 각해보면 그래요. 그래 무식하게 했어야 되는데 바보같이 해서..." 노무현, 《진보 의 미래> 중에서)
그 결과가 오늘의 공룡 기재부이고, '사실상 기재부의 나라'가 된 것이다. 현재 정부조직법 27조 1항은 기재부 장관의 권한을 "중장기 국가발전전략수립, 경제 · 재정정책의 수립·총괄·조정, 예 산·기금의 편성·집행·성과관리, 화폐·외환·국고·정부회계·내국 세제·관세·국제금융, 공공기관 관리, 경제협력 · 국유재산·민간투자 및 국가채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듯이, 오늘날 기재부는 사실상 정부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이 바로 정부 주도 개발을 추진한 군부 권력의 경제기획원 권한이고, 예산 편성권은 김대중·노무 현 정권의 기획예산처 권한이다. 또한 내국세제 권한으로 부동 산 관련 세제를 매개로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정책에 개입하고, 화폐 업무로 한국은행을 관리하고, 외환 업무 포함 국제금융 사 무와 (사실상 국무조정실장의 코치를 받는 국무총리의 통제를 받고 기재부 차 관이 당연직 금융위원회 위원인) 금융위를 사실상 관리한다. 한국은행 이 모피아의 '남대문 출장소'로, 금융위금감원이 '여의도 출장 소'로 불리는 배경이다. 그리고 산하에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 등 4개나 되는 청을 갖고 있는 부서이다.
- 사실, 기재부 권한은 일반 국민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산 심의 를 하는 국회의원들도 지역구 예산 배정을 결정하는 기재부 권한 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실 경제비서관이나 정책실도 기재 부 사정권에 놓여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별정직 관료를 지칭)'인 홍장표 경제수석이 2018년 6월 사실상 경질된 후 윤종원·이호승 ·안일환 등 경제관료(늘공, '늘 공무원'이라는 뜻으로 직업 관료를 지칭)가 경제수석을 장악했듯이 경제관료 조직은 사실상 선출 권력조차 좌지우지한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관료의 권한을 상징하는 용어가 바로 '모 피아'이다. 모피아는 과거 재무부MOF와 마피아Mafia를 합성한 말이다.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들이 정계, 금융기관 등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면서 그들의 이익, 곧 개인과 조직의 사익을 위해 국가 경제정책을 뒤흔든다는 비판이 담긴 말이다.
모피아의 폐해는 금융 기능을 모두 시장에 맡겨버린 데서 출 발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일이 (당시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등 이 지배적 담론으로 형성될 정도로 경제 운용에서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부정하 는 분위기 속에서 시장 중심으로 재편했던) 김영삼 정부에서 싹을 보이기 시작했고, 외환위기를 계기로 김대중 정부에서 완성되었다. 미국 에서도 없는, 즉 월가 자본의 요구를 사실상 모두 수용한 결과였다. 그 중심에는 (김대중 정권 출범 때부터 은행감독원장과 증권감독원장을 거쳐 초대 금융감독원장을 지냈고, 이어서 재정경제부 장관을 김대중 정부와 노 무현 정부에서 역임한) 이헌재를 필두로 하는 경제관료가 있었다. 2011년 2월 저축은행 7개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시 작된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의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2012년 7월 금융감독원 공채 직원 600여 명이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당시 금융 감독원장인 권혁세 등 모피아를 수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당시 금융감독원 노조는 "모피아를 정리하 지 않으면 어떤 정부가 와도 경제정책은 이들이 원하는 대로 휘 둘린다"고 주장했다. 2001년 8월 IMF에서 빌린 195억 달러를 모두 상환함으로써 4년 만에 졸업했다고 말하지만, 실상을 보면 대한 민국은 월가 자본의 수중에 떨어졌고, 이 작업을 수행한 것이 모 피아였다.
- 이처럼 돈의 힘이 공적 권한을 지배하고, 공공영역이 공적 역 할 수행보다 자본의 수족이 되면서 한국은 '부동산 카르텔 공화 국'이 되고 말았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구체적으로 재벌(건설) 자 본과 금융 자본을 중심으로 공적 영역에서는 모피아와 검찰 권 력이, 사적 영역에서는 언론과 대형 로펌, 심지어 조폭 등이 연결 망을 구성했다. 기재부를 중심으로 기재부의 직간접 영향력 아 래 있는 국토부-한국은행-금융위원회-국세청 등이 재벌(건설) 자본과 금융 자본의 이해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언론은 유리 한 여론을 조성해주고, 검찰과 대형 로펌들은 법적 방어막 및 지원 역할을 한다. 그 대가로 퇴임 후 재벌기업과 대형 로펌, 금융 회사 등을 비롯해 유관기관의 자리를 꿰차고 로비하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가 오래전에 만 들어진 배경이다. 또한 재벌 건설회사와 금융회사는 언론과 대 형 로펌의 주요 수입원이자 고객 역할을 한다. 재벌과 건설회사 는 언론을 직접 소유하기도 한다. 부동산 카르텔이 정권 위에 존 재하는 이유이고, 이 카르텔의 공적 대변기구인 모피아가 정권 을 넘나드는 이유이다.
- 모피아의 뿌리에 해당하는 이헌재와 강만수 등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주요 정책을 좌우했듯이 권력의 성격과 모피아는 관계없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윤석열 정부의 초대 기재부 장관인 추경호가 김대중 정부 출범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이자 김 대중 대통령 경제비서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의 윤증현은 노무 현 정부의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후 김앤장에 있다가 이명박 정 부에서 기재부 장관을 역임했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경제전략을 만들었던 김동연과 홍남기가 문재인 정부의 전 후반 기재부 장관을 지냈고, 한덕수가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수 석, 노무현 정부에서 재경부 장관을 지내고 김앤장에 머물다가 윤석열 정권에서 다시 돌아왔다. 민주당 정권이나 국민의힘 정권 이나 핵심 경제정책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 다시 한번 정리하자. 근대 사회의 최대 사회적 발명품은 민주 주의와 법정 불환화폐이다. 서구사회에서 전통(봉건) 시대와 근 대 사회의 핵심적 차이는 전자는 물리적 힘(폭력)이 경제적 힘(부) 을 결정하는 사회였다. 여기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농민은 (일반적 으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예속적 신분(농노)이었다. 당시의 경제 력은 생산 농민(노동력)과 토지가 결정했기에 경제적 힘(부)을 확 대하려면 보다 큰 물리적 힘(군사력)이 필요했고, 군사력을 강화 하려면 경제력 확대가 필요했다. 그런데 경제력 확장을 위한 길 은 토지와 토지에 결박된 노동력을 확보하는 길이고, 그것이 영 토 확장과 생산 노동력의 예속화를 결정했다. 물리적 힘의 확장 경향이 서구 중세 역사에서 귀족 간 벌어졌던 숱한 전쟁들의 배 경이고, 군사력 경쟁의 결과가 절대왕정(권력의 집중)으로 귀결된 배경이다.
- 다른 한편, 분산된 봉건(지방)권력의 공백지에는 자유도시가 존재했는데, 토지를 지배한 세력이 장악했던, 그리하여 행정 기능을 수행한) 동양 도시와 달리 (토지 지배세력으로부터 자치를 획득한) 자유도시가 된 이유는 도시민 대다수가 상인이고, 상업활동은 이동이 필수 적이고, 도시는 (분산된 권력들 사이의) 힘의 공백지이기에 농촌에서 처럼 물리적 지배집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시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가 기본적으로 제한된 농촌과 달리) 기본적으로 신분상 예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시민으로 구성되었고 '정치적 자유'와 사업상 자유로운 이동이 필요하기에 '경제적 자유'를 기본 속성 으로 하였다.
한편, 지방권력 간의 경쟁, 나아가 절대왕정 간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전쟁 자금의 안정적 조달이었고, 그래 서 도시 상공업자의 경제적 협조는 매우 중요했다. 국가권력이 농민보다 도시 상공업자, 즉 부르주아를 파트너로 삼은 이유이 다. 도시의 정치적·경제적 자유는 경제적 번영과 진보의 동력이 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발전 의 토대로 작용했다.
그리하여 (앞에서 지적했듯이) 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가 수반할 불평등을 완화 혹은 개선하고, 즉 돈의 힘을 견제하고 나아가 국 민 대중의 최소한의 생계를 확보하게 하는 힘이었다. 노동의 권 리와 민주주의가 공진화한 배경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시장의 힘 사이의 견제와 균형은 (중앙은행 중심의 은행시스템에서 보듯이) 금융에서 공공금융과 민간금융 간의 견제와 균형을 의미한다. 즉 상공업이 주도하는 화폐경제의 발전에 꼭 필요한 것이 새로운 금융제도였고, 근대 금융시스템을 위한 최대의 혁신이 법정 불 환화폐의 창출이었다. 불환화폐가 등장하기 전 전통 시대의 모 든 화폐는 금화나 은화 같은 경화, 정화, 실질화폐, 혹은 적어도 (거래 수단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태환화폐였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든 생산활동이 사회적 활동의 성 격을 갖듯이 법정 불환화폐 역시 국민이 함께 보증한 사회적 신 용이라는 점에서 금융의 기본은 공공금융이다. 불환화폐에는 태 생적으로 공공선과 전체 인민 이익에 복무하는 공공금융의 측면 과 시장의 팽창(불)에 '기름' 역할을 하는 민간금융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

- 그렇다면 모피아가 재정준칙을 도입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모피아가 대변하는 금융 자본의 이해를 생각하면 의도가 선명하 게 드러난다. 모피아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정부 채무 중 가를 막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포장해 재정건전성 논리를, 정부의 재정 운용 및 서비스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 정서를 이용하여 재 정지출 최소화 논리를, 그리고 재정 지출을 줄일 것이기에 감세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첫째, 재정 지출 최소화는 모든 부문에 균등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공무원 보수 등 경직성 비용은 줄이기 어렵다. 그리 고 일반적으로 힘이 있는(?) 부서보다 사회경제적 약자층 지원과 관련된 부서의 예산이 일차적인 조정 대상이 된다. 둘째, 공공자 금의 지원이 축소되면 그에 비례해 민간금융에 대한 의존이 증 가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높은 이자 놀이를 하는) 금융 자본의 먹잇 감으로 던지는 것이다. 셋째, 감세는 고소득층일수록 혜택이 크 고, 특히 금융 고소득층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게다가 재정 지출 최소화에 따른 재정 적자를 정부 차입(국채 발행)으로 해결하고, 그로 인해 정부 채무를 증가시킨다. 역설적으로 재정 건전성이 재정 악화를 낳는 것이다.

- 가계와 국가 경제를 약화시키는 대한민국의 가계 부채는 어떻게 멈춤 없이 증가하며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을까?
이는 앞에서 소개한 재벌(건설) 자본과 금융 자본의 이해의 결 과인 부동산자산 중심 경제 구조의 산물이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경 제적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부동산 카르텔이 돈의 배분을 왜곡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소득과 인구 증가의 뒷받침 없이, (미래 소득을 당겨쓰는, 게다가 소득과 인구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 는) 가계 부채 증가만으로는 부동산 가치를 계속 상승시키기 어 렵다. 부채로 쌓아 올린 부동산 모래성은 기생체이고 가계 부채 는 숙주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부동산 모래성이라는 기생체 가 숙주의 기반인 소득과 인구를 파괴하고 있는 격이다. 기생체 와 숙주가 공존하는 자연 세계와 달리 대한민국 사회경제 생태 계는 기생체가 숙주를 죽이고 있는, 자기 파괴적 생태계이다. 부 동산 모래성이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것 은 경제 이론이 아니라 상식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갈 길은 무엇인가? 무너지는 낡은 집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집을 지어야만 한다. 평소 주변으로부터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교수님,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무엇 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요?" 그러면 필자는 말한다. “질문이 잘 못됐습니다. 무엇을 해도 먹고살기 어렵습니다."

- 지금 윤석열 정부가 태영건설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2015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처리할 때가 연상된다. 당시 4조2,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 수혈이 산업은행 주도로 추진됐다. 대우 조선해양의 부실화가 기본적으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의 둔화 속에 해운업 및 조선업의 과잉 문제의 결과였듯이, 2015년과 16년 수출 급감에 따른 기업 부실 문제에 직면한 박근혜 정부가 2016년 에 도입한 것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이었 다. 그런데 이 법은 일본의 1999년 '산업활력재생특별법'을 베낀 것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상징인 '창조경제' 육성도 일본 의 '창조산업' 육성의 베끼기였다. 그리고 지금 윤석열 정부가 부 동산과 건설 부문의 부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앞에서 거론했듯이) 자산시장 거품이 꺼지자 일본 정부가 내놓은 대책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가.
2024년 윤석열 기재부 (최상목)는 예산의 75%를 상반기에 집행 하고 특히 대규모 SOC 사업 추진을 천명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2차 정책주택금융으로 약 27조원 규모의 '신생아특례론'을 추진 하고 있다. 신생아특례론은 2023년 1차 정책주택금융(특례보금자 리론 약 40조 원)에 비해 이자 지원이 핵심이다. 그런데 그 이자 지 원의 규모가 특례보금자리론에 비해 연 1,450~750만 원 추가하 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아직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금리 지원으로 금리 인하 효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일본은행의 공격적 금리 인하가 효과를 보지 못한 데서 보 듯이) 한국 역시 효과를 보기 어렵다. 2023년 전국 아파트(9억원기 준) 가격 하락이 평균 6,030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라 하 더라도 이자 혜택보다 4배나 더 되는 손실을 예상하면서 주택 구 입에 선뜻 나설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본질 적인 문제는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올린 부동산 부채 모래성으로 인해 부동산과 건설 부문이 과잉 상태라는 점이다. 이는 부동산 과 건설 부문의 규모 축소가 불가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2023년에 특례보금자리론이 마중물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근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이처럼 시장은 이미 정책주택금융의 제한적 효과를 경험했다. 선거 (4월)를 앞두고 2차 정책주택금융을 최대한 투입하고 있지만 마중물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는 오히려 이를 에너지 소진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로 공포 확산 단 계로까지 진행할 것이다.
가계 소비, 기업 설비투자, 그리고 수출 등 성장 에너지가 약 화한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자산가치의 하락을 의미 하고, 이로 인해 소비의 추가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수준으로 성장률이 하락한 상 태에서 부동산 시장 침체가 더해지면 향후 한국 경제의 성장률 은 일본의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부동산 시장 침체와 경기침체가 맞물린 후 초금융완 화 등의 백약이 무효했듯이 한국의 금리 인하 카드 역시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이지 머니Easy money 시대를 다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일본의 90년대보다 불리한 상황이다.
이처럼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보다 더하다면 그것은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내수 의존이 높은 자 영업과 중소기업의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까지 붕괴하며) 한국 경제는 정말 로 주저앉을 것이다. 따라서 적당한 시점에 (금융회사 구제에 초점을 맞춘 미국형 양적완화와 달리) 가계 구제에 초점을 맞춘 '한국형 양 적완화'가 불가피하다. 주택금융공사가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을 인수한 후 주택금융공사가 매입한 주택을 장기공공임대로 전 환하는 것이다. 주거 불안을 겪는 많은 세입자의 주거 문제를 안 정화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주거시설 을 확보할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게다가 주택 매물 압력은 완 화할 것이고 주택 소유를 포기한 가계도 여유 자금(주택자산 중 자 기자본 부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채 상환 부담에 서 해방되고 소비 여력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차기 정권의 과제이다.

- 자산담보증권은 출현하자마자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2021년 에 자산담보증권의 시장 규모는 2조 1,371억 달러에 달했다. 자 산담보증권의 출현은 금융회사가 자금을 시장에서 직접 조달하 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시중의 통화량 공급은 중앙 은행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른바 중앙은행의 통화공급 독점력이 다. 그런데 금융 자본이 중앙은행의 자금 지원 없이도 상당한 자 금을 조달할 길이 열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금융의 외생성 外生性에서 내생성生性으로의 진화라 부른다. 중앙은행의 화폐공 급 독점력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화폐공 급이 달라지면서 전통적인 통화정책이 통화량 중심에서 (통화량조절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리하던) 이자율 중심으로 변경한 배경이다. 이렇게 화폐 권력을 독점하던 중앙은행(중앙정부)의 입지는 상 대적으로 약화하고, 그에 비례해 월가 금융 자본의 영향력이 증 대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 상황이 어려워질 때 (공공연하게) 연준 이 월가와 소통 및 협력을 해온 이유이다. 금융위기 때마다 연준 이 취약계층보다 부실 금융회사 구제에 초점을 맞추는 배경이 다. 공공선과 국민 이익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중앙은행이 실종 된 것이다. 독일 출생의 뉴욕 컬럼비아대 로스쿨 법학자, 카타리 나 피스토어 Katharina Pistor가 금융화의 결과와 정치 실종 간의 관계 를 말하는 이유이다.
- “금융은 더이상 저축자로부터 대출자에게 돈을 전달하는 단순한 중개기관이 아니다. [금융의] 기능은 더 이상 원금 과 이자를 갚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의 손에 돈을 쥐어주 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반대로 금융은 이제 정부를 포 함한 다른 사람들의 의제를 설정하면서 운전대를 잡고 있 다. (...) 시간이 흐르면서 금융은 경제에서 중요하지만, 단 순한 중개 역할에서 더 나아가, 심지어 정부에 의한 대부 분의 의사결정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금융화는 너무 나 뿌리가 깊어져 우리는 정치를 배우지 못한 것처럼 보인 다.” (Katharina Pistor, Oct 5, 2023, "How Finance Became the Problem Project Syndicate.)

- 플랫폼 사업모델들은 플랫폼 신용화폐를 도입하면 플랫폼의 규 모와 수익도 키울 수 있기에 플랫폼 신용화폐 도입을 매력적으 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이 모든 플랫폼을 통합하는 메 타버스를 지향하며 사명을 '메타'로 바꾼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가치 창출 역량에서의 우위 때문에 경제의 플랫폼화, 즉 오프라인 산업생태계에서 디지털 생태계로의 이행은 불가역 적이다. 2024년 들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비트코인을 상장지수펀드 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 승인을 할 수밖에 없었 던 배경이다. 아마 머지않아 분산형 네트워크 화폐가 통화지표 에 포함되는 일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은행의 화폐공급 독점력을 약화시킨 자산담보증권이 통화지표에 포함되었듯이 화폐 권력의 분산화 추세를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생태계는 디지털 공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통합하는 사업모델 성격상 국가 영토를 중심으로 구성된 전통적 경제 규 모를 뛰어넘을 뿐 아니라 디지털상에서 모두를 연결하기 때문에 개방과 분산을 특성으로 하는 네트워크이다. 따라서 중앙집권적 국민국가 체제에서 사용하던 화폐시스템은 부적합하다. 블록체 인 기술에 기반한 암호화폐가 '분산형 네트워크 화폐' 성격을 갖 는 이유이다.
디지털 생태계로의 진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중앙집중형 에서 분산형 네트워크 화폐의 진화 역시 불가피하다. 문제는 (전 통적인 국가 권력의 견제와 더불어) 디지털 생태계가 (앞에서 디지털 생태계의 현주소를 지적했듯이) 가치의 공동 창조와 이익 공유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다 보니 사업자 중심의 파편화된) 플랫폼 사업모델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생태계에서의 화폐시스템은 분산과 개방과 공유가 핵심이기에 기존 중앙집중 형 플랫폼 사업모델에서의 데이터 독점이라는 기득권을 내려놓 아야만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앞에서 유보한 메타버스형 플랫 폼으로 진화할 경우 플랫폼에서 사용하는 분산형 네트워크 화폐 의 공급에 따른 이익을 취득할 수 있다. 메타버스형 플랫폼에서 가치 창출이 증대할수록 이 플랫폼에서 사용하는 분산형 네트워 크 화폐의 가치도 상승할 것이기에 모두가 이익을 배분받게 된 다. 이는 물론 메타버스형 플랫폼의 완성과 맥을 같이할 것이기 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새로운 사회질서로 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많은 전문가는 금융위기 이후부터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 경험했던 저물가와 그에 기초한 초저금리(이지 머 니) 시대는 다시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의 '이지 머니' 공급에 의한 자산시장 부양 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한다. 사실 이는 저임금 중국 경제의 세계 시장 편입으로 상징되는 세계화와 수확체감 효과가 약화하는 방향으 로 산업체계 변화를 불러온) 기술진보 등이 가져다준 저물가로 가능 했다. 그런데 디커플링이라 부르든, 디리스킹이라 부르던 (사실 대 상이 된 중국은 양자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정책 주도의 경학적 파편화 리스크The risk of policy-driven geo-economic fragmentation는 '상 수'가 되었다. 이것은 (앞에서 2021년 이후의 비경제적 공급 충격에 의한 인플레 요인으로 말한) 미국(서구) 패권주의라는 근대 국제관계 패러 다임이 실패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금융 충격으로 불황이 도래하기 전에는) 과거의 인플레 수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미국 정치권이 예산 통제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 이다. 최근 시장이 미국 정부의 자금조달 업무(국채 경매 응찰률, US Treasury's Quarterly Financing Announcements)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 는 배경이다. 장기 국채에 대해 투자자들이 예상보다 높아지는 인플레 위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 11월 재무부의 분기별 자금조달 발표에서 미국채 공급 물량의 조절(축 소)은 2024년 (임시) 예산안 타결로 확보한 재정 운영 여유의 결과 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대응 방식은 기본적으로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미국채 공급 과잉 우려는 구조적 문제이 기 때문이다. 시장에 공급되는 미국채 규모는 금융위기 이전 (2001~2008년)에는 연 6,795억 달러(GDP 증가분의 120%)씩 증가하다 가 금융위기 이후부터 코로나 팬데믹 이전(2009~2019년)까지는 연 1조 1,365억 달러(GDP 증가분의 171%)씩 증가해왔다. 그리고 코 로나 팬데믹 이후(2020~2022년)에는 연 3조 1,485억 달러(GDP 증가 분의 210%)씩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채 공급 과잉 문제가 해소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게다가 미국채 시장에서 러시아가 강제 이탈된 것이나 일본과 대만 등의 생명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 입장으로 전환하며 장기 국채 투자자에서 매도자로 변한 것도 장기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증대하는 배경이다. 이는 미국채 가격의 안정성 약화가 '상수' 가 되는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달러 힘의 약화를 의미한다. 옐런이 “준비금의 자연스러운 다변화 욕구”를 미국이 준 비해야 한다고 말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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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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