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면 죽는다

인문 2024. 7. 25. 07:22

-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은 불가해함이다.
이는 모든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근원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낯선 자, 놀라움에 걸음을 멈춰 서서 경외감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눈은 감겨 있으므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에드거 앨런 포는 탐정소설을 발명하며 인간의 마음을 낚는 새 로운 방식을 발견했다.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포의 공식은 궁금증 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이 공식을 좋아할까? 우리가 실종 된 작가와 해결할 수 없는 범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미스터리 는 왜 심리적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걸까?
동물의 뇌 연구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파민의 특징부터 살펴보자. 도파민은 '섹스, 약물, 로큰롤의 화학물질'이라는 별명답 게 쾌락주의와 한데 뭉뚱그려 이야기될 때가 많다. 도파민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우리의 관심을 관장하는 것이다. 요컨대 도파민은 우리가 세상을 살피고 가장 재밌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때 통용되는 신경 물질이다. 즐겁다는 느낌은 뇌가 우리에게 저길 보라고, 이걸 눈에 담으라고, 저기에 집중하라고 지시를 전달하는 도구다.
그렇다면 도파민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상이 가능한 뻔한 정보는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 는 재미, 혹은 신경과학자들이 '예측 오류'라고 이름 붙인 재미다.23 연구실의 과학자들은 보상 패턴(레버를 눌러 간식을 받는)을 구축한 뒤 그것과 상관없이 불쑥 달콤한 초콜릿을 내미는 식으로 예측 오 류를 유발하곤 한다(시끄러운 소리나 번쩍이는 불빛처럼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자극으로도 엄청난 도파민을 유발할 수 있다). 뇌세포가 뜻밖의 사건에 민감한 이유는 그것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아주 어마어 마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영장류, 쥐, 심지어는 초파리의 내부 기관 에도 이와 똑같은 기발한 프로그래밍이 존재한다.24
이와 같은 정신적인 소프트웨어의 역사는 수백만 년보다 더 오 래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는 이 해묵은 코드를 새롭게 활용 할 방편을 찾아냈다. 열량 높은 음식과 섹스뿐 아니라 발상과 서사 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불가사의 한 실종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가 됐건 에드거 앨런 포의 탐정소설 이 됐건 간에 이런 글은 도파민계를 계속 흥분시키고, 따라서 우리 는 원시적인 보상 없이도 계속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자신이 자아낸 의미의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동물이다."
도파민계에는 묘한 특징이 있다. 인간의 뇌는 항상 문제 해결과 향후 예측을 시도하며 패턴을 만드는 기계지만, 우리의 관심을 사 로잡는 것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예측 오류, 즉 예상하지 못했던 보상과 뜻밖의 사실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은 전제를 설정한 뒤 미 묘하게 우리의 기대를 깨뜨린다. 해답 공개를 최대한 늦추며 몰입 하게 한다. 우리의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는 것, 그것은 바로 궁금증 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손드하임(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유 명한 세계적 뮤지컬 작곡가이자 기획자옮긴이)은 자신의 미학을 다 음과 같이 요약했다. “예술작품에는 뜻밖의 놀라움이 필요하다. 그 렇지 않으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놓을 수 없다."
-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셰익스피어가 '소극적 수용력 Negative Capability'을 갖춘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소극적 수용력이란 성급하게 사실을 증명하려 들거나 논리를 찾으려 애쓰지 않고, 불확실하거나 이해할 수 없고 의심스러운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다.27 셰익스피어는 단순한 사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작품의 줄거리는 난해했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돌발적이었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밀을 절대 밝히지 않으며, 캐릭터의 동 기와 심리에 관한 설명을 과감히 생략했다. 도무지 해결할 길 없는 난제를 제시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것이 이야기를 끌 고 가는 강력한 동인이자 서스펜스로 작용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 이다. 키츠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작품 안에서 '미스터리의 부담' 을 포용한 작가였다. 바로 이것이 그의 작품이 독자의 뇌리에 강렬 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이며, 우리가 오늘날까지 셰익스피어를 사 랑하는 이유다. 이 같은 예술작품은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한다. 

- 뜨거운 의구심만큼 지성을 자극하는 것도, 구불구불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만큼 아직 덜 여문 인간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도 없다.
슈테판 츠바이크

- '아까운 실패'의 유혹이 이다지도 큰 이유는 무엇일까. 케임브리 지대학교의 과학자들이 최근 《뉴런》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슬롯 머신에 입력된 아까운 실패는 도파민이 풍부한 뇌 영역에 혈류량 을 증가시키며 실제로 돈을 땄을 때와 똑같은 보상 회로를 활성화 한다고 한다.16
인간은 왜 이렇게 이상하게 프로그램되어 있을까? 한 가지 가설 은 우리가 '아까운 실패에서 느끼는 쾌감이 어려운 기술을 새로 습 득하려 할 때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우리가 농구 3점 슛 을 연습 중이라고 치자. 처음에는 에어볼이 난무하고 중구난방으로 튀는 공을 잡기 바쁘다. 하지만 서서히 실력이 쌓이면 공은 점점 골 대와 가까워지고, 슛을 넣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짜릿함을 느끼고, '아까운 실패'를 원동력 삼아 기량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만약 우 리가 정확히 슛을 넣었을 때만 신이 난다면 금세 포기하게 될 것이 다. 따라서 우리의 뇌에는 점진적인 발전을 즐기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도박 기계는 이처럼 유용한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잔인하게 악용한다. 이 미스터리 박스는 시도하고 또 시도 해도 아무런 능력치도 생겨나지 않는다. 레버를 계속 당겨도 어떤 기량도 쌓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까운 실패'로 활성화된 도파민 신경 세포(뇌에서 기운이 넘치는 치어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거의 다 왔다며,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보라고 우리를 독려한다. 그런다 한들 잃은 돈의 액수만 점점 불어날 뿐인데도 말이다.
슬롯머신이 우리에게 남기는 더 큰 교훈은 문화가 계속해서 변 화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의 사고방식에 발맞춰 끊임없이 진화 한다. 슬롯머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힘을 갖춘 미스터리 박 스로 발전했다.

- 예컨대 야구를 보자. 야구라는 스포츠의 미스터리는 이 운동 경기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에서 나온다. 타자가 방망이를 휘둘러 150킬로미터로 빠르게 날아오는 동그란 공을 때린다는 것. “야구가 어떤 식으로 잔인한가 하면, 고작 몇 밀리미터 차이로 1루타가 되기 도 하고 병살타가 되기도 하죠. 그러니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도 조 절에 한계가 있어요."
야구의 역사는 이 미스터리를 사수하려는 노력의 역사였다고 봐 도 무방하다. 1893년 미국 야구계는 당시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이 스포츠를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규칙 변경에 나섰다. 당시 야구에 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타자들이 공을 못 친다'는 것이었 다. 1887년 이후 내셔널 리그 선수들의 타율은 0.269에서 0.245 낮아졌고 각 팀의 삼진 기록은 41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가장 성적 이 좋았던 보스턴 빈이터스 팀이 한 시즌 동안 친 홈런은 다 합해도 서른네 개밖에 되지 않았다.30
타자들이 추락한 이유는 투수들의 부상 때문이었다. 1890년대 초반 들어 투수들의 기량은 날로 향상됐다. 직구의 구속은 더 빨라졌고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모스 루시는 16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공을 던졌다"), 새롭게 개발된 '스크루볼' 커브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 다. 그 결과 예측 가능한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에서 의미 있는 움직 임을 보이는 선수들은 공을 던지는 쪽뿐이었다. 훌륭한 투수가 마 운드에 오르면 그 팀이 거의 100퍼센트 승리했다. 덕분에 게임은 지루해졌고, 이는 심각한 사업상의 문제로 이어졌다. 야구장을 찾 는 관객의 숫자가 급감한 것이다.
영세한 팀들은 출혈이 심각했다. 이들은 도산을 막기 위해 1893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선수들의 연봉을 거의 40퍼센트 삭감했다.32 야구는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보였고, 얼마나 더 버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구단주들은 경기 관람객 수를 늘리기 위해 경기 규칙을 바꾸기로 했다. 전에는 투수들이 홈플레이트에서 17미터 떨어 진 구간에서 공을 던졌다. 구단주들은 이 간격을 18.5미터로 늘리기 로 했다. 논리는 간단했다. 타자들에게 공을 칠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나면 신세대 에이스 투수들을 상대로 승산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33 포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규칙 변경에 반발했다. 타자들은 직구 구속 이 160킬로미터에 육박하는데 달랑 1.5미터 간격을 늘린들 무슨 차 이가 있겠느냐며(게다가 스크루볼은 공의 속도와 상관없었다) 아무 의미도 없을 거라고 했다. 투수들은 타자들이 공을 못 치는 게 자기들 잘못은 아니지 않냐며 불공평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전통주의자들 은 야구라는 스포츠가 망가지고 있다고 조바심을 냈고 영세한 팀 들은 투수들이 타자들에게 유리한 언더핸드로 볼을 던지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새로운 규칙은 효과가 있었다.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사이 간격을 18.5미터로 늘리자 실력과 운의 균형이 거의 완벽에 가까워 졌다. 타자들은 이제 공을 맞힐 수 있었고, 그렇다고 공이 날아가는 방향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하지는 못했다. 1893년의 구단주들이 통 계 변량까지 고려했을 것 같진 않지만(단순히 공격이 더 활발해지길 바랐을 것이다) 어쩌다 우연히 공과 방망이 사이의 '모순의 최적지' 를 발견해낸 것이다.
통계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규칙을 바꾼 뒤로 타자들의 삼 진율은 37퍼센트 줄었고 타격 변동성도 극적으로 상승했다. 전보다 장타와 홈런(가장 짜릿한 안타)을 더 많이 쳤고, OPS(타자의 출루 기 대치, 출루율과 장타율의 합을 말한다)는 채 2년도 안 돼서 26퍼센트 상승했다. 이런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1893년의 규칙 변화가 근대 야구를 탄생하게 했다. 모순의 최적지를 찾은 덕분에 이제 막 등장한 신생 스포츠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후 야구 규칙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이상적인 미스터리 박스의 조건을 찾아냈 으니 바꿀 필요가 없지 않은가.
몇몇 스포츠가 열광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가장 실력 있는 선수를 선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제한하는 방법을 찾기 때 문이다.34 이 스포츠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끼리 서 로 경쟁을 붙이되, 실력이 나은 선수가 항상 이기지는 않도록 경기 에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한다. 그 결과 이 스포츠는 팬들에게 그들 이 무의식적으로 원하던 것을 선사했다. 확실한 승리가 아닌 '극적 인 불확실성' 말이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보는 이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콘텐츠 로 가득하다. 물론 그런 콘텐츠는 우리에게 재미와 오락을 선사하지 만, 휘발되기에 십상이다. 반면 세상을 뒤흔드는 작품은 법칙을 깨 부수고, 판을 뒤집는 전복적인 매력을 지닌다. 그런 예술은 X를 예 상하도록 훈련된 우리에게 Y와 Z를 보여준다. 이런 전략이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처럼 혼란스럽고 매력적인 작품을 탄생하게 한다.

- 아마존은 자사의 킨들용 맞춤 서체 '부컬리'가 "눈의 피로는 줄이고 읽는 속도는 높이기 때문에 더 편안한 독서를 유도한다고 홍보한 다. 많은 브랜드가 로고 디자인에서 매끄러움의 극대화를 추구한 다. 아메리칸 항공사, 지프, 타깃, 네슬레, 도요타는 모두 로고에 헬 베티카 서체를 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험 결과에 따르면 정보 처리가 수월할수록 관심 유도와 기억 유지에는 불리하다. 쉽 게 들어오면 쉽게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매끄럽지 않은 것을 대할 때 생각이 촉진되고 더 많은 걸 배우게 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최소한으로 생각하며 에너지 소모를 최대 한 줄이려 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인간의 뇌부터 들여다보자. 뇌 가 하루에 의식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열량은 약 300칼로리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겨우 초코바 한 개 분량이다.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의 뇌는 어떤 가능성을 엉터리로 짐작할 때나 타인을 즉각적으로 판단할 때 정신적인 지름길에 의지하곤 한다. 하지만 지름길 을 택하는 건 사실 생각의 속도를 높이는 게 아니다. 생각의 단계를 건너뛰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삐뚤빼뚤한 서체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형태가 낯설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코믹 산스 서체의 가벼 운 떨림은 우리의 의식을 깨운다. 혹은 적어도 평소와 똑같은 사고 패턴을 밟지는 못하게 한다. 올터는 "복잡한 서체는 알람과 같은 역 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정신적인 능력을 추가로 동원해 그 어려움 을 극복하도록"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 번바크는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로 잡지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한 다음, 산업 안전 감독관들에 대해 홍보했다. 천재 카피라이터 줄리 언 커니그가 경쾌한 대화체로 문구를 작성했다. 글은 이렇게 시작 한다. "이 폭스바겐은 때가 지났죠. 글러브 박스의 크롬 부분에 흠집 이 나서 교체해야 하거든요." 이후 몇 단락에 걸쳐 독일의 제조 기술 을 설명한 뒤 커니그는 완벽한 문구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레몬은 저희가 골라냈습니다. 당신은 자두(영어로 알짜배기를 뜻한다-옮긴 이)를 가지세요.”
어쩌면 어렵게 가는 게 안전한 길일지 모른다. 도일 데인 번바크 의 크리에이티브 팀이 천재적인 이유는 아주 엄격한 규칙으로 가 장 혁신적인 광고를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수많은 원칙을 깨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철저히 의도적이었고, 메시지는 강화 됐다(번바크는 팀원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제품. 제품. 제품에 집중해"30). 강렬한 헤드카피, 흑백 사진, 산세리프 서체, 줄 끝을 맞추지 않은 레이아웃. 이 모든 뜻밖의 선택이 비틀의 실용적인 장점을 강 조했다. 번바크가 사명 선언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광고라는 예술 을 정의하는 건 바로 이런 디테일이다. “새로운 길을 냅시다. 훌륭한 취향, 훌륭한 예술, 훌륭한 문구가 훌륭한 마케팅이 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줍시다."
그렇다면 우리의 비틀은 과연 피 말리는 경쟁에서 살아남았을까? 그랬다. 미국 자동차 업계의 빅3(포드, 크라이슬러, 제너럴 모터스)가 새로운 소형차 모델을 선보이고 3년이 지났을 때 수입차들의 판매 대수는 거의 50퍼센트 하락했다. 유일하게 비틀의 매출만 꾸준히 상승했다.

- 음악적 미스터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것)야말로 예술에서 가장 주요한 정보의 원천이다. 뜻밖의 음은 정답에 대한 예측을 무너뜨 리고, 다른 방식으로 구멍을 메우며 메시지 안에 담긴 온갖 미묘한 부분들을 주목하게 한다. 그렇게 더해진 추가적인 정보는 작품을 파악하는 걸 더 어렵게 만든다. 그 예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 주를 넘어선다. "우리는 바흐의 음악을 듣지만, 모든 부분을 명확 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제미니아니의 음악을 들을 때보다는 그럴 것이다. 카니예는 해석이 안 되는 힙합을 만든다. 그러한 미스 터리가 이들의 작품에 주의를 쏟게 만든다.
맥길대학교 연구진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소개된 논문에서 음악을 들을 때 소름 또는 전율을 느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39 피험자들에게 좋아하는 노래의 목록을 건네받아 (테크노부터 탱고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장르를 망라했다) 틀어준 뒤 fMRI와 PET 스캔으로 그들의 뇌 움직임을 관찰했다. 충분히 예 상할 수 있듯 음악이 들리자 피험자들의 대뇌피질에 불이 들어왔 고 많은 영역에서 도파민의 활발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피험자들이 소름이 돋거나 전율을 느끼기 직전의 현상이었 다. 피험자들은 전율을 경험하기에 앞서 미상핵의 활동이 지속적으 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실의 법칙에 어긋나는 마술 트릭을 접했을 때 반응하는 곳도 바로 이 미상핵이다.
그렇다면 어떤 악절이 미상핵을 자극했을까? 연구진에 따르면 작곡가가 "예상을 깨거나 (예를 들면 뜻밖의 음을 끼워 넣거나 템포를 늦추는 식으로) 예측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뜸을 들이는" 구간을 맞 닥뜨릴 때 예민하게 반응했다. 40 게다가 예상과 달리 소름을 유도 하는 구간은 화음이 잘 맞는 코러스나 절정을 향해 점점 고조되는 부분이 아니라 그 이전의 난해한 부분이었다.
- 이것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의 역설이다. 그들은 이해하기 쉽거나 매끄럽지 않다. 우리를 깊이 건드리는 것은 쉬운 콘텐츠가 아니다. 구두점이 없는 시, 전례가 없는 음악, 원칙을 깨는 동화, 기존의 장 르적 클리셰를 거부하거나, 영리하게 비꼬아 활용하는 영화에 주 목한다.
아름답다는 느낌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카니예는 자기가 만 든 부조화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음처럼 들릴 수도 있다. 바흐의 장엄한 음악을 누군가는 그저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각기 다른 형태의 매끄럽지 않음과 부조화에 반응한다. 하지만 취향은 수없이 다양할 수 있어도 이것만은 확실 하다. 아름다움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아름다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몰입해야 하고,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 대 상과 씨름해야 한다. 존 키츠는 말했다. 아름다움이 진실이며, 진실 이 아름다움이라고. 그러나 키츠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은 진실이 아니다. 아름다움은 모호한 진실로 잊을 수 없는 질문을 남 기는 대상과 마주할 때 얻을 수 있는 위로다.
친숙함에 안주하면 편하다. 인간의 뇌는 태생적으로 게으르다. 하지만 가장 훌륭한 예술은 묘하고 불안한 느낌을 전달하며 좀 더 수수께끼 같은 길을 선택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몸부림이 다. 향유하려는 몸부림, 설명하려는 몸부림이다. 덕분에 예술은 계 속된다.

- 어차피 산다는 것은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을 오해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오해하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거듭 고민한 끝에 다시 오해한다. 오해가 바로 살아 있음의 방증이다.
어쩌면 타인을 이해하건 못하건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
필립 로스, 미국의 목가

- 등장인 물을 만들 때 셰익스피어가 감행한 가장 위대한 혁신은 생략이었 다. 이 위대한 극작가는 미스터리만 남을 때까지 정보를 제거했다. 문학평론가 스티븐 그린블랫은 이런 방식을 '전략적 불투명성'이라 고 소개하며, 셰익스피어가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를 삭제 하여 향후 펼쳐질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는 논리적 근거, 동기, 도덕 적인 원칙을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이 런 전략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고, 모든 해설을 차단하는 드라 마를 창조했다.
-전략은 제대로 효과를 거뒀다. 『햄릿』은 런던의 글로브 극장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햄릿을 기점 으로 이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미스터리가 가장 큰 특징이 되었 다. 이전 작품에도 항상 특이하게 행동하는 주인공이 등장했지만, 이 정신 나간 캐릭터들은 대부분 사랑에 빠져 그러는 것 뿐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욕망에 사로잡혔을 뿐, 복잡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 지만 『햄릿』 이후부터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불 투명해진다. 셰익스피어는 여러 작품을 각색해 걸작을 탄생시켰다. 그린블랫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원작에서 소재를 취한 뒤 '완성도 높은 작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 같은 부분까지 과감히 발라내 버렸다." [오셀로』에서는 이아고의 동기를 제거해 특별한 이 유 없이 복수를 노리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리어왕』에서는 왕의 비합리적인 초반부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플롯의 중요 포인트를 삭제했다. 셰익스피어가 각색한 「리어왕」에서는 늙은 왕 이 딸들의 사랑을 시험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그 결과 캐릭터들은 '깊은 심리적 욕구'에서 비롯됐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제멋대로에 종 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셰익스피어는 불투명성의 매력을 발견 한 후 관객의 심리에 관한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설명을 제거하고 보니 관객들은 빤한 인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 이 원하는 건 수수께끼, 알 수 없는 존재의 출연에서 느껴지는 전율 이었다.

-다른 종교에서 전해 내려오던 이 야기들은 구약성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구약에 소개된 수많은 사건에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예컨대 노아의 방주는 길가메시 서 사시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더욱 중요하게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새 로운 신을 구현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중들이 그를 '유일 신'으로 정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하느님은 선명한 서사 구조를 갖춘 일관성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는 이야기 조각을 덕지덕지 기워 붙인 콜라주였고, 그 조각들은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렇다. 그는 미스터리였다.
- 일례로 창세기는 자신을 엘로힘이라 칭하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서 인간을 창조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에 서 인간 창조의 두 번째 버전이 소개된다. 이번에는 자신을 야훼 엘 로힘 혹은 여호와 하느님이라 칭하는 신이 그 일을 수행한다. 첫 번 째장에서는 인간에게 온 땅을 주지만, 두 번째 장에서는 에덴이라 는 조그만 동산으로 공간이 제한되며, 선악을 인식하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기가 내려진다(1장에서는 따라야 하는 규율이 전혀 없다). 인간이 명령을 어기고 그 열매를 먹자 야훼 엘로힘은 분 노하며 자녀들을 저주하고 인간의 태생을 전과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인간은 이제 그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피조물이 아니라 흙으 로 빚어진 존재다. 구약성서는 이런 식의 모순으로 가득하다. 연구 자인 잭 마일스의 주장에 따르면 하느님은 성서의 주인공이다. 그와 그의 피조물 사이의 진화하는 관계가 성서의 주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존재이니 그와 피조물 간의 관계는 직선 적이지 않을까 싶겠지만, 오히려 격정적이고 변덕스럽다. 신은 인간 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가 거두어간다.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도 하 지만 때로는 분노하며 응징한다. 인간을 자식처럼 사랑하다가도 주 저 없이 고통 속에 버려둔다. “신이 지닌 이 같은 까다로운 성격적 특성은 긴장을 유발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를 강력하고, 심지어 매 력적이고 중독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마일스의 설명이다.
- 셰익스피어가 『햄릿』에 쓴 것도 이와 똑같은 전략이다. 그는 햄 릿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단서들을 제거해 '전략적 으로 불투명한’ 왕자 캐릭터를 창조했다. 이러한 불투명성으로 인 해 캐릭터의 일관성은 사라졌지만, 관객들을 매료하는 데에는 성 공했다. 구약성서의 하느님도 마치 햄릿처럼 속내를 투명하게 읽을 수 없다. 따라서 그는 계속 흥미로운 존재로 남는다.
성서에서 가장 이상한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이삭의 구속'을 살 펴보자. 하느님은 사랑하는 종복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 라고 한다. "네 아들, 네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데리고............... 산 에 올라 거기서 그를 번제(제물을 불에 태우는 희생의식) 드리라”고 한다. 이보다 잔인한 요구가 없다.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능한 하 느님이 왜 가장 신실한 종복의 믿음을 시험하는 걸까?
- 하지만 아브라함은 순종한다. 그는 아내와 아들에게 산으로 가양 을 제물로 바칠 거라고 거짓말을 한다. 키르케고르는 바로 이 거짓 말이 단서라고 지적했다. 아브라함은 절대 실수하지 않는 하느님이 아주 비도덕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사실을 밝힐 수 가 없다. 아무리 순종적인 그의 아내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 문이다. 문학 연구자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미메시스에서 성서 속 이 엽기적인 장면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히 브리 민족의 하느님은 '무거운 침묵'과 '모호함'이 특징이다. 그의 행 동이 묘사되기는 하지만 "행간의 설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생각 과 감정에 대한 언급은 없고 다만 침묵과 단편적인 발언으로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 결과 아주 간단한 텍스트조차 해석을 요한다.
- 어떤 율법학자들은 오히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시험한 거라고, 야 훼 엘로힘이 살인을 강요할 리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번제를 드리는 척한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느님의 동기가 불분명한 순간조차 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화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무도 모른다. 배후에 어떤 교훈이 있다 한들 그조차 미스터리다. 구약을 관통하는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자신의 불투명성에 대처 하는 하느님의 태도다. 그는 전지적 존재일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까 지 전부 아는 건 아니다. 하느님은 히브리 성서의 후반부에 해당하 는 이사야서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불가사의한 측면을 인정한다. 전 쟁에서 패하고 유배당한 유대인들이 그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하 자 하느님은 “그(하느님)의 이해심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의구심에 공감한다. 이사야서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이렇듯 예측을 불허하는 행동으로 인해 그는 까다롭고 숭배하기 어려운 신으로 느껴지지만, 이것 이 바로 성서가 지닌 문학적 소구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 누스가 말한 것처럼 "이해할 수 있겠다 싶은 신은 신이 아니다."

- 예술가는 무엇이든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모든 해답의 핵심으로 파고들어 해답이 감추고 있는 의문을 폭로해야 한다.
제임스 볼드윈, 「창작 과정에 대하여 THE CREATIVE PROCESSI

- 시리즈 말미에 해리는 덤블도어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일을 어 렵게 만드셨어요?" 청소년 소설에 미스터리 박스, 예측 오류, 불투 명한 캐릭터, 모호함을 잔뜩 집어넣은 롤링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 이유는 모색하는 과정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재미와 지적 훈련을 책임지는 건 해답이 아닌 수수께끼다. 어쩌면 이것이 덤블도어의 가장 큰 가르침일지 모른다.
해리 포터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탄탄한 플롯을 갖춘 추리소설이다. 맨 처음 읽을 때는 미스터리 박스를 얼른 열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휙휙 넘기게 된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진가는 복잡한 플롯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결말을 알고 난 다음에도 덤블 도어가 가르쳐준 대로 텍스트를 분석해가며 다시 읽고 싶은 충동 을 느낀다. 모든 인물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예언 은 예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월로스키가 밝힌 것처럼 "우리 는 무궁무진한 의미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 살고 있고, 따라서 해석 에도 끝이 없다는 것”이 해리 포터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절대 구태의연해지지 않는 미스터리로 가득한, 한계가 없는 게임으 로 남는다. '마법 학교'를 다룬 책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결말이다.
- 스포일러가 이야기의 재미를 망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크리스 펠드에 따르면 상상의 세계의 위용이 불확실한 결말보다 더 중요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상의 이야기를 보거나 읽을 때 우리는 의 식적으로 그 세계 안에 들어갑니다. 불신은 묻어두고 존재하지 않 는 공간, 어쩌면 가능하지조차 않은 공간에 감정을 이입하기로 해
요. 무슨 뜻인가 하면, 외계인이든 용이든 뭐든 믿기로 마음을 먹으 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안다고 해도 계속 몰입할 수 있다는 겁 니다." 즉 우리가 가상의 세상 속으로 빠져드는 비상한 재주를 발휘 할 때면 스포일러가 힘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스포일러 때문에 더 재밌어지는 이유는 뭘까?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하자면, 스포일러를 알고 나면 작품 속의 더욱 중요한 미스터리로 관심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코폴 라가 <대부>에서 자막을 생략하여 인물들의 섬세한 연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했던 것처럼 말이다. 혹은 해리 포터의 경우를 보 라. 스네이프의 정체를 알고 나면 우리는 그의 복잡한 동기를 자유 롭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평면적이던 숙적이 입체적인 인물로 둔갑한다. 크리슨펠드는 이렇게 말했다. "스포일러로 인해 작품이 더 흥미로워지는 이유는 다른 모든 것을 더 의식할 수 있게 되기 때 문이죠.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 니까요. 그러면 그 외의 모든 것, 우리를 가상의 세계로 유혹하는 그 알쏭달쏭한 디테일의 재미를 느낄 여유가 생기죠." 우리는 스포일 러가 미스터리를 감소시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걸작의 경우는 그 반대다.

- 예술은 우리에게 미스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긴장감 넘치는 반전과 다층적인 세상, 불투명한 등장인물과 모호한 대사를 통해 예측 오류를 즐거 이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훈련한다. 확실한 증거를 찾는 일보다 의 구심을 갖는 게 더 쓸모 있으며, 알아차림의 상태에 머무는 마음챙 김이 더 즐겁다고 일깨운다. 우리는 기쁨의 근원이 과정에 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려는 시도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삶에서 미스터리를 피할 방법 이 없기 때문이다. 미지의 영역은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진실을 원하지만 사실 그런 건 없 다. 가장 그럴듯한 이론은 부정당하고 사실은 변조되며, 결국 우리 는 거의 모든 것에서 오류를 범한다. 이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 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의 철학자 윌러드 밴 오먼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은 「경험론 의 두 가지 신조Two Dogmas of Empiricism」라는 독창적인 논문에서 이를 제대로 요약했다. 콰인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과학 원칙이 대부분 가장 미스터리하다. 중력을 예로 들어보자. 중력은 어린이들도 배우고 아는 기본적인 과학 원리지만, 중력이 있기에 만물이 아래 로 떨어진다는 그 단순한 사실 속에는 심오한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다. 뉴턴이 중력을 설명한 지 거의 350년이 지났고 아인슈타인이 시공의 관점에서 중력의 개념을 재정립한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중력이 무엇으로 이루어졌고 어디에서 비롯되며 양자 역학과 어떤 식으로 호응하는지는 여전히 밝혀진 바가 없다. 중력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은 할 수 있지만, 중력 자체는 오리무중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것들에 의지한다.


Posted by dal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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